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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야고보서

야고보서주석

성 경: [약1:1]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보 - 이와 같은표현 방식은 다른 서신에서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여러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이다 (롬 1:1; 빌 1:1; 딛 1:1; 벧후 1:1; 유 1:1; 계 1:1). 본절에서 야고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결합하여 하나님과 예수를 동격의 위치에 놓은 것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던 당시의 에비온파(Ebionites)에 대해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종'은 직분보다는 신분을 나타내는 말로서 야고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주께 예속되었음을 강조한다기보다는 그의 신분이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 좇아서 사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 서신의 기록자 '야고보'(*,야코보스)는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행 15:13; 21:18, 본서 서론 '저자론'참조).

⭕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 흩어져 있는 열 두 시파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1) 혹자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팔레스틴 이외의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ayer, Hort, Chaine).(2) 혹자는 스데반의 순고 이후에 흩어진 종말론 구원의 참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중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o, Burdick, Tasker, Martin). 이 두 가지 견해 중후자가 타당하다(본서 서론 '수신자' 참조). 한편 '문안 하노라'의 헬라어 '카이레인'(*)은 '즐거워하다',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시련 가운데 있을지라도 더욱 감사하며 기뻐할 것을 종용한다.

성 경: [약1:2]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내 형제들아 - 야고보는 본서를 2인칭으로 시작함으로써 수신자들로 하여금 친근한 느낌을 갖도륵 한다. '형제들'은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어투로서 본서에서 5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형제'라는 호칭의 헬라어 '아델포이'(*)는 본래유대인들이 같은동족에게 사용하였으나(출 2:11; 신 15:2) 초대 교회에서 교인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Deissmann), 본절에서는 야고보와 수신자 사이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시사한다(2:1,14; 3:1,10,12; 5:12,19).

⭕ 너희가 여러 기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야고보는 신자들이 박해를 파해 흩어진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시험에 대해 권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며(마 6:13) 일단 시험을 맞게 되면 잠시 근심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기쁘게 여겨야 한다(벧전1:6). '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는 외부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내부로부터 오는 사람의 생각 즉 죄의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trial)을 가리킨다(Kuhn). 한편 '만나거든'의 헬라어 '페리페세테' (*)는 문자적으로 '한 가운데 떨어지다'의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사건에 직면한 현실을 나타낸다(눅 10:30). 사람들의 내부로부터 오는 '유혹'은 육체를 파괴하고 죽이려는 것이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은 낙심하지 않고 이겨 내면 자신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롬 5:3-5).

성 경: [약1:3]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을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시험이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시련'의 헬라어 '도키미온'(*)은 결과적인 의미로 '시험하여서 인정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잘 정제된 금과 같은 '믿음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Mayor). 그런데 시련에 대한 야고보의 표현은 바울의 표현과 차이가 있다. 바울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롬 5:4)고 하여 '인내'(*, 휘포모넨)를 원인적인 위치에 둔다. 그러나 야고보는 '인내'가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런 상이한 표현은 강조점의 차이 때문이다. 바울은 시련의 과정을 중요시 한 반면 야고보는 고난 자체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Manton).

성 경: [약1:4]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온진히'에 해당하는 혤라어 '텔레이온'(*)은 '끝'올 의미하는 '텔로스'(*)에서 유래된 말 로서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온전하여 져야 함을 시사한다(마 5:48).

⭕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의 '온전하고'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인내를 갖춤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 Ropes,Manton).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타밈'(*, '흠이 없는')으로 인간 생활이나 재물에 '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창 6:9). 한편 '구비하여'의 헬라어 '홀로클레로이(*)는 '전체'를 의미하는 '홀로스'(*)와 '할당'을 의미하는 '클레로스'(*)의 합성어이다. 이는 신체의 각 부분이 모두 건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행 3:16)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부분에서 갖춰야 할것들을 시사한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이 지상의 생활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성 경: [약1:5]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너희 중에 누구든 지혜가 부족하거든 -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항상 불완전하여 온전한 인내를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나 이성은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쉬우며 환난 가운데서 기뻐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는 시련을 온전히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함을 진술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와 동일한 것이다(왕상 3:9-12;대하 1:7-12). 이런 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이 올 때 이를 적절 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결코 인색하지 않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본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본문에만 나오는 '후히'(*, 하플로스)는 '풍성하게'라는 의미와(RV, KJV,Ropes), '즉 각성'이란 의미를 내포한다(Cal-vin). 또한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너무 빈번히 기도하여 번거롭게 한다고 해도 결코 책망하지 않는 분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기도에 항상 관대하게 응답하심을 뜻한다. 한편 '모든 사람'은 비그리스도인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게 주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

성 경: [약1:6]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 응답받는 기도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믿음'은 '지혜'를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을 확신하고 신뢰하는 것이다(마 21:21;막 11:23). 따라서 성도들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 행위가 있어야 한다(Ropes). 한편 '의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디아크리노메스'(*)는 '디아'(*, '사이에')와 '크리노'(*, '분리시키다')의 합성어로서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서 저울질하는 것을 나타낸다(Calvin). 따라서 이말은 심리적으로 두 마음을 품은 분리된 상태 즉 마음 속에서 의심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행 10:20).

성 경: [약1:7]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 '이런 사람' 은 기도할 때 의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므로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이것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부정성보다는 사람이 기도할 때 자기 판단에 맡겨 버리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에게 의심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의심을 극복하고 이겨낼 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 퀴리우)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때 그 기도를 듣고 계셔서, 의심치 않고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이다.

성 경: [약1:8]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믿음과 지혜에 대한 권면]

⭕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두 마음'(*, 디프쉬코스)은 본서에만 나오는 말이다(4:8). '디프쉬코스'는 신약성경 이전에 전혀 사용된 문헌이 없고 신약성경 이후의 교부시대에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Clement ofRome, Hermas) 아마 야고보가 만들어 낸 단어일 것으로 추측된다(Gibson). 이 말은 '정함이 없는'(*, 아카타스타토스)과 평행을 이루는 말로서 두 가지의 방법이나 생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자들은 마음이 항상 불안정하여 변하기 쉬우므로 하나님을 떠나기 쉬운 자들이다.

성 경: [약1:9]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부의 무상함]

개역성경에는 '데'(*, '그러나')가 생략 되어있다. 이 '데'는 9-11절의 내용이2-5절의 시험과 연결된 것임을 나타낸다(Burdick,Martin). 왜냐하면 12절에서 다시 '시험'에 대해 언급되기 때문이다.

⭕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 '낮은'에 해당하는 '호 타페이노스'(*)가 신분적인 것인지 아니면 물질적 또는 육체적인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으나 70인역에서는 이 단어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가리켰으며(시 72:4;잠 30:14, Robertson) 10절의 '부한 형제'(*, 호 플루시오스) 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호 타페이노스'는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이렇게 비천에 처한 자들이 자랑해야할 것은 '높음'이라 했다.여기서 '높음'이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피조물의 가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승귀를 나타낸다(요15:15; 계 3:21).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비천한 자리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인내함으로 보다 더 영예로운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성 경: [약1:10]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부의 무상함]

⭕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 지니 - '낮은 형제'와 마찬가지로 부자들도 취해야 할 마음이 있다.그것은 자신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뽐내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한 자'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자신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ibelius, Blackman). 그 이유는 본문상 9절에는 '형제'라는 말이 있지만 본절에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형제'를 생략한 것은 9절에서 사용한 것이므로 본절에서는 반복을 피하여 생략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Burdick, Martin). 따라서 본문의 '부한 자'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물질적으로 부요하거나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Marton, Adamson, Cantinat, Mayor, Ro-pes, Mussner). 일반적으로 부자인 형제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영적인 교만함까지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부한 형제들은 지상에서 소유한 부가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일시적인 것임을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빌 2:8) 낮은 자와 동일시하며 부를 자랑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한다(Moo, Tasker).

⭕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본절은 부한 형제들이 낮아짐을 자랑해야 할 이유이다. 아무리 부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부요함을 영원히 누리지는 못한다. 마치 꽃이 시드는 것처럼 부(富)뿐만 아니라 생명도 곧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시 102:11; 사 40:6,7; 고전 7:31; 벧전 1:24).

성 경: [약1:11]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부의 무상함]

⭕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 야고보는 사 40:7을 인용하여 부한 자의 부를 덧없는 풀의 꽃에 비유하여 부한 형제들이 낮아져야 함을 권면한다. '해가 돋고 뜨거은 바람이 불어'는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뜨거운 바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소니'(*) 란 말은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 오는 '시로코' 라는 뜨거운 남동풍으로이 바람이 불어 오면 곧장 채소 따위의 식물이 말라죽곤 하였다(욥 1:19;눅 12:55).이처럼 부자의 입는 옷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오는 안락은 쉽게 시들어 버린다. 그러기에 부한자는 일시적인 부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낮아져야 한다.

⭕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 '쇠잔하다'의 헬라어 '마란데세타이'(*)는 '불을 끄다'라는 의미를 지닌 '마라이노'(*)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지상에서의 부와 영화가 영원하지 않으며 사라지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Ropes)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종말의 때에 부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 있던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행한 일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역시 그것들과 함께 사라질 것을 시사한다(Martin). 따라서 본문을 해석할때 '부와 함께'를 포함하여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Erasmus, Calvin).

성 경: [약1:12]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시험'에 해당하는 혤라어 '페이라스몬(*)은 2절에서 사용된 '페이라스모이스'(*,'시험')와 동일한 것으로 믿음의 연단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은본절이 2-11절과 연결된 것이며 13절 이하의 '시험'(temptation)과는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Ropes). 한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유대의 지혜서와 묵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시 1:1;32:1;잠 8:32,34;사56:2)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축복을 말하였다(마 5:3-11).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하였음을 밝혀 주고 있다(Burdick).

⭕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본절은 '호티'(*)로 시작하며 시험을 참는 자에 대한 결과를 설명하는 목적절이다. '인정하심을 받은'의 헬라어 '도키모스'(*)는 3절에서 사용된 것처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 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한다(롬 5: 4). 이것은 시험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 인정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면류관'(*,스테파논)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고전 9:25;딤후 4:8) 시험과 박해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 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Ropes, tasker).

성 경: [약1:13]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사람이 시험을 받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본절의 '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조메노스'(*)는 앞서 언급한 '시험'(2,12절)이 의미하는 '시련'(trial,test) 아니라 '유혹'(temptation)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페이라조메노스'를 '하나님께'(*, 아포 데우, '하나님께로부터')받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매개(媒介)의 성격이 강한 '휘포'(*,'...의하여')를 사용하지 않고 '근원'을 의미하는 '아포'(*,'...로부터')를 사용하여 '페이라조메노스'가 발생하게 되는 진원지가 하나님이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고있다(Robertson). 그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의 기질과 욕심에 미혹되어 발생하는 것으로(14절)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이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하나님은 시험을 창조하시거나 사람을 시험하지 아니하실 뿐더러 아무에게도 시험을받지 아니하신다.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에 해당 하는 헬라어 '아페이라스토스'(*)는 부정 접두어 '아'(*)와 '시험하다'의 '페이라조'(*)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악에서부터 거리가 먼' 상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Hort, Diodorus, Josephus), 유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시사한다(Bu-rdick).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성 경: [약1:14]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본절은 사람이 유혹을 받는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temptation)이 사람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 섭리라고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미혹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메노스'(*)는 원래 사냥이나 고기잡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 '미끼로 고기를 꿰어 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를 의미한다(Mayor).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물고기가 자기앞에 놓인 낚시 바늘에 물려 이리 저리로 이끌려 다니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한편 '욕심'의 헬라어 '에피뒤미아스'(*)는 악한 뜻에 대한 열망이다(롬 7:17-23; 갈 5:16-21; 엡 2:3; 살전 4:5).

성 경: [약1:15]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욕심이 행동으로 유발되지 않은 상태 즉 내적 상태로 머물러 있을때는 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야고보는 인간이 욕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죄가 싹이트고 결국에는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다. '잉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쉴라부사'(*)는 문자적으로 '함께 붙잡다'라는 의미이나 여자의 임신을 말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눅 1:24). 여기서는 죄의 단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욕심' 그 자체가 바로 죄이다. 혹자는 욕심을 자연적이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Mayor). 그러나 인간의 죄란 욕심에게 굴복당하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욕심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Calvin). 욕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유발하고 그 마음의 상태가 습관으로 굳어 져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창 3:19; 롬 5:12). '낳다'에 해당하는 두 단어 '틱테이'(*)와 '아포퀴에이'(*)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을 의미하나 전자는 문학적인 표현이고 후자는 의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Ropes). 또한 정상적으로나 비정상적으로나 출산하는 것 모두를 뜻하나 본문에서는 비정상적인 출산 즉 유산을 나타내는 말이다(Robertson).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영적 사망을 잉태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롬 6:23).

성 경: [약1:16]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 본절은 애정이 깃들어 있는 부드러운 권면이다. '속지 말라'(*,메 플라나스데)는 심각한 말로 권면할 때 사용된 어법으로 (고전 15:33; 갈 6:7; 요일 3:7) '메'는 금지를 암시하는 완곡어법이다(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을 때에 그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착각은 스스로 미혹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성 경: [약1:17]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5절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본절에서도 좋은 은사와 선물들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은사'(*,도시스)와 '선물'(*,도레마)은 동일하게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체론적 변화이다(Moo). '좋은 은사'는 일반 은총이 아닌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내리는 특별 은총을 의미하며(Manton)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영화로운 상태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이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혹에서 범죄치 않도록 도와준다(Burdick). 한편 '빛들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빛의 왕으로 모든 빛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anton, Martin). '빛들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모든 하나님의 선물을 찬양하는 표현이다(Philo). 한편 본절은 특별히 6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야고보가 다른 자료에서 인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나(Mayor, Moo, Dibelius,Davids, Ropes). 본서의 문체나 운율적인 리듬의 형태를 볼 때 야고보의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Lenski, Martin, Mussner, Reicke, Schrage).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야고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된 빛으로 보여지는 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강조한다(Ropes).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변함없이 내리시는 분이다. '변함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랄라게'(*)는 천문학 용어로서 별들이 시차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Manton). 한편 '회전하는 그림자'(*,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달의 그림자 즉 일식, 월식 등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구의 회전으로 인한 태양빛의 변화로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를 가리킨다(Ropes, RSV). 이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은사와 선물은 변함이 없음을 시사한다.

