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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역대상

역대상 주석

성 경: [대상1:1]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주); 아담 - 아담(Adam)은 '흙'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다마'(*)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이름으로서 그 의미는 '사람'이다(창 1:27). 그런데 본 족보는 유다 왕국의 위상과 기원을 밝히기 위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지 아니하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유다 민족의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과 모든 종족은 유일한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이 보편적인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Payne, TheInterpreter's Bible).

(주); 셋 - 셋(Seth)은 '택함을 받은 자', '대신 줌'이란 뜻의 이름이다. 그는 가인에게 살해당한 아벨 대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가정에 주신 선물이었다(창 4:25). 한편 본 족보에서 아담의 맏아들 가인과 차자(次子) 아벨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인 듯하다. 즉, 아벨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이며, 가인은 불경건한 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라 추정된다(창 4:1-12).

(주); 에노스 - 에노스(Enosh)는 '약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특기할 사실은 그의 시대에 여호와께 대한 최초의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창 4:26).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아담의 타락(창 3장) 및 가인의 범죄 이후 죄악에 대하여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는 죄의 유혹을 이기며 살 수 없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런데 이같은 점은 날이 갈수록 죄악이 관영(貫盈)해지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성 경: [대상1:2]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주); 마할랄렐 - 아담의 5대손으로 마할랄렐(Mahalalel)이란 뜻은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이는 곧 에노스 때부터 시작된 여호와 신앙이 후손들에게 잘 계승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성 경: [대상1:3]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주); 에녹 - 아담의 7대손으로 이름의 뜻은 '가르치는 자', '시작하는 자'이다. 그런데 에녹(Enoch)은 엘리야(왕하 2:11)와 더불어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구약의 2대 인물이다. 즉, 그는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창5:24).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복되며 소망이 있는 것인지를 잘 증거해 준다. 실상 주를 경외하는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이 세상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 곁에 거하며 영생(永生)을 누리게 될 것이다(계 21, 22장).

(주); 므두셀라 - 에녹의 아들로서 인류 역사상 최장수한 인물이다(창 5:27). 그의 이름의 뜻은 '투창하는 사람'이다.

(주); 라멕 - '강한 사람'이란 뜻인 라멕(Lamech)은 노아의 아버지이다. 그의 이름의 뜻을 통해 볼 때, 그는 부패한 사회와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로이 일하며 고생스럽게 살아야 했던 것 같다.

성 경: [대상1:4]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주); 노아 - 노아(Noah)란 이름의 뜻은 '안위'(安慰)이다. 그는 하나님의 홍수 심판 가운데서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그 사건(창 6-8장)은 비록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요 3:16, 17;롬 1:17).

(주); 셈, 함과 야벳 - 노아의 세 아들들이자 홍수 이후의 시조(始祖)들이다. 이들로 말미암아 인류는 다시금 급속히 확산되었으니 곧 5절 이하에 언급된 대로이다. 한편 이상과 같은 1-4절의 족보는 창 5:1-32의 요약으로서 주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목적과 연관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본서 저자가 기록한 사람들의 관계나 그들의 생애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않고 다만 이름들만을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당시의 독자들이 창세기의 역사에 매우 친숙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기 때문일 것이다(Curtis).

성 경: [대상1:5]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야벳의 후손]

(주); 야벳의 아들 - "하나님께서 넓고 크게 만드시리라"는 이름의 뜻대로(창 9:27) 야벳(Japheth)의 자손들은 크게 번창하여 유럽과 북부 아시아의 민족(아리안족)을 형성하였다. 한편 5-23절의 족보는 창 10:2-29에 기록된 명단에서 뽑은 것이니 해당 부분을 참조하라.

(주); 고멜 - 고멜(Gomer)은 러시아 평원(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고대 키메르 족속(Cim-merian)의 조상이다. 이들은 후에 고대 우라투(오늘날의 터키 동부)로 이주하여 앗수르와 근접하여 살았다.

(주); 마곡 - 근동 최북방의 카프카츠 지방에 정착한 스구디아 족속(Scythians)의 조상이다. 계시록에서는 세상 마지막 날 사단에게 속해 성도들을 대적할 땅의 백성이 바로 이 마곡(Magog)의 후예들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계 20:7-9).

(주); 마대 - 이란 북서부에 거주하던 메대인(Median)들의 조상이다(왕하 17:6;사13:17). 훗날 이들 민족은 바사(Persia) 제국에 흡수되었다.

(주); 두발과 메섹 - 앗수르 비문에 의하면, 이들은 터어키 고원에 거주했던 8세기경의 다발리(Tabali)와 무스키(Mushki)의 조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 후 두발(Tubal)의 후손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메섹(Meshech)은 두발의 후손들과 인접하여 흑해 남서 산간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런데 두발과 동맹 관계를 맺기도 한 메섹 자손들은 노예와 놋그릇 장사로 유명했다(겔 27:13).

(주); 디라스 - 해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디라스(Tiras)의 후예들은 에게해 연안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펠라기스족(Pelagian)의 일파로 추정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트라키아인(Thracian)의 조상으로도 추정한다. 한편 이상에 언급된 야벳의 아들들을 도표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후손 | 분류 정착지 형성족속 특징 성구

고 벨 갑바도 갑바도기아 겔38:6

기아 의 원주민

마 곡 카프카츠 스구디아인 겔38:2;계20:8-10

메 대 메대 메대인 왕하17:6;사13:17

야 완 지중해 헬라인 통상,교역이 겔27:13;단8:21;

연안 (이오디아인) 활발함 을3:6

두 발 흑해와 카스 게오르기 철공 기술에 사66:19;겔32:26

피해 사이 안족 능함

메 색 흑해 남서 게오르기 노예와 놋그릇 겔27:13

안족 장사로 유명

디라스 에게해 연안 펠라기스족 해적민으로

악명 높음

성 경: [대상1:6]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야벳의 후손]

(주); 아스그나스 - 렘 51:27에 의하면, 아스그나스(Ashkenaz) 족속은 아라랏과 민니와 동맹하여 앗수르를 대항하여 싸웠음을 알 수 있다. 이 아스그나스인들은 예레미야 시대에 아라랏 지역(우라르트 나라)의 우르미야(Urmia) 호수 근방에 정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들의 이름은 후에 '야만인'을 뜻하게 되었고 이들은 오늘날 게르만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주); 디밧 - '디밧'(*)은 리밧(*)의 오기인 듯하다(창 10:3). 그는리페아 민족의 조상인데 후대의 켈트족 역시 그에게서 비롯된 듯하다(Knobel).

(주); 도갈마 - 에스겔서의 기록에 따르면, 도갈마(Togarmah)의 후손들은 말과 전마(戰馬)와 노새를 무역한 막강한 민족으로 성장했으며(겔 27:14), 고멜, 바사, 구스와 함께 마곡의 동맹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겔 38:6). 이들은 팔레스틴 북쪽 흑해 동남쪽에 거주하였는데 곧 오늘날 시리아 국경 부근의 터어키 지방이다.

성 경: [대상1: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야벳의 후손]

(주); 엘리사 -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뜻인 엘리사(Elishah)의 후손들은 주로 자색(紫色) 물감을 두로에 수출하였다(겔 27:7). 이들은 그리이스 남부의 섬들이나 연안 지방에 거주하였는데 과거 헬라인들의 조상이다(창 10:4, 5).

(주); 다시스 - 다시스(Tarshish)의 후손들은 엘리사의 후손들과 함께 그리이스 남부 지중해의 섬 또는 그 연안에 거주하였다.

(주); 깃딤 - 깃딤(Kittim)의 후손들은 키프러스 섬과 지중해 연안에 살면서 곧 구브로족(Cyprian)을 형성하였다.

(주); 도다님 - 도다님(Dodanim)의 후손들은 에게해의 도도 섬에 정착하여 그곳 원주민을 이루었다. 한편 맛소라 사본(MT)에는 '도다님'이 '로다님'(Rodani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둘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성 경: [대상1:8]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함의 아들 - 함의 네 아들들은 주로 이집트 및 에디오피아, 서남 아시아로 진출하였다. 오늘날을 기준하여 보면 그곳은 아프리카를 중심한 흑인종(Negroid) 분포 지역이다.

구스 - 구스(Cush)는 아라비아의 조상으로 애굽 남쪽의 누비아(Nubia), 일명 에디오피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미스라임 - 미스라임(Mizraim)은 오늘날 애굽인들의 조상이다(창 10:6, 13).

붓 - 그는 애굽 서쪽 지중해 연안의 리비아인(Libyans)의 조상이다.

가나안 - 여부스, 아모리, 기르가스, 히위, 알가, 신, 아르왓, 스말, 하맛 족속의조상이다. 이들 가나안의 후손들에 대해서는 14-16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이상과 같은 함의 네 자손들은 고대에는 크게 번창하여 애굽, 에디오피아 등과 같은 대국을 형성하였지만 훗날 열등국으로 전락하고 타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는 과거 노아의 저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창 9:25).

성 경: [대상1:9]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 이 구스의 다섯 아들들은 홍해 해안으로부터 남부 아라비아를 가로질러 티그리스, 유브라데 강 유역에 정착하여 여러 종족들을 형성했다(Payne). 한편 이와 관련 에덴의 두번째 강인 기혼(Gihon)이 구스의 경계지를 흐르고 있었음은 기억해 둘 만하다(창 2:13).

성 경: [대상1:10]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 처음 영걸한 자며 -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Nimrod)은 바벨론에 왕국을 건립하고 후에 앗수르까지 점령한 영걸(英傑)이었다(창 10:6-11). 그는 처음에 메소포타미아나 갈대아 남부 지역인 시날(Shinar) 땅을 점령하고 이곳에 바벨,에렉, 악갓, 갈레 등의 성읍을 세웠다. 그 후 그는 북쪽으로 계속 진출하여 니느웨, 르호보딜, 갈라, 레센 등의 큰 성읍들을 건설하였다(창 10:10-12; 미 5:6). 한편, 그의 이름 니므롯은 '대적자'란 의미를 갖고 있다. 그의 이름에서 우리는 당시 그가 하나님을 맹렬히 대적한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걸'에 해당하는 원어 '깁보르'(*)는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 또는 '강력한 권세를 지닌 자'란 뜻이다. 창10:8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1,12]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블레셋 족속은 가슬루힘에서 나왔으며 - 가슬루힘(Casluhim)은 애굽인의 조상인 미스라임의 아들이기 때문에 블레셋은 혈통상 함족에서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후에 지중해의 갑돌(크레타 섬)에서 거주하다가 팔레스틴으로 진출하여 그곳 해안 지역에 정착하였다(렘 47:4;암 9:7;창 10:14;신 2:23).

성 경: [대상1:13]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시돈 - 시돈(Sidon)의 자손들은 이스라엘 북쪽의 해안 지방에 정착하여 해상 무역을 주도하였다. 그들이 거주한 성읍의 이름 역시 '시돈'인데 시돈은 페니키아(Phoenicia)의 가장 중요한 성읍 중 하나가 되었다(삿 1:31;3:3 주석 참조).

(주); 헷 - 힛타이트(Hittites)라고도 불리는 헷 족속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 이후부터 가나안 점령시까지 계속해서 가나안 땅에 거주했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이다(창23:5;25:10;49:32). 이들은 철기 문화를 꽃피워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B.C. 1,200년경에 멸망하였다. 신 7: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4]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여부스 족속 - 본래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원주민이다. 이들은 다윗 왕 때에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동화되었다(삼하 5:6-10).

(주); 아모리 족속 - 이들은 대개 팔레스틴, 수리아, 바벨론 등지에 흩어져 살았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요단 강 동편 아르논 강 북쪽에서 살기도 하였다(민 21:13, 24-26;32:39).

(주); 기르가스 족속 - 이들의 거주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다만 이들 역시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창 15:21;신 7:1;수 3:10;24:11). 그런데 이들은 수메르의 광명의 신인 게쉬(Gesh) 신(神)을 섬긴 듯하다(Maisler). 한편 이상의 가나안 후기 원주민에 대해서는 수 9:1, 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5]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히위 족속 - 이들은 주로 시돈, 브엘세바 등지에 거주하였는데 일부는 레바논 산지와 헬몬 산에 거주하기도 하였다(삿 3:3;수 11:3).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히위 족속(Hivites)이 가나안 초기 원주민인 호리 족속(Horites, 창 36:20)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주); 알가 족속 - 수리아의 트리폴리(Tripolis) 동북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알가(Arka) 마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다. 알가는 지중해로부터 약 6.4km밖에 떨어지지않은 해안 지방이다. 이들은 B.C. 738년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점령당했다.

(주); 신 족속 - 이들이 어느 곳에 정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창 10:17). 다만 알가 근처의 센나(Senna)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성 경: [대상1:16]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함의 후손]

(주); 아르왓 족속 - 이들은 페니키아 최북단 마을인 루와드(Ruwad)란 섬에 정착하였다. 이 섬은 구브로(Cyprus) 섬 맞은 편, 수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다. 한편, 이들 출신의 사공들은 두로(Tyre)를 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겔 27:8, 11).

(주); 스말 족속 - 이들은 루와드와 트리폴리 사이의 수므라(Sumra)에 정착한 듯하다.

(주); 하맛 족속 - 다메섹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수리아(아람)의 한 성읍 하맛(Hamath)을 건설한 자들이다. 다윗은 이곳 왕도 이와 우호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삼하 8:9-12). 한편 후에 이들은 다메섹인들에게 종속되었다(렘 49:23).

성 경: [대상1:1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셈의 아들 - 이들은 인류 기원의 발상지인 서부 중앙 아시아의 민족들이 되었다.

(주); 엘람 - 엘람(Elam)의 후손들은 바사 북쪽, 티그리스 강 동쪽의 엘람에 정착했다. 이곳은 오늘날 이란의 쿠지스탄(Khuzistan) 주(州)이다.

(주); 앗수르 - 그는 강대국 앗수르(Asshur)의 조상이다. 앗수르는 B.C.2,000년경부터 이미 독립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훗날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들에게 멸망당하였다(왕하 17장).

(주); 아르박삿 - 그는 갈대아인(Chaldeans)의 조상이다. 그의 후손들은 주로 앗수르 북쪽 아라파키티스(Arrapachitis)에 거주하였다.

(주); 룻 - 중앙 터어키에 위치한 리디아인(Lydians)의 조상이다. 그런데 혹자는 아르메니아의 남방 경계에 거주했던 루브디(Lubdi) 주민이 룻(Lud)의 후예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주); 아람 - 메소포타미아 및 수리아 지역에 정착한 아람족(수리아인)의 조상이다(삼하8:5, 6;왕상 20:20, 21;암 1:5;9:7;사 7:2, 4, 5). 역사상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람족과 잦은 접촉 및 전쟁을 치루었다(16:4, 5;왕상 15:20;22:1-40;왕하 6:8;13:3-7;대하 22:5, 6;24:23, 24).

(주); 우스...메섹 - 이들은 모두 아람의 아들들이다(창 10:23). 그런데 이 중 우스(Uz)의 후손들은 에돔과 아라비아의 경계지인 우스 땅에 정착했다. 욥의 고향인 우스(욥1:1)가 바로 이곳이다.

성 경: [대상1:18]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에벨 - 에벨(Eber)은 히브리 민족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선조이다(25-27절).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히브리'(*)란 말과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의 기원을 에벨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에벨'(*)이란 이름은 '건너편', 또는 '건너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요단 강 또는 유브라데스 강 건너편에 거주했거나(Curtis) 아니면 유목민이었을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성 경: [대상1:19]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이 이름의 뜻은 '분할'(分割)이다. 이 이름은 이때에 발생한 바벨탑 사건, 곧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의 말을 혼잡하게 하여 땅을 나누신 사건(창 11:9)에서 유래하였다(Payne). 한편 벨렉(Peleg)은 그의 아우와 계보를 달리하여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주); 욕단 - 그의 자손들은 메사(Mesha)에서 스발(Sephar)에 이르기까지 남부 아라비아지역에 정착하였다. 그리하여 욕단(Joktan)은 아랍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이처럼 벨렉과 욕단의 대(代)에 이르러 셈족은 히브리 민족과 아랍 민족으로 나뉘게 되었다.

성 경: [대상1:20]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알모닷 - 욕단의 장남인 알모닷(Almodad)은 '하나님은 나의 친구'라는 뜻이다. 그는 아라비아 반도 남쪽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혹자는 예멘(Yemen)이 바로 이 알모닷이 후예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주); 셀렙 - 그의 자손들은 남부 아라비아의 살라프(Salaf) 또는 술라프(Sulaf)에 정착하였던 것 같다.

(주); 하살마뛕 - 그의 자손들은 남부 아라비아 지역 하드라마우트(Hadhramaut) 강 유역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약 320km나 뻗어있는 넓고 비옥한 땅이다. 그리고 향과 몰약의 산지(産地)로도 유명하다.

성 경: [대상1:21]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우살 - 그의 자손들은 오늘날 예멘의 수도인 산아(Sana)에 주로 정착하였다. 이곳의 철광석은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성 경: [대상1:22]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아비마엘 - 욕단의 아홉번째 아들인 아비마엘(Abimael)은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이로 보아 아비마엘 자손은 비록 아랍 일족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그들의 조상이 섬기던 하나님을 경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 스바 -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 예멘과 하드라마우트 지방인 아라비아 서남 지방에 정착하여 스바(Sheba)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곳은 아라비아에서 산이 가장 많고 땅이 매우 비옥하였다. 스바 왕국은 유향과 향료를 생산하고 무역 부국(富國)으로서도 이름을 떨쳤다(사 60:6;렘 6:20;겔 27:22). B.C. 10세기에는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예방하고(왕상 10:1-13;대하 9:1-12) 스바의 대표적인 생산품인 금, 보석, 향료 등을 이스라엘과 거래하기도 하였다.

성 경: [대상1:23]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의 후손]

(주); 오빌 - 그의 이름은 '풍부한', '비옥한'이란 뜻이다. 금 생산지로 유명한 오빌(Ophir)이란 지명(왕상 9:28;대하 8:18)이 바로 이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그의 자손들은 주로 페르시아 만의 오만(Oman)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 하윌라 - 그의 후손들은 아라비아 서쪽, 예멘의 북쪽에 정착한 듯하다. 한편 이와 관련 에덴의 첫번째 강인 비손(Pison)이 하윌라(Havilah) 온 땅을 흐르고 있었음은 기억해 둘 만하다(창 2:11).

(주); 요밥 - 요밥(Jobab)이란 이름의 뜻은 분명치 않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광야'란 뜻의 아랍어 예밥(Jebab)과 동의어로 보고 그의 자손들을 아라비아 광야에 거주하던 족속으로 추정한다(Gesenius, Kalisch).

성 경: [대상1:24-2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본문은 창 11:10-26의 요약이다. 이 구절들은 셈에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10대) 선택된 자손의 계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셈(Shem)과 아브라함(Abraham)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연상시켜 주는 인물들로서 구속사(救贖史)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인물들이다. 즉, 셈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한 종족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창 9:26), 그리고 아브라함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창 12:2;17:7) 구속사적인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Payne). 한편, 여기에 언급된 이름들은 모두 예수님의 족보에 기명(記名)되어 있다(눅 3:34-36).

성 경: [대상1:25]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주); 르우 - 이름의 뜻은 '친구', '동료'이다. 추측컨대 이는 그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자였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아브라함 혈통을 잇는 계보의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들은 대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26]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주); 나홀 - 그의 이름의 뜻은 '크게 숨쉬다'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조부(祖父)로서 29세때 데라를 낳은 후 119년을 살았다(창 11:24, 25).

(주); 데라 -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Terah)는 세 아들(아브라함, 나홀, 하란)을 낳았으며 페르시아 만 부근, 곧 유프라테스 강 저지대에 위치한 우르(Ur)에서 살았다. 데라는 이후 우르를 떠나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 북쪽으로 약 800km 가량 이주하여 하란(Haran)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다메섹(Damascus)에서 북동쪽으로 약 440km 떨어져 있었다(창 11:31).

성 경: [대상1:2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셈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주); 아브람 곧 아브라함 - '아브람'(Abram)은 '고귀한 아버지'란 뜻이며, '아브라함'(Abraham)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뜻이다. 이처럼 그의 이름이 개명된 사실은 창17:5에 설명되어 있다. 즉, 그에게 아브라함이란 이름이 새롭게 주어진 것은 그를 통하여 이루어질 만인 구원(萬人救援)에 대한 예언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 아브람은 75세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창 12:1-5).

성 경: [대상1:28]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주); 이삭과 이스마엘 - 이삭(Isaac)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언약의 아들이며(창21:1-3) 이스마엘(Ishmael)은 여종 하갈에게서 난 서자(庶子)였다. 때문에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3세 위인 장자였으나(창 17:24, 25) 아브라함의 장자권은 이삭에게 이어졌다(창 21:12, 13). 이로써 또 다시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구별되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다(롬 9:6-13).

성 경: [대상1:29]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주); 느바욧 - 그의 후손들은 아라비아 동부 사막에 정착했다.

(주); 게달 - 이름의 뜻은 '거무스름한'이다. 그의 후손들은 북부 아라비아 종족을 형성하였다(렘 49:28, 29;겔 27:21;아 1:5) 이들 게달(Kedar) 족속은 느바욧(Nebaioth) 족속과 마찬가지로 유목 생활을 하였는데 특히 양과 염소를 많이 길렀다(사 60:7).

(주); 앗브엘 - 디글랏빌레셀 왕의 앗수르 연감에는 앗브엘(Adbeel)의 자손들이 '이디비일루'(Idibiilu)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북부 아람족의 일파를 형성하였다.

성 경: [대상1:30]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주); 두마 - 두마(Dumah)는 '침묵'이란 뜻이다. 그의 후손들은 두맛 알 간달(Dumat alGandal), 곧 페르시아 만 정상 부분과 아카바 만 중간 지점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에 정착하였다. 한편 이사야는 두마가 사해 남쪽 세일 근처에 살았다고 기록하였다(사21:11, 12).

(주); 맛사 - 그의 이름은 '집'이란 뜻이다. 그의 후손들은 아라비아 북서 지방에 살았다.

(주); 데마 - 데마(Tema)의 후손들은 북아라비아 지역에 정착하였다. 때문에 오늘날 그곳 이름은 테이마(Teima)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그 위치는 다메섹과 메카 사이의 중간, 또는 바벨론과 애굽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추정된다. 그곳은 사막 횡단 교역(交易)과 관련된 중요한 지역이었다(욥 6:19).

성 경: [대상1:31]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주); 여둘 - 여둘(또는 여두르, Jetru)의 후손들은 한때 이스라엘 지파와 충돌한 적이 있다(5:19). 추정컨대 그들은 신약 시대의 이두래(Iturae) 사람들일 것이다(눅 3:1).

(주); 나비스 - 나비스(Naphish)의 후손들 역시 여둘 후손과 더불어 요단 동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대패한 적이 있다(5:19, 20). 이로 보아 여둘과 나비스족은 요단 동편에 거주하였음이 분명하다.

성 경: [대상1:32,33]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본절의 족보는 창 25:1-4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 그두라 - 아브라함이 이삭 출생 이후에 얻은 후처이다(창 25:1). 그녀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여섯 아들이 출생하였는데 모두 오늘날의 아랍족을 형성한 각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주); 시므란 - 그의 후손들은 메카 서쪽 지방인 자브람(Zabram)에 정착한 듯하다.

(주); 므단 - '다툼'이란 뜻이다. 그는 아라비아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주); 미디안 -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동쪽과 동남쪽 지역에 정착하였다. 모세는 바로왕의 낯을 피하여 이곳에 피신하기도 하였다(출 2:15).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는 모세를 환대했으나 전반적으로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을 적대시해 왔었다(민 22:4;25:18;삿 6:1;시 83:9;사 10:26;합 3:7).

(주); 이스박 - 이름의 뜻은 '버리는 자'이다. 그의 자손들은 에돔 땅 쇼백에 정착한 듯하다.

(주); 수아 - '절하다', '가라앉다'는 뜻이다. 그의 자손들은 이두매의 한 지역인 수아(Shuah)에 정착한 것 같다.

(주); 스바와 드단 - 이들의 후손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락하였으며 각기 아라비아의 한민족을 형성했다. 이들의 거주지인 스바와 드단은 무역로(貿易路)에 있었던 오아시스였다.

(주); 에벨 - '에벨'(*)이란 이름의 뜻은 '송아지'이다. 그는 헷야즈의 바누기파족과 관련이 있다.

(주); 아비다 - '내 아버지는 아신다'는 뜻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이상과 같은 서자(庶子)들에게 재물을 주어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다(창 25:6).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다. 즉, 그는 가나안 땅이 이삭의 기업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창 21:10-12). 한편, 그두라의 후손들인 아라비아 자손들은 B.C. 500년 홍해의 동북쪽 극단에 위치한 에시온게벨(Eziongeber)을 점령한 이후 점차로 유다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었다(느 4:7-6:1).

성 경: [대상1:34]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손]

(주); 에서 - 리브가가 이삭에게서 낳은 장자로서 에돔족의 조상이다(창 25:23, 27-34). 에서(Esau)란 이름의 뜻은 '털이 많은 자'인데 그의 피부가 붉은 탓에 일명 에돔(Edom)이라고도 불리웠다.

(주); 이스라엘 - 이 이름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 속에서 야곱(Jacob)에게 주어진 새이름이며 '하나님과 겨루다'는 뜻이다(창 32:28). 여기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조상을 야곱으로 호칭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로 호칭함으로써 그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언약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대상1:35]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주); 에서의 아들 - 본 족보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기원을 밝히기 전에 먼저 그의 형제국(兄弟國)인 에돔 족속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즉, 본절에서부터 마지막 절까지에서는 8명의 에돔 왕들과 11명의 에돔 족장들이 소개되었다. 이 가운데 왕들의 족보는 창 36:31-39에서, 족장들의 족보는 창 36:40-43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 엘리바스 - 에서의 아내 헷 족속 아다(Adah)의 소생이다(창 36:4).

(주); 르우엘 -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Bashemath)의 소생이다(창 36:4).

(주);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 - 이들은 에서의 아내 히위 족속 오홀리바마(Aholibamah)의 소생이다(창 36:5). 한편 이상과 같은 에서의 아들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가나안 족속의 아내 또는 첩의 소생들이란 점이다.

성 경: [대상1:36]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주); 데만 - 그의 후손들은 에돔의 북동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들 데만 족속은 성경에서 지혜있는 족속으로 알려져 있다(렘 49:7;욥 2:11).

(주); 딤나와 아말렉 - 창 36:12에 의하면, 딤나(Timna)는 엘리바스의 첩으로서 아말렉을 낳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딤나는 엘리바스의 아들이 될 수 없다(Payne, TheWycliffe Bible Commentary, Lange). 하지만 본절에서 이처럼 딤나가 엘리바스의 아들들의 이름 가운데 포함된 것은 결코 저자의 착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대신 이는 저자가 구약의 역사(에돔의 족보)에 정통한 당시 독자들의 지식을 인정하고 아주 간략하게(생략적으로) 기록한 결과이다(Keil, Lange). 즉, 저자는 딤나와 아말렉(Amalek)을 간략하게 열거함으로써 아말렉이 딤나의 소생인 사실을 당시 역사에 정통한 독자들에게 나타내었던 것이다(Keil & Deitzsch Commentary, Vol. III, p.53). 한편, 훗날 아말렉 족속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최초로 대적한 족속이었다(출17:8-16;민 24:20; 신 25:17-19;삿 3:13;시 83:7).

성 경: [대상1:3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주); 르우엘의 아들 -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소생들인 이들은 모두 네명이다. 이들과 엘리바스의 아들들 여섯(36절), 그리고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소생, 곧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창 36:5)는 모두 에돔의 13지파를 형상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창 36:15-18에서 에돔의 족장(族長)들로 소개되어 있다. 한편, Bertheau는 에돔의 지파가 12지파였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아말렉이 엘리바스의 첩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말렉은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견해는 아말렉을 에돔의 족장으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성경의 기록(창 36:16)에 위배된다.

성 경: [대상1:38]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주); 세일 - 세일(Seir)은 에돔 땅의 원주민(原住民)인 호리 족속(Horites), 즉 고대의훌(Hurrian) 족속의 지도자이다(창 36:20). 호리 족속은 에서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에돔 땅에 정착했던 민족으로서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민족이었다(신 2:12, 22). 그러나 이들은 에서의 자손들에게 정복당하여 에돔인으로 동화(同化)되었다. 따라서 세일 족속(호리 족속)은 에돔 족속과 동일한 족속으로 불리워졌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세일 자손들의 이름이 에돔의 족보 안에 거명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39]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주); 딤나 - 본문에서 유일하게 소개되고 있는 세일의 딸이다. 딤나는 엘리바스의 첩으로서(창 36:12) 후에 영광스럽게도 에돔 족속의 족장의 칭호를 얻었다(51절:창36:40).

성 경: [대상1:40-42]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서의 후손]

본문에는 세일의 아들들에게 난 자손들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 39절에서부터 언급된 세일의 후손들을 간략히 도표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세일 - 로단-호리, 호맘, 딤나

소발-알랸, 마나핫, 에발, 스비, 오남

시브온-아야, 아나

디손-하므란, 에스반, 이드란, 그란

에셀-빌한, 사아완, 야아간

디산-우스, 아란

성 경: [대상1:43]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이스라엘 자손을 치리하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이 이러하니라 - 본절은 에돔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훨씬 먼저 왕정(王政) 체제를 갖추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왕정 설립의 연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본절 이하에 열거되어 있는 8명의 왕들을 보면, 한결같이 세습 왕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43-50절).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왕권이 세습제가 아닌 선출에 의해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주); 브올의 아들 벨라 - 브올의 아들 발람(Balaam, 민 22:5)과 이름이 유사하나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 경: [대상1:44]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보스라 세라의 아들 요밥 - 여기서 보스라(Bozrah)는 견고하게 요새화된 에돔의 도성을 가리킨다. 이 도성은 페트라(Petra)에서 북쪽으로 약 48km 지점의 가파른 계곡으로 둘러싸인 벼랑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도성은 에돔 북쪽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였다. 한편 에돔 왕 요밥(Jobab)의 이름 앞에 '보스라'란 지명이 수식되어 있음은 그가 이곳에 수도를 정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함인 듯하다.

성 경: [대상1:45]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데만 족속의 땅 사람 후삼 - 데만 족속(Temanites)은 에서의 장남 엘리바스의 아들데만의 후손들이다(36절). 그리고 그들의 정착지 데만은 페트라 동쪽으로 4.8km 지점인 오늘날의 타윌란(Tawilan)이다. 이곳은 물이 풍족하고 땅이 비옥했으며 중요한 무역의 교차로였다. 특히 이곳 사람들은 지혜로 유명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바로이 데만 사람이었다(욥 2:11). 한편 이 데만은 에돔 남쪽에서 견고한 요새지였다.

성 경: [대상1:46]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모압 들 - 롯의 아들 모압(Moab, 창 19:37)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지역인 요단 동편 고원 지대를 가리킨다.

(주); 미디안 -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Midian)의 자손들을 가리킨다(32, 33절). 이들은 가나안 동쪽과 동남쪽에 거주했었다.

성 경: [대상1:47]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마스레가 사믈라 - 마스레가(Masrekah)는 '좋은 포도의 장소'란 뜻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사믈라(Samlah)는 창 36:36에서 '삼라'로도 불리우고 있다.

성 경: [대상1:48]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하숫가의 르호봇 사울 - '하숫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하르'(*)는 '큰강'을 의미하는 말이다. 창 36:37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하숫가'는 '유브라데 강'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성 경: [대상1:49]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바알하난 - 이 이름은 '바알은 자비롭다'는 뜻이다. 이 이름을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에돔에서 이미 바알 신이 숭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알(Baal)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50]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하닷 - 이는 46절의 브닷의 아들 하닷과는 다른 인물이다. 본절의 하닷(Hadad)은 창 36:39에서 '하달'(Hadar)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주); 그 도성 이름은 바이요 - '바이'(Pai)는 창 36:39에서는 '바우'(Pau)로 기술되어 있다. 혹자는 이곳이 사해 북동쪽에 위치한 브올 산(Mt. Peor)이라고 말하나(Curtis) 분명한 근거가 없다.

(주); 그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라 - 에돔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는 중에 이처럼 여자의 이름이 녹명(錄名)된 것은 매우 특이하다.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인 점으로 보아 그녀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된 듯하다.

성 경: [대상1:51]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하닷이 죽은 후에 - 본 문맥과 병행 구절인 창 36:39에는 이 구절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해 혹자는 본서 저자나 필사자가 왕의 목록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 구절을 첨가시킨 것이라고 보았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 당시에는 하닷이 살아 있었던 반면에 본서의 저자인 에스라 당시에는하닷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언급한 탓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Keil, The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주); 에돔의 족장 - 여기서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루프'(*)는 각 지파의 지도자, 곧 방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각기 자기 지방의 자치권의 책임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함께 모여 에돔 전체를 통치할 왕을 선출한 듯하다. 이렇게 볼 때, 에돔의 정치 제도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 체제가 아니라 지방 분할적인 군주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 이하에 열거된 족장의 호칭들은 개인의 이름들이 아니다. 대신 이 호칭들은 각 지파, 또는 관할 구역의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곳에 언급된 족장의 수는 모두 11명이다. 이는 본래 13지파에 이르렀던 에돔의 지파수에 비하면 두지파가 줄어든 것이다. 37절 주석 참조. 아마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두 지파는 다른 지파에 편입되었을 것이다(Keil).

성 경: [대상1:52]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오홀리바마 족장 - 오호리바마(Aholibamah)는 '히위 족속 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소생'으로서 에서의 아내가 된 자이다(창 36:2). 그런데 그녀 역시 딤나와 마찬가지로(51절) 여자로서 족장의 칭호를 얻었음은 특기(特記)할 만하다.

성 경: [대상1:53,54]

주제1: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주제2: [에돔 땅의 역대 왕과 족장들]

(주); 에돔 족장이 이러하였더라 - 에돔족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 짓는 구절이다. 이상과 같이 에돔족은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사실 그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괴롭힌 일 외에는 달리 내세울 만한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왕하 8:22;대하 21:8-10;28:17).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35-42절 강해, '에돔 족속'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2: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야곱의 열 두 아들]

(주); 이스라엘의 아들 - 전장(前章)에서 에돔 족속의 족보를 간략하게 다룬 저자는 이제 본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족보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1, 2절은 본장의 서두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첫 조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체로 열 두 지파는 레아, 라헬 및 두 여종이 낳은 순으로 기록되나 그 차서(次序)가 중요하지 않을 때에는 자유롭게 기록되기도 한다(창49:2-27;민1:5-15;26:5-50). 본문은 바로 후자의 경우이다.

(주); 르우벤...스불론 - 여기에 소개된 아들들은 야곱의 아내 레아의 소생들로서 이들만큼은 출생한 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창 29:31-30:20).

성 경: [대상2: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야곱의 열 두 아들]

(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 - 여기서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소생이다(창 30:22-24;35:16-18). 그리고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이며, 갓과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이다(창 30:5-13). 이제 이와 관련 이스라엘의 열 두 아들을 그 출생 순서대로 간략히 도표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 레 아 | 빌하 | 실바 | 라헬 |

+---+---+---+---+-----+----+-----+----+-----+----+-----+-----+----+

| 이| 르| 시| 레| 유 | | 납 | |아 | 잇 | 스 | 요 |베 |

| 름| 우| 므| 위| 다 | 단 | 달 | 갓 | | 사 | 블 | |냐 |

| | 벤| 온| | | | 리 | |셀 | 갈 | 론 | 셉 |민 |

+---+---+---+---+-----+----+-----+----+-----+----+-----+-----+----+

| | | | | | | | | | | | | |

| 뜻| 보| 들| 연| 찬 | 공 | 나 | 행 | 기 | 보 | 거 | 하 |오 |

| | 라| | | | | | | | | | 나 |른 |

| | | | | | | 의 | | | | | 님 |손 |

| | 아| 으 | | 송 | 평 | | | | | | 이 |의 |

| | 들| | | | | 경 | | | | | | |

| | 이| | | | | | | | | | 더 |아 |

| | 라| 심| 합| 함 | 함 | 쟁 | 운 | 쁨 | 상 | 함 | 하 |들 |

| | | | | | | | | | | | 심 | |

+---+---+---+---+-----+----+-----+----+-----+----+-----+-----+----+

성 경: [대상2: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유다의 아들 - 야곱의 12 아들을 모두 소개한 본서 저자는 이제 그 가운데서도 유다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유다의 족보는 여기서부터 4:23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같이 저자가 유다 지파의 족보에 치중하고 있는 까닭은 (1) 당시 독자(讀者)들이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었고 (2) 또한 유다 지파가 메시야의 출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마 1:1-16). 한편, '유다'(Judah)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이다.

(주); 에르와 오난과 셀라 - 창세기 38장에 근거하여 유다의 아들들이 소개되고 있다. 에르(또는 엘, Er)는 유다의 장남이며 다말의 남편이었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창 38:6, 7). 따라서 그의 후사(後嗣)가 없다. 그의 아우 오난(Onan)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다(창 38:8-10). 한편 유다의 셋째 아들 셀라(Shelah)의 족보는 4:21-23에 소개되어 있다.

성 경: [대상2: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세라를 낳았으니 - 본절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부정한 관계를 기록한 창 38:12-30의 요약이다. 유다의 섯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면 그녀에게줄 것이라 했던 약속을 유다가 이행하지 않자 다말(Tamar)은 창기(娼妓)로 분장하고 유다에게 접근하여 잉태하였다. 이렇게 하여 낳은 아들이 쌍동이인 베레스(Perez)와 세라(Zerah)이며 베레스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이렇게 볼 때 유다 지파를 통하여 메시야가 나심은 유다 지파의 어떠한 의나 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선택과 은혜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시아버지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다말은 뜻밖에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마 1:3).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이 죄인의 친구가 되기 위해 오셨음을 시사해 준다(마 11:19).

(주); 베레스 - 그의 이름의 뜻은 '터침'이다(창 38:29). 그는 세라와 쌍동이 형제이지만 여러 족보에 보면, 세라보다 항상 앞에 기록되어 있다(창 46:12;민 26:20). 그 이유는 곧 다음과 같은 까닭에서 이다. (1) 베레스의 후손들이 유다 가문에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27:3;느 11:4, 6). (2) 그는 다윗의 선조였기 때문이다(룻4:18-22). (3) 그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와 직접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마 1:3;눅3:33).

(주); 세라 - 그는 태어날 때 손을 먼저 내밀어 홍사(紅絲)로 묶였으나 그의 형제 베레스가 밀치고 나오는 바람에 늦게 태어나고 말았다(창 38:28, 30). 그는 유다 지파의 한분파를 이루었다.

성 경: [대상2:5]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베레스와 세라의 후손]

(주); 헤스론 - 이름의 뜻은 '울타리'이다. 그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도 기록되어 있다(마 1:3). 구약에서 그의 후손들은 대개 헤스론 가족으로 불리웠다(민 26:21).

(주); 하물 - 혹자는 왕상 4:31에 나오는 마홀(Mahol)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성 경: [대상2:6]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베레스와 세라의 후손]

(주);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 - 여기서 시므리(Zimri)는 세라(Zerah)의 아들이 분명하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시므리의 형제들이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왕상4:31에서 에단(Ethan)은 예스라 사람, 다음의 두 사람은 마홀(Mahol)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혹자는 본 구절과 왕상 4:31에 소개된 인물들은 전혀 다른 인물들이라고 일축해 버리지만(Lange) 이들의 이름이 똑같은 순서로양 구절에 소개되어 있는 점을 볼 때 이들은 동일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기에 소개된 네 사람은 세라의 아들은 아니지만 먼 후대의 후손들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Keil, Payne, Movers, Bertheau, Clericus). 사실상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벤'(*)은 '아들'이라는 뜻 외에도 '자손', '후손' 등의 의미를지니고 있다(삼하 6:3, 4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헤만(Heman)과 에단이 시 88, 89편의 저자라는 사실이다. 시 88편의 표제어에는 '고라 자손의 찬송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노래'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시 89편의 표제어에는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고라 자손(the sons of Korah)은 레위 지파이기 때문에(출 6:16) 이 표제어대로라고 본다면 헤만과 에단은 유다 지파가 아닌 레위 지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이상 문제가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고라 자손의 찬송시'라는 말은 헤만이 고라 자손이라는 뜻이 아니라 헤만이 저작한 시를 고라 자손이 성전에서 합창하는 찬송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Keil). 한편, 이 네 사람들은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들로서 예배의 중요한 부분인 찬송의 대가들이었다. 이처럼 이들이 예배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본서 저자는 비록 그들이 세라의 후손들이지만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Payne). 하지만 이들은 레위 지파 출신의 악사들인 헤만, 아삽, 에단 등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15:19).

성 경: [대상2:7]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베레스와 세라의 후손]

(주); 가르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 여기서 아갈(Achar)은 수 7:1에 나오는 아간(Achan)과 동일 인물이다. 수 7:1에서 아간은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삽디'(*)는 6절에 나오는 '시므리'(*)를 가르킬 것이다. 한편 본절의 '아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즉 '아갈'(*, 아카르)이란 말은 본래 '재앙'을 의미한다. 아간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돌무더기에 묻혔고 사람들은 그 돌무덤이 있는 곳을 '아골(재앙의) 골짜기'라고 불렀다(수 7:26). 본서 저자는 이러한 사건에 근거하여 아간을 아갈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로써 저자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과거 이스라엘 온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을 내리셨는가를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수 7:5).

(주); 마땅히 멸할 물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렘'(*)은 (1) '파괴되어야할 것'과, (2) '바쳐진 물건'이란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2)번의 의미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간이 장막 땅 속에 감추어둔 물건을 가리키는 말인데(수 7:21) 이는 하나님께서 첫 열매로 바치도록 명하신 물건이었기 때문이다(수 7:1). 이에 관한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본문인 수 7장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2:8]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베레스와 세라의 후손]

(주); 아사랴 -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심'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당시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소개되어 있는 듯하다(Keil).

성 경: [대상2:9]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헤스론의 낳은 아들 - 여기서부터 12절까지는 룻 4:19-22에 근거한 계보이다.

(주); 글루배 -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18절에 나오는 헤스론의 아들 갈렙(Caleb)이다. 왜냐하면 '글루배'(*)는 '갈렙'(*)의 변형태이기 때문이다(Keil &Delitzsch, O. Zockler, P. C. Barker).

성 경: [대상2:10]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람 - 헤스론의 장자는 여라므엘이지만(9절) 차남인 람(Ram)의 후손들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 이는 람의 계통을 통하여 다윗 왕이 출현하며(15절)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시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람'은 여라므엘의 맏아들 '람'(25절)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주); 암미나답 -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 중 한 사람인 암미나답(Amminadab)의 이름의 뜻은 '내 친족은 고귀하다'이다. 그는 유다 지파의 두령인 나손의 부친이며(민1:7;2:3;7:12, 17;10:14),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의 부친이기도 하다(출 6:23).

(주); 나손 - 나손(Nahshon)은 광야에서 유다 지파를 인도한 두령이었으며(민2:3;7:12-17;10:14), 아론은 그의 매형(妹兄)이었다(출 6:23).

성 경: [대상2:1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살마 - '살마'(*)는 룻 4:21에서 '살몬'(*)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는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후(수 6장) 기생 라합(Rahab)과 결혼하였다. 이로써 이방인이자 기생이었던 라합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게 된 것이다(마1:5).

(주); 보아스 - 다윗의 증조부이며 이새(Jesse)의 조부인 보아스(Boaz)는 그 이름의 뜻이 '민첩'이다. 그는 모압에서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온 모압여인 룻(Ruth)과 결혼하였다(룻 4:13;마 1:5). 그는 베들레헴의 부농(富農)이었다.

성 경: [대상2:1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오벳 - 보아스와 룻 사이에 난 아들로서(룻 4:17;마 1:5;눅 3:32), 오벳(Obed)이란 이름의 뜻은 '예배하는 자', 또는 '종'이다.

(주); 이새 - 다윗 왕의 아버지다. 그의 이름의 뜻은 '주의 선물'인데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 할 수 있는 다윗(David)을 후사(後嗣)로 얻었다(15절). 한편 지금까지 10-12절에서 람의 후손들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된 이름들이 람의 전체 후손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부터 출애굽까지는 430년의 세월이 경과하였는데도 그 기간 동안에 단지 람, 암미나답, 나손 3세대밖에 소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10절). 또한 출애굽부터 다윗 왕까지는 약 400년의 세월이 경과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살몬, 보아스, 오벳, 이새 등 단지 4세대밖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11, 12절). 따라서 본문에 소개된 람의 후손들은 특별히 발췌, 언급된 세대임을 알 수 있다. 즉 본서 저자는 람 가문의 일반 역사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에 필요한 인물들만을 선택적으로 발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Keil).

성 경: [대상2:1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엘리압 - 이새의 장남인 엘리압(Eliab)은 외모가 뛰어났기 때문에 사무엘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으로 추천될 뻔 했던 인물이다(삼상 16:6). 그는 27:18에서 엘리후(Elihu)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유다 지파의 관장으로 언급되었다.

(주); 아비나답 - 그의 이름은 '내 아버지는 관대 하시다'는 뜻이다. 엘라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이 골리앗과 대치해 있었을 때 아비나답(Abinadab)은 형인 엘리압과 함께 사울왕의 휘하에 있었다(삼상 17:13).

(주); 시므아 - 이새의 셋째 아들인 그는 일명 삼마(Shammah)라고도 불리운다(삼상 16:9;17:13). 그런데 '삼마'는 '황폐함'이란 뜻이며 시므아(Shimea)는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그는 암논에게 그 누이 다말과 근친 상간을 범하도록 모략을 베풀어 준 모사(謨士) 요나답의 부친이며(삼하 13:3, 32), 또한 블레셋 거인을 죽인 요나단의 부친이기도 하다(20:6-8;삼하 21:20-22).

성 경: [대상2:1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느다넬 -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주심'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느다넬(Nethanel)이란 동명 이인(同名異人)이 무려 열 명이나 등장한다(15:24;24:6; 26:4;민 1:8;2:5;대하 17:7;35:9;스 10:18-22;느 12:21, 36). 그러므로 혼동치 않아야 할 것이다.

성 경: [대상2:16]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스루야와 아비가일 - 이들은 이새의 아내가 첫 남편 나하스(Nahash)와 동침하여 낳은 자매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친아버지는 이새가 아니라 나하스이다. 또한 이들은 다윗의 이부 동복매(異父同腹妹)이다. 즉, 전남편에게서 스루야(Zeruiah)와 아비가일(Abigail)을 낳은 여인이 후에 이새와 재혼하여 다윗과 같은 아들들을 낳은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구절인 삼하 17:25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 족보에서 간간이 여자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후손의 혈통과 계보를 보다 분명히 밝혀 준다는 의의를 지닌다.

(주);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 이들은 다윗 왕조를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운 용사들이다. 아비새(Abishai)는 다윗의 용사 둘째 삼인 중 한 사람이며(삼하 21:17;23:18), 요압(Joab)은 다윗의 군장이었다(삼하 11:1). 그리고 아사헬(Asahel)은 형제들 중 막내로서 다윗의 30인 용사 가운데 한명이었다(삼하 23:24). 그런데 그는 이스보셋의 군장 넬을 추격하다 그만 전사(戰死)하고 말았다(삼하 2:23).

성 경: [대상2:17]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아마사 - 다윗의 조카인 아마사(Amasa)는 압살롬 군대의 군장이었다(삼하 17:25). 그러나 압살롬이 죽은 후 그는 다윗 왕에 의해 이스라엘의 군장으로 발탁되었다가 그만 요압에게 암살당하였다(삼하 19:13;20:4-10).

(주); 이스마엘 사람 예델 - 예델(Jether)은 삼하 17:25에서 이스마엘 사람 이드라(Ith-ra)로 소개되었다. 예델은 바로 이 '이드라'의 축약형이다. 그는 본래 이스마엘의 후손이었으나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하여 이스라엘인이 된 듯하다. 삼하 17:2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2:18]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헤스론의 아들 갈렙 - 그는 9절의 '글루배'(*)와 동일 인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및 가나안 정복 역사와 관련된 인물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4:15;민 13:6;14:24;수 14:6-15)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주); 아수바 - 그 이름은 '버림받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2:19]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에브랏 - 갈렙이 취한 또 다른 아내이다. 한편 베들레헴에 인접한 유다의 한 성읍 에브라다(Ephratah)란 지명은 바로 이 에브랏(Ephrath)에서 유래하였다(50절;룻 1:2;삼상 17:12).

(주); 훌 - 그는 모세의 성막 건축을 감독했던 브사렐의 조부이다(출 31:2-5;대하 1:5).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출애굽 도중 아말렉과의 전쟁시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치켜들었던 훌(Hur)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출 17:10, 12).

성 경: [대상2:20]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브사렐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보호' 또는 '하나님의 그늘'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막을 건축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장인(匠人)이었다(출 31:3-5;36:1). 즉 그는 금속 세공, 주조술, 조각술, 보석 세공 및 목각술 등과 같은 여러 기술을 가진 기술자였다(출 35:32, 33).

성 경: [대상2:2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그 후에 - 여기서 말하는 시점은 헤스론이 9절에서 소개한 자신의 세 아들을 낳은 후를 가리킨다(Lange).

(주); 길르앗의 아비 마길 - 마길(Machir)은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아들이다. 마길의 아들들은 증조부(曾祖父)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창 50:23). 한편 마길은 길르앗(Gilead)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따 므낫세 지파의 기업인 요단 동편의 지역은 길르앗이라 명명되었다(민 32:39, 40). 즉, 모세가 마길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분배하자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이름대로 그곳 이름을 길르앗이라 불렀던 것이다. 헤스론은 이러한 마길의 딸에게 60세에 새로 장가들었다.

성 경: [대상2:2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야일은 길르앗 땅에서 스물 세 성읍을 가졌더니 - 여기서의 야일(Jair)은 유다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민 32:41;신 3:14에서 므낫세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까닭은 그의 모계(母系) 쪽이 므낫세 지파에 속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생활 무대가 므낫세 지방이었기 때문이다(21절). 한편 그는 가나안 정복시 그술 족속과 마아가 족속의 경계에까지 이르는 아르곱 온 지방을 정복하고 그곳 이름을 하봇야일(야일의 생명)이라고 칭하였다(신 3:14;민 32:41). 본절에서 말하는 23 성읍은 바로 그때 그가 빼앗은 것들이다.

성 경: [대상2:2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그술과 아람 - 그술(Geshur)은 가나안 정복시 이스라엘 자손이 미처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이다(수 13:11, 13). 이들은 당시 요단 강 동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술은 다윗 왕 때에 더욱더 강성하여 독립 국가로까지 발전하였다(삼하13:37). 다음으로 아람(Aram)은 야일의 성읍을 빼앗기 위해 그술과 동맹을 한 주변의아람 족속을 의미한다.

(주); 야일의 성읍들과 그낫과 그 성들 모두 육십을...빼앗았으며 - 본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사건이 언제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본절은 그술과 아람이 빼앗은 성읍이 모두 60 성읍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중 23 성읍은 가나안 동편 땅 정복시 야일이 정복한 것이며, 나머지 37 성읍은 노바(Nobah)가 그낫 마을에서 빼앗은 것이다(민 32:42). 그런데 이 모두를 합친 60 성읍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일명 '야일의 성읍'이라고 불렀다(수 13:30). 한편, 이렇게 빼앗긴 60 성읍 중 30 성읍은 훗날 길르앗 출신 사사(士師) 야일이 재탈환한 것 같다(삿 10:3, 4).

(주); 저희는 다 길르앗의 아비 마길의 자손이었더라 - 여기서 '저희'는 헤스론의 아들 스굽과 손자 야일의 모든 후손들을 가리킨다(21, 22절). 즉, '저희'는 23 성읍에 거했던 야일의 온 가족들을 통틀어 지시하는 말이다(Keil).

성 경: [대상2:2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헤스론의 후손]

(주); 갈렙 에브라다 - 헤스론의 아들 갈렙과 그의 아내 에브랏(19절)이 거한 땅이다. 그런데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혹자는 삼상 30:14에 나오는 '갈멜 남방'을 '갈렙 남방'의 오기(誤記)로 추정하기도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갈렙 에브라다는 유다 남쪽의 한 지방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Keil).

(주); 아비야 -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라'이다.

(주); 아스훌은 드고아의 아비더라 - 아스훌(Ashur)의 족보는 4:5에 다시금 소개되어 있다. 그는 드고아(Tekoa)의 아비이면서 또한 드고아 성읍을 건설한 인물로서 드고아 주민들의 조상이 되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으로 16km, 베들레헴 남쪽으로 8km 지점에 위치한 고지대의 성읍이다(대하 20:20).

성 경: [대상2:25]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헤스론의 맏아들 여라므엘 - 이제 본절에서부터 41절까지에는 헤스론의 장자인 여라므엘(Jerahmeel)의 후손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들 여라므엘의 후손들은 남유다의 네게브(Negeb) 지방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들은 종종 이방 족속인 겐 족속(Kenites)과 함께 언급되고 있다(삼상 30;29;27;10). 이는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방인들의 혈통이 여라므엘의 가계(家系) 내에 혼합되었음을 시사해 준다(Payne). 그가 헤스론의 장자이면서도(9절) 헤스론의 아들들 중 제일 나중에 소개되고 있는 것(10-24절)도 이와 같은 그 가계의 변질 때문인 듯하다. 한편, 그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이다.

성 경: [대상2:26]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아다라 - '왕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사본에 따라서는 '아다라'(*)가 '아타르'(*)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아타르'는 '닫다'는 뜻이다.

(주); 오남 - '강력한'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2:27]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여라므엘의 맏아들 람 - 이미 언급하였듯이 본절의 람(Ram)은 '헤스론의 아들 람'과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9절 주석 참조.

(주); 마아스와 야민과 에겔 - 이들의 이름은 오직 본절에만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달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성 경: [대상2:28]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삼매 - 삼매(Shammai)란 이름의 뜻은 '황폐한'이다. 그런데 본서에는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가 두 명 더 나온다. 곧 유다 지파 갈렙의 후손(44, 45절)과 유다 지파 에스라의 손자이다(4:17).

성 경: [대상2:29]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아비하일 - '내 아버지는 힘이시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2:30]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셀렛은 아들이 없이 죽었고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기업을 잇지 못하고 죽는 것은 최고의 수치와 불행이었다(민 26:33;27:1-7;36:2-4). 그런데도 나답의 장자(長子)인 셀렛(Seled)이 후사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성 경: [대상2:3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세산의 아들은 알래요 - 여기서 세산(Sheshan)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는 알래(Ahlai)는 세산의 딸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세산은 아들이 없었고 오직 딸만 있었기 때문이다(34절). 아마도 알래는 세산의 상속녀(相續女)인 까닭에 아들로 소개되고 있는 것 같다(Keil, Payne).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세산의 아들인 알래가 죽고 난 이후 세산의 자식이라고는 딸밖에 없었을런지도 모른다(P. C. Barker).

성 경: [대상2:3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요나단 - 성경에는 요나단(Jonathan)이라 이름하는 자가 무려 14명이나 나온다(삿18:30;삼상 14:49;삼하 15:27;21:21;23:32;스 8:6;10:15;느 12:11, 14, 35;렘 37:15,20;40:8,9).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심'이다. 그러나 본절의 요나단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성경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성 경: [대상2:3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여라므엘의 자손은 이러하며 - 본절은 여라므엘의 족보를 사실상 끝맺는 부분이다. 물론 34-41절에서 계속 그의 후손들이 언급되고는 있으나 이들은 여라므엘의 딸의 후손들이므로 사실상 이 부분에서 저자는 족보를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라므엘의 후손들은 본문 외에 성경 다른 부분에서는 일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성 경: [대상2:3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세산은...딸 뿐이라 - 본절에는 세산의 딸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바로 31절에 나오는 '알래'일 개연성(蓋然性)을 배제할 수 없다.

(주); 야르하라 하는 애굽 종 - 여기서 야르하(Jarha)는 출애굽 이전, 즉 세산이 애굽에 있을 때 데리고 있었던 애굽인 종이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야르하의 아내는 유다의 10대 손이므로(유다 베레스 헤스론 여라므엘(26절) 오남(28절) 삼매 나답(30절), 압바임(31절), 이시, 세산, 세산의 딸) 그녀가 애굽에서 태어났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Keil, Lange, Curtis). 즉, 세산은 애굽에 있을때 그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애굽 종 야르하를 사위로 맞아들여 자기의 종족을 이어나갔던 것이다(35절).

성 경: [대상2:35]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딸을...주어 아내를 삼게 하였더니 -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혈통을 이어 가며 자신들에게 할당된 기업을 전수하는 등의 여러 목적을 위해 계보상의 승계(承繼)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리하여 원칙적으로는 장자를 통해 계보가 이어졌는데 본절과 같이 예외적 상황에 직면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승계되었다. (1) 장자가 탈락하면 차남에 의해 승계되거나(창 38:8), (2) 아들이 없을 때에는 딸 또는 사위를 통해 승계되었다(34, 41절). 그리고 (3)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할 때에는 여종을 통해낳은 아들로 계보를 잇게 하거나(창 11:30;16:2) 그 종 가운데 하나를 지목하여 후계자로 삼았다(창 15:2).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상과 같은 기본 원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하심이 있을 경우에는 차서(次序)에 관계없이 선택받은 자에 의해 계보가 이어졌다는 점이다(삼상 16:7, 11-13;말 1:2, 3;마 1:2, 6).

성 경: [대상2:36]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사밧 - 이름의 뜻은 '살피심' 또는 '하나님이 주심'이다. 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운 자 중에는 다윗의 30용사 중 한 명인 '알래의 아들 사밧'도 있다(11:41).

성 경: [대상2:38]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아사랴 - 아사랴(Azariah)란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심'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자가 약 30명이나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 인물로는 다음 몇몇을 들 수 있다. 곧 레위 지파 요하난의 아들로서 솔로몬 성전의 대제사장직을 역임한 자(6:10)와 아사 왕의 개혁을 도운 선지자(대하 15:1-8), 그리고 히스기야 왕 당시의 대제사장(대하 29:12)이다.

성 경: [대상2:4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라므엘의 후손]

(주); 엘리사마 -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다. 다윗의 아들 중에도 엘리사마(Elishama)가 있었으니(3:6;삼하 5:16) 혼동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 경: [대상2:4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갈렙의 아들 - 여기서부터 55절까지에서는 이미 18-20절에서 소개된 갈렙의 족보가 추가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들 중에는 팔레스틴의 여러 지명들과 결부되어 있는 이름들도 있는바(42, 43절) 그들은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 맏아들은 메사니 십의 아비요 - 공동 번역은 본절을 '갈렙의 맏아들은 메사인데 그가 바로 지브(십)를 세운 사람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이에 따르면, 십(Ziph)은 인명이 아니라 지명이며, '아비'라는 말은 그 지역의 창설자 또는 창건자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어 문장 구조로 볼 때 이와 같은 번역은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십은 유다 산지의 한 마을이다(수 15:55). 다윗은 사울을 피해 십 근처의 황무지에 우거하기도 하였다(삼상 23:15). 이곳은 헤브론에서 남동쪽으로 6.4km 가량 떨어진 오늘날의 텔 지프(Tell Zif)이다.

(주); 헤브론의 아비 - 헤브론(Hebron)은 예루살렘 남쪽 30km 지점의 성읍 이름과 혼동될 수 있다(민 13:22). 그러나 여기서의 헤브론은 한 개인의 고유 이름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43절에서 헤브론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동일한 인명은 출 6:1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 경: [대상2:4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답부아 - 이름의 뜻은 '사과'이다. 답부아(Tappuah)는 또한 헤브론 근처의 한 성읍을 지칭하기도 한다(수 15:53).

(주); 레겜 - 헤브론의 아들 레겜(Rekem)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한 성읍의 이름과 동일하다(수 18:27). '레겜'이란 이름의 뜻은 '우정'이다.

(주); 세마 - 이름의 뜻은 '그는 들어 주신다'이다. 그런데 세마(Shema)는 어원상으로 헤브론 근처의 한 성읍의 이름인 '에스드모'(수 15:50;21:14)와 일치한다(Curtis).

성 경: [대상2:4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라함 - 그의 이름의 뜻은 '자비' 또는 '사랑'이다.

(주); 라함은 요르그암의 아비며 - 본절 역시 42절과 같은 경우로 추정된다. 즉, 여기서 요르그암은 유다의 성읍인 '욕드암'(수 15:56)을 지칭하는 듯하다(Curtis). 즉, 라함(Raham)은 욕드암(Jakdeam)의 창건자였을 것이다. 이곳은 헤브론 남쪽에 있는 성읍으로서 오늘날의 길벱 라카(Khirbet Raqa)와 동일한 곳으로 보여진다.

성 경: [대상2:45]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마온은 벳술의 아비며 - 삼매의 아들 마온(Maon)은 '거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마온은 헤브론 남쪽으로 14.4km 떨어진 유다 산지의 한 성읍을 지칭하기도 한다(수 15:55). 이곳은 오늘날의 텔 마인(Tell Main)으로 확인되었다. 과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피하여 이곳의 황무지로 피신하기도 했다(삼상 23:24;25:2). 한편, 벳술(Beth-Zur)은 마온이 건설한 마을이다. 이곳은 헤브론 북쪽으로 약 7.3km 떨어진 곳에 있는 오늘날의 키르벱 엣 투베이카(Khirbet et-Tubeiqah)이다. 이 마을은 해발 1000m의 구릉 위에 위치해 있다. 르호보암은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도 하였다(대하 11:7;수 15:58). 결국 본절에서의 '아비'란 말 역시 벳술 마을의 창설자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Keil, Curtis).

성 경: [대상2:46]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갈렙의 첩 에바 - 에바(Ephah)는 '흑인'이란 뜻이다. 혹자는 1:33에 근거해 에바가 이방 족속 중 미디안 족속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Keil, Wellhausen).

(주); 하란과 모사와 가세스 - 이들의 이름은 오직 이곳에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모사(Moza)는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의 명칭이기도 하다(수 18:26).

(주); 하란은 가세스를 낳았으며 - 본절에서 가세스(Gazez)란 이름이 중복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 앞에 나온 자는 갈렙의 아들이며 여기에 나오는 자는 갈렙의 손자이다(Keil).

성 경: [대상2:47]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야대의 아들 - 여기서 야대(Jahdai)라는 인물이 갈렙과 아무 관련도 없이 소개되고 있다. 혹자는 야대가 모사(46절)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나(Hiller)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아마도 야대는 갈렙의 또 다른 첩이거나 아니면 갈렙의 또 다른 아들일 것이다(Curtis).

(주); 레겜과...벨렛과...사압이며 - 야대의 이 아들들은 다른 곳에서 일체 소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벨렛(Pelet)은 유다 남쪽의 한 성읍인 벧 벨렛(Beth-Pelet)과 동일한 이름이다(수 15:27).

성 경: [대상2:48]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갈렙의 첩 마아가 - 혹자는 마아가(Maachah)가 가나안 족속의 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Wellhausen) 근거가 없다(Lange).

성 경: [대상2:49]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갈렙의 후손]

(주); 맛만나의 아비 사압을 낳았고 - 여기서 맛만나(Madmannah)는 지명(地名)인 것으로 추정된다. 맛만나는 유다 남쪽의 한 성읍으로서 브엘세바 북동쪽으로 약 18km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수 15:31). 이곳은 오늘날의 길벧 움데임네(Khirbet unm Deimneh)와 동일한 지역인 듯하다. 이러한 곳을 갈렙의 후손 사압(Shaaph)이 개척하여 이곳의 창설자가 된 것 같다.

(주); 막베나와 기브아의 아비 스와를 낳았으며 - 여기서 막베나(Machbenah)와 기브아(Gibea)는 지명이며 스와(Sheva)는 이곳을 건설한 창설자이다. 막베나는 유다 남쪽의한 성읍인데 아마도 갑본(수 15:40)과 같은 곳인 듯하다(Curtis). 다음으로 기브아는 유다 산지의 한 성읍이다(수 15:57). 이 기브아는 오늘날의 베이트 임마르(BeitImmar) 서북쪽으로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엘자바(el Jabah)로 판명되었다.

