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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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주석



성 경: [벧전1:1]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문안인사]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는 베드로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 호칭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전파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 사도로서의 베드로 자신의 권위와 존엄을 나타낸다(마 16:18,19; 막 3:16; 요 1:42; 21:15-19, Blum, Stibbs). 한편 '베드로'는 아람어에서 '바위'를 의미하는 '케파'(*)를 헬라어로 명명한 별명이다.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은 '시므온'이었을 것이며 헬라어로는 '시몬'이었다(행 15:14; 벧후 1:1).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 본문에 언급된 다섯 지역은 모두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재는 터어키 타우루스 산맥(Taurus Mountains)의 북쪽에 해당하는 로마 지역이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보다 많은 지역에 그리스도인이 거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행 16:6-8) 본서에서 다섯 지역만 언급되었으며 '본도'와 '비두니아'가 동일 지역에 대한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두번 언급된 것에 대해 혹자는 이 편지를 소지한 실루아노(5:12)가 심방한 지역이었다고 주장한다(Hort, Robertson). 즉 이 견해에 따르면 실루아노가 배를 타고 흑해를 지나 본도에 입성하여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를 거쳐 비두니아를 통과해 로마로 항해해 갔기 때문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지명이 각기 따로 언급되었으며 본서 수신자들이 사는 지역도 이 다섯 곳만 언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단지 추정에 불과하며 본문에 특별히 다른 언급이 없으므로 단정하기 어렵다(Michaels). 한편 '흩어진 나그네'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피데모이스 디아스포라스'(*)에는 관사가 없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틴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의미하며 '파레피데모이'는 '어떤 지역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당시 네로 황제(A.D.54-68)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임을 인식하였을 것이다(Stibbs). 또한 '나그네'라는 표현은 수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다니는 입장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안식처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임을 인식하고 순례하는 자임을 암시한다(Blum).

성 경: [벧전1:2]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문안인사]

본절에서 베드로는 앞절에 '흩어진 나그네'로 지칭된 수신자들을 삼위 일체적인 신앙과 사역에 입각하여 묘사하고 있다.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입은 자들 - '택하심을 입은 자들'(*, 에클레크토이스)은 개역성경에는 본절에 나타나나 헬라어 본문에는 1절에서 나타난다. '에클레크토이스'는 1절의 '파레피데모이스'(*, '나그네들')와 대비된다. '에클레크토이스'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묘사하는 반면 '파레피데모이스'는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나타내며, '에클레크토이스'가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소유한 그룹인 반면 '파레피데모이스'는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그룹을 나타낸다(Michaels). 이러한 '에클레크토이스'는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칭호였으나(대상 16:13; 시 105:6; 사 65:9,15)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집합적인 칭호이다(2:9; 5:13). 한편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은 하나님의 목적, 선택, 부르심, 섭리와 연관된 것으로 단순히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신다는 의미 이상으로 개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시사한다(1:20; 암 3:2; 행 2:23; 롬 8:29,30; 11:2, Cranfield, Stibbs). 이 특별한 관계는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는 섭리를 가리킨다(Blum).

⭕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 '거룩하게 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스모'(*)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관된 것으로(살전4:7) 한편으로는 부르심그 자체와 동일한 실제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미하여 구별됨을 시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즉 인간의 책임을 의미한다(롬 6:19,22; 살전4:3,4; 딤전 2:15, Michaels).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의해 거룩한 삶 즉 성화의 삶을 살게 된다(Cranfield).

⭕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에이스 휘파코엔 카이 란티스몬 하이마토스 예수 크리스투). - '휘파코엔'(*, '순종함')과 '란티스몬'(*, '피뿌림')이 비록한 전치사 '에이스'(*, '위하여')와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예수 크리스투'(*, '예수 그리스도의')는 '란티스몬'에만 연결된다(Michaels). 본절에서 '휘파코엔'에 대해 혹자는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인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해석하며(Blum, Cranfield, Stibbs) 혹자는 믿음의 순종(롬 1:5; 16:26) 즉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한다(Michaels, 22절).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복음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순종이 뒤따라야하며 그것을 통해 성장해 간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은 구약 시대의 제사 의식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피는 새 언약의 매개체로서(출 24:3-8; 히 9:18-21) 이 피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구속함을 받았으며 하나님 앞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22).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유대인의 전통적인 인사법으로 목회서신을 제외한 바울의 다른 서신에도 똑같이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바울 서신과 베드로 서신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문법상 바울의 인사는 '소원에 따른 간구' 형식으로 표현된 반면(롬 1:7; 고전 1:3; 고후 1:2) 베드로의 인사는 '부정과거 수동태 회구' 형식으로 표현되었다(벧후 1:2). (2) 내용상 바울은 그리스도인 전체에 대해 목자적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간구하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체험하도록 간구하고 있다(Michaels).

성 경: [벧전1:10]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본절에서 불특징인으로 나타나는 '선지자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1) 혹자는 베드로 당시에 활동하던 선지자들이라고 주장한다(Selwyn). 이 견해는 본서를 읽는 수신자들이 선지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베드로가 불특정으로 썼다고 추측한다. (2) 혹자는 구약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선지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Blum, Cranfield).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전자의 견해는 본절과 12절 이하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하므로 유익함을 얻은 자들은 선지자들 자신이 아니라 수신자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으며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포함할 경우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알았기에 그것을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메시야의 때에 대해서 간절히 알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알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였다(눅 10:24).

성 경: [벧전1:11]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상고하니라 -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indisch, Lenski). (2) 혹자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ichaels, Selwy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 혹은 '주의 영' 혹은 '성령'과 상호 교환으로 사용되고 있으며(행 1:16; 2:33; 벧후 1:21)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12절; 요 15:26, Stibbs). 성령께서 예언자들로 하여금 메시야의 때와 그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해 예언하게 하였다(삼하 23:2; 눅 24:26).

성 경: [벧전1:12]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예언자들이 간절히 알기를 원하며 열심히 상고하고 예언한 것은 예언의 내용 곧 메시야의 때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예언자 자신과 당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롬 4:23,24; 15:4; 고전9:9,10;10:11, Blum, Stibbs, Michaels).