성 경: [약1:18]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시험의 근원]

⭕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마지막 이유이다(Burdick). '한 첫 열매'(*, 아파르켄 티나)는 구약성경에서 수확된 첫 곡물을 하나님께 드리는것을 나타낸다(출 34:22;레 23:10). 모든 곡식의 첫 소산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첫 열매가 된다. 혹자는 야고보가 '우리'를 사용한 것이 보편적인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 하나(Hort), 중생한 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Moo). 왜냐하면 야고보는 비교의 뜻이 담겨있는 '티나'(*)를 사용하여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레데이스'(*)는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선한 의지를 나타내는 말로(엡 1:11;벧전 1:3)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엡 1:4,5).따라서 야고보가 '불레데이스'를 사용한 의도는 택한 자녀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자기 공로나 외부적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anton, Calvin). 한편 '진리의 말씀'이란 진리를 통하여 확증된 복음의 말씀이며(엡 1:13; 골 1:5; 딤후 2:15). '낳다'에 해당하는 '아페퀴에센'(*)은 자연적인 출생의 의미로 '창조하다'를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행 17:28).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라는 말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 즉 첫 열매된 자들이 옛 성품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약1:19]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너희가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스테'(*)는 명령법이라기보다는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obertson). 만약 야고보가 명령법의 의도로 사용했다면 4:4 처럼 '오이다'(*, '알다')의 명령형 '오이다테'(*)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테'는 수신자들이 과거에 알고있는 거듭난 사실에 대한 인정이나 권고 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를 권면한다.

⭕ 듣기는 속히 하고 - 거듭나는 것은 순간적인 현상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히 지속되는 여러 과정을 통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Ropes).

⭕ 말하기는 더디하며 - 이것은 말을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거나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계속하여 말하거나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논쟁에 빠지기 쉽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하기전에 먼저 겸손히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Burdick, Tasker).

⭕ 성내기도 더디 하라 - 본문은 일반적으로 분노, 증오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격분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의(義)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성 경: [약1:20]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에서 행한 권면에 대한 근거임을 나타낸다.

⭕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성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에 위배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위이다(Burdick,Tasker,Moo).

성 경: [약1:21]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 야고보는 본문에서 다시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받기에 합당한 조건을 언급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가 마땅히 해야 할일은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는 것이며,이미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항상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어 버리고'의 '아포데메노이'(*)는 '옷을 벗어 버리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심하게 자신을 살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정욕 등을 내어 버려야 함을 시사한다. 그렇지 않고 부주의할 경우 쉽게 악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파리안'(*)은 본래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때'를 의미하였으나 종종 '몸에 불결하게 생긴 상처' 등을말할 때도 사용되었다. 이것은 모든 도덕적인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Manton, Martin)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뤼파리안'을 떨쳐버려야 함을 권면한다. '넘치는 악'(*,페릿세이안 카키아스)에 '페릿세이안'은 '충분한', '남은 것'을 뜻하는 단어로 흘러 넘치는 것을 가리키며 '카키아스'는 '악한'의 뜻보다는 '위선', '더러운 욕망'을 의미한다(Calvin, Lenski, Lightfoot). 이것은 앞서 언급된 '뤼파리안'과 동의어로 중복된 표현을 통해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도덕적인 악을 버려야 함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Martin).

⭕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 심긴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 본문은 구원의 수단으로 '마음에 심긴 도'를 말한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본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있게 말씀에 응답해야하며 그것을 실제로 행함으로 열매를 맺을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Burdick, Martin).

성 경: [약1:22]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단지 듣기만을 좋아하는 자는 나태한 자이며 자신 속이는 자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본절에서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한다. '행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에타이'(*)는 '아사'(*, '행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윤리적 측면의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포이에타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생활로써 증거하는 자를 의미한다(롬 2:13,Calvin, Adamson).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도를 듣는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말씀을 들은 자는 그것을 행하여야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다(마7:21).

성 경: [약1:23]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 야고보는 본절에서 도를 듣고 행치 않는 자를 거울을 보는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노운티'(*)는 경솔하게 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서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나타낸다(Burd-ick, Martin). 당시의 거울은 유리가 아닌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나 희미한 모습으로 비춰질 뿐 확신이 없음을 나타낸다(Ad-amson). 이는 단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열심히 주의하여 말씀을 들었다 할지라도 행하지 않으면 희미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음을 시사한다(Mayor).

성 경: [약1:24]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제 자신을 보고 가서...곧 잊어버리거니와 - 본절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것이 마치 회미한 거울을 주의 깊게 살펴서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였지만 거울을 떠나면 자신의 모양을 곧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행함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이론적인 지식으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수 없다. 말씀은 오직 듣고 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 야고보는 '보고'(*, 카타노에센), '가서'(*, 아펠렐뤼덴), '잊어버리거니와'(*, 에펠라데토)의 단순 과거형을 사용하여서 진리의 말씀을 희미하게 듣고 나서 실행치 않는 자가 곧 말씀을 잊어 버리고 다시 죄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

성 경: [약1:25]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있는 자 - 본절은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자에 대한 설명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야고보와 수신자가 유대지향적인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Burdick), 구약 시대의 율법과 대조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진리의 복음'을 의미한다(렘 31:33, Moo,Tasker). 구약 시대의 율법이 사람을 얽매이게 하는 강제적인 것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율법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유로운 것이다(요 8:32; 고후 3:16). 이것은 제도를 통하여 법적 구속력을 지닌 모세의 율법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확실하게 드러난 실체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율법의 특징은 첫째로 택하신 자들을 진리와 자유로 인도하는 것에 모순과 결합이 전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 특징은 자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구속력을 지녀서 억지로 지키게 하는 것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Burdick). 한편 '들여다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큅사스'(*)는 몸을 구부려서 보는 것을 나타낸다. 혹자는 이것이 '대충 힐끔 보다'라는 의미라고 주장하나(Hort) 본문에서는 문맥상 '주의깊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Tasker, Burdick, Martin).

⭕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듣고 잊어버리는 자'(*, 아크로아테스 에필레스모네스)는 히브리식 표현으로 글자대로는 '망각을 듣는 자'란 뜻이다. 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알라'(*, '그러나')를 사용하여 '실행하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실행하는자'란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못해도 그 행할것을 위해 심사숙고하는 자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Manton). 한편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는 말을 '율법을 행함으로 인해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해석할 경우 율법을 지키는 그 일로 인하여 만사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실행하는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 행위 자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성 경: [약1:26]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신약성경에서 본문에만 나오는 '경건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레스코스'(*)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다'에 해당하는'드레오마이'(*)에서 유래된 듯하다(Robertson). 이는 예배의 외적인 모습 즉 기도, 구제, 금식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외식적인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암시한다. 이렇게 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이 말에 대해서 자제하지 못할 때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된다. '재갈 먹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칼리나고곤'(*)은 '재갈'을 의미하는 '칼리노스'(*)와 '이끌다'의뜻인 '아고'(*)의 합성어이다. 이는 재갈 먹이지 않는 말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Lenski) 남을 비방하거나 악담하는 것을 제어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혀를 절제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확신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이렇게 말과 행위가 틀린 경건은 위선자들에게서 오는 헛된 것이다(마 6:2,16).

성 경: [약1:27]

주제1: [시험과 참된 믿음에 대한 교훈]

주제2: [말씀을 실천하라]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이것이니라 - 본절은 경건의 정의라고는 할수 없지만 경건한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경건한 삶은 내적인 모습으로부터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외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헬라어 '파라토 데오'(*)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평가 방법으로 사람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Lightfoot).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 함은 경건의 구체적인 한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라 하겠다. '더러움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미안토스'(*)는 '더럽히다'의 '미아이노'(*)와 부정 접두어 '아'(*)가 합성된 형용사로서 후에 의미가 변천되어 '정결한(*, 카다라)이란 의미로 사용 되었다(Robertson). 이로 보아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이란 표현은 의미상 동의어 중복으로 강조를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고대에는 종교 예식에 있어서 기독교든 이교도든 정결하고 흠 없는 제사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초대 기독교 사회에서 바리새인에 의해 지속되어졌었다(마23:25; 막 7:3, Ropes). 야고보는 본절에서 내적인 경건 생활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경건 생활의 모습에 대해서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 본문에서는 특별히 두 부류의 대상만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류인 나그네나 병든 자, 갇힌 자 등을 제외시키지는 않는다. 이들은 한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는 (마 25:40) 구제 대상들이다(Ropes). 한편 '돌아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케프테스다이'(*)는 문자적으로 '보러 가다', '조사하러 가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단순히 교제를 나누기 위한 돌아봄보다는 극히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돌아보는 것을 시사한다(갈 5:6, Burdick).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 야고보는 '세속'(*, 코스무)이라는 단어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통한 죄악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Le-nski, Burdick). 이는 사도 요한이 잘 쓰는 표현 방법으로(요일 2:16) 이웃 사랑은 물론 자신 스스로가 죄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성화를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건한 자의 삶에 있어서 이웃 사랑과 자기의 거룩한 생활과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성 경: [약2:1]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내 형제들아 - '내 형제들아'의 헬라어 '아델포이 무'(*)는 수신자들에 대한 야고보의 사랑의 감정을 잘 나타내며, 또한 이는 새로운 주제로 전환시킬 때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5절; 1:19; 3:1; 5:7). 이제 야고보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권면한다.

⭕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에케테 텐 피스틴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 테스 독세스'(*)이다. '테스독세스'(영광의 주)와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영광'을 '믿음'과 연결시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있는 믿음'이라고 해석한다(Schlatter, Zahn, Grotius).(2)혹자는 '영광'이 '주'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믿음'으로 해석한다(KJV, RV, Moo, Burchard). (3)혹자는 '영광'을 '사회적 지위'로 해석하여서 본문이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Erasmus, Calvin). (4) 혹자는 '영광의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독세스'를 형용사적으로 보아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해석 한다(Cantinat, Chai-ne, Ropes, Hooker, Luther, Mayor). (5) 혹자는 동격으로 보아 '영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Bengel, Lenski, Tasker, NEB). 이 다섯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테스 독세스'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지니신 '영광'이시다(눅 2:32;요 1:14; 17:5; 히 1:3). 한편 '받았니'의 헬라어 '에케테'(*)는 시상이 현재로서 수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외모로'의 헬라어 '엔 프로소폴렘프시아이스'(*)는 70인역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고경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본래 이것은 '한 사람에게 얼굴을 들다 '라는 의미로서 한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즉 같은 상황에서 서로 차별을 두고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Manton).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며 그 중심을 보신다 (삼상 16:7; 행 10:34; 롬 2:11; 엡 6:9; 골 3:25).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유익을 취하기 위하여 외부적인 조건에 얽매이는 것은 잘못이며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걸맞지 않는다.

성 경: [약2:2]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2-4절까지가 1절의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권면의 논중임을 나타낸다. 본절과 3절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행위에 대한 예이다.

⭕ 만일 너희 회당에...들어올 때에 - '회당'(*, 쉬나고겐)은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일(눅 12:11)이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 (눅4:15,20,28)를 의미한다. 야고보가 본절에서 '쉬나고겐'을 사용한 것은 이 서신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임, 장소를 자연스럽게 '쉬나고겐'이라고 부른 듯하다(Burdick). 한편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오는 사람 중 두 부류의 사람을 예로 들고 있다.

⭕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 - '금가락지를 낀 사람' 본절에서만 등장한다. 이것은 본래 '금손가락의 남자', '금가락지 낀'이라는 의미로 '명예와 존귀를 소유한 사람'을 의미한다(창 41:42). 한편 '아름다운 옷'에 해당하는 '에스데티 람프라'(*) '밝고 찬란한 옷'이란 의미로서 부유한 사람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옷을 가리킨다. 당시 유대 지방에는 자신의 부와 지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반지나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고 과시하는 풍습이 있었다(눅15:22).

⭕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 - '더러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파라'(*)는 '불결한'을 의미 하며 또한 '가난한 사람'(*, 프토코스)은 '구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마 19:21, Mayor). 야고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과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대조시켜서 당시 수신자들이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죄를 지적한다(Hort, Burdick).

성 경: [약2:3]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 '돌아 보아' 헬라어 '에피블렙세테'(*)는 '올려다 보다'라는 뜻의 '에피블레포'(*)에서 유래한 단어로 '좋은 동기를 가지고 쳐다보다'라는 의미이다(눅 9:38, Burdick). 한편 '좋은 자리'는 특별히 마련된 좌석보다는 앉을 자리를 권유하는 의미이다(Adamson). 따라서 본절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들을 존경하여 그 표시로 자리를 정중하게 권유함을 시사한다(Rope-s).

