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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성경사전
내용이 부실하고 히브리전통본문과 상이한 점이 많아 신뢰하기 어려운 그리스어 구약성경. 이것은 보통 예수님 탄생 이전에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그리스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누군가가 상상 속에서 꾸며 낸 책이다. 이것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히브리어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공식적인 그리스어 역본을 만들고자 한 계획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고문서에 드러나 있다고 주장한다. 그편지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역본이 유대인들의 공식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발되었으며 그들은 주전 250년경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일을 한 것으로추측된다. 이 편지가 ‘칠십인역’이라는 불가사의한문서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인데 그 이유는주전 250년 혹은 그 전후로 구약성경 전체를 번역한그리스어 필사본이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유다 역사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일을 고려했다거나 진행시켰다는 기록은 전무하다.이런 전설적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대라는 요구를 받은 학자들은 주후 200년경 오리겐이 지은 헥사플라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칠십인역’이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때보다 450년이나 지나서 기록되었으며 신약성경이 완성된 후100년 이상 지나서 기록되었다.‘칠십인역’의 허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리겐이 육난성경인 헥사플라의 다섯째 난에다 스스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넣지 않고 ‘칠십인역’을 필사해 넣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정당하지않다. 만일 그 주장이 옳다면 빈틈없는 유다 학자72명이 외경들을 - 심지어 그것들이 기록되기도 전에 - 자기들의 작품 속에 첨가했다는 의미가 된다.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유대교는 단 한 번도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외경, 정경 참조.만일 유다 학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리겐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이러한 위조된 글들을제멋대로 첨가했음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조금만주의해서 살펴보면 헥사플라의 다섯째 난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오리겐의 사역임을 알 수있다.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유세비우스와필로가 그리스어 모세오경을 예로 들면서 이처럼 전설 같은 책의 존재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들마저도그것을 구약성경 전체나 혹은 공식적으로 수용된 어떤 역본으로 언급하지 않았다.한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오리겐의 헥사플라, 그리고 유세비우스와 필로의 주장 등은 변명할 수없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모순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자체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편지가 아리스테아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더러 그 편지의저자가 필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말은 그 편지의 저작 연대가 ‘기원 전’이 아니라 사실은 ‘기원 후’라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편지를 쓰게 된 속셈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오리겐의 헥사플라의 다섯째 난을 ‘칠십인역’의 복사본으로 믿게 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한편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신약에 나오는 구약인용 구절 가운데 많은 부분이 ‘칠십인역’과 일치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칠십인역’이란바로 오리겐의 헥사플라의 다섯째 난을 가리킬 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약성경의 인용 구절들은 절대로 가상의 ‘칠십인역’ 혹은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며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방식을 동원해 구약성경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용하신 것이다.끝으로 학자들이 ‘칠십인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저버리면서까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히브리어를 배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히브리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도 수년이 소요될 뿐더러 학문 연구 수단으로 충분히 정통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은 보다 쉽게 얻을 수있다. 따라서 만일 그리스어로 된 구약성경의 공식역본이 존재했다면 성경 비평가들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되고 단번에 성경 비평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지금까지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은 유대인들의 전통 마소라 사본과 충돌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오리겐 같은 성경 비평학자들을 높이세우는 ‘칠십인역’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보존, 알렉산드리아, 마소라 참조.
