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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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에베소서 주석



성 경: [엡1: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인사말]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자기 호칭은 고후 1:1과 골 1:1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호칭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사도'(*,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인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이다. 바울이 이 호칭을 자신에 대하여 사용한 것은 자신의 전도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자질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자신을 보낸 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다(행 26:16-18; 고전 9:1).

⭕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 -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세상과 분리시킨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또한 '신실한 자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충성을 겸비한 성도들을 비유하는 표현이다(고전 4:17; 벧전 5:12; 요삼 1:5). 따라서 에베소 교인들에 대한 본절의 호칭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성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응답(應答)한 자들임을 시사한다(2:8).

성 경: [엡1: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인사말]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이는 초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전형적인 인사구로 대부분의 서신서 서두에 나타난다(롬 1:7; 고전 1:3; 고후 1:2; 갈 1:3; 빌 1:2; 살전 1:1; 살후 1:2;딤전 1:2; 벧전 1:2; 벧후 1:2; 계 1:5). '은혜'의 헬라어 '카리스'(*)는 헬라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인사 용어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값없이 누리게 된 구원의 은총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평강'의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 '샬롬'(*)의 번역으로 히브리인들이 개인의 물질적 축복과 번영을 기원해 주는 인사말이다(창 29:6; 삼상25:6; 삼하 20:9; 왕하 4:26). 이런 인사말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일종의 축복과 기도이며 특별히 '은혜'(6, 7절; 2:5, 7, 8;3:2, 7, 8;4:7, 29)와 '평강'(2:14,15, 17;4:3;6:15)은 본서의 주요 주제이다(Foulkes, Lincoln).

성 경: [엡1: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찬송하리로다 - 이것은 유대인의 전형적인 찬양구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롬 15:6; 벧전 1:3, Foulkes, Wood).

⭕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우리에게 복주시되 - 본절은 '엔'(*, '...안에')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전치사구로 구성되어 있다.

⭕ (1) 그리스도 안에서(*, 엔 크리스토) - 혹자는 본문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A. Allan). 그러나 본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배제할 수가없다(2:6, Lincoln).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짐을 시사한다(Bruce).

⭕ (2) 하늘에 속한(*, 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 본문과 같은 전치사구가 본서에서는 다섯번 나타난다(3, 20절;2:6;3:10;6:12).이것은 본절의 '신령한'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Foulkes, Bruce).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의 영역과 연결시키는 구원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미래에 맛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속하는 축복이다(Lincoln).

⭕ (3) 신령한 복으로(*, 엔 율로기아 프뉴마티케) - 여기서 '신령한 복'은 성령시 현존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가리킨다(5:19; 골1:9;3:16). 이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지상적이며 육적인 축복이 아니라 천상적이며 영적인 복이다(Foulkes, Lincoln, Bruce).

성 경: [엡1:4]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택하사'의 헬라어 '엑셀렉사토'(*)는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클레고'(*)의 단순 과거 중간태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이 (1)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역이며(2)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하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시사한다(Lincoln). 한편 '창세 전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영원전에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공적이나 일시적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주권적 은혜임을 시사하며 동시에 '창세 전에'는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골 1:15-17, Lincoln).

⭕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선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거룩하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순결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여 도덕적인 결점이나 죄를 없게 하고 성령의 열매들을 소유하게 하심을 시사하며(갈 5:22, 23) '흠이 없게'는 결함이나 오점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가리킨다(5:27). 이런 두 가지 용어는 구약의 희생 제물과 관계가 있는것으로(LXX 출 29:36, 37; 민 6:14;19:2) 결점이 없는 윤리적 순결성을 의미한다. 이런 윤리적 순결성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사역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안에서 나타난다.

성 경: [엡1:5]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예정하사 - '프로오리사스'(*)의 문자적 의미는 '앞서서 표시했다', '미리 정했다'이다. 앞절에서 언급된 '엑셀렉사토'(*)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수를 선택했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본 단어는 '프로'(*,'...앞에')라는 전치사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세 전에'라는 '시간의개념'이 강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직접 시작하였고, 선택한 자들을 아들로 삼으시려고 결정하셨음을 강조한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의 헬라어 '휘오데시안'(*) 법적 용어로, 양자입양을 나타낸다. 이것은 (1) 하나님의 한 가족이되어 함께 하는 삶을 살며(롬 8:15; 갈 4:5), (2)앞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고(롬 8:17), (3)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롬 8:29)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이런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주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 경: [엡1:6]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방법으로 제시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었음을 시사한다. '사랑하시는 자'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메시야적 칭호였다(Lincoln).

⭕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양자로 삼으시기 위함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인 인간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Hendriksen).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시는 행위의 원리이다(2:5, 8). 이 은혜를 통한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셔서 양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

성 경: [엡1:7]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그의 은혜에 풍성함을 따라 - 이것은 바울 특유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다(Robertson, 18절;2:7;3:16; 롬 2:4;9:23; 빌 4:19; 골 1:27). '은혜의 풍성함'은 고갈을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사죄를 가능케하며 신자의 은혜로운 삶의 근거가 된다(Hendriksen).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아폴뤼트로신'(*)은 노예들이 자유를 얻거나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속전(贖錢)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Wood). 신약성경에서 구속은 두 가지 시상으로 나타난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속을 가리킨다(롬 3:24; 고전 1:30; 골 1:14). (2) 장래에 누리게 될 종말론적인 구속을 가리킨다(14절;4:30; 눅 21:28; 롬 8:23). 본절은 두 가지 시상 중 전자, 곧 현재에 누리는 구속을 의미한다(Lincoln). 또한 본절의 '아폴뤼트로신'에는 '텐'(*)이라는 판사가 붙어 있다. 이는 구속의 실재성을 강조해준다. 이러한 '구속'은 본절에서 '죄사함'과 동일시된다. '사함'에 해당하는 '아페신'(*)은 문자적으로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칭의와 화해를 암시하며 '죄'의 헬라어 '파라프토마톤'(*)은 복수로서 불순종의 행위와 범죄를 시사한다(Wood). 따라서 '죄사함'은 죄로 인하여 파생되는 모든 결과에서 해방된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본 구절에서 '구속'이란 용어와 '사함'이란 용어가 함께 쓰인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한편 '그의 피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아 투 하이마토스'(*)에서 '디아'(*)는 도구격으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암시한다. 바울은 구속의 수단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명백히 밝힘으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을 연결시키고 있다(Lincoln, Bruce).

성 경: [엡1:8]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지혜'(*, 소피아)는 이론적이며 지적인 지혜를 가리키고 '총명'(*, 프로네세이)은 실제적 도덕적인 지혜를 가리킨다고 구분하였으나 신약성경에서는 이사일의(二詞一意)이다(Blaikie, Lincoln). 하나님의 지혜와총명은 영지주의자들이 자랑하는 것 이상의 고등 지혜이며 실제 삶 중에 발생하는 현상과 사건을 이해하는 근원이다(Cole). 바울이 이 두 단어를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1)당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던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교훈을 분별하게하기 위함이며(Calvin), (2)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갈고 닦으며 계속 사용해야 유용한 것임을 교훈하기 위함이다(Bruce).

성 경: [엡1:9]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 본절은 앞절과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풍성함으로 주신 '지혜'와 '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 된다. '비밀'(*, 뮈스테리온)은 '단순히 숨겨져있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신비'를 의미한다(골 1:27). 즉 전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지금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혀진 진리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Cole). 신약 전체에 걸쳐 언급되는 '비밀'은 (1) 감취었다가 밝혀진 진리를 가리키며(Cole), 더 나아가 (2)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신비로 나타난다(Bruce). 구체적으로 이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의미한다(9, 10절; 3:3-10;5:32;6:19).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없이 하나로 통일되게 하는 것으로 '바울'이나 사도들에게만이 아니라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다(Wood).

⭕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본절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에 대한 설명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론'(*)은 하나님의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시간'을 가리킨다(Robertson). 또한 '경륜'(*, 오이코노미안)의 문자적 의미는 '집안의 관리' 혹은 '집안 관리자의 직분'이다(고전 4:1, 2;9:17; 딛 1:7; 벧전4:10). 본절에서 '오이코노미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물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ole). 따라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실행하시고자 한 구속 계획을 가리킨다. 한편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5절의 반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쁨을 위하여 비밀을 드러내고자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셨다.

성 경: [엡1:10]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의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사스다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 단어가 '머리'라는 의미의 명사 '케팔레'(*)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지배하려 하심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Robertson). (2) 혹자는 '요약' 또는 '총계'란뜻의 명사 '케팔라이온'(*)에서 파생된 것으로 개역성경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Blaikie,Hendriksen, Wood, Cole, Calvi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바울은 만물이 예전에 죄로 말미암아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Lincoln). 그리고 오늘날의 일반적인 덧셈 방법은 셈할 숫자를 세로로 적고 총계를 제일 아래에다 쓰는 것이 통례인 반면, 헬라시대에는 총계 숫자를 제일 위에다가 적었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과 문맥을 볼 때, '아나케팔라이오사스다이'는 여러 개의 수가 합산 되어 하나의 숫자로 집약되듯이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 있던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공통된 목적을 향해 하나로 통일되었음을 시사한다(Caird). 한편 '하늘에 있는 것'은 영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이런 영적인 것들은 '땅에 있는 것'과 연합되어서 통일성을 이루어간다. 이런 사실은 바울이21, 22절에서 명시적으로 밝히는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영적 세력이나 땅에 있는 것즉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됨을 시사한다(Lincoln).

성 경: [엡1:1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기업이 되었으니 - '기업이 되었으니'의 헬라어 '에클레로데멘'(*)은 '제비를 뽑아 지정하다' 혹은 '기업이 되다'라는 의미의 동사 '클레로오'(*)의 단순 과거 수동태이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께 어떤 기업을 받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Lincoln, J.A.robinso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적인 뜻대로 우리를 택하시고 소유하셔서 자기의 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보호하며 돌보신다(5절, Blaikie). 또한 '에클레로데멘'이 수동태인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 우리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성 경: [엡1:1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반복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 그리고 선택을 통하여 얻고자 하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그들로 하여금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의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목적이다. 한편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의 헬라어 '투스 프로엘피코타스'(*)에서 접두어 '프로'(*, '전부터')에 대해 혹자는 본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전체 공동체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incoln).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 메시야를 기대했던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Foulkes,Wood, Bruce).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먼저 복음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롬 1:16;2:9).

성 경: [엡1:1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너희'는 앞절에서 '유대인'을 지칭한 '우리'와 대조되는 인칭 대명사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Wood, Bruce, Foulkes).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하여졌다. '복음'은 다른 곳에서 '주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그리스도의 말씀'(골 3:16), '생명의 말씀'(빌 2:16), '화해의 말씀'(고후 5:19)이라고도 불리어진다. 이런 '구원의 복음'과 동일시되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계시하는 사도의 복음을 가리킨다(Lincoln).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구원 계획을 사도들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하였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인치심을 받았으니'의 헬라어 '에스프라기스데테'(*)는 소유권을 나타내거나(아 8:6), 어떤 문서나 서신의 신빙성을 보증할 때 사용되었다(Wood). 이러한 '인을 받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침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Gnilka, Houlden),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일 때 수반되는 성령의 영접을 가리킨다(Lincoln). 성령의 영접은 하나님께서 소유주가 되시는 내적 확증이며, 이런 내적 확증을 공동체 안에서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침례'이다(Foulkes).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소유주와 보호자가 되신다. 이런 관계 변화를 확증하고 보증하는 것이 '인침'이다. 한편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Foulkes, Bruce, 눅 24:49; 요 14-16장; 행 1:4, 5;'the promisedHoly Spirit', NEB), 성령을 받음으로 주어질 신령한 축복을 암시한다(Lincoln).

성 경: [엡1:14]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신령한 복]

⭕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 '보증'의 헬라어 '아르라본'(*)은 '에라본'(*, '보증')에서 차용한 것으로 당시의 상업 용어이다. 이것은 어떤 계약을 할 때의 계약금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의 인침'을 그리스도인의기업의 보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약속의 성령이 성도의 마음 속에서 보증을 해주시므로 구속의 그 날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주심을 시사한다(Calvin). 한편 '기업'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속에서 보증해 주신 것으로 미래의 영적인 부활체(고전 15:44; 고후 5:4)를 가리킨다. 이는 미래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을 시사한다(Lincoln).

⭕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 '얻으신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축복이라고 주장한다(Abbott, Schlier). (2) 혹자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Gnilka, Houlden).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출 19:5; 신 14:2;26:18;말 3:17; 행 20:28).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소유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래에 완전히 구속하신다.

⭕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6, 12절의 반복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미래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구속하시고 소유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성 경: [엡1:15]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이를 인하여 - 이것은 바울이 새로운 언급을 하기 전에 종종 사용하던 것으로 '앞서 언급한 전체로 인하여'라는 의미이다(Blaikie, Wood, Lincoln).

⭕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를 믿는 믿음(Abbott, Gnilka), (2)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 안에서 보인 믿음의 행위(Schlier, Ernst).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은 골 1:3, 4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믿음과 같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Lohse, O'Brien, Bruce,Lincoln).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행함은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다(Foulkes).

성 경: [엡1:16]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이 감사는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임을 암시한다(Lincoln). 한편 '말하노라'로 번역된 '므네이안 포이우메노스'(*)는 단순히 '기억하다'라는 의미(remembering, NIV, RSV)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이다(Foulkes). 왜냐하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에 기도 대상자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신앙의 정도와 처해 있는 환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간구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Wood). 이런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성숙을 향해 성장해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중보 기도이다(17-19절).

성 경: [엡1:17]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본절은 바울의 중보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짓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종속적이다. 한편 '영광의 아버지'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영광스러운 아버지'를 의미한다(Bruce, Lincoln,Foulkes). '영광'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의 광채로서 본절에서는 조명하시는 능력을 암시한다(18절).

⭕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 '정신'의 헬라어 '프뉴마'(*)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프뉴마'에 관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을 의미한다고 주상한다(KJV, RSV, Abbott, milton). (2) 혹자는 관사가 없이도 '프뉴마'가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에(갈 5:5, 16) 인간의 영이라 할 수 없고 '성령'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Caird, NIV). (3) 혹자는 성령에 의해서 인간의 영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하는 것이며(8절;3:10;5:15),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을 시사한다.

⭕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받은 지혜와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 얻어지는 충만된 지식을 뜻한다(Wood).

성 경: [엡1:18,19]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 '마음눈'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아름다운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들은 '총명이 어두웠고'(4:18), '어두움'에 거하였었다(5:8). 그러나 이제 구원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복음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께서그들에게 알게하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Cole, Wood).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 눈'이 밝아져 세 가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부르심'은 '선택'과 '예정'(4, 5, 11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온전하게 하시는 소망을 갖게 된다(Bruce, Foulkes).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완성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될 것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Lincoln).