⭕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 먼저와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대하는 태도에 관해 언급된다. '섰든지'의 헬라어 '스테디'(*)는 '배치하다'의 의미를 지닌 '히스테미'(*)의 명령법이다.이것은 아무렇게나 자리를 차지하라는 것으로서 아마 회당의 맨 끝이나 구석진 한 곳을가리키는 말로 볼 수있다. 한편 '네 발등상 아래 앉으라'는 '내 발 아래 앉으라'는 표현이다.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발을 피정복자들의 목 위에 두었는데(눅 20:43) 본문에서는 그러한 의미보다는 발 아래의 마루바닥에 앉으라는 의미로 사람을 차별하는 모욕적인 행위를 암시한다.

성 경: [약2:4]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것이 아니냐 - 야고보는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수신자들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구별 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크리데테'(*)는 수동태로 서로 구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V). 한편 '아니냐'의 헬라어 '우'(*)는 부정 불변화사로 수신자들이 야고보 자신의 지적에 대해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2,3 절에서 야고보가 예를 들어 지적했듯이 수신자들은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한 자들과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자를 차별 대우했다. 이렇게 사람을 구별하여서 판단하는 것은 항상 공정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범죄가 된다.

⭕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느 자 -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지음을 받은 인간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며 상대방을 위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판단이다. 이러한 구별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을 서로 분리시키며 피차 시험에 들게 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요 8:15), 확고한 믿음이 결여된 것임을 시사한다(Ropes).

성 경: [약2:5]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 야고보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앞절까지는 사람 외모로 판단했을때 죄가 되는 것을 언급하였지만 본절에서 11절까지는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아야 될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서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부류였다(마11:5; 고전 1:26-29). 그러나 그들이 돈이 없고 가난해서 사회에서 천대 받는 자들이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는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여기서 미래적인 영적 안목을 가지고 세상에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시각임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하셨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모두 다 믿음이 부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는 '가난한 자'의 헬라어 '투스 프토쿠스' (*)에서 관사 '투스'(*)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한정된 자들임을 나타내고 있다(고전1:26-28). 한편 '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셀렉사토'(*)는 부정 과거 중간태 용법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친히 선택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전 1:27).

⭕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보상으로 인한 약속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혀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부르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마련하셨다. 이러한 것을 믿고 바라는 자는 심령이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된다(마 5:3;눅 6:20,Tasker). 한편 '아니하셨느냐'는 본절 상반 절에서 언급된 '택하사'와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의미이다. 이는 4절에서의 용법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사용한 야고보의 표현 방식이다.

성 경: [약2:6,7]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지를 괄시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택하신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그러한 이들을 무시하는 행위는 가증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외모로 취하여 멸시하였다. 야고보는 수신자들이 존귀하게 대했던 '부유한 자들'의 행위를 세 가지의 수사학적 질문을통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외모로 취해 차별 대우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1)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 당시에 부자인 사두개인들은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악독하게 박해하였다.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민족인 디아스포라를 다스릴 수 있는 상당한 지배권을 부여하고 있었다(Lenski).그래서 사두개인들은 특히 유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다(행 4:1-3; 9:2; 16:19). 그들의 압제는 종교적인 것은 물론 경제적인 이익과 관계된 것들이었다(행 19:23-41). '압제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뒤나스튜우신'(*)은 '카타'(*,'아래로')와 '뒤나스테스'(*, '유력자', '군주')의 합성어로 '권력을 잡은 자들이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고 착취 하였다. (2)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 당시 유대 사회에서 채권자는 채무자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끌고 가지'의 헬라어 '헬쿠신'(*)은 단순하게 '이끌다'(요 6:44;12:32)라는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어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를 나타낸다(행 16:19; 21:30).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3인칭 대명사 '아우토이'(*, '그들')를 사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끌고 가는 자가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3) 저희는 너희에게 대해서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의 헬라어 '토 칼론 오노마 토 에피클레덴 에프 휘마스'(*)에서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에피클레덴 에프 휘마스'는 문자적로 '너희 위에 일컬어진'이란 의미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고전 1:2;딤후 2:19)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 관습으로, 관습에 의하면 어린아이에게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서붙이곤 하였다(창 48:16). 이것은 개개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짐을 나타내었고 그 개개인은 하나님이 택한 자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구별되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게 됨을 시사한다(Tasker, Burdick). 한편 '훼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무신'(*)은 '악을 말하는'의 의미인 '블라스페모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문에서는 '신성 모독' 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Ropes). 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농락하고 압제함으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들이 외모로만 사람을 취하여 부자들을 옹호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범죄에 동조하는 죄악이다.

성 경: [약2:8]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개역성경에는 '멘토이'(*, '참으로')가 생략되어 있다. '멘토이'는 의심스러운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확신을 뜻하는 말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를 수반한다(Ropes).

⭕ 너희가 만일...지키면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텔레이테'(*)는 조건문으로 '너희가 완전하게 지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완전성보다는 지키기를 노력하는 성실성의 관계를 시사한다(Manton).

⭕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 -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행위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그것이 왜 불합리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최고한 법'의 헬라어 '노몬 바실리콘'(*)에서 '바실리콘'은 '왕'을 의미하는 '바실류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실리콘'을 '노모스'에 적용한 것은 로마 시대에 있어 왔던 일반적인 표현 방식으로(4:11,Robertson) 당시에 로마 황제에 의해 제정된 법은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법이었다. 야고보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법은 그 자체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욱 이 하나님의 법은 다른 율법보다 포괄성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주장하는 법이기 때문에 '최고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Mayor,Tasker,Ropes). 그러므로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실천하는 것이다(레 19:18; 마 22:39). 곧 상대방을 외모로 구별하지 않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다.

성 경: [약2:9]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본절은 외모로 사람을 취한자들을 향한 징계를 나타낸다.

⭕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최고의 법과 완전히 대치될 뿐만 아니라 죄를 들어 오게하는 요인이 되어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요일 3: 4).

⭕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 여기서의 '율법'은 성경의 일반적인 법보다는 야고보가 8절에서 언급한 최고의 법을 가리킨다(Burdick). 한편 '정하리라'의 헬라어 '엘렁코메노이(*)는 '증명되다'라는 의미로 범죄를 통하여 '증명됨'을 시사한다.사람을 외모로 취한자는 최고의 법을 어긴 자이며, 율법은 그를 범죄자로 정하여 범죄하였음을 드러낸다.

성 경: [약2:10]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 즉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범죄자가 된다는 사실의 근거임을 시사한다.

⭕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 야고보는 온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한 가지를 제외시키는 것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율법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율법 한 가지만 범한다 할지라도 범죄한 자가 된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사람들이 율법 중 자기의 필요한 부분만을 취하여 지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부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마음을 쓰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율법을 취사 선택하여 지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역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취사 선택의 방법이 아닌 불리한 율법도 동일하게 지켜야 한다. '거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타이세'(*)는 '걸려 넘어지다'의 의미인 '프타이오'(*)에서 파생된 단어로 '처음으로 걸려 넘어지다'를 의미하며(Hort) '범한'의 헬라어 '에노코스'(*)는'지속된'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사람이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처음으로 단 한번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범죄한 것과 동일한 결과가 된다.이는 야고보가 죄의 형벌을 말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모든 율법에 대한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 경: [약2:11]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 본절은 앞절의 원론적인 언급에 대한 예이다. 논문에서 언급된 십계명은 그 순서가 서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본문에서 어느 가정된 상황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지 순서가 뒤바뀐 것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Tasker). 하나님의 율법은 본질적로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그러기에 한 가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 할지라도 다른 율법을 범한다면 그것은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동일하며,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자가 된다. 그러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포괄적인 최고의 법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외모로 보는 한 가지만을어겼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든 율법을 범하는 것과 동일하다(Calvin).

성 경: [약2:12]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 야고보는 본절에서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모든 율법에 차별없이, 간과하지 말고 행하라는 것이다. '자유의 율법'은 앞서 언급한 최고의 율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8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새 계명 즉 복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들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안에서 은혜와 긍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다(마 5:44; 요13:34; 골 3:12; 요일 3:1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 받을 자처럼(고후 5:10) 말을 하고 행해야한다. '...처럼'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는 현재 시상의 동사인 '말하고', '행하는'을 동일하게 수식하고 있다. 현재시상은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가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행위여야 함을 시사한다.또한 본문은 행하는 것뿐 아니라 말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됨을 나타낸다(Manton).

성 경: [약2:13]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판단 금지]

⭕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 본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마 18:23-35).'긍휼'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자비심으로 본절에서는 특별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긍휼을 행하는 자는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며(마 5:7)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게 된다(마 6:2). 그러기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기보다는 멸시하고, 도리어 부유한 자에게 관대한 자는 결코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다.

⭕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표시이다(Johnson).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삶 속에서 나타난 긍휼을 통하여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요일 4:17),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게 된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심판대 앞에서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심판도 그 긍휼을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약2:14]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 '만일 사람이...하고'는 가정법을 수반하는 조건문으로서 가식적인 믿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만약 믿음이 있노라 하고 계속적으로 말만 한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말은 전혀 가치가 없는 거짓이며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있노라 신앙 고백을 하면 서도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서 행함이 전혀 없다면 구원에 있어서 유익된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한편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 오펠로스'(*)는 도덕적으로 비난을 할 때 자주쓰는 수사 의문문이다(Ropes, Robertson). 야고보는 조건문과 비난을 나타내는 수사 의문문을 사용해서 말로만 '믿음'이 있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면서 믿음의본질을 설명한다. 참된 믿음은 거듭남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다.그러기에 거듭났지만 변화되지 않은 믿음은 피상적인 것이며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 뒤 나타이 헤피스티스 소사이 아우톤'(*)이다. 야고보는 부정 불변화사 '메'(*)를 처음에 사용하여서 본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본문은 문자적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해 낼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이나 실제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능히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야고보가 사용한 '행함이 있는믿음'은 바울이 주장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바울 사도는 율법과 복음을 대조시켜서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 반면에 야고보는 '복음' 안에서 '믿음과 행위'를 비교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드러내고 동시에 복음 안에서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Adamson, Ropes).

성 경: [약2:15,16]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한 양식이 없는데 - 야고보는 본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의 예로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를 찾아가서 몸에 쓸 것을 구했을 때 살 것은 주지 않고 말만하는 자를 들고 있다. '형제나 자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자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결속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낸다. 한편 '헐벗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귐노이'(*)는 '벌거벗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초라한', '남루한' 옷을 입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궁핍한 자들이 절망의 상태에 있는 것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Burdick). 또한 '일용할'의 헬라어 '에페메루'(*)는 '하루를 지내기 위한'의 의미로 하루 하루 연명할 양식을 가리킨다(Adamson). 야고보는 본문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옷과 일용할 양식이 없는 자들에게 행함이 없이 믿는 자들이 하는 세 가지의 '위로의 말'을 예로 들어 그러한 말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드러내고 있다.

⭕ 평안히 가라 - 이것의 헬라어 '휘파게테 엔 에이레네'(*)는 히브리어의 '레쿠 레샬롬'(*)에서 유래된 말로서 유대인들이 헤어질 때 사용했던 통례적인 인사법이었다 (삿 18:6; 삼상1:17; 20:42; 삼하 15:9; 막 5:34; 눅 7:50; 8:48). 걱정이 쌓여있는 '헐벗고 일용한 양식이 없는 자'에게 이러한 인사는 무의미한 것이다.

⭕ 더웁게 하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르마이네스데'(*)는 중간태로 '스스로 불을 지펴서 덥게 하라'는 의미이다(눅 22:55; 요 18:18,25). 이는 '옷을 입어라'라는 의미로 앞절에서 언급한 '헐벗은 것'에 대한 반대어이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옷을 따뜻하게 입을 능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본문과 같은 위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 배부르게 하라 - 이것의 헬라어 '코르타제스데'(*)는 본래가축을 방목하여 키울 때 스스로 풀을 찾아 먹는 것을 나타낸다. 혹자는 수동태로 해석하나(Mayor, Adamson) 중간태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빌 4:12, Robertson, Davids, M-artin). 만약 수동태로 본다면 교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을 더웁게 해주고 배부르게 해주라고 권면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아무런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않고 '네가 알아서 스스로 배부르게 하라'라고 위로하는 것은 공허한 것이며 합당치 못한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 불행한 자들의 몸에 쓸것을 채우지 않고 앞서 언급한 세 종류의 공허한 말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차갑게 하는 것이며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다. 충분히 도와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와 주지 않고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하고 떠벌리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요일 3:18).

성 경: [약2:17]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본절도 역시 가정법을 수반하는 조건문의 형식으로 '만약 계속해서 행함이 없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실된 믿음의 열매는 '행함'으로 나타난다. 행함은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행함'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자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드 헤아우텐'(*)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죽은 것 즉 본질적으로 죽은 것을 시사한다(Mayor). 야고보는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요, 헛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죽은 나무와 같이 아무런 힘이나 능력이 없어서 외부적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꽃이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렇듯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 시키지 못한다(Burdick).

성 경: [약2:18]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 헬라어 본문에는 '혹이 가로되' 이하에는 구두점이 없다. 그래서 '혹이 가로되'가 수식하는 말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으나 '나는 행함이 있으니'까지 수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이러한 수식절의 '나'(*, 아고)와 '너'(*, 수)가 반드시 야고보와 다른 반대자를 지칭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어떤 사람'과 또'다른 사람'을 지칭할 따름이다(Ropes, RSV, NIV). 한편 본문은 '너는 믿음이 있느냐? 나는 행함이 있다'라는 의미로 믿음과 행함이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이것은 믿음이 없는 행함이 있을수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Tasker).

