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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주석



성 경: [전1:2]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헛되고 헛되며 ... 헛되도다 - '헛되고'의 히브리어 '헤벧'(*)은 '숨', '증기', '공허함', '속이 텅빔' 등을 뜻한다. 그리고 '하벧 하벧림'(*, 헛되고 헛되며)은 문자적으로 '헛된 것들 중의 헛된 것'(vanity of vanities)이다. 이것은 '헛됨'을 최상급으로 강조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구적인 표현이다. 이와 같은 관용구적인 표현은 이외에도 '지성소'(the holy of holies, 출 26:33), '아가'(song of songs, 아 1:1), '만왕의 왕'(King of kings, 계 19:16), '만주의 주'(Lord of lords, 계 19:16) 등이 있다. 한편 본절에서 솔로몬과 같이 지혜롭고(1:16) 부유하며(2:4-8), 수많은 첩들을 둔 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한 것은 그가 한때 이방 여인과 연락(宴樂)하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낀 자로서 이를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전1:3]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해 아래서 - 본서의 독특한 표현으로서 본서에만 29번(9,14절;2:11,17,18, 19,20,22;3:16;4:1,3,7,15;5:13,18;6:1,12;8:9,15,17;9:3,6,9,11,13;10:5) 나오는데, 이는 본서 다른 곳의 '하늘 아래'(13절;3:1), '세상에서'(8:14,16;11:2) 등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즉 이는 초월적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과 대조되는 이땅의 유한하고 제한적인 존재들이 사는 삶의 영역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 유익한고 - 이는 부정적 답변을 유도해 내는 역설적인 질문이다. 즉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가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고'(*, 아말)란 '열심히 일함', '진저리나는 노력'의 뜻을 내포하는데, 이것이 유익하지 못하다는 말은 창조시 노동의 제도를 설정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거슬리는 듯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해 아래서'라는 말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 바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의 가치를 이탈한 모든 수고의 무익함, 부조리함을 암시한다. 근본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노동의 사명을 받아 기쁨 가운데 일하게 되었으나 아담의 범죄 이후에 노동의 참의미가 왜곡되었으며(창 3:17-19) 이제 성도는 예수 안에서 노동의 참뜻과 본질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성 경: [전1:4]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한 세대는 가고 ... 오되 - '세대'(*, 도르)란 '(동시대 사람들이 사는) 시대', '기간'을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시대'(출 1:6;신 2:14;시 73:15), '세대'(창7:1;신 1:35;시 14:5;78:8;렘 2:31) 등으로 번역된다. 이는 보통 40년으로 간주하나 100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창 15:13,16). 본 구절은 유한한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것으로 본서의 전제 '모든 것이 헛되도다'(2절)라는 말에 부응한다. 한편 본 구절의 '가고 ... 오되'( ... , 할레크...바)란 분사의 형태로서 하반절의 '있도다'(*, 아마데트)와 함께 어떤 사건, 행동의 연속성을 나타내며(Eaton) 여기서는 인생의 유한성와 가변성(可變性)을 더욱 강조한다.

(주); 땅은 영원히 있도다 - 이는 하나님께서 그 기초를 놓으셔서 항상 견고히 존재토록 하신 땅은 변함없이 존속하리라는 생각에 근거해 언급한 말로서(욥 38:4-6;시 119:90;잠 8:29) 인생의 가변성(可變性), 무상함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전1:5]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해는 떴다가 ... 돌아가고 - '돌아가고'의 히브리어 '솨아프'(*)는 '(숨을) 헐떡거리다', '동경하다', '갈망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본절에서 이 단어는 (1)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떴다가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단순한 반복을 거듭한다는 사실(Delitzsch, T.H. Leale) 혹은 (2)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떴다가 저녁에 서쪽으로 지고 밤에 다시 억지로, 힘들게 그 떴던 동쪽으로 가서 아침에 다시 뜬다는 뜻을(M.A. Eaton, Cleric) 암시한다. 즉 본절은 해가 단조롭고, 덧없이 아침에 떴다가 저녁에 지며 밤새 다시 그 떴던 그곳으로 가서 아침에 뜬다는 뜻으로서 해(자연)의 운행의 무료함과 무상함을 암시한다.

성 경: [전1:6]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 돌이키며 - 앞절에 이어 바람의 운동이 끝없이 지루한 반복을 계속한다는 점, 곧 바람의 무상함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본절의 '남과 북'이란 앞절에서 해가 뜨는 동쪽과 지는 서쪽이 이미 언급되었기 때문에 다른 측면에서 언급되어진 방향으로 본다. 왜냐하면 팔레스틴 지역에서 대부분의 경우 바람은 동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G.A. Barton). 한편 '불다가 ... 돌이키며'( ... , 홀레크...소베브)는 뒤에 오는 '돌며'(소베브)란 말과 함께 분사로서 4절의 경우처럼 바람의 단조로운 반복을 강조적으로 표현한다(Eaton).

성 경: [전1:7]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모든 강물은 ... 채우지 못하며 - 5절의 '해', 6절의 '바람'에 이어 강물의 무상함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강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할림'(*)은 보편적인 '강'을 뜻하는 '네하림'(*,. 창 15:18;사 18:1)과는 어휘면에서 다른데, 혹자는 전자가 '물이 흐른다'는 측면을 부각시킨 말이라고 주장한다(Delitzsch). 강물의 흐름을 강조할 때 본 구절의 의미는 한층 명확해진다.

(주);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솽 헴 솨빔 랄라케트) - 이는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엘 메콤 쉐하네할림 흘레킴)의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영역본 NIV나 KJV는 '강물이 흘러 나온 그곳으로'(To the place the streams come from, NIV; unto the place from whenc3e the rivers come, KJV)를 뜻하는 것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RSV는 '강물이 (계속) 흐르는 그곳으로'(to the place where the streams flow)의 뜻으로 옮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석가들은 후자를 취하여 강물이 순환하여 그 원천지로 간다는 뜻이 아니라,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른다는 뜻을 고수한다(Delitzsch, Eaton, Deance). 이는 강물이 바다를 채우지 못하면서도 계속 그 흐르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무상함을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 [전1:8]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만물의 피곤함을 ... 할 수 없나니 - 혹자는 '만물'을 뜻하는 '칼 하데바림'(*)에서 '데바림'(*)을 '말'(words)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M.A. Eaton, Ewald, Hengstenberg) '만물의 피곤함'이란 '모든 말들이 고통스럽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70인역(LXX)도 '만물'을 '말'(*, 로고스)로 취하여 '모든 말씀들이 피곤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럴 경우 상반절의 의미는 '모든 만물, 자연 현상들이 무상하므로 이것을 말하려면 피곤하여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주석가 델리취(Delitzsch), 바톤(G.A. Barton) 등은 '만물'을 개역 성경처럼 그대로 '만물'로 취한다. 그리고 영역본들도 대부분 이렇게 본다(All thing, KJV, RSV, NIV, NASB). 이럴 경우 '만물의 피곤함'이란 앞절들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모든 만물이 무상하고 헛된 수고로 인해 곤비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중 후자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운 듯하며, 이는 '피조물이 ...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롬 8:22)이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주); 눈은 보아도 ... 아니하는도다 - 만물이 무상하고 헛됨으로 인해 그것을 보고 듣는 자가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피곤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전1:9]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 이 죄악된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 세상 만물의 헛됨, 무상함을 거듭 강조한다(3절 참조).

성 경: [전1:10]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무엇을 가리켜 ... 있었느니라 - 이것은 9절 하반절 즉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에 대해 야기될 수도 있는 반론을 반박하는 내용이라 볼 수 있으며, 부정적 답변을 유도하는 의문문이다. '오래 전 세대'(*, 레올라밈)는 원문상 4절의 '세대'(*, 도르)라는 말이 없이 단지 '오래 전'을 뜻한다. 혹자는 이를 시간의 끝없는 연속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성 경: [전1:11]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인생의 허무함]

(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 없으리라 - 2절에서부터 진행된 일련의 주장이 인간 역사 전반의 허무성을 갈파하는 구절로 결론에 이르고 있다. 해 아래서는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해 아래서'라는 전제를 조건으로 한다. 한편 '거억함'(*, 지크론)은 단순한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느 13:31). 그리고 본절의 '세대'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NIV, Lys) 인생과 상황을 포함한 역사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더 나을 듯하다(Aalders, Thilo).

성 경: [전1:12]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예루살렘에서 ... 왕이 되어 -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요 중심지로서(삼하5:5-13), 본절에서는 이곳에서 왕이 된 저자의 위상을 더 한층 높여 준다(1절참조). 한편 '되어'의 히브리어 '하이티'(*)는 완료형으로서(Delitzsch), 저자는 본서를 쓸 당시는 왕위에 오른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뜻한다.

성 경: [전1:13]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마음을 다하며 ... 살핀즉 - 전도자의 탐구가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마음'(*, 레브)은 외관(外觀)(삼상 16:7)과 대조적인 단어로서 내적 생명 혹은 모든 지적, 도덕적, 영적 역량의 중심이 되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궁구하며'란 그 기본어가 '다라쉬'(*)로서 '밟다', '추구하다'의 뜻이며 사건을 깊이 추적하여 탐구하는 것을, '살핀족'이란 그 기본어가 '투르'(*)로서 어떤 것을 깊이있게 살펴보는 것을 나타낸다.

(주); 인생들에게 ... 하신 것이라 - 여기서 '인생들'(*, 베네 하아담)이란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들'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생의 고역과 역경에 처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창 3:17-19).

성 경: [전1:14]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내가 해 아래서 ... 것이로다 - 인간이 죄악된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 헛되고 무상함을 뜻한다. 특히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란 '헛됨',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본서에서 모두 열 번 언급되어진다(17절;2:11,17, 26;4:4,6,16;5:16;6:9).

성 경: [전1:15]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구부러진 것을 ... 셀 수 없도다 - 14절에 이어지는 말씀으로서 인간 스스로의 행위(지혜)의 헛됨과 무력함을 시사한다. '구부러진 것'이나 '이지러진 것'에 대해서 혹자는 7:13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인간사(人間事)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것이나 결핍된 것을 뜻한다고 보며(Hitzig), 또 다른 사람은 인생에서 나타나는 변칙성이나 의외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Eaton).

성 경: [전1:16]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 '많이 얻었으므로'에 해당하는 '히게달레티 웨호사페티'(*)는 '자라고 증가했다'(have grown and increased, NIV)의 뜻이다. 이것은 저자 솔로몬이 지혜를 많이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지혜 안에서 더 깊이 성숙하고 풍요로워졌음을 암시한다(Lange).

(주);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 '예루살렘에 있던 자'에서 '자'의 히브리어 '칼'(*)은 '모든 자'(all KJV, RSV, NASB)를 뜻한다. 혹자는 이를 솔로몬 왕 이전에 예루살렘에 거하였던 왕이나 왕족들 즉 멜기세텍(창 14:18)이나 아도니세덱(수 10:3), 에단, 헤만, 갈골, 다르다(왕상 4:31)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Hengstenberg, Nowack), 단순히 솔로몬 왕 이전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지혜로운 유력 인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봄이 무난하겠다. 혹자는 본서의 저자가 솔로몬일 경우 본 구절의 인물은 예루살렘성을 여부스 족속에게서 정복하고 그곳에 거한 다윗 왕 한 사람일 수밖에 없으므로 본서의 저자를 솔로몬 왕 이후의 사람으로 보고 있으며, '나보다 ...있던 자'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을 뜻하는 것으로 보나(Barton), 이는 전통적인 본서의 저작 시기 및 저작자와 상충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성 경: [전1:17]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지혜를 ... 알고자 하여 - 지혜와 어리석음이 각각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아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를 택하고자 노력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I worked hard to be wise instead of foolish, LB). 여기서 '미친 것'이란 그 기본어가 '홀렐라'(*)로서 '할랄'(*, 어리석다, 정신없이 지껄이다, 미치다)에서 유래된 말이며 '어리석음', '미침' 등 다양한 뜻을 갖는다. 본 구절에서는 지혜의 행동과 대조되는 어리석고 무질서한 행동을 뜻한다.

성 경: [전1:18]

주제1: [만물의 허무(虛無)에 관한 성찰]

주제2: [지식의 헛됨]

(주); 지혜가 많으면 ... 더하느니라 - 본절에서 말하는 지혜나 지식은 잠언에서 언급되는 바 여호와 경외를 근간으로 삼는 신성하고 경건한 지혜나 지식을 뜻하지 않고(잠 1:20, 33;2:1-12;8:1-36 참조) 세상 지혜를 뜻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지혜는 인간에게 참다운 진리의 깨달음과 함께 평안과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잠 2:12;3:18). 한편 본절은 본서 후반부의 '여러 책을 짓는 것이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12:12)는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

성 경: [전2:1]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 원문 '아나세바 베심하'(*)는 '내가 즐거움으로 너를 시험할 것이다'(I will test you with pleasure, NIV)의 뜻이다. 이것은 '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즐거움을 누리게 해본다는 뜻이다. 여기서 '즐거움'이란 본절 이하에서 암시되어지는 바 재산의 소유나 감각적인 쾌락에서 오는 기쁨으로 이해된다(G.A. Barton).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평안과 은총을 통해 누리게 되는 기쁨과는 구분된다.

(주); 낙을 누리라 - 원어상 '레아 베토브'(*)로서 '레아'가 '보다'를 뜻하며 '토브'가 '선한', '좋은', '아름다운'(good, 창 1:4,31;수 21:45;23:16;삼상 8:16;시 118:1)을 의미하는 바, 문자적으로는 '선한(좋은) 것을 보다'란 뜻이다. 여기서 '보다'란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고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보고 받아들여 즐기거나 경험한다는 뜻을 함축하는 바(6:9) 본 구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고 추구하는 것, 곧 쾌락을 체험해 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많은 영역본들은 이를 '즐기다'(enjoy yourself, RSV, NASB; enjoy pleasure, KJV)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 결국 여기서 전도자는 전장에서 자연의 허무함(2-11절), 지혜의 허무함(12-18절)을 언급한 후에 이제는 재산의 소유나 감각적, 육신적인 기쁨에서 오는 즐거움의 허무함을 논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전2:2]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희락 - 해당하는 히브리어 '심하'(*)는 1절의 '즐거움'이란 말과 같다. 본절에서도 저자는 세상적 희락(즐거움)의 헛됨을 언급하고 있다.

성 경: [전2:3]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내 마음에 지혜로 ... 받으면서 - 이는 마음을 지혜로 절제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 즉 문맥상 마음으로 세상적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되 한편으로 그곳에 온전히 빠지지 않고 지혜로 절제받는 것을 암시한다.

(주); 육신을 즐겁게 할까 - '즐겁게 할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마솨크'(*)는 '늘이다', '끌다'(신 21:3;왕상 22:34;대하 18:33;욥 24:22)의 뜻이나,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힘을 복돋우다', '기쁘게 하다'의 뜻을 암시한다(Barton).

(주); 어리석음 - 단순히 우둔함의 뜻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맥으로 볼 때 술이나 기타 세상적 쾌락 수단에 의해 육신적 즐거움을 취하려는 지혜롭지 못한 행동의 뜻을 함축하는 말이다.

(주); 쾌락인지 알까 하여 - 1절의 '낙을 누리라'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2:4]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 '사업'이란 그 기본어가 '마아세'(*)로서 '행동', '일' 등을 뜻한다(Works, KJV, RSV, NASB), 그러나 영역본 NIV는 이를 '경영'(projects)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아무튼 본 구절은 뒷절에서 저자가 행한 바,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동산과 과원을 만드는 등의 일을 크게 확장한 사실을 가리킨다.

(주); 나를 위하여(*, 린)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4-8절에서 무려 8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이는 솔로몬이 자기의 세속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 애썼는지를 잘보여 준다.

(주); 집들을 지으며 - 이는 솔로몬이 왕궁과 처들을 위한 궁전 및 기타 성읍들을 많이 건축한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왕상 7:1-12;9:1,15-22, 24;10:21).

성 경: [전2:5]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 '동산'이란 성경에서 흔히 '왕의 동산'으로 불리우는 것으로서(왕하 25:4;느 3:15;렘 39:4;52:7) '과원'과 함께 왕궁 주변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왕상 21:2;아 1:6). 혹자는 이 동산에 개울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각종 과일 나무나 심겨져 있었다고 한다(Josephus).

성 경: [전2:6]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수목을 기르는 ... 못을 팠으며 -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여름의 긴 기간 동안 비가 안 오기 때문에 겨울의 우기(雨期) 동안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 놓기 위하여 커다란 물 웅덩이를 파 놓았다고 한다. 예컨대 실로암 못(요 9:7), 헤브론 못(삼하 4:12), 헤스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못(아 7:4) 등이 이런 용도로 사용된 것 같다(G.A. Barton).

성 경: [전2:7]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노비는 사기도 ... 하였으며 - 흔히 히브리 사회에서 노예로 되는 경우는 다음 다섯 가지가 있다. (1) 전쟁에서 패한 자들을 노예로 삼는 예(민 31:9;왕하 5:2), (2) 다른 사람에게서 노예를 사는 예(창 17:27;37:28,36;겔 27:13), (3) 노예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예(창 17:12), (4) 빚을 갚기 위해 자신 또는 그 자녀가 노예가 되는 예(출 22:3;왕하 4:1), (5) 가난 때문에 자신 또는 그 자녀를 노예로 판 예(레 25:39,47)등이다. 이중에서 본절은 (2), (3)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의 노예에 대한 언급은 왕상 9:20, 21;10:5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성 경: [전2:8]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은,금 - 솔로몬 왕 당시 풍부하게 사용되었던 은금은 그의(또는 그의 왕국의) 부요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좋은 증표 중의 하나이다(왕상 10:14-25,27).

(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 - 당시 솔로몬 왕이 정복하고 다스리던 주위 여러 이방 족속의 왕들로부터 보내어진 보배들이나(왕상 4:21) 또는 스바 여왕과 같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온 주변 국가의 왕들이나 그 지역에서 보내어진 보물들(왕상 10:1-13, 23-25), 기타 주위 교역 국가에서 들여온 무역품을 가리키는 듯하다(Lange, Eaton).

(주); 노래하는 남녀 - 이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대상 23:5;25:1-31 참조), 당시 사회적인 축제나 연회석 등에서 흥을 돋구기 위해 노래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삼하 19:35). 이들에 대한 언급은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시대에도 나타난다(사 5:12;암 6:5).

(주); 처와 첩들 -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루터(Luther), 킴치(Kimchi)등은 이를 '모든 종류의 악기'를 뜻하는 것으로 보며, 영역본 KJV도 '악기들과 모든 종류의 악기들'(musical instruments, and that of all sorts)로 번역하고 있다. (2) 페쉬타(Peshitta)역은 이를 '술 따르는 남녀들'로 번역하였다. (3) 그러나 대부분 현대 주석가들은 '첩과 첩들' 또는 '부인과 부인들'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Lange, Delitzsch, Hengstenberg, Hitzig, Eaton). 그리고 영역본 RSV, NASB도 '많은 첩들'(many concubines)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전2:9]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 '창성하여'의 히브리어 '가달'(*)은 '크게 되다'(became great, RSV, NASB)는 뜻을 갖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물질적으로 크게 번성한 것을 암시한다(창 24:25;26:13;욥 1:3 참조).

성 경: [전2:10]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본절의 '눈'과 '마음'은 기자의 즐거움의 외적, 내적 측면을 각각 시사한다. 다시말해서 가시적인 쾌락의 대상이나 내면적 만족감을 주는 것을 막론하고 모든 즐거움을 추구하여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음절 내용으로 볼 때, 기자는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기뻐하였을지라도 그것을 성취한 후에는 결국 동일한 허무감과 불만족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느꼈음에 분명하다(M.A. Eaton). 한편 '분복'의 히브리어 '헬레크'(*)는 (제비 뽑는 돌과 관련된 말로서의) '매끄럽다' 혹은 '분배하다'의 뜻인 '할라크'(*)에서 유래되었으며 '할당', '몫' 등을 뜻한다. 이는 본서에서 여섯 번 언급되었는데(3:22;5:18, 19;9:6,9), 다른 책에서는 '분깃'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창 31:14;민 18:20;신 12:12).