⭕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 '보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탈렌티'(*)는 수동태 분사로 성령께서 보내심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요 14:16,26; 갈 4:6)라고 나타내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요 15:26; 16:7; 행 2:33)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령'을 보낸 자에 대해서 특정한 자로 정하기는 어렵다(Michaels). 한편 앞서 언급된 예언자들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여 전한 것을(11절) 본절에서는 '복음'과 동일시하고 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말씀을 상고하여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을 예언하였던 바와 같이 신약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성령을 힘입어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 즉 복음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였다.

⭕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 '살펴보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큅사이'(*)는 '자세히 주의하여 보다'라는 의미로 잘 보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본래 하나님의 계획을 전달하는 존재이기에 인간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알 수 있지만 구원의 계획은 너무도 오묘하여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되어 하나님의 계획이 공개되고 선포될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은 예수의 초기 지상 생활을 지켜보았으며(딤전 3:16) 구속이 완성될 때에는 찬양으로 기뻐할 것이다(계 5:11-14,Blum). 한편 베드로는 10-12절의 논의를 통해 복음의 전달 과정을 세 단계로 기술하고있다. (1) 선지자(10절). (2) 복음전파자(12절). (3) 천사들(12절). 이러한 전달 과정을 거쳐 실현된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속 계획은 신실하게 성취되어 왔다(Lenski, Cranfield).

성 경: [벧전1:13]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 '동이고'의 헬라어 '아나조사메노이(*)는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출 12:11)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킨다(Lenski). 예수께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종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눅 12:35)를 말씀하셨는데 베드로가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는 가운데 긴장된 자세로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Michaels).

⭕ 근신하여...온전히 바랄지어다(*, 네폰테스 텔레이오스 엘피사테)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헬라어 문법에서 부사가 '오스'(*)로 끝나면 앞에 있는 날말을 수식한다는 점에 근거하여 '텔레이오스'가 앞에 있는 '네폰테스'를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온전히 근신하여'로 해석한다(Michaels, Bigg). 이 경우 '온전히 근신하여'는 '인내'를 강조한다. (2) 혹자는 일반적인 헬라어 문법으로 따질 때 동사 앞에 있는 부사가 동사를 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번역하며 '소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Selwyn, Lenski).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가져다 줄 은혜를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언어나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며 인내 가운데 살아야 한다(Blum, Stibbs).

성 경: [벧전1:14]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테크나 휘파코에스'(*)는 전형적인 셈어적 표현이다(막 2:19; 눅 10:6). 특별히 셈족 언어에서 '자녀'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상속자'라는 뜻으로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닌다. (2) '부모의 인격이나 성품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일 경우 누구의 자녀이냐에 따라 자녀의 인격이 결정된다(Selwyn). 이러한 언어적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향해 '불순종의 자녀'(엡 2:2)가 아니라 '순종의 자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서(롬 1:5; 16:26) 복음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마음을 보이고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 성품을 배워가기 때문이다(Michaels).

⭕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알지 못할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아그노이아(*)에서 '아그노이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ranfield,Selwyn). 왜냐하면 헬라어 단어 자체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의미하며 바울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무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이다(행 17:30; 엡 4:18).(2) 혹자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Bigg).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그노이아'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행 3:14-17).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즉, 이는 이방인이었든 유대인이었든간에 진정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나타낸다(Stibbs). 이러한 자는 사욕 즉 자연적인 충동에 사로 잡혀(Michaels, Stibbs) 충동대로 방종한 삶을 산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삶 즉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버려야만 한다.

성 경: [벧전1:15]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거룩한 자'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칭호로서 '거룩한 자' 혹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나타난다(LXX 시 70:22; 77:41; 88:19; 사 1:4; 5:16; 12:6;17:7; 29:23; 30:12,15; 31:1; 41:20; 45:11; 55:5). 이것은 하나님의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함을 시사한다(Blum). 이러한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과거에 처했던 어둠에서 광명한 빛으로 부르셨으며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2:9;5:10). '되라'의 헬라어 '게네데테'(*)는 '기노마이'(*, '되다')의 단순 과거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러나 고전 헬라어에서 '기노마이'의 수동태 명령형 '되다'(become)의 의미보다 '이다'(b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거룩한 자가 되라'는 명령의 의미보다 '거룩한 존재이니 거룩함을 나타내라'라는 의미이다(2: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한편 '행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스트로페'(*)는 본서에서 '선한 행실'(2:12), '선한 양심'(3:16), '정결한 행위'(3:2)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거룩'이 하나님께로의 분리를 의미하나 일상적인 삶의 행동과 연관된 것으로서 세상에서 윤리를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Blum, Michaels).

성 경: [벧전1:16]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 여기서 '기록하였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라프타이(*)는 구약성경을 인용할때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은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으로(레 11:44; 19:2; 20:26)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닮아가도록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이 말씀을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복음 안에 산다 할지라도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완성한 사랑의 원리를 따라 윤리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Lenski, Stibbs).

성 경: [벧전1:17]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 '외모로 보시지 않고'의 헬라어 '아프로소폴렘프토스'(*)는 '얼굴을 보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나사파님'(*)에서 유래한 것으로 편견에 사로잡혀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편견이나 불공평에 빠지지 아니하시고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구약시대에서는 생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기인한 것이다(마 6:9; 눅11:2).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보살피시는 분'과(마 6:32) '재판장으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눅 18:1-7) 가르치셨다. 베드로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리스도인을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여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다.

⭕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나그네로 있을 때'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지내는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본향이 이 세상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세상은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이전에 잠시 거쳐 지나가는 삶에 불과한 것이다(Stibbs). 그러므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거할 것처럼 안일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하나님이 원하는 악에서 떠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한다.

성 경: [벧전1:18]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너희가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도테스'(*)는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에 대해 언급할 때나(Hort) 표준이 되는 가르침을 언급할때 사용되는(Kelly) 관용구이다. '에이도테스'가 사용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1)사도의 교훈을 심화시켜 설명할 때(롬 6:9; 고후 5:6). (2) 앞에서 명령한 구절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를 보충하고자 할 때이다(고전 15:58; 엡 6:8,9). 이 두 가지 중 본절의 '에이도테스'는 후자의 경우이다. 왜냐하면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17절)는 권면에 이어 계속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나가기 때문이다(Michaels,Blum).