⭕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 본문은 반대자의 주장에 대한 야고보의 답변으로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여 설명하는 자에게 그 증거를 나타내 보이라는 호된 질책이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피스틴 수 코리스 톤 에르곤'(*)에서 '... 없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코리스'(*)는 '...로부터 분리된' 번역하는 것이 더 확실하다. 이것은 '행함'과 '믿음'의 분리를 시사한다. 그러나 행함은 믿음으로부터 온 열매이기 때문에 결코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하여나타날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결코 행함이라는 결과가 입증될 수 없다. 단순히 입술로써 고백만 한다고 해서 그 실체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속사람의 마음가짐인 믿음을 통하여 행함의 열매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Hort). 그래서 야고보는 반대자에게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담대하게 선포한다. 이것은 단순히 입술로써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의 실체를 증거하겠다는 것으로서 행함이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믿음의 증거임을 시사한다(Robertson).

성 경: [약2:19]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리라 - 본절에서 야고보는 다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고백하는 자들의 주장에 대해 언급한다. 행함은 없고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는 자들의 고백인 '한 분이신 하나님' 즉 유일신을 믿는 믿음에는 야고보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확실한 교리로서 기본적인 것이다. 또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믿고 따라온 중요한 교리이다(신 6:4,Mussner). 그러나 그 교리 자체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진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들도 그 정도까지는 믿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은 귀신들도 마땅히 아는 바이다(막 1:24). 그러나 귀신들이 하나님께서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지만 그것은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다만 떨게 할 뿐이다. '떠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릿수신'(*)은 '털이 곤두서다','떨다'를 의미하는 '프릿소'(*)에서 유래한 단어로 극도의 공포심 때문에 머리 끝이 곤두서는 것으로 영적인 불안과 공포를 의미한다(Manton).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일신이시다'라는 믿음은 귀신들과 마찬가지로 지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입으로만 시인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구원하는 참된 믿음은 내적으로는 온전한 신앙의 인격체를 만들어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며 외적으로 믿음에 대한 행함을 나타나게 한다.

성 경: [약2:20]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나니 - '허탄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네'(*)는 '공허한', '속이 빈'의 의미로 행함이 없는 자들을 향한 말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 허탄한 사람'은 영적인 진리를 전혀 몰라 행함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한편 '헛것'의 헬라어 '아르게'(*)는 원래 곡식이 전혀 없는 땅이나 노예가 일하지 않아서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Hort, Moo, Mussner). 이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수고하지 않아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한다(14-19절,Burdick).

성 경: [약2:21]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 야고보가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수신인이 유대인임을 시사한다(Burdick).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었고,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다(요 8:53; 행7:2; 롬 4:1). 한편 '드릴 때에'라고 번역된 말은 그 의미가 확실하지 않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실제로는 드리지 않았음에도 헬라어 본문에는 부정 과거인 '아네노카스'(*)가 사용되고 있다.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 의지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즉 사실상 하나님께서 그 뜻하신 바를 실행치 아니하셨을지라도 아브라함은 실제로 아들 이삭을 드렸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부가 의문문의 형태로 사용된 '아니냐'의 헬라어 '우크'(*)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야고보의 표현 방식이다. 한편 '의롭다 하심을 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디카이오데'(*)는 '의로 여기다'라는 의미로 개인의 주관적인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할 만한 선포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의롭다함은 '행함으로' 즉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비로소 선포되었다(창 22:1-14).

성 경: [약2:22]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본절은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논증으로 '믿음'과 '행함'과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네가 보거니와'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증거가 명백할 정도로 충분한 것'을 가리킨다(Robertson). 이것은 '네가 보느냐'라는 의미로 다시 한번 믿음만을 강조하는 자들을 향한 야고보의 권고를 나타낸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의롭다 함'의 근거가 오직 행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의롭다 하심은 오직 행함만이 아니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과 '행함'은 불가분리의 근본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이며, 반대로 믿음이 없는 행함은 올바른 행함이 아니다. 믿음은 행함의 원칙으로 행함과 함께 역사하며 믿음의 바탕 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가 행함이다(Burdick). 그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도 행함으로 온전케 된 것이다(Manton, Calvin). 이처럼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로 행함이 나타날때 믿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성 경: [약2:23]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 '경에 이른바'는 창 15:6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창 15:6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시고 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창 22장의 사건까지는 30년의 시간이 흐른다. 이러한 시차로 인해서 혹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전하였기에 '응하였다'고 볼 수는 없으며 이 말 속에는 예언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이루어졌음을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Tasker). 또 다른 이는 이삭이 출생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겼기때문에 이삭을 드리는 사건으로 인하여 '응하였다' 즉 의로 여김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있다(Luther). 더군다나 카톨릭주의자나 소키니안들(Socinians)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의로 여길 때'의 아브라함의 의는 불완전한 것이었으나 이삭을 드리는 행함을 통하여 비로소 완전한 의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 15장에서의 아브라함의 의는 이미 '완전한 의'였다. '응하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레로데'(*)는 '플레로오'(*)에서 온 말로서 성경 말씀을 '실행 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 이미 믿음이 전제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 자체가 창 22장의 사건을 낳는 근거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창 15:6의 아브라함의 의는 이삭을 드릴 때 비로소 완전해진 것이 아니라 이미 15장에서 완전한 '의'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을 때 이러한 믿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Bu-rdick). 따라서 야고보의 주장과 바울의 주장은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측면 즉 행함과 믿음의 측면을 각각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창 22:1-14절은 창 15:6을 응하였다는 것이다.

⭕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 '하나님의 벗'(*, 필로스 데우)이라는 칭호는 야고보가 사용하기 이전에도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된 칭호이다(대하 20:7; 사 41:8, Phillo). 야고보는 이 칭호를 사용함으로 '믿음'과 '행함'을 통해서 '의'로 여김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깊이 교제를 나누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친밀한 교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았음을 의미한다(창 18:17,Ta-sker). 예수께서도 십자가의 비밀을 안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리라'고 하셨다(요 15:15).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라 함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전적으로 특권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Knox).

성 경: [약2:24]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 본절에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전체적인 결론을 맺고 있다. 진정한 믿음이란 정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반응인 행함으로 나타난다. 즉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순종으로 나타난다.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크 피스테오스 모논'(*)은 믿음도 우리가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고, 또한 아브라함처럼 행함으로써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만이 아니다. 믿음을 통한 행동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은 바울이 엡 2:8,9에서 주장한 것과는 의미상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그렇지 않다. 야고보의 주장은 진실된 믿음으로 인하여 행함이 산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22절), 바울 또한 우리의 구원이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이 있는 자는 선행을 무시하지 않는 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결코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다. 바울은 다만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 율법주의자들을 대상으로 말하 였고(롬 3:20,28) 야고보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행함과 믿음은 별개라고 주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Martin). 따라서 바울과 야고보의 주장은 동일한 것이다(Burdick).

성 경: [약2:25]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본절은 라합의 예이다. 라합은 이방인이었다. 야고보가 라합을 예로 든 것은 아마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한정된 사회 계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Calvin). 라합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기생이었고, 이방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믿음에 근거한(수 2:8-13; 히 11:31) 행함이었다. 그녀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자(使者)들을 도피시킨 것은 신실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그녀가 의롭다함을 인정받은 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인정받은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그녀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날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친척과 더불어 구원을 받았으며(수 6:23),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마 1:1,5,6). 그래서 후대에 신앙의 모범적인 인물로 기록되었다(히 11:31). 야고보의 이러한 주장은 그녀의 과거 생활이나 거짓말했던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녀의 믿음에 의한 행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Adamson).

성 경: [약2:26]

주제1: [참된 마음]

주제2: [믿음과 행함]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야고보는 본절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영혼없는 몸 즉 시체에 비유하고 있다. 이 비유는 산 믿음이라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라야 하며 행함은 반드시 믿음에 기초해야 함을 암시한다.'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토스'(*)는 일반적으로 '영'(spir-it)이라고 번역한다(NIV, NASB). 그러나 본문에서 야고보가 사용한 비교는 창 2:7을 근거한 것으로 본절의 '프뉴마'는 창세기의 '생기' 즉 생명을 주는 '호흡'을 의미하는 '루아흐'(*)로 보아 '호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숨을 쉬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으며 만약 야고보가 '영'으로 보았다면 '프쉬케'(*, '영혼')를 사용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Robertson, Martin).

성 경: [약3:1]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한다(Tasker, Burdick).여기에서 '심판'의 헬라어 '크리마'(*)는 '재판을 통하여 내려진 판결'을 의미한다(롬 13:2,D-ibelius-Greeven, Robertson). 선생들이 받을 '더 큰 심판'은 단순히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선생들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책임'을 수반한 '은사'로서의 '선생'의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심판관의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시사한다(눅 12:48,Moo,Adamson).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서 선생으로서의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Moo).

⭕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 '되지 말라'(*, 메 기네스데)는 부정어 '메'(*)와 '...이 되다'를 뜻하는 '기노마이'(*)의 현재 중간태 명령법인 '기네스데'가 결합된 것으로 선택적인 권고의 성격이 아니라 금지를 요구하는 명령이다(Robertson, Burdick). 이러한 어휘들은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이지위 향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선생'이라는 직임의 권위와 명성에매료되어 영성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감 없이 어떻게든 선생이 되려는 갈망이 공동체 전반에 편만했음을 추측하게 한다(Burdick, Moo). 더욱이 바울이 교회 직임에 대해 진술한 것을 살펴 볼 때(고전 12: 8; 엡 4:11) 당시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추측하기에 충분하다(Tasker, Moo, Mayor).

성 경: [약3:2]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 원문에 있는 '폴라'(*, '많은, 많은 것에')라는 단어를 개역성경에서는 삽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확한 의미를 파악 하기가 어렵다(Robertson, Martin, Moo, Dibelius-Greeven). '폴라'의 의미에 대해 혹자는 죄의 '수량'(RSV)이나 죄의 '다양성'(NIV, 잠 10:19),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Martin).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의미상에 큰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본문을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한다' 혹은 '우리는 모두 많은 것에 실수를 범한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한편 '실수하다'를 뜻하는 단어 '프타이오멘'(*)은 유대 문헌이나 신약성경에서 영적인 실패, 즉 모든 죄의 행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2:10; 벧후 1:10, Moo, Burdick).한편 '프타이오멘'의 인칭 어미인 '-오멘'(*)은 1인칭 복수 주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야고보가 경고받는 '선생들'의 부류에 자신을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실수하는 '우리' 가운데도 역시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나타낸다(Robertson, Moo, Martin).

⭕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 본문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은 '실수하다'라는 의미의 '프타이에이'(*)와 '...아니다'를 의미하는 '우'(*)가 연결되어 말의 실수를 부정하고 있는 조건문으로서 어떤사람이든 말에 실수가 없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을 암시한다(Martin). 이것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조차 때때로 죄를 범하게되는 죄의 보편성을 시사한다(Burdick). 1절에서의 선생들에 대한 경고가 2절에서 '말'에 대한 주의로 연결되어, 본절의 '말'은 후속절의 초점이 되는 '혀'에 대한 이야기에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본문은 '만일 말로 범죄하지 않는 자면'을 의미한다(Burdick, Martin, Moo). 한편 '온전한 사람'은 죄가없거나 결백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이 아니라 잘 갖추어지고 성숙한 '온전함'을 나타낸다(1:4, Martin). 야고보는 말로 행하는 범죄는 누구든지 쉽게 범할 수 있는것이기 때문에 말을 잘 통제하여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성숙되고 온전한 사람임을 강조하며 더불어 언어생활을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야고보는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서 상이해 보이는듯한 1절과 3절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시키고있다(Dibelius-Greeven). '굴레 씌우리라'의 헬라어 '칼리나고게사이'(*)는 '재갈을 물리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드물게 쓰이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가1:26절에서 '혀'와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Robertson) 본문도 역시 다음절부터 전개될 혀에 관한 진술과 관련 하여 권면을 전개하려 한 듯하다. 사실상 본문은 1-12절까지의 내용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으로, 선생들에게서 시작된 경고를 전체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확대시키고 있다. 즉 야고보의 이러한 진술은 지도자들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Matin)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에 전반적인 적용을 의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Moo). 선생이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든간에 혀를 제어(制御)하여 말의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은 결국 온몸에 굴레를 씌워 죄짓는 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Burdick, Tasker).

성 경: [약3:3]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 헬라어 본문에서 본절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에이 데'(*, '만약','if', 'When')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데'(*, '보라')라고 주장한다(C P, Ma-yor, Ropes).(2) 혹자는 '에이 데'(*, '만약')라고 주장한다(A, B, K, L,RV, NIV, Martin, Moo, Dibelius-Greeven).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두'(*, '보라')가 4,5절에서 등장하여 '이데'가 조화를 이룬다 할지라도 '이데'는 본서에서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재갈 예는 말(馬)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의 '입'에 물려진 재갈에 있음을 나타낸다. 즉 재갈이 말의 '입'에 채워짐으로 말이 통제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Moo). 야고보는 이렇게 해서 다음에 이어지는 다른 예화들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뤄간다.

성 경: [약3:4]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 본절은 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이전에 그 예로 배와 키의 관계를 나타낸다(Moo,Tasker). 즉 야고보는 작은 부분을 통해 커다란 몸체를 조종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Moo, Dibelius-Greeven) 배와 키의 관계를 제시한다. 큰 몸체가 '광풍에 밀려갈 때' 일지라도 사공은 자그마한 키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있다. 야고보는 말과 재갈, 배와 키, 몸과 혀를 비교시켜서 혀가 작지만 혀를 제어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범죄가 발생하게 됨을 강조한다.