침례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밥티조’, ‘밥티스마’, ‘밥티스테스’ 등이며 이 단어들은모두 그리스어 ‘밥토’에서 나왔다. 신약성경에서115회 사용된 ‘밥토’는 ‘물로 뿌리는 세례’를 의미하지 않고 ‘물 속에 담그는 침례’를 의미한다. 침례를주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나 세례를 주는 데는 많은물이 필요 없다(요3:23). 또한 침례를 받으려면 물있는 곳에 가야 하지만 세례를 받으려면 물을 가져와야 한다(행8:36). 또한 침례를 받으려면 ‘물 속으로’(into the water) 내려가야 하지만 세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으며 침례를 받은 후에는 ‘물 속에서’(out of the water) 나와야 하지만 세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행8:38-39).성경은 한결같이 침례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며 불 침례와 성령 침례 역시 ‘잠기는 것’으로 규정한다. 마3:11-12를 그릇되게 해석하여 성령 침례가 곧 불 침례이므로 뜨거운 불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침례자 요한은 이 구절에서 결코 그런 것을 뜻하지 않았다. 문맥과 함께 이 구절을 읽어보면 성령 침례를 받는 자는예수님의 곳간에 즉 천국에 들어가지만 불 침례를받는 자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감을 알 수있다. 이처럼 성경은 분명하게 침례라는 단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 몸이 물 속에, 성령님 안에, 불속에 잠기는 것’임을 보여 준다.그리스도인의 침례는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죽음, 매장,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 특별히 성도들도 예수님과 똑같이 죽었다가 부활한 자들임을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규례이다. 그러나 세례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혔다가 일어나는 것 즉 사망과 매장과 부활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골2:12). 세례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과부활이 상징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롬6:3-4).세례에서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새로이 옷 입어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는 것이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갈3:27).어떤 이들은 침례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침례 중생 교리를 믿고 가르치며 특히 유아세례를주는 천주교회에서는 이 의식을 통해 사람이 거듭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침례 중생을 지지하지 않으며 다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통해자기의 거듭남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들, 마귀와마귀의 천사들 및 사람들 앞에서 증거로 보인다고말한다. 즉 믿고 거듭난 뒤에 침례를 받는 것이지침례를 받아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행8:12).천주교에서는 어른들에게 세례를 주기 전에 교리문답서 공부를 위한 학습 기간을 두는 전통을 세웠으며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세례를 준다. 또한천주교인들은 세례가 ‘은혜를 가져다주는 대성사’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침례가 은혜를 가져다주는 성사가 아닐 뿐더러 구원 또는 은혜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엡2:8-9).성경은 이 같은 천주교의 관행과는 달리 누구든지믿으면 곧바로 침례를 주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이디오피아 내시는 믿음 고백과 함께 즉시 침례를 받았고 사도행전 16장의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도믿은 즉시 침례를 받았으며(13-14절) 같은 장에 나오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 역시 믿은 즉시 침례를 받았다(33절).위에서 보았듯이 어떤 사람은 요르단 강에서, 어떤 사람은 광야의 오아시스에서, 어떤 사람은 집에서 침례를 받았다. 즉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이면 강이든 호수든 바다든 침례 탕이든 상관이 없다. 침례가 교회의 회원권과 관련이 있으므로 특별한 경우가아니면 지역 교회에서 침례를 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침례를 행할 때에 침례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편한 옷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가고 침례를 주는사람은 먼저 침례를 받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보는 데서 믿음의 고백을 할 것을 요청한다. 침례를받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침례를 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침례를 준다. “○○○형제님의 믿음 고백과 우리 주 예수님의명령에 따라 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침례를 줍니다.” 이렇게 선포한 뒤에 침례 받는 사람을 뒤로 눕혀 물 속에 잠근 뒤 그를 물 속에서 들어올린다. 