⭕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망령된 행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마타이아스 아나스트로페스'(*)는 유대인의 생활 양식을 가리키기보다는 이방인의 생활 양식을 의미한다(Blum). 더욱이 '망령된'의 헬라어 '마타이아스'(*)는 이방종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사용된다(렘 2:5; 8:19; 행 14:15; 엡 4:17). 한편 '구속된 것'의 헬라어 '엘뤼트로데테'(*)는 고대 로마의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용어로 두가지를 의미한다(Blum, Selwyn). (1) 돈을 지불하고 사다. (2) 속박에서 해방시키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구속받기 위해 치른 대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과 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힘으로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구속사역이 완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막 10:45; Lenski). 이러한 대가의 귀함과 완전함에 대한 베드로의 진술은 '값 없이' 구속함을 받았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사 52:3)과 상치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비록 문자적인 의미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조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하여 (1)과 (2)의 의미를 모두 강조하고 있지만 이사야는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는 태도로 (2)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Michaels).

성 경: [벧전1:19]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 '어린양 같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암누'(*)는 침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릴 때 이미 사용한 표현이다(요 1:29,36). 본문의 유래에 대해 혹자는 사53장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Bigg). 왜냐하면 사 52장에서는 구속의 대가를 예수의 보혈과 비교하며 사 53장에서 예수와 어린양을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어린양의 피는 예수의 보혈로 비유되는 반면에 사 53장에는 어린양의 피가 없으며 심지어 침묵하는 어린양으로만 비유되고 있기때문이다. 즉 사 53장은 예수의 고난을 나타내나 구속의 보혈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차라리 본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출 12장에 나타난 유월절 어린양과 대비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은 유월절 어린양이 지닌 구원과 해방에 대비된 예수의 사역을 시사하기 때문이다(Michaels). 예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양과 같이 죄와 허물이 없으신 유일한 분으로서 그의 구속은 보다 완전하고 귀한 것이다(출 12:46; 요 19:36;고전 5:7, Blum).

성 경: [벧전1:20]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그는 창세 전부터가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 본절은 전형적인 비교 구문인 '멘...데'(* ... ,'한편...또다른 한편')로서 베드로는 이 구문을 통해 '창세 전'과 '말세'를 비교하여 네 가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1)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창세 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진실하게 진행되었다(Michaels). (2) 동사 시제에 있어서 '미리 알리신 바'의 헬라어 '프로에그노스메누'(*)는 완료 수동 분사로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에 대해 '미리 알리신' 내용이 완전했음을 시사하며, '나타내신 바'의 헬라어 '파네로덴토스'(*)는 부정 과거 수동 분사로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이 일회적으로 완전했음을 시사한다(Lenski). (3) 내용상 '창세 전'은 메시야의 신성과 사역을 나타내며 '말세'는 구속과 부활의 증거를 보여준다(Stibbs). (4) '프로에그노스메누'와 '파네로텐토스' 모두 수동태 분사형으로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인간의 타락이나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파기시킬 수 없음을 시사한다(Michaels).

성 경: [벧전1:21]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 '하나님을'의 헬라어 '에이스 데온'(*)은 문자적으로 '하나님 안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요 1:18)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켰기 때문이다(고후 5:19, Blum, Kelly).베드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를 이룬 하나님에 대해 두가지로 진술한다. (1)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분이시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Stibbs,Blum). (2) 영광을 주신 -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에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롬 8:17-30; 히 2:10, Stibbs).

⭕ 너희 믿음과 소망이 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호스테 텐 피스틴 휘몬카이 엘피다 에이나이 에이스 데온) - 본문을 헬라어 구문상으로 해석할 때 두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문을 '의도문'으로 본다(Robertson). (2) 이유는 본절이 직설법로 쓰였기 때문이다. 비록 '호스테' 다음에 부정사가 따르면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지라도 문장 전체가 명령법이 아니고 직설법일 때는 '의도'로 해석한다는 주장이다. (2) 혹자는 본문을 '결과문'으로 본다(Robertson). 그 이유는 코이네 헬라어에서 '호스테' 다음의 부정사가 따르면 일반적으로 '결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비록 서술적 용법일 때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라도 그것은 문법적 규칙이 아니기에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문맥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로 그리스도인들을 안위하기 위함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되었기 때문에(Michaels)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한편 '믿음과 소망'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1) 혹자는 '믿음'에 '소망'이 종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Moffatt).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믿음'에는 정관사가 있지만 '소망'에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러므로 너희 믿음이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게 한다'(Kuhl)라고 해석해야 한다. (2) 혹자는 '믿음과 소망'은 병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Bigg).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실의 두 가지 의미를 반복적으로 기술하여 강조적 효과를 나타내며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서 배경적 설명을(3-9절) 해왔기 때문이다(Michaels, Selwyn).

성 경: [벧전1:22]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 '깨끗하게 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그니코테스'(*)는 완료 시상으로 회개로 이루어진 상태를 나타낸다(Michaels).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이러한 정결(淨潔)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두가지를 의미한다(Selwyn). (1)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의 화육,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본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이렇게 진리를 통해 죄로 부터 온전히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형제애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한편 '깨끗하게 하여'와 관련된 의식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깨끗하게 하여'가 구약 시대의 정결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Bigg) (2) 혹자는 '깨끗하게 하여'가 침례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Blum).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비록 '침례'에 대한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시상으로 과거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페사테'(*)는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시상은 과거의 행위와 뚜렷한 차이를 나타냄과 동시에 행위의 시작을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反目)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요일 3:14-18).

성 경: [벧전1:23]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너희가 거듭난 것이...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거듭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게겐네메노이(*)는 완료 분사로 앞절의 '깨끗하게 하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회심된 상태를 시사한다. 한편 '씨'의 헬라어 '스포라스'(*)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selwyn). (2) 혹자는 '말씀'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lum,Cranfield, stibbs). 두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중 다른 곳에서도 '씨'는 '말씀'에 비유되고 있으며(막 4;14; 눅 8:11) 문맥상 이어지는 설명에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진술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시 33:9; 사55:10,11; 히 4:12, Stibbs).

성 경: [벧전1:24]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본절은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인 사 40: 6-8의 인용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 본문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에게(1절) 위로될 뿐만 아니라(Blum) 모든 육체의 영광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하며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다(Selwyn, Stibbs, Blum).