성 경: [약3:5]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 '이와 같이'로 연결되는 것은 앞의 두 예화가 본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뒷받침 해준다(Burdick, Mayor). 이것은 본절이 3,4 절의 예화를 완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tin). 재갈과 키가 그 자체의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말의 온몸과 배의 진로를 좌우하듯이, 우리의 혀역시 비록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역할은 매우 크다(Moo, Tasker). 헬라어 본문에는 '큰 것을 자랑하도다'의 헬라어가 '메갈라 아우케이'(*)로 되어있으나 다른 사본에는 '메갈라우케이'(*, '자랑하다', '뽐내다')로 되어있어(*,P*20, k, L,) 의미 파악에 주의를 요한다(mayor, Tasker). '메갈라우케이'로 보게 될 경우 '자랑하는 혀'의 의미가 강조 되는 반면에 '메갈라 우케이'로 이해할 경우 '큰 것을 자랑하다'라는 의미로 '작은 혀'와 '큰 역할'이 대조된다(boasts of g-reat things, RVS, Tasker, Robertson). '메갈라우케이'와 '메갈라 아우케이' 두 경우중 후자의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두 가지 예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은것'과 '큰 것'이 대조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비록 혀가 작을지라도 큰 역할을 하여 엄청난 힘, 곧 잠재된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Moo, Martin, Burdick).

⭕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본문의 '어떻게 작은'과 '어떻게 많은'은 동일한 헬라어 단어 '헬리콘'(*)으로 한 단어가 두상반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일종의 균형과 대칭의 효과를 내고 있다(Moo, Martin). 한편 '나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휠렌'(*)은 메마른 지중해 기후로 인한 불꽃에 의해서 쉽사리 재가 되어 버릴수 있는 팔레스틴 언덕의 산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RSV, Moo,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산림이 작은 불씨에 의해 파괴되어 버림을 예로 들어 혀의 잠재적인 파괴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있다(Burdick).

성 경: [약3:6]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 본절에서는 5절에서 보여준 혀의 파괴적 성향이 곧 바로 언급된다. '혀는 곧 불이요'는 '혀 또한 불이다'(Adamson) 혹은 '이와같이 혀는 불이다'(Martin)라고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세계'의 헬라어 '코스모스'(*)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꾸밈(벧전 3:3), (2)악의 총체(Vulgate), (3)사악한 세상 조직의 타락하고 반역적인 형세(Tasker, Martin, Moo, Robertson). 이 세가지 중 세번째 해석이 문맥상 가장 타당한 듯하다(1:27;4:4, Moo). 혀는 불과 같이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악들과 연관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케 한다(Burdick).

⭕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 '바퀴'를 의미하는 단어 '트로콘'(*)은 '트레콘'(*, '달리다', '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문서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오르페우스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기보다는 당시에 널리 대중화 되어 있었던 종교적 또는 철학적 표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Robertson, Moo, Martin, Dibelius-Greeven, Mayor). 이것은 인생의 전영역 가운데 성쇠(盛衰)를 가리키는 듯하다(Moo,Burdick). 이렇게 혀는 온 몸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불과 같아서 인생을 파괴시킬 수 있다. 한편 혀와 동일시되며 인생 전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불의 근원은 '지옥불'이다. '지옥'을 뜻하는 헬라어 '게엔네스'(*)는 힌놈의 골짜기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한 표현이다(Burdick, Martin, Moo ). '게힌놈'은 예루살렘 정남방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계속 타고 있는 쓰레기 불로 말미암아 마지막날의 심판의 장소로 자주 비유되어 왔다.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만약 각자가 자신의 혀의 힘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급기야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혀의 오용과 남용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Martin, Moo, Tasker, Mayor).

성 경: [약3:7]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 본절은 다음절의 내용을 유도하기 위한 대조적인 예이다. '길들므로'의 헬라어 '다마제타이'(*)는 현재 시상이며 '길들었거니와'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다마스타이'(*)는 완료 시상이다. 야고보는 현재시상과 완료시상을 중복하여 사용함으로 인간이 여러세대에 걸쳐 짐승과 새, 벌레와 해물(창9:2-7;행 10:12; 11:6)등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정복한 상태의 연속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Robertson, Tasker, Burdick, Mayor, Adamson, Moo).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권한을 주셨으며(창 1:28;시 8:6-8) 실제로 인간들은 동물들을 다스려 길들였고, 동물들은 인간에게 지배되고 복종하였다. 한편 '짐승'을 나타내는 '데리온'(*)은 원래 신약성경에서 길들지 않은 동물들 즉 야생 동물에만 사용되어 왔다. 야생 동물이 길들여지는 것은 사 11:6-9처럼 메시야 시대의 상징으로 쓰여진다(A-damson).

성 경: [약3:8]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가득한 것이라 - 앞절에서 언급한 바대로 인간은 모든 짐승을 다스리고 길들였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지체 중 하나에 불과한 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야고보는 앞절에서 인간이 다스린 동물과 본절에서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혀를 대조시켜서 혀의 악함과 파괴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혀를 제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혀는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며,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제어될 수 있다(Burdick,Moo, Mayor, Martin). 야고보는 본절에서 제어되지 않은 혀의 두 가지 속성을 제시한다.

⭕ 쉬지 아니하는 악 - '쉬지 아니하는'의 헬라어 '아카타스타톤'(*)은 1:8의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에서 '정함이 없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아카타스타톤'이 수식하는 악이 불안정함과 한 마음을 품지 않는 데서 기원함을 시사한다(Moo). 이러한 악은 마치 복종될 수 없는 흉악한 짐승과도 같은 것으로 결코 제어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Burdick, Tasker).

⭕ 죽이는 독 - '죽이는'을 뜻하는 헬라어 '다나테포루'(*)는 '다나토스'(*, '죽음')와 '페로'(*, '가져오다')의 합성어로 '죽음을 가져오는'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Robertson).'죽이는 독이 가득 하다'는 구약성경의 교훈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시 140:3; 잠 10:8; 11: 9, Moo) 독사에게 물린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지고 급기야는 죽음을 초래하는 것처럼(Burdick,Robertson, Moo) 혀는 이웃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케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성 경: [약3:9]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야고보는 혀의 양면성 즉 '찬송'과 '저주'를 대비시켜서 그 불합리성을 제시한다.

⭕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 '주 아버지'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톤퀴리온 카이 파테라'(*)는 '주와 아버지'가 아니라 '주이신 아버지'라는 의미로 '주'와 '아버지' 모두가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Robertson). '주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고백으로(RV, Tasker) 혀의 가장 고귀한 기능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시사한다(Martin, Moo).

⭕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 '저주'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이다(창 9:25; 49:7; 잠 11:26; 24:24; 26:2). 이러한 저주는 고대 세계에서 큰 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지고 영원한 심판을 겪게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비해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저주하는 것을 금했다(롬 12:14).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저주를 금하고 오히려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하셨다(눅 6:28, Moo, Martin). 한편 '형상'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신'(*)은 '닮게 만들다'는 뜻을 가진 '호모이오오'(*)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의 외관대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made after the likeness of God, RV). 또한 '지음을 받은'을 의미하는 헬라어 '게고노타스'(*)는 완료시제이다. 이 두 가지 즉 '호모이오신'과 '게고노타스'는 인간이 범죄로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보여주는 흔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Tasker, Burdick). 이에 야고보는 사람이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또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높이고 저주하는것과 마찬 가지임을 강조하여 그 불합리성을 나타낸다(Burdick).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 경: [약3:10]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리라 - 야고보는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이중성을 드러내며 경고한다(Mayor). '마땅치 아니하니라'의 헬라어 '우 크레'(*)는 선악간의 차이를 분별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이중적인 면 즉 찬송과 저주의 공존으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 정함을 시사한다(Tasker). 이와같이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양태는 죄악이며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범죄이다. 이러한 말의 폐해(弊害)에 대해 예수께서도 엄중히 경고하셨기에(마 15:11,18,19)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지배와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입을 일관성 있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Burdick).

성 경: [약3:11]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본절의 샘의 비유는 매우 인상적이고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건조한 팔레스틴 기후에서 샘의 중요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이 샘과 시내를 의존하여 형성되었다(Moo, Martin).

⭕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 본문 처음에 등장하는 '메티'(*, '어찌...하지 않겠느뇨')는 야고보가 즐겨쓰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하면서 묻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Moo, Martin, Robertson). 야고보는 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한 샘이 두 가지 맛을 낼 수 없음을 예로들어 한 입에서 경배와 저주가 나오는 것이 부당함을 예증한다. 한편 '구멍'을 나타내는 헬라어 '오페스'(*)는 땅의 갈라진 틈 또는 바위 표면에 갈라진 한틈을 의미한다(Roberts-on, Tasker, Adamson). 이러한 틈새에서 솟아나는 두 종류의 물 즉 '단 물'과 '쓴 물'은 '신선한 물'(fresh water)과 '짠 물'(salt water)을 가리킨다(NIV, RSV). 한 샘에서 신선한 물을 내놓다가 다시 짠 물을 내놓는 일은 있을수 없으며(Moo, Martin, Ada-mson), 만약에 신선한 물에 쓰거나 짠 물이 첨가된다면 그 물은 이미 신선함을 잃어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물을 마시는 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혀가 사악하게 활용되었을 때 그 말은 바로 이 쓴 물과 같아져서(Moo) 비극을 초래하며 전체를 그릇되게 한다(Martin).

성 경: [약3:12]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혀로 인한 죄]

⭕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 본문 역시 부정어 '메'(*, '아니')로 시작되어 부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수사학적인 질문이다(Martin). 본문에서 열거되는 무화과나무, 감람열매, 포도나무, 무화과등의 식물을 사용하는 비유는 고대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Martin). 신약성경에도 복음서를 중심으로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마 7:16-20; 12:32,33; 눅 6:43-45,Martin, Adamson). 이 비유가 신약성경에서 사용될 때의 의미는 '선한 마음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악한 마음에서는 악한 것이 나옴이 마땅하다'는 것이다(Moo, Martin). 따라서 야고보는 본 비유를 통하여 모든 나무가 자신의 특성에 맞게 열매를 맺음을 강조하고 있다.

⭕ 이와 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 야고보는 본문에서 11절의 질문으로 돌아가 11,12절의 수사학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앞서 언급한 이중성의 부당함 즉한 샘에서 두 종류의 물이 나올 수 없고 한 나무가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결국 짠 물은 짠 물일 뿐이라는 일관된 부정적 견해 즉, 혀의 악함을 드러내어 강조하고 있다(Tasker, Moo, Martin).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근원에 있어 나무와 열매의 비유처럼, 짠 물이 단 물의 근원일 수 없기 때문이다(Burdick). 그러므로 선한 사람의 입에서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사람의 입에서는 악한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성 경: [약3:13]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본절은 '티스'(*, '누구')로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단을 소개한다(13-18절, Adamson). '지혜'애 해당하는 헬라어 '소포스'(*)는 유대인들이 교사, 서기관, 랍비를 가리킬 때 사용한 전문용어였으며 '총명'의 헬라어 '에피스테몬'(*)도 특별한 지식이나 훈련을 받은 전문인을 가리킨다(Moo, Tasker, Burdick, Robertson). 이러한 '지혜와 총명'은 1절에서 언급한 '선생이 되려하는 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지혜의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프라위테티 소피아스'(*)는 문자적으로 '지혜로부터 나오는 온유함으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지혜'는 헬라적 지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실제적인 히브리적 개념의 지혜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Adamson). 또한 '온유함'은 약함이나 체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포괄적인 포용성으로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성취될 수 있는 부드러움을 가리킨다(갈 5:22,23, Burdick). 야고보는 본절에서 선행과 온유의 근원을 믿음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지혜로 보면서(Tasker, Burdick)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선생을 영예와 지위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지말고 참된 선생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행해야 함을 권면한다.

성 경: [약3:14]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 그러나 너희 미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 '젤론'(*, '시기')은 신약성경에서 긍정적으로도(요2:17),부정적으로도 사용된다(행 5:17, Robertson, Moo). 본절에 사용된 '젤론'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기적인 열정을 의미한다(Mayor). 또한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데이안'(*)은 '이기적인 야망'의 의미로 자기나 자기편의 특권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Moo, Burdick). 이것으로 인해서 '당파심', '불화'가 일어나기에 바울은 '당파심'이나 '불화'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고전3:3; 고후 12:20; 갈 5:20, Martin, Moo, Dibelius-Greeven, Robertson). 당시 본서의 수신자들중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열정 그리고 야망에 빠져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을 만들고 당(黨)을 지어 홀란스럽게 만들며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 있었다(Burdick).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자들을 향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빠지지 말고 진리를 거스려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성 경: [약3:15]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인 이기적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지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다(Burdick). 즉 그것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신(잠 2:6)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가 아니다(Martin, Moo).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지혜는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 세상적이요 - 이것은 하늘과 비교하여 부정적인 의미의 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Moo, Martin, 고전 15:40; 고후 5:1)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상의 제한된 사고와 견해로 평가하는 지혜를 나타낸다. 이러한 지혜는 세상의 인침을 받은 일련의 모든 활동과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전 1:20;2:5,6, Adamson, Martin).

⭕ 정욕적이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키케'(*)는 '영적'인 것과비교되는 '육신적'인 것을 의미한다(Moo,Martin, Adamson, 고전 2:14; 15:44,46).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 즉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특성 이다(Burdick).

⭕ 마귀적이니 - 이것은 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하지만(잠 2:6)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혀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소유하는 지혜는 마귀에 의해서 그 행동과 생각을 지배받고 선동됨을 나타낸다(Martin, Moo, Adamson).

성 경: [약3:16]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 사로잡힌 거짓된 지혜의 특성을 정의한 것(15절)에 대한 근거임을 시사한다.