이렇게 해서 이 형제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매장되었고 새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음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계20:1-6에 기록된 대로땅에서 1000년 동안 지속되는 그리스도의 왕국. 구약의 대언자들은 줄기차게 이 기간이 온 우주가 의로 치리를 받으며 온 땅이 복을 받는 때라고 묘사했다. 어떤 이들은 1000년이 단순하게 완전한 수를 뜻하며 따라서 천년왕국이란 새 하늘과 새 땅이 거하는 영원한 왕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새 하늘과새 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 땅에 눈에 보이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져서 주님께서 친히 철장 권세로 온 세상을 통치하심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딤후2:12; 계5:10; 사11:1-12; 25:6-9; 65:18-25;미4:1-4; 습3:14-20; 슥8:3-8, 20-23; 14:16-21 참조). 교회와 왕국, 만물의 회복 선도 참조(85, 94).시편 2편에는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교도들을 네게 상속물로주고 땅의 맨 끝 지역들을 네게 소유로 주리라. 네가그들을 철장으로 부수고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산산조각 부수리라”(시2:8-9; 계12:5). 이것은 결코 영적통치를 뜻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땅에서 이루어지는 통치를 말한다. 또 대언자 이사야는 예수님이야말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의와 평강을 가져오는 분이라고 대언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짐승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있어서 만백성의 기(旗)로 설 것이요,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오리니 그가 베푸는안식이 영화로우리라”(사11:9-10).이런 구절의 왕국은 결코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주님의 재림 이후에 1000년 동안 문자그대로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첫 아담은 죄를 지어 땅에 의의 왕국을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였으나 둘째 아담 예수님은 죄를 없애고의와 평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왕좌를 둔 채 온 땅을 통치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실 것이다(단7:14; 계19:15; 시72). 그 이후에 지금의 하늘과땅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온 우주에 가득하게되어 다시는 반역과 죄가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임하게 된다.이때에 이스라엘은 자기 땅으로 돌아와(렘30:3;31:8-9; 겔39:25-29; 암9:11-15) 새로 부활된 다윗의왕국의 백성이 되고(사9:6-7; 33:17; 44:6; 렘23:5;미4:2-3, 7) 특별한 복을 받아 민족들 중에 으뜸이되며(민23:9; 사14:1-2; 49:22-23; 60:14-17) 또 영적으로 부흥할 것이다(렘23:3-6; 겔36:25-26; 슥13:9;말3:2-3). 이때에는 또 경배의 장소로 천년왕국 성전이 지어지고(겔40-48)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 희생예물을 바친다. 이것은 결코 속죄를 위한 예물이 아니고 속죄를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을 기념하는 것이다. 즉 천년왕국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만이 죄를 제거함을 보여 주기 위한 시청각 교육으로 희생 예물이 드려질 것이다. 이때에는땅도 기능을 회복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사35:1-2)산과 골짜기가 모두 평지로 변하며 온 세상의 기후역시 온화하게 되고(사40:3-4; 슥14:4) 예루살렘에도 큰 변화가 생기며 왕의 왕좌를 둔 곳으로 모든곳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슥14:4;10). 또 이방인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와서 왕에게경배하고 장막절을 지켜야 한다(슥14:16-21). 천년왕국의 성전과 도시 선도 참조(93).천년왕국에는 부활한 몸으로 예수님과 통치하는사람들이 있고 부활하지 않은 몸으로 거기 들어가는사람들 즉 7년 환난기를 거쳐 살아남은 채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있으며 그들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그리스도 이전의 이방인과 유대인들(부활한 몸); (2) 신약 교회 시대 사람들(부활한 몸); (3) 환난기에 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부활한 몸); (4) 환난기를 통과하고살아남은 유대인과 이방인들(부활하지 않은 몸); (5)천년왕국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부활하지 않은 몸).7년 환난기를 통과하고 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양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오실 때에 왕국에 들어가고 거기서 아들딸을 낳는데이들 역시 그 전의 다른 세대 사람들처럼 구원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있으며그 결과 그리스도의 철장으로 형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중 얼마는 겉으로는 충성을다하는 체 하지만 천년왕국이 끝나면서 사탄이 풀려나는 때에 기회를 타서 자기들의 속 감정을 드러내며 반역을 일으키고 결국 사탄과 함께 멸망하게 된다(계20:7-10). 이때에는 사람의 수명이 다시 길어져서 창조의 시작 때처럼 거의 1000세까지 살며 또죽기도 한다(사65:20). 전천년 신앙, 환난기 참조.
