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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직 예수인가

마태복음16:28의 너희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뜻은?




마태복음16:28의 너희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뜻은?

 

[질문]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 계시록은 물론 이 말씀을 듣고 또 승천 과정을 보았던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정말로 속히 오시리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답변]

 

조속한 재림을 기대한 초대 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신자들이 처음에는 주님이 당대에 속히 오리라고 오해한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 서신 중에 최초로 쓰인 것으로 간주되는 데살로니가전서 4:15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님의 재림 시에 살아있는 자들은 곧바로 부활 영생으로 전환되지만 이미 죽은 자(본문에선 ‘자는 자’)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성도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AD 30년경(달력의 착오가 있어서 33년보다 몇 년 빠름)에 승천하셨는데 이 서신은 약 AD 51년경에 저작되었기에 그 사이에 이미 죽은 성도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해 바울은 그들도 전혀 차별 없이 동일하게 부활의 영광을 누린다고 변증했습니다.

 

이보다 몇 년 뒤에 저작된(AD 55년경으로 추정) 고린도전서 15:52에서도 동일한 뜻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우리는 죽은 자들과 대조되는 의미이므로 나팔 소리가 나는 주님의 재림의 때에도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이를 재림하실 때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해석하기에는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아무래도 불합리합니다. 분명히 저자 바울을 포함한 초대교회 당시의 신자들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다 베드로 후서(AD 66년 경 저작으로 추정)에서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재림마저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늦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바로 이어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벧후 3:10)라고 선언합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시기에 민감하지 말고 예측 불가능할지라도 반드시 오신다는 필연성과 당위성에만 주목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재림 자체를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3:3-4) 만물이 창조 때부터 지금껏 보존되어 있기에 주님이 재림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꿀 리가 없다고 기롱하는 거짓선생들에게 절대 속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가 AD 66년경에 저작되었으므로 주님이 돌아가신지 35년 정도 흘렀습니다. 최소한 한 세대가 다 죽고 사라졌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도 로마 네로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에 순교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들 당대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약해지자 교회 안에 이런 저런 반동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순교당하기 전에 주님의 재림 약속이 그 당대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닫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종말관을 가르치려고 이 서신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허풍(?)

 

그럼 주님의 상기 약속의 말씀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주님이 시쳇말로 조금 허풍을 떤 것인지 의아해집니다. 비유컨대 부모가 밤늦게 돌아올 작정으로 외출하면서 자녀들에게 숙제를 내주면서 한 시간 안에 돌아올 테니 다 해놓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항상 깨어서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약간의 아니면 엄청난 과장을 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상기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성경 해석상의 몇 가지 원칙들을 적용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의 원문은 장절의 구분 없이 쓰여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장과 절은 훨씬 후대에 인용 비교 분석하기 편하게 하려고 추가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성경은 반드시 죽 이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런 인식과 습관이 아예 없습니다. 장과 절로 구분 되어 있으니까, 특별히 장이 바뀌면 서로 연관 없는 개별적 사건인줄 착각합니다.

 

상기 본문에 이어서 17:1-8에 변화산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장이 바뀌니까 별개 사건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17:1은 “엿새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앞에서 주님이 너희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시고서 엿새 후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과 연결된 사건입니다. 별개의 사건이라면 구태여 엿새라고 정확한 날짜를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변화산 사건이 그 말씀의 실현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의 또 다른 원리를 적용하면 더 확실해집니다. 성경은 아주 정미한 기록입니다. 단어들, 구절, 표현법, 문맥 등등 하나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국어공부 하듯이 세밀하게 비교 분석하며 그 뜻을 추적해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또는 ‘마지막 날에’라는 수식어가 없습니다. 문제의 마 16:28이 반드시 재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천상의 영계에서 불러 내려오게 해서 함께 교제를 나눕니다. 함께 따라간 세 제자들로 주님이 단순히 메시아가 아니라 영계까지 주관하시는 우주의 왕이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 모세나 엘리야 같은 단순히 인간 선지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 그 제자들은 주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신 것을 분명히 본 셈입니다.

