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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성경사전
히브리 사람들은 죽은사람을 장사지내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고(창25:9; 35:29) 그래서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 불명예와불행의 상징이 되었으며(전6:3; 렘22:18-19) 따라서누구나,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들조차도 장사를 지냈다. 선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일을 통해 자신의 경건함을 보여 주었으며 그래서 히브리사람들은 매장하지 않은 시체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크게 두려워했고 이로 인해 땅이 오염되는것으로 생각했다(삼하21:14). 또한 죽은 자의 몸에닿거나 시체에 닿은 것에 닿은 사람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서 정결례 의식을 통해 정결하게 되었다(민19:11-22).시체를 불로 태운 것은 성경에 단 두 번 나온다:사울과 그의 아들들(삼상31:12)과 재앙으로 죽은 자들(암6:10). 관례상 가장 가까운 친족이 죽어가는 사람의 눈을 감기고 입을 맞추며 애곡하는 일을 시작했고(창46:4; 50:1) 장사지내는 일이 끝난 뒤까지 이어지는 애곡의 기간에 죽은 자의 친지들과 친척들이모였다(요11:19). 바로 이런 사람들의 큰 애곡의 소리가 막5:38에 나와 있다. 또한 동방에서는 애곡하는 여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관습이었는데(렘9:17;암5:16) 그들은 죽은 자를 칭송하고(행9:39) 큰 소리를 내며 놀란 모습을 하면서 우울한 노래와 함께 큰슬픔을 애곡에 담았다(마9:23; 참조 겔24:17-18).사람이 죽으면 곧 몸을 씻어서 편안한 장소에 안치했는데(행9:39) 대개 몸은 여러 겹의 아마로 향료와 함께 쌌으며 머리는 수건으로 감았다(마27:59;요11:44). 몸에 향을 넣지 않는 한 장사지내는 일은금방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 지역의 뜨거운 기후와장사지내는 일로 인한 부정함 때문이었다. 그래서대개는 죽은 뒤 24시간 이내에 장사지내는 일이 끝났다(행5:6, 10). 수의를 입힌 시체는 간단한 들것같은 운반대 혹은 열린 관 위에 놓였으며 사람들이이것을 메어다가 무덤에 두었고(삼하3:31; 눅7:14)어떤 경우에는 비싼 열린 관(혹은 운반대)이 사용되기도 했다(대하16:14). 왕이나 유명 인사의 시체는나무로 만든 관에 넣기도 했고 친척들은 도시 밖에있는 무덤에 가서 관을 돌아보았다. 장례식이 있은뒤에는 연회가 열리기도 했고(렘16:7-8) 그 뒤에는죽은 사람의 친구들이 꽃을 들고 가끔씩 무덤에 가서 애곡하곤 했다(요11:31). 돌무덤 참조.
주의 만찬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26:26-30; 막14:22-26;눅22:17-20). 이 규례는 우리 주님께서 배반당하던저녁에 친히 제정하신 것이며 고전11:23-26은 그것의 의미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주의 만찬에 적용하는 것은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이다.주의 만찬은 구약의 유월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었고주의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다(고전5:6-8).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주의 만찬을 행하라고 명령하셨기에 그리스도인들은이것을 규례로 삼아 지킨다(행20:7; 고전11:2, 26).대부분의 교회는 주의 만찬이라는 성경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성만찬이라는 천주교 용어를사용하는데 이것은 천주교의 일곱 가지 성례 중 하나인 ‘성체 성사’ 즉 미사를 가리키는 용어이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미사 참조.이 규례의 이름이 주의 만찬이므로 누구든지 구원받았으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지만 구원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 안에는 천주교의 미사에서처럼 무슨 신비적인 요소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주님의 승천 이후 첫 오순절이 지난 뒤에 예루살렘에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군중들을 위해 가정 예배나 모임이 있었으므로 매일 주의 만찬을 행했으며이것은 보통 ‘빵을 떼거나 빵을 나눈다’는 말로 표현되었다(행2:46). 초대 교회 초반기에는 빵을 떼는 일이 거의 매일 있었으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행2:44에 있는 대로 그들이 모든 물건을 공통으로 소유했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100% 유대인이나 유대인 개종자였으며 - 이방인으로 처음 구원받은 고넬료는 오순절 사건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사도행전 10장에서 등장함- 그들은 말라기 대언자의 말씀에 따라 언제라도 자신들의 주님이 성전에 돌아오리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으므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성전에 모였다(말3:1).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데반 사건을통해 강권적으로 다른 곳으로 흩어버릴 때까지 성전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사도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전에 머물렀다.그러나 이로부터 15-20년이 지나서는 매주 만찬을 행하는 것이 보인다(행20:7). 여기서도 그들은 단순히 주의 만찬만 행하지 않고 음식도 먹었다(11절참조). 이 이후에는 회수나 빈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고 단지 고전11:26에 마지막으로 주의 만찬 자체에 대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의미 있게 주의 만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천주교회처럼 주의 만찬(혹은 미사)이 없으면 예배가 아니라는주장을 펴는 곳도 있지만 성경은 결코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 지역 교회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만찬의 빈도를 정하여 바르게 행하면 된다.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이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결코 자기의 진짜 살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주의 만찬의 요소인 빵과 포도즙은 그분의 찢겨진 몸과 그분의 흘린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기간에는 반드시 일주일동안 모든 집에서 죄의 상징인 누룩을 제거해야만 했다(출12:15; 고전5:7-8). 누룩 참조. 그러므로 죄없는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사용해야 한다. 빵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 역시누룩이 들지 않은 순수 포도 주스여야 한다. 포도주는 이미 누룩이 들어가서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므로순수한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낼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이런 이유로 모두 포도 주스를 사용한다.주의 만찬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과 맺은 언약과 또 은혜에서 은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고후1:21-22; 엡4:13-16).한편 주의하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죄를지으며 따라서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전11:20-34).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만 행하는잠정적인 규례이며 그 이후에는 어린양의 혼인 만찬이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다.끝으로 주의 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즙이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 교리는 성경과 상식에서 벗어난 이단 교리이다.미사 참조.
