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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향기] 곽재근목사님의 세친구들(변남성,이태석,안형주)(1) - 김명남 목사

호남기독신문

 

곽재근목사님의 세친구들(변남성,이태석,안형주)(1)

 

 


 

김명남 목사

 

 

목사에게는 친구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해도 십자가의 길이라 묵묵히 걸어가지만,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를 막상 찾고자 할 땐 힘이 든다. 요즘 나는 혼자서 밥을 먹는다. 그렇게 요란하게 울리던 전화 벨소리는 들을 수 없어 난 가끔 고향 생각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해는 져서 어둡고,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면 외롭기 짝이 없다. 내 동무 어데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30년 동안 섬겨왔던 고향 같은 노회를 생각은 한다.

 

친구란? 아무리 그 길이 좁은 길이라고 할 찌라도 친구를 위해서 끝까지 도와주는 것.

기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같이 먹고, 슬플 때 가장 먼저 생각 나 기대며, 여행가고 싶은 때 함께 동행 할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닐까? 감사하게도 나에게도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 친구라면 친구, 선배라면 선배, 형님이라 하면 형님이지만 난 한 번도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친구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그냥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친구 같은 목사였다. 내가 결정하는 그 길을 끝까지 믿어 주었고, 실수하면 안타까워하며, 진정으로 염려해주던 고마운 친구 같은 목사다. 아마도 이런 친구를 만났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닐까 생각 한다. 마치 다윗과 요나단 같이 살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30여년 섬겨왔던 합동 측 총회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조부님과 선친께서 섬기셨던 교단으로 가겠다고 할 때 수없이 말리고 또 말렸지만 나의 결심은 막지 못했다. 그러나 떠난 자리 조용하게, 아름답게, 그리고 가장 은혜롭게 마무리를 해 주었다. 끝이 아름답고 빛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가 아닐까? 정치적인 친구가 아닌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친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친구가 역시 좋은 친구다. 지금은 자주는 만날 수 없지만 아마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 같다. 그 때는 목사도 그 누구도 아닌 친구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가라앉을 때 구명 배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송보다는 아니오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곽재근 목사님은 한 사람이 아닌 세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한신)총회와 한양신학교를 위해서 외롭고, 쓸쓸한 길이요 좁은 길이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그 길에도 결코 외롭지 않게 끝까지 동행해 주었다. 바로 변남성, 이태석, 안형주다. 아마도 이분들이 있었기에 거센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항해 했고, 환란의 바람에 흔들린다 할 찌라도 복음의 꽃은 활짝 피었고, 흔들리는 그 속에서도 세 친구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갔던 그 길은 가시밭 길 이었다. 그래서 나는 곽재근 목사님을 찔레꽃이라 불렀다.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이 온 몸에는 온통 가시뿐이다. 아마 친구들의 억울함 때문일까? 장미꽃처럼 화려함을 포기하고 따른 아픔일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로 먼저 보냈던 두 친구가 있어서일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곽재근 목사님의 가시는 길을 끝까지 함께하면서 천국에서 만나자며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안형주 목사는 홀로 남아 미국으로 떠나셨다. 왜 이분들이 곽재근 목사님이 결정하셨던 그 좁은 길을 선택하시고 함께 가셨을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곽재근 목사님은 날마다 죽는 십자가 신앙과 예수님 같은 온유한 성품, 가장 정의롭고 시골 목사스러운 순수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불의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면 지난 날 생각지 않고 깨끗하게 용서하며, 약한 자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고, 어려운자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힘껏 도와주면서, 해박한 지식과 따뜻한 정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성까지 있으면서 욕심은 찾아 볼 수 없고, 흠이 없는 진실하신 목사님이시다. 이런 인격과 인간애가 곽 목사님께 있기에 후배들이 곽 목사님께서 가는 길이라면 나도 가겠노라고 하지 않겠는가? 마치 룻과 나오미처럼 어머니가 가시는 곳 저도 갈 것입니다. 그렇다. 변남성 목사님과 이태석 목사님 그리고 안형주 목사님께서 곽 목사님의 가는 길을 나도 가겠노라고 따랐던 동무들이였다.

 

변남성 목사는 어떤 분일까?