헌물을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고 그분만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수확의 열매 중 일부를 선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린 것. 전체를 대신해서 드린이 일부는 앞으로 올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표시였다. 유대인들은 작물을 거두기 전에1월 15일에 성전에서 첫 열매를 저녁에 드리고 성전의 뜰에서 타작했으며 그 뒤 제사장은 이것으로 헌물을 만들어 주님 앞에서 흔들어서 바쳤다. 그 뒤에그들은 돌아가서 수확하였고 밀 수확이 끝나면 오순절에 민족의 이름으로 두 개의 빵을 만들어 첫 열매로 주님께 드렸다(레23:10, 17). 이런 첫 열매 말고각 사람은 자신의 첫 열매를 성전에 가져다가 드렸는데 성경은 때나 양 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것말고도 하나님께 드리는 다른 첫 열매가 있었다(민15:19-21; 느10:37). 그들은 빵을 반죽할 때에 일부를 떼어 그 지역의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에게 주었고 첫 열매와 십일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였다.크리스천들은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지고 있는데(롬8:23) 이것은 유대인들의 것보다 더 풍성하고 뛰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앞으로 있을 부활의수확을 미리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그러므로 부활의 창시자요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첫 열매이므로 우리 성도들은 다 다가올 수확에 참여할 자들이다(요14:19). 영어로 firstfruits는 s가 붙어서 복수처럼 보이지만 성경의 용례는 이 단어에 단수 동사 is를 붙여서 이것이 단수임을 보여 준다(롬16:5).
성경의 가장 놀라운예언 중 하나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대언자 다니엘에게 주신 ‘70이레’ 혹은 ‘70주’(seventy weeks)라불리는 예언이다.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법을 그치고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단9:24).다니엘은 유다 왕국의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거의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천사 가브리엘은 자기가말한 것이 70년이 아니라 70년이 7개 있는 490년이며 또 하나님께서 이 기간에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세고 계신다고 말했다. 칠십 이레 선도 참조(78).이 490년의 처음 69이레 즉 483년은(69x7=483)주전 454년경에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린 때(느2:1-8)와 통치자 메시아가와서 죽은 때 즉 주후 30년까지의 기간을 나타낸다.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 예는 민14:34에서 찾을 수있고 또 창29:27을 통해 이레가 7년을 뜻함을 알 수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시면서 늘490년이라는 주기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부터 가나안 정착까지, 여호수아부터 왕국까지, 그리고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포로까지의 기간이 모두490년이다.이 사실과 실제로 예수님께서 주전 4년에 태어나셨고 주전 1년 다음이 곧바로 주후 1년이 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약속된 메시아가 오는 해는 주후 30년이 된다. 그때 예수님의 나이는 서른세 살 반이었고 바로 그 해에 그분께서는 유다의 약속된 통치자즉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그분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의해 배척을 받으셨는데 그렇게 된 것은 기록된 대로 ‘자기 자신을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죽음은 남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단9:26).이 주목할 만한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됨으로써다니엘이 예언한 490년의 기간 중 처음 483년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다음의 기록으로부터 명백하게 알수 있듯이 그 483년 후에 남은 마지막 7년은 즉시연이어서 일어나지 않았다.“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단9:26-27).이 예언은 메시아가 끊어진 뒤 수세기가 흘러간후인 마지막 때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 마지막 때는다니엘의 칠십 이레 예언 중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향해’ - 이방인들을 향한 것이 아님 - 예비된마지막 한 이레 즉 7년을 가리키며 이때를 보통 ‘7년환난기’라 부른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회복을 보여 주기 위한 이정표인 다니엘의 칠십 이레 중 앞부분은 이미 성취되었고 나머지 한 이레 즉 7년은 앞으로 적그리스도의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환난기 참조.
남의 잘못된 일에 대하여 탈을 잡아 말하다.
처음부터 이 수는 한 주의 날 수를나타내었으므로 성경에서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특별히 완전한 수라는 의미가 여기 담겨 있다. 정결한짐승은 일곱 마리씩 방주에 들어갔고(창7:1-24) 요셉 당시 이집트의 풍년과 흉년은 각각 7년씩이었다(창41:1-57). 유대인들에게는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며 일곱째 해가 안식년이고 7년이 일곱 번 지나면희년이 되었다. 무교절과 장막절 즉 그들이 가장 크게 여기는 명절의 기간은 각각 이레씩이었고 그들이바치는 희생 예물의 수도 많은 경우 일곱 마리로 제한되었다. 금 등잔대의 가지도 일곱이고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이 여리고의 성벽을 7일 동안돌았다. 계시록에는 일곱 교회, 일곱 등잔대, 일곱별,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재앙, 일곱 천사가 나온다. 이같이 7은 십진법에서 10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수라 할 수 있다(마12:45; 삼상2:5;욥5:19; 잠26:16, 25; 사4:1; 렘15:9). 또한 일곱 번이일곱 개 있는 것은 완전한 것, 충만한 것 등을 뜻하였다(창4:15, 24; 레26:24; 시12:6; 79:12; 마18:21).그러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은 수도 없이 많은 것을뜻한다(마18:22).