(주); 갈렙의 딸은 악사더라 - 악사(Achsah)는 이곳에 유일하게 기록된 갈렙의 딸이다. 그런데 갈렙과 악사의 이름이 수 15:16과 삿 1:12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두 갈렙은 결코 동일 인물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의 갈렙은 유명한 정탐꾼 갈렙보다 약 300년 이전의 사람인 헤스론의 아들인 반면(18절), 수 15;16;삿 1:12에서의 갈렙은 여분네(Jephunneh)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스론의 아들 갈렙의 딸 악사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딸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 경: [대상2:50]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에브라다 - 19절의 에브랏과 동일인이다. 에브라다(Ephratah)와 에브랏(Eprath)이란 이름의 뜻 또한 동일하게 '열매 맺음'이다.

(주); 기럇여아림의 아비 소발 - 여기서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지명이다. 이곳은 기브온 족속의 옛 성읍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3.3km 지점에 위치했었다. 훌의 아들 소발(Shobal)은 이곳을 개척하여 창설자가 되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2:51]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베들레헴의 아비 살마 -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Bethlehem)은 유다 지파의 한 성읍으로서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9km 지점이다. 살마(Salma)는 이곳을 개척하여 창설자가 되었다. 한편 이 살마는 예수님의 조상인 람의 자손 살마와는 다른 인물이다. 11절 주석 참조.

(주); 벧가델의 아비 하렙 - 벧가델(Beth-gader)은 게델(수 12:13), 그데라(수 15:36)와 같은 곳이다. 이곳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다. 훌의 아들 하렙(Hareph)은 이곳의 창설자가 되었다.

성 경: [대상2:52]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소발의 자손은 하로에와 므누홋 사람의 절반이니 -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로에'(*)를 4:2절의 '르아야'(*)와 동일 인물로 본다(Keil & Delitzsch,P.C. Barker, Payne, Wycliffe Commentary). 그는 소라 족속(Zorathites)의 조상으로서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듯하다(Lange). 한편 여기서 '므누홋 사람의 절반'이라는 말은 소발의 후손들이 '므누홋'(*) 마을의 절반이나 되는 인구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Keil). 그러나 므누훗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혹자는 유대 지경의 한 성읍인 마나핫(Manahath)과 동일 성읍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나 분명치 않다(8:6).

성 경: [대상2:53]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기럇여아림 족속들 - 이는 기럇여아림에 거주한 소발(Shobal)의 자손들을 의미한다(Lange). 50절 주석 참조.

(주); 이델 족속 - 기럇여아림의 한 지파인 이델 족속(Ithrites)은 다윗의 30인 용사들인이라와 가렙을 배출하였다(11:40;삼하 23:38).

(주); 소라와 에스다올 두 족속이 나왔으며 - 이는 기럇여아림 족속들이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이주하여 소라와 에스다올에 정착했다는 말인 것 같다. 여기서 소라와 에스다올은 삼손의 고향기도 하다(삿 16:31). 이 중 소라(Zorah)는 지금의 폐허지 수라(Sura)이며, 에스다올(Eshtaol)은 오늘날의 움 에쉬테예(Um Eshteyeh)이다(Keil).

성 경: [대상2:54]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살마의 자손들은...느도바 족속과 - 베들레헴(Bethlehem)에 거주한 살마의 자손들(51절)은 느도바에도 정착하여 느도바 족속을 이루었다. 느도바(Netopha)는 베들레헴 남동쪽에 있는 유다의 성읍이다(스 2:22;느 7:26). 이곳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다윗의 30인 용사였던 마하래와 헬렛(11:30;삼하 23:28) 등이 있었다(9:16;27:13, 15;왕하25:23;렘 40:8).

(주); 마하낫 족속의 절반 - 여기서 마하낫은 '마나핫'(*)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 마나핫 족속은 바로 52절의 '므누홋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소발의 자손들과 살마의 자손들이 합쳐 마나핫 족속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Keil). 52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2:55]

주제1: [유다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훌의 후손]

(주); 야베스에 거한 서기관 족속 - 서기관(scribes)은 '글 베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직업은 가문 대대로 전수되어 온 듯하다. 한편, 야베스(Jabez)는 베들레헴 근처에 있었던 유다의 한 성읍이다.

(주);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 레갑 족속은 레갑(Rechab)의 아들 요나답이 세운 가훈을 철저하게 지킨 족속으로 유명하다. 즉, 그들은 선조 요나답의 교훈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 않으며 파종도 하지 않으며 포도도 재배하지 않고 평생 동안 장막에 거한 족속이었다(렘 35:6-19). 그런데 본절은 이들이 야베스에 거한 서기관 족속, 곧 살마의 자손들이자 또한 겐 족속이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겐 족속(Kenites)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속했던 이방 족속으로서 그들은 유다 지파와 함께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거하였다(삿 1:16). 때문에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즉, 아마도 모세의 처남인 호밥(이드로의 아들, 민 10:29)이 갈렙 족속의 여 상속자와 결혼함으로써 겐 족속은 갈렙의 손자 살마의 자손들에게 병합되었을 것이다. 본절은 바로 이 같은 사실에 의거한 말일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I. p.77).

성 경: [대상3:1]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 - 헤브론(Hebron)은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지점에 위치한 요새이며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서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있었다. 삼하 2:1 주석 참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시글락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직후 유다 장로들에 의해 유다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다(삼하 2:4). 한편,1-3절에 소개된 다윗 왕의 아들들은 삼하 3:2-5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이들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주);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 다윗의 맏아들 암논(Amnon)은 이복 누이동생 다말을 추행한 탓에 훗날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에게 암살된 인물이다(삼하 13:14, 28, 29). 그리고 그의 모친 아히노암(Ahinoam)은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과 이별한 후 새로이 맞아들인 아내이다(삼상 25:43). 다윗은 블레셋의 땅으로 피신할 때 그녀를 함께 데리고 갔었다(삼상 27:3). 한편 아히노암의 고향 이스르엘(Jezreel)은 유다 산지의 성읍(수 15:56)으로서 헤브론 서남쪽 약 9.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잇사갈 지파의 기업에 속하는 이스르엘 골짜기와는 구별된다(수19:17, 18).

(주); 둘째는 다니엘이라 갈멜 여인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 다니엘(Daniel)은 삼하 3:3에서 '길르압'(Chileab)으로도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는 조사(早死)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하 3:3 주석 참조. 한편 아비가일(Abigail)은 본래 나발의 아내였으나 나발이 죽게되자 다윗이 아히노암에 앞서 새로이 맞아들인 아내이다(삼상 25:39-43).

성 경: [대상3:2]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세째는 압살롬이라 - 다윗의 맏아들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를 대적하여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삼하 13:20-18:15). 그는 온 이스라엘 남자 중 가장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자로도 이름높다(삼하 14:25, 26).

(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 - 그술(Geshur)은 과거 요단강 상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인들의 독립국이다(수 13:13). 추측컨대 다윗은 정략적으로 이 나라의 공주 마아가(Maacah)와 결혼하였을 것이다. 삼하 3:3 주석 참조.

(주); 네째는 아도니야라 - 압살롬 다음으로 외모가 준수(俊秀)한 자로서 솔로몬을 누르고 왕이 되려 하다 훗날 도리어 처형된 인물이다(왕상 1:1-10, 41;2:25).

성 경: [대상3:3]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스바댜 - 스바댜(Shephatiah)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뒤에 나오는 이드르암(Ithream)과 더불어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주); 다윗의 아내 에글라 - 에글라(Eglah)의 이름 앞에는 특별히 다윗의 아내라는 호칭이 붙어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금까지 소개된 여인들 중 오직 에글라만 본처이며 다른 여인들은 후첩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상 25:42, 43;삼하 12:24에서 아히노암이나 아비가일, 그리고 밧세바 모두 다윗의 아내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칭호는 다만 다윗의 아내들에 대한 소개를 이제 끝맺는다는 의미에서, 곧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소개된 여인들이 모두 다윗의 본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끝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Lange, Keil). 이에 관해서는 삼하 3:5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3:4]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이 여섯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라 - 이는 곧 다윗 왕가의 번영을 강조해 주는 구절이다. 즉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자식이 많은 것은 가세(家勢)의 흥왕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바(창 13:16;시 127:3-5) 본절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이래 계속적으로 번영하였음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 다윗이...치리하였으며 - 다윗의 통치 기간은 모두 40년이며 이는 헤브론과 예루살렘에서의 통치로 각각 양분된다. 즉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지(삼하 2:4) 7년 6개월 만에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 5:1-3). 그 후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首都)로 삼아 그곳에서 33년 동안 통치하였다.

성 경: [대상3:5]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 - 5-9절까지에 소개된 다윗의 아들은 모두 13명이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삼하 5:14-16에서는 모두 11명의 이름들이 소개되어 있다. 아마 본문에는 나와 있으나 병행 구절에는 나와 있지 않은 엘리벨렛(6절)과 노가(7절)는 조사(早死)하였을 것이다.

(주); 시므아 - '시므아'(*)는 삼하 5:14에서는 '삼무아'(*)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이름상에 있어서의 약간의 형태 변환일 뿐 동일한 인물이다.

(주); 솔로몬 - 그의 이름은 '평강의 사람'이란 뜻이다. 이 솔로몬(Solomon)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그의 가정을 받으신다는 징표로서 주신 선물이었다(삼하 12:24). 한편 솔로몬은 일명 여디디야(Jedidiah)로도 불리웠는데 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이다(삼하 12:25). 이 솔로몬은 이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선택되었다(22:9).

(주); 암미엘의 딸 밧수아 - '암미엘'(*)은 삼하 11:3에서는 '엘리암'(*)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엘'(*)과 '암'(*)의 복합어로서 순서가 바뀌어도 의미상의 변화는 없다. 즉 두 이름은 모두 '하나님은 동족이심'이란 의미이다. 삼하 11:3 주석 참조. 한편, '밧수아'(*)는 다른 곳에서는 모두 '밧세바'(*)로 기록되어 있다(삼하 11:3;왕상 1:11, 15). 이 밧수아(Bathshua)는 밧세바(Bathsheba)라는 이름이 연음화(連音化)된 것이다(Keil & De-ltzsch, Vol. III. p. 78). 그런데 이 밧세바는 바로 다윗의 간음죄에 관련된 여인이다(삼하 11:2-5).

성 경: [대상3:6]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엘리벨렛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다. 그런데 그의 형제 중에는 똑같이 엘리벨렛(Eliphalet)으로 불리운 자가 있다(8절). 따라서 양자를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엘리벨렛은 일명 '엘벨렛'(Elpalet)으로도 불리웠다(14:5).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1-9절 강해에 수록된 도표를 참조하라.

성 경: [대상3:7]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네벡 - 네벡(Nepheg)이란 이름의 뜻은 '씨' 또는 '발아하다'이다. 레위 사람 고핫 자손 중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있으니(출 6:21) 다윗의 아들 네벡과 구별하여야 할 것이다.

성 경: [대상3:8]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엘랴다 - 그의 이름은 본래 '브엘랴다'(*)였다(14:7). 그 이름의 뜻은 '주께서(*, 브엘) 아신다(*, 야다)'이다. 그러나 후에 '바알'(*) 우상이 널리 퍼지면서 그 이름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혐오하게 되었기 때문에 바알을 가리키는 '브엘' 대신 '엘'(*)을 사용하여 '엘랴다'(*)가 된 것이다. 그 뜻은 '하나님은 아신다'이다. 한편 이와 같은 현상은 지명(地名)과 관련해서도 나타났던 바이니 이에 대해서는 삼하 5:20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3:9]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저희의 누이는 다말이며 - 다말(Tamar)은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유일한 딸이다. 이처럼 딸이 족보에 소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윗 왕가의 큰 불행에 관련된 인물로서 세간(世間)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는 다윗의 맏아들 암논에게 추행을 당하고 쫓겨난 불행한 여인으로서 압살롬의 누이였다(삼하 13:1-19).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고 다윗왕릉 대적하게 된다(삼하 13-15장).

성 경: [대상3:10]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의 계보는 바벨론 포로 이전까지의 다윗 왕조의 족보로서 열왕기상.하의 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왕권 투쟁이 심했던 북왕국 이스라엘과는 달리 다윗의 후손들이 안정 속에 계속 왕위를 계승한 다윗 왕조의 견고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다윗 왕조의 견고성은 다윗 언약의 성취였다는 의의를 지닌다(삼하 7:16).

(주); 르호보암 - 암몬 공주 나아마(Naamah)의 소생인 르호보암(Rehoboam)은 41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17년간 통치하였다(왕상 14:21). 그러나 그는 솔로몬과 달리 악정(惡政)을 일삼았으니 불행히도 그의 때에 이스라엘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졌다(대하10:1-19).

(주); 아비야 - 남왕국 유다의 제 2대 왕인 아비야(Abia)는 왕상 14:31;15:1,7,8 등에서는 아비얌(Abijam)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3년간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였다(B.C.913-910). 그런데 그 또한 부친 르호보암의 죄를 답습하였고 여호와 앞에서 온전치 못하였다(왕상 15:3). 그렇지만 그는 한편으로 북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있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전투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가운데 북 이스라엘의 80만 대군을 40만의 소수 병력으로 패퇴시켰다(대하 13:1-22).

(주); 아사 - 유다의 3대 왕 아사(Asa, B.C.910-869)는 전임 두 왕과는 달리 우상을 파괴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으며(대하 14:3-5),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대하 14:2). 그리하여 그의 통치 초기에는 전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구스군을 무찔렀으며(대하 14:9-15), 북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다메섹과 동맹하여 무찌르기도 하였다(왕상 15:16-22).

(주); 여호사밧 - B.C. 871-847년까지 25년을 통치한 여호사밧(Jehoshaphat)은 다윗 왕을 본받아 여호와를 힘써 섬겼으며 온 민족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대하 17:3-6;19:3,4).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역대 왕들이 펼쳐 온 대 이스라엘 적대 정책에서 벗어나 화해 정책을 폈으니 그 일환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Ath-aliah)를 자부(子婦)로 맞아 들였다(왕하 8:16-18).

성 경: [대상3:11]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요람 - 이세벨의 딸 아달랴의 남편인 요람(Joram)은 부친과는 정반대로 백성들에게 우상을 강요하고 악정(惡政)을 펼쳤다(왕하 8:16-24;대하 21:1-20).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저주로 죽었는데 그의 통치 기간은 8년이었다(B.C.853-841).

(주); 아하시야 - 그는 사악한 모친 아달랴의 섭정하에서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였는데 곧 재위 1년여만(B.C.841)에 예후의 손에 죽고 말았다(왕하 8:25-29;대하 22:1-9). 한편, 아하시야(Ahaziah) 사후(死後) 모친 아달랴는 유다 왕가(王家)의 씨를 진멸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살아남아 다윗의 왕위(王位)를 계승할 수 있었다(대하 22:10-12). 한편 아달랴의 유다 통치 기간은 6년이었다(B.C.841-835).

(주); 요아스 - 7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통치한 요아스(Joash, B.C.835-796)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선정을 했으나(대하 24:4-14),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는 다시금 우상 숭배를 고집하고 악정을 펴다가 신하들에 의해 죽임 당했다(대하 24:15-27).

성 경: [대상3:12]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아마샤 -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을 통치한 아마샤(Amaziah, B.C.796-767)는 에돔을 정벌하기도 했으나 훗날 교만해져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배척했다(왕하 14:1-22;대하 25:1-28).

(주); 아사랴 - 그는 일명 웃시야(Uzziah)라고도 불리운다(대하 26:1-23). 웃시야는 왕의 공식적 칭호(throne name)이며 아사랴(Azariah)는 사적인 이름이다(Payne, Myers). 그는 아마샤와 같이 통치 초기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후에 교만해져서 월권(越權)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다가 문둥병으로 죽었다(왕하 15:5).

(주); 요담 -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한 왕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산당들을 제하지 아니한 탓에 당시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할 수 있었다(왕하 15:32-38;대하 27:1-9).

성 경: [대상3:13]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아하스 - 그는 한 마디로 광적인 우상 숭배자였다. 즉 아하스(Ahaz)는 바알과 몰렉을 숭배하며 자신의 자녀를 불살라 우상에게 바친 자였다(왕하 16:3). 한편 그의 통치기간 동안(B.C.735-716)에 유다는 아람 왕 르신, 이스라엘 왕 베가, 에돔과 블레셋 등의 침공을 받았다(왕하 16:1-20;대하 28:1-27).

(주); 히스기야 - B.C. 728년부터 B.C. 687년까지 통치한 히스기야(Hezekiah)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힘을 주셨다'이다. 그는 우상을 파괴하고 예루살렘 성전 문을 다시 여는 등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체계화했고 십일조 제도도 다시 제정하였다. 이외에 정치, 군사 면에서도 그는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여 앗수르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왕하 18:1-20:21;대하 29:1-32:33).

(주); 므낫세 -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Manasseh)는 히스기야 왕과는 정반대로 부친이 파괴한 우상을 다시 건축하며 조부(祖父) 아하스 왕과 같이(대하 28:3) 인신(人身) 제사를 행하였다. 그러나 앗수르가 B.C. 650년 경에 유다를 침공하여 므낫세를 포로로 잡아갔을 때 그는 여호와의 징계하심을 깨닫고 회개하였다(왕하 21:1-18;대하 33:1--20). 그의 통치 기간은 B.C. 697-642년이다.

성 경: [대상3:14]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아몬 -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Amon) 역시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악을 행하였다. 그러나 므낫세는 회개한 반면,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는 데에 차이점이 있다(왕하21:19-26;대하 33:21-25). 아몬의 통치 기간은 2년이었는데(B.C.642-640) 불행히도 그는 자신의 신하에게 살해되었다(왕하 21:23).

(주); 요시야 - 8세에 즉위한 요시야(Josiah)는 즉위한 지 12년과 18년에 우상을 제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수축하는 등 일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왕하 22:1-23:30;대하34:1-35:27). 한편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후원해 주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고치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3:15]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요시야의 아들들...살룸이요 -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기록과는 달리 요시야 왕의 네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요시야 왕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의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즉,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느고에게 살해된 후 여호아하스(살룸)가 백성들 앞에서 왕위를 계승했으나(왕하 23:30-32),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여호야김(Jehoiakim)을 왕위에 앉혔던 것이다(왕하 23:34-36). 이와같이 외세(外勢)에 의해 왕이 선택된 이상 유다는 더이상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한편, 요하난(Johanan)은 요시야의 장남이었으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였고 살룸(Shallum)이 계승하였다. 살룸은 여호아하스의 별명으로(렘22:11) 왕적 호칭이다(Payne). 살룸은 여호야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먼저(B.C. 609년) 왕으로 선택되었다가 바로느고에 의해 여호야김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또한 그는 시드기야보다는 형이었으나 시드기야 뒤에 소개되었다(24:18;왕하 23:31). 한편 시드기야(Zedekiah)는 훗날 여호야김의 아들, 곧 조카인 여호야긴(Jehoiachin) 다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왕하 24:17).

성 경: [대상3:16]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솔로몬에서 시드기야까지의 족보]

(주); 여고냐 - 여호야김을 이어 왕이 된자로서 다른 이름은 여호야긴이다(왕하 24장;대하 36장). 그는 또한 고니야(Coniah)라고도 불리웠다(렘 22:24, 28;37:1).

(주); 그 아들 시드기야요 - 여기서 시드기야는 여고냐(여호야긴)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으나 사실은 여고냐(Jeconiah)의 삼촌이다. 왜냐하면 본 문맥에서 '아들'(*, 벤)은 왕위 계승자의 의미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드기야가 실제로 여고냐의 아들이었다면 그의 이름은 여고냐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는 17절 이하에서 소개되었을 것이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따라서 시드기야는 여고냐에 이어 왕이 된 여고냐의 삼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상과 관련, 10절에서부터 본절에까지 나오는 역대유다 왕들을 간략히 도표화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역대 이 름 재위 기간(B.C) 선악

1 르호보암 930-913 다악

2 아 비 사 913-910 다악

3 아 사 910-869 선

4 여호사밧 817-847 선

5 요 람 853-841 악

6 아하시야 841 악

7 아 달 랴 841-835 최악

8 요 아 스 835-796 다선

9 아 마 샤 796-767 다선

10 아 사 랴 791-739 다선

11 요 담 750-731 다선

12 아 하 스 735-716 최악

13 히스기야 728-687 최선

14 므 낫 세 697-642 최악

15 아 몬 642-640 최악

16 요 시 야 640-609 최선

17 살 롬 609 악

18 여호야김 609-598 악

19 여호야긴 598 악

20 시드기야 597-586 악

성 경: [대상3:17]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본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다윗 왕가의 순수한 혈통을 이어 받은 자손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렘 22:30)대로 다윗의 왕통을 잇지는 못하였다. 즉 B.C. 538년 유다 공동체의 회복을 바사로부터 보장받았을 때에 그들에게 왕위는 허락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가계(家系)가 끊임없이 이어짐으로써 메시야의 출현이 점점 임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유다 왕조는 몰락했지만 다윗의 가계를 통해 출현하신 메시야(눅 1:27)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17:7-14;삼하 7:8-16)은 완성된다.

(주); 스알디엘 - 눅 3:27에서 스알디엘(Shealtiel)은 네리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네리(Neril)는 솔로몬의 형제 나단의 후손이다. 그러나 B.C. 597년 바벨론의 제 2차 유다 침입시(왕하 24:8-16) 네리가 포로로 잡혀간 직후에 스알디엘은 여고냐의 양자가 된 것 같다(Payne).

성 경: [대상3:18]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세낫살 - '세낫살'(*)이란 이름의 뜻은 '신이여 아버지를 지켜 주소서'이다. 그런데 혹자는 세낫살을 스 1:8에 나오는 '세스바살'(*)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Payne). 그는 B.C. 538-537년 바벨론 포로의 귀환 때에 유다의 총독(목백)이었다. 만일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스바살은 그와 마찬가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유다 총독이 된 스룹바벨(19절;스 2:2)의 숙부(叔父)가 된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을 동일한 인물로 보면서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바벨론식 이름이라고 설명한다(Josephus). 따라서 위의 양 견해 중 어느쪽 견해가 보다 더 타당한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성 경: [대상3:19]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 - 스룹바벨(Zerubbabel)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유다의 총독이 된 인물이다(스 2:2). 그의 이름은 '바벨의 자손'이란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 스룹바벨은 브다야(Pedaiah)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지만 다른 곳(스 3:2, 8;학1:1, 12;마 1:12;눅 3:27)에서는 모두 브다야의 맏형인 스알디엘(17절)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당시의 수혼(搜婚)의 관습에 의해 생긴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히브리 사회에서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을 경우 그의 대(代)를 이어줄 책임이 그의 형제에게 있었던 것이다(신 25:5-10). 이러한 관습에 따라 브다야가 낳은 스룹바벨은 자식이 없이 죽은 스알디엘의 법적인 후사가 되었던 것이다(Payne, Lange, Wycliffe Bible Commentary). 한편 '수혼'과 관련해서는 룻 1:6-18 강해, '계대(繼代) 결혼의 성경적 의의'를 보다 참조하라.

(주); 므술람 - '화목', '친교'라는 뜻이다.

(주); 하나냐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주); 슬로밋 - '은혜로이'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3:20]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하수바 - '숙고'(consideration)라는 뜻이다.

(주); 베레갸 -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자'라는 뜻이다.

(주); 하사댜 -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주); 유삽헤셋 - '은혜가 회복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스룹바벨의 자녀들의 이름들에는 포로 해방을 맞아(대하 36:22, 23;스 1:1-4)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유다 백성들의 기쁨과 소망이 잘 반영되어 있다(Lange).

성 경: [대상3:21]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르바야의 아들...스가냐의 아들들이니 - 여기에 소개된 르바야(Rephaiah), 아르난(Arnan), 오바댜(Obadiah), 스가냐(Shecaniah) 이 네 가정들은 스룹바벨(19절)과 직접적인 혈연 관계가 없는 가정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르바야 앞에는 스룹바벨과의 혈연관계를 보여줄 접속사(*, 와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Vol. III,pp. 82ff). 그러나 이들이 다윗 계열에서 완전히 제외된 가정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 소개된 스가냐의 자손에 해당하는 핫두스(Hattush, 22절)가 다른 책에 분명히 '다윗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스 8:2). 따라서 이들은 스룹바벨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의 친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이와 달리 혹자(Bertheau)는 이들을 모두 스룹바벨의 직계 후손으로 보고 이에근거 본서의 저작 연대를 B.C. 330년대로 주장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Keil,Lange, Payn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왜냐하면 본서의 내적, 외적 증거에 의거할 때 본서의 저작 연대는 B.C. 450년경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본서 서론 '3.기록 연대' 참조.

성 경: [대상3:22]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스마야의 아들들은...여섯 사람이요 - 본절에 나오는 스마야(Shemaiah)의 아들들은 여섯이 아니라 모두 다섯 명이다. 추측컨대 이는 필사자(筆寫者)의 착오이거나 아니면 그의 실수로 한 사람이 누락된 것인 듯하다(Lange, Payne). 한편, 21b-23절에서 소개된 이름들은 모두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성 경: [대상3:23]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엘료에내 - 그는 스 8:4에서 '엘여호에내'(*)로 소개되었다. 그 이름의 뜻은 '내 눈이 여호와를 바라본다'이다.

성 경: [대상3:24]

주제1: [다윗 가계(家系)의 족보]

주제2: [여고냐의 후손]

(주); 호다위야 -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주); 엘리아십 -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다'는 뜻이다.

(주); 블라야 -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다'는 뜻이다.

(주); 요하난 - '여호와께서 은혜로 오셨다'는 뜻이다.

(주); 들라야 - '여호와께서 끌어올리셨다'는 뜻이다. 이상과 같이 이들의 이름들에는 바벨론에서 귀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에 관해서는 본장 17-24절 문단 강해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4:1]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유다의 아들들 - 여기서 '아들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브네이'(*)는 (1)문자 그대로 '아들들'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2) '후손들'이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후손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본절에 소개된 인물들은 베레스(Perez)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다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창 10:31, 32;출 9:4;레 25:46 등). 한편, 본절에서부터 23절까지는 유다의 단편적인 족보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2장의 유다 족보를 보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족보는 이곳 이외에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 베레스 - 유다가 며느리 다말(Tamar)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다. 2:4 주석 참조.

(주); 헤스론 - 베레스의 아들로서 이름의 뜻은 '울타리'이다. 2:5 주석 참조.

(주); 갈미 - 이 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서로 상충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즉, 일부는 이 갈미(Carmi)를 '헤스론의 아들 갈렙'(2:18)으로 보고 필사자가 오기(誤記)한 경우라고 주장한다(Payne, Curtis). 반면에 또 다른 학자들은 이자를 2:7에 나오는 세라의 후손 '가르미'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Keil, Bertheau, O Zockler). 그런데 본절이 유다, 베레스, 헤스론, 훌, 소발로 이어지는 유다의 직계 족보를 언급하고 있는 것임에 비추어 볼 때 양 견해 중 비교적 전자가 더 타당성이 있다. 물론 이에 맞서 카일(Keil) 등은 본 족보를 반드시 베레스와 헤스론의 혈통에 맞추어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强辯)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즉, 본 족보(1-23절)의 초점은 이스라엘 내에서 탁월했던 유다의 여러 가족들을 소개하는 데 있지 직계 후손으로 이어지는 어느 한 조상의 후손들을 소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를 위하여 먼저 유다, 베레스, 헤스론, 갈렙, 훌로 이어지는 유다의 5대 직계손을 언급한 다음에 소발의 후손(2-4절), 아스훌의 후손(5-8절), 야베스의 후손(9-12절) 및 기타 여러 후손(13-23절)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장 1-23절 문단 강해를 보다 참조하라.

(주); 훌 - 갈렙의 아들이자 모세의 성막 건축을 담당했던 브사렐(출 31:2-5)의 조부(祖父)이다. 2:19주석 참조.

(주); 소발 - 훌이 자신의 아내 에브랏(일명 에브라다)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소발(Shobal)은 기브온 족속의 옛 성읍인 '기럇여아림'의 창건자이다. 2:5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4:2]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본절은 2:52에 나오는 소발 자손의 계보를 보충하고 있는 부분이다.

(주); 르아야 - '르아야'(*)는 2:52의 '하로에'(*)와 동일 인물이다. 참고로 '르아야'는 '여호와께서 공급하셨다'는 뜻이며 '하로에'는 '선견자'란 뜻이다.2:52 주석 참조.

(주); 야핫 - 야핫(Jahath)이란 이름의 뜻은 '붙잡으시리라'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는 레위 자손 가운데서도 3명이나 나타난다(23:10; 24:22;대하 34:12).

(주); 아후매와 라핫...이는 소라 사람의 족속이며 - 아후매(Ahumai)와 라핫(Lahad)이 소라 족속의 조상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갈렙의 후손 소라 족속은 소라(Zorah) 땅에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예루살렘 서쪽 약 20km지점이다. 삿 13:2 주석 참조.

성 경: [대상4:3]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3, 4절은 훌의 아들 에담(Etam)의 자손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주); 에담 조상의 자손들 - 에담은 훌의 아들이다. 그의 후손들은 예루살렘 남쪽 유다 산지의 에담 성에 거주하였다(대하 11:6).

(주); 이스르엘 - 에담의 아들인 이스르엘(Jezreel)은 또한 유다 지파의 산성 이름이기도하다(수 15:56).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은 바로 이곳 이스르엘 출신의 여인이었다(3:1).

(주); 이스마와 잇바스와...하술렐보니 - 이스르엘과 함께 이들은 에담 족속의 조상 또는 그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이름들일 것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4:4]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그돌의 아비 브누엘 - 브누엘(Penuel)은 훌의 또 다른 아들이다. 그리고 '그돌의 아비'는 그돌(Gedor)을 창설하고 그곳에 정착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돌은 헤브론 근처 유다 산지의 성읍으로서(수 15:58) 오늘날의 베들레헴 근처 길벳 그둘(Khirbet Gedur)이다. 한편, 18절에서는 그돌의 또 다른 조상 예렛(Jered)이 소개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의 거민들이 두 가족의 후손들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Lange, Keil).

(주); 후사의 아비 에셀 - '그돌의 아비 브누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후사(Hushah) 역시 한 장소의 지명이다. 그렇지만 그곳의 위치나 그밖의 사항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성경에는 다윗의 용사 십브개가 후사 사람인 것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11:29;20:4;삼하 21:18;23:27).

(주); 베들레헴의 아비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소생 - 여기서 훌(Hur)이 베들레헴의 조상으로 기록된 것은 그의 아들 살마(Salma)가 베들레헴의 창설자였기 때문이다(2:51). 한편 에브라다(Ephratah)는 갈렙이 거느렸던 여러 아내 중 한 사람으로 일명 에브랏(Ephrath)으로 불리웠던 여인이다. 2:19주석 참조.

성 경: [대상4:5]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드고아의 아비 아스훌 - 아스훌(Ashur)은 헤스론의 유복자(遺腹子)이며(2:24) 훌의 삼촌이다. 그리고 드고아(Tekoa)는 예루살렘 남쪽 16km 지점에 위치한 유다 성읍이다. 2:24 주석 참조.

성 경: [대상4:6]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헤벨 - 헤벨(Hepher)은 성읍 헤벨의 창설자이든지 아니면 그곳의 조상일 것이다(Lange). 헤벨은 여호수아가 쳐서 멸망시킨 가나안 족속의 왕도(王都)로서(수 12:17) 유다 남부 답부아 근처에 위치하였다.

(주); 하아하스다리 - 이는 '아(하)스달의 자손'(one descended from A(ha) shtar)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아하스다리(Haahashtari)가 개인 이름인지 아니면 '아하스달 족속'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Payne, O. Zockler, Keil & Delitzsch).

성 경: [대상4:7]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세렛 - 세렛(Zereth)이란 이름의 뜻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는 야곱의 손자로서 세렛 가족의 시조였던 세렛(Sered)과는 분명히 구별된다(창 46:14).

성 경: [대상4:8]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고스 - 여기서 고스(Coz)와 아스훌(5절)과의 관계가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고스는 헬라(Helah)가 아스훌에게서 낳은 아들들(7절) 중의 한 명인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그의 이름과 유사한 '학고스'(*)는 레위 자손이다(스2:61;느 3:4).

(주); 아눕 - 그는 아마도 유다의 아납(Anab) 성읍의 조상일 것이다(수 11:21). 한편 그밖의 고스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성 경: [대상4:9]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 야베스(Jabez)에 대해 우리가 달리 알 수 있는 사항은 없다. 다만 훌의 후손들 중 서기관 족속이 야베스라는 곳에 거하였다는 사실이 성경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2:55). 만일 야베스가 2:55의 지명 야베스와 어떤연관이 있다면 그는 훌의 아들 소발(2:50)의 후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는 본절에 의거하여 야베스가 고스(8절)의 형제이거나 아니면 고스의 아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한다(Keil, Lange). 한편 야베스는 고통이란 뜻의 '아차브'(*)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고통의 아들'이란 뜻이다(Lange).

성 경: [대상4:10]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유다의 후손]

(주); 야베스가...하나님께 아뢰어 - 여기서 '아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라'(*)는 '부르짖다'는 뜻이다. 이는 곧 야베스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간청하였음을 의미한다.

(주);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 여기서 '근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추비'(*)는 곧 '나의 고통'이란 뜻이다. 이는 곧 그의 이름의 뜻과 유사하다. 아무튼 본절로 보아 야베스는 자기에게 있는 심적, 육적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여기서 '허락하셨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베'(*)는 '이루다', '가져오다'는 뜻이다(창 18:19;출 35:29;겔33:2). 따라서 본절은 야베스가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셨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과 간절함으로 구하는 기도가 응답받는 모범적인 신앙의 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즉, 고통의 아들은 기도로써 다른 형제보다 더 존귀하고 명성있는 자(9절)가 되었던 것이다(Keil). 이와 관련해서는 삼상 1:9-18 강해, '기도와 기도의 응답'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4:11]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수하의 형 글룹 - 이는 헤스론의 아들 갈렙(2:18)이나 여분네의 아들 갈렙(15절)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한편 수하(Shuhah)라는 이름은 본절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름의 뜻은 '의기 소침'이다.

성 경: [대상4:12]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이르나하스 - 사해 남쪽 아라비아 광야 서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벳 나하스(Khirbet Nahas)이다. 한편, 이르나하스(Ir-nahash)의 뜻은 '악마의 성읍'이다.

(주); 레가 사람 - 레가(Rechah)는 유다의 한 성읍으로 생각되나 그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레가'가 '레갑'(Rechab)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레가를 레갑과 동일 인물로 볼 경우 본절은 2:55과 연결되어 질 수 있다. 한편 레갑 족속은 모세의 장인 호밥이 속했던 족속으로 겐 족속 혹은 미디안 족속이라고도 하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쉽게 동화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겼던 족속이다(창 15:19;삿1:16;4:11;렘 35:2). 이같이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도 계보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17, 18절), 우리는 이방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엿볼 수 있다(사 9:1;42:1, 6). 한편 구약 성경에서 이방인으로서 언약 백성의 계열에든 대표적 인물들로서는 다말(창 38장:마 1:3), 라합(수 6:22, 23;히 11:31), 룻(룻4:13; 마 1:5) 등이 있다.

성 경: [대상4:13]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그나스의 아들들 - 혹자는 그나스(Kenaz)가 헤스론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나(Keil, Lange) 본 문맥에서 그나스와 헤스론의 관계를 맺어주는 어떠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반면, 그나스는 남부 팔레스틴의 이방 족속으로서(창 15:19) 겐 족속과 갓몬 족속사이에 거주한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여기서 '그나스의 아들들'이란 말은 본래 그나스 족속에 속했으나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하여 유다 지파 사람이 된 외국인 곧 '게르'(*)를 의미하는 것 같다(Payne). 한편, 그나스는 일명 그니스(Keniz)로 표기되기도 하였다(수 14:6).

(주); 옷니엘 - 가나안 정복시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에서 잔존해 있던 이방인들을 몰아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수 15:13-19).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최초의 사사이기도 하다(삿 3:9). 본서 기자는 바벨론 귀환 후의 유다인들에게 가나안 정복 당시의 기상과 신앙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그들로 민족 재건에 솔선하게끔 하기 위해, 유다 지파의 용장(勇將)이었던 옷니엘을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대상4:14]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요압은 게하라심의 조상이라 - 여기서 '게하라심'(*)은 '장인(匠人)들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는 곧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의 직업에 따라 지명이형성된 경우이다. 요압(Joab)은 이곳 게하라심에 마을을 건립한 창립자이다. 그런데 게하라심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주); 저희들은 공장이었더라 - '공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쉼'(*)은 '파다', '새기다'는 뜻의 동사 '하라쉬'(*)에서 파생된 말로서 금속을 조각하는 전문 세공인을 의미한다(29:5;호 8:6;사 40:19). 그런데 이 말은 때에 따라 대장장이(삼상 13:19)나, 목수, 건축가(왕하 12:12)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종한 그나스 족속의 자손들은 게하라심에 모여 전문적인 기능을 발휘하였다. 한편 이밖에도 본장에 열거된 유다 지파의 계보 내에는 방직업자(21절), 옹기장이와 정원사(23절) 등과같은 여러 직업이 나와 있다. 이와 관련 성경에 소개된 직업들을 참고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직 종 성 구 직 종 성 구

간 수 행16:23 사 관 삼하8:16

감 역 관 삼하20:24 상 인 느13:20

객 점 창42:27 서 기 관 삼하8:17

고리대금업 출22:25 세 탁 자 사7:3

고 지 기 스1:8 교 사 왕하2:3

구리장색 딤후4:14 시 인 민21:27

군 사 마8:9 악 사 시68:25

금 장 색 느3:31 어 부 사19:8

농 부 왕하25:12 옷감장수 행16:14

동산지기 요20:15 요 리 사 삼상8:13

랍 비 마23:7-8 장막짓기 행18:3

마 부 삼상8:11 장 인 잠26:10

목 수 삼하5:11 청 지 기 창43:16

목 자 창13:7 파 수 꾼 삼상14:16

무 녀 사57:3 포도원지기 아1:6

문 지 기 삼하18:26 피 장 행9:43

배만드는자 왕상9:26 향제조자 삼상8:13

법 률 사 단3:2 항 해 사 시107:23

변 사 행24:1 환 전 상 요2:14,15

복 술 사 신18:10

성 경: [대상4:15]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여분네의 아들 갈렙 - 헤스론의 아들 갈렙(2:18)이 아니라 그 유명한 모세의 정탐꾼 갈렙을 가리킨다(민 13:6). 그는 사사 옷니엘의 큰아버지이기도 하다(수 15:17). 즉, 옷니엘의 아버지 그나스는 갈렙의 아우였다. 수 15:17 주석 참조. 그런데 옷니엘은 갈렙의 딸 악사를 아내로 맞이하였다(수 5:16-19).

성 경: [대상4:16]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십 - 그는 유다 산지의 성읍인 십(Ziph)의 창설자이다. 그런데 헤스론의 아들 갈렙의 아들인 메사(Mesha) 또한 십의 창건자였다. 2:42 주석 참조.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제각기 십의 건설에 관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십은 헤브론 남동쪽 6.4km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지프(Tell Zif)이다.

성 경: [대상4:17]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에스드모아 - 헤브론 남쪽으로 14.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에스 세무아(es Semua)이다. 본래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으나 후에 제사장 아론 자손에게 할당되었다(수 21:14).

(주); 이스바 - 메렛(Mered)이 바로의 딸 비디아에게서 낳은 아들이다(18절).

성 경: [대상4:18]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메렛의 취한 바로의 딸 비디아 - 메렛이 취한 비디아(Bethiah)는 분명 애굽 여인이며 바로 왕의 딸이다. 왜냐하면 바로 뒤이어 소개된 메렛의 또 다른 아내 '여후디야'(Jehudijah)는 '유대 여인'이란 뜻으로 바로의 딸과 대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메렛이 어떻게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혹자는 메렛이 당시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창 41:41-45)의 영향으로 바로의 딸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Payne).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메렛은 이스라엘인들의 애굽 체류 초기 시대(약 B.C.1800년이전)의 인물인 셈이다.

(주); 여후디야 - '여후디야'(*)는 '유대 여인'이란 뜻으로서 '바로의 딸'이란 말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는 개인의 고유한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Wycliffe Bible Commentary).

(주); 그돌의 조상 예렛 - 그돌(Gedor)은 헤브론 근처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에 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소고 - 유다 산지의 남단(南端)에 위치한 곳이며 에스드모 지역에 있는 열 한 성읍 중의 하나이다(수 15:48). 이곳은 헤브론 서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오늘날의 길벳 슈웨이케 (Khirbet Shuweikeh)이다.

(주); 사노아 - 유다 산지의 촌락에 있는 한 성읍이다(수 15:55-57).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읍을 재건한 자들 중에는 이곳 사노아(Zanoah) 거민들도 있었다(느 3:13).

성 경: [대상4:19]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나함의 누이인 호디야의 아내 - 여기서 호디야(Hodiah)는 나함의 '누이'(*, 아훗)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뒤따르는 '아내'(*, 에쉐트)라는 말로 미루어 보아 그는 실상 남자인 것 같다(Keil, Lange). 한편 그와 동일한 이름은 레위 자손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느 8:7;9:5;10:10).

(주); 가미 사람 그일라의 아비 - 가미 사람(the Garmit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르미'(*)는 '뼈대', '골격'을 의미하는 '게렘'(*)에서 파생된 말인듯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이 족속의 골격이 장대했거나 힘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한편, 그일라(Keilah)는 헤브론 북서쪽 13.6km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벳 킬라(Khirbet Qila)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은 유다의 성읍 중 하나였다(수 15:44;느 3:17, 18).

성 경: [대상4:20]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레가 및 그 외 족속]

(주); 이시 - 이름의 뜻은 '유익한 자'이다. 그런데 그는 여라므엘 자손 압바임의 아들이시(Ishi, 2:31)나 세일 산에서 아말렉 족속을 쳐부순 시므온 사람 이시(42절)와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4:21]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셀라의 후손]

(주); 유다의 아들 셀라 - 셀라(Shelah)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로 말미암아 낳은 세번째 아들이다. 그에게는 형 에르와 오난이 있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진노의 죽임을 당하였다. 2:3 주석 참조.

(주); 마레사의 아비라아다 - 마레사(Mareshah)는 유다의 저지대에 있던 성읍으로서 훗날 르호보암 왕에 의해 요새화 되었다(대하 11:5, 8). 그곳은 엘류데로 폴리스 남동쪽으로 1.6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산다한나'(Tell Sandahannah)이다.

(주); 세마포 짜는 자의 집 - 세마포(Linen)는 아마(亞麻)실로 짠 직물을 가리킨다. 고대 당시 아마 초목은 값비싼 농작물이었던 까닭에 왕실과 부유한 사람들, 그리고 제사장등과 같은 극소층만이 착용할 수 있었다. 한편 아마 실로 베를 짜는 일은 주로 여인들이 담당하였는데(출 35:25)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재능으로도 이해되었다(출 35:35;38:23). 출 27:9 주석 참조. 본절은 르우벤 지파 아스베야의 집안이 바로 이 같은 직조업에 종사하였음을 보여 준다.

성 경: [대상4:22]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셀라의 후손]

(주); 고세바 - 유다 평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는 곧 그일라 북서쪽 4km지점에 위치한 악십(Achzib)과 동일한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 모압을 다스리던 사랍 - 모압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고원 지대이다(신 1:5). 사랍(Saraph)은 이곳 영토를 다스리다가 유다 지파의 지경으로 옮겼을 것이다.

(주); 야수비네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슈비 레헴'(*)은 '그가 레헴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만일 이 해석이 옳다면 사랍은 모압에서 레헴으로 돌아온 것이 된다. 그런데 레헴(Lehem)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주); 이는 다 옛 기록에 의지한 것이라 - 여기서 말하는 옛 기록이 어느 시대의 어떤 기록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이는 역대로부터 전해져 내려 오던 유다 지파의 족보 따위일 것이다.

성 경: [대상4:23]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셀라의 후손]

(주); 이 모든 사람은 옹기장이가 되어 - 여기서 이 모든 사람이 21, 22절에 기록된 셀라의 모든 자손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22절에 기록된 자손들만을 의미하는지는 결정하기 애매하다. 혹자는 21절에서 '세마포 짜는 자의 집'이란 말이 나오므로 이는 22절에 기록된 자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Bertheau). 그러나 거기서 세마포 짜는 자의 집은 '아스베야의 집'에만 해당되므로 우리는 이 말이 21, 22절에 나오는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Keil, Lange).

(주); 수풀과 산울 가운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느다임 우그데라'(*)는 지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은 듯하다. 왜냐하면 이 중 그데라는 유다의 저지대 구릉지(세벨라)에 있는 14 성읍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수 15:36). 따라서 '수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느다임도 지명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The WycliffeBible Commentary). 이에 따라 현대의 몇몇 영역본들은 본절을 'at Netaim andGederah'로 번역하고 있다(NIV, Ling Bible).

(주); 거기서 왕과 함께 거하여 왕의 일을 하였더라 - 본절은 이 옹기장이들이 왕과 친분을 나누며 그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왕의 농장이나 경작지에서 봉사하면서 본연의 옹기장이 일에 종사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유다의 모든 왕들이나 왕족들은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그곳에 일꾼을 두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그곳에 일꾼을 두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게 하였다(27:25-31;삼하 13:23;대하26:10). 바로 이와 같은 왕의 농장에서 이들은 왕을 위해 종사했던 것이다. 한편, 왕국 분단의 기간 동안에(B.C. 930-586) 옹기 만드는 수공업이 왕의 후원을 받아 대대로 계승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은 오늘날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의해 입증되었다(R.A.Stewart Macalister).

성 경: [대상4:24]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의 후손]

(주); 시므온의 아들들 - 시므온(Simeon)은 야곱이 레아를 통해 낳은 둘째 아들로서(창29:33) 세겜의 왕자가 그의 누이 디나를 강간했을 때 레위와 함께 속임수로 세겜족을 학살한 인물로 유명하다(창 34:24-30). 이러한 행위로 말미암아 그는 임종(臨終)하는 야곱으로부터 그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 전역에 흩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다(창 49:5-7). 한편 시므온 지파 중 일부 자손들은 유다 서남부의 건조한 땅에 정착하였는데 그것도 실은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양도받은 땅이었다(수 19:1-9;15:26, 28-32;삿 1:3). 때문에 그후 유다 지파 내에서의 시므온 지파는 유다가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유다 지파 내에 융화되었다(수 21:9;삿 1:17). 한편, 본절로부터 43절까지에나오는 시므온 지파의 족보는 창 46:10;출 6:15;민 26:12-14에 나오는 족보보다 더 자세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 느무엘과 야민과 야립과 세라와 사울이요 - 본래 시므온의 아들은 모두 여섯이다(창 46:10;출 6:15). 그러나 여기서는 그중 종족을 형성하지 못한 오핫(Ohad)은 제외되었고 종족을 형성한 다섯 아들들만이 소개되어 있다(민 26:12-14). 한편, '야립'(*)은 다른 곳에서는 '야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필사자에 의한 오기임이 분명하다(Keil). 이밖에도 다른 곳에서 본절의 느므엘(Nemuel)은 여무엘(Jemuel)로, 세라(Zerah)는 스할(Zohar)로 각기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창 46:10).

성 경: [대상4:25]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의 후손]

(주); 사울 - 가나안 여인의 소생이다(창 46:10). 즉 시므온은 가나안 여인에게서 사울(Saul)을 낳았다. 이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왕 '기스의 아들 사울'(삼상 9:1, 2)과는 구별된다.

(주); 밉삼...미스마 - 이들은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이름이 동일하나 전혀 다른 인물들이다(1:29, 30;창 25:13, 14).

성 경: [대상4:26]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의 후손]

(주); 시므이 - 이름의 뜻은 '유명한 자'이다. 그런데 다윗 시대 당시 다윗을 저주했던 베냐민 지파 사람도 시므이(Shimei)이다(삼하 16:5-8). 그리고 레위의 후손 가운데도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몇 명 있다(6:42;23:7, 9;25:17;대하 29:14;31:12).

성 경: [대상4:27]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의 후손]

(주); 시므이는 아들 열 여섯과 딸 여섯이 있으나 - 시므온의 자손들 중 가장 크게 번성한 시므이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을 통해 시므온 지파의 명맥이 유지되었던 것 같다(Keil).

(주); 그 형제에게는 자녀가 몇이 못되니...번성하지 못하였더라 - 여기서 '그 형제'란 시므이의 형제란 의미보다는 시므이 외에 그밖의 모든 시므온 자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본절에는 '온 족속'이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편, 모세의 인구 조사에서도 시므온 지파의 수는 실제로 유다 지파의 수보다 훨씬 적게 계수되었다(민 1:23, 27).

성 경: [대상4:28]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브엘세바 - 유다 네겝 지방의 성읍인 브엘세바(Beer-sheba)는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삿 20:1;삼상 3:20;삼하 3:10;24:7). 그곳은 곧 헤브론 서남쪽55km 지점이다. 때문에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전국토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곧잘 사용되었다(21:2;대하 30:5). 한편 브엘세바는 남부 유다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였다(대하 19:4).

(주); 몰라다 - 브엘세바에서 가까운 네겝 지방의 성읍이다. 이곳은 바벨론 포로 귀환 때에 유다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느 11:26). 한편 혹자는 헤스론의 장남 여라므엘의 아들 몰릿(2:29)에서 '몰라다'(Moladah)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추측한다(Baly).

(주); 하살수알 - 브엘세바와 인접한 곳이다. 본래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으나(수 15:28) 후일 시므온 지파에게 주어졌다(수 19:3).

성 경: [대상4:29]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빌하 - 추측컨대 수 15:29의 바알라(Baalah)와 동일 지역인 듯하다. 바알라는 에돔 경계 인근의 성읍이다.

(주); 에셈 - 이스라엘 최남단의 성읍으로 브엘세바 남동쪽 19.2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주); 돌랏 - 남부 유다의 성읍으로 일명 엘돌랏(Eltolad)이라고도 불리웠다(수 15:30). 그 위치는 브엘세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20km 지점이다.

성 경: [대상4:30]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브두엘 - 헤브론 남쪽의 오늘날의 길벳 엘 카랴테인(Khirbet el- Qaryatein)이다(Grolenberg).

(주); 호르마 - 브엘세바 근처의 성읍이다. 이곳 역시 본래는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으나(수 15:30) 이후에 시므온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 19:4;민 14:45;삼상 30:30).

(주); 시글락 - 유다의 네겝 지방의 성읍으로서 헬 베이트 미르심에서 서남방쪽으로 8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 쿠웨일페(Tell el- Khuweilfeh)이다. 이곳은 사울시대에 블레셋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나 다윗 당시 다시금 가드 왕 아기스에게서부터 되돌려 받았다(12:1,20; 삼상 27:6; 30:1-30).

성 경: [대상4:31]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벧말가봇 - 이 지명의 의미는 '병거의 집'이다. 그런데 수 15:31에는 맛만나(Madmannah)로 소개되어 있다. 추측컨데, 이 성읍이 병거의 집(창고)으로 사용되었을때 본래의 이름인 맛만나가 벧말가봇(Bath-marcaboth)으로 바뀐 듯하다(Keil).

(주); 하살수심 - '말의 촌락'이란 뜻이다. 그런데 수 15:31에서는 산산나(Sansannah)로 기록되어 있다. 이 역시 벧말가봇과 같은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벧말가봇과 하살수심(Hazar-susim)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주); 벧비리 - 분명치는 않지만 아마도 '벧 르바옷'(수 19:6)에 대한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름인 듯하다(Payne).

(주); 사아라임 - 수 19:6에서는 사루헨(Sharuhen)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가사 남쪽약 30km지점이다.

(주); 다윗왕 때까지 이 모든 성읍이 저희에게 속하였으며 - 혹자는 본절을 삼상 27:6과 관련시켜 해석한다(Curtis,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즉, 삼상 27:6에는 가드왕 아기스가 시글락(Ziklag)을 다윗에게 주었으며 그 후로 시글락이 유다왕에게 속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구절에 근거하여 일부 학자들은 본문(28-31절)에 언급된 성읍들의 소유가 다윗 왕 때에 시므온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넘어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보다 더 우월한 견해는 다윗 통치하에서 유다 지파의 지배권이 강해지자 압력에 의해 시므온 지파 사람들이 그 성읍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버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4:32]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그 향촌은...다섯 성읍이요 - 이 성읍들은 다윗 때에 이주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지켰던 시므온 지파의 성읍들이다(Keil). 한편, 본절에는 다섯 성읍이 언급되었으나 병행 구절인 수 19;7에서는 도겐(Tochen)이 제외된 채 네 성읍만이 언급되었다. 아마도 도겐은 가나안 기업 분배 당시에는 성읍으로서의 규모를 갖추지 못했으나 점차 성읍으로서의 규모를 갖추었기에 본절에 언급된 듯하다.

(주); 에담 - 이는 베들레헴과 드고아 사이에 있는 에담(Etam)이 아니고(대하 11:6) 유다 남부 지방에 있는 성읍이다(삿 15:8, 11).

(주); 아인과 림몬 - 이 둘은 한지역으로 합쳐져 아인림몬, 또는 에느림몬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느 11:29). 이곳은 브엘세바 북동쪽 14km지점이다.

(주); 아산 - 네게브 남서쪽에 위치한 유다의 성읍이다(수 15:42). 또한 이곳은 레위인의 성읍이기도 하였다(6:59).

성 경: [대상4:33]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거주지]

(주); 바알까지 미쳤으니 - 시므온 지파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한편 바알(Baal)은 네게브 남쪽에 위치한 바알랏 브엘(Baalath-beer)과 동일한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수 19:8).

(주); 주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솨브'(*)는 '거주하다'는 의미의 동사'야솨브'(*)에서 파생된 말로 정착지를 의미한다.

성 경: [대상4:34,35]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족장들]

(주); 스라야의 손자...예후 - 예후(Jehu)란 이름의 뜻은 '그는 여호와이심'이다. 성경에는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몇 명 나온다. 곧 하나니의 아들이자 선지자인 예후(왕상 16:1), 북이스라엘의 10대 왕인 예후(왕상 19:16), 유다 지파 예후(2:38) 등이다.

성 경: [대상4:36,37]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족장들]

(주); 시사 - 본절에는 시사(Zeza)의 계보가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그의 이름의 뜻은 '풍부'이다.

성 경: [대상4:38]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족장들]

(주); 다 그 본족의 족장이라 - 여기서 '족장'이란 실제로 한 족속의 족장을 가리키기보다는 단지 한 족속에서 갈라져 나온 '소가족(小家族)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Keil &Delitzsch, Vol. III. p.101).

성 경: [대상4:39]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정복 사업]

(주); 그돌 지경 - '지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보'(*)는 도시(삿 1:24)나 성전(대하 23:13)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의미한다. 한편, 여기서 그돌(Gedor)은 유다 산지에 위치한 그돌과는 다르다(4, 18절). 왜냐하면 시므온 지파 사람들이 유다 지파에 속한 성읍을 정복하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절의 그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70인역(LXX)에서 이를 블레셋 방향의 가사 남부 성읍인 '그랄'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본절의 '그돌'(*)을 70인역에서처럼 '그랄'(*)과 동일시할 수 있는 개관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Keil, Lange), 그것만 가지고서는 그돌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시므온 지파의 공격대가 이곳에서 세일 산으로 향했다는 구절로 보아(42절) 이곳은 사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ayne).

성 경: [대상4:40]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정복 사업]

(주); 그 땅이...안정하니 - '안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케트'(*)는 본래 '쉬게 하다', '진정시키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수11:23).

(주); 이는 옛적부터...까닭이라 - 한글 개역 성경의 본 번역은 앞 문장과의 연결 관계상 다소 애매하다. 따라서 '그때까지 거기에는 함족이 살고 있었다'로 번역 한 공동 번역및 Living Bible을 참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주); 함의 자손 - 이들은 함 족속(Hamites) 가운데서도 특별히 가나안 땅에 거하던 가나안 족을 의미한다(Keil, Lange). 왜냐하면 이들이 옛적부터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창 10:6 주석 참조.

성 경: [대상4:41]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정복 사업]

(주); 유다 왕 히스기야 때에...진멸하고 - 본절은 히스기야 당시(B.C.728-687)의 역사적한 단편을 보여 준다. 즉, 당시 앗수르는 지중해로부터 바사에 이르기까지의 대 제국을 건설하여 날로 확장일로에 있었다. 따라서 팔레스틴 지역은 언제 앗수르에게 짓밟힐지 모르는 위기 상황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앗수르왕 사르곤(B.C.722-705)의 죽음과 더불어 팔레스틴 전역에서는 저항과 모반의 기운이 감돌았으며, 유다 왕 히스기야는 그 저항 운동의 선봉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의 중심 성읍들을 요새화(要塞化)하였으며, 이 저항 운동에 가담하기를 거부한 나라들을쳐서 굴복시켰다. 본절의 정복 기사는 바로 그러한 정벌 사업의 대표적 사료에 관한 것이다(왕하 18:7, 8).

(주); 모우님 사람 - 모우님인(Meunites)은 사해의 동남쪽에 위치한 마안(Maan) 성읍을 중심으로 에돔 동쪽 변경에 거주했던 족속이다. 이들은 비록 에돔(세일)족은 아니었으나 에돔족과 동맹 관계가 있었다.

성 경: [대상4:42]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정복 사업]

본절과 다음 절은 34-41절의 제 1차 이주와는 또 다른 시므온 지파의 제 2차 이주에 대한 기록이다.

(주); 세일 산 - 에돔 지경(地境)의 산으로 아라바 저지대 동쪽에 위치해 있다. 본래 이곳에는 호리족(Horites)이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정복하고 대신 그곳에 거하였다(창 32:3;신 2:12).

성 경: [대상4:43]

주제1: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주제2: [시므온 후손의 정복 사업]

(주); 피하여 남아 있는 아말렉 사람 - 예전에 사울(삼상 14:47, 48;15:7)과 다윗(삼상30:17, 18;삼하 8:12)이 아말렉을 침공한 사건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Payne, Keil). 아말렉은 에돔족의 일족으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최초로 대적한 족속이었다(출17:8-16;민 24:20;신 25:17-19;삿 3:13;시 83:7, 11). 1:36 주석 참조. 그러나 시므온 지파는 그 같은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으려는 목적보다는 좋은 초원을 얻기 위해 아말렉의 잔여 인구를 진멸하였을 것이다(Payne).

(주); 오늘까지 거기 거하였더라 - 여기서 '오늘까지'라는 말은 본서를 저작하던 당시를 의미하는 말이다. 본서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인 B.C. 450년 경에 저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본절은 그때까지 시므온 지파가 그곳에 안정되이 거하였음을 보여 주고있다. 본서 서론, '기록 연대' 참조.

성 경: [대상5:1]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장자의 명분]

본절에서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요단 동편에 위치한 지파들(르우벳, 갓, 므낫세 반지파)에 대한 기록이다. 이들 지파들은 함께 기업을 받았으며(수 13:8-12) 함께 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수 22:10, 27, 34). 또한 이들은 지형적 특성상 이방인들과 싸움에 있어서도 함께 연합하여 싸웠다(민 32:25-27;수 4:12, 13).

(주); 르우벤은...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 야곱의 장자(長子) 르우벤(Re-uben)이 야곱의 첩 빌하와 근친 상간을 범한 것을 가리키는 구절이다(창 35:22). 그는이 죄로 말미암아 장자권적 주도권은 유다에게 넘겨 주고 말았으며(2절; 창 49:8), 두몫을 차지하는 장자의 상속권(신 21:17)은 요셉에게 넘겨 주고 말았다(창 49:3,4).

(주); 장자의 명분이...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 요셉의 장자권은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 성취되었다. 즉, 요셉은 두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내에서 두 기업(基業)을 획득하였다(창 48:22).

(주);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 본 족보가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었다면 요셉의 후손들이 먼저 소개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족보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저자의 구속사적(救贖史的) 시각에 따라 기록된 것이어서 요셉의 후손들이 나중에 기록되어 있다(23, 24절;7:14-29).

성 경: [대상5:2]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장자의 명분]

(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 여기서 '뛰어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바르'(*)는 '우세하다',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다른 지파에 비해 숫자적으로 월등한 유다 지파의 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민 1:27). 유다 지파는 이와 같은 월등한 세력으로 인해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 군대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삿1:1-21).

(주);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 이는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삼하 5:1-3). 다윗은 실로 하나님께서 택정하셨던 이스라엘의 목자이자 주권자로서 장차 유다 지파의 계통을 좇아 탄생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28:4). 이와 관련해서는 야곱이 임종시(臨終時)에 유다 자손들에게 베풀었던 축복을 살펴 보라. 창 49:8-12 주석 참조.

성 경: [대상5:3]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르우벤의 아들들은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 본절은 모세 오경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창 46:9;출 6:14;민 26:5, 6). 그러나 4-10절에 나오는 족보 및 기사는 오직 본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하녹(hanoch)은 '시작'이란 뜻이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르우벤 가문의 제 2대가 비롯된 것임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발루(Pallu)는 '뛰어남'이란 뜻이다. 그는 르우벤 지파의 우두머리 중 하나가 되었다(출6:14). 그리고 헤스론(Hezron)은 '둘러싸다'란 뜻이며 갈미(Carmi)는 '포도 재배자'란 뜻이다.

성 경: [대상5:4]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요엘 - 전후 문맥으로 보아 요엘(Joel)은 앞에서 소개된 르우벤의 네 아들 중 한 아들의 후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누구의 후손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으니 더 이상의 사실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학자에 따라서는 요엘을 3절에 나오는 하녹 또는 갈미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P.C.Barker). 한편 '요엘'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그의 하나님'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 중에는 선지자 요엘(욜 1:1)이 유명하다.

성 경: [대상5:5]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바알 - 시므온 지파의 경계 성읍인 바알(4:33)과는 달리 여기서의 바알(Baal)은 사람의 이름이다. 그 이름의 뜻은 '주인', '소유자'인데 기브온 사람 여이엘의 아들 이름도 또한 바알이다(8:30).

성 경: [대상5:6]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브에라니 저는 르우벤 자손의 두목 - 여기서 '르우벤 자손의 두목'이란 르우벤 지파 전체의 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씨족의 족장을 의미한다(Keil, Lange). 한편, 브에라(Beerah)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주);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로잡힌 자라 - 앗수르는 3차에 걸쳐 북왕국 이스라엘 치하(治下)의 팔레스틴을 원정하였다(제 1차:B.C. 743년, 제 2차:B.C. 735년, 제 3차:B.C. 733-732년). 본절의 사건은 그 중 B.C.733년의 원정 때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때에 디글랏빌레셀은 팔레스틴 전역을 침공하였고 이스라엘 대부분의 도시들을 정복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15:29). 한편 그때의 디글랏빌레셀은 살만에셀5세의 아비인 디글랏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 B.C.745-727)이다. 이에 관한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하 15:2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5:7]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저의 형제 - '형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는 '형제'라는 뜻 이외에 '친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13:8;29:15;신 24:7). 그리고 같은 지파의 사람을 지칭할 때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민 16:10;삿 14:3). 본절 역시 바로 그와같은 경우이다. 왜냐하면 브에라의 형제로 소개된 여이엘, 스가랴, 벨라는 실상 브에라와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10절). 한편 여이엘(Jeiel)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심'이란 뜻이며 스가랴(Zechariah)는 '계속하다'란 뜻이다.

성 경: [대상5:8]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벨라는...요엘의 증손이라 - 벨라(Bela)란 이름의 뜻은 '파멸'이다. 그리고 본절의 요엘은 4절에 소개된 요엘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Lange).

(주); 아로엘 - 사해 동쪽 22km지점으로 아르논 강 북쪽,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성읍이었다. 이 성읍은 본래 아모리 왕 시혼의 통치 구역이었으나 모세 때에 이스라엘이 정복하였다(신 2:36;3:12;4:48;수 12:2, 6;13:9, 16). 그후 이곳은 르우벤 지파의 남쪽 경계지가 되었다(수 13:16). 그런데 이곳에는 예레미야 시대까지 모압 족속이 남아 있었다(렘 48:18-20).

(주); 느보 - 느보 산(Mt. Nebo) 고지(高地) 또는 그 주변에 위치했던 모압 족속의 옛 성읍으로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모세에게 자기들의 기업으로 달라고 요청하여 얻은 곳이다(민 32:3). 이곳은 한때 모압 왕 메사(Mesha)의 수중에 넘어가기도 하였다(사15:2;렘 48:1,22).