옥스퍼드 사전은 작은 숲에대해 ‘작은 나무: 자연적으로 생성되거나 특별 목적으로 심겨져서 그늘을 제공하거나 가로수 길이나 산책로로 형성된 숲’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작은 숲은처음에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으며(창21:33)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위한전(殿)의 역할을 했고 그런 목적에 맞았다. 그런데모방의 천재인 마귀를 섬기던 이교도들도 자기들의신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혹은 우상들을 접대하고자 경배의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관목 같은 작은나무들을 아름답게 배치함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숲의 정원과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래서 grove나groves는 항상 ‘(나무를) 심다’라는 의미를 가진plant라는 동사와 함께 쓰이며(창21:33; 신16:21) 또이 작은 숲들은 언제나 그 안의 우상들하고는 별개로 분리되어 있다(왕상14:23; 왕하17:10, 16; 18:4;23:14; 대하14:3; 24:18; 31:1; 사17:8; 27:9).시간이 흐르면서 이교도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을숭배하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작은 숲을 사용했고 그래서 작은 숲의 나무들이 있는 높은 장소들이 경배의 장소로 적합했다. “그들이 산꼭대기에서희생물을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상수리나무와 포플러나무와 느릅나무 밑에서 하나니 이는 그것들의 그늘이 좋기 때문이라”(호4:13). 높은 장소들(산당들)은 처음에 주님께 경배 드리기 위하여 사용되었지만(왕상3:3-4) 엄격한 의미에서 이것은 좀 비정상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모세의 율법이 모든 희생물을 성소의 제단에 가져올 것을 명하기 때문이다(레17:8-9; 신12:13, 16). 이런 연유로 작은 숲이 있는 산당들은 곧장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의 근거지가 되었다(왕하23:15). 산당 참조.아브라함도 작은 숲을 심고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창21:33) 이것은 성경과 배치되지 않는다. 신16:21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것은 제단을 쌓고 우상숭배를 하면서 그 주변에 작은 숲을 심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상숭배를 위한 제단을 쌓지 않았고 단지 작은 숲을 심었을뿐이다. 성경은 작은 숲을 심는 것 자체를 금하지않으며 다만 작은 숲에게 경배를 드리거나 작은 숲안에 제단을 세우고 우상숭배 하는 것을 금한다.현대 역본들의 역자들은 출34:13 등에 나오는 ‘작은 숲’이 오역이며 아세라 혹은 형상으로 번역해야한다고 말하지만 히브리말에서 형상과 작은 숲을 의미하는 단어는 다르다. 사27:9를 보면 형상과 작은숲이 동시에 나오므로 작은 숲과 형상은 같을 수 없고 왕하18:4; 23:14도 동일한 사실을 보여 준다(신16:21 참조). 기존의 우리말 성경 역시 다른 현대역본들을 따라 groves를 작은 숲이라 번역하지 않고아세라라 하였는데 이는 그 성경의 번역 대본을 만든 편집자들이 아세라가 곧 이방 여신 아스다롯을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이방 민족들이 섬기던 많은 신들의 이름이 알려져 왔지만 아세라라는이름의 여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 1800년대 이전에는 아세라가 여신의 이름이라고 알려진 적도 없고 공식 문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작은 숲 안에 우상이나 형상이 세워지므로(왕상15:13;대하15:16) groves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우상숭배를 위해 심겨진 작은 숲을 뜻하며 결코 아세라 여신을 가리키지 않는다.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고대 유대에서는 담이나 울타리 등이 거의 사용되지않았으므로(막2:23) 들판에 있는 개인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나무나 돌무더기를 쌓았다(신19:14; 욥24:2). 그러나 이 같은 지계표를 치우고 다른 사람의소유에 접근하는 것이 쉬웠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엄격한 형벌이 있었다(신19:14; 잠22:28; 호5:10). 경계 참조.
