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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요한삼서

요한삼서주석

성 경: [요삼1:1]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편지하노라. - 사도 요한의 세번째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Barker)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된다(Barker, Smalley).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하다(Wilder, Smalley).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지역에서 영향있는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임을 나타내는 듯하다(Stott, Smalley). 한편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Barker, Stott, Smalley, Wilder, Lenski) 그 뜻은 '기쁨', '환희'이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1)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16:23; 고전1:14). (2)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19:29). (3)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20:4). 4세기 경의 사도적 관행(Apostolical Constitutions)에 보면(vii. 46. 9). 이 세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되어진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듯하다(Barker, Stott, Smalley).

⭕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 '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는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한다(Barker, Smalley).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는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로' 행하는 사랑임을 시사한다(Stott, Lenski, Smalley).

성 경: [요삼1:2]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은 관습적인 기원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Smalley, Stott, Barker). '잘 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유오두스다이'(*)는 '유'(*, '잘')와 '호도스'(*, '길')가 합성된 '유오도오'(*, '여행을 잘 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나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가진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Stott, Lenski, Smalley). 한편 '강건하기를'의 헬라어 '휘기아이네인'(*)은 누가의 경우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고(눅5:31; 7:10; 15:27) 바울의 경우에는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다(딤전1:10; 6:3, Stott, Lenski, Smalley).

⭕ 네 영혼이 잘 됨같이. -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프쉬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요10:11; 요일3:16, Wengst, Small - ey).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듯하다(Barker).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한 편으로 치우칠 문제가 아니라 균형(均衡)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Barker, Lenski).

성 경: [요삼1:3]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인사말]

⭕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 본문은 초대 교회들 사이에 2세기까지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래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한 능동적인 왕래를 내포한다(Barker, Smalley). '형제들'의 헬라어 '아델폰'(*)은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며(요일3:14, Smalley)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살전1:4; 2:1, 14,17). 본절의 '아델폰'은 선교 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인 듯하다(Barker, Smalley).

⭕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형제들이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Barker, Westcott). 가이오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6절, Smalley).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고백과 고수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이다(요이1:1,3,4, Stott). 한편 '행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이스'(*)는 현재 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Wilder).

성 경: [요삼1:4]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 '자녀들'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는다(Barker).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 간에 돌보아 왔던 대상들을 가리키는 듯하다(고전4:14-16; 갈4:19; 빌2:22; 살전2:11; 요일2:1, Stott, Smalley). 왜냐하면 '자녀들'앞에 사용된 소유 대명사 '에마'(*, '나의')가 저자 요한과 자녀들의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친분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Stott, Barker, Lenski, Wilder, Westcott). 한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진리'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 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Stott).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다(요일1:6,7; 2:11; 요이1:4,6). 이는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한다(Smalley, Stott).

⭕ 더 즐거움이 없도다. -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의 서두에 기록되어 있어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한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Lenski). 한편 '즐거움'의 헬라어 '카란'(*)이 일부 사본에서 '카린'(*, '은사', '은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Codex Vaticanus), 혹자는 이를 인정하나(Vulgate, Westcott, Hort) 이는 필경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Stott).

성 경: [요삼1:5]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 '가이오'는 형제들(3절) 곧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 최선을 다해 환대하고 대접하며 도왔다.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행위에 대해 최상급인 '에르가세'(*, '행하는')를 사용하여 타인에 대한 가이오의 환대 행위가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형제와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롬12:13; 딤전3:2; 5:10; 딛1:8; 벧전4:9) 초대 교회에서의 나그네 영접은 특히 중요한 사역이요 덕목이었다(마10:10,40-42; 25:35-40; 히13:2, Smalley, Barker)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요한의 경고로 인해서(요이1:10) 가이오의 신실한 환대 행위는 교회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은 듯하다(Barker, Westcott, Smalley).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소식을 통해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그를 확인하며, 칭찬하고 있다(Smalley, Lenski, Stott). 한편 '신실한 일이니'의 헬라어 '피스톤 포이에이스'(*)는 개역성경에서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 서두에 등장하여 요한이 가이오의 신실한 행위를 강하게 칭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 경: [요삼1:6]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 여행하는 형제들은(3절)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가이오의 진심어린 사랑의 행위를 증거하여 요한과 온 교회가 그를 기뻐하도록 했다(Barker, Lenski, Stott). 형제들의 이러한 증언은 잘못된 오해로 인해 냉소를 당한 가이오의 상황을 반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가이오 안에 있는 진리와 그의 사랑의 행위의 신실함을 입증시켜 주었다(Stott, Lenski).

