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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주석

성 경: [벧후1:1]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인사말]

⭕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 -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자신을 두 가지 호칭으로 소개하고 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스'(*)는 당시 사회에서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는 '노예'를 가리킨다. 본문은 베드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존재이며 동시에 수신자들과 동등한 존재임을 나타낸 것으로 베드로 자신의 겸손을 시사한다(Blum, Green). (2)사도.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문자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베드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위임받아 행사하는 대리인임을 시사한다(Lenski, Blum). 이 것은 베드로 자신의 사역과 권위를 강조한 표현이다(Kelly,Bauckham). 한편 '시몬 베드로'로 번역된 헬라어 '쉬메온 페트로스'(*)에서 '쉬메온'은 '쉬므온'(*)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며, '페트로스'는 아람어에서 유래한 '케파스'(*)와 동일한 것으로 '반석'을 의미하는 별명이다(서론 참조).

⭕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본문이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두 위격(位格)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Plumptre, Mayor, Windisch,Kasemann). (2) 혹자는 '하나님과 구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것으로 한 위격(位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Bauckham, Blum, Bigg).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과 구주'는 하나의 관사인 '투'(*)에 의해서 수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란 칭호는 비록 드물게 사용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칭호로 사용되고 있으며(요 1:1,18;20;28;히 1:8,9) '구주' 또한 기독론적 칭호로 사용되고 있다(11절;2:20;3:2,18;눅 2:11;요 4:42; 행 5:31;13:23;엡 5:23;딤후 1:10;딛 1:4;2:13;3:6). 한편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동일하게 보배로운'과 연결된 것으로 (Bigg,Bauckham) 믿음을 힘입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라기 보다는 (Spicq, Stoger)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공정함을 의미한다(13절;2:5,7,8,21;3:13, Green, Bauckhanm, Bigg).

⭕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 - '동일하게 보배로운'의 헬라어 '이소티몬'(*)은 '이소스''(*, '동등한')와 '티메(*, '명예')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같은 특권을 가진'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우리와'와 대조된 것으로 혹자는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대조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나(Plumptre, Mayor, Leaney)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과 사도가 아닌 그리스도인을 비교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Moffatt, Spicq, Zahn,Lumby,James). 왜냐하면 본서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Bauckham). 따라서 본문은 본서의 수신자들이 베드로와 같은 사도들과 동등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원에 동참하였음을 시사한다.

성 경: [벧후1:2]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인사말]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 본절의 '앎'은 일반적인 지시를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가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에피그노시스'(*)이다. '에피그노시스'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구원을 얻는데 꼭 필요한 결정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말하는 반면에(3절;2:20, Bultmann), '그노시스'는 기독교적 생활 과정에서 획득되어지고 발전되어지는 지식을 의미한다(5절,6절;3:18,Bau-ckham).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에피그노시스'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보다 깊고 참된 지식을 소유하게 되며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된다(Green).

성 경: [벧후1:3]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 '신령한 능력'의 헬라어 '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는 '희한한 능력'(행 19:11)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을 말한다(수 22:22;시 50:1;사 9:6;겔 10:5). 그러나 '테스 데이아스 뒤나메오스'를 수식하는 '그의'가 가장 가깝게 언급된 것이 '그리스도'이며 1절에서 '우리 하나님'이란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사용된 것으로 보아 본문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Green, Bauckham, Bigg).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제2위격이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같은 신기한 능력을 소유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공유한 자이심을 시사한다(Fornberg, Bauckham).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게 된다. '생명'은 인간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 즉 예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미하는 것으로(요 1:4;요일 5:11, 12) '영생'을 암시한다. 또한 '경건'은 변화된 자가 지니게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행 3:12;딤후 3:5)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순종함으로 누리게 되는 도덕적인 생활을 시사한다(Bauckham).

⭕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영광과 덕'의 헬라어 '독세 카이 아레테'(*)는 신적인 능력의 현시로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LXX 사 42:8, 12) 본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광과 덕'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회개토록 역사하신다(Blum). 한편 본서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므로(8절;2:20) '부르신 자'는 하나님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Bigg, Green, Bauckham).

성 경: [벧후1:4]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의 일들 즉 그리스도의 재림(3:4,9,12), 새 하늘과 땅(3:13)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11절)에 참여케 되는 것을 가리킨다.

⭕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 '피하여'의 헬라어 '아포퓌곤테스'(*)는 부정 과거 분사로서 '피한 이래로'라는 의미이다(Bigg, Blum).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후부터 죄와 정욕과 거리가 멀어지며 피하게 된다

⭕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스데데이아스 코이노노이 퓌세오스'(*)에서 헬라어 '데이아스'(*, '신에게 속한')는 성경적 용어라기보다는 헬라 사상에 따른 이교적 표현이다(Richardson). 베드로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그의 논쟁을 전개시키고 있다(Kasemann). 그러나 본문은 이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 이것을 잘 계발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거스리게 되면 악인(惡人)이 된다는 사상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참된 연합을 통해서 성령의 교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됨을 시사한다(Bigg, Green).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거듭나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며(요 14:16,17,26), 장차 나타날 영광과 축북에 참여하게 된다(롬 8:18).

성 경: [벧후1:5,6,7]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이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아우토 투토'(*)는 문자적으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for this very reason)라는 의미로 3,4절 전체를 받는다(Bauckham).

⭕ 더욱 힘써...공급하라 -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서 얻은 구원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모든 영적 자원을 주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 자원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성숙을 향하여 진보해 가야함을 권면한다. '공급하라'의 헬라어 '에피코레게사테'(*)는 무대 공연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용된 것으로 풍부하게 공급하고 지원하라는 의미이다(Green, Blum).

⭕ 믿음에 덕을 -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엡 2:8,9)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며 세상과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4절). 따라서 이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밑바탕이 된다(롬 5:1; 히 11:1;유 1:20). 베드로는 이 '믿음'에 '덕'을 공급하라고 권면한다. '덕'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레텐'(*)은 '디카이오쉬네'(*, '의')와 동일한 것으로 도덕적인 탁월성을 의미한다(Bauckham,Green).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덕을 말하는 것으로(3절)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음으로 도덕적 탁월성을 배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빌 4:8;벧전 2:9).

⭕ 덕에 지식을 - '지식'은 기독교인이 덕있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 또는 '통찰력'을 말한다(롬 15:14;고전 13:2;벧전3:7, Bauckham).이것은 점진적으로 획득되어진다.

⭕ 지식에 절제를 - '절제'는 고대 그리스 사상과 헬레니즘의 철학적 윤리학에서 높이 평가되는 덕목이다. 신약성경에서 절제는 육체적 욕망의 지나친 방종과 이방 세계의 성적 남용(濫用)에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에 속한다(갈 5:23).

⭕ 절제에 인내를 -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리라고 소망하는 가운데 고난과 악에 대항하여 용기있게 지속적으로 참는 것을 가리킨다(Bauckham). 이것은 믿음을 지속하는 능력이며 세상 체계의 압박에 저항하는 능력으로(눅 8:15;롬 5:3;히 12:2) 환난에 직면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견디어서 끝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 인내에 경건을 - '경건'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헌신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Green, Blum). 특별히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경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도덕적 생활방법을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

⭕ 경건에 형제 우애를 - '형제 우애'는 베드로전서에서도 이미 언급되었으며(벧전1:22;3:8) 또한 신약성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덕목이다(롬 12:10; 살전 4:9;히13:1; 요일 5:1). 이방 세계에서는 이 단어가 혈육을 나눈 가족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믿음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Bauckham).

⭕ 형제 우애에 사랑을 - '믿음'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 '사랑'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모든 덕목들 가운데 으뜸이며(고전 13장), 사랑의 본체인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세상에 보여주신 것으로 남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다(요 3:16;롬5:5; 요일 3:16;4:8). 이와 같은 덕목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 맺어야 하는 열매로서 바울이 언급한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하나님의 사람'(딤전 6:11)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내용이 유사하다. 위의 모든 덕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점진적으로 얻을 수 있으며, 각 덕목은 다른 덕목들과 상호 관계 속에서 생성되며 발전된다.이러한 덕목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사랑으로 완성되어가야 한다(Bengel).

성 경: [벧후1:8]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목적이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Mayor, Reicke, Green, Spicq). (2)혹자는 그리스도을 아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덕목들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Bigg, Kelly, Bauckham).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시며(3절) '알기에'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피그노신'(*)이 2절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리스도인의 전생활에 기본이 되는 구원얻는 지식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Bauckham).

