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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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요엘서 주석



성 경: [욜1:1]

(주);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 '요엘'(*)이라는 이름은 신 6:4에서 천명된 '우리 하나님 여호와' 즉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 고백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로 소개되는데, 이러한 표현은 호세아, 미가, 스바냐 등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그들의 부친이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임을 시사한다(Calvin). 한편, 요엘은 '여호와께서...이르신 말씀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데바르 아도나이'(*)를 사용하여 말씀의 기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명백히 한다.

성 경: [욜1:2]

(주);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 '늙은 자들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즈 케님'(*)을 '장로들'(elders)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NIV, NASB, JB, NEB).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문맥에 비추어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늙은 자들'(The old man, The aged man)이라고 번역했다(Keil, G.A.Smith, Henderson, KJV, RSV). 그러나 14절에서 금식일이나 성회 등 공식적인 용어와 함께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이 용어가 공식적인 장로 직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지도적인 권위를 가진 공적인 직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구약에만 약 100회 이상 등장하고(BDB), 70인역(lxx)도 '호이 프레스 뷔테리'(*, 장로들)라고 번역하였다.

(주);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 '귀를 기울일지어다'가 히브리어 원문에는 '들을지어다'와 마찬가지로 '장로들아'나 '땅의 모든 거민아'보다 앞서 나와 있어서 매우 강조된 명령이다. 게다가 두 명령어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어서 그 강도를 더해준다(신 32:1;사 1:2).

성 경: [욜1:3]

(주);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고하고...고할것이니라 - 개역 성경에는 '고하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페루'(*, 피엘 명령형)가 단 한 번만 나와 있다. 이로써 계시의 전달 자체보다는 계시 전수의 연속성과 역사성이 강조되었다.

성 경: [욜1:4]

(주); 팟종이가...메뚜기가...늣이...황충이 먹었도다 - 본절에 나오는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등은 메뚜기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네 개의 히브리어, 곧 '가잠'(*), '아립베'(*), '얄레크'(*), '하실'(*)을 번역한 것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어원으로 메뚜기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가잠'은 '자르다'는 의미이고, '아립베'는 '많은 떼'를 가리키고, '얄레크'는 '급하게 갉아먹는 모습'을 가리키며, '하실'은 '끝장을 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다른 용어로 동일한 메뚜기를 언급하는 것은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표현은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장차 시행될 심판이 그만큼 철저하다는 개념과도 상통한다(렘 15:3;겔 14:21, Patterson).

성 경: [욜1:5]

(주);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 '너희는 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키추'(*), '울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베쿠'(*), 그리고 '너희는 곡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헤일리일루'(*)는 모두 히필형의 남성 복수 명령형으로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세 번에 걸쳐 반복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한편 본절은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는데, 사마리아와 므깃도 지방의 고고학 발굴 작업에 의하면 B.C. 8세기 전반의 이스라엘과 유다 사회는 가장 큰 번영을 누렸고, 극도로 사치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성 경: [욜1:6]

(주); 한 이족(異族)이 내 땅에 올라 왔음이로다 - 메뚜기가 큰 떼를 이루어 집단적으로 이스라엘 땅에 엄습하였음을 뜻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메뚜기 재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진전된 심판의 내용을 예고하는 환상이다(Hengstenberg). 즉, 장차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 땅을 유린하게 되리라는 예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표현은 가공할 만한 메뚜기 재앙이 찾아온 역사적 현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국가적 위기라는 사실을 경고한다. 여기서 특별히 '내 땅'(2:18;3:2;호 9:1-3)이라는 표현은 비록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암울한 형편에 빠졌어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해 끝없이 관심을 보이신다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성 경: [욜1:7]

(주);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버리니 -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대개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였다(왕상 4:25;왕하 18:31;시 105:33;사 36:16;렘 5:17;8:13;호 2:12;암 4:9;미 4:4;학 2:19;슥 3:10). 그러므로 그 나무의 껍질까지 벗기워졌다는 것은 유다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여러 선지자들을 크게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내 땅', '내 포도나무', '내 무화과나무'등의 용어를 사용해 유다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신 여호와께도 큰 슬픔을 안겨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성 경: [욜1:8]

(주);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애곡함같이 할지어다 - '처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툴라'(*)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상징한다(왕하 19:21;사 37:22;62:5;렘 2:32;14:17;18:13;31:4,21;애 1:15;암 5:2). 간혹 이방 나라를 가리키기도 했지만(사 23:12;47:1;렘 46:11), 본절에서는 결혼 관계를 제시하면서 하나님이 유다 백성과 맺은 언약 관계를 시사한다. 한편, 미처 결혼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남편을 잃었다는 것은 그만큼 애절한 슬픔을 더해준다. 이로써 현실적인 메뚜기 재앙과 이후에 찾아올 여호와의 날의 심각성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보여준다.

성 경: [욜1:9]

본절에서부터는 슬퍼해야 할 이유들을 열거하고 있다.