⭕ (2)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 '그 기업'의 헬라어 '테스클레로노미아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의 기업'으로서 14절에서 언급한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다(신 4:20;9:26, 29;삼하 21:3; 왕상 8:51; 왕하 21:14; 시 28:9;33:12;68:9;78:62, 71;94:14;106:5, 40;사 19:25;47:6;63:17; 렘 10:16;51:19).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성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Abbott, Houlden, Milton,Lincoln).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의 영광을 알기를 기도하고있다.

⭕ (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 바울은 본문에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첫째, '힘'으로 번역된 '크라투스'(*)는 저항과 통제로써 길러진 힘(6:10)을 의미하며, 둘째, '강력'의 헬라어 '이스퀴오스'(*)는 육체적이며 남성적인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고난 힘을 뜻하고(6:10), 셋째, '역사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조절이 가능한 힘을 지칭하며(3:7;4:16), 마지막으로, '뒤나메오스'(*, '능력')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리킨다(Wood, Barth, Schlier). 이러한 네 가지의 유사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기업과 소망을 있는 견고한 다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Hendriksen).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행하신 하나님의 광대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에베소 교인들이 알기를 중보 기도한다.

성 경: [엡1:20]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상관성을 갖는다. 에베소 교인들이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이미 그리스도에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 (1)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확고한 증거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로 삼으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행3:15;4:10;10:40;17:31; 롬 1:4). 그러나 본절에서의 강조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Lincoln).

⭕ (2)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본문은 왕의 즉위식을 묘사한 시 110:1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울은 시 110편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왕권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편에 앉히사'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통치권의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그러한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주셨음을 시사한다(Cole, Lincoln).

성 경: [엡1:21]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과 적대하는 초자연적인 악한 세력으로(6:12, Gnilka, Caird, Barth). 네 가지 명칭이 특별한 순서나 격차, 혹은 직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당시에 횡행(橫行)하던 영지주의 교사들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골 1:16, Cole, Wood). 바울이 네 가지초자연적 적대 세력을 언급한 것은 네 가지 적대 세력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여기서 '세상'으로 번역된 '아이오니'(*)는 '세대'(this age)라는 의미로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현재의 세태(마 12:32; 갈 1:4; 딤전 6:17)와 다가올 세태 및 생활(눅 20:35; 엡 2:7)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현재의 세대와 앞으로의 세대 양자를 모두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현재와 미래의 변화하는 세대와 세상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오른편에 앉히심으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성 경: [엡1:22]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 본문은 시 8:6의 인용이다. '복종하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탁센'(*)은 만물이 그분에게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만물 즉 초자연적인 세력과 모두 세대의 인간들, 그리고 온 우주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해야하며 그를 통해서만이 참생명과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

⭕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다. '머리'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며, 교회의 주인이 되심을 시사한다(Bruce, Foulkes). 교회는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대항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Wood). 한편 앞서 언급한 모든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에 대한 주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백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힘이 아닌 사랑과 온유, 거룩함으로 지배하시며 통치하신다(Bruce).

성 경: [엡1:23]

주제1: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

주제2: [감사와 성도를 위한 기도]

⭕ 교회는 그의 몸이니 - 본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수여받은 유기체임을 나타낸다(Bruce,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이 유기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본절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한다는 의미이다(Hendriksen, Calvin,Lenski).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 즉 교회와의 연합을 통해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2) 본절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는 의미로(Blaikie)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永續的)으로 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골 2:9). (3) 본절은 교회가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Wood, Bruce).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교회안에 내재하시며 교회로 하여금 충만케 하셔서(골3:16), 교회가 자신의 분량까지 완전해지도록 인도하시며 역사하신다(Foulkes, Wood, Bruce).

성 경: [엡2:1]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바울은 본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과거의 삶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의 과거의 삶은 죽음으로 특징지워진다. '죽었던'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시사한다(Foulkes, Bruce, Wood). 이런 사상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만 갖고 있던 독특한 것은 아니다. 구약 특히 시편에서도 질병, 죄, 소외, 포로 상태에 있는 삶이나 적들의 지배하에 있는 삶은 죽음의 영역에 있는 삶으로 표현되었다(시 13:1-3;30:3;31:12;88:3-6;143:3; 호 13:14; 욘 2:6). '허물'은 문자적으로 '정로'(正路)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을 가리키며, '죄'는 문자적으로 '과녘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결국 이 둘은 동의어이다(Barth, Lincoln, Foulkes). 또한 '허물과 죄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토이스 파라프토마신 카이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는 여격으로 '너희의 허물과 죄를 통해서'라는 의미이다. 이 여격은 죽음의 원인, 도구, 영역 그리고 결과를 나타낸다(Barth, Lincoln).

성 경: [엡2:2]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 '행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에파테사테'(*)는 히브리어 '할라크'(*)를 번역한 것으로 윤리적인 행동이나 삶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 (1) 이 세상 풍속을 좇고 - '풍속'의 헬라어 '아이오나'(*)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종교 혼합주의에서 비롯된 신화적 개념이 신약성경에 스며든 것으로, 신을 가리키는 '아이온'(Aion)을 의미한다는 것이다(Nock, Gnilka, Lindemann, Halter, Sasse). 이러한 해석을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풍속'다음에 언급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두번째 해석은, '아이오나'는 이 세대의 타락한 인간 존재의 일시적인 측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Lincoln, Mitton, Caird, Abbott). 이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들은 현재의 악한 세대와 이 세상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다. 그들의 죄악된 행위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현세적(現世的)인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따른 것이다.

⭕ (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Mitton,Lincoln) '악의 영들'(6:12), 곧 '사단'(막 8:33; 눅 22:3)을 의미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統治)하에 살았었다.

⭕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불순종의 아들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Mitton).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에 대한 거절을 내포하는 것으로 현재에 발생한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영'은 영적 세력으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의미한다(Lincoln).

성 경: [엡2:3]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 혹자는 1절에 언급된 '너희'가 '이방인'을 의미하는 반면, 본절의'우리'는 '유대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arth, Bruce). 그러나 본절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incoln, Foulkes, Mitton). '다 그 가운데서'는 앞절에 언급된 '불순종의 아들들'을가리킨다. 바울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음'을 상기시킨다. 한편 '지내며'의 헬라어 '아네스트라페멘'(*)은 앞절의 '페리에파테사테'(*, '행하여')와 동의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이기적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킨다(Houlden, Foulkes, Wood). 이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 대조적으로 육체의 열매를 내는 삶이요(갈 5:19, 20),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이다(롬 8:8).

⭕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다른 이들과 같이'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대해 멸시하는 의미로 사용하던 용어이다(Foulkes). 그러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인 것을 나타낸다(Bruce, Lincoln). 그래서 혹자는 '본질상'이라는 표현이 '원죄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Foulkes). 그러나 이것은 바울이 개종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를 사실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itton). '진노의 자녀'는 히브리적 관용구로서 '진노를 받기에 마땅한 자들'을 의미한다(Bruce, Wood). 본절의 '진노'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God's anger, JB),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증거한다(롬 1:18;2:5, 8).

성 경: [엡2:4]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본절이 1-3절에서 진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이다(출 34:6; 시 103:8;145:8; 욘 4:2). 즉 '긍휼'의 헬라어 '엘레에이'(*)는 히브리어 '헤세드'(*, '인애')와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셨다(롬5:8).

성 경: [엡2:5]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본문의 괄호는 이 부분이 헬라어 본문에 있어서 부가적인 설명임을 나타낸다. 상반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였음을 언급한 바울은 본문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부언한다. 즉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인 은혜로된 것임을 밝힌다.

성 경: [엡2:6]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또 함께 일으키사 - 이것은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살리셨고'와 연결된다. 즉 죄로 인해 초래된 영적 죽음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생명을 공유하는 영적부활을 의미한다(Mitton).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앞절에서는 여격 전치사 '쉰'(*, '...함께')과 합성된 '토 크리스토'(*, '그리스도에게')를 사용한 반면, 본절에서는 '엔 크리스토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두 표현 모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을 의미하는 것이나 본절의 '엔 크리스토 예수'가 앞절에서 언급된 '토 크리스토'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내포한다(Mitton, Lincoln). 한편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부활시키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히셨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골 3:1-3에 암시되어 있다(Foulkes, Bruce). 바울의 이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듯이 하늘에 앉히신 것도 비록 현재 참여하고 있는것을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Bruce).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시사한다(빌3:20).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존전에 서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한다(Mitton).

성 경: [엡2:7]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본절은 '히나'(*, '...위해서')로 시작된다. 이는 본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며 하늘에 앉히신(5, 6절) 목적이 됨을 시사한다.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1:3-14).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신 구원의 자비(慈悲)하심을 가리킨다(Bruce). 한편 '오는 여러 세대'에 대해 혹자는 인격적인 권세나 정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적대적인 정사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Conzelmann, Schlier, Barth). 그러나 이는 시간적인 것으로 미래에 '오는 시대'를 의미한다(Sasse, Lincoln, Scott, Calvin, Bruce, Foulkes).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의 은혜의 광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 경: [엡2:8]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은혜를 다시 한번 강조함을 시사한다.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본절은 5절에서 언급한 것을 반복한 것이지만 5절과 두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1) 5절의 은혜에는 관사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관사 '테'(*)가 있다. 이것은 앞절에서(7절) 언급한 '은혜'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Lincoln). (2) 5절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없으나 본절에서는 나타난다. '믿음'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행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것으로 구원이 인간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Wood, Bruce, Foulkes, 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속의 은총(恩寵)을 받아들이고 응답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이것'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한다(Bengel,Beza, Hodge, Chird, Westcott). (2) 혹자는 구원의 과정 전체라고 주장한다(Lincoln,Wood, Abbott, Gnilka, Schlier, Mitton).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는 중성으로 믿음의 성(性)인 여성과 맞지 않으며, 문맥상 본절의 내용이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Bruce, Foulkes).

성 경: [엡2:9]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엑스 에르곤'(*)에서 '엑스'는 기원이나 원인 혹은 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이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롬 3:20, 28;4:1-5; 갈 2:16; 딛 3:5). 바울은 이 행위를 율법과 관련시켜서 언급하지 않는다. 본절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행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노력을 의미한다(Wood, Lincoln).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자랑할 수 없다(롬 3:27;4:2).

성 경: [엡2:10]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새 생명]

⭕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은 공적(功績)에 의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재창조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만드신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마'(*)는 70인역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첫 창조 사역을 의미하나(시 142:5; 롬 1:20)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을 의미한다(고후 5:17; 갈 6:15; 엡 4:24; 골 3:10,Bruce, Wood, Foulkes).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그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함이다. '선한 일'은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에서 비롯된 열매로서(Bruce)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목표이다(Lincoln). 또한 '선한일'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롬 2:7;13:3; 고후 5:10;9:8; 갈 6:10; 살전5:15).

⭕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에 대해서 혹자는 동사의 목적어로서 '헤마스'(*, '우리를')를 삽입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일 자체를 먼저 예비하신 것으로 해석한다(Abbott). 그러나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예비(豫備)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eyer, Houlden, Barth,Schlier).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주셨다는 의미이다(Lincoln). '선한 일'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롬 8:4; 엡 6:6, Bruce, Lincoln).

성 경: [엡2:11]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그러므로 생각하라 - '그러므로'는 본절을 1-10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상태를 대조시키고 있다.

⭕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 본절은 유대인의 관점에서 진술한 것이다. '육체'에 대해서 혹자는 신체적인 혈통과 중생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한다(Bruce). 그러나 본절의 '육체'는 신체적 혈통이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과거에 유대인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Mitton). '이방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에드네'(*)에서 관사 '타'는 경멸과 무시조의 어투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권을 소유하지 못한 자임을 시사한다(Wood, Foulkes).

⭕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 '할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창 17:8-14).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무할례당'이라고 불렀으며 반면에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 '할례당'이라고 불렀다. 본절의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의 헬라어 '테스 레고 메네스 페리토메스'(*)는 문자적으로 '소위 할례당이라 불리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을 무할례당이라고 무시한 유대인들의 태도에 찬성하지 않음을 암시한다(Mitton, Wood). 진정한 의미의 할례는 외적 표식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이다(빌 3:2; 골 2:11).

성 경: [엡2:12]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알지 못했던 때를 가리킨다(Mitton, Foulkes).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베소 교인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Lincoln, Mitton,Foulkes, Wood).

⭕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 이방인은 국가적 출생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特權)을 갖지 못하였다(롬 9:4, 5).

⭕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 '언약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디아테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창 15:7-21;17:1-21), 야곱(창28:13-15), 이스라엘(출 24:1-8), 다윗(삼하 7장)에게 하신 언약들을 가리킨다(Foulkes, Lincoln). 이 언약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Mitton).

⭕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 '하나님도 없는'의 헬라어 '아데오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Foulkes, Wood, Lincoln).

성 경: [엡2:13]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이방인의 이전 상태가 현재 반전(反轉)되었음을 시사한다.

⭕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의 원어는 구약에서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을 묘사하는 '라호크'(*, 신 28:49;29:22; 왕상 8:41;사 5:26; 렘 5:15)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것을 묘사하는 '카로브'(*, 시 148:14)에서 유래한다. 과거에 이방인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Lincoln, Wood). 이방인의 상태에 대한 이런 반전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이루어졌다(히 10:19-22).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의 피다(1:7; 롬 5:10; 골 1:20-22). 그리스도의 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화해된 상태로 바뀐 것은 구약에서 유대교로의 개종으로 인해 생긴 반전과는 전혀 다르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롭게 창조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누리던 것보다 더 큰 특권(特權)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Lincoln).

성 경: [엡2:14]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이방인의 지위의 반전에 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화평'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 '평화')에서 유래한다. '샬롬'은 전쟁이나 적대 감정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행복과 평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화평'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 감정의 중지를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의 왕으로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담당하셔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만드셨다(Mitton).

⭕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중간에 막힌 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있다. (1)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Court of Gentiles) 사이를 분리하는 성전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Hanson, Abbott, Houlden,Mitton, Foulkes, Bruce). (2) 혹자는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Caird,Martin). 바울은 본 구절을 기록할 때 첫번째 견해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또한 유대인의 성소와 이방인의 뜰 사이에 막힌 담은 영적으로 율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첫번째 견해와 두번째 견해는 모두 본절의 역사적이며, 영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밝히고 있다.

성 경: [엡2:15]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원수된 것'을 수식하는 것으로 (Foulkes, Bruce) 십계명과 같은 커다란 계명과 수많은 세세한 규정들로 구성된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Wood, Mitton). 그리스도는 자기 육체 즉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하셨으며(롬 7:4; 갈3:13). 율법에 의해서 지배를 받던 옛 질서를 폐하셨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셨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지(롬 7:6)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다(Bruce, Lincoln). 도리어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4:25).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이신 득의의 복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본절의 '히나'(*, '...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율법을 폐지하신 목적을 명시한다. 그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어 화평하게 만드는(14절) 새 창조이다. '새 창조'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Bruce, Lincoln, Foulkes).