⭕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게으르지'(*,아르구스)와 '열매 없는'(*, 아카르푸스)은 본서에서 동의어로 사용된다(Bauckham). 이 두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있어서 윤리적 노력과 관계되어 쓰여졌다. '게으름'은 '행함이 없는 믿음'(약 2:20)을, '열매없음'은 윤리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삶을 나타낸다(마 3:8;막 4:20;갈 5:22;골 1:10;약 3:18).

성 경: [벧후1:9]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 5-7절에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묘사이다. '소경'의 헬라어 '튀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진리 보기를 거절하거나 보지 못하는 자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되어졌다(마 15:14;23:16;눅 6:39;요 9:40,41;롬 2:19). 또한 '원시치 못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오파존'(*)은 '근시'라는 의미로 본절에서는 '튀플로스'와 함께 결합하여 장님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Bauckham). 앞서 언급한 덕목들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의 빛을 잃어버려서 영적 안목이 어두워진 자들이다(계 3:17, Bigg). 이들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인간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

⭕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 본절은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침례에 대한 언급이다. '옛'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라이'(*)로 미루어 볼때 베드로는 본절에서 과거에 행한 침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죄가 청산된 것을 잊어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자들을 전제로 언급하고 있다(Blum, Bigg). 또한 '깨끗케하심'의 헬라어 '투 카다리스무'(*)도 역시 정결케 하는 침례를 가리킨다(행 22:16;고전 6:11;엡 5:26;딛 3:5). 본래 침례는 죄 용서와 더불어 이제까지의 죄된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믿음을 침례에만 국한시킨 나머지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옛 죄악의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있다(2:20). 이에 베드로는 죄악된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경고하면서 침례가 죄를 씻을뿐만 아니라 더이상 죄에 머물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상기시킨다(Bauckham).

성 경: [벧후1:10]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본절은 5절의 반복으로 부지런히 애쓰라는 권면이다. '굳게 하라'의 헬라어 '베바이안...포이에이스다이'(* ... )에서 '베바이안'은 의사(意思)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법률 용어로 무엇을 '확실히 한다'는 의미이며, '포이에이스다이'는 중간태로서 수신자 스스로가 해야하는 일임을 시사한다(Blum, Bauckham, Bigg). 한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부르심'(벧전 1:15;2:9,21;3:9;5:10)과 '택하심'(벧전 1:2)에 관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Richardson). 그런데 베드로가 본절에서 '부르심'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인간의 응답에 강조점을 두기 위함이다(Blum). 즉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Blum, Bauckham).

⭕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 '실족'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타이세테'(*)는 원래 말(馬)이 '디딤돌에서 미끌어지는 것'을 나타낸다.'프타이세테'에 대해서 혹자는 '범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롬 11:11;약 2:10;3:2,Blum, Green). 그러나 본절의 '프타이세테'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원얻지 못하는 것을 시사한다(유 24:Bigg, Richardson, Kelly, Lenski, Grundmann).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영원한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노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Bauckham).

성 경: [벧후1:11]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영적 성장의 요청]

⭕ 이같이 하면...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주시리라'의 헬라어 '에피코레게데세타이'(*)는 7절에 언급된 '공급하라'와 같은 단어로, '넉넉히'(*, 플루시오스)와 함께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대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도록 하실 것임을 시사한다(Bauckham). 비록 베드로가 앞절에서 궁극적인 구원을 얻는데 인간의 노력이 필요함을역설하였으나 본절에서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3절).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묘사하지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진술한다(눅 1:33;계 11:15).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본 단락(3-11절)에서 언급된 기독론적 관심과 일치시키기 위함일 것이다(Bauckham). 이러한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으로(눅 22:30)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며(마13:41;16:28;눅 23:42;요 18:36) 미래에 주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을(3:13) 가리킨다. 한편 '우리 주 곧 구주'의 헬라어 '투 퀴리우 헤몬 카이 소테로스'(*)는 문자적으로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이신'이란 의미로 기독론적 칭호이다(2:20;3:2,18).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주(主)이시다.

성 경: [벧후1:12]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 '진리'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갈 2:5,14;5:7;엡 1:13;골 1:5;살후 2:12,13;딤후 2:15;약 1:18;요이 1:4) 전반적인 사도적 가르침을 시사한다(Green, Blum, Bauckham). 한편 '섰으나'의 헬라어 '에스테리그메누스'(*)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형제를 굳게 하라'고 권면할 때 사용하신 단어와 동일한 것으로(눅 22:32) 수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안에서 가르침을 받고 굳게 서있기 때문에 거짓된 가르침의 위험에 쉽게 넘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사도적 진리를 바탕으로 굳게 선 그리스도인들임을 인정하고하고 있다.

⭕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이미 진리에 서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권고하는 이유가 수신자들로 하여금 항상 진리를 상기하고 부지런히 애써서 진리 가운데 굳게 서있게 하기 위함임을 역설한다.

성 경: [벧후1:13]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 '장막'의 헬라어 '스케노마티'(*)는 문자적으로 고대 근동의 유목 민족들이 임시적인 거주지로 사용했던 '천막'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이것은 '육체'를 가리키므로 본문은 '목숨이 살아 있을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는 베도로가 자신의 죽음이 곧 다가올 것을 예감하였음을 암시한다(14절,Blum, Bauckham, Green).

성 경: [벧후1:14]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 본절은 베도로가 자신의 죽음의 임박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지시는 요 21:18을 가리킨다(Plumptre, Bigg, Lumby, Green, Zahn, Bauckham,Lenski). 요 21:18은 예수께서 친히 베드로가 노년에 당할 순교에 대해서 예고하신 것으로 베도로는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하기 이전에 이미 그 예고를 알고 있었으며(Robertson) 당시 초대 교회에서도 요 21:18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가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대부분 광범위하게 알고 있었다(Bauckham). 따라서 요 21:18의 베드로 순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은 그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암시가 되며 본서의 수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 베드로는 그의 죽음이 가까와옴을 깨닫고 있었다. 여기서 '임박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키네'(*)는 베드로가 사용한 독특한 용어로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2:1). (1)'곧'(사 59:7), '신속한'(약 1:19)을 의미한다(Bauckham). (2) '갑작스런'을 의미한다(2:1, Green, Zahn,Plumptre). 이 두 가지 의미 중 어느 한 견해를 선택하기는 어려우나 두 가지 의미 모두가 베드로의 죽음의 절박함을 표현한 것으로 그의 순교의 임박함을 암시한다(Meyer,Bengel, Bigg).

성 경: [벧후1:15]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하노라 - '이런것'은 베드로가 수신자들에게 행한 '교훈'이나 '권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이런 것'이 미래 즉 베드로의 죽음 후에 주어진 권면을 가리키며, 마가가 베드로의 해석자로서 베드로의 설교를 근거로 마가복음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런 것'은 '마가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Irenaeus, Plumptre,Bigg, Mayor, Green). (2)혹자는 '이런 것'이 본서 자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nopf, Chaine, Windisch, Kelly, Grundman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 내에서 마가복음과 상관 관계를 맺는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본서전체와 12-15절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Bauckham). 따라서 베드로는 본서에서 언급한 모든 교훈과 권면이 자신의 죽음 후에도 보존될 뿐만 아니라 수신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상기되어서 수신자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 굳게 설 수 있게 될 것임을 확신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나의 떠난 후'는 '나의 죽음 후'를 의미한다. 여기서 '떠난'의 헬라어 '엑소돈'(*)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하며 은유적 표현으로 '죽음', '임종'을 시사한다(눅 9:31).

성 경: [벧후1:16]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 본서에서 '능력'과 '강림'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난다. '강림'의 헬라어 '파루시안'(*)은 일반적으로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4:3,27,37,39;살전 3:13;4:15;약 5:7,8;요일 2:28). 혹자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Spicq, Chase) 본절의 '파루시아'는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Bauckham, Green, Blum). 왜냐하면 베드로는 본 서신 전체에서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종말론적인 가르침 즉,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3:4,12). 한편 '능력'의 헬라어 '뒤나민'(*)은 '파루시아'와 연결되어 '영광'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마 24:30;막 9:1;13:26;눅 21:27,Bauckham). 그리스도의 능력은 재림하실 때 온 세계에 완전하게 드러나게 된다(마26:64;막 14:62;행 1:11;히 9:28). 그의 능력은 재림을 통해서 불법한 자와 적대자들을 심판하시고(살후 2:8;계 19:11-16) 그 나라를 온전히 완성하심으로(계 11:15-18)드러나게 된다.