성 경: [벧전1:25]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성도의 성화]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본절은 사 40:8(LXX)의 인용이다. 여기서 '주의 말씀'의 헬라어는 '토 레마 퀴리우'(*)이나 70인역에는 '토 레마 투 데우'(*, '하나님의 말씀')로 되어있다. 인용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베드로 자신의 의도적인 해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Kelly). (2) 혹자는 사본상의 변화를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Hort). (3) 혹자는 베드로가 신약성경의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ichael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토레마 퀴리우'에 나타난 속격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주격적인 속격'으로 예수의 말씀과 동일하기 때문이다(막 13:31; 눅 21:33, Michaels). 여하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께서 전한 말씀인 복음이 영원토록 변치않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됨을 진술하고있다(Selwyn).

성 경: [벧전1:3]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찬송하리로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토스'(*)는 동사 '율로게오'(*)에서 변화된 형용사이다. 문법적으로 본문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술어 동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스토'(*, '하게 하다')나 '에스틴'(*, '...이다') 혹은 '에이에'(*, '...지어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대인의 송영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일 경우 술어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베드로는 아마도 이러한 전통을 따라 표현한 듯하다(Robertson).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데오스 카이 파테르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에서 '퀴리우'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 '주'는 승귀된그리스도에게 부여된 칭호로서 초대 고회의 신앙 고백이었다(롬 10:19; 고전 12:3; 고후 4:5; 빌 2:11, Cranfield). 성부 하나님은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배하시는 대상이며,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Michaels). 한편 '그 많으신 긍휼대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고 아버지가 되시는 근원을 시사한다. 그 근원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긍휼'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구원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은혜'(*, 카리스)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나 '은혜'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나타내는 반면에 '긍휼'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동기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것은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을 따라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할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 '예수 그리스도의...부활하심으로'의 헬라어 '디 아나스타세오스 예수 크리스투'(*)에서 '예수 크리스투'의 속격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주격 소유격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를 의미한다. (2) 목적격 소유격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를 의미한다. 이 두가지 의미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 전체가 하나님이 주체로 언급되기 때문이다(Michaels). '아나스타세오스'는 '산 소망'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게 하사'와 연관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한편 '거듭나게 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겐네사스'(*)는 동사 '아나겐나오'(*)의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거듭남의 사건이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구체적인 사실로 중명됨을 시사한다. 신약성경에서는 '거듭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에 대해 일반적으로 '팔링게네시아'(*)를 사용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팔링게네시아'가 아니라 '아나겐네사스'를 사용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혹자는 베드로가 기독교의 구원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교의 영향을 받아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Bigg). 왜냐하면 당시 신비주의나 스토아 학파에서는 '깨달아 거듭난 삶'을 아는 자를 '아나겐네사스'란 단어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같은 이유로 '아나겐네사스'를 사용했다기보다는 본서에 강하게 비쳐지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기려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ichaels).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거듭나다'를 '겐네데 아노덴'(*)으로 표현하셨으며(요3:3) 이것은 '아나겐나오'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겐네데 아노덴'에서 '아노덴'이 '다시'(again)라는 의미로 사용되든 '위로부터'(from above)라는 의미로 사용되든 모두 '아나겐나오'와 같은 의미가 된다. 따라서 베드로는 본서에서 예수께서 이미 사용하신 단어를 다시 사용하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고자 했던 거듭남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요 3:3-8).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소유하신 생명과 같은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Stibbs).

⭕ 산 소망이 있게하시며 - '산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된 결과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나는 새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4절의 '기업'이나 5절의 '구원'을 가리킨다(Michaels). 이 '산 소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이미 마련한 것이다(Blum).

성 경: [벧전1:4]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사나니 - '기업'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로노미안'(*)에 대해 혹자는 구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구별된 소유물'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는 '현재에 이미 누리는 소유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ort). 그러나 '클레로노미안'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 나라(마 25:34; 엡 5:5).(2) 영생(마 19:29; 막 10:17; 눅 10:25). (3) 구원(히 1:14). (4) 약속(히 6:12).(5) 축복(3:9). 이러한 기업은 '산 소망'과 연결된 것으로(3절)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Michaels, Blum). 따라서 본절의 '기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서 현재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롬 8:18; 갈 4:7) 미래에 주어질 것을 가리키며 이때 성령은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롬8:11,18-23; 엡 1:14, Michaels). 한편 베드로는 이러한 기업의 온전함에 대해 부정접두어 '아'(*)로 시작하는 세 단어, 즉 '아프다르톤'(*, '썩지 않고'), '아미안톤'(*, '더럽지 않고'), '아마란톤'(*, '쇠하지 아니하는')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하게 될 '기업'이 지상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한다(Lenski, Robertson).

⭕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하늘에'는 복음서에서 '하늘 나라'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특정한 말씀, 즉 마 5:12; 6:19,20; 눅 12:33과 연결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기업이 영원할 뿐만 아니라 전혀 손상되지 않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시사한다(Lenski,Robertson). 한편 '간직하신 것이라'의 헬라어 '테테레메넨'(*)은 완료시상으로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업을 마련해 두셨음을 시사한다(Blum).

성 경: [벧전1:5]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 '말세에'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파루시아를 가리킨다(롬8:18-25; 빌 3:20,21; 골 3:4; 요일 3:2). 파루시아 때 성취되는 '구원'은 앞서 언급된 '산 소망'(3절), '기업'(4절)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얻어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실현 혹은 종말론적 차원의 완성을 의미한다(Stibbs, Blum)

⭕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보호하심을 입었나니'의 헬라어 '프루루메누스'(*)는 '프루레오'(*)의 수동태 분사 현재로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프루루메누스'는 본래 군사 용어로서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사단을 막아주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낸다(Stibbs,Leighton). 종말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므로 믿음 안에 거하여야 하며,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누릴 수 있게 된다(Michaels, Stibbs).

성 경: [벧전1:6]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 '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시험으로 상위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시련(test)을 의미한다(약 1:2, Bigg, Michaels). 그런데 베드로가 언급한 '여러 가지 시험'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암시하는가에 대하여 혹자는 '포이킬로이스'(*, '여러 가지')가 고전 헬라어에는 나타나지 않고 마카비 시대와 신약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마카비 시대에 일어났던 고난이나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멸망(A.D.70)을 예고한 듯하다고 주장한다(Selwyn,Hor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이 정확한 지는 분명하지 않다(Michaels).