그리스도를 반대하는자. 이런 의미에서 요한은 이미 자기 때에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여러 명의 적그리스도 즉 불신자,이단자, 박해자가 있다고 말했다(요일2:18; 4:3).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했고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온 것을 부인했다(요일2:22; 4:3). 그러나 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유일한 의미의 적그리스도를 생각했으며 사도 바울은 그를 가리켜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썼다(살후2:3). 아마 요한도 요일2:18에서 이구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에게 네 가지 다른 이름즉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 불법의 신비, 그리고 저사악한 자라는 이름을 부여했다(살후2:3-10). 그가적그리스도에게 부여한 이름 중 하나인 멸망의 아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딤전3:16)시라면 적그리스도는 그반대인 불법의 신비이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므로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분신인멸망의 아들이어야 한다.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불법의 신비’의 특징은 이미 다니엘에게 계시되었으며 그는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작은 뿔이 사람의 눈과 같은 눈과 큰일들을말하는 입을 가진 넷째 짐승의 머리 위의 열 개의뿔들 가운데서 솟아 나오는 것을 보았다(단7:7-8).다니엘은 이 작은 뿔이 앞으로 일어나야 할 왕이고큰일들을 말하는 입을 가졌으며 놀라운 지혜와 대단한 웅변력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대담하고 오만하며 교활한 박해자로서 때와 법을 변경시키려 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백성들 즉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3년 반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 그 후에 그는 그 권세를 빼앗길 것이다(단7:23-26). 적그리스도 선도 참조(79).그 다음 장에서 다니엘은 이 작은 뿔에 관한 또하나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숫염소의 네 개의뿔들 중 하나 위에 다시 나타났다. 이 작은 뿔은 심히 커졌고 네 번째 세상 왕국 즉 부활한 로마 제국의마지막에 무서운 용모를 하고 난해한 문장들을 깨닫는 왕으로 일어나지만 자신의 권세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탄이 그 안에 내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크게 번성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 즉 유대인들을 멸하고 자신의 정책을 통하여 자기 손에서 교활한 술책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서 자신을높이고(살후2:3-4) 위장된 평화로 많은 것을 파괴하며 또 통치자 중에 통치자이신 그리스도를 대항하여설 것이나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멸망할 것이다(단8:23-25).한 마디로 불법의 신비 즉 적그리스도는 사탄의초능력 인간일 것이다. 그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과 매혹적인 힘과 여러 방면에 능한 업적들, 초자연적인 지혜, 놀라운 통치력과 행정능력을 가질 것이다. 또한 그는 완벽한아첨꾼, 뛰어난 외교가, 최상의 전략가로서 사람들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그는 위대한 인도주의자, 사람들의 친구, 유대인들의 특별한 친구로 가장하여 자신을 대언자들이 예언한 황금시대로인도하러 온 사람이라고 말하며 유대인들을 설득할것이고 유대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강력한 기만술과 변치 않는 성공으로 사람들을 도취시킬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 내어 살해당했다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날것이다(계13:3). 그때에도 그는 이러한 권세들 중 어느 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7년 환난기 동안통치할 것이지만 종말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구에 다시 오셔서 그의 연합 군대들을 쳐부수실 것이고 거짓 대언자와 함께 그를 산채로 불 호수에 내던지실 것이다(계19:19-20). 환난기 참조. 적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의 때 선도 참조(77).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달리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지 않고 대개 일요일에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이 날은 결코 율법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엿새 만에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으므로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한 날을 거룩히 구별하여 경배 드린다는 안식일의원리를 살리기 위해 세상일을 접고 쉰다. 더욱이 이날은 우리 주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이므로 기독교 신앙의소망인 부활을 기념하고 기대하면서 세상일을 제쳐두고 이 날을 예배드리는 날로 구분하여 지키고 있다.쉬는 날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것은 주님의부활 이후에 즉각 실시되었으며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날 즉 주의 첫날에 그분께서는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또 한 주일이 지나서 같은 날에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고전11:20; 14:23, 40 등은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주의 첫 날에 모여서 경배하고 주의 만찬을 기념한 것을 보여 준다(고전16:1-2). 또한행20:6-11은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첫 날에 모여 만찬을 기념하고 말씀을 들었음을 보여 준다. 요한은 아주 엄숙하게 이 날을 지켰으며 그 날을주의 날 즉 주일이라고 불렀다(계1:10). 요한의 계시록 이후부터 이 날은 주일이라고 불렸다.복음의 초기에 유대인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도 지켰지만 결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나 명절을이방인이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골2:16).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주일을 경배 드리는 날로 따로 떼어 지켰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모여 경배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였으므로 그들을 박해하던 사람들은 “네가 오늘 주일을 지켰느냐?”고 물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므로 이 날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안식, 안식일 참조.
