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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에스라

에스라 주석

성 경: [스1:1]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주);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았지만 - 본절 초두(初頭)에는 `그리고'라는 뜻의 `우'(*)가 있다. 이는 본서가 역대기를 쓴 동일 저자에 의하여 기록 되었음을 암시해준다(W. Rudolph).

(주); 바사왕 고레스 - `바사'는 B.C. 3000년 경까지는 셈족 계통의 엘람 사람들이 국민의 주종을 이루었던 나라이다. 하지만 B.C. 2000년경 이후로는, 남부 러시아의 스탭 지역과 인더스강 서쪽에서 이동해 온 아리안족에 의하여 지배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이 나라의 명칭은 이란이며 이 같은 국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레자 샤 팔레비'(1925-1941)에 의해서였다. `고레스'는 동부 엘람의 소국(小國)인 안산(Anshan)의 왕이었던 캄비세스 1세(B.C. 600-539)의 아들로서 부친이 죽자 그 나라를 이어 받았다. 그는 왕에 오른 즉시 바사의 제국(諸國)들을 통합하였고, 얼마 후인 B.C. 539년에는 대국 바벨론까지 정복하였다(본장주제 강해, `고레스에 대하여' 참조).

(주); 원년에 - 이것은 분명히 B.C. 538년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가 바벨론을 정복한 것은 B.C. 539년이지만 바벨론의 즉위 년도 계산 방식은 즉위 후 처음 맞이하는 니산월(1월)이 속한 년도를 원년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바사의 왕이 된 것은 훨씬 이전인 B.C. 559년임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는 여기서 그가 바벨론을 정복한때로부터의 즉위 첫 해를 계산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가 이같이 한 까닭은, 그 해가 명실공히 당대의 최강국이었던 바벨론을 멸망시킨 때였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 - 이것은 (1) 유대인들이 바벨론 땅에서 70년 동안 포수(捕手) 생활을 하게되며(렘 25:11), (2) 그런 다음 반드시 팔레스틴 본토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렘 29:10) 예언을 가리킨다(대하 36:22). 물론 이 예언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온갖 시련과 고초를 안겨줬던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 멸망될것이라는 사실도 포함되었다(렘 25:12)). 그 당시 예레미야가 이러한 예언을 한 것은, 바벨론의 무자비한 압박으로 인하여 고통 당하던 유대인들을 위로하며,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결코 낙망치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 응하게 하시려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라'(*)는 원래 `마치다'(대하29:34), `진멸하다'(시 37:20; 겔 13:14)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된 내용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을 뜻한다.

(주);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주는 문구이다(대상 5:26; 대하 21:16; 36:22; 렘 51:11;학 1:14). 결국 이는 여호와께서 고레스가 정책 입안 과정에서 관용적 태도를 취하도록 성령의 감동을 통해 개입하셨음을 가리킨다(Fensham). 그때 고레스는 이미 예레미야의 예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Leon Wood). 우리가 이같은 추측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단 9:1-11) 다니엘이 고레스의 막료로 일했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단 6:28). 그때 다니엘은 고레스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유화 정책을 취하도록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그의 영향력이 고레스에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가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라고 한 것은, 그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될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사 41:25; 43:14; 44:28; 45:1, 13). 한편, `마음'(*, 루아호)은 원래 `바람',`영', `숨', `호흡' 등의 의미로서, 사람과 관련해서는 인간의 가장 내면적 요소인 `영혼' 혹은 `심령'을 가리킨다(사 30:1, 2). 그리고 `감동시키시매'(*, 헤이르)는 `깨다', `분발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우르'(*)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당신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이방인까지도 강권적으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잘 보여준다.

(주); 저가...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 여기의 `공포도 하고'는 문자적으로 `소리를 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말로써 왕의 명령을 하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조서도 내려'는 왕의 구두 명령이 진짜임을 확증해 줄 수 있는 명령문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는 공포와 조서가 별도의 절차로서 백성들에게 하달되었다고 봐서는 안된다. 한 사자(使者)에 의해서 왕의 명령이 구두로 전달되고 아울러 그것을 문서화 시킨 명령문도 근거로서 제시되었을 것이다(Willianson, 왕하 19:9-14; 대하 17:9).

성 경: [스1:2]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주); 하늘의 신 여호와 - 이 같은 호칭은 고레스가 여호와께 대한 확고한 신앙을 소유했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늘의 신'이란 표현은 이원론적 종교관을 갖고 있던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매우 통상적이며 익숙한 호칭이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하늘의 신'은 흑암을 다스리는신 아리만(Ahr-iman)과 대조되는 광명의 신 오르무즈드(Ormuzd)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고레스는 오르무즈드 대신 여호와라고 함으로써, 피정복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주);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 분명치는 않으나 다니엘의 영향을 받았을 듯한(1절) 고레스는 자신에게 엄청난 승리가 주어진 것을 이사야 45:1 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여호와의 섭리로 이해했을 것이다(Rawlinson). 이 같은 고레스의 생각은, 그 당시의 페르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신관(神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하늘의 신' 오르무즈드는 세상의 왕들에게 권세를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고레스는 여호와에 대한 참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으며 다만 자신의 민족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신관에 따라 여호와를 이해했을 뿐이다.

(주); 나를 명하사 -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히브리 왼문에는 본 구절 앞에 대명사 `그가'에 해당되는 `후'(*)가 있다는 점에서 이 구절은 매우 강조적인 표현이다(요 10:1) 한편 `명하사'(*, 파카드)는 `위임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미로 이해된다(창 39:4; 41:34; 레 6:4; 렘 40:11). 따라서 본 구절은 고레스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대리자로 임명받은 자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다니엘의 영향이 일조(日照)를 했다고 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를 강권적으로 감동시키신 결과였다(1절 주석 참조).

(주); 유다 예루살렘 - `유다'는 고레스 당시에 페르시아의 여러 `도'(Province) 중의 하나로서 회복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는 옛적에 일개 국가로 존립했던 지역으로서의 유다로 이해함이 무난하다(Williamson). 그렇다고 본다면 고레스가 굳이 `유다' 라는 호칭을 여기서 사용한 것은 그 지역이 대적에게 멸망되었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 짐작된다. `예루살렘'도 그 당시에는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주);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고레스에게 있어서 다른 민족들의 성전이나 제단등을 복구시켜 주는 일은 주된 통치 정책 중의 하나였다(Kidner). 그의 다신론 사상은 근래에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그는 바벨론의 주신(主神)이 그 백성들에 의하여 섬겨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말둑(Marduk) 이외의 다른 신들, 즉 `벨'과 `느보'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신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부탁했다고 한다(Kidner). 그러나 우리는 고레스가 여호와의 전을 재건할 필요성을 가졌던 사실을 다만 그의 일관된 통치 정책의 결과로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즉,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가 개재되어 있었고 고레스는 적어도 이사야 44:28의 예언이 자신에 대한 것으로 알고 그것에 대해 순종했을 수 있다(Schultz).

성 경: [스1:3]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주); 이스라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 문자적으로는 `그분은 예루살렘에 계신 그 하나님이다'로 번역된다. 그러나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 입장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를 다른 지방신(local god)들과 구분되는 `참신'으로 인식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흠정역은 `he is the God'라 옮겼다. 고레스가 진정 여호와를 유일하고 참된 신으로 깨닫고 섬겼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길이 없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당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리라는 점이다.

(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 - `너희'는 고레스의 영토 안에 살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 백성 된 자' 는 반드시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 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B.C. 722년에 앗수르로 끌려간 북국의 열 지파 사람들도 포함되었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북쪽 지파 사람들이 끌려갔던 옛 앗수르의 고토(故土)도 역시 고레스의 정복지(征服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귀환시에 타국인인 노비들도 함께 팔레스틴에 왔음을 감안한다면, 북국의 열지파 사람들의 일부도 귀환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Rawlinson).

(주);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 `올라가서'(*, 야알)는 `알라'(*)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스스로의 유익을 위하여 올라가다'의 의미를 갖는다. 한편 고레스가 여기서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바벨론보다 예루살렘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해발 약 83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호와의 전이 성공적으로 건축되기를 바라는 고레스의 염원이 반영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염원 뿐 아니라 성전 건축에 필요한 지원까지도 아끼지 않겠다는 격려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성 경: [스1:4]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주); 무릇 그 남아있는 백성 - 이에 대해서는 (1) 본 구절을 본절 전체의 주어로 보고 떠나지 않고 남아 있으려 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견해(Bickermann)와 (2) 본 구절을 본절 전체의 목적어로 보고 떠나도록 배려된 유대인들이라고 주장하는 견해(Fensham)로 갈린다. 그러나 (1)은 유대인을 모두 보내라고 한 고레스의 조서와 잘 조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남아 있는 백성'이라고 한 까닭은, 그때 바벨론 땅에서 살고있던 유대인들이 모진 환란과 고초를 견디고 살아남게 되었음을 시사하기 위함인 듯하다(Fen-sham, 대하 36:20). 한편 `남아 있는'(*, 니쉐아르)은 `남다' 및 `잔류하다'의 의미를 갖는 `솨아르'의 수동형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에 따라 그분의 백성으로서, 또 그 백성답게 보존된 자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Kidner,사 4:3; 10:20-22; 37:31; 겔 9:8; 17:21; 학 2:3).

(주);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 그 당시 유대인 포로들은 주로 유프라테스 강 하류 쪽의 메소포타미아 평야 지대에서 살고 있었다(Aharoni).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곳 외에도 페르시아 제국 내의 각처로 흩어져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Bickermann). 이러한 사실은 에스더와 모르드개 등의 경우로 미루어 보아도 분명해진다(에 2:5).

(주); 그곳 사람들이 - 여기서도 앞의 `남아있는 백성'처럼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된다. 즉(1) 팔레스틴으로 돌아가지 않을 유대인이라는 견해(Grosheide) 와 (2) 팔레스틴으로 떠나려는 유대인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던 본토 사람들이라는 견해 (Brockington, NIV)등이 있다. 그런데 4절 전체의 문맥상, (2) 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럽다.

(주); 은과 금과...짐승으로 도와 주고 - 본문의 상황은 (1)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때의 상황(창 13:1,2),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때의 상황(출 12:35,36) 및(3)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땅에서 수레에 실려 나올 때의 상황(삼상 6:4, 8)과 유사하다. 이 같은 여러 상황에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재물을 준 것은 고대 중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그 당시에는 상대의 물건 혹은 사람을 잘못 취한 것에 대한 사죄의 표시로서 속건 예물(삼상 6:4)을 피해자에게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팔레스틴으로 돌아가려던 유대인들에게 재물을 준것은 본토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타국의 백성 이스라엘인들을 불법으로 그들의 땅에 억류하고 있었던데 대한 보상의 의미에서, 본토로 돌아가려던 유대인들에게 재물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치 말아야 할것은 비록 그런 관습이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친히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관습을 지키도톡 주관하셨다는 사실이다(출 12:36). 이 예물들을 통해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소요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 경: [스1:5]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유다인들의 귀환 결심]

(주); 유다와 베냐민 - 이 둘은 바벨론에 함께 포로로 끌려간 지파들이다. 베냐민 지파는 지리적으로 유다 지파와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관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할되었을 때 유다 지파와 함께 남쪽 유다에 속하게 되었으며(왕상 12:21), 그 결과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야 했다. 족장(*, 로쉬). `머리'(창 3:15), `꼭대기'(창 11:4; 28:12; 민 23:28),`두령'(신 29:10; 33:5)등의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지파 단위와 가족 단위 사이의 중간 단위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Williamson).

(주); 제사장들 - 이들은 특별히 구별된 신분에 속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지파, 심지어는 레위 지파와도 분리되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이 구별되어 언급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팔레스틴으로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제사장의 직분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성전의 건축이기 때문이었다(2, 3절).

(주); 레위 사람들 - 성전에서의 봉사가 주된 임무인 이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팔래스틴으로의 귀환 대열에 끼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주);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하는자 - 문맥상 이는 유다, 베냐민, 레위 지파 사람들과 제사장들 이외의 별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렇게 볼 경우에는, 위에 언급된 자들은 모두(자발적으로) 귀환 대열에 참여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보다는 본문을 앞의 내용과 동격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여, 앞에 언급된 자들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팔레스틴으로 행했다고 봄이 낫다(Batten). 한편 `감동을 받고'(*, 헤이르)는 `일어나다', `일깨우다'의 의미를 갖는 `우르'(*)의 사역형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전적으로 성령의 강권적인 감화의 결과임을 잘 보여준다.

(주); 일어나니(*, 쿰) - 이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에서 특별한 일을 실행하기로결단하고 그를 위하여 적극적인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삼상 16:2; 왕하 3:24; 대하 22:10)

성 경: [스1:6]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유다인들의 귀환 결심]

(주); 그 사면 사람들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팔래스틴으로 귀환하려던 유대인들 주위의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킨다. 만일 이것이 귀환 의사가 없었던 유대인들이라고 한다면, 본서의 저자는 `아헤이헴'(*), 즉 `그들의 동포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Williamson). 이들이 유대인들에게 예물을 준 까닭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은 그릇과 황금 - 칠십인역처럼 `은 그릇 과 금그룻'으로 번역함이 더 나을 듯하며(Grosheide, Brockington), `그릇'(*, 켈리)은 `패물' 로 번역함이 무난하겠다(출 3:22; 11:2).

(주); 기타 물건 - `물건'(*, 레코쉬)은 일반적 의미의 `재산' 혹은 `재물'을 뜻한다(창 12: 5; 14:11; 대하 20:25).

(주); 짐승(*, 베헤마) - 대개 물건을 운반키 위한 짐승과 희생 제사시의 제물로 쓸 짐승등 이었을 것이다.

(주); 보물 - 금.은 외의 귀금속을 통틀어 가리킨다(창 24:53; 대하 21:3; 32:23).

(주); 돕고(*, 하자크) - 원래 `강하게 하다', `격려하다'의 의미로서, 특별한 일을 앞둔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행위를 나타낸다(겔 34:4;단 10:19; 호 7:15).

(주); 즐거이 드렸더라(*, 히트나데브) - 이는 `자원하다'의 의미인 동사 `나다브'(*)의 재귀적 사역형로서 아무런 마음의 걸림이 없이 기꺼이 주는 행동을말한다. 특히 이 형태의 동사는 하나님께 자원하는 심령으로 예물을 드리는 행동을 표현할때 사용되었다(출 35:21; 삿 5:2; 대상 29:9).

성 경: [스1:7]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성전 기명(器皿) 반환]

(주); 고레스 왕이 또 - `또'(*, 웨)는 일반적으로 `그리고'의 의미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가 본절의 맨 앞부분에 놓여 있다. 개역 성경은 이같이 번역함으로써, 고레스 왕의 이스라엘에 대한 선행(善行)을 부각시키고 있다.

(주);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 `여호와의 전 기명'은 성전 제사시에 활용되던 각종 그릇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금으로 도금(鍍金)된 놋그릇들이었으나, 그중의 상당수는 바벨론 왕들에 의해서 도금된 금이 벗기워짐에 따라서 보통의 놋그릇이 되고 말았다(왕하 24:13). 한편, `꺼내니'(*, 호치이)는 `나오다', `빼내다'의 뜻인 `야차'(*)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는 깊숙이 보관 되었던 것을 명령을 통하여 끄집어 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될 사항은, 이 단어가 구속 등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나 물건이 자유롭게 됨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Fensham, 출 3:10).

(주); 옛적에 - 엄밀히 말하여, 이 말이 히브리 본문에는 없다. 문맥적 의미를 보강키 위해 번역자가 삽입한 것으로 봄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은 세 차례였는데, 그 중 두 번째(B.C. 597)와 세 번째(B.C. 586) 때에 포로와 함께 성전의 기명들을 가져갔다.

(주); 느부갓네살이...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 군대와 함께 예루살렘의 제2차 함락 장면을 지켜보았다(왕하 24:10-12). 그러나 그는 제3차 예루살렘 함락 때에는 예루살렘에 오지 않았었다. 그때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의 기명을 앗아간 사람은 느부갓네살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었다(왕하 25: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의 명령에 따라서 그 같은 일을 했으므로 성전 기명을 가져간 것은 느부갓네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 느부갓네살이 성전의 기명을 가져다가 신당에 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그 물건들에 대한 욕심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것들을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느부갓네살은 그것들을 신당에 보관해 두지 않고, 그것들을 녹여서 다른 물건을 만들었을 것이다. 성전 기명들을 자신의 신당에 보관한 것은, 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즉, 느부갓네살은 타민족이 섬기는 신들의 무력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명을 자신의 신당에 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할 때, 고대 중근동 민족에 의해서 흔히 통용되던 관습이었다(Williamson, 삼상 5:2).

성 경: [스1:8]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성전 기명(器皿) 반환]

(주); 고지기 미드르닷 - `고지기'는 창고 및 재정 관리를 총괄하던 고위직이었다(Fensh-am).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전체 중 여기서 단 1회 사용되고 있다. 한편 `미드르닷'은 문자적으로 `미드라에계 주어진 바 된'의 의미로서, 고대 페르시아인들에게는 매우 흔했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미드라'는 초기의 인도 아리안족들에 의해서 숭배되던 신의 이름이다(Fensham).

(주); 유다 목백 세스바살 - `목백'(*, 나시이)은 팔레스틴으로 옮겨질 유대인의 새로운 공동체를 다스리도록 고레스에 의해서 임명된 총독과 같은 직분이다(Williams-on, Keil, 5:14). 이는 `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나사'(*)에서 파생되었으므로 문자적으로는 `올려진 자'의 의미이다. 한편, `세스바살'(*)은 바벨론식 이름으로서 `샤마쉬(태양신)가 그 아들을 보호하신다' 혹은 `신(월신)이 그 아버지를 보호하신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1) 스룹바벨(3:2)과 동일 인물이라는 견해(Keil, Rawlinson, Schultz, Kidner). 와 스룹바벨과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견해(Williamson, Fensham, Meyer) 등으로 그 해석이 갈린다. 그러나 (1) 본문 이후로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2) 그토록 중요한 기명들은 귀환자들을 인솔하는 책임자에게 인계되었으리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첫번째 견해가 더 무난하리라 본다.

성 경: [스1:9]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성전 기명(器皿) 반환]

(주); 금반이 삼십 - `금반'의 `반', 즉 `접시'(*, 아가르텔레이) 는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안나온다는 점에서, 페르시아어의 음역임이 분명하다. 칠십인역은 그 단어를 `프쉬크테레스'(*), 즉 `술 식히는 기구들'로 번역하였다(Rawlinson). 한편, 벌게이트역에서는 `피알라이'(Phialae), 즉 `항아리들'로 번역했다.

(주); 칼 - KJV 는 우리말 성경처럼 `칼'로 번역하였으나, 차라리 NIV 처럼 `냄비'로 봄이 더 자연스러울 듯하다.

성 경: [스1:10]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성전 기명(器皿)]

(주); 금대접 - `대접'(*, 케포레이)은 덮개가 있는 잔을 뜻한다(Keil,민 9:15).

(주); 그보다 차한 은대접 - '차한'(*, 미쉐님)은 `되풀이하다', `바꾸다'의 의미인 `솨나'(*)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2 등급'의 뜻이다.

(주); 기타 기명 - `기명'(*, 켈림)은 일반적 의미의 각종 '그릇' 혹은 `기구'를 가리킨다(민 4:14; 왕상 19:21; 왕하 4:3).

성 경: [스1:11]

주제1: [고레스의 조서]

주제2: [성전 기명(器皿)]

(주); 도합이 오천 사백 - 9, 10절에 나열된 것들의 실제 합계는 2,499에 불과하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가 각 기명들의 숫자를 잘못 기록했다든지 아니면 합계를 잘못 필사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본서 저자가 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기명들만을 특별히 계수해 넣은 것이 2,499개이고 총 기명수는 약 5,400 정도였으리라 봄이 더 무난하다(Edwin Yamauchi). 한편 외경 에스드라서는 그 합계를 5,469로 제시한다.

(주); 사로잡힌 자를...데리고 올 때에 - `데리고 올'(*, 헤알로트)은 `올라가다'의 의미인 `알라'(*)의 수동형이다. 이것의 주어는 `사로잡힌 자'로서 이는 유다 백성들이 세스바살에 의하여 팔레스틴을 향해 인도되어 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위의 `알라'는 모세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때도 사용된 단어이다(출 33:1). 여기서 본서의 저자가 바로 이 같은 단어를 특별히 사용한 까닭은, 저자가 바벨론에서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으로 보려는 신학적 의도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Williamson).

성 경: [스2: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본장과 1장 과의 문맥 연결은 다소 어색하다. 왜냐하면 1장에서는 고레스가 성전 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넘긴 사실이 기록된 반면에(1:8) 본장 초두에는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포로민들이 귀환하는 장면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을 동일인로 본다면 쉽게 해결된다(1:8 주석 참조).

(주);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 - 유다 사람들은 세 차례, 즉 B.C. 605년과 597년 그리고 586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곳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왕족및 귀족 그리고 제사장 계급 혹은 기술자 등이었다(왕하 24:14; 25:6, 7; 단 1:3).

(주); 자손 중에서 - 이것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 모두가 돌아오지는 아니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주); 놓임을 받고...돌아와 - `놓임을 받고'는 원문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은 번역자의 의도적 삽입 문구이다. 한편, `돌아와'(*,슈브)는 부당하게 빼앗긴 물건을 돌려 받을 때 사용되기도 한 단어이다(창 20:7; 출 21:34; 삼상 6:3; 삼하 9:7).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 예루살렘과 유다도...각기 본성 -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의 행선지가 오직 예루살렘만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후 유다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었다(느 3:2-19; 7:20-35). 한편 `도'(*, 메디나)는 당시 유다가 독립 국가가 아닌 페르시아의 일개 피정복지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어이다(느 11:3). 아울러 이 단어는 유다가 인접 지역에 소속되었다가 그나마 그 자체의 행정단위로 새롭게 인정받은 상태임을 시사한다(Kidnr). 한편 `각기 본성'은 문자적으로 `각각의 그의 성읍'이란 의미이다. 즉, 원래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말한다.

성 경: [스2: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인물들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자들인 듯하다(Fensham, 느 7:7).

(주); 스룹바벨 - 이 이름의 의미는 `바벨론의 자손', 혹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이다. 이 사람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며(스 3:2; 학 1:1). 여호야긴 왕의 손자(마 1:12; 눅3:27)이다. 역대상 3:19에서 그가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 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스알디엘'이 후사없이 죽은 관계로 그의 동생인 `브다야'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법을 좇아서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은 때문이었을 것이다(신25:5-10). 이에 따라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역대상 3:19의 언급처럼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이 되는 셈이다.

(주); 예수아 -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보다 후기 형태로서(Schultz), `여호수아' 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완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5:2). 그의 중조부는 대제사장 스라야로서(대상 6:14).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살해당하였다(왕하 25:18-21). 한편 `예수아'의 부친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사닥'이다(3:2; 대상 6:15; 학 1:1).

(주); 느헤미야 -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약 한 세기 후에 활약했던 `느헤미야'와는 별개의 인물이다(느 3:16; 7:7)

(주); 스라야 -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 라는 의미이다. 느 7:7 에서는 `아사랴'로 나온다.

(주); 르엘라야 - 느 7:7 에서는 `여호와께서 천둥을 치셨다'라는 의미를 갖는(Rudolph) `라아먀'로 나온다. `르엘라야'라는 이름의 의미는 밝혀져 있지 않다.