성 경: [엡2:16]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희생이 목적하는 바는 죄로 인해 생긴 원수된 것을 제거(除去)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라고 진술한다(롬 5:10; 고후 5:18-20; 골 1:20).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각각이 하나님과 이루는 화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 창조로 이룬 한 인류,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한 몸'은 '교회'를 의미한다(4:4; 골 1:18,Meyer, Mitton, Gnilka, Merklein, Lincoln,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몸의각 지체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다(고전 10:17;12:13; 골 3:15).

성 경: [엡2:17]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 '먼 데'와 '가까운 데'는 13절의 '멀리있던'과 '가까와졌느니라'와 상관성을 갖는 것으로 본절은 70인역의 사 52:7과 57:19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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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엡 2:17 |(엘돈 유엥겔리사토 에이레넨 휘민토이스 마크란 카이 에이레넨 토이스 |

| | 엥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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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XX | * |

| 사 52:7 |(유앙겔리조메누 아코엔 에이레네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면 평화를 공 |

| | 포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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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LXX | |

| 사 57:19 |(에이레넨 엡 에이레넨 토이스 마크란 카이 토이스 엥귀스 우신, '먼 데 |

| |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

| | 있을지어다') |

+----------+-----------------------------------------------------------+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유대인과 이방인 각각의 그룹에 선포(宣布)됨을 강조하고 있다(Foulkes, Lincoln). 이러한 그리스도의 평안에 대한 선포는 '하나님과 각 그룹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를 시사한다(Lincoln). 한편 그리스도께서 '언제 전하셨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동안 계속적으로 전한 선포라고 주장한다(Stuhlmacher, Lindemann). (2) 혹자는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예수의 선포라고 주장한다(Abbott, Gnilka, Caird, Wood). (3) 혹자는 화해의 죽음인 십자가 사건의 성취를 통해서 선포하셨다고 주장한다(Lincoln). 세 가지 견해 중 둘째와 셋째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 멀리 있던 이방인들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사도와 교회를 통해서 현재도 계속적으로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신다(행 10:36; 고후 5:18-20, Foulkes).

성 경: [엡2:18]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저로 말미맘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은 구약에서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표현으로 70인역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제사드리는 경우에 사용되었다(레 1:3;3:3;4:14).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요10:7, 9;14:6)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였던 옛 범주(範疇)는 폐지되었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 성령 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감을 나타낸다(롬 8:15, 16; 갈 4:6, Lincoln).

성 경: [엡2:19]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그러므로 - 헬라어 '아라 운'(*)은 19-22절 내용이 14-18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며, 13절 내용의 확대임을 나타낸다.

⭕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 '외인'의 헬라어 '크세노이'(*)는 '외국인'을 의미하며, '손'의 헬라어 '파로이코이'(*)는'자원해서 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권리가 없는 자'를 뜻한다. 본절의 '크세노이'와 '파로이코이'는 이방인의 유대인과의 관계를 전제한 표현이다(12절, Lincoln).

⭕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성도'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1:1, Mitton, Lincoln, Foulkes, Wood, Meyer, Abbott,Hanson). 이제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의 소외된 이방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나머지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다(1:18).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眷屬) 즉 가족이다(요 1:13; 갈 4:7).

성 경: [엡2:20]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 바울은 본절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터'라고 진술한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에서의 속격에 대해 혹자는 주격적 속격으로 해석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놓여진 터'라고 주장한다(Meyer, NEB). 그러나 그것은 동격적 속격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구성된 터'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Lincoln, Bruce). 이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교회를 설립함에 있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함으로 교회의 기초가 되었음을 시사한다(Foulkes, Wood). 한편 혹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하나의 관사로 수식되고 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D. Hill). 그러나 4:11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각각의 관사를 사용하고 있기에 이들은 서로 다른 직분으로 다른 인물들을 지칭한다고 봄이 타당하다(Bruce, Wood). 즉 '사도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에 의해서 위임(委任)받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며, '선지자들'은 특별한 예언의 은사를 받은 남녀들을 가리킨다(행 11:27;13:1, 2;15:32;19:6; 롬 12:6; 고전 14장; 살전 5:20; 계1:3;10:11;16:6;18:20, 24).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이며 선포하는 자로서 교회 설립의 터가 되었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모퉁이 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건물의 기초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itton, Merklein,Percy). 이 경우는 70인역의 사 28:16에서 발견된다. (2) 혹자는 건물의 꼭대기에 얹는 돌이라고 주장한다(Barth, Caird, Hanson). 이 경우는 시 118:22에서 발견된다. 이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Lincoln). 결국 교회는 건물의 꼭대기에있는 돌로서의 그리스도와 함께 완성된 구조이며, 또한 기초석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바탕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건물이다.

성 경: [엡2:21]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 '건물마다'의 헬라어 '파사 오이코도메'(*)는 각각의 건물이라기보다는(Meyer, Abbott, Foulkes, Mitton), 전체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Lincoln, Wood, thewhole building, NIV) 보편적 혹은 우주적 교회를 의미한다. 이 교회는 현재 건설되어가고 있다. '연결하여'의 헬라어 '쉬나르몰로구메네'(*)는 현재 분사로 교회가 현재에도 계속 연결되어 이루어져 가는 것을 시사하며, '되어가고'의 헬라어 '아워세이'(*)는 현재형으로 교회가 유기체적으로 성장하여 가는 것을 시사한다. '성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일반적인 성전을 의미하는'히에론'(*)이 아니라 성전 내부를 가리키는 '나오스'(*)로서 하나님께서 거주하시고 만나시며 교제하시는 장소를 나타낸다(Wood, Foulkes, Lincoln).

성 경: [엡2:22]

주제1: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

주제2: [하나님의 권속이 된 성도]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느니라 - 본절의 '처소'는 '예루살렘 성전'이나 '하늘 처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전체 교회'를 가리킨다(Lincoln).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노이코도메이스데'(*) 또한 현재 시상으로 처소가 계속 지어져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하나님이 교회에 거하시는 수단은 '성령'이며(고전 3:16) 교회는 성령의 작용으로 지어진다(Wood).

성 경: [엡3:1]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이러하므로 - 이것은 2:22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으나(Lenski, Meyer) 2장 전체, 혹은 2:11-22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일 수도 있다(Blaikie, Wood). 한편 '이러하므로'는 14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 반복은 1절과 14절의 직접적인 연결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갇힌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데스미오스 투 크리스투 예수'(*)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죄인'(the prisoner of Christ Jesus, NIV), 혹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죄인'(theprisoner for Christ Jesus, RSV)이란 의미이다. '갇힌 자'는 두 가지 측면 즉 문자적측면과 은유적 측면에서 사용되었다. 문자적으로 바울이 실제적 구속을 당한 것은 은유적으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다(Lincoln, Lenski). 또한 바울은 '자신이 갇히게 된 것'에서 '이방인을 위하여'라는 신학적 의미를 도출해낸다. 이방인들도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바울의 복음 선포는 반대자들로 하여금 분노케 하였으며 그 결과로 바울은 체포당하였다(행 21:27-36). 바울의 체포 당함과 투옥은 바울의 사도적 직분 즉 이방인의 사도됨을 시사한다(7, 8절, Meyer, Lincoln). 한편 본문에는 '나 바울'이라는 강조 성격을 띤(고후 10:1; 갈 5:2; 골 1:23; 살전 2:18; 몬 19) '주어'만 나타나고 동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 바울'과 연결된 동사는 15절의 '무릎을 꿇고 비노니'로서 이것은 2-13절이 하나님의 은혜를 근거로 중보 기도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삽입된 것임을 시사한다. 삽입된 내용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이다.

성 경: [엡3:2]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안'(*)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경영'(1:9) '관리하는실제적 행위'(9절, 1:10) 등을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집안 관리를 맡은 직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indemann, Houlden, Lincoln, Wood). 이것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사도직을 시사한다. 골 1:25에서는 '오이코노미안 투 데우'(*, '하나님의 경륜')라고 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오이코노미안테스 카리토스 투 데우)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받은 사도 직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행 11:23).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자신이 과거에 교회를 박해하던 자로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하는 도구로 삼아주신 것을 나타낸다(행 9:15).

⭕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 혹자는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게 에쿠사테'(*)를 '만일 너희가 들었다면'(If ye have heard, KJV)으로 해석하여서 본 서신의 수신자들 중에서 바울 사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고가정한다(Bruce). 그러나 문맥상 본문은 '너희가 확실히 들었기 때문에'(For surelyyou have heard, NEB) 또는 '너희가 분명히 들었다'(Surely you have heard, NIV)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Foulkes, Lincoln). 즉 본문은 바울이 어떻게 사도직을 수행(遂行)하게 되었는가를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확실하게 들었음을 시사한다(Meyer).

성 경: [엡3:3]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신'(*)은 문자적으로 '드러낸다', '베일을 벗기다'를 의미한다.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방법으로 성령의 감동과 조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절의 '계시'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겪었던 경험을 암시한다(Wood, Bruce,Lincoln).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비밀' 즉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을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하나님 나라에 용납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있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킨다(행 26:17, 18; 갈 1:16, Lincoln, Lenski, Meyer,Foulkes).

⭕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대략적으로 기록하였음을 밝힌다. 바울이 이미 기록한 것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의 다른 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갈 1:12, 16이라고 주장한다(Houlden). 그러나 '대강'이 바울의 다른 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Lincoln). 따라서 그것은 다른 서신이 아닌 본서의 내용으로 1:9, 10과 2:11-22을 암시한다(Bruce, Wood,Meyer).

성 경: [엡3:4]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이것을 읽으면 - 혹자는 본문의 '이것'이 구약의 예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본절은 구약에서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읽고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ort). 그러나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호...아나기노 스콘테스'(*)에서 '프로스'는 일반적으로 '...에 관해서'(withregard to, with reference to)를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에 따라서'(in accordancewith)를 의미하여 '이것을 읽음으로 말미암아'를 뜻한다(Lincoln). 따라서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한 '대강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Wood, Mitton, Foulkes).

⭕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바울이 앞서 밝힌 하나님의 계획을 잘 읽으면 에베소 교인들도 바울이 계시로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 함축된 비밀 즉 그리스도의 인격, 사역 특별히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결짓는 그의 구속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이 곧 하나님의 비밀이다(Meyer, Bruce).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비밀'이며(골 1:26, 27;2:2), 이 비밀은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나타난다(고전 2:1). 한때 이 비밀은 감추어졌던 것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그리스도께서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밝히 드러난 것이다(요 16:13; 고전2:12; 골 1:28).

성 경: [엡3:5]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나타내신 것같이 - 본절은 영원 전부터 감취었던 비밀이(롬 16:25), '이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밝히 드러났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결정적인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초대 교회 당시부터 현재의 시대까지를 의미한다 하겠다(Merklein, Gnilka). 한편 골로새서에서는 이 '비밀'이 '성도들'에게 계시되었다고 되어있는 반면(골 1:26) 본절에서는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에서 사도와 선지자들이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사도 바울의 표현과 연결된다(2:20). '선지자들'에 대해 혹자는 '사도들'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나(Lenski),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2:20).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수식하는 '거룩한'은 '하나님에게 구별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구별된 하나님의 특별한 사신(使臣)과 도구임을 시사한다(벧후 1:21, Meyer, Lincoln, Wood).

⭕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 '다른 세대'는 앞서 언급된 '이제'와 대조적인 개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 즉 구약 시대를 가리킨다(행 14:16;17:30). 한편 '사람의 아들'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70인역에는 자주 나타나는 반면에 신약성경에는 본절 외에 단 한 번 나타난다(막 3:28). 혹자는 '사람의 아들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대조 개념으로 이해하나(Blaikie) 그것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이스라엘의 아들들'과 대조적인 것으로 구약 시대의 이방인을 총칭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Wood).

성 경: [엡3:6]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본절은 구약의 이방인들이 분명히 깨닫지 못한 '비밀'의 내용이다.

⭕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맘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됨이라 - 그 비밀이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이방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고, 장사(葬事)되었다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골 2:12-15). 이방인의 참여를 나타내기 위해서 바울은 '쉰'(*, '함께')으로 시작하는 세 단어를 나열한다. 바울은 '쉰'으로 시작하는 자신이 만든 조어를 통해서 단순히 유대인과의 연합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취된 새로운 연합체 혹은 통일체를 언급한다. 이 '통일체'는 옛 구분이나 범주를 초월한 것으로 이방인도 그것의 구성원이 된다.

⭕ 함께 후사가 되고(*, 슁클레로노마) -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롬 8:17; 갈 3:29;4:7). 그들이 공유하는 '유업'은 성령을 통해서이미 참여하고 있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을 의미한다(1:14, 18;5:5).

⭕ 함께 지체가 되고(*, 쉿소마) - 이것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께서 머리가되신 교회(엡 4:15;5:23; 골 1:18)의 지체가 됨을 의미한다. 이방인도 유대인과더불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Wood, Bruce).

⭕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이나이...쉼메토카 테스 에팡겔리아스) -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이다(창 12:1-3). 과거에 이방인들은 '약속의 언약'에 대해 제외된 자들이었다(2:12).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속함으로' 아브라함의 약속 즉 생명과 구원의 약속에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갈 3:22, 29).

성 경: [엡3:7]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 바울이 일꾼이 된 목적은 복음을 모든 이에게 특히 이방인에게 전파하는 것이다(고후 3:5;4:1). 이런 복음 전파 사역은 바울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셨음을 고백한다(1:19; 골 1:29). 그 역사하심은 성령의 내주로 바울의 삶 전체에서 일어났다. 바울이 말씀과 하나님의 계획을 잘 이해해서 전파할 수있었던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 '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본래 '손님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를가리키는 것으로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이런 직분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 자신을 선택해 주시고, 부르셨으며, 능력을 부여하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1:6, 7) 바울 자신이 과거에 교회의 박해자로서 도저히 그 직분을 감당할수 없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음 사역의 직분을 주셨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성 경: [엡3:8]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에 대해서 혹자는 후대 사람들이 바울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서 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B.S. Easton). 그러나 과연 그들이 바울을 낮추는 말을 썼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C. Spicq, Wood). 왜냐하면 본절만 갖고 진정성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Lincoln). 또한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에 대해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 10),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바울 고백은 신빙성이 있다. 바울의 이 고백에 대해서 혹자는 인위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itton). 그러나 수사학적인 화려한 묘사가 아니라 과거에 교회의 박해자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육체에 하나님을 거스리는 나쁜 욕망(欲望)으로 가득차 있다(롬 7:18; 딤전 1:13-15)는 죄의식에서 비롯된 겸손이다(Blaikie). 한편 '은혜를 주신 것'은 바울 자신이 받은 직분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Blaikie).