성 경: [전2:11]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쾌락과 부(富)의 헛됨]

(주); 모든 수고가 ... 무익한 것이로다. 이는 솔로몬이 자신의 육신적인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서 재물, 물질적 번영, 처와 첩들 등 온갖 수단을 통해서 애쓴 모든 일이 헛되고 무익하다는 뜻으로서 1:3, 14의 말을 다시 한번 확언한 것이라 하겠다.

성 경: [전2:12]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망령됨 - 이는 히브리어로 '호렐루트'(*)로서 1:17의 '미친 것'이란 말과 같다.

(주); 왕의 뒤에 오는 자는 ... 행할꼬 - 본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중 어느 쪽을 취하더라도 근본 의미는 동일하다. (1) 솔로몬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자도 솔로몬이 추구했던 바 그 이상을 하지는 못하고 결국 시행 착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뜻(what can the man do that cometh after the king? even that which hath been already done, KJV, NIV나 RSV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번역함). (2) 인생의 낙을 찾아 헤매는 후대의 왕들도 솔로몬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뜻(anyone else would come to the same conclusion I did, LB). (3) '미래의 왕들은 내가 당했던 문제들에 직면할 때 어떻게 반응하며 처신할꼬?'라는 의미(M.A. Eaton) 등이다.

성 경: [전2:13]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지혜가 우매보다 ... 뛰어남 같도다 - 전도자는 이전에 '지혜를 알고자'한 것이 헛되며(1:17),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나'(1:18)라고 하여 세상 지혜의 허무함을 말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어느 정도 상대적으로 지혜의 우등함을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본절에서 전도자가 지혜를 빛에, 우매를 어두움에 비유한 것은 그 특성상 빛이 사물의 면들을 어두움에서 밝혀주어 질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갈 길을 보여 주는 반면 이 어두움은 사물의 실상을 감추고 혼돈과 무질서를 야기시키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 경: [전2:14]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눈이 밝고(*, 에나 베로쇼) - 직역하면 '그의 눈이 그의 머리에 있다'(man's eyes are in his head, KJV, NASB;has his eyes in his head, RSV)의 뜻으로 지혜자의 안목이 열렸음을 뜻하는 것 같다(Barton, Ginsburg). 이는 곧 그 사람이 사물, 상황을 옳게 보고 바른 길로 간다는 뜻을 내포한다(마 6:22, 23;요 8:12;12:35;엡 1:18 참조).

(주); 이들의 당하는 일이 ... 깨닫고 - 13절과 본절 상반절에서 지혜의 우등함을 잠시 인정한 듯하였으나 세상 지혜에 대해 다시 한번 한계를 토로하고 있다. 여기서 '일반'의 히브리어 '미크레 에하드'(*)는 '에하드'가 '공통된', '하나의'란 뜻을 '미크레'는 '우연'이란 뜻을 암시하는 바 '공통적으로 당하는 한 사건(일)'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역본들은 이를 '한 사건'(one event, KJV), '같은 운명'(the same fate, NIV), '한 운명'(one fate, RSV, NASB)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 즉 본절의 지혜자나 우매자들이 한결같이 처하게 되는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M.A. Eaton, G.A. Barton, LANGE). 전도자는 본절에서 지혜자나 우매자가 궁극적으로 같은 운명, 죽음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고 세상 지혜의 한계와 헛됨을 통감한 것이다(15절).

성 경: [전2:15]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심중에 이르기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와우'(*, Then, KJV, NIV, RSV)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본절이 앞절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서 14절의 결과로 언급되어졌음을 엿보게 한다.

성 경: [전2:16]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지혜자나 우매자나 ... 일반이로다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 왜냐하면, For, KJV, NIV, RSV)가 있다. 이는 본절이 15절의 원인절임을 암시한다. 저자는 14절 하반절에 이어 본절에서 지혜자나 우매자의 한결같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들어 지혜의 허무함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전2:17]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지혜의 허무함]

(주); 사는 것을 한하였노라 - '한하였노니'의 히브리어 '사네'(*)는 '싫어하다', '증오하다'의 뜻을 갖는다. 혹자는 이를 어떤 것에 대한 강한 감정적 반동(反動)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삼하 13:15;사 1:14;암 5:21;말 1:3 참조, Barton). 아마 전도자는 그가 우매자와 똑같이 인생의 종말인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반발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주의의 신앙적 인생관을 다시금 회복한 뒤에는, 짧은 인생을 한탄하는 소극적 삶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축복으로 여기고 선을 추구하는 적극적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3:12;5:18,20;9:9).

(주); 해 아래서 하는 일이 ... 괴로움이요 - '괴로움'(*, 라)은 문자적으로 '악'(신 19:19;삿 3:7;삼상 12:20;왕상 15:34), '해'(害)(21절;시 23:4;35:26;렘 38:4), '역경' 등을 뜻하는데 솔로몬이 한때 하나님을 떠나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4절) 육신적 쾌락을 위해 살며 수고한 일의 결과가 오히려 자신에게 쓰디쓴 해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성 경: [전2:18]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 '끼치게 됨이라'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야니흐'(*)로서 '주다', '부여하다'의 뜻이며 본구절에서는 솔로몬의 후예에게 넘겨줌을 가리킨다(leave, KJV, RSV). 이 말 속에는 후대의 인물이 솔로몬 자신의 업적을 물려받아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결국 물거품처럼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물론 본절은 솔로몬이 추구하고 또 얻었던 것들을 후예에게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그토록 피땀흘려 얻은 것들을 정작 자신은 오래도록 누릴 수 없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 경: [전2:19,20]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18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2:21]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어떤 사람은 ... 해로다 - 본절 역시 솔로몬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 결과를 그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그 후예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한탄을 나타낸 18,19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업'의 히브리어 '헬르코'(*)는 10절의 '분복'이란 말과 같다.

성 경: [전2:22]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사람이 해 아래서 ... 무엇이랴 - 이는 17-21절을 지나오면서 결론적으로 얻은 내용을 유도해 내기 위한 역설적 질문이다.

성 경: [전2:23]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일평생에 근심하며 ... 슬픔 뿐이라 - 이는 흔히 '일평생이 근심이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이라'는 뜻으로 본다(Clark, Deane). 영역본 KJV, RSV 등도 각각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all his days are sorrows, and his travail grief, KJV;all his days are full of pain, and his work is a vexation, RSV). 이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 혹은 세상적인 명예와 부귀를 위해 온 열성을 다하는 삶의 허망한 결과를 암시한다.

(주);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 이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몰두하는 것 혹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이 그 물질에 대한 애착과 염려로 인하여 밤에도 평안히 안식하지 못함을 나타낸다(5:12,13).

성 경: [전2:24]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 인생의 참다운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는 신본주의적 신앙을 암시한다. 이러한 신앙에 확고한 기반을 둘 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보람과 기쁨이 된다(상반절)는 것이 저자의 결론적 깨달음이다. 이는 전도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육신적 쾌락의 삶을 추구하려 했던 것과는 (4-10절)대조를 이룬다.

성 경: [전2:25]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 승하랴 - 본절의 '나보다'를 '밈멘니'(*)로 보느냐 '밈멘누'(*)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나, 영역본 KJV는 전자를 위하여 한글 개역 성경처럼 '나보다 더'(more than I)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NIV, RSV, NASB등은 후자를 취하여 '그를(하나님을)떠나서는'(without him, NIV, NASB;apart from him, RSV)으로 번역하여 본절 전체를 '누가 그를 떠나서 먹을 수 있으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70인역(LXX)도 본절을 '파레크스 아우토'(*, 그를 떠나서)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주석가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Delitzsch, M.A. Eaton, Lange). 만약 후자가 옳다면 본절은 24절 후반부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참된 축복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만 말미암음을 나타낸다.

성 경: [전2:26]

주제1: [허무함의 실례들]

주제2: [수고함의 헛됨]

(주); 하나님이 ... 주게 하시나니 - 본절에서 '그 기뻐하시는 자'(*, 아담 쉐토브 레파나)란 직역하면 '그(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a man that is good in his sight, KJV)의 뜻이다. 여기에서 '선한'(*, 토브)이란 1절의 '낙'이란 말과 같은 말로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좋은', '아름다운'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런 점에서 본절은 곧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암시한다. 결국 이는 인생의 행복한 최선(最善)의 삶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경건한 자세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성 경: [전3:1]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1-8절은 본서 전체의 주제와 중요한 연관성을 맺고 있으며, 이전까지의 내용 및 이후에 이어질 내용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인생의 매일 매일의 삶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때 비로소 의미있게 되며(12, 13절;2:24-26)어떤 일의 성취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올바른 결단을 내릴 가장 적절한 시기를 분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깨달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는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 물론 여기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계획이 인생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전3:2]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날 때가 있고 ... 있으며 - 전도자는 여기서 인생의 시작과 끝인 출생과 죽음을 언급함으로써 삶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하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혹자는 본절을 산아 제한에 대한 명백한 반박 구절로 삼기도 한다(J.Stafford Wright). 한편 '날'(*, 랄레데트)을 능동태로 취하여 여인이 아기를 낳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to give birth , NASB, Lange). 반면 KJV, NIV, RSV 등은 이것을 수동적인 의미로 취하여 '태어나는 것'(to be born)을 의미하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중에서 바로 이어지는 '죽을'이라는 말과 연관시켜 볼 때 후자가 더 나을 것 같다.

(주); 심을 때가 있고 ... 있으며 - 전도자는 상반절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언급한 데 이어 본 구절에서는 식물의 삶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혹자는 여기서 심고 뽑는 다는 것을 한 왕국이 번성하고 쇠퇴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 하나(Eaton) 그보다는 단순히 상반절에서 언급된 인간의 영역에서 자연의 영역으로 옳겨간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전3:3]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죽일 때가 있고 ... 있으며 - 2절에서는 인생의 출생과 죽음, 즉 처음과 끝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인생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죽음과 치료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전도자는 이 문제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주관 하에서 되어진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다. 한편 '죽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형 '하라그'(*)는 고의적 살인을 지칭하는 '라차흐'(*)와는 다른 단어이다(출 20:13;신 5:17).

(주); 헐 때가 있고 ... 있으며 - 건축물들을 헐고 세우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에 관한 언급이다. 특히 이는 솔로몬이 성전을 비롯한 수 많은 건물들을 지은 사실과 관련이 있다(2:4 참조).

성 경: [전3:4]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울 때가 있고 ... 있으며 - 본절은 장례식이나 기타 비극적 상황에 처한 때의 행동과 결혼식이나 기타 잔치석상에서의 행동을 서로 대조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히브리 사횡에서는 장례식 때는 애곡자(哀哭者)들을 초청하여 그 슬픈 분위기를 더하였다(렘 9:17-20). 그리고 혼인식에는 많은 손님들이 와 기쁨을 더해 주었다(삿 14:11;요 2:1-11).

성 경: [전3:5]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돌을 던져 버릴 때가 ... 거둘 때가 있으며 - 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1) 돌을 밭이나 포도원 등에 던져 못쓰게 하거나 그 돌을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왕하 3:19,25;사 5:2, Delitzsch, A.W.Knobel, F.Hitzig). (2) 돌을 모아 건물을 짓거나 허는 것을 암시한다(Lange). (3) 돌을 거둔다는 것은 군사적 정복을 위해 침투로를 준비한다는 의미이고, 돌을 던져버린다는 것은 적국의 경작지를 황폐화시키는 것과 같은 군사적 공격 행위를 일컫는다(사 62:10, Eaton). 그러나 여기서는 (1)이 가장 무난한 해석으로 보인다.

성 경: [전3:6]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찾을 때가 있고 ... 있으며 - 본절은 개인적인 재산이나 물질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이세상에서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할 때가 있지만 그것이 없어질 때에는 그에 대한 지나친 애착(물질 우상 숭배자처럼)을 가지지 말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함을 엿보게 해준다. 특히 '버릴 때'란 항해자가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짐들을 바다에 버리는 것같이(욘 1:5;행 27:18,19), 보다 더 크고 신성한 목적을 위해 재물을 내어 버리는 것 또는 구제나 선한 사업등을 위해 재물을 내어 놓는 것(잠 11:24-26)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성 경: [전3:7]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 본 구절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1) 슬픔이나 비참한 상황을 맞을 때 격한 감정의 표현으로서 옷을 찢는 것(왕하 18:37;19:1)과 그후 옷을 깁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Lange). (2) 인간 행위의 파괴적인 면과 건설적인 면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Eaton). (3)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열될 것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다(Plumtre). 이중에서는 (1)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주); 잠잠할 때가 있고 ... 있으며 - 지혜로운 권고나 가르침 또는 위로 등을 할 때와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때를 말하는 듯하다. 특히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런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잠 25:11).

성 경: [전3:8]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되어지는 개인적 또는 국가간의 애증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 전쟁할 때가 있고 ... 있느니라 - 이는 상반절에 계속 이어지는 말로서 국가간의 반목이나 화해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 내용이다.

성 경: [전3:9]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일하는 자가 ... 이익이 있으랴 - 1:3;1:22의 내용과 유사하다. 본 문맥에서는 특히 이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섭리 안에서 되어지는 바, 죄악된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 도모하는 일들은 허무하고 무익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듯하다.

성 경: [전3:10]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 보았노라 - 9절에 연이어 죄악된 인간의 수고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고생스럽게 하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들의 죄의 결과로서, 스스로 야기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전3:11]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하나님이 ... 아름답게 하셨고 -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보실 때 '좋았더라'(창 1:31)고 하신 말씀을 생각케 한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는 문맥상 하나님이 2-8절에 암시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당신의 뜻과, 섭리대로 하실 때 아름답고 흠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주); 사람에게 ... 주셨느니라(*, 하올람 나탄 벧리밤) - 이는 '그가 그들의 마음에 영원을 두셨다'(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 of men, NIV;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ir heart, NASB)의 뜻이다. 이는 죄악된 인생의 유한성과 연약성 및 그로 말미암는 허무 의식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서 전체의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사(창 1:27) 당신과 더불어 영원히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여기서 '영원'이란 말을 '세상'(the world, KJV)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Luther), 다른 사람은 '무지'를 뜻하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하나(G.A. Barton) 그 근거는 불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주석가들은 이를 한글 개역 성경처럼 '영원' 또는 '영원을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Nowack, Ginsburg, Wangeman, Wright).

(주); 그러나 ...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으되, 인간은 제한적인 피조물인 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더더욱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마음과 생각이 부패되고 왜곡된 바(렘 17:9;롬 1:21) 그런 상태에서는 하는 일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십상이다.

성 경: [전3:12]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선을 행하는 것(*, 라아소트 토브) -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2:24;3:22;5:17;8:15;9:7 등에 암시되어진 것처럼 인생 여정 가운데서 삶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Ginsburg, G.A.Barton, D.R. Glenn, M.A. Eaton). 영역본 RSV도 이를 '즐기는 것'(enjoy)으로 번역하고 있다. (2) 7:20에서처럼 하나님의 의를 행하며 도의적, 신앙적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Hengstenberg, Wright, Ewald, Plumtre). 이중에서 70인역(LXX), 탈굼역(Targum), 시리아역(Syriac), 제롬역(Jerome) 등은 (2)를 지지한다.

성 경: [전3:13]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여기서 '먹고 마시는 것'이란 안락하고 행복한 삶의 표시로서 언급되고 있다. 또한 매일의 수고가 이전에는 즐거운 것 혹은 헛된 것이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측면에서 언급되었으나(2:10,11), 여기서는 오직 즐거움이란 측면에서만 언급된다. 이러한 전환의 결정적인 요인은 본절 하반절에서 암시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인 것이다.

성 경: [전3:14]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하나님의 행하시는 ... 있을 것이라 - 이는 2-8, 11, 13절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 가운데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그 속성상 영원히 존재하며 아무도 그것을 훼방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주);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줄 - '경외하게'의 히브리어 '야레'(*)는 단순한 공포감을 말하지 않고 경배심 및 공경심을 아울러 갖는 두려움을 암시한다(시 85:9). 본 구절에서 이는 온 세상 만물을 당신의 뜻과 섭리대로 역사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 구절은 본서의 결론인 12:13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경외'에 대해 지식은 근본(잠 1:7), 지혜의 근본(잠 9:10), 하나님의 친밀함을 얻는 길(시 25:14),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길(시 34:7),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얻는 길(시 103:11, 17),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길(시 115:13) 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 경: [전3:15]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이제 있는 것이 ... 찾으시느니라 - 이는 1:9, 10과 유사한 내용이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즉 1:9, 10이 반복되는 자연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나타낸 것이라면 본절은 앞절들 1-8, 14절과 연관되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법칙 또는 신적(神的) 질서가 불변하다는 것을 암시한다(Delitzsch, Barton, Deane).

성 경: [전3:16]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내가 ... 또 보건대 -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역사를 다룬 앞 내용들(1-15절)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죄악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본다는 말이다.

(주); 재판하는 곳에 ... 악이 있도다 - 여기서 '악'(*, 레솨)이란 '라솨'(*, 죄를 범하다, 사악하게 행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범죄', '사악함' 등의 뜻을 갖는다. 사회적 기강의 근원이 되며 신뢰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재판상의 정의가 무너져버린 사실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혹은 뇌물에 의해 재판정에서 불공정한 판결이 나게 되면 사회 불안이 야기된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이 있었다. 한편 혹자는 '재판하는 곳'이란 '정의를 실행하는 재판정'을 '공의(*, 체데크)를 행하는 곳'이란 신앙적인 의식이 행해지는 '경건한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Barton).

성 경: [전3:17]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의인과 악인을 ... 심판하시리니 -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 때에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징벌로 공의에 따라 보응하심을 나타낸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본절의 '심판하시리니'가 (1) 의인에 대해서는 변호하시는 것을 (시 7:8;26:1), (2) 악안에 대해서는 심판한시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Delitzsch). 요컨대, 본절은 죄악된 인생이 불의하고 허무하며 무상하나 여전히 살아계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온 만물들을 섭리, 통치하시는 바(2-8, 14,15절) 그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시리라는 전도자의 믿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성 경: [전3:18]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하나님이 저희를 ...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내용상 16,17절과 연관된다(G.A. Barton). 즉 '재판하는 곳'과 '공의를 행하는 곳'에서 악이 행해지는 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어 멸망받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죽음에 처해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험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바라르'(*)는 '밝게(깨끗이)하다'(단 11:35), '조사하다', '시험하다', '입증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생의 면면들을 드러내어 밝히시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혹자는 이를 키질하는 것과 연결시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여 드러낸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보기도 한다(Delitzsch).

성 경: [전3:19]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 이는 상반절에 언급된 대로 사람이나 짐승이 한결같이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는 점에 기인되어한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에는 또한 16, 17절에 암시되어진 바 인간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성 경: [전3:20]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다 흙으로 ... 한곳으로 가거니와 - 18-21절에서 기자는 인생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음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특히 본절은 인체(人體)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짐승의 몸과 동일하게 흙의 성분임을 지적함으로써 그 허무함을 밝힌다. 한편, 이는 타락한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연상시킨다(창 3:19). 그리고 여기서 '한 곳'이란 사람이나 짐승이 죽어 묻히는 땅을 가리킨다(21절; 6:6;12:7, Lange, Delitzsch, Glenn).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 땅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음부 즉 어두운 땅 밑 지하세계에 가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시 86;13 참조) 전도자 자신도 여기에서 이 음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9:10, Eaton).

성 경: [전3:21]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기자는 사람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기서는 사후(死後)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짐승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짐승의 혼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끊어져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사후의 인생의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관 하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Eaton). 그리고 혼(*, 루아흐)이라는 말이 본절에서 사람이나 짐승에게 도일하게 적용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사람에게는 '영혼'으로, 그리고 짐승에게는 '호흡'(혹은 의식 기능) 정도로 적용시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성 경: [전3:22]

주제1: [하나님의 법칙과 인생의 허무]

주제2: [전한 때와 기한]

(주); 내 소견에는(*, 라이티) - 문자적으로는 '내가 보기에는'(I saw, NIV, RSV;I have seen, NASB)의 뜻이다. 이는 전도자가 이전에 체험했던 수많은 인생 경험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을 나타낸다(2:1-11 참조). 그리고 이는 12절; 2:24; 5:18; 8:15; 9:7-9의 내용과 일맥 상통한다.