평양상수리교회를 담임하시고 한국 교회 초대 부흥사였다. 황해도 사리원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였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황해도 뿐 아니라 평안남북도 함경도 일대 부흥회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당시 곽재근 목사님과 부흥사역을 함께 하셨다. 전국 뿐 아니라 일본까지 다니시며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함께 복음을 전하며 많은 능력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말씀의 능력자였다. 두 분들은 그리 흠이 있는 분들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경 읽고 마음이 뜨거워 성경적 삶을 살아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만 해도 감동과 폭포수 같은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교회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 변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하면 교회 내의 막혔던 장벽은 다 훼파되고 한 석과 같이 차고 강퍅한 심령들은 다 용해가 되어 대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한국초대교회 부흥사였다. 그리고 동양선교회에서 황해도 일원과 평안남북도를 맡겨서 감리하여 교회를 돌보면 감독을 하였다, 그리고 1935년 조선성결교회 제3회 총회에서 당시 곽재근 목사님께서 부총회장이 되어 자연스럽게 총회장이 될 수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친구에게 양보하여 당선을 시켜 총회장이 되었다. 친구에게 총회장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교단에서 제명 당하지도 않고, 22년 동안 성결교단을 위해서 신학교를 위해서 새 역사를 일으키며 더 귀한 일을 할 터인데, 어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여 이런 고난의 길을 걸으셨을까? 어쩜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준 절친이었다. 그러나 조선성결교회는 어찌 이렇게도 귀한 분들을 놓쳤을까? 변남성 목사는 제3회 총회에서 비밀투표로 총회장에 당선되었지만 한국교회역사 총회장 당선자를 면직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처음으로 발생하고, 첫 면직이라는 불명예가 아닌 명예로운 면직을 당하였다. 그 때 곽재근 목사는 비밀누설죄로 6개월 제명을 통보 받았다. 참으로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적이요, 그것이 개혁이라고 무기로 사람들을 도려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참으로 무섭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하는 것인데, 모두 상대를 바꾸려 한다. 하지만 두 분은 아무 변론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교회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한신))를 창립하여 초대 총회장으로 교단을 위해 조용히 섬겨 오시다가 안타깝게도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4년 후 19395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곽재근 목사님께서는 변남성 목사님을 보내면서 이렇게 추도문을 낭독했다. “오호애자라 남성군이요 하나님이 너를 세워 기름부으셨도다.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최후의 길을 밟으니 그 짐은 누구에게 부탁하였느냐? 심령상 다사 지추에 추수할 것은 많으되 역군은 작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간구하여 역군을 보내어 추수하게 하소서(9:37-38) 하신 주님의 말씀이 아직 현안이 되어 있는 이때에 , 이독몽소하여 가버리니 이 허다한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항거 할 수 없으나 우리 단체에서는 일대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어 추억할수록 실로 감개무량하도다. 저는 영이라 아니 할 수 없어 추억할수록 감개무량 하도다. 저는 영계에 유수한 다각적 인물이었던 것이 더욱 애석 하도다.” 하면서 그를 가르쳐 열정의 사람, 충성의 사람, 활동의 사람이라며, 그를 손실한 우리는 생각할수록 통탄할 뿐이라고 그를 보낸 자리에서 추도문을 낭독하며 후배요, 동생 같은 목사를 먼저 보냈다. 아마 가슴에 박힌 가시를 어찌 셀 수 있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진한 향은 더욱 더 진가가 나타나니 나는 곽재근 목사님을 찔레꽃이 했다.

 

첫 순교자 이태석 목사

변남성 목사가 시무했던 그 교회를 친구 이태석 목사에게 평양상수리교회 담임목사로 맡기면서 곽재근 목사님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한신)총회 제1호 목사를 안수했으니 그분이 바로 순교자 이태석 목사다. 합동한신교단은 순교자 피 위에 세워진 교단이다. 그 희생의 피가 없었다면 합동한신총회는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순교의 신앙은 단순히 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매일을 순교적인 삶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대형교회일까? 웅장한 건물일까?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교회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는 바로 십자가 피 위에 세운 교회, 즉 순교적 신앙인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필요하다. 곽재근 목사님은 이렇게 순교자 이태석 목사님과 늘 함께 했으며, 매일 매일 십자가를 지고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셨다. 감사하게도 합동한신총회의 시작은 이러한 순교자 피로 세운 교단이다.

이태석 목사님은 어떻게 순교하셨을까? 너무 감격스러운 일이다. 나는 순교자 이태석 목사님 셋째 아들 이승규 장로님과 전화 통화하면서 필요하면 선친의 자료를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순교의 영성이 내 몸에도, 우리총회에도 흐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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