⭕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 바울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직분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방인'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드네신'(*)은 '경멸'을 뜻하는 용어이다. 바울은 이방인을 욕되게 부르는 용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이 지극히 큰 것임을 나타낸다(Blaikie). 이방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한 것이다. 한편 '측량할수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넥시크니아스톤'(*)는 '밑바닥까지 도달할 수 없는' 혹은 '한계가 없는'을 의미하는 것으로(Mitton) 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으나(LXX, 욥 5:9;9:10;34:24; 롬 11:33),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풍성'과 관련된다. '그리스도의 풍성'의 헬라어 '플루토스 투 크리스투'(*)에 대해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Lincoln). (1)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해서 '그리스도'가 구원을 소유하신 자이며 수여하시는 자임을 시사한다(Meyer). (2)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의 풍성함의 내용임을 시사한다(골 1:27;2:3).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의 은총과 은사를 가리킨다(Bruce, Wood,Lenski).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성 경: [엡3:9]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의 사명은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비밀의 경륜'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서는 '코이노니아 투 뮈스테리우'(*, '비밀의 친교')로 되어 있다(the fellowship of the mystery, KJV). 그러나 대부분의 사본에는 '코이노니아' 대신 '오이코노미아'(*, '경륜')로 되어 있다(Foulkes). 또한 '경륜'은 '계획'(plan, RSV)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시고자 하는 계획을 가리킨다. 이런 계획은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비밀을 감추었다는 의미로 비밀의 신적 출처를 시사한다(Lincoln). 한편 바울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당시의 거짓 교리 즉 영지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Bruce, Wood). 영지주의자들은 이분법(二分法)을 이용하여서 '창조주'와 '구속주'를 구별하였다. 바울은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계획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간을 구속하시고 자신과 화해시킴으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를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가시는 분이 곧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 선언하고 있다. 이는 구속주와 창조주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한분이신 하나님이심을 천명한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베푸신 은혜의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다.

성 경: [엡3:10]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본절은 '히나'(*, '...하기 위하여')로 시작한다. 이는 본절이 앞서 언급한(8, 9절)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나게 하는 목적임을 시사한다.

⭕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게 하는 것은(8, 9절) 바울의 사명일 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Wood). 교회는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알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정사와 권세들'은 '하늘에 있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킨다(Hendriksen).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간절히 알기를 원하고 있다(벧전 1:12). 교회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9절의 '비밀'과 같은 것으로(Lincoln)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완전히 계시된(2:6-10) 하나님의 구속 게획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무너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통해서 감취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된다.

성 경: [엡3:11]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본절은 바울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것이다. 본절의 '하신 것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이에센'(*)은 문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나 본절에서는 '성취했다'를 의미하는 것으로(accomplished, NIV,achieved, NEB) 단순히 '이루셨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취'를 시사한다(Wood, Lenski). 본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행하셨음을 시사하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중재하시는 '선재하신 중재자'(pre-existent mediator)이심을 나타낸다(Lincoln).

성 경: [엡3:12]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인을 위해 일꾼된 바울]

⭕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 본절에서 바울의 관심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선포에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인 자신과 에베소 교인에게로 바뀌었다. '담대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과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은 담대히 나아감을 강조하기 위한 이사 일의(二詞一意)이다(Lincoln). 여기서 '파르레시안'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Wood, Lenski). (2)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히 4:16;10:19, Foulkes).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파르레시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언제든지 나아가서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아버지이시다(마 7:10,11; 롬 8:15; 갈 4:6). 한편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테스피스테오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서'라는 의미로 혹자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arth, Mitton, G.E. Howard). 그러나 그것은 본서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1:13,15, 19;2: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신 득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롬 5:2, Lincoln).

성 경: [엡3:13]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이방닝을 위해 일꾼된 바울]

⭕ 그러므로 - 이것은 본절이 앞서 언급한 전체 내용과 상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Meyer). 비록 바울 자신은 '갇힌 자'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바울과 에베소교인은 담대함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 본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이다. (1) '낙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카케인'(*)의 주어가 헬라어 본문에서는 명확치 않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낙심치 않도록 기도 부탁을 했다'는 의미이다(Origen, Jerome, Theodore, Goodspeed). (2)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있다는 '기도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낙심치 않기를 부탁하는 것이다(Mitton, Lincoln). 본절에 대한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첫번째 해석의 경우 만약 바울 자신의 절망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본절에서 '나의 환난'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Lenski). 두번째 해석의 경우 '구하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투마이'(*)는 기도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본절을 기도문(祈禱文)으로 해석하기 어렵다(Foulkes). 따라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기를 부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NIV, RSV, NEB, Meyer,Wood, Lenski).

⭕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 바울은 본문에서 에베소 교인을 위하여 당하는 자신의 환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이 된다고 말함으로 '자신의 고난'과 '에베소 교인의 영광'을 대조 병렬시키고 있다. 바울 사상에 있어서 '고난'은 '영광'의 전제 조건이다(롬8:17, 18; 고후 4:17).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후에 영광을 받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바울 사도의 고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겪는 고통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채워져야 하는 남은 분량의 고난으로 알고 기뻐했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골 1:24).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바울은 자신이 현재의 고난을 장차 얻게 될 지극히 큰 영광을 예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처럼(고후 4:17) 에베소 교인들도 바울의 현재 고난이 미래의 교회에 미칠 그리스도의 영광에의 참여라는 사실을(롬 8:17) 깨닫고 낙심하지 않기를 권면한다.

성 경: [엡3:14,15]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 이러하므로 - 이것은 1절과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 후에 다시 '베라카'(*, '축복')로 돌아가 중보 기도를 한다.

⭕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 '각 족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사 파트리아'(*)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모든 부권'(allfatherhood)을 의미한다(Bruce, Barclay). (2) '모든 족속'(the whole family)을 의미한다(Wood, Lenski, KJV, NIV). (3) '각 족속'(every family)을 의미한다(Foulkes,RSV, NEB).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족속'에 해당하는 헬라어'파트리아'는 '한 아버지나 조상'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말로서(Robinson) '아버지'(*, 파테르)와 상관성은 있다 할지라도 '부권'(fatherhood)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모든 족속'의 의미를 지니려면 '관사'가 있어야 하는데 본절에는 관사가 없다. 따라서 '파사 파트리아'는 '각 족속'을 의미한다(Lincoln, Foulkes). 그러나 그 '각 족속'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구성원이 된 믿음의 족속임을 전제로 하며(Caird) 구속(救贖)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Mitton). 한편 혹자는 '하늘에 있는 각 족속'은 천사를 가리킨다고 본다(Lincoln). 후기 랍비들은 천사를 의미하는 상부 가족(upper family)과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하부 가족(lowerfamily)을 분류했다. 따라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은 '각 족속'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임을 시사한다(Lincoln).

⭕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릅을 끓고 비노니 - '이름을 주신 아버지'는 앞서 언급한 구속론적 차원의 '아버지'(2:18)와 '만물의 창조자'로서의 '아버지'(9절)와 상관성을 갖는다(Lenski). 구약에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그것)를존재케 하며 또한 그(그것)를 지배함을 가리킨다(시 147:4; 전 6:10; 사 40:26). 이것은 '아버지'가 각 족속의 창조자이며 주(主)이시며 모든 존재의 의미가 되심을 시사한다(Lincoln). '아버지'는 더이상 심판자가 아니라 '친근한 분'이시다. '앞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는 친근한 사람과 마주보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바울은 '무릎을 끓고' 중보 기도를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서서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마 6:5; 눅 18:11), 바울이 무릎을 끊고 기도하는 것은 바울의 '간절한 마음'과 '복종'을 의미한다(Foulkes, Wood, Lenski).

성 경: [엡3:16]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본절에서 바울은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기도한다. '속 사람'은 인간의 '영',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가리킨다(Foulkes). 성경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 즉 육체에 속하여 부패한 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롬 7:22;고후 4:16)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능력으로 강건해진다. 본절에서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속 사람에 날마다 내주하셔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전 16:13; 빌 4:13). 한편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루어진다. '영광'은 하나님의 안전한 행위를 시사하는 것으로(Lincoln) 하나님의 모든 속성 즉 사랑과 은혜, 지혜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포함한다(Lenski, Bruce).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선물의 기준이며 규범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능력을 부여함으로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강건하게 하심을 시사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간구하는것 이상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확신을 나타낸다(Lincoln).

성 경: [엡3:17]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 본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내주(內住)는 앞절에서 언급한 성령의 내주와 정교한 병행 관계를 형성한다. 바울은 '속사람'과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의 기능'과 '성령의 역할'을 세심하게 병행시킴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성령 사이의 아무런 차이점도 경험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전 15:45; 고후 3:17; 갈 4:6, Lincoln).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내주를 경험한다(요 1:12;14:20;17:21; 롬 8:9, 11; 고전 3:16). '내주'는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항상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곳은 '마음'이다. '마음'은 인격의 중심으로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전인(全人)의 사고와 감정과 의지를 나타낸다(Mitton, Lincoln).

⭕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마 7:15-20; 24-27장),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믿음'과 연결짓는 반면에(골 1:23;2:7) 본절에서는 '사랑'과 연결짓는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토양으로서(Lincoln) 그리스도의 내주의 결과이다(Mitton). 이 '사랑'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Schnackenburg). (2)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다(Meyer,Abbott, Gnilka).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신 것으로(롬 5:5), 이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은 물론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 경: [엡3:18,19]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본문은 두 개의 '히나'(*, '위하여')로 이루어진 목적절이다. 바울의 중보기도 목적이 본문에 두 가지로 나타난다.

⭕ 능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시스퀴세테'(*)는 '강건해지게'(may have power, NIV, RSV)라는 의미이다. 헬라어 본문에서 '엑시스퀴세테'는 '히나'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강건해지는 것'이 바울의 중보 기도의 목적임을 시사한다.

⭕ 모든 성도와 함께 -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강건해지기를 간구한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신비적인 지식이나 혹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속한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하는 목표임을 시사한다(Bruce, Lenski, Lincoln).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본문은 헬라어 본문에서 19절에 속하며, 개역성경의 19절 중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는 헬라어 본문에서 18절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음 절에서 언급된 네 가지 차원의 대상이 된다(Mitton, Calvin, Meyer, Abbott, Moulden). 바울은 본절에서 '알아'(*, 그노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단순히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격적인 지식임을 보다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Lincoln). 한편 '지식에 넘치는'은 다음절에서 언급된 네 가지 차원을 표현한 말로서 인간 지식의 한계로는 광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고전 8:1;13:2, Foulkes, Wood). 하지만 '지식에 넘치는'이란 말이 '지식'의 중요성을 격하시키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계시된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3-5, 9절;1:9, 17,18;4:13;5:17).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헬라어 '토 플라토스 카이 메코스 카이 휩소스 카이 바도스'(*)는 하나의 관사 '토'에 의해서 제한된다. 이것은 네 가지 차원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지식으로 측량할수 없는 무한한 풍요를 시사하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 구속 사역을 암시한다(E. Percy, Bruce).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본절은 바울의 중보 기도의 절정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한 것'을 획득하기를 기도한다.'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의 헬라어 '에이스 판 토 플레로마'(*)에서 '에이스'는 하나님의 충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해석된다. 교회는 이미 충만함을 받았으나(1:23; 골 2:10), 또 한편으로는 충만으로 채워져가야 하는 것으로(4:13;5:18) 이는 바울의 종말론('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을 이해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 통치를 의미한다(Lincoln). 또한 바울이 이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량의 충만함을 바라는 것이라기보다(NEB, Barclay)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충만함'(thefullness which God requires, NEB)으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성장하는 것이며(4:11-13) 하나님이 허락하신 온전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Hendriksen).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것은 성령의 내주(16절)와 그리스도의 내주(17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18, 19절)을 통해서 성취된다.

성 경: [엡3:20]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본문은 앞서 언급한 중보 기도의 성취에 대한 확신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제까지 드린 중보기도를 성취하실 뿐만 아니라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이루어 주실 분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내주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하게 실현시키실 것임을 시사한다.

성 경: [엡3:21]

주제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

주제2: [에베소 교인을 위한 기도]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니 - '영광'은 하나님의 고양된 지위나 명예의 광휘(光輝)로서 하나님의 인격이나 능력을 드러낸다(Lincoln). 바울은 하나님께 이런 영광을 돌리면서 그것이 실현되는 두 가지의 영역을 언급한다. (1)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회는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실현된 곳으로(6-10절),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원하신 구속주이며 그 둘을 통일시키는 분이시다(Foulkes).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마땅하다. 이 두 가지 영역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지체들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 이는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것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씀의 확실성과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로 사용했으며(마 5:18;막 9:1; 요 10:7) 사도들은 서신서의 송영으로 사용하였다(롬 15:33; 16:27; 고전16:24; 갈 6:18). 이것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혹은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라는 의미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과 게획이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신한다.

성 경: [엡4:1]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은 바울이 앞에서 언급한 교리적인 내용 중 영적인 특권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관한 추론으로서(Wood, Mitton) 교리적인 교훈에서 실천적인 교훈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실천적인 교훈이 기독교 교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 3:1에서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의 '주 안에서 갇힌 나'는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 충성하다가 감옥에 갇혔음을 의미한다(Mitton, Foulkes). 이것은 이후에 바울이 권면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실성과 권위를 암시한다(Foulkes, Lincoln).

⭕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는 문자적으로 '다른 들보를 하나 더 세워'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의미한다(Wood, Lincoln). 그 기준은 '부르심'으로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을 통한 새 생명에의 초대이다(1:4, 5, 12, 13).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앙인의 고백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평형(平衡)이 유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마 3:8;10:38; 행26:20; 빌 1:27; 골 1:10, Mitton, Lincoln).

성 경: [엡4:2]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본절은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제시한다(Bruce).

⭕ (1) 겸손 - 이것은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이다(빌 2:3). 당시 '겸손'은 비열한 마음과 노예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미덕이 아니었다(Foulkes, Wood).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시는 모범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빌 2:6-11; 벧전 5:5)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2) 은유 - 이것은 '이해심 깊음'이라는 말로서 '정중함'(gentleness)이라고도 번역된다. 이 미덕은 그리스도의 성품이며(고후 10:1) 성령의 열매로서(갈 5:22, 23) 두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둘째, 자신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 등을 스스로 자제하는 덕성을 의미한다(약 3:3-8).

⭕ (3) 오래 참음 - 이것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며(롬 2:4;9:22; 벧전3:20; 벧후 3:15) 그리스도인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야 할 성령의 열매로서(고전 13:4; 고후 6:6; 갈 5:22; 골 3:12), 복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복수하지 않는 정신이다(Lightfoot, Lincoln).

⭕ (4)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본문은 앞서 언급한 '오래 참음'의 확대된 미덕이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단순히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나(골 3:13) 본절에서는 '사랑 가운데서'를 삽입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랑'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성령에 의해 공급되어지는(롬 5:5)새 시대의 능력으로(고전 13장; 갈 5:14, 22), 어떤 보상이나 조건을 내걸지 않은 자기 희생적인 무조건적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결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Lincoln).