(주); 모르드개 - 바벨론의 주신(主神) `말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이다.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에 2:5)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주); 빌산 - `묻는 사람' 혹은 `그들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 미스발 - `수효'(數爻)의 의미로서, 느 7:7 에서는 `미스베렛'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주); 비그왜 - 페르시아식인 이 이름의 의미는 `행복스럽다'이다. 한 가족의 족장인 그는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약 2천 명의 자손을 데리고 왔다(14절; 느 7:19).

(주); 르훔 - `자비로운'이라는 뜻이다. 느 7:7에서는 `느훔'으로 나온다.

(주); 바아나 - `압제'(壓制)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평행 구절인 느 7:7과 외경 에스드라상 5:8 에서도 나온다.

성 경: [스2: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바로스 자손 - `바로스'가 언제 살았던 사람인지 또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바로스'는 가계의 이름이다.

성 경: [스2: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스바댜 자손 - `스바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라는 뜻이다. 본서 8:8과 외경 에스드라상 8:34 에서도 나온다.

성 경: [스2: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라 자손 - `아라'는 `여행자'라는 뜻이다. 느 7:10과 외경 에스드라상 5:10에도 나온다.

성 경: [스2: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바핫모압 자손 - `바핫모압'은 `모압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이 사람은 모압 지방에서 관리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그의 자손으로서 바벨론에 남아 있던 200명이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기도 하였다(스 8:4).

(주); 예수아와 요압 자손 - 당시 `바핫모압 자손'을 구성했던 두 가족인 듯하다.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와 동명 이인이다(2절).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이다. 그의 자손 중의 일부는 후에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다(느 7:11).

성 경: [스2: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엘람 자손 - `엘람'은 `높은 지대'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고라 자손, 곧 레위인들이었던 것 같다(대상 26:3; 느 12:42).

성 경: [스2: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삿두 자손 - `삿두'는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삿두 자손' 의 일부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기는 했으나, 에스라의 신앙적 권면에 따라 그들과 헤어지는 결단을 내렸다(10:27).

성 경: [스2: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삭개 자손 - `삭개'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스가랴'의 축약형인 듯하다. 바로 이 `삭개'는 신약 시대의 `삭개오'라는 이름으로 변천하였다(마카비하 10:19; 눅 19:2). 이 이름은 느 7:14에도 나온다. 특히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코르베'로 되어 있다.

성 경: [스2:1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바니 자손 - `바니'는 `세우다'의 의미이다. 느 7:15과 외경 에스드라상 5:12에도 나온다. 그러나 느 7:15 에서 만은 `빈누이'로 되어있다.

성 경: [스2:1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브배 자손 - `브배'는 `아버지와 같은' 혹은 `자애로운'의 의미이다.

성 경: [스2:12]

주제1: [귀환자의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및 백성들]

(주); 아스갓 자손 - '아스갓'은 '하나님은 강하시다' 의 뜻이다. 이 '아스갓' 자손의 나머지는 에스라가 귀환할 때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왔다.

성 경: [스2:1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비그왜 자손 - `비그왜'에 대해서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2:1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도니감 자손 - `아도니감'은 `주꼐서 일어나셨다'의 의미이다. 이 자손의 일부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하였다(8:13).

성 경: [스2:1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딘 자손 - `아딘'은 `즐거운'이란 뜻이다. 이 아딘 자손은 후에 에스라가 제창한 율법 준수 운동에 인(印)을 침으로써 참여하였다(8:6; 느 7:20; 10:16).

성 경: [스2:1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멜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 - 히브리 원문대로 할 경우, `히스기야를 통한 아델 자손'으로 번역된다. 여기서 `히스기야'는 유다의 명군(名君) `히스기야' 와는 별개의 인물이며 `아델 자손'은 42절의 `아델 자손'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 의미는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이다.

성 경: [스2:1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베세 자손 - `베새'는 `짓밟힌'이란 의미이다. 이 `베새 자손' 은 레위인들로서, 성전에서 비교적 비천한 일을 담당했던 것 같다(49절).

성 경: [스2:1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요라 자손 - `요라'는 `가을비'라는 의미이다(박윤선). 이 `요라'는 느 7:24에서는 `하립'으로 불리워졌다.

성 경: [스2:1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하숨 자손 - `하숨'은 `넓은 코'라는 의미이다(박윤선). 이 `하숨'은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 옆에 섰었던 `하숨'과는 구별되어야한다(느 7:22; 8:4).

성 경: [스2:2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깁발 자손 - `깁발'은 `크다'란 의미이다. 느 7:25에는 `기브온'이라는 지명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깁발'을 `기브온'이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35절까지에서는 귀환자들이 출신지별로 구분되고 있다.

성 경: [스2:2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베들레헴 사람 -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의미이며 이 성읍은 유다 땅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베들레헴 사람'은 유다 지파의 후예들이다.

성 경: [스2:2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느도바 사람 - `느도바'는 `떨어짐'이란 의미이다. 이 성읍은 `베들레헴'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느도바 사람'도 유다 지파에 속했다.

성 경: [스2:2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나돗 사람 -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지경 중에서 레위 사람들을 위하여 할당된 6개 성읍 중의 하나였다(수 21:18). 이 `아나돗'이라는 지명은 가나안 족속의 여신 `아나드'(Anath)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는 이 성읍에서 `아나드'여신에 대한 숭배가 성했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곳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4.8Km 지점이다.

성 경: [스2:2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아스마뛕 자손 - `아스마웽'은 `죽음은 강하다'란 뜻이다. 예루살렘 북동쪽 약 2.5Km 지점의 베냐민 직경에 위치해 있다.

성 경: [스2:2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자손 - `기랴다림'은 `여러 성읍 중의 성읍'의 의미로서, 베냐민 지경의 남단에 위치한 `기럇여아림'을 말한다(삼상 6:21; 7:1). `그비라'는 `마을' 혹은 `작은 촌락'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서쪽 약 5Km지점이며,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수 9:17). 그리고 `브에롯'은 `우물들'이라는 뜻으로서, 그 위치는 기브온 남쪽 약 2.5Km 지점이다(Aharoni).

성 경: [스2:2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라마와 게바 자손 - `라마'는 `높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8.8Km이며,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다(수 18:25). 그리고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다(삼상 7:16,17; 19:18-24). 한편 `게바'는 `반석'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으로서(수 18:24,28) 예루살렘 북쪽 약 11 Km 그리고 기브아 북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 남국의 아사왕은 라마에서 가져온 돌로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도 하였었다(왕상 15:22; 대하 16:6).

성 경: [스2:2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믹마스 사람 - `믹마스'는 `감추어진'이란 뜻으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9.6Km 지점이다.

성 경: [스2:2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벧엘과 아이 사람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이다(창 28:19,22).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9.2 Km 지점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언덕 정상 가까이에는 매우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거주지로 각광을 받았다. 한편, `아이'는 `무더기' 혹은 `폐허'의 의미로서 그 위치는 벧엘 동남쪽 약 3.2 Km 지점이다(수 7:2).

성 경: [스2:2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느보 자손 - `느보'(*)는 `놉'(*)의 다른 지명이다. 우리가 이같이 봐야되는 까닭은 본 문단(21-35절), 특히 24-35절 베냐민 지경에 속한 성읍들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느보'를 베냐민 땅에 있었던 제사장의 성읍 `놉'으로 본다(삼상 21:1). 이 성읍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4.2Km 지점이고 그 의미는 `번창해짐'이다.

성 경: [스2:3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막비스 자손 - `막비스'는 그 지명의 뜻이나 그 성읍의 위치가 모두 불분명하다. 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했던 성읍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성 경: [스2:3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다른 엘람 자손 - 이것은 7절의 `엘람 자손'과 동일시 되어 왔다. 그 까닭은 양쪽의 수효가 동일하게 1,254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같이 봐야 될 더 분명한 근거는 없다. 여기서 저자가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특별히 사용한 까닭은, 7절의 `엘람'이라는 `인명'과 구별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 경: [스2:3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하림 자손 -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이란 의미이며 그 성읍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성 경: [스2:3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 - `로드'는 샤론 평야의 남쪽이며, 욥바 동남쪽 약 18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하딧'은 `로드' 북동쪽 약 6.2Km에 위치해 있고, `오노'는 `로드'의 북서쪽 약 10.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이 세 성읍들의 지명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성 경: [스2:3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여리고 자손 - `여리고'는 `향기의 도시', `달(月)의 고을' 그리고 `종려 나무의 성'등의 의미이다. 올브라이트(Albright) 교수는 그중에서 `달의 고을' 을 맞는 것으로 보고 `여리고'라는 지명을 고대 셈족의 월신(月神), 야리(Yarih) 숭배와 관련시킨다. 한편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동쪽 약 27Km 지점이다.

성 경: [스2:3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한 지도자 및 백성들]

(주); 스나아 자손 - `스나아'의 의미는 `가시가 많은' 이다. 그 위치는 여리고 근방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 `스나아 자손'은 후에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에 조력하였다(느 3:3).

성 경: [스2:3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제사장들 - 비록 이들은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담당하는 직분상, 그리고 그들의 특별한 신분상 따로 구별되어 언급되고 있다.

(주);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 이것은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대제사장 예수아가 속했던 일족이었다. 여기의 `예수아의 집'은 `여다야 자손' 이 대제사장의 가문임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언급이다. 아울러 `예수아의 집' 은 `여다야 자손'이라는 복합적 명칭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바로 그 대제사장 가문이 포로 후의 대제사장 예수아의 혈통적 뿌리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Fensham). 한편, `여다야'는 `하나님이 아셨다'의 의미로서 그는 다윗에 의해서 두번째로 제사장에 임명된 사람이다(대상24:7).

성 경: [스2:3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임멜 자손 - `임멜'은 `어린 양'의 의미이다. 그는 다윗에 의하여 당시 24반차로 편성된 제사장 직책 중 16번째의 반차에 배정되었다. 그 이래로 그는 그 반차에 속하는 제사장들의 선조가 되었다. 포로 귀환 후 그의 후손인 `임멜자손' 중 `하나니' 와`스바댜'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했다가 에스라의 개혁 조처에 따라 그녀들을 다시 내쫓기도 하였다(10:19, 20)

성 경: [스2:3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바스훌 자손 - `바스훌' 은 분명치는 않으나, 애굽어에서 파생된 이름으로서 `호루스(Horus) 신의 몫'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의 이 `바스훌'은 제사장 `임멜'의 아들로만 명시되어 있고, 역대상의 제사장들 명단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바스훌 자손'은 독립된 가문은 아니었으나, 포로 귀환 후 그 당시의 형편상 별도의 반차에 배정되었으리라 추측된다(Keil). 여기의 이 `바스훌 자손' 중의 일부도 다른 자손들 처럼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의 조상인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며 심지어 가두기까지 하였던 인물이었다. 예레미야는, 그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있다(렘 20:1-6).

성 경: [스2:3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하림 자손 - `하림'은 `바친' 혹은 `봉헌된'의 의미가 있다. 이 `하림'은 다윗에 의하여 세 번째의 반차에 배정된 제사장이었다(대상 24:8). 이 사람의 후손도 에스라 시절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우(愚)를 범했다(10:21).

성 경: [스2:4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레위 사람 -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일정한 기업올 받지 못한 채 다른 지파들중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다(민 35:2-7).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자, 북쪽 땅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 유다로 넘어왔고(대하 11:16), 이에따라 레위 사람들 전체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만일 북국에 살던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북국의 멸망과 함께 앗수르로 끌려가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왕하 17:23).

(주); 호다위야 자손 - `호다위야' 는 `여호와는 뛰어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호드야'(느 7:43) 와 동일 인물이다.

(주);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 - 이들은 `호다위야 자손'에 속하는 두 자손들이다. 여기서 `예수아'는 추측컨대 히스기야 당시에 십일조를 관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대하 31:15).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이다(2절).

성 경: [스2:4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노래하는...아삽 자손 - 노래하는 것도 레위인의 직무 중의 하나였다(대상 25:1-7). 따라서 `아삽 자손'은 레위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아삽 자손'을 별도로 구분시켜 언급한 까닭은 그 직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한편, `아삽'은 `모으는 자' 혹은 `수집자'란 뜻이다. 이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찬양의 제사를 주관하였고(대상 16:4, 5, 7, 37), 많은 시편을 짓는 등 이스라엘의 음악 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네 아들과 함께 성전 봉헌식에 관계하기도 하였다(대하 5:12).

성 경: [스2:4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제사장 및 레위인들]

(주); 문지기의 자손들 - 이 레위인들은 성전을 지키는 독톡한 직분의 소유자들이었다(대상 9;17-17; 시 84:10). 그들의 다른 임무 중의 하나는 창고를 지키는 일이었다(대상9:26).

(주); 살룸 - `보상된' 혹은 `보상'의 의미이다. 이 사람은 렘 35:4에 언급되어 있는 `살룸'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고레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문지기의 일을 하였다.

(주); 아델 - `절름발이 혹은 `왼손잡이'란 뜻이다.

(주); 달문 - `빛남'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은 `살룸'의 형제였다(대상 9:17).

(주); 악굽 - `추적자'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도 `살룸'의 형제였다.

(주); 하디다 - `탐색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주); 소배 - `포로로 데려가는'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스2:4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느디님 사람들 - `느디님'(*)은 `주어진 자들'이란 의미이다. 영어개역 성경(RSV)은 이를 `성전 수종자'(temple servant)로 번역하였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전쟁 포로의 후예들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민 31:25-47). 한편 여호수아시대에 이스라엘에 의해서 멸망받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여호수아를 기만했던 기브온 족속들은 나무 패며 물긷는 자들이 되었다(수 9:23-27). `주어진 자들'이라는 의미인 `느디님'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졌듯이 (민 8:16), 이들도 레위인들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그 레위인들에게 드려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8:20).

(주); 시하 자손 - 이들도 혈통상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이 이름이 이스라엘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그 주변처, 즉 애굽이나 아람 계통 민족에게서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 하수바 자손 - `하수바'는 `날씬'의 의미를 갖는 아랍어 풍(風)의 이름이다. 따라서 이 사람도 혈통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듯하다.

(주); 답바옷 자손 - `답바옷'은 `도장' 혹은 `반지'의 의미이다.

성 경: [스2:4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게로스 자손 - `게로스'는 `발목이 굽은'의 의미이다.

(주); 시아하 자손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주); 바논 자손 - `바논' 은 `구속'(救束)이란 뜻이다.

성 경: [스2:4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르바나 자손 - `르바나'는 `옷을 입다'란 의미이다.

(주); 하가바 자손 - `하가바'는 `여치' 혹은 `메뚜기'란 뜻이다.

(주); 악굽 자손 - `악굽'이라는 이름은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42절). 이것은 이 `악굽 자손'이 문지기의 직분을 수행하던 `악굽' 가문의 레위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성 경: [스2:4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하갑 자손 - `하갑'은 `메뚜기'란 뜻이다.

(주); 사믈래 자손 - `사믈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주); 하난 자손 - `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이다.

성 경: [스2:4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깃델 자손 - `깃델'은 `건장한'이란 의미이다.

(주); 가할 자손 - `가할'은 `잠복하는 자'라는 뜻이다.

(주); 르아야 자손 - `르아야'는 `하나님께서 보셨다'란 의미이다.

성 경: [스2:4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르신 자손 - `르신'이라는 이름은 `견고한' 혹은 `안정된'의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주변 민족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그 대표적 인물은 다메섹 왕 `르신'일 것이다(왕하 15:37; 16:5-9).

(주); 느고다 자손 - `느고다'는 `구별된'의 의미이다.

(주); 갓삼 자손 - `갓삼'은 `삼키는 자'의 의미이다.

성 경: [스2:4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웃사 자손 - `웃사'는 `힘'이라는 의미이다.

(주); 바세아 자손 - `바세아'는 `절름발이'라는 의미이다.

(주); 베새 자손 - 이에 대해서는 17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2:5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아스나 자손 - `아스나'는 `나(Nah)에게 속한 자'란 뜻이다. `나'(Nah)가 애굽의 신임을 볼 때, `아스나'는 애굽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하다.

(주); 므우님 자손 - `므우님'은 에돔의 동쪽 그리고 사해의 동남쪽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의 명칭이었다. 따라서 여기의 `므우님'은 그 소수 민족 출신의 이스라엘인임이 분명하다. 그 이름의 의미는 `거주'이다. 추측컨대 이들은 웃시야 왕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포로로 끌려온 자들일 것이다(Schultz, 대하 26:7).

(주); 느부심 자손 - `느부심'은 이스마엘 족속의 한 분파였던 `나비스 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창 25:15).

성 경: [스2:5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박북 - `병'(甁)이란 의미이다.

(주); 하그바 - `구부러진'이란 의미이다.

(주); 할홀 - `갈가마귀'란 뜻이다.

성 경: [스2:5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바슬릇 - `껍질을 벗김'이란 뜻이다.

(주); 므히다 - `노예로 산'이란 의미이다.

(주); 하르사 - `벙어리의' 혹은 `말이 없는'의 의미이다.

성 경: [스2:5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바르고스 - `코스(Kos)의 아들'이란 뜻이다. `코스'가 아카디아 및 아람 계통의 신(神)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바르고스'는 이방인임이 분명하다.

(주); 시스라 자손 - `시스라'는 `전장'(戰場)이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가 사사 바락과 드보라에 의해 궤멸당했던 가나안 동맹군의 지도자 이름과 동일하다는 점에서(삿 4:1-22; 5:19-31), 이 `시스라'는 가나안족 계통의 사람이었다고 본다.

(주); 데마 자손 - 이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성 경: [스2:5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느시야 - `뛰어남'이라는 의미이다.

(주); 하디바 - `유년기에 포로로 잡혔다'는 뜻이다.

성 경: [스2:5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다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 - 이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후예일 것이다. 솔로몬이 그곳 원주민을 자신의 역군으로 삼은 바있기 때문이다(왕상 9:20, 21). 또한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 중 상당수는, 솔로몬의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온자들의 후손들이었을 것이다(Fensham, Brockington). 이러한 견해는, 앗수르 왕 산헤립(B.C. 705-681)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강대국의 국왕이 타민족을 포로로 잡아다가 자신 혹은 자국의 신(神)에게 봉사토록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일반적 풍습이었다는 사실(Mendelsohn, Slavery in the Ancient Near East ; Meyer) 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산헤립은 타민족과의 전투 중 한꺼번에 41 명을 붙잡아 가서 그들을 자신의 신 `자바바'(Zababa)에게 봉사토록 하였다고 한다.

(주); 소대 - `배회하는'이란 의미이다.

(주); 하소베렛 - `서기관'이란 뜻이다.

(주); 브루다 - `분산'의 의미이다.

성 경: [스2:5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야알라 - `야생 염소'란 의미이다.

(주); 다르곤 - `거친' 혹은 `엄격한'이란 뜻이다.

(주); 깃델 - `건장한'이란 의미이다. 이 자손들은 `느디님 자손'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47절).

성 경: [스2:5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주); 스바댜 -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는 의미이다. 이와 동일한 이름이 4절에도 언급되지만 본절의 `스바댜' 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주); 하딜 - `동요'(動搖)란 뜻이다.

(주); 보게렛하스바임 - `가젤 영양(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영양)을 올무로 묶는 여자'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포케레트'(*)과 `하츠바림'(*)의 두 단어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포케레트' 는 분사의 여성형이라는 점에서, 학자들은 `보게렛하스바임 자손'을 `영양'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직업 여성의 후예들로 본다(Fensham, B.D.B)

(주); 아미 - `건축자'란 의미이다. 이 사람은 느 7:59 의 `아몬'과 동일 인물이다.

성 경: [스2:5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느디님 사람 및 솔로몬의 신복 자손들]

본절은 `느디님 사람'(43-54절)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55-57절)이 신분적 위치에서 동일함을 시사한다.

(주); 신복(*, 에베드) - 이것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종'을 가리킨다.

성 경: [스2:5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혈통 불명인들]

(주); 델멜라와...임멜에서 올라온 자 - 이들도 역시 세스바살의 영도 하에 바벨론에서 함께 귀환한 자들이었다. `델멜라'는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텔마'를 말하는 듯하다. 이곳은 페르시아만 근처에 있으며 심각한 염분(鹽分) 피해로 인하여 현재는 폐허로 변해 있다. 그 지명의 뜻은 `소금의 언덕'이다. 한편, `임멜' 은 `어린 양' 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다.

(주); 그룹 - `천사'란 뜻이다. 이곳은 현재의 `프톨레마이스'의 `치리파임'에 해당한다.

(주); 앗단 - 이 단어의 의미는 `확고한'이며 느 7:61의 `앗돈'과 동일지역으로 추정한다.

(주);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인지의 여부를 밝히는것은 매우 중요했다. 만일 이스라엘 혈통이 아닌 무리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배교(背敎)의 자리에 들어서도록 만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금하신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출 34:12-16; 고후 6:14).

(주); 증거할 수 없으니 - 여기의 `증거할'(*, 하기드)은 `고하다' 혹은 `보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나가드'(*)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인 문제를 분명히 풀어서 밝히는 행동을 가리킨다(삼상 8:18; 욥 33:23; 미 3:8; 6:8). 이때 델멜라 등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자들이, 자신들이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명치 못한 까닭은 (1)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아오긴 했으나 실재로는 혈통상 이방인들이거나,(2) 실제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자신들의 혈통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스2:6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혈통 불명인들]

(주); 여기에 나와 있는 자손들은 -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名數)'에 포함되지 않았다(2-58절).

(주); 들라야 - `여호와께서 자유롭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주); 도비야 - `여호화는 선하시다'란 뜻이다. 여기서 `도비야 자손'은 B.C. 586년의 예루살렘 몰락 이후 암몬으로 도망쳤던 유대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렘 41:15). 그러나 그 사실이 입증되지 못한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2절)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주); 느고다 - `구별된'의 의미이다. 비록 이 이름이 `느디님 자손'들 중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48절 ; 느 7:50), 본문의 `느고다'와는 상관이 없다.

성 경: [스2:61]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혈통 불명인들]

(주); 제사장 중에는 - 앞의 언급(59, 60절)이 일반 서민들의 경우였던 것과 약간 대조된다. 본절에 언급된 자들은 스스로가 제사장의 후예들임을 주장하였다.

(주); 하바야 자손 - `하바야' 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란 뜻이다.

(주); 학고스 자손 - `학고스'는 `가시 나무'란 뜻이다. 이 자손들은 자신들이 다윗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학고스'(대상 24:10)의 후손들임을 자처하였을 것이다.

(주); 바르실래 자손 - `바르실래'는 `강철'이란 뜻이다. `바르실래'라는 인물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도피하던 다윗을 정성스럽게 도와준 사례가 있다 (삼하 17:27-29). 그러나 본절의 `바르실래'는 그 사람의 사위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알길이 없으나 그는 길르앗 출신의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하면서, 장인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바르실래의 유산을 물려 받았을 것이다(민 27:4; 36장).

성 경: [스2:62]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혈통 불명인들]

(주); 이 사람들이 - 61절에 나오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그리고 `바르실래 자손'들을 가리킨다.