⭕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자라 -'공교히 만든 이야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소피스메노이스 뮈도이스'(*)는 '지어낸 말', '허구', '우화', '신화', '거짓말'을 뜻하는 고대 용어로 신약성경에서 복음의 진리와 대조되어 항상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딤전 1:4;4:7;딤후 4:4;딛 1:14). 베드로는 사도들이 전하여준 종말론적 교훈들이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강력하게 변호한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사도들의 종말론적 권면이 수신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여 도덕성을 유지시키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종말론적 권면을 사실적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우화적으로 해석하였다(Bigg, Bauckham, Blum). 그래서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강력하게 반박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재림등 사도들이 전하여 준 교훈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주장한다. 한편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위엄을 친히 보았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위엄'은 신적인 권위와 장엄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베드로가 목격한 예수의 변화산상 사건을 가리킨다(Green, Bigg).'친히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프타이'(*)는 신비 종교들에서 사용된 전문 용어로서 가장 높은 경지의 신비를 경험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Kelly,Green).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와 어휘들을 채택하여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반박하고 있다(Blum).

성 경: [벧후1:17]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 '지극히 큰 영광'은 변화산상 사건의 구름과 연결된 히브리적 표현으로서(출 16:10;민 14:10;겔 1:4)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는 표현 방법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변화산상의 사건은 물론(마17:1-9;막 9:2-10;눅 9:28-36) 구약의 시내산 사건(출 24:16)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본절에서 베드로는 시내산 사건이 아니라 변화산상 사건의 독특성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베드로는 변화산상 사건에서 계시된 예수를 모세와 같은 종말론적 예언자로 본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왕이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보고 있다(Bauckham, Blum).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내 아들'은 유대주의에서 메시야에 대한 진술로 해석한 시 2:7의 인용이다. 시 2편에 의하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는 '아들'이라 불리며(7절) 시온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8,9절). 초대 교회는 이런 시 2편을 예수께 적용시켜 예수께서 재림 때에 종말론적인 심판을 행사할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내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가페토스 무'(*)는 메시야의 칭호로서 구약성경에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유일한자' 혹은 '독자'라는 해석으로(창 22:2, 12, 16)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시사하며, 다른 하나는 '선택된 자'라는 해석으로 (사 42:1) 예수께서 메시야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선택받은 자이심을 시사한다(Bauckham). 한편 '내 기뻐하는 자'는 사42:1의 인용으로 메시야 직분을 수행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선택하셨음을 시사한다(Green, Bauckham).

⭕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편 '존귀와 영광'의 헬라어 '티멘 카이 독산'(*)은 일반적으로 한 짝을이루고 있는 단어이다(시 8:5;히 2:7, 9;벧전 1:7). '존귀와 영광'에 대한 해석은 세가지이다. (1)혹자는 예수의 변형된 모습의 영광스러움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igg,Windish). (2)혹자는 하늘 음성에 의하여 예수에게 주어진 '위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rundmann, Chase, Muller). (3)혹자는 '존귀'는 음성을 통해서 예수에게 주어진 위엄을 의미하며, '영광'은 가시적인 변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ayor, Wand,Green, Kelly). 그러나 '존귀와 영광'은 엄밀하게 구별할 수 없는 이중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예수의 변형된 모습의 영광스러움에 아들이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시는 존귀를 부여하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Blum).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한 영광을 입으셨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왕으로서 종말론적인 심판과 통치를 수행할 임무와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암시한다(Bauckham).

성 경: [벧후1:18]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거룩한 산'은 구약성격에서 시온 산을 의미하나 역사적으로 시온 산에서 예수께서 변형하셨다는 근거가 없다(Green). 그래서 오늘날 그 산이 구체적으로 어느 산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대부분 헤르몬 산이나 다볼 산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그 산이 어느 산이든지 간에 베드로가 그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부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산에 영광 가운데 임하셨고 예수의 신적 영광이 그 산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Bigg).

성 경: [벧후1:19]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 본절에서 '더 확실한 예언'은 구약 전체에 나타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의미한다(Blum,Bauckham, Spicq, Kelly, Grundmann). 베드로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들이 자신들이 체험하고 전하고 행한 일들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변화산상 사건이 구약의 예언자들이 미리 예상했던 예언의 성취로서 미래에 나타날 파루시아(재림)를 확실히 보증해줌을 진술한다(RSV, NIV, Bauckham). 한편 베드로는 '예언'을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에 비유한다. '어두운 데'는 빛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의미한다(사 9:2;엡 6:12). 그 예언의 말씀은 등불로서(시 119:105)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Blum).

⭕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 '날'은 재림의 날을 가리키며(Blum, Green)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계 22:16). 따라서 '날이 새어 샛별이...떠오르기 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를 의미한다. 한편 '너희 마음에'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본절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일어나는 계몽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ptre, Spicq, Grundmann, Kasemann). (2)혹자는 본절이 종말론적인 진술이나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chelkle, Kelly, Green). (3)혹자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재림의 때에 초래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lum, Bauckham).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성 경: [벧후1:20]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베드로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언들을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사사로이 풀 것'의 헬라어 '이디아스 에필뤼세오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1)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사람이 개인적으로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NIB, RSV, KJV,Blum, Bauckham). (2)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예언자 자신의 해석에 의한 것이 아니다(Calvin, Plumptre, Lumby, Green, NIV).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베드로는 당시 거짓 교사들이 성경을 임의로 그릇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2:1;3:16).

성 경: [벧후1:21]

주제1: [성도의 윤리적 삶]

주제2: [믿음의 근거 제시]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이 사사로이 해석되지 않아야 되는 근거로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제시한다.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베드로의 진술은 성령의 이중적인 저작권을 암시한다. 즉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영감을 통해서 성경 기록자에게 오류가 없는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고전 14:37;딤후 3:16;딤후 3:10-17 주제 강해 '성경 영감론' 참조). 구약의 제자들도 역시 자신들의 예언이나 말씀이 자신의 뜻이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삼하 23:2;렘 1:7,9). 그러나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재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선지자 자신이 표적이나 꿈, 환상을 통하여 지어낸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16절). 베드로는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본절에서 구약성경의 예언에 대한 신적 기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 경: [벧후2:1]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

⭕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 '민간에'의 헬라어 '엔 토 라오'(*)는 문자적으로 '사람들 사이에'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롬 15:11;유 1:5). 한편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과는 달리(1:21),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하는 자들로서(신 18:20;렘 14:14;23:21,32;겔 13:2-7) 하나님의 계시적인 뜻보다는 백성들의 기대에 맞게 거짓 예언을 일삼는 자들을 시사한다(렘 4:10;6:14;14:13,15;23:17;27:9,16-8;겔 13:10,Bauckham). 베드로는 수신자들 사이에 '거짓교사'들이 있음을 논증하기 위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짓 교사'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일어났었나니'의 헬라어 '에게논토'(*)는 부정과거로 거짓 선지자들이 생겨난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나타내고 있다(Lenski).

⭕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 '선생'은 '교육자'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지도자'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비교함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그들의 특성을 밝히며 경계시키고 있다(Bauckham, Green). 한편 '있으리라'의 헬라어 '에손타이'(*)는 미래 시제로 '거짓 교사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계승하여 분명히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Lenski, Robertson, Cranfield, Green).

⭕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 '이단'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멸망케 할 이단'이라는 말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함을 나타낸다. '가만히 끌어들여'는 함께 들여와 비밀리에 퍼뜨린다는 의미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직접 미혹하는 것과는 달리 거짓 교사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미혹할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고후 11:13-15;갈 2:4;유 1:4, Blum, Lenski, Green, Reicke).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 '사신'의 헬라어 '아고라산타'(*)는 '아고라조'(*, '구속하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권적인 인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로(삼하 7:23), '거짓 교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구속 사역을 행하셨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意圖的)으로 부인하려는 자세를 가리킨다(3:5;막 10:45;딤전 2:6;계 5:9, Blum,Green, Alford).

성 경: [벧후2:2]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

⭕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 '호색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반복되는 성적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방 종교들이 갖는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거짓 교사들은 이방 종교에서 우상 숭배를 하며 성적 방탕에 빠지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미혹하여 집단적으로 타락한다.