성 경: [엡4:3]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바울은 하나됨의 생활 곧 일치의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일치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은 '평안의 매는 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된 관계를 화해시키고,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루셨으며(2:14-18) 그리스도인들에게'하나됨'을 유지(維持)하도록 하기 위해서 평안과 화해의 대리자라는 직분을 주셨다(고후 5:18). 이러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치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매는 줄'(*, 쉰데스모)은 성도들을 서로 묶어 주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골 3:14) 것으로 족쇄보다 강한 결속을 시사한다. 이러한 성도의 일치됨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얻을 수 있다(Calvin, Bruce). 한편 '힘써 지키라'의 헬라어 '스푸다존테스'(*)는 '노력하다'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어떤 목적을 향한 진지하고 열심있는 태도를 가리킨다(Blaikie). 이것은 평안을 통해서 하나를 이루는 것이 매우 급박한 것이며 단호한 결심이 뒤따라야 하는 어려운 일임을 나타낸다(Wood, Lincoln).

성 경: [엡4:4]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몸이 하나이요(*, 헨 소마) - 이것은 문자적으로 '한 몸'을 의미한다. '한 몸'을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뜻한다(1:23;2:14-22). 이러한 '한 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온전히 하나로 묶여진 유기체로서 통일성을 이룬다(고전 6:15;10:17; 골 1:18).

⭕ 성령이 하나이니(*, 헨 프뉴마) -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성령을 영접하였다고 선언한다(1:13, 14).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의 공통적 근거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룸을 시사한다(Wood, Lincoln, Mitton).

⭕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 교회가 통일성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특별한 소망을 위해서 부르셨는데 여기서 '한 소망'은 '우주적 통일성'에 관한 소망을 가리킨다(1:9, 10). 이 '우주적 통일성'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구원의 목적으로서 이에 대한 소망은 교회를 통일시키고 화해를 이루게 한다(Lincoln).

성 경: [엡4:5]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주도 하나이요(*, 헤이스 퀴리오스) - 이것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으로(롬 10:9;14:8, 9; 고전 8:6;12:3; 빌 2:9-11)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를 따르며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HedriKsen). 교회는 한 통치자의 인도하에 있으므로 통일성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

⭕ 믿음도 하나이요(*, 미아 피스티스) - 믿음은 개인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따라 충성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의탁(依托)하는 것이다(Wood, Lock, Lincoln).

⭕ 침례도 하나이요(*, 헨 밥티스마) - '침례'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어 있다고 하는 외적인 표적으로 물침례를 가리킨다(Bruce, Lincoln,Wood). 이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되었음을 시사하는 표시이다(1:13;2:5, 6). 한 주를 믿는 한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공적인 의식인 침례를 통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고전 12:13; 갈 3:27,28).

성 경: [엡4:6]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 바울은 하나됨의 마지막 원리로 만유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한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다. '한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시다. '만유의 아버지'는 인간을 구속하는 아버지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나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로 보아 '우주적인 아버지'의 의미도 담고 있다(Wood).

⭕ 만유 위에 계시고 - 이것은 하나님의 지고성과 초월성을 나타낸다.

⭕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이것은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시사한다. 온 우주의 아버지이신 '한 하나님'은 교회의 통일성을 위한 근거이시다.

성 경: [엡4:7]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바울은 지금까지의 교회 전체의 하나됨이라는 주제에서 방향을 바꿔 이제는 교회 전체를 이루고 있는각 지체 곧 개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Wood). 본절의 '은혜'는 '은사'와 동일시할 수있다(롬 12:1; 고전 12:4, Bruce, Lincoln). 이런 은사의 다양성은 하나된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인 성도들의 조화를 강화시키며 촉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교회의 하나됨을 충만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게 한다(Calvin). 한편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는 '은사'와 동일시되는 '은혜'가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에 다른 신약성서에서 '선물'이나 '은사'는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난다(고전 12장).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은혜의 수여자이며 성령을 통해서 은사를 수여하시기 때문이다(Bruce, Lincoln).

성 경: [엡4:8]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그러므로 이르기를 - 바울은 앞에서 논의한 것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확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레게이'(*)는 직접 인용한 출처(出處)를 밝힐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서(Wood) '성경이 말하기를' 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Bruce).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 본절은 승리의 찬송인 시 68:18의 인용이다(Calvin). 본절은 시편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대적한 자를 정복하신 후 하나님 보좌에 오르셔서 자기 백성에게 은사를 주심을 의미한다.

성 경: [엡4:9]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땅 아랫곳'의 헬라어 '에이스 타 카토테라 메레 테스 게스'(* 는 문자적으로 '땅의 낮은 곳'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리셨던 것'과 관련된 것으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음부에 내리셨다'는 의미(Meyer, Robinson, Buchsel). (2)'성령 안에서 내려오셨음'을 의미(Caird, Abbott, Houlden). (3) '성육신으로 이 땅에내려오셨음'을 의미(Wood, Bruce, Gnilka, Mitton).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타 카토테라 테스게스'는 '이 땅'을 가리키며(Bruce, Calvin) '이땅'과 관련하여 '내리셨던 것'은 '성육신'을 의미한다(Wood, Bruce).

성 경: [엡4:10]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부르심에 합당한 삶]

⭕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 '모든 하늘'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늘을 일곱층으로 생각했던 것을 암시하는데(Wood, Lincoln) 그리스도는 그 모든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다.

⭕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 본절은 '히나'(*, '하기 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 본절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목적임을 시사한다. 그 목적은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이다. '만물을 충만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세타 판타'(*)는 온 우주에 임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만물을 그의 주권 아래 두심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셔서 모든 존재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영향력을 행사하신다(Bruce).

성 경: [엡4:11]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 그가...주셨으니 - 본절에 언급된 직분중 세 직분 즉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는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했던 것인 반면 나머지 두 직분 곧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에 국한된 직분들이다(Wood, Foulkes). 이러한 직분들에서 다음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직분의 다양성이다(고전 12:5). 교회는 한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이나 은사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다. (2) 직분의 통일성이다. 이러한 다양한 직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영적인 유기체이다.

⭕ 사도 -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자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섬긴 자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바울 자신과 바나바(행 14:14), 실라(살전 2:6) 등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였다(행 14:4, 14; 고전15:5; 갈 1:19).

⭕ 선지자 - 하나님의 계시를 중재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고전 14:24) 교회를 훈계하기도 하였다(행 15:32). 이들은 극심한 박해(迫害)와 직권 오용 그리고 정경의 등장으로 인해 후에 교회에서 사라졌다(행 13:1; 고전 12:28, Foulkes, Lincoln).

⭕ 복음 전하는 자 - 선교의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빌립(행 8:4-7), 디모데(딤후 4:5), 에바브라 등이 이에 해당된다.

⭕ 목사와 교사 - 혹자는 두 직분 사이에 관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같은 직분이라고 주장한다(Barth). 그러나 직분상 그 기능이 어느 정도는 중복된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람으로 볼 수 없으며, 관사가 하나밖에 없는 것은 두 직분이 지역 교회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Lincoln). 따라서 '목사'는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적 교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엡4:12]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을 세우신 목적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 성도를 온전케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은 외과 의학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마 4:21),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갈 6:1) 사용되었다. 즉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목적을 실현하며 성도들이 온전케 되도록 회복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10; 살전 3:10, Lincoln, Foulkes).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이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분이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회복(回復)과 훈련을 통해 온전케 된 성도들이 하나됨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벧전 2:4, 5).

⭕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성도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 온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킴을 시사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 가는 것이 모든 지체의 과제이지만(16절) 특히 사역자들은 사도적 복음과 전승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독특하고 중요한 과제로 나머지 지체들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Lincoln).

성 경: [엡4:13]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의 헬라어 '에이스 안드라 텔레이온'(*)은 문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전히 성장한 인간이 되다'라는의미이다. 여기서 '안드라'는 남성 단수형으로 전체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한 새사람'을 이룸을 시사하며 '텔레이온'은 '완전'보다는 '성숙'의 의미를 내포한다(고전2:6;14:20; 히 5:14). 이것은 다음 절에서 언급되는 어린 아이와 대조적인 것으로 '성숙한 성인'에 강조점이 있다.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교회가 원리상 교회 내에 이미 성숙함과 온전함을 획득하였음을 암시한다(2:15, Lincoln). 한편 '믿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기보다 믿음의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며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는 일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구원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과 '지식'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울의 전통적인 기독론적 칭호이다(롬 1:3, 4, 9;5:10;8:3; 고전 1:9; 고후 1:19; 갈1:16; 2:20; 4:4; 골 1:13; 살전 1:10).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게 하는 것은 목사와 교사들에게 부여된 과제로서, 목사와 교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한 믿음과 한 지식을 향한 점진적 진보가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Lincoln).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 교회가 지향해야 할 완전한 영적 성숙을 나타낸다(Bruce). 여기서 '장성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스'(*)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Wood). (1) '나이'를 의미한다(요 9:21). 이것은 성인이 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년기를 벗어나 '영적으로 성숙한 분량의 연령에 이름'을 시사한다. (2) '키'를 의미한다(눅 19:3). 헬라의 고전 작품에서는 '분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과 함께 사용하여 '영적으로 자라난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눅 2:52). 본절은 전체 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1:23)를 위하여 더욱더 그리스도의 속성과 능력을 채워가야 함을 시사한다(Best).

성 경: [엡4:14]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본절은 '히나'(*, '...하기 위하여')로 시작되는 목적절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 본절은 성인이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자의 특징을 나타낸다(Wood). 신약성경에서 '어린아이'는 영적 미숙을 시사한다(고전 3:1, 2;13:11; 히 5:13).

⭕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 '궤술'의 헬라어 '퀴베이아'(*)는 문자적으로 '주사위를 던지다'는 의미로 당시의 속임수나 사기를 가리킨다. 또한 '유혹'의 헬라어 '파누르기아'(*)는 거짓 교사들이 미성숙의 길로 들어서도록 교활하게 유도함을 의미한다.

⭕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 영적 미숙아의 특징은 '요동하는 것'이다. '요동치'로 번역된 헬라어 '클뤼도니조메노이'(*)는 조타 장치가 없는 배처럼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조그만 어려움이나 거짓 교리에 대해 쉽게 넘어간다.그러나 성숙한자는 진리를 분별(分別)하는 능력을 가지며(히 5:14) 어떤 거짓된 풍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Bruce). 한편 '모든 교훈의 풍조'는 바울이 앞절에서 말한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것'에 반대되는 모든 교훈을 의미한다(Lincoln,Bruce). 즉 바울은 영적 미숙아가 앞서 말한 거짓교사들의 사기와 교활함에 쉽게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가야 함을 권면한다.

성 경: [엡4:15]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개역 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과 본절을 대비시키고 있다.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 본절은 교회 성장의 수단을 나타낸다. '참된 것을 하여'의 헬라어 '알레듀온테스'(*)는 문자적으로 '진리를 말하여'를 의미하는데(speaking the truth, NIV) 이것은 교회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시사한다(2:5). 교회의 복음 선포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은 진리에 대해 충성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 '범사에'에 대해서 혹자는 '우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을 우주에 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Meyer,Schlier). 그러나 '범사에'는 부사적 목적격으로 '모든 방법으로'로 이해되어야 한다(Lincoln). 왜냐하면 앞절과 본절에서 성장에 관계된 것은 우주가 아니라 교회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목표와 척도(尺度)는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 과정 속에서 일관된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 질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까지 자라야한다.

성 경: [엡4:16]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 '연락하고'의 헬라어 '쉬나르몰로구메논'(*)은 '함께 연결하고'를 의미하며, '상합하여'의 헬라어 '쉼비바조메논'(*)은 '함께 연합하여'라는 의미로 동의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지체들간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 표현이다. 한편 '마디'에 해당하는 '하페스'(*)는 세가지로 해석된다. (1) 감정이다(Meyer). (2) 접촉이다(Abbott, Barth). (3) 결속이다(Foulk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즉 '마디'는 각 지체와 머리 사이의 연결을 제공하는 결속을 나타낸다(Lincoln).

⭕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각 지체'는 교회의 다양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절은 '각 지체'가 몸 전체를 위해서 자신만이 갖고있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스스로'는 비록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성장의 근원이 된다 할지라도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교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필요로 함을 말한다(Lincoln).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잘 연합함으로 몸은 성장할 수 있다(Wood). 한편 각 지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비밀의 열쇠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고후 5:14) 사랑은 교회성장의 척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다(Bruce).

성 경: [엡4:17]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 '허망'의 헬라어 '마타이오테티'(*)는 신약성경에서 때때로 우상 숭배와 관련된 단어로 사용된다(Bruce).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책임한 처신에 이르게 하는 '쓸모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롬 1:21; 벧전 1:18, Wood). 바울은 이제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의 삶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망을 기울여 무익하고 공허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말 것을 권면한다.

성 경: [엡4:18]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 '총명'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노이아'(*)는 70인역에서 '사랑을 인식할 수 있는 중심부'를 의미하는 '카르디아스'(*, '마음')와 서로 혼용된다(창 8:21;27:41; 출 28:3). 본절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 저희 가운데 있는...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하나님의 생명'은 모든 생명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근원이다(Bruce, Lincoln). '하나님의 생명에서의 떠남'은 곧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는 것으로 '죽은'(2:1, 5), '하나님이 없는'(2:12)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 무지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이안'(*)은 선천적인 죄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Lenski).

⭕ 마음이 굳어짐 - '굳어짐'의 헬라어 '포로신'(*)은 돌같이 딱딱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마음이 굳어짐'이란 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양심(良心)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완고해지는 것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골 1:21, Lincoln).

성 경: [엡4:19]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 '감각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펠게코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한 '마음이 굳어짐'과 연관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이란 의미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함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러한 이방인의 삶을 다음 세가지로 나타낸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어떠한 것에도 제한받지 않으며 수치나 두려움을 모르고 육욕(肉慾)에만 얽매이는 행동을 말한다(고후 12:21; 갈 5:19). 한편 롬 1:24-32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내버려 두셨다고 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이방인 스스로가자신을 '방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방인의 도덕적 책임성을 강조한 것이다(Lincoln).

⭕ 모든 더러운 것 - '더러운 것'의 헬라어 '아카다르시아스'(*)는 기본적으로 성적 부도덕을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모든'이란 말로 수식되어 '모든부도덕'을 의미한다.

⭕ 욕심 -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벗어나 만족을 모르는 삶을 가리키는 것으로, '탐욕'이나(5:3, 5) '우상 숭배'(5:5; 골 3:5)와 연관된다.

성 경: [엡4:20]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서 언급한 이방인의 생활과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대조하여 보여준다.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 '너희'는 앞절의 '감각없는 자'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그리스도인, 특히 에베소 교인을 지칭한다. 한편 '배우지'의 헬라어 '에마데테'(*)는 단순한 학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나 제자가 되어 철저한 훈련으로 배우는 것을 말한다(Wood). 본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운다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는 것을 지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Lincoln).

성 경: [엡4:21]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에서 '예수'(구원자)라는 칭호로 바꾸고 있다. 이 칭호는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원자임을 보여준 역사적 사실을 암시한다(Bruce, Wood).