(주);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 13절;2:22등을 연관시켜 볼 때 일하는 가운데, 그 일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주); 그의 분복이라 - '분복'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주); 그 신후사를 ... 누구이랴 - 여기에서 '신후사'(*, 베메 쉐이헤에 아하라)란 직역하면 '그의 뒤에 있는 것'(what will happen after him, NIV; what will occur after him, NASB)의 뜻이다. 이는 문맥상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Lange, Delitzsch, Eaton). 그리고 본절의 전반적인 의미는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무관해지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를 얻고 그것을 누리는(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인 듯하다.

성 경: [전4:1]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모든 학대(虐待)를 보았도다 - '학대'에 해당하는 '아슈크'(*)는 '누르다', '사취하다'의 뜻인 '아솨크'(*)의 수동태 분사로서 '압제', '억압'등을 의미한다(oppressions, KJV, RSV). 본절에서는 세도가들의 수탈과 압제를 가리키는 듯하나 압제와 피압제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한계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경에는 피압제자에 대한 긍휼에 드러내는 구절이 많다. 예컨대, 왕이 백성들을 압제하는 경우(잠 28:16), 주인이 종을 학대하는 경우(신 24:14),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경우(잠 22:16;암 4:1) 등에 대한 분개가 그것이다. 특히 나그네나 고아, 과부 등은 각별한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렘 7:6;겔 22:7;슥 7:10).

(주); 위로자가 없도다 - 이 말은 본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도움받을 길 없는 딱한 처지를 한층 더 강조해 줌과 동시에 이들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전4:2]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그러므로 나는 ... 복되다 하였으며 - 이는 3:22과 대조되며 욥 3:20, 21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으로서, 학대받는 자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3:22;9:4-10 등을 근거해 볼 때 전도자의 뿌리 깊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언급한 것이다(G.A.Barton). 특히 본절에서 전도자가 학대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와같이 말한 것은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라는(1:1, 12)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않아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로서 약한 자들을 동정하는 상태에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편 본절의 '복되다'에 해당하는 '민'(*)은 ' ...보다 위', ' ...보다 더'(more than, KJV, NASB)라는 비교급의 뜻을 갖는다.

성 경: [전4:3]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이 둘보다도 ... 낫다 하였노라 - 이는 욥이 극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그의 출생일을 한탄한 말(3:1-16)을 연상케 한다. 본절 역시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강도높게 묘사한 것이다.

성 경: [전4:4]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내가 또 본즉 ... 시기를 받으니 - 본절에서는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한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수고와 재능에 대해 시기하기 쉽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지나친 경쟁 의식,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함하기 쉽다. '교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쉐론'(*)은 '성공', '성취', '기술' 등을 의미한다. 영역본들 중 RSV, NASB 등은 이를 '기술'(skill)로 번역하나 NIV는 이를 '성취'(achievement)로 번역하고 있다. 주석가들 가운데서도 이를 '성공'을 뜻한다고 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자도 있다(Lange, G.A.Barton). 반면 2:21에서는 이를 '재주'(skill, RSV, NIV,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요컨대, 이 말은 사람이 훌륭한 기술로 인하여 성공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M.A.Eaton, Lange).

성 경: [전4:5]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우매자는 ... 살을 먹느니라 - 이는 앞절(4절)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함이 무방할 듯하다. 즉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성공을 이루는 '교묘한 일'을 시기, 질투할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우매자에 대한 언급이라는 말이다. 특히 '손을 거두고'란 일하기 싫어서 손놀리기를 멈추고 빈둥거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잠 6:10;19:24;24:33 등과 유사하다(Lange, G.A.Barton, M.A.Eaton). 그리고 '살을 먹느니라'란 우매자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시 27:2;사 49:26;미 3:3). 아마도 본절은 전도자가 당시 유행했던 잠언을 인용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전4:6]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한 손에만 가득하고 ... 나으니라 - 이것도 5절처럼 당시 유행되던 잠언구를 인용한 것인 듯하다. 원문을 직역하면 '평온함이 가득한 한손이 수고로 가득한 두 손보다 낫다'(Better is a handfull of quietness than two hands full of toil, RSV)의 뜻이다. 여기서 앞의 '손'은 그 기본어가 '카프'(*)로서 약간 오목하되 거의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을 뜻하며, 뒤의 '손'은 그 기본어가 '호펜'(*)으로서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 주먹을 뜻한다(G.A.Barton). 이러한 원어상의 뜻은 상호 대조적인 의미를 잘 반영해 준다. 즉 전자의 의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의 의미는 물질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이는 앞절(5절)과 연관되는 말로서 게으른 우매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위로하는 말 또는 '수고'와 '교묘한 일'을 통해 성공한 부지런한 이웃(4절)에 대해 질투하는 말로 이해한다(Lange). (2) 지나친 과욕이나(하반절) 지나친 게으름(5절)을 배격하는 절제된 중용의 삶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취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당량을 취한 상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누리는 것이 최선의 상태임을 가리치는 말이다(M.A.Eaton). (3) 이는 앞 뒤 문맥의 사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서 전도자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성 경: [전4:7,8]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어떤 사람은 ... 하는고 하나니 - 이는 그 주위에 아들이나 형제가 없는 고독한 자가 느끼는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고독한 자가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일하며 부를 만족하지 않는 것은 그가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해 준다. 한편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란 '눈'이 인간 내면의 욕망을 나타내는 외적인 한 기관으로서 표현되어지는 바(2:10) 고독자가 자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에 집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절에서 고독자가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은 자신의 노력이나 외적인 상황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고 창조주 되시며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 가능함을 엿보게 한다(2:24, 26).

성 경: [전4:9]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두 사람이 ...얻을 것임이라 - 이는 앞절(8절)의 고독자의 허무함에 비해 뜻이 맞아 협력하는 자들의 유익성을 상대적으로 언급한 말로 보인다. 성경에서 두 사람의 협력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여러번 언급되어지는데 그 최초의 암시는 창 2:18-24의 결혼의 유익성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도의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둘씩 파송한 것도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눅 10:1). 그리고 주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한편 혹자는 여기에서 '상'이란 이어지는 세 절에 나타나는 세 가지 실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Lange). 그러나 그보다는 두 사람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갖가지 유익들을 지칭한 말로 보는 것이 낫다.

성 경: [전4:10]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 있으리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 '키'(*)라는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가 있다. 이는 본절이 앞절(9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본절의 묘사는 흔히 팔레스틴과 같은 거칠은 사막과 광야 지역에서 여행할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갖가지 유혹과 실패로 인해 낙망하고 무의미와 회의감에 젖어 있을 때 옆에서 위로하고 붙들어 일으켜 줄 신앙의 동반자가 필요 요청되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화'란 9절의 '상'이란 말과 대조를 이룬다.

성 경: [전4:11]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 따뜻하랴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또한', '역시'의 뜻인 '감'(*)이라는 낱말이 있다. 이것은 본절이 앞절(10절)과 같이 9절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절의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를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팔레스틴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팔레스틴 지역은 낮에는 기온이 높으나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매우 춥기 때문에 야영할 때 두 사람이 바싹 붙어서 자면 한결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렘 36:22, 30 참조).

성 경: [전4:12]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한 사람이면 ... 당(當)하나니 - 문맥상 본절은 계속해서 여행자가 당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 사람이 여행할 때 강도가 덮칠 경우 꼼짝없이 강탈당하고 말지만 두 사람이 여행할 경우에는 능히 당해낼 수 있는 협동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M.A. Eaton, G, A. Barton).

(주); 삽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여기에서 '삽겹 줄'이란 말은 앞절의 '두 사람'에서 하나를 더한 수를 뜻하며, 이와같이 어떤 수에서 하나를 더하는 식의 표현은 구약 시대에 흔히 사용된 것이다(11:2;암 1:11). 여기서는 둘 이상의 더 큰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할 수 있는 두 사람 이상의 많은 수를 암시한다(M.A. Eaton). 한편 유대인에게 있어서 '3'이란 완전 수를 상징하는 바, '삼겹 줄'이란 그 단결된 힘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단결된 힘은 신약 시대에 성도의 교회 생활 특히 기도 생활에서도 필수적이다(마 18:19, 20;요 17:21-23; 행 1:14;엡 4:12;빌 2:2;4:2).

성 경: [전4:13]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 나으니 - 본절에 대하여 혹자는 앞절들과 같이 고독의 어리석음(8절) 및 단결된 협력의 중요성(9-12절)의 주제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말하며(M.A. Eaton), 혹자는 인간 사회에서 누리는 행운의 허무함을 다루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Lange). 그러나 이보다는 인간사에서 누리는 명성 또는 인기의 허무함을 다루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Delitasch, D.R. Glenn). 한편 본절에서 '소년'(*, 옐레드)은 일반적으로 아동기를 벗어난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자들을 늙은 노인에 빗대어 사용하는 말로 보인다(창 37:10;삼상 3:1;왕상 12:8;14:21). 그리고 '둔하여'에 해당하는 '케실'(*)의 원래 의미는 '살진'이나 여기서는 '미련한'의 의미로 유추된다(foolish, KJV, NIV, RSV, NASB). 또한 '간함을'이란 그 원형이 '자하르'(*)로서 '훈계'(instruction, NASB), '경고'(warning, NIV)의 의미이다. 특히 본절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운 자로 간주되고 존경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레 19:32;욥 32:6;시 119:100), 본절은 왕의 어리석음을 더욱 극력하게 나타내준다 하겠다. 한편 본절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말인가 아니면 전도자 자신이 교훈을 위한 한 예증으로서 언급한 말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주장하는 견해들 중 탈굼역(Targum)은 아브라함과 니므롯과의 관계를, 미드라쉬(Midrash)는 요셉과 바로 또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언급한 구절이라고 본다. 그외에도 요아스(Joash)와 아마샤(Amaziah), 고레스(Cyrus)와 아스타지(Astyages) 등의 관계가 언급된 것이라고 주장되어지기도 한다. 반면 그레츠(Graetz)는 이를 헤롯 대왕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의 관계를 말한다고 하며 히찌히(Hitzig)는 톨레미 필리파테(Ptolemy Epiphanes)와의 관계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본서의 저작 연대를 솔로몬 시대가 아닌 휠씬 후기 연대로 잡아야 하는 바 납득하기 힘들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을 가설적인 예화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다(Eaton, Wysliffe).

성 경: [전4:14]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저는 그 나라에서 ... 되었음이니라 - 이는 13절의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이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의 왕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후에는 그 지혜로 그 나라의 왕이 되었음을 뜻한다(Eaton). 그러나 본절의 내용이 실제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지 아니면 하나의 가상적인 예화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나뉘이며, 만약 실제 역사적 상황을 말한다면 어느 시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3절에 언급된 것처럼 복잡하다.

성 경: [전4:15]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 하옐레드 하쉐니 아쉐르 야아모드 타흐타) - 직역하면 '그(왕)를 대신하여 뒤이어 일어난 두 번째(제이)의 소년'이란 뜻이다(the second child that shall stand up in his stead, KJV). 여기서 '두번째'(second)에 대해 혹자는 왕의 다음으로 권세 자리에 앉아 차후 그 왕위를 찬탈하는 제2인 선왕(先王)을 이어 왕으로 취임하는 후임자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Wright, Knobel).

성 경: [전4:16]

주제1: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한탄]

주제2: [불평등한 인생 모습]

(주);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 아니하리니 - 이는 지혜로운 소년이 후에 왕이 되어 백성들을 치리한다 할지라도 후 세대의 백성들이 그의 치정(治定)을 기억하거나 그의 공적등을 인정해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소년이 치리하는 세대는 그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가고 그 후 세대는 그 후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간다는 의미로서, 이는 1:11;2:16의 말씀을 연상케 하며 덧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명성의 헛됨, 무상함을 암시한다.

성 경: [전5:1]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하나님의 전 - 이는 솔로몬 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 안의 성전을 말하는 것 같다(왕상 6:1-38). 성전을 본절처럼 '하나님의 전'(the house of God) 또는 '여호와의 전'(the house of the Lord, 왕하 6:37;7:48) 등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의 지성소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는 상징적인 처소를 정하신 것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성막을 짓도록 계시하신 데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출 25:8,22).

(주); 발을 삼갈지어다 - '삼갈지어다'의 히브리어 기본형인 '솨마르'(*)는 근본 뜻이 '지키다', '보호하다'(keep, KJV;guard, NIV, RSV)이며, 여기서 '조심하다', '신중하다' 등의 뜻이 유출되었다. 본 구절은 부주의하고 경거망동하게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망령되게 행하지 말고 신중하고 거룩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엄위성, 거룩성을 은연중 엿보게 하는 말씀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선지자 하박국은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 나으니 - '말씀을 듣는 것'이란 그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순종한다는 뜻까지 내포하는 말이다(Lange, M.A. Eaton, G.A. Barton). 이럴 경우 본 구절의 의미는 선지자 사무엘이 말한 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라는 말씀과 유사하다(시 50:7-15;잠 21:3;사 1:11;렘 7:21-23;호6:6). 그리고 본 구절은 한편으로 형식적 신앙 생활의 무익함을 경계하는 반면 내실있는 신앙 생활, 즉 말씀에 입각하여 순종하는 신앙 생활의 복됨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하반절의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이란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타락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 마당만 밟으며 형식적으로 제사드리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과 이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은 사실을 생각케 한다(사 1:10-17).

성 경: [전5:2]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 내지 말라 - 혹자는 이를 4절과 연계시켜 서원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한 말로 본다(Barton). 그러나 다른 많은 주석가들은 본 구절이 하나님께 기도드릴때 주의할 것을 권고한 내용으로 여긴다(Eaton, Leupold, Deane). 즉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조급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말을 주의성 있게 할 것을 촉구한 교훈이라 하겠다. 이는 예수께서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신 바 기도할 때 중언 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생각케 한다(마 6:7). 한편 본절은 고대 지혜 문학에서 조급한 말이나 조급한 마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한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잠 14:29;21:5;29:20 참조).

(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 있음이니라 - 이는 하나님의 높고 엄위하심과 인간의 낮고 연약함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암시는 곧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말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즉 '해 아래서'(1:3)나 '하늘 아래서'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성 경: [전5:3]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일이 많으면 ... 나타나느니라 - 원문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꿈은 많은 일로 인해 생기고 우매자의 소리는 많은 말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다'(For the dream comes through much effort, and the voice of a fool through many words, NASB)의 뜻이다. 이는 '꿈'과 '우매자의 말'이 주어로 되어 많은 일과 많은 말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의 결과를 언급한 말이다. 즉 사람이 너무 많은 일에 분주할 경우 정신이 혼란스럽고 복잡하여 번민함으로 잠을 잘 때 꿈을 꾸게 되며, 말이 많을 경우에도 부주의하게 됨으로 헛된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본서에서는 이런 꿈을 '헛된 것'으로(7절), 6:9의 심령의 공상을 '무익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위와 같은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전혀 유익하지 못하고 정신만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 경: [전5:4,5]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서원하였거든 ... 말라 - '서원하였거든'의 히브리어 기본형 '나다르'(*)는 '약속하다', '맹세하다'의 뜻을 함축한다. 이 서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뜻에서 또는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하여 행해졌으며(창 28:20-22; 삿 11:30-40; 삼상 1:11), 율법 규정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민 30:2;신 23:21-23). 한편 이 서원은 일반적으로 셋 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헌신하겠다는 쌍무적 서원(삿 11:30, 31), (2) 서원자가 자발적으로 무조건 헌신하겠다는 일방적 서원(시 132:2-5), (3)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서원(시 56:12, 13;66:13-15), (4) 신앙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각성과 절제를 위한 서원(삼상 14:24) 등이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본절은 특히 모세의 율법 중 민 30:2;신 23:21-23 등에 근거하여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문맥상 2,3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경시하지 말며 그분을 경외하는 신신한 삶을 권고하는 내용이며 본서의 최종 목적인 하나님 경외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다(12:13).

성 경: [전5:6]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네 입으로 네 육체를 ...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 이는 4,5절에 연관되는 말씀으로서 사람이 하나님께 행한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 큰 실수, 또는 그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심각성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육체'에 해당하는 '바사르'(*)는 '살'(창 2:21;출 22:27;애 3:4), '몸'(창 2:24;레 14:9). '육체'(창 6:4;7:15;렘 32:27) 등을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사람의 인격 자체와 연관된 뜻에서 언급되어진 말로 보인다.

(주); 사자(*, 말라크) - '파견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천사'(창 19:1;대상 21:20), '사자'(messenger, 왕하 5:10;22:20), '(여호와의)사자'(angel, 창 16:7;22:15;삿 6:12-21) 등 다양한 뜻을 의미하는 말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1) 하나님 당신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창 16:7;삿 6:12, 21, G.A. Barton). (2) 단순히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킨다(민 20:16;슥 1:9). (3) 선지자(합 1:12;말 3:1)나 제사장(말 2:7) 같은 하나님의 대리인을 가리킨다(Lange, M.A. Eaton).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경우에 제사장들 앞에서 하나님께 서원하였던 사실로 보아 (3)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레 27:1-33).

성 경: [전5:7]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헛된 예배]

(주); 꿈이 많으면 ... 그러하니 - 본절에서 많은 꿈의 허무함을 많은 말의 헛됨과 나란히 병행 구절로 취급한 것은 2,3절과 연관해 볼 때 세상일에 지나치게 분주함과 무분별한 언사가 하나님앞에서 행하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큰 걸림돌이 됨을 암시한다.

(주);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 이 따에서 타락한 인간들이 무엇을 분주하게 도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엿보여 주는 말로서 12:13과 맥을 같이한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성 경: [전5:8]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도(道) - 이는 2:8의 '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가리킬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당시 솔로몬 왕이 정복하고 다르렸던 지역 또는 기타 주위 많은 이방 족속의 땅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 빈민을 ... 박멸하는 것 - 이는 권력을 가진 세도가들이 재물을 수탈하기 위하여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불의를 자행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공의'(*, 미쉬파트 와체데크)란 문자적으로 '공의와 의'(justice and right, RSV)를 뜻한다. 특히 '공의'를 뜻하는 '미쉬파트'(*)는 '(법적으로 선언된) 판결', '선고', '법'등의 뜻을 내포한다. 그리고 '박멸하는 것'에 해당하는 '게젤'(*)은 '약탈', '강탈'등의 뜻이다.

(주); 이상히 여기지 말라 - 당연히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너무 놀라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do not be surprised at..., NIV).

(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 ... 있음이니라 -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에 대해 혹자는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관원'(officer)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Barton), 그보다는 세상의 모든 권세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그들을 지배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롬 13:1,2). 그리고 본절의 '높은 자들'(*, 게보힘)도 한 나라의 왕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모든 권세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장엄복수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을 '창조자'(*, 보로임, 12"1), '거룩하신 자'(*, 케도쉼, 잠 9:10;30:3) 등과 같이 복수로 묘사한 것과 같은 유형이다(Lange).

성 경: [전5:9]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땅의 이익(利益)은 ... 받느니라(*, 웨이트론 에레츠 바콜 히 멜레크 레사데 네에바드) - 본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이다. 영역본 NASB는 이를 '결국, 밭을 경작하는 왕은 땅에서 유익이 있다'(After all, a king who cultivates the field is an advantage to the land)로, RSV는 '모든 면에서, 왕은 경작된 밭을 가진 땅에서 유익이 있다'(But in all, king is an advantage to a land with cultivated fidlds)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NIV는 개역 성경처럼, '땅의 소산은 모든 사람에 의해 취해진다. 왕 자신도 땅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the increase from the land is taken by all; the king himself profits from the fields)로 KJV로 이와 비슷하게 '더구나 땅의 유익은 모든 사람을 위하고 왕 자신도 밭에서 유익을 얻는다'(Moreover the profit of the earth is for all : the king himself is served by the field)로 번역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해석이 분분하나 일반적으로 문맥상 본절은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된 NIV가 가장 타당한 듯이 보인다(Eaton). 만약 이럴 경우 본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며 왕이라 할지라도 땅으로부터 그 소산을 얻는데, 불의한 수탈자가 어떻게 빈민을 학대하고 공의를 업수히 여기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뜻으로서 8절의 내용을 부연하는 것이라 하겠다.