⭕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요란'을 뜻하는 헬라어 '아카타스타시아'(*)는 '무질서함'(고전 14:33)을 나타내며 일반적으로 무정부 상태와 정치적인 소동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Robertson, Bu-rdick). 또한 '악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울론'(*)은 요 5:39의 '아가다'(*, '선함')와 반대 개념으로 하나님과는 전혀 가까워질 수 없는 악한 행위를 나타낸다. '시기'와 '다툼' 즉 이기적인 욕망과 열정 그리고 야망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인 생명과 사업을 파괴시키는 무질서와 악한 행위만 생산할 뿐이다(Burdick). 그러기에 그러한 것을 유발시키는 거짓된 지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다(15절).

성 경: [약3:17]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 본절은 앞서 언급된 거짓 지혜와 대조되는 참된 지혜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특성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지혜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적인 것이다.

⭕ 성결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네'(*)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지혜의 기본적 특성으로 성적인 순결의 의미보다는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하며 '거짓된 지혜'의 이기적인 동기와 대조를 이룬다(Robertson, Burdick).

⭕ 화평하고(*, 에이레니케) - 이는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한다(히 12:11).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위로 난지혜는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Tasker).

⭕ 관용하고 - 이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에이케스'(*)는 주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수 있음에도 블구하고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온유와 자비를 나타낸다.

⭕ 양순하며 - 이의 헬라어 '유페이데스'(*)는 '유'(*, '잘','좋게')와 '페이도마이(*, '순종하다')의 합성어로 '잘 순종하는'이나 '유순한'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을 소유케 한다.

⭕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 관계를 갖는다.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 주는 마음 자새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이다(2:13). 이러한 긍휼을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된다(마 7:17,18, Martin, Burdick).

⭕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하다.

성 경: [약3:18]

주제1: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참된 지혜]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본문은 '위로 난 지혜'에 대한 결론이다. '의의 열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포스 디카이오쉬네스'(*)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한다(Laws, Ropes).'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Moo) '화평'과 긴밀한 상관 관계를 지닌다(시 85:10;사 32:17, Tasker). 이러한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으며 오직 화평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하고 닮은 자녀이기에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마 5:9).

성 경: [약4:1]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세상의 정욕]

본절은 두 개의 수사학적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질문은 야고보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수신자들이 동의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며 3장과 깊은 논리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Adamson, Burdick, Tasker, Lenski).

⭕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 '싸움'은 헬라어 '폴레모이'(*)는 본래 국가간의 큰 전쟁을 의미하며 '다툼'의 헬라어 '마카이'(*)는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분쟁을 뜻한다(고후 7:5;딤후 2:23;딛 3:9). 야고보는 동의어에 가까운 두 단어를 사용하여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분쟁이나 불화를 지적하면서(Burdick, Gibson, Moo, Martin) 수신자들로 하여금 그 불화의 진원지에 대해 재고하도록 한다.

⭕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 '지체'는 고유한 기능을 가진 몸의 각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롬 7:23;엡 4:13-16). 한편 '정욕'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도논'(*)은 '쾌락'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육체 내에서 단순히 일어나는 '욕망'이 아니라 쾌락 그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함을 뜻한다(딛 3:3;벧전 2:11,Tasker, Manton, Calvin). 이렇듯 쾌락을 추구하다보면 필연코 다툼을 초래하게 된다.

성 경: [약4:2]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세상의 정욕]

⭕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에피뒤메이테 카이우크 에케테 포뉴에테 카이 젤루테 카이 우 뒤나스데 에피튀케인 마케스데 카이 폴레메이테) - 헬라어 본문에는 구두점이 없어서 독법이 두 가지로 나뉜다. (1) '살인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뉴에테'(*) 다음에 나타나는 '카이'(*,'그리고')를 강조할 경우 본문은 세 개의 문장으로 나뉜다(Moffatt, ASV, KJV, NIV, Textus Receptus). (衁)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遁)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鑁)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이 견해의 경우 '포뉴에테'는 문자적으로 '살인'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미움'을 의미한다(마 5:21,22;요일 3:15). 따라서 본문은 좌절된 욕망 자체를 강조한다. (2)'포뉴에테' 다음에 구두점을 삽입할 경우 본문은 두개의 문장으로 나뉜다(RSV, NEB, NASB, Hort, Cantinat, Ropes). (衁)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한다. (遁)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너희가 다투고 싸운다. 이 견해의 경우 '포뉴에테'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적인 표현 그대로 '살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좌절된 욕망에서 비롯된 결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의 수신자가 그리스도인인데(2:1) 그 가운데서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살인'이 언급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며 3절 역시 좌절된 욕망 자체를 설명하여서 문맥상 일치하기 때문이다(Tasker, Burdick). 쾌락 즉 과도한 욕망은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 많은 부족감과 갈증을 유발(誘發)시킬 뿐이다. 그 결과 죄의 욕망은 만족될 수 없으며 오직 좌절의 연속을 겪게 된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 야고보는 앞에서 죄의 욕망은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좌절만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언급한 반면에 본문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에게 구함으로써 실제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구하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강하게 시사한다(Tasker, Manton).

성 경: [약4:3]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세상의 정욕]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 본절에서 야고보는 만족을 채우기 위해 그릇된 동기에서 구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본절의 '정욕' 역시 1절과 마찬가지로 '쾌락'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서 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의 간구는 외면하시나 의로운 자(시 34:15), 진실하고 참되게 구하는 자(시 145:18),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는 자(눅 18:14)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요 5:14)의 간구는 들으신다.

성 경: [약4:4]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세상의 정욕]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이칼리데스'(*)는 여성 명사로 문자적으로 '간음하는 여자들'을 가리키나 실제로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인 불충실성을 나타낸다(호 2:2-5;렘 31:22;겔 23:45;말 3:5, Burdick, Adamson). 야고보는 이 비유를 통해 수신자들의 육신에 속한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Gibson, Tasker, Manton).

⭕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 야고보는 본문에서 '세상'과 '하나님','벗'과 '원수'를 대조시키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사람이 세상과 벗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야고보는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수신자들의 세상과 벗됨을 지적함으로 그들이 '쾌락'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 '되고자 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레데'(*)는 '-할 작정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불로마이'(*)의 단순과거로 무엇을 하려고 계획한 자가 정해진 계획대로 이루었음을 의미한다(딤전 2:8;5:14;딛 3:8,Burdick, Robertson, Manton). 이것은 하나님께 불충스런 자들이 저들의 계획된 목적에 따라 '고의적으로' 세상과 짝한 것을 뜻한다. 한편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는 말은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과 벗 되는 것이 결국 하나님과 원수되는 결과로 나타나며 하나님과 원수된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시사한다(Manton, Reicke).

성 경: [약4:5]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세상의 정욕]

⭕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 본문은 해석상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1) 본문에 나타난 인용문의 근거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衁) 혹자는 70인역의 창 6:3-7과 출 20:5이라고 주장한다(Mayor, Knowling, Ropes). (遁) 혹자는 신약성경의 마 6:24;롬 8:7;요일 2:15이라고 주장한다(de Wette). (鑁) 혹자는 상실된 히브리 복음서나 외경 가운데서 인용한 것으로 주장한다(Resch, Moffatt, Spitta, Debelius). (鱁) 혹자는 축자적인 인용이 아니기 때문에 출 20:5;34:14 그리고 슥 8:2이라고 주장한다(Burdick, Moo). 이러한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2) '성령'의 헬라어 '프뉴마'(*)에 대한 해석의 차이이다. '프뉴마'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衁) 인간의 영(NIV, NEB, GNB, Phillips). (遁) 성령(JB, Martin, Adamson, Burdick). 전자의 견해는 '시기하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도논'(*)의 사용례에서 비롯된 해석이다. 즉 '프도논'은 하나님의 행위를 수식하는 데 사용되지 않으며(Mitton, Mayor) '선한 행위'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Trench) 본문에서 '프도논'이 수식하는 '프뉴마'는 하나님께서 창조 때에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신 '인간의 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도논'은 '젤로스'(*, '열심', '시기')와 혼용되어 '하나님의 질투'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며(I Macc 8:16;I Clem. 3.2;4.7;5.2, Martin, Mussner)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에'(*, '혹은')가 헬라어 본문에는 삽입되어 있어 본절과 앞절이 연관된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프뉴마'는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 경: [약4:6]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겸손에의 권면]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 혹자는 본문이 5절과 연속된 구문이라고 주장하나(Manton, NIV) 5절과는 대조를 이루는 독립된 문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Martin, Moo). 야고보는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 즉 하나님께서 질투하기까지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 요구하시는 바가 엄격할지라도 또한 더욱 큰 은혜를 주셔서 백성들의 결점을 보완하신다는 점을 들어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본문은 잠 3:34(LXX)의 인용이다. 본문에서의 '교만'이 잠 3:34에서는 '거만'으로 언급되어 있다. '교만'은 남을 비웃거나 업신여기며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며(Manton) '겸손'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여 영적인 통회(痛悔)를 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Tasker). 야고보는 인용문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자신만을 인정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와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종하는 '겸손한 자'를 대조시켜서 수신자들에게 '쾌락을 추구하는 자'와 같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말고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순종하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한다(7절).

성 경: [약4:7]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겸손에의 권면]

⭕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 '순복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타게테'(*)는 단순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표현이다. 이것의 문자적인 의미는 '자신을 더 낮은 위치에 두라'는 의미로 단순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낮은 위치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마 11:29), 겸손히 아뢰며(고후 5:10), 자신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라는 의미이다(눅 2:51;행 21:14;엡 5:22;딛 2:9;벧전 2:13, Burdick, Manton).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몇몇 사본에는 본문 앞에 반어적인 접속사 '데'(*, '그러나')가 삽입되어 있다(A,B). 이것은 본문의 전반부와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순복해야 하나 마귀는 대적해야 하며, 만약 하나님께 순복하려면 우선 마귀를 대적해야 함을 뜻한다. '마귀'의 헬라어 '디아볼로'(*)는 '비방하는 자'라는 의미로 '악한 세상의 영역'이나 '외적인 능력'을 가리킨다(마 13:19;25:41;엡 4:27;6:11;딤전 3:7,Adamson, Martin) . 이러한 '디아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주된 세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대적해야 한다. 그러할 때에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피하게 된다.

성 경: [약4:8]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겸손에의 권면]

⭕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대적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특권이자 의무인 새 언약 아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쾌락을 즐기는 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특권이다. 옛 계약 아래서는 동물의 피를 통한 희생 제사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나(출 19:22;레 10:3;신 4:7;겔 43:19;44:13)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4:16, Lenski, Tasker, Gibson).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습을 좇고 쾌락에 얽매인 모습을 단호히 배격(排擊)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시 19:10;고전 14:12;엡 4:22;벧전 2:2).

⭕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 야고보는 두 가지 호칭으로 수신자들을 부르고 있다. '죄인들아'는 수신자들이 젖어 있었던 죄악된 성향의 삶을 단호히 지적하는 표현이며 '두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과 쾌락을 즐기려는 마음을 동시에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눅 16:13). 따라서 이러한 마음은 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은 외적인 행위를 정결케 하라는 표현이며, '마음을 성결케하라'는 말은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표현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내적, 외적 정결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합당한 삶을 영위해가야 한다(출 30:20;마 7:3,4;요일 1:7, Burdick, Adamson, Moo).

성 경: [약4:9]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겸손에의 권면]

⭕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 본문의 권면은 모두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표현들이다. '슬퍼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탈라이포레오'(*)는 '불행해지다' 혹은 '비참해지다'는 의미를 가진 '탈라이포레오'(*)에서 유래한 단어로 스스로 고행을 통해서 비참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했던 자신의 죄악의 비참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는 근심을 하라는 의미이다(Burdick, Tasker). '애통하며'(*, 펜데사테)와 '울지어다'(*, 클라우사테)는 모두 억누를 수 없이 격앙(激昻)된 뉘우치는 심정의 모습을 묘사한다(욥 8:21;마 5:4). 야고보는 위의 세 단어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이 거짓됨이 없이 진실되게 회개할 것을 권면한다.

⭕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 '웃음'과 '즐거움'은 수신자들이 죄 아래 있는 삶을 살 때 느낀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쾌락'을 삶의 본질로 좇고 있었음을 비유적으로 시사하는 표현이다(1,2절). 야고보는 이렇게 죄에 빠져 즐겼던 삶에서의 '웃음'과 '즐거움'을 예수께서 복된 삶의 기본 요소로 가르치셨던 '예통'(마 5:4)과 '근심'으로 바꿀 것을 권면한다. 여기서 '근심'의 헬라어 '카테페이안'(*)은 문자적으로 '낙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죄인을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자세를 가리킨다. 본문에서 야고보는 어리석게도 쾌락으로 일관하던 죄 아래서의 삶을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할 것을 권면한다(Martin, Lenski, Tasker).

성 경: [약4:10]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겸손에의 권면]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본절은 7절에서 시작된 일련의 권고들에 대한 결론이다. 본절에서 내적 겸손을 계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낱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지적하려는 의도인 듯하다(Manton). 야고보는 8절에서 언급한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권면을 본절에서 다시금 확인시키며 예수께서 교훈하시는 바와 같이(마 23:12;눅 14:11;18:14)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참된 기쁨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Martin).

성 경: [약4:11]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비방하지 말라]

⭕ 형제들아 - 이 호칭은 '간음하는 여자들'(4절),'죄인들'(8절)이라는 호칭에 이어서 다시금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제시된 것으로 야고보의 간절한 사랑을 시사한다(Tasker, Martin).

