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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향기] 그 분은 분명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다. - 김명남 목사

호남기독신문

찔레꽃향기

그 분은 분명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다.

 


김명남 목사

 

9월은 각 교단들이 총회가 있는 달이다. 9월이 되면 나는 아쉬움만 남아 언제부터인가 9월 달력을 잘 보지를 않는다. 나만 그럴까? 아마도 9월 가장 영광스러운 달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어 지금 가장 소박하면서 기쁨과 감사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기뻐하는 달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있다. 한분은 지금 충남 서천에 계신 분이요 또 한분은 목포에 계시는 분이다. 서천은 181695일 킹제임스 성경을 최초로 전달 받은 곳이며, 목포는 그 성경을 아펜젤라 선교사가 번역하려고 배를 타고 내려오시다가 순교했던 선교적 순교도시다. 아펜젤라 선교사가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다른 배와 해상 충돌로 충분히 탈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아래 칸 3등 선실에 있던 한국인 조수와 이화학당여학생을 구하려고 내려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때가 1902611일이다. 아마 목포에 계신 분은 이 날을 잊지 않고 선교에 몸부림을 치는 분이다. 그래서인가 두 분은 성경을 최초로 전달받은 도시 대표자답게 세계적인 신학대학총장이 되셨고, 또 한분은 목포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조선인은 구하기 위해 바다 속에 잠이든 그분의 뜻을 전하려고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는 분이다.

30여 년 전이다. 필리핀 앙겔레스에서 선교대회가 열릴 때다. 파송교회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낙담하는 선교사에게 걱정하지마.’라며, 그 다음 달 파송예배를 드리고 올해가 벌써 파송한지 30여 년이 넘었다. 선교사를 처음 만날 때는 가장 힘들고 외롭고 절망하고 있을 때, 친구를 만나 지금은 온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사들의 리더가 되었다. 지난 주 인가 선교사는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은퇴를 앞두고 어떻게 승용차를 구입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지금까지 선교지에서 고장이 나면 안 된다고 항상 가장 좋은 차를 사주었는데 마지막 승용차까지 사주면서 9월 선교비와 차 값까지 보내면서 은퇴 후 까지 도와주려고 애쓰는 담임목사가 어디에 있을까? 나 역시 협력선교를 오랫동안 했지만 이렇게 끝까지 책임을 져주는 파송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그뿐만 아니었다. 이미 선교지에 예배당을 많이 건축하였지만 교회설립 70주년 기념으로 선교사에게 교회를 또 하나 건축하려고 지역을 알아보라고 하니, 선교사는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요즘 교회가 돈만 있으면 지금보다 더 크게 그리고 화려하게 교회를 건축하려고 하는데 이분은 오직 선교와 구제뿐이다.