성 경: [전5:10]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은(銀) - 이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일찍부터 물물 교환의 수단으로써 화폐 역할을 했다(창 23:16;37:28). 따라서 영역본 KJV, RSV, NASB등은 이를 '돈'(money)으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전5:11]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재산이 더하면 ... 더하나니 - 여기서 '먹는 자'란 재산을 모은 자의 식솔 특히 그 가정에서 거느린 종을 의미하는 것 같다(왕상 5:13;욥 1:3, Lange). 이런 점에서 본절은 재산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소비량도 증가한다는 뜻으로서 곧 앞절에 명시된 바와 같이 사람이 재산의 증가로 만족케 될 수 없음을 뜻한다.

(주); 그 소유주가 ... 유익하랴 -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 혹자는 식솔(종)들의 증가라고 보기도 하나(Ginsburg) 그보다는 축적된 부의 증가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 즉 본절의 재산가는 단순히 외형적인 여건에 의한 일시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성 경: [전5:12]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노동자 - 이는 70인역에서는 '종'(*, 둘루)으로 번역하였으나, 이는 단순히 '종'이나 '노예'라기보다는 땀흘린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창 4:2;출 20:9, Lange, Leupold).

(주);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 '배부름'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혹자는 위(胃)에 음식이 가득 찬 '포식'의 의미로 보나(G.A. Barton), 다른 사람은 단지 '풍부함'의 뜻을 갖는 것으로 본다(D.R. Glenn). 영역본 중에서도 NASB는 이를 '가득 찬 위'(the full stomach)로, RSV는 '과식'(surfeit)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NIV, KJV는 '풍부함'(the abundance)으로 번역하고 있다. 원어상으로 볼 때 이 말의 어근이 되는 '사바'(*)는 '충분하게 하다', '만족시키다'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배부름'의 뜻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며(출 16:12;레 26:26;신 31:20; 욥 31:31;시 78:29;잠 1:31 참조), 다른 많은 곳에서도 '풍부함'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창 41:29-31,34,47,53; 잠 3:10 참조). 여기서 우리는 이를 위(胃)의 두 의미 즉 재물의 '풍푸함'과 '배부름'의 뜻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M.A. Eaton). 요컨대, 재물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그만큼 걱정거리가 많아져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성 경: [전5:13]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큰 폐단(*, 라아 홀라) - 문자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악'(a sore evil, KJV; a frievous evil, RSV, NASB)이란 뜻이다. 특히 '폐단'으로 번역된 '라아'는 '상하게 하다', '해(害)하다', '악하게 행하다' 등에서 유래된 말로 '악(한)', '해(로운)' 등을 뜻한다. 본서에서 이는 '해'(2:21)로도 여러번 번역되었으며 본 구절에서도 이 뜻으로 본다.

(주); 소유주가 재물을 ... 것이라 -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이해 가능하다. (1) 14절과 연관되어 소유주가 재물을 지나치게 애착하여 지키다가 그것을 상실한 경우 크게 실망하며 실족된다는 뜻이다(Lange, Delitzsch). (2) 12절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소유주가 재물을 온갖 걱정과 근심으로 지키면서 자지 못한다는 뜻이다(G.A. Barton, M.A. Eaton).

성 경: [전5:14]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패하나니(*, 아바드) - 전쟁이나 싸움에서 지는 것을 뜻하지 않고 '길을 잃다', '멸망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것은 갑작스런 재앙으로 인하여 욥의 경우와 같이 모든 재산을 상실하고 마는 것을 암시한다 하겠다(욥 1:13-19).

(주); 아들을 낳았으나 ... 없느니라 - 재앙으로 재물을 모두 잃어버려 아들에게 물려줄 상속 유산이 남아 있지 않음을 뜻한다.

성 경: [전5:15,16]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저자 모태에서 ... 못하리니 - 본절 역시 재물의 부질없음을 갈파한 말로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의 인생임을 깨달아 재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르치며 욥 1:21;시 49:10;딤전 6:7을 생각케 한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시대가 아닌 훨씬 후대에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자들 중 일부는 저자가 본절에서 욥 1:21을 상기시키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하나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G.A. Barton, Delitzsch).

성 경: [전5:17]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일평생을 ... 있느니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또한', '역시'의 뜻인 연결사 '감'(*)이 있어 본절이 그 의미상 앞구절들과 병행선상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절은 1:13;2:17,23 등의 말씀과 유사하다. 즉 인생 특히 맥락 속에서 암시되어지는 바오 같이 수탈에 의해 재산을 모은 부자는 그의 죄로 인하여 그 일평생이 편안하지 못하고 각종 비참한 현상들로 얼룩진다는 뜻을 암시한다 하겠다. 여기서 '어두운 데서'란 생명과 번영, 평안을 암시하는 '빛'(욥 3:20; 시 56:13; 잠 4:18;13:9)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사망, 비극, 불행 등을 암시하는 표현이다(욥 3:5;18:6;19:8;요 8:12).

성 경: [전5:18]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사람이 ... 분복이로다 - 이는 2:24;3:12, 13 등의 말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서 제한된 이 세상에서 인간이 누리는 최선(最善)의 낙이 무엇인가를 언급한 것이다. '분복'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5:19]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어떤 사람에게든지 ... 선물이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17절의 경우처럼 연결사 '감'(*)이 있다. 이는 본절이 18절과 연계되는 구절로서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진정한 낙이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성 경: [전5:20]

주제1: [형식적 신앙과 재물의 허무함]

주제2: [재물을 모으는 자의 헛됨]

(주); 관념치 아니하리니 - '관념치'의 히브리어 기본형 '자카르'(*)는 '표하다', '기억하다', '회상하다'(remember, KJV, RSV)의 뜻이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의 인생의 날들을 후회와 염려 속에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 경: [전6:1]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폐단 - 5:13 주석을 참조하라.

(주);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 '중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라브'(*)는 '풍성한', '충분하', '증가하는' 등의 뜻이나 본절에서는 '(사람에게) 무겁게 압박하는', '무겁게 임하는'이라는 뜻으로 유추되어 사용되었다(Moffat, Eaton). 영역본들도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weighs heavily, NIV, lies heavy, RSV). 그런가 하면 혹자는 이를 '일반적인'(common, KJV)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Luther).

성 경: [전6:2]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어떤 사람은 ... 악한 병이로다 - 5장 말미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을 언급한바 있거니와(5:18-20), 여기서는 온갖 부귀를 지니고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폐단을 소개한다. 왜 그러한 폐단에 빠지는가에 대해서는 본절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갑작스런 재앙, 싫증, 혹은 과욕 등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절의 '누리게 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칼'(*)은 '먹다', '소비하다'의 뜻이다(eat, KJV, NASB). 그러나 일부 영역본중에서는 이를 의역하여 '즐기다'(enjoy, VIV, RSV)는 뜻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일부 주석가들도 이를 지지한다(사 3:10;렘 15:16 참조, G.A. Baton, E.A. Eaton).

성 경: [전6:3]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 낫다 하노리 - 구약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창 24:60; 29:31-35;30:1,2;욥 27:14;시 127:3-5). 그리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살며 장수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되었다(출 20:12;신 11:9,21;31:20;시 34:12;49:9;잠 10: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것은 외적 조건이나 환경보다 마음의 실제 상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준다. 또한 매장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기는 것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 죽을 경우 가나안 땅에 매장되어 하나님의 기업의 축복권 안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던 열망에 비추어보면 훨씬 쉽게 이해된다(창 23:1-20;25:8,9;47:29,30;50:12,13,25). 그리고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매장되지 못하는 사실 자체는 매우 불행한 사태로 여겨졌으며(사 14:19,20;렘 16:4,5 참조), 반면 열조의 무덤에 안치되는 것은 큰 영예로 여겨졌다(왕상 13:22;사 14:18-20).

성 경: [전6:4]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 덮이니 - '헛되이 왔다가'란 어머니의 태 속에서 불행한 죽음을 당함으로 이 세상에 짧은 순간이나마 목적없이, 아무런 유익한 결과없이 존재한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두운 중에 가매'란 '어두움 속으로 가매'(departs in darkness, NIV;goes into darkness, RSV;goes into ovscurity, NASB)의 뜻으로서 죽음의 영역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나'란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어떤 사람에 대한 단순한 호칭이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한 인격 그 자체를 내포하고 있는 바, 낙태된 자가 어두움 속에 사라져 가버림으로 그의 존재 자체가 망가되어져 버림을 뜻한다.

성 경: [전6:5]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 평안함이라 - 낙태된 생명도 불운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살면서 온작 불행과 고통을 맛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뜻이다. '평안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하트'(*)는 '안식', '조용함', '평온함'등의 뜻을 지닌다. 한편 본절에서 전도자가 낙태된 자의 행복에 대해 언급한다고 해서 그가 낙태나 죽음을 옹호하는 비관론자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4:2,3등에서도 암시한 바와 같이 비관론적으로 언급한 것은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서 느낀 허무함을 염두에 두고 상대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9:4,5 참조).

성 경: [전6:6]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 아니냐 - 여기서 '천 년의 갑절'이라는 기간은 인류 초기의 인간들의 삶의 년수와 비교해 보더라도 엄청난 기간이라 할 수 있다(창 5:1-32). 이처럼 오랫동안 장수를 누리더라도 마음으로 진정한 낙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의 세월을 보낸다면 낙태된 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본서 가자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낙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을 것이다(5:18). 본절에서 '낙을 누리지'의 '토바라아'(*)는 문자적으로 '선을 보다'(have seen good, KJV)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말의 뜻은 본서에서 '토브'(*)가 이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며 낙을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2:13,24;5:18 참조). 또한 '한 곳'이란 3:20과 같은 말로서 구약에서 모든 인간들이 죽을 때 가는 곳으로 여겨졌던 '음부'(창 37:35;욥 14:13;시 89:48)를 가리키는 듯하다(Lange, Delitzsch, G.A. Barton, M.A. Eaton).

성 경: [전6:7]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 차지 아니하느니라 - 전반절은 전도자가 앞에서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 내용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2:24;3:12,13;5:18). 그러나 전도자는 단순히 이 세상 것만을 인정하고 영생이나 초월적 세계를 믿지 않는 유물론주의자나 이 세상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와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삶의 모든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다(5:18, 19 참조). 한편 '식욕'에 해당하는 '네페쉬'(*)는 원래 '영혼'(soul)이란 뜻이다. 혹자는 여기서 '영혼'이란 '입'과 대조를 이루는 말로서 '입'이 육체적, 일시적 기쁨을 위하는 것이라면 '영혼'은 영적이며 영원한 즐거움에 의해 채워지는 것으로서 서로 비교되고 있다(Zockler). 그러나 이보다는 인간의 지, 정, 의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심으로서 '영혼'의 기능중 본절에서는 감정적인 측면, 특히 음식에 대한 욕구와 관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식욕(영혼)은 차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 속에는 진정한 기쁨은 단순히 음식, 물질따위의 외형적인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조주되시며 모든 기쁨과 만유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진정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2:24;4:8 참조).

성 경: [전6:8]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 유익한고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 연결사 '키'(*)가 있는데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나(KJV, RSV, NASB), 혹자는 '역시'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어느 경우든 본절이 앞절과 연관됨을 나타낸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한편 본절에서 '지혜자'와 '우매자'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어떤 이는 낙태되어 이 세상의 고난과 괴로움을 모르는 자와 부요하고 오래 사나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자에 관한 앞 내용(2-7절)과 연관되어진다고 보기도 한다(G.A. Barton). 그러나 그보다는 이 질문을 바로 앞절, 즉 7절 내용과 연결시키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Lange). 즉 인간은 그의 입을 위하여 수고하나 그의 식욕(영혼)이 차지 아니하는 바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탁월한 처세술을 발휘하여 부귀와 명예를 누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중간격이라 할 수 있는 자들, 곧 비록 가난하지만 생활의 지혜를 늘 찾으려 애쓰는 자들도 있다. 물론 본절에서 '지혜자'나 '우매자'란 하나님의 관점에서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를 가리키기보다는 인간 세상의 관점에서, 인간적인 지혜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전6:9]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 것이로다 - 바라는 바 적은 것이나마 낙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머리속에 근사한 공상만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결국 이 또한 인생의 참 행복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본절의 '눈'이란 인생을 즐기고 만족을 발견하는데 필요한 신체 부분 중 하나라고 보기도 하며(1:8, M.A. Eaton), 다른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이 ... 나으나'란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 나으나'(better is the enjoyment of what one has)라는 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A. Barton). 그리고 루터(M. Luther)는 이를 '다른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좋은 것을 즐기는 것이 더 낫다'라고 번역하였다. 한편 '공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할라크'(*)는 '걷다', '이리저리 다니다'는 뜻인데, 영역본 NASB는 이를 '심령'(영혼)이라는 말과 연관하여 '영혼이 원하는 것'(what the soul desires)으로 KJV, RSV등은 좀더 의역하여 '욕망의 방황'(the wandering of the desire)으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전6:10]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 문자적으로는 '그 이름이 불리워진 바 되었으며'(has already been named, NIV, RSV, NASB)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성격이나 특성이 이미 규정되어 있으므로(M.A. Eaton)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스스로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일정한 질서와 법칙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한편 주석가 위클리프(Wycliffe)는 본절이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자의적 노력이 전혀 무용하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기도 한다.

(주);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 만물의 생성 소멸과 존재 법칙 및 인생의 모든 길흉화복을 주권적인 섭리로써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피조물이 반박하거나 대항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사 45:9;46:10;롬 9:20 참조). 또한 이 말 속에는 참된 낙을 누리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에 철저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맥상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성 경: [전6:11]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 유익하랴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과 연관되어 있음음 암시한다. 여기서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데바림'(*)으로서 대략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1) 개역 성경처럼 '일(사건)들'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Hengstenberg, Ginsburg). 영역본 KJV도 이를 지지한다. (2) '말들'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M.A. Eaton, G.A. Barton). 이를 지지하는 영역본들로는 NIV, RSV, NASB등이며, 70인역(LXX)또 '말들'(*, 로고이)로 번역하고 있다. 이 경우 이 '말들'은 10절에서 암시되어지는 바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다투는 무익한 변론의 말들을 뜻한다 하겠다. 그러나 (2)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에는 후기 연대설에 근거하여 본서의 내용이 구약 시대 말기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및 엣세네파 등이 인생의 예정된 운명과 그로 인한 인간의 행동 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토론들(바리새인들은 인간의 행동중 일부는 하나님의 작정하신 자 운명에 의해 또 다른 부분은 인간 자신의 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것으로,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모든 해동들이 하나님의 예정이나 작정에 의하지 않고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그리고 엣세네파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반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에 의한 것으로 본다, Josephus)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나(Delitzsch, G.A. Barton)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작 연대가 솔로몬 시대라고 보는 바, 이와 같은 논리 비약적인 주장은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아무튼 본절의 의미는 앞절과 연관시켜 볼 때, 연약하고 무기력한 인생이 모든 일들을 작정하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스스로 행하는 것들은 전혀 무익하고 오히려 더욱 헛되게 함을 암시한다.

성 경: [전6:12]

주제1: [세상적 풍요와 허무]

주제2: [해 아래 인생의 허무]

(주); 헛된 생명의 모든 날 - 전도자가 인생을 이와같이 규정한 것은 인간이 아담의 범죄 이후 정죄되고 사망 가운데 거하여(롬 5:16-21) 일평생을 헛된 수고와 근심 가운데서 보내기 때문이다(1:3;2:23).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 생활을 하나 하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고후 5:16,17;빌 3:21;벧전1:1;2:11).

(주); 그림자 같이 보내는 - '그림자'란 실체의 허상으로서 머물지 않고 쉽게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생의 날이 빨리 사라져 지나가는 것을 암시하는 비유적 표현이다(대상 29:15;욥 8:9;14:2;시 102:11;144:4 참조).

(주); 그 신후(身後)에 - '신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라'(*)는 '뒤에'(후에)란 뜻인데, (1) 죽음 후를 말하는 것인지(Delitzsch) (2) 단순히 알지 못하는 미래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나뉜다. 그러나 문맥상 (1)이 더 타당한 듯 보인다. 아무튼 본절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이 무지하고 연약하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지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그분을 거약하고는 결코 헛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하겠다. 한편 신약에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안개에다 비유했다(약 4:14).

성 경: [전7: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 나으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어떤 살마에 대한 단순한 외적인 회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쓰였던 바, '아름다운 이름'이란 그 사람에 대한 훌륭한 '명성'을 가리킨다(Luther, M.A.Eaton, Lange, G.A.Barton, T.H. Leale). 히브리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을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간주했다(8:10;욥 18:17;잠 10:7). 그리고 '기름'이란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지경의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하는 식물성 기름을 말하는데, 이는 그 용도 면에서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 식용(출29:2,23;레 2:1,2,4-7), (2) 등화용(출 25:6;27:20), (3) 의료용(사 1:6), (4) 화장품용(삼하 14:2;시 23:5), (5) 향유용(눅 23:56) 등이다. 특히 이는 팔레스틴 지역과 같이 건조한 기후 여건 속에서는 그 몸에 기름을 발라 향기를 내는 데 유용하게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룻 3:3;삼하 12:20;시 45:7,8;암 6:6 참조). 또한 본절 후반절의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란 전반절의 의미와 연관되는 듯이 보인다. 즉 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좋은 명성을 쌓으며 살다가 죽는 것이 어리석고 우매한 가운데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지도 모르는 삶의 시작이 날보다 낫다는 것이다(D.R. Glenn). 그러나 전도자는 삶보다 죽음을 더 애찬하는 염세주의자로서 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의 축복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고(3:13;5:!8),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2:13). 단지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명성을 얻는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전7: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 유심(留心)하리로다 - '초상집'이란 문자적으로는 '애곡하는 집'(the house of mourning, KJV, RSV)이다. 그리고 '잔치집'이란 술을 마시며 희락을 즐기는 곳으로서 암시되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 근거하여 본절은 헛되고 허무하게 쾌락을 즐기면서 사는 것보다 인생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케 함으로 유익하고 보람된 인생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이다(4절)

성 경: [전7: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이 얼굴에 근신함으로 ... 됨이니라 - 전후 문맥상 역시 앞절(2절)과 연관된 내용으로 보인다. 여기서 '슬픔'이란 단순히 고난이나 손해 등으로 일낳 슬픔이라기보다는 2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죽음 또는 그로 인한 애곡을 보고서 느껴지는 숙연한 슬픔을 뜻하며, '웃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보다는 육신적 희락을 즐기는 데서 얻어지는 쾌락적, 일시적 웃음을 뜻한다(2:2-10). 따라서 본절은 인생에서 보게 되는 숙연한 슬픔은 육체적 쾌락에서 얻어지는 가벼운 웃음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상고케하여 더욱 진지하고 보람된 생(生)을 결단케 하기 때문에 좋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성 경: [전7: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 있느니라 - 1-3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구절로서, 지혜자는 삶의 의미와 목표를 늘 진지하게 상고하는 반면에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어 단순히 순간 순간 육체적 희락만을 즐기고 웃음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성 경: [전7: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 나으니라 - 본절도 역시 앞절(4절)처럼 그 의미에 있어서는 계속 전문(前文)들과 연관된다 하겠다. 책망은 들을 당시에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나 종국적으로는 잘못되고 우매한 길을 벗어나 지혜로운 길로 접어들게 한다. 반면 우매자의 노래 소리는 들을 때에는 기쁜 것 같고 육감적으로 상쾌한 것 같으나 결국에는 일시적, 육체적 희락 속에선 헛되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성 경: [전7: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 이것도 헛되니라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나무가 희귀하여 가시나무나 풀, 보리, 그루터기 등을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시 58:9;120:4;마 6:30 참조), 특히 가시나무는 쉽고 빠르게 그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타지만 이내 사그라져 꺼지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이 소리는 헛되고 요란할 뿐 실속이 없는 소리이다. 이것은 우매자의 웃음 소리가 겉으로만 요란할 뿐 실속이 없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전7: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탐학(貪虐)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 망케하느니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각양 각색이다. (1)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다(NASB, Hengstenberg, Hitzig). (2) 본절이 앞절들과 하등의 유사한 연관성이 없으므로 이를 '그러나'와 같은 부사로 본다(Ewald, Elster). (3) 강조걱인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다(욥 6:21;사5:7, Lange). 영역본 KJV, RSV 등도 이를 '확실히'(surely)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4)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기는 하나 앞절과 본절 사이에는 또 다른 구절이 빠져 있다(Delitzsch). 그러나 우리는 문맥상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이되 특히 5절 내용과 연결됨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즉 본적의 원인 때문에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5절)낫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탐학'의 히브리어 '오쉐크'(*)는 '압제'(opperssion, KVJ, RSV, NASB), '강탈'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반절은 출 23:8;신 16:19;잠 15:27과 유사하다. 성경에서 '뇌물'을 의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 또는 명철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뇌물이 그 하나님의 공의성을 훼손시키고 공정한 판단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성 경: [전7: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 나으니 - 본절의 상,하반절은 내용상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다(Lange).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그 과정을 인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경우 그 끝은 처음보다 낫다는 뜻 혹은 어떤 일을 끝까지 마감하는 것이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서 중도에 그만 두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Finishing is better than starting, LB). 이는 곧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케 한다. 한편 후반절의 '마음'에 해당하는 '루아흐'(*)는 '영'(spirit)을 뜻하며 '참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영 안에서 참음'(the patient in spirit, KJV, RSV ; partience of spirit, NASB)과 '영 안에 거만함'(the proud in spirit, KJV, RSV ; haughtiness of spirit, NASB)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전7: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 머무름이니라 - 본절도 문맥상 앞절(8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본다(G.A.Barton). 전반절에 대해서 대부분 영역본들은 '너의 영 안에서 급하게 노를 발하지 말라'(Be not hasty in thy spirit to be angry, KJV ; Do not ve quickly provoked heart to be angry,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성급히 화를 내는 것은 정의의 의분과는 달리 인격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으로서 결국 죄악을 낳고 만다(창 4:5;삼 삼 18:8).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해가는 스피드 시대에는 본절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 하겠다(욥 5:2;잠 12:16).