성 경: [요삼1:7]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본절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여행하는 형제들 곧 나그네들은 평범하게 여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 사역을 행하는 선교사들이다(Barker, Stott). 당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설교나 전도를 하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수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행15:40,41; 롬1:5, Westcott, Stott). 한편 '이방인'은 '이교도'를 의미한다(마 5: 47, Smalley, Stott). 여행하며 선교하는 형제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방인들로부터의 일련의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는 단순한 상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Marshall)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에 충실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마10:8; 막6:8-10, Ba- rker, Smalley). 선교사들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음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고전 9:12, 14; 빌4:10-18)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기에(고전 9:14-18; 고후12:16-18; 살전2:6-9) 가이오와 같이 나그네를 환대(歡待)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었다.

성 경: [요삼1:8]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

⭕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 본문에서 '이같은 자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고 격려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음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수 있도록 물질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Lenski, Smaller). 요한은 선교사들이 마땅히 교회의 환대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 즉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 외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일원들이 선교들을 환대함으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Stott, Smalley, Moffatt, Wilder, Lenski). 여기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는 '진리의 동역자', '진리의 협력자'라는 의미로(Moffatt, Wider), 순회 선교자들은 돕는 일이 그 형제들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리 그 자체와도 협력자가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Smalley). 또한 '함께 수고하는'은 바울이 일반적인 협력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며(롬 16:3; 고후 6:1;빌 2:25; 골4:11, Smalley) 요한의 공동체에서의 '사귐'과 부합되며(요일1:3),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마10;8; 요13:34, 35).

성 경: [요삼1:9]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

⭕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 '두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는 가이오에게 보내고 있는 본서 이전에 다른 편지 하나가 보내졌음을 보여준다(Lenski, Barker, Stott, Smalley). 이 편지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서라고 주장하지만(Lenski), 요한이서가 영지주의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강하게 대항하고 있는데 반해 본서에는 이단의 주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타당치 않다(Smalley). '썼으나'의 헬라어 '에그라프사'(*)는 과거에 이미 완료된 것을 의미하므로 이 편지는 본서 이전에 보내진 것으로 일련의 형제들에 의해 전해졌고 그들이 돌아와서 장로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가이오가 언급된 듯하다(3절, Smalley). 요한이 먼저 보낸 '두어 자'의 내용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9,10절로 추측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보내는 선교사들을 접대해 줄 것과 그들의 여행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던 듯하다. 이러한 내용의 편지는 오만한 디오드레베에 의해서 무시되었다(Barker, Stott, Small- ey). 혹자는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와 같은 지역 내의 다른 교회 회원으로 그 모임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Dodd). 그러나 가이오가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의 일원일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가이오를 디오디레베가 지도자로 있는 회중 중의 한 일원으로 볼 때, 9,10절의 내용이 보다 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가이오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설명되기 때문이다(Smalley, Marshall, Barker).