(주); 보계 중에서...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 세 자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되었던 결정적 원인이다. 비록 그들은, 제사장들의 후손임을 주장했으나 그것을 문서상으로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성직을 박탈 당하고 말았다. 한편, `보계'(*, 함미트야하심)는 문서화된 족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족보 기록은 한 인간의 혈통적 뿌리를 밝혀 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히 여겨졌었다(대상 5:17). 한편 `이름'(*, 케타밤)은 `자신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이다.

성 경: [스2:63]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혈통 불명인들]

(주);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 혹자는 `방백'에 해당하는 `티르솨타'(*)가 세스바살의 페르시아식 이름이라고 생각한다(Rawlinson). 그러나 이는 무리한 추측이다. 왜냐하면 (1) 이 `티르솨타'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며,(2) 또한 이 단어는 느혜미야에게도 적응되었기 때문이다(느 8:9; 10:1). 그러므로 이 `티르솨타'는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고위 직책의 소유자를 뜻한다고 봐야할 것이다(Fensham). 그렇다면 결국 이 사람은 목백 세스바살, 곧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주);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 그 당시에도 `예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다(2절). 다만 여기서는 그 당시에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추측컨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이 부착된 에봇(삼상 23:6, 9, 10)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또한 제사장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에서 없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스바살'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림과 둠밈'의 판결 수단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 듯하다. 그런 후에 `세스바살'은 `바르실래 자손' 등의 혈퉁적 정통성을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본서 이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성경 어디에서도 `우림과 둠밈'을 언급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스바살의 시도는 무위(無爲)로 끝났으리라 본다.

(주); 지성물을 먹지 말라 - `지성물'(*, 미코데쉬 하코다쉼)은 `가장 거룩한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희생 제사후에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리킨다(레 2:3, 10; 7:33, 34). 이는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제물의 분배에서 제외되는 것만을 의미치 않으며 제사장 역할 전체를 수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성 경: [스2:64]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자의 총계]

(주); 회중의 합계...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 - 본절의 숫자는 3-60 절에 언급된 모든 숫자의 합인 29,818 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1) 3-60 절에서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만을 다루었으나 합계를 낼 때는 그들과 함께 귀환한 북쪽의 열 지파에 속하는 자손들의 숫자까지 포함시켰다는 견해(Seder, Olam, Raschi, Ushei), (2)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를 집계하였다는 견해(Mich). (3) 3-60 절에서는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만을 나열하였으나 합계에서는 어린이 및 부녀자들까지 집계했다는 견해(Williamson), (4) 합계 숫자는 느헤미야서의 그것(7:66)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정확한 것으로 보고 다만 3-60 절에 나열된 숫자 중에서 필사자의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Keil, Schultz)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어느것 중에서도 만족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Fensham).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중'(*, 카할)이라는 단어가 성년 남자는 물론 여자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해 보인다.

성 경: [스2:65]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자의 총계]

(주);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 - `노비'(*, 아브데이헴)는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노예들'이다. 이들은 가축 등과 같은 재산과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서, 위의 42,360명에 안들어감이 분명하다(Williamson). 한편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총수 42,360명에 비하여 대단한 숫자이다. 전체 인구의 약1/6 에 달하는 노비들이 함께 귀환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노비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 하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신 24:14, 15 참조).

(주); 노래하는 남녀 - 이들에 대해서는 (1) 노래하는 레위인들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고용되어 성전에서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께 찬양했던 성가대라고 하는 해석(Rawlinson),(2) 성전 예배와 관계된 노래를 하는 자라기 보다는 부유한 자들이 흥을 돋우기 위하여 고용한 자들이라는 해석(Williamson, Schultz, Keil) 등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첫째, 이들은 제의적(祭儀的) 공동체의 수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64절) 둘째, 부자들이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노래하는 남,녀를 고용하는 것이 고대 중근동의 관습(전 2:8)이었다는 점에서 둘째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포로 귀환 직후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제적 형편은 꽤 괜찮았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은 약19년 후에 학개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그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학 1:6). 이 같은 상황악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진 극심한 천재(天災)때문이었을 것이다(학 1:10, 11).

성 경: [스2:66]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자의 총계]

(주); 말 - 팔레스틴으로의 귀향 길은 말이 다니기에 적절한 평원 지대였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로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팔레스틴에서 사용 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암 6:12).

(주); 노새 - 번식력은 전혀 없으나 강한 적응성 때문에 팔레스틴과 같은 산악 지대에서도 짐 운반용으로 매우 적절한 가축이다.

성 경: [스2:67]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귀환자의 총계]

(주); 약대 - 팔레스틴 땅 안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은 짐승이나 팔레스틴으로 돌아오는 귀로에 짐 운반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주); 나귀 - 귀인(貴人)들에 의해서 애용되었다(삼상 9:3).

성 경: [스2:68]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성전 재건을 위한 예물]

(주);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 `여호와의 전'은 B.C 586년 바벨론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에 의해 파괴되었다(왕하 25:10; 대하 36:19). 그러나 이것은 건축 때에 사용된 재료가 특별한 관계로(왕상 5:17), 비록 파괴된지 약 50 년이 지났지만 그 흔적이 역력했을 것이다. 그때 몇몇 족장들은 많은 다른 무리들보다 앞서서 성전 터에 도착한 듯하다.

(주);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 이는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과 합치된다(1:2, 3). 한편 `그곳'은 (1)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땅(창 22:2; 대하 3:1)이었으며, (2) 다윗이 `인구 조사'라는 결정적 실수(대상 21:1)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렸던 오르난의 타작 마당(대상 21:18-22)과 동일 장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성전의 건축지로 지정된 곳이었다(대상 21:18, 19; 22:1).

(주);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의 건축을 위해서 많은 재물을 헌납한 것(출 35:5, 21-29)과 동일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나다브)는 성막 건축을 위한 헌물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사실을 나타내는 말과(출 36:21) 동일하다.

성 경: [스2:69]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성전 재건을 위한 예물]

(주); 역량대로(*, 케코함) - `노력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카하흐'(*)에서 파생된 부사로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 만큼을 가리킨다. 이 같은 자세는, 신약시대에 어려운 형편에 처했던 유대인들을 돕기 위해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 원리와 동일하다(고후 8:3).

(주);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 `역사'(*, 멜라카)는 `봉사하다' 혹은 `공급하다'의 의미인 `라아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일', `사업', `수고', `부'(富)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다. 한편 `곳간'(*, 오차르)은 `창고지기를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차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단순히 `재물 창고' 란뜻이 있다. 따라서 `역사하는 곳간'은 `성전 건축 사업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재화를 모아두는 창고'의 의미로 이해된다.

(주); 금이 육만 일천 다릭 - 원래 `다릭'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금의 무게를 잴 때 통용된 중량의 단위였으며 훗날에는 화폐의 단위로 쓰였다. 금과 1 다릭이 영화(英貨) 약11 파운드 정도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육만 일천 다릭'은 약 671,000 파운드, 즉 한화(韓貨)로 대략 6억 7천만 원쯤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주); 은이 오천 마네 - `마네' 는 바벨론에서 주조된 은화로, 은화 1 마네는 약 34 달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천 마네'는 미화(美貨)로 약 170,000 달러 정도 된다.

(주);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 - 이것은 특별히 지어 바쳤을 것이다(삼상 2:19). 한편 `일백 벌'은 느헤미야서의 `육십 칠 벌'(느 7:72) 과 차이가 있다. 이는 본서의 기록자 에스라가 대략의 숫자만을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스2:70]

주제1: [귀환자 명단]

주제2: [성전 재건을 위한 예물]

(주); 제사장들...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 `제사장...니디님 사람들'은 모두 성전 봉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을 본성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의 `본성'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마을을 가리킨다.

(주); 백성 몇 - 제사장 및 레위인과 대조되는 서민들로서 예루살렘이 고향인 백성을 뜻한다(Fensham).

(주); 노래하는 자들 - 레위인의 한 부류인 아삽 자손올 가리킨다(41절).

(주); 문지기들 - 이들도 레위인의 한 분파 자손들이다(42절).

(주); 이스라엘 무리 - 이들은 남쪽 지파와 함께 돌아왔을 북쪽 지파만을 의미치 않는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 이외의 나머지 전부를 가리킬 것이다(2절; 3:1; 6:16, 17; 7:13; 8:29, 35)

(주); 그 본성 들에 거하였느니라 - 예루살렘이 고향인 자들과 성전 봉사에 관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 그 나머지 백성들도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흩어졌음을 시사한다. 한편 `거하였느니라'(*, 야쉬브)는 `쉬다' 혹은 `거주하다'의 의미로서, 삶의 터전으로서 쉼을 얻으며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창 20:15; 수 21:2; 삼하 7:5).

성 경: [스3:1]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칠월에 이르러...예루살렘에 모인지라 - `7월'은 유대력의 `디스리 월'을 말한다. 보통의 달력으로는 9월 혹은 10월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7월'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귀환한 그 해의 `칠월'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까닭은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레 23:41) 초막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한편, `모인지라'(*, 예아스푸)는 `모이다' 혹은 `모으다'의 의미를 갖는 `아사프'(*)의 수동형으로서, 특별한 일에의 참여를 위하여 한마음이 되어 모여드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9:4; 삿 20:11; 대하 30:13). `일제히'는 문자적으로 `한사람처럼'의 의미이다.

성 경: [스3:2]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 - 대제사장 예수아를 말한다(2:2). 한편, `요사닥'은 `여호와께서는 공의로우시니'의 의미이다. 그는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바벨론에 끌려갔던 제사장이었다(대상 6:14,15).

(주); 그 형제 제사장들 - 이들을 예수아의 친형제로 보기는 어렵다. 모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예들이었다는 점에서 `형제'라는 말이 사용됐을 것이다.

(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의 법적인 아비이며, 실제 아비는 `브나야'였다.(2:2 주석 참조).

(주); 그 형제들 - 이에 대해서는 (1) 스룹바벨과 갈은 왕족들(Rawlinson), (2) 제사장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의 평민들(Williamson)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가 성전 재건에 범국민적인 참여가 있었음을 본 문맥에서 강조하고 있으며(1절), 또한 귀환자들의 대부분이 스룹바벨처럼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점등에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 `이스라엘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왕상 18:36) 또한 그들 상호간에 단절될 수 없는 유대(紐帶)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여기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선하신 보호와 인도를 부각시켜 준다. 한편 `단'은 정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아만든 제단이었을 것이다(출 20:25; 수 8:31).

(주); 하나님의 사람 - 이러한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선지자'들에게 적용되었다(삼상 2:27; 대상 23:14). 이것은 `모세의 율법'이 신적인 기원을 갖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주);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 희생 제사 의식과 관련된 율법 규정, 특히 제사드리는 절차 및 방법에 관한 조항들을 말한다(레 1:3-13).

(주); 번제를...드리려 할새 - `번졔를 드리기 위하여'로 번역하면 보다 자연스럽다. 성전 건축도 결국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목적때문에 필요하였다. 이 희생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1)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갱신하며(느 9:38), (2)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중보적 요소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소실 당한채 뿔뿔이 흩어졌던 포로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잊지 않고 나름대로 희생 제사를 드렸으리라 추측되며 이제 예루살렘에 제단을 만듦으로써 더옥 신선하고 의미 깊은 헌신을 드리게 되었다(Williamson).

성 경: [스3:3]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여 - 오히려 `비록 무리가 열국 백성을 두려워하였지만'으로 번역해야 본 문맥의 흐름과 잘 조화된다(NIV). `열국 백성' 은 문자적으로`그 땅 백성들'의 의미이다. 즉, 그들은 그 당시 팔레스틴 땅과 그 주변 지역에 살던 여러 민족들을 가리킨다. 그들 중 대표적인 민족은 사마리아인들이었을 것이다(4:2). 한편, `두려워하여'(*, 베에이마)는 급속히 엄습하여 공포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사용되는 단어 `에이마'(*)와 `~안에서' 혹은 `~의'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베'(*)가 합쳐진 말이다(창 15:12; 출 15:16; 수 2:9 욥 20:25).

(주); 단을 그 터에 세우고 - `그 터'는 원래 솔로몬 성전의 제단이 세워져 있던 곳을 가리킨다(2:68).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레스틴에 귀환한 직후부터 제단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이 되어서야 그 작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1절).

(주); 조석으로...번제를 드리며 - 본문의 `번제'는 매일 드려져야 하는 상번제를 가리킨다(출 29:38, 39; 민 28:3, 4).

성 경: [스3:4]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로서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출 23:14-16; 34:22; 신16:13-17). 특히 이 `초막절'은 `장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도 불리우며, 땅에서 산출되는 모든 곡식, 술, 기름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다. 이 절기는 유대력으로 디스리월, 즉 7월(보통 달력으로는 10월) 15일에 시작하여(민 29:12) 8일 동안 지켜졌으며,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聖會)가 있었다. 이 절기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수송아지, 수양 등을 제물로 바쳤으나, 곡식은 제물이 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축만을 제물로 삼으신 까닭은, 가나안 족속의 추수제와 초막절을 엄격히 구별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주); 정수대로 - 절기가 지켜지는 8일 동안 날마다 동일한 수효의 제물이 드려진 것이 아니었음을 가리킨다. 즉, 수송아지의 경우, 첫날에는 13마리가 둘째날에는 12마리가 바쳐졌다. 이렇게 해서 그 절기 동안 바쳐져야 했던 가축의 수는 모두 215 마리였다(민 29:13-38).

성 경: [스3:5]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그 후에는 - 귀환 후 최초로 지켜진 초막절 절기가 끝난 다음을 가리킨다.

(주); 항상 드리는 번제 - 평상시에도 아침 저녁 하루 두 차례씩 드려지던 상번제를 가리킨다(출 29:42; 민 28:3-6). 즉,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계기로 모든 희생 제사를 정상화 시켰음을 시사한다.

(주); 초하루 - 이것은 월삭 현상이 일어나는 매월의 첫날에 베풀어지는 종교적 축제를 가리킨다(민 10:10; 28:11-15; 삼상 20:5; 느 10:33; 사 1:13).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도 지켰다.

(주); 여호와의...절기의 번제 - `무교절'(레 23:5-8), `맥추절'(레 23:15-21),`나팔절'(레 23:23-25), `초막절'(4절; 레 23:33-36), `속죄일'(레 23:27-32)등에 드려져야 할 번제를 가리킨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을 강조하는 칭호이다. 본서의 저자는 이 문맥에서 바로 이와 갈은 칭호를 사용함으로써, 이 절기가 지켜진 것이 언약적 차원에서 였음을 강조하려고 한다.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언약 백성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의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레 23장) 본서 저자의 이러한 의도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주); 즐거이 드리는 예물 - 이것은 특정한 절기와 상관없이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Fensham, 레 22:18,21; 대하 35:8).

성 경: [스3:6]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칠 월 초하루부터 - 엄밀히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 제사를 회복한 것이 초막절 절기 때부터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즉 초막절은 칠 월 보름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적어도 약 보름간은 상번제가 제단에서 드려졌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매년 칠월 열흘에 드려졌던 속죄일은 안지켜졌다는 결론이 나온다(레 16장; 23:26-32; 민29:7-11). 그러나 속죄일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신앙적 열심의 부족과는 전혀 무관하다. 왜냐하면 성전이 아직 재건되지 못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사죄를 위해서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의식이 뒤따르는 속죄일 행사가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의 전 지대는...놓지 못한지라 - 이러한 언급을 통해 저자는, 성전 재건이 착수되는 현장으로 본서의 무대를 옮기려 시도한다.

(주); 오히려 - 엄밀히 말해서 히브리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성 경: [스3:7]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초막절과 뭇 절기의 번제]

(주);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 `석수' 와 `목수'는 필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선발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석수'(*, 호체빔)는 `돌을 뜨는 사람'(왕상 5:15). 혹은 `벌목하는 사람'(대하 2:18)을 뜻하며 `목수'(하라쉼, * )는 `철공'(사 44:12), `목공'(사 44:13), `벽돌공'(왕하 12:12), `장색'(사 40:19)등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주);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기름 주고 -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계획했던 상황과 유사하다(Kidner). 농토가 없음으로 해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돈과 두로(행 12:20)에 먹을 것을 주는 대신 성전 건축에 필요했던 건축 재료들을 수입해 왔을 것이다(왕상 5:8-11; 대하 2:10-15). 한편 `시돈'과 `두로'는 가나안 족속으로서 B.C. 9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각기 독립된 도시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B.C. 9세기에 정복된 후에는 거의 계속적으로 강대국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이 매우 발달했던 나라들로서, 솔로몬 왕 시절만 해도 엄청난 국부(國富)를 자랑했었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기에는 그들도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시돈'은 오늘날의 베이루트 남방 약 48Km지점에 위치해 있고 `두로'는 시돈 남쪽 40Km 지점에 있다.

(주);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대로 - 고레스의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하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 조항이, 구체적으로 두로와 시돈 사람을 겨냥하여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 `조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에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과 남아있는 백성들은 그들을 도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1:3, 4).그러나 오늘날 건축을 하기 위해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듯이 그 당시에도 성전 건축과 갈은 큰 공사를 위해서는 바사 정부의 허가가 요구되었을 것이며, 이 허가 속에는많은 양의 건축 자재를 조달하는 사업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본다. 본 구절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Batten).

(주); 백향목 - `굳건히 뿌리 박힌 강한 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학명(學名)은 `세드루스 리바니'(Cedrus Libani)이다. 이 나무는 최고 36m까지 자라며, 나무의 둘레도 최고 12m까지 된다. 또한 이 나무는 크기(암 2:9) 뿐만 아니라 모양과 향기에 있어서도 특출하다. 이 나무가 건축 재료로 적당한 까닭은, 나무 자체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다는 점 외에도 옹이가 없으며 아울러 내구력도 뛰어나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운 - `레바논'은 팔레스틴의 북서쪽에 위치한 험준한 레바논 산맥을 가리킬 것이다. 이 산맥은 폭이 약 1.6Km 이내인 해안 평야에 의해서 지중해 해안과 분리되어 있다. 한편 `욥바'는 `아름답다'는 의미를 갖는 항구 도시(욘1:3)로서 높이가 해발 약 43m인 바위로 이루어진 갑(岬)이 바다로 돌출해 있는 등의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부터는 서북 쪽으로 약 56Km 떨어져 있다. 한편 `수운'은 백향목 뗏목으로 엮어서 해안을 따라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운송 방식은 최초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에 의해서도 이용되었다(왕상 5:9).

성 경: [스3:8]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건축 감독자]

(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이른지 -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 귀환 사건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방식으로 포로 귀환 사건을 묘사한 것은, 포로 귀환의 주목적이 성건 재건이었기 때문이다.

(주); 이 년 이 월에 - 바벨론에서 귀환한 그 해의 이듬해(Williamson), 즉 B.C. 536년의 둘째 달인 `시브월'로서, 솔로몬도 이 때에 성전의 기초를 놓았다(왕상 6:1).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재건의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육개월이 지나서야, 그 작업에 착수한 셈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굳이 이 시기를 택하여 성건 재건 작업에 착수한 까닭은, 일반 달력으로 4, 5 월인 이때는 건조기가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Grosheide).

(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 이에 대해서는 본장 2절 주석을 참조 하라.

(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 - 역시 2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다른 형제 제사장 - 2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사로잡혔다가...돌아온 자들 - 본장 2절의 `스룹바벨의 형제들' 즉, 일반적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한 자들이다.

(주);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감독하게 - 원래 레위인이 성전 봉사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25세 이상이 되어야 했다(민 8:24). 그러나 후대에 들어와서는 레위인의 인구가 감소함으로 하한 연령이 20세로 낮춰졌다(대상 23:24, 27; 대하 31:17).

성 경: [스3:9]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건축 감독자]

(주); 예수아와 그 아들들 - 여기의 `예수아'는 대제사장 예수아가 아닌 `호다위야 자손'(2:40)의 한 대표인 레위인 예수아를 가리킨다.

(주); 갓미엘과 그 아들들 - `갓미엘'도 역시 레위인으로서 `호다위야 자손'의 또다른 대표였다(2:40).

(주); 유다 자손(*, 브네이 예후다) - 이것은 `브네이 호다웨야'(*)가 잘못 필사된 것이다(Keil and Delitzsch). 즉, 본서의 저자는 여기서 `예수아와 그 아들들'과 `갓미엘과 그 아들들'이 레위 사람 `호다위야' 의 자손들임을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다 자손' 은 `예수아와 갓미엘과 그아들들과 동격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호다위야 자손'으로 고쳐져야함이 당연하다.

(주); 헤나닷 자손 - 이들은 2장의 레위인 족보에 나타나지 않는다(2:40). 왜 이들이 그 명단에서 누락됐는 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전 재건 작업의 감독자가 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이들도 레위 사람의 일파라는 사실이다.

(주); 그 형제 레위 사람들 - 레위인들인 `아삽 자손'등을 말한다(2:41, 42).

(주); 일제히 일어나 - 이 말은 히브리 원문에는 없으나 건축 감독자들의 적극적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첨가되었다.

(주); 하나님의 전 공장 - 여기의 `공장'(*, 멜라카)은 `일' 혹은 `역사'(役事), `사업' 등을 의미한다(출 35:24; 왕상 9:23; 대상 23:4). 따라서 `하나님의 전공장'은 성전 재건을 위한 공사(工事)를 가리킨다.

(주); 감독하니라(*, 나차흐) - 이것은 원래 `인도하다', `보살피다' 등의 의미로서(대상 15:21; 23:4; 대하 34:13),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자, 혹은 조정자(調整者)의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들이나 고용된 일꾼들에 대해서 강압적 및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성 경: [스3:10]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기공 예배]

(주); 건축자가...지대를 놓을 때에 - `건축자'(*, 보님)는 7절에 언급되고 있는`목수' 중의 일부였음이 분명하다. `지대를 놓을'(*, 야사드)은 원래 `한 더미로 쌓다' 혹은 `위치를 정하다'(시 104:8)의 의미이지만, 본절과 같은 문맥에서는 `기초 공사를 하다'의 뜻으로 쓰여진다(대하 31:7; 욥 38:4; 시 24:2; 사 54:11).

(주);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 문자적으로는 `옷이 입혀진 제사장들'이다. 그런데 `예복을 입고'(*, 라마쉬)라는 동사는 원래 `옷을 입다'라는 의미지만 항상 제사장의 예복과 관련되어 사용된다는 점에서, 본절의 `예복을 입고' 는 어느 정도 적절한 번역이라 하겠다(레 6:10; 16:4).

(주); 나팔을 들고 - 뒤에 나오는 `여호와를 찬송하되'에 걸린다. 즉,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데 나팔을 사용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나팔'(*,하초츠라)은 `산산히 부수다'의 의미를 갖는 금속제 관악기였다. 따라서 이는 수양의 뿔로 만들어진 나팔(`요벨'; 출 19:3)이나 야생 염소의 뿔로 된 나팔(`쇼파르';대상 15:28; 대하 15:14; 호 5:8)과는 전혀 달랐으며 제사장들에 의해서 의식용(儀式用)으로사용됐다는 점에서 다른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주);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 - 이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제금을 들고 서서 - `제금'(*, 메칠타임)은 본 단어의 쌍수형(雙數形)을 통해서 엿볼수 있듯이, 두 개의 금속 원반으로 한 조가 되는 타악기였다. 마치 오늘날의 심벌즈(Cymbals)같이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서서'(*, 아마드)는 단순한 의미의 `기립'(起立) 행위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특별한 의식(儀式)의 집행을 위하여 임명되고 그래서 정위치한 것까지를 말한다(민 11:24; 27:22; 대하 8:14; 11:15;19:5; 20:21).