성 경: [전7:10]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 지혜가 아니니라 - 주어진 현실 감당해야 할 현 시대의 사명을 도외시하고 지나간 시절만 생각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삶의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이다(Eaton). 한편 본절을 앞절 특히 8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해석해 볼 수 있다. 즉 어떤 일을 시작해서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낼 때 그 나중이 처음보다 나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했던 옛날이 일의 결과를 낸 오늘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유출해 내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는 뜻이라 하겠다.

성 경: [전7:1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 유익하도다 - 이는 지혜의 유익성과 보배로움을 언급한 말인데, 여기서 '지혜'는 2:12-16에서 암시되어진 바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의해 얻어지는 신성한 지혜를 말하는 것 같다. 본절에서 '유업'이란 '나할라'(*)로서 가나안 땅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물려받는 '기업'(출 6:8) 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상속 재산을 의미하는데, '유업같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뉜다. (1) 이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유업과 같이'(like an inheritance, NIV)를 의미한다(2:16;욥 9:26, Lange, Zockler). (2) 이는 '같이'(*, 임)라는 말이 '...과 함께'(with)라는 말로 번역되는 바, '유업과 함께'(with an ingeritance, KJV, RSV, NASB)를 뜻한다(70인역, T.H. Leale, D.R. Glenn, G.A. Barton, Wycliffe). (1)을 취할 경우,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나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처럼 귀하다는 뜻이며, (2)의 경우 지혜는 그 자체로서도 귀하고 빛나나 유업 즉 재산과 함께 있을 때 그 재산을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바 더욱 빛나고 가치가 있게 된다는 뜻이 된다. 이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본절 이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 경: [전7:1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 보존함이니라 - 지혜의 유용성의 탁월함을 재물과의 비교를 통해 묘파(描破)한 구절이다.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있어서 본절이 앞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본절에서 '보호하는 것'에 해당하는 '첼'(*)은 '그늘'(shadow)을 뜻하나 영역본들은 이와 연관시켜 '보호'(protection, RSV, NASB), '방어'(a eefence, KJV)를 뜻하는 것이로 번역했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잠 3:18,22;8:35의 말씀과 그 맥을 같이한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 하나님을 겨외하고 신앙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리석고 멸망으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고 오히려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준다는 것이다(잠 2:20).

성 경: [전7:1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 곧게 하겠느냐 - 이는 1:15;6:10의 말씀과 유사하며 내용상 8,9절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작정, 주관하고 계시는 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에 대항하거나 거역하지 말고 순응해야 함을 암시해 준다는 말이다.

성 경: [전7:1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에 대한 잠언]

(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본절은 내용상 앞절(13절)과 연관되며 그 의미 역시 인간사에서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보인다(D.R. Glenn). 여기서 '형통한'에 해당하는 '토브'(*)는 '좋은', '선한', '아름다운'의 뜻을 갖는다(2:1 참조). 그리고 '기뻐하고'도 문자적으로는 역시 그 원형이 '토브'이다. 또한 '생각하라'의 히브리어 '라아'(*)는 '보다', '관찰(주시)하다', '생각(숙고)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인다. 혹자는 바로 뒷구절 즉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나(Lange), 이보다는 하나님이 곤고케 한신 목적, 이유 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D.R. Glenn). 한편 후반절의 '장래 일'이란 문자적으로는 '아하라 메우마'(*)인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도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인다. (1)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을 의미한다(Delitzsch). (2) 사람의 장래 일 즉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 일을 의미한다(G.A.Barton, T.H. Leale, Lange).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2)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아무튼 이런 후반절의 의미는 인간의 연약함, 제한되미 마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순응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성 경: [전7:1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주);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 있으니 - 이는 단순히 과도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다. 즉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의(義)'라기보다는 '무모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인 것이다. 전도자는 선만을 행하는 의인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갈파하고 있거니와(20절), 본절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 드는 자들에 대한 역설적 경고라 하겠다(Eaton, Whybary). 한편 저자가 '내 헛된 날'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로서의 인생이 허무하며 무상한 것임을 암시하며(6:12) 특히 이는 솔로몬 자신이 한때 하나님을 떠났던 기간을 상기하며 말한 것일 수도 있다(왕상 9:24;11:1-13 참조).

성 경: [전7:1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주);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려 ... 패망케 하겠느냐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의(義)를 추구하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다(롬 3:20;7:1-25;10:3;갈 2:16;3:11,12).

성 경: [전7:1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주);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 죽으려느냐 - 이는 앞절(16절)과 대비되는 말씀으로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다. 특히 본절에서 '지나치게'라는 말은 악을 무절제하게 행하지 말고 돌이킬 것을 권고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한편 본절에서 악인이나 우매자가 그들의 악행으로 파멸에 이르고만다는 것은 시 37:10;55:23;58:3-9;73:18;잠 10:27 등과 일맥 상통한다 하겠다.

성 경: [전7:1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중용의 지혜]

(주);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 것임이니라 - 지나친 자기 의(義)의 추구나 의도적인 악행을 다시금 금하고 있다. 물론 본절이 적당한 수준에서 악을 행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자는 인간의 육신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위는 좌로나 우로 치우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한편 후반절의 말씀은 전도자가 인간의 본분을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으로 말하고, 그것이 곧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12:13;시 34:7,9;잠 1:7;9:10). 또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으로서 알고 경배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성 경: [전7:1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 있게 하느니라 - '유사'에 해당하는 '솰리트'(*)는 '지배자', '방백'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성읍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자, 외부 세력으로부터 성을 비마 지키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의 '지혜'는 6절에서와는 달리, 특히 앞 18절과 연관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잠 9:10).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얻은 힘이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한편 '열'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열'을 뜻한다기 보다는 완전수로서 많은 수를 가리킨다 하겠다(욥 19:3).

성 경: [전7:20]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 없느니라 - 원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의 정황한 의미에 대해서는 (1)강조적인 말로서 '확실히'(Surely, RSV ; Indeed, NASB)로 보거나(M.A. Eaton, Lange), (2)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서 '...때문에'(For, KJV)로 이해한다(D.R.Glenn).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본절은 앞절과의 연관성을 바튼(G.A. Barton)은 18절에 대한 이유로, 랑게(Lange)는 19절의 확증으로, 이튼(M.A. Eaton(dms 16-19절 내용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으로 각각 봄) 시사하며 특히 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고 본절은 솔로몬의 말한 바 왕상 8:46과 유사하며 바울의 말한 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하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롬 3:23).

성 경: [전7:21]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 죄악된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심각성은(20절) 말의 실수와 비신실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약 3:2).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특히 아첨하는 말에 마음을 두는 것은 스스로 올무에 빠져드는 것과 다름없다.

성 경: [전7:22]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아느리라 - 이는 21절에 연장되는 말로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따라서 그들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쓸모없음을,자신이 남을 저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 확증하는 내용이다. "마음"은 "양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G.A.Barton).그리고 이는 사람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롬 2:15)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성 경: [전7:23]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멀리하였도다.-"이 모든 것"이란 앞의 내용들을 가리킨다.그리고 상반절은 전도자가 그의 지혜로 앞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나 그 모든 내용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며 하반절도 상반절과 연관되어 전도자 자신이 지혜롭게 되어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지혜가 그에게서 멀리하였다는 고백이다.이와 같은 사실은, 한편으로는 인가적인 지혜로 는 이세상 모든 것을 헤아려 알 수 없음을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참다운 지혜는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지는(얻어지는)것임을 암시한다(2:26).

성 경: [전7:24]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능히 통달하랴. - 이는 앞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은 지식과 인생 경험에 바탕을 둔 나름대로의 폭넓은 식견으로도 이 세상에서 역사되어지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한계성을 언급한 것이라 하겠다.된 것의 히브리어 "마쉐하야"(*)는 "존재하는 것"(what has been,NASB)을 뜻하는데, 혹자는 이를 현존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역사되어질 모든 섭리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롬 11:33 참조, M.A. Eaton).

성 경: [전7:25]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하였더니. - 앞에서 인간 지혜의 한계성을 고백한 기자는 이제 돌이켜 인간의 완악한 본성을 살피고자 한다.특히 본절에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여러 차례 반복됨으로써 기자의 탐구 의욕이 어느 정도 간절하고 철저한지를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전7:26]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잡히리로다. - 본절에서 악한 여인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기자의 여자 기피 심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서의 다른 곳에서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한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9:9). 여기서는 악한 여인을 대표적으로 선정하였을 뿐이며 또 이러한 여인의 올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다.

성 경: [전7:27]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원본에 의하면 본절 서두는 "레아"(*, 보라, Look, NIV;Behold, RSV, NASB)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전도자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감탄하면서 선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 경: [전7:28]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일천 남자 중에서...얻지 못하였느니라. -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에 대해 혹자는 죄짓기 전의 순수하고 무죄한 아담을 가리킨다고 하나(Lange)이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T.H. Leale, M.A.Eaton), 혹은 진정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D.R.Glenn)로 보는 것이 낫겠다. 또한 여기서는 남자보다 여자 가운데서 더 찾기가 어려운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타락한 자가 남자 아닌 여자라는 맥락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딤전 2:11-15참조).그리고 본절에서 "일천"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의미를 나타내기보다는 많은 수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수로 보인다(출20:6;34;7;민1:16;신1:11;욥9:3;33:23;시50:10;84:10).

성 경: [전7:29]

주제1: [하나님의 지혜를 적용하는 생활 태도]

주제2: [참지혜의 능력]

(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꾀를 낸 것이라. - 이는 앞절(28절)에 이어 인간의 부패성, 죄악성을 나타낸 구절이다. "정직하게"에 해당하는 "야솨르"(*)는 "곧은","올바른"(upright, KJV,NIV, RSV)의 뜻으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무죄한 상태로 만드셨음을 암시하며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솨본"(*)은 "계략", "계책" 등의 의미하는데, 본절에서는 특히 아담 안에서 정죄된 인간들이(롬 5:16-21)일생 동안 의롭지 못한 일을 획책함을 뜻하며 인간 부패의 근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전8:1]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 어떤 학자는 본절을 앞의 내용에 대한 결론으로 보고 '누가 진실로 지혜로우냐?...' 혹은 '7장에 언급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헤쳐 나갈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등과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M.A. Eaton). 그러나 본절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유도해 내는 구실을 하고 있다고 이해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장에서 가르치는 참된 지혜에 대한 깨달음과 그 유익함에 대해 본절은 서론적으로 개괄하고 있는 것이다(Lange, Glenn, Delitzsch). 특히 지혜의 능력과 효용성은 하반절에 뚜렷이 암시되어 있다. 즉 그 지혜로 인해 심성, 마음이 변하고 그 결과 얼굴 빛이 변하게 됨을 나타내는 것이다(T.H. Leale). 특히 혹자는 지혜로 인해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은 그 지혜가 그에게 자비롭고 은혜로운 마음을 주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민 6:25;시 4:6,7, G.A. Barton). 한편 본서의 저자가 지은 잠언서에도 지혜의 능력, 효용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잠 2:10),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잠 3:18)고 말하고 있다.

성 경: [전8:3]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거히 말여 ... 행함이니라 - 왕 앞에서 무례히 행치 말고 그의 권의에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여기서 '왕 앞에서 물러 간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무례함, 애정 단절 혹은 불충을 표시하는 것인 바, 왕으로부터 명령받은 직책이나 임무를 자의적으로 버리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창 4:16;호 11:7 참조, M.A. Eaton, D.R. Glenn). 그리고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란 왕의 진노를 유발시키는 불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혹자는 이를 왕을 거역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D.R. Glenn). 한편 신하(백성)가 그 나라의 통치가 왕에게 순종하며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은 모든 권세가, 권세의 최고이시며 권세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것인 바(롬 13:1,2) 정당하게 행사되는 왕의 권세,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은 곧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다스리도록 세우신 바 된 자들이다(삼하 5:2;왕하 20:5).

성 경: [전8:4]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 할 수 있으랴 - 이는 3절 말씀의 연속으로서 왕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세워진 권세자이기 떠문에 그의 말도 또한 권위가 있으며 감히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한편 하반절의 말씀은 신적(神的) 권위의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께 대해서도 사용되었다(욥 9:12;사 45:9;단 4:32).

성 경: [전8:5]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 '명령'이란 혹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서의 '율법'을 가리킨다고 하나(Hengstenburg, Vaihinger), 그보다는 2,4절과 연관되어 '왕의 명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기와 판단이란 문자적으로는 각각 '에트'(*)와 '미쉬파트'(*)로서 어떤 일(말, 행동)을 행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적당한 '때'(3:1-8)와 행해야 될지 아니해야 될지를 결정하는 '판단'을 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미쉬파트'가 '판단'이나 '판결'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의 적당한 '절차', '과정'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M.A. Eaton, D.R. Glenn). 그리고 여역본들 중에서도 일부는 후자를 지지한다(procedure, NIV, NASB; way, RSV).

성 경: [전8:6]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 심함이니라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와, 전반절과 후반절 사이에는 똑같이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서두에 있는 '키'는 원인을 나타낸다고 보다(Because, KJV;For, NIV, RSV, NASB), 전발절과 후반절 사이에 있는 '키'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영역본들 중에서 NIV, RSV는 이를 양보를 나타내는 '... 일지라도'로 NASB는 '때'(when)로, KJV는 '그러므로'(therefore)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가 이튼(M.A. Eaton), 릴(T.H. Leale) 등은 이중 rsv의 번역을 지지 기도 한다. 만약 이럴 경우 본절의 의미는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하다 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원인을 나타내는 경우 하반절의 의미는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크기 때문에 지혜자는 시기와 판단을 잘 분변한다'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성 경: [전8:7]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 누구이랴 - 6절에서처럼, 본절 서두와, 상.하반절 사이에도 연결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영역본 NASB는 전자가 조건을(... 라면) 뜻하는 것으로 번역하였으나 다른 많은 영역본들은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사 '...때문에'(For, KJV, RSV;since, NIV)로 번역했고 이중 KJV, RSV등은 후자의 의미도 전자와 같이 번역하였다. 그리고 문맥상으로도 KJV, RSV 번역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은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없고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 바 지혜자는 시기와 판단을 잘 분변하라는(5절) 뜻으로 이해되어진다.

성 경: [전8:8]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주); 생기(生氣)를 주장하여 ... 없느니라 - 이는 7절의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 무력함을 좀더 구체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생기'에 해당하는 '루아흐'(*)는 '영', '호흡', '바람' 등을 의미하는데 영역본 중에서 NIV, NASB 등은 이를 '바람'(the wind)으로 번역했으나, KJV, RSV 등은 '영'(the spirit)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가들 중에서도 전자를 지지하는가 하면(G.A. Barton), 후자로 보기도 한다(Lange, M.A. Eaton). 그러나 문맥상 본절이 인간의 생사(生死)와 관련이 있음을 감안해 볼 때 이는 '영'이나 '생명의 호흡'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겠다(3:19-21 참조). 그리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에서 '주장할'의 히브리어 '쉴톤'(*)이 '힘'(power, KJV, NIV) 혹은 '권위'(authority, RSV, NASB)인바, '죽는 날을 피하고 스스로 죽는 날을 연기시킬 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또한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에서 '모면'의 히브리어 '미쉴라하트'(*)는 '방출', '내보냄'이란 뜻으로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면제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특별한 경우, 즉 결혼 후 1년 미만일 경우에는 군대 징집이 면제되는 율법이 있었으나(신 20:5-8)보편적으로는 면제될 수 없었다.

성 경: [전8:9]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권위에의 복종]

본절의 문맥상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본장 1절에서 시작되는 앞부분과 연결되는 구절로 본다(Delitzsch, G.A. Barton). (2) 뒷단락을 시작하는 새로운 첫 구절로 본다(Luther, Ginsburg, Hengstenberg). (3) 앞절과 뒷절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M.A. Eaton). 여기서 '이런 것들을 다 보고'란 앞절에 연관되는 듯이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뒷절과 연관되는 듯하다.

(주);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으며 - 일반적으로 고대 동야에서 행해졌던 폭군 정치의 한 양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본다(G.A. Barton, Delitzsch, Lange). 또한 '주장하여'에 해당하는 '솰라트'(*)는 8절의 '주장할'과 같은 어근이며 '군림하다', '지배하다')rule over, KJV;has exercised authority, NASB)의 뜻을 갖는다.

성 경: [전8:10]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내가 본즉 악인은 장사지낸 바 되어 ... 헛되도다 - 본절에서 '악인은 장사지낸 바 되어'란 고대 근동 특히 히브리인들 사회에서 사람이 죽어 옳게 장사되어지는 것을 큰 축복과 영예로 여기는 바(6:3;렘 16:4,5;22:19), 악인이 사회적으로 큰 명성과 영예를 얻고 존귀하게 취급받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반절에 대해서는 그 의견들이 분분하다. (1) 혹자는 한글 개역 성경처럼 본절 상반절은 악인에 대하여 하반절은 선인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Lange) 보는 반면, (2) 다른 사람은 본절 전체가 악인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 본다(D.R. Glenn, G.A. Barton, M.A. Eaton, T.H. Leale). 이들은 본절에서 '잊어버린 바'의 '웨이쉬타케후'(*, were forgetton, KJV)를 '찬양되어진 바'의 '웨이쉬타베후'(*, were praised, RSV)로 개정 번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의 경우에는, 악인은 이 땡에서 악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사후(死後)에까지 오히려 존귀히 여김 받으나 선인은 그와 반대로 그의 선한 삶에도 불구하고 성읍 사람들에게서 잊어버린 바 되는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2)의 경우에는 악인이 이 땅에서 멸시받지 않고 존귀히 여김 받으며 성읍 사람들에게 (그 악행이) 잊어버린 바 되는(또는 찬양되어진 바 되는) 것 역시 삶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는 맛로라 본문(M.T.)을 존중하여 (1)의 견해를 지지한다. 한편 본절에서 '거룩한 곳'이 어디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도 그 주장이 약간씩 다르다. (1) 예루살렘 성(M.A. Eaton), (2) 성전(Delitzsch, G.A. Barton), (3) 악인들이 죽어 들어가는 묘지(Hengstenberg, Reins). 이중에서 (3)은 문맥상 근거가 비교적 희박하다.