지옥은 ‘스올’이라는 히브리말과 ‘하데스’라는 그리스말을 번역한 것으로 성경에 총 54회 나온다(시16:10; 사14:9; 겔31:16; 눅16:23). 이경우는 지옥이란 단어가 실제로 쓰인 경우이고 이외에도 성경에는 영원한 불, 영원한 멸망, 바깥 어두운 곳, 불 호수, 바닥없는 구덩이 등과 같이 지옥을묘사하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은 지옥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분명한 장소임을 보여 준다. 지하 세계 선도 참조(81).영어의 지옥 즉 hell은 ‘감추다’ 또는 ‘덮다’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1차적으로는‘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하 세계에서 악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곳’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자의 ‘지옥’ 즉 ‘땅의 감옥’이란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말 성경에 아주 근사한 용어를 허락해 주셨다.성경은 지옥이 땅의 심장부에 있다고 말한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12:39-40).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가셨고(행2:31)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구약 성도들을 하늘로 옮기셨다(엡4:9-10). 낙원 참조.“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에 나오는 지옥은그리스어 ‘게헨나’를 번역한 것으로 신약에서 열두번 사용되었는데 이 중 열한 번은 예수님께서 직접말씀하신 것이다. 게헨나는 ‘결코 끝이 없는 불, 사람이 끌 수 없는 불이 타는 곳’을 의미하며 ‘힌놈의골짜기’를 뜻하는 ‘게힌놈’이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되었다.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도시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유대인들은 대대로 계속해서 불타는 이골짜기에다 쓰레기, 죽은 짐승, 범죄자의 시체 등을내다 버렸다. 힌놈 참조. 게헨나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을 표현하는 기술적인 용어였으며 단 한 번도무덤을 뜻한 적이 없다.지옥을 만드신 창조주는 지옥의 소름끼치는 본질을 강조하시면서 그곳을 어둠의 장소라고 말씀하셨다(마8:12; 22:13; 25:30). 사도 베드로 역시 지옥의어둠에 대해 기록했고(벧후2:4) 사도 유다도 짧지만권능 있는 자신의 글에서 지옥의 끔찍한 어둠에 대해 기록했다(유13).지옥의 특성 중 또 하나는 그것이 깊고 넓다는 것이다. 계시록에는 지옥이 밑바닥 없는 구덩이 즉 무저갱으로 일곱 번 언급된다(계11:7, 17:8, 20:1, 3등). 지옥으로 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거기에는 그들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이 있고 그래서 그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면 지옥은 스스로를 키운다(사5:14). 또 지옥은 절망의 장소이다(계14:11). 지옥에는 희망이 없으며 지옥에 있는 자들은 산 채로 불호수에 던져져서 영원히 산 채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옥의 본질이다(계19:20). 예수믿지 않은 악인들이 궁극적으로 영원토록 살 불 호수 즉 불로 가득한 호수의 위치는 정확히 언급되어있지 않다(계19:20; 20:14). 불 호수 참조. 끝으로 기존의 우리말 성경들은 54회의 지옥 중반 이상을 ‘스올’로 음역해서 구약에서는 지옥을 완전히 제거하였으며 신약에서도 몇 차례만 지옥으로번역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번역했다. 음부는 저승과같은 말로서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유명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교도 사상이 기존의 우리말 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리와 신학에 참으로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개역성경 잠15:11; 27:20 참조).
전치사 of는 다음과 같이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I. 소유 - 성도들의 인내(patience of the saints,계14:12); 믿음의 방패(shield of faith, 엡6:16); 성령의 검(sword of the Spirit, 엡6:17).II. 기원 - 믿음의 의(righteousness of the faith,롬4:11); 물의 위험(perils of waters, 고후11:26); 성령의 열매(fruit of the Spirit, 갈5:22).III. 동격 - 할례의 표적(sign of circumcision, 롬4:11); 장막 집(house of tabernacle, 고후5:1); 주의이름(name of the Lord, 롬10:13).IV. 재료 - 고펠나무로 만든 방주(ark of gopherwood, 창6:14); 철장(rod of iron, 시2:9); 금으로 된 머리(head of gold, 단2:38).V. 목적격 :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fear of theLORD, 잠1:7); 영을 괴롭게 하는 것(vexation ofspirit, 전1:14); 돈을 사랑하는 것(love of money,딤전6:10).이처럼 of의 용례가 다양하므로 of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강조점이 조금 변하게 되며 신학적인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예를 들어 갈2:16을 보면 ‘works of the law’와‘faith of Jesus Christ’가 서로 대비되며 나온다. 이경우 ‘율법의 행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번역한다. 우리말에서는 ‘그리스도의 믿음’이 혼동을가져올 소지가 있지만 여기의 of는 기원을 나타내는것으로 보면 된다. 즉 율법에서 나오는 행위와 믿음의 창시자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믿음(히12:2)을 대비해서 이해하면 된다. 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믿음’으로 보아도 된다. 그러나 이것을 그리스도자체의 믿음으로 보면 문제가 생길 요소가 크다. 실제로 ‘믿음’(faith)은 우리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며말씀을 들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온다(롬10:17). 반면에 우리말에서 역시 ‘믿는다’로 번역되는 believe는 사람이 자기 의지로 믿는 것이다(요3:16; 롬10:10).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faith가 생기면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believe하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은 매우 합당한 번역이다.목적격의 of 역시 많은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예를 들어 창2:9의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evil’을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라 하면 초등 번역이된다. 