(주); 이스리엘 왕 다윗 규례대로 -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라는 인물의 특출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적 명칭이다. 물론 사울이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에 선택된 최초의 왕이라는 점에서 (삼상 13:14; 행 13:22)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었다. 한편, `다윗의 규례대로'는 2절의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에 상응하는 문구이다(Williamson). 즉, 모세는 성전예배의 기초적 혹은 핵심적 요소인 희생 제사 제도를 확립한 반면(2절), 다윗은 부가적 혹은 보완적 요소인 음악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다윗의 규례대로'는 음악사용에 관한 다윗의 명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대상 15:16-24).

(주); 여호와를 찬송하되 - `찬송하되'(*, 할랄)는 구약 성경에서 `송축하다'(대상 16:36), `찬양하다'(대상 25:3; 시113:1; 146:1), `칭찬하다'(창 12:15; 삼하 14:25) 등으로 번역되었다. 바로 이 단어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인 `할렐루야'(*)가 파생되었다(시 113:9; 115:18; 116:19; 135:21).

성 경: [스3:11]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기공 예배]

(주);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감사하여 가로되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찬송하면서 그리고 감사하면서 노래했다'는 의미이며 한 무리는 하나님을 `찬송' 했고 또 한 무리는 `감사'했다는 점에서 우리말 번역처럼 `화답', 즉 서로 주고 받는 식의 찬송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찬송'과 `감사'는 거의 동의적(同意的)이다.

(주); 주는 지선(至善)하시므로 - 여기의 `주'(主)는 말할 나위없이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러나 히브리 본문에 `주'란 말은 없다. 다만 `그분은'으로 번역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이다. 한편, `지선하시므로'(*, 키 토옵)는 문자적으로 `진실로 선하시므로'의 뜻이다.

(주); 그 인자하심이...영원하시도다 - 여기의 `인자'(*, 헤세드)는 계약적 관계로 인하여 베풀어지는 불변의 사랑을 가리킨다(Fensham). 다시 말하여 백성들의 엄청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치 않으시고 길이 참으심을 뜻한다(애 3:22, 23). 그리고 `영원하시도다'(*, 레올람)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있을 것이다'의 의미이다.

(주); 이스라엘 - 언약 공동체로서의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1:3).

(주);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것이나 노래하는 것은 승리의 상황에서 이루어졌다(삼상 4:5).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재건되어 하나님께 대한 희생제사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마귀 세력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이자 그 백성의 승리였다.

성 경: [스3:12]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기공 예배]

(주);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의 느부사라단에 의해서 파괴된 것(왕하 25:13; 대하 36:19)은 B.C. 586 년이었다. 따라서 지대가 눠여진 그 해(B.C. 536년)로부터 50년 전이었다. 그러므로 귀환자들중에 연로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을 본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주); 이 전 지대 - 이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는 거기에 사용된 재료의 질(質)이나(왕상 5:17; 7:10, 11) 그 규모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보잘것 없었던 것 같다(학 2:3). 뿐만 아니라 그 공사를 담당했던 석공(石工)의 기술 수준에 있어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왕상 5:6).

(주); 대성 통곡하며 - 문자적인 의미가 `큰 소리로 울면서'라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꽤 적절하다. 그런데 여기서 노인들이 `대성 통곡'을 한 까닭은 (1) 성전의 규모가 과거의 솔로몬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으리 만큼 작았으며, (2) 범죄로 인하여 이방 민족에게 철저히 멸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에 의해서 그들의 땅에 포로로 끌려 갔었던 슬픈 과거가 생각났었기 때문이다.

(주); 여러 사람 - 솔로몬 성전을 못봤던 대부분의 백성들을 뜻한다.

(주);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 젊은 사람들은 (1) 자신들의 슬픈 역사에 대해서 체험적이지 못했으며, (2) 제 2 성전의 규모가 작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낙천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부르니'(*, 루아)는 `소리치다'의 의미로서, 일이 잘 진행됨을 인하여 기쁨 중에 함성을 지르는 행동을 가리킨다(수 6:5; 삼상 4:5; 대하 13:15; 시 95:1).

성 경: [스3:13]

주제1: [성전 건축의 착수]

주제2: [성전 기공 예배]

본절은 노인들의 통곡하는 소리와 기뻐 외치는 소리가 함께 어울려져서 큰 소음으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노인들의 숫자는 분명히 작았을 것이 틀림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슬픔에 겨운 탄식 소리가 기뻐 외치는 소리보다 훨씬 컸던 때문이었다(Rawlinson).

(주); 백성... 멀리 들리므로 - 개역 성경 본문에 따라 이해하면 이 문구는 마치 이 다음의 문구에 언급된 내용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본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백성'은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인 양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본문구는 오히려 본절의 끝부분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즉, 백성들의 탄식과 기쁨의 함성이 섞여져서 멀리까지 들릴 만큼 그 소리가 매우 컸음을 시사하는 데에 본절의 주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 여기의 `백성'은 본절의 초두에 나오는 `백성'(*, 하암)과 동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아닌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회중들을 가리킨다. 즉, 탄식 소리와 기쁨의 함성 소리가 혼합된 나머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도어떤 것이 탄식 소리이며, 또 어떤 것이 기쁨의 함성인지를 분별치 못했다는 것이다.

성 경: [스4:1]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안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앞 장에서는 성전 재건 작업이 시작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성전은 약20년 후다리오왕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공된다 (6:15). 이제 본장은 성전 공사가 지연될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주);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 `유다와 베냐민'은 분명히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그런데도 저자가 굳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다와 베냐민'이라고 지칭한 까닭은, (1) 그 지파 사람들이 귀환자의 주종을 이뤘으며, (2) 레위 지파 사람들은 보통 인구 계산할 때도 제외되는 등 특례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상례였으며, (3) 귀환민들이 주로 거했던 곳이 원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에게 기업으로주어졌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대적'(*, 차레이)은 `고민하게 하다' 혹은 `포위 공격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라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를 끼칠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원수'를 가리킨다(민 33:55; 시 129:1; 사 11:13;63:18; 렘 30:16; 나 1:2). 이들은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래 팔레스틴 땅에는 이런 민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B.C. 722년) 그 백성들을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 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옮겨옴으로써 생겨난 민족이었다(왕하 17:23, 24). 즉, 사마리아 사람은 타지역에서 옮겨 온 사람과 북국 열 지파 사람들 중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 사이의 혼혈족이었다. 이들은 이방의 제신(諸神)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호와를 `땅의 신'으로서 섬겼다(왕하 17:29-33).

(주);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 -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성 경: [스4:2]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아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주); 스룹바벨과 족장들 -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영도하던 지도자들이었을(2:2)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 사업의 주체 세력들이었다(3:2).

(주); 나아와(*, 나가쉬) - 원래(적으로서) `공격하다', (종교적으로) `경배하다'또는 (어떤 목적으로) `가까이 오다'라는 의미로서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행동을 가리킨다(창 18:23; 민 32:16; 삼상 9:18; 왕상 20:28).

(주); 우리로...함께 건축하게 하라 -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요구가 마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진실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당시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위한 제단도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있었다(요 4:20).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에서 접근해왔다고 이해된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사마리아에는 앗수르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주해 온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말았다(왕하 17:24-33). 따라서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던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란 유일신이 아니라 여러 신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Edwin Yamauchi).

(주); 우리도...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 여기서 `너희' 라는 말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신교적 혼합주의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편 `구하노라'(*, 다라쉬)는 `찾다', `물다'등의 의미로서, 종교 혹은 섬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어떤 초월적 존재를 신뢰하는 것을 가리킨다(대상 16:11; 대하 30:19).

(주); 앗수르 왕 에살핫돈 -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왕하 17:24), B.C.681-669년간 재위(在位)했다.

(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 여기의 `하나님께'(*,로) 는 문자적으로 `그분께'의 의미이며, `제사를 드리노라'(*, 자바흐)는 `희생 제사를 드리다'의 의미로서, 모든 방식과 형태를 망라한 제사 행위를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이다.

성 경: [스4:3]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안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주); 너희는...상관이 없느니라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하는 데 있어서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역(同役)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은 (1) 참된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혼합주의적 종교를 신봉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종교적 연관성이 있을 수 없었으며, (2) 고레스로부터 성전 재건 사업에 동참하라는 조서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연관성이 없었으며, (3) 이방인 내지는 혼혈족이었다는 점에서 혈통적 연관성도 없었다.

(주); 바사 왕 고레스가...명하신 대로 - `고레스'의 조서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토로 자유롭게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며(1:2, 3). (2) 바벨론 백성들은 성전재건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지원하라는(1:4)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주); 우리가...홀로 건축하리라 -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볼 때 이 같은 응대(應待)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국수주의(國粹主義) 혹은 분리주의적 사상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라 다만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여호와를 향한 열심(민 25:11; 왕하 19:10, 14)에 근거한 태도였다.

성 경: [스4:4]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안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주);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 `유다 백성'은 귀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본서의 저자는 유다 자손이 귀환자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을`유다 백성'으로 표현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손'은 여기서 `능력' 및 `일을 추진하려는 `의욕'등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6:22; 왕상 18:46; 대상 18:3; 29:12; 렘 38:4).그리고 `약하게 하여'(*,메라핌)는 원래 `감하다', `나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라파'(*)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의욕을 상실토록 하며 무기력 상태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방해 행위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느 6:9; 렘 49:24; 50:43; 습 3;16).

(주); 방해하되(*, 메바라힘) - 이것은 `놀라다', `두려워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바할'(*)의 강의형이다. 따라서 이는 여러 가지 방법의 훼방을 통하여상대를 심리적으로 공포 혹은 불안 가운데로 떨어뜨리는 것을 가리킨다(창 45:3; 대하32:18; 시 83:15; 단 11:44).

성 경: [스4:5]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아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주);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던 기간이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시점은 정확히 즉위 제 4년 (B.C. 536년) 이었을것이다. 본서에 그런 기록이 없음에도 이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해서이다. 즉,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어떤 소식으로 인하여 매우 슬퍼했었는데(단 10:2). 그것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을 것이며, 그때가 바로 고레스 왕 3년이었다(단 10:1). 한편 `다리오가 즉위할 때' 는 B.C.522 년이다(본장 4-16절 강해, `페르시아의 왕들' 참조). 따라서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기간은 약 16년 간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의 `다리오'는 `고레스'(B.C. 539-529), `캄비세스'(B.C. 523-522)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 인물이다. 그는 캄비세스를 죽이고 페르시아 왕위를 찬탈한 `수메르디스' 와 싸워 이김으로써 왕에 오를수 있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메르디스'에 의해 살해 당했던 캄비세스의 휘하 장수이면서도, 아울러 고레스 왕(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준)의 부친 고레스 1세의 형제인 `아리야'의 증손이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다리오 1세는 즉위하자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을 재개할수 있도록 하였다(6:1-12)

(주);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 `의사'(*, 요아침) 는 `조언하다' 및 `상담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여기서는 페르시아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가리킨다. 한편 `뇌물'을 주는 행동은 공의(公義)를 어그러지게 하는 등 매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출 23:8; 삼상 12:3; 잠 17:23). 그리고 `뇌물을 주어'(*, 소크림)는 `삯주고 빌다' 혹은 `고용하다'의 의미인 `사카르'(*)에서 파생된 분사형 단어(Davidson)로서, 부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특정 인물에게 돈을 주어 자신의 편으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창 30:16; 신 23:4; 삿 9:4; 느 6:12).

(주);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 여기의 `경영'(*, 아차탐)은 `모의하다' 혹은 `계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페르시아의 공직(公職) `의사'와 어근이 동일하다.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이 같은 `말의 유희'(word play)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것이 페르시아 의사들의 부정적 영향력에 기인한 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듯하다. 한편 `저희하였으며'(*, 레하페르)는 `녹이다', `폐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파라르'(*)의 사역형으로서 성전 재건 계획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공작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 갔음을 시사한다.

성 경: [스4:6]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사마리아인들의 성전 재건 방해]

(주);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고소(告訴) 하니라 - `아하수에로' 는 에스더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던 그 왕임이 분명하다(에 1:1). 그런데 그의 재위 기간이 B.C. 485 년부터 464년까지였다는 점에서, B.C. 516년에 끝난 성전 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했다는 것이, 성전 건축에 대한 훼방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힘들다. 본서의 저자가 이 같은 고소 사실을 성전 건축과 관련된 문맥에서 언급한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 세력들의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한편, `고소하니라'(*, 시트나)는 `참소', `비방'의 의미로서 `대적하다'의 의미를 갖는 `사탄'(*)이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되었다. 바로 이 동사에서 `대적하는 자' 혹은 `참소하는 자' 의 뜻이있는 `사단'이 나왔다(욥 1:6).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한 내용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추측컨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정부에 대해서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의 고소를 하였을 것이다.

성 경: [스4:7]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본절로 부터 23절까지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또다른 고소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사악성과 나아가 하나님의 사업을 훼방하는 사단의 끈질긴 방해 공작을 의도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한편 본절부터 6장 18절까지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본서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7:12-26이다.

(주); 아닥사스다 때 - `아닥사스다'는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재위 했었다. 따라서 금번의 고소도 B.C. 516년에 바쳐진 성전 건축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혀려 3차 귀환 후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 되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와 연관되는 것이었다(느 4:1 이하).

(주); 비술람...미드르닷...다브엘...동료들 - `비슬람'(*)은 `평화의 아들'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1)`...에 따라(의거하여)'라는 뜻의 히브리어 `비셀롬'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보며, 따라서 다브엘이 미드르닷의 의견과 일치하여 글을 올렸다고 이해한다. (2) 이 말을 `예루살렘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뜻인 `비데바르 예루살라임'의 약자로 이해한다. (3) 개역 성경처럼 하나의 인명(人名)으로 본다.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중 (3)의 견해를 취함이 무난할 것 같다(Fensham). 한편 `미르닷'은 `신(Mithra, 미드라)의 선물'이라는 뜻이 있는 페르시아식 이름이며 이와 동일한 이름의 또다른 소유자는 세스바살에게 기명을 인계했던 `고지기'였다(1:8). 또한 `다브엘'은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식 이름이다.

(주);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 `아람어로 기록 되었는데 이는 아람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로 번역되어야 가장 무난할 것이다. 즉, 아람어로 기록된 이 문서가 처음에는 다른 언어로 쓴 것을 다시 아람어로 번역된 것임을 가리킨다. 이처럼 문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까닭은, 비록 정치.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가 중근동을 제패했으나 국제적 공용어로는 여전히 아람어가 사용됐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비록 로마가 세계를 정복했지만 헬라어가 그 당시의 공용어였던 것과 같다.

성 경: [스4:8]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고소한 그 글 - `그 글'에 정관사가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는 7절에 언급된 아람어 문서와 동일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훼방하려던 실질적 주동자들은 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 사람들이며, 여기의 페르시아 관리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범자들 혹은 대리자들로 이해될 수 있다. `방백'(*, 헤엘 테엠)은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임명된 지방 장관 혹은 총독을 뜻한다(Davidson). 한편 `르훔'은 `자비로운 자'의 의미를 가지며, 바벨론 제신(諸神) 중에서 발견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서기관'은, 왕이 각 지방의 소식을 직접 보고 받기 위해서 파견한 왕의 직속 부하였다(Herodotus). `심새'는 `태양의 아들'을 의미한다.

(주); 고소한(*, 알) - 이것은 `~을 대항하여'(against)의 의미를 갖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6절의 `고소하니라' 와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성 경: [스4:9]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그 동료 디나 사람 - 여기의 `동료'(쉐아르 케나와트혼)는 문자적으로 `친구들의 나머지' 뜻을 갖는다. 한편 `디나 사람'(*, 디나에이)은 사람이나 지역 이름이 아니라 `사사' 혹은 `재판관'의 뜻을 갖는 관직이다(NIV, Williamson, Fensham).`디나 사람'이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은 방백이나 서기관 밑에서 일하던 하위직이었던 것 같다. 몇몇 학자들은 이들이 국방(國防)업무에 종사했을 것 이라고 추정한다(Fensham, Frye).

(주); 아바삿 사람(*, 아파르사트카예) - 이것는 일반적 범주의 `관리'를 뜻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단어이다. 따라서 이것도 위의 `디나 사람'처럼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다.

(주); 다블래 사람 - 이들에 대해서는 (1) `트리폴리(리비아의 수도)에서 온사람들'의 의미라는 설(設)(Galling), (2) `영사'(領使), `집정관' 혹은 `감독'을 뜻한다는 설(Bowman) 등이 있다. 그러나 고대 앗수르는 포로를 끌어올 만큼 북부 아프리카를 정복한 일이 없으며 또한 트리폴리는 헬라식 지명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볼 때, 위의 두 견해중 나중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주); 아바새 사람 - 이들에 대해서도 (1) `신복'(chief officers)이라는 주장(NEB), (2)`페르시아 사람'이라는 주장(RSV, Schaltz, Rawlinson), (3) `유프라테스 강 동쪽지역으로부터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장(IDB)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1)의 견해는 그근거가 희박하며, (2)의 견해는 본 단어의 첫 글자 `알렙'(*)을 탈락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고,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주); 아렉 사람 - 이들은 분명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에렉'에서 옮겨온 자들이다.

(주); 바벨론 사람 - 앗수르는 한 때 중근동 전역(全域)을 정복 했었다. 바벨론이 나중에는 강국으로 변하여 오히려 앗수르를 정복했지만, 그들도 한 때는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바로 이때 그 백성들의 일부도 팔레스틴으로 강제로 이주 되어 왔다.

(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 - 여기서 `데해 사람'(*, 데하웨)은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며 다만 히브리어의 `아쉐르'(*)에 해당되는 관계대명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이 문구 `수산 사람 곧 엘람 사람'으로 번역됨이 무난하다(LXX, NIV, Williamson, Meyer). 이러한 견해는 `수산' (에 1:2) 이 엘람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는 사실로써도 명백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스4:10]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존귀한 오스납발 - `존귀한'은 원어상 `위대하며 혁혁한 무공(無功)이 있는'의 의미이다. 한편, `오스납발' 은 `앗수르가 추적하다'의 의미이다(Rawlinson). 이 이름은 `에살핫돈'(2절)의 별칭이 아니라 앗수르의 후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앗수르바니팔'(B.C. 669-626)이었다. 그에게 `존귀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까닭은 그의 탁월한 군사.정치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페르시아 왕에게 고소하는 데 동조한 마지막 부류들은 바로 바로 이 왕에 의해서 옮겨진 자들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1) 타민족들의 사바리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으며, (2)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는 앗수르 왕들에 의해서시행되어졌던 일관된 통치 정책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Fensham).

(주);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 - 여기서 `강'은 문자적으로 `그 강'이다. 따라서 이것은 강이 아닌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편'(*,아바르)은 `건너편'으로 봄이 정확하다. 그 당시의 `페르시아 및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팔레스틴 및 페니키아, 곧 두로와 시돈 지방에 대한 총칭으로 이해하였다(왕상 4:24). 특히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 지역을 `아두라'(Athura)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사마리아 성'은 팔레스틴의 북부에 있던 한 중심 도시만을 가리킨다. 이 도시는 예루살렘 북쪽 약 64Km, 지중해 연안에서 약 40Km 떨어진 높은 구릉 지대에 위치했었다. 또한 `다른 땅'은 팔레스틴 북부, 즉 옛 북국 이스라엘이 위치했었던 지역 중 사마리아 성읍을 제외한 전체를 가리킨다.

성 경: [스4:11]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초본(*, 파르시겐) - `사본'(寫本)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아람어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어이다. 12절의 고소문(告訴文)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고소 내용의 전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콰르쉐겐'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초본'(抄本)으로 번역됨이 타당한 것이다.

(주); 강 서편에 있는 신복 - `강 서편'에 대해서는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신복'(*, 아브다이크)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란 뜻이다. `종'이라는 표현은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신하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삼하 14:22; 19:14; 왕상 1:26).

성 경: [스4:12]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 - 여기서 `왕에게서 올라온'은 (1) 다만 지리적 이동을 주안점으로 보고 고레스가 B.C. 537년에 유다 백성을 해방시켜 팔레스틴으로 돌려보냈던 사실을 가리킨다는 견해(Keil, Rudolph), (2) 시대적 언급을 강조한 것으로 보고 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일단의 유다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것이라는 견해(W-illiamson, Kidner, Fensham, Bright)등으로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본절에서 아닥사스다가 유다 사람들의 귀환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나중의 해석이 보다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한편 `올라온'(*, 셀라크)은 `나오다' 혹은 `나아가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단어 (단 2:29; 7:3, 8, 20)이다. 그리고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4절).

(주); 우리의 곳 예루살렘 - 이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 했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기의 `우리의 곳'(*, 알레이나)은 다만 `우리에게'(to us)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소할 재료로 삼고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틴 땅으로 이주해 온 사실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성벽을 재건하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의 곳'을 원문대로 `우리에게'로 고쳐서 `왕에게서'와 `올라온' 사이에 놓아야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팔레스틴 지역으로'의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주);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 -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에 일단 정복됐었지만 번번히 그들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왕하 18:7; 24:1,10,20;대하 33:111). `패역하고'(*, 마라드타)는 `반란을 일으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마라드'(*)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당시 각지의 반란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페르시아 정부를 자극시키려고 한 것이다(Fensham).

(주); 건축하는데...지대를 수축하고 - 여기의 `건축하는데'(*,바나인)는 `건축하다' 혹은 `수리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동사 `베나'(*)의 분사형이므로 현재 시제로 번역하여 `건축을 시작하고 있는 중인데'로 함이 더 좋을 것이다(Williams-on, NIV). 그리고 `지대를 수축하고' 중 `지대'(*, 에솨야)는 아카디아어의 `우쑤'와 동족어로서 `낮은 부분' 혹은 `기초'의 뜻을 갖는다. 그리고 `수축하고'(*, 야히투)는 미완료형 동사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1) `파다'의 뜻이 있는 `헤타트'(*)라는 견해(Fensham). (2) `수리하다'의 뜻이 있는 `후트'(*)라는 견해(Davidson, Schults)등 두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재건 작업이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지 최소한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착수되지 못했음을 주목해 본다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 극심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도 기초를 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새로 기초를 놓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견해일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지대를 수축하고'는 `기초를 파고 있는 중이었다'로 번역될 수 있다.

(주); 성곽을 건축하오니 - 여기의 `성곽'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B.C 586년에 파괴되었었다(왕하 25:10). 이 성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보호를 위해서 매우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이제 예루살렘에 거민들이 다시 살게된 이상, 그곳에는 성곽의 재건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한편 `건축 하오니'(*, 오사크릴루)는 `완성하다' 혹은 `마치다'의 의미를 갖는 `켈랄'(*)의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본문구는 `성곽을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해야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건축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告訴)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훨씬 나중인 느헤미야 당시에도 성곽은 여전히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느 2:13).

성 경: [스4:13]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조공(*, 민다) - 이것은 바빌로니아어 `만다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고정적로 매년 제국의 국고에 들어갔던, 돈으로 내는 일반적 세금을 가리킨다(Fensham).

(주); 잡세(*, 벨로) - 임대 소득세를 가리키나(Driver) 인두세(人頭稅)로 보는 견해도 있다(Brockington).