임무를 수행하는 자. 이것은 히브리말이나 그리스말 모두 일차적으로 사자(使者)를의미하며 그래서 그렇게 번역된 곳도 있다(마11:10;눅7:24). 이 말은 종종 보통의 사자에게 적용되었고(욥1:14; 삼상11:3; 눅9:52), 대언자에게(사42:19; 학1:13), 제사장에게(전5:6; 말2:7) 그리고 심지어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게도 적용되었다(시78:49; 104:4;고후12:7). 한편 일반적인 의미로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되었고(말3:1) 그분의 복음의 사역자들과 교회의 감독들에게도 적용되었다(계2:1, 8, 12).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천사라는 말은 능력이나 지혜에서 사람보다 고등한 인격체 즉 하나님 주변에둘러 서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역자로 사용하여 세상사를 집행하시기도 하고 개인이나 국가의 혹은 전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마1:20; 22:30; 행7:30 등). 그들은 순수한 영으로 혹은영적인 몸을 가진 존재로 존재하며 특별한 경우에는완전한 남자의 모습으로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게 나타난다(히13:2). 성경은 천사를 언급하면서 언제나남성 단수 대명사 he를 사용하며 이로써 천사들이남성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여자 천사나 아기 천사 혹은 날개 달린 천사는 하나도 나오지않는다. 한편 천사들은 우리의 세상이 만들어지기전에 창조된 것으로 보인다(욥38:7).성경은 천사의 수가 매우 많음과(단7:10; 마26:53; 눅2:13; 히12:22-23) 그들의 힘이 매우 강력함을 보여 주고(시103:20; 벧후2:11; 계5:2; 18:21; 19:17)그들의 일을 보여 준다(삿13:20; 단9:21-23; 마13:49; 26:53; 행27:23; 계8:13). 천상에는 천사들과는 다른 종류인 그룹, 스랍 등이 있다(사6:2-6; 겔10:1). 천사들 가운데는 천사장이 있고 왕좌, 통치,권능, 정사 등 여러 등급의 천사가 있다(골1:16; 계12:7).천사들은 성경의 여러 사건에서 언급되는데 그들은 한 마디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한 섬기는 영들이다(시91:11; 103:20; 히1:14).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신뢰하거나 그들에게 경배하거나 그들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계19:10; 22:8-9).성경은 개인에게 보호 천사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천사들이 크리스천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마18:10; 눅16:22; 히1:14).특별히 천사들은 사람의 구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있으며(눅2:10-12; 15:7, 10; 벧전1:12)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토록 하늘의 복을 누릴 것이다(히12:22).사람의 창조 전에 천사들의 일부가 루시퍼와 함께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하여 사탄의 천사들 즉 마귀들이 되었다(마25:41; 계12:9). 한편 창세기 6장에는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이 여자들과 성적으로 결합하여 거인들을 출생시켜 하나님의 진노가 노아의홍수를 통해 이 땅에 내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며 유6와 벧후2:4는 그들을 가리켜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나 큰 날의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에 묶여 어둠 밑에 예비된 자들’이라 부른다. 하나님의 아들들 참조.