오래전 일이다. 목포 극동방송 지사장에게 승용차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 주에 승용차를 구입해 주었던 일이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남악에 교회를 건축할 때도 건축헌금과 강대상과 성구들 그리고 현관 입구에 대형 거울을 입당 예배 때 봉헌해 주었다. 나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와 거울을 보면서 그분의 고마움을 잊어 본적이 없었다. 선교와 누구에게나 베풀기를 좋아하는 이분이 총회장이 되었다면, 총회 역사상 가장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총회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서천에 계시는 총장님 역시 총희장보다 학자로 총장으로 남아 있다면 세계적인 신학대학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너무 아쉽고 아쉬웠다. 사실 두 분은 대학 선후배요, 군목도 한분은 공군이요, 또 한분은 해군이다. 그리고 두 분은 형제처럼 형님과 동생이라고 부르는 아주 가까운 사이다. 어느 날 총장은 총회장 선거에 한번 떨어져 목포에 오셔서 나는 대학에서 그리고 동생은 총회에서 총회장을 꼭 하게나 다음에 동생이 나온다면 나는 절대로 나오지 않고 동생을 밀어주겠다고 강단에서도 약속을 했건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두 분이 총회장 후보 등록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유성에서 총장을 만나 약속을 잘 지켜주세요, 말씀을 전한바가 있으나, 오히려 나에게 목포 동생을 총회장 양보를 좀 시켜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와 나는 그 자리에서 목포에 계신 분은 절대 경쟁을 안 할 것입니다. 그리고 총장님이 나오시면 아마도 양보하실 것입니다.”하면서 두 분 만날 약속 날짜를 잡고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분의 성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였을 때 이미 마음 정리를 다하고 있어 약속한 날 만나기로 하였지만 만나는 전날 전화가 왔다. 긴급 교수회의가 제주도에 있으니 한 주간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어렵게 잡은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긴 총장님이 아쉽기만 했다. 만약 그날 만났다면 아마도 100% 양보했을 것이다. 사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중직은 후보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양보하려고 했던 어떻게 보면 경쟁해서까지 총회장을 하려고 하는 욕심이 없는 분이다. 그리고 오직 총회를 섬기려는 마음뿐이다. 사실 총회장이 되려면 기본 덕목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아름다운 덕목은 바로 배려와 겸손이다. 바로 이런 덕목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본질적인 문제는 타협하지 않지만, 비본질적은 문제에 대해선 쉽게 양보하는 성품을 가지신 분이다. 언젠가 노회가 어려울 때, 노회에서 사과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 사실 아무 잘못도 없지만 노회 분열을 막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며 사과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모든 노회 회원들은 박수로 화답을 하여 노회의 분열을 막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는 분이며 오히려 베풀기를 좋아하는 좋은 성품을 가지셨다. 노회장으로 노회를 섬길 때다. 아주 가까운 선배가 총회 공천부 서기가 되어 나는 그분께 추천한바가 있었다. 오직 공의롭게 재판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여, 2년 만에 총회재판국장이 되셨다. 아마 재판국장시절, 총회 역사상 가장 깨끗한 재판국장이라는 기독신문 사설에 나올 정도였다. 물질과 명예에 대해선 욕심이 없지만 그분에게 한 가지 욕심이 있었다. 바로 선교에 대한 거룩한 욕심이다. 만약 선교에 대한 욕심이 없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면 지금 쯤 서울 대치동 아파트가 적어도 두 채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선교사들에게 아낌없이 선교비를 보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것, 그리고 급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용하라고 자신의 신용카드를 맡기는 담임목사가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선교하기 좋아하는 분이 총회장이 되었다면 총회는 선교사들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서천에 계신 총장님 역시 영력과 실력 있는 분이다. 그분이 총회장 후보로 나오지 않고 총장으로 남아 있었다면, 세계적인 신학교로 개혁주의 정통신학으로 지금 쯤 더 발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분에게는 부끄러운 흠이 있었다. 교권에 대한 욕심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 약점이 결국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까지 상처를 주었다. 그 결과 얼마나 총회가 힘들었는가? 지금 총장님이 어디에 계실까? 미안하지만 지금은 총장이 아니다. 몇 달 전에 교도소에서 나와 서천 높은 언덕 위 빨간 건물로 지은 교회에서 성경만 보고 계신다. 성도들도 많이 떠나 서천에서조차 만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아마도 교도소에서 성경만 보신 것 같다. 1816년 최초 성경 전래지 답게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서 자신의 욕심과 거짓으로 얼룩진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고 계신다고 한다. 사실 서천하면 나에게는 굉장히 은혜로운 도시다. 바로 첫 부흥회를 했던 곳이 바로 서천군에 있는 장포교회다. 그 때 나는 부흥회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장포교회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있었던 곳이다. 시간, 시간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경을 많이 묵상했던 부흥회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유명 부흥사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으나 나에게 그런 은사가 보이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 뿐 이었다. 첫 부흥회는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하여 장포 담임목사가 다른 교회로 부흥회를 소개하여 그 길로 부흥사가 되었던 도시가 바로 서천이다. 그 후로 나는 총장님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친구들에게 들리는 이야기다. 내가 큰 실수를 했다면서 차라리 목포 동생이 총회장이 되었으면 학교도 발전하고 교단도 세계적인 교단이 되었을 텐데 하면서 교도소에서 가장 미안한 분이 있다면 목포의 동생이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실 목포에 있는 분이 양보할 것이 아니라 총장님을 강력하게 양보를 받아내야 하는 아쉬움이 9월 달이 오면 쓸쓸한 마음뿐이다. 그분은 분명 총회장의 모든 덕목을 가진 분이다. 나는 가끔 만나면 총회장에 대해서 후회는 없습니까? 라고 물어 볼 때 정말 총회장 안하기를 참 잘했다고 하면서 아마 총회장이 되었으면 건강도 많이 상했을 것이고 어떻게 건강하게 목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선교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정말 총회장 안하기를 잘했다며 조금도 후회 없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도 나는 9월이 되면 그 분이 총회장이 되었다면 더 좋은 교단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잊어 본적이 나로서는 없었다. 왜냐하면 총회장은 이런 분들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만날 때마다 지금도 총회장님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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