(주); 부세(*, 할라크) - 토지 소유자에에게 부과됐던 조세의 의무 전반을 가리킨다.

(주); 바치지 아니하리니 - 국가 재정이 세금 징수를 통해서 확보됐다는 점에서 볼 때, 세금 납부의 거부는 당연히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노려서, 페르시아 정부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중지케 하려고 하였다.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것은 `왕들의 창고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는 문자적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경고는 페르시아 정부에게 대단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절 헬라와의 거듭된 전쟁의 결과 엄청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한편 `왕들'(*, 말레킴)은 복수형르로서 (1) 아닥사스다의 후손들 혹은 (2) 아닥사스다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복수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 경: [스4:14]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 사마리아의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마리아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은택을 입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페르시아 왕을 기쁘게 할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비유인 것이다(Rawlinson). 한편 `소금'은 고대의 의약품 및 식료품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교환 가치가 대단히 컸었다. 그래서 `소금 생산권'의 장악은 곧 권력의 장악과 진배없었다.

(주); 왕의 수치 - `수치'(*, 아르와트)는 `옷을 벗기다' 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수치' , `불명예'의 의미보다는 `손해'로 이해해야 한다(Davidson). 왜냐하면 (1) `아르와트'는 `손해'의 뜻도 있으며, (2) 본절에서의 `수치'는 결국 재정적 곤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 경: [스4:15]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열조의 사기(史記)를 살피시면 -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했었다(Williamson). 따라서 열조의 사기(史記)에는 바벨론 제국 시절 부터의 역사 기록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는 앗수르 제국의 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Fensham). 한편 `사기'(다크라나야)는 문자적으로 문서 보관소를 의미한다.

(주);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강대국에 대해서 강력한 저항을 했던 역사적 사실들과 관련된다(4:12 주석 참조). 그런데 모르겐스턴(Morgenstern)은 이 구절이 485년에 있었던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반란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페르시아왕이 아주 오래된 바벨론 왕들 시절의 기록을 소유치는 못했으리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심지어는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앗수르왕 `오스납발'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로써 반박된다(10절). 한편 여기의 `반역하는'은 12,15절의 `패역한'과 동일한 단어이다.

(주);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 - `손해된 것'(*, 메한제카트)은 `상처를 주다' 혹은 `손상을 주다' 그리고 `고통을 주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네자크'(*)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각 도'는 페르시아 제국 이전의 바벨론 및 앗수르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페르시아제국 내의 영지들(provinces)을 뜻한다.

(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 사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한 결과였다(왕하 25:20, 21).

성 경: [스4:16]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집요한 방해 공작]

(주); 필역하면 - 12절의 `수축하고' 및 13절의 `마치면'과 동일한 단어.

(주); 왕의 강 서편 영지(領地)가 없어지리이다 - `강 서편 영지'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을 가리킨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전에 다욋 왕 및 솔로몬 왕과 므나헴 왕 등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거의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미쳤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왕상 4:21; 왕하 15:16).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그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억지임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에 대한 모함은 13절에 이어 그 과장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Kidner).

성 경: [스4:17]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은 사마찌아 사람들의 고소가 아닥사스다에 의해서 정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음을 잘 보여준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장이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어서,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겁을 먹도록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주); 방백 르훔...다른 땅 백성 - 9절 주석을 참조하라. 고대에도 서신 양식에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기본적인 상례였다(Batten).

(주); 조서를 내리니 - `답신을 보냈다'가 보다 정확한 번역일 것이다(NIV). 한편 `조서'(*, 파트가마)는 `반드시 ~에게 돌려져야 하는'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 `파이티 가마'(Paitigama)에서 온 아람어이다(Fensham).

(주); 평안할 지어다(쉘람) - 히브리어의 `솰롬'(*)과 동일한 단어로 고대 중근동에서 이러한 인사법은 매우 보편적이었다.

성 경: [스4:18]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 `낭독시키고'(*, 메파르쉬)는 (1) 아람어로 된 고소장(7절)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알아들을 수 있는 페르시아 말로 번역시켰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Fensham), (2) 당시 페르시아 왕실의 관습에 따라 신하를 시켜 대신 읽도록 했다는 뜻으로보는 견해(Rawlinson), (3) `낭독시키고'를 `분명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는 히브리어 `파라쉬'(*)와 동족어로 보고 신하를 시켜서 그 뜻을 명백하게 파악토록 했다는 의미라고 하는 견해(Keil)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첫째, 바벨론의 통치가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관계로 페르시아의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적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며 둘째, 중요한 문서가 신하에 의하여 왕에게 읽혀지는 것은 당시의 관례였음(에 6:1)을 볼 때, 위의 세 가지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위의 견해 중 첫 번째의것과 세 번째의 것도 전적으로 배제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사람인 아닥사스다에게는 역시 보다 유창한 아람어 구사능력을 가진 신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성 경: [스4:19]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명하여 살펴보니 - 아닥사스다는 그때 문서 보관소에서 열조들의 사기를 찾도록 `명령'을 하였을 것이다(15절). 한편 여기의 `살펴보니'(*, 베카르)는 15절의 `살피시면'과 동일한 단어로서, 많은 것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조사하여 찾아내는 행위를 가리킨다(5:17; 6:1).

(주); 열왕을 거역하며 - `열왕'은 앗수르 제국에서 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을 거쳐서 페르시아 제국까지의 `왕들'을 가리킨다(15절). 한편 본문의 고발은 나름대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강한 민족 의식을 지닌 유대 백성은 앗수르와(왕하 18:7) 바벨론의 지배에(왕하 24:1,20) 강력히 반발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 `패역하고'(*, 메라드)는 `반역'의 의미를 갖는 명사이며 `모반'(*, 에쉐타두르)도 위의 `패역'과 거의 동일한 단어이다. 이와 같은 동의어의 반복적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만 전술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성 경: [스4:20]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큰 군왕...강 서편...땅도 주재하매 - 여기의 `큰 군왕'은 문자적으로 `강력한 왕들'의 의미이며, 다윗 및 솔로몬 그리고 북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남국 유다의 웃시야와 히스기야 등을 가리킨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땅에 포함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왕들이었다(왕상4:21, 24). 특히 솔로몬의 경우 시리아 사막 내의 중요한 오아시스 지대인 `다드몰'을 건축한 바 있는데(왕상 9:18)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Edwin Yamauchi)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영토에 관해서는 아래 지도를 참조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언급은, 사실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강 서쪽땅 전부를 정복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과장된 표현임이 분명하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모압 및 암몬 족속 그리고 에돔 족속 등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던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삼하 8:6-12; 왕상 10:14,15). 한편 `조공', `잡세', `부세' 등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4:21]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역사를 그치게 하여 -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쉽사리 사마리아 사람들의 소청을 들어준 것은, 그 당시 페르시아 전역에는 반란 사건이 많아서 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가 심히 예민해 있었던 때문이었다.

(주);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 여러 학자들은 본절의 평행 구절인 외경 에스드라상 2:24에는 이러한 문구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본 문구를 본서 저자의 의도적 삽입이라고 본다(Galling, Rudolph, Williamson). 즉, 본서의 저자는 (1) 중단됐던 성벽 재건이 나중에 느헤미야의 노력에 따라 아닥사스다왕에 의하여 재개될 수 있도록 승인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2) 페르시아 왕들이 자신의 정책적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던 관계로(에 1:19; 단 6:15) 홋날 아닥사스다의 또 다른 조서에 의해 정식으로 성전 건축이 허락된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아닥사스다의 성벽 재건 중지 명령이 포기될 것임을 예견케 해주는 의도적 암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될 것은 본서의 저자가 아닥사스다 왕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말을 자신의 의도에 맞춰 기록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성 경: [스4:22]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그 명령을 어기는 자에 대한 은근한 위협으로 끝을 맺고 있다(Williamson).

(주); 화를 더하여 - `화'(*, 하발라)는 `파괴하다' 혹은 `손실을 끼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해발'(*)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손해' 혹은 `손실'을 의미한다(Davidson). 그리고 `더하여'(*, 이세게)는 `커지다' 혹은 `증가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세가'(*)의 수동형으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력 팽창으로 인한 세수(稅收) 손실의 증가를 가리킨다.

성 경: [스4:23]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중단되는 성전 재건 역사]

(주); 초본(抄本)이...낭독되매 - `초본'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낭독되매'는 NIV처럼 `낭독되자 마자'(as soon as)로 번역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본절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 하자 마자' 를 뜻하는 단어 `에다인'(*)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문구는 악한 일을 향한 악인들의 불같은 열심을 잘 보여준다.

(주); 르훔...심새...동료 - 이들에 대해서는 8, 9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 이것 또한 악인들의 사악한 열심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급히'(*, 비베힐루)는 `흥분하다' 혹은 `서두르다'의 뜻이 있는 동사 `베할'(*)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악한 일을 위해서는 무척이나 발이 빠른(롬 3:15) 자들의 죄악에 취해버린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잠 4:16).

(주); 권력으로 억제하여 - 여기의 `권력'(*, 하일)은 문자적으로 `힘' 혹은 `군대'를 의미(Davidson) 하나 여기서는 `군대'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억제하여'(*, 베에드라)는 `팔로써'를 의미한다(단 2:32)). 따라서 본 문구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팔과 군대로써'가 될 것이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상으로는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라고 하는 데 그쳤으나, 대적자(對敵者) 들은 그 태도로 미루어 볼때 부분적으로 재건된 성벽조차 아예 부숴버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을 느헤미야 1:3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주);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 `역사' 는 성벽 재건 작업을 의미한다. 이 같은 공사의 중단은 B.C. 444년에 이루어졌던 느헤미야의 귀환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 경: [스4:24]

주제1: [방해 받은 성전 재건 공사]

주제2: [중단되는 성전 재건 역사]

(주); 이에(*, 베다인) - 오히려 `이처럼' 혹은 `그와같이'로 번역되는 것이 낫다. `이에'는 본절의 내용이 마치 3절 이전(以前) 사건의 직접적 결과인양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6-23 절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증으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절은 그 내용상 5절과 곧바로 이어짐이 분명하다.

(주); 다리오 제 이 년 - 페르시아의 연대표에 의하면 다리오 왕은 B.C.522년 부터 485년까지 재위하였으므로, `제 이년'은 B.C. 521(혹은 520)년이 되는 셈이다.

성 경: [스5:1]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재개되는 성전 건축]

(주); 선지지들...예언하였더니 -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게을리하는데 대한 질책성의 선포였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인하여(4:4, 5) 성전 재건을 중단한 후 대적들의 방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 고귀한 사업을 재개하지 않았었다(학 1:2). 그러나 이 예언 중에는 소망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학 2:9; 슥 1:17; 2:12; 3:3). 한편 학 1:15 과 슥 8:9에 따르면 성전 재건 사업이 재개된 때는 다리오 왕 2년(B.C. 520년) 6월 24일이다.

(주); 선지자 학개 - `학개'(*)라는 이름은 `축제의'라는 뜻을 가진다. 추측컨대이 이름은 `여호와의 축제'를 뜻하는 `학기야'(*, 대상 6:30) 의 축약형인 듯하다(IDB). 한편 이 사람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서는 별반 알려진 것이 없다. 우리들은 그가 B.C. 520년 경에 활동한 선지자였으며(학 1:1), 솔로몬의 성전을 목격했었을 것이며(학 2:3) 따라서 그만큼 활동 당시 매우 연로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주); 잇도의 손자 스가랴 - `스가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 또한 학개처럼 B.C. 520년 경에(슥 1:1) 활동한 선지자로서 스가랴서의 저자이다. 추측컨대 그는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던 것 같다(느 12:16). 그런데 그는 `잇도'의 손자가 아닌 그의 먼 후손일 것이다. 그 이유는 `손자'(*, 바르)가 `아들'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손' 및 `후손'의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느 12:16; NIV). 그렇다면 `잇도'는 분열 왕국 초기의 선지자였을 것으로 추측 될 수 있다(대하 9:29; 12:15; 13:22).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 `이스라엘 하나님'은 언약 공동체를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강조하는 호칭(3:11)이며 `이름을 받들어'는 `이름으로'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선지자의 메시지가 신적 기왼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 구체적으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하셨느니라'(학 1:13; 슥 1:1, 2)의 형태이다.

(주);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 - 유다 지파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의 사람들까지를 모두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귀환민들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유다 사람'만을 언급한 까닭은, 그들이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역사의 주역이며 또한 그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 경: [스5:2]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재개되는 성전 건축]

(주); 스룹바벨...예수아 - 이에 대해서는 2:2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일어나(*, 쿰) - 이것은 문자적 의미의 기립(起立)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어떤 중대한 일의 본격적 수행에 앞서 이뤄지는 마음의 결단을 뜻한다(삼상 16:12; 시44:26; 사 60:1). 백성들이 이 같은 마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도구삼아서 그들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학 1:14).

(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에만 계시는 분임을 시사하는 문구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의 `예루살렘'은 문자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의 뜻으로서 `전'(殿)을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시작하매 - 이것은 `일어나'의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측면이다. 이 같은 성전 재건사업의 재개는 학개가 예언 활동을 한 때부터 약 8일 만이었다(학 1:1, 14, 15). 또한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훼방으로 중단된지 약 16년 만이었다.

(주); 하나님의 선지자들 - 이 말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과 감동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주); 함께 하여 돕더니 -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 활동이 성전 재건이 재개된 후에도 계속됐다는 점에서 볼 때 (학 2:1, 10; 슥 1:1, 7; 7:1), 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독려로써 성전 재건 사업에 일조(一助)를 한 듯하다.

성 경: [스5:3]

주제1: [성전 공상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문의]

(주); 강 서편 총독 닷드내 -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던 당시의 유프라테스 강 서쪽을 통할했던 `총독'은 `우쉬타니'였다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다(Williamson, Fensham).B.C. 521년경에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진압된 바 있으며, 바사 제국은 이 진압이 있은 직후인 B.C. 520년에 바벨론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서편 지역을 관활할 새 총독 우쉬타니를 임명하였다는 것이다(J.M. Myer). 바벨론인들의 반란이 있었던 직후에 바사 황제는 그 속령들의 제반 움직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각 관할 총독들로 하여금 지역민들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해 보도록 지시를 내렸을 것이고,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닷드내 일행의 팔레스틴 방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수 있다. 따라서 여기의 `총독 닷드내'는 `우쉬타니' 밑에서 일하던 고위 관리였던 것 같다. 더구나 여기의 `총독'(*, 파하트)은 구약성경 내에서 `장관'(왕상 20:24), `방백'(에 8:9; 9:3;단 3:2, 3) 등의 의미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스룹바벨의 직함과 동일하며(6:7; 학 1:1,14), 강 서편의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이 팔레스틴까지 직접 올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위와 같은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주);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 `스달보스내'는 `왕국을 구원하는'의 의미인 듯하다. 추측컨대 이 사람은 `닷드내'의 부하로 `서기관' 정도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4:8). `그 동료' 또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닷드내'의 부하들로 짐작된다.

(주); 나아와(*, 아타) - 이것은 단순히 `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공작을 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4:2의 `나아와'와는 다르다. 본절에 나오는 `닷드내'와 그 일행은 성전 재건에 대해서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달리 부정적 시각을 갖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사실 본절부터 6:13 까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닷드내 등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Williamson). 그러므로 `닷드내'가 예루살렘에 온 까닭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불평에 대해서 실상을 파악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고 봄이 무난하겠다(Fensham).

(주); 누가 너희를 명하여 - 이것은 `누가 너희에게 명령을 주었느냐' 혹은 `누가 너희에게 권위를 주었느냐'(Williamson, NIV)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주); 성곽(城郭)을 마치게 하였느냐 - 여기서 `성곽'(*, 우솨르나) 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 아람어 문서에서는 많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만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은 `목재로 된 구조물', 즉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해 외부에 붙여지는 판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raeling, Tuland, Mowinckel). 바로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해서 루돌프(Rudolph)는 `닷드내'등의 페르시아 관리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성건 재건 작업이 재개된 이후 그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시점이었을것이라고 추정한다. 한편, `마치게 하였느냐'(레쉬클랄라)는 4:13의 `마치면'과 동일한 단어로 현재 진행의 의미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 경: [스5:4]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문의]

(주); 우리가...고하였으나(*, 아마르나) - 여기의 `1인칭 복수'는 본 문맥의 흐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사자의 실수에 따라 `3인칭 복수'인 `아마루'가 잘못 옮겨졌다고 본다(NIV, RSV). 이 경우,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면 `그래서 그들은 이런 식으로 물었다 : 이 건축에 종사하는 자의 이름들이 무엇이냐 ?'로 될 것이다. 당시에 실제로 성전 재건을 주도하던 인물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였다. 그런데 닷드내 일행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상소 내용에는 `세스바살'이라는 이름만 나온다(14, 16절). 따라서 우리는 이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동일인이라는 단서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성 경: [스5:5]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성전 건축에 관한 문의]

(주); 하나님이...돌아 보셨으므로 - 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눈이 ~ 의 위에 있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다 백성을 하나님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셨음을 가리킨다.

(주); 저희가...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들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것은 닷드내가 왕의 하달을 받을 때까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시 34:15).

(주);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 6-17절은 이러한 `닷드내'의 보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사업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알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주); 답조(答詔)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 문자적으로는 `이에 관해 쓰여진 답서가 올 때까지'이다. 따라서 여기의 `기다렸더라'는 원문에는 없는 것으로서, 페르시아 관원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는 일을 유보했었던 사실을 강조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번역이다.

성 경: [스5:6]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아바삭 사람 - 이 단어는 애굽 땅의 엘레판틴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에서 유사한 형태로서 발견되며, 그 의미는 `고하는 자'(Fensham) 혹은 `조사하는 자'(Meyer) 등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의 `아바삭 사람'은 페르시아 관원들의 구체적 직함이지 어떤 부족의 이름이 아니다(4:9 주석 참조).

성 경: [스5:7]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그 글 -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전 건축이 합법적인 것인지의 여부를 질문하기 위한 보고서를 가리킨다. 그런 이 원문에는 본 문구 뒤에 `그들이 보낸'이라는 말이 있다.

(주); 만안(萬安) 하옵소서 (쉘라마 콜라) - 문자적으로 `모든 평화' 란 뜻으로, 예컨대 `하나님께서 당신의(왕의) 주권을 언제나 지켜주시길 기원합니다'와 같은 인사말의 약자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Joseph Blenkinsopp). 아무튼 이와 같은 평강을 기원하는 인사법은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성 경: [스5:8]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아시게(*, 예다) - 이것은 체험적이리만치 확실한 `인식' 혹은 `인지'를 뜻하는 동사이다(호 6:3 주제 강해, `야다(*)의 개념' 참조).

(주); 우리가...가서 -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다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관련하여 관리로서의 공무 집행을 위한 것이었다.

(주);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 -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즉 (1) `지극히 크신'을 예루살렘 성전의 엄청난 규모를 형용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Fensham). (2) `지극히 크신'을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고 한글 개역처럼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Kidner, Schultz) 등 두 가지이다. 그러나 첫째, 피정복국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이 페르시아 정부의 일관된 식민지 정책이었으며 둘째, 원문상 형용사 `지극히 크신'이 단어 `하나님' 바로 뒤에 있으며 셋째, 건축 중이던 성전이 그 규모에 있어서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3:12)는 점 등에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주); 전을 큰 돌로 세우며 - 여기의 `큰 돌'(*, 에벤 겔랄)에 대해서는 (1)`큰'이라는 형용사를 `구르다'의 의미가 있는 어근 `갈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굴려야만 성전 재건 공사장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무거운 돌'이라고 하는 견해(Grosheide, Davidson), (2) `큰'이라는 형용사를 아카디아어 `갈랄루'에서 파생된 `겔랄'(*)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고 원초적인 건축이 아닌, 재건에 유용한 `조그만 돌' 혹은 `자갈'이라고 하는 견해(Fensham), (3) 형용사 `큰'을 어근 `갈랄'(*)에서 온 것으로 보고 또한 문맥적 상황을 감안하여 `잘 다어진 돌'이라고 하는 견해(Williamson)등 세가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첫째, 옛 솔로몬 성전을 목격했던 노인들이 실망을 할만큼 새 성전의 규모는 작았으며(3:12) 둘째, 비록 재건(再建)이기는 하지만 조그만 돌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셋째, 본 문구 뒤에 나오는 `나무'가 완전히 가공된 재료임을 가리키는 등, 본 문맥상의 흐름에서 볼 때 위의 견해들 중 세 번째의 것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한편 `세우며'는 2절의 `건축하기를'과 동일한 단어로서, 다만 `집을 짓다'를 의미하는 일반적 건축 용어이다.

(주); 벽에 나무를 얹고 - 이것은 대개의 경우 (1) 건축물의 내외벽에 미장용 판자를 붙이는 것(Rudolph). (2) 지진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할 목적으로 벽과 벽 중간 중간에 나무를 대는 것(Thompson, Kidner, Schultz, Williamson)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위의 것들 중 두 번째 견해가, 고대 중근동에서 위와 같은 건축 방식이 지극히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보다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성 경: [스5:9]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누가...명하여 -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5:10]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두목(頭目)의 이름...물은즉 - 성전 재건의 합법성 여부를 확인키 위한 기본적 조처이다(4절).

성 경: [스5:11]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천지의 하나님의 종 -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천지의 하나님'이라고 칭한 것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에게는 친근감 있게 들렸을 것이다(Fensham).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황실은 `하늘의 신' 또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신'으로 여겨지는 `오르무즈드'(Ormuzd)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타협적 의미이기 보다는 오히려 도전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12절을 통해 미루어 보더라도,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사건은 하나님의 무력(無力)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신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 행사로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Kidner). 따라서 `천지의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은 다른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거나 중지되서는 안됨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Schultz).

(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 솔로몬 성전은 B.C. 966년에 착공되어(왕상 6:1) 7년 후인 B.C. 959년 가을에 완성되었었다(왕상 6:38). 따라서 제 2 성전이 건축되던 그 시기를 약 B.C. 518년 경으로 본다면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것은 그때부터 약 20여 년전이 되는 셈이다.

(주); 이스라엘의 큰 왕 -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의 탁월한 업적 때문에 그에게 `큰'(*, 라브)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음이 분명하다(4:10).

(주); 완전히(*, 쉬클레) - 원문에는 본절의 맨 뒷부분에 놓여 있으며, 이는 문자적으로 `마쳤다'의 뜻을 가진다.

성 경: [스5:12]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따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우리 열조 - 문자적으로 `우리의 조상들'이다.

(주); 하늘에 계신 하나님 - 여기의 이 문구는 1:2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를 지칭키 위해서 사용했던 `하늘의 신'과 동일하다. 다만 1:2의 것은 히브리어로 본절의 것은 아람어로 기록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같이 하나님을 지칭한 것은 11절에서 `천지의 하나님'이라고 한 까닭과 동일하다(11절 주석참조).

(주);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르기주) - `흥분하다' 혹은 `요동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레가즈'의 사역형으로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했던 사실을 가리킨다(왕하 24:20).

(주); 갈대아 사람 - `갈대아' 는 남부 아라비아 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황무한 지역에 살던 반(半) 유목민들 혹은 그 지역 그리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발흥했던 신 바벨론 제국(Neo-Babylonian Empire, B.C. 626-539)을 모두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북부에 살았던 아람족과는 구별된다.

