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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에서 사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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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인천 북클럽]

 

| 박정탁 (부천/인천 북클럽 회원)

 

 

영국의 물리학자 존 폴킹혼은 양자물리학을 끝까지 거부한 아인슈타인을 '최초의 현대인인 줄 알았으나 최후의 고대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미시세계를 직접 연구하는 학자로서 아인슈타인의 고집을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선배 물리학자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고 미시세계를 꾸준히 연구한 폴킹혼. 그와 같은 현대 물리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북경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서 허리케인이 되어 나타나게 될 '확률'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과학 연구에서 앞선 연구는 '그런것이 있었다' 정도의 가치만이 용납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폴킹혼의 이러한 태도는 지나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해봄직하다. 과학이 계속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것은 앞선 과학의 연구가 모조리 폐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논리적으로 입증되고 납득된 과학의 공헌은 더 뛰어난 연구가 나올 때까지만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또 다른 연구에 의해 비난받고 전복되는 것을 잠시 유예받았을 뿐인가? 그렇다면 폴킹혼을 비롯하여 과학자들은 무엇을 위하여 연구하는가?

 

폴킹혼은 이것을 '축적'이라는 온건한 용어를 사용하여 진보의 반대가 꼭 퇴보는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과학의 연구 또한 인문학처럼 축적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말로, 거인이 있어야 거인의 어깨도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 유명한 '비판적 실재주의'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실재는 오직 주관과 관념에서나 가능하다"는 염세적인 태도와 "보이는 것이 곧 실재 그 자체"라는 순박한 실재주의의 사이에서 중도를 걷는 이 방법론은 얼마나 유연한가.

 

분명하고 아름답게 존재하는 실재(real)에 대한 확신. 그리고 성실한 연구를 통해 그 실재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믿음. 실재와 아주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그것이 실재의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 겸손함. 그래서 나보다 더 실재에 가까이 간 학자의 연구를 기꺼이 수용하는 유연함. 폴킹혼의 방법론은 동료 과학자들의 진실한 노력을, '실재를 향한 숭고한 발자국'으로 존중하고 있는듯 하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는 선배요 거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을 차갑게 비판하기도 했었으나 학자들에게는 그런 순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로남불이 아니라 학문의 최전선에 서있는 학자들의 고단함이니,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이 위대한 물리학자는 캠브릿지 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사제가 되었다. 과학신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의 삶과 궤도를 오늘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기 전에 소탈하고 겸손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제가 되기로 선택한 그의 결정이 아주 비논리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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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인천 북클럽 모임 안내

 

  • 일시: 2019. 10. 1. (화) 7:00 pm.
  •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백주년기념관 804호 박영식 교수 연구실
  • 교재: 존 폴킹혼, <과학으로 신학하기> (모시는 사람들)
  • 문의: 010-사삼삼삼-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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