⭕ 너희가 과연...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 '진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게'(*)는 확실한 가정을 의미하는 것으로(3:2) 에베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가르침을 받았음을 바울이 전제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 경: [엡4:22]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너희는...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옛 사람'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다(Calvin). 또한 '옛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의 행실, 성격, 태도를 총칭하는 말로서 옛생활을 되풀이하려는 육적인 본성을 시사한다(Moffatt, Bruce). 그리고 이것은 악이나 그 세력의 지배 하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한편 '벗어 버리고'는 24절의 '입으라'와 대조적 개념으로 죄로 물든 옛 생활방식에서 떠나는 것을 시사한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이미 침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본절의 이 금지 명령은 침례를 반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옛 사람을 포기하는 생활을 지속하라는 권면이다(Lincoln).

⭕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은 현재 시상(時相)으로 점점 더 악화되어가는 부패의 과정을 의미한다(Wood). 이 '썩어져 가는 구습'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이방인 생활을 가리킨다(2:3). 이것은 과거의 이방인 생활 방식을 포기하는 '그리스도를 닮는 삶'과 대조된다. 이방인의 옛 생활 방식은 '유혹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유혹'의 헬라어 '아파테스'(*)는 진리의 말씀인 복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마 13:22; 막 4:19; 히 3:13) 거짓 교사의 교리를 나타낸다(골 2:18). 바울은 이렇듯 복음과 반대되는 허망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영위할때 그 결과는 죽음이기에(2:1, 5; 벧후 1:4) 에베소 교인들에게 벗어버리라고 권면한다.

성 경: [엡4:23]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개역성경에는 '투 노오스 휘몬'(*, '너희 마음의')이 생략되어 있다.

⭕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 '심령'의 헬라어 '프뉴마티'(*)에 대해서 혹자는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nilka, Houlden, Schlier). 그래서 본절을 '성령에 의해서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하라'로 해석한다(Houlden).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마음의'라는 속격에 의해서 수식당하는 것은 개연성(蓋然性)이 없다(Mitton). 따라서 본절의 '심령'은 인간의 영과 마음을 가리킨다(Lincoln). 따라서 본문은 '너희 마음의 영을 새롭게'라는 의미이다. 한편 '새롭게 되어'의 헬라어 '아나네우스다이'(*)는 현재 부정사 수동태로, 성령에 의해서(고후4:16; 딛 3:5, Wood) 날마다 계속적으로 새로와져야 함을 시사한다.

성 경: [엡4:24]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

⭕ 하나님을 따라...지으심을 받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카타 데온 크티스덴타'(*)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과 같이창조된'이란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골 3:10, Bruce,Lincoln). 하나님은 죄로 잃어버렸던 그의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현시켰고 그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심으로(Bruce, Wood)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셨다(Lincoln).

⭕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디카이오쉬네 카이 호시오테티 테스 알레데이아스'(*)는 문자적으로 '진리로부터 나온 의와 거룩함 안에서'를 의미한다.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함을 받는 새사람의 윤리적 덕목이며 자질(資質)이다(Lincoln). '의'는 모든 생활 가운데 올바르고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거룩함'은 세상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속한 삶으로 악에 물들지 않는 성결한 삶을 의미한다. 이런 두 가지 덕목은 '진리'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진리'는 복음과 사도적 전승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실재다(21절;1:13).

⭕ 새 사람을 입으라 - 본절은 22절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와 대조된다. '새 사람'은 문자적으로 '갓 만들어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2:15)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재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창조된 자에 합당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성 경: [엡4:25]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접속사는 '디오'(*)로 '옛 사람을 벗어버림으로써 새 사람을 입었은즉'(Robertson)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접속사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원리적인 교훈과 실천적인 교훈을 연관시키고 있다(Wood).

⭕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옛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거짓'이다(골 3:9). '거짓'은 모든 종류의 부정과 속임수 혹은 궤계를 가리킨다. 반면에 '새 사람'의 특징은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 8:16(LXX)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인은 상호간의 친교 가운데 솔직해야 함을 시사한다(Bruce).

⭕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로서(4:15, 16;5:30; 롬 12:4, 5; 고전 12:12-15)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서로 진실함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진실을 통한 상호간의 신뢰감 대신에 거짓으로 인해 생겨난 불신은 유기체를 분열시키고 파괴시키기 때문이다(Lincoln).

성 경: [엡4:26]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는 시 4:4(LXX)의 인용으로 역설적 명령이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분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나 27절에 사단에게 빠지지 말라는 명령과 31절에 모든 분에 대한 금지 명령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권면(마 5:22; 갈5:20; 골 3:8; 딤전 2:8; 딛 1:7; 약 1:19, 20)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의분'(義憤)을 내신 적이 있었다(막 3:5; 요 2:1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을 금지시킨 이유는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가지도록'은 '분'을 처리하기 위한 시간 제한이다. 즉 시간 제한을 통해 한밤중까지 분을 품지 않도록 함으로 죄에 빠지는 잘못을 막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Bruce, Lincoln).

성 경: [엡4:27]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된 금지 명령의 동기이다. 분노를 마음에 오래 품음으로 탐닉(眈溺)하게 되면 사단에게 자유롭게 영을 유린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분을 품는 행위를 멈추든지 아니면 분을 마음에 오래 간직하는 습관을 갖지 말라고 권면한다(Robertson).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분노로 가득 채워지기 전에 반드시 적당한 때에 풀어야만 한다(Calvin).

성 경: [엡4:28]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 이것은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한 언급이다(출 20:15; 신 5:19).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다(막 10:19; 롬 13:9). 여기서 '도적질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클레프톤'(*)은 직업적인 '도적'(*, 호 클레프테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착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의 판단으로 정죄할 수 없는 사소한 도적질까지 포함한다(Calvin).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한다(Wood).

⭕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바울은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권면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을 통해 빈궁한 타인을 도우라고 권면한다. 본절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인(눅 6:29-36; 고후 8:1-15;9:6-12) 기독교적 노동 윤리를 나타낸다. 그 노동의 목적은부의 축적이 아니라 궁핍한 이웃을 돕는 선한 일에 있다(갈 6:1).

성 경: [엡4:29]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본절은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 '더러운 말'은 문자적으로 '부패한' 혹은 '썩은'이란 의미로 단순히 좋지 않은 언어가 아니라 악의 있는 험담과 중상 모략을 나타낸다. 이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 분쟁을 일으킨다.

⭕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하라 - '선한 말'은 도덕적으로 건실하고 옳은 말로서 말을 잘 선별하여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런 선한 말을 하는 목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 상호 간에 덕(德)을 세우며(Bruce) 일상적으로 대화하는 언어 생활에서 타인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함이다.

성 경: [엡4:30]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개역성경에는 '카이'(*, '그리고')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더러운 말을 통해서 성령이 근심하게 됨을 암시한다(Wood).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본절은 사 63:10의 사상을 반영한다. 부주의하고 옳지 못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한다(고전 3:16; 살전 5:19).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인격적인 안내자이며 지도자이시기 때문에(롬 8:26; 갈 5:17)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을 더럽히면 그를 근심케 만드는 것이 된다(Calvin).

⭕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인치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나타내는 보증의 표이다(1:13, 14). 한편 '구속의 날'은 본서에서만 나타나는 표현으로 구원과 심판의 완성을 동반하는 '주의 날'(고전 1:8; 살전 5:2; 살후 2:2) 혹은 '그리스도의 날'(빌 1:6, 10;2:16)을 가리킨다. 성령은 성도의 일시적인 범죄로 떠나버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하시는 날, 약속하신 기업을 주시는 날까지 성도의 확실한 보증이 되신다(요 14:16; 요일 3:2, 3). 그러나 이 보증은 단지 미래에서만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 구속 곧 죄사함의 확신을 경험하며(1:7) 미래의 구속의 날에 몸전체의 구속을 경험하게 된다(롬 8:23).

성 경: [엡4:31]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 너희는...버리고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버려야 할 악에 대해서 열거한다. '버리다'의 헬라어 '아르데토'(*)는 문자적으로 '깨끗이 쓸어버리다', '제거되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로 더 이상 모든 악독과 관계를 갖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Wood).

⭕ 악독 - 이것은 과거에 당한 손해나 모욕에 대한 원한을 버리지 않고 마음 속에 품어 두어서 이웃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마음 상태이다(행 8:23; 롬 3:14; 히 12:15; 약3:14).

⭕ 노함과 분냄 - 이 두 가지는 대개 동의어로 사용되나 엄밀히 구별하면, '노함'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로서 급격한 감정 폭발이며(고후 12:20; 갈 5:20), '분냄'은 통렬하고 악독한 적의가 마음에 자리잡아서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딤전 2:8; 약 1:19, 20).

⭕ 떠드는 것 - 이것은 신약에서 본절에서만 악한 덕목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 훼방하는 것 - 이것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적인 인사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막 7:22; 골 3:8; 딤전 6:4; 딤후 3:2).

성 경: [엡4:32]

주제1: [성도의 연합과 새로운 삶]

주제2: [새로운 생활의 법칙]

바울은 앞절에서 금지 명령을 한 반면 본절에서는 행해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 '인자'는 본서에서 하나님의 속성으로 나타난다(2:7). 이것은 타인의 필요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다(고후 6:6; 갈 5:22; 골3:12). 또한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비', '인자'와 함께 신약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타인의 필요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서로'에게 표현해야 하는 덕목이다.

⭕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 '...과 같이'에 해당하는 원어 '카도스 카이'(*)는 '일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하신 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기준과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Lincoln).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구원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위인 원형(原型)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타인에 대해 용서해야 하며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용서 자세는 반드시 사랑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Wood). 한편 '하라'의 헬라어 '기네스데'(*)는 실제로 '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를 본받아 그렇게 되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예수를 본받아 그렇게 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서로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 가운데서 반드시 드러나야 할 행위이다.

성 경: [엡5:1]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그러므로 - 혹자는 '그러므로'가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4:1,17;5:15, Lenski). 그러나 '그러므로'는 앞서 언급한 내용(4:25-32)의 결론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Bruce, Wood, Lincoln, Hendriksen). 왜냐하면 문맥상 1, 2절은 앞의 내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되고 -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근거가 된다(Meyer, Mitt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자녀이기 때문에(1:5)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마5:44-48; 벧전 2:21).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 경: [엡5:2]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닮아야하는 성품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할 사랑의 모범은 그리스도 자신이다(Wood). 바울은 '같이'의 헬라어 '카도스'(*)를 사용하여 모방의 기준을 나타내고 있다(4:32). '카도스'는 그리스도인이 닮아 지녀야 할 사랑이 개인의 주관적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객관적 기준인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안에서 현시된 것이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경험한 사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적인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를 위하여'의 헬라어 '휘페르 헤몬'(*)에서 '휘페르'는 무엇을 대리하여 행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희생이 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Wood).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고 있다(LXX, 시 39:7; 히 10:5). '제물과 생축'에 대해서 혹자는 '제물'이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행하신 순종을 가리키며, '생축'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그러나 '제물과 생축'은 이사일의(二詞一意)로 모든 종류의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Lincoln). 한편 '향기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는 70인역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 많이 나타나며(창 8:21; 출29:18, 25, 41; 레 1:9, 13, 17) 신약성경 빌 4:18에서도 나타난다(Robertson,Bruce).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며 화해의 한 방편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시사한다(Wood).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 경: [엡5:3]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음행과...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생활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권면한다.

⭕ 음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네이아'(*)는 합법적인 결혼 생활 이외에 빚어지는 모든 성적 부도덕을 지칭한다(마 5:32; 고전 5:1).

⭕ 더러운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다르시아'(*)는 세속적인 존재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윤리적, 종교적으로 추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 탐욕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오넥시아'(*)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악들은 생각지도 말고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권면한다.

성 경: [엡5:4]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누추함과...마땅치 아니하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대해서 권면한다. 여기에 사용된 세 가지 악은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 누추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크로테스'(*)는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말'과 같은 의미이다(골 3:8).

⭕ 어리석은 말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모롤로기아'(*)는 죄악의 성향(性向)을 지닌 좋지 못한 말로서 바보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리들을 가리킨다.

⭕ 희롱의 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트라펠리아'(*)는 본래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좋은 의미였으나 본절에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크게 위배되기 때문이다(Calvin).

⭕ 감사하는 말을 하라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최선의 태도는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훈계하고 있다(Foulkes).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는 '유'(*, '좋은')와 '카리스'(*, 은혜)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혹자는 '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하나(Calvin) 이런 경우로 사용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Mitton). 오히려 '유카리스티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말이 항상 흘러넘쳐야 한다(18절;골 2:7;3:15).

성 경: [엡5:5]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이스테 기노스콘테스'(*)는 현재 명령법 또는 현재 직설법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전자의 경우로 보면 '이것에 대해 확신하라'(Be verysure of this, NEB, RSV)로 해석되며 후자의 경우로 보면 '너희가 이것을 안다'(thisyou know, KJV, NIV, Foulkes, Bruce)로 해석된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Hendriksen).

⭕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본절에서 열거된 죄악의 범주들, 곧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본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탐욕을 우상 숭배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골 3:5). 우상 숭배자는 절제할수 없는 탐욕으로 인하여 자신을 우상화하여 앞서 언급한 죄악을 범하는 자이다. 결국 이러한 자들은 어느 누구라도 다가올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수 없다(Wood).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헬라어는 '엔 테 바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이 데우'(*)로서 '크리스투'(*, '그리스도의')와 '데우'(*, '하나님')가 하나의 관사인 '투'(*)에 의해 수식된다. 이것은 '크리스투'의 나라와 '데우'의 나라가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Caird, Gnilka).

성 경: [엡5:6]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의 '누구든지'에 대해 혹자는 영지주의자라고 주장한다(Foulkes, Barth, Mitton, Abbott).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대상은 일반적인 거짓 교사들이다(Wood, Lincoln). 왜냐하면 바울이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허망한 생각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가르침을 받은 진리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헛된 말을 경계함으로 죄악에 빠져 타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Hendriksen).

⭕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이를 인하여'는 속이고자 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기보다 앞절들에서 언급한 죄악을 시사한다고 본다(3-5절, Wood). 한편 '임하나니'의 헬라어 '에르케타이'(*)는 현재 시상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불순종의 아들들에게(2:2) 하나님의 진노가 현재와 미래에 임함을 시사한다(Abbott, Barth, Lincoln, Foulkes, Wood). 즉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된다.

성 경: [엡5:7]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 본절은 3절에서부터 시작된 훈계를 결과적으로 마무리해 주고 있다(Wood, Lincoln).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추악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하여 행동해서는 안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Blaikie).

성 경: [엡5:8]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고 있다(2:1-3). 그들은 과거에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불신앙 상태에 있었으며 공중 권세 잡은자의 추종자였다(2:1, 2). 그러나 이제는 챰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9)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져냄을 받았으며 빛의 자녀가 되었다(골1:12, 13). 그러기에 에베소 교인들은 이제 '세상의 빛'(마 5:14)으로서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 가운데 드러내야만 한다(Hendriksen). 바울은 과거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의 생활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함으로 그들이 생활이나 행위면에서 불신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Calvin).