⭕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개역성경에는 '엔 호'( , '이 가운데')가 생략되어 있다. '앤 호'는 '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5절, Michaels, Blum)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암시한다. 비록 현재에 고난을 당하여 근심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러한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며 그 후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는 파루시아 때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업이 기다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성 경: [벧전1:7]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본절은 약 1:3과 유사하여 혹자는 베드로가 야고보서를 참조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Robertson). 그러나 야고보와 베드로의 표현에는 차이가 있기에 참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차이점은 두 가지이다. (1) 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배우는 '수단'으로 언급되는 반면 본문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 '목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2)야고보서에는 믿음의 시련이 온전한 신앙에서 요구되는 한 요소에 불과하지만 본문에서 믿음의 시련은 신앙의 최고 요소로 취급되고 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 차이점과 같은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히나'(*)로 인도되는 목적절로 믿음의 시련을 수식하고 있다(Michaels). 베드로가 시련을 통한 믿음과 금을 비교하여 강조하는 바는 (1)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 금이 불로 연단받듯이 믿음도 시련을 통해 연단받는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해 고난당하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Bigg, Leighton, Michaels).

⭕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금이 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이 참된 신앙이 온진히 밝혀지는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종말론적 보상 혹은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다리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롬 2:7,10; 빌 1:11; 히 2:7,9, Michaels).

성 경: [벧전1:8]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 '보지 못하였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이돈테스'(*)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돈테스'는 '호라오'(*, '보다')의 제2부정 과거 능동태 분사로서 분사의 부정으로는 '메'(*)를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우크'가 쓰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양보적'인 의미보다 '사실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Robertson). 즉 본문은 '비록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가 아니라 '너희 가운데 아무도 예수를 보지 못했다'라는 의미로 '사실성'을 강조한다.(2) 혹자는 베드로 자신이 예수를 친히 목격했음을 수신자들과 비교해 강조했다고 주장한다(Selwyn). (3) 혹자는 베드로를 포함해 수신자 전체가 현재 계시하시는 예수를 보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Michaels). 즉 본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는 수신자들을 칭찬하려고 했다. 세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수진자들이 비록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종말론적 보상으로 주어질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현재 볼 수없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성 경: [벧전1:9]

주제1: [성도의 소망과 성화]

주제2: [미래의 산 소망]

⭕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받음이라'의 헬라어 '코미조메노이'(*)는 '코미조'(*)의 현재 중간태 분사로 구원이지금도 실현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참된 믿음의 결과인 미래에 주어질 종말론적 보상은 영원하며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현재 믿음을 소유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주어질 상급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온전히 완성되는구원은 미래에 속해 있다(Stibbs, Blum). 한편 베드로는 이러한 구원에 대해 '영혼의 구원'(*, 소테리안 프쉬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이 때문에 베드로가 '영'과 '육'을 구별하는 헬라어 이분법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보기 쉬우나(Dihle)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콘'은 히브리적 이해 속에서 '자아'나 '인격' 전체를 지칭하기 때문이다(2:25; 4:19,Dautzenberg, Selwyn). 비록 베드로가 '프쉬콘'을 신체적 생명으로 생각하였을지라도 그것은 육체적 죽음을 초월하는 생명이다(Michaels).

성 경: [벧전2:1]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성도의 영적 성숙]

⭕ 그러므로...버리고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혤라어 '운'(*)은 결과를 유도하는 접속사로 본절이 1:23-25의 결론임을 시사한다. 본절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가 취하여야 할 행동들을 나타낸다. 한편 '버리고'는 2절의 '사모하라'와 대조되어 믿음으로 갓 태어난 자들이 성숙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생활 태도를 제시한다(슥 3:3,4; 엡 4:22,23; 골 3:8,10; 약 1:21).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버려야 할 악덕들을 '모든'을 사용하여 세 범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있다.

⭕ 모든 악독(*, 파산 카키안) - 이것은 단순한 '악의'와는 다른 것으로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모든 악들을 의미한다(행 8:22; 롬 1:18; 엡4:31; 골 3:8, Michaels, Lightfoot, Selwyn, Stibbs, Lenski).

⭕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 판타 돌론 카이 휘포크리세이스 카이 프도누스) - '궤휼'의 헬라어 '돌론'(*)은 '미끼로 끌어들이다'라는 의미의 '델로'(*)에서 유래한 단어로 3절의 '순전'과 반대되는 '속임'을 의미하며, '외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크리세이스'(*)는 '아래'를 의미하는 전치사 '휘포'(*)와 '심판'을 나타내는 '크리시스'(*)의 합성어로 겉과 속이 다르게 판단하는 죄를 가리킨다. 또한 '시기'는 자기 우월감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방해(妨害)하는 죄악을 의미한다.

⭕ 모든 비방하는 말(*, 파사스카탈랄리아스) - 본문은 복수로 표현되어 남을 향해 무고히 '중상 모략'하거나, 악담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죄악은 악의에 찬 마음에서 비롯된다(12절; 롬 1:30; 고후 12:20).

성 경: [벧전2:2]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성도의 영적 성숙]

본절은 부정적인 금지 명령을 한 앞절과는 달리 긍정적인 명령문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 갓난 아이들같이 - '갓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티겐네타'(*)는 '아르티'(*, '방금')와 '겐나오'(*, '되다', '나다')의 합성어로 방금 태어난 상태를 묘사해 준다(Lenski, Robertson). 그리고 '아이들'(*, 브레페)은 문자적로 '아직 출생하지 않은 아이'를 의미하지만(눅 1:41,44) 본문에서는 '네피오이'(*, '유아')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눅 2:12). 이 '갓난 아이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에 대한 비유로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간절히 찾듯이 그리스도인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마 18:3; 막 10:14,15).