⭕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 '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호도스'(*)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로(행 9:2;19:9,23;24:14,22) '진리의 도'는 교리가 아니라 윤리적인 삶의 양태를 나타낸다(Grundmann, Bauckhan, Blum). 거짓 교사들의 부도덕하고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롬3:23,24;딤전 6:1).

성 경: [벧후2:3]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

⭕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 '지은'의 헬라어 '플라스토이스'(*)는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언급되는 표현으로'목적 성취를 위해 조작한다'는 의미이다(Bigg, Mayor).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교리나 논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미혹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와 이익을 채우려 한다(딛 1:11;딤전 6:6;유 1:16)

⭕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 '심판'과 '멸망'은 하나님을 거스리고 자신의 배만 위해서 사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내려질 심판의 명확성을 시사한다(Lenski). 또한 '지체하지 아니하며'와 '자지 아니하느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깨어 계시사 거짓 교사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거짓 교사들의 죄악된 행위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성 경: [벧후2:4]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본절부터 10절까지는 의롭고 공평한 심판에 대한 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호 데오스...우크 에페이사토'(*)는 가정문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시행되었음을 뜻한다. '범죄한 천사'는 아담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들을 가리킨다(창 6:1-4;유 1:6;계 12:7;20:1-3).

⭕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 '지옥'의 헬라어 '타르타로사스'(*)는 헬라 신화에서는 반역하는 신들이 형벌을 받는 곳이었으나 베드로는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특정한 장소로 언급한다(유 1:6;에녹서 10:4;54:4,5). 한편 '어두운 구덩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푸(*)는 문자적으로 '흑암의 쇠사슬' 혹은 '어두움의 결박'(유1:6)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결박당한 모습을 나타낸다(Green,Cranfield, Lensk, Gibson).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최후 심판을 기다리면서 고통 중에 기다린다는 종말 사상은 구약성경과(사 24:21, 22) 다른 사도들에 의해 이미 언급되었다(요 16:13;고전6:3;계 20:7-10).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지옥에 결박하여 두시고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성 경: [벧후2:5]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은 물론 6,7절에도 '카이'(*, '그리고')가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실례가 계속됨을 나타낸다(유 1:5-7, Cranfield,Lenski).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을 의미하나(Bauckham), 문맥상 노아 시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 시사한다. 베드로는 노아시대의 홍수를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현재나 미래의 악한 것들을 남김없이 심판하실 것임을 강조한다.

⭕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 '의를 전파하는'은 바울이 말하는 법정적 개념에서의 의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나타낸다(1:1). 한편 '노아와 그 일곱 식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그도온 노에'(*)이다. '오그도온'은 문자적으로 '여덟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노아가 여덟번째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여덟 식구를 나타낸다. 실제로 노아는 여덟번째가 아닌 첫번째로 방주에 들어갔다(창 6:9;8:18, Bauckham, Lenski). 베드로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구원받은 수가 적음과 심판의 명확성을 나타내고자 한다(Gibson, Bauckham, Reicke).

⭕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 아세본'(*)은 무관사 여격으로 노아 식구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세상이 죄로 가득 차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노아당시 죄악의 보편성(普遍性)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낸다(Green).

성 경: [벧후2:6]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 베드로는 계속해서 창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예를 들어 불심판에 대해 언급한다(3:6,7;유 1:7). '성'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레이스'(*, '도시들')는 단지 '성'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유황과 불로 심판하셨음을 나타낸다(창 19:24-28;유 1:7). 한편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어구는 오직 70인역에만 언급되는 것으로(LXX 창 19:29) 후세에 불의한 자들을 위해 미리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Blum).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여 주변이 온통 재로 덮인 것과 같이 실제로 온 성이 재로 덮였다.

⭕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경건치 아니할 자들'은 '경건치 않는 일을 행하는 자들' 곧 '배도자나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패역한 거짓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본이었다. '본'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한 그의 진노가 모든 세대에 알려지기를 원하셨음을 암시한다.

성 경: [벧후2:7]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무법한 자'의 헬라어 '아데스몬'(*)은 부정 접두어 '아'(*)와 '본성' 혹은 '자연적 양심의 법'을 의미하는 '데스모스'(*)의 합성어로 인간의 본성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음란한 행실'은 변태적 성욕으로 인한 반복되는 호색적 행위를 가리킨다(2절;창 19:4-11;벧전 4:3, Lenski,Robertson). 한편 구약성경에서 '롯'은 세상적인 죄악에 빠져 있었던 인물로 언급된다(창 13:10-14;19:6,8,16,33-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롯을 '의로운 자'로 언급하는 것은 외경의 전승을 따른 것으로(지혜서 10:6, Blum, Green, Bauckhan) 아브라함에 비해(창 13:1-13)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 비해 의로웠음을 의미한다. 또한 롯을 의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호색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의 죄악에 빠져들지 않고 심령에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 구원을 받았다. 베드로는 롯의 구원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며 수신자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고 이단들에 대해 인내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Green, Reicke).

성 경: [벧후2:8]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어 롯이 불심판에서 구원받은 원인을 상술한다.

⭕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 '상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사니젠'(*)은 '바사니조'(*, '괴롭히다', '고통을 당하다')의 미완료 능동태로 지속적으로 내적 고통을 당함을 나타낸다(마 8:6,29;계 9:5, Robertson, Gibson,Bauckhan, Calvin). 롯은 날마다 죄악된 생활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의 백성들을 대하면서 스스로의 내적 고민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Bigg). 이것은 롯의 의로움을 나타내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불법한 자들 가운데 거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여 고통하는 롯의 모습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신 것이다(창 19:4-11;전 7:20).

성 경: [벧후2:9]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 본절은 4절에서 시작된 심판과 구원의 실례에 대한 결론이다.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무'(*)는 죄악의 상태에 빠지는 유혹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가 당하는 시련을 의미한다(눅8:13;행 20:19;벧전 1:6, Chaine, Kuhn). 당시의 사람들이 죄의 유혹과 대항해 싸웠으니(Bauckham)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는 경건한 자를 시련속에서 연단하시며 보존하신다(고전 3:13;10:13, Green, Clark).

⭕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 '형벌 아래 두어'의 헬라어 '콜라조메누스'(*)는 '콜라조'(*, '형벌을 내리다')의 현재 수동태 분사로 (행 4:21) 형벌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Bigg,Green, Lenski, Robertson). 이것은 사악한 자들이 현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비적 심판을 받고 있으며 최종적(最終的)인 심판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계20:11-15, Bauckham, Calvin, Blum, Spitta, Mayer, Kelly, Boobyer). 베드로는 본절에서 구원과 심판을 분명하게 대조하여 의인에 대한 구원과 사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다(Cranfield, Bauckham).

성 경: [벧후2:10]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오피소 사르코스'(*)는 관사가 붙지 않았으므로 '육체가 갖는 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신령한 속성을 따르지 않고 윤리적 죄악을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Lenski, Blum).

⭕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 '주관하는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Bigg, Weiss, Wiesinger, Lensi). (2)혹자는 악한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Schott). (3)혹자는 제도화된 교회의 장로들이 갖는 권위 즉 '교권'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Zahn). (4)혹자는 '정치 권력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Clark,Hofmann). 이러한 견해 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관하는 이'의 헬라어 '퀴리오테토스'(*)는 무관사로서 '주권의 속성'을 나타내어(골 1:16;엡 21) 온 주주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신다.

⭕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 '담대하고'는 '당돌함'을 의미하며(Lenski, Robertson) '고집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다데이스'(*)는 '아우토스'(*, '스스로')와 '헤도마이'(*, '즐겁게 하다')의 합성어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거만한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영광있는 자'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제국적이고 행정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한다(Calvin). (2)혹자는 교회 통치자들이라고 주장한다(Bigg). (3)혹자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Spitta, Kuhl, Alford, Blum, Green).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유 1:8). 거짓 교사들은 당돌하고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무시하고 업신여겼다.

성 경: [벧후2:11]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개역성경에는 비교 접속사 '호푸'(*, '이에 반하여')가 생략되어 있다. '호푸'는 앞절의 거짓 선생들의 행위와 천사들의 행위를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다.

⭕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고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 본문은 더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송사하지 않은 천사들과 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을 강하게 드러낸다(유 1:9;계 12:9, Alford, Chase, Gibson). 한편 본문의 '천사들'은 '미가엘'을 가리킨다(Cranfield, Bauckham). 이들은 다른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보다 강하다(계 12:9). 이렇게 강한 미가엘조차도 자신이 직접 훼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든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린다(유 1:9).

