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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직 예수인가

기독청년과 성적순결의 문제




기독청년과 성적순결의 문제

 

[질문]

 

최근에 교회에 출석하며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 한 청년입니다. 교회 다니기 전부터 항상 궁금했던 것인데 유독 기독교에서만 혼전순결과 자위행위 등 성적문제에 굉장히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다루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연애상대와 가벼운 성적관계나 도무지 힘을 주체 못해서 행하는 자위까지 왜 음란한 죄로 여기는 걸까요? 생리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음란’은 무엇입니까?

 

[답변]

 

기독교에선 모든 인간 행위의 선과 악을 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질문하신 성적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Sexuality)을 허락하신 뜻은 동물처럼 단순히 종족보존만 하라는 것도, 그 반대로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남녀 두 사람이 성을 통해 체험하는 육체적 감정적인 기쁨을 통해서 사랑하는 연인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일생을 함께 할 한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 것을 원하시며 그럼으로써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답고 순전해질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문란한 성생활은 정신적 폐해는 물론 육체적으로 성병이 따르게 한 것이 바로 창조의 섭리입니다. 성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시적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책도 성경에 있는데 구약성경의 '"아가서"입니다.

 

이는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의 당신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들기 이전에 가정부터 먼저 제정했습니다. 이 땅을 당신 대신에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스릴 책임(창1:28)을 맡은 인간들더러 그 일을 무엇보다 가정을 통해서 이루라는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당신의 목적하는 바를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니라."(창2:24) 신자가 성(性)과 결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크게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평생을 같이 해야 하며(일부일처), 둘째 부모를 떠난 남녀 둘이 결혼하면서 한 몸을 이루는 성적관계를 가져야 하며(혼전순결), 셋째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대표가 되라는(가족부양책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원칙과 어긋나는 경우를 '음란'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의 뜻은 1) 현재의 배우자나 연인이 아닌 상대를 사랑하거나, 2) 동시에 두 사람 이상의 배우자나 연인을 두는 것으로 이는 사랑이 아니라 오직 쾌락만을 찾는 것이며 3) 한 명이라도 오직 일시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려고 상대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한 자의 혼외정사(간음)가 음란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이런 음란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타락한 후에 저질러졌습니다. 그 죄가 더욱 발전 확대되면서 일부다처제와 같은 성적타락이 생겼다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창4:23)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후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가인의 후손들이 살인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는데 일부다처제와 함께 언급하는 것으로 미뤄보면 유부녀라도 마음에 들면 힘으로 빼앗고 그 과정에 사람도 죽였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아담의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거나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 주제와 연결하면 성적 타락에서 성적 순결로 회복되었거나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 없기에 성을 이젠 단순히 인간의 쾌락 추구 수단으로만 간주합니다. 한국도 간음이 이미 죄가 아니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성경대로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기독교 신자라면 마땅히 그런 세태와는 반대의 길을 걸아야 합니다. 단순히 더 선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에 명확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혈기 왕성한 청년의 때에 성적으로 온전한 성결을 지키기는 아주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고 언뜻 아주 어렵다 못해 불가능해 보이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쁜 여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생각 속에 성욕이 스쳐지나가는 것까지 정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육체적 생리현상이므로 간음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음욕을 품는다는 뜻은 오래 동안 지속적으로 그 여자만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려고 속으로 열심히 궁리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자신이 사랑하는 또는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자가 있는데도 그런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여자는 완전히 자기 마음속에 지워버리고 그 여자만 사랑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실제 육체관계를 가지지 않았어도 간음한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역으로 따지면 정식 부부가 육체적 교섭을 아무리 자주 가져도 음란죄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결혼 관계를 넘어선 여자에게 음욕만 품어도 간음했다고 정죄합니다. 따라서 음란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그 마음이 일대일의 참된 사랑의 틀에서 벗어나느냐에 달린 것이지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이차적 문제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보수적이라 성적 문제에 대해 유독 완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그분이 당신께서 거룩하고 당신의 행하시는 모든 일이 거룩합니다. 인간에게 성을 주신 뜻도 거룩하니까 당신을 믿고 따르는 신자도 삶의 모든 측면에서는 물론 성에서도 거룩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인간이 자신과 자기 주변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스리는 일에 충성 헌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금 세태가 영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아주 중요한 원인도 사실은 가정이 무너지고 성적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이라면 종교나 믿음을 떠나서 진정으로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 할 결혼 상대에게 자신의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 연합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무이자 예의일 것입니다. 혼전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 비록 현실적으로 아주 어렵다 해도 기독교 고유의 계명 이전에 너무나 당연한 윤리이자 상식입니다.