⭕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 아마도 디오드레베와 그의 행위는 요한이 이 서신을 쓰게 된 중요 동기인 듯하다(Barker).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다음 네 가지 견해 중 전반의 두 가지 견해는 정치적인 이유이며 후반의 두 가지 견해는 교리적인 이유이다. (1)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속사도 시대에 나타나는 직임으로 사도들의 후계자요 지역 교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장로, 감독의 위치에 대해 야심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디오드레베는 그 지역의 합법적인 초대 감독이었던 듯하며 요한의 정치적 간섭에 민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Dodd, Harnack). (2)혹자는 디오드레베가 교회 내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조직화된 교회적 권위를 이어받은 요한에게 반발하여, 그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형제들을 지원하는 일을 거부했던 것 같다(Brown). (3)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요한일서에서도 공격되는(요이1:7-11) 적그리스도의 하나로 해석한다. 즉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의 공동체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후에 그의 이단적인 견해가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다(Bour). (4)혹자는 장로가 초기 영지주의의 이단적 성향을 가져서 디오드레베는 감독으로 교회에서 그와 같은 장로를 쫓아냈고, 동일한 이유로 회중으로부터 일련의 형제들을 쫓아낸 것으로 생각한다(Bultmann, Kasemann). 네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듯하다. 디오드레베가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진술은 요한이 계속적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디오드레베가 불만을 품고 거부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Barker, Smalley). '으뜸되기를 좋아하는'의 헬라어 '필로프로튜온'(*)은 디오드레베의 독립 성향이 그 직임에 있어 우려 이상으로 현실화되어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Brown, Smalley) 그의 행위의 동기가 진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명성과 자기 야심에 있었음을 시사한다(Smalley, Findley).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성향은 도덕적인 문제 이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 정치적인 다툼을 야기시키고 분열과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Stott, Smalley, Williams, Houlden). 그 결과 여행하는 형제들 즉 선교사들을 접대하고 교회에서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던 요한의 권면과 요구를 거절하게 되었다. '접대하지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피데케타이'(*)는 신약성경에서 본문과 10절에서만 발견되는 단어로 '...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라는 의미이다(Smalley). 이는 사도적 권위로 제안한 요한의 권면을 무시하고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사자들을 영접하기를 거절했음을 뜻한다(마카비1서10:1,46, LXX, Smalley). 이러한 디오드레베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야망과 세력 다툼은 초대 교회의 사역에 실패를 초래하는 위험 요소들이었다(Westcott, Smalley).

성 경: [요삼1:10]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

⭕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 요한은 그 자신이 회중을 직접 방문할 것을 약속한다. 그의 여행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인 내용이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Westcott) '내가 가면'이란 표현을 통해 자신이 방문할 것을 알리고 있으며 방문했을 때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에 대해 엄하게 꾸짖을 것을 약속한다(Smalley). '내가...잊지 아니하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폼네소'(*)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생각나게 할 것이다'를 의미한다.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비롯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 세 가지로 제시한다.

⭕ (1)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 '망령되이 폄론하고도'의 헬라어 '플뤼아론'(*)은 문자적으로 '허튼 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상 모략을 하였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디오드레베가 장로에 대항하여 진술하는 요구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거짓된 것임을 시사한다(Stott, Smalley).

⭕ (2)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 디오드레베는 요한을 중상 모략하여 그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요한이 '두어 자'를 적어 보낸 편지의 내용 즉 선교사들을 환대하고 지원해 줄 것을 부탁하는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여 선교사들을 접대하지 않았다. 개역성경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아우토스'(*, '그가')라는 인칭 대명사가 헬라어 본문에 사용되어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 전체가 선교사들을 대접하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디오드레베가 거부한 것임을 나타낸다.

⭕ (3)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 '금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콜뤼에이'(*)는 현재 시제로 계속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선교사들을 대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접대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고 접대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더 나아가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 '내어 쫓는도다'의 헬라어 '에크발레이'(*)는 문자적으로 '내던지다'라는 의미로 디오드레베가 단지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무리를 회중 밖으로 쫓기를 원하지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방의 행위를 자행했음을 시사한다(마18:17; 눅6:22; 요9:34,35; 고전5:2, Smalley). 아마도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거부로 인해 선교사들을 즐거이 접대한 가이오는 교회에서 냉소를 당하였던 듯하다(6절). 또한 디오드레베는 그의 믿음과 행위가 초래한 교회 내의 대립과 붕괴 위험으로 인해 장로와 그의 공동체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었던 듯하다.

성 경: [요삼1:11]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

⭕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 본문은 두 가지 명령, 즉 부정적인 명령과 긍정적인 명령을 담고 있다. 부정적인 명령인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염두에 둔 것이고, 긍정적 명령인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데메드리오의 참됨을 염두에 둔 듯하다(12절, Smalley). 요한은 앞서 언급된 디오드레베의 행위 즉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하여 선교사를 영접하고 접대하며 지원해 주기를 원했던 요한의 제안을 무시한 것을 가이오에게 본받지 말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것은 비록 디오드레베의 영향력으로 인해 가이오가 냉소를 당한다 할지라도 이전에 해왔던 선교사의 접대 행위를 계속적으로 행하라는 요청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 있는 진리(1-3절), 실제적인 사랑(6절), 그리고 옳은 행실(11절)로,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닮아가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들이다(Barker, Smalley).