성 경: [전8:11]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연결사 '아쉐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 본다(Because, KJV, RSV, NASB). 즉 악인들은 인과 응보적(因果應報的) 보응이 현실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그 결과 더욱 악이 창궐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 악행대로 곧 바로 심판, 처벌하지 않으신 데에는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적인 여러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시 50:16-21 참조).

성 경: [전8:12]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 잘 될 것이요 -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도 연결사 '아쉐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이를 양보를 나타내는 말로 본다(Although, NIV, NASB;Though, KJV, RSV). 그리고 '백번'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의미를 나타낸다기보다는 많은 수를 암시한다. 또한 '장수'는 일반적으로 고대 히브리인들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져 왔다(6:3 참조). 한편 하반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성, 의, 위대하심 등을 깨닫고 연약한 인간이 감히 경거망동하지 아니하고 두려움과 경배심을 갖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데서 일어나는 두려움과 거룩한 주의성'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M.A. Eaton). 보통 구약에서는 '여호와 경외'를 '지식'과 '지혜'의 근본으로(잠 1:7;9:10), 본서에서는 인간의 본분으로(12:13), 시편 등에서는 '하나님의 친밀함'(25:14), '여호와의 사자'의 건지심(34:7), '하나님의 기뻐하심'(147:11) 등을 얻는 길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성 경: [전8:13]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 아니함이니라 - 이는 12절과는 달리 보다 궁극적인 원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다. 특히 본절은 의인은 번성하고 장수하나 악인은 쇠퇴하며 그 생명이 길지 못하다고 하는 히브리인들의 정통적인 사상을 잘 반영해 준다(신 22:7;28:;1-35;30:20;욥 5:26;15:32;22:16;시 39:6;102:11;사 65:20 참조).

성 경: [전8:14]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 헛되도다 - 현실의 모순을 보다 예리하게 지적하는 내용이다. 본절 해석은 3:16;4:1;5:8;7:7 등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8:15]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 함께 있을 것이니라 - 이는 2:24; 3:12,13;5:18과 그 내용 면에서 유사하다. 즉 구조적 모순이 팽배한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최선(最善)으로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은혜, 은사대로 먹고 마시며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수고하는 중에'란 노동의 신성함을 엿보게 한다. 즉 노동은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에 행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문화적 사명으로서 사람이 행햐야 할 본분이다(창 2:15 참조). 다만 인간이 범죄함으로 이 노동은 보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될 사역으로 변모되어졌다(창 3:17-19).

성 경: [전8:16]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 자도 있도다 - 본절 전반절은 7:23과 유사한 내용이다. 한편 '노고'의 히브리어 '이느얀'(*)은 사람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부여하시사 애쓰게 하신 것으로서 1:13의 '수고하게 하신 것'이란 말과 같다. 또한 하반절의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란 본서 저자 전도자와 같이 지혜를 추구하며 세상사를 탐구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것을 뜻할 수도 있으나 많은 사람의 경우 이는 '노고'와 연관되어 이 세상에서 고된 일로 수고하고 애씀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G.A. Barton, T.H. Leale, M.A. Delitzsch).

성 경: [전8:17]

주제1: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

주제2: [숨겨진 하나님의 의(義)]

본절은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알고자 애쓰되 그 오묘하신 섭리와 역사를 능히 깨달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7:23,24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인간의 무지함과 연약함을 나타냄과 아울러 하나님의 역사 섭리가 그만큼 위대하고 오묘하다는 뜻을 암시한다 하겠다.

(주); 하나님의 모든 행사 -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을 가리키며(3:1-8), 이와 같은 말은 3:11의 내용과 유사하다 하겠다.

(주);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 하나님의 섭리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연약한 지혜,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아지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 은사에 의해서만 알고 깨달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겠다(마 11:25-27 참조). 한편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관하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며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3, 36)고 고백하였다.

성 경: [전9:1]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내가 마음을 다하여 ... 그 미래임이니라 - 원문에는 본절 서두에 연결사 '키'(*)가 있는 데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영역본 중에서 KJV, NASB등은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사(for)로 번역했으나, RSV는 대조를 나타내는 말(But)로, NIV는 단순한 연결사로서 '그래서'(so)로 번역하였다. 그런가 하면 '자 이제'(well now) 정도의 뜻으로 번역되어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M.A. Eaton). 그러나 문맥상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사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전문(前文) 특히 8:17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의 역사에 대해서 인간은 감히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고 말하였는데, 본절에서도 역시 의인이나 지혜자 및 그들의 행하는 일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안에 있는 바 인간으로서는 그것들의 결국을 결코 스스로 알 수 없다는 인간 지혜의 한계성, 하나님의 주권성을 언급하고 있다 하겠다. 본절에서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 있다는 뜻의 상징적인 표현이다(창 9:2;14:20;16:6 참조). 그리고 하반절의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란 문자적으로 '모두 그들 앞에(있다)'라는 뜻으로서 인간이 앞에 놓인 장래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나 혹자는 이를 RSV의 번역에 따라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Everything before them is vanity)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M.A. Eaton). 그러나 이는 그 근거가 불투명하다.

성 경: [전9:2]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 일반이로다 - 이는 그 내용상 2:14-16과 유사하다. 여기서 '모든 것'에 대해 혹자는 2:14;3:19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임하는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언급하나(G.A. Barton), 그보다는 일반적으로 죽음뿐만 아니라 인간사에 있어서 닥치는 여러 사건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T.H. Leale, Delitzsch, M.A. Eaton). 즉 이 세상에서는 선인과 악인, 의인과 불의자, 정결한 자와 부정한 자 등의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유사한 상황이 임하게 된다는 뜻이다.

성 경: [전9:3]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 혹자는 '악한'이란 말 앞에 관사가 빠져있는 이유를 들어 단순히 모든 악 중의 하나를 뜻하는 것으로 보나(Lange) 또 다른 사람은 모든 악 중에 가장 큰악을 의미하는 최상급의 형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G.A. Barton, Vainhinger). 아무튼 전조다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사건(또는 운명)이 임한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악이라고 지적하며 나아가 인간 본성 자체가 악하다고 본다. 이러한 악은 인생의 내면 전체를 부패케 하며('인생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평생에') 또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가득하여') 묘사되고 있다.

성 경: [전9:4]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 나음이니라 - 이는 4:2,3;6:3,4의 내용과 대조되는 구절로서, 전도자가 결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현세의 생을 거부하는 비관론자나 염세주의자가 아님을 암시해 준다. 특히 이 사실은 삶의 축복과 기쁨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며 삶의 본분을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그 계명의 준수에 둔 사실을 근거해 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2:24;3:12,13;5:18;12:13). 그리고 '소망'이란 본서 전체의 맥락으로 볼 때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마시며 삶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G.A. Barton). 한편 하반절에서 '개'란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천하고 경멸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로 보았다(삼상 24:14;삼하 3:8;16:9;마 15:26;계 22:15). 반대로 '사자'란 존귀하고 권능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짐승으로 보았다(창 49:9;욥 10:16;잠 30:29,30). 따라서 본절 하반절은 천하고 남에게 경멸받는 자라 할지라도, 산 자가 비록 능력있고 위풍당당하나 죽은 자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성 경: [전9:5]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 죽은 영혼이 잠과 같이 무의식 상태에 빠져있음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삶의 기쁨을 향유할 능력이 없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Ginsburg). 또한 본절의 상도 이세상에 살면서 수고 가운데 얻어 누리는 삶의 기쁨, 낙 등을 암시한다(D.R. Glenn).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본절은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나라'는 4절 내용과 동일한 뜻을 전달한다 하겠다. 한편 이름에 해당하는 '제케르'(*)는 '기념', '거억'(Memory, KJV, RSV, NIV NASB) 등을 뜻한다.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 곧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시 31:13;41;5 등에도 표현되어 있는데, 전도자는 이 잊혀짐을 인생의 큰 비극중의 하나로 본다. 즉, 본절은 내세의 삶이 현세의 삶에 의해 좌우되므로 한번뿐인 삶의 기회가 얼마나 중요하지를 교훈해 준다.

성 경: [전9:6]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 분복이 없느니라 - 전반절의 의미는 단순히 사랑, 미움, 시기 등의 외적 행위가 사라져 없어졌다는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그와 같은 그들의 감정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는 뜻을 강조한다(G.A. Barton). 또한 '분복'이란 말은 2:10;3:22;5:18에서와 같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수고 가운데서 얻어 누리는 삶의 기쁨, 즉 먹고 마시며 삶의 낙을 누리는 것을 암시하며, 이와 같은 뜻은 앞의 4,5절에서 밝히는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

성 경: [전9:7]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 받으셨음이니라 -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최선(最善)의 삶을 살아가며 낙을 누릴 것을 권고하는 말씀이다(2:24;3:11,12;5:18;8:15). 성경에서 음식(또는 떡)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풍성하고 융숭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종종 묘사되어졌다(창 14?:18;27:28;신 33:28;삼상 16:20;25:18).

성 경: [전9:8]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 고대 근동 지방에서 흰 옷을 입는 것은 순결과 기쁨을 상징하는 의미에서였는데(대하 5:12;에 8:!5;계 3:4, 5, 18 참조), 본절에서는 후자, 즉 축제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뜻에서 입으라고 권고하는 것으로 보인다(Delitzsch, Lange, G.A. Barton). 그리고 '향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식물성 기름으로서 여기서는 향유의 용도로 쓰여졌는데(7:1 참조), 이것 또한 축제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바른 것으로 보여진다(삼하 12:20;14:2;시 45:8;잠 27:9;사 61:3;암 6:6).

성 경: [전9:9]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 6:12;7:15을 참조하라.

(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라 - '즐겁게 살지어다'(*, 레아하임)는 문자적으로 '삶을 보라'는 뜻이나 여기선 본다는 것이 직접 체험한다는 뜻을 가리키는 바 '삶을 즐기라'(Enjoy life, RSV, NIV, NASB), '즐겁게 살지어다'(Live joyfully, KJV)의 의미를 갖는다(2:1;3:13). 특히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왕상 11:3)이었던 솔로몬 왕이 아내와의 즐거움 삶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이전에 그가 육신적이며 일시적인 낙을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어나'(2:8) 이에서 인생의 참된 낙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허무함을 느낀 후에(2:11) 말한 것으로서, 참된 낙을 누리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임을 암시하고자 한 것 같다. 한편 솔로몬은 그가 지은 잠언에서도 아내와 함께 부부애를 누리며 음녀를 멀리할 것을 권고한 적이 있다(잠 5:15-20).

성 경: [전9:10]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주); 무릇 네 손이 일을 ... 다하여 할지어다 - 이는 인생의 행복이 수고하는 가운데 낙을 누리는 것인 바(2:24;3:13,22) 진정 낙을 누리고자 한다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주); 음부에는 ... 없음이니라 - '음부'(*, 쉐올)란 일반적으로 죽은 모든 사람들이 가는 사후의 장소로 여겨졌다(창 37:35;시 31:17;사 38:10).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과 땅, 땅 아래 등 우주가 세 구분으로 나뉘어졌다고 여겼는데, 이중 땅 아래를 음부로 보았다(민 16:30,33;겔 31:15;암 9:2). 그리고 이들은 이 음부를 생명이 활동하는 이 세상과는 달리 어둡고 그늘진 장소(욥 10:21,22;시 143:3). 침묵의 장소(시 94:17;115:17), 망각의 장소(시 88:12) 등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히브리인들의 음부 개념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이르러서는 음부에서도 선인과 악인이 구별된다는 사상으로 바뀌었으며, 이는 다시 신약에 이르러서는 음부란 이 땅에서 죽은 악인들이 최후의 백보좌 심판을 받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거하는 사후 중간 처소인 것으로 제시되어졌다(눅 16:19-31;계 20:11-15). 한편 전도자가 여기서 이를 언급한 것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수고하는 가운데 낙을 누리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전9:11]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내가 돌이켜'(*, 솨베티)란 전도자가 이전 주제에서 다른 새로운 주제로 전환하는 것을 가리킨다(2:12;4:1).

(주); 빠른 경주자라고 ... 아니니 - 이는 이 세상에서 얻는 수고의 보상, 즉 삶의 낙을 누리는 분복이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힘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의한 것임을 암시한다(2:24;3:13). 이는 인간의 육신적 노력, 즉 자아의 힘에만 의존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을 의지할 것을 암시하는 점에서 7:16-18 과 유사하다. 이는 인간이 의롭게 되고 신령한 삶을 사는 길은 자신의 율법적인 육신의 행위(노력)에 의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신약의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롬 1:17;갈 2:16;엡 2:8).

(주); 시기와 우연이 ... 임함이라 - '시기'의 히브리어 '에트'(*)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정해진 '때'(3:1) 즉 일이나 서건 등이 발생하고 성취되는 '때'를 가리키며, '우연'의 히브리어 '페가'(*)는 '우연히 부딪히다', '우연히 만나다'에서 유래된 말로서 사람에게 예측할 수 없이 임하는 사건(M.A. Eaton, W.J.Denae) 또는 기회(D.R.Glenn)를 뜻하나 혹자는 이것을 사람에게 임하는 '불행(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G.A.Barton). 한편 이와 같은 시기와 우연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은 3:1-8에서 엿보여지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서이다.

성 경: [전9:12]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자기의 시기 -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때를 가리키나(G.A.Barton) 그외 불행의 때를 함축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리고 본절의 '그물'과 '올무'란 흔히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을 행하시는 상징적인 표현 수단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잠 7:23;겔 32:3;호 7:12, T.H.Leale).

성 경: [전9:13]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크게 여긴 것이'(*, 게돌라 히 엘라)란 원어상 '그것이 나에게 크다'(it seemed great to me, RSV)의 뜻이다. 이것은 15절의 지혜로운 행위를 보고서 크게 감명받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영역본 NASB는 이를 '그것이 나를 감명시켰다'(it impressed me)마 번역하였다.

성 경: [전9:14]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 - 구체적으로 어느 성읍을 가리키는지 규명하기 위해 많은 시도들이 행해졌다. (1) 어느 지혜로운 여인의 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될 아벧(삼하 20:15-22)을 가리킨다는 견해(Wright). (2) 본서의 저작 시기를 솔로몬 이후의 시대로 볼 때 안티오커스 III세에 의해 포위되었던 도라(Dora)성을 가리킨다는 견해(Groetz). (3) 역사 기록에는 없으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졌던 어떤 성읍을 지칭한다는 견해(Groetz). 그러나 이중에서 (2)는 본서의 저자가 솔로몬으로 확자실시된다는 점에서 거부되어지며 (1)도 본 단락에서 성읍을 구한 사람이 가난한 지혜로운 '남자'(*, 이쉬;man, KJV, RSV, NASB, 15절)인바 '여인'과 이 '남자'의 모순되는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한 수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성읍은 역사 속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건이 일어났던 한 성읍을 지칭한다고 하는 (3) 또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전도자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어느 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가장 타당하다.

성 경: [전9:15]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 이는 성읍을 구한 가난한 지혜자에 대해 보상하거나 감사치 아니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전9:16]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지혜가 힘보다 낫다 - 전도자는 지혜의 우월성에 대해서 2:13,14;7:19에서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주); 가난한 자의 지혜가 ... 아니한다 - 이는 지혜의 능력이 일발 세상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었고 경멸되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이는 지혜자의 외적 조건, 즉 가난하다는 요인으로 인한 것으로써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모순을 드러내며, 전도자로 하여금 모든 것이 헛됨을 느끼게 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한편 지혜에 대한 이와 같은 경멸 사상은 죄악된 세상에 보편적으로 깔려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엿보여진다(마 11:20-24;눅 7:31-35).

성 경: [전9:17]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 나으니라 - 16절과 같이 지혜의 능력, 우월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특히 '종용히'라는 말과 '호령'이라는 말을 상호 대조시킴으로써 지혜의 뛰어남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신약의 관점에서 볼때 참 지혜자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실 때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암부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 12:19)는 말씀을 생각케 한다. 한편 '우매자의 어른'의 히브리어 '모쉘 바케실림'(*)은 문자적으로 '우매자들 중의 통치자', '우매자들 가운데서의 지배자'를 뜻하며 본 문맥에서는 가난한 지혜자가 건진 성읍의 통치자 또는 지도급의 사람을 지칭한다.

성 경: [전9:18]

주제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주제2: [힘보다 나은 지혜]

(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 '병기'의 히브리어 '미켈리 케라브'(*)는 문자적으로 '전쟁의 병기'(weapons of war, NIV, RSV, NASB)를 뜻하며 앞절들의 전쟁하는 상황과 연관되는 말이다.

(주); 한 죄인 - 앞의 문맥을 참고해 볼 때 육체적인 힘은 가졌으나 어리석어서 성읍을 구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성읍을 구한 지혜자의 지혜나 말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자를 지칭한다.

(주); 많은 선 - 문맥적으로 볼 때 지혜로운 자가 그 지혜로써 제안한 많은 유익한 방도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는 위와같이 어리석은 한 죄인이 잘못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일이 종종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는 아간의 범죄(수 7:1-26), 르호보암의 완악함(왕상 12:1-20) 등이다.

성 경: [전10:1]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죽은 파리가 ... 하는 것같이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파리가 종종 감람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식물성 기름(7:1 참조)에 빠져 죽음으로 그 향기름으로 하여금 악취가 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본절은 이런 사실에서 발췌한 비유적인 내용으로 보인다. 이는 그 내용상 9:18의 하반절에 연이어지며 본절 하반절의 의미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언급된 바이다. 즉 이것은 하찮고 해로운 것이 주위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의 영향을 받기는 커녕 악영향을 미쳐 오히려 부정적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같은 말씀은 교회 안의 음행한 자로 인하여 교회 전체의 순결성과 거룩성이 더렵혀지며 훼손된다고 경고한 사도 바울의 말 속에서도 엿볼수 있다(고전 5:1-8).

(주); 패하게 하느니라 - 문자적으로는 '야카르'(*)로서 '더 무겁다'(out eighs, RSV, NIV;is weightier, NASB)는 뜻이다. 즉 이는 앞의 비유의 암시처럼 적은 어리석음이라 할지라도 영향력에 있어서는 지혜나 존귀보단 더 강함을 암시한다. 한편 이와 같은 사사을 구약 율법의 정결법에서 정(淨) 한 자가 부정한 자를 만지거나 그와 접촉하였을 때 부정하게 되는 법칙에서도 엿볼 수 있다(레 11:24,25,40;15:1-33).

성 경: [전10:2]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 있느니라 -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오른편(쪽)'은 의, 능력, 보호 등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시 16:8;110:5;121:5;사 41:13;마 25:31-46). 그리고 '왼편'은 이와 반대로 불의, 연약함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삿3:21;마 25:41).

성 경: [전10:3]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지혜(*, 리보) - 문자적으로는 '마음'(heart)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마음은 지, 정, 의의 기능 중 특히 지적인 측면을 암시하고 있다.

(주); 자기의 우매한 것을 말하느니라 - 이는 우매한 자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여러 우매한 사실, 성질 등을 말한다는 뜻이 아니고 그 자신 자체가 우매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뜻이다(says ... that he is a fool, RSV). 즉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혜로운제 말하고 훈계하려 함으로써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란 그 사람이 속에 품고 있는 바를 겉으로 드러내어 놓는 것인 바 그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가가 엿보여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마 12:34-36). 전도자는 그가 쓴 또 다른 성경에서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잠 17:28)라고 말하였다.