성 경: [벧후2:12]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필연적인 멸망을, 잡혀서 도살(屠殺)당할 짐승에 비유한다(계12:11-13). 거짓 선생들의 무례하고 거역하는 행위는 천사의 행동에 비하면(유 1:10) 아무런 생각이 없는 동물과 같은 것이다. 거짓 교사들을 비롯한 죄인들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적 진리를 잊은 채 다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롬1:24,25).

⭕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 거짓 교사들의 행동은 동물과 같이 근본적으로 이성 없는 무지의 소치이다. 사도 바울도 믿기 전에 행한 자신의 행동을 무지의 탓이라고 밝혔다(딤전 1:13). 이렇게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불법을 행하며 대적하여 멸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딤전 1:7, Clarke).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의 헬라어 '엔 테 프도라 아우톤 카이 프다레손타이'(*)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멸망 안에서 그들은 파괴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저희 멸망 가운데서'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교사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부패로'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Reicke). (2)혹자는 문자 그대로 저들의 멸망을 의미하여 멸망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lumptre,Lenski). (3)혹자는 '저들 자신의 부패스런 행위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Wand). 세 가지 견해 중 두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멸망 가운데서'가 '카이'(*, '그리고')라는 접속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거짓교사들은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결과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시사한다.

성 경: [벧후2:13]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남들에게 불의하게 행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속임을 당하고 보응을 받음을 의미한다(Cranfield, Green,Blum, Mayer). 이러한 예는 불의하게 예언하려다 멸망한 발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민24:11).

⭕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 '낮에'에 대해서 혹자는 '날마다'(Meyer, Alford, Auther)로 이해하고, 혹자는 '매일'(Oecumenius)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나 '낮 시간에'(Zahn, Bigg, Strachan, Blum)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연락'의 헬라어 '트뤼펜'(*)은 사치스럽고 자유 분방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눅7:25, Gibson).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일반적으로 밤에 이루어지나 거짓 교사들은 이들보다 더 악한 자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 '점과 흠'은 어떤 모양을 손상시키는 오점을 말하는 것으로(엡 5:27;벧전 1:19) 거짓 선생들의 불의한 행동을 가리킨다. 또한 '간사'는 '어리석음' 혹은 '속임'을 뜻한다(Robertson,G-reen, Lenski) .본절은 거짓교사들이 낮에도 밤처럼 향락(享樂)에 빠진 생활을 즐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모임에서도 역시 자신들의 술 취하고 음행하는 방탕한 행위로써 불의를 드러냄을 시사한다.

성 경: [벧후2:14]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음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음심'의 헬라어 '모이칼리도스'(*)는 문자적으로 '음녀' 혹은 '간음하는 여인'을 의미한다(마12:39;16:4;롬 7:3;약 4:4). 본문은 음탕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거짓교사들의 방탕한 생활은 전혀 만족이 없으며 그들은 지칠줄 모르는 육적인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악된 삶에 빠져 지내게 된다.

⭕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 '굳세지 못한 영혼들'은 본서의 수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3:16) 베드로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암시한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2)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의 미혹 가운데 있는 수신자들과 자신을 비교했음이 틀림없다(Green, Gibson). '유혹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 '꾀다', '미끼를 달다')에서 유래된 말로 (18절, 약 1:4) 거짓 교사들의 전형적인 속성을 시사한다(Gibson,Green, Lenski, Blum).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꾀어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동참하게 한다.

⭕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 '연단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귐나스메넨'(*)은 완료형 분사로 '체육으로 몸을 단련하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탐욕적인 생활이 이미 습성화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저주의 자식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식 표현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있도다'라는 의미이다(눅 10:6;엡 2:8; 5:8;살후 2:3;벧전 1:14, Blum,Lenski, Clark).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성 경: [벧후2:15]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탐욕을 '발람'의 예를 들어 책망한다. '바른 길'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의 도'(2절)를 가리킨다. 그리고 '발람의 길'이란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민 22:5-24:25) 부도덕한 것을 교훈한 역사적 사실(민 31:16;계 2:14)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의 탐욕과 불의에 대해 발람의 교훈을 예로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을 함과 동시에 거짓 교사들에게 멸망의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Blum, Reicke).

⭕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미스돈 아디키아스 에가페센'(*)은 문자적으로 '불의의 행위로 말미암는 삯을 사랑한 사람'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민22:22-24)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도록 미혹하였던 구약의 발람의 예를 통해서(민 31:16;유 1:11) 불의한 삯으로 거짓된 모든 욕망을 소유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지적한다(Calvin, Reicke, Green, Lenski).

성 경: [벧후2:16]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 발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불법'은 발락이 주는 불의의 삯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거짓으로 저주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긴 사실이다. 베드로는 발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 거짓으로 책망한 위선자였음을 나타내어 발람이 표리 부동한 거짓교훈을 전하는 죄를 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민 25:1-3;31:16;신 23:4;수 24:9;느13:1,2;계 2:14). 거짓 교사들의 죄는 이처럼 발람이 책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책망을 받을 것이다.

⭕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 본문은 발람이 책망받는 사건을 나타낸다. 본래 선지자의 직무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소욕(所欲)으로 인해 거짓예언을 함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 짐승 곧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다. 베드로는 나귀에게 책망받는 발람의 예를 거짓 교사의 경우와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행위가 짐승에게 책망받을 만큼 사악한 행위이며 '미친자의 행위'와 다를 바없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강조한다(Gibson, Clark)

성 경: [벧후2:17]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 '물 없는 샘'은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무익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는 물 없는 샘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물 없는 샘'(창 37:24;렘 14:3)은 물이 갈한자들에게 실망만 가져다 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의 교훈이 샘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는 물 없는 샘에 불과하다(마 12:43;눅 11:24;요 4:13,14). 한편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상적 교훈을 '안개'로 표현한다(Green, Lenski). '안개'는 마치 세상을 소유한 것처럼 세상을 자욱하게 덮고 있지만 광풍이 불면 한 순간에 걷힌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영적인 생명력을 주지 못하고(Bauckham) 일시적이며 견고치 못하다(막 4:37;눅 8:23;유 1:12, Blum, Green, Lenski).

⭕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 '캄캄한 어두움'의 헬라어 '호조포스 투 스코투스'(*)는 '지옥'이나(Blum) 사악한 자들의 종말적 운명을(Calvin, Green)나타낸다. 왜냐하면 '조포스'(*)는 특별히 '땅 속의 어두움'을 말하기 때문이다(Bag, Bauckham). 한편 '예비되어 있나니'의 헬라어 '테테레타이'(*)는 '테레오'(*,'유지하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영원한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계획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테테레타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이 하늘에 예비되었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마 22:13;벧전 1:7, Gibson, Robertson).

성 경: [벧후2:18]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개역 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의 이유임을 시사한다.

⭕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 '허탄한 자랑의 말'이란 허풍으로 부풀린 헛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엡 4:17) 거짓 교사들의 사상적 속임수의 속성을 잘 나타낸다(Kelly, Gibson, Green). 그들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유도한다.

⭕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이란 거짓 교사들은 물론 그들에 의해 미혹당한 이교도들을 가리킨다(Gibson). 이들은 이성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12절). 한편 '겨우 피한 자들'의 헬라어 '투스 올리고스 아포퓨곤타스'(*)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겨우 벗어난 자들로서 초보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Bauckam, Green, Blum). 거짓 교사들의 계략은 집요하여서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아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을 여지없이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Calvin,Reicke).

⭕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 '음란으로써'의 헬라어 '아셀게이아이스'(*)는 수단을 나타내는 복수 여격으로 '음란한 행위들로'를 의미한다. 이는 곧 '음란'이 이방인과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 속성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수단임을 뜻한다. 또한 '아셀게이아이스'가 복수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단순한 음란의 범위를 벗어나 육체를 이용한 온갖 종류의 음탕한 행위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Lenski, Robertson, Gibson, Reicke). 한편 '정욕 중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엔 에피뒤미아이스'(*)에서 전치사 '엔'(*, '안에')은 '습성'이나 '환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Gibson) 거짓 교사들과 저들의 유혹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의 삶이 정욕의 노예가 된 상태임을 시사한다(2절, 고전 6:12-20,Reicke).