 

현실적인 이유로도 혼전에 성적으로 문란하면, 예컨대 질문하신 자위의 경우도 습관이 되면 여타의 성적 타락에 대해서도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자칫 그 습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집니다. 그럼 자기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해야 할 상대 대신에 영화나 사진 속의 다른 남녀와 마음으로 간음하는 셈이 됩니다.

 

젊었을 때에 성욕을 절제하기 가장 힘들지만 몸이 타성에 젖어서 더 늦기 전에 운동이나 건전한 취미 활동 등으로 넘치는 성욕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건전하고 절제된 성에 대한 습관과 태도는 본인의 육체 건강, 정서적 안정, 영적 순결, 나아가 앞으로 진정으로 사랑할 배우자에 대한 예의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청년들은 바울의 이런 권면도 귀담아 들을만합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7:5) 부부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예컨대 작정해서 각자가 기도하는 경우를 빼고는 분방(分房)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성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역으로 따지면 성적 음란의 죄에 빠지지 않으려면 일찍 결혼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책이 됩니다. 실제로 고대에는 남녀 모두 이차 성징이 완성되어 성인이 되는, 평균수명도 아주 짧았으므로, 십대 후반에 다들 결혼했습니다. 말하자면 이전 세대에선 청년들의 성적 타락보다는 기혼 남성들이 첩을 두는 풍습이 더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세상에선 일부다처 풍속을 예사로 간주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큰 죄였습니다.

 

최근에는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이런 저런 사회 경제적 요인들로 결혼연령도 점점 더 늦어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안정적으로 이룰 수 있는 사회구조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기독청년들마저 하나님의 마련한 신성한 결혼을 지연 내지 기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청년들로선 성적 욕구를 절제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이젠 성적 순결을 유지하라는 가르침이 교회 청년들에게조차 자칫 의미 없는 구호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청년 신자더러 당장에 완전무결한 성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구태여 이 땅에 비천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몸소 겪을 필요도, 나아가 십자가에 우리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정신적 간음에 대해 경고하신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은 실은 일관되게 율법을 문자적으로 준행하는 것보다 그 정신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성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은 그렇게 하길 원하십니다.

 

청년기에 성적 쾌락에 탐닉하며 창녀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았던 어거스틴은 우연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13:13)라는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회심하고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려는 자들에겐 타락에서 순결로 돌아가는 힘과 믿음과 여건을 마련해 주십니다. 아무리 성적 순결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도 문제는 본인의 생각, 믿음, 소원, 노력에 달렸습니다.

 

물론 기독청년들도 가끔 성적으로 일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잘못을 자백하면 미쁘신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요일1:9) 그 전에 신자가 된 후로는 정말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거룩하게 살려고 피 흘리기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습관적으로 실패하던, 아주 가끔 일탈하던, 때로는 제대로 회개를 않던 간에, 그와는 별개로 신자더러 성을 아름답고 순결하게 가꾸라는 하나님의 뜻은 영원토록 변함없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첨언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근에는 성적 타락과 정반대되는 현상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격심한 출세경쟁에서 앞서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나 크고, 환경오염과 유전자 변질 등의 폐해가 늘어나고, 전자기기에 과도한 유착으로 인해 혼자 방안에서만 지내고 이성교제마저 마다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일부이긴 해도 성적 욕구가 청년들 사이에 줄어드는 기현상도 생기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으로 인해 남성은 무정자증 여성은 불임증 등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와 동시에 정상아 출산의 확률도 감소되고 있는 등 하나님이 아름다운 선물로 주신 성에 총체적 위기가 닥치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를 넘어서 아예 성의 아름다움 자체가 완전히 퇴색 실종되어 가고 심지어 성 자체가 부인 외면되고 불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개선될 전망은 없고 점점 더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 살라고 세상에서 불려 나온 자가 신자입니다. 현대의 기독청년들에게는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건강한 성을 회복하여 거룩하게 가꾸어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 첫걸음은 당연히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사람의 상대와 배우자를 위해 순결하한 성적 관계를 유지하여서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 안에서 상대를 더욱 아름답고도 깊이 사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0/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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