지혜를 사랑하는 것. 신약성경에서 철학은 헛되이 또 사악하게 사람의 논리를세우는 것을 뜻하며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거스르는것, 이 세상의 지혜,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등으로 기록되어 있다(고전1:18-27; 딤전6:20). 사도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철학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다(골2:8). 철학은또한 교묘하게 사람의 고귀한 기능인 논리를 비틀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마음이타락했음을 보여 주는 슬픈 증거 중 하나이다. 사실사람의 가장 고귀한 지성마저도 종종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가리며 사람의 이성의 범위와 활동력은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교만과 반역과 어리석음의 척도가 되었다(마11:25; 고전2:14; 3:18-20).아테네에서 에피쿠루스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바울의 설교에 제동을 걸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서신서에서 이 세상의 헛된 지혜 즉 이교도들의 철학이 우리 주 예수님의 지혜를 대적함을 보였으며 또한 이러한 참된 진리가 뛰어난 말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과 성도들의 마음에서 확증을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근거하므로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고 말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복음은사람을 부추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유죄이며 따라서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보여 주므로 세상의 철학은 복음을 대적할 수밖에 없다.그리스 철학자들 사이에 스토아, 에피쿠루스, 아카데미 등의 학파가 있었듯이 유대인들 사이에는 에세네, 바리새, 사두개파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스토아 학파와, 사두개인들은 에피쿠루스 학파와, 그리고 에세네파는 아카데미 학파와 비슷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교만하고 헛되며 자랑하기를 좋아하였고사두개인들은 혼의 불멸과 영의 존재를 부인하고 미래에 대한 것을 전혀 걱정하거나 생각하지 않았다.에세네파는 좀 더 중도적인 입장에서 단순하게 또경건하게 철학적 사고를 하였다.초대 교회 당시 사도 바울이 교회에게 준 경고는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성의 교만은 무신론과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오고 계시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을 거절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왕국을 믿고 받아들인다.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을 모임에서 내쫓고 영적인 권리 등을 박탈하는 일.유대인들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회당에서 내쫓았다(요9:22; 12:42; 16:2). 출회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잠정적으로 모임과 사회에서내쫓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모임에서 내쫓고 그들의특권을 빼앗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필요한 경우에출회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인정되었다(마18:15-18; 고전5:1-13; 16:22; 갈5:12;딤전1:20; 딛3:10). 유죄로 판명난 사람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지 못했고 신자들의 모임에서 끊어졌다.아나테마 참조.이러한 출회 조치는 결코 당사자가 하나님의 법이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고 또한 사람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 상대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지 않았다.또한 교회의 이런 결정은 결코 과거 천주교회에서했듯이 적개심에 근거해서 저주나 박해를 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주님은 그런 사람을 단지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고 하셨고 사도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부터 물러나고 그와 교제하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권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그들을 받아들일 것도 언급했다(살후3:6, 15; 요이10-11; 고전5:1-5; 고후2:5-11).
어떤 기관에 희망, 소원 따위를내어 해결해 주기를 요구하는 일.
천둥과 번개는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를 보여 주는 상징이며(출19:16; 삼상2:10;12:17; 시18:13) 특히 천둥은 시적으로 주님의 목소리를 나타내었다(시29, 욥37:1-5; 40:9; 렘10:13 참조).
천체들을 다루는 학문. 이것은 특히 고대 아시아에서 발달했으며 갈대아 사람들이 여기에서 뛰어났다. 히브리 사람들은 기후와삶의 방식 등으로 인해 천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필요가 있었으나 특별히 이것을 파고들지는 않은 것같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창조하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려주었고(창1:1-31) 그래서 그들은 천체들을 통해 참되고 살아 계신 유일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시19;사40:26; 암5:8). 성경은 우리에게 천문학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모든 시대의 인류에게 익숙한 말로해와 달과 별들에 대해 말한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천체들이 언급되어 있다: 금성(새벽별, 계2:28),오리온과 플레이아데스(욥9:9; 38:31; 암5:8), 악투르스(욥9:9; 38:32), ‘구부러진 뱀’(다르코, 욥26:13)등. 주피터(목성)와 비너스(금성)는 바알과 아스다롯같은 이름으로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머큐리(수성)는 느보로(사46:1), 새턴(토성)은 기윤으로(암5:26),마르스(화성)는 네르갈로(왕하17:30) 숭배의 대상이되었다. 우상숭배 참조.
일곱 이레(週)가 지난뒤 지키는 첫 열매 명절(출34:21). 오순절 참조.