(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 여기의 `바벨론'은 국가로서의 `갈대아'와 동격이다. 한편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조를 세웠던 `나보폴라살'(B.C. 626-605)의 아들로서, 당시 왕위에 있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갈그미스에서의 애굽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쟁취함(B.C. 605)과 동시에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지중해 인근의 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B.C. 605년과 598년에 유다를 공격하여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B.C. 586년에는(실제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은 B.C. 588년부터 시작되었다) 완전히 멸망시켜 버렸다. 한편 그 이름의 뜻은 `나부(바벨론의 신)가 계승권을 지키신다'(Dougals)이다.

(주); 손에 붙이시매 - 이것은 유다 왕국의 멸망이 철저히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결과였음을 분명히 시사해주는 말이다. 한편 `붙이시매'(*, 예하브)는 `주다'의 뜻을 가진다.

(주); 이 전을 헐며 - 이에 대해서는 왕하 25:9과 대하 36:19을 참조하라.

(주); 백성을...바벨론으로 옮겼더니 - 바벨론왕은 네 번에 걸쳐서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었다. 첫 번째로 B.C. 605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여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의 일부를 사로잡아 갔다(단 1:1-5). 두 번째 바벨론 유수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을 배신한 것이 핑계가 되었으며, 이때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포함하여 용사 7천명 및 기술자 1천명, 그리고 다수의 귀인들을 붙잡아 갔다(왕하 24:10-17).또한 세 번째 바벨론 유수 사건은 시드기야 왕의 배신 때문에 일어났으며 이때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키고 비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백성들을 포로로 데려갔었다(왕하 25:8). 그리고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유다 총독 그다랴를 살해했을 때(B.C 582년) 또 한차례 유다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렘 52:30).

성 경: [스5:13]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元年) -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한 것은, 페르시아 스스로가 자신들을 바벨론의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계승자로 자처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자연스럽다. 근래에 발견된 고레스의 조서는 고레스가 자신에 대해서 `나는 세상의 왕, 위대한 왕, 합법적인 왕, 바벨론의 왕, 쉐르와 아카드의 왕, (세상의) 네 가장자리의 왕 고레스이다'라고 언급했었음을 보여준다(Pritchard). 특별히 여기서 유다 사람들이 고레스를 `바벨론 왕'이라고 언급한 까닭은, 성전 재건을 허락한 고레스를 느부갓네살과 직접 연결지우려고 한 의도 때문이었다(Fensham). 이 같은 의도는 결국 느부갓네살이나 고레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였으므로 성전의 파괴가 필연적이었듯이 성전의 재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려는 궁극적 목표와 연결된다.

(주);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 이것은 구체적으로 고레스 왕이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재건할수 있도록 팔레스틴으로 귀환을 허락한 것, (2) 성전 재건의 비용에 쓸 수 있도록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주도록 한 것(1:4)을 가리킨다.

성 경: [스5:14]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본절의 해석에 대해서는 1:7, 8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5:15]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본절에서는 성전 기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반환된 사실에 대해서 다뤄지고 있다. 이는 유다 민족의 성전 기명이 다른 민족의 신당에 보관되는 것은 유다 민족에게 있어서 엄청난 수치였으나, 이제 그 종교적 수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에 본절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1:7 주석 참조). 실로 이 같은 종교적 수치의 모면은 다른 나라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는 정치적 수치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주); 본처(*, 아트레) - 문자적으로 `그것의 위치'를 의미하는 본 단어는 구체적으로는 솔로몬 성전이 위치했던 바로 그 장소를 가리킨다. 아울러 이는 성소의 재건이 반드시 원래 세워졌던 장소에서 이뤄졌던 중근동의 풍습을 염두에 둔 말이다(Gall-ing).

성 경: [스5:16]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 여기서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행위로 인한 재건 사업의 중지(4:1-5)에 대해서 언급지 아니한 까닭은, 여기서는 다만 그 당시 진행 중이던 성전 재건 사업이 고레스의 허락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래서 그 허락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공사는 합법적임을 부각시킬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때'는 `세스바살'이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성전 지대(址臺)를 놓는등 건축 사업을 시작한 때를 말한다. 또한 `건축하여 오다'(*, 미트베네)는 `건축하다'의 의미를 가진 동사 `베나'(*)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미완료적 진행형, 즉 `건축해 오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함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6여년이라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성전 재건은 중지, 방치된 상태였다.

성 경: [스5:17]

주제1: [성전 공사의 재개와 상서로운 조짐들]

주제2: [다리오에게 올린 문의서]

(주);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 문자적으로는 `왕에게 좋으시거든'의 뜻이다. 즉, `왕이 판단컨대 좋게 느껴지거든'의 의미(7:18; 에 1:19)를 지닌다.

(주);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 `국고' (*, 베이트 긴자야)는 `모으다', `덮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게나즈'(*)에서 파생된 단어와 `집'의 의미를 갖는 단어가 합해진 말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문서 보관소'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페르시아 왕, 특히 고레스의 조서 사본이 바벨론에 있던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었던 까닭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운 것과 결코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고레스가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취했으며 그리고 다른 종교의 파괴된 신전들을 다시 짓도록 명령했던 사실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토판이 근래에 발견된 곳도 옛 바벨론의 고토(故土) 라삽(Rassam)이었다(Fensham).

(주); 이 일에 대하여 - 이것은 다리오 왕이 성전 재건 공사를 계속 진행시킬 것인지의 여부의 문제를 가리킨다.

(주); 기쁘신 뜻(*, 레아우트) - `생각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레아'(*)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결정' 혹은 `의향' 등의 뜻을 갖는다.

(주); 보이소서(*, 이쉴라흐) - `문서 혹은 사람을 보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쉘라흐'(*)의 사역형 미완료 시제로 결국 이것은 닷드내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이 보낸 보고서에 대한 왕의 답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불만을 왕의 답신을 통해서 잠잠케 하려는 닷드내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엿보인다.

성 경: [스6:1]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조서를 내려 - 팔레스틴 지역의 페르시아 관리 닷드내의 보고에 대한 다리오 왕의 반응이다. 여기의 '조서'는 문자적으로 '명령'을 의미한다.

(주); 서적 곳간...보물을 쌓아둔 곳 - 이는 원문상으로 '보물이 쌓인 서적 곳간'이라 번역된다. 이것은 중요한 문서들이 보물과 함께 보관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만큼 고대 국가에서도 문서 보관에 관한 업무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주); 바벨론에서...조사하게 하였더니 - 이것은 다리오 왕이, 페르시아 제국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문서 보관소 중 '바벨론'에 있던 것부터 찾아보도록 명령했었음을 가리킨다. 페르시아 왕들의 '명령문'이 여러 곳에 나뉘어져 보관되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역대 왕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후 조건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다니면서 통치를 한 때문이었다. 즉, 페르시아 왕들은 겨울에는 '바벨론', 봄에는 페르시아의 수산 궁(느 1:1),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사(政事)를 처리했다(Fensham). 따라서 만일 다리오 왕의 조서가 바벨론에서 내려졌다면, 그 조서는 겨울에 내려진 것이라는 조심스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조서는 바벨론이 아닌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성 경: [스6:2]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메대 도(道) 악메다 궁에서...얻으니 - 이것은 고레스의 조서(1:1)가 B.C. 538년 여름에 내려졌음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Fensham). 왜냐하면 '악메다'는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였기 때문이다(1절 주석 참조). 한편 '악메다'는 아람어이며, 그것의 헬라어 형태는 '에크바타나', 그리고 페르시아어로는 '하그마타나'이다.이 도시는 원래 메대 제국의 수도였고, 고레스에 의해서 B.C. 550년에 정복되었다. 한편 여기의 '궁'(*, 비르타)은 '요새'의 의미가 있는 아카디아어 '비르툼'에서 온 단어로서, '악메다'가 요새화된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Fensham). 이와같은 도시 '악메다'는 메대 왕국의 창건자 데이오세스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특히 왕이 살던 궁전은 7중의 원형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고 한다(Herodotus).

(주); 한 두루마리 - 여기의 '두루마리'(*, 메길라)는 '토판'(土板)이나 '가죽' 혹은 여기에 쓰여진 '두루마리'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중근동국가 중에서 애굽인들은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바벨론 사람들은 토판을,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을 사용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본절의 '두루마리'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로 봐야 할 것이다(Rawlinson, Williamson).

(주); 거기 기록하였으되 - 이 문구 뒤에는 '비망록' 혹은 '의정서'(議政書)라는 의미의 단어 '디크로나'(*)가 독립적으로 나온다(De Vaux). 3절에서 5절까지의 내용과 1:2 이하의 조서 내용은 대체로 독립적인 두 기록이라고 여겨진다(E.J.Bickerman). 후자는 왕의 선포를 전령이 전달한 내용인 반면, 전자는 왕의 결정을 행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상세하게 작성된 공적 문서 내용일 것이다(Kidner).

성 경: [스6:3]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고레스 왕 원년 - 고레스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B.C. 539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즉위 년도를 계산하였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B.C. 538년이 그의 즉위 원년인 까닭은 첫 번째로 맞이하는 니산월(정월)이 속하는 해(年)를 즉위 첫해로 삼는 것이 바벨론의 계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 이는 고레스가 여러 민족들의 신당 재건도 허락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전'은, 고레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여러 민족들에 의해서 숭배되던 많은 신들의 신당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고레스는 그러한 많은 신당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 앞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덧붙였던 것이다(Galling).

(주); 고는 육십 규빗...광도 육십 규빗 - 열왕기상 저자가 말하는 솔로몬 성전의 규모의 두 배 이상이다(왕상 6:2). 고레스는 피정복민 이스라엘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큰 규모의 성전을 짓도록 명령을 한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같은 치수대로 건축되지 못한 까닭은, 페르시아 왕실이 약속했던 건축비를 부담하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 경: [스6:4]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큰 돌 새 켜 - '켜'(*, 니드바크)는 '벽'을 의미하는 듯하다. 즉, 이 문구는 성전의 삼 면(面) '벽'을 돌로 쌓으라는 의미로 이해된다(Schultz). 한편 '큰돌'은 건축 재료로서 바로 쓰일 수 있는 다듬은 돌을 가리킨다(5:8). 반면 '큰 돌 새켜'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즉, '켜'를 '층'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경우 성전의 3층까지는 돌로, 마지막 4층은 나무로 이뤄져 있는 셈이 된다(LXX). 혹은 개역성경의 번역처럼 '켜', 곧 포개어 놓은 물건의 하나하나의 층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학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 양식은 고대 중근동 어디에서도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 견해는 별 타당성이 없다.

(주); 새 나무 한 켜 - 이것은 돌로 구성된 세 면 이외의 또 다른 벽, 즉 성전 출입문이있는 벽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전 출입문이 있는 벽은 목재로 건축되게 되는 셈이다.

(주);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 이것은 왕실이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왕실로 마땅히 돌아가게 될(4:13), 강서편에서 거둬지는 세금 중 일부를 성전 재건 비용으로 주라는 뜻이다(8절). 그러나 이같은 약속은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다.

성 경: [스6:5]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본절에 대해서는 1:7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6:6]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여기서부터는 다리오 왕의 명령이 언급되고 있다.

(주); 닷드내...아바삭 사람들 - 이들에 대해서는 5: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문의 기자는 다리오 왕의 조서(詔書) 내용 중 중요한 사항만 발췌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왕의 조서의 서두가 이처럼 허술하게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 그곳을 멀리하여 - 이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하기 보다는 '성전 재건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말라'는 뜻(Williamson) 내지는 '고소를 기각한다'는 의미로(Rundgren,Fensham) 이해하는 것이 더 무난하리라 본다. 특히 후자의 뜻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사마리아인들 중 어떤 이들이 예루살렘 땅에 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서 법적 고소를 정식으로 닷드내 일행에게 올렸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Williamson).

성 경: [스6:7]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유다 총독 - '유다 총독'은 말할 나위도 없이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성 경: [스6:8]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너희 - 닷드내 등의 페르시아 관리들(6절)을 말한다. 세금(*, 미다트). 4:13, 20에서는 '조공'으로 번역된 단어로서 돈으로 바치는 세금을 말한다.

(주); 경비를...신속히 주어 - '경비'(*, 네크세이)는 '재물'을 의미하며, '신속히'(*, 아스파르나)는 여기서는 '충분히'로 번역됨이 보다 자연스럽다(Williamson, NIV).

성 경: [스6:9]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앞절에 이어 여기서도 다리오 왕이 관대하면서도 자상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다리오가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하게 된 까닭은, 특정한 신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는 희생 제사가 정확한 절차에 따라 드려져야 한다고 봤던 고대 중근동의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Fensham). 그러나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다리오를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이 게재되어 있었다.

(주); 수용물(*, 마 하쉬한) - 문자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의 의미를 가진다.

(주); 번제의 수송아지...기름 - 당시 중근동에는 말이나 심지어는 돼지 등으로 제물을 삼던 민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제물들은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잘 부합되는 것들이다(출 29:38-46 ; 레 2:1 ; 민 28:1-8). 이는 결국 다리오 왕이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였다는 증거가 된다(Fensham).

(주); 수송아지 - 이것은 속죄제 등 특별한 때에 제물로서 드려졌다(레 9:2, 3).

(주); 수양 - 이것은 속건제의 제물 등으로 사용되었다(레 5:15 ; 6:6).

(주); 어린 양 - 상번제의 제물로 조석으로 각기 한마리씩 드려지는 등 가장 많이 소용되던 짐승이다.

(주); 밀과 소금과 포도주 - 이것들은 희생 제사 곧 화제(火祭)와 함께 드려지던 소제의 제물들이다(출 29:40, 41 ; 레 2:14, 15).

(주); 예루살렘 제사장 - 문자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을 의미한다. 이는 3절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과 대응되는 문구이다.

(주); 영락없이 날마다 주어 - '영락'( , 솰루)은 '실수', '실패', '게으름' 등을 의미한다(Davidson). 한편 '날마다 주어'는 앞에 언급된 제물들이 상번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임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그러나 제물들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날마다 넘겨주는 세심한 조치들은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물론 어느 일순간 동안 시행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느 정도 적절하다.

성 경: [스6:10]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저희로...기도하게 하라 - 예레미야는 바벨론 땅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의 정치적 안정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였었다(렘 29:7). 고레스 왕도 다른 민족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해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Pritchard). 이처럼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왕이 자기가 섬기던 신과 다른 신을 섬기던 사람에게까지 기도 요청을 하는 것은 고대 중근동의 보편적 관행이었다(Fensham).비록 다리오 왕이 주로 '오르무즈드'(Ormuzd)라는 페르시아 신을 섬기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의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신들로부터 은총을 받음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아무튼 다리오의 이 같은 기도 요청은 그 당시 페르시아의 정정(政情)이매우 혼란스러웠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아니할 것이다(5:1, 2 주제강해, '성전 건축재개 당시 페르시아의 정치 형편' 참조).

(주); 향기로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호힌'(*)은 '기쁘시게할 만한'으로 번역해도 괜찮은 단어이다(NIV, 창 8:21 ; 민 28:2 ; 단 2:46).

성 경: [스6:11]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명령을 변개(變改)하면 - 이것은 명령의 불이행과 명령의 부분적 이행, 그리고 명령의 왜곡된 이행을 모두 포함한다. 공문서의(특히 조약이나 조서의) 끝부분에는 이러한 경고문이 관습적으로 부연되었는데, 이는 법령이나 약정사항을 사람들이 가볍게 여겨 위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고대 바벨론 및 페르시아 등지에서는 이와같은 명령의 변개가 명령자 자신에게도 엄격한 금기 조항 중의 하나였다(4:21 ; 에1:19 ; 단 6:15).

(주); 저를 그 위에 매어 달게 하고 - '매어 달게 하고'는 문자적으로 '높이 올려지고'(*, 제키프), '꿰뚫어져야만 한다'(*, 이트메헤)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고대 중근동에서는 매우 보편적으로 시행되었던 형벌의 형태였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들보의 한쪽을 뾰족하게 깎은 다음 그 부분으로 범죄자의 복부 등을 관통시키고, 그 들보의 뾰족한 부분을 땅에 박아 놓는 형태였다. 그 경우 범죄자는 들보에 복부가 관통된 채 그 세워진 들보의 부분에 매달려서 죽을 때까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Fensham). 비록 이것이 수리아역에서는 '십자가에 달다'의 의미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십자가 형과는 그 형태에 있어서 매우 달랐다.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다리오 1세는 모반을 꾀했던 바벨론인들을 무려 3000명이나 나무에 꿰뚫었다고 한다(Edwin Yamauchi). 한편 구약 성경에도 범죄자들을 매어달아 죽였던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창 40:22 ; 민 25:4). 또 범죄자를 돌로 쳐 죽인 후 나무에 매어단 경우도 있다(신 21:22, 23).

(주); 그 집은...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 이것은 들보를 제거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이는 왕명(王命)을 거역한 자에 대한 징벌의 엄중성을 경고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단 2:5 ; 3:29). 특히 '거름더미'는 왕명 거역자의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강조한다(왕하 10:27).

성 경: [스6:12]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다리오의 조서]

(주); 열왕이나 백성 - 이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밖에 있던 민족들 및 그들의 왕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된 민족들 중 자체 내에 독립적으로 왕국을 유지했던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 손을 들어 - 구약 성경에서의 '손'은 여러 문맥에서 '힘' 혹은 '권능'을 뜻한다(민11:23).

(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 이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 - 이 같은 문구는, 중앙 성소의 지정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이 언급된 신 12:21의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리오의 본 조서가 어떤 유대인의 영향을 받아서 작성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자기의 이름을 둔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그들 중에 임재하신다는 뜻이다.

(주); 저희를 멸하시기를 - 여기의 '멸하시기를'(*, 메가르)은 '던져버리다' 혹은 '전복시키다'의 의미로서, 한 민족의 완전한 멸망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참고로, 유명한 베히스툰 비문(Behistun Inscription)의 끝부분에는 그 비문을 훼파하는 자에게 오르무즈드의 엄한 징벌이 따를 것이라는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 다리오 자신의 명령이 일체의 오차도 없이 신속히 그대로 실행되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부가적 문구이다.

(주); 신속히 -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부지런히'(NIV)이지만, '정확하게'의 의미도 담겨 있다.

성 경: [스6:13]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재건 필역(畢役)]

(주); 신속히 준행한지라 - 본장의 핵심 문구중 하나이다. 이는 다리오 왕의 조서가 매우 엄하고 긴박하게 하달되었음과 아울러 성전 재건 작업에 참여하는 자들이 열과 성을 다할 것임을 암시한다(14절).

성 경: [스6:14]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재건 필역(畢役)]

(주); 유다 사람의 장로들 -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스룹바벨'및 '예수아' 등도 포함될 것이다. '장로들'(*, 시이브)은 문자적으로 '머리가 흰 사람들'을 의미한다.

(주); 권면함으로 인하여(*, 빈부아트) - 문자적으로는 '예언으로 말미암아'의 뜻이 있다. 성전의 완성은 B.C. 516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학개서는 학개선지자가 B.C. 519년까지 예언했던 바를 기록하고 있고(학 2:10). 스가랴서에는 B.C.518년까지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의 말씀은 B.C.518년의 어느 때부터는 더 이상 백성들에게 선포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반드시 이러한 결론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개와 스가랴는 성경 기록으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B.C. 519년과 518년 그 이후에도 예언을 통한 권면을 성전 완성 때까지 계속했다고도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 - 성경 안에는 성전 재건에 관한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1) 이사야 선지자의 고레스에 대한 예언(사 44:28). (2) 하나님의 고레스 왕에 대한 강권적 감동(1:1-3), (3)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관한 적극적 권면 등은 하나님의 명령에 다름아니다.

(주);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 - 저자는 여기서 이와 같은 왕들이 성전 건축 사업을 완성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음을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왕들의 조서를 뒤에 놓음으로써, 모든 문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다만 그 도구로 쓰일 뿐임을 강력히 시사한다(Fensham). 그런데 여기서 '아닥사스다'는 실제적으로 성전 건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성전 건축이 완료된 해는 B.C. 516년이지만, 아닥사스다 왕의 재위 기간은 B.C. 464년부터 424년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아닥사스다를 그 명단에 집어넣은 까닭은, (1) 그가 비록 성전 재건과는 관련이 없지만 성전에서 사용되는 물품을 지원하는 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적이었으며(7:20, 27), (2) 본서의 저자가 본서 기록 당시 왕위(王位)에 올라 있었던 그에게 최대한의 감사와 예의를 표하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성 경: [스6:15]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재건 필역(畢役)]

(주); 다리오 왕 육 년 - '다리오'는 B.C. 522년(486년까지)에 왕위에 올랐다. 따라서 그의 즉위 '육 년'은 B.C. 517년이 되는 셈이다.

(주); 아달월 - 유대 종교력으로는 12월이며, 태양력으로는 2, 3월이다. 따라서 태양력으로 따지면, 성전의 완공은 B.C. 516년에 이뤄진 셈이 된다. 아무튼 예루살렘 제2 성전은 B.C. 53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3:8), 그 해에 중단되어 B.C. 516년에 완공되었다. 그렇다면 성전 공사는 중단기간을 포함하여 시공(施工) 20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이는 중단됐던 공사를 다시 시작한 지(학 1:15, B.C. 520) 4년 만이었다. 또한 파괴된지 약 70년 만에 다시 재건된 셈이었다. 아무튼 이 '스룹바벨'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에게 파괴되기까지 약 58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 장소가 되었다(헤롯 왕은 이것을 보다 장엄하게 보수만 했음을 기억할 것). 최초의솔로몬 성전은 다만 373년 동안만 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B.C. 959-586).

성 경: [스6:16]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봉헌식]

(주); 이스라엘 자손과 - 본 문구의 마지막에 있는 접속사 '과'는 탈락되어져야 한다. 아람어 원문에는 '과'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문구 뒤에 나오는 '제사장들...사로잡혔던 자의 자손'과 동격(同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 다음에 '즉' 혹은 '곧'이라는 부사가 삽입되면 더 부드러운 번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강조하는 특별한 호칭이다(Fensham). 비록 유다 및 베냐민 지파 이외에는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맺어졌던 까닭에(출19:1-6 ; 수 4:1-4 ; 왕상 18:31), 여기서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칭호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17절).

(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이들도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자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특별히 구별된 지파에 속했었다는 점에서(출 32:26-29 ; 신 10:8), 이처럼 별도로 언급되고 있다.

(주); 봉헌식(*, 하누카) - '헌신하다'의 의미를 갖는 '헤나크'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단어는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더럽혀졌다가 다시 청결하게 된 후에 시행된 성전 재봉헌을 기념한 축제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제단이나 집(신 20:5) 혹은 성벽(느 12:27) 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 건립되었을 때에도 적용되었다(Kidner).

성 경: [스6:17]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봉헌식]

본절에서의 제사의 규모는 솔로몬 성전 봉헌식 때의 풍부했던 규모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는 무려 소 22,000마리, 양 120,000마리를 제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왕상 8:63 ; 대하 7:5). 따라서 이렇듯 빈약한 제물의 규모는 그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대단히 빈곤한 상태에 있었음(학 1:9)을 반영해준다(Fensham).