성 경: [벧후2:19]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나 이들에게 미혹당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의 자유(롬 8:21)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고전 8:9;10:23;고후 3:17)를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갈 5:1;요 8:32) 자신들이 허탄한 가운데서 행하는 방종을 혼돈한다(3:15,16)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하면 온갖 율법과 육체에서 해방되어 윤리 생활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신앙이 깊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였다(18절).

⭕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 '종들이니'의 헬라어 '둘로이휘파르콘테스'(*)는 분사 구문으로 거짓 교사들이나 배교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처음부터 오해하여 멸망의 종의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비록 거짓 교사들이 입으로 자유를 준다고 떠벌려 미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하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할수 밖에 없다(Gibson, Bauckham, Green, Blum).

⭕ 누구든지 진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됨이니라 - 본문은 당시 흔히 있었던 상황을 묘사하여 거짓 교사들의 종말을 암시한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무조건 승리한 국가의 종으로 끌려 갔었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죄의 정복을 당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요 8:34). '종이 됨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둘로타이'(*)는 '둘로오'(*, '노예로삼다')의 완료 수동태로 이미 '종이 되어온 자'를 의미한다(롬 6:16;8:21).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기 이전부터 범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된 상태였음을 시사한다.

성 경: [벧후2:20]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만일 저희가 - '저희'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Bengel, Muller, Strachan).(2) 혹자는 본서의 수신자들로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Zahn). (3)혹자는 거짓 교사들이라고 주장한다(Cranfield, Meyer, Alford). 이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즉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배교자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1:1-3,8)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의 원천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Lenski). 한편 '피한'의 헬라어 '아포퓌곤테스'(*)는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과거에 이미 완전히 피하였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정한 지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방인 시절에 즐겨했던 죄악에서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 '다시...얽매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린 엠플라켄테스'(*)는 수동태 분사로 또다시 더러움에 속박되어 죄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14,18,Gibson, Robertson, Lenski).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된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의 미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이방인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악하여진다(마 12:45;눅 11:26;히 10:26)

성 경: [벧후2:21]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 '의의 도'는 '진리의 도'(2절) 혹은 '바른 길'과 같은 개념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의미하며(마 21:32) '거룩한 명령'은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적 규범이다(2절;막 5:1-7:29, Blum, Green,Lenski). 한편 '저버리는 것'의 헬라어 '휘포스트렙사이'(*)는 '되돌아 오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인 자가 그 도에서 돌이켜 배도한 것을 시사하며 '알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도를 접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배교자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내세워 더욱 패역(悖逆)해지며 고집스러워져 다시금 회개할 소망조차 잃어버리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2:20;3:18;히3:12-14;4:6; 10:26,38,39, Cranfield, Blum, Green).

성 경: [벧후2:22]

주제1: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주제2: [거짓 선지자의 특성]

⭕ 참 속담에 이르기를 - 베드로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다. '참 속담'은 '진실한 속담'이란 뜻으로 속담의 내용이 저들에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 이는 잠 26:11의 인용이다. 또한 사 56:10에도 유사한 비유가 언급되어 있다. 본절은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즉 죄악의 길로 되돌아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킨다.

⭕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 거짓 교사를 돼지에 비유하는 두번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오는 격언으로(Bauckham) '개'의 격언에서와 같이 과거로 되돌아 간 배교자들을 강조한다. 돼지가 씻어서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한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한다. 한편 '개와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고, 주님도 진리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을 비유할 때 사용하셨다(마 7:6). 베드로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가 배교하는 자들이 얼마나 죄악에 탐닉하기 쉬운가를 드러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계토록 권면한다.

성 경: [벧후3:1]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개역성경에는 '에데'(*, '이미')가 생략되어 있다. 이 단어는 본절의 '둘째편지'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서가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후 얼마되지 않아서 기록되었음을 나타낸다.

⭕ 사랑하는 자들아 - 본문은 베드로가 본서의 수신자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수신자에 대한 베드로의 깊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친근감을 시사한다. 한편 보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페토이'(*)는 호격이다.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호격을 사용하여 부름으로(8,14,17절)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Green, Morris, Gibson).

⭕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 본서가 '둘째 편지'라고 한다면 '첫째 편지'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본서가 본래 앞부분과 본장이 분리된 편지여서 '첫째 편지'는 본서 1,2장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otius, McNamara).(2) 혹자는 유다가 유다서와 본서를 썼으며,'첫째 편지'는 '유다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Robinson, Smith). (3) 혹자는 '첫째 편지'는 잃어버린 서신이라고 주장한다(Spitta, Zahn, Green). (4) 혹자는 베드로전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igg, Blum,Bauckham). 이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본서 서론 참조).

⭕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 본문의 '진실한 마음'의 헬라어 '에일리크리네 디아노이안'(*)은 문자적으로 '순전한 생각' 혹은 '순수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수신자들의 생각이 부도덕한 욕망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Bauckham). 한편 '일깨워 생각하게'라는 말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롭게 일깨우는 것을 의미한다(유 1:5). 이것은 본서가 수신자들로 하여금 이단사설에 빠지지 않고 과거의 진실한 마음을 갖도록 일깨워 순결하게 하기위해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

성 경: [벧후3:2]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곧...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 '곧'은 시간적 의미를 나타내는 부사가 아니라 본절이 1절의 연속임을 나타내주는 연결 부사로서 본절이 베드로가 수신자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임을 나타낸다.

⭕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 '거룩한'은 거짓 교사들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부인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1:19-21) 선지자들이 전하여 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영감으로 되었음을 시사한다(Cranfield, Green). 또한 '예언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이레메논'(*)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이 영구한 것임을 나타낸다. 수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단회적으로 주신 완료된 예언의 말씀을 통해 지금도 말씀하신다는 사실을(Mayor) 상기해서 이를 부인하는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대적하고 순수한 마음을 통해 지켜야 한다.

⭕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 -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의 헬라어 '톤 아포스톨론 휘몬 투 퀴리우카이 소테로스'(*)는 이중 소유격으로 '기원', '알림'을 나타내는 독특한 표현법이다(Mayor, Gibson, Morris). 이것은 '명하신 것'이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었으나 주님에게서 나왔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롬 1:2;유1:17)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기인한것임을 시사한다(Cranfield, Green, Bauckham). 따라서 본절은 구원의 진리를 예언한 선지자들과, 그것을 실제로 성취하신 그리스도와, 또 그것을 효과있게 해석하고 전파한 사도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Calvin). 한편 '너희 사도들'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당시 모든 사도들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속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Schelkle, Kelly, Schrage). (2)혹자는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전하여 준 사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pitta, Zahn, Bauckham, Cranfield, Mayor,Fornberg).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준 사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벧후3:3]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먼저 이것을 알지니 - '알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노스콘테스'(*)는 독립 분사 구문으로 베드로가 가르치고 전파할 때 흔히 사용한 문자의 형식이다(1:20, Bigg). 베드로는 이와 같은 독립 분사 구문을 앞서 언급한 예언자와 사도들의 말씀과 관련하여 경고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행 20:29-31;딤전 4:1,Cranfield). 먼저 수신자들은 사도와 예언자들이 전하여 준 말씀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말세에'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다(Blum).

⭕ 말세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프 에스카톤 톤헤메론'(*)은 문자적으로 '마지막 날들에'라는 의미이며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벧전 1:5,20;유 1:18, Green, Blum). 이처럼 신약시대를 '말세'라고 표현한 것은 오순절이후 세상의 심판 때 성취될 주의 재림을 기대함을 암시한다.

⭕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 '기롱하는 자들'은 미래의 종말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며(2:2,3,10, 13-18,Blum) '기롱한다'는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하는 교만한 언사를 나타낸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악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조롱하는 자들이다(Bauckham). 한편 '기롱하는 자들이...기롱하여'의 헬라어는 '엘류손타이...엠파이크타이'(*)로서 동사가 먼저 나오고 주어가 마지막에 놓여 있다. 본문의 이러한 구조는 기롱하는 자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을 시사한다(Morris, Bigg). 말세에 거짓 교사의 등장은 성경 전체에서 교훈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전하여 준 말씀을 잘 숙지하여 거짓 가르침에 대적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성 경: [벧후3:4]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 본절은 기롱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의 기롱은 '주의 강림' 즉,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림에 관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며(마 24:34) 승천하실 때 천사가 약속하였으며(행 1:11; 3:20)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굳게믿고 전파하였다(살전 4:15;5:1-11;살후 2:1;벧전 4:7). 따라서 주님은 약속이 어디 있느냐는 기롱자들의 주장은 교회를 허물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것이었다(Calvin).이러한 주의 재림에 대한 기롱자들의 조소는 마지막 날에 혀로 조소한 그 사실로 인해 멸망당할 것이다(사 5:18,19;렘 17:15;마 24:38;눅 17:26-30).