 

문제는 바로 앞의 27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분명히 재림의 심판을 뜻합니다. 그럼 18절도 재림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느냐는 해석상의 난제가 생깁니다. 이 또한 자세히 28절의 말씀을 분석하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림을 말하는 27절과 연결되는 의미라면 28절의 표현은 불합리합니다. 지금 핵심 제자들에게만 십자가 수난을 예고하며 제자도에 관해서 가르치는 중입니다. 그런데 너희 중에 일부만 주님의 왕권을 본다고 했으니 그 왕권을 보지 못한 제자들은 심판 받는다는 잘못된 해석이 나옵니다. 거기다 재림 때에는 순간적으로 영원한 구원과 심판으로 나눠집니다. 죽기 전에 왕권을 보는 자들이 있다는 표현은 그러지 못한 자들은 죽은 후에라도 왕권을 볼 수 있다는 뜻도 내포하므로 재림을 의마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자칫 오해할 만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면서 제자들이 지킬 도리를 가르치는 중이라 그랬습니다.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순교의 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먼저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왕권을 보면 담대한 믿음을 얻어서 당신께서 가신 길을 제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을”(16:24)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뜻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좇은 자는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 주님은 변화산에 제자들 셋을 데리고 올라간 것입니다. 따라서 27절은 설령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써 주님을 위해 목숨을 잃게 될 지라도 그 행위 즉, 믿음을 지킨 대로 종말에 하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28절은 그런 진리를 보증하기 위해 장차 그 면류관을 받을 자들 중 몇 명에게 당신의 왕권을 죽기 전에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셨고 변화산 사건은 그것이 실현된 것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비교해 보라.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계1:10--16)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본 자가 변화산의 세 제자 외에 또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유일하게 순교 당하지 않고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자연사한 요한이 90세가 넘은 AD 95-96 년경에 주님을 직접 뵙고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에겐 마16:28의 말씀이 문자적으로도 정확하게 실현된 것입니다. 주님이 왕권을 갖고 장차 "속히 오실 것"이라는 계시를 주님을 대면하여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속히’라는 말씀을 받고 계시록을 저작할 때는 주님이 부활 승천한지 두 세대가 지났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이 말씀으로 인해 마16:28은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다시 오신다는 의미가 아님을 밝혀진 셈입니다. 계시록 3:11의 “속히 오신다"는 말씀은 앞선 답변에서 밝힌 대로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니 결코 절망에 빠지지 말고 항상 깨어서 굳건한 믿음 위에 서라“는 권면으로 봐야 합니다.

 

대신에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선 예수님의 이 말씀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주님은 당신의 재림의 때를 당신도 모른다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인자로서 이 땅에 오신 상태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곳에선 모른다고 했다가 다른 곳에선 너희가 죽기 전에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하면 주님 스스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을 해석함에 또 다른 중요한 원리가 도출됩니다. 같은 주제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선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함께 비교 분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기 요한계시록의 말씀과만 비교해도 제자들 당대에 오신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 않습니까? 만약 질문하신 마16:28의 뜻이 이상하다고 여기면 당연히 본문에 관해서도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주님이 서로 다른 뜻으로 말했으니 틀렸다고 문제 삼아야 합니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품, 속성, 통치 원리 등에 비추어서 추정해낸 해석이 과연 타당한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합니다. 교리나 신학에 전문적 지식을 꼭 안 갖춰도 됩니다. 성경 전체를 계속 통독하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죄에 찌든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 깊이 묵상하는 습관을 가지면 신자 스스로도 가능합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재림의 때가 초대 제자들이 죽기 전이라면 예수님이 구태여 그런 엄청난 고통과 수치를 당하며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어차피 한 세대 전에 재림하여 이 땅의 인류 역사를 마감하고 구원과 심판을 완성시키실 양이면 그냥 바로 그렇게 해도 되지 않습니까? 단순히 십자가 사역의 비효율성을 따지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구원 받은 자는 유대인 중에 극히 일부, 많아야 수백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 그렇게 협소할까요?