⭕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순전하고'의 헬라어 '아돌론'(*)은 부정접두어 '아'(*)와 '유인하다'라는 의미의 '돌로스'(*)의합성어로 '궤휼'(1절)과 반대되는 거짓이 없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한편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기콘'(*)은 '말씀', '이성', '교리' 등으로 해석되는 '로고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혹자는 '말씀의 젖'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V, Calvin,Bigg, Caffin, Bengel, Keil, Lenski). (2) 혹자는 '사리에 맞는 젖'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SV, Vincent, Hort). 두가지 해석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바로 앞장에서도 '말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1:23-35) 본절 후반부에서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수하고 신령한 젖'은 가감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한편 '사모하라'의 헬라어 '에피포데사테'(*)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상태를 나타낸다(빌 2:26). 베드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갈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거듭난 자들이 성장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말씀을 갈망해야 함을 강조한다(시 119:20, Michaels, Blum,Calvin).

⭕ 이는 이로 맡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말씀의 젓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칭의 곧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단회적 사건이지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성장하는 것은 일생동안 이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성장하고 성숙해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 가능해진다(히 5:11-14). 본문의 '구원'은 마지막 날에 있게 될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화의 완성(完成)을 시사한다. 이런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속적인 성장으로 나타내 보여야 할 미래의 목표이기도 하다(1:5,9; 고전 3:1-4, Stibbs, Caffin).

성 경: [벧전2:3]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성도의 영적 성숙]

⭕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리라 - 본절은 시 34:8의 인용으로 '에이'(*, '만약')로 시작되는 조건문이다. '인자하심을 맛본다'라는 것은 마치 갓난 아이가 젖의 맛을 알게 되는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기 위해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 그 능력 안에서 성숙해 가야 한다.

성 경: [벧전2:4]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산 돌이신 예수]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 저자는 본문에서 '버린'과 '택하심을 입은'을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배척당한 진정한 메시야임을 드러낸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는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여야 할자칭 건축자들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실을 가리킨다(막 8:31; 눅 9:22; 행 4:11).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았다. '택하심을 입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크톤'(*)은 '인정받다'라는 의미를 가진 '도키몬'(*)에서 파생된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존귀함을 받았음을 시사한다(행 2:22-24).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 '보배로운'의 헬라어 '엔티몬'(*)은 문자적으로 '존경을 받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영광을 가리킨다(1:19; 눅 7:2; 14:8; 빌 2:29).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배척 당하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교회의 영원한 기초가 되게 하셨다. '산돌'은 실제로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마 21:42), '생명수의 반석'(고전 10:4), '기초석'(고전 3:11), '심판의 돌'(단 2:34)로 비유되었다(Blum, Stibbs, Leighton, Selwyn). 이러한 비유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이신 예수를 비유하는 '산 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사실이며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교회의 초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한편 '나아와'의 헬라어 '프로스 혼 프로세르코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이 예수께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 한 번만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끈임없이 나아와야 함을 강조한다(Robertson, Lenski, Caffin).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는 언제든지 그로 말미암아 신령한 물을 마실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전 10:4,Hort, Bigg, Reicke). 본절은 예수께서 비록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을지라도 메시야로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의 구원의 반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성 경: [벧전2:5]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산 돌이신 예수]

⭕ 너희도 산 돌같이 - 베드로는 앞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산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도이 존테스'(*)는 복수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한다(Lenski, Leighton, Robertson).

⭕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시 69:9;사 56:7; 막 11:17, Blum). 한편 '세워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스데'(*)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롬 12:1;15:16; 고전 3:16: 엡 2:21-22; 3:6, Alford, Vincent, Stibbs, Leighton, Selwyn,Mi-chaels).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제사장'의 헬라어 '히에라튜마'(*)는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한다(눅 1:8, Hort, Meyer).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caffin, Alford, Selwyn, Reicke).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출 19:6)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롬 12:1;빌2:17; 히 13:15; 계 1:6; 5:10; 20:6, Lightfoot, Calvin, Stibbs).

성 경: [벧전2:6]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산 돌이신 예수]

⭕ 경에 기록하였으되 - 베드로는 앞서 진술한 자신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티 페리에케이 엔 그라페'(*)는 문자적으로 '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라는 뜻으로 이제까지 논증한 진술 곧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신 것과 그에게 나아가는 자도 누구든지 산 돌인 것이 성경 안에 이미 확증(確證)된 사실임을 시사한다(사 28:16; 롬9:33).

⭕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 본절은 사 28:16의 인용이다. 모퉁이 돌'에 해당하는 '아크로고니아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현관의 돌이라고 주장한다(Jeremias). (2)혹자는 건축물의 현관이나 기초를 닦는데 필요한 돌이라고 주장한다(Grant). (3) 혹자는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되는 돌이라고 주장한다(Lloyd,Calvin, Stibbs). '아크로고니아이온'이 '가장 높은'이란 의미를 가진 '아크로스'(*)와 유대인의 건축 양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요 중심인 '모퉁이 돌'을 의미하는 '고니아이오스'(*)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아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이것은 '모퉁이 돌'이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셔서 교회를 이루심을 시사한다(엡 2:20, Blum,Stibbs, Michaels). 한편 '시온에 두노니'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확정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두노니'의 헬라어'티데미'(*)가 본절에서는 현재 능동태로 사용되고 8절에서는 부정과거수동태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역할이 이미 확정되었으며 지금도 수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지위가 생명을 주는 역할을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8절; 마 21:42,44; 롬 9:33).

⭕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피스튜온에프 아우토 우 메 카타이스퀸데'(*)는 문자적으로 '저를 믿는자는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의미로 두려움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게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현재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Meyer).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성 경: [벧전2:7,8]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산 돌이신 예수]

베드로는 본문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여 각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어떤 가치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Wiesinger, Caffin).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 '보배이나'의 헬라어 '헤 티메'(*)에서 관사 '헤'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는 자신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보배가 되심을 시사한다(Blum). 한편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두 가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본문은 시 118:22의 인용이다. '버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도키마산'(*)은 문자적으로 '거절당한'이란 의미로(고전 9:27,RV)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거부당하신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시 118:22) 예수께서도 친히 그 예언을 확인하셨다(마 21:42;눅 20:17,18).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버렸으나 하나님은 배척당한 예수를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사 28:16을 반영하는 것으로(6절 주석참조; 마 21:42; 막 12:10; 눅 20:17; 행 4:11) 하나님님에 의해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시사한다(Blum). (2)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 본문은 사 8:14의 인용이다. '부딪히는 돌'은 길가에 있는 불필요한 돌들처럼 보행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방해물을 암시하며 '거치는 반석'은 덫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나 덫이 되며 심판의 돌이 된다(Origen, Caffin, Delitzch, Selwyn, Stibbs). 그러나 그리스도 자체가 장애물이나 덫이 되는 것은 아니다.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불신앙함으로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덫이나 장애물'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다(Beare, Blum).