(주); 수염소 열 둘로...속죄제를 드리고 - 여기의 '속죄제'(레 6:24-30)는 대속죄일에 드려지던 '속죄제'(레 16장)와는 구별되며 민수기 7장에서처럼 하나님께 성막을 봉헌하는 의식 중의 한 절차로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먼저 하나님께 성막 봉헌을하기에 앞서 죄사함을 받는 절차가 필요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속죄제'는 번제와 함께 드려졌다(민 28:22 ; 대하 29:24).

(주);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 포로에서의 귀환자들이 이처럼 열 두 지파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 까닭은, 반드시 귀환자 중에 모든 지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맺어졌기 때문이었다.

성 경: [스6:18]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성전 봉헌식]

본절은, 성전이 완공됨으로써 희생제물 드리는 일이 본 궤도에 올랐음을 말해주고 있다.

(주); 제사장을 그 분반(分班)대로 - 대상 24:1-19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24분반으로 나뉘어져서 성전 봉사를 하였다. 각 분반은 차례에 따라 돌아가면서 일 주일씩 희생 제사의 직무를 담당하였다(왕하 11:9 ; 대하 23:4 ; 눅 1:5, 8). 추측컨대 한 '분반'에 속했던 제사장의 숫자는 포로기 이전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제사장 숫자 자체가 그때보다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2:36-39). 한편 여기의 '분반'(*, 펠루가트혼)은 '나누다'의 의미가 있는 '펠라그'(*)에서 파생된 명사형이다. 아무튼 이와 같은 '분반'을 둔 목적은 (1) 공평하게 일을 분담시킴으로써 하등의 불평이 없도록 하며, (2) 성전 제사가 효율적이고도 원활히 드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 레위 사람들도 제사장들처럼 24'반차'로 구분되어 성전봉사를 했던 것 같다(대상 25:9-31). 한편 여기의 '반차'(*, 마헬레카트혼)는 '나누다' 혹은 '분배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헬라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몫' 혹은 '배당'의 뜻이 있다.

(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 여기의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한편 이들은 이 같은 성전 봉사가 없을 때에는 자신들의 향리에서 생활하였다(느 11:20).

(주);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 '모세의 책'은 모세 오경 중 제사장 및 레위인들의 직무에 관한 전반적 규정들을 다루고 있는 출애굽기 29장, 레위기 8장 그리고 민수기 3장 부분 등을 가리킨다(Fensham). 한편 '기록된 대로 하게'는 서기관 에스라가 돌아오기 이전에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율법 규정을 알았으며 또한 그것을 실행하려고 노력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Kidner).

성 경: [스6:19]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유월절 준수]

4:8에서 6:18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나 본절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된다.

(주); 사로잡혔던 자...유월절을 지키되 - 구속사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출 12:24-27) 유월절 행사에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본서가 출애굽의 모티프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본서의 저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K. Koch). 한편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킨 것은 결코 그들의 국수주의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의지 때문이었다. 출애굽으로 시작된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획기적인 종교 개혁이 있을 때마다 재삼 깊은 의미로 치뤄졌다. B.C. 726년 히스기야 왕이 베푼 유월절 잔치(대하 30장),B.C. 624년 요시야 왕에 의한 유월절 잔치(대하 35장) 등이 그러했다. 이 두 경우 모두 오랜 타락을 청산하고 성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을 그 골자로 삼았다.

(주); 정월 십 사 일 - 이것은 구약시대에 유월절 어린 양이 드려지던 날짜이다(출 12:6레 23:5). 이 다음 날부터 7일간은 무교절 행사가 지켜졌다(출 12:15-20 ; 23:15).

성 경: [스6:20]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유월절 준수]

(주); 제사장들...정결하매 - 본문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때에 지켜졌던 유월절의 상황과 유사한 내용이다(대하 30, 35장). 그러나 차이점은, 그 당시에는 '레위인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던' 반면에(대하 29:34), 본문에서는 레위인과 마찬가지로 제사장들도 제대로 준비를 갖추고 있었음이 강조된 점이다(Williamson). 한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만지지 아니하며(레 21:1), 성교(性交)를 어느 기간 피하며(레 15:16-18),

(주); 자신의 몸을 깨끗한 물로 씻는 등(출30:18, 19 ; 레 8:6 ; 22:4-9)의 노력을 해야했다.

(주); 자기를 위하여...양을 잡으니 - 여기의 '자기'는 레위 사람들을 가리킨다. 원래 유월절 양을 잡는 일은 한 가정의 가장에 의해서 실시되었었다(Fensham, 대하 30:17). 그러나 히스기야 시절에 백성들의 부정으로 인하여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양을 잡은 이후로는(대하 30:16, 17), 레위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된듯하다(대하 35:10-12, Schultz). 한편 '잡으니'(*, 쉬하트)는 주로 희생제사와 관련있는 동물의 도살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출 34:25 ; 레 4:24 ; 삼상1:25).

성 경: [스6:21]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유월절 준수]

본절은 유월절 절기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참여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주); 이스라엘 자손 - 2장의 귀환자 명단에 포함된 자들과 팔레스틴에서 그후에 새로이 태어난 자손들을 가리킨다.

(주); 구별하여...여호와를 구하는 자 - 이들에 대해서는 (1) 유다 자손과 함께 귀환한 북쪽 이스라엘에 속했던 열 지파 백성들이라는 견해(J.S. Wright), 남쪽의 두지파에 속했으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아니했던 백성들이라는 견해(Keil, Schultz), (3)원래는 이방 민족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 개종한 자들이라는 견해(Williamson, Fensham, Kidner, Meyer) 등의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첫째, 유다 지파와 함께 귀환했던 북쪽 지파 사람들은 이미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된 바 있으며(17절), 둘째,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틴에 계속 남아 있었다고 하여 언약 백성의 자태를 잘 보존하였으리라고는 보기 힘들며, 셋째,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는 이방인이 개종하여 들어옴을 환영하였음(출 12:44, 48)을 볼 때, 위의 세 가지 해석 중 세번째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한편 '구별하여'(*, 니브달)는 '나누다' 혹은 '분리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달'(*)의 수동형으로서, 기존의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절교 및 단절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대상 23:13 ; 느 10:28)이다. 그리고 '구하는'(*,다라쉬)은 원래 '찾다' 혹은 '구걸하다'의 의미로서, 경배할 혹은 교제할 대상으로 삼고 간절히 사모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시 77:2 ; 109:10 ; 사 9:13).

(주); 더러운 것을 버리고 - 이것은 앞에 나오는 '스스로 구별하여'의 구체적 방법이다. 이방인들은 이러한 절차를 필히 거친 후 할례를 받고서야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출 12:44, 48). '더러운 것'이란 주로 '의식적(儀式的) 부정'을 표현하는 단어로서 이 단어 혹은 그 파생어들이 구약 성경에 279회 정도 나오며, 그중 64%가량은 레위기와 민수기에 그리고 15%정도는 에스겔서에 등장한다. 본문에서 이는 구체적으로 우상 숭배(렘 2:23 ; 겔 36:18) 및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적(性的) 타락(9:11)을 주로 말할 것이다.

(주);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여(*, 알레헴) - 문자적으로 이는 다만 '그들을 향하여'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참 하나님 여호와를 사모하던 이방인들이 그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공동체 이스라엘에 가입하려는 열망을 강력히 시사한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측면, 즉 언약을 주도적으로 맺으시며 또한 그것을 신실히 이행하심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이와 같은 호칭은 이방 개종자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열망을 보여주는 본 문맥에 잘 부합된다.

(주); 다 먹고 - 이것은 유월절 양을 이스라엘 귀환자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함께 먹었음을 가리킨다. 유월절 양을 먹는 일은 유월절 행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 경: [스6:22]

주제1: [성전 재건의 공식적 허가와 완공]

주제2: [유월절 준수]

(주); 즐거우므로(*, 베시미하) - 문자적으로 이는 '즐거움 안에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즐거움은 단순한 정치적 축하연이나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들의 잔치에서 얻는 기쁨 이상의 것이었다. 이 기쁨은 깊은 종교적 의의를 지닌 것인바, 왜냐하면 주께서 친히 그들의 심령속에 기쁨을 불어 넣어주셨기 때문이다(EdwinYamauchi).

(주); 칠 일 동안 무교절(無酵節)을 지켰으니 - '무교절'은 하루 동안의 유월절 그 다음날부터 이어졌다(출 12:15-20 ; 23:15). '칠 일 동안'은 정월 15일부터 21일까지를 가리킨다.

(주); 이는 여호와께서...즐겁게 하시고 -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1:1)부터 시작하여 성전 재건 사업이 마쳐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셨던 전체 사실을 가리킨다. 바로 이 사실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즐겁게 하였다. 한편 여기의 '즐겁게 하시고'(*, 사마흐)는 절기의 준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찬양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대하 20:27; 시 5:11 ; 9:2 ; 16:9 ; 32:11).

(주); 앗수르 왕의 마음을...돌이켜 - 여기의 '왕'(*, 멜렉)은 단수로 쓰였으므로 이 '왕'은 성전의 완성에 적잖은 도움을 준 페르시아의 '다리오'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다리오'를 '앗수르 왕'으로 표현한 까닭은, (1) 페르시아 왕들은 앗수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였으며,(2) 실제로 다리오 왕은 앗수르의 옛 땅을 자신의 나라로 삼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리오를 '앗수르 왕'이라고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역사속의 모든 제왕(帝王)들을 장중(掌中)에 넣고 친히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즉, 저자는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몽둥이로 사용하심으로써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나(느 9:32), 이제는 '다리오'라는 '앗수르 왕'을 성전 재건을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써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한편 '돌이켜'(*, 헤세브)는 '돌다' 및 '둘러싸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사바브'(*)의 사역형으로서,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이 역사 개입을 통하여 상황을 변화시킨 사실을 나타낸다.

(주); 힘있게 하도록(*, 레하제크) - 이것은 '강하게 하다' 혹은 '힘쓰다'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하자크'(*)의 강조형로서, 추진 중인 어떤 일의 완성을 이룰 수 있도록 마음을 강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신 1:38 ; 삿 16:28 ; 삼하11:25 ; 사 35:3).

성 경: [스7:1]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이 일 - 구체적으로는 성전 완공 및 그에 따른 여러 행사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6장과 본장 사이에는 약 60년의 기간이 흐른 셈이다. 이러한 공백 기간 중에 있었던 사건들 중 본서에 기록된 유일한 것은 아하수에로 재위(B.C. 485-464)때의 훼방 사건이다(4:6).

(주); 바사 왕 아닥사스다 -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왕위에 있었던 페르시아 제6대 왕이다. 혹자는 이를 B.C. 404-359년에 재위하였던 아닥사스다 2세와 동일시하나, 전통적인 견해는 아니다.

(주); 에스라(*) - 역대기 상하를 포함한 본서의 저자로서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우신다'이다.

(주); 스라야의 아들 - '스라야'는 '여호와께서 권세를 잡으셨다'의 의미로서 이 사람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호사닥의 아버지였다(대상 6:14, 15). 그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된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으며,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서 '리블라'라는 바벨론 땅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임을 당했다(왕하 25:18 ; 렘 52:24). 따라서 여기의 '아들'(*, 벤)은 문자적 의미의 '아들'이 아니다. '벤'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아들'이라는 의미 이외에 문맥에 따라서 '자손'의 의미도 갖는다. 그런데 에스라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던 '스라야'부터를 자신의 조상으로 언급한 까닭은 에스라가 여호사닥의 직계로서 대제사장의 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또한 역대기의 족보와 일치시키기 위함이었다(대상 6:3-15).

(주); 아사랴의 손자 -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의미이다. 이 사람도 문자적 의미로서의 에스라의 조부(祖父)가 아니다(대상 6:13, 14).

(주); 힐기야의 증손 - 힐기야도 에스라의 증조부가 아니다. 이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요시야 왕 시대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던 대제사장이다(왕하 22:4-14 ; 대하34:14-2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분깃'이다.

성 경: [스7:2]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살룸의 현손 - 살룸이 '힐기야'의 아버지인 것은 분명하다(대상 6:12, 13).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이 사람은 대상 9:11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보상'이다.

(주); 사독의 오 대손 - 문자적으로는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기의 '사독'은 솔로몬 당시에 활동했던 '사독'과는 다른 인물이다(대상 6:12). 그러나 솔로몬 시대의 '사독'의 후손임은 분명하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이름의 의미는 '의롭다'이다.

(주); 아히둡의 육 대 손 - 이것도 문자적으로는 '아히둡의 자손'의 의미이다. 이 인물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대상 6:11, 12). 그 이름의 뜻은 '나의 아우는 선량하다'이다.

성 경: [스7:3]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아마랴의 칠 대 손 - '아마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의 뜻이다.

(주); 아사랴의 팔 대 손 - 이 사람은 솔로몬 시대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던 '사독'의 4대 손이었다(대상 6:8-10). 따라서 1절의 '아사랴'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이처럼 한 족보에 동일한 이름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까닭은, 조상들의 이름이 자손들에 의해서 다시 사용되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주); 므라욧의 구 대 손 -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증조 할아버지였다(대상6:6-8). 따라서 바로 앞에 나왔던 '아사랴'와 여기의 '므라욧'사이에는 7대가 생략되어 있는 셈이 된다. 한편, '므라욧'은 '완고한'이란 뜻이다.

성 경: [스7:4]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웃시엘의 십 일 대 손 - '웃시엘'은 '하나님은 힘'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그 이상 밝혀진 바는 없다. 대상 6:5, 6에서는 다만 '힘'이라는 의미의 '웃시'로나온다.

(주); 북기의 십 이 대 손 - '북기'는 '여호와께서 시험하셨다'의 의미이다.

성 경: [스7:5]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아비수아의 십 삼 대 손 - '아비수아'는 '아버지는 구원이시다'의 의미이다(대상6:4).

(주); 비느하스의 십 사 대 손 - 이 '비느하스'는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대상 6:3, 4)로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 발람의 꾀로 인하여 이방 사람들과 정(情)을 통하는 등 결정적인 영적 위기를 맞았던 순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심으로그 사태를 진정시켰던 인물이다(민 25:7-13). 이에 따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받게 되었다(시 106:30, 31). 또한 그는 가나안 정복 전쟁 동안에는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쌓은 일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수 22:9-34).

(주); 엘르아살 - 모세 시대의 대제사장 아론의 네 아들 중의 한 사람이다(대상 6:3). '엘르아살'의 두 형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림으로 진노를 받아 아들도 없이 죽임을 당하였다(레 10:1, 2). 이에 따라 '엘르아살'은 아론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었다(민 20:25-28).

(주); 대제사장 아론 - 여기서 저자 에스라가 특별히 '대제사장'이라는 말을 첨가한 까닭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의 역할과 관련하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에스라는 자신이 대제사장 가문의 정통적 후손임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는 자격자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스7:6]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이 에스라 - 이것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과 권위를 소유한 자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주);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 여기의 '바벨론'은 구체적으로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티그리스 강 하류의 중간에 위치한 평야지대인 '닙불'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방하다(Aharoni). 거기에는 B.C. 537년의 귀환에 참여치 않고 잔류하였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다(Fensham). 한편, '올라왔으니'(*, 알라)는 팔레스틴이 바벨론에 비하여 지형상으로 훨씬 높은 지역임을 염두에 둔 표현이기도 하지만 또한 팔레스틴을 성지(聖地)로 의식한 에스라의 의도적 표현이기도 하다.

(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 6:22 주석을 참조하라.

(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 여기의 '모세의 율법'은 그 앞에 하나님의 언약적 속성을 강조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이 나왔음을 볼 때, 언약 백성들이 반드시 이행해야할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뜻한다(출 19:5-8). 한편, '익숙한'(*, 마히르)은 '서두르다' 혹은 '빠르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마하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어떤 특정한 사물에 대해서 충분한 준비와 경험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익숙한'은 '능통한'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것이다.

(주); 학사(*, 소페르) - 이는 '쓰다', '수를 세다'의 의미가 있는 동사 '사파르'(*)에서 파생된 명사형 분사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서기관'으로 번역됨이 보다 정확하다(본단락 주제 강해, '서기관의 역사' 참조). 한편, 페르시아 시대에도 제국의 중앙 정부나 지방 총독의 법정에 소위 서기관 혹은 비서들이 고용되었다고 한다(Herodotus). 페르시아 왕의 '일곱 모사'도 이들과 같은 부류의 출신으로 이해된다(14, 15절 ; 에 1:13, 14, Joseph Blenkinsopp). 아닥사스다의 조서 내용으로 보아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서기관의 직무에 능통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페르시아 왕실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주);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있으므로'의 뜻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섭리로써 적극적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본서와 느헤미야서 전체에서 자주 발견된다(9, 28절 ; 8:18 ; 느 2:8, 18).

(주); 왕에게 구하는 것 -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11-26절에 언급된 내용과 결부시켜 이해한다면 이것은 (1) 에스라가 일부 동족들과 함께 바벨론 땅에서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허락받은 것, (2) 여러모로 필요한 재물을 지원받은 것, (3) 에스라가 팔레스틴 땅에서의 정치적 지도권(指導權)을 부여받은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성 경: [스7:7]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 '아닥사스다'는 B.C. 464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칠 년'은 B.C. 458년이 된다.

(주); 이스라엘 자손 - 제사장과 레위사람 등 레위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에 속한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 B.C. 537년의 1차 귀환때처럼 북쪽 지파 사람들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주); 레위 사람들 - 이들은 희생 제사와 관계된 직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이다(2:40).

(주); 노래하는 자들 - 이들도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다(2:41).

(주); 문지기들 - 이들 또한 레위 사람들이다(2:42).

(주); 느디님 사람들 - 원래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으나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하여 비천한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2:43).

(주); 몇 사람 - 8장 1-14절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에스라와 함께 온 여기의 '몇 사람'은 장정만 1,773명이었다.

성 경: [스7:8]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주); 이 에스라가...올라왔으니 - 문자적으로는 다만 '그가 도착했다' 혹은 '그가 왔다'의 의미이다. 왕의 칠 년 오 월이라 - 저자가 7절에 이어 여기서 또다시 '칠 년'을 언급하는 까닭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출발한 바로 그 해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Fensham). 에스라는 이와 같은 강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가 자신들과 함께했음을 뚜렷이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 같다(6, 9절). 한편 '오 월'이 정확하게는 '오월 초하루'(9절)이므로, 에스라 일행이 바벨론에서 출발한 지 만 5개월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여행 거리가 약 800여 킬로미터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5개월씩이나 걸린 것은 (1) 레위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 중간에서 얼마간을 소비하였으며(8:15, 31), (2) 일행 중 어린이들이 많이 있었고(8:21), (3) 사막 지대를 피하기 위해 북부 시리아 지역을 거쳐 여행했기 때문일 것이다(Fensham). 당시의 여행자들에게는 처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터라, 에스라 일행의 안전한 도착은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로 말미암은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성 경: [스7:9]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본절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찬양할 목적으로 또다시 여행에 소요됐던 시간을 언급한다. 그런데 에스라가 이 시기를 택해서 여행을 한 까닭은, 팔레스틴 땅으로 오는 도중 반드시 거쳐야만 했을 사막 지대의 폭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Fensham). 당시 에스라는 '니산월'(태양력으로 3, 4월), 즉 봄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압월'(태양력으로 7, 8월), 즉 여름에 도착함으로써 사막에서의 고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스7:10]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귀환]

본절의 초두에는,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키'(*)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것은 '왜냐하면'의 의미로서 에스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본절의 맨 끝부분의 '결심하였더라'는 '결심하였기 때문이다'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그렇지만 본절이 또한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중요한 이유 혹은 목적을 말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주); 여호와의 율법 -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연구하여(*, 리드로쉬) - '조사하다' 혹은 '찾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다라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사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행동을 가리킨다(Rawlinson, 벧전 1:10, 11).

(주); 준행하며(*, 라아소트) - 이것은 '행하다', '만들다' 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 '아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자신의 사상 및 견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가리킨다(창 1:31 ; 6:22 ; 신 5:27 ; 23:23).

(주); 율례와 규례 - 여기서 '율례'(*, 호크)는 '새기다' 혹은 '초상화를 그리다' 등의 의미를 갖는(Davidson) 동사 '하카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번복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규정된 것' 혹은 '명령된 것'을 뜻한다(레 10:13 ; 욥23:12 ; 렘 5:22). 한편 '규례'(*, 미쉬파트)는 '재판하다'나 '공의를 실행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쉬파트'(*)의 파생형이다. 이것은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준(레 18:4 ; 시 103:6)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위의 두 단어는 외형상으로는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두 단어가 항상 동시에 혹은 교대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볼 때, 거의 같은 의미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단어가 '여호와의 율법'의 보다 본질적 특성들을 두가지로 드러내주는 단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율례'는 율법의 기초적인 규정들에, '규례'는 보다 구체적인 적용례들에 각각 중심을 둔 표현이라 할 수 있다(JosephBlenkinsopp).

(주); 가르치기로(*, 레라메드) - 이것은 '습관들이다'(Davidson) 혹은 '효율적으로 가르치다'(Meyer)는 의미이다. 에스라가 실행하기를 결심한 여러 일 중 가장 중요시되던 것은 바로 여기의 이 '가르침'이었다(Fensham).

성 경: [스7:11]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은 조서의 수취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일종의 도입 구절이다. 이 조서에는 에스라가 수행해야 할 사명 내지는 그의 공적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12절 이하).

(주); 계명의 말씀 - 여기의 '계명'(*, 미츠오트)은 '~의 위에 놓다' 혹은 '임명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와'(*)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약성경에서 언약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요구 사항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출 24:12에서는 십계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주);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 - 제사장이라는 직함은 1-5절의 계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학사'에 관해서는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아무튼 본절에서 에스라는 페르시아의 공무를 담당하는 관리로서, 또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성 경: [스7:12]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에서부터 26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고 있다.

(주);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 - 이같은 자기 소개는 자신이 내리는 조서의 권위를 증대시키기 위한 의도를 보여준다. '모든 왕의 왕'이라는 칭호는 앗수르나 바벨론 왕들에의해서도 사용되었는데 이런 호칭은 원래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던 기존의 나라들을 정복한 정복국의 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주); 율법에 완전한 - 여기의 '율법'(*, 다타)은 어떤 판단 기준으로서의 '규례'를 의미한다. 한편 '완전한'은 잘못된 번역임이 분명하다. 즉, 여기의 '완전한'(*, 게미르)은 (1) '율법'이라는 단어와의 사이에 '하늘'및 '하나님' 등의 단어들이 끼어 있는 점, (2) 왕일지라도 우호적으로 인식되는 상대에게는 서신의 인사말을 초두에 놓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율법'을 수식하는 형용사가 아님이 분명하다(Williamson, Schultz, Kidner). 따라서 '완전한'이라는 단어는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되었으리라 추측되는 '쉘라마'(*)와 합하여져서 '완전한 평강이 있을지어다'로 번역되어야 한다(5:7, Kidner,Williamson).

성 경: [스7:13]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조서하노니 - 문자적으로는 '명령을 반포하다'를 의미한다.

(주); 우리 나라 - 이것은 아닥사스다가 통치하던 전 지역을 가리킨다.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Fensham). 심지어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애굽의 남부에서도 상당수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살던 자들이었다.

(주); 이스라엘 백성 - 유다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포로 귀환민들을 언약 공동체 전체, 곧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Edwin Yamauchi). 본서와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에스라와 관련된기사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24회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강조된다. 반면에 에스라 자료(Ezra material)에서 '유다'라는 용어는 단지 네 차례만 나오며 그것도 단지 지리적 용어로서 언급되었을 뿐이다(14절 ; 9:9 ; 10:7, 9).

