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의 위로] 환난 중에 임한 위로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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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慰勞)는 신비다. 편안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위로가 필요 없다. 위로는 환난을 당했을 때 필요하다. 위로는 환난 중에 임한다. 고통 중에 찾아온다. 고통이 없다면 위로도 없다. 이것이 위로의 역설이다. 환난이 있는 곳에 위로가 있다. 고통이 없다면 환희도 없다. 고통과 환희는 같은 선상에 있다. 깊은 고통이 깊은 환희를 경험케 한다. 필립 얀시는 한센병이라고 부르는 나병환자들을 만난 후에 고통이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한센병 환자는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병이 번져가면서 고통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마디가 죽기 때문이다. 고통은 고통스럽지만 크고 작은 고통이 우리를 섬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파야 산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더욱 무섭다.

바울은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찬양한다(고후 1:3). 그는 많은 환난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열한 고난을 보면 머리를 숙이게 된다. 우리의 고난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그가 겪었던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남의 고난은 극소화하고, 자신의 고난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울의 고난을 극소화할 수는 없다. 바울은 고난의 대가다. 그는 고난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고난을 겪었고, 고난을 극복했고, 고난을 통해 성숙했다.

바울은 그가 겪었던 심한 고난 때문에 살 소망까지 끊어졌었다고 말한다(고후 1:8). 그가 경험한 환난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고후 1:9). 그는 한 번의 환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겪었던 모든 환난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직면하는 환난은 다양하다. 예측할 수가 없다. 어떤 환난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환난이기에 당황스럽다. 혼돈스럽다. 어떤 환난은 너무 커서 우리가 아무리 잘 준비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한 번도 늙어본 적이 없기에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마이클 킨슬리는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책읽는수요일)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다.

작년에 아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폐암 판정을 받았다. 큰 충격이었다. 아내는 평생 동안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런데 폐암에 걸린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테스트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시작으로, CT 스캔, PET 스캔, MRI를 비롯해서 수많은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를 받을 때마다 아내는 불안해했다.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작년 10월 6일에 아내는 왼쪽 폐를 모두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종양의 크기가 6.5cm였다. 생각보다 컸다.

아내는 생애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환자가 겪는 고통을 바라보며 위로하던 아내가 암환자가 겪는 모든 고통을 맛보게 된 것이다. 수술 후에 아내가 경험한 고통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다. 고통이 심한 까닭에 아주 강력하면서 독한 통증완화제를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는 새벽 2시나 3시면 고통 때문에 깨어났다. 우리는 함께 일어났다. 고통 때문에 깨어난 아내는 먼저 약을 먹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한 후에 아내와 나는 조심스럽게 집 안을 걸었다. 아내는 수술하는 중에 손상된 보이스 코드가 회복되지 않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걸었고, 나는 찬송을 불렀다. 깊은 밤에 찬송을 부르면서 30분 정도를 걸으면 아내의 고통은 누그러졌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들곤 했다.

밤에 부르는 찬송은 처량하다. 애절하다. 눈물겹다. 내가 아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찬송을 부르면 아내는 가끔 틀린 찬송가 가사를 고쳐주곤 했다. 아내는 나보다 찬송가를 많이 암송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밤에 처량하게 찬송을 부르면서 시편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시 77:6). 밤에 부른 노래를 기억하는 시인에게서 밤에 일어나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수술 후에 아내의 고통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독한 약을 세 알에서 두 알로, 두 알에서 한 알로 줄여가면서 고통을 달랬다. 집 안에 약병이 늘어갔다. 약병만이 아니라 암환자에게 좋다는 여러 가지 비타민과 식품들이 찾아들었다. 아내는 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왼쪽 폐를 절단해 준 일본계 의사를 고마워했다. 하지만 자신의 왼쪽 폐를 절단해 버린 의사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상실의 아픔이다. 아내는 이제 왼쪽 폐가 없다. 소중한 것을 상실하면 아프다. 허전하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모른다. 다만 그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때만이 그 진가를 알게 된다.

고통은 고통을 낳나보다. 아내가 수술을 받은 후, 아직 회복되기도 전에 장인어른께서 서울에서 소천 하셨다. 아버님의 소천으로 고통은 더 깊어졌다. 아내의 건강 상태로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아버님의 장례식에 갈 수 있는 없는 까닭에 멀리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에, 이번에는 장모님이 소천 하셨다. 장모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아내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어머님의 장례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깊은 슬픔이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어머님의 소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고요한 평강이 임하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요한 평강은 잠시였다. 그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거센 물결처럼 밀려왔다. 그리함으로 우리 부부는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슬픔이 밀려올 때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내는 몰래 흐느끼며 울었다. 눈물이 위로가 되었다.

아내는 폐암 판정을 받은 후에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 우리는 주위에서 다양한 암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만난다. 의사선생님들은 암환자들에게 자신의 암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자신의 암을 알아야 자신의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암에 걸리면 암에 관한 책들을 읽고 정보를 얻게 된다. 그래서 암에 관해 거의 박사가 된다. 우리는 폐암에 대해 공부했다. 자세히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폐암이 상당히 고약한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암은 위험하지만 특별히 췌장암이나 폐암은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한 때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 성경에 자주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시 77:2; 마 2:18)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위로 받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위로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위로를 주기보다 상처를 입힐 때가 있다. 마치 욥의 세 친구와 같이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욥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위로 받기를 거절한다. 충격적인 고통이나 환난의 때에는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아내에게 위로하는 말을 건네다가 아내에게 큰 상처를 입힌 적인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위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바울은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다. 세상의 위로는 경박하다. 유효기간이 짧다. 너무 가벼워 더 큰 아픔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깊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내면에서 역사한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소망을 준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고난을 견디게 한다. “…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하나님의 위로는 고난을 견디게 할 뿐만 아니라 소망을 품게 한다. 그리함으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게 한다. 고통이 사명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아내는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고난을 견디고 있다. 또한 고통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통이 변장된 축복이라고 하는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강준민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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