성 경: [전10:4]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주권자 - 해당하는 '함모쉘'(*)은 9:17의 '어른'과 같은 말로 '통치자', '지배자'를 뜻하며 본절에서는 특히 한 나라의 통치자인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8:3). 그리고 이는 나아가 영적인 적용 면에서는 온 우주를 다스리며 당신의 주권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암시한다 하겠다.

(주); 분(*, 루아흐) - 문자적으로 '영', '호흡' 등을 의미하나 종종 본절에서처럼 '분(憤)', '노(怒)' 등으로도 번역된다(삿 8:3;시 78:21;잠 29:11;겔 38:18).

(주); 너는 ... 경하게 하느니라 - 이는 8:3의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주권자에게 온전히 순복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즉 주권자의 분에 대해 배척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뜻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겸손히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감내(堪耐)하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리 26:40-42;미 7:9).

성 경: [전10:5]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주권자 - 히브리어 '하솰리트'(*)는 원어상 4절의 '주권자'와는 다르나 그 의미 면에서는 '주권을 소유(행사)하다'에서 유래한 말로 '통치자', '수령' 등을 뜻한다(8:4).

(주); 허물(*, 쉐가가) - 4절의 '허물'(*, 헤트, '범죄', '과오')과는 달리 '실수', '실수로 범한 과오' 등을 뜻한다. 본절에서는 6,7절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모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곧 이 세상 나라의 왕들이 통치를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 같다.

성 경: [전10:6]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우매자가 크게 ... 지위에 않는도다 - 5절과 연관해 볼 때 '우매자'나 '부자'가 그들의 지위를 얻거나 앓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위에 다스리는 '주권자' 즉 통치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되어진 사실임을 암시한다. 한편 본절에서 '우매자'나 '부자'란 단순히 어리석은 자나 재물을 많이 소유한 자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해서 높은 지위에 오를 자격이 없는 자, 그리고 재물이 많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명성이 높아 당연히 높은 자리에 앉게 되리라고 기대되었던 자를 암시한다. 특히 '부자'란 한 나라의 대신들이나 관료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진다(17,20절).

성 경: [전10:7]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종들은 말을 타고 - 솔로몬 왕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말은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으로 귀하게 여겨졌다(왕상 10:28). 그리고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나 히브리 사회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귀하고 영예로운 일로 간주되어졌다(에 6:8;렘 17:25). 이런 사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말이 있기 전 왕들이나 왕족들 또는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자들이 나귀나 노새를 타고 다닌 사실에서도 엿보여진다(삿 5:10;10:4;삼하 18:9;왕상 1:38). 따라서 본절은 사회적으로 하층 계급에 속한 자가 존귀한 위치에 처하고사회적으로 존귀히 여김받아야 할 자들이 낮은 자리에 처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사회적 모순을 드러낸 말이다.

성 경: [전10:8]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 여기서 '함정을 파는 자'란 남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 남몰래 구덩이를 파는 자이다(시 7:5;57:6;잠 26:27). 8,9절에 나타난 네 가지 사례를 통하여 저자는 단순히 위험한 일을 행하는 자가 오히려 그 위험에 빠진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를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즉 지혜자는 어느 곳에서나 위험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Delitzsch).

(주);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 '담을 허는 자'란 다른 사람의 곡물을 해하기 위해서 포도원이나 가타 동산 등의 담 또는 남의 재산을 품치기 위해 남의 집의 담벽을 허는 악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본 문구 또한 어리석은 자의 우매함과 그로 인해 당하는 위험성을 경고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지혜의 필요성과 그 유용성을 교훈하고자 한다.

성 경: [전10:9]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돌을 떠내는 자는 ... 상(像)할 것이요 - '돌을 떠내는 자'에 대해 혹자는 왕상 5:17에 언급된 바와 같이 채석공을 가리키는 자로 보고(Delitzsch) 본 문구의 의미를 하반절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행해지는 일에 있어서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G.A.Barton). 그런가 하면 이와는 달리 구약 당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여된 기업(토지)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세워둔 지계석(地界石), 즉 경계를 나타내는 돌을 떠내는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신 19:14;27:17;잠 22:28, Plumtre). 그러나 본 문구의 정확한 의미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의도하고자 하는 뜻은 8절의 내용과 같이 지혜의 필요성 및 그 중요성을 암시하기 위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떠내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나사'(*)는 '뽑다', '제거하다'(removeth, KJV)의 뜻을 의미하나 혹자는 이를 '히시아'(*)로 보고서 '깨뜨리다' 또는 '들어내다'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Lange, Delitzsch).

(주); 나무를 쪼개는 자는 ... 위험을 당하리라 - '나무를 쪼개는 자' 역시 상번절처럼 땔감을 쪼개는 자로 볼 수도 있는가 하면(레 1:7;4:12) 부정적인 의미, 즉 해를 가한다는 의미로서 과일 나무를 도끼로 패는 자를 뜻할 수도 있다(신 19:19).

성 경: [전10:10]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무딘 철 연장 날을 ... 힘이 더 드느니라 - '무딘 철 연장'이란 9절과 연관해 볼 때 나무를 쪼개는 도끼를 가리키는 것 같다(Lange, G.A.Barton). 본 문구는 하나의 비유로서 8,9절의 내용을 확인하는 내용이며 지혜의 필요성 및 그 유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8,9절에서 암시되어지는 바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함으로 여러 해(害)를 당하듯이 무딘 철 연장처럼 지혜를 갈고 닦지 않으면 해를 당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반면 사람이 지혜롭게 처신하면 그 지혜로 인하여 아주 큰 유익을 얻음을 하반절을 통해 강조한다. 한편 영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때 또는 진리의 삶을 살아갈 때 육신적인 힘이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거듭난 심령을 통해서 역사 되어지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행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고전 2:4,5,13;갈 5:25).

성 경: [전10:11]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방술을 베풀기 전에 ... 무용하니라 - '방술'에 해당하는 '라하쉬'(*)는 '속삭이다', '주문을 중얼거리다'에서 유래된 말로 주문을 외워 행하는 술법을 가리킨다. 특히 본절에서는 뱀곽 파은 동물에게 주문을 외어 마법을 거는 술법을 뜻한다. 그리고 '술객'의 히브리어 '레바알 할라숀'(*)은 '혀의 주인'을 뜻하며, 이는 뱀에게 주문을 속삭여 술법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 비유도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지혜의 필요성 및 그 유용성을 나타낸다. 한편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뱀에게 주술을 걸어 술법을 행하는 일이 흔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시 58:4,5;렘 8:17).

성 경: [전10:12]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 여기서 '지혜자'란 특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받게되는 신령한 지혜를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 기자가 지은 잠언에서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3:18)라고 언급한 것과도 같이 지혜에는 생명력이 있으므로 그 지혜를 간직하고 전하는 자는 남에게 큰 감활력을 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특히 이 지혜자의 말은 8-11절에서 암시되어지는 바 어리석어서 일 가운데 여러 해를 당할 자에게 참된 길, 올바른 방법 등을 제공해 줌으로 복된 길을 가게 한다(잠 12:12;15:2;18:4). 한편 사도 바울은 성도의 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남에게 덕을 세우는 은혜로운 말을 할 것을 자주 권고한 적이 있다(엡 4:29;5:4;골 3:17;4:6).

(주);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 상반절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우매자의 말은 남에게 생명력을 주고 은혜를 공급하기는 커녕 오히려 말하는 그 자신마저 곤고케하며 스스로 패망케 함을 나타낸다(잠 10:21;15:2). 특히 우매자는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리석은 것을 드러냄으로 그의 명예와 권위 및 능력 등을 소멸시키며 자기 자신을 비천하게 만든다(3절). 한편 고대 지혜 문학에서는 본절처럼 서로 대조되는 사상을 대비시켜 열거함으로써 그 의도하는 바의 의미를 강조적으로 드러내는 예가 흔하다(잠 10:7;11,14, 32;28:11).

성 경: [전10:13]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그 입의 말의 시작은 ... 끝은 광패니라 - 이는 12절 하반절 말씀의 확언이다. 즉 어리석은 자의 말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시작'과 '끝'을 들어 전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광패'의 히브리어 '흘렐루트 라아'(*)는 문자적으로 '악한 미침'(wicked madness, NASB)을 뜻하는데 역기서 '미침'이란 1:17과 같은 말이며 2:2의 '미친 것'이란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이는 '어리석다', '정신없이 지껄이다', '미치다' 등에서 유래된 말로 '광기', '미련함' 등을 뜻한다. 이는 우매자의 말의 특성을 더욱 분명하게 규명해 준다. 즉 우매자는 그 속에 있는 바 어리석은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이치와 도리에도 맞지 않는 말을 정신없이 지껄이되 특히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사악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런 말은 곧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나타내며 그 결과 자신을 파멸케 한다. 한편 성경에서는 악한 말, 즉 남을 해하는 말을 종종 '칼' 또는 '독사의 독' 등의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한다(시 55:21;64:3;롬 3:13).

성 경: [전10:14]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 우매자는 처음부터 어리석음을 지껄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혜로운 것으로 착각하고 계속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특히 하반절을 고려하건대 우매자는 당면한 현실조차 제대로 타개해나가지 못하면서 장래 일에 대해 허황되고 과장된 말을 떠벌이기를 즐겨함을 알 수 있다(Delitzsch, Ginsburg).

(주); 신후사 - 6: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10:15]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지혜자와 우매자의 비교]

(주); 우매자들의 수고는 ... 곤라게 할 뿐이라 - '곤하게'의 원형은 '야가'(*)로서 '숨이 차다', '기진맥진하다' 등의 뜻이다. 우매자는 아무리 애써서 어떤 일을 도모한다 할지라도 풍성한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만을 기진맥진하게 하고 무익함만을 남긴다는 것이다.

(주); 저희는 성읍에 ... 알지 못함이니라 - 이는 자강 기본적인 일, 즉 모든 사람에게 쉽고 친숙한 일(Ginsburg)조차 알지 못한다는 우매자의 무지성을 암시한다. 이는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우매자의 도덕적, 지적 나태성과 깊은 관련을 나타내는 말이다(2:14).

성 경: [전10:16]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복(福) 있는 나라와 화(禍) 있는 나라]

(주); 왕은 어리고 - '어리고'(*, 나아르)란 다음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1) 육체적인 나이가 어리다는 뜻(삼상 3:1, G.A.Barton). (2) 정신적인 분별력이 약하다는 뜻(왕상 3:7, Eaton)을 암시한다. 그런데 (1)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작 연대를 솔로몬 왕 이후의 시대로 보는 자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B.C.205년에 5세의 나이로 애굽의 왕이 된 톨레미 에피파네스(Ptolemy Epiphanes)로 보거나(Hitzig, Genung)혹은 알렉산더 발라스(Alexander Balas)로 규정하는 자도 있으나(Heupt), 일반적으로 본서의 저자가 솔로몬임이 확실한 이상 (1)보다는 (2)가 더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전도자는 한 나라의 왕이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하여 지혜롭지 못할 때의 불행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주);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 '연락하는'(*, 아켈루)은 원어상 17절의 '먹는'이란 말과 같은 단어이다. 그러나 본 문구에서 이는 단순히 먹는다는 뜻 이상을 함축하고 있다. 즉 아침부터 잔치를 벌여 허랑방탕하게 지냄을 나타냄벼 일국의 국사(國事)를 맡아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고위 관리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자기 탐욕과 쾌락만 추구한다는 뜻을 내포한다(7:4),

성 경: [전10:17]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복(福) 있는 나라와 화(禍) 있는 나라]

(주); 귀족의 아들이요 - '귀족의 아들'이란 단순히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것 이상의 뜻을 지니는 바 16절과는 반대로 그 생각과 행동, 품성면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를 암시한다.

성 경: [전10:18]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복(福) 있는 나라와 화(禍) 있는 나라]

(주); 게으른즉 ... 집이 새느니라 - 이는 16,17절에 이러지는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왕 또는 대신(관료)들이 게으르고 허랑방탕하게 생활하고 치리할 경우 그 나라가 망하고 파탄에 이른다는 경고적인 말이다. 여기서 '석가래'란 지붕의 중앙 꼭대기에서 처마 쪽으로 내려 얹은 긴 통나무를 뜻하는데, 혹자는 팔레스틴의 가옥 구조상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었다는데 근거하여 이 석가래를 '지붕'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기도 한다(G.A.Barton). 그리고 '풀어지다'의 히브리어 '델로프'(*)는 '뚝뚝 떨어지다', '녹다'란 의미이며 본절에서는 손이 완전히 축처져 힘없이 된 것, 즉 게으름으로 인해 일할 의욕을 상실한 상태를 암시한다.

성 경: [전10:19]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복(福) 있는 나라와 화(禍) 있는 나라]

본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이다. 난해 구절에 속하는 본절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의 대조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1) 16-19절이 '화', '복', '화', '복'의 순으로 일련의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19절의 지혜로운 삶의 행복한 결과를 묘사한 내용으로 이해한다. (2) 히브리어 원문상 어순이 '희락', '포도주', '돈'에 강조점이 있음을 보아, 본절을 방탕한 삶에 관한 묘사로 이해한다. 이중 우리는 (2)의 견해를 지지하고자 한다.

(주);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스 호크 오심 레헴'(*)은 문자적으로 '웃음을 위하여 떡(빵)이 만들어 진다'(Bread is made for laughter, RSV)의 뜻이며 방탕하고 우둔한 대신들이 환락적인 기쁨을 위하여 잔치를 베풂을 암시한다(Lange, G.A.Barton).

(주);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 시 104:15;딤전 5:23 등과 같이 포도주 사용의 긍정적인 의미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환락과 기쁨을 위해 마시는 포도주의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한 것이다.

(주);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 이는 히브리어로 '하케세프 야아네 에트 하콜'(*)로서 '돈은 모든 것에 대답한다'(Money answers everything, RSV)의 뜻이다. 이 역시 방탕하고 우둔한 자들에게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능 열쇠처럼 여겨진다는 의미이다.

성 경: [전10:20]

주제1: [지혜와 우매의 결과에 대한 비교]

주제2: [복(福) 있는 나라와 화(禍) 있는 나라]

(주); 왕을 저주하지 말며 - 왕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며 왕에 대해 반역적인 마음을 품지 말라는 말이다(4절;8:3). 한편 성경에서는 권위에 대한 인정, 순복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롬 13:1-3), 남편과 아내(엡 5:22-33;골 3:18,19), 부모와 자녀(엡 6:1-4;골 3:20,21), 상전과 종(엡 6:5-9;골 3:22-25) 등의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주);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 여기서 '부자'란 단순히 재물을 많이 소유한 자를 뜻하지 않고 권세와 신분이 노가은 대신들이나 기타 고귀한 자를 뜻한다(6,17절).

성 경: [전11:1]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 찾으리라 -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상업적인 말로서 배가 먼 항해를 마치고 그 이윤을 얻어 돌아 올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상품(물품)들을 계속 (바다에) 띄우라는 뜻이다(Hitzig, Delitzsch, Mendelssohn, Wildeboer). (2) 농업에 관한 말로서 곡식의 씨앗을 촉촉한 땅에 뿌려 추수 때에 풍요로운 결실을 얻는 것을 뜻한다(Palm, Baur, Leale). (3) '식물'을 인간 생명의 '씨앗'으로 볼때 성적으로 방종한 자에 대해 경계하는 뜻으로 볼 수 있다(Graetz). (4)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굳세게 지님으로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얻으라는 뜻이다(M.A.Eaton). (5) 자선 또는 구제 생활을 권면하는 말로서 남을 위해 선을 베풀고 쌓으면 이내 그것을 좋은 결과로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Leupold, Lange, Ginsburg, Wright). 위 견헤 중에서 (5)가장 나을 듯하다. 즉 전도자는 앞에서 자연, 지혜, 인생 등의 허무를 언급한 후여기서는 사람의 사는 인생 동안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티브(motif)면에서는 (1)의 뜻을 빌린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구약에서는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촉구하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오며(신 15:10;잠 11:24,25;28:27), 바울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선행을 행할 때 때가 되면 그 결실을 얻으므로 결코 낙심하지 말 것을 언급한 바 있다(갈 6:7-10).

성 경: [전11:2]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 못함이니라 - 이에 대한 해석도 1절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1절의 경우에 비춰볼 때 구제 혹은 남에게 선을 베풀 것을 권고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제 어떤 재앙이 임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넉넉할 때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풂으로 재앙시 같은 도움을 입을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부자의 청지기 비유와 유사하다(눅 16:1-13). 한편 '일곱에게나 여덟'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7이나 8을 의미하지 않고 많은 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특히 '일곱' 다음에 '여덟'을 언급한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숫자를 말함으로써 복수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표현으로 보인다(욥 33:29;잠 30:15,18;사 17:6;암 1:3;미 5:5).

성 경: [전11:3]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 이는 문맥상 재앙이 부지불식간에 임한다는 2절 하반부와 연관되는 비유이다. 특히 이는 구름에 비가 가득할 경우 반드시 쏟아져 내린다는 자연의 불변의 법칙을 나타낸 것으로서 때로는 이 세상사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불특정한 재앙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력히 상기시킨다. 3,4절에서 전도자가 비와 바람, 바람과 비를 서로 교차하여 언급하는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을 통해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Gordis).

(주); 나무가 ... 그냥 있으리라 - 전반절이 불예측성 또는 불가피성을 암시한 반면 본 구절은 재앙이 임할 경우 사람은 어찌할 수 없이 그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이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연약성 또는 재앙의 엄중성을 나타냄으로 1,2절에서 암시하는 바 평안하고 넉넉할 때 베풀며 살라는 뜻을 강조한다.

성 경: [전11:4]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 거두지 아니하리라 - (1) 혹자는 이를 3절과 연관시켜 폭우가 임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파종이나 추수에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2) 혹자는 어떤 것을 행할 때 적당한 때나 좋은 시기만을 차일 피일 기다리면서 우유부단하게 행하지 말고 신념과 용기를 갖고 수행하라는 라스, 즉 환경과 조건에 대한 지나친 계산에 의해 행하지 말고 열성과 근면성으로 행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Lange, Delitzsch). 그러나 (1)도 궁극적으로는 (2)의 결론처럼 사람이 일을 수행할때 자포자기하지 말고 근면과 성실한 마음으로 꾸준히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후 문맥 특히 5,6절을 참고해볼 때 사람이 선을 행할 때 주위 환경이나 여건에 좌우되어 주저하거나, 보다 좋은 기회를 보기 위해서 미루지 말고 즉시 용기를 내어 행할 것을 촉구한 말씀이기도 하다. 한편 혹자는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추수기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이 구절이 팔레스틴 지역에서 쓰여진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제안하나(Siegfried) 이는 그 극너가 정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추수기에 비가 오는 일이 드물다 할지라도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추수가 시작되는 4월까지 비가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G.A.Barton). 또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비가 오고 안 오고가 결정되는데, 보통 서풍이나 북서풍 또는 남서풍이 불때 비가 온다(왕상 18:44,45;욥 37:9 참조).

성 경: [전11:5]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 알지 못함 같이 - 이는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난다. (1) 영역본 NASB는 '네가 바람의 길과 아이 벤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지 못함 같이'(Just as you do not know the path of the wind and how bones are formed if the womb of the pregnant woman)로, (2) RSV는 이를 '네가 영이 모태의 뼈들에게로 어떻게 이르는지 알지 못함 같이'(As you do not know how the spirit comes to the bones in the womb)로, (3) KJV는 이를 '네가 영의 길이 무엇이며 뼈들이 어린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모태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함 같이'(As thou khowest not what is the way of the spirit nor how the bones do grow in the womb of her that is with chile)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 구절의 '루아흐'를 한글 개역 성경처럼 '바람'으로 보며 4절에 암시된 바라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Zockler, Delitzsch, G.A.Barton). 그렇다면 전도자는 여기서 자연 및 인간의 신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인간의 지혜의 한계성 및 연약성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사람이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예수님에 의해서도 언급된 적이 있으며(요3:8), 인간의 조성의 신비는 다윗에 의해 시편에 암시되어지기도 했다(시 139:13-16).