(주); 바알므온 - 본래 모압의 성읍이었다가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이 성읍은 사해 동쪽으로 약 12.8km, 사해의 북단에서 약 9.6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마인(Main)이다. 이 성읍은 일명 벧 바알 므온(수 13:17), 벧므온(렘 48:23), 브온(민 32:3)으로도 불리웠다.

성 경: [대상5:9]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광야 지경까지 미쳤으니 - 유브라데(Euphrates) 강은 길이가 약 2,848km에 이르는 장강(長江)으로서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 때 동북 경계선을 이루었다(삼하 8:3;10:16;왕상 4:24). 이 강은 서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아르메니아(Armenia) 산맥에서 발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한편 여기서 광야는 길르앗 동쪽에 위치한 수리아 광야를 가리킨다.

(주); 길르앗 - 광의적(廣義的)인 의미에서 요단 동편의 전지역을 일컫는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요단 강, 북쪽으로는 야르묵(Yarmuk) 강, 동쪽으로는 얍복 강의 두 지류와 아라비아(수리아) 사막, 남쪽으로는 아르논(Arnon) 강에 인접해 있었다. 즉 구약에서 길르앗(Gilead)은 종종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전 영토를 통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Lange). 민 32:26 주석 참조.

(주); 그 생축이 번식함이라 - 이는 르우벤과 갓 지파가 길르앗 땅을 요구했던 본래의 목적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던 그들은 길르앗땅이 목축에 적합한 곳임을 보고서 그 땅을 기업으로 요구했었기 때문이다(민32:1-5).

성 경: [대상5:10]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의 후손]

(주); 하갈 사람 - 길르앗 동방 지역에 거주하던 아람 족속이다(19절). 이들은 여두르(Je-tur), 나비스(Naphish) 등과 더불어 모두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Hagar)의 후예들이다(19절;창 25:15).

(주); 장막에 거하였더라 - 장막은 두 겹의 천과 두 겹의 가죽으로 된 천막으로(출 26:7,14, 15) 유목민의 특수한 주거 시설이다. 이는 조립 및 분해가 가능하므로 목초지(牧草地)를 찾아 여기저기 이동 생활을 해야 하는 유목민들에게 적합한 형태의 가옥이다. 아무튼 본절은 벨라의 가족들(8, 9절)이 길르앗 동편에까지 진출하여 유목 생활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성 경: [대상5:11]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갓 자손 - 본절에서부터 17절까지에는 갓 지파가 소개되고 있다. 갓(Gad)은 야곱의 일곱째 아들이며 레아의 종 실바의 소생이다(창 30:11). 갓은 야곱으로부터 그의 후손들이 용맹한 자들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창 49:19). 그의 후손들은 르우벤 지파의 바로 북쪽에,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의 남쪽에 거주하였다.

(주); 바산 - '비옥하고 돌이 없는 평지'라는 뜻의 바산(Bashan)은 요단 강 상부 동편, 곧 갈릴리 바다에 인접해 있는 비옥하고 광활한 지역이다. 이곳은 대략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 동쪽으로는 살르가, 서쪽으로는 그술과 마아가,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본래 르바임(Rephaim) 족속이 거주하였으나 모세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민 21:33-35;신 3:4-6).

(주); 살르가 - 바산의 동쪽 경계지이다(수 12:5). 이곳은 처음에 므낫세 반 지파에게 배당되었지만(수 13:29-31) 후에 갓 지파가 거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살르가(Salcah)는 바산의 동쪽 경계지를 견고하게 방어해 주는 주요한 요새지였다. 갓 지파는 이곳에 거하면서 이스라엘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성 경: [대상5:12]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족장은 요엘이요...사밧이요 - 당시 바산 및 갓 지파 내에서 활약한 족장들의 이름이다. 이 중 요엘(Joel)은 '여호와는 그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사밤(Shapham)은 '벗겨짐'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밧(Shaphat)은 '심판받은 자'란 뜻이다.

성 경: [대상5:13]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그 족속 형제 - 여기서 '형제'는 문자 그대로 친형제가 아닌 같은 지파에 속한 자를 의미한다. 7절 주석 참조. 그리고 '그 족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이트 아보테이헴'(*)은 직역하면, '그들의 조상들의 집'이란 뜻이다. 따라서 '그 족속'과 '형제'란 두 말을 연결하면 '그들의 조상들의 집에 속한 자들'이란 말이 된다.

성 경: [대상5:14]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아비하일 - 그의 이름의 뜻은 '내 부친은 전능'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로는 에스더의 아버지 아비하일(Abihail, 에 2:15)과 르호보암 왕의 장모 아비하일(대하11:18)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본절은 아비하일의 계보에 대하여 아주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갓 지파가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3절).

성 경: [대상5:15]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구니의 손자 압디엘의 아들 아히 - 17절에 비추어 볼 때 아히(Ahi)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 곧 B.C. 8세기 초의 사람이거나 유다 왕 요담의 때, 곧 B.C. 8세기 중엽의 사람인 것으로 추측된다(Keil, Lange).

성 경: [대상5:16]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바산 길르앗 - 이는 바산(11절)과 길르앗 성읍들(9절)을 모두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주); 향촌(鄕村)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브노테하'(*)는 '세우다', '건설하다'는 뜻의 동사 '바나'(*)에서 파생된 명사로 본래는 잘 건설된 성읍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형성된 촌락을 의미한다(민 32:42).

(주); 사론의 모든 들 - 여기서 사론(Sharon)은 북부 팔레스틴의 해안에 위치한 욥바 근처의 사론 평야(27:29)가 아니라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목초지를 가리킨다. 이곳은 헤스본과 아르논 골짜기(신 3:10) 사이에 위치한 미소르(Mishor) 또는 길르앗 고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들'에 해당하는 '미그라쉬'(*)는 좋은 목초지를 가리키는 말이다(Wycliffe Bible Commentary, Keil).

성 경: [대상5:17]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갓의 후손]

(주); 이상은 - 이는 곧 11절 이하에 소개된 갓 지파의 모든 인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Keil, Lange).

(주); 유다 왕 요담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때에 족보에 기록되었더라 - 요담(Jotham)과 여로보암(Jeroboam)은 같은 시대에 통치한 왕들은 아니었다. 즉,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은 B.C. 793-753년이었고, 요담의 통치 기간은 B.C.750-731년이었다. 따라서 갓 지파의 족보는 요담 왕에 의해 작성된 것과 여로보암 왕에 의해 작성된 것, 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로보암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였는데(왕하 14:25), 바로 이때에 갓 지파의 족보를 작성케 하였음이 분명하다(Keil& Delitzsch, Vol. III, p.108). 다음으로 요담은 아마도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땅을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그때에 갓 지파의 족보를 작성하게 하였을 것이다(Lange, Keil). 여로보암 사후 베가 왕 때(B.C.740-732)에 이스라엘이 극도로 혼란해졌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왕하 15:27-31) 이 같은 견해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성 경: [대상5:18]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적(戰績)]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가 연합하여 대적과 싸우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연합 전쟁은 가나안 정복 당시의 전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의 전쟁은 하갈 사람들과의 전쟁이었으나(19절) 가나안 정복 당시에는 아모리인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민 32:33). 따라서 본 전쟁은 가나안 정복 이후 사울 왕 시대에 일어났던 전쟁인 것이 분명하다(10절).

(주); 싸움에 익숙한 자 - 여기서 '익숙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무데이'(*)는 '훈련시키다'는 뜻의 동사 '라아드'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곧 '잘 훈련된 자'란 뜻으로서 정예(精銳)의 용사를 가리킨다(삿 3:2;아 3:8;미 4:3;사 2:4).

(주); 사만 사천 칠백 륙십 인이라 - 혹자는 민수기(1:21, 25;26:7, 18)와 비교하여 본절에 나타난 수와 그곳에 나와 있는 숫자 간에 차이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O.Zockler). 그러나 그 같은 이의 제기는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기록은 각기 다른 시대에 계수(計數)하였던 군사의 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5:19]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적(戰績)]

(주); 하갈 사람과 여두르와 나비스와 노답 - 여기서 하갈 사람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의 후손들을 의미하며 여두르와 나비스는 하갈의 손자들의 이름으로서 그들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족속을 의미한다. 10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중 여두르(Jetur)라는 이름에서 훗날 '이두래'(Iturae)라는 로마 시대의 행정 구역명(눅 3:1)이 유래되었다(Cartis). 다음으로 노답(Nodab)은 하갈족과 동맹을 맺은 아람 족속이다. 이들은 아라비아 북동쪽에 거주했었다. 혹자는 노답을 여두르와 나비스의 형제인 게드마(Kedemah, 창25:15)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R.C. Trench) 분명치 않다. 한편 이상에서처럼 본절에는 여러 족속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지파와 전쟁을 벌인 적군은 연합군을 형성한 강대한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대상5:20]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적(戰績)]

(주);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자르'(*)는 '군사적인도움을 준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위해 어떠한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셨음을 암시하는 말이다(12:18;대하 14:10;25:8;26:13, 17;시 46:5;79:9;사 63:5). 즉 위의 세 지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役事)에 힘입어 군사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주); 하나님께 의뢰하고 - 여기서 '의뢰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타흐'(*)는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는 상태를 묘사하는 동사이다. 이 믿음의 결과로서 구약 성경은 원수로부터의 구원(시 22:4), 기도의 응답, 기쁨과 즐거움(시 16:9;33:21), 마음의 평안(시 4:8;사 26:3), 평안한 길(잠 3:5, 6) 등을 언급하고 있다.

성 경: [대상5:21]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적(戰績)]

(주); 약대 오만과...빼앗으며 사람 십만을 사로잡았고 - 이처럼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하갈 족속과 싸워 사람 십만과 수많은 가축들을 탈취했다는 사실은 세 지파가 거둔 승리가 일시적이고도 하찮은 승리가 아니라 완벽한 승리였음을 잘 보여준다(Payne).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데 곧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로 얻는 승리는 항상 완벽하며 영원한 것이라는 점이다(삼상 17:45-54).

성 경: [대상5:22]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전적(戰績)]

(주); 죽임을 당한 자가 많았으니 - 이스라엘 세 지파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때문에 오늘날 악의 영 및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싸우는 성도들(엡 6:10-13)은 여기서도 다시금 새 힘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울 때 이들 세 지파처럼 대적들에 대하여 궁극적이고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요일 5:4).

(주); 저희가...사로잡힐 때까지 - 여기서 '저희'는 하갈 족속을 물리치고 바산길르앗에 안연(晏然)히 거하였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킨다. 그리고 '사로잡힐 때'란 그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당해 이방 땅으로 포로되어 간 때(6, 25, 26절)를 가리킨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6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5:23]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거주지와 족장들]

(주); 번성하여 - 이는 비단 인구의 증가 뿐 아니라 물질적 부(富)와 풍요까지도 의미하는 말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9절).

(주); 바알헤르몬 -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정하건대 헤르몬 산 산록에 위치하였던 이곳은 오늘날의 바느야스인 듯하다(Keil).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이곳을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에 위치하였던 '바알갓'(수 11:17)과 동일시하기도 한다(O. Zockler).

(주); 스닐 - 헤르몬 산의 한 지맥(支脈)이다.

(주); 헤르몬 산 - '신에게 바쳐진 곳', '성소'라는 뜻의 헤르몬(Hermon)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 2,850m)이다. 그런데 아모리인들은 이 산을 스닐(신 3:9;겔 27:5)이라고도 불렀다. 이 산은 바알헤르몬과 더불어 므낫세 지파의 북방 한계선이었다. 신3:8 주석 참조.

성 경: [대상5:24]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거주지와 족장들]

(주); 그 족장은 에벨과...용력(勇力)이 유명한 족장이었더라 - 여기에 나오는 므낫세 반지파의 일곱 족장들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신상이나 행적에 대하여 달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다만 여기서 '용력이 유명하다'는 말은 '싸움에 능하다'는 뜻인데(NIV, RSV, Living Bible) 곧 그들이 대적과 싸워 이기어 계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23절)을 의미한다.

성 경: [대상5:25]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앗수르에 의한 강제 이주]

(주); 저희 - 본 문맥과 26절의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저희'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를 모두 지칭하는 말임에 분명하다(Keil, Lange).

(주); 범죄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대개 '하나님을 배반한죄'를 의미한다(레 6:2;민 5:6;수 22:31;대하 12:2;26:16;28:19, 22;30:7). 여기서는그 가운데서도 특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죄를 가리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고 엄금(嚴禁)하시는 죄악이다(출 20:4-6). 한편 이 같은 사실은 과거 세 지파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대적을 물리쳤던 것(18-24절)과는 달리 이제 저들의 믿음이 퇴보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그들은 과거 어려웠던 시기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20절) 평안한 시절을 맞이하자 그만 하나님을 떠나 인간 특유의 본성인 죄악의 길, 즉 그 땅의 우상들을 섬기고 만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타락한 정치를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왕하 15:27-29) 백성들이 탄식하기는 커녕 더불어 범죄한 것을 보면 당시 그들의 심령이 강퍅할대로 강퍅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 - 곧 요단 동편에 거하던 아모리인들과 바산 왕 옥의 백성들을 가리킨다(민 32:33). 이들 가나안 족속들은 바알(Baal), 아스다롯(Ashtaroth) 등과 같은 우상들을 섬겼다.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그런데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역시 이들 우상에 미혹되어 그만 하나님을 저버렸으니 그 결과 26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명기적 교훈(신 28:1-68)을 재삼 명심할 수 있다.

성 경: [대상5:26]

주제1: [요단 동편의 지파들]

주제2: [앗수르에 의한 강제 이주]

(주); 앗수르 왕 불...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 '불'(Pul)은 디글랏빌레셀이 앗수르 왕위에 즉위하기 이전에 지녔던 그의 사적(私的)인 이름이다(Payne, The Wycliffe BibleCommentary). 한편 디글랏빌레셀(Tiglath-pileser III, B.C.745-727)에 대해서는 6절주석 및 왕하 15:19 주석을 참조하라.

(주); 할라 - 지금까지 할라(Halah)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앗수르 제국 내에서는 이 같은 지명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왕하 17:6) 고산(Gozan) 근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 하볼 - 고대의 헬라인들은 하볼(Habor)을 카보라스(Chaboras)라고 불렀다. 이곳은 오늘날의 카불(Khabur)이다.

(주); 하라 - 할라, 하볼과 함께 북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성읍이다.

(주); 고산 하숫가 - 고산(Gozan)은 카불 강(유프라테스 강의 한 지류) 상류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오늘날 '텔 할라프'(tel Halaf)로 알려져 있다.

성 경: [대상6: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레위 -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Levi)는 시므온과 함께 세겜족을 학살한 자였다(창 34:25-31). 이로 인해 레위는 시므온과 함께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내에서 흩어지리라는 예언을 야곱으로부터 받았다(창 49:5-7).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 당시에 보여준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출 32:26-29)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가 되었다(신 33:8-11). 한편, 본서 저자인 에스라도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었다(스 7:1-5).때문에 그는 본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행위와 관련시켜 레위 지파의 족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본 족보에는 바벨론 포로 때까지의 아론의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다.

(주);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 레위의 아들들이 연령 순서대로 소개되고 있다(창46:11;출 6:16;민 3:17;26:57). 이 중 레위의 장자(長子)인 게르손(Gershon) 자손들은 제사 제도가 정비된 이후 성막과 장막 그리고 그 부속물들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다(민 3:25, 26). 다음으로 일명 고핫(Kohath)으로도 불리운 그핫(Kehath)의 자손들은 성막의 가장 신성한 기구들을 보관,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민 3:31). 그런데 그핫 계열에서 비롯된 아론 자손들은 특별히 제사장 직분이라는 중임(重任)을 맡게 되었다(민3:2-4). 마지막으로 레위의 셋째 아들인 므라리(Merari) 자손은 성막 널판과 그 부속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민 3:36).

성 경: [대상6: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 - 여기에 소개된 그핫의 아들들의 명단은 출6:18에 근거한 것이다. 이중 아므람(Amram)과 웃시엘(Uzziel)에 대해서는 18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이스할(Izhar)은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고 반역했던 고라(Korah, 민 16:1-3)의 아비이다(출 6:21). 그리고 헤브론(Hebron)은 헤브론 자손(민 3:27)의 선조로서 갈렙의 후손 헤브론(2:42)과는 구별된다.

성 경: [대상6: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미리암 - 이름의 뜻은 '높다'이다. 그녀는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 최초의 여선지자였다(출 15:20). 그녀는 출애굽시 홍해의 승전 기사(奇事)를 아름다운 문체로 노래하여(출 15:21) 이스라엘인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

(주); 나답과 아비후 - 이들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불 이외에 다른 불로 분향을 드리다가 불에 삼키운 자들이다(레 10:1, 2).

(주); 엘르아살 - 그의 형들(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으로 인해 대신 장자권을 획득한 엘르아살은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민 20:25-28;신 10:6). 그 이후 대제사장직은 엘르아살(Eleazar) 계통의 후손들을 통해 계승되어 오다가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 에스라에게 이어졌다(스 7:1-5).

(주); 이다말 - 아론의 넷째 아들인 이다말(Ithamar) 역시 형제들과 더불어 제사장 직분을 맡았으나(출 38:21) 대제사장의 정통성은 엘르아살에게 있었다. 그는 성막을 위해 봉사하는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의 사역을 감독하였다(민 4:28, 33;7:8). 한편 이다말의 후손 중에는 엘리 제사장이 유명한데 불행히도 그 집안의 악 때문에 그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고 말았다(삼상 2:27-36).

성 경: [대상6: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비느하스 - 바알브올 사건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시므리)과 미디안 여인(고스비)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써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치게 한 자이다(민25:1-15). 한편, 엘르아살 이후 모두 21 세대가 기록된 본 족보(4-15절)에는 여러 명의 이름들이 빠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출애굽(B.C.1446년)으로부터 바벨론포로(B.C.586년) 때까지의 장구한 기간에 비해 21 세대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중에는 여호야다(왕하 11장;대하 22:11;24:2), 우리야(왕하 16:10) 등과 같은 인물도 빠져 있다.

(주); 아비수아 - 이름의 뜻은 '내 아버지는 구원이시라'이다. 그의 이름은 스 7:5에 다시금 언급될 뿐, 더 이상의 행적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

성 경: [대상6:5,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웃시 - 스 7:4에는 웃시엘(Uzziel)로 나와 있다. 웃시(Uzzi)는 '강하다'는 뜻인 반면 '웃시엘'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6: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아히둡 - 본절과 삼하 8:17에서는 사독의 부친으로 소개되었으나 9:11과 느 11:11에서는 사독의 조부(祖父)로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성경 기자가 상황에 따라 계보를 간략히 압축하여 기술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4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사독 - 그는 다윗과 솔로몬 때의 대제사장으로서(삼하 8:17;왕상 2:35) 다윗 때에는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후손인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 직무를 감당하였다(삼하 15:24). 그러나 다윗 사후(死後)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다가(왕상 1:7) 솔로몬에 의해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하였다(왕상 2:26, 27). 한편 사독(Zadok)은 다윗통치하에서 언약궤를 주로 관리하는 중책을 담당하였다(삼하 15:24-29). 더욱이 그는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데에 공헌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왕상 1:32-39).

(주); 아히마아스 - 사독의 아들인 아히마아스(Ahimaaz)는 압살롬의 난 때에 다윗 왕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삼하 17:17-21;18:27).

성 경: [대상6: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아사랴 - 사독의 손자 아사랴(Azariah)는 B.C. 970년 솔로몬 수하에서 대제사장이 된 인물이다. 왕상 4:2에서 그는 '사독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는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독의 손자'가 되어야 한다.

성 경: [대상6:1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이 아사랴는...제사장의 직분을 행한 자며 - 사실상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Azariah)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바는 없다. 비록 본절에서 그는 솔로몬 당시 제사장직분을 수행하였던 것처럼 소개되고 있으나 실상 이 같은 소개는 사독의 손자 아사랴(9절)에 대한 설명이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아사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측을 하는데 아마도 그는 웃시야(B.C.791-739) 당시 월권(越權)으로 제사장 직분을 행하려 했던 웃시야 왕에게 대항한 대제사장 아사랴(대하 26:16-18)일 것이다(Keil & Delitzsch,Vol. III, p.118).

성 경: [대상6:11,1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본절에 언급된 인물들 중 아마랴, 아히둡, 사독은 공교롭게도 7, 8절에 나온 아마랴, 아히둡, 사독과 그 이름 및 순차(順次)가 똑같다. 때문에 이들이 서로 동일 인물인지 아니면 동명 이인(同名異人)인지 판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본절에 대한 주석을 생략하고 있음은 그들이 양자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Wycliffe Bible Commentary).

(주); 살룸 - 이름의 뜻은 '보상'이다. 그런데 그는 일명 므술람(Meshullam)으로도 불리웠다(9:11).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학사 에스라는 바로 이 살룸의 후손이다(스 7:1-6).

성 경: [대상6:1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힐기야 - 요시야 시대(B.C.640-609)의 대제사장이다. 그는 성전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였고(대하 34:14), B.C. 622년에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도왔다(왕하 22:4-14;23:4).

(주); 아사랴 - 이 자는 분명 사독의 손자 아사랴(9절) 및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10절)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달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혹자는 이 자를 히스기야 왕 당시의 대제사장 아사랴(대하 31:10)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Bertheau). 그러나 히스기야는 B.C. 728-687년에 재위했었다. 때문에 아사랴의 아비 힐기야가 요시야 시대의 인물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 없다.

성 경: [대상6:1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스라야 - 그는 시드기야 때(B.C. 597-586)의 대제사장으로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죽임당했다(왕하 25:18-21).

(주); 여호사닥 -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아버지다(학 1:1, 12, 14;2:4;슥 6:11). 여호수아는 포로 귀환 이후 유다의 유명한 대제사장으로 활약하였다.

성 경: [대상6:1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에서 여호사닥까지의 족보]

(주);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 이때는 시드기야 11년, 곧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불태웠던 B.C. 586년이다. 이때에 여호사닥의 아버지 스라야는 느부갓네살에게 죽었고 여호사닥은 유다 백성과 함께 바벨론땅으로 붙잡혀 갔다(왕하 25:21).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역사(歷史)는 왕하 25장 성경 본문 및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1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레위의 아들들 - 본절에서부터 30절까지는 레위 지파의 대략적인 족보이다. 레위 지파의 족보는 23장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이 두 족보는 상호간의 내용을 보충해 주고있다.

성 경: [대상6:1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게르손 - 레위의 장남이지만 성경에서는 단지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에 태어난 자라고만 이야기할 뿐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창 46:11). 한편 게르손 자손들이 성막 봉사와 관련하여 맡았던 임무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1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그핫 - 레위의 둘째 아들로서 133세에 죽었다(출 6:18). 그는 아론과 모세의 조상이다(출 6:18-20). 한편 그의 자손은 레위 지파중 가장 탁월한 족속이었는바 성막 건축 이후 성막 남쪽에 진을 치고(민 3:29) 성막의 성물(聖物)을 관리하였다(민 3:31).

(주); 아므람 - '존귀한 족속'이란 뜻인 아므람(Amram)은 요게벳의 남편이자 모세, 아론, 미리암의 부친이다(출 6:18, 20;민 3:19;26:59). 그의 후손들은 각기 성막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곧 아론 자손은 제사장으로(민 3:2-4) 모세의 자손은 반차(班次)를 좇아 성소에서 봉사하였다(24:20, 21).

(주); 웃시엘 - '하나님은 나의 힘'이란 뜻이다. 그의 아들 엘리사반은 고핫 자손 가계(家系)의 우두머리였다(민 3:30).

성 경: [대상6:1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므라리 - 이름의 뜻은 '강하게 하다', 또는 '축복하다'이다. 그의 후손들은 성전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며(24:26;대하 29:12)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 재건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스 8:19).

(주); 말리와 무시 - 그들의 후손들은 성막의 널판과 띠, 기둥과 받침, 그리고 여러 가지 장식들을 운반하는 직책을 맡았다(민 3:36, 37;4:31-33;7:8;10:17;수 21:7, 34, 40).

성 경: [대상6:2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립니 - 립니(Libni) 사람들의 조상이다(민 3:21;26:58). 그는 므라리 후손으로 말리의 아들인 립니(29절)와는 구별된다.

성 경: [대상6:2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세라 - 이름의 뜻은 '여명' 또는 '바위'이다. 그런데 그는 성가대 직무를 맡았던 시므이의 후손 세라(41절)와는 다른 사람이다. 또한 그는 시므온 지파의 한 분파인 세라 가족의 조상 세라(민 26:20)와도 구별된다.

성 경: [대상6:2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암미나답 - 출 6:21;민 16:1 및 본장 38절에 의거해 볼 때 암미나답(Amminadab)은 이스할(Izhar)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암미나답은 이스할의 자손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38절).

(주); 고라 - 그는 회중의 지도자 250명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고 대제사장의 직분을 탐낸 인물이었다(민 16:9, 10). 그 결과 그는 가족들과 더불어 땅에 삼키워졌다(민 16:31).

(주); 그 아들은 앗실이요 - 고라(Korah)가 땅에 삼키웠을 때 앗실(Assir)과 같은 그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출 6:24). 왜냐하면 그들은 부친의 죄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겔 18:19, 20). 한편 훗날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명예로운 성가대 직분을 맡게 되었다(31-38절;대하 20:19;시 84, 85, 87, 88편).

성 경: [대상6:2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그 아들은 엘가나요 그 아들은 에비아삽이요 - 여기서 엘가나(Elkanah)와 에비아삽(Ebiasaph)이 고라의 계속되는 세대로 소개되어 있으나 실상 이들은 22절의 앗실과 더불어 고라의 아들들이다. 즉, 다시 말해서 앗실(22절)과 엘가나와 에비아삽은 형제들인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우리는 (1) 출 6:24의 내용을 들 수 있다. 거기에서 이들은 모두 고라의 아들들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2) 본절과 평행 구절인 37절에서도 에비아삽의 아비가 곧 바로 고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에비아삽이 고라의 직계 후손, 곧 아들임을 밝혀 주며 앗실과 엘가나가 에비아삽의 조상이 아니라 형제였음을 입증해 준다. 또한 (3) 본절에는 다른 세대임을 구분지어 주는 '와우'(*)가 오직 에비아삽과 그 아들 앗실 사이에만 기록되어 있고 앗실(22절)과엘가나, 엘가나와 에비아삽 사이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볼 때 앗실(22절)과 엘가나와 에비아삽은 형제들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Keil,Lange). 한편 이들은 모두 고라 자손의 족장들이었다(출 6:24).

(주); 그 아들은 앗실이요 - '앗실 2세'라고 칭할 수 있는 본절의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자 고라(22절)의 손자이다. 그리고 22절의 앗실은 그의 삼촌이다.

성 경: [대상6:2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다핫...우리엘...웃시야...사울 -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 중 다핫(Tahath)은 헤만의 족보(37절)에서 분명히 언급되었지만 우리엘, 웃시야, 사울 등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스바냐, 아사랴, 요엘 등(36절)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스바냐, 아사랴, 요엘은 우리엘, 웃시야, 사울의 다른 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Lange). 한편, 우리엘(Uriel)은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뜻이다. 그는 다윗 시대에 고핫 족속 전체를 이끌었던 족장이었으며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셔올 때 봉사했던 인물이다(15:5-15).

성 경: [대상6:2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엘가나 - 여기에 나오는 엘가나(Elkanah)는 엘가나 2세로서 고라의 자손 엘가나(23절)와는 다른 인물이다. 즉 그는 에비아삽의 후손으로서 요엘의 아들인 것이다(36절).

(주); 아히못 - 마핫(Mahath)의 다른 이름이다(35절). 비록 본절에서 아히못(Ahimoth)이 엘가나의 아들인 것처럼 나와 있으나 실상 그는 아마새(Amasai)의 아들이며 엘가나의 손자이다.

성 경: [대상6:2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엘가나 - 엘가나 3세이다. 따라서 그는 23절과 25절에 나오는 엘가나 1세, 2세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는 35절에서 다시금 언급되고 있다.

(주); 소배...나핫 - 34, 35절에서 이들은 일명 숩, 도아로 소개되고 있다.

성 경: [대상6:2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엘리압 - 34절에서 그는 엘리엘로 소개되고 있다.

(주); 엘가나 - 본 족보에 나오는 마지막 동명 이인(同名異人)으로 곧 엘가나 4세이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 소빔 사람으로 그의 아내는 하나와 브닌나였다(삼상1:1, 2). 바로 이 한나와 엘가나 사이에서 유명한 선지자가 났으니 곧 사무엘이다(28,34절;삼상 1:20).

성 경: [대상6:2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주); 사무엘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심'이다. 그는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인물로서 선지자, 사사,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였다. 그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서론, 개요 부분을 참조하라.

(주);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며 - 이들은 사무엘에 의해 브엘세바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었으나(삼상 8:2)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삼상 8:3). 이 때문에 당시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새로운 지도 체제를 요구하였는데 바로 왕정(王政) 제도였다(삼상 8:1-9). 한편 이 중 맏아들 요엘(Joel)은 다윗 시대에 성소에서 찬송을 관장한 헤만의 아버지다(33절).

성 경: [대상6:29,3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게르손, 그핫, 므라리의 후손]

고핫 자손들을 소개한 데 이어 므라리의 후손들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이 44-47절에 기록된 에단의 조상들과 동일 인물이라고 하는데(Bertheau)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므라리의 아들 말리(Mahli)의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44-47절에서는 므라리의 아들 무시(Mushi)의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Keil, Lange).

(주); 말리 - 므라리의 장남이다. 그는 일명 '마흘리'로도 불리웠다(23:21).

(주); 웃사 - 이름의 뜻은 '능력'이다. 시므이의 아들인 그는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Uzzah, 삼하 6:3-11)와는 다른 인물이다.

(주); 아사야 -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이다. 그는 다윗 당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일에 참여하였던 아사야(Asaiah, 15:6)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대상6:3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 이는 다윗 왕이 언약궤를 기럇여아림(바알레유다)에서 예루살렘 시온 성소로 옮겨 놓은 사건을 의미하는 말이다(삼하 6장). 이 이전에 사울왕은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다 방치시켜 왔었다. (주); 다윗이...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 이처럼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한 후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를 조직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백성들 가운데 모셔졌으니 그로 인해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은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의 본분 중 하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성도들이 누리는 특권이자 기쁨이기도 하다(시150:6).

(주); 여호와의 집 - 당시는 아직 천막 형태였다(삼하 7:2). 이 같은 성막(聖幕)은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대치되었다(대하 5:1-7:22).

성 경: [대상6:3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회막 -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만나 당신의 뜻을 계시하는 장소이다(출 29:42, 43;삼상 2:22). 이는 31절의 '여호와의 집'을 달리 표현한 것과 다름없다.

(주);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 여기서 '반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규율, 제도, 양식(樣式)을 의미한다(출 26:30;수 6:15;삼상 8:9, 11;10:25). 다윗 왕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조직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율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 규율에 따라 고핫 자손 헤만은 중앙에서, 아삽은 헤만의 우편에서, 그리고 에단은 좌편에서 각기 찬송을 인도하였다(33, 39, 44절).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31-48절 강해, '성가대의 기능과 조직'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3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그핫 - 1절 주석 참조.

(주);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 - 여기서 '찬송하는 자'라는 말은 단순히 찬송을 부르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성전에서 찬송하는 자의 두목임을 나타내는 말이다(Lange, Keil). 즉 헤만(Heman)은 찬양대 전체의 지휘를 맡았던 지휘자였다. 한편, 다음에 이어지는 헤만의 족보는 그가 레위의 후손이며 사무엘의 손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 요엘 - 28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3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엘가나 - 여로함의 아들로서 엘가나 4세이다. 27절 주석 참조.

(주); 엘리엘 - 27절에서는 일명 엘리압(Eliab)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엘리엘(Eliel)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란 뜻이며 '엘리압'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란 뜻이다.

성 경: [대상6:3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도아는 숩의 아들이요 - 도아(Toah)는 26절의 나핫(Nahath)의 다른 이름이며 숩(Zuph)은 소배(Zophai)의 다른 이름이다.

(주); 마핫 - 25절의 아히못(Ahimoth)과 동일 인물이다.

성 경: [대상6:3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요엘...아사랴...스바냐 - 24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3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앗실 - 이름의 뜻은 '갇힌 자', '포로'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고라의 아들 앗실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23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3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이스할 - 22절에 나오는 암미나답의 다른 이름인지 아니면 암미나답과는 다른 웃대의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22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3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헤만의 형제 아삽 - 여기서 형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는 헤만과 아삽이 친형제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같은 동족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헤만은 레위의 아들 그핫의 후손인데 반해(33절) 아삽(Asaph)은 레위의 아들 게르손의 후손이기 때문이다(43절). 이처럼 이 용어는 종종 같은 지파, 같은 혈연을 지시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신 3:18;24:7;창 13:8; 29:15;민 16:10;25:6;삿 14:3; 레 25:46). 한편,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다윗의 세 악사(樂師) 중 하나였다. 그는 많은 노래를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12편이 시편에 수록되어 있다(시 50, 73-83편). 그러한 그는 다윗 왕이 언약궤를 시온의 장막에 안전하게 모셔왔을 때 찬양제(讚揚祭)를 주도하였다(16:4,5,7,37). 또한 그는 헤만, 에단(여두둔)과 더불어 왕의 선견자(先見者)로도 불리웠다(25:5,6;대하 35:15).

(주); 헤만의 우편에서 직무를 행하였으니 - 이는 다윗 왕이 정한 봉사의 규율에 따른 것이었다. 32절 주석 참조.

(주); 베레갸 - 아삽의 부친인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자가 누구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베레갸(Berachiah)는 일명 '베레야'로도 불리웠다(15:17).

성 경: [대상6:4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미가엘 - '하나님 같으신 이가 누구냐'라는 뜻이다.

(주); 바아세야 -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용감하시다'이다.

(주); 말기야 - '나의 왕은 주님이시다'라는 뜻이다. 한편 성경에 나오는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들은 우연의 일치 치고는 대부분 제사장이나 레위인 또는 귀족들이었다는 특징을 지닌다(렘 38:6;21:1;느 11:12;12:42;10:3;8:1-4).

성 경: [대상6:4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에드니 - '선물'이란 뜻이다. 한편 41-43절의 족보에 소개된 이름들은 20, 21절에 소개된 이름들과 유사하다. 따라서 혹자는 이 두 기록을 결국 하나의 족보에 속한 것으로 보면서 약간의 차이점들은 하나의 전승으로부터 발췌하는 과정에서 중첩되었기때문이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Payne). 그러나 실상 이같은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20, 21절의 족보는 게르손의 아들 립니의 후손에 관한 것인데 반해 41-43절의 족보는 게르손의 자손 시므이의 후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 세라 - 21절의 세라와는 동명 이인이다. 21절 주석 참조.

(주); 아다야 - '아다야'(*)는 '여호와를 찬송했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6:4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에단 - 이름의 뜻은 '영원함'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에단(Ethan)은 므라리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세 악사 중 한 명인 에단(44절)과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6:4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야핫 - 게르손의 아들인 시므이의 아들이다(23:10). 그는 게르손의 후손 중에서도 립니의 아들인 야핫(Jahath, 20절)과는 구별된다.

성 경: [대상6:4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형제 - 여기서도 이 말은 같은 동족 또는 같은 지파 사람을 가리킨다. 39절 주석 참조.

(주); 므라리 - 레위의 세번째 아들이다. 1, 19절 주석 참조.

(주); 에단 - 그는 헤만, 아삽과 더불어 다윗 왕의 악사였으며 일명 '여두둔'(*)이라고도 불리웠다(25:1-3;16:41;대하 5:12). '여두둔'은 '찬양하다'는 뜻의 '예다'(*)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찬양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볼 때 '에단'은 그의 본래 이름이며 '여두둔'은 악사의 직책을 맡은 후 그에게 붙여진 그의 별명이었던 것 같다(Keil). 한편 이 여두둔 가문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계속 궁전 음악을 맡았다.

(주); 기시 - 그는 일명 구사야(Kushaiah)라고도 불리웠다(15:17).

(주); 압디 - '여호와의 종'이란 뜻이다.

(주); 말룩 - 이름의 뜻은 '상담자'이다.

성 경: [대상6:4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하사뱌 - '여호와께서 짐작하셨다'는 뜻이다.

(주); 아마시야 -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시다'는 뜻이다.

(주); 힐기야 -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분깃'이다. 그런데 그는 요시야 왕 당시의 대제사장이던 살룸의 아들 힐기야(Hilkiah)와는 다른 인물이다(13절).

성 경: [대상6:4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암시 - '강하다'는 뜻이다.

(주); 바니 - '세워지다'는 뜻이다.

(주); 세멜 - '보존되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이름으로는 사마리아 성읍의 원주민이었던 세멜(Shamer)을 또한 들 수 있다(왕상 16:24).

성 경: [대상6:4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말리 - 이는 29절의 말리(Mahli)와는 다른 인물이다. 29절의 말리는 무시의 형제이며 본절의 말리는 무시의 아들이다. 무시 - 무시(Mushi) 가족의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느끼다'는 뜻의 '무쉬'(*)에서 파생되었다. 그는 므라리(1, 19, 44절)의 차남이다.

성 경: [대상6:4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회막 봉사를 맡은 자들]

(주); 저희의 형제 레위 사람들 - 이들은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된 악사들(31-47절) 이외에 다른 모든 레위 지파인들을 가리킨다(Lange). 그들은 성소에서 물과 불 그리고 제물을 준비하며 청소를 하는 등의 봉사를 담당하였다.

(주); 하나님의 집 장막의 모든 일을 맡았더라 - 여기서 '맡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티님'(*)은 '위임하다', '임명하다'는 뜻의 동사 '나탄'(*)의명사형으로 '위임을 받은 자였더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성소에서의 모든 제사에 관한 일들을 레위인들에게 위임하셨다(민 3:9;8:16-19;18:6). 이와 관련해서는 민 3:5-13 강해, '성역(聖役)에 부름받은 레위인'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6:4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제사장 반열]

(주); 아론과 그 자손들 - 본절에서부터 53절까지는 4-8절의 반복이다. 여기 소개된 인물들은 레위의 둘째 아들 그핫의 후손들로서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이들이 다시금 언급되고 있음은 아비아달 계열의 제사장직이 박탈된 이후(왕상 2:26, 27)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만이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Payne).

(주); 번제단과 향단 위에 분향하며 제사를 드리며 - 본절에서는 제사장의 직능을 소개하고 있다(Keil, Lange). 그중 본 구절은 희생(犧牲) 제사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올라'(*)는 구약의 5대 제사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번제(燔祭)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번제는 번제단의 제물을 완전히 태워 드리는 제사로서 여호와께 이 제물 전체를 다 드린다는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레 1:1-17). 제사장은 아침마다 번제를 드려야 했으며 이를 위해 단 위의 불이 항상 꺼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했다(레 6:1-13). 다음으로 '분향'은 '향 또는 제물을 사르다'는 뜻의 '카다르'(*)에서 파생된 '무크타르'(*)로서 번제 자체를 의미하거나 번제에 수반되는 향을 뿌리는 의식을 의미한다(출 30:34). 이 분향 의식은 조석(朝夕)으로 행해졌다(출 30:7, 8). 이와 관련해서는 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를 보다 참조하라.

(주); 지성소의 모든 일 -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는 백성을 대표한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장 거룩한 곳이다(히 9:7). 이 지성소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는 일은 오직 대제사장의 소관이었다(레 16:23-34).

(주); 모세의 모든 명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 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하여 거행하는 모든 속죄 의식을 의미한다. 그 의식에는 속죄제, 결례, 속죄일의 행사 등이 있었다. 이 중 제사장의 중재 사역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던 것은 속죄일의 행사로서 일년에 한 번 행하여졌다(레 16:29). 그때에 대제사장은 호화로운 대제사장복을 벗고 대신 장식물을 일체 달지 않은 백색 의복을 입고 속죄소에 들어가 피를 일곱번 뿌리는 속죄제를 집행함으로써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였다. 이와 같은 대제사장의 기능은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기능을 예표한 것이었다(레 16:29-34).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레위기 서론, '7.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구약 제사에 관한 레위기의 주제 강해들을 각각 참조하라.

성 경: [대상6:5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제사장 반열]

(주); 엘르아살 -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한 아론의 셋째 아들이다. 3절 주석 참조.

(주); 비느하스 - 아론의 손자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낸 자이다. 4절 주석 참조. 그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 중에는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가 있다(삼상1:3).

(주); 아비수아 - 4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5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제사장 반열]

(주); 웃시 - '나의 능력'이라는 뜻이다. 5, 6절 주석 참조.

(주); 스라히야 - '여호와께서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6:5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제사장 반열]

(주); 아마랴 - '여호와께서 허락하셨다'는 뜻이다.

(주); 아히둡 - 이름의 뜻은 '형제는 선하다'이다. 그에 관해서는 7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5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제사장 반열]

(주); 사독 - 다윗 시대의 정통성있는 대제사장이다. 다윗 시대에는 두 명의 대제사장(아비아달과 사독)이 있었으나 솔로몬의 즉위 당시 아비아달은 면직되었고 사독이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었다. 8절 주석 참조.

(주); 아히마아스 - 8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5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저희의 거한 곳 - 본절에서부터 마지막 81절까지는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48개의 성읍들을 기록한 내용이다. 그 가운데서도 54-60절은 아론 자손이 차지한 성읍들의 명단이다. 이는 병행 구절인 수 21:13-19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주); 사방 지경 - 여기서 '사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로탐'(*)은 '열', '줄'을 의미하는 '티라'(*)에서 파생된 용어로서 '레위 지파에게 주어진 영토의 선(線)'이라는 의미(시 16:6)를 지니고 있다(Keil, Lange).

(주); 그핫 족속 - 레위의 둘째 아들이자 아론의 조상인 그핫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형제들 가운데서 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 1절 주석 참조. 또한 이들은 레위 지파 중 제일처음으로 제비를 뽑아 자신들이 거주할 성읍을 얻었다(수 21:10). 한편, 알브라이트(Albright)는 이 같은 성읍 분배가 다윗 시대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은 분명 수 21:10과 일치하는 내용으로서 이 분배는 여호수아 당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Payne, Keil, Lange).

성 경: [대상6:5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유다 땅의 헤브론 - 헤브론(Hebron)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높은 성읍으로서 유다 산지 기럇아르바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0km 지점이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주); 그 사방 들 - 여기서 '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그라쉬'(*)는 '교외','성읍 주변의 마을'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던 주변의 여러 마을들을 의미한다.

성 경: [대상6:5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그 성의 밭과 향리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며 - 갈렙(Caleb)은 가나안 땅 정탐을 하고 돌아온 후, 여호수아와 더불어 모세에게 성실한 보고를 하였던 자이다(민14:5-10). 이에 대해 모세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기득권(旣得權)을 갈렙에게 약속하였는바(신 1:36) 가나안 정복 후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었다(수 14:13). 본절은 바로 그 같은 사실을 가리키는데 이후 헤브론 성은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54, 55절;수 21:8-12).

성 경: [대상6:5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도피성 - 이스라엘에 도피성은 모두 여섯이었으며 그 중 하나가 헤브론에 있었다. 도피성은 요단 양편에 각각 세 곳이 있었는데 전국 어디에서나 속히 피할 수 있도록 적당한 곳에 선정되었다(수 20:7-9). 민 35:9-15 강해, '도피성 제도의 의의' 참조.

(주); 립나 - 유다와 블레셋의 경계선상에 위치했던 세벨라의 한 성읍이다. 이곳 역시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가 (수 15:42) 후에 레위 지파에게 주어졌다(수 21:13).

(주); 얏딜 -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15:48;21:14;삼상 30:27). 이곳은 시글락 동쪽 약 16km 지점이다.

(주); 에스드모아 - 역시 유다 산지의 성읍이며 헤브론 남쪽으로 14.4km 지점이다. 이 성읍의 창설자는 유다의 후손 이스바(Ishbah)였다. 4:1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5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힐렌 - 드빌(Debir)의 산지에 위치했던 성읍으로 헤브론 북서쪽 얄라(Jala) 근처이다. 수 21:15에는 홀론(Holon)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 드빌 - 유다의 고산 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갈렙이 아낙 자손들을 몰아내고 점령했던 성읍이다(수 11:21;15:15-17;삿 1:11-15). 이 성읍은 제사장의 성읍이면서 유다 남부의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수 15:49;21:15).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0:38,3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5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아산 - 유다 남서부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브엘세바 북서쪽으로 약 2.4km 지점이다(수 15:42).

(주); 벧세메스 -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지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 성읍의 이름은 '태양의 집'이란 뜻으로 이곳에는 고대의 태양신의 신전이 있었다. 이 성읍은 유다와 단과 블레셋 지경의 경계선이기도 하였다(수 15:10;삼상 6:12).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 약24km 지점인 오늘날의 '아인 셈스'(Ain shemes)로 추정된다. 수 15:1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6:6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게바 -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지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수 18:24;21:17;왕하 23:8;슥 14:10). 예루살렘 북쪽 9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일명 제바(Jeba)로도 불리웠다.

(주); 알레멧 - 이는 아나돗 근처에 위치한 알몬(수 21:18)과 동일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Cohen).

(주); 아나돗 - 이곳은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4.8km 지점이며 오늘날의 아나타(Anata) 부락에서 가까운 라스 엘-할루베(Ras el-Harrubeh)이다(왕상 2:26;삼하 23:27).

(주); 그 족속의 얻은 성이 모두 열 셋이었더라 - 55-60절까지에 소개된 레위 지파의 성읍은 모두 11개이다. 여기서 수치상의 차이가 발견되는데 두 개의 성읍이 본문에서 누락된 것이 분명하다(Payne). 우리는 나머지 두 성읍을 수 21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그 성읍은 곧 아인, 윳다, 기브온 중에서의 두 성읍이다(수 21:16, 17).

성 경: [대상6:6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므낫세 반 지파 족속 중에서 - 본절 앞에는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란 말이 누락되어 있다. 즉 병행 구절인 수 21:5에는 남은 그핫 자손들이 차지한 열 개의 성이 에브라임, 단,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속했던 성들이었다고 분명히 밝혀져 있다. 한편 이들 남은 그핫 자손들이 차지한 열 성읍의 명단은 수 21:21-25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조하라.

성 경: [대상6:6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게르손 자손에게는...열 세 성을 주었고 - 이들 게르손 자손들이 얻은 성읍은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한 그 일대 사방의 성읍들이었다. 그들이 차지한 열 세 성읍의 명단은 수 21:27-32에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주); 바산에 있는 므낫세 지파 - 요단 동편에 거주한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킨다(수21:6). 이와 관련해서는 5:11, 23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6:6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므라리 자손에게는...열 두 성을 주었더라 - 이들 므라리 자손들이 얻은 성읍은 요단 동편과 남부 갈릴리 산지의 성읍들이었다. 그들이 차지한 열 두 성읍의 명단은 수21:34-39에 나와 있으니 참조하라.

성 경: [대상6:6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이 모든 성과 그 들을 레위 자손에게 주되 -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할당해 준 여러 성읍에 거함으로써 전국에 분산하여 거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야곱의 예언의 성취였으며(창 49:7), 또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였다(민 35:1, 2). 이에 관해서는 본장 49-81절 강해, '레위인 분산의 의의'를 참조하라.

성 경: [대상6:6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유다 자손의 지파와...주었더라 - 사실 레위인들은 유다, 시므온, 베냐민 자손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이스라엘 남은 지파들에게서도 골고루 기업(基業)을 얻었었다(54-63절). 따라서 본절은 단지 아론 자손이 위의 세 지파에게서 기업을 얻은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54-60절).

성 경: [대상6:6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이제 본절에서부터 70절까지에서는 남은 그핫 자손들이 차지했던 성읍(61절)이 언급되고 있다. 이를 병행 구절인 수 21:20-26과 비교하면서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주); 영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레 게불람'(*)은 '한정된(limited) 영토'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여기서 '게불람'은 '한정하다'는 의미의 동사'가발'(*)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성 경: [대상6:6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도피성 - 57절 주석 참조. 한편 에브라임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도피성은 오직 세겜에만 있었다(수 20:7).

(주); 세겜 -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예루살렘 북쪽 약 58km 지점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며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사업을 마친 후 축복과 저주의 언약 의식을 행하기도 한 유서 깊은 장소이다(창 12:6;33:18-20;신 11:26). 수 17:7 주석 참조.

(주); 게셀 - 에브라임 지파의 서쪽 경계지에 위치했던 성읍이다(수 16:3;21:21). 그곳은 예루살렘과 욥바의 중간 지점으로 솔로몬에 의해 재건(再建)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왕상 9:17).

성 경: [대상6:6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욕므암 - 병행 구절인 수 21:22에는 깁사임(Kibzaim)으로 언급되어 있는 성읍이다. 이 성읍은 또한 욕느암(Jokneam, 왕상 4:12)으로도 불리웠다.

(주); 벧호론 - 벧호론(Beth-horon)은 위와 아래의 두 성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7:24). 때문에 이곳은 기브온에서부터 아얄론 골짜기와 세벨라 골짜기로 가는 도중에 위치해있었다. 때문에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로도 유명하다(수 10:10-14;대하 8:5;왕상9:17).

성 경: [대상6:6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아얄론 - 에브라임 경계지에 위치했으며 처음에는 단 지파에 귀속되었던 성읍이다(수 19;42). 이곳은 여호수아 당시 달이 그 골짜기에 머물렀던 사건(수 10:12)으로 유명하다.

(주); 가드림몬 - 욥바 북동쪽으로 약 7km 지점에 위치했던 단 지파의 성읍이다(수19:45;21:24).

성 경: [대상6:7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빌르암 - '멸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혹자는 이곳을 이블르암(Ibleam)과 동일 성읍으로도 보는데 이블르암은 에스드렐론 평야 부근의 므낫세 지파 성읍이다(수 17:11).

성 경: [대상6:7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본절에서부터 76절까지에서는 게르손 자손들이 차지했던 성읍(62절)이 언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병행 구절인 수 21:27-32을 참조하라.

(주); 게르손 자손 - 레위의 장남 게르손의 후손들이다. 1절 주석 참조. 다윗의 악사 아삽이 바로 이 게르손의 후손이었다. 39절 주석 참조.

(주); 바산의 골란 - 요단 동편의 세 도피성 중 하나이며 바산의 한 지역이었다. 수 20:8주석 참조. 한편 바산은 요단 강 상부 동편에 있는 광활한 평원이다. 5:11 주석 참조.

(주); 아스다롯 - 이스라엘 세 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바산 왕 옥으로부터 빼앗은 성읍이다(신 1:4;수 12:4). 한편 이 이름은 우상의 이름과 일치하는데 이곳에서 고대에 아스다롯(Ashtaroth) 우상이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이 우상에 대해서는 레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6:72]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게데스 - 잇사갈 지파에 속한 게데스(Kedesh)는 수 21:28에 '기시온'(Kishion)으로나와 있다. 아마도 게데스는 기시온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 성읍은 므깃도 남동쪽으로 4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아부 쿠데이즈'(Tell Abu Qudeiz)이다. 이곳은 도피성이 있었던 납달리의 산지 게데스와는 다른 곳이다(76절;수 20:7).

(주); 다브랏 - 스블론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하였던 성읍이다(수 19:12). 이는 다볼 산서편 기슭에 위치한 오늘날의 '다부리예'(Daburiyeh)인 듯하다(수 21:28).

성 경: [대상6:73]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라못 - '고지대'란 뜻이다. 이곳은 수 19:21과 21:29에 나오는 '레멧' 또는 '야르뭇'과 동일한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 아넴 - 다볼산 동남동쪽으로 약 3.2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병행 구절인 수21:29에는 '언간님'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현재 '예닌'(Jenin)이란 마을이다.

성 경: [대상6:74]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마살 - 아셀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성읍이다. 병행 구절인 수 21:30에는 '미살'로 기록되어 있다.

(주); 압돈 - 이곳은 아십 동쪽으로 약 6.4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벳 압데'(Khirbet 'Abdeh)인 듯하다(Beek).

성 경: [대상6:75]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후곡 - 병행 구절인 수 21:31에는 '헬갓'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 르홉 - 악고 동남쪽으로 약 11.3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엘-가르비'(Tellel-Gharbi)이다(수 21:31;삿 1:31).

성 경: [대상6:76]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갈릴리의 게데스 - 본래 갈릴리 북부에 있었던 가나안 사람의 성읍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후 납달리 지파에게 주어졌다(수 19:32, 37). 이때부터 이곳은 '납달리 게데스'라 불리웠다(삿 4:6). 이 성읍은 훌레 호수 북서쪽에 있는 오늘날의 '텔 콰데스'(Tell Qades)로서 과거 이곳에는 도피성이 있었다(수 20:7). 수 12:22 주석 참조.

(주); 함몬 - 수 19:35에 나오는 '함맛'(Hammath)과 동일한 곳이다. 일명 '함못 돌'로도 불리웠는데 이 성읍은 갈릴리 호수 서부 연안에 위치해 있었다(수 21:32).

(주); 기랴다임 - 병행 구절인 수 21:32에는 '가르단'으로 나와 있다.

성 경: [대상6:77]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여기서부터 81절까지에는 므라리 자손이 차지하였던 성읍(63절)이 언급되고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병행 구절인 수 21:34-39을 참조하라.

(주); 림모노 - '림몬'(수 19:13)과 동일한 이 성읍은 스불론 지파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나사렛 북북동쪽 9.7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룸마네'(Rummaneh)이다. 한편, '림모노'는 병행 구절인 수 21:34, 35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혹자는 '림모노'는 수 21:35의 '딤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Keil) 확실한 근거가 없다.

성 경: [대상6:78]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베셀 - 요단 동편에 있었던 세 곳의 도피성(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 중 하나이다(신 4:43;수 20:8).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20:8 주석을 참조하라.

(주); 야사 - 수 21:36의 '야하스'와 동일한 곳으로 아르논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 성읍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을 굴복시킨 곳이기도 하다(민 21:23;신 2:32;삿11:20).

성 경: [대상6:79]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그데못 - 아르논 강 상류에 위치했던 성읍이다. 모세는 이곳에서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신 2:26).

(주); 메바앗 - 암만에서 남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야와'(Jawah)인 듯하다. 이 성읍은 예레미야 시대에 모압에게 점령당했다(렘 48:21). 병행 구절인 수21:37에는 일명 '므바앗'으로 나와 있다.

성 경: [대상6:80]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길르앗의 라못 - 도피성이 있었던 이곳은 길르앗의 중요한 요새지였다(신 4:43;수21:38;왕상 4:13). 이곳은 수리아의 경계지 부근인 길르앗 북부에 위치하였는데 일명 '라맛 미스베'로도 불리웠다(수 13:26). 신 4:43 주석 참조.

(주); 마하나임 - 길르앗 라못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지 부근에 있었다(수 13:26, 30;21:38). 압살롬의 반란 당시 다윗 왕이 피신했던곳이기도 한 이 성읍은 길르앗의 중요한 요새지였다(삼하 17:24).

성 경: [대상6:81]

주제1: [레위의 후손]

주제2: [레위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들]

(주); 헤스본 - 모압 북부에 위치한 이 성읍은 본래 아모리 왕 시혼의 땅이었으나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한 후 르우벤과 갓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민 21:28, 32;수 13:17, 26;21:39). 그런데 이 성읍은 아합 왕의 사후(死後)에 그만 모압 족속 메사에 의해 점령당하고 말았다(사 15:4;16:8, 9;렘 48:2, 33, 34).

(주); 야셀 - 암몬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곳으로 다윗 왕조 때에는 유다의 수비대가 이곳에 배치되었었다(26:31).

성 경: [대상7:1]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잇사갈의 후손]

(주); 잇사갈의 아들들 - 잇사갈 지파의 족보는 창 46:13과 민 26:23-25에 기초하였다. 잇사갈은 야곱의 임종시(臨終時)에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라는 예언을 받았다. 이는 그 지파가 비록 우직하여도 튼튼하고 힘이 센 지파가 되리라는 내용의 예언이었다(창 49:14, 15;삿 5:15).

(주); 돌라와 부아와 야숩과 시므론 - 창 46:13에서는 '부아'(*)가 '부와'(*)로, '야숩'(*)은 '욥'(*)으로 각기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욥은 우리가 잘 아는 욥(Job, 욥 1:1)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리고 돌라(Tola) 역시 이스라엘의 사사(士師)였던 '부아의 아들 돌라'(삿 10:1)와는 다른 인물이다. 한편, '돌라'는 '자주색 천'이라는 의미이며, '부와'는 붉은 색 물감을 내는 식물의 이름이다. 그리고 '야숩'은 '그는 돌아온다'는 뜻이며 '시므론'은 '감시함'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7:2]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잇사갈의 후손]

(주); 다윗 때에 이르러는 그 수효가 이만 이천 육백 명이었더라 - 이 같은 통계는 다윗의 인구 조사 때에 밝혀진 수치인 것임에는 분명하다(삼하 24:1-9). 그러나 거기에는 전체 인구의 총계만 나와 있을 뿐 각 지파의 소계(小計)는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본서 기자가 '이만 이천 육백 명'이란 수치를 어떠한 기록에 의거하여 밝히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추측컨대 그는 자신이 참조할 수 있었던 '다윗 왕의 역대 지략'(27:24) 등과 같은 문헌에 의거하여 그 수치를 밝혔을 것이다. 본서 서론, '7. 역대기의 자료' 참조.

성 경: [대상7:3]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잇사갈의 후손]

(주); 이스라히야의 아들들은...다섯 사람 - 비록 이스라히야의 아들들이 '다섯'이라고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본절에는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 이 네 사람만 나와 있다. 때문에 혹자는 본절에서 말하는 '다섯 사람'이란 '웃시의 아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바로 이스라히야, 미가엘, 오바댜, 요엘, 잇시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의 사실성 여부를 가릴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정에 머물 뿐이다. 대신 본절의 '다섯 사람'은 '네 사람'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다.

성 경: [대상7:4]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잇사갈의 후손]

(주); 저희와 함께 한 자는...삼만 육천 인이니 - 여기서 '삼만 육천'이라는 웃시(Uzzi) 자손의 숫자는 놀랄 만한 숫자이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웃시의 부친 돌라 후손의 전체 인구(2절) 보다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숫자를 불합리한 것으로 보거나(Payne) 다윗 시대보다 훨씬 후기에 조사된 숫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Bertheau).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본절은 이렇게 큰 숫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이는 그 처자가 많은 연고며'라고 특별히 언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Keil).

성 경: [대상7:5]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잇사갈의 후손]

(주);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팔만 칠천인이었더라 - 잇사갈 지파는 모세의 제 1차 인구조사 때에는 54,400명, 제 2차 때에는 64,300명으로 계수되었다(민 1:29;26:25). 참고로 본장에 나오는 여섯 지파 중 인구수가 밝혀져 있는 잇사갈, 베냐민, 아셀 지파의 인구 변동 상황을 간략히 도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잇사갈 지파 베냐민 지파 아셀 지파

민 1,2장 54,400 35,400 41,500

민 26장 64,300 45,600 53,400

둘라의 벨라의 베겔의 여디아엘 ?

대상7장 자손 자손 자손 자손

36,000 22,034 20,200 17,200 26,000

(4절) (7절) (9절) (11절) (40절)

합계 87,000(5절) ? ?

성 경: [대상7:6]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베냐민의 아들들 - 야곱이 이 지파를 향해 '물어뜯는 이리'(창 49:27)라 예언한 것은 이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실 그러한 호전성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바, (1) 사사 에훗의 영웅담(삿 3:15-30), (2) 사울의 왕정 수립과 전쟁(삼상 17장 이하), (3) 탁월한 투석가와 활쏘는 자들(대하14:8;17:17)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브아에서 전 지파에 대항한 사례(삿 20장)는 민족 공동체를 파멸시키려는 매우 독소적인 측면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이러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 분열 때에 유다 왕국에 속하였으며(왕상 12:21) 포로귀환 때에도 유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저자는 이 같은 베냐민 지파의 족보를 8, 9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주); 벨라와 베겔과 여디아엘 - 여기에는 베냐민의 아들들이 세 명밖에 나와 있지 않지만 창 46:21에는 열 명의 아들들이, 그리고 민 26:38, 39에는 다섯 명의 아들들이 나와 있다. 아마도 그 중 몇 명은 '아들'이 아닌 '후손'일 것이다. 한편, 벨라(Bela)와 베겔(Becher)은 창세기에 나오지만 여디아엘(Jediael)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여디아엘이 베냐민의 아들 아스벨(창 46:21;민 26:38)과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Lange, Keil).

성 경: [대상7:7]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벨라의 아들들 - 여기에 '벨라의 아들들'로 소개되고 있는 인물들은 벨라의 친아들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명단은 벨라의 아들들의 이름을 보여 주는 민26:40과 본서 8:3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소개된 인물들은 벨라의 먼 후손들로서 이 명단이 작성되던 당시에 존재했던 다섯 족속의 조상들의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성 경: [대상7:8]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아나돗과 알레멧 - 베겔의 아홉 아들 중 이 두 아들의 이름은 다른 곳에서 지명으로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6:60). 이 중 아나돗(Anathoth)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출생지로 유명하다(렘 1:1). 그리고 알레멧(Alameth)은 일명 알몬(Almon)으로도 불리우는 곳이다(수 21:18).

성 경: [대상7:9]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큰 용사 - 이에 해당하는 '깃보레 하일'(*)의 문자적 의미는 '힘이 강한 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싸움에 능한 전사(戰士)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처럼 베냐민 지파 자손들이 싸움에 능한 자들일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야곱이 예언한 바이다. 6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7:10,11]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에훗 - 이 인물은 8장에 기록된 사사 에훗과는 다른 인물이다(8:6). 여기서의 에훗(Ehud)은 여디아엘의 후손이나, 사사 에훗은 베냐민의 넷째 아들 게라의 후손이다(삿3:15).

(주); 그나아나 - 이름의 뜻은 '분열되다'이다. 한편 혹자는 '그나아나'(*)가 베냐민 지파에 귀속한 가나안의 한 가족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Bertheau) 확실한 근거가 없다(Keil).

(주); 세단 - 이름의 뜻은 '올리브 나무를 취급하는 사람'이다.

(주); 다시스 - '금빛깔을 띤 보석'이란 뜻이다.

(주); 아히사할 - '새벽의 형제'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7:12]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베냐민의 후손]

(주); 일의 아들은 숩빔과 튓빔이요 - 여기서 '일'(Ir)은 벨라의 후손 '이리'(Iri)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7절). 한편 '숩빔'과 '튓빔'은 베냐민의 아들들을 소개한 창 46:21에서 '뭅빔'과 '튓빔'으로, 그리고 민 26:39에서는 '스부밤'과 '후밤'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베냐민의 아들들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인 것이다.

(주); 아헬 - '아헬'(*)은 베냐민의 아들 '아하라'(*)와 동일 인물이다(8:1). 그는 창 46:21에서는 '에히', 민 26:38에서는 '아히람'으로 각기 기록되었다.

(주); 후심 - 이 이름은 창 46:23에서 단(Dan)의 유일한 아들의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단의 아들 후심(Hushim)은 민 26:42에서 수함(Shuham)으로 소개된 자로 수함 족속의 조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의 후심은 아헬의 아들이므로 단의 아들 후심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또 다른 후심이 나오는데 곧 베냐민 지파 사람 사하라임의 아내 후심이다(8:8, 11). 한편, 본서 저자는 단 지파의 족보에대해 본장에서 단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방의 우상을 숭배함으로 일찍이 신앙 공동체에서 분리해 나간 단 지파를 고의적으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Lange, Wycliffe Bible Commentary).

성 경: [대상7:13]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납달리의 후손]

(주); 납달리의 아들들 - 야곱은 이 지파를 두고 '놓인 암사슴'(창 49:21)이라고 예언하였다. 구약 성경에는 납달리 지파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이는 납달리 지파가 자유로운 암사슴처럼 제 멋대로 움직여 뿔뿔이 흩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본서 기자가 이 지파에 관한 족보를 유달리 간략히 취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지파 중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다윗 왕국을 위해 크게 공헌한 사람이 드물었던 것이다.

(주); 야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 - 이 명단은 창 46:24;민 26:48, 49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 빌하 -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는 본래 라헬의 여종이었다. 그녀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곧 단과 납달리이다(창 30:3-8).