⭕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있다 하니 - 본문은 기롱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근거이다. '조상들'에 대해서 혹자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세대라고 주장하나(Kelly,Cranfield, Schelkle, Gilson) 구약의 조상들을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히 1:1, Blum). 왜냐하면 이것은 신약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요 6:31;행 3:13;롬 9:5, Green, Bigg). 한편 '잔다'는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막 5:39;요 11:11)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평안이 쉬며 부활을 기다리는 축복의 상태임을 암시한다. '그냥 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메네이'(*)는 '지속되다' 혹은 '계속되다'라는 의미로 갑작스런 이변이 일어나지 않고 과거나 현재처럼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타낸다. 기롱자들은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자연 법칙이 변하지 않고 규칙적인 것처럼 구약의 조상들도 수없이 잠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이 계속적으로 반복될 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 경: [벧후3:5]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이는...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저희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RSV, JB, NIV, Plumptre, Bigg, Mayor,Moffatt, Spicq). (2) 저희가 자기 주장을 위해서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Spitta,W-indisch, Schelkle, Reicke, Kelly, Schrag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베드로는 본절에서 기롱자들이 주장한 것 즉 세상이 불변하다는 사실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것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 본문은 창 1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창조사역이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창 1:3-25; 히11:3).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자연 질서가 그 자체로 충분하며 불변하다는 기롱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세상은 그 자체가 충분하여 불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좌우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본문은 세상의 창조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다. '하늘의 옛적부터 있는 것'은 창조때에 땅보다 하늘이먼저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창 1:1, Bauckham, Spitta). 물이 혼돈한 가운데서 윗 궁창과 아랫 궁창으로 구별되면서 땅이 드러났다(창 1:8-10). 본문에 나타난 이런 구체적인 창조 과정은 긍극적으로 창조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진행된 것을 묘사할 뿐 창조 자체에 있어서 다른 어떤 생각 즉 세상이 불변하다는 기롱자의 사상이 개입될 수 없다.

성 경: [벧후3:6]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 베드로는 본절에서 세상이 불변하다는 기롱자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홍수로 심판하신 사실을 예로 들어 반박한다. '이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 혼'(*)에서 관계 대명사 '혼'이 받는 선행사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늘과 땅'이라고 주장한다(Reicke, Marin). (2)혹자는 '하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James). (3)혹자는 5절의 '물에서 나와 물로'라고 주장한다(Spitta, Plumtre, Moffatt, Chaine,Sidebottom). (4)혹자는 '물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Bigg, Kelly, Green).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물에서 땅이 드러나게 하신 것처럼(5절) 물을 통해서 세상을 심판하셨다. 홍수를 통한 심판은 세상이 불변하다는 기롱자의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심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을 예표한다(시 47:2,3,8).

성 경: [벧후3:7]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이제 - 이것은 전후 문맥을 연결하는 연결사 '데'(*)로서 현재의 하늘과 땅과 재림 후에 전개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13절). 미래에 있을 심판에는 현재의 하늘과 땅이 불살라지고 새 하늘과 새땅이 약속된다.

⭕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 '그 동일한 말씀'은 5,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리킨다. 한때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물로 심판을 행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미래에 현재의 하늘과 땅을 심판할 것이다(Morris). 한편 심판의 방법은 과거에는 물이었던 반면에 미래에는 불사름이다. '불사르기 위하여'는 '불에 의한' 세상의 심판을 의미한다(Robertson).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경건치 않은 자들만 심판하시고 하늘과 땅을 남겨두신 것은 미래에 있을 불에 의한 심판을 위해서 간직하신 것이다. 이와같이 예정된 심판이 있을 미래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로서 현재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이는 불심판이 유보된 때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욕을 좇으며 기롱하는 불경건한 자들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잊으려 해도 끝내는 멸망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25:31-46; 고전 3:13;살후 1:8). 한편 '불 심판'에 대해서 혹자는 범신론적인 스토아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나(Origen, TDNT),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불 심판은 이미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예언 중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구약성경에서 유래된 것이다(사 29:6; 30:30;34:4;단 7:9,10;욜 2:30,31).

성 경: [벧후3:8]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 베드로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언급한 후 사랑하는 수신자들을 위해 시 90:4을 인용하여 재림 지연에 대한 미혹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천 년이 하루 같은'은 실제로 주의 재림이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때를 인간들의 시간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설정해 주신 제한된 인간의 시간 개념은 어떤 법칙이나 제한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에 비추어 볼때 우리의 천 년은 하나님의 하루에 불과한 것이다(시 90: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거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거짓 교사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경계해야 한다(요 7:1-9 주제 강해 ''카이로스'에 관하여' 참조).

성 경: [벧후3:9]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앞절의 시간 개념보다 진보된 설명이다. '어떤 이'는 주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롱자들(3절) 뿐만 아니라 기롱자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Blum). 이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더디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는 것'이다. '참으심'은 피조물을 향해 세워놓은 계획에 대해서 실행하시는 신실한 속성과 더불어 죄인들을 향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주의 재림의 지연은 믿음 없는 자들이 보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태만이나 능력의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이다. 한편 '너희를 대하여'의 헬라어 '에이스 휘마스'(*)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본문과 같이 기록된 사본은 B,C,P이며, 어떤 사본에는 '에이스 헤마스'(*, '우리를 대하여')로 되어 있으며(K,L) 어떤 사본에는 '디 휘마스'(*, A) 이러한 사본상의 차이는 뒤이어 나오는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연관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 사본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으심의 대상이 전인류를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Calvin,Blum).

⭕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본문은 하나님을 기롱하고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미혹되어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해답이다. 그것은 회개하여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는 대상에 대하여 혹자는 이미 선택받은 자들중에서 아직 회개치 않은 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Clark) 타락한 모든 인류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Calvin, Blum).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많은 차이점이 생기기 때문이다(겔 18:23,32;33:11;롬 11:32;딤전 2:4;딤후2:25). 하나님께서 전인류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를 향해 똑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성품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이 공허한 하나님의 약속임을 나타내는것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회를 불신자들에게 알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성화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성 경: [벧후3:10]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 '그러나...오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헥세이데'(*)는 '헥세이'를 문두에 두고 반의(反意)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와 함께 연결하여 기술됨으로 기롱자들과 미혹된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께서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임을 강조한다. 한편 '주의 날'은 일반적으로 심판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사 2:12;겔 13:5;욜 1:15;말 3:2;행 2:20;고전 5:5;살전 5:2;살후 2:2, Gibson, Charles). 본문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이 아무런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예기치 않게 임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갑작스러운 재림은 이미 예수 자신이 말씀하셨고(마 24:43;눅 12:39), 바울과(살전 5:2) 요한이(계 3:3;16:15) 강조한 것으로 베드로는 이런 표현을 재삼 강조하여 수신자들이 기롱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깨어 준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 본문의 '큰 소리로'의 헬라어 '로이제돈'(*)은 강풍이나, 강한 물살 혹은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세상이 파멸되거나 진멸될 때 나타나는 소리를 암시한다(Gibson). 이는 곧 주의 재림에 나타나게 될 심판의 무서운 상태를 암시한다(계 6:14;20:11).

⭕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 '체질'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토이케이아'(*)는 '스토이코스'(*, '열')에서 유래된 단어로 세상을 구성하는 원물질 곧 흙, 공기, 불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리킨다(갈 4:3;골2:8;히 5:12, TDNT, Robertson, Blum). 이것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주의 재림 때에 온 세상이 불에 타 해체됨을 시사한다.

⭕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드러나리로다'의 헬라어 '휴레데세타이'(*)는 사본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본절 역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태워 버리다'(A.L). 이 경우는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살라 지는 것을 나타난다. (2)'발견하다'(*,B,K,P). 이 경우는 인간의 모든 것이 심판 때 분명히 알려질 것임을 나타난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 중 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불로 태워질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NIV, Blum).