(주); 소제와 전제가...끊어졌고 - '끊어졌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크라트'(*)는 과거형이긴 하지만, 장래의 일을 지적하는 예언적 과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본서는 전체가 완전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Young). 모세 율법에 의하면, 소제와 전제는 매일 번제와 함께 드려졌다(출 29:38-42;레 2장;6:14-18;9:16,17;23:18,37;민 15:5;28:3-8). 이같이 매일 드리는 제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엘 당시 여러 제사들이 형식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호 6:6;암 4:4,5;미 6:6,7), 형식적인 종교인들에게 파격적인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제사마저 드릴 수 없게 되리라는 선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Patterson)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성 경: [욜1:10]

선지자는 자신의 논지를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장차 임할 재앙의 결과를 예언한다.

(주);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 '밭'(*, 아다마)과 '토지'(*, 사데)는 각각 농경지와 목축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땅이 생산력을 잃게 됨을 의미한다.

(주);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 히브리어 원문에는 문장 초두에 '키'(*)라는 접속사가 삽입되어 앞 문장을 부연 설명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곡식', '새 포도주', '기름'등은 하나님의 은혜로 간주되곤 하였다(2:19;민 18:12;신 7:13;11:14;28:51;렘 31:12;학 1:11). 그러나 이러한 은혜로운 복들이 거두어진다는 것이며,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성 경: [욜1:11]

(주); 농부들아...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아...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 본절은 앞에서 이미 언급된 내용을 보다 구체적인 대상, 즉 '농부들'과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언급하여 듣는 이들로 하여금 보다 현실감을 더해준다.

성 경: [욜1:12]

(주); 포도나무가 시들었고...말랐으며...다 시들었으니 - 이미 앞에서(7절) 언급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덧붙여 모든 나무를 언급하고, 시들고 말랐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심판에 대한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주);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 '이러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는 결론을 강조하는 접속사로, 앞에서 언급된 현상들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기쁨을 완전히 상실하게 됨을 의미한다.

성 경: [욜1:13]

(주);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 요엘은 특별히 제사장 계층에게 간청하면서 일단락을 내린다. 그는 앞서(8,9절) 제사장들이 슬퍼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언급하였고, 이제는 그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본절의 행위는 마음속의 슬픔을 나타내는 행위로 그 사태의 심각성과 절박성을 강조한다(에 4:1-4).

(주);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 이는 모두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요엘은 '내 하나님'(*, 엘로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냈다. 본절 하반절에서는 '너희 하나님'(*, 엘로헤이켐)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하여 제사장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이 하나님과 긴밀한 유대 관계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성 경: [욜1:14]

(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 금식은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며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표시이다(삿 20:26;삼하 7:6;12:16;왕상 21:27). 또한 율법에 의하면 금식하는 날이 대속죄일 하루뿐이지만(레 16:29), 특별한 경우에는 전국가적으로 금식이 선포되기도 했다(느 9:1-3;렘 36:9). 또한 성회를 선포하라는 것은 이처럼 시급한 상황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모두가 동참해야 할 일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 대상은 지도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포함된다.

성 경: [욜1:15]

(주);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 '여호와의 날'은 고통스러운 심판이 찾아올 날을 가리킨다(Young). 메뚜기 재앙을 언급하다가 본문에 이르러서는 종말론적인 여호와의 날을 언급한다. 한편 '여호와의 날'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8-31의 주석을 참조하라. 이 날은 유다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심판의 종말이 임하는 날로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주);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케쇼드 미솨다이'(*)의 문자적 의미는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같이'이다. 그 멸망이 불가항력의 존재자에게서 오는 불가항력적 힘이라는 뜻이다.

성 경: [욜1:16]

(주); 식물이 우리 목전에...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 '식물'(*, 오켈)은 10절에서 언급된 대로 곡식, 새 포도주, 기름 등 주요한 음식물을 가리킨다. '기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므하'(*)가 그윽하게 우러나오는 내적인 기쁨을 의미한다면(신 12:7;시 21:1;32:11), '즐거움'의 히브리어 '길'(*)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쁨을 가리킨다(욥 3:22). 즉 현실적으로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영적으로 위협받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절기를 가질 수 없으므로 어떠한 영적인 기쁨이나 즐거움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 경: [욜1:17]

(주);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 '씨'라고 번역된 '페루도트'(*), '(그들의) 흙덩이'라고 번역된 '메그레포테이헴'(*), '썩어'로 번역된 '아바쉬'(*)는 모두 hapax legnomenon(맛소라 본문 본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다. '페루도트'는 '딸기류의 열매', '조약돌'등을 가리키는 아람어나 '씨', '곡물'등의 의미를 가진 시리아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R.B.Dillard).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분자', '원자'등을 의미한다(D.Weinstein). 또한 '메그레포테이헴'은 '삽'(shovel)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라비아어와 아람어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흙덩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씨가 땅 밑에서부터 아예 완전히 말라버려서 식물이 자라날 근거조차 사라진 심각한 기근 상태를 의미한다.

성 경: [욜1:18]

(주); 생축이 탄식하고...이는 꼴이 없음이라 - '생축'(cattle, NIV)이라고 번역된 '브헤마'(*)는 일반 짐승(beast, animal)을 가리키기도 한다(KJV, NASB, RSV, JB). 따라서 본절은 목초지가 황폐되어 짐승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다. 짐승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바울 서신에서도 나타나는데, 인간들의 범죄로 인한 악영향은 온갖 피조물에게까지 미치기 마련이다(롬 8:19-22).