(주); 만사를 성취하시는 ... 알지 못하느니라 - 혹자는 '만사를 성취하시는'을 '두 가지를 만드시는'(who makes both) 즉 상번절의 바람의 길과 태속의 뼈들을 만드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하나(G.A.Barton) 이보다는 본서 전체에서 암시되듯이 앞의 두 가지 일을 포함하여 인간사와 자연계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뜻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3:1-11;7:14). 그리고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는 바 모든 일 특히 남에게 선을 베풀고 덕을 쌓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거나 미루지 말라는 권면의 뜻을 암시한다.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지혜의 한계성 또는 연약성은 본서 전체의 지향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3:11;7:14;8:17).

성 경: [전11:6]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구제와 근면]

(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 거두지 말라 - 이의 해석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1) 사람이 젊을 때에나 혹 늙을 때에라도 자녀를 낳는 것을 언급하는 내용이다(Graetz). (2)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가운데 선을 행하고 덕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Plumtre). (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Lange, Leale, Delitzsch, G.A.Barton). 전후 문맥의 관계에서 볼때 (2)나 (3)의 두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저녁에도'의 히브리어 '웰라에레브'(*)는 '그리고 저녁이 되어도'의 뜻으로 '아침에'라는 말과 함께 하루 온종일 성실하게 일하라는 뜻을 암시한다. 그러나 혹자는 '아침에'나 '저녁에도'를 인생의 '젊을 때 '와 '늙을 때'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보기도 한다(Power).

(주); 알지 못함이니라 - 아침에 씨 뿌린 것이 잘 될지 저녁에 뿌린 것이 잘 될지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5절)의 주권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구하는 암시이다.

성 경: [전11:7]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현재의 중요성]

(주);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 '빛'이란 한면으로는 태양의 빛을 뜻하나 또 한면으로는 그 배후에 담겨있는 근본적인 의미는 생명, 즉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욥 3:20;18:5,6;시 36:9;요 8:12;9:5).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라'의 히브리어 '마토크'(*)는 문자적으로 '달콤한', '단'(sweet, KJV, NIV, RSV)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앞절과 연관시켜 볼 때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 때 자족하는 가운데서 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도자가 인생의 낙에 대해 언급한 것은 본서 여러 곳에 나타난다(2:24;3:12,13;5:18).

(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 그 의미면에서 앞 구절과 유사한 내용으로 즉 '해를 보는 것'은 단순히 태양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태양 빛이 생명을 상징하고 '보는 것'이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경험적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뜻하는 바, 삶의 낙을 누리는 것을 암시한다(1:3;2:1 참조)

성 경: [전11:8]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현재의 중요성]

(주); 그러나 캄캄한 날이 ... 생각하지로다 - '캄캄한 날'(*, 예메 하호쉐크)이란 원어상으로 복수(the days of darkness)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카'의 날들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죽음의 날돌로 여겨진다(Lange, Leale, Barton). 그러나 혹자는 이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딪히게 될 재앙 또는 시련의 날들로 보기도 한다(Wardlaw). 아무튼 본구절은 전반절과 연관되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 복된 낙을 누리되 역경과 죽음의 날들 또한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뜻을 암시한다 하겠다. 특히 '생각할지로다'의 히브리어는 '이제코르'(*)로서 9:5의 '이름'(기념, 기억)의 어근이며 '기억하다', '회상하다'의 뜻을 갖는다.

(주);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 여기에서 '장래 일'(*, 쉐바)이란 이 세상에서 맞게 될 미래의 일뿐만 아니라 사후(死後)의 세상을 암시하기도 한다(Lange, Deane, Barton, M.A.Eaton). 이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라는 말씀처럼 추어진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권고로 이해된다.

성 경: [전11:9]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청년에 대한 권면]

(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 기뻐하여 - 이는 8절 전반부의 말씀과 같이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터전 위에서 해복을 추구하며 살라는 권면이다. 이러한 권면은 본서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2:24;3:12,13;5:18). 그러나 전도자는 인생을 즐기되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하반절) 기억하고 지나친 방종, 향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제한을 가하고 있다. 특히 본 구절에서 삶을 즐기는 대상으로서 '청년'을 언급한 것은 청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로서 소망과 힘에 부푼 시기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저자 솔로몬은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향약과 죄악 가운데 빠졌다가 인생의 후반기에 하나님께 돌아와 지난 날을 회고해 볼 때 청년의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1:1). 한편 시편 기자는 청년의 때와 관련하여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라고 말하였다.

(주); 마음에 원하는 길 -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낙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을 언급한 말이다(2:10). 물론 이는 타락한 육신적인 생각대로 그 마음을 좇아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본서 여러 곳에서 암시되어진 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락된 대로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즐기라는 절제된 표현이다. 인간은 근본 아담 안에서 정죄되어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롬 5:16-21;7:14,18), 그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되어 있으며(렘 17:9) 인간이 육신적인 욕심과 생각을 따라 살 때에는 커다란 죄악에 빠지기 마련이다(엡 2:3).

성 경: [전11:10]

주제1: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자세]

주제2: [청년에 대한 권면]

(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 '근심'의 히브리어 '카아스'(*)는 문자적으로 '분노', '슬픔' 등을 의미하며 1:18에서는 '번뇌'로, 2:23에서는 '슬픔'으로 7:9에서는 '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본 구절의 문맥상 '분노'보다 '슬픔'이란 뜻이 더 타당하겠다(Leale, lange). 결국 본 구절은 인생의 낙을 누리는 데에 방해되는 슬픔의 요소를 마음에서 제하라는 의미로 보여진다.

(주);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 '악'의 히브리어 '라아'(*)는 '악', '해'등의 뜻으로서 본서에서는 특히 인생 가운데서 헛됨을 느끼게 하는 나쁜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5:13). 특히 지나친 방종과 향락에 빠져 몸을 약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이는 8,9절에 암시되어진 바와 같이 인생의 낙을 누리되 지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해지지 않도록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 이는 꿈과 소망이 부푸는 인생의 황금기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쉽게 사라져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미는 이후 12:1-8에서 유사하게 이어진다.

성 경: [전12:1]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 이는 11:10과 연관된다. 즉 인생 중 힘과 소망에 가장 부푼 황금기에 낙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또한 그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경외하는 삶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곤고한 날'(*, 예메 하라아)은 원어상 '악한 날들'(the evil days, RSV, NASB)을 뜻하나 여기서는 인생의 노년에 맞게 될 '쇠약한(괴로운, 역경의) 날들'을 의미한다(M.A.Eaton).

(주); 너의 창조자(*, 보레에카) - '바라'(*, 창조하다, 창 1:1)의 분사형으로서 복수이다. 이 복수형은 만물 특히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나타내는 한 표현이다(욥 35:10;시 149:2;사 54:5). 전도자가 여기서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 것은 인간이 곧 젊음의 즐거움을 남용하여 절제치 못하고 환락과 행락에 빠질 경우 인간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11:9)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성 경: [전12:2]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 이는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하나의 비유적 표현으로서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함이 무난하다. (1)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때 나타나는 시각 장애 현상 즉 모든 종류의 빛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2)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수록 나타나는 삶의 기쁨의 쇠퇴 현상을 암시한다(11:7,8, Barton, Eaton).

(주); 비 뒤에 구름이 ... 그리하라 - 삶의 기쁨을 방해하며 앗아가는 악조건들이 계속 연이어 일어나기 전에, 더욱더 늙어 초라해지고 쇠약해지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권면이다.

성 경: [전12:3]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 이는 인간의 몸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여 나이가 듦에 따라 몸이 쇠퇴하는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이 경우 '집을 지키는 자들'에 대해 혹자는 '갈빗대'와 '허리'라고 하고(Rashi) 다른 사람은 '다리'라고도 하나(Plumtre) 그보다는 '팔'(Delitzsch, Eaton)이나 '손'(Haupt) 또는 이 둘을 뜻하는 것(Leale)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는 사람이 늙음으로 기력이 쇠하여 손과 팔이 힘이 없어 떠는 현상을 나타낸다.

(주);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 '힘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팔'(Plumtre), '뼈들'(Rashi)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리'들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Lange, Delitzsch, Leale). 따라서 본 구절은 사람이 늙음으로 다리의 기력이 쇠하여 힘으로 지탱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주);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 맷돌은 구약의 이른 시기부터 곡식을 갈거나 가루로 만드는데 쓰인 도구인 바(삿 9:53;욥 41:24), 본 구절은 사람이 늙음에 따라 음식을 씹고 잘게 부수는 치아(齒牙)들이 빠짐으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 이는 눈의 시력이 쇠하여 사물을 잘 분별하지 못함을 비유한다.

성 경: [전12:4]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1) 늙은이는 기력이 약해서 밖에 나갈 수 없는 것을 암시한다(Grotius, Cleric). (2) 음식을 먹을 의욕조차도 상실하여 입술을 닫은 상태를 의미한다(Leale, Hitzig, Wright). (3)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닫혀진다는 뜻이다(Wycliffe, Widebore). 이중에서는 문맥상 (3)번 즉 사람이 늙음에 따라 청각 기능이 장애를 일으켜 외부 소리를 잘 분간 못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1) 소화 기능의 쇠퇴를 암시한다(Rashbam, Haupt). (2) 점점 쇠약해지는 연로한 자의 목소리를 가리킨다(Knobel, Hitzig). (3) 치아가 없은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암시한다(Delitzsch). 이중 일반적으로 3절을 참고로 해볼 때 (3)이 가장 나으리라 본다. 즉 사람이 연로함에 따라 치아가 빠져 음식을 씹는 오리가 아주 미약하게 들리는 것을 나타낸다.

(주);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 이에 대해서 혹자는 노인들에게 어린아이들의 높은 소리로 칭얼대는 것과 연관시키나(Plumtre, Delitzsch) 다른 사람은 노인이 아침 일찍 새가 재잘거리기 시작할 때 일어난다는 뜻으로, 연로함에 따라 신경이 극도로 민감하여 잠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게 됨을 뜻한다고 본다(Knobel, Wright). 일반적으로 이중에서 후자가 더 타당한 것으로 여긴다.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衰)하여질 것이며 - 이에 대해서도 사람이 늙음에 따라 노래하는 발성이 쇠약해짐을 암시한다는 견해와(Heiligstedt) 청각 기능이 쇠약해져 다른 이의 노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됨을 나타낸다는 견해로(Leale, Delitzsch) 나누어지거나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한편 '음악하는 여자들'이란 '딸 시온'(미 4:10)이 '시온' 자체 또는 '시온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음악의 다양한 음조를 뜻하는 것으론 이해된다(M.A. Eaton, Wysliffe, Konig).

성 경: [전12:5]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 이는 사람이 늙으면 숨이 차고 가빠옴으로 높은 곳을 오르거나 통고하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본다.

(주);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 사람이 늙으면 다리에 힘이 없고 숨이 가빠서 단순한 평지의 길도 여행하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다.

(주);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 '살구나무'는 흔히 아몬드 열매를 맺는 유실수로 알려졌으며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일찍부터 볼 수 있었던 것이다(창 30:37;43:11;민 17:8). 이 나무는 높이가 보통 4-8m 정도로까지 자라며 일반적으로2-3월경 잎이 나기 전에 꽃릉 피우나 특히 예루살렘 근방에서는 1월경에 피우는데 이 꽃은 봉우리 때는 분홍색이나 만개된 후에는 흰색으로 보인다. 본절에서 이 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노인이 연로함에 따라 백발이 형태로 됨을 암시한다.

(주);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메뚜기'가 사람의 엉덩이를 뜻하는 거승로 사람의 늙음에 따라 힘과 탄력이 없어 기동하기에 불편함을 나타낸다(Delitzsch). (2) 사람이 늙음에 따라 기력이 쇠진함으로 메뚜기를 잡아 음식을 만들기도 힘이 벅참을 나타낸다(Heiligstedt). (3) 메뚜기가 적은 것에 대한 상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바(민 13:33), 사람이 늙음에 따라 힘이 쇠약함으로 아무리 적고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짐이 된다는 뜻이다(Plumtre, Lange). 이중에서 (3)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긴다.

(주); 원욕이 그치리니 - '원욕'(*, 아비요나)은 원어상 '욕망'을 뜻하며 여기서는 특히 성욕(性慾)을 가리킨다.

(주);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 '영원한 집'이란 사람이 죽을 경우 가는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사람이 늙을 경우 곧 죽게 되어 땅에 묻힘을 암시한다.

(주);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 '조문자'의 히브리어 '하소페딤'(*)은 '우는 자들', '애통해 하는 자들'을 뜻하며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 죽음을 애도해주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삼하 3:31;렘 9:16-20;암 5:16;마 9:23).

성 경: [전12:6]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은줄은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 원문에 의하면 본절은 '...전에'란 뜻인 히브리어 '아드 아쉐르'(*)로 시작되고 있다. 본구절은 고대 근동의 부유한 집에서 금으로 도니 등잔 그릇을 은줄로 연결하여 천정이나기타 기둥에 매어단 데서 유추한 것으로서 은줄이 끊어지고 금등잔이 깨어지듯이 사람이 늙을 경우 힘이 쇠잔하여 죽음으로 나아가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은줄'이란 사람의 육체를, '금그릇'이란 그 영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자들도 있다(G.A.Barton). 그런가 하면 은줄이란 사람의 육체적 힘을 유지해 주는 척추뼈를, 금그릇이란 그 척추뼈에 의해 유지되어지는 머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Haupt). 그러나 본 구절의 의미가 전자이든 후자이든 결과적인 뜻은 사람이 늙을 경우 쇠잔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주); 항아리가 샘 곁에서 ... 깨어지고 - 이는 깊은 우물에서 줄로 두레박을 바퀴에 연결하여 물을 길어 올리던 생활 풍속에서 유추된 비유이다. 그리고 본 구절의 내용에 대하여 어떤 이는 신선한 생명력을 공급해 주는 신체의 기관 즉 심장의 박동과 호흡 기관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아며(Deane) 본 구절을 각각 심장과 심장의 호흡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Delitzshc, Haupt).

성 경: [전12:7]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 이는 3:20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된 인간의 육체가 죽어 땅에 묻힘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감을 타나낸다(창 3:19;욥 34:15).

(주);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 기억하라 - '신'(*, 루아흐)은 원어상 '영'(sprit)을 가리킨다(3:21 주석 참조).

성 경: [전12:8]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주); 전도자가 가로되 ... 헛되도다 - 이는 전도자가 그의 말을 귀결짓는 내용으로서 그가 처음 본서의 서두에(1:2) 시작했던 말을 반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은 그의 말을 종합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본절이 본서 전체의 내용을 귀결짓는 부분인지 아니면 구결 부분의 시작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나뉘인다. 딘(W.J. Deane)은 본서 전체의 문맥상 전자를 취한다.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9절이 '와우'(*, 그리고)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후자를 취하기도 한다.

성 경: [전12:9]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의 주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그들을 잘 인도하고 보호, 양육하는 일릉 포함하였다(대상 11:2;렘 23:1,2). 따라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자할 때 백성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였었다(왕상 3:7-9).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비롯한 여러 축복을 주셨고(왕상 3:10-15), 솔로몬은 그의 지혜로 백성들을 가르쳤으며 그를 찾아 오는 자들에게 그의 지혜를 나타내었다(왕상 3:!6-28;4:34;10:1-25).

(주);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지혜로 말미암아 '잠언 삼천을 말하였다'(왕 4:32). 한편 '잠언'에 대해서는 잠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전12:10]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아름다운 말 - 히브리어 '디브레 헤페츠'(*)는 문자적으로 '기쁨의 말'(delightful words, NASB)의 뜻이다. 이것은 전도자의 말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아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복과 기쁨이 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헤페츠'가 본서 다른 곳에서는 '기뻐하지'(5:4), '낙'(1절)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한편 전도자의 이러한 귀한 말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당시 뭇백성들에게 '은혜로운 말'(눅 4:22)을 하신 것을 생각케 한다.

(주); 기록한 것은 ... 진리의 말씀이라 - '정직하게'(*, 이쉐르)란 원어상 '곧다', '공평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올바름', '공평함' 등의 뜻이다. 이는 상반절의 '아름다운 말'과 균형을 이루는 말로서 전도자의 말이 영혼에게 기쁨과 복을 주는 부드러운 기삐미 말일 뿌남다 아니라 모든 불의나 악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곧은 말씀임을 암시한다. 한편 전도자의 이와 같은 자세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자가 기본 자세라 하겠는데, 신약의 사도 바울도 이와 유사하게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라고 단언한 바 있다.

성 경: [전12:11]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 '찌르는 채찍'이란 구약에서 본절과 삼상 23:21에 나오며 아마 짐승들을 몰 때 자극하기 위해 사용된 날카로운 것이 박힌 막대기(M.A.Eaton) 혹은 소를 몰 때 사용되는 끝이 날카로운 막대기를 (삿 3:31) 의미할 수 있다(Deane). 따라서 본절은 지혜자의 말씀의 바르게 교정시키며 인도하는 능력을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지혜자'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심령한 지혜를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10:12 참조). 그의 말에 능력이 있음은 그가 뿌리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질러 쪼개기까지"(히 4:12)하기 때문이다.

(주);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같으니 - 원문에 의하면 '말씀'이란 말이 없으며 '회중의 스승'의 히브리어 '바알레 에수포트'(*)란 문자적으로는 '모임의 주인' 또는 '모음의 주인'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를 지지한다(Lange, Barton, Deane, Leale, Eaton). 즉 이것은 모인 자들 가운데서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보다는 '잠언 모음집'(the collected sayings, RSV; masters of these collectins, NASB)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히브리 사회에서 '...의 주인'이란 주 특성이 '...인 사람 또는 물건' 을 뜻하는 관용어구로 보며(M.A.Rsyon) 본절에서는 측히 후자의 의미이다. 그리고 '잘 박힌 못'이란 앞의 '찌르는 채찍'과 같은 맥락의 말로서 긴요하게 쓰이는 효용성을 암시한다.

(주); 한 목자 -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 회중의 지도자나 왕과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삼상 25:7;삼하 5:2). (2) 이스라엘을 양으로서 먹이시며 기르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시 23:1;80:1). 이중에서 혹자는 전자를 지지하나(Leale),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은 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Lange, Eaton, Deane, Wycliffe, Glenn). 다시 말하면 전도자는 자신이 기록한 말씀의 영감성을 암사하고 있다.

성 경: [전12:12]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내 아들아 - '아들'이란 지혜서에서 흔히 나타나는 말로서 (잠 1:8,10,15; 2:1;3:1,11,21;4;1:5:1;6:1;7:1) 단순히 혈육 관계의 자식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을 듣는 청중 또는 독자를 가리킨다.

(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 피곤케 하느니라 - 이는 1:16-18과 유사한 내용이며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허무하다는(1:2) 본서의 대주제와 일맥 상통하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을 떠난 자아의 노력이나 지혜의 허무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공부하는'의 히브리어 '라하그'(*)는 '갈망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열심히 추구하다', '탐구하다'의 뜻이다.

성 경: [전12:13]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 3:14 주석을 참조하라. 특히 원문에 의하면 목적어인 '하나님'( 엘로힘)이 동사 '경외하다'(*, 예라)보다 앞에 좋여 경외의 대상을 강조한다.

(주);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 또는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다(요 1:1,2,14). 따라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 사람의 본분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 하아담'( - )은 문자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사람의 모든 것'(the whole of the man, M.A.Eaton), (2) '모든 사람'(every man, W.J. Deane). 여기서 (1)을 취할 경우 본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행할 의무 전체(the whole duty of man, KJV, NIV, RSV)라는 뜻이 되며, (2)를 위한 경우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져야하는 모든 사람의 의무(the duty of all men, RSV난하주)라는 뜻이다.

성 경: [전12:14]

주제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본분(本分)]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주); 하나님은 ...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 이는 3:7;11:9의 반복이다. 이와 같은 말씀을 본서의 제일 끝에 언급한 것은 근본적으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생이 정죄된 죄인이며(롬 5:16-21),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일, 이세상에서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인 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매사를 스스로 도모하지 말고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면서 의롭게 살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