성 경: [벧후3:11]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 이제 베드로는 확실한 재림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자세에 대해 권면한다. '어떠한 사람이'의 헬라어 '포타푸스'(*)는 헬라어 어법상 의문문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감탄사로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이 택한 그리스도인들이 지상의 시민인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Gibson, Charles). 한편 '되어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파르케인'(*)은 '에이미'(*, '이다', 'be')의 강조형으로 그리스도인의 지속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종말론적 삶을 시사한다.

⭕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 '거룩한'은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된 것을 가리키며 '경건한'은 하나님을 닮아가며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Blum).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확실히 파멸될 것이기 때문에 악을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성 경: [벧후3:12]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하나님의 날'은 구약성경의 '여호와의 날'과 같은 의미로 10절에서는 '주의 날'로 나타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계 16:14, Green). 한편 '바라보고'의 헬라어 '프로스도콘타스'(*)는 현재 능동태 분사로 구약에서 발전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나타낸다(Robertson, Calvin, Bauckham). 또한 '간절히 사모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퓨돈타스'(*)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면서 오래 참으시는 성품과 관련된 것으로(9절) 문자적으로 '서두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 60:22의 반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회개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종말을 앞당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사 10:23, LXX;행 3:19,20, Eliezer, Bauckham, Blum).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에 관한 소망을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통해서만 거짓 교사들의 미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종말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 '그 날에'(*, 디 헨)는 문자적으로 '날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오기 때문에'라는 의미로 그 날 곧 '하나님의 날이 오기 때문에' 또는 '그 날의 임재때문에'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온 세상은 불을 통한 심판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10절).

성 경: [벧후3:13]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그릇된 종말관에 대한 경계]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베드로는 본절에서 하나님의 날에 경건한 자들에게 약속된 것에 대해 구약성경을 통해 설명하고있다. '그의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의에 근거한 약속으로(사 11:4,5;45:8;렘 23:5-7;33:16;단 9:24) 노아 시대에 대 홍수로 불경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죄악된 세상을 새롭게 하셨듯이 주께서 재림하는 하나님의 날에 온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의가 영원한 집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시킬 약속을 말한다(사 65:17;66:22;계 21:1).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약성경(사 65:17;66:22)과 유대 묵시 문학에 나타나며(위경 에녹1서 45:4,5;72:1;91:16;바룩 2묵시록 32:6;44:12;57:2;에스라 4서 7::75) 신약성경에서도 받아들여져 나타난다(마 19:28;롬 8:21;계 21:1). 이것은 하늘과땅이 새롭게 창조되어(시 102:26;사 51:6;히 1:11;계 20:11) 새로와지고 완전해짐을 시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날'이 죄악된 세상과 피조물에 대해서는 멸망과 재앙의의 날이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악과 세상의 고난을 도말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임을 기억하고 기대하며 사모해야 한다(벧전 1:7).

성 경: [벧후3:14]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마지막 권면 및 끝인사]

⭕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베드로는 새하늘과 새 땅을 소망으로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경건한 삶을 실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한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는 거짓 교사들이나 기롱자들의 미혹되고 방종하는 삶과 대조되는 삶으로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다. 이런 삶은 그 기준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의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온전하고 거룩한 삶을 가리킨다(민 19:2;빌 2:15;벧전 1:19). 한편 '평강 가운데서'는 소망과 인내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근거한 상태를 의미한다(1:2).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될 구원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 경: [벧후3:15]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마지막 권면 및 끝인사]

⭕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 베드로는 9절에 이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연기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부가적으로 설명한다. 기롱자들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며, 하나님의 인내이다. 따라서 재림의 지연을 재림을 부정하거나 핑계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 '형제'라는 호칭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사역하는 동역자를 부를 때 즐겨 사용한 것이었으며(고후2:13;빌 2:25;살전 3:2) 당시 로마 교회 지도자들에게 흔히 사용된 호칭이었다(엡6:21;골 4:7,9;벧전 5:12). 초대 교회 때에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좋지 않은 긴장 관계에 있었음을 전제하면서(갈 2:11-14) 튀빙겐 학파(Tubingen Schule)는 본절이 본서가 위작(僞作)임을 나타내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형제간의 사랑과 용서를 강조했던 사도들의 사상에 어긋난다(엡 6:21;골 4:7,9;몬 1:16, Green,Bauckham). 사도 베드로는 본절에서 같은 사도로서 바울에게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언급하고 있으며(Bigg) 자신이 언급한 재림에 관한 교리도 바울의 사상과 일맥 상통함을 암시한다(롬 2:4).

성 경: [벧후3:16]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마지막 권면 및 끝인사]

⭕ 또 그 모든 편지에도 - 혹자는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파사이스 에피스톨라이스'(*)에 정관사가 없으므로 '모든 편지'는 바울의 서신에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접할 수 있었던 여러 서신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Morris). 그러나 '모든 편지'는 전후 문맥상 바울이 쓴 모든 서신들을 가리킨다(Gibson, Bigg).

⭕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 바울도 자신의 서신에서 여호와의 날, 즉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장한 바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있는 지역은 물론 그 외 많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회람되고 있었던 바울 서신에도 진술되어 있음을 언급함으로 자신이 언급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성취될 것임을 증거한다.

⭕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 본문은 바울이 쓴 서신들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주제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바울에게 교리적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신을 받는 독자들이 바울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이해할수 있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로,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를 말할 때(롬 3:20-24,28) 그것을 성화의 삶을 소홀히 여기는 듯한 주장으로 이해하거나,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주장을(롬 7:4;8:1,2;갈 3:10) 도덕폐기론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다(롬 6:1-7;고전 6:13-20). 바울이 쓴 주제들이 난해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 '무식한 자들'의 헬라어 '아마데이스'(*)는 부정 접두어 '아'(*)와 '배우다'라는 '만다노'(*)의 합성어로 성령으로부터 배우지 못했거나(요 6:45) 사도들로부터 영적 진리들을 배우지 못한 자들(행 2:42)을 가리킨다. 또한 '굳세지 못한 자들'은 믿음의 뿌리가 내리지 않은 기초가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2:14;눅 22:32).

⭕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다른 성경'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 서신과 성경을 구별하여 '또 다른 종류의 성경'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사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을 믿기 때문에(1:20;딤후3:16,17) '다른 성경'이라 함은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구약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성경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obertson, Green, Blum). 한편 '억지로 풀다가'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트레블루신'(*)은 '왜곡하다', '비틀다'라는 의미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바울 서신과 다른 성경을 자신들의 뜻에 맞게 아전 인수격으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무지한 생각과 논리로 성경의 교훈들을 왜곡시키고 복잡하게 만들어 고집함으로 멸망당함을 의미한다. 베드로의 이 같은 단호한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난해한 말씀을 접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것이 아니다. 단지 성령의 도우심과 조명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바르게 해석할 것을 권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 경: [벧후3:17,18]

주제1: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확신]

주제2: [마지막 권면 및 끝인사]

베드로는 본절에서 본서 전체에 대한 요약과 함께 마지막 두 가지 권면을 하고 있다.

⭕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 '무법한 자들'은 이제까지 언급된 거짓 교사들, 기롱하는 자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자들로서 영적으로 실족시키려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들의 거짓된 생각과 논리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실족케 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떠나게한다. 한편 '삼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퓔랏세스데'(*)는 '퓔랏소'(*, '경계하다')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대처하고 깨어 경계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대처하는 방법은 (1)그들의 활동을 미리 알며 (2)그들의 부도덕한 삶을 경고하며(2장) (3)사도들의 메시지를 일깨우고(1:16-18) (4)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해 선포하며(2절;1:19) (5)그런 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다(Blum).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 본문 두번째 권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카리티 카이그노세이...예수 크리스투'(*)에서 '은혜와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소유격에 의해서 수식받고 있다. 이는 '은혜와 지식'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시사한다. 한편 '자라가라'의 헬라어 '아욱사네테'(*)는 '아욱사노'(*, '자라다')의 미완료로 계속적으로 자라가야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에만 만족하여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에 대한 지식 안에서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굳세게 서서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는자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 베드로는 마지막 인사말에서 주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한다. '영광'의 헬라어 '헤 독사'(*)는 문자적으로 '그 영광'이란 의미로 오직 주님에게만 영광이 있을 것을 나타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암시한다(Calvin). 한편 '영원한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헤메란 아니오노스'(*)는 문자적으로 '그 시대의날까지'라는 의미로 '여호와의 날' 곧 주의 날인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7,10,12절,Blum).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주님이 종말에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나타날 '여호와의 날'을 강조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여 미혹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교훈에 미혹되지 않고 영광 가운데서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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