성 경: [욜1:20]

(주);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 앞 구절과 대조적으로 '들짐승'이 대두되어 그들도 자연적 본능에 의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의미이다(욥 38:41;시 104:21;렘 14:6). 이처럼 심각한 기근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물론 땅과 식물, 그것을 삶의 기반으로 살아가는 모든 들짐승들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 경: [욜2:1]

(주);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파르'(*)는 흔히 양각 나팔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쟁 중에 불리우거나(수 6:4;삼상 13:3) 절기를 알리기 위해 불리웠다(레 25:9). 또한 왕의 등극을 알리기 위해 불기도 했다(왕상 1:34). 여기서는 절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렘 4:5;6:1;겔 33:2-4;호 5:8). 그러므로 선지자는 파수꾼으로 묘사되곤 하였다(사 21:11-12;렘 6:17;겔 3:17;미 7:4). 그리고 '불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크우'(*)는 '호각을 불어'라고 번역된 '하리우'(*)와 마찬가지로 명령형이다. 이런 명령을 받는 사람은 대개 제사장들이었다(민 10:1,2,9 참조). 한편, '성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르 카데쉬'(*)는 '시온'(*, 치온)을 가리키는 동의어로(삼하 5:7;시 9:11), 시온 산은 다윗 시대에 법궤를 안치하였던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사장이 부는 나팔이나 호각은 하나님의 엄위로우심을 나타낸다.

(주);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 '여호와의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 아도나이'(*)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스러운 날이며 구원과 승리의 날로 인식되었다(암 5:18).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날이 오면 하늘의 군대가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도와주며 옹호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요엘은 도리어 이 날을 참혹한 심판의 날로 선포한다(Kline).

성 경: [욜2:2]

(주);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 직접적으로는 많은 메뚜기떼가 하늘을 덮어버려 햇빛을 가릴 지경이 되어버린 현상을 묘사하지만(출 10:15),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날에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을 보여준다.

(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 이 구절 역시 메뚜기떼의 모습을 묘사한다. '새벽 빛'은 메뚜기떼의 날개에 반사된 빛을 묘사하거나 새벽 여명이 온 세상을 덮은 것처럼 메뚜기떼가 산 위에 덮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메뚜기 재앙의 현상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고도 신속하게 임하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 경: [욜2:3]

(주);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피한 자가 없도다 - 본절은 일차적으로 가뭄과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발생되는 현상을 그리고 있다(Feinberg). 메뚜기떼와 가뭄이 불처럼 휩쓸고 가는 바람에(1:19)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황폐해졌다. 또한 장차 있게 될 적들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유다 땅이 황폐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atterson).

성 경: [욜2:4]

(주);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 이는 마치 진격하는 군대와도 같은 메뚜기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 머리는 말과 같고 뛰는 것은 기병과 같다는 것이다(욥 39:19,20;계 9:7). 요엘이 굳이 메뚜기의 이 같은 점을 언급하는 까닭은, 갑자기 임하는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성 경: [욜2:5]

(주); 그들의 산꼭대기에서...싸우는 것 같으니 - 본절도 메뚜기떼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데, 군대가 진군하는 모습처럼 아주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처럼 메뚜기떼를 군대의 모습으로 비유하는 의도는, 메뚜기떼의 참혹한 공격을 잘 훈련된 군대의 무자비함과 대조시키기 위함이다. 이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메뚜기떼로 인한 재앙과 장차 예견되는 이방 군대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대두시켜 독자의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한다(Patterson).

성 경: [욜2:6]

(주);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 '송구하여 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힐루'(*)는 몸서리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기킨다(사 13:8).

(주);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 이 구절은 나 2:10에서도 언급되는 것으로 번역하기가 까다롭다. '하얘졌도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파루르'(*)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대두된다. 70인역(LXX)에서는 이를 '파루르'(*, 항아리)로 읽고 '모든 얼굴이 검게 그슬린 항아리 같다'고 번역하였고, KJV도 이를 '모든 얼굴이 검게 되리라'(all faces shall gather blackness)고 번역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의 어근을 '파아르'(*, brightness)로 보고 '하얘지다'(gather brightness, recall brightness), '상기되다'(grow crison)등으로 번역하여, 본 구절을 '얼굴이 창백해지다'(become pale)는 의미로 이해한다(R.B.Dillard, Driver). 이 두 견해 중 문맥상 개역 성경과 많은 영역본들(NIV, NASB, RSV)이 따른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성 경: [욜2:7]

메뚜기떼를 군사에 비유해서 설명하면서 장차 도래할 이방의 침입과 여호와의 날에 닥칠 심판을 경고한다.

(주); 더위잡고 오르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루춘'(*)은 '돌격하다'(charge, NIV, RSV, NEB), '진격하다'(press forward, JB)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루츠'(*)의 단순 미완료형(Qal, Impf.)으로 매우 민첩하고도 대담하게 공격하되 계속적으로 공격하는 불굴의 모습을 묘사한다(Deane). 한편, 개역 성경에 나오는 '더위잡고'는 의역으로 히브리어 원문에는 없다.