⭕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문 역시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진술이다.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의 헬라어 '프로스코프투신 토 로고 아페이둔테스'(*)는 문자적으로 '순종치 않아 말씀에 넘어진'이라는 의미로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순종치 않는 불신앙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에서 '이렇게'는 '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예정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Hort, Bigg, Caffin,Beare).

성 경: [벧전2:9]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거룩한 백성]

베드로는 본절에서 7, 8절과는 달리 믿는 자들의 신분적인 특권에 대해 네 가지로 언급한다((Caffin, Calvin).

⭕ 택하신 족속이요 - 본문은 사 43:20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을 시사한다. '족속'의 헬라어 '게노스'(*)는 '혈통' 혹은 '출생'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나 진정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의 연합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영적 이스라엘'을 나타낸다(1:23; 신7:6-7; 사 44:1-2, Robertson, Blum, Selwyn).

⭕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 본문은 출19:6의 인용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왕정의 제사장' 곧 왕에게 속하여 왕을 섬기는 제사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Stibbs). (2) 혹자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롬 5:17,Clement, Bigg, Stibbs, Blim). 이러한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이다.

⭕ 거룩한 나라요 - 본문 또한 출 19:6이 인용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직책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시사한다(blum, Stibbs).

⭕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본문 출 19:5; 사 43:21; 말 3:17의 인용이다. '소유된'의 헬라어 '페리포이에신'(*)은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고 획득된 것을 나타낸다(행 20:28; 엡 1:7; 살전 5:10, Robertson, Stibbs).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이다.

⭕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문은 하나님께서 위의 네 가지 신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신 이유이다.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이전에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사실을(롬 8:29,30; 엡 1:4) 시사한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서 구원하여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신분을 부여하신 목적은 덕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덕'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스 아레타스'(*)는 '찬미', 혹은 '탁월함'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만이 갖는 온갖 종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을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실제적 행동들을 시사한다(stibbs, Calvin).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과 역사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 경: [벧전2:10]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거룩한 백성]

본문에서 베드로는 호 1:6,9,10; 2:23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 상태와 그리스도인이 된 후의 상태를 비교한다.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이후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롬 9:25,26, Bengel).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삼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부르셨음을 암시한다(Caffin).

⭕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얻지 못하였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엘래에메노이'(*)에서 '엘레에메노이'는 '엘레에오'(*, '불쌍히 여기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이방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 못했음을 암시한다(Stibbs, Robertson, Caffin). 이와는 반대로 '얻은'의 헬라어 '엘레에덴테스'(*)는 사건이 종결되었음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 하나님의 긍휼을 오랫동안 얻지 못하던 이전의 상태에서 단회적인 회개 사건으로 구원을 받았음을시사한다(Hort, Michaels, Stibbs).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했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복종하던 종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빛 가운데 있어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다.

성 경: [벧전2:11]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성도의 행실]

⭕ 사랑하는 자들아 - 이것은 베드로가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 모두 7회나 언급한 애정어린 호칭이다(4:12; 벧후 3:1,8,14,15,17). 이 호칭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용된 호칭이며(롬 12:19; 살전 2:8, Blum, Caffin) 본서와 베드로후서에서는 간곡한 권면이나 무엇을 환기시킬 때 사용되었다.

⭕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 '나그네'의 헬라어 '파로이쿠스'(*)는 일시적으로 거주하여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를 가리키며 '행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피데무스'(*)는 거쳐가는 길손으로 정착자가 아닌 자를 나타낸다. 베드로는 이 용어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시민으로 신령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빌 3:20)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나 행인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유한(有限)한 것임을 시사한다(시39:12; 히 11:13, Stibbs, Lenski).

⭕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육체'의 헬라어 '사르키콘'(*)은 단순한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육체에서 비롯된 정욕은 영혼 즉 하나님께서 부여하셔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삶을 어렵게 한다. 본문에서 언급된 '육체'와 '영혼'은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신분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합당한 영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타락된 악한 본능과 대적하여 싸워야만 한다(롬 6:6; 7:23; 고전 9:27; 갈 5:16,17; 골 3:5, Stibbs, Caffin, Blum, Leighton).

성 경: [벧전2:12]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성도의 행실]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 '이방인'은 본래 육체적 혈통으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은 비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잡히지 않는 선한 행동을 해야한다. '선하게'의 헬라어 '칼렌'(*)은 나타나는 행위 뿐만 아니라(마 13:8) 그 본성까지 옳은 것을 의미한다(히 13:18).

⭕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삶 가운데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프튜온테스'(*)는 '감시자'를 의미하는 '에포스테스'(*)에서 유래한현재 능동태 분사로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함을 시사한다(3:2, Meyer). 한편 '권고하시는 날'은 눅 19:44을 반영한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위로와 해방을 주시는 날'(출 3:16; 삼상 2:21), '심판과 형벌의 날'(출32:34; 시 58:6)을 의미했다. 이러한 '권고하시는 날'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날이라고 주장한다(Kuhl, Calvin, Hunter). (2) 혹자는 마지막 심판날이라고 주장한다(Hart). (3) 혹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는 날이라고 주장한다(Moffatt).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이방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편(方便)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본문의 문맥으로 보아 첫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Lenski, Stibbs, Blum).

성 경: [벧전2:13]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제도에 대한 순복]

⭕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 '제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세이'(*)는 본래 '토대'나 '창조물'을 의미한다(막 13:19; 롬 1:25;고후 5:17; 골 1: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제정한 법과 질서에 대해 '크티세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제도들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암시하며(롬 6:1),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 윤리 생활을 사회 제도내에서 충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시사한다(Meyer, Calvin). 그러나 인간이 세운 제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주를 위하여'라는 분명한 기준이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Bigg, Clark, Hoffmann). 본문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에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동해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 '위에 있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휘페레콘티'(*)는 '위에 서다'(*, 휘페레코)의 능동태분사로 '보다 높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위에 있는 왕'은 신적 왕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통치자' 곧 당시의 로마 황제를 나타낸다(롬 3:1,Stibbs, caffin). 베드로는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나 왕이 잔악한 폭군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복종해야 한다고 권면한다(요 19:11).