채찍질 형벌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하였다. 우리 주님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채찍질을 받았다(요19:1). 모세는 태형을집행할 때 40대 이상을 넘기지 않게 하였으나(신25:1-3) 유대인들은 후에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39대로 정하였으며 세 개의 끈이 달린 채찍의 경우13번을 휘둘러서 39대를 때렸다. 때리는 방법에는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가죽 끈에 쇳조각이 달린채찍으로 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대기로 때리는 것이다. 처형 때에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범죄자의 옷을 벗기고 손은 낮은 기둥에 묶었는데 이로써채찍질하는 사람은 쉽게 그의 등을 칠 수 있었다.혹은 얼굴을 땅에 대게 하고 눕힌 채 곤장을 치는경우도 있었다(신25:2). 바울은 고후11:24에서 자기가 유대인들로부터 다섯 번이나 39대의 매를 맞았다고 기록하고 그 다음 절에서 세 번 몽둥이로 곤장을 맞았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채찍질과 곤장은 다르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성경에서 하늘로 번역되었다. 하늘, 새 예루살렘 참조.기존의 우리말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마3:2; 4:17) 등에 나오는 천국은 원래‘하늘의 왕국’이며 이것은 결코 신자가 죽어서 가는천국 즉 하늘나라가 아니다. 신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딤후4:18에 하늘 왕국(Heavenly kingdom)으로 되어 있다. 하늘의 왕국 참조. 성경의 하늘들 선도 참조(80).
뒤쫓아 구함.
공덕을 일컬어 기림.
남자 친척. 구약에서 친족은종종 ‘무를 권리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스라엘은 궁핍할 때에 자기나 가족 혹은 땅을팔 수 있었으므로(레25:39-43) 다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의 친족으로서 그들을 무를 사람 즉 친족 구속자가 필요했다(레25:25).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는 이 점을 잘 보여 준다(룻4). 예수님은 바로인류의 친족 구속자로 죄에 빠진 사람들을 구속하기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히2:11-12, 17).
첫 열매 명절.첫 열매 참조.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병 고침을 받은 후 기뻐하는 대목에(행3:8) 나오는 ‘기뻐서 뛰놀다’(눅6:23)라는 히브리 표현은 현대식 춤이라기보다 히브리 사람들의 춤추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윗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에게는 춤추는 것이 대개 종교적인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었다(삼상18:6-7). 그가 골리앗이라는 블레셋 투사를 죽이자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도시에서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춤추는 일은 또한 가정에 경사가 있을 때에도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 종교적으로춤을 출 때에는 대개 작은북이 의식을 인도했고 인도하는 사람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이 스텝을 맞추며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홍해의 기적 이후에 미리암이 이스라엘 여인들을 인도하여 노래하고 춤을 춘것과 다윗이 사람들을 인도한 것을 보기 바란다(출15:20-21; 삼하6:14; 시150:4).성경에 있는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춤추는 일은 대개 종교적 성격을 띠었으며 즐거운 날에 이루어졌고 남녀 중 한 그룹이행했으며 야외에서 낮에 이루어졌다. 남녀가 한데어울려 춤을 춘 일은 없었으며 오락으로 춤을 춘 일도 없었다. 오락과 관련해서는 미갈이 말한 ‘헛된 자들이 춤추는 것’(삼하6:20)과 욥이 언급하는 ‘불경건한 가족들이 춤추는 것’(욥21:11) 그리고 헤로디아의딸이 춤춘 것(막14:6)을 예외로 들 수 있다. 그 당시로마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연회에서 춤추는 것이여가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고 그래서 그들은 남녀가 어울려 술을 먹으며 춤을 추었다. 또한 로마와동방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사람들이 고용되기도 했는데 물론 그들은 대개 좋지못한 성격을 가진 여자들이었으며 이교도들의 신전에서 벌어진 춤판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춤 역시 외설스러웠다(사23:16).
기독교로 개종한 지 얼마 안되는 신자(딤전3:6). 바울은 초신자가 목사가 되는것을 금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 불리는 명예를 얻었다(사41:8; 약2:23). 하나님은 사람이 친구에게 하듯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다(출33:11).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친구 관계일 것이다(삼상18:1-4).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명예와 복을 주셨다(요15:15). 그분께서는 유다를 가리켜서도 친구라고 하셨지만(마26:50)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동반한 무리를 뜻하며 그것은 우정 관계를 나타내는단어와는 다르다(마20:13; 22:12 참조).