이런 경우의 of는 목적격으로 쓰여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해야 맞는다. 즉 fear, love,know, vex 등과 같이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의 명사형이 of와 함께 쓰일 때는 많은 경우 목적격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3:14의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beginning of the creation of God)의 경우여호와의 증인들은 of를 소유격으로 보아 예수님이‘창조의 시작’ 즉 ‘피조물 중에서 처음 지어진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의 begin 역시 타동사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분’으로 보면 예수님이 창조주가 된다. 사실 성경의 전체 구조를 보면후자가 타당하다(요1:1-3). 골1:15에도 예수님을 가리켜 ‘모든 피조물의 처음 난 자’(firstborn of everycreature)라 하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여기의 of역시 소유격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bear도 타동사이므로 ‘모든 피조물을 처음 나게 하신 분’으로 볼 수있으며 이 경우 예수님은 창조주가 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바로 다음 절에서 15절에 나오는 of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보여 준다. 즉 그는 “모든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함으로써 후자의용례가 맞음을 확증한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어서각각 큰 가족을 이루었는데 성경은 이것을 지파라고부르며 이것은 현대 개념으로 부족에 해당한다. 야곱은 죽으면서 장자권을 요셉에게 주어 그의 아들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의 지파가 되어 이스라엘에서 두 몫을 차지하게 하였다(창48:5). 그래서 열둘이 아니라 열세 지파가 되었으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땅을 나눌 때에 레위 지파에게 상속유업을 주지 않고 가나안 땅을 열둘로 나누어 나머지 열두 지파에게 주었다. 한편 므낫세는 둘로 나뉘어 요르단 이쪽과 저쪽에서 상속을 받았으므로 각각을 므낫세 반 지파라고 부른다.각각의 지파에는 지도자와 관원이 있었고 이 열두지파는 처음에 연방 국가를 형성하였다. 여호수아의배분에 의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르단동쪽에, 그리고 나머지 지파와 다른 므낫세 반 지파는 요르단 서쪽에 상속 영토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솔로몬의 죽음 이전까지는 한 국가를 유지하였으나그 이후에는 북쪽의 열 지파가 반역을 일으켜 북 왕국 이스라엘을 형성하고 유다와 베냐민은 유다 왕국을 유지하였다. 히브리 사람들 참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지도 참조(19).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곧바른 막대기’ 즉 자를 뜻했으며 그래서 이것은 의견이나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갈6:16; 빌3:16).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담은 책들 즉 다른 것들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표준 잣대로서 신구약의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의 외경은 결코 정경이 아니다.외경 참조. 어떤 책이 정경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그것을 영감으로 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백성은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을 사용하여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정하신 정경들을 발견하였을 뿐이다. (1)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가? (2) 하나님의 사람즉 대언자가 썼는가? (3) 하나님과 사람 등에 대해진리를 말하는가? (4) 하나님의 권능이 있는가? (5)하나님의 백성이 수용했는가?구약성경은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 그 사본들을 간수했으며 정경 작업은 서기관 에스라 시대와 말라기가 기록된 시대에 끝났고 신약성경의 경우 주후 397년에 열린 카르타고 공회에서 일반적 동의에 이르게되었다. 이렇게 정경이 확립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그 당시 교통수단이 좋지 않고 성경 사본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퍼져 있던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동의하고수용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약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수행되게 하였다. (1) 이런책들은 사도나 혹은 하나님의 대언자가 기록한 것이므로 가치가 있고 따라서 보존되었으며 이 과정은사도 시대에 바울의 서신들을 수집하고 널리 알린것을 통해 잘 드러난다(골4:16). (2)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아야만 했고(딤전4:13) 그래서 권위 있는 책들을 수집하여야했다. (3) 그들은 이단 견해와 싸우기 위해 정경을필요로 하였다. (4) 또 그들은 선교를 위해 어떤 책을 번역해야 할지 알아야 했다. (5) 끝으로 극심한핍박을 당하자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존해야할 책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했다. 성경, 계시, 영감,보존, 해석 참조. 성경의 보존 선도 참조(91).
그리스 문자 ‘요타’(iota)와 히브리 문자‘요드’(yod)에서 나온 단어로 문자 중에서 가장 작은문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장 작은 것을 뜻하며 영어 단어도 마찬가지이다(마5:18). 획 참조.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큰나무.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들가운데 하나이며 히브리말로 ‘타마르’라고 하는데이것은 이 나무가 곧게 가지를 내지 않고 자라는 것을 뜻한다. 종려나무 줄기는 든든해서 그것을 타고꼭대기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아7:7-8). 가나안땅에는 특별히 종려나무가 많아서 심지어 동전에도등장한다. 신34:3에서 여리고는 종려나무 도시라 불린다. 고대 사람들은 위대한 정복자가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땅에 깔거나 손에 들고 흔들었으며이것은 우리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도 드러난다(요12:12-13). 심지어 하늘에서도 그분의 성도들이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을 찬양한다(계7:9).
