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

홈 > 뉴스2 > 기독교신문
기독교신문

[실로암]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

gdknews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내게 어린놈이 분수에 맞지 않게 유난떤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나는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시간이 되면 죽게 되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고를 위해서 보험도 드는데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해서 덮어두는 것은 내 성격이 견디기 힘들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 오랜 삶을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지독하게 후회스러운 지난 시간들 때문이다. 방문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집을 난장판을 벌이고 돌아가는 어린 조카처럼(난 아직 조카가 없다만) 잘 다스리고 있는 줄 알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내 속에서 난장판을 벌일 때가 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지난 시간들이 혹시라도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미래의 내가 되지 않도록 나를 건드린다. 과거의 것들을 마주하는 것은 지금도 괴롭지만 그나마 성장한 것은 괴로움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후회하는가’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와도 같다. 내가 이전 어린 시절에 후회하던 것들은 다른 청년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무언가 되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무언가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지금도 이러한 것들에 완전히 자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 가지 통찰을 얻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변하면서 취향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후회하게 될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고 이 말은 또 이전에 후회하던 것들 중에는 ‘내가 왜 그런 것을 후회했지?’ 생각하게 될 것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바라기 때문에 내게 고통이 되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없어도 덤덤한 것들, 저것을 소유하기 위해 목숨 걸었다면 큰일 날 뻔했을 것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후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난 마지막 때에 후회하긴 싫다.


난 소위 ‘세상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물질이나 쾌락이나 권력이나 하는 따위의 것들(이것을 죄악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자유롭지는 않기에 나름 이 마음가짐에 거짓이 없도록 노력한다. 마치 실수로 유튜브로 결말을 봐버린 영화가 재미없고 따분한 것처럼 가질 만큼 가져보고 놀 만큼 놀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들로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빠듯한 점심시간에 아내와 식사하고 10분 낮잠 자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후회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행복감은 이해와 사랑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럴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존재방식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처음 지음 받았을 때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해와 사랑이 가득하길 원한다. 그래서 그렇지 못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 깨어진 것들이 사역의 짐으로 느껴진다. 복구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지만 건드리지도 못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훗날 마지막에 후회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공동체를 더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싶고 그렇게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고 때로는 진흙탕 물을 솟구쳐 올리는 땅처럼 후회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배우고자 한다. 어리석고 한심한 내 자신을 깨닫게 하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스멀스멀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처럼 앞으로도 이끌어 주실 것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더 신뢰한다. 또한 나를 이끌어주듯이 저 사람도 이끌고 계실 것이기에 난 후회할 짓을 좀 덜했으면 좋겠다.
 /강릉중앙교회 전도사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