I.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 -영적인 것, 물질적인 것,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을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시는 행위(시148:5; 계4:11). 창조의 신비 선도 참조(69).II. 이미 존재하는 요소들을 다시 꾸미는 것.III. 이렇게 창조되고 만들어진 것(벧후3:4; 계3:14; 5:13). 창세기에는 분명하게 첫 번째 의미로‘창조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므로 물질이 영원토록 존재해 왔고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벧후3:4)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며 따라서 철저히 거부해야한다(잠8:22-31; 요1:1-3; 히11:3).창조는 하나님의 독창적이며 배타적인 일이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이 창조의 창시자이다(사40:28; 골1:16; 창1:2). 이것은 유한한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로서 하나님의 보이지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한다(롬1:20). 우리는 그분께서 자신의 계시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 즉 일속에서 창조에 대해 계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 두 가지는 동일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래서서로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다. 성경은 처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창조의 기사를 보여 준다. 창세기에 나오는 날은 지금의 24시간의 하루와 동일한 날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6일 만에 모든것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즉 토요일에 안식하셨다. 이 일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일어났으며지구의 자기장, 석유가 나오는 다공층, 유성 먼지,미시시피 강의 삼각주, 인구 증가 등의 많은 과학적데이터가 이 같은 사실을 지지한다. 진화 참조. 성경의 연대 1,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선도 참조(68).롬8:19-22에 나오는 피조 세계는 아담의 타락 이후의 온 세상 만물을 가리키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때 즉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때에저주로부터 풀려나 다시 1000년 동안 회복되고 그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사11:6; 35:1; 벧후3:7-13). 현재 헛된 것에 매여 있는우리의 몸도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부활하여 완전히구속을 받을 것이다(롬8:23). 구속 참조.
잠을 자거나 쉬는 자리. 동방에서는예나 지금이나 방의 사방에 넓고도 낮은 ‘지금의 소파와 비슷한 형태의 침상’이 있어서 낮에는 거기서쉬고 밤에는 잠을 잤다(출8:3; 삼하4:5-7). 어떤 경우에 이 침상은 몇 계단 위로 높은 데 두기도 하였다(왕하1:4; 시132:3). 침상은 그 주인의 위상에 따라여러 형태의 덮개로 덮었고 장식을 사용했다. 가난한 사람은 간단한 매트와 양가죽 혹은 겉옷이 침상의 전부였는데 특히 후자는 낮에 사람을 감싸는 데적합했다(출22:27; 신24:1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고치신 사람들이 자기들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마9:6; 막2:11).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침대 틀 같은 것은 거의 알려지지않았고(신3:11; 삼상19:15; 암6:4) 유대인들은 밤에신발과 겉옷을 벗고 잠을 잤다.
조롱, 책망, 수치를 당하는 것(딤전3:7).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로 인한 수치를 당하였으므로 그분을 따르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후12:10; 벧전4:14). 모세는 이집트의 보화보다그리스도의 치욕을 선택했다(히11:26).
종교적인 노래 혹은 시(엡5:19;골3:16).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를 세워 주어야 함을 가르쳤다.성도 마태는 그리스도의 수난 바로 전에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이 찬송을 부르고 밖으로 나갔다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이때에 그들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이후에 부르던 시편의 일부를 노래로 불렀을 것이다.유대인들은 이것을 ‘할렐’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곧할렐루야 시편들을 말하며 여기에는 시편 113-118편이 있고 이 중 앞의 두 개는 유월절 어린양을 먹기전에 부르고 나머지는 먹은 뒤에 불렀다.
풀과 나무.
고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하는집의 천장을 장식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으며 그래서 천장은 정사각형이나 다른 모양으로 널빤지를 대서 만들었고 거기에 몰딩을 하고 색을 칠하고 곱게바르기도 했다(왕상6:15; 대하3:5; 렘22:14).
자수정이나 지르콘과 관계있는보석. 이것은 노란색조의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열을 받으면 색을 잃고 다이아몬드처럼 된다(계9:17;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