성 경: [엡5:9]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빛의 열매는...있느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 열매로 증거되어야 함을 언급한다. 변화된 삶의 열매들은 세 가지이다.

⭕ 착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도쉬네'(*)는 일종의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하고 도덕적인 성품을 의미한다(Wood).

⭕ 의로움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공정(公正)하고 올바른 행위를 의미한다.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4:24) '의로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생활의 열매이다(빌1:11; 히 12:11).

⭕ 진실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이아'(*)는 말과 행위에 있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한다(4:25; 요일 3:18). 이상 세 가지 빛의 열매들은 악의 결과로(4:31) 나타나는 어두움에 반대되는 것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형있게 나타나며 하나님의 참된 자녀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약 2:19).

성 경: [엡5:10]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알아보라는 의미이다(Hendriksen).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로 번역된 헬라어 '도키마존테스'(*)는 금속의 질을 판명할 때 쓰이는 단어로 실험을 통해서 무엇을 '실증하다', '규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일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롬 12:2).

성 경: [엡5:11]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할 뿐만 아니라(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두움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바울의 경고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죄악된 생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참예하지 말라'는 경고에서 그치지 않고 '책망하라'는 강한 경고를 한다. '책망하라'의 헬라어 '엘렝케테'(*)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혹자는 책망의 대상을 사람으로 생각하여 '납득시키다' 또는 '꾸짖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Halter). (2) 혹자는 책망의 대상을 어두움의 죄악으로 생각하여 '드러내어 폭로하다', '고발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Foulkes).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Wood).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속한 자들과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며 자신들을 죄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고전 13:6).

성 경: [엡5:12]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 바울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에 대해 3-5절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며 탐욕이 가득차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 '은밀히 행하는'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가 심히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임을 암시한다.

성 경: [엡5:13]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죄악을 책망하며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드러낼때, 빛의 열매들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을 조명하여 어두움의 행위의 실체를 폭로하게 된다. 즉 빛의 자녀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맺는 열매를 통해서 어두움에 속한 자의 죄악을 드러냄으로 어두움에 속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위의 실체를 보게 하고 빛에 대해 응답하게 한다(Wood, Schlier).

성 경: [엡5:14]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빛의 자녀]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하셨느니라 - 본절은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사 9:2;26:19;51:17;52:1;60:1 등과 연관된다. 이런 인용 구절은 초대 교회의 침례식(洗禮式) 찬송이다(Bruce, Foulkes, Wood, Lincoln). 이 침례식 찬송은 세 가지 비유로 이루어져있다.

⭕ 잠자는 자여 깨어서 - '잠자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즉 어두움에 속한 자를 의미한다(Mitton). 한편 '깨어서'의 헬라어 '에게이레'(*)는 영적 부활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상태를 가리킨다(Lincoln, Wood).

⭕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 '죽은 자들'은 앞서 언급한 '잠자는 자'와, '일어나라'는 '깨어서'와 병행된 것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 '비취시리라'의 헬라어 '에피파우세이'(*)는 천체 즉 해와 달을 떠서 빛을 발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으로(LXX, 욥 25:5)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심을 뜻한다(요 1:9).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을 체험함을 보여준다(사 60:1; 행 12:6-11). 한편 본문은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변화가 인간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시사한다(Hendriksen).

성 경: [엡5:15]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개역성경에는 '블레페테'(*, '살피라')가 생략되어 있다. '블레페테'는 '자세히 주의하여'에 연결되는 말로, 이어지는 권면의 중요성과 긴박성(緊迫性)을 시사한다(Lincoln).

⭕ 그런즉 - 이것은 본절의 권면이 11절까지의 권면과 연관된 새로운 권면임을 나타낸다(Wood, Lincoln).

⭕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 본절의 '어떻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스'(*)의 위치가 사본에 따라 다르다. (1) 어떤 사본에서는 '아크리보스 포스 페리파테이테'(*,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하여')로 되어 있다. (2) 어떤 본문에서는 '포스 아크리보스 페리파테이테'(*,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할지를')로 되어 있다(Textus Receptus). 두 가지 경우 중 전자의 경우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절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깊게 살피라'로 해석된다(Look carefully how you walk, RSV,KJV, NIV, Foulkes, Hendriksen).

⭕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 바울은 앞에서 빛과 어두움을 대조시킨 반면 본절에서는 지혜 있는 자와 지혜 없는 자를 대조시킨다. '지혜 없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포이'(*)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한다(Blaikie). 이것은 성도로서 꼭 알고 행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킨다. 한편 '지혜있는 자'의 삶은 조심스럽게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삶이다(Lincoln).

성 경: [엡5:16]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 세월을 아끼라 - '아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고라조메노이'(*)는 '도로 사다' '속량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율법으로부터의 구속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갈 3:13;4:5). 또한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론'(*)은 '중요한 시기' 또는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로(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그에 따르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권면이다(갈 6:9, 10).

성 경: [엡5:17]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본절은 15절 내용의 반복이다. '어리석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프로네스'(*)는 15절에서 '지혜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소포이'(*)보다 강한표현으로서 지각없이 행동하는 우매함이나 바보스러움을 가리킨다(Wood).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소극적이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며 적극적으로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15절의 '지혜 있는 자'에 대한 정의이다(Calvin). '이해하라'의 헬라어 '쉬니에테'(*)는 '어떤 것에 마음을 기울여 파악한다' 혹은 '노력을 쏟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악한이 세상을 살면서 주의 뜻을 잘 분별하고 주의 뜻대로 삶을 영위하여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시사한다(9, 10절; 롬 12:2).

성 경: [엡5:18]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바울은 본절에서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로 잠 23:29-35을 인용하여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당시 술 취하는 일은 불신자 세계에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초대 교회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딤전 3:3; 딛 1:7;2:3, Wood, Foulkes, Hendriksen). 술 취함은 단순히 그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생활이 무절제하게 되고 방탕하기 쉽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방탕'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티아'(*)는 술 취함의 현상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는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했다(Wood). 이것은 신약성경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 방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눅 15:13).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로서 생활하려면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 곧 어리석음의 일을 금해야 한다.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침례'와는 다르다(1:13;4:30; 요 3:5;14:16; 롬 8:9; 고전 3:16).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침례는 단회적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구원의 때뿐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행 4:8, 31;6:3, 5;9:17;13:9, 52) 그리스도인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행 10:38;11:24; 살전 1:5; 벧전 4:11, Lincoln). 즉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성령께서(롬 8:9; 고전 12:3) 그리스도인을 온전히 지배하며 인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충만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루스데'(*)는 현재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함축한다. (1) '현재 시제'는 성령 충만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채워져야 함을 시사한다(Lincoln). (2)'수동태'는 성령 충만이 인위적(人爲的) 체험이 아니라(갈 3:2, 5) 성령에 의해서 체험됨을 시사한다(Wood). (3) '명령형'은 성령 충만이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Wood).

성 경: [엡5:19]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얻게 된 기쁨을 찬양과 찬미의 열매로 맺었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찬양의 종류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 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살모이스'(*)는 구약성경 시편뿐 아니라 시편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 그 형태를 간직한 일반적인 찬양 노래들을 가리킨다(눅 1:46-55, 68-79;2:29-32;20:42;24:44; 행 1:20;13:33). 찬미 - 이로 번역된 헬라어 '휨노이스'(*)는 신이나 영웅을 찬양할 때부르던 노래를 의미했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당시에 초대 교회 내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doxology)을 가리킨다(막 14:26).

⭕ 신령한 노래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는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성령의 영감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어진 찬송을 가리킨다.

⭕ 서로 화답하며...노래하며 찬송하며 - 바울은 세 개의 분사를 사용해 앞서 언급한 찬양을 '부르는 것'에 대해 묘사한다. 이 세 가지 분사는 서로 중복된 것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찬양함을 시사한다(Hendriksen).

성 경: [엡5:20]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항상'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감사는 모든 생명과 삶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다(Wood, Foulkes).

성 경: [엡5:21]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성령 충만한 자의 삶]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본절이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절이 앞서 언급된 성령충만의 생활에 연결된다고 주장한다(Lenski, Hendriksen). 왜냐하면 '복종하라'의 헬라어 '휘포탓소메노이'(*)가 분사로서 19, 20절에서 언급된 네 개의 분사와 일맥상통하기때문이다. (2) 혹자는 본절이 22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단락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Mitton, RSV, NEB). 왜냐하면 권고의 문맥에서 분사는 독립적인 동사나 명령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본절은 문법적으로는 20절에 연결되어야 하며 내용상으로는 다음 단락에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하다(Wood). '휘포탓소메노이'는 고대 군사 용어로서 본래 '...아래 정렬하라'는 의미이나 본절에서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위치로 인해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따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 한편 상호간의 복종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는 '존경'보다 더 강한 의미로(Barth) '경의'나 '의무감'을 뜻한다(Lincoln). 이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강요나 위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상호 복종해야 한다.

성 경: [엡5:22]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헬라어 본문에는 '복종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나타나지 않으나 앞절의 '복종하라'와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Wood, Foulkes). 본절은 상호 복종하라는 명령중 아내의 의무에 대한 것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나타낸다(고전 11:3;골 3:18; 벧전 3:1). 이 명령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종속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기준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로 제시한다. 이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께 자율적(自律的)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주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권위에 따르며 순종해야 함을 의미한다.

성 경: [엡5:23]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이는 - 이것은 본절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임을 뜻한다(Lincoln).

⭕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다 -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됨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팔레'(*)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2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Lincoln,Wood, Bruce, Foulkes).

⭕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함을 뜻하며 남편이 아내의 보호자임을 나타낸다(Wood, Foulkes, Bruce).

성 경: [엡5:24]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그러나 - 이것은 앞의 내용을 역행하는 접속사가 아니라 앞의 내용을 계속해서 있는 순행 접속사로 사용되었다(Wood).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바울은 앞절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함을 전제로 보호자가 됨을 시사한 후 본절에서 아내의 의무에 대해 강조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복종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골 3:18). 이 복종은 단지 명령에 대한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Hendriksen, 요일 4:19). 한편 '복종할지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탓세타이'(*)는 질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여자의 열등함으로 인한 종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질서에 대한 순응(順應)임을 시사한다(고전 11:3-12; 딤전 2:11-13).

성 경: [엡5:25]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사랑'이다.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파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킨다(Foulkes). 또한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무조건적이며 자기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성 경: [엡5:26]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 예증으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술한다(Wood, Foulkes).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목적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거룩하게 하시고'의 헬라어 '하기아세'(*)는 '분리시킨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을 뜻한다(벧전 2:9).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깨끗하게 함'으로 가능해진다. '깨끗하게 하사'의 헬라어 '카다리사스'(*)는 부정 과거로서 문자적으로는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계속적 경험보다는 단회적 경험을 나타낸다(Foulkes). 논리적으로 볼 때 '거룩하게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함'이 우선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깨끗하게 함'과 '거룩하게 함'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Wood, Foulkes, Robinson). 또한 '하기아세'와 '카다리사스'는 모두가 부정과거로서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임을 시사한다(고전 1:2; 딤후 2:21). 한편 '카다리사스'와 '하기아세'의 과정을 이루기 위한 매개체(媒介體)는 '물로 씻음'과 '말씀'이다. 첫째로 '물로 씻음'은 물침례를 시사한다(히 10:22, Wood, Foulkes, Lincoln). 둘째로'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티'(*)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레마티'가 '물로 씻음'과 연관되어서 침례의식 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앙 고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Wood, Westcott, Mitton). (2) 혹자는 '레마티'가 '깨끗하게 하사'와 연결되어서 '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요 15:3;17:17,Lincoln, Foulkes).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성 경: [엡5:27]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세우다'의 헬라어 '파리스테세'(*)는 신약성경에서 신부를 신랑 앞에 내세우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고후 11:2).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이며(1:18)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이다(3:21). 한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때라고 주장한다(Meyer, Hendriksen,Bruce, Barth, Wood). (2) 혹자는 31절에서 현재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Schlier).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

⭕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것이다(1:4).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노력이나 공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서 성취되어진다(23절, Wood, Foulkes).

성 경: [엡5:28]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 바울은 예증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되돌아와 본주제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분명히 밝히고 있다(Wood). '이와 같이...할지니'의 헬라어 '후토스 오페일루신'(*)은 25절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즉 남편은 자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Lincoln, Foulkes).

⭕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본절은 창 2:24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Bruce, Lincoln). 남편과 아내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성 경: [엡5:29]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 바울은 본절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비교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Calvin). 여기서'양육하여 보호하기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크트레페이 카이 달페이'(*)는 문자적으로 '성숙하기까지 따뜻하게 감싼다'라는 의미로서(Wood)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며 보호하며 돌보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모습으로서 남편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여 성숙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처럼 깊은 영적 차원으로의 성숙을 요구하신다(고전 6:15-17).

성 경: [엡5:30]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모임인 교회를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몸인 아내를 잘 인도하여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4:11, 12, 25).

성 경: [엡5:31]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이러므로 - 이것은 인용구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창 2:24에 있는 인용구 그 자체이다.

⭕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본절은 구약성경 창 2:24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결혼의 신비를 나타낸다(Foulkes). '합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콜레데세타이'(*)는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붙게 될 것이다'를 의미한다(Wood, Bruce).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룬다(고전 6:17).

성 경: [엡5:32]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이 비밀'은 앞절에서 인용한 창 2:24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Bruce),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가리킨다. '비밀'(*, 뮈스테리온)은 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괄(包括)한다(1:9;3:3,4, 9;6:19). 비록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언급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며 놀라운 것임을 시사한다(Bruce, Wood).

성 경: [엡5:33]

주제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생활]

주제2: [남편과 아내의 도리]

⭕ 그러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렌'(*)은 반의 접속사이나 본절에서는 '이제' 혹은 '여하튼'이란 의미로 이제까지 논해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서술하고자 함을 나타낸다(Lincoln, Bruce, Calvin).

⭕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결론적인 권면은 '사랑'과 '경외'이다. 여기서 '경외하라'는 말의 헬라어 '포베타이'(*)는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21절)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의무를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22절).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 대해 경외함으로 복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게 사랑을 베풀어야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숙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25-29절).

성 경: [엡6:1]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자녀의 도리]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 '주 안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주께 순종하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함을 시사한다. 본절에서의 부모는 이교도 부모가(Mitton)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모를 전제로 한다(Gnilka, Foulkes, Bruce).

⭕ 이것이 옳으니라 -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임을 나타낸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륜(人倫)으로 받아들여지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인 자녀에게 있어서 마땅한 일이다.

성 경: [엡6:2]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자녀의 도리]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본절은 70인역(LXX)의 출 20:12과 신 5: 16에서 언급된 십계명의 제5계명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약속있는 첫계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십계명에서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여섯가지 계명 중에 첫 계명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hilo,Gnilka). (2) 혹자는 랍비 전승에서 가장 어려운 계명을 십계명 중 제5계명으로 생각하고 가장 쉬운 계명을 신 22:7로 간주하는 것에 착안하여 '첫'이 수적인 의미가 아니라 계명 중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hlier, Ernst).(3) 혹자는 십계명 중 제2계명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 아니라 제5계명인 본절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주장한다(Mitton, Meyer, Caird, J.A.Robinson).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십계명 중 제2계명에 나와 있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9, 10)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Lincoln).