성 경: [욜2:8]

(주); 피차에 부딪히지...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 본절은 일사 불란하고도 도무지 저항할 수 없는 메뚜기떼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피차에'라고 번역된 '이쉬'(*)나 '각기'라고 번역된 '게베르'(*)는 모두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그 어근은 '강하다', '힘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BDB). 이런 표현은 메뚜기떼의 일사 불란한 모습이 도무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력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성 경: [욜2:9]

(주);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창으로 들어가니 - 그들의 용맹과 신속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도성 곳곳을 이리저리 활보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Patterson). 이는 견고한 성읍은 적들을 방어하기에 충분하고 안식과 평안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성 경: [욜2:10]

(주);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 메뚜기의 공격이 갑자기 천재지변으로 표현된다. 이전의 비평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본서의 저작권을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는 후기의 편집자와 구분하였지만, 최근에는 본서의 통일성이 인식되고 있다(R.B.Dillard). 제롬(Jerome)은 메뚜기떼가 실제로 이런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는 없더라도 사람들이 그 재앙을 보고 하늘의 발광체가 빛을 잃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매우 과장된 표현으로 이해한다(Keil, Delitzsch, W.J.Deane, Calvin). 요엘이 이 같은 과장법을 사용한 것은 그 대상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인 까닭에 심각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Calvin). 한편, 현상 세계가 진동하는 모습은 성경에 자주 언급되었으며(삿 5:4,5;삼하 22:8;시 18:7;사 13:13;암 8:8;나 1:5), 천계의 발광체가 어두워지는 현상이나, 지진 등은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자주 언급되기도 하였다(31절;사 13:9,10;34:4;겔 32:7;암 8:9).

성 경: [욜2:11]

(주);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 여기서의 '소리'(*, 콜로)는 천둥 같은 것을 의미한다(출 9:29,33;시 18:13;77:17,18). 마치 여호와께서 군대 장관이 되어 하늘의 군대(7-9절)의 선두에 서서 호령하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주); 그 진은 심히 크고...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접속사 '키'(*)가 각 구절의 앞에 나와 있어서 여호와의 군대가 등장하는 모습이 크고 두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 경: [욜2:12]

(주); 여호와의 말씀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움 아도나이'(*)는 선지적 예언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군대를 묘사하고 나서 민족적 애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오는 것으로 내용상 하나의 전환점이 되며, 독자들에게 이런 변화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R.B.Dillard).

(주); 너희는 이제라도...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제라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감아타'(*)가 문장 맨 앞에 위치해 있어서 매우 강조되어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기회가 남아있으며, 돌이키기만 한다면 희생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성 경: [욜2:13]

(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 유대인들에게 옷을 찢는 행위는 내면적인 큰 슬픔을 겉으로 표현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지만(창 37:29-35;대하 34:27), 진정한 슬픔을 표현하기보다는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그러므로 요엘은 의례적인 행사로서의 회개가 아니라 마음의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음을 찢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르우 리바브켐'(*)은 철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하며,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갖는다(신 10:16;30:6;렘 9:25).

(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하나님 여호와께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슈부엘 아도나이'(*)는 12절의 '내게로 돌아오라'(*, 슈부 아다)와 병행 구절을 이루는 것으로 여기서 사용된 '...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이 '아드'보다는 약한 표현으로 앞에 것보다(12절) 돌아오라는 점에 강조를 두고,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올 수 있는 근거를 여호와의 은혜로우신 성품에 둔다.

성 경: [욜2:14]

(주);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 본절은 회개로 인한 결과를 제시한다. 땅의 모든 소출이 가뭄과 메뚜기 재앙으로 끊어졌지만,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면 땅이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성 경: [욜2:15]

(주);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 '너희는...불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크우'(*)는 2인칭 복수 명령형으로 여기서는 종교 직분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주);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 1:14을 그대로 반복한 말이다. '금식일'을 '거룩한'으로 수식하는 의도는 거룩한 목적으로 정한 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 경: [욜2:16]

(주);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 '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할'(*)은 조직된 회중이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모임을 가리킨다(BDB, R.B.Dillard). 여기서 거룩케 한다는 것은 앞에서와는 달리 정결 의식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Calvin).

성 경: [욜2:17]

(주);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 '낭실'이라 번역된 '하울람'(*)은 성전의 동쪽 출입구를 가리키는데, '앞에 있다'는 의미를 가진 '울'(*)에서 온 말로 성소 앞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왕상 6:3). '단'은 성전의 뜰에 위치한 번제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낭실과 단 사이'는 '제사장의 뜰'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해당된다. 이곳은 주로 제사장들의 기도 처소로 이용되었다(대하 8:12;겔 8:16). 그렇다면, 그 장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지성소와 백성들이 모인 곳의 중간 지점을 말한다. 이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Calvin).

(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말하게 하겠나이까 - 본 구절은 제사장들의 주임무가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둔다(Patterson). 이로써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풍요로운 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성 경: [욜2:18]

(주);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 '그 때에...중심이 뜨거우시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카네'(*)의 '예카니'(*)는 '열심내다'(be zealous, KJV, NIV, RSV, JB) 혹은 '질투하다'(jealous, NASB, NEB)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열심'이나 '질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는 것이다(슥 1:14). 또한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어떤 번역본들처럼(RSV, NEB) 과거형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예언적 과거로 본다면, 미래의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KJV, NASB, NIV, Calvin).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중보적인 기도를 충실하게 한다면, 장차 이스라엘의 땅과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드러나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성 경: [욜2:19]

(주); 여호와께서...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 '곡식', '새 포도주', '기름'등은 함께 등장하곤 한다(2절;1:10). 특별히 여기서는 세 단어에 모두 정관사가 붙어 있다. 따라서 앞에서 소멸되리라고 선포되었던 바로 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1:10).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땅의 소출이 회복될 것을 강조한다.