⭕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카탈랄레이테 알렐론'(*)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메'(*)와 현재 명령을 나타내는 '카탈랄레이테'(*)가 결합되어 지금 계속되고 있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금지할 것을 권면하는 강한 부정 구문이다. '비방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탈랄레이테'(*)는 문자적으로 '타인을 멸시하며 말하다' 혹은 '다른 사람을 대적하여 말하다'는 뜻으로(시 50:20;벧전 2:12;3:16)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연합된 형제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Robertson, Tasker).

⭕ 형제들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 본문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치 말아야 할 이유이다. '형제를'의 헬라어는 '톤 아델폰 아우투'(*)로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형제들의 신령한 관계를 강조한다. 한편 '율법'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판단을 금지하라는 그리스도의 황금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마 7:1-5,12, Plumptre). (2) 혹자는 1:25에서 언급된 자유의 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unter). (3) 혹자는 예수께서 더 강화시키신 옛 도덕법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준행해야 할 삶의 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2:8,Alford).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의 내용상 레 19:18에 언급된 이웃 사랑에 대한 법이 야고보의 권면과 일치하기 때문이다(Burdick, Tasker).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남을 헐뜯거나 멸시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곧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자의 입장에서 서는 경우가 된다는 말이다.

성 경: [약4:12]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비방하지 말라]

⭕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 앞절에서 야고보는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재판하는 자의 자리에 앉은 행위임을 지적하였다. 본절에서는 율법의 입법자나 재판자가 오직 하나님임을 밝혀서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자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강조한다. '입법자와 재판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모데테스 카이 크리테스'(*)는 하나의 관사에 두 낱말이 연결되고 있어 동일하시며 절대 변경될 수 없는 오직 하나이신 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것은 율법을 정하는 것과 심판권을 오직 하나님만이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Tasker, Lenski, Burdick, Martin).

⭕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 본절은 입법자와 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위치를 확증시킨다(마 25:46).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신 분이며 율법의 준수 여부에 대한 재판자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실 수도, 혹은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은 단지 율법을 준행하는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11절) 재판자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을 하는 것은 죄악이며 금해야 할 행위이다.

⭕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 데 티스 에이 호 크리논톤 플레시온'(*)은 문자적으로 '그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라는 의미로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는 강조형 반의 접속사 '데'(*, '그러나')와 인칭 대명사 '쉬'(*, '당신')가 합하여 일종의 수사학적 질문이다(Moo, Martin, Tasker). 야고보는 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 절대 불가(不可)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성 경: [약4:13]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허탄한 자랑]

⭕ 들으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뉜'(*)은 문자적으로 '지금 들으라'는 의미로 수신자들로 하여금 지금 곧 주의해야 함을 나타낸다. 여기서 '아게'는 명령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부사적으로 사용되어 수신자들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한다(5:1;삿 19:6, Manton, Tasker, Gibson, Burdick).

⭕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 '말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곤테스'(*)는 현재 분사로 현재 많은 삶들이 허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Burdick). 한편 본절은 당시 유대인 중개업자나 상인들의 생각과 어투를 표현하고 있다(Manton, Moo). 야고보는 당시 상인들의 생활 관념과 태도를 꼬집어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어리석고 고집스런 교만을 지적한다.

성 경: [약4:14]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허탄한 자랑]

⭕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 본문은 잠 27:1을 반영한 것으로 앞절에서 언급된 육신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어리석은 이유를 나타낸다. 그들은 먼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육신적인 목적을 위해 계획하고 추구하지만 실상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들이다. 야고보는 이렇듯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한 채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먼 자들의 삶의 자세를 경고한다(사 56:12;암 6:3;눅 12:19).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아 헤 조에 휘문'(*)은 문자적으로 '너희 생명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의미이다. '무엇'으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아'(*)는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인간의 생명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限界性)을 시사한다(Tasker, Robertson). 한편 '안개'의 헬라어 '아트미스'(*)는 '증기' 혹은 '호흡'을 의미하지만 본절에서의 의미는 '생의 무가치성과 유한성'이다(Adamson). 본문은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점을 들어 헛된 인간의 욕망에 집착하여 확신하는 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위가 헛된 것임을 암시한다(욥 7:7;13:25;14:2;사 40:6,7).

성 경: [약4:15]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허탄한 자랑]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 '주의 뜻이면'은 사도들과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쓰는 말로(행 18:21;롬 1:10;고전 4:19;16:7;히 6:3) 자신들의 경건성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관용구였다(Manton). '뜻'의 헬라어 '델레세'(*)는 계시된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모든 계획을 의미한다(Calvin).

⭕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제소멘 카이 포이에소멘투토 에 에케이노'(*)는 가정법이 아니라 미래형이다. 이것은 야고보 자신의 의지와 권고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그리스도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전 삶을 지배하도록 하자는 권고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행 18:21;롬 15:28;고전 4:19, Burdick, Robertson, Gibson).

성 경: [약4:16]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허탄한 자랑]

⭕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 '허탄한 자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조네이아이스'(*)는 일반적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거나 과대 평가하는 '오만'을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복수로 사용되어 야고보가 본서를 통해 제시한 온갖 종류의 세상적인 확신을 가리킨다(Manton, Calvin). 세상 것에 대한 어리석은 확신과 천박한 자만심은 결국 악으로 치닫게 된다.

성 경: [약4:17]

주제1: [다툼과 자랑에 대한 권고]

주제2: [허탄한 자랑]

⭕ 이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운'(*)은 본절이 야고보 자신의 주장의 결론임을 나타낸다.

⭕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 본문은 롬 14:23을 반영하는 것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옳은 일인지를 의심하는 것은 죄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Scott). (2) 혹자는 어떤 일이 선한 줄 알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거역하면 죄가 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요 9:31, Manton).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과 유사한 병행 구절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눅 12:47;요 15:22;벧후 3:5).

성 경: [약5:1]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들으라 - '들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 뉜'(*)은 내용의 중대성을 나타내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야고보의 표현이다(4:13). 야고보는 수신자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불의한 부자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 '임할'의 헬라어 '에페르코메나이스'(*)는 현재 중간태 분사로 미래에 있을 고난이 현재로 다가오는 예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Lenski, Mayor, Alford). 부한 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현재까지의 삶이 평안하였던 것처럼 미래에도 계속 평안하리라고 여기나 사실 그 평안은 그치고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Oesterly, Tasker). 그러기에 야고보는 부자들을 향해 울고 통곡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라우사테'(*)는 귀에 들리도록 우는 것을 나타내며 '통곡'에 해당하는 헬라어 '올롤뤼존테스'(*)는 심판의 선언에 대해 울부짖는 회개의 모습을 가리킨다(사 13:6;14:31;15:3;욜 1:5,13). 이것은 불의한 부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며 동시에 부자들이 회개할 것을 시사한다(Calvin, Burdick, Lenski, Blue).

성 경: [약5:2]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 본문의 '재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플루토스'(*)는 부자들이 마음을 쏟고 있는 포괄적인 세상의 부요함을 뜻한다(Clark, Robertson). 또한 '옷'은 가지고 있는 재산 중의 일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러한 '부와 옷'은 썩었고 좀먹었다. '썩었고'의 헬라어 '세세펜'(*)과 '좀먹었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토브로타 게고넨'(*)은 예언적 완료형으로 부자들의 재물이 미래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이미 무가치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욥 13:38;마 6:19,Blue,Mayor,Martin,Lenski). 즉 그들이 평생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불의하게 추구했던 '부'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기에 이미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성 경: [약5:3]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 '녹이 슬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티오타이'(*)는 '...에게 대적하여'의 헬라어 '카타'(*)와 '녹'을 의미하는 '이오스'(*)와의 합성어로 부자들의 부를 상징하는 금과 은이 무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 금과 은은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몇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는 '카티오타이'가 '녹이 슬다'는 뜻 이외에 거울이 더러워지면 잘 볼 수 없듯이 희미하게 더러워진 상태를 묘사한다고 주장한다(Mayor). (2) 혹자는 이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재산이 무가치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pes, Clark, Blue). 두 가지 견해 중 문맥상 후자가 타당하다. 즉 부자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어서 그것들이 오래 방치되었음을 나타낸다(Burdick). 금과 은에 낀 녹은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거나 선한 일에 쓰지 않고 무익하게 재산을 축적한 불의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좀 먹고 녹이 슬었으니'와 비교하여 불이 더 빨리 녹게 한다는 것에 유의한다. 따라서 본문은 파멸의 급격한 진전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Mayor, Blue). (2) 혹자는 본문의 '불'이 최후의 형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불의한 재물에 대한 욕심은 '심판의 불을 모으는 것'과 같아서 본문은 분명한 형벌의 증거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왕하 9:36,Ropes, Westcott, Hort, Burdick, Gibson, Tasker). 부자들의 결과적인 모습을 지적하는 본문의 내용을 고려할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말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는 문자적으로 '끝날들' 즉 메시야의 심판의 때를 의미한다(사 2:2;호 3:5;욜 3:1;암 8:11;딤후 3:1). 부자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에 물질에 우선적으로 마음을 빼앗겨서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추구하였기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성 경: [약5:4]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 '주지 아니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퓌스테레메노스'(*)는 수동태에서 행위지를 나타내는 '아포'(*)와 '기만하다'는 의미를 가진 '휘스테레오'(*)의 합성어로 여러 가지 핑계로 속여서 품꾼들에게 삯을 주지 아니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부자들이 삯꾼들을 압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품꾼의 삯을 당일로 지불해야 했던 당시의 규례를 어겼던 것이다(레 19:13;신 24:15;말 3:5). 한편 '삯이 소리 지르며'는 정의를 위해 외치며 소리질러 회개를 촉구하던 구약 예언자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표현이다(창 18:20;19:13;출 3:7;신 24:15, Tasker, Manton). 이것은 부자들이 지불하지 않은 품꾼의 삯이 하나님 앞에서 부자들의 죄를 드러내는 증거가 됨을 시사한다.

⭕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 '만군의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우 사바오드'(*)는 '백성을 돕는 하늘의 군대'(삿 5:20;왕하 6:17)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위엄과 탁월한 권능을 나타내는 칭호이다(사 5:9;롬 9:29). 이것은 억울하게 착취를 당한 품꾼들의 탄식(歎息)이 전능한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아뢰어졌음을 시사한다(창 4:10;18:20;19:13, Clark, Martin, Mayor).

성 경: [약5:5]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 '사치하고'의 헬라어 '에트뤼페사테'(*)는 이기주의와 정욕을 위한 방탕한 생활을 의미하며 '연락하여'는 특별히 도덕적인 방탕을 가리킨다(딤전 5:6). 이것은 일반적으로 물질이 풍부해지면 저지르게 되는 보편적인 죄악들을 시사한다(Manton, Mayor, Moo). 한편 '도살의 날'은 '땅에서'와 연결되어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사 34:6;겔 21:15,Tasker,Burdick,Moo). 부자들은 도살당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살지우는 소나 양들과 같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 가운데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였다(시 17:10).

성 경: [약5:6]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부자들의 잘못]

⭕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 '옳은 자'(*, 톤 디카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옳은 자'에 '톤'이란 관사가 사용된 것과 본절 후반절의 표현을 근거로 해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사 53:7;마 26:63,Feuillet). (2) 혹자는 '의로운 자'가 야고보의 명칭이었고, 또한 몇 년이 못되어 순교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야고보 자신으로 보기도 한다(Bengel, Mayor, Dibelius). (3) 혹자는 관사 '톤'을 계층을 나타내는 단수의 총칭 용법으로 보아 의로운 계층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Calvin, Ropes, Burdick, Lenski).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이제까지의 경고 대상은 부자였으며 그 부자가 억압했던 옳은 자는 문자적으로 가난한 자를 뜻한다. 그런데 그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자는 바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2:5-7).

⭕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안티탓세타이 휘민'(*)은 수사학적 의문문을 통해서 무죄한 사람들의 연약성과 온유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저항하지 않는 의로운 자의 태도와 그들을 죽이는 불의한 자의 죄악성을 대조시켜 불의한 자들의 극악한 죄를 고발한다(Burdick, Manton, Tasker, Martin).

성 경: [약5:7]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 그러므로 형제들아 - '형제들아'는 부자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부분에서의 '들으라'(1절,4:13)는 명령조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이 어린 어투이다. 야고보는 다시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을 하려 한다(1:2,19; 2:1,14; 3:1,12;4:11).

⭕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 '주의 강림'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파루시아스 투 퀴리우'(*)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을 반영한 종말의 사상을 나타낸다(마 24:3,27,37,39;고전 15:23;살전 2:19;3:13;4:15;5:23;살후 2:1,8;벧후 1:16;3:4;요일 2:28). 한편 '길이 참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크로뒤메사테'(*)는 '길다'는 의미를 가진 '마크로스'(*)와 '분노' 혹은 '성냄'을 의미하는 '뒤모스'(*)와의 합성어로 분냄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압제나 박해 아래서 자신을 포기하거나 성급한 보복을 삼가하고 고통을 참고 자제하는 것을 시사한다(롬 2:4;벧전 3:20,Trench, Blue, Lightfoot, Martin, Manton).

⭕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앞서 언급한 인내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당시의 기후를 반영한 것으로 '이른비'는 10월에서 11월에 오는 비를 가리키며 '늦은 비'는 4월에서 5월간에 오는 추수 직전의 비를 말한다. 농부가 생명과도 같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시리라는 약속을 굳게 믿어 기대하고 인내하는 것처럼(렘 5:24;욜 2:23;슥 10:1) 불의한 자들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빌 4:13).

성 경: [약5:8]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 '굳게 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릭사테'(*)는 '받침', '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70인역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 주고 지지하던 것을 가리킨다(출 17:12). 따라서 본문은 확실한 신앙에 온전히 서서 핍박 가운데서도 인내할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시사한다(시 112:8;살후 3:13).