 

베드로가 그래서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고 변증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같은 의미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석은 단지 상식과 이성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입장에서 여러 가능한 경우를 대입 추정해본 결과일 뿐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고 또 제대로 습관이 들지 않아서 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성경해석상의 오류들을 범합니다.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단어 하나, 구절 하나에 그것도 문자적인 뜻에만 생각이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왕권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19:19-22)

 

예수님의 왕권의 실체가 과연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 통치하는 직분을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 셋이서 분담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셋을 혼자서 완전하게 다 감당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히브리인뿐만 아니라 모든 열방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은 물론 모든 열방의 왕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세속의 왕들은 전부 권력과 무력으로 통치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오직 사랑으로 공평과 정의를 실현했으며 오히려 당신께서 모든 고난과 수치를 그들 대신에 감당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죄 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완전한 대속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짐으로써 사탄의 노예로 묶여있던 죄인들을 해방시켜 주는 왕이었습니다.

 

골고다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할 때에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로마 헬라어 셋으로 기록했습니다. 당시의 모든 이가 읽을 수 있게 한 것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은 모든 족속의 왕도 된다는 뜻을 암시한 것입니다.

 

유대 대제사장들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로마제국에 반역한 죄인이라고 또 유대인의 왕은 여호와뿐이므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여 신성을 모독한 참람한 죄인임을 밝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방인인 자기가 봤을 때도 예수가 종교적 과대망상에 걸린 이단 종파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왕권은 십자가 죽음에서 실현되었습니다. 그 죽음 이후로는, 정확히 말하면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니은 인간을 오직 십자가의 진리로만 통치하시고 계십니다. 죄는 당신께서 죽기까지 저주하되 그 죄인은 당신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유일하고도 완전하며 절대적인 통치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어서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는 많은 제자들이 살아 있는 중에 목격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골고다 현장에 없었던 자들도 일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당신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도 일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밧모 섬에서 죽기 전에 주님을 직접 만나 계시를 받았던 요한 사도가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다 눈으로 보았다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애매하게 표현하신 이유

 

그럼 왜 주님은 조금 더 명확하게 그 시기를 밝혀 주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초대 교회 당시라고 오해하게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아닌가요? 이 이유 또한 간단합니다. 핍박과 환난을 받을 제자들에게 위로 격려하며 믿음을 잃지 말라고 당신께서 반드시 그것도 속히(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만큼 어서 빨리 다 구원하고 싶다는 표현으로) 오신다고 약속하신 것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관해선 제자들의 물음에 답변하면서 구체적으로 다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1:8-36이 그것입니다. 그 결론으로 이미 말씀드렸듯이 재림의 때는 아들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재림으로 구원의 완성은 반드시 있으니 그 때까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절 끝)고 당부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재림이 더디거나, 없다거나, 심지어 자칭 예수라고 나타나는 거짓 선생들을 아예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주님이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런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그릇된 종말관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것까지 다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참 신자라면 주님이 종말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 가르침의 핵심인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 주지하여서 항상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종말주의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6:14-16)

 

바울도 그래서 주님의 재림 때까지 주님을 따라 거룩하게 살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자 만왕의 왕”이 반드시 나타나심을 보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14절)을 지칭하다가 곧바로 15절에선 주님을 하나님과 만왕의 왕과 일치시켰습니다. 그분은 초림 때는 왕권을 가지셨음을 보이셨고, 그 왕권을 완성 시키려고 재림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베들레헴 구유에 성육신 할 때에 이미 왕권을 갖고 이 땅에 오셨고, 변화산, 밧모섬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셨고, 십자가에서 그 왕권의 모든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아니 그분의 가르침과 사역 하나하나가 다 당신의 왕권에 대한 완벽한 증거였습니다.

 

10/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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