(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 이는 제사장들의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자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더이상 이방 민족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성 경: [욜2:20]

(주); 내가 북편 군대를...쫓아내리니 - '북편 군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츠포니'(*)는 문자적으로 '북방인', '북쪽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메뚜기가 일반적으로 남쪽에 있는 아라비아 광야에서 오는 것을 보면, 단지 메뚜기 재앙만을 가리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Jerome, Keil, Delitzsch). 전후 문맥과 본장의 문장 구조에 비추어 보더라도 북방에서 내려올 이방 군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Patterson). 즉, 상징적으로는 북쪽으로부터 바람에 날려오는 메뚜기떼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북쪽에 거하는 이방 민족을 의미한다(1:6) 하겠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회개만 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북방의 군대라도 주변의 광야나 바다로 쫓아버릴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성 경: [욜2:21]

(주);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백성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고, 보호하시며 안식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뿐만 아니라 본절에서처럼 위로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땅의 황망한 상태(1:17,19)가 회복될 것을 보여준다.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다마'(*)는 단순히 땅을 가리키는 '에레츠'(*)와는 달리 경작하여 생존할 수 있는 근거지로서의 땅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땅의 회복에 대한 약속은, 사람들이 생존권을 확보하리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성 경: [욜2:22]

(주);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 하나님의 위로는 기근으로 인해 아사 상태에 빠졌던 들짐승들(1:20)에게 향한다. 들짐승들은 연한 풀을 풍성히 얻게 될 것이다. 더욱이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나무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을 보여준다(Patterson).

성 경: [욜2:23]

(주); 시온의 자녀들아 - 이는 모든 진실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시 149:2)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현될 것을 보여준다.

(주);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 '이른 비'인 '모레'(*)는 '가을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10,11월에 걸쳐 내리는데, 땅을 부드럽게 하여 경작하기 좋고 싹을 돋우기에 좋다. 또한, '늦은 비'인 '말코쉬'(*)는 '봄비'로 3,4월에 걸쳐 내린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알차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런 비가 적당한 때에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농부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신 11:13-17). 한편, 이런 비는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곤 하였다(렘 5:2).

성 경: [욜2:24]

(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 본절은 적당한 시기에 내리는 적당한 비로 인해 얻게 될 결과를 언급한다. '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예카빔'(*)은 '예케브'(*)의 복수형으로 포도주를 담는 항아리로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포도주 틀은 이 외에도 두 가지 형태가 더 있었다. 하나는 '가트'(*, 3:13;맛소라 4:13)로 도성 안에 돌이나 몰타르(mortar)로 만들어 놓고 수로와 연결시켜 놓은 것이며, 또 하나는 '푸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돌로 만든 틀이다(R.B.Dillard).

성 경: [욜2:25]

(주); 내가 전에 너희에게...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메뚜기떼는 하나님의 군대로 묘사될 수 있다(Calvin, W.J.Deane, Feinberg). 결국 본절은 그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킬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욜2:26]

(주); 너희는 먹되...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쉠'(*)은 하나님 자신을 대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단 9:18,19;암 2:7;9:12).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행 4:12;5:41;요삼 1:7), 사도 시대의 교부들도 사용하였다(Patterson).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풍요하심과 명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전에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기근이 끝나고, 하나님의 배려로 인해 풍부한 양식으로 충분한 만족을 얻게 될 것이며,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갖는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성 경: [욜2:27]

(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너희가 알 것이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위다예템키 베케레브 이스라엘 아니'(*,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음을 너희가 알 것이다)는 '내가 여호와임을 너희가 알 것이다'는 표현의 변형된 형태로, 보다 흔히 사용되었다. 이런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일련의 행동을 하신 뒤에 거의 예외없이 사용되었다(Zimmerli, Prinsloo).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은 우상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으로(사 41:23-28)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웰로-예보슈 암미 레올람) - 하나님의 약속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26절과 마찬가지로 이런 표현으로 문장을 끝낸다.

성 경: [욜2:28]

(주); 그 후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레이-켄'(*)이 문자적으로는 '이것 후에'(after this)인데, 누가는 '말세에'(*, 엔타이스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라고 번역하여 종말론적인 의미로 해석했다(행 2:17).

(주);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 요엘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는 진노를 물붓듯 부으실 것을 예언하였다(호 5:10). 그러나 요엘은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실 미래를 내다보았다(겔 36:16-38). '부어 주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쉐포크'(*)는 '솨파크'(*)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의 신을 대대적으로 퍼부어주시리라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 흔치 않은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신약 교회에 있게 될 오순절 성령 강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Calvin). 또한 이러한 표현으로 성령이 비인격적으로 마구 부어진다고 보기보다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맺어지는 풍성한 영적인 교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Keil).