⭕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고', 모든 '사랑의 명령'(요일2:7-11)에 순종하며, 형제들을 영접하는 모습(5,6절)에서 구별된다. 이러한 선한 행위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요일4:6-8,14, Hass) 한편 '뵈옵지'의 헬라어 '헤오라켄'(*)은 완료 시제로 현재까지 효과가 계속되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낸다. 이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악을 행함으로 나타난 궁극적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고 대면할 수 없으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Smalley).

성 경: [요삼1:12]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마지막 당부]

⭕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에베소의 은장색이었던 데메드리오이다(행19:23). (2)사도적 관행(Apostolic Constitutions)에 따르면 후에 요한이 빌라델비아의 감독으로 임명했다는 데메드리오의 준말로 나타나는 데마이다(골4:14; 딤후4:10; 몬1:24).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다만 혹자가 추측한 대로 본서를 가지고 간 사람이며 이방 출신의 사람인 듯하다(Smalley, Findley). 유대인의 관습과 같이 두 세 사람의 증언을 통해(신19:15; 요일5:7,8) 데메드리오의 참됨이 입증되었다. 요한이 데메드리오에 대해 제시한 증거들 중 첫째는 뭇 사람이며, 둘째는 진리이고, 셋째는 요한 자신이다. 데메드리오가 행한 행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의 선한 행위는 뭇 사람들이 인정하였으며 진리 곧 복음에 합당하였고 요한 자신도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Barker, Smalley, Lenski, Wilder). 요한은 이렇듯 모든 사람과 진리 그리고 자신이 인정할만한 선한 행위를 하는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하여 가이오로 하여금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교회의 냉소(冷笑) 속에서도 선교사를 대접하는 행위를 비롯한 모든 선한 행위를 그치지 않고 계속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면한다.

성 경: [요삼1:13]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마지막 당부]

⭕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 본절에서 15절까지는 본서의 결말 부분이다. 앞절에서 1인칭 복수인 '우리'를 사용한 반면에 본문에서는 1인칭 단수인 '내가'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칭 변화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 틀에 박힌 서신 양식을 탈피하려 했다고 주장하나(Brown) 그보다는 요한이 가이오에게 사무적으로 길게 말하지 않고,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는 자신의 희망 때문에 단수로 사용한 듯하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Smalley). 한편 '먹과 붓'은 '종이와 먹'이라고 표현한 요한이서의 의미와 같은 것으로 서신을 시사한다(요이1:12, Wilder, Smalley, Stott). 요한은 본문에서 쓸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종이와 먹으로 쓴 서신으로 하지 않고 직접 방문하여 얼굴을 대면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암시하고 있다(14절).

성 경: [요삼1:14]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마지막 당부]

⭕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 본절은 앞절에 이어지는 표현으로 '속히'가 첨가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요이1:12의 내용과 유사하다(Smalley).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요한의 문학적 특색이면서(Barker) 동시에 디오드레베의 행위와 그로 인한 위기 상황을 대처하려는 요한의 심중(心中)을 시사한다(Smalley). 현편 '면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는 문자적으로 '입과 입으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마음을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을(Brown) 속히 갖기 원하는 장로의 간절한 바람을 나타낸다(Barker).

성 경: [요삼1:15]

주제1: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하라]

주제2: [마지막 당부]

요한은 본절에서 별개의 세 가지 인사로 마감한다.

⭕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바울의 서신에서는 서두에서 발견된다(롬1:7). 이것은 아마도 본서의 시작 인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Marshall, Smalley).

⭕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요한은 지역 교회에 속한 자신의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낸다고 전한다. 이는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요한의 주장이 정당하며 이로 인해 가이오의 행위가 올바름을 입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shall, Smalley).

⭕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 본문의 '친구'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서 요한의 생각에 공감하고 가이오를 지원하는 회원들이다. 즉 본문은 가이오가 본서를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요한이 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Barker, Sm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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