히브리 사람들은 손님 접대를 잘했으며 그래서 손님이 오거나 갈 때에 잔치를 베풀었다(창19:3; 31:27; 삿6:19; 삼하3:20; 왕하6:23).탕자가 돌아올 때에 그의 아버지는 연회를 베풀었다(눅15:23). 여러 가지 기쁜 날에도 연회를 베풀었다:생일 등의 기쁜 날(창21:8; 40:20; 욥1:4; 마14:6), 결혼(창29:22; 삿14:10; 요2:1-10), 양털 깎는 일과 수확하는 일(삿9:27; 삼상25:2, 36; 삼하13:23). 장례식에도 연회가 있었으며(삼하3:35; 렘16:7) 또 희생물과 헌물을 성전에 가져온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뻐하며 자기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신12:6-7; 삼상16:5; 삼하6:19). 그들은 이때에 궁핍한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거워했으며(신16:11)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기도 했는데(신12:17-19; 14:29; 26:12-15) 우리 주님은 이 같은관습을 칭찬했다(눅14:12-14).잔치를 여는 방법은 초기에 매우 간단했지만 그리스도의 때에는 로마 사람들의 관례가 도입되어 조금복잡해졌다. 연회 혹은 만찬은 오후 5시나 6시에 시작되어 밤늦게까지 진행되었다. 손님들은 미리 초대를 받았으며 승낙한 손님들에게는 종들 편으로 언제오라는 통보가 갔다(마22:4-8; 눅14:16-24).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은 문에서 저지를 당했으며 최종적으로 집의 주인이 문을 닫았다(마25:10; 눅13:25). 어떤 때에는 초대받은 손님이 매우 많았고(에1:3, 5;눅14:16-24) 사회적 신분, 자격, 성품 등을 고려하여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정해서 연회를 주관하게 했으며(요2:8) 손님들은 각 사람의 명예에 걸맞게 배치되었다(창43:33; 삼상9:22; 잠25:6-7; 마23:6; 눅14:7).어떤 때에는 주인이 무리들에게 가벼운 옷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이때에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되었다(전9:8; 마22:11; 계3:4-5). 손님들은 상 주변에 둘러앉았고 그들에게 물과 향수 등이 제공되었다(막7:2-3; 눅7:44-46). 그들은 먹은 뒤에 다시 손을씻었으며 이때에 종들이 물을 부어 주었다. 식사 시간에 혹은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즐거운 행사가 있었고 수수께끼를 내거나(삿14:12) 동방의 이야기들을말하고 음악을 듣곤 했으며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사5:12; 24:7-9; 암6:6).
사람의 타락이 가져온 악한 열매 중하나(창6:11-13; 사9:5; 약4:1-2). 대개 전쟁은 적군의 침입으로 불가피하게 일어나며 하나님의 형벌로일어나기도 한다. 아말렉과 가나안 참조. 하나님은종종 자신의 배도한 백성을 징계하고 또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들을 채찍질하시므로 많은 경우 전쟁은하나님과 우상들 간의 전쟁이었다. 그 예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삼상17:43-47), 시리아(왕상20:23-30),아시리아(왕하19:10-19, 35), 암몬(대하20:1-30) 사이의 전쟁을 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백성에게 용사를 주시고 우림과 둠밈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대언자와 기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신다.왕들의 시대 이전에는 유대인들에게 정규 군인이없었고 무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다 싸움에 나갔다(삼상11:7). 유다와 이스라엘 왕의 군대들은 대개창과 검과 방패를 가지고 도보로 행군하였으며 활쏘는 자들과 기병도 있었고 군대에는 십인, 오십인,백인, 천인 대장들이 있었다(삿20:10; 대상13:1; 대하25:5). 유대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들처럼 용맹스럽고 전쟁에 능하였으나 가나안 정복 이후에 외세의 침략이 있기 전에는 거의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않았다. 대개 싸움은 봄에 시작돼서 겨울에 끝났으며(삼하11:1; 왕상20:22) 유대 군사들이 적군에게 다가가면 제사장들이 격려하는 연설을 하고(신20:2;삼하7:9, 13) 노래를 부르고(대하20:21) 또 나팔을불어 싸움을 알렸으며(민10:9-10; 대하13:12-15) 활쏘는 자들이 먼저 달려갔고 그 뒤에 창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삿7:18-20; 삼상17:52; 욥39:25;사17:12-13). 그 뒤에는 각개전투가 시작되고 군인개개인의 싸움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었다(대상12:8;시18:32-37). 사도 바울은 영적 원수들에 대해 크리스천 군인들이 무장하고 잘 싸울 것을 권고한다(고전16:13; 엡6:11-14; 살전3:8). 고대의 전투는 한마디로 피투성이 싸움이었고(대하28:6) 패배한 군사들은 대개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렸고 승리한 유대인 군사들은 백성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돌아왔으며(삼상18:6-7) 전리품은 먼저 주님께 드릴 것을 떼고 군사들끼리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민31:50; 삿5:30). 전리품 참조.성벽이 있는 도시를 공략할 때에는 주변에 성벽높이의 망대들을 쌓았고 투석기를 만들어 돌을 퍼부었으며 그 뒤 망대와 성벽 사이에 다리를 놓아 성으로 진입하였고 또 성벽을 부수는 망치를 사용하기도하였다(겔4:2; 21:22). 물론 성 안에서도 침입을 막기 위해 화살을 쏘고 돌을 붓곤 하였다.한편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다스릴 천년왕국에서는 더 이상 전쟁이 없다(시46:9; 사2:4; 사11:9; 미4:3). ‘주의 전쟁의 책’은 영감 받지 않은 문서로서 전쟁의 상세 내용이 기록되었을 것이다(민21:14-15).
