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취소를 뒷받침하는 것 같은 말씀들(?)(시69:28, 계3:5, 출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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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취소를 뒷받침하는 것 같은 말씀들(?)(시69:28, 계3:5, 출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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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취소를 뒷받침하는 것 같은 말씀들(?) (시69:28, 계3:5, 출32:33)

 

[질문]

 

저는 영원한 구원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한 번 구원 받은 자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심판은 면제됐으며, 따라서 구원을 잃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자격 없는 우리를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해주셨는데 자격이 없다고 다시 구원을 취소하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튜브의 댓글을 통해 어떤 구원 상실론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즉,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래의 성경말씀들을 인용했기에 조금 혼란이 생겼습니다.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32:33).

 

[답변]

 

“도저히 자격 없는 우리를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해주셨는데 자격이 없다고 다시 구원을 취소하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질문자님의 말씀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구원을 취소하면 당신의 독생자를 구태여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의로워질 수 없기에 그 죄의 형벌을 주님이 대신 짊어져준 공로에 의거해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여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이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인간이 평생을 두고 노력해도 완전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죄인데 신자가 된 후에 간혹 다시 죄를 짓는다고 그 자녀로 삼아주었던 관계를 다시 취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성품에 위배되는 하나님의 자가당착입니다.

 

문제는 인용하신 성경구절처럼 마치 구원이 취소되는 것 같은 말씀들이 간혹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영적 진리를 인간에게 인간의 말로 계시한 것이라 인간의 이해수준에 맞추어 저작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 지혜는 물론 인간 언어의 불완전성에 묶이는 표현들이 일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구절들은 앞뒤 문맥의 뜻을 면밀히 살피면 표면적으로 다가오는 것과는 다른 뜻임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컨대 구원이 취소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인용되는 구절들은 전부다 한구절만 혹은 그중에서도 일부 표현만 따로 떼어서 그것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인용하신 세 구절을 하나씩 따져봅시다.

 

(1)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성경에는 하나님의 대적들은 물론 사탄이 말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모든 말씀을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각각 누구인지 구분하고, 어떤 계기에서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시편 69편은 전통적으로 다윗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아도니아의 반역 때에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저자가 누구였든 많은 악인들로부터 큰 고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탄원하는 시입니다.

 

따라서 상기 구절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저자가 격렬한 분노 고통 절망의 감정 가운데 자신의 개인적 소원을 토설해낸 것인데다 시가(詩歌) 형식인지라 상징과 과장이 내포된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 나를 괴롭히는 악인들을 심판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가 형식이니까 같은 내용을 표현만 바꾸어 여러 번 반복하는데 그 뜻을 매우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는 히브리 어법의 두드러진 특징으로써 구약성경에서 같은 내용의 비슷한 표현들이 아주 자주 나오는데 구태여 구절 별로 따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의 앞선 구절들도 전부 악인을 심판해 달라는 간구뿐입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23,24,25,27절)

 

본문은 한 번 준 구원을 나중에 취소할 수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그런 영적 진리는 인간 다윗이 감히 단정적으로 선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상기 구절을 그 저작 배경에 맞추어 구원상실론자들의 주장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됩니까? 악인들까지 전부 다 포함된 생명책이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의인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누구라도 생명책에서 지워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너무나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완전히 틀린 해석이 되고 그 전에 본문 자체도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2)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가장 먼저 저작되던 당시 상황과 저자 요한의 저작 의도와 책 전체의 주제를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한 저자가 아주 짧은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 다른 주제를 갖고 다른 의미를 진술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계시록은 로마의 기독교신자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했던 도미티안 황제 통치 말기인 AD95년경에 밧모 섬에 유배된 요한이 저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주제는 신자들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들고 이겨내도록 권면 위로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날에 주님이 재림하면 사탄과 흑암의 세력은 멸망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영적 축복이 영원하고 풍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의로 인 치심을 받은 신자에겐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 겪더라도 하나님 안에선 절대로 실패와 절망과 죽음이 없다는 것이 계시록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승리가 계시록의 한 가지 주제입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계7:10 & 12)

 

그리고 계시록 초반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주님께서 당시의 그 교회들의 실제 상황을 아시고 그에 적합한 위로와 견책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도 하고 잘한 것을 칭찬도 하지만 그 주제는 오직 하나입니다. 계시록 전체 주제와 다를 바 없이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에게 이미 완전히 승리했으니 그 복음을 붙들고 끝까지 이기라는 것입니다. 일곱 서신들의 마지막 말씀을 다시 잘 살펴봅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2:7-에베소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0b,11-서머나교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2:17-버가모교회)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2:26-두아디라교회)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3:12-빌라델비아교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라오디게아교회)

 

에베소교회에 주신 마지막 권면 3:5을 상기 여섯 말씀들과 함께 살펴보십시오.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핍박에 굴복하지 않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반드시 줄 것이요, 절대로 생명을 빼앗기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주제와 따지면 오히려 구원의 취소는 절대로 없다고 강조하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일곱 편지를 주신 의도가 구원이 취소되는 여부를 가르치려는 것과는 아예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핍박 가운데 있는 교인들을 위로하려는 뜻입니다. 혹시라도 어쨌든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결국 구원이 취소되지 않느냐고 반발해서도 안 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이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3)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환상 중에 요한에게 계시하신 주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상기처럼 가르쳤던 주님입니다. 사후의 계시라고 해서 생전의 가르치심과 다를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믿음 자체가 없는 자로서 그런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쉽게 주님을 부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네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신자와 비신자로 나눠서 박해했지 않습니까? 당시는 기독교를 확립하고 교회를 세워야 할 필요 때문에 성령이 강력히 역사했습니다. 참 신자들에겐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낼 담대함과 용기를 다 심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계시록의 일곱 편지에서 끝까지 이기지 못한 자는 참 신자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32:33).

 

이 구절도 계3:5의 경우처럼 당시 상황과 앞뒤 문맥에서의 뜻을 잘 살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 산에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여호와가 크게 진노하여서 모두 진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서 간절히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백성들을 죽이면 애굽 사람들이 기껏 그렇게 다 죽이려고 탈출시켰느냐고 비웃을 것이며 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선조들과 맺으신 언약을 감안하여 제발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했습니다.(출32:14)

 

이는 하나님이 인간들의 이해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당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느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전적으로 당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행하시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당신의 인자를 드러내고 또 모세의 지도자로 위상을 세우며 나아가 백성의 신앙을 양육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뜻을 수정해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우상숭배 죄악의 주모자는 레위 자손을 통해서 삼천 명을 심판했습니다. 그들을 레위 자손이 죽였지만 성경은 "여호와가 그들을 치셨다”(출32:35)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원칙이 때와 상황에 따라서 수정 포기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 이튿날 모세는 나머지 백성들의 죄를 속하려고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와 본문이 포함된 하나님의 응답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러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