(주); 너희 자녀들이...이상을 볼 것이며 - 모세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고(민 11:29), 하나님은 그 선지자들에게 꿈과 이상으로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고 말씀도 하시겠다고 하셨다(민 12:6). 하나님의 신이 선지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임하였고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백성들과 교통하셨다. 하지만,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신이 만민에게 부어지고 모든 백성이 성령의 전이 되어 직접 교통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밝힌다.

성 경: [욜2:29]

(주);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웨감'(*)은 '또 더욱이'라는 강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모든 인류가 성령을 받을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앞 문장을 다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Calvin). 그러므로 앞 구절에서 제시한 '만민'이 단지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조건이 없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남종과 여종에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하아바딤 웨알-하쉐파호트'(*)가 70인역(LXX)에서는 '나의'라는 의미의 헬라어 '무'(*)가 첨가되어 번역되었고, 누가도 이를 따르고 있다(행 2:18). 이로써 성령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한시킨다.

성 경: [욜2:30]

(주);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 본절에서는 앞에서 열거된 성령의 부어주심과는 달리 심판의 징조가 나타난다. '피와 불'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담 와에쉬'(*)는 일반적으로 심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사 9:5;겔 21:32;계 8:7). 또한, 이런 용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애굽이 당했던 재앙을 연상시킨다(출 7:17;9:24;10:21ff.;19:18).

성 경: [욜2:31]

(주); 여호와의...변하려니와 - '여호와의 날'이란 용어는 심판과 관계가 있다. 이 용어는 이스라엘과 유다뿐만 아니라 바벧론, 애굽, 에돔등 모든 이방의 민족들과 나라들에 적용되었다(사 13:6;렘 46:10;암 5:18-20;욥 1:15). 심판의 시기는 즉각적이고도 현재적이며(사 2:12-22), 미래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겔 30:2,3). '크고 두려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 웨하노라'(*)는 11절에서도 '여호와의 날'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해와 달이 빛을 잃는 현상에 대해 제롬(Jerome)은 해와 달이 이방 종교의 숭배의 대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방 우상의 멸망을 선포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종말에 나타날 현상으로 종종 사용되었고(사 13:10;34:4;마 24:29;막 13:24;눅 21:25;계 6:12), 본절에서도 여호와의 날에 나타날 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욜2:32]

(주);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께 다가가서 간절히 부르는 것(창 4:26;12:8)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시 99:6;145:18;롬 10:13). 또한 이는 여호와를 찾는 것을 말하며(슥 13:9), 이런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구원이 보장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롬 10:13).

(주);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 본 구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심각한 재앙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음을 전제한다. '피할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펠레타'(*)는 '구원얻은 자'(those who has delivered, KJV, NIV, NASB)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방의 엄청난 위협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얼핏 보기에 사라진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남은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Calvin).

(주);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남은 자 중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바세리딤'(*)이 70인역(LXX)에서는 '카이 유앙켈리조메노이'(*, 그리고 그 남은 자들 중에서)라고 번역하여 맛소라 본문을 지지한다. '남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리드'(*)는 '탈출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사라드'(*)에서 온 말로, 앞 구절에서 언급된 '피할 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중요하게 두각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자가 매우 정선된 소수의 무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욜3:1]

2장에서는 믿는 자들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의 은혜를 언급한 반면, 본장은 심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심판의 대상인 이스라엘의 대적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다가, 최종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대적자로 규정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무엇보다도 이런 심판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제하고 있다.

(주); 그 날 곧...그 때에 -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본절이 '키 히네'(*)로 시작된다. 여기서 '키'는 접속사로 앞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히네'는 '보라'는 뜻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킨다. 본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연속적으로 '바야밈 하헤마 우바에트 하히'(*)라고 되어 있어서 때를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이 매우 임박해 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욜3:2]

(주); 내가 만국을 모아...그들을 국문하리니 - '여호사밧 골짜기'는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압, 암몬, 에돔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로(대하 20:26)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국문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니쉐파테티'(*)는 '심판하다', '다스리다', '결정하다'등의 뜻을 가진 '솨파트'(*)에서 온 말로 '논쟁을 벌이다'(NIV, RSV, NASB, NEB), '겨루다'(Calvin)등의 의미가 있다. 특별히 '여호와는 심판하신다'는 의미를 가진 '여호사밧 골짜기'와 함께 사용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논쟁은 심판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욜3:3]

(주); 또 제비뽑아...바꾸어 마셨음이니라 -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이방 나라를 심판하기 위해 이방 나라의 죄악상을 열거한다. 본절은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한 인신 매매의 실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로마의 침공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팔려갔다. 로마의 침략자들은 유대인 중에서 크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남겨두고, 그 나머지는 애굽의 광산으로 보내거나 노예로 팔아넘긴 것이다(Josephus).

성 경: [욜3:4]

(주);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 '두로', '시돈', '블레셋'등은 베니게 지방의 온 땅을 대표하는 지명들로 고대 세계에 노예 상인이 많았던 곳이다(Patterson). 어떤 죄악보다도 사람을 상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심각한 죄악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주);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 '속속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 메헤라'(*)는 둘 다 부사이며, '빠르고도 급히'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자주 함께 사용된다(시 31:2;37:2;사 58:8).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속히 건지시는 반면(시 31:2), 악인은 속히 망하게 하신다(수 23:16).