동방 사람들은 점치는것, 마술, 꿈을 해석하는 것, 미래를 예측하는 것 등을 좋아했다. 이런 습관은 모세가 율법을 공포하던때에 이미 이집트와 그 주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점치는 자나 마술사나행운을 봐 주는 사람이나 꿈을 해석하는 자들에게 묻는 것을 금하기 위해 이런 자들을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 필요했고 또한 참된 대언의 영이 그런 일들보다 무한대로 우수하다는 것을 약속해 줄 필요가있었다(출22:18; 레19:26, 31; 20:27). 그래서 부리는 영이나 점치는 영을 지닌 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게 했으며(신18:9-12) 이런 자들을 만나서 상담을하는 자들과 백성을 속이는 거짓 대언자들을 저주하는 대언의 말씀이 많이 주어졌다(사8:19; 47:11-14;겔13:6-9). 그런데 왕정 시대 후반과 바빌론 포로 생활 시기에 이러한 미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왕하21:6; 대하33:6). 마법사 참조.점치는 일은 물과 불과 흙과 공기에 의해서 그리고새 싸움이나 새들의 노래를 통해서 제비를 뽑거나꿈을 꾸거나 화살, 구름 혹은 영매를 통해 이루어졌다(겔21:21).
유백색의 반투명한 부분과 다른빛깔이 서로 띠 모양을 이룬 마노 보석. 원래 이 이름은 손톱이나 줄무늬 사이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창2:12; 대상29:2). 이것은 대제사장의 흉패에 쓰인 열한 번째 보석이다(출28:20).
I. 이스라엘의 장로. 히브리 사람들의 연방 국가가 성립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다스린 지도자들. 그들은 각 지파의 우두머리로서자기 가족과 백성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모세와 아론은 이런 장로들을 민족의 대표들로 간주했다(출3:16; 4:29; 12:21).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면서 모세에게 70명의 장로들을 데리고 또 아론과 그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를 데리고 가서 증인이되게 하셨다(출24:1, 9). 그 후에도 70명의 장로 혹은 각 지파에서 6명씩 나온 72명의 장로 등이 있었던 것 같다.II. 교회의 장로. 유대인들의 장로들과 비슷하게초대 교회에는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는 장로들이있었다(행20:17, 28; 딛1:5, 7; 벧전5:1; 요이1). 성경에서 장로는 감독과 목사와 동일한 사람을 지칭하지만 장로는 좀 더 문자적인 의미로 연장자로서 권위를 행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장로는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교회 회중의 모범이 되며 그들을 권위 있게 이끌 수 있는사람이어야 한다. 목사, 감독 참조.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각각 그 종류대로 나는 것이 참된 과학이며 한 종류내에서 특별한 환경 등에 의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은 가능하나 종류 그 자체가 변한다는 진화론은 거짓 가설이다. 이를 확증시켜 주려고 창세기 1장에서만 ‘그것들의 종류대로’라는 구절이 10번 나온다.
팔레스타인에는 여러 종류의족제비가 사는데 이것들은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짐승이었다(레11:29).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거나 그것과 비교하여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는 생각, 말, 욕망, 행동.성경에서 죄는 불법, 범죄, 허물, 빚, 불순종, 반역,거역, 실족, 완고, 무지, 위선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말에서는 죄가 ‘과녁을 벗어난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며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롬3:23)고 말함으로써 죄가 곧하나님의 영광에서 벗어난 것임을 보여 준다.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선행을 통해죄를 덮거나 죄 값을 낮추려 하지만 성경의 기준에따르면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다. 이것은 기차 출발 시간이 오후 5시이면 그로부터 1분 지나서 온 사람이나 1시간 지나서 온 사람이나 다 기차를 놓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세상의 종교는 기준 혹은 과녁에서 얼마나 가깝게 갈 수있는가를 보여 주지만 기독교는 기준 혹은 과녁 자체를 맞추어야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차원에서 성경의 죄는 세상이 정한 죄와 다른데 그이유는 후자가 사람들의 법규나 기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이 땅에 죄가들어왔음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죄의 형벌과 권능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없이 사탄의 가장 큰 무기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길뿐이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온 인류를 오염시킨 것과 죄의 본성, 형태,효과 등에 대해서는 창6:5; 시51:5; 마15:19; 롬5:12;약1:14-15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과비교해서 죄는 ‘경건하지 못한 것’(ungodliness)으로불릴 수 있다. 우리말에서 종종 경건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하나님을 닮는 것’을 뜻하므로 죄는 하나님과 정반대를 닮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는 측면에서 죄는 범법이라 불리며 영원한 정직성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불법 혹은 불의라 불린다.또 죄는 모든 범법의 사악한 원천으로서 우리의 첫조상으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부패이므로원죄라 불리기도 한다. 성경은 죄를 가리켜 육 혹은육신, 죄와 사망의 법 등이라 한다(롬8:1-2; 요일3:4;5:17). 죄의 형벌은 사망이며 하나님은 분명히 아담이 죄를 지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2:17). 그래서 죄를 짓는 혼은 반드시 죽는다. 단 하나의 죄라도 사람의 혼을 완전히 멸절시키는데 이것은 마치전기 줄의 한 부분이라도 끊어지면 전기가 흐르지않는 것과 같다. 죄의 사악함은 죄로 인해 손상된하나님의 법의 거룩함과 공정함과 선함 등에 의해또 죄로 인해 놓치는 영원과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 예물의 위대함 등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사도 바울은 죄를 알지도 못한 예수님이 우리를위해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기록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죄인 참조.
보통의 좀은 옷을 갉아 먹는 해충이며 이 과에 속하는 해충은 상당히 많다. 성경에는옷을 망가뜨리는 좀과 관련된 구절은 상당히 많다(욥4:19; 13:28; 27:18; 사50:9; 호5:12; 마6:19-20).