⭕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본문은 의로운 자들이 인내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심되는 사상 중의 하나이다(롬 13:11;고전 15:52;살전 4:15;요일 2:18 등).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즉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때이며(7절) 동시에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의 때이다. 한편 '가까우니라'는 재림과 심판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세상의 존속 기간이 영원과 비교할 때 짧은 시간임을 시사한다(시 90:4;벧후 3:8, Mayor, Manton).

성 경: [약5:9]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 '원망하지'의 헬라어 '스테나제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신음하다'(롬 8:23;고후 5:2,4) 또는 '탄식하다'는 의미이다. '스테나제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메'(*)와 연결되어 '탄식'을 지속적으로 금지해야 함을 시사한다(Burdick, 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동기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핍박자들을 향한 원한의 탄식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전히 기뻐하고(1:2) 그리스도를 소망해야 한다. 한편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크리데테'(*)는 단순과거 수동태 가정법으로 문자적으로는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마 7:1)는 의미이다. 이는 원망을 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가 정죄를 받아 함께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강조 조건적 명령이다.

⭕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서 서 계시니라 - 본문은 8절의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는 권면을 보충하는 경고이다. 야고보는 이런 경고를 통해 심판의 임박성을 강조하여 수신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마 24:33;막 13:29;계 3:20, Manton, Burdick).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는 이미 심판하실 모든 준비를 갖추시고 문밖에 서서 기다리신다.

성 경: [약5:10]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 야고보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특별한 직무를 맡았던 선지자들의 고난을 예로 들어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원래 '이름'은 그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말한'은 예언자들이 주를 대신하여 주의 권위로 예언했음을 의미한다(Deissmann, Mayor). 이러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는 물론 역사적 상황(狀況)을 해석하여 그 의미를 백성들에게 전달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박해를 받았다. 고난과 박해속에서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인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이 된다(요 13:15;히 4:11). 그리스도인들은 특수한 고난의 상황 가운데서 인내한 예언자들을 바라봄으로 현재의 고난에서의 위로를 받을 뿐만 아니라(마 5:12;23:34;행 7:52;히 11:33, Moo, Martin) 그 위로 가운데 인내해야만 한다.

성 경: [약5:11]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 본문은 마 5:11의 산상 수훈을 반영한 것으로 1:12의 반복이다. 야고보는 인내의 분명한 결과인 축복을 언급함으로 인내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한다(단 12:12;마 5:10).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판단을 언급하려는 것으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내로 말미암는 축복을 일반화시킨다(Manton, Tasker).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 야고보는 이런 경우의 실례로 '욥'을 제시한다.

⭕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 '인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은 보복하지 않는 자제의 인내를 의미하는 '마크로뒤미아'(*)와는(7-10절) 달리 '환경 가운데서 변치 않는 인내'(1:3;골 1:11)를 의미한다(Blue, Burdick). 욥은 순식간에 당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의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기대한 인내의 본이다(욥 1:21,22; 2:10;12:2;13:4,5;16:2;19:25-27, Tasker, Adamson). 한편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인내의 가장 모범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적용한다. 그래서 '결말'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해석한다(Augustine, Bede, Bassett). (2) 혹자는 주께서 욥을 통해 보여주신 결말, 곧 인내하는 욥에게 시련 전에 주었던 것보다 두 배로 크게 축복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욥 42:5,6,12-17, Tasker, Burdick, Manton, Marti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야고보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소망한 욥을 예로 제시한 후 인내의 결과인 욥의 결말 즉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언급함으로 수신자들로 하여금 인내토록 권면한다.

⭕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 '가장 자비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뤼스플랑크노스'(*)는 '많다'는 의미를 가진 '폴뤼스'(*)와 '가장 깊은 부분' 혹은 '감정의 자리'를 의미하는 '스프랑크논'(*)의 합성어로 '온 마음 전체'를 나타낸다(빌 2:1). 이것은 타인의 고난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동정'을 뜻한다. 또한 '긍휼'에 해당하는 '오이크티르몬'(*)은 '자비'와 구별없이 사용되나 그보다 더 특수한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눅 6:33).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고난에서든지 인내하는 자를 온전히 이해하셔서 함께 하시는 것은 물론 예비된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Vincent, Lenski, Blue, Gibson, Martin).

성 경: [약5:12]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인내에의 권면]

본절은 마 5:34-37에서 맹세를 금지한 산상수훈을 반영한 것으로 맹세 자체에 대한 금지보다는 무가치하게 맹세함으로 이웃을 속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말것을 강조한다.

⭕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 맹세하지 말고 - 야고보는 먼저 맹세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본문의 '맹세'는 사람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순간의 법정적인 맹세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무심코 남발하는 맹세를 의미한다(마 5:34-37, Burdick, Tadker, Martin). 한편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는 바라새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신성모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쉽게 남발했던 저들의 가벼운 맹세를 암시한다(마 5:33-36). 실제로 유대인들은 맹세를 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맹세의 대상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경히 여겼다(마 23:16-18). 야고보는 이렇듯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소망하지 못하여 오는 조급함 속에서 '맹세'를 남발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강하게 권고한다.

⭕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 본문은 맹세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제시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긍정과 부정을 분명히 밝힘으로 거짓 맹세를 이용한 모든 외식(外飾)을 피하라는 권면이다(마 5:37, Manton, Tasker, Mayor). 즉 야고보는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되이 일컫는 참람된 죄악뿐만 아니라, 단순한 언어 생활에서도 무분별하고 주저없이 서약하는 모순과 위선을 피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 5:33-36)는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으로 마음의 거짓을 맹세로 은폐하는 위선을 조심하고 단지 진리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분명히 드러냄으로 모순과 위선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Ropes, Gibson, Moo).

성 경: [약5:13]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 야고보는 본절에서 '고난'과 '기도'를 연결시켜 설명함으로 앞절에서 교훈한 헛된 맹세를 하는 자가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함과 동시에 고난 가운데서는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함을 권면한다(빌 4:12,13). '기도할 것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스도'(*)는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 기도할 것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원리를 가져야 함을 시사한다(Robertson, Burdick, Calvin, Martin).

⭕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 본문의 '찬송할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살레토'(*)는 '줄을 잡아 퉁긴다'는 의미를 가진 '프살로'(*)에서 유래한 말로 구약성경에서는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한다'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는 단순히 '마음으로 찬미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15:9;고전 14:15;엡 5:19). 일반적으로 고난당할 때에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즐거워할 때에는 방종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야고보는 즐거워하는 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드려야 함을 권면한다.

성 경: [약5:14]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 '병든 자'의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연약한 자 곧 연약한 믿음이나 양심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롬 6:19;14:1;고전 8:9-12, Robertson, Blue, Manton). (2) 혹자는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린 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avids, Martin, Burdick, Adamson).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린 자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의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의 '장로들'은 '감독'이나 '목사'와 동일한 명칭으로(행 15:6,22;20:17;21:18;빌 1:1;딛 1:5,7;벧전 5:1-4) 교회의 대표를 의미한다(Calvin, Burdick, Mayor, Robertson). 병든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청해서 같이 기도해야 하며, 교회 지도자들은 병든 자를 방문하여 위로하며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한다(살전 5:14).

⭕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 '기름을 바르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이프산테스'(*)는 분사로서 문자적으로 '기름으로 문지르다'를 의미한다(Blue, Roertson, Burdick, Trench). 이렇게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사회에서의 공통적인 풍습으로서 의식적인 수단이라기 보다는 의술적인 수단에 가깝다(사 1:6;눅 10:34, Mayor, Ropes, Hayden, Manton, Tasker, Burdick). 한편 '기도할지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쿠사스도산'(*)은 헬라어 본문에서 주동사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문의 강조점이 '알레이프산테스'(기름을 바르다)보다는 '프로슈크사스도산'에 있음을 시사한다(Burdick). 교회의 지도자들은 병자를 방문하여 치유의 방편으로 의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병자의 나음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Manton, Tasker).

성 경: [약5:15]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 본절의 '기도'에는 '믿음의'라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는데 이는 병든 자를 치유하는 신유의 기적이 '믿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비록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여기에는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기도는 믿음으로 하여야 한다(1:6;마 9:22;막 9:29). 한편 '구원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세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신체적인 질병에서의 구원, 곧 질병의 치유를 가리킨다고 본다(Ropes, Oesterley, Manton, Burdick, Tasker). (2) 혹자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본다(VonZoden). (3) 혹자는 위의 두 견해를 모두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Clarke).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마 9:21;막 6:56). 왜냐하면 '주께서 일으키리라'는 진술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칸 하마르티아스'(*)는 조건문으로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다 할지라도 일부는 죄가 병의 원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신 28:22,27;막 2:5;요 5:14;9:2,Burdick). 또한 이러한 사실은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으로 병을 주신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고전 11:30). 설사 병든자의 질병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는 죄사함의 은혜를 유발하여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막 2:5).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죄(謝罪)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고 병든 자를 위해 믿음의 기도를 행하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성 경: [약5:16]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이러므로 -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연결 접속사 '운'(*)은 앞절에서 언급한 내용의 결론을 유도한다.

⭕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 본절에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바는 '죄를 서로 고하며','서로 기도하는 것'이다. '서로'는 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죄의 고백'이나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상호간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헬라어 '엑소몰로게이스데'(*)는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닌 '에크'(*)와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뜻하는 '호몰로게오'(*)의 합성어로 상호간의 죄의 고백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해성사의 근거라기보다는 도리어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된다(Robertson, Manton, Taylor).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 본문의 '의인'은 절대적으로 죄가 없는 의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죄가 많이 있어도 참되게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를 나타낸다(롬 3:10, Manton, Mayor, Burdick). 한편 '역사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구메네'(*)는 두 가지 경우 즉 수동태나 중간태로 해석될 수 있다. 수동태일 경우 기도에 역사하는 주체가 성령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갈 5:6;살후 2:7, Theophylact, Abbott, Oecumenius), 중간태일 경우는 기도 그 자체가 역사하는 주체임을 나타낸다(Alford, Robertson, Mayor, Lenski). 수동태일 경우 기도하는 행위자가 전적으로 배제되어 전후 문맥과 부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중간태로 해석함이 더 타당한 듯하다.

성 경: [약5:17,18]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본문은 엘리야의 수많은 역사 가운데서 비를 멈췄다가 오게 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가 자연의 현상까지 변동시킨 사실을 드러내어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사실을 예증한다(왕상 17,18장).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 '성정이 같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모이오파데스'(*)는 '유사한'을 의미하는 '호모이오스'(*)와 '고난'을 뜻하는 '파도스'(*)의 합성어로 엘리야도 다른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나타낸다(왕상 17:11;19:3;행 10:26, Vincent, Blue). 이는 엘리야가 위대한 선지자로서 초능력적인 자질을 소유하여 비를 그치고 내리게 하는 역사를 행한 것이 아님을 시사함과 동시에 평범한 사람과 동일하게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적 존재인 것을 부각시켜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은 의인은 엘리야와 같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Burdick, Mayor, Moo).

⭕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 응답을 받은 역사를 나타낸다. '간절히 기도한즉'에 해당하는 헬라어 구문 '프로슈케 프로세윅사토'(*)는 문자적으로 '기도로 기도했다'는 전형적 히브리식 표현법으로 강조 구문이다(창 2:17;눅 22:15;요 3:29;행 4:17,Gibson, Tasker, Manton). 실제로 구약성경에는 엘리야가 기도할때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다고 묘사되어 있다(왕상 17:1;18:42). 이러한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을 받아 비를 그치게도 하고 내리게도 하였다. 한편 본문에서는 한발(旱魃)의 기간에 대해 '삼 년 육 개월'이라 하나 왕상 18:1에는 '제 삼 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3년 6개월이 가뭄의 전체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왕상 17장에 기록된 사건들의 전체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해결된다(눅 4:25).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야고보가 왕상의 내용을 직접, 간접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Lenski, Manton, Macknight).

성 경: [약5:19]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내 형제들아 - 이는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호칭으로 수신자들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낸다(1:2;2:1,5). 야고보는 본절에서 친근한 호칭으로 마지막 권면을 행하고 있다.

⭕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 '미혹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라네데'(*)는 '헤매다'라는(마 18:12) 의미의 '플라나오'(*)에서 유래한 말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적 형태와 당시의 정황을 잘 묘사해 준다. 당시에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유대교나, 이방의 신비 종교 혹은 이교 철학으로 되돌아가는 자가 많았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처럼 구원의 길에서 떠나 방황하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으로 서로 권면하여 다시 돌아와 복음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면한다(요일 2:26).

성 경: [약5:20]

주제1: [종말과 그리스도인의 삶]

주제2: [기도와 교제에의 권면]

⭕ 너희가 알 것은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스케토'(*)는 '알라'는 의미를 가진 '기노스코'(*)의 능동태 명령형으로 본절이 앞절의 조건절에 대한 귀결절로 강한 명령임을 나타낸다.

⭕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 '그 영혼'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미혹된 자를 돌아서게 하는 권고자의 영혼으로 해석한다(Erasmus, Hammond, Hoffmann). (2) 혹자는 미혹된 자의 영혼으로 해석한다(Calvin, Zahn, Mayor, Ropes, Manton). (3) 혹자는 잠 24:24,25을 근거로 하여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내포한다고 해석한다(Luther). 세 가지 견해 중 두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는 것은 타인을 미혹된 것에서 돌아오게 하는 인간적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혹되어서 하나님을 떠난 자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있는 자였으나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영적 죽음에서 구원을 얻어 영적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계 20:6, Manton, Burd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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