성 경: [엡6:3]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자녀의 도리]

⭕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바울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출 20:12; 신 5:16)란 문구를 '땅에서'로 자유롭게 변형시켜 인용하고 있다. 바울은 이런 변형을 통해서 유대인에게만 해당했던 약속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이런 변형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써 땅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시사한다(Mitton, Foulkes, Wood).

성 경: [엡6:4]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자녀의 도리]

⭕ 또 아비들아 - 1, 2절에서는 '부모'라고 기술한 반면 본절에서는 '아버지'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가 가정의 대표이며 자녀 교육의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Wood, Hendriksen, Foulkes).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 본문은 부모가 자녀를 분노케 하는 태도나 말, 행동을 피해야 함을 시사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정도 이상의 엄격한 훈련, 비합리적 요구, 권위의 남용 등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자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하여 자녀의 실제적인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부모는 단순히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으로 책임이 다 끝난것이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교양'은 훈련이나 체벌을 동반한 책망을 의미하며, '훈계'는 말로 하는 교훈이나 교정(矯正)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이런 '교양과 훈계'를 통해 그리스도인다운 행동 양식을 가르쳐서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 경: [엡6:5]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종과 상전의 도리]

⭕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며 - 바울은 본절에서 '육체의 상전'과 '그리스도'를 대비함으로 종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을 섬기도록 권면한다. '두려워하고 떨며'는 늘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며(Scott), '성실한 마음으로'는 두 마음을 품지않고 오직 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Wood). 바울이 이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비록 육체의 상전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는 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복종하듯이 육체의 상전을 섬겨야 한다.

성 경: [엡6:6]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종과 상전의 도리]

⭕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 본절은 골 3:22과 병행된다. 바울은 본절에서 '눈가림만 하여'와 '마음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그리스도의 종'을 서로 대조시키면서 그리스도인 종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권면한다. 종들은 육체의 상전이 볼 때에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루 24시간 그리스도 앞에 사는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듯이 육체의 상전을 전심으로 섬겨야 한다(Mitton).

성 경: [엡6:7]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종과 상전의 도리]

⭕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 종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충성한다든가 혹은 강제로 시킬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신전 의식(神前意識)을 가지고 온전히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Wood, Bruce).

성 경: [엡6:8]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종과 상전의 도리]

⭕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 본절은 종들이 사람에게 하듯 하지않고 주께 하듯 섬겨야 하는 근거이다. '그대로 받을 줄을'의 헬라어 '코미세타이'(*)는 미래 시상으로 사람들이 행한 대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 혹은 심판의 날에 보상받을 것을 시사한다(Wood, Bruce, Lincoln). 한편 바울은 앞절까지 종을 대상으로 권면을 하고 있었으나 본절에서는 '종이나 자유자나' 다 보상의 대상이 됨을 밝히고 있다. '종이나 자유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종과 자유인의 구별이 전혀 없는 초대 교회의 침례 전승을 암시한다(고전 12:13; 갈 3:28; 골 3:11). 비록 현재의 삶에는 종과 자유인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에는 종이나 자유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Lincoln).

성 경: [엡6:9]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종과 상전의 도리]

⭕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하고 공갈을 그치라 - 본절에서 바울은 상전에게도 동일하게 권면한다. '이와 같이 하고'는 종이 행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상전도 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종'과 '상전'이 상호 관계에서 동일한 행위의 기준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전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악용해서 종들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상전들이 종들을 잘 대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 (1)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 이것은 종과 상전이 그리스도인임을 시사한다(Mitton).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회적 신분이 종이든 상전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 (2)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 '외모로 취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소폴렘프시아'(*)는 외적 요인에 기초해서 혹은 면전에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전들은 세상에서 획득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하나님에게도 특별한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바울은 상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전혀 외모로 취하지 않으심을 지적함으로 상전들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않고 경각심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다.

성 경: [엡6:10]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종말로 너희가...강건하여지고 - 본절에서부터 본서를 종결짓는 권면이 시작된다(Mitton, Lincoln). '강건하여지고'의 헬라어 '엔뒤나무스데'(*)는 수동태로서 '강건하여지라'(be empowered, NEB)는 의미이며, 현재로서 '강건하여짐'이 날마다 순간마다 경험되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에게날마다 강건해야 함을 권면하면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 (1) 주 안에서와 -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에 의하여 그 뜻에 순종함으로 강건해질 수 있다(Foulkes).

⭕ (2) 그 힘의 능력으로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고 고양시키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구원하시고(1:19-2:10) 성령을 통해서 강건하게 하신다(3:16).

성 경: [엡6:11]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에베소 교인들이 강건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영적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신갑주'는 싸움에 나아가는 군인이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그 앞에 '하나님의'라는 속격을 사용함으로써 전신갑주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Lincoln). 한편 에베소 교인들의 영적 싸움의 대상은 '마귀의 궤계'이다. '마귀'의 헬라어 '디아볼루'(*)는 단수로서 적대 세력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며(Wood), '궤계'는 4:14에서 '간사한 유혹'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적대 세력은 인간의 배후에서 유혹하여 그리스도인들 개인은 물론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한다(4:27).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적극적으로대적하라고 권면한다. '대적하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나이'(*)는 군사 용어로서 적대자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수많은 유혹과 공격에 대해서 담대히 맞서서 대항해야 한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마귀에 대해 이미 승리를 거두셨으나 아직 궁극적인 승리는 성취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인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적자들과 어려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Lindemann, Mitton, Lincoln).

성 경: [엡6:12]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대적해서 싸워야 하는 적대자들에 대한 정의이다.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 '씨름'으로 번역된 헬라어 '팔레'(*)는 '싸움'이나 '전투'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하는 전투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다. 본절에서 '혈과 육'은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Lincoln, Mitton).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적들은 이런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 악한 영적 세력들이다. 악한 영적 세력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자들에게는 위협이나 해가 될 수 없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계속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Bruce, Lincoln).

⭕ 정사와 권세 -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섬기던 악한 영의 세력을 의미한다(골2:15).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영적 세력들을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완전히 정복하시고 무릎을 꿇게 하셨다(빌 2:10).

⭕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 '세상 주관자들'은 본래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문제를 결정짓는 유성(流星)과 연결된 것으로 이방신이나 로마 황제 혹은 영적 세력에게 적용되기도 하였다(Lincoln, Kent, Bruce). 이런 '세상 주관자들'의 특징은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악이 지배하던 삶을 가리키며(2:2;5:8, 11) 현세대나 이 세상을 가리키기도 한다(골 1:13).

⭕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 '악의 영들'은 '악한 영들'이라는 의미이다. '하늘에 있는'은 불순종의 아들들을 지배하는 영이 거하는 '공중'과 같은 의미로(2:2) '악한 영들'이 초자연적 영역의 존재들임을 시사한다(Mitton).

성 경: [엡6:13]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 본절은 11절의 반복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전투가 단순히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늘의 영적 존재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함을 시사한다.

⭕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본절은 '히나'(*, '...하기 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는 목적을 나타낸다. '악한 날'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1) 혹자는 특별한 위기나 시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Abbott, Percy, Mitton). (2)혹자는 세상의 종말에 있을 환난의 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Houlden,Schlier, Caird). (3) 혹자는 현재 전체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Lindemann). 이 세가지 견해 중 두번째와 세번째 견해가 타당하다(Lincoln, Kent).'악한 날'은 역사상의 어떤 특정한 핍박이나 환난의 날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즉 종말의 날에 마귀의 궤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을 가리킨다. 한편 '행한'에 해당하는 '카테르가사메노이'(*)는 '행하다'와 '압도하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혹자는 후자의 의미를 선택하여 '행한 후에'를 '싸움에서 이긴 후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Meyer, Schlier, Mitton).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 '카테르가사메노이'는모두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Lincoln, Kent). 따라서 '모든 일을 행한 후에'는 '영적 투쟁을 위한 모든 준비를 행한 후' 곧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후'라는 의미이다.

성 경: [엡6:14]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 '허리띠를 띠고'는 당시의 의복으로 인해 생겨난 은유이다. 당시 의복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었다(Mitton). 그래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옷을 붙들어 매야 했다. 이렇게 의복을 잡아 매는 띠는 '진리'이다. 여기서 '진리'는 복음이라기 보다는 '진실함과 충실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절의 은유가 사 11:5에서는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기술하여 메시야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Foulkes, Mitton, Meyer, Abbott, Bruce).

⭕ 의의 흉배를 붙이고 - '흉배'는 목에서 허벅다리까지 가리는 것으로 가슴과 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은유는 사 59:17에서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 '의'는 그리스도로 인한 칭의(롬 3:21-26)가 아니라 올바르고 선한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한다(Kent, Moule, Bruce).

성 경: [엡6:15]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본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예비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토이마시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1) 혹자는 '헤토이마시아'가 사 52:7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본절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Schlier,Ernst). (2) 혹자는 '헤토이마시아'가 시 8:1-9:14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본절은 악의 세력과의 전투에 대항하기 위하여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Hendriksen, Foulkes, Kent, Abbott, NEB, NIV).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은 마귀의 궤계에 대항하여 올바로 서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안에서 구현된 것으로 수직적, 수평적 화해를 초래하였다. 이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원수 관계에 있던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어 우주적 통일성을 이루었다(1:10;2:14).

성 경: [엡6:16]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방패'의 헬라어 '뒤레온'(*)은 온몸을 가릴 수 있는 긴 방패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와 영적 전투를 함에 있어서 방패는 '믿음'이다. 본절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온전한 신뢰를 의미한다(Foulkes, Bruce, Moule). 한편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은 11절에서 언급된 '마귀의 궤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마귀에 의한 모든 공격 즉 핍박, 의심, 절망등을 의미한다. 믿음은 이런 공격을 저지하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이다(Lincoln).

성 경: [엡6:17]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구원의 투구 - '투구'는 다른 곳에서 '구원의 소망'으로 나타나나(살전 5:8) 본절에서의 '투구'는 이미 실현된 구원을 가리킨다(Bruce, Lincoln, Mitton). 왜냐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구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2: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은 악한 세력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는 전신 갑주 중 하나이다(Foulkes, Lincoln).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전신 갑주 중에서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다(3:5; 딤후 3:16; 히 3:7;9:8;10:15; 벧전 1:11; 벧후 1:21, Mitton, Foulkes, Meyer). 본절의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는 '복음'을 가리킨다(1:13;5:26;6:15;롬 10:18; 벧전 1:25).

성 경: [엡6:18]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 바울은 본절에서 두 가지 분사 즉 '기도하고'와 '깨어'를 통해 권면한다. 이 두 개의 분사는 전신 갑주의 종류는 아니나 14절의 '서서'와 연결된다(Lincoln, Bruce). 먼저, 바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권면한다. '성령 안에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Kent, Foulkes,Bruce). 이러한 기도가 필요한 때에 대해서 바울은 '무시로'라고 기술한다. '무시로'의 헬라어 '엔 판티 카이로'(*)는 문자적으로 '모든 시간에'라는 의미로 항상 기도해야 함을 의미한다(살전 5:17). 다음으로, 바울은 '깨어있기'를 권면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기도하기 위함이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으로(눅 21:36) 그리스도인들은 인내를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한다(롬 12:12; 골 4:2, Bruce, Lincoln).

⭕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도라 불리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기도와 관심사를 확대시킬 것과 그들과의 연합을 통해 열매를 맺도록 권면하고 있다(1:15;3:18, Bruce, Lincoln).

성 경: [엡6:19]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 바울은 본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탁한 바울의 기도 제목은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밀'은 '복음'과 동일하며, 이것은 특별히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와 관련된 것으로 본서에서 '너희의 구원의 복음'(1:13), '평안의 복음'(6:15)으로도 언급된다. 바울은 이러한 싸움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은 사도였다(3:7-9).

성 경: [엡6:20]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성도의 영적 싸움]

⭕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 본절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을 '사신'(使臣)으로 소개하고 있다(고후 5:20).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평화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하나님의 사신이었다(3:7, 8; 행 28:20;딤후 1:16;4:17).

⭕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바울은 자신이 투옥된 이유가 복음을 당연히 그리고 담대히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밝히고 있다. 여기서 '당연히'는 복음 선포가 바울의 필연적인 의무임을(Kent), '담대히'는 적극적으로 전파하여야 함을 시사한다(Lincoln). 바울은 자신이 로마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방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로마 법정에서 자신의 사명인 복음 전파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된 것을 최대의 관심사로 생각하고 있으며(Bruce) 이 일을 위해 에베소 교인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다(19절).

성 경: [엡6:21]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끝인사]

⭕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두기고를 보낸다. 두기고는 아시아 지방의 대표자로서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으며(행 20:4) 바울에 의해서 에베소와 그레데에 파견되었던 자로서(딤후 4:12; 딛 3:12)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음이 분명하다(Foulkes). 바울은 본절에서 두기고에 대해 에베소 교인들에게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째로, 두기고는 바울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형제였다. 둘째로, 그는 주 안에서 복음과 사역을 잘 감당하며 바울을 도와 주의 일을 하는 진실한 일꾼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소개를 통해서 두기고가 바울 자신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자임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밝히고 있다(Lincoln).

성 경: [엡6:22]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끝인사]

⭕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로 인하여 상당히 어려움과 실의에 빠져 용기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었다(3:13).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를 보내 비록 자신이 감옥에 있을지라도 그 현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의 중심지인 로마에 선포하려는 자신의 계획을(19, 20절; 행28:17-31) 알림으로써 에베소 교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고 있다.

성 경: [엡6:23]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끝인사]

⭕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 일반적으로 바울의 축복 기도는 은혜와 평안이지만, 본서에 나타난 축복 기도는 은혜(24절)와 평안은 물론 믿음과 사랑이 부가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는 본서의 앞 부분에서 이미 바울이 언급한 것이다(1:15;3:17) .평안은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사랑을 통해서 실현되며(4:2,3) 사랑은 살아 있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1:15; 4:5).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평안이 믿음과 사랑을 포함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본절에서 평안 외에 믿음과 사랑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본서의 앞 부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Kent). 이러한 화해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공통된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성 경: [엡6:24]

주제1: [성도의 영적 전투]

주제2: [끝인사]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 '변함없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프다르시아'(*)는 문자적으로 '불멸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썩지 아니할'이란 의미로 나타난다(벧전 3:4). 이 '아프다르시아'가 본절에서 무엇을 수식하는가에 대해서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한다고 주장한다(Dibelius-Greeven, Martin). (2) 혹자는 '은혜'를 수식한다고 주장한다(Mitton,Gnilka, Lincoln). (3) 혹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를 수식한다고 주장한다(Meyer, Abbott, Robinson, Bruce, Kent).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본절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현재의 삶을 보장받으며 영생을 누릴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