성 경: [욜3:5]

(주); 곧 너희가...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 여호람 왕(B.C. 853-841년) 당시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약탈한 사건으로 보인다(대하 21:16-18). 여기서 '내 은과 금'과 '나의 진기한 보물'은 성전 기물을 포함하여(왕상 14:26;왕하 14:14)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재물을 가리킨다(호 2:8;학 2:8).

성 경: [욜3:6]

(주);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 두로인들이 주로 유대인들을 노예로 팔았는데, 그들은 원래 솔로몬 왕과 약조를 맺고, 상대국의 백성들을 노예로 사고 팔지 않기로 하였다(왕상 5:1-12). 그러나 두로인들은 후에 이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헬라 족속에게 노예로 팔아 넘기는 만행을 저질렀다(암 1:6).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 상태로 머물러 있어야 했고(겔 28:20-24), 헬라에 팔려간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부터 격리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헬라 족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네이 하예와님'(*, 야완의 후손)은 '야벱의 아들 야완'(*)이라는 단어에서 왔고(창 10:2;대상 1:5,7), 유대인들에게 일찍부터 알려졌던 족속이다(사 66:19;겔 27:13,19).

성 경: [욜3:7]

(주); 보라 내가...일으켜 나오게 하고 -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을 헬라 족속의 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헬라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한 곳'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콤 아쉐르-솨마'(* ... )는 '...한곳 어디든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창 20:13). 따라서 이사야의 표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서남북과 원방 심지어 땅 끝에 가 있더라도 돌아올 것을 말한다(사 43:5,6;49:12;렘 23:8).

(주);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 이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불신자들이 제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권세를 부리고, 이에 만족하는 삶을 영위한다고 해도 그들의 죄악상은 결코 용서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돈 사람들은 B.C. 345년에는 바벧론의 아닥사스다 3세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고, 두로인들은 B.C. 332년에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

성 경: [욜3:8]

(주); 너희 자녀를...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 이전에는 유대인들이 인신 매매의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르었지만, 장차 입장이 전도되어 그들이 그 대적들을 주관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충분한 보복이 시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스바'는 오늘날의 예멘 지역을 가리키며,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에 위치한다. 스바 사람들은 무역을 주로 하였다(겔 27:22).

성 경: [욜3:9]

(주);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 '광포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르우'(*)는 '부르다', '선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카라'(*)의 명령형이다. '이렇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조트'(*)는 지시 대명사로, 앞으로 말할 내용을 강하게 두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데슈 밀르하마'(*)는 문자적으로는 '전쟁을 거룩하게 하라'는 의미이며, 이런 표현은 앞서 이스라엘에게 '금식을 정하라'(*, 카데슈 촘)고 명한 것(1:14;2:15,16)과 표현상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방인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단지 현상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하나님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성전(聖戰) 사상(렘 6:4;22:7;51:27,28)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성 경: [욜3:10]

(주); 너희는 보습을 쳐서...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 본절의 표현은 호전성을 가진 자들이 취하는 태도로 모든 생산 활동을 포기하고, 파괴적인 일을 도모하는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라고 고무시킨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전쟁 준비가 얼마나 무모하고 쓸모없는 것인지 보여준다. 이방인들에게서 호전성이 팽배해질수록 여호와의 심판은 가까이 온다는 사실을 반증할 뿐이다. 즉, 이방 민족들은 그들의 성향을 따라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전쟁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성 경: [욜3:11]

(주);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 '모일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슈'(*)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는 단어(hapax legnomenon)로 아랍 어근에 따르면 '도우러 오라'는 뜻을 갖지만,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70인역, 탈굼역, 시리아역본 등에서는 이 단어에 '모으다'(assemble)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KJV도 이를 따른다. 이런 해석은 아마도 다음 구절에 나오는 '그들로 모이게 하라'(let them gather)는 의미의 히브리어 '니케바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R.B. Dillard). 한편, 적지 않은 학자들이 '우슈'를 '서두른다'는 의미를 가진 '후슈'(*)로 읽기도 한다(BDB). 이를 따라 NIV나 JB는 '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보우'(*)와 함께 '빨리 오라'(come quickly)로 번역하였고, NASB나 RSV에서는 '서둘러서 와라'(HASTEN AND COME)로 번역하였다.

(주);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 '주의 용사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레이카'(*)는 여호와의 날에 등장하게 될 '거룩한 자', 혹은 '천군 천사'(시 68:17;슥 14:5)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가 열국과 대적할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종말론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가 마지막 날에 사탄의 세력을 소멸하시기 위해 오실 때 거느리실 천군 천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살후 1:7).

성 경: [욜3:12]

(주); 열국은...다 심판하리로다 - '여호사밧'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 골짜기에서 주님은 심판주로 계신다. 심판을 위해 주께서 앉아 있는 모습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된다(시 9:8,9;122:5;잠 20:8;사 16:5;28:6;마 19:28;행 23:3). 그 골짜기에 열국들이 모이고, 주의 천군 천사가 모이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전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모든 나라를 심판하시려는 것이다.