성 경: [대상7:14]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므낫세의 아들들 - 본 족보는 5:23, 24에서 언급한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자손들, 즉 요단 서편에 위치한 므낫세 반 지파의 족보이다.

(주); 아스리엘 - 여기서 아스리엘(Ashriel)은 므낫세의 아들인 듯 표현되었으나 서편 므낫세 반 지파의 족보인 민 26:31에 의하면, 실상 그는 므낫세의 아들이 아니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손자였음을 알 수 있다.

(주); 길르앗의 아비 마길 - 므낫세의 장자(長子)로 보여지는 마길은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창 50:23).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므낫세 지파에서 주도권을 잡았었다(2:21-23;민 32:39, 40;삿 5:14).

성 경: [대상7:15]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튓빔과 숩빔의 누이 마아가 - 튓빔과 숩빔은 베냐민의 자손들이다(창 46:21;민26:39). 12절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마아가(Maachah)가 갈릴리 바다 동편에 위치한 아람 소국의 이름이기 때문에(신 3:14) 이는 마길의 아내 마아가가 그곳 출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앞의 '튓빔과 숩빔의 누이'라는 수식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주); 므낫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슬로브핫이니 - 여기서 므낫세의 둘째 아들로 소개된 슬로브핫(Zelophehad)은 실상은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손자이다(민 26:33). 그런데 여기서 왜 그가 므낫세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한편, 슬로브핫은 상속자를 두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가 남긴 다섯 명의 딸들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계속 남기기 위하여 자기들에게 상속권(相續權)을 허락해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하였었다(민 27:1-4, 7-11;36:5-9).

성 경: [대상7:16]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베레스 - 히브리어 성경에 의거하면 이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는 다른 철자인 '베레스'(*)임을 알 수 있다.

(주); 세레스 - 이름의 뜻은 '현명한'이다.

성 경: [대상7:17]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울람의 아들은 브단이니 - 브단(Bedan)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베단(Bedan)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울람의 아들 브단'을 '사사 베단'(삼상 12:11)과 동일 인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삼상 12:1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7:18]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함몰레겟 - 이름의 뜻은 '여왕'인데 그녀는 길르앗의 누이이다.

(주); 이스홋 - '광채의 사람'이란 뜻이다.

(주); 아비에셀 - 이름의 뜻은 '도우시는 아버지'이다. 함몰레겟(Hammoleketh)의 아들인 그는 아비에셀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수 17:2). 한편 민 26:30에 기록된 이에셀(Jeezer)은 길르앗의 자손으로 아비에셀(Abiezer)과는 다른 인물이다.

성 경: [대상7:19]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므낫세의 후손]

(주); 스미다 - 그는 길르앗의 아들로서 스미다 가족의 조상이 된 자이다(민 26:32). 한편, 스미다(Shemidah)의 네 아들들은 본절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중 세겜(Shechem)은 길르앗의 또 다른 아들인 아스리엘에게서 태어난 세겜과는 다른 인물이다(민 26:31).

성 경: [대상7:20]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에브라임의 아들 -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Ephraim, 창 41:51, 52)은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장악한 에브라임 지파의 조상이다(창 48:19). 이 에브라임 지파는 다윗왕과 솔로몬의 왕권에 도전하기도 하였으나(삼하 2:9;왕상 11:26) 종교적 측면에 있어서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영향권(影響圈) 내에 있었다(대하 30:1;31:1;34:6).

(주); 수델라 - 이름의 뜻은 '찢는 소리'이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한 족속인 수델라 족속의 족장이다(민 26:35). 한편 본절에는 수델라의 아들이 베렛(Bered)으로 기록되었으나 민 26:36에는 에란(Eran)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경: [대상7:21]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가드 토인 - 가드(Gath)는 블레셋의 유명한 다섯 성읍 중 하나로서 이곳에는 키가 장대한 아낙 족속(Anakim)이 살고 있었다(수 11:22). 그런데 블레셋 족속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가나안 남서쪽인 이곳을 장악했었다(수 13:3). 따라서 가드 토인은 블레셋에 속한 아낙 족속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은 바로 이곳 가드 출신이었다(삼상 17:4).

(주);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빼앗고자 하였음이라 - 여기서 '빼앗고자 하였음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카흐'(*)는 단순히 '도적질하다'는 뜻이 아니고 '강탈하다'는 뜻으로 전쟁의 행위을 암시해 주는 용어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러한 전쟁 행위가 출애굽 이전, 곧 이들이 애굽에 있을 때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Ewald,Payne).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약하니 사실성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Keil & Delitzsch, Vol. III, p.139). 한편, 본절의 주어는 사실상 애매 모호하다. 즉, 본절의 주어가 동사의 접미어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어를 에셀과 엘르앗으로 취할 수도 있으며 반면에 가드 토인으로 취할 수도 있다. 더욱이 '가드 사람의 짐승'이란 말은 의역(意譯)된 말로서 원문에는 '그들의 짐승'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가드 사람이 주어가 되어야 하는 약간의 당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려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드'(*)가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가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드 토인이 고지인 가드에서부터 저지인 에브라임인들의 거주지로 내려가 전쟁을 일으키고 에셀과 엘르앗을 죽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Lange, Payne). 그러나 이와 달리 혹자는 여기에서 주어를 에셀과 엘르앗으로 보고 그들이 가나안 정복 이후 에브라임 산지에서 가드로 내려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한다(Keil, Bertheau). 이 같은 상반된 주장은 어디까지나 원문의 애매 모호함 때문에 생긴 것이니 우리는 어느 한 견해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

성 경: [대상7:22]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 본 사건을 가나안 정복 이후의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 가운데에는 본절의 에브라임을 (1) 에브라임 전체 지파를 상징하는 말로 이해하거나(Bertheau) (2) 에브라임과 이름이 똑같은 그의 후손으로 이해하는 자들이 있다(Keil). 그러나 전후 문맥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납득하기 곤란하다. (3) 따라서 우리는 에브라임을 액면 그대로의 에브라임으로 보아야 한다(Lange).

(주);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 - 부모가 자식을 잃는 것은 감당키 힘든 시련 중의 하나이다. 에브라임이 그러한 처지에 빠져 슬퍼할 때 그 형제가 위로하였는데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도의 참된 우애는 기쁨과 고통을 서로 나누며 동참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모이기에 힘쓰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할 것이다(행 15:31, 32;엡 4:13;히 10:25).

성 경: [대상7:23]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브리아 - 에브라임의 새로운 아들의 이름인 '브리아'(*)는 '재앙'을 의미하는 '루아'(*)에서 파생된 이름이다(Davidson). 즉 에브라임은 새로운 아들의 이름을 그같이 명명함으로써 에셀과 엘르앗을 잃은 데 대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성 경: [대상7:24]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세에라 - 이름의 뜻은 '혈연 관계'이다.

(주); 아래 윗 벧호론 - 이곳은 그핫 자손의 성읍이 있던 곳이며(6:68)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유명한 전쟁터이다. 6:68 주석 참조.

(주); 우센세에라 - 세에라(Sheerah)는 인명이며, 우센(*)은 본래 '귀'를 뜻한다. 따라서 '우센세에라'는 '세에라의 귀'란 뜻이다. 즉 세에라는 이 성읍을 건축한 후 자신의 이름을 본따 성읍명을 붙인 것이다. 이곳은 분명히 벧호론 근처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Lange).

(주); 세웠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나'(*)는 건축 활동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성 경: [대상7:25,26]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브리아의 아들들 - 원문에는 본절이 '그의 아들들'로 되어 있다. 때문에 뒤에 나오는 레바와 레셉이 에브라임의 아들들인지 아니면 브리아의 아들들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브리아의 아들로 보는 데에 있어서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럴 경우 27절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레바의 8대손이 된다(Payne).

(주); 델라 - '갈라진 틈'이란 뜻이다.

(주); 다한 - 이름의 뜻은 '야영'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민 26:35에서 에브라임의 아들로 소개된 '다한'과는 다른 인물이다.

(주); 라단 - 이름의 뜻은 '정돈된'이다.

(주); 암미훗 - '탁월한 백성'이란 뜻이다.

(주); 엘리사마 - '들으심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족장이었다(민 2:18;7:48).

성 경: [대상7:27]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의 후손]

(주); 눈 - 성경에서는 눈(Nun)에 대해서 여호수아의 부친이라는 사실 외에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출 33:11;민 11:28;13:8, 16;신 1:38). 그의 이름의 뜻은 '물고기'이다.

(주); 여호수아 - '여호와께서 구원하심'이란 뜻이다.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을 정복하였다(출 17:8-16;24:13;민 14:6-10;27:18-23;신 34:9;수 10:1-12:24). 본서 기자는 에브라임 지파의 족보를 여호수아에게 귀결시킴으로 그의 위치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여호수아가 완고한 백성들을 강력하게 인도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켰기 때문이다. 한편 여호수아 군대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성도들과 사단과의 영적 전투를 예표하였던바, 우리는 여호수아의 생애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재점검할 수 있어야 하겠다.

성 경: [대상7:28]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 후손의 거처]

(주); 산업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후자'(*)는 '소유', '재산'을 의미하는 법률적(法律的) 용어로서 여기서는 특히 에브라임 지파에게 상속된 땅을 의미한다. 한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이었다(창 17:8;48:4). 따라서 이 땅을 다른 사람이 임대하였거나 혹은 여호와께 봉납하였을지라도 희년(禧年)에는 반드시 주인에게 반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레 25:10, 13, 28;27:24). 민 27:1-11 강해, '토지의 사유 재산과 세습 제도' 참조.

(주); 벧엘 -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20km 지점인 오늘날의 '베이틴' 마을이다. 이 성읍은 팔레스틴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상에 위치하였으며 아브라함과 야곱이 하나님을 경배한 유서깊은 성읍이다(창 12:8;28:19). 그러나 이곳은 후에 우상 숭배의 온상지가 되기도 하였다(왕상 12:28-33). 이곳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주); 그 향리요 - 이는 곧 벧엘에 속한 인근 부락들을 의미하는 말이다(Lange).

(주); 나아란 - 일명 나아라(Naarah)라고도 불리웠던 성읍이다. 이는 가나안에서 인구 밀도가 높은 요단 근처 기름진 평야 지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 여리고 북쪽 근방에 있었던 이 성읍은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해 있었다(수 16:7).

(주); 게셀 - 예루살렘과 욥바 중간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핫 자손에게 할당된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다(6:67;수 21:21). 6:67 주석 참조. 한편, 다윗 왕은 블레셋과의 전투 때에 블레셋 병사들을 이곳 게셀(Gezer)까지 몰아내었다(삼하 5:25).

(주); 세겜 -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64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6:6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7:29]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에브라임 후손의 거처]

(주); 벧스안 - 길보아 산 근처에 위치했는데 일명 벧산(Beth-shan)이라고도 불리웠다(삼상 31:10). 이 지명은 '안락의 집'이란 뜻이다. 이곳은 한때 블레셋인들에게 점령당하였는데 정확한 위치는 요단 강 서쪽 약 6.5km, 갈릴리 바다 남쪽 약 19km지점이다. 삼상 31:10 주석 참조.

(주); 다아낙 -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수 21:25) 므깃도와 에스드렐론 평원이 바라다 보이는 예닌 근처에 위치하였다.

(주); 므깃도 - 다아낙(Taanach) 북쪽에 위치했는바 동쪽으로는 길보아 산, 북쪽으로는 에스드렐론 평원이 굽어다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은 천혜(天惠)의 전략적 요충지기도 하다(수 12:21;17:11;왕상 9:15-19;계 16:16).

(주); 돌 - 갈멜 산 남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성읍이다. 이 성읍은 '에트-탄투라'라는 오늘날의 작은 항구 도시에 해당하는 곳이다(수 12:23;17:11;삿 1:27).

성 경: [대상7:30]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아셀의 아들들 - 본절에서부터 마지막 40절까지에는 아셀 지파의 족보가 나온다. 이는 창 46:17과 민 26:44-47의 족보에 따른 것이다. 한편 아셀 지파는 기름진 땅을 차지하리라는 축복을 예언받았는데(창 49:20) 실제로 그들이 차지한 지중해 해변의 땅은 기름지고 소산(所産)이 풍부하였다(수 19:24-31).

(주); 임나 - 세 족보에서 모두 맏아들로 기록되었는데 그는 임나 가족의 조상이다(민26:44).

(주); 이스와 - 이름의 뜻은 '그가 평평하게 할 것이다'이다.

(주); 이스위 - 이스위 가족의 조상으로서(민 26:44) 이름의 뜻은 '평평한'이다. 추측컨대 그는 '이스와'와 쌍동이였던 것 같다.

(주); 브리아 - 브리아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4).

성 경: [대상7:31]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헤벨 - 헤벨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5). 그의 이름은 '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 말기엘 - 말기엘 가족의 조상이다(민 26:45).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왕'(하나님이 지정하신 왕)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7:32]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야블렛 - '그가 구출하실 것이다'라는 뜻이다.

(주); 호담 - 이름의 뜻은 '결정'이다. 혹자는 호담(Hotham)을 35절에 나오는 헬렘(Helem)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성 경: [대상7:33]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바삭 - '나누는 사람'이란 뜻이다.

빔할 - '할례의 아들'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7:34]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아히 - '형제'라는 뜻이다. 그는 갓 자손, 구니의 손자인 아히(Ahi)와는 다른 사람이다(5:15).

성 경: [대상7:35]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소바 - '항아리'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7:37]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이드란 - 혹자는 '이드란'(*)을 다음 구절에 나오는 '예델'(*)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한편 이드란(Ithran)이란 이름은 '돌출'이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7:38]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아라 - 이드란의 경우처럼 아라(Ara) 역시 다음 구절에 나오는 울라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Payne). 더욱이 이 경우는 이드란의 경우와는 달리 철자상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확정짓기가 보다 어렵다.

성 경: [대상7:39]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한니엘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이다. 그는 므낫세 지파의 대표였던 한니엘(Hanniel, 민 34:23)과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7:40]

주제1: [요단 서편의 지파들]

주제2: [아셀의 후손]

(주); 그 보계대로 계수하면 이만 육천 인이었더라 - 이 통계는 아셀 전지파의 군사 인구를 의미하지 않고 다만 아셀 지파 내에서 가장 탁월했던 헤벨 족속의 군사 인구를 나타내는 것 같다(Keil, Lange). 왜냐하면 이 숫자는 전지파의 인구수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셀 지파는 모세의 제 1차 인구 조사에서는 41,500명(민 1:41), 제 2차 인구 조사에서는 53,400명으로 계수되었다(민 26:47).

성 경: [대상8:1,2]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본장 전체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로서 7:6-12의 내용을 보충하는 부분이다. 본서 저자는 본서에서 유다 지파 다음으로 베냐민 지파의 족보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초대 왕(사울)이 이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33절;삼상 10:17-24). 그보다는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이스라엘 백성 내에서 차지하는 베냐민 지파의 비중이 유다 지파 다음으로 컸기 때문이었다(느 11:4,7, 31, 36;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주); 베냐민의 낳은 자 - 1, 2절에는 베냐민의 다섯 아들이 소개되었는데 이 가족은 같은 베냐민 지파의 족보인 창 46:21의 기록보다는 민 26:38-40의 기록을 따른 것 같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기록에는 10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는 반면, 민수기의 기록에는 5명의 아들들이 소개되어 있어 숫자상으로 본절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Keil,Payne). 그러나 이 두 기록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즉, 벨라(Bela)와 아스벨(Ashbel)은 일치하나 나머지 세 명의 이름은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하라(Aharah)는 민수기에 소개된 아히람(Ahiram, 민 46:38)과 동일 인물인 것이 분명하나(Lange, Keil, Payne), 노하(Nohah)와 라바(Rapha)는 알 수 없다. 혹자(Keil)는 노하와 라바가 베냐민의 아들이었던 스부밤(Shephupham)과 후밤(Hupham, 민 26:39)의 후손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 한편, 민수기의 기록에서 이들 베냐민의 아들들은 베냐민 지파의 각 족속의 조상으로 소개되었다.

성 경: [대상8:3]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앗달 - '앗달'(*)은 '아릇'(*)이 필사자의 착오로 잘못 표기된 이름이다(민 26:40;창 46:21). 참고로 '앗달'은 '넓은'이란 뜻이며 '아릇'은 '곱사등'이란뜻이다.

(주); 게라 - 게라(Gera)란 이름은 5절에도 나온다. 아마도 벨라의 둘째 아들인 게라가 일찍 죽자 일곱째의 아들에게 다시금 그 같은 이름이 주어진 것 같다(Payne).

성 경: [대상8:4]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아비수아와 나아만과 아호아 - 나아만(Naaman)은 창 46:21에 소개되어 있으나 아비수아(Abishua)와 아호아(Ahoah)는 3절의 아비훗(Abihud)과 더불어 본절에만 등장한다.

성 경: [대상8:5]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게라 - 이름의 뜻은 '알곡'이다. 이 '게라'는 6절에 나오는 에훗(Ehud)의 선조(先祖)인 것이 분명시 된다.

(주); 스부반 - 이름의 뜻은 '뱀'이다. 그런데 그는 민 26:39에 나오는 스부밤(Shephu-pham)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주); 후람 - 민 26:39에 나오는 후밤(Hupham)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후람(Huram)은 '존귀한 자'란 뜻이며 '후밤'은 '보호받는 자'란 뜻이다.

성 경: [대상8:6]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에훗 - 삿 3:15에서 게라의 아들 에훗은 사사(士師)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혹자는 베냐민의 손자 게라(5절)와 사사 에훗 사이에는 약 500년의 간격이 있으므로 본절의 에훗은 사사 에훗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Keil, Lange). 하지만 히브리어에서 아들이란 용어(*, 벤)는 '손자', 또는 '후손'이라는 의미로도 흔히 사용되었다(2:52;4:15;삿 13:1;삼상 14:3). 따라서 본절의 에훗이 왼손잡이 사사 에훗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Curtis, Kraft). 한편, 사사 에훗은 왼손잡이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왕 에글론의 억압에서 구출해 낸 용사이다(삿 3:15-30).

(주); 게바 거민의 족장으로서 사로잡아 마나핫으로 가되 - 한글 개역 성경의 본절 번역은 주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 번역은 본절을 다음과 같이 비교적 낫게 번역하고 있다. "게바에서 살다가 마나핫으로 사로잡혀 간 각 가문의 수령들은 나아만과 아히야, 게라인데, 이 게라가 바로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장본인이다." 즉 여기서 '사로잡아...가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라'(*)는 '포로로 끌고 가다'라는 뜻이다(겔 39:23). 그리고 그 행동의 주체는 바로 에훗의 아들 중의 한 명인 게라이다. 하지만 7절에 의거할 때 나아만, 아히야 또한 게라의 공동 사역자 내지 보조자였음을 알 수 있으니 공동 번역의 번역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 번역에서도 사로잡혀 간 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본절은 에훗의 아들들이 게바 거민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마나핫으로 끌고간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는지를 밝혀주는 자료는 아직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편, 게바(Geba)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레위인의 성읍으로서(수 18:21, 24;21:17) 오늘날의 '예렐'로 알려져 있다. 6:60 주석 참조. 그리고 마나핫(Manahath)은 유다 지파의 한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4.8km 떨어진 오늘날의 '말하'인 것으로 추정된다(Morton). 따라서 게라는 베냐민 경내(境內)의 게바 거민들을 유다 경내로 이주시켰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행동의 저의(底意)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 경: [대상8:7]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곧 나아만과 아히야와 게라를 사로잡아 갔고 - 문맥상 나아만과 아히야와 게라는 끌려간 포로가 아니라 오히려 포로들을 끌고간 주체들이다. 왜냐하면 앞절에서 에훗의 아들들이 게바의 거민들을 사로잡아간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게라에 뒤이어 나오는 본 문장의 주어인 3인칭 단수 대명사 '후'(*)는 이들 3인 중 특별히게라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주); 그가 - 이는 곧 게라를 지칭하는 말이다.

(주); 웃사 - 다윗 시대의 인물로서 법궤 운반 도중 죽은 웃사(Uzza, 삼하 6:6, 7)와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8:8]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사하라임은...모압 땅에서 자녀를 낳았으니 - 사하라임(Shaharaim)은 앞의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베냐민의 어느 계보를 좇아 출생하였는지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본절은 그가 가나안 땅에 거하다가 모압 땅으로 이주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어떠한 동기로 이주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두 아내를 내어 보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엿볼 수 있다. 즉 여기서 '내어 보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라흐'(*)는 다툼과 불화의 이유로 쫓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분명히 이혼(離婚)을 뜻하는 것이다(신 22:19, 29;사 50:1). 그런데 이와 같은 사하라임의 불의한 행동은 B.C. 1,300년 경의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오히려 경미(輕微)한 행동이었다(삿19:22-28;20:12-14). 즉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사사 시대서부터 이방 민족과 다름없는 각종 죄악과 패역함을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성 경: [대상8:9]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호데스 - 이름의 뜻은 '초생달'이다. 그녀는 사하라임이 모압에서 얻은 모압 여인임에 분명하다. 그 까닭은 그녀가 낳은 아들들의 이름이 언어학적으로 모압 사람들의 이름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Lange). 즉, 메사(Mesha)는 모압 왕 메사와 일치하는 이름이며(왕하 3:4) 말감(Malcam)은 모압 우상의 이름인 것이다(렘 49:1, 3). 레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성 경: [대상8:10]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여우스 -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원하나이다'이다. 그러나 이 여우스(Jeuz)는 베냐민 자손 중 빌한의 아들 여우스(Jeush, 7:10)와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8:11]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그 아내 후심에게서 아비둡과 엘바알을 낳았으며 - 후심(Hushim)은 사하라임에게서 쫓겨났던 여자이다(8절).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의 순수한 혈통이므로 본절에서 저자는 모압 여인 호데스(9절)와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비둡'(*)은 '나의 아버지는 선하시다'는 뜻이며, '엘바알'(*)은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12]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오노 - 욥바 남동쪽 11.2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케프르 아나'(Kefr Ana)이다. 포로 귀환 이후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곳에 귀환하였다(스 2:33;느 11:35).

(주); 롯 - 사론 평지의 남쪽 경계지에 위치한 성읍으로 욥바 남동쪽으로 약 17.6km 지점이다. 이곳은 신약 시대에 베드로가 중풍병자인 애니아를 고친 룻다(Lydda)와 동일한 곳이다(행 9:32, 33). 또한 이곳은 오노(Ono)와 더불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720명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거주한 곳으로(스 2:33;느 11:35) 오노와는 불과 8km 떨어져있었다. 이들 성읍들은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다.

(주); 향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노테이하'(*)는 본래 건축물(建築物)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본성에 부속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킨다.

성 경: [대상8:13]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브리아와 세마 - 이들은 엘바알의 또 다른 아들들로서 에벨, 미삼, 세멧과 더불어(12절) 베냐민 지파의 족장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편 브리아(Beriah)는 '재앙을 받음'이란 뜻이며 세마(Shema)는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란 뜻이다. 이 중 '세마'는 21절에 나오는 시므이(Shimei)와 동일 인물이다(Payne, Wycliffe Bible Commentary).

(주); 아얄론 거민의 족장이 되어 가드 거민을 쫓아내었더라 - 아얄론(Aijalon)은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했던 곳으로 처음에는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후에 에브라임 지파가 아모리 사람들로부터 탈취한 성읍이다(수 19:42;삿 1:35). 이곳은 후에 레위인의 성읍이 되었다(수 21:24). 6:69 주석 참조. 한편, 가드(Gath)에 대해서는 7:21을 참조하라.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가 공략하다 대패한 도시로(7:21) 견고한 요새지로 알려져 있다(수 11:22). 주민들은 대단히 강성한 자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늘 위협의 대상으로 존재하였다(삼상 17:4). 본문은 그들에게 당한 이스라엘의 울분이(7:22) 브리아와 세마에 의해서 설욕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들은 동족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를 목도하게 된다(롬 12:15).

성 경: [대상8:14]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사삭 - 이름의 뜻은 '공격자'이다. 그는 25절에서 베냐민 지파의 한 족장으로 소개되고 있다.

(주); 여레못 - '고지'(高地)란 의미이다. 그는 27절에 나오는 여로함(Jeroham)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대상8:15]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스바댜 -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이다. 에델 - '무리', '떼'를 의미한다.

성 경: [대상8:16]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미가엘 - '누가 하나님과 같으랴'라는 뜻이다.

(주); 요하 - '여호와께서 소생시키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17]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스바댜 - 15절의 스바댜(Zebadiah)와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본절의 스바댜는 엘바알의 아들이나 15절의 스바댜는 브리아의 아들이다.

(주); 므술람 - '므술람'(*)은 12절의 '미삼'(*)의 변형(變形)일 것이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주); 히스기 - '강한'이란 뜻이다.

(주); 헤벨 - 헤벨(*)은 12절의 '에벨'(*)의 변형일 것이다(Payne).

성 경: [대상8:18]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이스므래 - '이스므래'(*)는 12절의 '세멧'(*)의 변형인 것으로 보여진다(Payne). 한편 '이스므래'는 '여호와께서 지키심'이란 뜻이며 '세멧'은 '파리'란 뜻이다.

성 경: [대상8:19]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야김 - '그가 일으키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20]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엘리에내 - '하나님은 나의 눈이시다', 즉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주); 실르대 - '주의 그늘'이란 뜻이다.

(주); 엘리엘 - '하나님은 그의 힘이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21]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아다야 - '주께서 장식하신다'는 뜻이다.

(주); 시므랏 - '지키다'는 뜻이다.

(주); 시므이의 아들들이요 - 여기서 '시므이'(*)는 13절의 '세마'(*)와 동일 인물이다(Payne).

성 경: [대상8:22]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이스반 - '탁월하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23]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압돈 - '노예의'라는 뜻이다.

(주); 하난 - '자비로운'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8:24]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하나냐 -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푸셨다'는 뜻이다.

(주); 안도디야 - '여호와로부터의 응답'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8:25]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이브드야 -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다'는 뜻이다.

(주); 브누엘 -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브니엘(창 32:30) 또는 부느엘(왕상 12:25)은 이와 동일한 이름이다.

(주); 사삭 - 그는 다름아닌 브리아의 아들 사삭(Shashak)이다(14절). 그의 이름은 '열심'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8:26]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스하랴 - '여호와께서 찾으시다'는 뜻이다.

(주); 아달랴 - '여호와는 존귀하시다'는 뜻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로서 악명 높았던 자로는 유다 왕 여호람의 왕비 아달랴(Athaliah, 왕하 8:26, 27;11:1)를 들 수 있다.

성 경: [대상8:27]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야아레시야 - '여호와께서 기름지게 하시다'는 뜻이다.

(주); 엘리야 -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뜻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였던 디셉 사람 엘리야(Elijah, 왕상 17:1)와는 다른 인물이다.

(주); 시그리 - '명성있는'이란 뜻이다.

(주); 여로함의 아들들이니 - 혹자는 '여로함'(*)이 14절에 나오는 브리아의 아들 '여레못'(*)이라고 주장한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여로함(Jeroham)은 '그가 자비를 얻을 것이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8:28]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

(주); 이는 다...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 - 11절 이하에 나오는 모든 자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였다는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기업을 얻지 못한 이방 여인의 아들들(9, 10절)과 대조되는 내용이다. 한편 여기서 예루살렘(Jerusalem)은 요새지인 예루살렘 성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은 다윗 때까지 여부스인들(Jebusites)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삼하 5:6, 7). 따라서 본절은 베냐민 자손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 부근에 거처하였음을 가리키는 구절이라 하겠다.

성 경: [대상8:29]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 - 여기서 '조상'이란 성읍의 창설자를 의미하는 말이다(2:24, 42, 50-52). 그런데 사울 왕(33절)의 조상으로 소개되고 있는 기브온의 창설자 여이엘(Jeiel)은 삼상 9:1에서 '아비엘'(Abiel)로도 소개되고 있다. 한편, 기브온(Gibeon)은 예루살렘 북서쪽 9.6KM 지점인 오늘날의 엘-집(el-Jib)이다(삼하 2:12;20:8).

(주); 마아가 - 이름의 뜻은 '압제'이다. 이 같은 이름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흔히 볼수 있는 이름이다(2:48;7:16;삼하 3:3;왕상 15:13;대하 11:18-21).

성 경: [대상8:30,31]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장자는 압돈이요...세겔이며 - 본절과 병행 구절인 9:36, 37을 대조해 볼 때 본절에는 중요한 인물인 넬(Ner)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9장의 기록에는 넬이바알과 나답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넬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필사자의 실수에 의한 탈락이었다기 보다는(Keil) 인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일부러 뒤로 돌린 때문인 듯하다. 한편 세겔(Zecher)은 9:37에서 일명 스가랴(Zechariah)로 언급되고 있다.

(주); 압돈 - 사삭의 아들 압돈(Abdon, 23절)과는 다른 사람이다.

(주); 기스 - '권능', '활'이란 뜻이다. 그는 사울의 아비 기스(Kish, 33절)와는 구별된다.

(주); 아히오 - 이름의 뜻은 '형제의'이다. 그는 브리아의 아들 아히요(Ahio, 14절)와는 다른 사람이다.

성 경: [대상8:32]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미글롯 - 이름의 뜻은 '멸시하다'이다. 그 역시 여이엘(29절)의 아들이다(9:37).

(주); 이 무리가 그 형제로 더불어 서로 대하여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 - 여기서 '형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흐'(*)는 한 피를 받은 형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친척, 또는 같은 지파의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6:39 주석 참조.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로 예루살렘에 거처했던 앞 절들의 모든 인물들을 가리킨다. 또한 '서로 대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게드'(*)는 '바로 앞에'라는 말로서 여이엘(29절)의 가족들이 다른 친척들과 더불어 매우 가까이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성 경: [대상8:33]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넬 - 여히엘(아비엘)의 다섯째 아들이며(9:36)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조부(祖父)이다. 그는 또한 사울의 군대 장관이자 숙부였던 아브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삼상14:50, 51).

(주); 기스 - 이름의 뜻은 '활'이다.

(주); 사울 -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다(삼상 10:17-24). 그러나 초대 왕의 명분에 비해 그의 족보는 본장에서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었다. 즉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인 다윗의 족보가 매우 길게 소개된 사실에 비추어 보면(3장) 초대 왕으로서의 그의 족보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본서 저자가 다윗 왕에게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가고 있기 때문에 사울(Saul) 왕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사울이 구속사(救贖史)의 주요 인물이 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자기 임의대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삼상 13:9, 13, 14;22:16-18;삼하 21:2). 결국 이러한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왕권은 다윗 가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주); 요나단 - 사울 왕의 장자(長子)이자 다윗 왕과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이다(삼상18:1;19:1-7). 즉 그는 비록 사울의 뒤를 이을 왕자였지만 다윗을 시기하거나 배척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실한 우정을 드러낸 자이다. 이들의 친분은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인간 관계의 대표적인 예로서(요 15:13) 오직 진리에 최우선을 두는 참된 교제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는 또한 활을 잘 쏘며(삼하 1:22) 죽음을 무릅쓰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한 용사이다(삼상 13:2;14:1-14).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 왕과 두 동생들과 더불어 전사하였다(삼상 31:6).

(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 - 사울 왕과 요나단과 더불어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사울 왕의 또 다른 아들들이다. 이 중 아비나답(Abinadab)은 다른 곳에서 리스위(Ishui)로도 기록되었다(삼상 14:49).

(주); 에스바알 - 이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위에 오른 동안 그의 당숙(堂叔) 넬(Ner)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이스보셋(Ishbosheth)이다(삼하 2:8, 9). 한편 에스바알(Esh-baal)이란 이름이 이스보셋으로 변형된 동기에 대해서는 삼하 2:8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8:34]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므립바알 - 이는 다윗 왕의 은혜를 입었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다(삼하9:1-13;16:1;19:24-30).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에게 패배했던 당시에 유모(乳母)의 품에 안겨 도망가다가 실수로 땅에 떨어져 평생 절뚝발이가 되었다(삼하 4:4). 한편, 므립바알(Meribbaal)이란 이름이 므비보셋(Mephibosheth)으로 변형된 동기는 에스바알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삼하 4: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8:35]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며 - 본절은 병행 구절인 9:41의 기록과 일치한다.

(주); 비돈 - 이름의 뜻은 '무해한'이다.

(주); 멜렉 - '왕'이란 뜻이다.

(주); 다레아 - '숙련된'이란 뜻이다.

(주); 아하스 - '그가 붙들다'란 뜻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 중에는 유다 왕 아하스(Ahaz)가 악명높다(왕하 16:3;대하 28장).

성 경: [대상8:36]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여호앗다 - '여호와께서 단장하시다'란 뜻이다.

(주); 아스마뛕 - '죽음의 권세'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8:37]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모사 - '출구'라는 뜻이다.

(주); 비느아 - '터져 나옴'이란 뜻이다.

(주); 라바 - 이름의 뜻은 '안식하다'이다. 그는 9:43에서 '르바야'(Rephaiah)로 나와 있다.

(주); 엘르아사 -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8:38]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아셀 - '고귀한', '구별된'이란 뜻이다.

(주); 아스리감 - '대적에게서 구원하다'란 뜻이다.

(주); 보그루 - '그는 장자이다'는 뜻이다.

(주); 이스마엘 -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

(주); 스아랴 - '여호와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자'라는 뜻이다.

(주); 오바댜 - '여호와를 섬김'이란 뜻이다.

(주); 하난 - '자비로운'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8:39]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에섹의 아들은 이러하니...이며 - 본절은 병행 기사인 9장에는 나와 있지 아니한 구절이다.

(주); 에섹 - '억압'이란 의미이다.

(주); 울람 - '강하다'는 뜻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40절에 나오는 그의 행적과 잘 어울린다.

(주); 여우스 - '서두르는 자'라는 뜻이다.

(주); 엘리벨렛 - '구원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성 경: [대상8:40]

주제1: [재 언급되는 베냐민 지파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 활을 잘 쏘는 자라 - 베냐민 지파는 전통적으로 활을 잘 다루었다(12:2;삼하 1:22;대하 14:8;17:17). 이는 야곱이 예언하였던 베냐민 지파의 용맹성(창 49:27)과 잘 부합된다.

(주); 아들과 손자가 많아 - 기브아의 싸움에서 멸절되다시피한 베냐민 지파(삿 20:47)가 다시금 번성케 되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한편 울람(Ulam)의 손자들은 므비보셋(므립바알)의 13대째 후손들이다. 므비보셋은 사울 왕이 전사한 B.C. 1010년에 다섯살이었는데(삼하 4:4) 그때로부터 13세대를 계산해 보면(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봄) 바벨론 유수 때인 B.C. 586년 직전까지 내려온다. 따라서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포로 시대 이전의 인물들임에 틀림없다(Payne, Lange, Keil).

성 경: [대상9:1]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족장들]

(주); 이스라엘 열왕기 - 이는 성경의 열왕기서(the Book of Kings)를 뜻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은 유실된 궁전 기록을 의미한다(Keil,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Payne). 본서 저자는 본서를 기록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였는데(27:24;29:29;대하 9:29;12:15;13:22;20:34; 25:26;27:7; 32:32; 36:8) 불행히도 그 문헌들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본서 서론, '7. 역대기의 자료' 참조.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은 유다 왕국과 대조되는 '이스라엘 왕국'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곧 12지파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왜냐하면 (1) 여기서 인용된 기록의 내용이 이스라엘 전체를 포함하고 있고(1-44절) (2) '이스라엘'이란 말 자체가 언약 백성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Keil).

(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사로잡혀 갔더니 -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칭하는 '이스라엘'(삼상 4:10)이나 '온 이스라엘'(삼상 4:5)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유다'라 지칭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주체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닌 남왕국 유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 여기서 그들의 범죄함을 강조한 것은, 후손들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성 경: [대상9:4]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족장들]

(주); 우대 - '우대'(*)는 느 11:4의 '아다야'(*)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돕는 사람'이다.

성 경: [대상9:8]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족장들]

(주); 무술람 - 한글 개역 성경에 므술람(Meshullam)으로도 곧잘 표기되는데(11절) 성경에는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20명이 넘게 나온다. 그렇지만 본절의 '무술람'에 대하여 달리 알려진 바는 없으며 그 이름의 뜻이 '보상됨'이란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성 경: [대상9:9]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족장들]

(주); 저의 형제들이라 - 여기서도 '형제들'이란 위(7, 8절)에 언급된 살루, 이브느야, 엘라, 무술람 이 네 족장들의 혈족들을 의미한다. 6절 참조.

(주); 구백 오십 륙 인이니 - 느 11:8에 계수된 숫자는 928명이다. 이러한 수치의 차이는 이 두 기록이 서로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된 데서 비롯된 차이인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2절 주석 참조.

(주); 다 그 집의 족장된 자들이더라 - 이는 바로 앞의 956명의 혈족들을 다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4절에서부터 8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언급된 유다와 베냐민의 자손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절에서부터는 레위인들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본절은 지금까지의 족장들의 명단을 마무리 짓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Lange).

성 경: [대상9:10]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들]

(주);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 - 이 이름들은 다윗 왕 때에 구성된 제사장의 24반차에 나오는 이름들과도 동일하다(Keil). 이 중 여다야(Jedaiah)는 두번째 반차, 여호야립(Jehoiarib)은 첫번째 반차, 그리고 야긴(Jachin)은 스물 한번째 반차에 해당한다(24:7-19). 본절에 나오는 각 사람들은 분명 바로 그 반차와 계통을 좇아 난 자손들일 것이다. 한편 이들 이름은 느헤미야에서도 나와 있다(느 11:10).

성 경: [대상9:11]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들]

(주);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 여기서 '맡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지도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본래는 '대제사장'을 일컫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귀환 후의 대제사장은 여호수아였으니(학 1:1;슥 3:1) 여기서는 대제사장 다음 가는 권한을 지닌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 아사랴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 아사랴(Azariah)는 B.C. 586년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사닥의 조부이며(6:14, 15) 그의 부친 힐기야(Hilkiah)는 요시야의 종교개혁(B.C. 622)에 가담했던 인물이다(왕하 22:4-14;23:4). 이에 근거하여 혹자는 저자에 의해 기술된 본 족보가 B.C. 622년 직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Payne). 그러나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족보는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자들의 명단이니 본절의 아사랴, 힐기야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절주석 참조.

성 경: [대상9:12]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들]

(주); 아다야니...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임멜의 오대손이며 - 본절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동일한 이름을 우리는 다윗 시대 당시의 제사장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아다야의 증조부 말기야(Malchijah)는 다섯번째 반차를, 마아새의 조상 임멜(Immer)은 열 여섯번째의 반차를 맡았던 제사장들이었다(24:9, 14).

성 경: [대상9:13]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들]

(주);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 - 여기서 '재능이 있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레이 헤일'(*)은 '열심있는 모든 능력있는 용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자들이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하는 가운데 열심과 능력을 보인 영웅적 일꾼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처럼 성전에서의 다양한 봉사 직분은 다윗 시대에 정해진 것이다(23:26-32). 본절에 언급된 자들은 바로 그 계열의 후손들이다.

(주); 모두 일천 칠백 륙십 인이더라 - 이 숫자는 10-13절에 소개된 제사장들과 그 형제들 뿐만 아니라 그 외에 성전에서 수종든 레위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숫자인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레위인의 명단에는 계수한 숫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9:14]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레위인들]

(주); 므라리 자손 스마야 - 므라리(Merari)는 레위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다(6:1). 그 후손들은 다윗 당시 성전 문지기(26:10, 19)와 찬양의 직무 등을 맡았었다(6:44).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구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스마야(Shemaiah)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9:15]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레위인들]

(주); 박박갈 - '산의 풍부함'이란 뜻이다.

(주); 맛다냐니...아삽의 증손이며 - 맛다냐(Mattaniah)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이다. 한편 아삽(Asaph)은 다윗이 임명한 악사(樂師)로서 레위의 맏아들 게르손의 후손이다(6:39-44). 본절은 귀환한 포로민 가운데 성전에서 찬송 직무를 맡을 가문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 경: [대상9:17]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문지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르'(*)는 성전의 입구나 왕궁의 문을 지키는 자들을 말한다(왕하 22:4;에 2:21). 특히, 성전 안 여러 문들의 입구를 지키는 직무는 레위인들에게 맡겨졌다. 이들의 중요한 직무는 아침 저녁으로 성전(성막)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이었다. 한편 현대 산업 사회에서 볼 때 문지기는 비천한 임무로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전을 지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영광된 직무였다. 기쁨에 충만한 이들의 직무 자세는 오늘 우리들이 직분 수행에 있어 일의 성격에 관계 없이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을 교훈해 준다(빌 4:4;살전 5:16, 18).

성 경: [대상9:18]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전에 - 문자적으로는 '지금까지'라는 의미이다. 이는 곧 본장에 언급된 자들이 본서 기록 당시까지 계속해서 조상들의 뒤를 이어 자기 업무를 수행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주); 왕의 문 - 이 문은 왕궁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문으로서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이용한 중요하고도 비중있는 문이었다(왕하 16:18;겔 46:1, 2). 이 문은 성전의 동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신약 성경에는 미문(美門)으로 나와 있다(행 3:2,10).

(주); 레위 자손의 영(營)의 문지기며 - 이는 이스라엘의 광야 시대의 진영을 회상하는 구절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그들의 진영(陣營)을 세웠으나 레위 지파의 영(營)은 성막 또는 성물(聖物)과 함께 있었다(민 10:17, 21). 따라서 '레위 자손의 영의 문지기'란 곧 '성막의 문지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막을 지켰던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는 '성전 문의 문지기'가 된 것이다.

성 경: [대상9:21]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 므셀레먀(Meshelemiah)와 스가랴(Zechariah)라는 이름은 다윗 시대에 임명된 문지기들의 명단 가운데서도 찾아볼수 있다(26:2). 한편 '회막'(會幕)이란 용어는 '만남의 장소', '계시의 장소'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물론 '회막', '성막', '장막'이란 말은 모두 '하나님의 장막'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다음과 같은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

| 회막 |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는 '약속에 의해 만나는 것'을 의미함. |

| | 이러한 명칭은 바로 이곳에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당신의백성을 |

| | 만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임(출 29:42, 43;민 1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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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 | 히브리어 명사 '미쉬칸'은 '머물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 |

| | 로 '거처하는 장소'라는 뜻을 갖고 있는 바, 전능하신 여호와께 |

| | 서 거주하는 처소를 일컬음(출 26:1;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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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막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유랑 중 거주하던 천막을 가리키기도 하나 |

| | 그것은 여호와께서 거주하는 장막인 성막과 구별됨(왕상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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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대상9:22]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 열 둘이니 - 성전을 지키는 자의 수는 시대마다 달랐다. 그러나 그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레위 가문에게만 허락된 귀중한 직분이었다. 이제 이와 관련 각 시대마다 집계된 문지기의 수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윗 시대-93명 대상 26:2-11 포로 귀환 후-212명 대상 9:22 스룹바벨 성전(에스라서)-139명 스 2:42 스룹바벨 성전(에스라서)-172명 느 11:19 그 향리-이는 예루살렘 주변에 위치한 문지기들의 거처를 의미한다. 이들은 이곳에 거주하다가 직무를 감당할 때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 봉사했던 것이다.

(주);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 여기서 문지기의 직분을 최초로 세운 자들이 다윗과 사무엘 선지자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다윗이 먼저 기록되고 사무엘 선지자가 나중에 기록된 것은 연대적으로 볼때 어긋난 듯하다. 그러나 (1)성전 예배의 기틀을 마련한 핵심적인 인물이 다윗이었으며 (2)문지기의 활동이 활발했던 때의 인물 또한 다윗이었기 때문에 본 기록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여기서 사무엘이란 이름의 기록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의 훌륭한 종교정책이 다윗 자신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세운 제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 주려 한 것이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 성막의 문지기로서 봉사하다가(삼상3:15) 선지직을 맡은 이후에는 자신의 직무를 대신 담당할 성막의 문지기들을 임명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조직된 문지기 제도는 약 500여년이 지난 포로 귀환 시대에도 게승되어 충실히 이행하였다. 한편, 여기서 '전에 세워서' 는 분명한 오역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에무나탐'(*)은 '그들을 신뢰하는 중에'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직분자들의 바른 자세는 맡긴 자의 신임을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성 경: [대상9:25]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그 향리에 있는 형제들은 이레마다 와서 함께 하니 - 모든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성에 다 수용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주변의 향리에 거주하면서 반차(班次)를 좇아 성전에 올라와 교대로 봉사의 일을 감당하였다. 본절은 그들이 곧 일주일 단위로 직무를 교대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대상9:26]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두목 된 레위 사람 넷 - 두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깁보레이'(*)는 본래 '용사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지기들의 지도자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Bertheau). 한편 혹자는 본절에 '레위 사람'이란 말이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들을 문지기가 아닌 다른 레위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Lange, Keil).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본 문맥이 문지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17절에서 언급된 네 명의 문지기들의 지도자들임이 분명하다(Curtis).

(주); 긴요한 직분 - 성전 업무와 관계되는 사항 중 중요한 것은 성전을 지키는 것이다. 성전을 지킨다 함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모신 성도의 몸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다(요 2:21;고전 3:16, 17).

(주); 모든 방과 곳간 - 이는 십일조와 성물(聖物)을 보관해 두었던 곳이다(대하 31:5, 11, 12;느 13:4-9). 네 명의 문지기 두목들은 이 곳을 관리하는 일을 총감독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맡도록 되어 있는 문지기들(26:17, 18)은 반차를 좇아 교대로 나아와 이곳을 지켰다.

성 경: [대상9:28]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섬기는 데 쓰는 기명 - 이는 성소(聖所)의 제사 때 사용되는 금, 은으로 된 귀한 그릇(28:13)으로서 오직 레위인들만이 운반할 수 있었다(출 25:1-9). 더욱이 그것들은 하나님의 성물(聖物)이었기 때문에 사용한 이후에는 성전 창고에 조심스럽게 보관해 두어야 했다.

성 경: [대상9:29]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성소의 기구와...향품을 맡았으며 - '기구'나 '기명'(器皿)은 28절의 '기명'과 같은 단어이나 여기서 이 말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즉, 이 기구 또는 기명은 고운 가루, 포도주, 기름과 유향과 향품을 담을 그릇을 의미한다(Lange). 한편 이 중 고운 가루는 제사 때 소제물(素祭物)로 쓰였고(레 2:1), 포도주는 소제와 함께 드려지는 전제(奠祭)에 사용되었다(레 23:13). 그리고 기름과 유향은 소제와 함께 드려졌으며(레 2:1, 3, 13;6:15) 향품은 등유와 관유에 사용되었다(출 25:6). 따라서 본절은 대체적으로 소제에 사용되는 성물을 기록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Curtis).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참조.

성 경: [대상9:30]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향품으로 향기름을 만들었으며 - 여기서 향기름이란 거룩한 관유(灌油)를 말한다. 이 관유는 성소의 모든 기구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발라 그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출 30:25, 32). 이 관유를 배합하는 자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출 30:33, 38) 여기에 필요한 재료는 몰약, 육계, 창포, 계피 등이었다. 한편 이 관유를 만들었던 방법에 대해서는 출 30:23-2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9:31]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고라 자손 살룸의 장자 맛디댜 - 여기서 '고라 자손 살룸'은 19절에 나오는 바로 그 살룸(Shallum)인 것 같다. 그런데 혹자는 이 살룸을 다윗 시대의 문지기였던 므셀레먀(Meshelemiah, 26:1)와 동일시 여기기도 한다(O. Zockler).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본절에는 살룸의 장자(長子)가 맛디댜(Mattithiah)로 나와 있으나 26:1에는 므셀레먀의 맏아들이 스가랴(Zechariah)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맛디댜'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주); 남비에 지지는 것을 맡았으며 - 여기서 '남비에 지지는 것'은 소제 때에 사용된 '누룩없는 제사떡'을 의미한다(레 2:5;6:14-18;7:9, 10).

성 경: [대상9:32]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그 형제 그핫 자손 - 그핫 자손(Kehathites)은 레위 지파를 형성한 세 자손(게르손, 그핫, 므라리) 중 하나이다(6:1). 맛디댜가 속한 고라 자손(Korahite)이 바로 이 그핫 자손에 속한다(출 6:18-21).

(주); 진설하는 떡을 맡아 안식일마다 준비하였더라 - '진설하는 떡'은 곧 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차려지는 진설병을 가리킨다. 이 진설병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열두 개의 진설병이 두 줄로 순결한 상위에 진설(陳設)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救贖)받은 백성들의 공동체를 상징하였다(레 24:5, 6).

성 경: [대상9:33]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 이는 14-16절에 소개된 레위 족장들을 지칭하는 구절이다(Payne, Lang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왜냐하면 과거 다윗 당시 찬양의 직분을 맡아 24반열로 구성된 성가대는 에단, 아삽, 헤만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이다(6:39-44). 포로 귀환 후 이 직무를 맡게된 후손들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히 자기를 헌신하여 이 직무를 감당하였다(느 11:22, 23;12:27-47).

(주);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아니하였더라 - 이는 당시 찬송하는 일의 전문화(專門化)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골방은 성전 안에 있던 방을 말한다(스 8:29). 찬송하는 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 골방에 거하면서 밤낮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였다. 즉 성전에서 예배와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밤낮으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시 35:28;42:8).

성 경: [대상9:34]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성막 봉사자들]

(주); 이상은...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 - 본절은 10-33절에 등장한 모든 레위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성 경: [대상9:35-44]

주제1: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주제2: [사울과 요나단의 계보]

주지한 바와 같이 이 부분은 8:29-39의 중복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음 장에서 언급될 사울 왕의 비극적인 종말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 여기에 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Payn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Keil, Lange). 여기에 나와 있는 이름들에 대해서는 8:29-3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0:1]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본장은 본서의 본론의 시작 부분으로서 본서의 주인공인 다윗 왕(14절)을 소개하기 위한 예비적 과정이다. 따라서 본장은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사역을 거두 절미(去頭截尾)하고 다만 그의 비극적인 최후만을 다루고 있다.

(주);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하는 장면을 기록한 본절 이하의 기록은 삼상 31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삼상 29:1에 의하면 이 전쟁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 평야에서 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블레셋 족속(Philistines)은 함의 자손이었으며(1:12) 지중해의 크레타(Crete) 섬에서 팔레스틴으로 진출한 해안 민족이었다. 이들은 B.C. 1,400년경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후에도 잔존해 있다가(수 13:2, 3) 이스라엘과 잦은 충돌을 하였다(삿 3:31;삼상13:19-22). 또한 이들은 B.C. 1,196년에 애굽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곧 주변의 도시 국가들을 병합하여 줄곧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막강한 존재가되었다. 이와 관련 이들의 대(對)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삼손 시대를 중심한(B.C.1,075-1,055) 40여년 동안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삿10:7;13:1;삼상 4장). 그러다가 이들은 B.C. 1,055년경 미스바 전투에서 사무엘의 지도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였다(삼상 7:12, 13). 그리고 B.C. 1,048년에는 믹마스 전투에서도 요나단에게 패배하였다(삼상 14:31). 그런 뒤 이들은 B.C. 1,010년에 본장의 배경이 되고 있는 길보아 전투를 일으켜 이스라엘에게서 대승(大勝)을 거두기는 했으나 얼마후 다윗 왕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다(14:10-16;삼하 8:1).

(주);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 - 길보아 산(Mt. Gilboa)은 갈릴리 지경(地境) 아래에 동서로 누워 있는 이스르엘(에스드랠론) 골짜기의 돌출 부분에 위치해있는 해발 약 500m의 석회암 산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 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동쪽 끝에 있는 모레(Moreh) 산지 남쪽에 있다. 아마도 사울은 이스르엘(삼상 29:1)에서 블레셋의 우수한 장비를 무용화시킬 수 있는 고지인 이곳으로 후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으니 곧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사울은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전사당한 것이다. 삼상 31:1 주석 참조. 한편 블레셋 족속은 이곳을 점령하게 되므로 인하여 한동안 요단 강을 건너 요단 동편으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삼상 31:7).

성 경: [대상10:2]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주);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 -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아들의 이름은 삼상 31:2과 일치한다. 더욱이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본서 8:33에서도 살펴 보았으니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0:3]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주); 사울을 맹렬히 치며 - 이는 직역하면, 사울 주변에서 싸움이 치열해졌다는 말이다. 즉 본절은 적군의 왕을 노리는 블레셋과 그 왕을 지키려는 호위병 간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졌음을 나타내는 말로서 사울에게 임한 위기를 서사적(敍事的)으로 묘사해 주고있다.

(주); 활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 여기서 '따라 미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발견하다', '...와 마주치다'는 뜻이다(신 4:29;시 21:8;119:143). 즉, 이 말은 블레셋 궁수(弓手)가 이스라엘 왕 사울을 발견하고서는 맹렬히 추격했음을 의미한다.

(주); 사울이...심히 군급하여 - 여기서 '심히 군급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헬'(*)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즉, (1) '꿰뚫다', '관통하다'는 뜻의 '할랄'(*)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경우 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다'는 뜻이 된다. (2) 반면 '두려워 하다', '근심하다'는 뜻의 동사 '훌'(*)에서 변형된 것으로 볼 경우에는 '심히 떨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맥의 흐름상 (1)번의 견해 보다(Hertzberg) (2)번의 견해가 더욱 타당하다(Klein, Payne).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31: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0:4]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주); 자기의 병기 가진 자 - '병기 가진 자'란 상관이나 주인의 창, 칼 또는 방패 따위를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는 병사들 중에서도 가장 용기와 총명이 뛰어난 자가 임명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 삼상 16:21 주석 참조.

(주); 할례 없는 자가...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 블레셋 족속은 이전에 삼손을 생포하여 수치를 당하게 한 적이 있다(삿 16:21). 때문에 사울은 자신 역시 삼손과 같이 그들에게 생포되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 같다(Payne). 한편, 여기서 '할례없는 자'란 이방인을 멸시하는 경멸어(語)이다. 사울은 죽음의 그 순간에도 블레셋 족속을 멸시하면서 그들의 승리를 보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Klein). 삼상 31:4 주석 참조.

(주);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 병기 가진 자가 이처럼 사울 왕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한 까닭은 자기 주인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살해할 경우 자신에게 미치게 될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한 까닭이다(삼상 26:9). 삼상 31:4 주석 참조.

(주);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 이는 구약에서 흔치 않은 자살 사건들 중 한 예이다(삼하 17:23;왕상 16:18). 한편, 삼하 1:10에서 아말렉 소년은 자신이 죽어가는 사울을 완전히 죽인 것으로 다윗에게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다윗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한 허위 보고였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1:7-10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0:5]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주); 병기 가진 자가.. 자기도...죽으니라 - 이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의 뒤를 따르겠다는 충성심에서 나온 행동임에 분명하다. 즉, 병기 든 자는 자신이 왕의 죽음을 사전에 막지 못한데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밖에도 그의 그 같은 행동에는 사울과 마찬가지로 '할례 없는 자'(4절)의 손에 죽임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또한 작용하였을 것이다. 삼상 31: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0:6]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가의 몰락]

(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 - 혹자는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는 말은 저자의 부주의한 언급이라고 주장한다(Curtis). 그러면서 그 이유는 당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생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삼하 2:8-10). 그러나 본절은 저자의 부주의한 언급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 온 집'이란 (1) 삼상 31:6의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일 수도 있으며 (2) 또한 사울의 왕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로서 사울의 왕권이 이 사건을 통하여 몰락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우리는 '집'과 '나라'를 병행시키고 있는 삼하 7:16을 들 수 있다. 삼하 7:11 주석 참조. 한편, 삼하 1-4장에 나타나고 있는 이스보셋에 관한 기록들을 본서에서 저자는 완전히 생략하였다. 이는 본서 저자가 본기록의 초점을 다윗 왕조에다 맞추었기 때문이었다(Payne).

성 경: [대상10:7]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머리를 취하는 블레셋인]

(주);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 - 병행 구절인 삼상 31:7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본서 저자는 그 같은 기록을 요약적으로 기술하였을 것이다(Lange). 한편 여기서 골짜기는 길보아 전투가 발발했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가리킨다(삼상 29:1).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사울 왕의 패배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신속히 이스라엘 온 사방으로 퍼졌을 것이다. 삼상 31:7 주석 참조.

(주); 블레셋 사람이 와서 거기 거하니라 - 이는 이스르엘 일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정복당하였음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그러나 블레셋 족속이 이 땅을 차지하고 통치한 기간은 대단히 짧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스보셋의 군장 아브넬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전한 군사들을 다시 규합하여 이곳을 재탈환한 사실이 삼하 2:9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하 2:9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0:8]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머리를 취하는 블레셋인]

(주); 죽임을 당한 자를 벗기다가 - 여기서 '벗기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쉐트'(*)는 '탈취하다'는 뜻의 '파솨트'(*)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주로 군사의 '무기'를 목적어로 취한다. 따라서 본절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이스라엘 병사들로부터 무기류를 수집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상 31:8주석 참조.

성 경: [대상10:9]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머리를 취하는 블레셋인]

(주); 그 머리와 갑옷을 취하고 -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머리를 벤 사실을 시사하는 구절이다. 병행 구절인 삼상 31:9에는 이같은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거기에는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라는 말이 나와 있다. 아마도 블레셋인들은 사울의 머리를 벰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만끽하며 증거로 삼았을 것이다.

(주);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어 - 히브리 원문에는 목적어 '사람을'이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것은 사울의 죽음 소식을 알리는 사자(使者)가 아니라 사울의 머리와 갑옷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야만스럽게도 그 같은 일을 통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전국에 알렸던 것이다. 삼상 31:9주석 참조.

성 경: [대상10:10]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머리를 취하는 블레셋인]

(주);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 병행 구절인 삼상 31:10에 따르면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Ashtaroth) 신전에 두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전쟁의 승리가 자기들이 믿는 신의 도움으로 인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때문에 블레셋인들은 그에 대한 답례로 사울의 갑옷을 신전에 바쳤던 것이다.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칼은 같은 맥락에서 놉의 제단에 바쳐졌었다(삼상 21:9). 한편 아스다롯은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으로서 성(性)과 전쟁의 신이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주);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 - 다곤(Dagon)은 가나안의 남신(男神)으로서 곡물의 신, 생장(生長)의 신이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상 31:10에는 본절과 달리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상이한 기록은 어디까지나 상호 보완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Bertheau). 왜냐하면 블레셋인들이 사울의 머리는 다곤의 묘(廟)에 단 반면 머리없는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절에서 우리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승리를 우상과 그 신들에게 알리는 장면을 목도(目睹)하게 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승리는 잠시 후 다윗 왕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만다(18:1). 또한 그들의 우상은 바알브라심 사건 때에 그들이 황급히 도망가면서 버리고 갔으니 이에 다윗이 수거하여 불태워 버렸다(14:12).

성 경: [대상10:11]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시신 장사(葬事)]

(주); 길르앗야베스 - 길르앗야베스(GileadJabesh)는 요단 동편에 위치해 있는 므낫세 반지파의 성읍이다(수 17:5, 6). 과거 사울은 암몬 왕 나하스로의 침략으로부터 이곳 거민들을 구출했었다(삼상 10:27;11:15). 따라서 이들은 이번에 비극적 죽음을 당한 사울 왕에게 과거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에서 취하여 왔던 것이다(12절;삼상 31:12). 이들은 이와 같은 일을 행함으로 후에 다윗 왕의 칭찬을 받았다(삼하 2:4-7).

성 경: [대상10:12]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시신 장사(葬事)]

(주);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 그 해골을 장사하고 - 병행 구절인 삼상 31:12에는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시체를 화장(火葬)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절에는 생략되어 있다. 그 이유는 저자가 그 같은 기록을 단순히 요약적으로 기록했기 때문(O.Zockler)만은 아니다. 대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는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사 방법이 아니고 형벌의 한 방식으로서(레 20:14;21:9;수 7:25)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Curtis, Klein).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31:12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상수리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라'(*)는 단순히 '커다란 나무'를 의미하는 용어로서(Payne) 삼상 31:13에서는 '에셀나무'로도 언급되어 있다. 에셀 나무(the tamarisk tree)는 길르앗야베스에 흔한 것으로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유골을이 나무 아래 장사한 것은 아마도 사울이 생전에 이 나무 아래에서 즐기곤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22:6). 훗날 다윗 왕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유골을 셀라에 있는 사울의 가족 묘지로 이장해 주었다(삼하 21:13, 14).

(주);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 여기서의 금식은 극한 애도의 표현이다. 다윗 또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금식한 바 있다(삼하 1:11, 12). 삼상 31:13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0:13]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시신 장사(葬事)]

(주);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 13, 14절은 삼상 31장의 기록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으로서 저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결국 패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경고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범죄하였음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거의 역대기와 에스겔서에서만 발견되는 용어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파괴하는 의식적, 또는 고의적인 배신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대하 12:2;26:16;28:19, 22;30:7;겔 14:13;20:27). 즉, 이말의 일반적인 개념은 변절, 배신, 불성실 등이다.

(주); 저가...가르치기를 청하고 - 사울이 하나님을 배반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여기서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사무엘을 통해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실(삼상 15:11;13:8, 9)을 가리킨다. 또한 '신접한 자'란 엔돌에 있었던 접신녀(接神女)를 가리킨다. 사울은 그녀에게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요청을 했었다(삼상 28:12-19). 이와같이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으로 무당이나 접신녀를 찾아가는 것은 여호와께서 엄금하신 영적 간음의 행위였으며 도저히 용납받지 못할 중죄였다(레 19:31;신 18:9-14). 이에 관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0:14]

주제1: [사울의 비극적 최후]

주제2: [사울의 시신 장사(葬事)]

(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는 사울이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상 28:6에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 성심성의를 다해 여호와께 묻지 않았으며(Keil), (2) 응답의 전제 조건인 그의 죄에 상응하는 진실한 회개를 한 이후에 묻지 않았다(Starke). 즉, 여기서 '묻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스'(*)는 '주의하여 찾다'라는 뜻으로서(시 77:2;119:10, 94) 본절은 그가 비록 형식적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을지는 모르나 전심(全心)으로 구하지는 아니했음을 시사해 준다.

(주);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다윗에게 돌리셨더라 - 이로써 저자는 사울과 관련된 기사를 마무리짓고 다윗과 관련된 기사로 넘어가고 있다. 본서에서 사울에 관한 기록은 사무엘상의 기록에 비하면 대단히 축약된 것이다. 이와같이 사울에 관한 기록이, 그것도 그의 비극적 최후만이 짧은 장에 요약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저자의 관심이 온통 다윗 왕조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장은 주로 다윗 왕조의 중흥(中興)을 전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의 가치만을 지닐 뿐이라 하겠다. 한편, 여호와께서 배교자(背敎者) 사울을 처벌하시고 다윗 왕조를 세우셨다는 본절의 중요 개념은 본서 전체에서 북왕조(이스라엘)가 왜 본서 저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 배경을 제시해 준다.

성 경: [대상11:1]

본절로부터 3절까지는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는 대관식 장면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다윗 왕조에 관한 기록의 초두에서부터 다윗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본장 초두는 사무엘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나오는 다윗과 관련된 많은 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에 생략된 다윗과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는 장면(삼하 2:1-4). 다윗과 이스보셋 사이의 대치(삼하 2:8-32), 요압의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삼하 3:27), 다윗의 범죄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행위들, 다윗에게 임한 재앙들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저자가 본서에서 다윗 왕조의 부정적인 면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한 것은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적(神政國家的) 탁월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본장 초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주);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 병행 구절인 삼하 5:1에서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본절에서는 '온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틀림없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문맥의 초점은 이스보셋(사울의 집)을 따르던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의 뜻에굴복하여 다윗에게 나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하 5:1-3 주석 참조. 반면, 본절에서 '온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유다지파를 포함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Curtis).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1) 이스라엘이란 용어가 언약 공동체를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2)무엇보다도 본서 저자가 다윗의 7년간의 유다 지파 통치사(삼하 2-4장)를 지나쳐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 통치사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다윗 왕조를신정 국가적 표상으로 다루고 있는 본서의 특징과도 잘 어울린다. 한편, 헤브론(Hebron)은 이스라엘이 통일되기 이전 유다 왕조의 수도였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약 40km 지점으로서 옛날에는 기럇아르바(Kirjath-Arba)로 불리웠다(수 15:13). 삼하2:1 주석 참조.

