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기독정보 > 신학
신학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7. 과학지식의 틈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img.jpg

 

과학지식의 틈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일까요?
Are gaps in scientific knowledge evidence for God?

 

 

과학의 모든 분야에는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있고, 우리들의 이해에도 틈새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전형적으로 이런 것들을 열린 연구 질문이라고 봅니다. 다른 이들은 종종, 과학이 어떤 사건이 일어난 방법을 설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주장을 "틈새의 신"(god-of-the-gaps) 주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위험한 이유는 과학이 항상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과학 지식의 틈새가 하나님을 믿는 근거가 된다면, 과학자들이 그 간격을 채우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 틈새의 신보다 더 크십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뿐 아니라, 틈새의 영역이 있는 자연세계에서도 항상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틈새의 신 정의하기

 

틈새의 신 주장은 과학적 설명에서의 빈 틈을 신의 역사와 그에 따른 신의 존재에 대한 지표 혹은 증거로 사용합니다. 그러한 주장은 과학이 아직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원인 대신 신의 역사를 상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은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과학이 설명해내지 못한다면, 신이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역사나 존재에 대해 틈새의 신 주장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미래의 과학적 발견을 부인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틈새의 신 설명은 종종 자연적인 메커니즘으로 대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이 변명의 도구로 이용될 때, 과학연구는 불필요하게 신에 대한 믿음과 상충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지적설계 운동은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이나 박테리아 편모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같은 특정한 지적설계 주장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의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img.jpg

 

틈새의 신 설명하기

 

아이작 뉴턴과 피에르 사이몬 드 라플라스의 익숙한 이야기는 틈새의 신 논쟁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뉴턴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 방정식을 고안하여 탁월한 정확도로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했습니다.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면 태양과 행성 궤도를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성들은 태양뿐 아니라 행성들 상호 간의 중력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 주위의 궤도에서 화성을 지나칠 때, 화성과 지구 사이에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력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이 작은 행성 간 상호작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 많은 경우에는 일 년에 여러 차례 - 뉴턴은 이러한 중력 섭동이 축적되면 천천히 태양계 질서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파괴적인 힘에 대응하기 위해 뉴턴은 하나님께서 가끔 태양계를 조정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개입하셔야만 할 거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따라서 태양계의 지속적인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기적인 특별 조치가 필요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뉴턴은 또한 행성들이 모두 태양 주위를 같은 방향과 같은 평면에서 어떻게 돌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중력이론은 태양을 향하여 어떤 각도로 기울어지든지 상관없이 모든 행성의 운동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발견한 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행성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거의 모든 궤도가 같은 평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은 트랙 위에서 달리는 선수처럼 태양 주위를 돕니다. 뉴턴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아하게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6개의 기본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거의 원 궤도를 그리며, 같은 방향으로, 거의 같은 평면에서 돌고 있다. […] 그러나 단순한 기계적 원인이 규칙적인 수많은 움직임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태양, 행성 및 혜성의 가장 아름다운 시스템은 지적이고 강력한 존재의 간섭과 통치로부터만 진행될 수 있다.

Sir Isaac Newton, Isaac Newton’s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comp. and ed. Alexandre Koyre and I. Bernard Cohen, rev. ed.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2).

 

이 두 가지 예에서 - 하나는 행성의 계속되는 운동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움직임의 기원에 관한 것 - 뉴턴은 교과서처럼 틈새의 신 추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설명을 해내기 위해 과학이론을 제안했었고, 그러고도 설명되지 않았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신을 차용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뉴턴이 두 가지 모두에서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행성이 경험하는 중력섭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평균 영점으로 균형이 맞춰집니다. 최종 결론은 행성 운동이 극도로 안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밝혀낸 것은 뉴턴의 이론을 간단하게 응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뉴턴은 그의 직감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계산을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행성의 질서정연한 움직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턴은 태양계가 어떻게 스스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지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시스템에서 행성운동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순히 천문학이 이 지점까지 발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뉴턴 이후 수십 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태양계가 회전하는 물질의 큰 성간 구름으로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크고 천천히 회전하는 성간 구름은 그 자체의 중력 아래에서 붕괴되고, 팬케이크와 같은 것으로 평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토성의 고리는 성간 구름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존재하는 흥미로운 예입니다. 물질은 팬케이크의 평면에서 큰 덩어리들로 모여지게 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동일한 평면에서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든 덩어리들의 집합이 존재하게 됩니다 - 마치 우리 태양계처럼 말이지요.

 

과학사에서 그러한 에피소드는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에피소드들은 아주 일반적이어서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자연현상에 신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과정을 통칭하기 위해 틈새의 신이라는 문구가 만들어졌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행정부에서 관료를 지낸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사이몬 드 라플라스와 관련된 상황에 의해서 그러한 틈새의 신 추론의 위험이 뉴턴 이후 한 세기 동안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라플라스는 뉴턴의 운동법칙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했으며,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보는 눈을 확대하는 데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시대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신의 간섭을 불러들이지 않고도 우주의 역학을 설명하는 폭넓은 텍스트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자신의 이론에서 신의 부재에 관해서 나폴레옹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라플라스, 그들은 당신이 우주의 시스템에 대하여 이 거대한 책을 썼으며, 창조주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라플라스의 대답은 유명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그 가설이 필요 없습니다." 물론, 신은 여전히 우주의 존재에 대한 가설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과학적 설명의 결함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라플라스의 이론은 당시의 유신론적(?) 변증법에 불필요한 타격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엔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과학지식의 틈새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으로 사용된다면, 과학이 발전해서 그 부족한 설명의 틈을 메우게 될 땐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img.jpg

 

신을 향한 포인터: 미세조정과 도덕률

 

'신의 언어'의 첫 번째와 세 번째 챕터에서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자신의 신앙의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하나님을 향한 포인터를 언급합니다. 이 포인터 중 하나는 우주의 미세조정입니다. 미세조정은 물리학의 기본법칙이 정교하게 삶에서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이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이 정밀도는 과학이 제공할 수 없는 설명을 요구합니다. 미세조정의 의미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는데, 일부 비평가들은 하나님을 미세조정자로 불러들이는 것이 틈새의 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과학 안에서는 자연법칙의 상세한 특성을 설명하는 어떤 방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미세조정 논쟁은 과학을 넘어서서, 과학이 연구하는 세계가 왜 그러한 특성을 가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형이상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콜린스가 언급한 또 다른 포인터는, C. S. 루이스를 따른 도덕률입니다. 도덕률은 인류에 대한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윤리 기준입니다. 콜린스는 도덕률을 중력과 같은 법칙과는 달리 아주 빈번하게 위반되어지는 보편적인 법으로 묘사합니다. 전반적으로 도덕률은 진화의 산물에서 기대되는 행동유형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콜린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타적인 행동은 종종 가장 잘 확립된 다윈의 진화 과정으로부터 기대되는 것을 훌쩍 넘어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틴 노왁과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 개발된 수학적 모델은 자연선택이 이타성을 위한 유전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와 같은 위대한 성인들의 급진적인 자기희생은 그 모델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설명도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거나, 이론물리학이 그러한 완벽한 자연 상수를 설명할 수 있다면, 유신론적 변증법은 어떤 식으로든 신용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감수: 강상훈 교수 (미국 베일러대학교 생물학과, 과신대 자문위원)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common-questions/are-gaps-in-scientific-knowledge-evidence-for-god)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