성 경: [욜3:13]

(주); 너희는 낫을 쓰라...포도주 독이 넘치니 - 본절은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추수의 광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자주 결정적인 심판을 상징하곤 한다(사 17:5;렘 51:33;호 2:9;암 8:1,2;9:9;나 3:12;마 13:30,39;계 14:15,18). 여기에서도 곡식이 잘 익고, 포도주 독이 넘치는 것처럼 악이 가득하여 이를 끝장내버릴 심판의 추수 때가 다다랐다는 것이다.

성 경: [욜3:14]

(주); 사람이 많음이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모님'(*)이 개역 성경과는 달리 히브리어 원문에는 연이어 두 번 반복되었다. 그만큼 심판받을 대상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주); 판결 골짜기에 - 이 말은 마치 후렴구 처럼 두 구절 모두의 끝에 위치하여 나온다. 이로써 심판의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판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하루츠'(*)의 어근 '하라츠'(*)는 '자르다', '예리하다', '결단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결정적이고 예리한 심판이 시행될 것을 보여준다. 칼빈(Calvin)에 의하면, 이 단어는 예리한 타작기를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에(암 1:3;사 41:15) '타작 골짜기'라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심판이 불경건한 자들을 향해 매우 단호하고도 날카로울 것이다. 결국 매우 많은 사람들이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 자명하다.

성 경: [욜3:15]

(주); 해와 달이...그 빛을 거두도다 - 2:10에서 설명한 대로, 종말에 일어날 자연 현상을 표현한다.

성 경: [욜3:16]

(주); 나 여호와가...산성이 되리로다 - 여호와가 부르짖으시는 모습은 심판받을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질 은혜로운 처사로 돋보인다. 여기서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나라를 상징한다(사 35:8,9;60:21).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인해 심판의 대상에게는 경악할 만한 징벌이 나타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이 되고 완전한 평강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 경: [욜3:17]

(주); 그런즉 너희가...통행하지 못하리로다 -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완전성을 묘사한다. 불완전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고, 불경건하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그 영원한 복에 결코 참예하지 못한다. 이는 그 나라의 거룩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일체의 오염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이다.

성 경: [욜3:18]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배푸실 은혜를 시적인 문체로 표현한다.

(주); 그 날에...떨어뜨릴 것이며 - '그 날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욤 하후'(*)는 연대기적 도입형식(chronological introductory formula)으로 2:28의 '그 후에'와 1절의 '그 날'과 연결된다(R.B.Dillard). 또한 '단 포도주'의 결핍 상태(1:5)가 끝나고 산들이 단 포도주를 풍성하게 생산할 모습을 통해 완전히 회복된 땅을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장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질 풍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낸다.

(주); 작은 산들이...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 본절은 전체적으로 무한하게 생명이 흘러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사 30:25,26;겔 34:13,14;47:1,2;슥 14:8;계 22:1,2). '싯딤 골짜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로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1)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싯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음행하며 영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장소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민 25장;수 3:1, Patterson). (2)'싯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쉬팀'(*)이 아카시아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로 그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척박한 땅을 가리키거나(Keil, Henderson), 이 나무가 성막 건축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성막과 연관된 지명이라는 것이다(Patterson). 이 견해를 따라 NIV, JB는 '아카시아 골짜기'(the valley of acacias)라고 번역하였다. (3)갈릴리 호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사해로 들어가기 직전에 통과하는 기드론 시내의 계곡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이 가운데 (2)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다. 아카시아나무만 자랄 수 있는 메마른 땅이 비옥한 땅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땅이 비옥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잘 보여준다.

성 경: [욜3:19]

(주);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어 왔고, 애굽은 아직도 그 명맥을 꾸준이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굽과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세상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악의 세력은 결국 진멸될 것이다.

성 경: [욜3:20]

(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유다와 예루살렘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장차 그리스도로 인해 도래할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을 의미한다.

성 경: [욜3:21]

(주); 내가 전에는...이제는 갚아 주리니 - '갚아 주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케이티'(*)는 '복수하다', '원수갚다'등의 의미를 가진 '나캄'(*)에서 온 것이거나 '깨끗하게 하다'의 의미를 가진 '나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문맥적으로 보면, 이 단어는 개역 성경이나 여러 영역본의 번역처럼 전자의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계 6:10,11). 무엇보다 하나님은 구속자가 되셔서 백성들을 죄의 상태로부터 구하시고 구속으로 인한 복을 누리게 하시리라는 약속이다(Calvin).

(주);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 - '거함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켄'(*)은 칼(Qal) 동사 능동 분사형으로 현재로 번역할 수도 있고(KJV, NIV, RSV, NASB), 미래로 번역할 수도 있다(NEB, JB). 이처럼 현재와 미래로 번역이 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현재를 포함한 미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ever lasting present)에 그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사실, 곧 하나님이 임마누엘 되신다는 사실을 내다보는 것이다(사 7:14). 본 구절은 백성과 맺은 언약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수많은 죄로 인하여 파멸에 빠진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Calvin). 이러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임재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이루어졌다(마 1:23;요 1:14). 그리고 마지막 날에 모든 원수들이 진멸되고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게 되는(옵 1:21;계 21:24-27)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계 21:2)에서 충만하게 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