(주);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 헤브론에 모인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것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즉 백성들은 다윗과 자신들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윗에 대한 자신들의 전적 신뢰를 표한 것이다. 더욱이 율법에는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인(同族人)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정되어 있다(신 17:15). 때문에 이러한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서도 백성들은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 다윗에게 있음을 더욱더 강조한 것이다. 삼하 5: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

(주);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 - 여기서 '출입하게 한 자'란 '지휘력(指揮力)이 있는 자', '전쟁에 나가 연전 연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삼하 5:2 주석 참조. 이는 곧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을 내세워 다윗이 반드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두번째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다윗은 이전 사울 통치하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었으며(삼상 18:5-16) 심지어 사울왕의 후계자로까지 인정을 받았었다(삼상 23:17;25:30).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하셨나이다 - 다윗이 이스라엘의왕이 되어야 할 세번째 당위성이다. 즉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야 하였는데(신 17:15) 다윗이 바로 그러한 자였다. 다윗은약 20년 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었다(삼상 16:13). 때문에 그같은사실에 근거하여 백성들은 기필코 다윗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려 한것이다.

(주);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주권자가 되리라 - 본서 저자는 다윗을 진정한 목자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리라는 예언은 역대기 저자의 동시대인들 특히 포로 귀환민들에게 있어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예언은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라고 지칭하신 비유(요 10:11)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다.

성 경: [대상11:3]

(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삼으니 -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제사장직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면, 장로직은 백성을 치리(治理)하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신 21:18-21). 본절의 회집 광경은 마치 이스라엘 최고 회의 같은 묵직한 권위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왕으로서 준수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며 율법에 의한 규례대로 대관식을 거행한다. 이 규례는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기름 부음은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출30:25-29). 이 같은 기름 부음의 의식은 신정 정치의 특성을 반영한 동시에(삼상24:6, 10), 신약 시대에 메시야가 받을 표징의 하나였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메시야를 기다린 백성의 염원을 성취하셨다(행 10:38).

(주); 다윗이...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 여기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윗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같은 사실은 언약의 성격이 쌍방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이 언약은 군주와 백성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지목하신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백성들이 자기의 왕으로 받아 들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다. 이 언약에서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de Vaux). 이 언약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3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 다윗에게 있어서 이는 세번째 기름 부음이었다. 첫번째는 사무엘을 통하여, 두번째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받았었다(삼상16:13;삼하 2:4). 삼하 5:3 주석 참조.

(주);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 이는 병행 구절인 삼하 5:3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첨언(添言)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하여 다윗 왕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하에 세워졌음을 강조하고 있다(삼상 16:1-13).

성 경: [대상11:4]

(주);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 이제 본절에서부터 9절에 이르기까지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는 장면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서는 다윗 '왕과 그 종자들'만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다윗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1절의 '온 이스라엘'과 같은 개념으로 본서 저자가 신정 국가의 새 수도인 예루살렘이 일부 정예 부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Curtis).

(주);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 예루살렘(Jerusalem)은 (1) 온 이스라엘 지형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2) 천혜의 방어 요새지였다. 그리고 (3) 충분한 수자원이 있었고(수 15:7, 8) (4) 또한 상전 건축의 최적소(最適所)로 여겨졌다. 때문에 다윗 왕은 그의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자 했다. 한편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도 그것은 다윗 당시에 이곳에 여부스 족속(Jebusites)이 거주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Curtis). 이 여부스 족속은 여호수아 당시 유다 지파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으나 다시금돌아와 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수 15:63;삿 1:21). 그 이후 거의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취해 오지 못하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탈취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4-9절 강해, '예루살렘'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5]

(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이 지난 400여년 동안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사실에 근거하여 여부스 족속이 큰 소리를 치는 장면이다. 사실 예루살렘은(1)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는 '왕의 대로'(신 2:27)에서 떨어져 있었고(2) 남과 동의 성벽은 가파른 언덕에 세웠으며 (3) 서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는등 천혜의 방어 기지였기 때문에 외부의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는 여부스 족속이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조롱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장에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아마도본서 저자가 그 말이 신정 국가의 왕 다윗의 영광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생략한 듯하다. 삼하 5:6 주석 참조.

(주);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시온(Zion)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 삼하 5:9에 의하면, 다윗은 이곳을 빼앗아 이곳에 거처하면서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음을 알 수 있다(7절).

성 경: [대상11:6]

(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병행 구절인 삼하 5:8에 의하면 다윗의 군대 장관인 요압(Joab)은 수구(水口)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이 수구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들어온 물을 성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파놓은 수직의 갱도였다. 요압과 그의 부대원들은 이곳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삼하 5:8 주석 참조. 한편 스루야(Zeruiah)는 다윗의 이부(異父) 누이이다. 삼상 26:6 주석 참조. 따라서 요압은 다윗의 조카인 셈이다.

성 경: [대상11:8]

(주);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 '채우다'는 뜻의 '말레아'(* )에서파생한 '밀로'(* )는 대체로 흙이나 돌로 쌓아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 성에 있어서 북쪽이 가장 취약 지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것은 북동쪽, 또는 북서쪽의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성채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밀로(Millo)를 중심으로 성벽을 보강함으로써 다윗이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의 중앙 성소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삼하 5:9 주석 참조.

(주);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 여기서 '중수(重修)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하예'(* )는 '살다'는 뜻의 '하야'(* )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 직역하면 '살게 하다', '재상하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존의 성을 '보수하다' 또는 '보강하다'(왕상 18:30)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성 경: [대상11:9]

(주); 만군의 여호와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체바오트'(* )는 '천군천사의 여호와'란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이다. 삼하 5:10 주석 참조.

(주);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윗이 사방의 열국들을 다 정복하고서 그 명성(名聲)을 널리 떨친 점을 들 수 있다(14:1-17;18:1-20:8).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10, 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0]

(주);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 본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이다. 그 가운데서도 10-14절은 다윗의 첫번째 세 용사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예루살렘에 도읍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하는 등 신정 국가 건설에 그들이 큰 공헌을 남겼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본문은 주로 삼하 23:8-39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주); 이 사람들이...왕을 삼았으니...말씀대로 함이었더라 - 본절은 삼하의 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해설적 첨언이다. 한편, 여기서 '이는...말씀대로 함이었더라'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신 말씀(삼상 16:1;삼하3:9, 18)을 지칭하는 구절이다. 이에 관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1]

(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 야소브암(Jashobeam)은 시글락에서 다윗과 합류한 자로서(12:6) 다윗의 상비군 중 정월반(正月班)의 반장이었다(27:2). 한편, 병행 구절인삼하 23:8에서 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하는 자'로 소개되었다. 여기서 '다그몬'(* )은 '학몬'(* )에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이며 '요셉밧세벳'(* )은 '밧세벳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으로 고유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아디노는 야소브암의 별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하 23:8 주석 참조.

(주); 삼십인의 두목이라 - 여기서 30인이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에 즉위한 직후 조직한 용사들로서 다윗의 신정 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자들을 가리킨다. 삼하23:24-39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삼십인의 두목으로 소개된 야소브암은 삼하 23:8에서는 왕의 호위병들을 지휘한 '군장'(* , 솰리쉬)의 두목으로 소개되기도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삼백 인을 죽였고 -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는 야소브암이 팔백 인을 쳐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사본 상의 오류가있는 것으로 보고 삼하의 기록인 팔백 인을 정확한 기록으로 간주하였다(Payne,Curtis).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는 둘째 삼인 중의 한 사람인 아비새가 삼백인을 죽인 것을 볼 때(20절) 그 같은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한편, 여기서 '한 때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파암 에핫'(* )은 '한 사건 안에'라는 뜻으로 야소브암이 한번의 전투에서 올린 전과(戰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이 말로써 저자는 야소브암이 아비새보다 월등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성 경: [대상11:12]

(주);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 - 첫 삼인 중 한 사람인 엘르아살(Eleazar)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호아 사람(Ahohite)의 아들로서(8:4) 이만 사천 명으로 구성된 이월반(二月班)의 반장이었다(27:4). 그는 또한 야소브암, 삼마와 더불어 다윗의 '솰리쉬'(군장)로 활약하였다(삼하 23:8-12). 한편 여기서 '아호아 사람'은 가문의 명칭인지 아니면 지리적 명칭인지 분명치 않다.

성 경: [대상11:13]

(주); 저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하였더니 - 여기서 바스담밈(Pas-dammim)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잦은 전투를 벌였던 에베스 담밈(Ephes-dammim)을 가리킨다(삼상17:1). 그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국경 지대인 엘라 골짜기에 위치하였는데 과거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이다. 그리고 이 지명의 뜻은 '피의 경계선'이다. 한편, 13,14절은 삼하 23:9, 10에 나오는 엘르아살의 전공(戰功)을 보충해 주는 내용이다(Payne, Lange). 물론 이 구절들 안에는 삼마의 전공에 관한 기록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다(삼하 23:11, 12). 그러나 결정적으로 본 구절들은 엘르아살이 소개된 바로 다음에 이어지고 있으니 엘르아살에 관한 언급임에 분명하다.

(주); 백성들이...도망하되 - 여기서 '도망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스'(* )는 전투에서 패배하여 달아나거나 미리 겁을 먹고 도망한다는 의미의 말이다(삼하10:14;왕상 20:30). 이렇게 볼 때 엘르아살은 쳐들어오는 블레셋 군대를 맞이하여 홀로 대처했던 것 같다. 삼하 23:9, 1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14]

(주); 저희가 그 밭 가운데 서서 - 병행 구절인 삼하 23:10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복수형태인 '저희가...서서'는 단수 형태인 '저가...서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럴 경우 '저'란 '엘르아살'을 가리킨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장에는 첫 삼인의 용사로서 야소브암과 엘르아살 외에도 삼마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으니 삼마(Shammah)에 관해서는 삼하 23:11, 12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5]

(주); 삼십 두목 중 세 사람 - 이들은 둘째 삼인으로서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이다(20, 21, 24, 25절). 즉 본절서부터 25절까지에서는 다윗의 두번째 용사 삼인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은 능력면에서는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다윗에 대한 충성심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16-19절).

(주);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 여기서 바위는 당시 다윗이 있던 아둘람(Adullam) 굴의 바위를 의미한다. 즉 이들은 아둘람 굴 근처의 바위에서 다윗왕을 배알(拜謁)한 것이다. 한편, 아둘람 굴은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가드 남동쪽 약 16km 지점이다. 최근 한 고고학자는 이곳의 산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거처할 만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둘람'은 본래 '은신처'라는 뜻이다. 과거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이곳에 은신한 적이 있다(삼상 22:1, 2). 그리고 지금은 다윗 왕이 자신을 잡으러 온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임시 본부를 차렸음이 분명하다.

(주);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 본절은 본 문맥이 다윗 왕의 즉위 초에 있었던 바알브라심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 때에도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였었기 때문이다(삼하 5:17-25). 이 전투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우려한 블레셋 족속이 다윗 왕을 공격함으로써 발발되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 블레셋인들이 르바임 골짜기를 총집결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삼하 5:18 주석에서 상세히 언급하였으니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6]

(주); 다윗은 산성에 있고 - 이 산성은 아둘람 굴 근처에 있던 산성을 의미한다. 당시는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곳에 본부를 두었던 것이다. 삼하 23:14 주석 참조.

(주);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 여기서 영채(營寨)는 수비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블레셋 족속은 아마도 길보아 전투 때(삼상 31:1-7)에 베들레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같은 블레셋인들을 완전히 격퇴시켰으니(14:8-17) 다시금 베들레헴은 탈환되었음이 분명하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었을 때 르호보암은 베들레헴에 요새를 설치하였다(대하 11:6).

성 경: [대상11:17]

(주);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깊은 우물로부터 솟아나오는 이물은 시원하고 깨끗한 냉수였다고 한다(Ritter). 이곳 베들레헴 태생인 다윗(삼상16:18)은 분명히 어려서부터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아둘람 근처의 물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 왕은 더욱더 이 물을 사모하게 되었을 것이다(The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Lange). 삼하 23:1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18]

(주);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 여기서 '충돌하고 지나가서'란 말은 이들이 베들레헴에 주둔하던 블레셋 군대를 꿰뚫고 목적지로 나아갔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삼하 23:16, 17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이와 관련 이들이 아마도 밤중에나 혹은 적의 부주의함을 틈타 블레셋의 방어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Curtis).

(주);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 다윗은 이처럼 용사들이 길어 온 물을 여호와께 전제물(奠祭物)로 부어드렸다. 왜냐하면 그 물은 세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떠온 물로서 그들의 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6, 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당시 아둘람 근처에는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을리 없었으니 다윗은 분명 그 물을 땅에 부어드리면서 여호와를 기억했을 것이다(Lange).

성 경: [대상11:19]

(주);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 다윗 왕은 용사들이 떠온 물 속에 그들의 생명이 담겨있음을 생각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피와 생명을 동일시한 히브리적 사고 방식에 입각해서(창 9:4;레 3:17;7:26) 다윗 왕은 이들이 생명을 바쳐 떠온 물을 피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피를 먹지 말라'(레 17:10)는 율법의 조항과 '제단에 붓지 않으면 물같이 땅에 쏟으라'(신 12:16)는 조항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땅에 부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1:20,21]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요압의 아우 아비새 - 아비새(Abishai)란 이름의 뜻은 '선물의 아비'이다. 그는 요압과 더불어 다윗 왕의 조카였다(삼하 2:18). 즉 아비새는 다윗의 이부동복매(異父同腹妹)인 스루야의 아들인 것이다. 그는 일찍이 다윗과 함께 사울의 진에 내려갈 것을 자원함으로써 용사적 기질을 보였으며(삼상 26:6, 7) 요압에 버금가는 다윗의 군대 지휘관으로 많은 활약을 보였다(삼하 2:24;10:10;18:2;20:6).

(주); 그 삼 인의 두목이라 - '삼 인' 앞에 정관사 '그'가 붙어 있으므로 이 삼인은 앞에서 다윗을 위해 물을 떠온 삼인을 의미함에 분명하다. 이 중 아비새가 두목이었던 것이다. 삼하 23:18, 19 주석 참조.

(주); 저가 창을 들어 삼백 인을 죽이고 - 아마도 이와같은 혁혁한 전과는 그가 에돔에 원정하였을 때(18:12)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Payne).

(주); 그러나 첫째 삼인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 여기서 '첫째 삼인'이란 야소브암, 엘르아살, 그리고 본 문맥에서는 소개되지 아니한 삼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14절 주석 참조. 즉 비록 아비새가 용맹무쌍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영웅적 행위에는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편 다윗 휘하의 군대 내에는 다윗의 여러 친척들이 기용되어 있었다. 특히 군 수뇌부의 요직(要職)인 총사령관 요압을 비롯하여 자신의 여러 조카들이있었으니 이제 이들의 행적을 간략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장수 관 계 행 적 성 구

요 압 이종조카 여부스성을 점령한 공로로 다윗 대상11:6

(스루야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됨

장남) 압살롬의 반란시 다윗을 충실히 삼하18:1-5

보좌함

아브넬을 죽임 삼하3:27-31

아마살을 죽임 삼하20:8-10

아도니아의 반란에 가담 왕상1:5-5-7

아비새 이종조카 에돔인 18,000명을 섬멸 대상18:12

(스루야의 암몬을 격파 삼하10:10

차남) 세바의 반란을 진압 삼하20:6,7

블레셋 장수 브놉을 처치함 삼하21:15-17

아사벨 이종조카 다윗군대 30인 용사 가운데 일인 대상11:26

(스루야의 이브보셋과 전투중 적장 아브넬에게

3남) 살해됨 삼하2:18-23

아마사 이종조카 요압을 대신하여 총사령관이 됨 삼하19:13

(아비가의 세바의 반란 진압시요압에세 살해됨 삼하20:8-10

아들)

요나단 조카 손,발가락이 모두 24개인 르바임의 삼하21:20,21

(삼마의 거인을 처치함

아들)

성 경: [대상11:1]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왕위에 오른 다윗]

본절로부터 3절까지는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는 대관식 장면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다윗 왕조에 관한 기록의 초두에서부터 다윗을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즉, 본장 초두는 사무엘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나오는 다윗과 관련된 많은 기사를 생략한 채 곧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에 생략된 다윗과의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는 장면(삼하 2:1-4). 다윗과 이스보셋 사이의 대치(삼하 2:8-32), 요압의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삼하 3:27), 다윗의 범죄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행위들, 다윗에게 임한 재앙들 등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저자가 본서에서 다윗 왕조의 부정적인 면을 생략하고 긍정적인 면만을 기록한 것은 다윗 왕조의 신정 국가적(神政國家的) 탁월성을 크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본장 초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주);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 병행 구절인 삼하 5:1에서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본절에서는 '온 이스라엘'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틀림없이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쪽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문맥의 초점은 이스보셋(사울의 집)을 따르던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다윗에게 나아올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하 5:1-3 주석 참조. 반면, 본절에서 '온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전체(유다지파를 포함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Curtis).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1) 이스라엘이란 용어가 언약 공동체를 총칭(總稱)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2)무엇보다도 본서 저자가 다윗의 7년간의 유다 지파 통치사(삼하 2-4장)를 지나쳐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 통치사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다윗 왕조를 신정 국가적 표상으로 다루고 있는 본서의 특징과도 잘 어울린다. 한편, 헤브론(Hebron)은 이스라엘이 통일되기 이전 유다 왕조의 수도였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으로서 옛날에는 기럇아르바(Kirjath-Arba)로 불리웠다(수 15:13). 삼하2:1 주석 참조.

(주);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 헤브론에 모인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설득하는 장면이다. 즉 백성들은 다윗과 자신들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윗에 대한 자신들의 전적 신뢰를 표한 것이다. 더욱이 율법에는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동족인(同族人)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규정되어 있다(신 17:15). 때문에 이러한 율법 조항에 근거하여서도 백성들은 왕이 될 기본적인 자격이 다윗에게 있음을 더욱더 강조한 것이다. 삼하 5: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왕위에 오른 다윗]

(주);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 - 여기서 '출입하게 한 자'란 '지휘력(指揮力)이 있는 자', '전쟁에 나가 연전 연승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삼하 5:2 주석 참조. 이는 곧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탁월한 지도력을 내세워 다윗이 반드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두번째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다윗은 이전 사울 통치하에서 탁월한 지도력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었으며(삼상 18:5-16) 심지어 사울왕의 후계자로까지 인정을 받았었다(삼상 23:17;25:30).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하셨나이다 -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세번째 당위성이다. 즉 신정 국가의 왕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야 하였는데(신 17:15) 다윗이 바로 그러한 자였다. 다윗은 약 20년 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었다(삼상 16:13). 때문에 그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백성들은 기필코 다윗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려 한 것이다.

(주);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주권자가 되리라 - 본서 저자는 다윗을 진정한 목자이며,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대리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한 목자를 세우리라는 예언은 역대기 저자의 동시대인들 특히 포로 귀환민들에게 있어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예언은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자신을 목자라고 지칭하신 비유(요 10:11)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다.

성 경: [대상11:3]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왕위에 오른 다윗]

(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삼으니 -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제사장직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면, 장로직은 백성을 치리(治理)하는 일을 주무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신 21:18-21). 본절의 회집 광경은 마치 이스라엘 최고 회의 같은 묵직한 권위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들에게 왕으로서 준수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며 율법에 의한 규례대로 대관식을 거행한다. 이 규례는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으로, 기름 부음은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출30:25-29). 이 같은 기름 부음의 의식은 신정 정치의 특성을 반영한 동시에(삼상24:6, 10), 신약 시대에 메시야가 받을 표징의 하나였다. 한편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메시야를 기다린 백성의 염원을 성취하셨다(행 10:38).

(주); 다윗이...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 여기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다윗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같은 사실은 언약의 성격이 쌍방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이 언약은 군주와 백성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 지목하신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백성들이 자기의 왕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다. 이 언약에서 백성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de Vaux). 이 언약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3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 다윗에게 있어서 이는 세번째 기름 부음이었다. 첫번째는 사무엘을 통하여, 두번째는 유다 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받았었다(삼상16:13;삼하 2:4). 삼하 5:3 주석 참조.

(주);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 이는 병행 구절인 삼하 5:3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첨언(添言)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하여 다윗 왕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하에 세워졌음을 강조하고 있다(삼상 16:1-13).

성 경: [대상11:4]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 성]

(주);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 이제 본절에서부터 9절에 이르기까지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는 장면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서는 다윗 '왕과 그 종자들'만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다윗과 함께 '온 이스라엘'이 올라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1절의 '온 이스라엘'과 같은 개념으로 본서 저자가 신정 국가의 새 수도인 예루살렘이 일부 정예 부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전체에 의해 정복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Curtis).

(주);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 예루살렘(Jerusalem)은 (1) 온 이스라엘 지형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2) 천혜의 방어 요새지였다. 그리고 (3) 충분한 수자원이 있었고(수 15:7, 8) (4) 또한 상전 건축의 최적소(最適所)로 여겨졌다. 때문에 다윗 왕은 그의 즉위 초기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자 했다. 한편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도 그것은 다윗 당시에 이곳에 여부스 족속(Jebusites)이 거주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Curtis). 이 여부스 족속은 여호수아 당시 유다 지파의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으나 다시금 돌아와 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수 15:63;삿 1:21). 그 이후 거의 400년 동안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탈취해 오지 못하다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탈취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4-9절 강해, '예루살렘'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5]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 성]

(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이 지난 400여년 동안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사실에 근거하여 여부스 족속이 큰 소리를 치는 장면이다. 사실 예루살렘은(1)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는 '왕의 대로'(신 2:27)에서 떨어져 있었고(2) 남과 동의 성벽은 가파른 언덕에 세웠으며 (3) 서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는등 천혜의 방어 기지였기 때문에 외부의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6에는 여부스 족속이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조롱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장에는 그 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아마도 본서 저자가 그 말이 신정 국가의 왕 다윗의 영광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생략한 듯하다. 삼하 5:6 주석 참조.

(주);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시온(Zion)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 삼하 5:9에 의하면, 다윗은 이곳을 빼앗아 이곳에 거처하면서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음을 알 수 있다(7절).

성 경: [대상11:6]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 성]

(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병행 구절인 삼하 5:8에 의하면 다윗의 군대 장관인 요압(Joab)은 수구(水口)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이 수구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들어온 물을 성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파놓은 수직의 갱도였다. 요압과 그의 부대원들은 이곳을 통과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 이후에 요압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삼하 5:8 주석 참조. 한편 스루야(Zeruiah)는 다윗의 이부(異父) 누이이다. 삼상 26:6 주석 참조. 따라서 요압은 다윗의 조카인 셈이다.

성 경: [대상11:8]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 성]

(주);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 '채우다'는 뜻의 '말레아'(*)에서 파생한 '밀로'(*)는 대체로 흙이나 돌로 쌓아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나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 성에 있어서 북쪽이 가장 취약 지구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것은 북동쪽, 또는 북서쪽의 한쪽 모퉁이에 위치한 성채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Hertzberg, Keil, Lange, Rust).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밀로(Millo)를 중심으로 성벽을 보강함으로써 다윗이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의 중앙 성소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삼하 5:9 주석 참조.

(주);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 여기서 '중수(重修)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하예'(*)는 '살다'는 뜻의 '하야'(*)의 피엘형(강의형 능동태)으로서 직역하면 '살게 하다', '재상하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존의 성을 '보수하다' 또는 '보강하다'(왕상 18:30)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성 경: [대상11:9]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 성]

(주); 만군의 여호와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체바오트'(*)는 '천군 천사의 여호와'란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이다. 삼하 5:10 주석 참조.

(주);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윗이 사방의 열국들을 다 정복하고서 그 명성(名聲)을 널리 떨친 점을 들 수 있다(14:1-17;18:1-20:8).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10, 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0]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 본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이다. 그 가운데서도 10-14절은 다윗의 첫번째 세 용사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기록된 이유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예루살렘에 도읍지를 정하는데 중요한 보조 역할을 하는 등 신정 국가 건설에 그들이 큰 공헌을 남겼기 때문이다.한편 이러한 본문은 주로 삼하 23:8-39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주); 이 사람들이...왕을 삼았으니...말씀대로 함이었더라 - 본절은 삼하의 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로서 저자의 해설적 첨언이다. 한편, 여기서 '이는...말씀대로 함이었더라'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신 말씀(삼상 16:1;삼하3:9, 18)을 지칭하는 구절이다. 이에 관해서는 해당 부분의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1]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 - 야소브암(Jashobeam)은 시글락에서 다윗과 합류한 자로서(12:6) 다윗의 상비군 중 정월반(正月班)의 반장이었다(27:2).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 그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로 소개되었다. 여기서 '다그몬'(*)은 '학몬'(*)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이며 '요셉밧세벳'(*)은 '밧세벳에 거주하는 자'라는 뜻으로 고유의 이름이 아니다. 또한 아디노는 야소브암의 별명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하 23:8 주석 참조.

(주); 삼십인의 두목이라 - 여기서 30인이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에 즉위한 직후 조직한 용사들로서 다윗의 신정 국가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자들을 가리킨다. 삼하23:24-39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삼십인의 두목으로 소개된 야소브암은 삼하 23:8에서는 왕의 호위병들을 지휘한 '군장'(*, 솰리쉬)의 두목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삼백 인을 죽였고 - 병행 구절인 삼하 23:8에서는 야소브암이 팔백 인을 쳐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사본 상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삼하의 기록인 팔백 인을 정확한 기록으로 간주하였다(Payne,Curtis).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는 둘째 삼인 중의 한 사람인 아비새가 삼백인을 죽인 것을 볼 때(20절) 그 같은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한편, 여기서 '한 때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파암 에핫'(*)은 '한 사건 안에'라는 뜻으로 야소브암이 한번의 전투에서 올린 전과(戰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이 말로써 저자는 야소브암이 아비새보다 월등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성 경: [대상11:12]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 - 첫 삼인 중 한 사람인 엘르아살(Eleazar)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호아 사람(Ahohite)의 아들로서(8:4) 이만 사천 명으로 구성된 이월반(二月班)의 반장이었다(27:4). 그는 또한 야소브암, 삼마와 더불어 다윗의 '솰리쉬'(군장)로 활약하였다(삼하 23:8-12). 한편 여기서 '아호아 사람'은 가문의 명칭인지 아니면 지리적 명칭인지 분명치 않다.

성 경: [대상11:13]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저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하였더니 - 여기서 바스담밈(Pas- dammim)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잦은 전투를 벌였던 에베스 담밈(Ephes- dammim)을 가리킨다(삼상17:1). 그곳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국경 지대인 엘라 골짜기에 위치하였는데 과거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이다. 그리고 이 지명의 뜻은 '피의 경계선'이다. 한편, 13,14절은 삼하 23:9, 10에 나오는 엘르아살의 전공(戰功)을 보충해 주는 내용이다(Payne, Lange). 물론 이 구절들 안에는 삼마의 전공에 관한 기록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다(삼하 23:11, 12). 그러나 결정적으로 본 구절들은 엘르아살이 소개된 바로 다음에 이어지고 있으니 엘르아살에 관한 언급임에 분명하다.

(주); 백성들이...도망하되 - 여기서 '도망하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누스'(*)는 전투에서 패배하여 달아나거나 미리 겁을 먹고 도망한다는 의미의 말이다(삼하10:14;왕상 20:30). 이렇게 볼 때 엘르아살은 쳐들어오는 블레셋 군대를 맞이하여 홀로 대처했던 것 같다. 삼하 23:9, 1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14]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저희가 그 밭 가운데 서서 - 병행 구절인 삼하 23:10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복수형태인 '저희가...서서'는 단수 형태인 '저가...서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럴 경우 '저'란 '엘르아살'을 가리킨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3장에는 첫 삼인의 용사로서 야소브암과 엘르아살 외에도 삼마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으니 삼마(Shammah)에 관해서는 삼하 23:11,12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5]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삼십 두목 중 세 사람 - 이들은 둘째 삼인으로서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이다(20, 21, 24, 25절). 즉 본절서부터 25절까지에서는 다윗의 두번째 용사 삼인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들은 능력면에서는 첫째 삼인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다윗에 대한 충성심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16-19절).

(주);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 여기서 바위는 당시 다윗이 있던 아둘람(Adullam) 굴의 바위를 의미한다. 즉 이들은 아둘람 굴 근처의 바위에서 다윗왕을 배알(拜謁)한 것이다. 한편, 아둘람 굴은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가드 남동쪽 약 16km 지점이다. 최근 한 고고학자는 이곳의 산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거처할 만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둘람'은 본래 '은신처'라는 뜻이다. 과거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이곳에 은신한 적이 있다(삼상 22:1, 2). 그리고 지금은 다윗 왕이 자신을 잡으러 온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임시 본부를 차렸음이 분명하다.

(주);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 본절은 본 문맥이 다윗 왕의 즉위 초에 있었던 바알브라심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 때에도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 총 집결하였었기 때문이다(삼하 5:17-25). 이 전투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세력이 크게 확장될 것을 우려한 블레셋 족속이 다윗 왕을 공격함으로써 발발되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 블레셋인들이 르바임 골짜기를 총집결지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삼하 5:18 주석에서 상세히 언급하였으니 그곳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16]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다윗은 산성에 있고 - 이 산성은 아둘람 굴 근처에 있던 산성을 의미한다. 당시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곳에 본부를 두었던 것이다. 삼하 23:14 주석 참조.

(주);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 여기서 영채(營寨)는 수비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블레셋 족속은 아마도 길보아 전투 때(삼상 31:1-7)에 베들레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같은 블레셋인들을 완전히 격퇴시켰으니(14:8-17) 다시금 베들레헴은 탈환되었음이 분명하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었을때 르호보암은 베들레헴에 요새를 설치하였다(대하 11:6).

성 경: [대상11:17]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 -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깊은 우물로부터 솟아나오는 이 물은 시원하고 깨끗한 냉수였다고 한다(Ritter). 이곳 베들레헴 태생인 다윗(삼상16:18)은 분명히 어려서부터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아둘람 근처의 물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 왕은 더욱더 이 물을 사모하게 되었을 것이다(The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Lange). 삼하 23:1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18]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 여기서 '충돌하고 지나가서'란 말은 이들이 베들레헴에 주둔하던 블레셋 군대를 꿰뚫고 목적지로 나아갔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삼하 23:16, 17 주석 참조. 한편 혹자는 이와 관련 이들이 아마도 밤중에나 혹은 적의 부주의함을 틈타 블레셋의 방어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Curtis).

(주);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고 - 다윗은 이처럼 용사들이 길어 온 물을 여호와께 전제물(奠祭物)로 부어드렸다. 왜냐하면 그 물은 세 용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떠온 물로서 그들의 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 23:16, 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당시 아둘람 근처에는 여호와의 제단이 있었을리 없었으니 다윗은 분명 그 물을 땅에 부어드리면서 여호와를 기억했을것이다(Lange).

성 경: [대상11:19]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 다윗 왕은 용사들이 떠온 물 속에 그들의 생명이 담겨있음을 생각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피와 생명을 동일시한 히브리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창 9:4;레 3:17;7:26) 다윗 왕은 이들이 생명을 바쳐 떠온 물을 피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피를 먹지 말라'(레 17:10)는 율법의 조항과 '제단에 붓지 않으면 물같이 땅에 쏟으라'(신 12:16)는 조항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땅에 부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1:22]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 갑스엘(Kabzeel)은 유다 남쪽의 한 지방으로서 오늘날의 길벳 호라(Khirbet Hora)이다. 따라서 여기서 '갑스엘 용사의 손자'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이는 '갑스엘 출신의 사람 용사'로 번역되어야 한다.즉, 여기서 손자(아들로도 번역됨)라는 말은 그가 갑스엘 출신의 후예임을 나타낼 뿐이다(Lange). 한편 이러한 브나야(Benaiah)는 다윗 왕의 근위 대장이었으며(삼하8:18;20:23) 3월반의 반장이었다(27:5). 또한 그는 솔로몬 치하에서 군대 장관이 되었다(왕상 2:25, 29).

(주); 효용한 일 - 이에 해당하는 '라브 페알림'(*)은 '큰 일'이라는 뜻이다. 이는 본절 이하에 언급된 것과 같은 브나야의 행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 저가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 여기서 '아리엘의 아들 둘'이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1)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란 의미로서 '아리엘의 아들 둘'이란 '사자같이 용맹스런 용사'를 의미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Keil, Lange). 그러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지금도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은 매우 뛰어난 용사를 가리켜 '아리엘'이라 부르고 있는 점을 든다(Bochart). (2) '아리엘'이 모압 왕의 이름이라는 주장이다(Pul-pit Commentary, Thenius). 이럴 경우 두 아들은 모압 왕 아리엘(Ariel)의 아들들이 된다. (3) '아리엘'을 '제단'이란 의미의 '하렐'(*)의 변형으로 보고 이를 모압의 두 제단으로 보는 주장이다(Barnes). 그런데 여기서 (3)번의 견해는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의 '죽였고'라는 말이 아리엘을 비인격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Curtis, Payne). 또한 (2)번의 견해도 무리가 뒤따른다. 왜냐하면 원문상으로 본절에서는 '아들'에 해당하는 용어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1)번의 견해를 비교적 타당한 것으로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견해에 따르면, 브나야는 모압의 가장 뛰어난 용사 둘을 쳐 죽인 셈이 된다.

(주);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 구약 시대에는 팔레스틴에 사자가 흔했다. 이 사자들은 추운 날씨에 민가에 내려와 사람들을 잡아먹곤 하였다(왕상13:24;20:36;왕하 17:25).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자를 잡기 위해 함정을 만들어 놓곤 하였다. 그런데 사자가 그 함정에 걸렸을 때에 그들은 갈고리 등과 같은 도구로 사자를 쳐 죽였다(겔 19:4, 8). 그러나 브나야는 맨 몸으로 뛰어들어가 사자를 잡은 것이다.

성 경: [대상11:23]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 일 규빗이 45.6cm이므로 그의 키는 무려 2m 30cm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주);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 베틀채는 여기서 애굽 사람의 창이 얼마나 무거웠는가를 알려주기 위해 비유로 사용된 말이다. 이렇게 무거운 창을 다루는 자에게서 브나야가 도리어 그 창을 빼앗아 그를 죽였으니 우리는 여기서 브나야의 괴력을 능히 엿볼 수 있다. 삼하 23:20-23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4]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 여기서 '세 용사'란 다윗의 둘째 용사 삼 인을 가리킨다. 즉 브나야는 아비새(20, 21절)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용사와 더불어 제 2급의 서열에 랭크(rank)된 것이다. 15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5]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다윗의 용장(勇將)]

(주); 시위대 장관 - 시위대는 사형 집행 기관인 '그렛'(the Cherethites)과 보발(步撥)부대인 '블렛'(the Pelethites)으로 구성된 왕의 근위대를 가리킨다. 브나야는 다윗 치하에서 줄곧 그 같은 시위대의 대장이 되었었다(삼하 8:18;20:23). 삼하 23:20-23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6]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본절서부터 마지막까지는 흔히 '다윗의 30용사'(11, 15, 25절)로 불리우던 자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자들의 총수는 48명이니 병행 기사인 삼하23:24-39에 비해 17명이 더 추가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주); 군중의 큰 용사 - 이는 곧 '전쟁의 영웅'이란 의미이다.

(주); 요압의 아우 아사헬 - 그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발이 빠르기로 유명하였다(삼하 2:18). 그렇지만 그는 불행히도 그 빠른 발 때문에 이스보셋의 군장(軍長) 아브넬에 의해 죽었다(삼하 2:23). 한편 그는 요압, 아비새와 함께 다윗 왕의 조카이기도 하다(삼하 2:18).

(주);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 - 삼하 21:19의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Elhanan)과는 다른 인물이다.

성 경: [대상11:27]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하롤 사람 삼훗 - 그는 다윗의 상비군중 5월반 반장이었다(27:8). 그런데 그는 일명 삼마(Shammah)로도 불리운 것 같다. 삼하 23:25 주석 참조. 한편 '하롤'(*)이 삼하 23:25에서는 '하롯'(*)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인 듯하다. 하롯(Harod)은 기드온이 자기의 추종자들을 시험했던 샘이있던 곳으로 길보아 산 근처이다(삿 7:1-7).

(주); 블론 사람 헬레스 - 그는 7월반 반장이었다(27:10). 한편 '블론'(*) 사람이 삼하 23:26에서는 '발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발디(Palti)는 유다 남쪽 벧-벨렛(수 15:27;느 11:26)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

성 경: [대상11:28]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 - 그는 6월반 반장이었다(27:9). 그런데 그는 야일 사람 이라(Ira, 삼하 20:26)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드고아(Tekoa)는 베들레헴 남동쪽에 위치한 유다 성읍이다.

(주);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 - 그는 9월반 반장이었다(27:12). 한편 아나돗(Anathoth)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레위인의 성읍이다. 삼하 23:2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29]

(주);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후사 사람 십브개 - 그는 블레셋 거인 삽을 죽인 영웅이었으며(삼하 21:18) 8월반의 반장이었다(27:11). 한편, '십브개'(*)는 삼하 23:27에서는 '므분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모두 십브개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므분내는 십브개에 대한 오기(誤記)로 볼 수 있다.

(주); 아호아 사람 일래 - '일래'(*)는 병행 구절인 삼하 23:28에서는 '살몬'(*)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30]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느도바 사람 마하래 - 그는 10월반 반장이었다(27:13). 한편 느도바(Netopha)는 유다 지파 경내에 있었는데 악사들(레위인)의 거처였다(9:16). 삼하 23:28 주석 참조.

(주); 바아나의 아들 헬렛 - '헬렛'(*)은 12월반 반장이었던 '헬대'(*)이다(27:15). 삼하 23:29에서는 일명 '헬렙'(*)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 경: [대상11:31]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이대 - 구약 시대에 기브아(Gibea)란 이름으로 불리웠던 성읍으로 다음과 같은 서너 마을이 있었다. (1) 유다 산지에 있었던 기브아(수15:57), (2)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던 기브아(수 24:33), (3) 기럇여아림 언덕에 위치한 기브아(삼하 6:3, 4;삼상 7:1, 2), 그리고 (4) 가장 많이 언급된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를 가리킨다(삿19:14;20:4, 10;삼상 13:2, 15;14:16). 한편 이대(Ithai)는 삼하 23:29에서는 잇대(Ittai)로 기록되어 있다.

(주); 비란돈 사람 브나야 - 에브라임 지파의 땅인 비라돈(Pirathon)은 오늘날의 나블루스(Nablus) 남서쪽에 위치한 페라타(Ferata) 마을이다(삿 12:13). 삼하 23:3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32]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후래 - 가아스(Gaash) 시냇가는 에브라임 산지의 한 지류인 가아스 산의 시냇가다(수 24:30). 그러므로 후래(Hurai)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임에 틀림없다(Keil). 한편, '후래'(*)는 삼하 23:30에서는 '힛대'(*)로 기록되었다. 아마도 이는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인 듯하다.

(주); 아르바 사람 아비엘 - 아르바(Arbath)는 유다 지파의 지경(地境)에 위치한 아라바광야를 가리킨다(수 18:22;15:61). 한편 아비엘(Abiel)은 삼하 23:31에서 아비알본(Abialbon)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경: [대상11:33]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바하룸 사람 아스마엣 - '바하룸'(*)은 '바후림'(*)을 가리킴이 분명하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예루살렘 동북쪽으로 6km 지점이다. 다윗은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시므이로부터 혹독한 저주를 받은 적이 있다(삼하 16:5). 삼하 23:31 주석 참조.

(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 - 사알본(Shaalbon)은 단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인 사알빔(Shaalbim)인 것으로 추정된다(삿 1:35). 삼하 23:32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34]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기손 사람 하셈의 아들들 - 기손(Gizon)은 아직껏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곳이다. 혹자는 이곳이 이방인의 지역이라고 주장하나(Dalglish) 분명치 않다.

(주); 하랄 사람 사게의 아들 요나단 - 삼하 23:32에서는 '야센의 아들 요나단'으로 소개되었다. 한편 하랄(Harar) 역시 아직까지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곳이다.

성 경: [대상11:35]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하랄 사람 사갈의 아들 아히암 - '사갈'(*)이 삼하 23:33에서는 '사랄'(*)로 표기되어 있다.

(주); 울의 아들 엘리발 - 아마도 이는 삼하 23:34에 나오는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밸렛(Eliphalet)일 것이다(Curtis, Lange).

성 경: [대상11:36]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므게랏 사람 헤벨 - 므게랏(Mecherath)의 위치는 아직껏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헤벨(Hepher)과 관련해서는 삼하 23:34 주석을 참조하라.

(주); 블론 사람 아히야 - 추정컨대 그는 삼하 23:34에 나오는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동일 인물인 듯하다(Payne, Lange).

성 경: [대상11:37]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갈멜 사람 헤스로 - '헤스로'(*)는 삼하 23:35에서 '헤스래'(*)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는 모음상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이름이다. 한편, 갈멜(Carmel)은 유다 지파의 성읍으로 (수 15:55) 헤브론 남쪽 약 10km 지점이다.

(주); 에스베의 아들 나아래 - 삼하 23:35에서는 아랍 사람 바아래로 소개되었다. 아랍(Arab)은 헤브론 부근에 위치한 유다의 산악 지대이다(수 15:52).

성 경: [대상11:38]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나단의 아우 요엘 - 삼하 23:36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아우'는 '아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Lange, LXX, Payne). 왜냐하면 거기서 '요엘'(*)은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갈'은 아마도 필사자의 착오에 의해 '요엘'로 표기되었을 것이다. 한편, 소바(Zobah)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다(삼하 8:3). 이로써 우리는 요엘이 다윗 왕의 이방 정복 사업 이후, 이방인으로서 30인의 용사로 발탁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삼하 23:36 주석 참조.

(주); 하그리의 아들 밉할 - 병행 구절인 삼하 23:36에서는 '밉할'이란 이름이 빠져있다. 그리고 '하그리의 아들'(*)은 '갓 사람 바니'(*)로 기록되어 있다. 양 구절을 대조해 볼 때 본절의 기록이 보다 더 정확한 기록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대상11:39]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암몬 사람 셀렉 - 셀렉(Zelek)이란 이름의 뜻은 '갈라진 틈'이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삼하 23:37).

(주);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베롯 사람 나하래 - '베롯'(*)은 삼하 23:37의 '브에롯'(*)이다. 이곳은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 되었으나 본래는기브온 족속의 성읍이었다(수 9:17). 때문에 나하래(Naharai)가 기브온 족속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The Interpreter's Bible). 한편 '병기 잡은 자'란 일종의 '경호원' 또는 '부관'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는 10: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1:40]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이델 사람 이라 - 이델 사람(Ithrite)은 기럇여아림에 거주하던 한 족속이다(2:53). 한편 본절의 이라(Ira)는 다윗의 대신(大臣)이었던 '야일 사람 이라'(삼하20:26)와는 다른 인물이다.

성 경: [대상11:41]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헷 사람 우리아 - 밧세바의 남편이다(삼하 11:3).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다윗왕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비극적 죽음을 당하였는지는 삼하11:14-17을 보라.

(주); 알래의 아들 사밧 - 본절 이하 마지막절까지는 병행 기사인 삼하 23장에는 나오지 않는 추가된 부분이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인물 중 대부분은 요단 동편 출신의 용사들이라는 특징을 지닌다(Curtis). 또한 이들은 대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가된 용사들이기도 하다(Keil). 한편 사밧(Zabad)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주셨다'이다.

성 경: [대상11:42]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르우벤 자손의 두목 아디나와 그 종자 삼십 인 - 12장에는 시글락에 숨어 있던 다윗에게로 베냐민, 갓, 므낫세 지파의 일부 사람들이 나아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본절의 아디나(Adina)와 그의 종자 30인도 그때에 다윗에게 나아온 자들인 것으로 보여진다(Curtis).

성 경: [대상11:43]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마아가의 아들 하난 - 하난(Hanan)이란 이름의 뜻은 '자비가 풍성함'이다. 그런데 그는 '아셀의 아들 하난'(8:38)과는 구별된다.

성 경: [대상11:44]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아스드랏 사람 웃시야 - 아스드랏(Ashterath)은 요단 동편 북쪽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바로 므낫세 반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아스다롯(Ashtaroth)이다. 이곳에는 도피성이 있었다(수 21:27). 6:71 주석 참조.

(주); 아로엘 사람 - 아로엘(Aroer)은 (1) 르우벤 사람의 성읍으로 아르논 골짜기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던 성읍일 수도 있으며(5:8;신 4:48;수 12:2;13:16;왕하 10:33). (2)또한 갓 지파 경내에 있던 길르앗의 한 성읍으로 암몬의 수도 랍바 근처에 위치했던 성읍일 수도 있다(수 13:25;삼하 24:5). 본절의 아로엘이 이 중 어느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Lange).

성 경: [대상11:46]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마하위 사람 - 혹자는 '마하위 사람'(*)을 '마하나임'(*)사람으로 본다(Lange, Bertheau). 마하나임(Mahanaim)은 길르앗 지방에 위치했던 군사요충지로 갓 지파의 경내에 있었다(수 13:26, 30;21:38;삼하 2:8, 9;17:24-27).

성 경: [대상11:47]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 - '므소바 사람'(*)을 '소바로부터'라는 뜻의 '미소바'(*)와 같은 것으로 볼 경우 야아시엘(Jasiel)은 소바 출신 용사가 된다(Bertheau, Barnes). 소바(Zobah)는 다메섹 북쪽, 레바논 산지 동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다. 38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1:45]

주제1: [다윗 왕조의 출범(出帆)]

주제2: [군중(軍中)의 큰 용사]

(주); 시므리의 아들 여디아엘 - 여디아엘(Jediael)은 '하나님이 아신 자'란 뜻이다. 그런데 이 자가 12:20에 나오는 '여디아엘'과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성 경: [대상12:1]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본장에 나오는 용사들의 명단은 성경중 오직 본서에서만 소개된 유일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그에게 찾아와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용사들과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이미 거국적인 지지를 받았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주); 다윗이...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 시글락(Ziklag)은 가나안 정복 후 시므온 족속에게 할당된 땅이었으나(수 19:5) B.C. 12세기 초에 블레셋이 점령한 이후 다윗 시대 전까지 계속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다. 특히 사울 왕이 다윗을 핍박하던 당시에 이곳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내분을 조장하려는 음모하에 이곳을 당시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의 거처로 주었다. 다윗은 이곳에서 1년 4개월을 지낸 후(삼상 27:1-7) 헤브론으로 돌아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다(삼하 2:1-4).

성 경: [대상12:2]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저희는 활을 가지며 - 이는 곧 본절 및 그 이하에 나오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모두 활로 무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동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따른 것은 다윗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정통성있는 통치자(삼상 16:1-13)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사울의 폭정과 비신앙적 행동 그리고 심한 정신병적 증세에서 더이상 희망과 기대를 찾지 못하였을 것이다(삼상 22:17-19). 한편, 여기서 '동족'은 가까운 친척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단순히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Keil, Lange). 그러므로 우리는 베냐민 지파의 용사들이 동족애보다 하나님의 의를 쫓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은 그들의 행동은 동족애를 내세워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의 행동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삼하 16:5-8). 혹자는 이와 관련 베냐민 지파가 사울 왕의 출신 지파이므로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행위 자체가 다윗의 영광을 더욱 기리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Stotki).

성 경: [대상12:3]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기브아 사람 - 여기서의 기브아(Gibea)는 사울의 기브아(Gibea)라고도 불려지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이다(삼상 11:4;13:2, 15;14:16;15:34;삿 20:10).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오늘날의 텔-엘-풀(Tell-el-Ful)이다.

(주); 아스마엣의 아들 - 11:33에서 다윗의 용사로 소개된 아스마엣(Azmaveth) 또한 베냐민 지파 사람이므로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 것으로 보여진다(Curtis).

(주); 아나돗 -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이었다(수 21:18).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나타(Anata)이다.

성 경: [대상12:4]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기브온 사람 - 기브온(Giveon)은 예루살렘 서북쪽 9.6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수 18:25). 이곳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산당이 있었다. 왕상 3:4 주석 참조.

(주); 삼십 인 중에 용사요 삼십 인의 두목된 이스마야 - 여기서 30인은 삼하 23장과 본서 11장에서 소개된 다윗의 30인 용사와 다른 어떤 자들이라고(Curtis)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이스마야(Ismaiah)가 30인 명단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그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으며 그들의 두목이었음이 분명하다(Payne, Keil, Lange). 우리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18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 그데라 사람 요사밧 - 그데라(Gederah)는 유다 산지에 있는 성읍으로서(수 15:36)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 아니다. 혹자는 이곳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 요사밧(Josabad)과 그 가족들이 이주해 살았다고 주장하나(Keil)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 때문에 이와는 반대로 혹자는 1-7절에 베냐민 지파의 용사와 더불어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함께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Bertheau, Lange).

성 경: [대상12:5]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하룹 사람 - 하룹(Haruph)은 지명이 아니라 인명으로 보여진다. 즉 여기서 하룹 사람(Haruphite)은 갈렙의 후예 하렙(Hareph)의 자손들일 것이다(2:51).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1-7절에 일부 유다 지파의 용사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주장이 입증되는 셈이다. 4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2:6]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고라 사람들 - 혹자는 이들을 레위의 후손 고라(Korah)의 자손들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즉 이들을 레위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 내에 살았던 자들로 보는 것이다(Payne, Lange). 그러나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성 경: [대상12:7]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망명 중인 다윗을 따랐던 용사들]

(주); 그돌 사람 - 그돌(Gedor)은 유다 산지에 위치한 성읍으로(수 15:58) 베들레헴 근처, 곧 오늘날의 길벳 그둘(Khirbet Gedur)이다.

성 경: [대상12:8]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 - 여기서 '거친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라'(*)는 '광야'를 의미하고 '견고한 곳'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므차드'(*)는 광야에 있는 산의 정상에 세워진 '요새'를 뜻한다. 다윗의 피난 생활을 기록한 삼상 22-24장에 비추어 볼 때 이 '광야'는 유다 광야이며 이 '견고한 곳'은 유다 광야 곳곳에 흩어져 있었던 굴 또는 요새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삼상 22:1;24:3). 그리고 이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하던 첫 해에 해당한다. 즉 본 문맥에서 갓, 베냐민, 유다 자손들이 다윗에게 합류한 때는 앞의 문맥(1-7절), 다윗이 시글락에 있었던 때)보다 앞서는 때이며 다윗의 피난 시절 초기이다. 그당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유다 광야의 은신처들을 찾아다니며 방황하고 있었던것이다. 사무엘서에는 그 당시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이 사백 명 가량(삼상 22:2) 또는 육백 명 가량(삼상 23:13) 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그 기록은 본 문맥의 역사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편 여기서 '돌아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닙들루'(*)는 '구별하다'는 뜻의 동사 '바달'(*)의 닢알형(단순 재귀형)으로 이는 '스스로 구별하여...에게 속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스 6:21). 본절에서 특히 이 말은 사울 왕의 편에 섰던 사람들로부터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별하여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속했다는 뜻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Bertheau, Keil, O. Zockler).

(주); 싸움에 익숙하여 - 이는 곧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을 묘사하는 말이다(7:11).

(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 고대의 문학에서 '사자'는 용사들의 용맹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고 '산의 사슴'은 그들의 민첩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비유되었다(삼하 1:23;2:18). 즉 본절은 갓 지파 용사들의 강인함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2:9]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갓 지파 용사들이 서열에 따라 차례로 소개되고 있는 부분이다.

성 경: [대상12:10]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다섯째는 예레미야요 - 이와 동일한 이름은 13절에도 나온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유명한 대선지자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Jeremiah, 렘 1:1)와는 다른 인물들이다.

성 경: [대상12:12]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여덟째는 요하난이요 - 요하난(Johanan)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이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으로서 다윗을 섬긴 용사 가운데에도 이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자가 있었다(4절).

성 경: [대상12:14]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군대 장관 - 문자적 의미는 '군대의 머리'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큰 군대의 지휘관'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만 '탁월한 용사'라는 뜻이다(Keil, Lange).

(주); 그 작은 자는 일백 인을...큰 자는 일천 인을 관할하더니 - 혹자는 본절을 갓 지파 용사들이 능력에 따라 각자 일백 인 또는 일천 인을 지휘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Kittel).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당시 다윗을 따르던 무리들이 육백 인에 불과했다는 기록(삼상 23:13)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본절은 갓 지파 용사들 중 상대적으로 약한 자는 적군 일백 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으며 가장 강한 자는 천명을 감당해 낼 수 있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Bertheau, O. Zockler,P.C. Barker, Kautzsch).

성 경: [대상12:15]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갓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정월에 요단 강 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 정월은 히브리 월력으로 니산월(지금의 태양력 3-4월)로서 이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때였다. 그런데 팔레스틴에서 늦은봄, 여름은 건기(乾期)였으며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우기(雨期)였다. 성경 총론, '팔레스틴의 기후' 참조. 따라서 사람들이 건기인 여름에는 요단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봄에는 비록 건기이긴 하였지만 간간이 봄비가 내리고 또한 겨우내 얼었던 레바논 산록(山麓)의 눈들이 녹으면서 요단 강물은 범람하였다. 수 3:15 주석 참조. 그런데 갓 지파 용사들은 바로 이러한 때에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나아오기 위해 불가불 넘기 어려운 요단 강물을 도강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에게로 나아오는 그들의 간절함과 영웅적 모험 행위를 볼 수 있다.

(주);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로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 이는 당시 사울 왕을 계속 따르는 자들이 갓 지파 용사들의 길을 막았을 때 그들이 사울 왕의 추종자들을 물리쳤음을 나타내는 구절이다(Curtis). 즉 갓 지파 용사들은 사울 왕의 군대에서 이탈하여 다윗에게로 향하여 나아갔으므로 그때 그들의 길을 막으려는 무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2:16]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베냐민과 유다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견고한 곳에 이르러 - 이는 곧 8절과 같은 상황이다. 즉 베냐민과 유다 자손들은 당시 요새에 거처하던 다윗에게로 나아왔던 것이다. 8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2:17]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베냐민과 유다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다윗이 나가서 맞아 - 여기서 '나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는현재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절은 다윗이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사실을 보여준다. 다윗이 이와같이 한 것은 자신을 찾아온 자들이 사울 왕의 첩자일 것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음에 분명하다.

(주);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 여기서 '손'은 '행위'를 상징하며(욥 16:17;시7:3;9:16) '불의함'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는 포악한 '폭력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다윗은 자신이 베냐민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원한을 살 만한 불의를 도무지 저지르지 아니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 우리 열조의 하나님이...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 '열조의 하나님'이란 '옛 족장들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이는 무죄한 자를 그 언약대로 인도하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말이다. 출 3:6 주석 참조.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무죄함을 강변한 것이다(Curtis). 한편, '책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흐'(*)는 법정 용어로서 진상 조사를 통하여 고소하는 행위, 또는 비난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창 31:36;욥 9:23;40:2;미 6:2).

성 경: [대상12:18]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베냐민과 유다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 '아마새'(*) 역시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었으나 30인의 명단(삼하 23장;대상 11장)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4절 주석 참조. 그런데 (1) 혹자는 본절의 아마새(Amasai)를 스루야의아들 '아비새'(*)일 것이라고 주장한다(Kittel, Bertheau) (2) 그리고 또 다른 학자들은 아마새가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후에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가 그만 요압에 의해 살해된 '아마사'(*, 삼하 17:25;19:13;20:4, 8)라고 주장한다(Keil, Barnes, Lange). 위의 두 견해 중 우리는 (1)번의 주장은 받아들일수 없다. 왜냐하면 아비새(Abishai)는 30인의 두목이 아니라 둘째 3인의 두목이었기 때문이다(11:20, 21). 반면에 (2)번의 경우는 두 이름들이 철자상으로 거의 일치하므로 비교적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여기서 '감동하시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베쉬'(*)는 '옷을 입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성신(聖神)께서 아마새의 전인격을 감싸 전적으로 자기의 영향력 아래 두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주); 가로되...도우심이니이다 - 본절은 성신의 감동을 받은 아마새의 시적(詩的) 찬미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라는 말은 과거에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을 뿐 아니라(삼상 18:12 이하) 미래에도 도우실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Lange,Keil). 이와같은 아마새의 찬사는 여호와께서 진정 다윗을 택하셨다는 고백이기도 하였다(Myers).

(주);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 - 여기서 '접대하여'란 말은 다윗이 아마새와 그 일행에 대한 편견이나 의혹이 없이 저들을 자기의 편으로 받아들인 것을 말한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나 아마새의 감동적인 시적 설득으로 인하여 저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다윗은 아마새를 그의 주변에 모여든 사백 인 또는 육백 인의 우두머리 중 한 명으로 세운 것이다.

성 경: [대상12:19]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할 때에 - 이는 곧 과거 다윗이 블레셋으로 피신하여 시글락에 거주하던 때의 일이다(삼상 27:1-7). 그때 블레셋과 사울 휘하의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벌어졌는바 다윗은 블레셋 편에 서서 사울을 대적치 않을 수 없는 형편에 빠졌었다(삼상 28:1, 2).

(주); 므낫세 지파에서 두어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 갓, 베냐민, 유다 지파에 이어 이처럼 므낫세 지파에서도 몇 사람이 다윗에게로 돌아왔다. 여기서 '...에게 돌아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 알'(*)은 전쟁 중 지휘관을 배반하고 적에게로 나아가는 배신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여기서는 사울 왕을 버리고 다윗에게 투항한 저들의 망명 행위를 가리킨다(삼상 29:3;왕하 25:11).

(주); 우리 머리가 위태할까 하노라 -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과 전투하기 전 다윗의 참전을 반대한 이유이다. 즉, 이들은 전날 다윗의 용맹을 기억하고 이러한 다윗이 자기들을 배반하여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에게 미치게될 화(禍)를 염려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본절은 다윗이 사울 왕과 화합할 경우 자기들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그리할 것이라고 우려하던 블레셋 방백들의 말이다(삼상 29:3, 4). 그들이 이처럼 다윗을 경계했던 까닭은 전날 다윗이 그들과의 싸움에서 보인 용맹성을 그들이 기억했기 때문이었다(삼상 29:5).

성 경: [대상12:20]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 이때는 블레셋 방백들의 강한 반발에 못이긴 아기스왕이 다윗에게 참전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다윗과 그 무리들이 다시금 시글락으로 돌아가게 된 때를 말한다(삼상 29:1-11). 이때는 블레셋 군대가 사울과 접전하기 위해 이스르엘(Jezreel)로 올라갔던 때이기도 하다(삼상 29:11).

(주);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 이들은 바로 19절에 언급된 '다윗에게로 돌아온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므낫세 지파의 천부장, 곧 지휘자들이었다고 하니 당시 다윗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이 돌아온때는 사울과 그 군대가 블레셋 족속에게 크게 패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직전이었다.

성 경: [대상12:21]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적당을 쳤으니 - '이 무리'는 분명히 다윗에게로 돌아온 므낫세 용사들(19, 20절)이다. 그리고 '적당'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두드'(*)는 '강도떼', 또는 '침략자의 무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삼상 30:1에 의하면 이들은 다윗이 없는 동안 시글락을 약탈하고 다윗의 두 아내 및 여인들을 사로잡아간 아말렉 족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이때 이 므낫세 용사들 및 다른 용사들의 도움을 받아(삼상 30:7-15)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두 아내와 모든 것을 도로 찾을수 있었다(삼상 30:18, 19).

(주); 저희는 다 큰 군대요 - '큰 군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깃보레 하일'(*)은 '큰 군대'로 번역되기 보다는 '용감한 용사들'로 번역되어야 옳다. 한편 여기서 이들은 22절의 '큰 군대'와 달리 다윗에게 모인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Bertheau, Oettli). 즉 문맥상 이들은 므낫세 지파에서 온 천부장들(20절)을 가리키는 것이다(Keil, Lange, O. Zockler).

성 경: [대상12:22]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귀순한 용사들]

(주);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 본절은 당시 다윗의 무리들이 육백명을 넘어서 수천 또는 수만 명에 이른 것을 보여준다. 혹자는 당시 다윗의 무리가 사백 명 또는 육백 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에 집착하여(삼상 22:2;27:2) 본절은 저자의 주관적 사고에 의해 기록한 것으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절은 그 이후 다윗의 무리들이 어떻게 크게 늘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에서의 패배이후 상당수의 패잔병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는 분명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절은 분명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Keil, Lange). 한편, '큰 군대'나 '하나님의 군대'에서 '군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하네'(*)는 '진영'(陣營)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군대'란 (1) 군대의 큰 수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Lange), (2)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군대를 의미하기도 함을 알 수 있다(Keil,Payne).

성 경: [대상12:23]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본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11:1-3에서 이미 소개된 다윗 왕의 대관식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삼하 5:1-3).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각 지파의 용사들의 명단과 통계는 11:1의 '온 이스라엘', 삼하 5:1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한 자세한 내역(內譯)이다. 즉 이들은 모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줄 것을 다윗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온 자들이었다. 삼하 5:1 주석 참조. 그리고 이들이 다윗에게 나아온 때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 7년 반을 지낸 때로서(삼하 2:1-11) 본서 저자는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약력을 생략하고 곧 바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다윗의 면모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저자의 기술 형식은 처음부터 다윗을 신정국가의 영광스런 왕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11:1 주석 참조.

(주);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 여기서 '예비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츠'(*)는 '전쟁에 대비하여 장비를 갖춘', 또는 '무장한'이란 뜻이다. 또한 '군대장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세'(*)는 (1) '두목', '우두머리'라는 뜻과 함께 (2) '전체', '총계'라는 뜻이 있다(삿 5:30;7:16, 20;9:34, 44;삼상 11:11).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2)번의 의미, 곧 '전체 무리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Lange, Barnes, Keil).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문맥에서 온 이스라엘의 총수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싸움을 위해 무장한 온 무리들이...'라고 번역되어야 옳다.

(주); 여호와의 말씀대로 - 다윗의 즉위를 보는 저자의 시각(視覺)이다(11:3). 즉 저자는 이 말을 함으로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더구나 무장한 온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그에게 나온 사실 등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상 대관식 장면에서 보여준 다윗의 피동적(被動的) 자세(11:1-3;삼하 5:1-3) 역시 그의 나라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해 준다.

(주);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 다윗에게로 나아온 무리들의 총 수효은 도합 340,822명에 이르는 큰 수였다. 혹자는 400명 또는 600명에 불과한 다윗의 무리들이 이렇게 큰 수로 불어난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본 문맥이 다윗의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부각시키기 위한 저자의 과장인 것으로 본다(Curtis, Thomas, Mazar).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불신앙적 견해와 다름없다.

성 경: [대상12:24]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방패와 창을 들고 - 여기서 '방패'(*, 친나)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로서 적의 화살을 막기 위해 가지고 다닌 '작은 방패'(*, 마겐)와는 다른 것이다. 또한 창은 찌르는 살상용 무기이다. 이후 각 지파에서 무장한 무기들이 소개되는데 이같은 무기에 대한 기록은 다윗 왕조의 강대한 위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이밖에도 그 같은 무기들은 오늘날 성도들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신앙의 무기를 시사해 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성경에 언급된 무기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구

무기들 용도 구약 신약 의미

고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겔39:3 계6:2 폭력을 의미하기도 하며, 하

활 살상용 무기, 때로는 주술 시7:12 나님의 심판을 상징함

적인 목적에 이용됨 11:2

근동의 칼은 두가지 형태로 창3:24 엡6:17 히브리어'바라크'는 번개를

공 칼 찌를 때 쓰이는 곧은 칼과, 49:5 히4:12 의미함. 또한'헤레브'는 억압

격 (검) 목이 낫같이 휘어진 언월도 삼상17:39 을 상징하며, 헬라어'마카이

용 곧 왕의 장시용 칼 등, 구약 계1:16 라'는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

의 칼은 대개 곧은 날을 가 2:16 는 성령의 검임. 이 영적인 칼

진 살상용임 19:15 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함

고대세계 최고의 무기, 군 겔23:24 행8:28 왕권을 표현할 때 사용함.'