성 경: [벧전2:14]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제도에 대한 순복]

⭕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 본문은 롬 13:3,4을 반영한 것으로 위정자들의 임무를 나타낸다. 위정자나 혹은 통치자의 역할은 악행하는 자를 징계하고 처벌하며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포상하는 것이다. '그의 보낸'의 헬라어 '디 아우투 펨포메노이스'(*)는 문자적으로 '그를 통하여 보내어진'을 의미한다. 여기서 대명사 '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 Hort, Robertson). (2) 혹자는 로마 황제가 속주들을 다스리기 위해 총독들을 파송한 것을 근거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ffin, Bigg, Clark).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방백들은 범법자를 처벌하고 선행자를 포장(褒奬)하라는 황제의 뜻을 수행할 책임을 갖고 있는 지방총독이나 식민지 총독들을 가리킨다. 그러기에 그들은 황제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방백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는 통치자라고도 할 수 있다(롬 13:1-7).

성 경: [벧전2:15]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제도에 데한 순복]

⭕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 '어리석은 사람들'의 헬라어 '텐 톤 아프로논'(*)는 이성이 없을 정도로 몰지각한 사람을 의미하는데(고전 15:36) 본절에서는 위정자나 혹은 비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또한 '무식한'에 해당하는 '아그노시안'(*)은 단순히 지식이 결핍된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배우거나 수용하기를 거절하는 것을 나타낸다(고전 15:34).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선행을 행하고 위정자들이나 법에 순복함으로 이방인 곧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잡히지 않아야 한다(12절, Stibbs, Caffin,Leighton).

성 경: [벧전2:16]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제도에 대한 순복]

⭕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 '자유하나'의 헬라어 '호스 엘류데로이'(*)는 문장 구조상 독립 주격구문으로 앞절의 '선행으로'에 연결된다(Alford).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자유를 방종이 아닌 합법적인 권위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내야 한다. 한편 '악'은 온갖 종류의 '악덕'을 의미한다(12,14절).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소유했다고 해서 그 자유를 오용하여 악덕을 행하는 구실을 삼거나 혹은 방종하는 구실을 삼아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 자유를 통해서 더욱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와 사단 그리고 이기적인 욕망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이다(요 8:32,36; 롬 6:15; 갈 5:13). 그러한 자유를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에 자유를 사용하는 죄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롬 6:16-23).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언급한 방백이나 법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외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로 순복해야 한다(Stibbs).

성 경: [벧전2:17]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제도에 관한 순복]

⭕ 뭇 사람을 공경하며 - '공경하며'의 헬라어 '티메사테'(*)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강조성을 띤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Caffin, Blum,Stibbs).

⭕ 형제를 사랑하며 - '사랑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파테'(*)는 '아가파오'(*, '사랑하다')의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된 자들을 계속적으로 사랑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자들의 지속적인 우애를 가리킨다(1:22; 3:8; 4:8; 5:14, Stibbs, Caffin, Selwyn).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 '두려워하며'(*, 포베이스데)와 '공경하라'(*, 티마테)는 모두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행동의 지속성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중해야 하나 하나님과 왕을 섬기는 자세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왕을 존중하고 순복한다 할지라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멸할 수 없는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마 10:28). 따라서 하나님과 왕에 대한 태도는 상충(相衝)될 수 없으며 왕을 공경하는 것은 형제 사랑이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에 어긋나지 않게해야 한다(Alford, Blum).

성 경: [벧전2:18]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주인에 대한 종의 순종]

⭕ 사환들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케타이'(*)는 문자적으로 '집의 것'이라는 의미로 '가정에 소속된 하인'을 나타낸다(눅 16:13; 행 10:17; 롬14:4, Robertson, Caffin).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신분이 천한 '종'(*, 둘로스)과는 다른 의미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종속된 자들을 가리킨다(엡6:5-7; 골 3:22-25; 딤전 6:1; 딛 2:9).

⭕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 '두려워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는 존경심을 가지고 경외하는 마음을 의미한다(17절).이는 형벌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환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인들의 권위를 중시해야 함을 시사한다(엡 6:5, Lenski, Stibbs, Robertson). 한편 '순복하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탓소메노이'(*)는 '휘포탓소'(*, '순종하다')의 현재 중간태 분사로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주인에 대해 순종해야 함을 시사한다(3:1; 롬 12:16, Robertson, Michaels).

⭕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러하라 - 사환들의 순종은 주인의 인격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과 '까다로운 자들'에는 관사 '토이스'(*)가 연결되어 주인들의 인격을 암시한다. 여기서 '관용하고'의 헬라어 '에피에이케신'(*)은 '양보한다'는 의미를 가진 '에이코'(*)에서 파생된 말로 법같이 엄하지 않고 쉽게 용서하는 마음을 의미하며 '까다로운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스콜리오이스'(*)는 '마음이 뒤틀린 자'란 의미로 성품이 온당치 못해 하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Alford, Robertson. Leighton). 사환들은 주인의 인격을 불순종의 변명거리로 삼지 말고 주인의 인격이 어떠하든지간에 순복해야 한다.

성 경: [벧전2:19]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면]

주제2: [주인에 대한 종의 순종]

⭕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 본절은 사환들이 까다로운 주인을 만나 부당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를 나타낸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는 인간의 행동이 의무감에서 마지 못해 하는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Caffin, Bigg). 사환들은 까다로운 주인에게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주인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 한편 '이는 아름다우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가르카리스'(*)는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감사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AV) 혹은 '이러한 것은 인정받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마 5:10-12에 대한 반영으로 종이 주인의 부당한 처사를 당할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으면 그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은혜받을 증서가 됨을 시사한다(Caffin, Stibbs, Selwyn, Blum).

성 경: [벧전2:20]

주제1: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

주제2: [주인에 대한 종의 순종]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죄가 있어'의 헬라어 '하마르타논테스'(*)와 '매를 맞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콜라피조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계속적으로 죄를 짓고, 그 죄의 결과로 반복되는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생활 곧 사환들 자신에게 과오가 있어서 주인에게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본문은 19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