에돔 참조.
경험과 사고를 통해 얻는 삶의 진리나 사실.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다(시46:10; 요8:31-32). 이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사람의 이성으로 얻을 수 없으며(욥11:7; 롬11:33)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와(시19; 롬1:19-20) 섭리와(신6:20-25; 단2:21) 성경이 필요하다(시119; 계1:1-3). 사람의 정신적 지식은 충분하지 않으며 종종 교만만 만들어낸다(고전8:1; 13:2). 윤리적인 지식은 사람의 의지에 영향을 미친다(잠1:7; 빌3:11-12; 요일4:6).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지식이며 특히 잠언은 이것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서 성장하기를 원했다(골1:10; 벧후3:18).
이집트 탈출 때에 이스라엘은그들의 저울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저울은 수직 기둥과 그 중간에 놓인 수평대 그리고 접시로 구성된 간단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저울은 상징적으로 많이 쓰였다.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추’(레19:36; 겔45:10)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있고정직, 의, 공평, 정당한 거래 등을 뜻하기도 한다(욥31:6; 시62:9; 잠16:11). 거짓 저울은 악을 뜻하며 결국 심판을 가져온다(잠11:1; 미6:11).
이 말은 사람과 함께 쓰일 때 모든 종류의 짐승을 의미했으며(시36:6) 또 어떤 때에는 기는 것을 제외한 네발달린 짐승을 뜻했고(레11:2-7) 야생 동물과 대조되어 가축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들은 다 아담 앞을 지나가며 이름을 받았다.성경에는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지역에 있던 짐승들의 이름만 나온다. 짐승들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함께 고난을 받았으나(창3:14; 출9:6; 13:15; 겔38:20; 호4:3) 유대인들의 율법에는 이것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규정한 법규들이 있었다(출20:10;23:11-12; 레22:28; 25:7). 짐승들은 특별히 희생 제도와 관련해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되었다(창7:2; 레11:1-47).한편 짐승이라는 말은 여러 왕과 민족을 상징하기위해서도 사용되었고(겔29:3; 단7:1-28) 또 잔인한사람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시22:12, 16;고전15:32; 벧후2:12). 짐승으로 번역된 히브리말은보통 ‘살아 있는 피조물’을 뜻했으며 에스겔의 환상속에는 사람이나 혹은 사람의 상징으로 적용되기도하였다(겔1:1-28). 짐승은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신음하며 그리스도의 왕국이 임하는 때에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구속받을 것이다(사11:6-9; 롬8:19-22). 영 참조.
이것은 영어로 LORD 혹은 Lord이며성경에서 8,000여 번이나 나올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단어이다. 비록 권위자나 주인을 가리킬 때도 주(主)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지만(창45:8; 룻2:13; 요15:20; 갈4:1) 구약성경은 거의 독점적으로 창조주하나님을 가리켜 피조물의 주라 부른다(창15:1-2;신3:3-24; 수7:8; 삿6:22; 삼하7:18; 시2:4; 8:1;69:6).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피조물은 주라 불릴 수 없다. 영어 성경에서 대문자 주(LORD)는 언제나 여호와를 가리킨다. 여호와 참조. 한편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동일하시므로 믿음과 경배의 대상이기에 신약성경에서 주라 불리며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그렇게 자주 언급된다(고전12:3).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분께서 신자의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이는 곧 주권 승인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부를 때에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온 우주와 전 인류에 대한 유일한주권자요 세상의 창조주요 생사화복의 주관자임을고백하는 것이다(시2:4; 8:1; 114:7). 그래서 의심 많던 도마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나의 주시며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고백하였다.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미국표준역의 영향으로 구약의 LORD를 여호와로 표현하였으나 이 경우에는신약과 구약의 중요한 개념 특히 재림과 관련된 주의 날 개념이 변하게 된다. 즉 구약에서는 ‘여호와의날’로 하고 신약에서는 ‘주의 날’로 하면 그 둘이 같음을 알기 어렵다.주와 관련하여 주의 이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있다. 큰 글자로 표기된 LORD 즉 주는 결코 호칭이아니라 이름이며 성경 자체가 이를 확증해 주고 있다. “그리하면 내 이름이 주인 줄 그들이 알리라”(렘16:21).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라.”(욜2:32) 등에 나오는 ‘주의 이름’(the nam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총 88번 나옴)은 주의 이름이 따로 있어 그것을부르라는 것이 아니고 여기의 of가 동격의 of이므로주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기도를 끝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할 때 이것이 예수님의 다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예수님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초대 교회 성도들은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주로고백하였기에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재림에 소망을 둔 마라나타 신앙이 확고하게자리를 잡았다(고전16:22; 계22:20). 마라나타 참조.
죄다 멸망하거나 죽여없앰.
기존 우리말 성경의 속죄제. 속죄, 희생물, 헌물 참조.
오직 하나님에게만절대적으로 죽지 아니함이 있으며 피조물의 경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성경은 사람이 죽지않는 일이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딤후1:10).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죽지 않는 복에는 몸의 부활도 포함되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에만 가능하다(요14:19). 한편 죄인들은 의인들이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원토록 불과 유황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산다(마25:46). 지옥, 불 호수, 영혼멸절설 참조.
의리에 맞는 옳고 떳떳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