병 사력의 상징을 말해주는 것 합3:8 계9:9 하나님의 병거'란 말은 하나

거 으로 4필의 말이 끌었음. 님이 나타나실때, 그분의 능

화려한 행진에도 사용함 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함

고대의 방패는 몸전체를 삼하8:7 엡6:16 욥기에는 하나님에 대항 하

보호하는 큰 방패'치나'와 대하23:9 는 사악한 인간의 저항으로 비

방 왼쪽팔에 메는 작은 방패 욥15:26 유함. 그러나신약에서는 사단

패 '마겐'으로 구별됨. 한글 시119:114 에 저항할 수 있는 성도의 무

방 개역 성경은 대부분 이 둘 렘51:11 기로 '믿음'이라는 방패를 의

어 을 구별하지 않음. 장식품 미함

용 인 금방패도 있었다

투 초기시대에는 왕이나 높은 삼상17:5 엡6:11 투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

구 지도자에게 국한됨. 일반 사 대하26:14 ,17 원을 나타냈으며, 구원에 대

및 병들은 가죽옷을, 지휘관 들 사59:17 살전 해 소망 함. 또한 하나님의

갑 은 놋쇠 비닐옷을 착용함 5:8 전신 갑주는 하나님의 도우심

주 을 의미함

성 경: [대상12:25]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시므온 자손 중에서...칠천 일백 명이요 - 23-37절에 의거하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처럼 지역적으로 팔레스틴 남쪽에 거주한 지파의 용사들의 수가 북쪽 지파의 용사들의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음을 알 수 있다. 본장 23-40절 문단 강해, 도표 참조. 이에 대해 카일(Keil)은 유다와 시므온 지파는 이미 다윗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병력을 집결시킬 필요가 없었으나 북쪽 지파들은 다윗을 최초로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병력을 파송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성 경: [대상12:26]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 육백 명이요 - 이밖에도 여호야다가 이끄는 용사 3,700명과사독의 용사 22명이 더 있었으니(27, 28절) 레위 지파의 용사들은 모두 8,322명이었다. 한편 이처럼 성직(聖職)을 맡아 봉사하던 레위인들 가운데서도 다윗을 추종하는 용사들이 많았다는 것은 다시 한번 다윗의 왕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임을 증거해 둔다.

성 경: [대상12:27]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 -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지도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호야다(Jehoiada)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당시 대제사장은 이다말의 후손 아비아달이었다(삼상 23:9). 한편, 이 여호야다는 다윗의 시위대장 브나야의 부친임에 틀림없다(11:22;27:5;삼하 8:18;20:23;23:20, Keil, Payne,Barnes, Bertheau, Kimchi).

성 경: [대상12:28]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젊은 용사 사독 - 본절의 사독(Zadok)은 다윗 통치 하에서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맡았으며 솔로몬 즉위 때에 단독으로 대제사장직을 맡은 바로 그 사독일 것이다(삼하 15:24;왕상 2:35;4:4, Payne, Keil, Lange, Curtis). 본절은 그가 다윗의 대관식 당시에 아직 젊은이였음을 일러준다.

성 경: [대상12:29]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삼천 명이요 -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가장 적은 수이다. 아마도 베냐민 지파 내에는 지파 우월주의에 빠진 실권자(實權者)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었던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2:30]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본 족속의 유명한 큰 용사 - 에브라임 지파는 옛부터 용감한 전사(戰士)들로 유명했었다. 신 33:17 주석 참조. 한편 본절은 문법상 '본 족속에 따라(according to) 유명한 큰 용사'로 번역될 수 있다(B.D.B. Bertheau). 즉 본절은 기질적으로 에브라임 지파 가운데서 유명한 용사들이 많이 나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성 경: [대상12:31]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므낫세 반 지파 중에 녹명된 자 - 본절의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서편에 거주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37절에 요단 동편의 반 지파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녹명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브'(*)는 '임명하다', '지정하다'는 뜻이다(민 1:17). 즉 여기서 '녹명된 자'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위해 특별히 '임명받은 자'란 뜻이다.

성 경: [대상12:32]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시세(時勢)를...아는 두목이 이백 명이니 - 이백 명은 당시 다윗에게 나아온 잇사갈 지파 전체의 수가 아니라 다만 지휘자들의 수이다(Keil, Lange, Curtis). 여기서 '시세(時勢)를 안다'는 말은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 또는 통찰하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주);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 - 여기서 '관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피헴'(*)은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 따라서'라는 뜻이다. 이는 곧 잇사갈 지파가 저들의 판단 또는 지도를 따랐다는 말이다(창 41:40;민 4:27;신 21:5,Keil, Lange).

성 경: [대상12:33]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行伍)를 정제(整齊)히 하고 - 이는 무장(武裝)을 한 채 전쟁에 대비한 연습을 하였다는 말이다(Lange, Keil). 때문에 공동 번역은 본절을 '훈련을 받아'로 번역하고 있다.

(주);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 이는 한 마음, 또는 견고한 마음으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능히 진에 나아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다르'(*)는 '배치하다'라는 뜻으로 모든 용사들이 적군 앞에서 견고한 마음으로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다(Lange, Keil).

성 경: [대상12:34]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방패와 창 - 여기서 방패는 온 몸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이나 창은 24절의 찌르는 창과는 약간 다른 종류이다. 24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니트'(*)는 길이가 짧고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를 가리킨다(삼상18:11;20:33). 대개 이같은 창은 앞, 뒤쪽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었다(삼상 19:9, 10;22:6;26:7;삼하 1:6;2:23;23:21).

성 경: [대상12:35,36]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단 지파와 아셀 지파 가운데서 다윗에게로 나아온 용사들의 수는 합쳐서 '육만 팔천 육백 명'이다. 이는 다른 지파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인데 저들 지파의 인구 수가 상대적으로 다른 지파에 비해 많은 탓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민 26:42-47).

성 경: [대상12:37]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 이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 언급되었다. 본서 저자는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언급함으로써 모든 백성의 열화같은 지지 가운데 출발하게 된 다윗 왕조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성 경: [대상12:38]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이 모든 군사 - 위에서 언급한(23-37절)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나아온 이스라엘 온 무리들을 가리킨다.

(주); 항오를 정제히 하고 -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라는 뜻이다.

(주); 성심으로 - '온 마음(Whole heart)으로' 라는 뜻이다. 즉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한 용사들은 모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한 순수한 마음들을 지닌 채 다윗에게로 나아왔던 것이다.

(주);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일심으로 -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미처 헤브론에 나오지 못한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조차 '일심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본 기록은 다윗 왕조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출발한 이상적인 신정 국가(神政國家)였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사실은 아브넬(이스보셋의 군장)이 죽기 전에 한 말을 통해서도 능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해당 부분인 삼하 3:17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2:39]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무리가 거기서 다윗과 함께 사흘을 지내며 먹고 마셨으니 - 이는 곧 다윗 왕의 즉위를 축하한 3일 간의 잔치를 가리킨다. 당시 왕이 즉위할 때에는 대관식(왕상1:32-48;왕하 11:12-20), 왕홀(王笏)의 수여(삼하 1:10;왕하 11:12;시 89:40), 기름부음(삼상 9:16;10:1;삼하 2:4;왕하 23:30) 등의 의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때에 백성들은 다같이 환호하며(왕상 1:34, 39;왕하 11:12, 14) 기쁨의 잔치에 참여했었다.

(주); 그 형제가 이미 식물을 예비하였음이며 - 여기서 '그 형제'란 이미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 유다 지파 및 시므온 지파를 가리킨다. 25절 주석 참조. 이 지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하는 데 동원되었으며 또한 그들이 잔치에 필요한 제반 물자(物資)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유다 지파나 시므온 지파가 다른 북쪽 지파에 비해 군사를 적게 소집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25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2:40]

주제1: [다윗을 옹위한 용사들]

주제2: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는 용사들]

(주);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실어 왔으니 - '근처에 있는 자'는 유다 지파에 인접해 있었던 지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북단에 위치한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들까지도 음식을 실어왔다. 이와같은 저들의 행동은 다윗의 즉위를 저들이 진심으로 크게 기뻐했다는 사실을 증거해준다.

(주); 과자와 무화과병과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 왔으니 - 이것들은 팔레스틴의 기본 소산물들로서 히브리인들의 잔치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삼상 25:18;30:12;렘 40:10, 12;암 8:1). 아무튼 본절은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는 잔치가 굉장히 성대(盛大)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실상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큰 무리가 사흘 동안 잔치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게 해 준다.

(주);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 본절 앞에는 원인을 나타내는 접속사 '키'(*)가 붙어 있다. 따라서 본절을 정확히 직역하면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기 때문이더라'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본절에서 말하는 희락은 3일 간의 잔치의 결과였다기 보다 오히려 잔치를 벌이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락은 잔치의 음식을 먹음으로 얻었던 것이 아닌 보다 순수한 것이었다. 실상 본절의 '희락'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심하'(*)는 주로 여호와 안에 있을 때 가지는 기쁨을 나타낸다(대하 20:27;시 5:11;9:2;64:10). 따라서 이들의 희락은 오직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다윗의 왕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에서 가졌던 순수한 희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희락 때문에 유다 지파 근처 사람들이나 먼 지파 사람들은모두 자발적으로 잔치 음식을 날라온 것이다. 한편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즉위를 기뻐하여 사흘 동안 '희락의 잔치'를 벌였었다. 그러나 장차 성도들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게 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은 곧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성취되는 때이니 바로 세상 끝날이다(계 21:1-8). 이와 관련해서는 본장 23-40절 강해, '참된 기쁨의 비결'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3:1]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본장은 삼하 6:1-11의 내용과 병행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기록 순서상 삼하와 큰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삼하 5:1-5), 예루살렘 정복(삼하 5:6-10), 다윗 궁의 건설(삼하 5:11), 그리고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바알브라심 사건(삼하 5:17-25)과 언약궤의 옮김(삼하 6:1-23)의 순으로 기술하였다. 반면에 역대기 저자는 다윗 왕의 즉위(11:1-3) 및 예루살렘 정복(11:4-9) 다음에 바로 이어서 언약궤를 옮기려 한 제 1차의 시도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본 저자가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을 다윗 궁의 건설이나 블레셋 대군을 격파한 사건보다 앞서서 기술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호와 경배에 대한 다윗 왕의 관심을 크게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 왕의 일반적인 국사(國事)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그의 불타는 열심에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의도는 포로 귀환 이후 신앙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여호와를 경배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Payne).

(주); 곧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의논하고 - 여기서 '곧'(*, 르)이란 12장의 문맥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Lange, Keil). 이렇게 볼 때 '모든 장수'는 다윗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군사들을 인솔했던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로부터 5절은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 보이지 않는 구절이다. 여기서 저자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성역(聖役)이 다윗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무리들의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 경: [대상13:2]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 여기서 '온 회중'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4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에게로 나아온 헤브론의 각 지파의 용사들(12장)을 의미한다. 다윗은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에게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전하고 협력을 요청하였다(3절). 그리고 백성들은 이에 기꺼이 응하였다(4절).

(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 즉, '법궤를 옮기고자 하는 계획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 것이라면'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다윗은 법궤를 옮기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일인가를 생각하였다. 이는 분명 잘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추진하는 방법면에 있어서도 다윗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경솔하였으니 그만 법궤 운반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5-14절).

(주);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보내어 -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는 헤브론에 모이지 못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윗 왕은 이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에게 국가의 계획을 알림으로써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6장에는'제사장과 레위인'이 언급되지 아니하였으나 본절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 저자의 제사장적 관점을 잘 보여주는 점이다(Curtis). 또한 여기서 '보내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깨뜨리다'는 뜻의 동사 '파라츠'(*)와 '보내다'는 뜻의 동사 '솰라흐'(*) 두 동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의 정확한 뜻은 '깨뜨리고 나아가게 하다'는 뜻으로 이는 어떠한 방해도 물리치고 온 백성들에게 이 거룩한 사역을 알리겠다는 다윗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당시는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들이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한 것같다(Payne).

성 경: [대상13:3]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은 그의 통치 기간(B.C.1050-1010) 중 단 한번도 하나님의 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가 블레셋과의 전투시 법궤를 찾은 적은 있으나 그때는 다만 자신의 아들 요나단의 안전 여부를 여호와께 물어보려고 했을 뿐이다(삼상 14:18). 이와같은 그의 무관심은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계시의 출처(出處)로서 하나님의 뜻이 이 궤를 통하여 종종 나타났기 때문이다(출 25:22;레 1:1;삼상 3:3, 4). 따라서 사울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다 함은 그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서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다윗은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움직였으니 실로 '신앙의 용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14:10, 14).

성 경: [대상13:4]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뭇 백성이 이 일을 선히 여기므로 - 이는 직역하면, '모든 백성의 눈에 그 일이 선하였으므로'이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백성'이란 지휘관의 총회(1절)가 아닌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의미한다. 즉 다윗 왕이 자신의 계획을 백성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그 일에 대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주);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 여기서 '온 회중'은 헤브론에 모였던 이스라엘 각 지파의 용사들을 가리킨다. 2절 주석 참조. 이들은 백성들의 좋은 반응을 보고 다윗 왕의 계획에 전적으로 찬동한 것이다.

성 경: [대상13:5]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 여기서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란 말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삼상3:20;삼하 17:11;24:2, 15)라는 말과 같이 이스라엘 전역을 요약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성경에서 시홀(Shihor)은 대개 나일 강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사 23:3;렘2:18) 간혹 나일 강의 수로나 델타(Delta) 지역의 한 지류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 시홀은 성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서 경계선으로 언급된 바 있는 애굽의 시내, 곧 오늘날의 '와디 엘 아리쉬'(Wady el Arish)를 가리킨다(Keil,Curtis, 민 34:5;수 15:4, 47;사 27:12). 한편, 하맛(Hamath)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지였으며(민 13:21;34:8;수 13:5;삿 3:3) 오론테스 강 유역에 발달한 성읍이었다. 다윗 왕은 이와같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는데 이 '온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서 골고루 선발한 자들을 의미한다. 병행 구절인 삼하6:1에는 이들의 숫자가 모두 3만명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경: [대상13:6]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 하나님의궤가 있었던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은 본래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바알라(Baalah)였다. 그런데 이 성읍이 유다 지파의 수중에 들어가자 '유다의 바알라'라는 뜻의 '바알레유다'(Baale of Judah)로 불리워졌었다(삼하 6:2). 이러한 역사를 가진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길목, 곧 예루살렘 서쪽 15km 지점에 위치해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아벡 전투(삼상 4:1-11) 이후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때(11:4-9)까지 무려 70년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삼하 6:2 주석 참조. 한편, 다윗왕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기 위하여 3만명의 수행원들(본절의 온 이스라엘)을 거느렸었다. 당시 다윗 왕이 이처럼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했던 것은 기럇여아림이 블레셋 영토에서 매우 가까왔던 까닭에 그들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의...이름으로 일컫는 궤라 - 본절은 법궤가 '하나님의 궤'로 불리워진다는 단순한 의미 외에도 그 궤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임하여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능력과 속성과 영광에 대한 계시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말은 곧 그의 능력과 영광이 그 궤에 임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삼하 6:2에서 상세히 주석하였으니 참조하라.

성 경: [대상13:7]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 다윗은 하나님의 궤의 거룩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새 수레에 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조치는 분명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에는 오직 레위인 중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궤를 운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민 7:9) 다윗은 이방인들이 신상을 옮길 때 사용했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했기 때문이다. 즉 당시 베니게 족속이나 블레셋 족속은 수레를 이용하여 그들의 신상을 옮겼었다(Munter). 그런데 그와 마찬가지로 다윗도 이방인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 하였으므로 그의 계획은 중도에서 실패하게 되었던 것이다(9-13절).

(주);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 병행 구절인 삼하 6:3에 의하면 아비나답(Abinadab)의 집은 기럇여아림의 산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궤는 블레셋 땅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진 후 줄곧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Eleazar)은 법궤를 지켜왔다(삼상 7:1).

(주);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 웃사(Uzza)와 아히오(Ahio, 또는 '아효')는 모두 아비나답의 손자들이다. 삼하 6:3, 4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3:8]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주악하니라 -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궤앞에서'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상징물, 곧 가견적인 보좌였으므로 다윗 왕과 그 일행은 궤 앞에서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한편,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옮겨지는 궤 앞에서 뛰놀며 온갖 악기로 주악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했는지를 잘보여준다. 그때 그들이 연주하였던 악기인 수금, 비파, 소고, 제금, 나팔 등에 대해서는 병행 구절인 삼하 6: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3:9]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이송(移送)되는 언약궤]

(주); 기돈의 타작 마당 - '기돈'(*)은 혹자의 견해처럼 사람의 이름이라기 보다는(Curtis) '파괴', '재앙'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Keil,Lange). 왜냐하면 '기돈의 타작 마당'이 병행 구절인 삼하 6:6에는 '나곤(*)의 타작 마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돈'과 '나곤'을 고유 명사로 취할 경우 두 기록을 조화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기돈'과 '나곤'을 일반 명사로 취할 경우 두 상이한 기록들은 서로 내용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기돈'은 '파괴', '재앙'이란 뜻이며 '나곤'은 '예비된', 또는 '충돌하는'('치다'의 '나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때)이란 뜻임에 비추어 볼 때 이 타작 마당은 재앙의 타작 마당이자 충돌의 타작 마당(11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삼하 6:6주석 참조.

(주); 소들이 뛰므로 - 여기서 '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트'(*)는 본래'걸려 넘어질 뻔하다'는 뜻으로 이는 소들이 돌뿌리 등에 걸려 비틀거리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같이 소들이 비틀거리므로써 수레에 실은 법궤는 떨어지려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불길한 흉조(凶兆)는 분명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대로 법궤를 운반하지 아니한 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대상13:10]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베레스 웃사 사건]

(주);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 당시 소들이 날뛰므로 인해 법궤가 떨어지려 하자 손으로 붙잡은 웃사의 행동은 상황적으로 볼 때에는 분명 잘못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볼 때 웃사의 그러한 행동은 분명 신성 모독죄(神聖冒瀆罪)에 해당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가견적인 보좌로서 어느 누구도 이를 만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율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만졌기때문이다(민 4:15). 하나님은 심지어 이것은 거룩한 것이니 들여다보지도 말 것이라고(민 4:20;삼상 6:19) 엄히 규정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웃사의 행동이 설사 선의(善意)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율법을 경시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삼하 6: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3:11]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베레스 웃사 사건]

(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 여기서 '충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레츠'(*)는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출 19:22, 24;삼하 5:20;대하 20:37;욥 16:14;시 60:1;80:12;89:40;사5:5). 즉 하나님께선 자신의 말씀을 경홀히 여긴 웃사에게 진노의 심판(10절)을 발하셨던 것이다.

(주); 다윗이 분하여 - 다윗의 분함은 웃사에게 징벌을 내리신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분함은 (1) 웃사의 경거 망동한 행동과 (2) 자신의 율법에 대한 무지, 또는 불순종을 자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석달 후(14절) 자신의 모든 실수를 수정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법궤를 운반하게 된다(15:1-29;삼하 6:12-19). 이 같은 사실을 보아서도 그의 분냄은 자신과 웃사의 실수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삼하 6:8 주석에서 다루었으니 참조하라.

(주); 베레스 웃사 - '웃사를 충돌하심'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성 경: [대상13:12]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된 언약궤]

(주);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 다윗의 두려움은 웃사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었다. 즉 웃사의 죽음을 보자 다윗은 자신의 법궤 운반 사역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요소가 있음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또 다른 징벌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하나님의 징벌에 대단히 민감한 다윗 왕의 영적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삼하 6:9 주석 참조.

(주);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올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대상13:13]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된 언약궤]

(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 오벧에돔(Obed-edom)은 고핫 자손이었으므로 법궤를 지킬 수 있는 율법의 요구를 갖춘 자였다(26:12, 15). 즉 오벧에돔은 고핫 자손 중 고라 자손에 속하였으며, 성소의 문지기였다. 한편, 본절의 '가드 사람'(the Gittite)이란 말은 오벧에돔이 단 지파의 경계 내에 있던 레위인의 성읍 가드림몬(Gath Rimmon)에서 출생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수 19:45;21:20-24;Lange, Keil).

성 경: [대상13:14]

주제1: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

주제2: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된 언약궤]

(주); 하나님의 궤가...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 여기서 '권속'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이트'(*)는 '집', 또는 '가정'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장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법궤를 덮은 장막을 의미할 것이다(Bertheau, Lange).

(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 오벧에돔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은 첫째, 많은 자녀의 생산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자녀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성공적인 삶이었다(26:4-8). 그밖에도 하나님은 그의 가축과 밭의 소산 등 모든 방면에 복을 내리셨을 것이다.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10, 11절)가 풀렸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다윗 왕은 지난번 웃사의 죽음이 법궤를 옮기려 한 자신의 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에하나님의 복이 임함을 보고는 다시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려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삼하 6:12).

성 경: [대상14:1]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다윗을 돕는 히람]

다윗 궁의 건축(1, 2절), 다윗 왕의 아내들과 자녀들(3-7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의 승리(8-17절) 등과 같은 기사를 담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다윗 왕의 첫 시도(13장)와 두 번째 시도(15장) 사이에 끼여 있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건들이 실제로 이 두 번의 시도 사이에 일어났던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기간은 겨우 3개월에 불과한데(13:14) 그 기간에 이러한 사건들이 다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블레셋과의 대전(大戰)은 13장의 사건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장의 내용을 13장 뒤에 배치한 것은 순전히 본서 저자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즉, 본장에는 다윗 왕조의 영광된 승리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궤에 대한 다윗 왕의 남다른 열심에 따른 결과였음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13장 다음에 본문을 배치한 것이다(Keil, Lange,Payne, McConville). 한편, 본장은 삼하 5:11-25의 내용과 동일하나 본장에는 본서 저자의 의도적인 언급이 약간 첨가되어 있다.

(주); 두로 왕 히람이...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 본 사건은 사실상 다윗 왕의 통치 말기에 있었던 것이다(Payne, Leon Wood, Keil).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수 있다. (1) 다윗 왕의 통치 초기에는 전쟁이 많았었는 바(삼하 8:1;10:19) 그 전쟁의 와중에서 다윗이 궁궐을 건축할 여유가 없었다는 점, (2) 히람(Hiram) 왕은 다윗왕 후기에 등장, 솔로몬 왕의 시대에까지 살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왕상 9:10), (3) 히람 왕의 사절단 파견은 분명 다윗 왕조가 크게 강대해진 후에 화해의 목적으로 보내졌을 것이라는 점(Leon Wood) 등이다. 한편, 두로(Tyre)는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24km 지점에 위치했던 베니게(Phoenicia)의 도시 국가이다. 이에 관해서는 병행 구절인 삼하 5:11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4:2]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다윗을 돕는 히람]

(주);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 여기서 '깨달았으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는 '나카르'(*)와는 달리 경험을통해 깊어지는 심오한 인식을 의미하는 말이다(창 4:1;18:19, 신 1:39;8:5). 즉, 이말은 이전에 다윗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왕이 된 줄을 몰랐다가 나라가 크게 진흥한 그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는 이전부터 알았던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수많은 역사를 통해 더욱 확실히 그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뜻한다. 삼하 5:12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3]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다윗이...아내들을 취하여 또 자녀를 낳았으니 -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에 따르면, 많은 수의 아내와 자녀들은 그만큼 왕의 권위를 나타낸 것이었다(Leon Wood, TheInterpreter's Bible Commentary). 이렇게 볼 때, 본서 저자가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3:1-4)에 이어 예루살렘에서 낳은 다윗 왕의 아들들을 소개함은 바로 다윗 왕의 큰권세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저자의 의도적인 기록이. 다윗 왕의 축첩(蓄妾) 행위를 용인하는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정 국가(神政國家)의 왕의 축첩 행위는 율법에 엄히 금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신17:7). 더군다나 다윗의 축첩 행위는 훗날 다윗 왕가에 닥친 연속적인 재앙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왕상 11:3-15). 그러므로 일부다처주의, 축첩 행위 등은 명백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창 2:24)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 부당성' 참조. 한편, 본절에는 삼하 5:13과는 달리 '첩'(*, 필라게쉼)이란 용어가 빠져 있고 다만 '아내'(*, 나쉼)라는 용어만이 사용되었다. 이는 아마도 본 문맥에 소개된 아들들이 다윗 왕의 아내들의 소생들이었기 때문인것으로 보여진다(Curtis, Bertheau).

성 경: [대상14:4]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다윗의 후손]

(주);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 이들은 모두 밧세바의 소생이다. 이 중 삼무아(Shammua)는 일명 시므아(Simea)로도 불리웠다. 3: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5,6]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다윗의 후손]

여기에 언급된 자들은 모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다윗의 아내들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다. 이 중 5절의 엘벧렛(Elpalet)은 일명 엘리벧렛(Eliphalet)으로도 불리웠는데 7절에 나오는 '엘리벧렛'과는 다른 사람이다. 3:6-8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7]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주); 브엘랴다 - 브엘랴다(*)는 '주(*, 바알)께서 아신다(*, 야다)'는 뜻이다. 그러나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알 우상이 알려지면서 바알이란 이름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자 바알 대신 '엘'(*)로 바뀌어 그의 이름은'엘랴다'(*)로 개명되었다. 3:8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8]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본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다윗 왕이 블레셋과의 두 번의 전투에서 모두 대승(大勝)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이전에 있었던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본 전투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직후(11:1-3)에 있었다는 점, (2) 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략하지 아니하고 르바임 골짜기(9절)를 공략했다는 점(이는 다윗 왕이 아직까지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줌), (3)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 왕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그를 찾았다는 점(삼하 5:17), (4) 그리고 본 전투의 상황을 기록한 삼하 23:13, 14에 다윗 왕이 예루살렘이 아닌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한 것으로 나와 있는 점 등이다.이와 같은 증거들을 살펴볼 때 본 사건은 하나님의 궤를 옮긴 사건(13:1-14)은 물론이요 예루살렘 정복 사건(11:4-9)보다 앞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알 수 있다(Keil, LoenWood, Payne, Hertzberg). 삼하 5:17 주석 참조.

(주);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 오매 - 여기서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찾은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함이었다(삼상 23:15, 25;24:3;26:2). 이와 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동은 이전에 아기스(Achish) 왕이 다윗에게 베푼 호의에 비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행동이었다. 즉, 이전에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블레셋의 아기스 왕은 그에게 시글락을 거처로 주는 등 그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삼상 27:1-12). 그러나 과거 그와 같은 블레셋 왕의 호의는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을 살려둠으로써 사울 왕과 다윗간의 세력 다툼을 조장하는 중에 이스라엘을 크게 분열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이 통일되자 자신들에게 미칠 다윗의 세력을 염려한 나머지 이제 블레셋인들은 다윗이 즉위하자 마자 그를 죽이러 쳐들어왔던 것이다.

(주); 다윗이 듣고 방비하러 나갔으나 - 여기서 '방비하러 나갔다'는 말은 직역하면 '그들 앞에 나갔다'는 뜻이 된다. 이는 분명 블레셋인들을 대항하기 위해 나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병행 구절인 삼하 5:17에서는 '요해처(要害處)로 나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요해처는 같은 배경을 가진 삼하 23:13, 14에 의거할 때, 다윗이 진영을 설치했던 아둘람 굴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삼하 5:1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9]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주); 르바임 골짜기 - 문자적으로 '거인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는 그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거인족 르바임(Rephaim)의 이름에서 유래된 지명인 듯하다. 이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에 위치해있었다(수 15:8). 블레셋 대군이 먼저 이곳을 침범했던 것은 군사 전략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즉, 블레셋 군대는 양 지파의 경계지이며 이스라엘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차지함으로 남북 간의 교통을 차단하고 이스라엘의 통일을 분열시키려했던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18에는 '블레셋 사람이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扁滿)한지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당시 다윗을 죽이려고 집합된 블레셋 군대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대상14:10]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주);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 사울 왕과 크게 대조되는 또 하나의 다윗 왕의 특징이다. 13:3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하나님께 물었다'는 말은 대제사장이 당시 소유하고 있던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다는 의미이다. 당시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었던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있었다(삼상22:10;삼하 2:1).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4:11]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주); 바알부라심 - '주'라는 뜻의 '바알'(*)과 '흩음'이란 뜻의 '페라침'(*)이 합성된 복합 고유 명사로 이는 '흩으심의 주'라는 뜻이다. 즉 이는 물을 흩음같이 블레셋 대군을 쉽게 물리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념하기 위해 다윗왕이 지은 신지명(新地名)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껏 알려지지 않고있다. 혹자는 이곳을 브라심 산(사 28:21)과 동일시하기도 한다(Curtis). 그러나 이곳이 산이라는 암시가 본 문맥에 나타나 있지 않고 또한 이 지명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으로 볼 때에도 그 같은 주장은 근거가 없다(Lange). 삼하 5:2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12]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블레셋을 격파하는 다윗]

(주); 블레셋 사람이 그 우상을 그곳에 버렸으므로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전쟁의 승리를 자기들이 신봉하는 신이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전쟁시에 그들의 신상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우상을 블레셋 사람들이 버리고 갔다는 사실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겁에 질려 무질서하게 후퇴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삼하 5:21 주석 참조.

(주); 다윗이 명하여 불에 사르니라 -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조치는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행동이었다(신 7:5, 25). 한편, 이러한 장면은 얼마 전 사울 왕의 머리를 자기들의 신당에다 바친 블레셋 사람들의 행위와 크게 대조된다(10:10). 그때 그들은 자기들의 신이 사울 왕을 죽게 했다고 믿고 크게 기뻐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여 이제 그들이 믿었던 우상들은 다윗 왕의 단 한 마디 명령에 의해 불태워졌고 그들의 소망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허무한 종말을 읽을 수 있다(Leon Wood). 즉 전능하신 하나님 외의 일체의 대상에 의탁하려는 행위는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성 경: [대상14:13]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전파되는 다윗의 명성]

(주); 블레셋 사람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 블레셋 군대의 제 2차 공격이다. 그들은 앞서의 패배(8-12절)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을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5:22에 보면, 그들은 제 1차 공격 때와 마찬가지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르바임 골짜기의 면적은 길이가 약 5km, 폭이 약 3km에 해당된다. 삼하 5:18 주석 참조. 따라서 이곳을 가득 메운 블레셋 군대의 숫자는 매우 엄청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성 경: [대상14:14]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전파되는 다윗의 명성]

(주);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 이때도 역시 다윗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10절 주석 참조.

(주); 마주 올라가지 말고...저희를 엄습하되 - 여기서 '마주 올라가지 말라'는 말씀은 저들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리신 것은 블레셋 군대가 다윗 왕의 정예부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대군이었으며 또한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긴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적의 대군을 물리치기 위해 기습 또는 변칙 공격을 명하셨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우리는 미디안의 대군을 섬멸한 기드온의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삿 7:19-21). 한편, 여기서 '뽕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는 본래 '울다'는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우는 나무'(the Weepingtree)를 가리킨다. 따라서 혹자는 이를 수액(樹液)을 발산하는 '발삼 나무'(Balsamtree)일 것이라고 추측한다(Lange, Keil, Rust). 그리고 혹자는 이 나무가 관목이기보다는 덤불에 가까운 종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Dalman). 아무튼 이 나무숲은 다윗의 병사들이 매복하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을 것임은 틀림없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5:2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4:15]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전파되는 다윗의 명성]

(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 여기서 '걸음 걷는 소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아드'(*)는 '보조를 맞추어 걷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기서는 여호와의 진군, 곧 여호와의 군대의 행군(창 32:2,3;왕하 6:17)을 지시하는 말이다(Curtis, Lange, Keil, Payne). 한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진군하실 때 그는 이스라엘보다 앞에서 행하시어 반드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삿 5:4). 따라서 발삼 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걸음 걷는 소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는 소리이며 승리를 위해 나아가라는 공격 신호였음을 알 수 있다. 삼하 5:24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16]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전파되는 다윗의 명성]

(주); 다윗이 하나님의 명대로 행하여 - 이는 분명 사울 왕과 대조되는 다윗 왕의 특징적 행동으로서 다윗 왕조의 번영의 원천이다. 10절 주석 참조.

(주);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 병행 구절인 삼하 5:25에는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해 볼 때 블레셋 패잔병들은 게바(Geba)로 일단 후퇴했다가 거기에서도 다윗의 정예 부대를 막아내지 못하겠으므로 기브온(Gibeon)을 거쳐 게셀(Gezer)로 도망한 것이 분명하다. 게바는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으나(수 18:24) 블레셋 군대의 강력한 수비대(守備隊)가 있었던 곳이다(삼상 13:3) 따라서 이곳이 비록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들의 본토로 도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수비대가 있었으므로 블레셋 패잔병들은 이곳으로 먼저 도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또다시 게셀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예루살렘 북서쪽에 위치한 기브온을 거쳐 게셀까지 도주했던 것이다. 한편, 게셀은 블레셋 영토쪽 경계지였으며 르바임 골짜기에서 약 24km나 떨어진 곳이었다(LeonWood). 따라서 블레셋 군대를 다윗 왕이 게셀까지 추격했다는 사실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삼하 5:2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4:17]

주제1: [다윗 왕의 번영]

주제2: [전파되는 다윗의 명성]

본절은 본 사건의 기술을 마무리짓는 저자의 결론 부분으로서 병행 기사인 삼하 5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본절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바 2절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성 경: [대상15:1]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왕궁과 언약궤 처소 예비]

본장에서부터 16장까지는 삼하 6:11-23과 병행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삼하 6:11-23은 하나님의 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매우 간략하게 서술한 반면 본문은 매우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특히 사무엘서 저자는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데 있어서 제사장 및 레위인들의 역할을 생략한데 반하여 본서 저자는 이들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저자의 제사장적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서 서론, '기록 목적' 참조.

(주);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왕궁을 세우고 -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은 다윗이 여부스 거민에게서 빼앗은 '시온 산성'을 가리킨다. 11:5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세운 왕궁은 히람 왕의 도움을 받아 지은 궁궐(14:1)과는 시기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히람 왕의 도움으로 지은 궁궐은 다윗 통치 말기에 지은 것이며 본절에서의 왕궁은 통치 초기에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Bertheau). 14:1 주석 참조. 또한 히람 왕의 도움이 관련된 문맥에서는 동사 '바나'(*)가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아사'(*)가 사용되었다. '바나'는 이미 세워진 건축물을 보수한다는 의미의 동사인 반면, '아사'는 새로이 건축물을 형성한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이렇게 볼 때 본절에서 다윗 왕이 지었다는 왕궁은 형태를 갖춘 최초의 건축물이었다고 볼 수있으며 히람 왕의 도움을 받아 지은 궁궐은 이미 지어진 왕궁을 크게 보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Keil, O. Zockler). 한편, 이 왕궁의 건축은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가 그의 집에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13:14).

(주);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 본절이 다윗 왕의 왕궁 건축에 뒤이어 기술되어 있으므로 이는 다윗 왕이 자신의 궁을 건축하는 동안에 장막을 지은 사실을 시사해 준다. 다윗이 세운 이 장막은 분명히 옛 성막을 본따 새로 지은 것이다(16:39;21:29;왕상 3:4). 당시 원형 그대로의 옛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다(대하 1:3). 아무튼 본절은 1차 안치식 때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시지 못했던 다윗(13장)이 이번만큼은 반드시 안치하기 위하여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사무엘서에서는 다윗 왕이 다시금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된 동기에 대해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까닭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나(삼하 6:12) 본 문맥에서는 이러한 서술이 생략되어 있다. 대신 오벧에돔의 집에 내린 여호와의 복이 예루살렘에도 임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에서 다윗 왕이 궤를 옮긴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신앙적인 동기를 가지고 곧, 예루살렘이 기도와 예배의 중심지가 되기를 오래전부터 바라는 마음에서 이같이 행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16:4). 여기서 우리는 본서 저자가 다윗 왕의 이기적인 동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그의 깊은 신앙적 측면에 치중하여 본문을 기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대상15:2]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가로되 - 히브리 원문에는 이 말 앞에 '그때에'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즈'(*)가 있다. '그때'는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지 '3개월이 지난 후'를 의미한다(13:14).

(주);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 이는 곧 지난번 웃사의 죽음(13:9, 10)이 언약궤 운반에 관한 여호와의 율법을 어긴 결과였음을 다윗 왕이 깨닫고하는 말이다.

(주);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섬기게 하셨음이니라 - 언약궤는 오직 고핫 자손들만이 관리하게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지적하는 말이다(민 4:15;7:9).

성 경: [대상15:3]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 여기서 '이스라엘 온 무리'는 제사장과 레위인들(4-24) 및 이스라엘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과 지휘관들을 가리킨다(25절). 그런데 본절은 병행 구절인 삼하 6:12-15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본서 저자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를 언급함으로써 본 성역(聖役)이 다윗 왕과 온 백성들의 봉사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전체의 사역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5:4]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아론 자손 - 여기서 '아론(Aaron) 자손'이란 제사장들을 가리킨다(출 28:41). 11절에 나오는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역시 바로 이 '아론 자손'이다.

성 경: [대상15:5]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그핫 자손 - 본문에서 이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 책임이 그핫(고핫, Kohath) 자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민 4:4, 15;7:9). 그핫은 레위의 둘째 아들로서(창 46:11;출 6:16;민 3:17;26:57) 제사장의 조상이다(6:1, 2). 즉 그의 후손들 가운데서 '아론 자손'이 나온 것이다(출 6:16-20).

(주); 족장 우리엘 - 그는 다윗 시대에 그핫 자손을 이끈 지도자였다. 우리엘(Uriel)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빛이시다'이다.

성 경: [대상15:6]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므라리 자손 - 므라리(Merari)는 레위의 셋째 아들이다(6:1) 그의 후손들도 역시 성소에서 중책을 맡았으니 성막이 띠, 널판, 그리고 기둥과 받침 등을 운반하는 일이었다(민 3:36, 37;4:31-33;7:8;10:17).

(주); 족장 아사야 - 그의 이름은 레위 지파의 족보에 기록되었다(6:30). 아사야(Asaiah)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뜻이다.

성 경: [대상15:7]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게르솜 자손 - 게르솜(Gershom)은 레위의 장자이다(6:1). 그는 게르손(Gersho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6:16, 17). 그의 후손들은 성막 문장과 뜰의 휘장 등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았었다(민 3:23-26;4:21-28).

(주); 요엘 - 그는 게르손(게르솜)의 자손 라단의 아들이었다(23:8). 이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자로는 사무엘의 아들 요엘(Joel, 삼상 8:2)을 기억할 수 있다.

성 경: [대상15:8]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엘리사반 자손 - 일명 엘사반(Elzaphan)으로도 불리운 엘리사반(Elizaphan)은 그핫의 넷째 아들인 웃시엘의 아들이다(출 6:22;레 10:4). 그는 광야 시대에 그핫 족속의 족장이었다(민 3:30).

성 경: [대상15:9]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헤브론 자손 - 헤브론(Hebron)은 그핫의 셋째 아들이다(출 6:18;민 3:27). 그는 유다 지파 갈렙의 후손 헤브론(2:42, 43)과는 다른 인물이다.

성 경: [대상15:10]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웃시엘 자손 - 웃시엘(Uzziel)은 그핫의 넷째 아들이다(출 6:18). 한편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5절의 우리엘과 그 형제, 8절의 엘리사반 자손, 9절의 헤브론 자손, 본절의 웃시엘 자손은 모두 그핫 족속에 속한다. 이와같이 예루살렘에 모인 레위인 중 그핫 자손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법궤 운반의 책임이 바로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5절 주석 참조.

(주); 그 형제 - 여기서 '형제'(*, 아흐)란 친형제가 아닌 단순히 같은 족속의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성 경: [대상15:11]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 다윗 왕의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사독(Zadok)과 아비아달(Abiathar) 두 명이 있었다(삼하 15:24). 사독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이며 아비아달은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후손으로서 대제사장 엘리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독은 대제사장의 계보에 기록된 반면(6:1-15) 아비아달은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이는 솔로몬 때에 이르러 아비아달의 제사장직이 박탈되고(왕상 2:27, 35) 사독이 단독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성 경: [대상15:12]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레위 사람의 족장 - 직역하면 '레위인들의 조상들의 족장'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으로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Curtis).

(주); 몸을 성결케 하고 - 제사장들은 성역(聖役)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레 8:12, 13). 이는 거룩한 의식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출 9:10, 14, 15;레 11:44). 이때에 제사장들은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 입으며(창 35:2)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았다(출 19:15). 우리는 이 문맥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에 있어서 최선의 준비를 다하는 다윗 왕의 성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성 경: [대상15:13]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충돌하셨나니 - '전에는'이란 3개월 전 기럇여아림에서 궤를 운반했을 때를 지시한다. 그때에 다윗 왕은 수레로 궤를 옮기다가 웃사(Uzza)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이다(13:1-14). 그런데 그때에 여호와께서 충돌하신 자는 웃사 한 사람인데 다윗은 여기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다고 말하고있다. 다윗이 여기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은 그때의 잘못이 웃사 개인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수행하던 모든 레위인들에게 있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주);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여기서 '구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는 (1) '주의하여 구하다'는 뜻(신 22:2), (2) '출입하다'는 뜻(대하 1:5)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돌보다'는 뜻(신 11:12)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저를 돌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저'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리킨다. 즉 본절은 3개월 전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규례(민 4:15)에 따라 운반하지 아니한 것을 의미한다.

성 경: [대상15:14,15]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

(주); 채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 여기서 '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타'(*)는 '막대기'(Pole)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막대기는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즉 레위인들은 성막의 성물(聖物)들을 운반할 때에는 반드시 그것들을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만 했었다(출 25:13;민 4:10,12). 그것은 물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물에 손을 댐으로써 부정을 입히는 것을 막기위한 조처였다. 본 문맥에서 레위인들은 이와 같은 율법 조항에 따라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5:16]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레위 사람의 어른들 - 이들은 5-10절에 소개된 6명의 레위인 족장들을 가리킨다.

(주);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 여기서 '그 형제'란 같은 지파 사람들, 곧 레위인들을 말하며 '노래하는 자'는 '찬양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윗 왕이 이들을 구별하여 세운 것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성전(聖殿) 찬송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주); 비파와 수금과 제금 - 역대기에서 이 세 악기는 종종 함께 언급되었다(28절;13:8;16:5;대하 5:12;29:25;느 12:27). 이 중 '비파'에 해당하는 '네벧'(*)은 현악기인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악기의 현이 12개였다고 증거하고 있다(Antiq. XII. 3). 이 악기는 주로 종교 의식 때에 사용되었으며(20, 28절;16:5;25:1, 6;대하 5:12;시 33:2;57:8;71:22;81:2;92:1-3;108:2 등) 세속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경우는 성경에서 단지 세 번 나타난다(사 5:12;14:11;암 5:23). 다음으로'수금'에 해당하는 '킨노르'(*) 역시 현악기이다. 이 악기는 모든 악기 중가장 고귀한 악기로 간주되었으며 손가락이나 채로 연주되었다. 그 현의 수는 작게는 3개, 많게는 12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였다. 이 악기는 또한 귀족 계급의 악기였기 때문에 종종 은이나 상아로 만들어지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금'에 해당하는 '므칠타임'(*)은 한 쌍의 심벌즈(Cymbals)를 의미한다. 한편 이밖에도 성경에는 여러 악기들이 언급되어 있으니 이제 이를 간략히 도표로 나타내어 보면 다음과같다.

악기 번역 구절 용도 사용자 기타

피아몬 방울 출28:33 대제사장의 지성소 대제사장

출입시 사용,경계의

목적도 내포됨

므칠로트 방울 슥14:20 말의 가스파에 부착

므칠타임 (공동) 대상25:1 제의 중에 사용 제사장

바라

(개역)

제금

할 릴 피리 삼상10:5 제의 중에 사용 대중들

저 사5:12

렘48:36

쇼파르 (공동) 대상15:28 제의 중에 사용 레위인 신호용 악기경고,

대하15:14 파문을 뜻함

네벨, 비파, 시92:1-3; 제의 중에 사용 귀족계급 모든 악기 중 가장

킨노르 거문고, 150:3; 다윗,레위 고귀한 것으로 불

수금, 사23:16 인 림

칠현금,

십현금

성 경: [대상15:17]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헤만...아삽...에단 - 이 세람은 다윗 왕에 의해 임명된 찬양대장들이다. 이들의 족보는 본서 6장에 소개되어 있다(6:31-48). 특히 헤만(Heman)은 모든 찬양대를 지휘했으며 아삽(Asaph)은 헤만의 우편에서, 에단(Ethan)은 헤만의 좌편에서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6:39, 44). 한편, 이들의 족보에 따르면, 헤만은 그핫의 자손이고(6:33) 아삽은 게르손의 자손이며(6:39) 에단은 본절에 나타나 있는 대로 므라리의 자손임을 알수 있다(6:44).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5:18]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그 다음으로 - 이는 곧 헤만, 아삽, 에단의 지휘를 받는 '둘째 계급'을 지시하는 말이다(Lange, Keil). 본절에 소개된 이들은 20, 21절에서 그들의 역할에 따라 다시 분류된다.

(주); 벤 - 이는 분명히 필사자의 착오로 기록된 것이다. 왜냐하면 (1) '벤'이란 이름이 이들을 분류별로 다시 소개한 구절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또한 구약에서 '벤'(*, '아들'이란 뜻)이 일개인의 고유 이름으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없었음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O. Zockler).

(주); 문지기 오벧에돔 - 그는 3개월 동안 여호와의 궤를 지킨 자이며 문지기 직분 외에도 수금을 타는 직분을 수행하였던 자이다(21절). 한편, 21절에는 오벧에돔, 여이엘 다음에 아사시야가 수금을 타는 자로 소개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본절에서 아사시야가 실수에 의해 생략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제 2의 계급에 해당하는 악사들은 모두 14명이었다고 하겠다(Lange).

성 경: [대상15:19]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본절에서부터 21절까지에서는 위에 소개된 악사들(17, 18절)이 다시 세 분류로 분류되고 있다.

(주);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 세 부류 중 첫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놋으로 만든 제금(심벌즈)을 쳤는데 이들이 이처럼 놋제금을 친 것은 곡의 음조나 박자를 조절하는 등 전체 찬양대를 지휘하기 위함이었다(Curtis,Keil).

성 경: [대상15:20]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아시엘 - 두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여덟 사람 중 한 사람인 '아시엘'(*)은 18절의 '야아시엘'(*)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시엘'은 '야아시엘'의 단축형이기 때문이다(Payne).

(주); 비파를 타서 여창에 맞추는 자요 - 본절에 언급된 여덟 사람은 모두 여창(女唱)에 맞추어 '비파'(*, 네벧)를 연주하는 자였다. 그런데 여기서 '여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못'(*)은 본래 '젊은 여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창에 맞추었다'는 말은 소프라노의 음조로 연주했음을 의미한다(Keil, Curtis,Lange). 시 46편은 바로 이러한 기법으로 연주된 대표적인 시이다.

성 경: [대상15:21]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 세번째 부류의 레위인들은 여덟째 음에 맞추어 '수금'(*, 킨노르)을 연주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여덟째음'(*, 스미닛)이란 베이스의 음역을 의미하는 말이다(Curtis, Keil). 시 6편은 바로 이 '스미닛' 기법에 따라 부르도록 되어 있던 시이다. 한편, 여기서 '인도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차흐'(*)는 '감독하다'는 뜻인데 본 문맥에서는 음악적 용어로서 '지휘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TWOT, Keil, Curtis; 시6:1;12:1). 그리고 이 동사의 주체는 본절에 소개된 제 3부류의 레위인들 뿐만 아니라 20절에 소개된 제 2부류의 레위인들까지도 포함된다(Keil). 따라서 본절과 20절에 소개된 모든 악사들은 헤만, 아삽, 에단의 지시를 받아 부문별로 찬양대를 지휘한 자들이었다고 하겠다.

성 경: [대상15:22]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가르치는 자요 - 본절에서 레위 사람의 족장으로 소개된 그나냐(Chenanaiah)는 음악을 주관하는 자로 나타나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본절에 두 번이나 언급되고 있는 '노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맛사'(*, 원형은 '나사' *, 임)는 본래 '들어올리다'는 뜻이다. 물론 이 단어가 간혹 '목청을 높여 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삼하 3:32;사 52:8) 이 말을 노래하는 것과 관련시키기에는 용례가 너무 희박하다. 오히려 구약에서 이 용어는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거나 옮긴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레위 자손들이 언약궤를 메는 것을 가리킬 때에 이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다(신 31:9, 25;수 3:3, 8, 14, 15;4:9, 16, 18;8:33 등). 이렇게 볼때, 본절의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는 옳지 않다. 대신 본절을 옳게 직역하자면, '옮기는 레위인들의 두목 그나냐는 익숙함으로 옮기는 일을 가르쳤더라'가 된다(Keil, Payne, Curtis, Lange). 이러한 해석은 그나냐가 예배하는 일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외부적인 일, 즉 '이스라엘 바깥 일'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 있는 26:29의 내용과도 일치한다(Payne).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에 근거할 때, 그나냐는 언약궤를 옮기는 직책을 맡은 레위인(고핫 자손들)들의 족장(두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Keil &Delitzsch Vol. III, pp.204f). 한편, '익숙하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빈'(*)은 '이해하다', '식별하다'는 뜻이다. 이는 그나냐가 여호와의 율법을 환히 알고있었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말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 같은 이해력은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단순히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단 2:21). 실상 언약궤는 아벡 전투(삼상 4장) 이후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13장) 기럇여아림에서 무려 70여년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경험을 통해 언약궤 운반에 관한 율법을 익혔던 사람은 그 당시 아무도 없었다.

성 경: [대상15:23]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베레갸 - '여호와께서 축복하심'이란 뜻이다. 그는 아삽의 선조인 시므아의 아들 베레갸(Berechiah)와는 구별된다(6:39).

(주);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 이들은 궤를 옮기는 자들 가운데 속한 한 조(組)로서 아무도 법궤를 만지거나 그것에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궤 앞에서 지키는 자들이었다.

성 경: [대상15:24]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언약궤 운송을 위한 행렬]

(주);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 언약궤가 이동할 때 일곱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던 것은 율법에 명시된 바를 따른 것이었다(수 6:4;민 10:2, 8). 그리고 이때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연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출 19:16). 한편 여기서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초츠라'(*)는 은으로 만든 나팔을 말하는데(민 10:2) 그것은 입구가 나팔꽃 모양으로 퍼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물(聖物)로 간주되었다(대하 15:14;20:28;29:26, 27;스 3:10;느 12:35, 41).

(주);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더라 - 이 두 사람의 직무는 23절의 베레갸, 엘가나와 같은 직무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여기서의 오벧에돔(Obed-edom)은 3개월 동안 궤를 지켰던 고핫 자손 오벧에돔(18, 21절;13:13;26:1-4)과는 다른 인물이다. 왜냐하면 3개월 동안 언약궤를 지켰던 오벧에돔은 수금을 타는 악사로 21절에 이미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절의 오벧에돔은 16:38에서 여두둔(에단)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다. 에단은 므라리 자손이므로(6:44) 그의 아들 오벧에돔은 그핫 자손인 오벧에돔과 동일 인물일 수가 없는 것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15:25]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운송되는 언약궤]

(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들로서 법궤 운반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한편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른 법궤로 인하여 그 집에 큰 축복이 임했다는 소식(삼하 6:11)은 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이에 힘을 얻어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1-3절)은 이제 법궤를 운반해 오는 일만 남았던 것이다.

성 경: [대상15:26]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운송되는 언약궤]

(주);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 이는 하나님께서 지난번 웃사를 죽이심 같이(13:9, 10) 레위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는 말이다.

(주);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 병행 구절인 삼하 6:13과 조화시켜 보면, 궤를 멘 레위인들이 무사히 여섯 걸음을 행한 후에 무리들이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하 6:13에서는 다윗이 '소와 살진 것'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나타나 있고 본절에서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제물로 바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삼하 6:13의 제물은 출발하기 직전에 바쳐드린 것이며 본절에서의 제물은 사역을 마친 후에 바쳐드린 것이라고 해석하였다(Keil,Lange, Zockler). 그러나 이는 옳은 해석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 문맥은 분명히 사역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 결코 사역을 마친 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역을 마친 후에 드린 제사에 대해서는 16:1에서 특별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양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하 6:13에서의 제물은 다윗 왕이 개인적으로 드린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본절에서의 제물은 무리들, 곧 장로들과 천부장들과 따르는 무리들이 함께 드린 것으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삼하 6:13에서의 제물의 규모는 적은 것으로 나타나 있고 본절에서의 제물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많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Curtis, Barnes).

성 경: [대상15:27]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운송되는 언약궤]

(주); 노래하는 자와 그 두목 그나냐 -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여기서 '노래하는 자'는 잘못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맛사'(*)는 '들어올리는 자' 또는 '옮기는 자'라는 뜻으로 언약궤를 운반하는 직책을 맡은 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2절 주석 참조.

(주);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 세마포(細麻布)는 삼(hemp) 또는 아마(linen)에서 뽑은 아주 고운 실로 짠 베를 가리킨다. 구약 시대 당시 이 세마포로 만든 옷은 대개 성직(聖職)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입었다(출 28:6;삼상 2:18;22:18). 본절에서도 레위인, 그나냐, 찬양 대원들은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옷을 입은 것이다.

(주);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 에봇(ephod)은 앞치마같이 생긴 일종의 겉옷이다. 한편 다윗이 입은 베 에봇은 제사장적 신분을 나타내는 간편한 옷으로서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소매가 없는 겉옷인 대제사장의 에봇과는 다른 것이었다. 출 28:4 주석 참조. 그런데 레위인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었던 다윗 왕이 이 옷을 입은 것은 아마도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적 왕으로서 하나님의 보좌(궤)를 정성껏 모셔오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는 병행 구절인 삼하 6:14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5:28]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운송되는 언약궤]

(주); 이스라엘 무리 - 원문상으로는 '온 이스라엘'이다.

(주); 메어 올렸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림'(*)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다'는 뜻의 동사 '알라'(*)의 사역형 능동태로서 '올라가게 하다'라는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온 이스라엘이 저지대에서 높은 고지대인 예루살렘에로 언약를 옮긴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 하겠다.

성 경: [대상15:29]

주제1: [성공적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제2: [다윗을 경멸하는 미갈]

(주); 사울의 딸 미갈이...심중에 업신여겼더라 - 다윗 왕의 아내 미갈(Michal)은 다윗왕이 체신없이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업신여겼다. 그러나 미갈이 다윗 왕을 업신여긴 근본적인 이유는 그녀가 다윗 성에 입성하고 있던 하나님의 궤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의 궤의 입성(入城)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윗 왕의 행동을 한낱 체신없는 장난으로 볼 수 밖에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의 시각은 하나님의 궤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사울 왕의 사상(13:3)의 영향이었다. 따라서 본서 저자는 비록 미갈이 다윗 왕의 아내이지만 특별히 그녀를 '사울 왕의 딸'이라고 본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갈은 이처럼 다윗 왕을 업신여긴 행동으로 인해 죽는 날까지 자식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삼하 6:23).

성 경: [대상16:1]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제사]

1-3절의 내용은 삼하 6:17-19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곧 법궤를 예루살렘에 무사히 안치한 후 다윗이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환희와 기쁨의 감사제를 드리는 장면이다.

(주);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 여기서 '장막'은 다윗 왕이 그의 왕궁을 지을 때 그 곁에 함께 지은 언약궤를 모실 처소를 가리킨다. 15:1 주석 참조. 그리고 '가운데'란 바로 그 장막의 중앙, 곧 지성소(至聖所)를 일컫는 말이다(Keil).

(주);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 이 제사는 다윗 왕이 직접 드린 것이 아니라 그가 제사장들에게 지시해서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만이 희생(犧牲) 제물을 제단 위에 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레 1:5;3:2, 5). 아무튼 다윗이 이들을 통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의 궤를 모신 장막을 성별하는 일종의 봉헌식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Keil, Lange). 한편, 번제(burnt offerings)는 하나님께 헌신을 표하는 제사였으며 이어 드려지는 화목제(peace offerings)는 하나님과의 교통(交通)을 상징하는 제사였다. 이 중 화목 제물은 제사를 드리고 난 이후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함께 먹었는데 이와같이 식사하는 의식은 제물을 드린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되었음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레 7:15).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참조.

성 경: [대상16:2]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제사]

(주); 다윗이...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 제사를 드린 후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본래 제사장의 임무 중 하나였다(민 6:23). 따라서 다윗은 제사 집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제사장을 통하여 백성들을 축복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다윗 왕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제사장적 왕의 위치에서 백성을 축복하였다고 이해해야 한다. 15:2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6:3]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제사]

(주);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 이 음식들은 모두 제사때 사용되었던 음식들이다(출 29:23;레 8:26;호 3:1). 그런데 다윗이 이 음식들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 준 것은 화목 제물의 규율에 따른 것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화목 제물을 드리고 난 이후에 그 제물을 제사 참여자들로 하여금 함께 나누어 먹도록 규정하셨던 것이다(레 7:15-18).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신 후 화목 제물을 함께 나눈 데 따르는 의의에 대해서는 삼하 6: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6:4]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찬양]

본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사무엘하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으로서 다윗 왕이 악사들을 임명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고 기타 직무자들을 세우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 문맥에서는 레위인에 대한 본서 기자의 깊은 관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주);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 이는 다윗 왕이 다시금 악사(樂士)들을 임명하는 내용이다. 앞서(15:16-21) 다윗 왕이 악사들을 세웠던 것은 일시적으로 법궤 운반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금 악사들을 임명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항상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37절). 한편, 대하 29:25에 의하면, 다윗 왕의 이번 임명은 그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지자 나단과 갓을 통해 절달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다윗 왕의 임명은 이스라엘의 예배 역사에 있어서 상당한 발전과 진보를 뜻하는 것이었다.

(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 여기서 '칭송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기억하다', '회상하다'라는 뜻이다(창 40:14;출 20:24;왕상17:18;). 이는 곧 악사들의 중요한 임무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은혜로우신 역사들을 노래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그 같은 내용은 바로 시편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대부분의 시들은 과거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역사들을 노래한 후 그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음으로 '감사하다'에 해당하는 '야다'(*)는 하나님께 고백하는 감사의 의미를 내포한 노래를 가리킨다. 그리고 '찬양하다'에 해당하는 '할랄'(*)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큰소리로 화답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대상16:5]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찬양]

(주); 그 두목은 아삽이요 - 지금까지는 찬양대의 최고 두목으로 그핫 자손 헤만(Heman)이 언급되어 왔다(6:33;15:17).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는 특이하게 아삽(Asaph)이 두목으로 언급되고 있다. 한편 대하 29:25에 의하면 다윗 왕의 이번 임명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다윗 왕의 의사에 따라 헤만이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왔으나 이번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삽으로 그 두목이 바뀐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Payne). 아니면 여기서 아삽은 3인의 성가대 대장(헤만,아삽, 에단) 중 한 사람으로서 언급되고 있는 것일 것이다. 6:39 주석 및 15:17 주석참조.

(주); 스가랴와...여이엘이라 - 본 명단에 의하면 지난번 법궤 운반시 임명되었던 14명의 악사들(15:18-21) 중 단지 9명만이 다시금 악사로 임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 비파와 수금...제금 - 15:16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6:6]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찬양]

(주);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나팔을 부니라 - 역시 지난번 법궤 운반시 나팔 부는 자로 임명되었던 7명의 제사장들 중 한 사람인 브나야(15:24)와 전혀 새로운 인물인 야하시엘만이 새로 임명되었다. 나머지 여섯 사람들은 아마도 기브온에 있었던 또하나의 성막으로 돌아가 본래의 임무를 계속했을 것이다(39절). 한편, 제사장들은 찬양대의 일원으로 나팔을 불었던 것이 아니고 예배 또는 집회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의 용도로 나팔을 불었다(민 10:1-8).

성 경: [대상16:7]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이하에 나오는 시(詩)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시편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8-22절은 시 105:1-15과 일치하며 23-33절은 시 96편과 34-36절은 시 106:1, 47,48절과 일치한다. 이에 의거해 볼 때 그 시들은 다윗이 지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 여기서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웠다'는 말은 다윗이 자신이 지은 찬송을 그들에게 주어 찬양하게 하였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다윗이 아삽과 그 동역자들에게 노래를 짓도록 명령하였다는 의미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다윗이 왕의 직분에 있으면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솔선 수범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위선'이라는 말은 '우선', '맨처음으로'란 말로서 8절 이하에 나오는 찬양의 이유를 밝혀 주는 것이다. 즉 다윗은 법궤가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안치된 데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그의 선하심 및 이스라엘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을 찬양한 것이다. 이같이 다윗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할 줄 아는 신앙 인물이었으니 그의 모습을 본받아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당연히 좇아야 할 것이다(살전 5:18;히 13:15).

성 경: [대상16:8]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 이는 '그 이름을 선포하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Briggs).

(주);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 여기서 '그 행사'란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들을 가리킨다. 이에는 물론 하나님의 기사(寄事)도 포함된다(9절). 그런데 이를 만민 중에 알리라고 한 것은 곧 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끔 하기 위함이다.

성 경: [대상16:9]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 구약의 용법들을 살펴볼 때 '말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아흐'(*)는 하나님의 일들을 '큰 소리로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기사'(寄事)에 해당하는 '팔라'(*)는 '경이로운 일' 또는 '기적'이란 뜻으로 '이적'(異蹟)과 같은 말이다. 신 4:33, 34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6:10]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 성호를 자랑하라 - 여기서 '자랑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트할레루'(*)는 '깨끗하다', '드러나게 하다'는 뜻의 '할랄'(*)의 재귀형으로'모든 더러움에서 구별하라'(Curtis), 또는 하나님과 그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는 적극적 신앙에 대한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그분의 존재와 권능과 주권을 시인하고 홀로 기뻐하는 데서 머무르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그분의 성호(聖號)를 자랑함으로써 성도들간에 큰 기쁨을 나눌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마땅하다(마 5:13, 14). 만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자가 주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 못한다면, 그의 신앙은 아직 미약한 것이요, 그는 구원의 은혜를 뼈속 깊이 체험하지 못한 셈이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바울 사도의 고백(롬 1:16)을 기억하여 받은 바 은혜를 담대히, 그리고 큰 기쁨으로 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 경: [대상16:11]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구할지어다 - 여호와를 삶의 제일 원리로 삼고 그를 사랑하여 섬기라고 요구하고 있는 구절이다(신 6:5;마 22:37). 여기서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시며 능력의 근원이 되시기를 간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얼굴을 항상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동행하시기를 간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간구에는 먼저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분의 말씀대로 신실되이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선행(先行)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성 경: [대상16:12,13]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야곱의 자손 너희는...기억할지어다 -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어떠한 종교적 천재의 추상적 명상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 과정을 살펴보는 것과 직결된다. (2) 경험보다 더 나은 스승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 삶 속에서 계시해 왔으며, 순종에는 축복으로 불순종에는 저주로 응답하셨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명쾌한 이해는 현재의 결단과 미래의 예측을 위한 간접 경험으로서 작용하기 마련이다.

(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 '판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율법의 규정'을 의미하는 말이다(출 15:25;레 5:10;7:16;사 42:4). 그러므로 여기서 '그 입의 판단'이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씀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기억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카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1) 단순히 내적인 활동으로서 '명상하다', 또는 '생각하다'는 뜻이다(욥21:6, 7;시 74:22, 23;137:1). (2) 회개(겔 6:9), 계명의 준수(민 15:40) 등 의로운 행위를 초래하는 원인으로서의 '기억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2)번의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와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의로운 목적을 위하여 과거의 여호와의 사역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성 경: [대상16:14]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 이는 곧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 또는 통치하에 있다는 뜻이다(Curtis). 하나님께서는 홀로 주권적이며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이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바로 그 같은 하나님에게 항상 의존하고 있다. 즉 천하 만물은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와 지배하에 그 생명을 보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느 9:6;시 63:7;행 17:28).

성 경: [대상16:15]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약속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 약속의 내용은 18절에 나와 있다. 한편 여기서 '천대에 명하신 말씀'이란 '영원한 약속'이란 말로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 자손들과도 계속 유지되는 영원한 언약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17절;창17:7;갈 3:29).

성 경: [대상16:16]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 창 15, 17장 및 창 22:16-18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리킨다. 거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주); 이삭에게 하신 맹세 - 창 26:2-5에 나와 있는 말씀으로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과 동일하다.

성 경: [대상16:17]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통해 얻은 언약의 말씀으로서 창28:13-15에 나와 있다. 이 역시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주);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 - 여기서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새 이름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원한 언약'은 그처럼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개명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을 가리키는바 창 35:10-12에 나와 있다. 한편, 본장에서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조상들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촉구함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대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성실히 인도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Lange).

성 경: [대상16:18]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 이 약속은 위의 언약들에 나타나고 있는 공통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족장들 당시에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다윗 왕 때에 완전히 성취되었다. 즉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터전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어졌으며(창 15:18-21;35:12), 여호수아 때에 이르러 마침내 그 약속은 성취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정복 이후에도 가나안 땅 내부에는 여러 원주민들이 잔존하였고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암몬, 모압 등 이방 세력의 수중에 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가나안의 온 지경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관할하에 들게 되었던 것이다(18:1-20:8).

성 경: [대상16:19,20]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너희 인수가 적어서...유리하였도다 - 이는 아브라함, 이삭과 같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과거 이방 생활을 하였던 것을 시적(詩的)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아브라함, 이삭 등은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애굽과 그랄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던 적이 있다(창 12:11-20;20:1-18;26:6-11).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벧전 2:11).

성 경: [대상16:21]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 사실 하나님의 인도하에 과거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에게서 해를 당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이삭은 그랄 사람들에게, 야곱은 에서와 라반에게 각기 해를 당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특별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경륜(經綸) 때문이었다.

(주);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 이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범하려 한 애굽 왕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사건(창 12:17)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신 사건(창 20:3)을 가리킨다. 당시 아브라함이 사라를 가리켜 '자기 누이'라 한 탓에 사라는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욕을 당할 뻔하였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간섭하시사 아브라함과 사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6:22]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나의 기름 부은 자 - 아브라함과 이삭 등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란 호칭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구별되었다는 점에서 다윗은 본절에서 이들을 '기름 부은 자'로 불렀을 것이다(Payne).

(주); 나의 선지자 -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으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을 때 '선지자'라는 칭호를 들었다(창 20:7). 또한 이삭은 임종 직전 야곱에게 예언적인 축도를 하였으며(창 27:27-29) 야곱도 그의 아들들에게 역시 예언적인 축도를 하였다(창 48:19;49:1).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이방 나라에 대해 선지자요 제사장 나라이다(벧전 2:9). 그리고 이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에 따라 선택된 자로서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아래 있을 뿐 아니라 온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마 5:14;엡 1:4;유 1:24).

성 경: [대상16:23]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 이 말 속에는 여호와가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시 96:10;97:1;99:1, Payne). 즉, 여호와께서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므로 온 땅은 마땅히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고 다윗 왕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온 땅'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서는 '열방'(24절), '만민'(24절), '만방의 족속들'(28절) 등을 들 수 있다.

성 경: [대상16:24]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그 영광을 열방 중에 - 본시에는 이방 세계에 대한 다윗의 특별한 관심이 나타나있다. 즉 열방, 만민, 만방(26절), 만방의 족속들(28절), 세계(30절) 등은 모두 이방세계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다윗 왕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놀라운 사역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때 다윗 왕은 그리스도의 전우주적 구원 사역을 내다보며 본시를 작성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 같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온 세계의 복음화를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사 9:1,2).

성 경: [대상16:25,26]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 여기서 '헛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릴'(*)은 '무가치한 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란 뜻으로 대개 우상에게 적용되는 용어이다(사 2:20;10:10, 11;31:7;렘 14:14). 신 4:1-40 강해, '원어의 뜻으로 살펴본 우상 개념' 참조. 다윗 왕은 여기서 만방의 모든 우상들이 그것의 숭배자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행한 일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반면,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늘을 지으신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다윗 왕은 이 세상의 우상과 여호와를 크게 대조시킨 후 이방 사람들을 여호와 경배에로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6:27]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 여기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콤'(*)은 본래 '장소', '공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궤를 모신 예루살렘의 장막(1절)을 지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Curtis, Zockler). 한편, 본절의 인용 구절인 시 96:6에는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베미크다쇼)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성소'(*, 카다쉬)라는 말 대신에 '처소'(*, 마콤)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는 아직껏 다윗 왕이 예비한 장막이 당시엔 성소(성전)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Payne, Keil). 이후 다윗 왕은 줄곧 하나님의 완전한 성소를 갖추기 위해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21장).

성 경: [대상16:28]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신 후(1-3절) 이방의 족속들을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초대하는 말이다. 즉 다윗은 본장에서 이사야서(사 55장)의 웅장한 필체를 연상시키는 말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세계 만민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이방 세계에 대해서는 복음에의 초대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는 선교 명령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 경: [대상16:29]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 여기서 '그 앞'이란 '그의 얼굴 앞'이란 뜻으로 하나님 앞을 의미하는데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궤가 놓인 장막을 의미한다(1절). 아무튼 하나님의 궤가 다윗 성에 마련된 장막 안에 옮겨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여 계신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민하'(*)는 '소제(素祭)' 또는 '제물'이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나(출 30:9;레 2:1;삼상 26:19) 새로운 왕에게 복종과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바치던 '공물(貢物)'이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되었다(왕상 4:21;왕하 8:8, 9;17:4;20:12;사 39:1). 그런데 본 문맥에서는 온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사상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므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표시인 예물을 그 앞에 가져오도록 이방인들에게 촉구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주);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 '아름답고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드랏 코데쉬'(*)는 '거룩한 장식품'이란 뜻으로 위의 '예물'에 상응하는 말이다(Payne). 여기서 이 장식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었으므로 '거룩한'이란 수식어가 붙여지게 된 것이다. 한편, '경배할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하'(*)는 '머리를 숙이다' '엎드리다'라는 뜻으로(창 23:7;레26:1)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복종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실 겉으로는 공물을 바치고 복종을 맹세하는 듯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다른 뜻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니 다윗은 그와 달리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진정으로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신 6:5).

성 경: [대상16:30]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 여기서 '떨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훌'(*)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1) 춤추는 행위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빙빙 돌다'는 뜻과 (2) '두려워하다', '고통을 당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단어의 의미상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 문맥이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경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전자의 의미를 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렇게 볼 때 본절은 다윗 왕이 온 땅에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에게 여호와를 경배하는 중에 기쁨의 춤을 출 것을 권면하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이어지는 구절과도 조화를 이룬다.

(주);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하는도다 - '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은 대기와 하늘을 포함한 지구를 가리키기도 하며(시 89:12;삼하 22:16) 때로는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inhabitable world, 사 13:11;14:17) 또는 전 지상에 살고 있는 주민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와같은 여러 용례들을 종합해 볼 때 여기서 '세계'란 지상의 모든 주민들과 나라들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세계가 굳게 선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온 세계가 평안과 안전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굳게 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쿤'(*)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게 되는 평안과 안전을 의미한다(시 37:23;90:17;112:7;잠 16:9). 또한 이 세계가 흔들리지 못한다는 말은 이 세계에 죽음과 파멸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여기서 '흔들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트'(*)는 '죽다', '파괴하다'라는 뜻으로 본절은 이 세계에서 죽음과 파괴가 사라질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 때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이니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상 마지막때의 일이다(계 21, 22장).

성 경: [대상16:31]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 본절에는 만물이 하나님께로 나서 계속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고 하는 히브리적 세계관이 시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구차한 설명이나 추상적 관념을 나열하지 아니하고 구체적 자연 대상을 간략한 대구의 형식으로 노래함으로 히브리시의 전형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 이는 이 세계에 임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오직 여호와의 통치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세계 평안의 제 1원인으로서의 여호와의 통치 사상은 본시 뿐만 아니라 본서 전체, 아니 역대기 전체의 주제이다. 본서 서론, '주제 및 특징' 참조. 그리고 이 같은 주제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궤를 다윗 성에 모셔온 사건(1절;15장)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다윗 왕은 하나님의 궤의 입성을 단순한 종교적 의식으로만 보지 않고 만왕의 왕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중심부 예루살렘에 임재(臨在)하신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의 통치가 인간 세계에 가장 완전한 질서와 평안을 가져온다는 믿음 안에서 여호와의 통치가 온 세계에 임하게 될 메시야(Messiah) 시대를 바라보며 본시를 기술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6:32]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 여기서 '외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암'(*)은 본래 '천둥치다'는 뜻으로 엄청나게 큰소리를 의미한다.

(주);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 여기서 '즐거워할지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츠'(*)는 '매우 기뻐 날뛰다'는 뜻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만물이 소리지르며 기뻐하는 이러한 장면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전우주적(全宇宙的)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종말적 구속 사역은 인간 뿐 아니라 만물까지도 새롭게 하므로 이 모든 만물은 그의 역사하심을 크게 기뻐하는 것이다(엡 1:10).

성 경: [대상16:33]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다 - 이는 곧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인 주의 재림을 의미하는 듯하다(Payne). 그때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기 심판을 받게 될 터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과 상급(賞給)을, 죄인들은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된다(마 16:27;25:31-46).

성 경: [대상16:34]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여호와께 감사하라...영원함이로다 - 이 구절은 시 106:1에서 인용한 구절이다(시107;118;136편). 그런데 이러한 구절은 찬송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많이 사용된 하나의 의례적(儀禮的) 구절이다(스 3:11;시 118:29;렘 33:11). 한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내용이 없는 공허한 사랑이 아니라 직접적인 역사에의 개입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낸 행동적인 사랑이었다. 즉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매순간 하나님께 배은 망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었다.

성 경: [대상16:35]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35, 36절은 시 106:47, 48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주);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 본절은 얼마 전 블레셋 대군을 몰아낸 탓에(14:8-17) 이스라엘 내에 평화가 찾아온 당시의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구절이다(Payne). 혹자는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라는 말에 근거하여 본절은 바벨론 포로 시대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나(Curtis) 이러한 주장은 본시의 다윗 저작을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다. 대신 이미 앞에서 밝힌 대로 본절은 평화가 조성된 다윗 당시의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보아야 한다.

성 경: [대상16:36]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다윗의 감사 찬양]

(주);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 레위인들의 찬양(7절)이 끝나자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 '아멘'(*)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또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즉 다윗 왕의 시들은 모든 백성들은 그의 모든 시의 내용에 단지 입술로만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찬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비단 찬양이나 기도 때 뿐 아니라 자신의 전생애를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께 이러한 아멘 생활을 하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본장 7-36절강해, '아멘의 의미' 참조.

성 경: [대상16:37]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 아삽(Asaph) 및 그 동료들은 성전에서 항상 찬양하는 일을 맡아 보도록 세움 받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날마다 그 일대로 - 이는 직역하면, '그 날에는 그 날의 일에 따라서'라는 뜻이다. 이는 곧 '각 날에 드려지는 예배에 따라서'라는 의미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16:38]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오벧에돔과 그 형제 육십 팔 인 - 여기서의 오벧에돔(Obed-edom)은 지난 3개월간 하나님의 궤를 모셨던 인물이다(13:13, 14). 그는 문지기의 직분과 함께 악사의 직분을 수행했었다. 15:18 주석 참조.

(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 - 여기서의 오벧에돔은 바로 앞에 소개된 오벧에돔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오벧에돔은 여두둔(Jeduthun)의 아들로 소개되어 있는데 여두둔은 므라리의 후손인 반면, 앞에서 소개된 오벧에돔은 그핫의 후손이기 때문이다(26:1, 4).

성 경: [대상16:39]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제사장 사독과...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 이는 다윗 시대에 성막(tabernacle)이 두 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새로 설치한 장막이다(1절). 그리고 다른 하나는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만들었던 것으로(출 40장) 당시 기브온에 있었다. 이 기브온의 성막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성소로 계속 존재하였다(대하 1:13;5:5). 따라서 다윗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대제사장이 둘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사독(Zadok)과 아비아달(Abiathar)이었는데 사독은 기브온의 성막을 관할하였고 아비아달은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궤를 모셔놓은 성막을 관할하였다(18:16). 이에 관해서는 수 18:1-7 강해, '성막의 역사'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6:40]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항상 조석으로 번제단 위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 조석(朝夕)으로 번제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 것이었다(출 29:38, 39;민 28:3, 4). 즉 번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수소, 수염소, 수양 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와 같은 제물로써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번 드리게 되어 있었다.

(주);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대로 -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犧牲) 제사 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모든 의무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시하는 구절이다(Keil). 이와 관련해서는 민 8:14-22 강해,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6:41]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저희와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그 남아 택함을 받고 녹명된 자 - 이들은 모두 기브온의 성막에서 사독과 함께 봉사할 자들이다. 이들 모두는 이전에 아삽 및 그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일에 봉사하였으나(15:17, 18) 성막이 두 장소에 있게 되므로 부득이하게 나뉘게 된 것이다. 즉 여기서 '그 남아 택함을 받고 녹명된 자'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사역을 위해 선발되었다가 아삽의 찬양대에 선발되지 못했던 나머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5절 주석 참조.

(주); 여호와의 자비하심이 영원함을 인하여 감사하게 하였고 - 여기서 '자비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사하게 하였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히 '감사하다'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속성이나 사역에 대한 인간의 선포나 선언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찬양의 개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Westermann).이와 관련해서는 34절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6:42]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주); 나팔 - 나팔은 다른 악기들과 같이 연주용 악기였다기보다는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악기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15:24 주석 참조.

(주); 여두둔의 아들 - 그는 38절에 소개된 오벧에돔이다.

성 경: [대상16:43]

주제1: [지속되는 다윗 왕의 성역(聖役)]

주제2: [제사 직제 장비]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마친 후 백성들이 만족하며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즉 오늘날 교회 생활에만 치중하는 자들은 자칫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인 것이다(막 7:8-13).

(주); 다윗도...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 - 본절은 삼하 6:20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삼하에서는 본절 이후에 다윗 왕과 그의 아내 미갈(Michal)이 언쟁하는 장면을 기록한 반면 본서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기록하지 않은 채 본장을 끝맺고 있다. 아마도 본서 저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다윗 왕조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가정 문제로 보여진 다윗 왕과 미갈 사이의 다툼을 생략해 버렸을 것이다. 한편, 다윗 왕이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했다는 말은 그가 앞에서 백성들에게 축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적 왕'으로서 그의 가족들에게축복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1]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을 소망하는 다윗]

본장은 약간의 어휘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내용상 근본적으로 삼하 7장과 일치하고 있다. 즉 본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言約)이다. 한편 본장에 기술된 이 다윗 언약은 사실상 다윗 말기에 주어진 것이다. 삼하 7:1 주석 참조. 그런데 본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 왕의 남다른 열심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옮긴 사건(16장) 다음에 본장을 배치하고 있다. 즉 본장에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예배와 경배를 더욱더 촉진시키고자 한 다윗의 열심이 전장(前章)에 이어 계속 나타나고있는 것이다.

(주);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 여기서의 궁실은 15:1에 나오는 왕궁과는 달리 다윗이 두로 왕 히람(Hiram)의 원조로 지은 백향목 궁을 의미한다(14:1). 왜냐하면 이때는 다윗이 두로의 히람 왕과 화친을 맺었던 다윗 통치 말기이기 때문이다. 삼하 7:1에는'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피하사'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어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 15:1 주석 참조.

(주);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 여기서 '휘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리아'(*)는 궁극적으로 성막을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막은 꼬아서 만든 아마포와 푸른색과 자주빛 그리고 주홍색의 직물을 엮어서 만든 열 폭의 휘장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출 26:1). 한편 본절은 다윗이 이처럼 천으로 덮여 있는 성막 속에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 했음을 보여 준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성소보다 자신의 거처가 더 화려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견딜 수 없어한 것이다.

성 경: [대상17:2]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을 소망하는 다윗]

(주); 나단 - 나단(Nathan)이란 이름의 뜻은 '선물'이다. 그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양대(代)에 걸쳐 활약한 선지자로서 지난번 다윗이 악사들을 임명할 때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었다(대하 29:25). 또한 그는 본서 기록에 있어서 자료가 된 다윗과 솔로몬 왕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29:29;대하 9:29). 그밖에도 그는 다윗 왕의 간음사건, 솔로몬 왕의 등극 등에 깊이 관여한 하나님의 신실된 일꾼이었다(삼하 12:1-15;왕상 1:8-30, 32, 38, 45).

(주);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 이와 같은 나단의 응답은 즉각적이고 사적(私的)인 응답이었을 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받은 응답이 아니었다. 즉, 그는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줄로 여겨 자기 생각에 옳다고 느낀 바를 말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나단은 그날 밤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즉흥적인 응답을 철회하게 되었다(3-15절). 즉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의 선포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데 신중해야 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성 경: [대상17:3]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그 밤에 - 나단이 다윗 왕에게 즉흥적으로 응답했던 그날 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의 그릇된 충언(忠言)을 즉각적으로 시정해 주시기 위하여 신속히 나단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주);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 혹자는 본절을 해석하기를 나단에게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임한 것이라고 하였다(Curtis). 그렇지만 나단이 기도 중에, 즉 깨어 있는 중에 계시의 말씀을 받았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Keil). 이에 대해서는 삼하 7: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4]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 병행 구절인 삼하 7:5에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라는 반문 형식으로 완곡히 거부 의사가 표현되어있다. 반면 본 문맥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다윗의 의도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문맥에서 밝혀질 것이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반대는 성전 건축 자체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다. 다만 그 성전을 건축할 시기와 인물에 대한 반대였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 건축을 반대한 까닭은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22:8). 그것은 분명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자로서의 이미지와는 부합되지 아니한다. 삼하 7: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5]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내가...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이트'(*)는 천막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고정된 거주지, 즉, 영구적인 건축물을 의미한다(창 19:2;33:17;삼하 16:21;욥 17:13;전 12:5).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 볼때 하나님의 궤는 출애굽 시대(B.C. 1446년경) 이래로 솔로몬의 성전 시대(B.C. 959년경)까지 고정된 영구적인 건축물에 있지 않고 천막에 있어 왔던 것이다. 물론 엘리 제사장 때 실로(Shiloh)에 지어진 성소는 고정된 집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지만(삼상 3:3) 그것도 에벤에셀 전투 이후에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다(렘 7:12). 이와같이 하나님의 궤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늘 천막에 거하여 왔다는 사실을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본절에서 다윗 왕의 건축 의도를 반대한 근거를 밝히고 계신다.

(주);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 여기서 장막과 성막은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장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은 단순히 이동식 구조물인 '천막'을 의미한다. 반면 성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칸'(*)은 '자리잡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동사 '솨칸'(*)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이는 하나님의 궤가 자리잡고 있는 장막을 의미한다(출25:9;민 1:50;시 46:5;84:2) 그러나 본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사소한 차이점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두 용어가 모두 '이동용 거처'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까지 '오헬'이든 '미쉬칸'이든 이동식 구조물 가운데 거하여 오셨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하나님의 궤가 고정된 집에서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동식 구조물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비천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을 보좌로 삼으시고 땅을 발등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께서(사66:1) 이동용 천막 가운데 임재하신 것은 순전히 당신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그들과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17:6]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무릇...더불어 행하는 -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할라크'(*)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행하신 권능의 사역을 지시하는 말이다(Lange). 삼하 7:7 주석 참조.

(주);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 여기서 '먹이라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본래 '풀을 뜯기다', '방목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의 주어는 대개 목자, 통치자, 하나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창 37:13;시 23:1;슥 10:2). 그런데 이 동사가 통치자에게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주로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 주는 탁월한 통치적 행위를 가리켰다(겔 34:23;삼하 5:2).

(주); 이스라엘 어느 사사에게...말하였느냐 - 본절에서 '사사'(*, 쉬프테)로 기록되어 있는 말은 평행 구절인 삼하 7:7에서는 '지파'(*, 쉬브테)로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어느 한쪽의 오기(誤記)로 보기도 한다(Bertheau). 그러나 이와 같은 차이점은 내용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사사들은 에브라임, 단, 베냐민 지파 등 일부 지파에서 주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Maurer). 따라서 '어느 사사'와 '어느 지파'는 내용상 상이한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7:7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7]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 본절은 다윗의 소년 시절, 곧 들에서 양을 치던 그의 목동 시절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이다(삼상 16:11-13). 즉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일개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주);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 여기서 '주권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selection)에 의해 높이 세워진 일꾼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이 말은 동사 '나가드'(*)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동사는 본래 '어떤 것을 사람앞에 높이어 눈을 띄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 어근(語根)이 같은 아랍어 명사 '나그둔'(nagdun)은 '고지'(highland)를 뜻한다. 이렇게 볼때 '나기드'란 곧 하나님께서 사람 앞에 높이 세운 일꾼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목동의 신분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나기드'란 용어는 메시야에게 적용되기도 하였다(단 9:25).

성 경: [대상17:8]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 이는 이방의 왕들이 다윗 앞에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이름이 시간을 초월하여 전세계적으로 존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즉 당시 이방의 왕들이 다윗 왕앞에 복종하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일이었다(삼하 5:6-12, 17-25). 때문에 본절을 이러한 사실에만 적용시키려 하는 시도는 무리이다. 반면, 본장은 다윗 왕조의 영원성과 견고성을 그 주제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본절은 다윗의 명성이 역사 전체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드높아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이 같은 약속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즉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심으로써 다윗 왕조의 영원성을 보여주셨고 다윗의 명성을 영원히 존귀하게 하셨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 건축에 반대하시는 문맥에서 이와 같은 약속이 주어졌음을 감안할 때, 비록 다윗이 성전 건축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꺼이 높이시려 하셨음을 잘 알 수 있다(Curtis).

성 경: [대상17:9]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 여기에서 '심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는 본래 '나무를 심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되었을 때 그 의미는 주로 '하나님께서 정착된 거주지를 주신다'이다(렘 24:6;암 9:15).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동안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고는 있었지만 이방인들, 특히 블레셋 사람들의 잦은 침략으로 인해 사실상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여 왔다(삿 13:1;삼상 4, 17, 28-31장). 그러나 이제는 그와같이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완전히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인 것이다(신 12:10-14). 따라서 본절은 지금보다 더욱 완전한 평화의 나라를 조성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12절)을 허용하실 것이라는 의도의 말씀임을 알 수있다.

(주); 다시는 옮기지 않게 하며 - 여기서 '옮기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는 깊은 동요를 의미하는 말로서 '전율하다' '떨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로 번역되어야 옳다(Keil, Lange). 삼하 7:10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10]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 여기서 '집'이란 5절에서 이미 주석한 바있는 '고정된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상 다윗 왕은 이미 백향목 궁에 거하고 있었으므로(1절)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고정된 집을 지어주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여기에 언급된 집은 '나라', 또는 '왕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용어가 14절에서 '나라'라는 말과 함께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Kaiser,Curtis, Payne).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세우실 것을 다윗에게 약속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삼하 7:1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11]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 여기서 다윗의 씨, 곧 아들은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이 말은 다윗의 사후(死後) 다윗 왕조를 대대로 이끌어갈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collective) 의미의 단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통하여 다윗 왕조를 대대로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12-14절) 그렇다면 이 아들은 분명 다윗의 뒤를 잇는 그의 모든 자손들을 가리킬 것이기 때문이다. (2) 이 씨, 곧 아들은 솔로몬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씨에 의해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 건축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12절). (3) 이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씨를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12-14절) 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장본인은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눅1:31-33;행 2:29-31;13:22, 23).

성 경: [대상17:12]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 여기서 '집'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솔로몬에 의해 건축될 성전을 지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본 문맥이 역사적인 다윗 왕조 뿐만 아니라 메시야에 의해 세워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때 궁극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집'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거하실 오늘날의 교회 및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함께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요 1:14;2:19;14:23;고전 6:19;엡 2:21;히 3:6;계21;1-3). 삼하 7:13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13]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 다윗 언약의 극치에 해당하는 본절은 하나님과 다윗 왕조 간의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1) 본절은 다윗 왕조가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아버지가 아들을 낳음과 같이 다윗 왕조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신정 국가임을 나타내보여주고 있는 것이다(Lange, Kaiser). (2) 본절은 아버지와 아들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듯 하나님과 다윗 왕조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사울 왕조와 본질적으로 다른 다윗 왕조의 특성이다(Keil). (3) 본절은아들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하듯 다윗 왕조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영원한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Kaiser).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7:14에서는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는 구절이 첨부되어 있는 반면 본절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 저자가 될 수 있는 대로 다윗 왕조의 영광스러운 면에 초점을 맞추어 본서를 기술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Lange, Curtis).

(주); 네 전에 있던 자 - 이는 곧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다(삼상 15, 16장).

성 경: [대상17:14]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 여기서 '내 집과 내 나라'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구약에서의 다윗 왕조와 함께 신약 시대의 메시야 왕국을 동시에 지시하고 있다(Lange). 이에 관해서는 11절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15]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

(주); 나단이...다윗에게 고하니라 - 누구든 입 밖에 뱉은 말을 취소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왕의 뜻한 바 대로 행하라'는 나단의 간언이(2절)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후 변화된 사실을 읽으며, 하나님께 진실하려는 그의 꿋꿋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사실 상전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의 통치자에게 진실을 들려주는 나단의 강직한 자세는 이미 우리아 사건(삼하12:1-12)에 대한 경고로 잘 증명된 것이었다. 이처럼 주의 부름을 받고 나선 자는 인간적인 생각을 제하고, 주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는 현대 사회의 병폐에 대하여 그 원인과 치유할 수 있는 방법 등에 관해 아낌없는 진단을 내림으로써, 예언자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주); 묵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존'(*)은 무의식 상태에서 꾸는 꿈 '할롬'(*)과는 달리 깨어있는 상태에서 받는 계시를 일컫는 말이다. 나단 선지자는 아마도 밤에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Keil, Lange). 3절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16]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본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지금까지 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감사하는 다윗의 기도 내용이다.

(주);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 여기서 '여호와 앞'이란 곧 '하나님의 궤 앞'을 의미한다. 본서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궤 앞'과 '하나님 앞'이란 단어가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고 있다. 13:8 주석 참조. 한편 '앉아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는 '머무르다', '지체하다'라는 뜻으로 반드시 '앉아 있다'는 뜻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이 말은 다윗 왕이 혹자의 견해처럼 앉아서 기도했음을 나타내는 말(Curtis)이 아니다. 대신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 앞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Lange). 아마도 다윗 왕은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서(창18:22;삼상 1:26) 또는 무릎을 꿇고(왕상 8:54;시 95:6;단 6:10)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주); 여호와 하나님이여...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 다윗 왕은 비천한 자신과 자신의 집을 그토록 높이 올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감사 기도를 시작하고있다. 즉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축복과 놀라운 언약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삼하 7:18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17]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 여기서 '이것'이란 본절에 연이어 나오는 '먼 장래'와 대조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다윗 왕의 현재의 복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당시 그에게 내려주신 복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미래의 다윗 왕조까지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이에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주);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 - 병행 구절인 삼하 7:19에서는 본절이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다. 그러나 본절과 비교해 볼 때 그 의미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나이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7: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18]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 다윗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구차히 말로 감사를 표현하기 보다는 인간의 중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에 의지해 자신의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주); 주의 종 - '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벱'(*)은 비록 노예를 뜻하지만,주인에게 상품 취급당하듯 무시되는 존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관계를 표현하며 주인으로부터 보호와 사랑을 받는 종을 의미하였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은 모두 여호와의 사랑받는 종들이었으며, 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 역시 그러했다(사 41:8). 한편 다윗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로서 백성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러한 신분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모든 성도를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었다(사 53:11).

성 경: [대상17:19]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주의 종을 위하여 - 병행 구절인 삼하 7:21에서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 '주의 말씀'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 주의 뜻대로 - 이러한 문투(文套)는 대개 상관에게 보내는 문서에서 발견되는 구절로서 화자(話者)의 겸손을 나타내는 말이다(Payne). 이와 유사한 구절은 B.C. 586년경의 라기스 문서에서도 발견되었다.

(주);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베풀어 주신 계시(4-14절)를 가리켜 '큰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1) 이 계시가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계획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2) 또한 다윗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큰 은혜였기 때문이다. 삼하 7:21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20]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주 외에는 참신이 없나이다 - 본절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 전승되어 내려온 신앙은 오직 여호와 유일신(唯一神)의 신앙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Curtis). 이스라엘인들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목도하였고 그러한 사실적 체험을 통하여 더욱 확신있는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다(출 15:11). 한편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복음도 우리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주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은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자신의 마음 문을 열때 우리 안에 들어와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성 경: [대상17:21]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 여기서의 강조점은 이스라엘의 탁월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탁월하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성이다. 다윗은 여기서 은연중에 하나님과 이방의 신들을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Curtis).

(주); 하나님이...이름을 얻으시고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시며(출 12장) 그들보다 앞서 행하사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는 것과 같은 구속(救贖) 사역을 행하신 결과, 당신이 참된 하나님이심이 열방 중에 증거된 것을 의미한다(신4:39;수 2:11).

성 경: [대상17:22]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창세기(창 17:7)로부터 계시록(계21:3)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약의 주제는 점점 더 발전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이 언약(창 17:1-21)은 시내 산 언약(출 19:5;20:2)에서 더욱 발전되고 시내 산 언약에서 보다는 다윗 언약(삼하 7:5-16)에서 더욱더 구체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7:2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7:23]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 다윗은 자기가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종전의 의도(1절)를 포기하고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난 뒤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욱 깊고 완전하다는 것(사 55:8, 9)을 깨달았던 것이다.

성 경: [대상17:24]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만군의 여호와 - 이에 해당하는 '야웨 체바오트'(*)는 '천군천사의 여호와'란 뜻이다. 이는 성경에서 대개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 사용되었다(삼상 15:2;삼하 6:2;왕하 3:14). 삼하 5:10 주석 참조.

(주);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 이와 같은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기도였다. 즉, 그는 사적(私的)인 욕심으로 자신의 집이 견고히 서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11-14절)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7:25]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 본절은 다윗이 이 같은 기도를 하게 된 동기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임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의 소욕(所慾)대로 무작정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올바른 자세를 목격할 수 있다<삼상 1:9-18 강해, '기도와 기도의 응답'>. 한편, '듣게 하셨으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리타 에트오젠'(*)은 직역하면, '귀를 열어 놓았다'가 된다. 이 용어의 주어가 하나님이 되실 때 이 말은 하나님의 계시적 활동(啓示的 活動)을 의미한다(민24:4;삼상 9:15;욥 33:16;36:10;암 3:7).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듣지못하는 다윗의 귀를 열어 그 뜻을 듣게 하신 계시적 활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삼하 7:27 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26]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이 좋은 것으로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필요 적절한 도움을 베푸신다(롬 8:28).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통일 왕국을 안정된 기조 위에통치할 수 있도록 영원한 왕국의 언약을 주셨던 바, 이 약속만큼 다윗의 심령을 평안케 하는 선물은 없었던 것이다.

(주); 허락하시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다베르'(*)는 주어의 능동적인행위를 강조하는 강의형(Piel) 동사이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다윗 언약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셨다'(*, 다바르)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삼하 7:28, 29주석 참조.

성 경: [대상17:27]

주제1: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주);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 다윗의 감사 기도의 결론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의 선포에 대해 그것이 반드시 성취될 줄로 확신함으로 기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18:1]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이후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레켄'(*)은 (1)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해 주는 접속사로도 사용되지만 (2) 시간의 전후 관계와는 상관없이단지 서로 다른 두 주제를 연결해 주는 접속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삿 16:4;삼하2:1;8:1;10:1;13:1;15:1;대상 19:1;대하 20:1).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2)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장의 사건들이 17장에 언급된 사건보다 연대기적으로 앞서기 때문이다. 즉, 17장의 다윗 언약은 다윗이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언약으로서(삼하 7:1) 본장의 사건이 끝난 후에 임한 언약이었기 때문이다(Payne, J. W. Wevers). 그래서 본문에 사용된 '이후에'라는 단어를 우리는 단순 접속사로 보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본서가 사건의 연대기적 관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따라 주제별로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 - 다윗이 이스라엘 서쪽에 위치한 블레셋(Philistia) 족속을 점령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가드(Gath)와 그 동네'란 말에서 '그 동네'를 직역하면 '그의 딸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한 나라의 주요 성읍(지배권을 가진 성읍)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가리켜 그 성읍의 '딸들'이라고 불렀다(수 15:45, 47). 그리고 그 반면에 이 주요 성읍에 대해서는 '어머니'라고 기록하였다(삼하 8:1). 따라서 '그의 딸들(동네)'이란 말은 블레셋의 가장 강력한 성읍인 가드의 통치를 받고 있었던 주변 성읍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볼 때 다윗 왕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위협의 존재였던 블레셋 중앙의 가드 성읍 뿐만 아니라 그의 통치를 받던 나머지 네 성읍(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사)까지도 정복하였던 것이다(수 13:3).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8:1에는 이 말이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의 '메덱암마'(Metheg-ammah)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 언급된 '그의 딸들'이나 '어머니의 굴레'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삼하 8: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8:2]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모압을 치매 - 모압(Moab)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나라로 동은 아라비아 사막, 남은 에돔, 그리고 북은 요단 평야로 둘러싸인 국가이다. 그런데 모압은 롯의 아들 모압의 자손들이 살던 곳으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당시 큰 세력을 가졌던 나라이다(출15:15). 이러한 모압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다닐 때에 그에게 호의를 베푼 나라이기도 했다(삼상 22:3, 4). 그러나 그 이후 이스라엘과 모압과의 관계는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악화된 관계로 인해 다윗 왕은 그들을 정복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8:2에는 모압 사람들에 대한 다윗 왕의 잔혹한 행위가 기록되어 있으나 본 구절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1) 다윗 왕이 모압인들을 잔혹하게 다루었다는 기사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본서 저자가 이를 생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ange). (2) 이에 반해 혹자는 다윗 왕의 영광에 손상을 끼치지 않기 위해 본서 저자가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urtis). 이러한 주장들을 고려해 볼 때 (1)번의 주장은 매우 피상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서 전체에 걸쳐 다윗 왕조의 영광을 최대한으로 드러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는 관점에서 고려할 때 우리는 (2)번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주); 조공을 바치니라 -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정복된 사실을 인정하고 공물(貢物)로서 조공을 바쳤다. 즉, 그것은 백성들로부터 세금으로 징수한 공물인데(Wycliffe) 아마도 모압은 목축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양털을 조공으로 바쳤을 것이다(왕하3:4;Curtis).

성 경: [대상18:3]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소바 - 소바(Zobah)는 아람의 소국(小國)들 중 가장 강력했던 한 나라로서 다메섹 동북쪽, 하맛의 남쪽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소바는 아람(Syria)의 오론테스(Orontes) 강과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사이에 위치한 오늘날 프톨레미(Ptolemy)의 자베(Zabe)로 추정된다(Lange). 그런데 당시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립해 있었는데 그 중에 근동지방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던 나라가 바로 소바였다. 그래서 당시 소바는 요단 동편과 수리아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로 최강적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아람의 소국 소바는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접전하였던 것이다(삼상 14:47;삼하 8:3;10:16-18;왕상 11:23, 24;대하 8:3).

(주); 하닷에셀 - 하닷에셀(Hadarezer or Hadadezer)이란 이름에서 '하닷'(Hadad)은 수리아 (아람)의 태양 신의 이름이며 '에셀'은 '도움'이란 뜻이다. 따라서 하닷에셀은 '하닷은 도움이시다'는 뜻인데 우리는 이러한 그의 이름을 통해서 그가 수리아의 신을 숭배하는 자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 유브라데 강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 병행 구절인 삼하 8:3에는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자기 권세를 편다'는 말이나 '자기 권세를 회복한다'는 말은 다윗과 관계된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 이후에도 아람의 연합군은 다윗의 군대와 맞서 있는 암몬군을 돕기 위해 출전하였다가요압과 아비새의 정예 군대에 의해 쫓겨나는 수치를 당하였었다(19:6-15). 삼하 8:3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소바는 이미 다윗의 전왕인 사울에 의해서 고난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삼상 14:47, 48).

(주);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맛까지 이르고 - 하맛(Hamath)은 '요새'란 뜻으로 소바 바로 윗쪽(북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다. 그런데 이 하맛은 과거 모세에 의해 보내진 12정탐꾼이 가장 멀리 정탐했던 곳(민 13:21)일 뿐만 아니라 다메섹 북방에 위치했던 헷족속의 성읍이기도 하다(수 13:2-5). 또한 이 하맛은 오론테스 강 유역에 건설된 도시국가였는데 다메섹 북쪽으로 약 180km 떨어져 있었던 지역으로 소바(Zobah) 못지않게 근동 지방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암 6:2). 그래서 다윗은 당시의 팔레스틴 전역을 평정하기 위하여 소바의 영토를 짓밟고 이곳까지 이르렀으나 하맛 왕은 다윗에게 화친을 청하였던 것이다(9, 10).

성 경: [대상18:4]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그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 - 병행 구절인 삼하 8:4에는 '그 마병 일천 칠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기록은 필사자에 의한 오기인 것으로 간주될 수있다(Lange, Payne, Pulpit Commentary). 그래서 70인역(LXX)은 사무엘서의 본문을 본절에 근거해서 본절에 나타나 있는 숫자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주);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 다윗이 병거를 이끌 말들의 발 힘줄을 끊어버린 것은 큰 말의 오금을 잘라 말을 절름발이로 만든 것이다(Wycliffe). 그런데 이것은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라는 여호와의 뜻에 순종한 행위였다(수 11:6, 9;신 17:16). 이렇듯 신앙 제일주의의 각오로 전쟁에 임했던 덕택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 주신 것이다(6절). 오늘날 복잡한 세계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돈이나 권력 등을 처세(處世)의 제일가는 무기로 삼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할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에는 진리에서 멀어진 만큼 손상당한 자신을 발견할 수 밖에서 없을 것이다. 한편, 다윗이 병거 일백 승의 말을 남겨둔 사실에 대해 혹자는 이때부터 다윗 왕이 군사력의 확충을 위하여 말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다윗 왕에게 그러한 의도가 있었다면 모든 말을 확보해 두었을 것이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일백 승의 말을 해치지 않고 남겨둔 것은 아마도 성전을 짓는 데 사용될 전리품을 수송하기 위하여 남겨두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대상18:5]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다메섹 아람 사람이...도우러 온지라 - 아람(Syria)은 B.C.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B.C. 745-727)에게 멸망당하기까지 팔레스틴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족속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통일 국가를 이룬 적이 한번도 없었다. 즉, 아람은 작은 소국(小國)으로 분할된 왕국이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특출한 나라가 다메섹이었다. 그래서 본문은 다메섹의 아람인들을 '다메섹 아람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 나라가 처음에는 소바의 하닷에셀을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왕의 침공으로 자신들의 생명과 존재에 대해 위협받게 되자 하닷에셀을 지원하고 나섰던 것이다(Curtis). 한편 본문에 언급된 다메섹 아람은 다메섹을 중심한 인근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 다메섹 아람 사람을 우리는 아바나(Abana) 강과 바르발(Pharpar) 강 건너편의 수리아인(아람인)으로 보는 것이다(삼하10:16;왕하 5:12).

성 경: [대상18:6]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수비대 - 문자적으로는 특별히 점령지를 수비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를 의미한다. 이 부대의 설치 목적은 피정복국의 내정(內政)을 간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나라의 군사적인 반란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근동지방의 관습에서는 피정복국의자주권만큼은 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평행 구절인 삼하 8:6에는 '수비대'를 뜻하는 히브리어 '네치브'(*)가 언급되어 있으나 시리아역(Syriac)과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에 '수비대'(garrision)를 뜻하는 원어가 없다.

(주);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 이는 종주권 계약의 이행을 보여준다. 즉, 당시 근동 지방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국과 패전국 사이에 계약을 맺었는데 그 계약에서 패전한 왕(Vassal King)은 승리국의 왕(Suzerain King)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승리국의 불가침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삼하 8:6).

(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 13절에서도 반복되는 이 문구는 다윗이 이룬 정복 사업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행한 정복 사업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이끌어 주신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전쟁을 명령하시고(민 21:34) 작전을 지휘하며(수 8:2)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삼상 17:45-47).

성 경: [대상18:7]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 하닷에셀은 르홉의 아들이며 수리아(아람)의 소바 왕이다(삼하 8:3). 그는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윗과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아람 사람과 동맹하여 다시 다윗과 싸웠으나 또 다시 패배하였다(삼하 8:5-8). 그런데 그들이 금방패를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 소바가 누렸던 부(富)의 정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The Preacher's Complete Homiletic Commentary).한편, 본절에 언급된 '금방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즉, 방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쉘레트'(*)는 성경 안에서 대체적으로 '방패'(shield)로 번역되어 있다(삼하 8:7;왕하 11:10;렘 51:11). 그러나 이 용어는 비단 방패 뿐만 아니라 각종 무기류나 기타 여러 도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70인역(LXX)에서는 '금마구'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화살'로 공동 번역에서는 '금장신구'로 번역했다. 그러나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군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 말은 '금방패'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하다(Luther Commentary).

성 경: [대상18:8]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정복 전쟁]

(주); 하닷에셀의 성읍 디브핫과 군 - 이곳은 레바논 산맥 사이에 있는 코엘레 수리아(Coele Syria) 계곡에 위치해 있다(Payne). 그런데 병행 구절인 삼하 8:8에는 이곳이 '베다'와 '베로대'로 기록되어 있다.

(주); 심히 많은 놋을 취하였더니 솔로몬이 그것으로 놋바다...들을 만들었더라 - 여기서 놋바다는 모세 당시의 놋대야(출 30:17-21;레 8:10, 11;왕상 7:38)에 해당한다. 그것이 솔로몬 성전에서는 매우 크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놋바다'가 된 것이다(PulpitCommentary). 그런데 이것은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을 드리기 전에 그들의 손과 발을 씻는 용기였다(Pulpit Commentary). 사실 본절에 언급된 놋바다 외에 솔로몬은 성전의 여러 기구들을 제작하였는데 여기에 소요된 놋의 중수(重數)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었다(대하 4:18). 그런데 다윗은 이 많은 양의 놋을 성전 건축을 위하여 모아 놓았던 것이다. 한편, 놋을 취해간 목적에 대해 사무엘서는 침묵하고 있으나 본서 여기에서만은 그 이유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성 경: [대상18:9]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하맛 왕의 예물]

(주); 하맛 왕 도우 - '웃는 것'이란 뜻의 '도우'가 병행 구절인 삼하 8:9에는 '방황하다'란 의미의 '도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하맛 왕 도우에 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다(삼하 8:9, 10).

성 경: [대상18:10]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하맛 왕의 예물]

(주); 그 아들 하도람을 보내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 하도람이 병행 구절인 삼하 8:10에서는 '요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하도람은 '하도르'라는 수리아(Syria) 신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아람식의 이름이며, '요람'은 '여호와는 높으시다'는 뜻으로 히브리식 이름이다. 사실 그의 본래 이름은 하도람이었으나 그가 화친의 사절로 다윗 왕에게 나아온 연고로 사무엘서에서는 '요람'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즉, 하맛 왕 도우의 아들 하도람은 다윗 왕의 친절을 얻기 위해 히브리식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하맛 왕 도우가 자기의 아들을 다윗 왕에게 파송했던 것은 다윗 왕의 종주권(suzerainty)을 인정하고 그에게 계약의 증표로 조공을 바치기 위함이었다.

(주); 여러 번 전쟁이 있던 터에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전쟁한 사람이었다'란 말인데(28:3;사 42:13) 이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의미이다. 다시말해서 소바 왕 하닷에셀과 하맛 왕 도우 간에 잦은 전쟁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소바와 하맛은 아람의 소국(小國)들 중 자웅(雌雄)을 겨루는 강력한 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우는 이 전쟁들에서 하닷에셀에게 줄곧 패배하여 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윗 왕의 이번 승리를 반기고 다윗 왕의 종주권을 흔쾌히 인정하였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대상18:11]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하맛 왕의 예물]

(주); 다윗 왕이...여호와께...드리니라 - 다윗의 승전 밑바탕에는 여호와의 힘이 함께하셨다(6, 13절). 즉, 다윗의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었기에 이 속에서 다윗의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일 뿐이었다(14:1-17). 그래서 다윗은 모든 전리품을 여호와의 제단 앞에 바친 것이다. 이 헌물들은 후일 솔로몬에 의해 성전 치장에 쓰여졌다(8절). 한편, 성도들이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도우심 덕택이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세력이 창궐해 갈 때에는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먼저 탄식하신다(롬 8:26).

(주); 에돔 - 평행 구절인 삼하 8:12에서는 본절에 나타난 에돔(Edom) 대신에 '아람'(Syria)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사무엘서의 기록이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Lange)하는 반면 또한 다른 학자는 본절의 표현이 정확한 것이라고 추측한다(P.C. Barker, The Interpreter's Bible).

성 경: [대상18:12]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하맛 왕의 예물]

(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염곡에서...쳐죽인지라 - 병행 구절인 삼하 8:13에는 이 문장의 주어가 아비새가 아닌 다윗 왕으로 나타나 있다. 혹자는 삼하의 기록을 무시하고 본 구절 내에서만 주석하기를, 이 사건은 다윗 왕이 아람 족속을 정벌하러 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고 해석하였다(Curtis). 즉, 다윗 왕이 정복 사업을 위해 멀리 원정을 떠난 사이에 통치의 공백 상태를 이용하여 에돔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으나 남아있던 아비새와 그의 일군(一軍)이 그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본 문맥에서 타당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전쟁의 승리를 아비새에게 돌린다(Ewald, Keil, Thenius, Wellhausen). 그러나 이 해석은 다윗 왕을 이 전투의 주인공으로 기록하고 있는 삼하 8:13과 모순된다. 즉, 사무엘서에서는 다윗 왕이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구절을 조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두 구절은 각각의 문맥에서 고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두 구절을 조화시켜 볼 때, 에돔이 다윗의 부재 시에 이스라엘을 침공하였고 이에 아비새가 그들을 물리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종속국으로 삼은 것은 곧이어 귀환한 다윗 왕의 지도 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무엘서와 본절의 구절을 조화시켜서 이해할 때 이와 같은 해석은 이어지는 구절(13절)과도 좋은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되어 왕상 11:15과 시 60편에서 계속 증거한다. 그러나 시60편의 표제어에는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염곡에서 쳐서 일만 이천인을 죽인 때에'로 기록되어 인명과 숫자상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염곡은 사해 남쪽 끝에 위치한 '에스 셉카'(es-Sebkhah) 평원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Curtis, LeonWood;삼하 8:13).

성 경: [대상18:13]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하맛 왕의 예물]

(주); 수비대 - 이는 정치적으로 내정 간섭을 하기 위해 주둔했던 군대라기 보다는 속국의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키 위해 있었던 군대로 보여진다. 보다 자세한 것은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다윗이...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8:14]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내각(內閣)]

(주);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 새 - 여기서 다윗 왕이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였다는 말은 그가 백성들에게 공정한 재판관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말이다. '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스파트'(*)는 '재판'을, '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다카'(*)는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말로서 이는 율법에 따라 행한 '공정한 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다윗 왕은 백성들과 직접 만나 재판장의 임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였던 것이다.

성 경: [대상18:15]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내각(內閣)]

(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 장관이 되고 - 스루야가 다윗의 이부동복매(異父同腹妹)이기 때문에 요압은 다윗의 조카이다. 요압은 스루야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삼하2:18)으로 사울 집의 군대 장관인 아브넬를 꾀어 내어 살해한 사람이다(삼하 3:26,27). 또한 그는 다윗의 당부를 어기고 압살롬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삼하 18:9-17), 다윗으로부터 호된 책망과 비난을 들은 자였다(삼하 3:28-39). 그러나 그가 다윗 왕의 군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은 예루살렘 정복 때 세운 그의 수훈 때문이었다(11:6).

(주);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 여기서 '사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즈킬'(*)은 '생각나게 해주는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사관은 왕의 중요한 약속이나 임무를 기록하고 이를 왕에게 알려주는 '의전 국장'에 해당한다(Myers,Payne). 그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 생긴 모든 사건을 왕에게 보고하고(Lange) 중요한 사건을 문서로 관리하는 그의 직무를 고려할 때 사관의 직임은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는 일 이상의 역활이었음이 분명하다(Pulpit Commentary). 그래서 공동 번역은 이를 '공보 대신'으로 번역한 것이다.

성 경: [대상18:16]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내각(內閣)]

(주); 아비아달의 아들 아비멜렉 - 여기서 '아비멜렉'(*)은 '아히멜렉'(*)으로 고쳐져야 한다. 아비멜렉은 필사자의 오기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삼하 8:17;대상 24:6에 그는 아히멜렉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Lange,Pulpit Commentary, Wycliffe). 그러나 삼상 22:20;삼하 20:25 등과 비교해 볼 때 본절의 표현을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라고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을 바꾸어 서술할 수도 있다(Ewald, Movers, Thenius, Wellhausen, 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아히멜렉이 히브리의 관습에 따라 조부(祖父)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Lange).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멜렉 아비아달 아히멜렉으로 이어지는 가문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다.

(주); 사워사는 서기관이 되고 - '사워사'(*)가 정확한 이름인지 의심스럽다. 그가 삼하 8:17에서는 '스라야'(*)로, 삼하 20:25에서는 '스와'(*)로, 왕상 4:3에는 '시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서기관은 공문서를 관리하고 서신 연락을 취하는 사무를 관장하였다.

성 경: [대상18:17]

주제1: [다윗 왕이 성취한 초기의 승리]

주제2: [다윗의 내각(內閣)]

(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 그는 다윗 왕의 둘째 삼인 중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경호원으로서(삼하 8:18;23:20) 다윗의 곁에서 죽도록 충성한 신실한 용사였다(삼하 15:18;20:23). 그리고 그는 솔로몬을 왕위에 앉히는 데 일익을 담당함(왕상1:38-40)과 아울러 아도니야, 요압, 시므이를 처형한 사람이다(왕상 2:25, 29-34,46).

(주);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이들을 블레셋의 두 족속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Ewald, Movers, Payne).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성경 및 군대에서 블레셋 남서쪽에 위치한 블레셋 족속을가리켜 '그렛'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이다(삼상 30:14;겔 25:16). 그러나 이 견해는 이방의 족속들을 모아 다윗 왕의 호위병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이치에 맞지 아니하므로 확고하게 지지받기가 힘들다. 즉, 신정 국가의 왕이 순전히 이방 족속들의 시위병에게 둘러싸여 보호받는 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Thenius). (2) 그렛과 블렛을그것의 어원을 분석하여 다윗 왕의 사형 집행 기관과 왕명 수행 기관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Keil, Lange). 즉, '그렛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크레티'(*)는 '칼로 베다', '죽이다'는 뜻의 동사 '카라트'(*)에서 파생된 말로 보고 왕의 명령에 따라 중죄인을 처벌하는 사형 집행 기관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블렛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프레티'(*)는 '도망하다', '경주하다'는 뜻의 동사 '팔라트'(*)에서 파생한 말로서 왕의 급한 명령을 전달하는 왕명 수행 부대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별다른 큰 무리가 없다.

(주); 다윗의 아들들은 왕을 모셔 대신이 되니라 - '대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헨'(*)은 본래 제사장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왕이 벗'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왕상 4:5). 그러나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왕이 측근들로서 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왕에게 직고(直告)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을 것이다(Keil, Lange).

성 경: [대상19:1]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조롱당한 다윗의 조문 사절]

본절에서부터 20:3까지는 삼하 10:1-19;11:1;12:26-31과 평형을 이루는 구절이다. 그러나 삼하에서는 이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밧세바를 범한 다윗 왕의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다윗 왕의 사적(私的)인 수치는 감추고 될 수 있는 대로 다윗 왕조의 영광만을 나타내려는 본서 기자의 의도에 따라 생략된 것이다.

(주); 그 후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이 켄'(*)은 전후(前後)의 상이한 문맥을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사이다(18:1;삼하8:1). 따라서 이 말을 시간적 개념으로 파악하여 본장이 시간적으로 전장(前章)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본장의 사건은 전장의 3절 이하의 사건보다 앞서 일어난 것으로 보여진다(Leon Wood, Lange). 즉, 본장에 나타나고 있는 암몬과 다윗 왕 사이의 불화는 전장에 기록된 다윗 왕과 아람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대격전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과 같이 사건의 연대기적 기록에 의하지 않고 단순 접속사로 시작하는 대목은 19:1;삿 16:4;삼하 2:1;10:1;13:1;15:1;대하 20:1 등에도 나타난다.

(주);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 - 나하스(Nahash)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려다가 사울왕에게 패배한 자이다(삼상 11:1;12:12). 한편, 혹자는 '나하스'란 이름이 암몬 자손의 왕이 가졌던 공식적인 이름, 곧 애굽의 바로와 같은 왕의 칭호였다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나하스'란 본래 '뱀'을 의미하는데 뱀은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당시에 이 이름은 왕에게 명예로운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사울에 의해 패배당하고 죽은 암몬 왕 나하스가 본 대목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암몬을 대파한 연대는 B.C. 1050년경(삼상11:1-13)으로 추정되는 반면, 본장에 언급된 사건은 약 60여년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Barker, Wycliffe).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하스'가 왕의 공식적인 칭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후에'라는 용어가 사건의 연대기적인 것을 나타내지 않고 '단순 접속사'라고 보면 이러한 가정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성 경: [대상19:2]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조롱당한 다윗의 조문 사절]

(주);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 나하스가 다윗에게 어떤 식으로 은혜를 베풀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1)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어 다윗의 즉위를 축하해 주었을 것임(Lange), (2) 나하스가 다윗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을 것임(The Interpreter's Bible). (3)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 사울 왕에게 패한바 있는 나하스가 다윗의 입장을 동정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었을 것임(Bertheau,Keil). 이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다윗이 나하스의 은혜를 가슴깊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극한 위기 중에 나하스의 도움을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3)번의 견해를 가장 적당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하눈'에 대해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절에 나타난 하눈의 이름이 앗수르의 비문에는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친 블레셋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Barker). 한편 그와 동명 이인(同名異人)으로서 포로 귀환후 예루살렘의 골짜기 문을 중수한 자(느 3:13, 30)가 있다.

성 경: [대상19:3]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조롱당한 다윗의 조문 사절]

(주);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 암몬의 방백들은 다윗 왕의 호의를 자기들을 정복하려는 음모로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로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왕 하눈에게 경계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암몬의 방백들이 다윗의 호의에 대해 오해하게 된 것은 당시 확장되어 가던 다윗의 세력에 대한 저들의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Lange,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즉, 그들은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인 블레셋이 다윗 왕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모압 역시 다윗 왕에게 끔찍한 형벌을 받은 사실을 듣고서 다윗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윗 왕의 호의를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본절과 평행 구절인 삼하 10:3에는 본절의 '이 땅'이 '이 성'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이 땅'은 암몬의 수도인 랍바(Rabbah) 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절의 '이 땅'은 암몬(Ammon)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전 지역을 가리킨다. 즉 전자는 히브리어 '아르'(*)를 번역한 것으로 좁게는 '성읍'을, 넓게는 '주둔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에레츠'(*)를 번역한 말로 '확고한 삶의 터전', 곧 '흙'을 가리키는 말이다.이렇게 볼 때 비록 사무엘서와 사용한 단어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같은 것이다. 즉, 그들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성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9:4]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조롱당한 다윗의 조문 사절]

(주);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수염은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Barker). 따라서 다윗의 특사들이 수염을 깎인 것은 최대의 수치였다(사 7:20;15:2;50:6;렘 41:5).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10:4에는 '그 수염 절반을 깎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수염의 밑부분을 잘랐다는 의미가 아니고 얼굴의 한쪽 면에 있는 수염을 깎고 다른 쪽은 그대로 놔두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미비하다. 그러나 수염을 깎인 것은 분명히 자신들의 위엄과 관습과 종교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중형(重刑)을 당하는 벌에 해당하는 일이었다(Wycliffe). 또한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잘랐다는 말은 그들의 수치가 드러나도록 잘랐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두'(*)는 '발목까지 길게 내리운 옷'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속에 내의를 입지 아니했으므로 그들의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다는 것은 벌거벗겨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행위였다. 그러니 다윗의 조문사들이 당한 수치는 지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성 경: [대상19:5]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조롱당한 다윗의 조문 사절]

(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 여리고(Jericho)는 요단계곡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암몬(Ammon)의 랍바(Rabbah) 성에서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들어 오는 길목에 있었다. 즉, 이 지역은 예루살렘 동북쪽 28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는데 출애굽시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넌 후 첫 번째로 함락시킨 비옥한 도시이다(수 5:8-10). 한편 이곳은 종려나무 산지로 유명해 일명 '종려나무 성읍'(the city ofpalms)으로도 불리웠다(삿 1:16). 그런데 다윗은 그의 특사들을 수염이 자랄 때까지이 같은 지역에 머물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지위와 명예를 보존해 주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9:6]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밉게 한 줄 안지라 - 여기서 '밉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쉬'(*)는 본래 '고약한 냄새(악취)가 나게 하다'는 뜻의 기본 어근으로 상징적, 혹은 도덕적으로는 '무례하다', '미움을 받다'란 의미이다. 이 용어는 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나일강물(출 7:18, 21), 개구리 재앙으로 더럽혀진 애굽의 땅, 벌레가 생겨 못먹게 된 만나(출 16:20) 등에 적용되었던 용어로 타인에게 악취를 풍기듯 매우 혐오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암몬 자손은 다윗의 특사들에게 행한 자신들의 행위가 다윗에게 큰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주); 은 일천 달란트 - 이는 암몬 왕 하눈(Hanun)이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일시에 지불한 돈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게로 따지면 약 37톤(ton)에 해당하며(Payne),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Drachma)로 환산해서 돈의 가치로 따지면 6백만 드라크마(은 1달란트는 6,000 드라크마임)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삼하 10:6). 즉 이것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30,000원으로 계산할 때 1,800억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돈이었으나 아람 왕 하눈은 다윗의 커진 세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경제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 아람 나하라임 - 병행 구절인 삼하 10:6에는 이에 해당하는 나라가 '벧르홉 아람'(Syrians of Beth-rehob)과 '돕'(Ish-tob)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많은 경우처럼 필사자의 오기(誤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람 나하라임(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Mesopotamia로 표기되어 있음)은 문자적으로 '두 강의 아람'이라는 뜻(Wycliffe)으로 삼하 10:6에 기록된 두 나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명칭인 것이다(Curtis, Payne). 한편, 벧르홉 아람은 단 지파의 성읍인 라이스(Laish) 북쪽에(민13:21;삿 18:28), 돕은 이스라엘의 길르앗 지경 내에 있었던 아람 족속의 도시 국가였다(삿 11:2, 5). 사실 돕은 길르앗 지경 내에 있었지만 암몬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사무엘서와는 달리 본절에는'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주); 아람마아가 - 마아가(Maacah)는 다메섹 근처에 있는 아람 소국(小國)이다. 이 소국은 바산의 북동쪽(신 3:4), 헬몬 산 남서쪽, 곧 다메섹과 갈릴리 사이의 소바 남서쪽(Wycliffe)에 위치해 있었다.

(주); 소바 - 본절에 언급된 소바(Zobah or Zoba)는 '주거'라는 의미로 사울과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을 침공한 소국을 가리킨다(18:3, 5;삼상 14:47;삼하 8:3). 이 소국은 특히 병거와 마병으로 유명한 데 '아람소바'로도 불리웠다(시 60편).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8: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대상19:7]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병거 삼만 이천 승 - 삼만 이천이라는 숫자는 삼하 10:6에 비추어 볼 때 병거 뿐만 아니라 보병과 기병까지도 포함된 숫자이다(Payne, Wycliffe). 그러나 혹자는 이 엄청난 수가 '기수들과 그 병거들'의 수를 가리킨다고 말한다(O. Zockler). 그러나 당시의 전쟁 양태와 군대의 조직으로 볼 때 이 숫자를 단순히 기수들과 병거들의 수로 헤아리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주); 마아가 왕과 그 백성을 삯 내었더니 - 삼하 10:6에 의하면 마아가 왕의 군사들은 일천 명이 동원되었다.

(주); 메드바 앞에 진치매 - 메드바(Medeba)는 르우벤 지파의 성읍이 있던 곳으로 헤스본 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했다. 그리고 이곳은 암몬의 랍바(Rabbah) 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했던 요단 동편의 고원 지대였다(민 21:30;수 13:9, 16;사 15:2). 그런데 이 메드바가 평행 구절인 삼하 10:6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주); 그 모든 성읍으로 좇아 모여와서 싸우려 한지라 - 다윗의 세력을 두려워한 암몬 자손들이 아람의 연합군이 메드바에 진쳤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내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아람의 연합군이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9:8]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 - 이는 요압의 정예 부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총병력을 의미하는 말로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17절;삼하 10:17). 참으로 다윗 왕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요압의 소수 정예 부대만을 파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아마도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이 숫자는 많을지라도 결속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다윗왕이 간파했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결국 다윗 왕의 이러한 조치는 현명한 조치였던 것으로 판명된다. 왜냐하면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승했기 때문이다(14,15절). 한편, 혹자는 '용사'와 '온 무리' 사이에 '와우'(*)를 첨가하여 '용사와 온무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Thenius, O. Zockler). 그러나 본절을 이렇게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요압의 군대는 용사들과 백성들로 구성된 무리가 아니라 소수 정예 부대이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19:9]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앞에...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 본절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이 남북으로 거리를 두고 진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요압의 군대를 협공(挾攻)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암몬은 자신들의 성문, 즉 랍비의 성문 앞에 진을 쳤던 것이다(Wycliffe). 한편, 암몬의 군사들이 자신의 성 앞에 진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돈으로 용병을 고용했기 때문에 그들이 대신 싸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대상19:10]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이스라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 이 구절은 요압이 자신의 정예 부대를 둘로 나누어 협공을 노리는 적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arker). 즉, 요압은 그의 적들의 진영이 둘로 나누어져 있음을 보고 그들의 양 진영을 동시에 공격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저들의 협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계책이었다. 한편, 본절의 '뺀 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바하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시험하다', '선택하다', '지정하다'라는 의미로, 골라 뽑은 모압의 군대를 둘로 나눈 사실을 입증해 준다.

성 경: [대상19:11]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그 남은 무리는...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치게 하고 - 요압은 일군(一軍)을 아우 아비새에게 맡기고 암몬 자손에 대하여 진치게 하였다. 아람 연합군과 암몬 군대를 비교해 볼 때 아람 연합군이 훨씬 강한 군대였기 때문에 먼저 아람 연합군을 물리쳐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암몬 군을 공격하다가 후미(後尾)에서 아람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날이면 요압의 군대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압은 자신이 일군을 거느리고 아람 연합군을 선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뒤에서 협공을 노리는 암몬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비새로 하여금 그 앞에 진치도록 하였던 것이다.

성 경: [대상19:13]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 요압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하나님의 성읍들'(the cities of our God)이라고 말하면서 군사들에게 담대히 하자고 권하고 있다. 이러한 요압의 권면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든 기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확신한 그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지키는 명분있는 싸움이므로 이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요압은 권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담대하게 된 요압의 군사들은 명분없는 싸움에 임하고 있는 아람의 용병들보다 사기 면에서 훨씬 앞서게 되었다.

(주);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의 성읍이 죄악된 이방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지켜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善)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압의 말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승리를 확신하는 말이다(삼하 10:12). 한편, 본문에 언급된 '선히 여기시는 대로'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하토브 베에나우'(*)이다. 그런데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주의 눈에 선한 것을'이라는 말이다. 이는 주님의 눈에 선해 보이는 것이 곧 완전히 선한 것이라는 의미로 여호와 중심의 사상이 강력히 내포된 구절이다. 이와같이 참으로 하나님만이 선악의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시 25:8;33:5;나 1:7;마 19:17;롬 2:4).

성 경: [대상19:14]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 아람 연합군의 패주는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1) 처음부터 명분없는 싸움에 임하고 있었으며(Grotius, Patrick). (2) 여러 나라의 군대가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에 서로 선봉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3) 그러나 이에 반해 요압의 정예 부대는 사기 충천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읍을 위한 명분과 목적이 분명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많은 숫자일지라도 단합되지 아니한 군대는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는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후 10:4;살전 5:8).

성 경: [대상19:15]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격파당하는 암몬족]

(주); 암몬 사람은...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 암몬 자손은 처음부터 자기네들이 다윗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아람의 용병들을 막대한 돈을 주고 고용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아람 군대는 병거와 마병을 갖춘 부대(6, 7절;삼하 10:18)로서 강력한 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의지가 되었던 아람의 용병들이 패주하자 암몬의 군대들은 전보다 더욱 겁에 질려 성안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 다윗 왕의 특사에게 수치스런 모욕을 보인 암몬 자손들을 공격하지 아니하고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회군한 것은 약간 이상하게 보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1) 랍바(Rabbah) 성은 소수의 병력으로 정복하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였으며(삼하 10:3). (2) 이때에 전쟁하기에 합당하지않은 겨울이나 우기(雨期)가 닥쳐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Payne, The Interpreter'sBible, Keil). 그런데 후자의 견해가 20:1의 '왕들의 출전할 때'라는 말에 비추어 볼때 매우 신빙성이 있다(Wycliffe).

성 경: [대상19:16]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다윗의 승리]

(주); 아람 사람이...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 여기서 강 건너편은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건너편의 동쪽(Wycliffe), 혹은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을 부른 것은 언젠가는 또다시 침공해 올 가능성이 있는 다윗의 세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람 족속에게 특사를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을 소집한 것은 암몬의 특사들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병행 구절인 삼하 10:16에 의하면, 그들을 소집한 것은 소바 왕 하닷에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닷에셀은 지난번 메드바(Medeba) 전투에서 실추된(삼하8:3, 4)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소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하닷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는 소바에 속한 속국의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소집하기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Lange). 한편, 여기서 소바 왕 하닷에셀은 당시 유프라테스 강 유역, 곧 메소포타미아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주); 하닷에셀의 군대 장관 소박 - 소박에 대해서는 그가 다윗과의 전투에서 전사(戰死)했다는 사실외에는 성경에 기록된 바가 없다. 한편, 하닷에셀은 지난번의 패배를 거울 삼아 더욱 강력한 지휘 체계를 구축하고 군 전체를 재정비하기 위해 자신이 신임하는 소박을 새 지휘관에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군대 장관의 이름이 본절에는 '소박'(Shophack)이라고 나타나 있지만 평행 구절인 삼하 10:16에는 '소박'(Shobach)으로 언급되어 있다.

성 경: [대상19:17]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다윗의 승리]

(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온 이스라엘을 모았다는 말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국민병(國民兵)을 소집하였다는 의미이다. 즉, 이 말은 다윗이 전과 같이 요압의 정예부대만으로 대처하지 않고(8절) 국민병을 전국에서 소집하였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닷에셀의 군대가 전과 같이 정신적으로 해이해져 있지 않고 반대로 자신들의 국가의 명예를 위해 정신적으로 무장된 강한 군대였기에 그에 대해서 적절히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저희를 향하여 진을 치니라 - 병행 구절인 삼하 10:16에 의하면, 아람 군대가 진을 친 곳은 '헬람'(Helam)이라는 곳이었다(Barker, O. Zockler). 그런데 이 헬람은 지난번 요압(Joab)이 아람 연합군을 물리친 메드바(Medeb) 들에서 북쪽으로 약 60km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갈릴리 바다로부터 동쪽으로 약 48km 떨어진 오늘날의 알마(Alma)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소바의 북쪽 국경에 위치한 오론테스(Orontes) 골짜기의 하맛 근처(18:3)에서 대치했던 것이다.

성 경: [대상19:18]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다윗의 승리]

(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승의 군사와 보병 사만을 죽이고 - 본문에는 병거 칠천 승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삼하 10:18에는 칠백 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칠백 승은 너무 적은 숫자로 여겨지며 칠천 승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여진다(Payne, Wenham, Wycliffe). 혹자는 본절의 칠천 승은 다윗 왕의 승리를 확대해 보이기 위해 저자가 의도적으로 더한 숫자라고 주장하나(Curtis) 이는 지나친 억측이다. 한편, 보병 사만은 병행 구절에서 마병 사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혹자는 보병 사만 역시 이만이 사만으로 와전된 것으로 추측한다(Wycliffe).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최초의 군사 수가 삼만 이천으로 기록(7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박이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합한 것(16절)을 고려할 때 이는 잘못된 가정인 것 같다.

성 경: [대상19:19]

주제1: [다윗 왕의 후기 승전(勝戰)]

주제2: [다윗의 승리]

(주); 하닷에셀의 신복 - 이는 하닷에셀의 신하들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그에게 조공을 바치던 '하닷에셀의 속국들'을 의미한다(Lange). 그래서 병행 구절인 삼하 10:19에는'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혹자는 이 신복들 중에는 속국의 왕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Wycliffe).

(주);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 즉, 이 말은 아람의 왕들이 다윗의 속국이 되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는 말로서, 다윗 왕의 승리가 완전한 승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 경: [대상20:1]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랍바의 함락]

본 구절의 내용은 삼하 11:11과 12:26의 내용을 함축해서 요약한 것이다. 즉 요압이 암몬을 훼파하고 랍바(Rabbah)를 에워 싼 내용을 언급한 본절의 후반부는 삼하11:11의 언급과 같으며,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킨 장면을 나타낸 본절의 후반부 삼하12:26의 내용과 같다. 그런데 삼하 11장에는 분 내용 외에도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또다시 다윗의 실수와 번뇌를 될 수 있는 대로 감추려한 본서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는것이다.

(주);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 여기서 해가 돌아왔다는 말은 유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아빕월(태양력으로 3,4월)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때는 봄일 뿐만 아니라 건기에 해당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전쟁하기에 적합한 계절이다. 그래서 본절에 나타난 '왕들의 출전할 때'란 바로 전쟁하기에 적합한 건기였다는 말이다. 사실 지난번 요압은 암몬을 정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나 그때가 전쟁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우기였던 고로 예루살렘으로 회군하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람 사람과의 전쟁(19:17-19절)은 지난 가을에 중단되었다고 본다(O. Zokler). 그러다가 다시금 전쟁하기에 적합한 건기가 되자 다윗 왕은 요압의 출정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 병행구절인 삼하 11:1에 의하면, 요압은 온이스라엘 군대, 곧 국민병을 이끌고 출정한 것으로 되어있다.

(주); 랍바 - 암몬 족속의 유일한 도시인 랍바(Rabbah)는 얍복강의 상류, 즉 아테이안만의 북안에 있는 60-70m의 언덕으로 된 요지이다. 그런데 이곳은 요단강 동쪽 약37Km 지점에 위치해서 갓 지파의 지경에 있었다(암1:14; 수 13:24,25).또한 이 도시는 두견고한 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하나는 이 성읍에 물을 공급해주는 수원지를 둘러싼 성, 곧 물들의 성이며, 다른 하나는 왕과 그 신하들이 거주하는 왕성이었다(삼하11:1).

(주);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 다윗은 암몬 정벌의 지휘권을 요압에게 맡기고 자신은 휴식을 취하였다. 부하들이 일선에서 피 흘릴때, 지도자는 안일에 빠져 있다는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다윗의 죄는 이러난 나태함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이러한 다윗의 죄를(삼하11:2-15)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는 말로 대치하고있다.

(주);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 삼하 12:26에 의하면 요압이 취한 랍바의 성은 두 성 중 왕성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나머지 물들의 성에 대해서는 다윗 왕을 청하여 그로 하여금 취하도록 하였다(삼하 12:27,28). 한편 혹자는 요압이 먼저 뺏은 성이 '물들의 성'이고 나중에 취한 성이 '왕성'이라고 생각한다(P.C Barer, O.Zockler). 왜냐하면 '왕성'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점령하기가 까다로웠던 반면에 '물들의 성'은 낮아서 빼앗기가 쉬웠을 뿐만 아니라 물의 공급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이곳을 점령하면 왕성은 물이 없어서 저절로 항복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다.

성 경: [대상20:2]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랍바의 함락]

본절과 다음 절은 요압의 청함을 받은 다윗 왕이 암몬 정벌을 마무리짓는 장면으로 삼하 12:30, 31과 그 내용이 동일한 대목이다.

(주); 그 왕의 머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첫째는 '그들의 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암몬 족의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에는 '머리'라는 용어가 첨부되어있으나 사실상 원문에는 없는 것인데 역자에 의해 덧붙여진 것이다. 그 둘째는 그 용어 자체를 '암몬 사람들의 우상의 명칭(밀곰)'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캄'은 암몬 족속인 우상의 이름인 '밀콤'(*, 한글 개역 성경에는 밀곰으로 되어 있음)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두번째의 해석에 많은 지지를 보낸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취한 면류관의 무게가 금 한 달란트(atalent of gold)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금 한 달란트는 약 34kg에 해당하는 무게인데 이 만큼의 무게를 암몬 왕이 평소에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주장이다(Wycliffe). 따라서 우리는 '말캄'(*)을 암몬 사람들의 우상을 지칭하는 밀곰으로 보아야 한다. 그들의 우상 밀곰의 머리 위에 34kg의 금으로 된 면류관이 항상 얹혀져 있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Lange,Pulpit Commentary, Wellhausen, The Interperter's Bible).

(주); 그 면류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 다윗 왕이 우상의 면류관을 쓴 것은 이제부터 암몬 족속의 새 주권자가 자기 자신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면류관의 무게가 약 34kg에 달하였으므로 다윗은 오랫동안 그것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권을 선포하는 의식 동안에만 썼던 것이 분명하다(Payne, Lange).

성 경: [대상20:3]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랍바의 함락]

(주); 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게 하니라 - 우리는 이 구절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그 첫째는 다윗 왕이 암몬 족속으로 하여금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게 하는 등 고역(苦役)을 시켰다는 해석이며(Payne, PulpitCommentary, Curtis), (2) 둘째는 다윗 왕이 그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로 그들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해석이다(Keil, Lange). 우리는 여기에서 (1)번의 해석이 (2)번의 해석보다 낫다든가 혹은 (2)의 해석이 (1)번의 해석보다 정확하다고 판단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1), (2)의 해석 모두는 나름대로의 근거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암몬 족속이 지난번 다윗 왕의 특사들을 모욕한(19:4, 5) 대가로 다윗 왕에게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다시 말해서 암몬 족속은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는 고역을 당했든지, 아니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로 무참히 학살당했든지 다윗으로부터 엄한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써레'는 두꺼운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농기구인데 그 위에 무거운 것, 혹은 사람이 올라타고 앉아서 황소로 하여금 끌면서 땅을 갈게 했던 것이다(욥 39:10;호10:11).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단어는(평행 구절의 삼하 12:31과 같이) '쇠'라는 의미를 포함한 복합어 형태이다. 그래서 '이것을 단순히 목재로 된 농기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쇠로된 날카로운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다(Barker).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혹자는이를 '곡괭이'(picks)로 본다(Wycliffe).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12:31에는 다윗 왕이 암몬 족속을 벽돌구이에 넣어 태워 죽인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참으로 암몬 사람들은 그들의 우상 밀감에게 산 자녀들을 불에 태워 바치곤 하였는데(레 18:21;왕하23:10;겔 20:31) 다윗 왕은 이러한 그들의 잔혹스런 미신적 행위를 형벌하기 위해 그들을 벽돌구이에 넣어 태워 죽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을 통하여서 다윗 왕이 단순히 암몬 족속을 고역에 동원했다기 보다는 그들을 살육의 도구로 형벌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성 경: [대상20:4]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격파당하는 블레셋 족]

본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은 삼하 21:18-22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무엘하에서는 본 내용이 소개되기 전에 다윗 가정 내에서의 범죄와 압살롬의 난(삼하11:1-17:29) 등이 기록되어졌으나 본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생략되었다. 또한 삼하21:16, 17에는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가 죽음의 위기를 당하였으나 아비새의 도움으로 구사 일생(九死一生)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문에서는 생략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다윗 왕의 약점을 노출시키지 아니하고 그의 영광만을 드러내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를 읽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주); 이 후에 - 이 말은 특별히 사건의 연대기적인 서술을 의미하는 접속사라기 보다는 화제(話題)의 논리적인 연속을 나타내는 단순 접속사이다(18:1;19:1 등).

(주); 블레셋 사람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에 - 게셀(Gezer)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경계를 이루는 곳 즉, 블레셋의 북방에, 에브라임의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그런데 다윗왕은 르바임 전투에서 블레셋 족속을 게셀까지 몰아내었다(14:16). 따라서 본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이 게셀에서 전쟁했다는 것은 본 전쟁이 르바임 전투 이후에 있었던 사건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1:18에는 게셀이 아니라 '곱'에서 전쟁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혹자의 주장처럼 본서 기자나, 혹은 사무엘서 기자의 부주의에서 온 결과(Pulpit Commentary)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곱은 게셀 내에 있는 이름없는 작은 고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Lange).

(주); 후사 사람 십브개 - '후사 사람'이란 '유다 족속 후사의 후손'이란 의미의 말이다(4:4). 사실 후사 사람 십브개는 열 두 반열의 반장 중에서 제 8열의 반장이었으며(27:11),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11:26, 29). 그런데 그의 이름이 삼하 23:27에서는 '십브개'(*) 대신 '므분내'(*)라는 이름으로 잘못 소개되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철자상 '십브개'와 '므분네'는 그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주);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십배 - 여기서 '장대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파'(*)는 가드의 토착민들로서 르바임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신체가 장대한 것으로 유명하였기 때문에(신 2:20, 21;3:11;수 12:4;15:8; 17:15;창14:5;15:20) 이들 족속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살던 지역을 르바임 골짜기라 불렀다. 그런데 십배는 바로 이들 족속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 또한 거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십배'(*)가 병행 구절인 삼하 21:18에서는 '삽'(*)으로 기록되었다.

성 경: [대상20:5]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격파당하는 블레셋 족]

(주);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라흐미를 죽였는데 - 이와 병행되는 삼하 21:19에는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을 죽였는데'라고 기록되어 있다(우리말 성경에 나타나 있는 '...의 아우 라흐미'는 역자에 의해 첨가된 것임). 이러한 두 병행 구절의 차이점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견해들을 주장하고 있는 데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혹자는 본서의 기록을 오기(誤記)로 보고 삼하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본다(Bertheau, Bottcher). 이들은 이러한 전제하에서 주장하기를, 이 구절들에 기록된 골리앗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과는 다른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 구절 모두에 골리앗이라는 이름 앞에 그가 살았거나, 혹은 활약했던 지역명인 '가드'란 말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다윗에게 죽은 가드의 골리앗과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2) 혹자는 양 구절을 조화시키기 위해 엘하난을 다윗과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Jerome, Targum). 즉, 다윗이란 이름은 그의 본래 이름이 아니었고 왕명(throne name)이었으며 그의 본래 이름은 엘하난(Elhanan)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엘하난'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이 견해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점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소가 '곱'(Gob)이 아니라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삼상 17:19)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와 같은 장소의 차이는 본 구절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과는 무관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3) 다수의 학자들은 삼하의 기록을 오기(誤記)로 보고 본서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보고 있다(Piscator, Clericus, Michaelis, Movers, Thenius, Payne, Pulpit Commentary). 이 견해에 따르면 사무엘서에 언급된 '야레오르김'(Jaareoregim)은 '야일'의 오기이며 '베들레헴 사람'은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첨가한 말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사무엘하의 저자가 본 문맥을 다윗 왕에게 적용시키기 위하여 무리하게 첨삭 가필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즉, 그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고쳐 골리앗으로만 기록한 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엘하난을 '베들레헴 사람'이라고 기록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또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두 견해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이 세번째 견해에서 우리는 특별한 난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번째 견해에 대해 많은 지지를 보내고 또한 긍정을 한다. 즉, 이와 같은 사실에 의해 우리는 (3)번의 견해에 따라 사무엘하의 기록을 잘못된 오기로 보고 본서의 기록을 원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주); 베틀채 - 실이나 털실을 갖고 옷감으로 직조(織造)하는 베틀(loom)에 사용되는 무거운 대(臺)를 말한다.

성 경: [대상20:6]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격파당하는 블레셋 족]

(주); 가드 - 본절에 나타난 가드(Gath)는 '술 짜는 틀'이란 의미의 지명이다. 이곳은 가사의 북쪽 32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이다(수 13:3;삼상6:17). 또한 이곳은 다윗 손에 죽은 골리앗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삼상 17:4) 블레셋인들이 언약의 궤를 옮겨 갔던 장소이다(삼상 5:8). 그런데 이러한 블레셋의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의 힘이 강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 매손과 매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 넷이 있는데 - 레 11:18에 의하면, 이러한 기형자(奇型者)는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형이 유전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떤 외부의 환경에 의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본절에 나타난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이것은 유전에 의한 것인듯하다.

(주);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 4절의 십배와 마찬가지로 그가 르바임 족속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성 경: [대상20:7]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격파당하는 블레셋 족]

(주); 저가 이스라엘을 능욕하는 고로 - 여기서 '능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프'(*)는 '조롱하다', '우습게 여기다', '비웃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블레셋이 온갖 욕설을 퍼부어 싸움을 유도했다는 의미이다(삼상 17:26, 36).

(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 - 시므아는 이새의 셋째 아들이었는데(2:13) '삼마'라고도 기록되었다(삼하 21:21). 그런데 그의 아들 요나단은 암논을 범죄케 한 교활한 모사 요나답의 형제이다(삼하 13:3).

성 경: [대상20:8]

주제1: [암몬과 블레셋을 격파한 다윗 왕]

주제2: [격파당하는 블레셋 족]

(주);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 본 문맥에서 다윗을 섬긴 신복의 손에 가드(Gath) 거인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되나 다윗의 손에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약간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삼하 21장을 참고하면 이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다. 즉, 삼하 21장의 문맥에는 본 문맥과는 달리 다윗 자신이 친히 블레셋의 거인 이스비브놉과 전투를 벌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다윗의 손에 가드 거인들이 죽었다는 말은 매우 자연스러운것이다. 또한 다윗의 신복들의 승리는 곧 다윗의 승리라는 점에서 볼 때도 이 말은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닌 것이다(Keil, Pulpit Commentary). 그래서 혹자는 '다윗의 손'이란 말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총사령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O. Zockler). 한편, 사무엘하 21:22에는 가드의 장대한 자가 넷이라고 분명히 나타나 있으나 본절에는 그 숫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본서 기자의 저술 의도, 즉 장대한 자의 숫자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아 다윗의 공로와 이스라엘의 힘을 보다 많이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성 경: [대상21:1]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본서의 내용을 살펴볼 때 지금까지 본서의 기자는 승승 장구하는 다윗 왕의 영광된 측면만을 부각시켜서 기록했다(10:1-20:8). 그러나 본장에서부터는 관심을 달리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준비하는 다윗 왕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즉, 자신의 인생 말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다윗의 신앙적 행위를 증거하는 것이다. 사실 이때는 시기적으로 다윗 왕의 통치 말기에 해당하는데 다윗 왕의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던 때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경과한 것으로 보인다(Payne). 참으로 이 20년의 기간 동안에 다윗 왕은 그의 큰 범죄로 말미암아 일련의 연쇄적인 징계들을 받았다. 그 징계들이란 암논의 추행 사건(삼하 13장), 압살롬의 반란(삼하 14-19장), 그리고 세바의 반란(20장) 등이었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이러한 다윗(David) 왕의 불행했던 역사를 뛰어넘어 곧바로 성전 건축에 관련된 다윗 왕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저자가 다윗 왕이 겪은 고통스런 일련의 역사를 본서에서 생략한 것은 바벨론(Babylon) 유수(幽囚)에서 풀려난 유다 왕조의 후손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그 왕조의 탁월성 및 정통성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신정 국가 건설에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하기 위함이었다(Payne). 그런데 이러한 저자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본장에서 다윗 왕이 크게 범죄했다고 생각되는 인구 조사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본서에 언급된 것은 이 일을 계기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을 동기로 해서 성전의 부지가 결정되고 성전 건축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주); 사단이...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 본 문맥은 내용상 삼하24장과 일치하고 있으나 많은 차이점이 발견된다. 즉, 삼하 24장에서는 다윗을 격동한 주체가 하나님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그 주체가 사단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삼하 24장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Lange).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의 신관(神觀)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된 추측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활동을 허락하실 때에야 비로소 사단은 활동을 개시할 수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욥 1:12;삼상 26:19). 참으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다(욥 12:23;시 104:9-31;사 50:2, 3;갈1:15, 16). 그래서 삼하 24장은 바로 이러한 섭리적 차원에서 다윗을 격동하신 주체가 하나님이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결과적 측면에서 그 주체를 사단으로 기록한 것 뿐이다. 따라서 이 두 구절은 어느 하나 잘못된 것이 없으며 다만 상이한 관점에 따라 달리 기록된 것일 뿐이다(PulpitCommentary).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사단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였음을 알 수있다.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사단이 다윗을 격동한 것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욥 1:11;2:5, Wycliffe). 그러나 사단이 다윗을 격동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라고 하기보다는 '고소', '기만' '파멸'을 일삼는 사단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사단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자신의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신다. (1) 그것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는 다윗 왕의 교만을 제거하여 겸손하게 만드는것, (2) 지난번 압살롬의 난, 세바의 난 때에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종 다윗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벌하시는 것(삼하 24:1), (3) 그리고 궁극적인 것으로 성전건축을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단의 역할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활동을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혹은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상(思想)은 포로기 전후에 나타난 유대교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O. Zockler). 한편, 사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장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성 경: [대상21:2]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 여기서 '백성의 두목'(the ruler of thepeople)이란 삼하 24:4에 의하면 다윗 왕의 '군사 지휘관(군대 장관)'(the captainsof the host)들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요압과 함께 이들에게 인구 조사를 명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공식 석상에서, 곧 지휘관 회의에서 이 명령을 시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의 남쪽 경계지이며 단(Dan)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지이기 때문에 이 지명들은 '이스라엘의 온 영토'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브엘세바(Beersheba)는 헤브론(Hebron) 서남방 약 50km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틴의 남쪽 국경이다. 그리고 단(Dan)은 옛날의 바니아스(Banias), 즉 가이사랴 빌립보(Cesarea Philippi) 북방 약 5km 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틴의 북쪽 국경이다. 그러므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혹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란 말은 이스라엘 전 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삿 20:1;삼상 3:20;왕상 4:25).

(주); 그 수효를 알게 하라 -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하는 장면이다. 결국 다윗은 이러한 명령을 함으로써 국가적인 큰 재앙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인구 조사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시하에 인구 조사를 실시한 사례들이 여러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민 1:1-3;26:1-4;출 30:12-16).문제는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동기를 가지고 인구를 조사하였다는 데 있었다. 즉, 다윗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인구 조사를 명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인구 조사의 명령을 내림과 더불어 칼을 뺄만한 사람의 수(5절)를 헤아리게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그는 우선 인구 조사를 집행할 책임자로군대 장관인 요압을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합법적인 인구 조사에있어서 제사장들이 그 임무를 감당했던 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이었다(민 1:3;26:1,2). 또한 이스라엘이 인구 조사를 할 때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을 받아 하나님께 드려야 했으나(출 30:12) 다윗의 인구 조사에 있어서는 이런 일이 행하여지지 않았다. 사실 이 속전은 이스라엘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생존케 하시고 번성케 해 주신데 대한 감사의 예물이었던 것이다(출 30:13). 그러나 다윗은 이 예물을 백성들에게 받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시행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논의된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다윗은 자신의 왕권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기 위하여 인구 조사를 시행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인구조사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세력을 의지한 그의 교만함과 불신앙을 보여준 죄악된 행위였던 것이다(Matthew Henry, Lange, Keil, Pulpit Commentary, Payne).

성 경: [대상21:3]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요압이 가로되...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 요압이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에 반발하여 강력히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요압이 이처럼 다윗의명령에 크게 반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 요압은 백성들의 원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The Interpreter's Bible). 즉, 당시 근동 지방에서 실시된 인구 조사는 흔히 과세와 징병의 목적으로 실시되었는데 금번의 다윗의 인구 조사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시각으로 인식하여 다윗 왕조에 대해 원망을 터뜨릴 것을 요압은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전혀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정 국가인 다윗 왕조의 군대장관 요압이 이처럼 크게 반발한 것은 보다 특별한 이유에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는 신정 국가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지고 또한 앞으로 더 크게 세워질 것을 알고 있었다(신 33:29). 그런데 다윗 왕이 이러한 신정 국가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기의 힘을 의지하려는 동기에서 인구 조사를 실시하려 하자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던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Lange). 그래서 요압은 다윗의 용장(勇將)으로서 그와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삼하 3:27-29) 본절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신실한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혹자는 요압의 간언이 인구조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보다 자신의 군사에게서 안정을 찾고 있었음에 대해 지적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주);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쉐마'(*)는 종국적으로 형벌을 초래하고야 마는 '원인적인 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 같은 표현은 이러한 다윗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죄에 동참하게 되었으며(Barker) 백성들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O. Zockler). 그래서 요압은 이 문맥에서 다윗의 인구 조사가 결국은 이스라엘을 형벌 가운데로 나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압의 말 가운데는 다윗 왕과 이스라엘이 언약(서약)으로 연합된 관계에 있다는 사상이 나타나 있다. 즉, 온 이스라엘은 다윗 즉위시 그 앞에서 충성의 서약을 함으로써(11:3;삼하 5:3) 그와 하나된 공동체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다윗의 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죄가 되는 것이다.

성 경: [대상21:4]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 여기서 '재촉한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본래 '강퍅하다', '강화하다', '완악하다'는 뜻이다(출 8:19;9:35).그래서 이는 다윗 왕이 요압의 반대를 끝까지 뿌리치는 완악함을 보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요압의 충언에 대해 매우 위압적인(NIV, overruled) 자세로 단호하게 물리친 것이다. 이 때문에 공동 번역은 이를 '굽히지 않았다'라고 의역한 것이다. 한편, 이처럼 사단의 유혹 아래 있는 자들은 그 귀가 무디어져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유익한 충고를 듣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사단이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시키기 위해 취하는 가장 교활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교회의 지도자를 교만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말이라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주);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 병행 구절인 삼하 24:5-8에는 인구 조사를 한 요압의 경로(經路)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이를 간단히 요약해 버렸다. 사무엘하에 의하면, 요압은 요단(Jordan)을 건너 갓(Gad) 골짜기 가운데 성읍인 아로엘(Aroer)에서 출발하여 지도상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였다. 또한 삼하 24:8의 기록에 의하면, 요압은 이 일을 9개월 20일 만에 완료하였음을 볼 수 있다.

성 경: [대상21:5]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이스라엘 중에...일백 십만이요 유다 중에...사십 칠만이라 - 병행 구절인 삼하24:9에는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 만이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본서의 언급과 사무엘서의 두 기록 사이에 숫자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군사의 수에서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혹자는 사무엘하의 기록보다 본절의 기록에 유다의 군사 숫자가 감소되어 나타나 있는 것은 본절에는 레위와 베냐민 지파의 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Curtis).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사무엘하의 기록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므로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다시 말해서 베냐민의 숫자가 빠져 있어서 본절에서 유다의 수가 감소했다는 의견은 긍정이 가나 레위 지파의 수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수가 본절에서 늘어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견은 부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2) 혹자는 본장의 기록이 이방인, 곧 다윗 왕의 통치를 받고 있던 이방인의 숫자까지도 포함시킨 기록이기 때문에 사무엘하의 기록보다 더 많게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 상의 아무런 근거가 없다. (3) 혹자는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27:24)는 구절에 근거하여 이 숫자는 기록되지 아니한 구전에 의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두 구절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우리는 이 주장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설득력있는 주장이 있기에 우리는 또한 그 설명을 주시해 보아야 한다. 즉, (4) 혹자는 본절에 나타난 이스라엘 군사 110만명의 숫자에는 다윗의 정규군 약 30만명(정확히 말해서 28만 8천명;27:1-15)이 포함되었으며 사무엘하의 80만명에는그 정규군의 숫자가 빠진 것이라고 주장한다(Payne). 이는 이스라엘의 군사 수에 대해서만 수치상으로 거의 맞아 떨어지는 주장이기 때문에 타당한 것으로 고려된다. 그러나비단 본절 뿐만 아니라 본서와 평행 구절의 많은 부분(왕상 4:26과 대하 9:25;왕상7:26과 대하 4:5 등)에서 이같이 숫자상의 차이는 발견된다. 이는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숫자 서술을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기이거나 잘못 해독한 경우일 수 있다. 또는 500 이상의 숫자를 표기할 때는 알파벳 위에 특별한 표시(그 한 예로 점을 사용했음)를 했기 때문에 기록하거나 해독할 때 생긴 실수일 수도 있다.

성 경: [대상21:6]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 본절의 이러한 언급은 사무엘서의 평행 구절에는 없는, 본서에만 나타난 사실이다. 그런데 요압이 레위 지파를 계수하지 아니한 것은 선례(先例)를 따른 것이었다. 즉, 이전의 합법적인 인구 조사에서 하나님은 레위 지파의 종교적인 지위 때문에 그들을 계수하지 말도록 명령하셨던 것이다(민1:49). 그래서 요압은 다윗 왕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차에 이와같이 선례를 따라 레위 자파를 인구 조사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또한 베냐민 지파의 영토 안에는 예루살렘(Jerusalem) 성과 기브온(Gibeon) 성막이 있었으므로 요압은 이것을 빌미로베냐민 지파도 조사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것이다(Payne). 한편, 27:24에 의하면, 요압이 인구 조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하였다. 이로 비추어 보건대, 요압은 레위 지파 또는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서 소일(消日)하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성 경: [대상21:7]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 이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혹은 '이 일은 하나님 눈에 악한 것이었다'라는 의미이다. 즉, 다윗이 자신의 안정과 교만을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케 한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행위에 대해 여호와께서 괘씸히 보신다(출 34:7;시 45:7; 사 31:2).

(주); 이스라엘을 치시매 - 이는 다윗을 회개시키기 위한 예비적인 매라기 보다는 14절에 기술된 '온역의 재앙'을 가리키는 구절이다(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본절에 언급된 '치시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카'(*)인데 이는 '때리다', '쫓아내다', '죽이다', '벌주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본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윗의 범죄로 인해 벌을 줘서 온역으로 백성들을 죽였다'라는 뜻이다.

성 경: [대상21:8]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인구 조사]

(주);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 병행 구절인 삼하 24:10에는 '다윗이...그 마음에 자책하고' 나서 여호와께 회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받게 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그 계기가 요압의 계속적인 반대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Payne). 한편 본절에 언급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라는 말은 다윗이 밧세바의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의 고백을 할 때 사용한 표현과 유사하다(삼하12:13).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며 회개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다윗이 지닌 진솔한 성품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 한 마디의 변명도, 타인에 대한 책임 전가도 없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이다. 사실 죄악으로 인해 초래되는 가장 심각한 병폐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 단절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단의 시험을 극복하고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며 즉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던 것이다.

성 경: [대상21:9]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하나님의 형벌 선고]

(주);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 병행 구절인 삼하 24:11에는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갓에게 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다윗은 밤새도록 양심의 가책 속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후 곧 그날 아침에 선견자 갓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따라서 선견자 갓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은 다윗의 회개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견자 갓(God)은 이전 다윗의 망명 시절에 모압(Moab)을 따라 유다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다윗에게 전하여 주었던 사람이다(삼상 22:5). 그리고 그 이후 그는언약궤 앞에 아삽의 찬양대를 상주하게 하라는 지시를 다윗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대하 29:25). 또한 그는 사무엘, 나단 선지자와 더불어 다윗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가로 소개되기도 한다(29:29). 한편, 본절에 나타난 '선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호제'(*)이다. 그런데 이는 '주시하다', '감지하다', '이상을 보다'를 뜻하는'하자'(*)에서 유래한 용어로 '꿈, 계시, 신탁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즉, 다시 말해서 '선견자'란 하나님의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하는 자이다(단 2:26, 41, 43, 45;4:20;7:2). 그러나 이와는 달리 선견자(seer)와 비슷한 의미를지닌 '선지자'(prophet)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자'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그 초기에는 선견자와 선지자가 분명히 구분되어 사용되지 않은 듯하다(삼상 9:11;사 30:10).

성 경: [대상21:10]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하나님의 형벌 선고]

(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 본절에 언급된 '보이노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타'(*)로서 '뻗다', '펼치다', '제공하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선택할 것을 앞에 놓아둔 생생한 현장을 나타낸 것이다(Lange).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는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3년 동안의 기근, 3개월의 칼의 재앙, 그리고 3일 간의 온역이었다. 이 세 가지는 흔히 하나님의 대표적인 형벌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레 26:25;왕상 8:37;대하 20:9;렘 14:12;21:7-9;24:10;27:8, 13;29:17) 다윗은 이중에서 기근과 칼의 재앙을 이미 맛본 바 있다(삼하 21:1;12:10).

성 경: [대상21:11]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하나님의 형벌 선고]

(주);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이지 결코 하나님 밖에서의 방종이 아니다. 본절에서 볼 때 사실 다윗에게 어떤 형벌을 주시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세가지를 제시하시면서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이 진실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시험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 경: [대상21:12]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하나님의 형벌 선고]

(주); 삼 년 기근일지 - 병행 구절인 삼하 24:13에는 본절의 3년 기근이 7년 기근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 구절의 언급이 옳은 듯하다. 왜냐하면 본 문맥에서 하나님이 갓 선지자에게 제시하고 있는 재앙들이 모두 3이란 숫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Payne,Lange, Pulpit Commentary). 그래서 70인역(LXX)도 이를 지지해서 3년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사무엘서에서 이렇듯 7년으로 나타낸 것은 숫자를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기록한 것을 잘못 해독했거나 오기(誤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3'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깃멜'(*)과 '7'을 뜻하는 '자인'(*)은 그 모습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근, 칼, 온역의 세 가지 형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뤄가시는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신 형벌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신 28:21-25;삼상 6:3-6;왕하 19:35;겔 14:21;계 6:4-8).

(주); 여호와의 사자 - 평행 구절인 삼하에서는 발견되어지지 않는 말로 '천사'(KJV, theangle of the Lord)를 의미한다(Payne).

성 경: [대상21:13]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온역 재앙]

(주);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 다윗이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시는 형벌이라고 여겨지는 온역을 선택하는 말이다. 그는 잔악한 이방인의 손에 붙여지기 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붙여짐으로써 긍휼하신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이 살 소망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선택은 하나님의 진정한 본성이 긍휼과 자비라는 그의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참으로 이 장면에서 다윗은 비록 재앙을 당하더라도 원수의 손에서는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서 당하겠다는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신앙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혹자는 다윗의 이러한 대답을 '경건과 지혜가 합한 응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P.C. Barker).

성 경: [대상21:14]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온역 재앙]

(주); 여호와께서...온역을 내리시매 - 이 형벌에 대해 사무엘서(삼하 24:15)에서는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이 이스라엘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하신 때라는 말을 '저녁 희생 제사 때'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삼일 동안의 온역을 하루로 단축시키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Barker). 왜냐하면 15절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는 뜻을 돌이키고 있고, 이것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원문에도 원어상 이 말에는 관사가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 - 혹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인구가 약 5백만명인 것으로 보고 7만명의 사상자는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사실 이렇게 볼 때 당시 이 재앙의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뿐 아니라 당시의 다윗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택하신 나라, 신정 국가 안에는 하나님보다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그 어떠한 불신앙적 요소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큰 재앙을 내리셨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혹자는 이 형벌이 매우 적절한 벌이었음을 강조한다(Wycliffe). 왜냐하면 다윗의 범죄는 곧 군사력에 의지하며 그것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인구 계수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21:15]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주);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 여기서 '뉘우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은 '뜻을 돌이키다', '동정하다', '위로하다'라는 뜻이다(창6:6;출 32:14;삿 2:18;시 106:45). 그래서 본절은 온역의 재앙이 3일간 계속되지 아니하고 중간에 중단된 것을 암시한다. 진정 여호와께서는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는 것을 보시고 3일간의 재앙 기간을 단축하여 본래의 계획을 수정하신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본래의 뜻을 돌이키신 것은 하나님의 본성인 긍휼하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것은 바로 다윗이 재앙을 선택하기 직전에 한 가닥 희망으로 가졌던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주);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 여기에서 여부스 사람이란 '예루살렘 성의 원주민'을 의미한다(11:4). 왜냐하면 여부스 족속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창 10:15, 16) 예루살렘 산악 지대에 거했기 때문이다(민 13:29).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오르난(Ornan)이 병행 구절인 삼하 24:16에서는 '아라우나'(Araunah)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은 결국 한 사람의 다른 이름들이다. 즉, 오르난은 히브리식 발음의 이름이며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발음의 이름인 것이다(Keil,Ewald, Lange). 그리고, 오르난의 타작 마당은 예루살렘 동편 언덕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은 후에 솔로몬 때에 성전의 터가 되었다. 사실 타작 마당은 곡식의 낟알을 떨고 까부르기 위해 평지보다 조금 높은 지역에 단단하고 매끈한 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무로 된 바퀴나 철이나 돌로 된 바퀴를 굴려서, 또는 가축으로 밟게 하여 곡식들을 타작하였다(삼하 24:22;사 41:15;룻 2:17, 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에서 나타난 '선지라'라는 말은 대단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이것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아마드'(*)로서 '서다'란 뜻과 더불어 '지정하다', '일어나다', '체재하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창 19:27;30:9;레 13:5;수 10:13;삼상 14:9;렘 7:10). 그러나 천사를 의인화해서 표현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하나님의 사자가 타작 마당곁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이 말이 천사가 땅 위에 서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Barker).

성 경: [대상21:16]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주);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 이는 천사가 하늘과 땅 사이 곧 '공중에 서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Curtis, p. 251). 그래서 공동 번역은 이를 '공중에 서서'라고 번역하였다.

(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 여기서 굵은베를 입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표시이며(왕상 21:27;왕하 6:30;단 9:3;욜1:13;욘 3:5,6), 얼굴을 땅에 댄 것은 주께 대한 경배의 표시이다(대하 20:18;삼하14:33).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4:17에는 장로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본절에서는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하나님의 재앙이 전국에 걸쳐 미쳤으므로 장로들이 다윗과 함께 회개에 참여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드려질 수 있다(Lange).

성 경: [대상21:17]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주);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 다윗은 이번의 범죄, 곧 인구 조사의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만 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본 구절에서 강조의 의미로만 사용되는 인칭 대명사 '나'(*, 아니)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의 죄를 일체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아니하는 다윗의 진실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서 본절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을 다시 한번 볼 수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회개의 올바른 자세를 볼 수 있다.그것은 (1)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는 것, (2) 자신 때문에 고난받는 자를 위해 간구하는 것, (3) 자신을 내어 맡기고 오직 그분의 긍휼만을 구하는 것 등이다.

(주);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신정 국가(神政國家)에 있어서 왕과 백성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였다(11:2;렘 23:1-4). 그래서 성경은 빈번히 지도자와 백성을 목자와 양무리로 비교하는 것이다(Wycliffe, p. 384).

성 경: [대상21:18]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 혹자는 (1) 여호와의 사자가 임한 곳은 정결해야만 했으므로(창 28:18;삿 6:20;13:6, 19)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그곳을 정결케 하는 제사가 드려질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Curtis, p.252). 그러나 우리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단을 쌓으라고 한 여호와의 지시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시가 있기 전에 다윗은 하나님께 진실한 회개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 따라서 이번의 지시는 다윗의 회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킬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진정시킬 그 장소로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지명하신 것은 그곳에서 천사의 심판 활동이 중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이스라엘을 위해 화목의 은총을 베푸실 장소로 지정하시고 그 땅을 성결케 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오르난의 이 타작 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한 장소로 유명한데(창 22:2, 9;대하 3:1) 혹자는 이곳을 멜기세덱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 장소(창 14:17-20)로 추측한다(Barker). 한편, 본구절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통하여 지시를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병행구절인 삼하 24:18에서는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갓이 그 지시를 전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경: [대상21:19]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다윗이...말씀대로 올라가니라 - 다윗 왕이 갖고 있던 신앙의 큰 특징인 순종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즉, 다윗은 갓의 말을 듣고 지체없이 여호와의 지시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대상21:20]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오르난이...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 오르난과 그 아들들이 숨은 이유는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있었기(6절)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당시 여호와나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면 죽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삿6:22, 23;13:22). 한편, 70인역(LXX)에서는 '천사'(*, 말르아크) 대신 '왕'(*, 말렉)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이러한 번역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PulpitCommentary). 왜냐하면 오르난이 그곳에서 천사를 목격했다는 것은 문맥의 흐름상 자연스러운 것이며 반면 왕을 보고 숨었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성 경: [대상21:21]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오르난이 내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 여기서 '내어다보다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유의하여 보다', '골똘히 주시하다', '관심을 가지고 보다'라는 뜻으로(창 15:5;시 84:9;애 4:17) 오르난이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숨은 곳에서 유의하여 바라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그는 다윗 일행을 목격하였던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4:20에서는 '왕과 그 신복들'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 있어 본절의 표현보다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주);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 구약에서 빈번하게 언급된 경배의 자세는 '무릎을 꿇는' 태도였다(왕상 8:54;스 9:5;사 45:23). 그러나 이마가 땅에 닿도록 몸을 숙이는 자세는 특별히 그 상대에게 절대 복종하는 태도였다(삼상 25:23;왕하 4:37;에 8:3). 이처럼 오르난은 다윗에게 왕으로서 절대 존경과 복종심을 내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태도 이면에는 방금 목격한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대상21:22]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 여기서 '붙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탄'(*)은 '주다'라는 기본 어근과 더불어 '지정하다', '배당하다', '수여하다'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말은 결국 '팔라'는 의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상당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레'는 '충분한', '꽉찬'이란 뜻으로 타작 마당의 넉넉한 시가(時價)를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요구는 곧 타작 마당전체(O. Zockler)를 팔라는 요구로 이해되어 진다. 한편, 본절을 '이 타작 마당에서 장소를 빌려라'라고 번역한 혹자의 주장(Luther)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질 수 있다.

성 경: [대상21:23]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 에브론(Ephron)이 자신의 소유인 밭을 아브라함(Abraham)에게 주려고 했던 것처럼(창 23:10, 11) 오르난도 자기의 소유를 다윗에게 바치고자 했다(James Wolfendale).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역이 속히 그쳐지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 여기서 '곡식 떠는 기계'는 나무로 만든 썰매와 같은 것(삿 8:7, 16)으로 가축들이 끌고 다니며 곡식 낟알을 떨도록 고안된 것이다. 오르난은 번제물을 태울 화목(火木)으로 이것을 다윗 왕에게 기증하려 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그의 정성과 믿음은 가상(嘉賞)한 것이다.

(주); 밀은 소제물로 - 소제물로는 곡식을 빻은 고운 가루(레 2:1), 고운 가루로 떡을 만들어 구운 것(레 2:4),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삶은 것(레 2:7), 그리고 첫 이삭(레2:14) 등을 드렸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는 도중이었기에(20절) 그는 자신의 수확물 중 첫 열매를 다윗에게 바쳤을 것이다. 한편, 이 소제는 번제를 드리고 난 후에 이어서 드려지는 제사였다(레 2장;6:14-23).

성 경: [대상21:24]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 다윗은 제사에 있어서 형식적인 것보다 내용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을 드리지 아니하는 그럴듯한 외형적인 제사보다 자신을 함께 바치는 참된 제사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경건한 다윗이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피정복민인 오르난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모든 것을 그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Payne, McConcille).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희생해서 드리는 자의 제사를 기뻐 받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가 주께드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롬 12:1).

성 경: [대상21:25]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 금 한 세겔(Shekel)은 은 한 세겔의 15배이며 은 한 세겔은 노동자의 4일 동안의 품삯에 해당하는 값어치이다(출 30:24). 따라서 이를 계산해 보면 금 육백 세겔은 노동자가 3만 6천일, 다시 말해서 약 100년 동안 일한 품삯에 해당하는 값어치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24:24에는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라고 기록되었다. 이와같이 양 구절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혹자는 본서 저자가 크게 과장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Thenius,Lange). 그러나 이 차이는 과장치고는 너무도 큰 차이이며 터무니 없는 것이다. 따라서이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양 구절의 상이한 수치가 각기 다른 두 품목에 대한 다른 가격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Pulpit Commentary, Payne, Curtis,p. 253). 즉, 은 오십 세겔은 단지 타작 마당과 소를 사는데 든 비용일 뿐이며 금 육백 세겔은 후에 성전 부지가 된 모리아(Moriah) 산 전체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기 때문에 그는 단지 다윗 왕이 제사에 필요한 것만을 구입한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본서 저자는 성전 건축을 예비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기 때문에 성전부지를 사들인 것으로 서술한 것이다. 한편, 혹자는 다윗이 성전 부지를 구입하는데 지불한 600 세겔은 한 지파당 50세겔씩 12지파에게 부담시켜 산출한 액수라고 추정한다(Curtis).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미비하다.

성 경: [대상21:26]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 이 말은 하나님께서 불로써 번제단 위의 제물을 사르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는 죄의 소멸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내려진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병행 구절인 삼하24:25의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라는 평범한 기술과는 달리 기적적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우신 사례는 성경에서 그리 흔치 않은 일로서(레 9:24;왕상 18:24, 37, 38;대하 7:1) 하나님의 영광스런 출현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들이다. 즉, 하나님이 불을 내리신 것은 단순히 그 기도를 응답하셨다는 사실 외에 이제 그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본 문맥에서 하나님께서 불로써 그 제물을 태우신 사실은 (1)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용서해 주심과 아울러 (2) 그곳(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계심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볼 때 본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곳을 성전 건축의 부지로 승락하시는 하나의 공식적인 재가(裁可)의 성격을 지닌 것임에 틀림없다(PulpitCommentary).

성 경: [대상21:27]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 - 실제적으로든 또는 결과적으로든 이 말은 이스라엘에 온역이 완전히 그쳤음을 의미한다(삼하 24:25).

성 경: [대상21:28]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 이는 다윗이 불로 응답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있는 단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다윗은 이곳에서 계속적으로 조직적인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Barker, O. Zockler). 이유인 즉, 다윗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보았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21:29]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 다윗 왕은 이전에 기브온(Gibeon) 산당에서 조직적인 예배를 확립한 바 있다. 즉, 그는 그곳에서 대제사장 사독(Zadok)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성막을 모시게 하였으며 헤만(Herman)과 여두둔(Jeduthun)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던 것이다(16:39-42). 그런데 사실 여호와의 성막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성막 건축에 대한 계시를 받고(출 25:1-31:11)시내 산에다 건축하였다(출 36:1-40:33). 그러나 성막이 완성된 후 약 50일 동안 그 장막은 시내 산에 안치되었다가 출애굽한지 제 2년 2월 20일에(민 10:11, 12) 이동을 시작하여 약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한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정착한 후 최초로 여리고 근처인 길갈에 진을 치고 성막을 세웠다(수 4:19;5:10;9:6;10:6, 43). 그러나 이곳은 일시적인 장소였기에 마침내 성막은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실로로 옮겨진다(수 18:1;19:51). 그 이후 성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다가 블레셋에 의해 실로가 함락될 당시, 다시 말해서 실로에서 블레셋 군에게 법궤를 빼앗길 당시 하나님의 성막은 여기에서 놉으로 옮겨진 듯하다. 왜냐하면 사울이 놉에서 아비아달을 제외한 모든 제사장을 죽인 후(삼상 22:9-23) 그곳에서 성막을 기브온으로 옮긴 사실이 성경에 나타나기 때문이다(16:39). 그런 후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다윗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을 위한 한 장소(오르난의 타작 마당)를 마련해서 하나님의 성막을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시대에는 기브온과 예루살렘에 각각 성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 때 성막이 성전으로 대치되고 성막의 기구들이 모두 성전으로 옮겨짐으로써 약 500년 간의 성막 역사는 끝이 난다(대하 5:1), 수 18:1-7, 강해 '성막의 역사' 참조.

성 경: [대상21:30]

주제1: [성전 부지(敷地)의 선정]

주제2: [다윗의 회개 제사]

(주);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 기브온(Gibeon) 산당에 여호와의 장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오르난(Ornan)의 타작마당에서 계속 제사를 드린 이유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까지 제사를 드렸던 기브온 산당에 얼마든지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지 아니했는데 그것은 본 구절 그대로 그가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시말해서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후 다시 기브온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천사가 다시 칼로 온역을 발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J. Wolfendale). 그래서 다윗이 다시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지난번 칼을 집에 꽂았던 여호와의 사자를 무시하는 처사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옮기지 못했다고 하는 혹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으로 받아 드려지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대상22:1]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

(주);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 내용상 본절은 다윗 왕이 오르난(Ornan)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드린 내용인 전장(前章)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본절은 다윗 왕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불의 응답을 받은 후 마음 속으로 이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설 장소라고 결정한 내용의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 왕은 아직 건물이 세워지지도 아니하였는데도 그곳을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여기에서 불을 내리신 하나님의 응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그곳을 가리켜 하나님의 전(벧엘)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표현했던 것과 같은 경우이다(창 28:17). 한편, 이곳이 성전의 터로 지정된 것은 (1)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단일 중앙 성소인 성전의 장소로서 지정학적으로 안성 마춤의 장소이고, (2)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신 곳이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원래 이방인의 소유였다는 사실은 장차 하나님의 교회가 이방 온 땅에 설립될 것을 예표하고 있다 하겠다(마 8:11-13).

성 경: [대상22:2]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

(주);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 - 이들은 본래 가나안 원주민들이었으나 가나안정복 때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자들의 후손들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 솔로몬 때에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숫자는 모두 15만명이 넘는 많은 인구였다(대하2:17). 그렇기 때문에 다윗 왕은 성전 건축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감독관 아도니람을 중심해서(삼하 20:24) 이들을 동원하였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들이 이방의 기술자들이었으며 무역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왔다가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래서 70인역(LXX)에서는 이를 분명하게 '개종자들'(*, 토위스 프로 세뤼토위스)이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 여건에서 살펴볼 때 타당치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스라엘에 '우거하는 자'들이었다고 본 구절이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다 15만명이라는 숫자를 당시에 귀화한 자들의 명수(名數)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방 사람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림'(*)은 '거주하는 외국인'을 가리키기 때문에 더욱 후자(後者)의 주장은 옳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이들을 본래부터 가나안 땅에 살았던 '원주민의 후손들' 곧 '느디님 사람들'(9:2, Wycliffe)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Lange, Payne).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이들을 모은 것은 이들이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Barker).

(주); 석수를 시켜...돌을 다듬게 하고 - 여기서 돌을 다듬는 일은 일반 사람들에게 맡겨지지 않았고 오직 숙련된 기술자들에게만 맡겨졌다(왕상 5:17, 31). 왜냐하면 채석장에서 규정된 크기로 돌을 자르고 정돈하는 일(왕상 6:7)은 전문적인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22:3]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

(주); 거멀 못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하베로트'(*)는 '함께 묶다','연결시키다'는 뜻의 동사 '하바르'(*)에서 파생된 명사로 나무나 돌 등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정쇠를 의미한다. 그래서 70인역(LXX)에서는 이를 '스트로페이스'(*), 즉 '연결시키는 것들'로 나타내고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이를 '연결시켜 붙이는 도구'(commissurae atque junctarae)로 표현했다. 그러나 대하34:11에서 나타난 '연접하는 나무'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곳에나타나 있는 것은 '쇠'가 그 재료인 반면 대하에 표현된 것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기능과 용도는 같았었다.

(주); 중수를 셀 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 이렇게 많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준비된 놋은 후에 성전의 두 기둥과 놋바다, 그밖에 성스러운 기구들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성 경: [대상22:4]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

(주);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 레바논 산지에 주로 분포해 있는 백향목은 색깔이 매우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나무에 옹이가 없고 대단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어 최고급 건축자재로 많이 쓰였다. 따라서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백향목을 무수히 국내에 들여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이 나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좋은 목재로 알려져 아람, 앗수르, 바벨론에서도 중요한 건축재로 사용되었다.

(주);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수운하여 왔음이라 - 시돈(Sidon)과 두로(Tyre)는 베니게(페니키아)의 유명한 성읍들로 일찍이 해상무역이 발달했었다. 즉, 시돈은 오늘날의 레바논 공화국의 항구 도시 사이다(Saida)로서 그 위치는 두로와 베이루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돈은 두로 북방 36km, 베이루트 남방 30여km에 있는 성읍이었다. 그리고 두로는 베니게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로 팔레스틴 해안의 갈멜 산과 베이루트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이 두 항구 도시는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것이다(마 11:21, 22;15:21;막 7:31;행 12:20). 한편, 이들이 무수한 백향목을 다윗에게까지 수운해 왔던 것은 다윗의 정치적인 역량의 결과였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 왕의 판도(版圖) 내에 이들 두 해상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다윗 왕의 성전 건축 계획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22:5]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

(주);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 성경에서 다른 왕들의 경우 대체로 즉위 때의 나이가 밝혀져 있으나 솔로몬의 나이는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의 통치 연한이 40년인 것과(대하 9:30) 그가 르호보암(Rehoboam)에게 왕위를 계승해 주었을 때 르호보암의 나이가 41세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대하 12:13). 이렇게 볼 때 비록 확실하지는 않지만 즉위 때의 솔로몬의 나이는 20세가 갓 넘은 나이였다고 우리는 추정해 볼 수 있다(O. Zockler, Wycliff). 왜냐하면 위의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즉위할 때 한 살난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데 그렇다면 당시 그의 나이가 최소한 20세는 넘었을 것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Payne). 그러나 솔로몬의 당시 나이가 약 16세 정도였을 것이라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추정은 적절치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만약 솔로몬이 당시 약 16세였다면 르호보암의 나이와 솔로몬의 통치 연대를 계산해 볼 때 그는 적어도 14-15세 때 결혼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나이는 너무 어린 것으로 생각된다.

(주);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 여기서 '극히 장려하여'란 말은 규모 면에서 '대단히 거대하여'란 의미의 말이다. 그래서 KJV은 '과도한','대단한' 의미를 가진 exceeding과 '장대', '웅대'의 뜻을 가진 magnifical를 써서 이를 표현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공동 번역은 이를 '아주 웅장하고 화려하여'라고 표현해 앞으로 지어질 성전의 규모와 그 모습이 어떤지를 잘 나타낸다. 사실 여기서 다윗이 앞으로 지어질 성전의 규모에 대해 이렇듯 분명히, 그리고 비교적 소상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만국에 드러내려 하기 위해 성전을 짓는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성 경: [대상22:6]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부탁하여 - 다윗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평생의 소원이던 성전 건축 사업을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Lange, JamesWolfendale).

성 경: [대상22:7]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이는 곧 '내 하나님 여호와 그분을 위하여'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서 이름은 대부분의 경우 '존재에 대한 단순한 확인'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8:1, 9;신 12:11;대하 6:20). 그래서 본 구절에서도 '이름'이란 말은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Payne).

(주); 마음이 있었으나 - 문자적인 의미는 '그것이 나의 마음에 있었다'란 뜻이다. 즉, 이는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말로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열정과 그의 사모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대하 6:7).

성 경: [대상22:8]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이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주어졌던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17:1-15;삼하 7:1-17). 한편 상기(上記)한 이러한 구절들에는 밝혀지지 아니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본 구절에는 밝혀지고 있다. 즉, 다시 말해서 상기한 구절들에는 다윗 왕이 성전을 건축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명백하게 언급되지 아니한 반면, 본 구절에서는 그 이유가 확실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다윗이 전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문제를 허락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전쟁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칼로 죽이는 것은 허락된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서 그가 과도하게 칼을 휘두른 경우들, 예를들면 모압 족속을 잔인하게 형벌했다든가(삼하 8:2), 암몬 족속을 형벌했다든가(삼하 12:31) 하는 사실들을 내세우는 주장(Payne)은 옳지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다윗은 타락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이 말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사명에 관한 말씀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군인으로서 이방인들을 정복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성전 건축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전 건축은 성격상 평화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만일 피를 많이 흘린 군인에 의해 성전이 건축된다면 성전의 참된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실로 성전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베풀어 주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전이 내포하고 있는 속성과 그 성격상 성전 건축의 적임자는 다윗이 될 수 없었던 대신 전쟁을 알지 못한 솔로몬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28:3, 6).

성 경: [대상22:9]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평강의 사람 - 이것은 솔로몬 왕의 특성을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용맹 무쌍하게 정복 사업을 추진하여 약속의 지경(地境)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 다윗의 사명이라면, 회복된 땅을 지혜롭게 통치하여 대내외적으로 평강을 끼치는 것은 솔로몬의 사명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평강의 사람 솔로몬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사 9:6). 그리고 이미 도래하였고 또한 장차 도래할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한편으로는 천국 확장과 성장을 위해 영적 전투를 감행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완성된 평강의 나라를 온 성도와 더불어 누려야 한다.

(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 본 약속은 솔로몬이 하맛소바(Hamath Zobah)를 취한 시점에서(대하 8:3) 완전히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유일한 전쟁이었던 하맛소바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함으로써 솔로몬 왕국은 드디어 사방의 모든 대적으로부터 완전한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Payne).

(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 그의 본래 이름은 여디디야(Jedidiah, '여호와께서 사랑하신 자'라는 뜻)였으나(삼하 12:25), 여기서는 그의 다른 이름이 강조되고 있다. 이 다른 이름은 앞으로 이루어질 그의 왕국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었다. 즉, '솔로몬'(*)이란 이름은 평강이란 뜻의 '솰롬'(*)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그가 장차 평강의 왕이 될 것을 나타내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한편 '여디디야'(*)는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의 '다윗'(*, 다윗)과 의미상같은 이름으로 그가 이미 다윗의 후계자로 지명되었음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삼하12:25 주석 참조.

성 경: [대상22:10]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약간의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다윗 언약의 내용(17:12, 13;삼하 7:13, 14)과 일치하는 구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언약의 내용을 본 구절에서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 본 구절에는 이렇듯 아비와 아들의 관계, 또한 아들과 아비의 관계가 된다는 것에 대한 언약의 조건이 제시되어 있지 않으나 28:7에서는 이 언약의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솔로몬이 결국에는 이 조건을 이행하지 못하고 말았기 때문에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조건을 온전히 이행하셨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은 인간적인 제한점들 때문에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모든 인간들의 구세주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마 5:17;롬 10:3, 4) 이 조건을 성취시킨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는 것이다(롬 8:15;고후 6:18;갈 3:26;4:5, 6;엡 1:5).

성 경: [대상22:11]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본절부터 13절까지는 다윗 왕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위해 기원하는 내용의 구절이다.

(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 이러한 축복의 말로 이루어진 표현은 비단 본절뿐만 아니라 16, 18절, 28:20 등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다윗 자신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솔로몬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다윗의 간구이다.

성 경: [대상22:12]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 임종을 얼마 앞두고 아들에게 바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원이다. 이 간절한 기원은 솔로몬에게 깊은 감동이 되어 그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그는 즉위 후 곧바로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지혜를 간구했기 때문이다(왕상 3:5-14;대하 1:7-12;PulpitCommentary).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고백(잠 1:7)을 통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어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성 경: [대상22:13]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 본 구절은 신명기적 어법과 일치하고 있다. 즉, 다윗 왕은 여기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는 신명기의 주된 기조(신 4:1;5:1;7:4, 11;11:32;수 1:5-9)를 솔로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Barker, O. Zockler). 이처럼 그가 솔로몬에게 신명기의 율법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자기의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써 엄청난 대가를 치룬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는 밧세바와의 동침(삼하 11:1-5), 우리아를 모살한 행위(삼하11:14-25)로 인한 일련의 고통스런 재앙들을 겪었던 것이다(삼하 13:1-18:33). 그리하여 솔로몬에게는 이러한 고통의 재앙들이 임하지 않도록 다윗은 솔로몬에게 단단히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성 경: [대상22:14]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환난 중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아네이'(*)는 (1) '환난 중에'라고도 번역될 수 있으나 (2) '대단한 열심으로', 또는 '수고함으로'라고도 번역될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어간 '아나'(*)는 (1) '괴로움을 당하다'라는 뜻과함께(시 116:10;사 31:4;53:7) (2) '수고하다' '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전 1:13;3:10). 그런데 여기서는 (2)번의 의미로 번역되어 지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왜냐하면 다윗 왕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모을 수 있었던 시기를 단지 환난의 시기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본 구절의 내용과 유사한 다윗의 고백에서 그는 보다 분명하게 '힘을 다하여'이 모든 것들을 예비하였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29:2). 따라서 이 용어는 '수고함으로' 또는 '열심으로'라고 개역되어야 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p. 385). 그래서 70인역(LXX)과 루터(Luther)역은 이를 '나의 고통스런 수고 가운데'로 번역한 것이다.

(주);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 백만 달란트 - 무게로 따지면 금 십만 달란트(talent)는 약 3,408t에 달하고 은 일 백만 달란트는 약 34,080t에 달한다. 왜냐하면 3,000세겔(shekel)에 해당하는 1달란트는 약 34.08kg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출 38:25, 27;왕상16:24;계16:21). 또한 은 한 달란트는 6,000 드라크마(drachma)에 해당하는 액수이고,금 한 달란트는 은 한 달란트의 15배에 해당되는 액수이기 때문에 은 일 백만 달란트는 60억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그리고 금 십만 달란트는 90억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를 현대적인 감각에 의해 요즈음의 시세로 환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1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므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30,000원으로 계산할 경우 금 십만 달란트는 2,700조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은 백만 달란트는 1,800조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그런데 이는 당시의 화폐 가치로 따져볼 때 한사람이 도저히 모을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돈이었다. 사실 지난번 암몬이 다윗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용병을 모집하였는데 그때에 든 비용이 모두 은 일천 달란트였다(19:6).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모은 양이 금 십만 달란트요, 은 일 백만 달란트라고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이러한 돈을 비축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엄청난 양이었다. 또한 왕상 10:14에 의하면, 솔로몬의 세입(歲入)이 일년에 666 금 달란트(talent)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게 볼 때 이 액수는 솔로몬이 아무데도 쓰지않고 고스란히 모은다해도 150년은 족히 걸릴 정도의 양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혹자는 본서 저자가 성전의 영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을 크게 과장되게 보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urtis, p. 258).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그릇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혹은 우리의 안목으로 측정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모두 저자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그 근거가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본문의 기록이 필사자의 실수에 의한 오기(誤記), 혹은 잘못 해독한 경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Matthew Henry). 왜냐하면 실제로 다윗이 모든 금,은의 양이 29:4에서는 본절과는 달리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 너는 더할 것이며 - 솔로몬은 실제로 다윗 왕의 이러한 권고를 받아드려 다윗이 준비한 성전 건축의 재료 위에 더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대하 2:1-18). 이렇게 볼 때 참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은 그 규모가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그 성전이 지어졌는가를 헤아릴 수 있다.

성 경: [대상22:15]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석수와 목수 - 원문상으로 볼 때는 이를 단순히 어떤 재료로 '공작하는 사람' 이나 '숙련공','장인', '만드는 자', '석공', '철공'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라쉬'(*)로 되어 있다. 그래서 본절을 히브리어 원어상으로 볼 때 석수와 목수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원문에서 이에 해당하는 구절은 '돌이나 나무를 자르고 조각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말이지 분명하게 석수와 목수를 구별하는 말이 아니다. 본구절은 석수일과 목수일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있고 기술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렇기때문에 14절에서 '놋과 철'을 준비하고,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기에 그에 합당하게 '석수와 목수'가 있었다는 흑자의 주장(Curtis, p. 258)은 타당치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언어적으로 석수와 목수를 나타내는 말이 한 단어로 쓰였다는 것은 곧당시의 사회에서 석수와 목수를 구분하지 않고 부른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주);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 본 구절은 다음 절과 연관된 구절로 보아야한다. 즉,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란 다음 절에 나오는 '금과 은과 놋과 철'을 세공하는 탁월한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다음 16절의 '무수하니'라는 말은 금, 은, 놋, 철 등이 무수하다는 말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금속들을 세공할 수있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하는 말이다(Wycliffe, p. 385). 그렇기때문에 본서 저자는 분명히 14절에서는 물량의 풍부함을, 그리고 15, 16절에서는 기술인력의 풍부함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6절 상반절은 15절과 연관되어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익숙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캄'(*)인데 이는 '지혜로운', '미묘한', '간교한'이란 뜻이다. 이렇게 볼 때 본절에 나타난 '익숙한 사람들'은 손 재주의 기술 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지혜로웠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성전과 장막을 건설하는 기능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쓰여진 것이다(Curtis;출 31:6;35:10;36:1, 2, 4, 8;대하 2:12).

성 경: [대상22:16]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는 다윗]

(주);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 솔로몬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다윗 왕의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 나가서 성전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힘찬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면 비록 여건이 불비(不備)하다 할지라도 과감히 일어나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겠다고 하는 결단의 자세야말로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다.

성 경: [대상22:17]

주제1: [성전 건축의 준비]

주제2: [방백들의 조력을 명하는 다윗]

본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방백들에 대한 다윗 왕의 권고이다. 여기서 다윗 왕이 이스라엘 모든 방백을 부른 것은 성전 건축이 솔로몬 개인의 사업의 결코 아니고 범국민적인 과업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방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르'(*)이다. 그런데 이 말은 부족의 대표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