성 경: [스7:14]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네 손에 있는...율법 - '네 손에 있는'은 '에스라가 손에 들고 있는'의 의미가 아니라 다만 '에스라가 항상 가까이하고 있는'의 의미일 것이다.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을 모세 오경은 그 부피가 엄청났을 것이다.

(주); 좇아(*, 베) - '기초하여'의 의미이다(Williamson).

(주);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 추측컨대 에스라는 본토로부터 어떤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들었던것 같다. 이에 따라 그는 아닥사스다에게 귀환을 허락해주기를 요청했을 것이다. 즉, 에스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지를 살필 필요성을 느꼈음이 분명하다(Fensham). 페르시아 정부의 입장에서도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서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페르시아는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잦았던 관계로 골머리를 앓았었기 때문이다.

(주); 일곱 모사 - 이들은 페르시아 왕들에게 조언을 하던 고위 관리들이었던 것 같다. 이들에 대해서 에 1:14은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로 묘사하고 있다.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과 같은 헬라의 고대 저술가들도 이 같은 직분자들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다.

(주); 보냄을 받았으니 - 이것은 에스라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표면적으로는 페르시아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성 경: [스7:15]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왕과 모사들이...드리는 은금 - '왕과 모사들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심을 쓰는 것은 (1) 피정복민들을 선무(宣撫)하여 정치적 소요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2) 피정복민의 신으로부터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23절 ; 6:10) 목적 때문이었다.

(주);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 이 같은 언급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1:5 및 5:14, 16 그리고 6:12 등의 '예루살렘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일것이다.

성 경: [스7:16]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에서는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할 재물을 충당할 수 있는 두 가지 출처를 말하고 있다.

(주); 바벨론 온 도(道)에서 얻을...은금 - 에스라가 바벨론 백성들로부터 얻을 변상 예물을 가리킨다(1:4).

(주); 백성과 제사장들이...드릴 예물 - 여기의 '백성과 제사장들'은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고 했던 무리들을 가리킨다(7, 13절). 제1차 귀환 때에도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많은 현물들을 하나님께 바쳤었다(2:68, 69).

성 경: [스7:17]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간 재물의 제1차적 용도가 하나님께 대한 제사와 관련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제사의 종류 및 제물에 대한 정보는 (1)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얻어졌거나(6절), (2) 페르시아 왕의 궁전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익명의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제공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Kidner).

(주); 소제와 전제 - '소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2장을 '전제'에 대해서는 민 15:5-7절을 참조하라.

성 경: [스7:18]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나머지 은,금 - 성전의 보수 및 장식을 위해 예비비로 남겨진 돈을 말한다(Rawlinson, Schultz).

(주); 너의 형제 - 에스라와 같은 '제사장들'을 가리킨다(3:2).

(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지며 - 이것은 결국 '나머지 은 금'을 오직 제의용(祭儀用)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명령으로 이해된다(Williamson).

성 경: [스7:19]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섬기는 일(*, 팔한) - '예배하다'' 의미를 갖는 동사 '펠라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주); 네게 준 - 여기서 '준'(*, 미트야하빈)은 '짐지우다' 혹은 '맡기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예하브'(*)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아닥사스다의 에스라에 대한 신임을 엿보게 해준다.

(주); 네게 준 기명 - 이것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가져갔던 그 기명이 아니다. 그 기명은 이미 오래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환되었다(1:7-[1). 따라서 이것은 페르시아 정부와 바벨론에 잔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련해서 준 것으로 이해된다(8:25-27).

성 경: [스7:20]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에서도 아닥사스다는 오직 제의용으로만 돈을 지원하겠음을 말하고 있다(17절).

(주);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 '왕의 내탕고'는 강의 서편에서 징수되는 세금을 보관하는 금고 및 그관리 기관을 가리킨다. 이 같은 명령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사업 비용은 그 지역에서 충당되어야 한다는 제정 원칙(6:8)과 완전히 부합된다(Fensham).

성 경: [스7:21]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에 언급된 아닥사스다의 조처는 (1) 성전 제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용, (2) 귀환하는 에스라의 일행이 귀환 도중에 필요한 식량 등의 조달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Fensham).

(주); 강 서편 모든 고직(庫直)이 - 이들은 바벨론을 출발하여 유다땅으로 가는 에스라가 경유하게 될 지역의 재정관리들을 말한다. 이 '고직이'는 일정 지역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용도에 따라 출납하거나 혹은 페르시아 왕실에 상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주); 학사겸 제사장 -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7:22]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은은 일백 달란트 - 한 달란트는 약 34kg에 해당한다.

(주); 밀은 일백 고르 - 1고르 혹은 1호멜은 220리터정도이다.

(주); 포도주는 일백 밧 - 1밧은 22리터 정도 된다.

(주); 소금은 정수 없이 - 강 서편 쪽은 사해 등지에서 소금이 풍부하게 생산되었다. 비록 고대에 소금이 귀한 것이기는 했으나 다른 것에 비해서는 생산량이 많아서 저렴했던 물품인 관계로 원하는 만큼 제공되었다. 한편, 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와 번제의 제물에 뿌려졌다(겔 43:24).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은 순결하게 체결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소금 언약'이라고 불리웠다(민 18:19 ; 대하 13:5).

성 경: [스7:23]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전을 위하여 -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희생 제사가 원활히 드려지기를 위하여'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주); 하나님의 명하신 것 -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면 무엇이든지'라고 한 NIV의 번역은 꽤 적절하다.

(주); 삼가(*, 아드라즈다) - 이것은 '어떤 일을 조심스럽고도 성실하게 하다'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 '드라즈다'에서 온 아람어로서,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주의 깊고 경건한 마음 자세 및 행동거지를 가리킨다(Fensham).

(주); 진노가 왕...나라에 임하게 하랴 - 신의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신으로부터 왕 개인과 가족 및 제국에 '진노'가 내려진다는 생각은 고대 중근동에서는 대단히 보편적이었다(Fensham). 그런데 여기의 '진노'(*, 케차프)의 히브리어 형태인 '케체프'(*)는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징벌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된다(민 1:53 ; 18:5 ; 수 9:20 ;22:20).

성 경: [스7:24]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본절에 언급되는 성직자들에 대한 면세 혜택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던 특전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아닥사스다에 의하여 처음 시행된 정책도 아니었다. 다리오 왕의 '가다타스비문'에는 '아폴로 신의 구별된 제사장들에게서 세금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엄중한 경고문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Williamson, Fensham).

(주); 레위 사람 - 레위 지파 중에서 성전 제사와 관계있는 무리들이다(2:40).

(주); 노래하는 자들...문지기들 - 이들 또한 레위 지파에 속한다(2:41, 42).

(주); 느디님 사람 - 원래는 혈통상 이방인이었으나 여러 이유와 기회에 따라 이스라엘공 동체에 가입한 사람들(2:43)이다.

(주); 혹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 - 여기의 '혹'은 '그리고'로 번역해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느디님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낮은 자들로서 2:55에서는 '솔로몬의 신복'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 조공과 잡세와 부세 - 4장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스7:25]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아는 자(*, 야드예이) - 이것은 체험적이리만큼 확실하게 아는 것을 뜻하는 동사 '예다'(*)에서 파생된 명사형 분사이다. 따라서 여기의 이 '아는 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킨다.

(주);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 '유사'(*, 솨프틴)는 '재판하다' 혹은 '공의를 시행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쉐파트'(*)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한편, '재판관'(*, 다야닌)도 역시 '재판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어근'둔'(*)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의미상으로는 위의 두 직분에 대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 페르시아에는 시민들 상호간의 문제 및 갈등을 해결하던 재판소와, 국가 및 정부의 이익과 관련된 판결을 위한 재판소 등 두 가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Fensham)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유사'와 '재판관'의 차이를 규명할 만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측컨대, '유사'는 종교.사회문제 등에 관한 관습법(customary law)을 다루는 직분자였고, '재판관'은 왕에 대한 충성심의 여부 등에 관한 정치 문제를 취급하는 직분자였을 것이다. 따라서 '에스라'는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에 관한 권한까지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위임받았던 셈이다. 한편, '삼아'(*, 메니)는 '분리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메나'(*)의 파생형으로서 적재 적소에 인재를 세우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 강 서편...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 여기의 '강 서편...백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표현과는 달리 실제에 있어서는 다만 팔레스틴 거주 이스라엘 백성들 만을 가리킨다는 해석(Kidner, Rawlison), (2) 팔레스틴과 바벨론 등지에 흩어져 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해석(Schultz, Fensham) 등이다. 그러나 첫째, 14절은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목적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둘째, 에스라는 실제로 팔레스틴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제에 관여한 일이 없었으며 셋째, 에스라가 팔레스틴 밖의 다른 지역에까지 간섭하는 일은 피정복민에 대한 페르시아 정부의 관용적 정책과 상충된다는 점 등에서 (1)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주); 그 알지 못하는 자 - 이것을 반드시 새로이 개종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랜 이방 땅에서의 생활을 거쳤던 관계로, 혹은 그런 사람의 자손인 관계로 율법을 잘 모르는 경우는 많았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수의 개종자도 포함됐을 것이다.

(주); 너희가 가르치라 - 이 같은 명령은,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권한을 요청한 결과였을 것이다(6절). 사실 이 같은 왕의 직접적인 명령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성 경: [스7:26]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아닥사스다의 조서]

(주); 하나님의 명령 - 곧 '율법'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르게 실행되도록 하며 혹은 실행되고 있는 지의 여부를 감찰하는 책임을 가진 자가 '유사'인 듯하다(25절).

(주); 왕의 명령 -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실의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었다. 바로 이 책임을 감당키 위해 세운 직분이 '재판관'이었다(25절).

(주); 준행치(*, 아베드) - '섬기다' 혹은 '순종하다'의 의미를 갖는 '에바드'(*)의 파생형으로서 높은 사람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 속히 -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그리고 급히 이루어져야할 것을 강조한다(17, 21절; 5:8 ; 6:8, 12, 13).

(주); 죄를 정하여 - 문자적으로 '징계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의 의미이다(NIV). 페르시아에서는 심지어 왕들조차도 자신의 명령을 변개하거나 국법을 범치 않았다는 점에서, 왕명(王命) 거역자에 대한 징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단 6:15). 따라서 왕의 조서나 조약 문서의 끝부분에는 명령을 불이행하거나 약속을 파기하는 자에 대한 징벌사항이 명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 정배(定配)하거나(*, 리쉐르쉬우) - 이것에 대해서는 (1) '뿌리를 뽑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솨라쉬'(*)와 동일한 아람어 어근에서 파생된단어로 보고 '공동체에서 내쫓다'라고 해석하는 견해(Vulgate, 10:8), (2) '체벌'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스라우쉬아'에서 빌려온 단어로 보고 '채찍질하다'라고 하는 견해(LXX, Fensham) 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채찍질을 하는 형벌은 고대 페르시아 사회에서 보편적이었으며(Fensham) 또한,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어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이 생존 자체와 직결되는 엄중한 형벌이었긴 하지만, 본절에서 사형(死刑)까지 언급되는 것으로 볼 때 추방으로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KJV, RSV,NIV ; banishment).

(주); 가산을 적몰(籍沒)하거나 -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형벌은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으로 시행된 듯하다. 반면 에스라는 이것을 담보로 하여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기는 했어도(10:8) 이런 형벌을 백성들에게 실제로 집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헤롯 왕은 이 같은 형벌을 자주 사용한 듯하다. 아무튼 이런 형벌은 왕정 국가에서는 보편적이었음이 분명하다(삼상 8:12 ; 왕상 21:15).

성 경: [스7:27]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찬양]

여기서부터는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주); 열조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자고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선하게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던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신 6:3 ; 13:6 ; 수 18:3 ; 삿 2:12).

(주);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 이러한 문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베푸신 큰 은혜와 그분의 위대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시편 등의 여러 문맥에서 흔히 나타난다(대상 29:10, 20 ; 시 16:7 ; 26:12 ; 34:1 ; 63:4 ; 145:10).

(주); 왕의 마음에...뜻을 두시고 - 여호와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섭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문구이다(1:1 ; 5:5). '아름답게 할'에 해당하는 '레파에르'(*)는 '꾸미다' 혹은 '찬미하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파아르'(*)의 강조형으로서 사람이나 인물을 외적으로는 근사하게 꾸미며 내적으로는 명예를 더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시편과 이사야서의 후반부에서도 여러번 나온다(시 149:4 ; 사 55:5 ; 60:7, 9, 13).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동사의 주어는 공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사야는 종말론적인 문맥에서 '성전'을 본 동사의 목적어로 삼고 있다(사 60:7, 13).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에스라가 그 예언이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이사야가 종말론적으로 성전에 대해서 사용한 동사를 자신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Fensham). 그렇다면 여기의 '아름답게 할'은 구체적으로는 성전 제사가 율법대로 제대로 이루어짐을 가리킬 것이다.

성 경: [스7:28]

주제1: [에스라의 귀환이 이루어진 경위]

주제2: [에스라의 찬양]

본절에서 에스라는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최초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소위 '에스라의 회상록'(Ezra Memoirs)이라 불리는 부분(본절-9장)의 특징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주); 왕의 권세 있는...방백 - '방백'(*, 사르)은 에 1:3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관리라기보다는 제국의 각 지역을 관장하는 외직(外職)에 있던 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주);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 문자적으로는 '은혜를 크게 더하도록 하셨도다'의 뜻이다. 여기서 '은혜'(*, 헤세드)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며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주로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적 섭리에 따라 감동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호의를 가리킨다. 한편 '얻게 하셨도다'(*, 히타)는 '늘이다' 혹은 '펼치다'의 의미가 있는 동사 '나타'(*)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왕들을 감화하시어 에스라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도록 강권하셨음을 가리킨다(27절).

(주); 하나님 여호와의 손 - 여기의 '손'은 구약 성경에서 '권능' 혹은'능력'을 상징하는 단어이다(출 6:1 ; 9:3 ; 삼하 8:3 ; 사 59:1).

(주); 내가 힘을 얻어(*, 히트하자크티) - 이것은 '굳게 하다' 혹은 '강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하자크'(*)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동사는 스스로 마음을 담대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민 13:20 ; 삼상 4:9 ; 왕상 20:22: 겔 7:13).

(주);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 '이스라엘'은 당시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목'(*, 로쉬)은 한 가문의 '가장' 혹은 '족장'을 가리킬 때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1:5 ; 2:68 ; 대상 8:10 ; 대하 1:2). 그리고 '모아'(*, 카바츠)는 군사 혹은 종교 등의 특별한 목적의 수행을 위한 소집 행위를 가리킨다(삿 12:4 ; 삼상 7:5 ; 왕하 6:24 ; 대하 24:5).

성 경: [스8:1]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본장 1절에서 14절까지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제2차 귀환민의 수효이다. 이 수효는 제1차 귀환민의 그것과(2:3-63) 비교하면 불과 1/3 가량에 불과하다(본서 서론,'포로 및 포로 귀환의 역사' 참조). 4-14절에 나오는 가족명들은 '요압 자손'을 제외하고는 2:3-15에 모두 나온다. 단, 본문의 명단은 두 명의 제사장 명단과 다윗의 후손이름으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여준다(2절). 반면에 2장에서는 제사장 가계가 나중에 언급된다.

(주); 아닥사스다 왕 - 이에 대해서는 4장 주제 강해, '아닥사스다 왕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주); 족장(*, 라쉬 아보테이헴) - '그들의 조상들의 족장'이라는 문자적 의미가 있다.

(주); 보계(*, 히트야흐삼) - '세다' 혹은 '등록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야하스'(*)의 재귀적 강의형 부정사이다. 따라서 '스스로 등록한 것'이란 의미이다.

성 경: [스8:2]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비느하스 - 아론의 손자요(대상 6:3, 4) 엘르아살의 아들(대상 6:4)로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아비 엘르아살을 거쳐서 인계받았던 인물이다(7:5). 따라서 이 사람의 자손은 보다 정통성있는 제사장 가문으로 자처할 수 있었다.

(주); 게르솜 - '피난처'의 뜻이다. 이 사람은 한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였던 것같다.

(주); 이다말 - 아론의 말째 아들이다(대상 6:3). 그의 후손은 정통성에 있어서 '비느하스' 가문보다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말'의 후손인 '엘리'는 대제사장 및 사사로서 그 명성을 날렸다(삼상 1:3). 그러나 엘리의 두 아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윗과 솔로몬 초기의 아비아달을 끝으로 그 가문에서는 더 이상 대제사장이 나오지 못했다(왕상 2:26, 27, 35).

(주); 다니엘 - '하나님의 재판관'의 뜻이다. 다니엘서의 저자와는 상관이 없다.

(주); 다윗 자손 - 유다 왕가를 형성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 중 제1차로 귀환했던 사람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는 스룹바벨이었다(1:8 ; 2:2).

(주); 핫두스 - 이 사람은 대상 3:19-22에 따르면 스룹바벨의 4대 손이다. 만일 스룹바벨이 B.C. 560년 경에 태어났다고 하고 한 세대를 약 25년으로 잡는다면, 핫두스는 스룹바벨로부터 4대째이므로 그가 B.C. 458년에 에스라와 함께 왔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Fensham).

성 경: [스8:3]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일백 오십 명 - 바로스 자손 중 바벨론 생활을 청산하고 유다로 귀환하려고 자청한자의 숫자이다.

성 경: [스8:4]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바핫모압 자손 - 2:6 주석을 참조하라.

(주); 스라히야 - '여호와는 뛰어나시다'의 뜻이다.

(주); 엘여호에내 - '내 눈이 여호와를 향한다'의 뜻이다.

성 경: [스8:5]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스가냐 자손 - 대다수의 학자들은 칠십인역에 근거하여 '삿두 자손 스가냐'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본다.

(주); 야하시엘 - '하나님께서 보신다'라는 뜻이다.

성 경: [스8:6]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아딘 자손 - 2:15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에벳 - '종'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를 갖는 '아브디엘'의 약칭인 듯하다.

성 경: [스8:7]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엘람 자손 - 2: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아달리야 - '여호와는 존귀하시다'의 뜻이다.

(주); 여사야 -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의 의미이다.

성 경: [스8:8]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스바댜 자손 - 2:4 주석을 참조하라.

(주); 미가엘 -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이다.

성 경: [스8:9]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요압 자손 - 이들은 제1차 귀환에는 참여치 않은 듯하다.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의 뜻이다.

(주); 여히엘 - '하나님이여 영원무궁하옵소서'의 뜻이다.

(주); 오바댜 -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성 경: [스8:10]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슬로밋 자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니의 자손 슬로밋'으로 본다. 그 근거는 (1) 칠십인역이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며, (2) 최초 귀환자들 중에 '바니 자손'이 있으며(2:10), (3) 4-12절의 귀환자 명단이 모두 조상의 이름, 가족의 대표 이름, 그대표의 아버지 이름 등 세 요소가 함께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슬로밋'은 '평화로움'의 뜻이다.

(주); 요시뱌 - '여호와께서 더하심'의 뜻이다.

성 경: [스8:11]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베배 자손 - 2:11의 브배 자손과 동일하다.

성 경: [스8:12]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아스갓 자손 - 2:12주석을 참조하라.

(주); 학가단 - '작은'이란 뜻이다.

(주); 요하난 -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이란 뜻이다.

성 경: [스8:13]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아도니감 - '나의 주께서 일어나셨다'의 의미이다(2:13).

(주); 나중 된 자(*, '아하로님') - 이것은 '오래 머물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아하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뒤에 처져 남아 있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의 '나중 된 자'는 아도니감 자손에 속한 가족들 중 마지막으로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가족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도니감 자손은 한 가족도 빠짐없이 전체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셈이다(Fensham).

(주); 엘리벨렛 - '구원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주); 여우엘 -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이란 뜻이다.

(주); 스마야 -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이다.

성 경: [스8:14]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에스라와 귀환 무리]

(주); 비그왜 자손 - 2:14주석을 참조하라.

(주); 우대 - '돕는'의 뜻이다.

(주); 사붓 - '주어진'의 뜻이다.

성 경: [스8:15]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 - 이것은 동쪽으로부터 흘러와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던 지류(支流)이다. 이 지류가 유프라테스 강과 만나는 곳에 '아하와'란 마을이 있었다. 현재는 그 강이 '이스 강'이란 명칭으로 불리워진다(Rawlinson). 아무튼 이 '강가'는 유대인이 많이 모여살고 있었던 '닙불'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 삼 일 동안 장막에 유(留)하며 - 이같은 모습은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던 사람들이 광야 여행길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이 지난 후에 성벽 시찰에 나섰다(느 2:11).

(주); 레위 자손이...없는지라 - 레위 자손들의 업무가 너무도 고통스러우리만큼 과중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국행을 포기했을 것이다(Edwin Yamauchi). 제1차 귀환 때의 귀환자 명단에는 상당수의 레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2:40-42). 그렇다면 여기서 에스라가 레위인들을 급히 데려오도록 한 것은 효율적인 성전 봉사에 대한 고려와 아울러 귀환 대열에 레위인들을 소수이나마 참여시킴으로써 어떤 상징적 의의를 부여하고자 함이었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Williamson).

성 경: [스8:16]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모든 족장 - 원문에는 '모든'이라는 말이 없다. 한편, 본절의 '족장'은 적절치 못한 번역인 듯하다. 물론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그런 번역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족장'들의 명단을 보면 이들이 결코 가족들의 대표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2-14절). 따라서 여기의 '족장'은 다만 레위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들, 즉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Fensham). 물론 이들 중에 한 가족의 우두머리가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13절).

(주); 엘리에셀 - '도움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주); 아리엘 - '하나님의 사자(獅子)'의 뜻이다.

(주); 스마야 -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엘라단 -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란 뜻이다.

(주); 야립 - '그가 다툴 것이다'의 뜻이다.

(주); 나단 - '주어진'이란 뜻이다.

(주); 스가랴 -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의 뜻이다.

(주); 므술람 - '동행한'의 뜻이다.

(주); 명철한 사람(*, 메비님) - '분별하다' 혹은 '이해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빈'(*)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따라서 '분별력' 및 '이해력'을 소유한 '율법 교사'를 가리킬 것이다(느 8:8, 9).

(주); 요야립 - '여호와께서 아심'이란 뜻이다.

성 경: [스8:17]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가시뱌 지방 - 여기의 '가시뱌'는 혹자에 의해서 티그리스 강 유역의 '크테시폰'(Ktesiphon)으로 주장된다(Brockington). 그런데 이 '가시뱌'는 '은장색'(銀匠色)의 뜻을 갖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Kraeling). 그렇다면 이 고장은 원래 은세공(銀細工)이 발달했던 곳으로 추측될 만하다. 한편, '지방'(*, 하마콤)은 문자적으로 '그 장소'의 뜻이다. 이것은 (1) 단어 앞에 '그'의 뜻을 갖는 정관사 '하'(*)가 붙어있다는 사실, (2) '마콤'이란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려지던 '성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신 12:5, 11 ; 14:23 ; 왕상 8:29 ; 렘7:3, 6, 7)라는 사실 등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 마치 애굽 땅 엘레판틴(Elephantine)에 있었던 것과 같이 바벨론에 끌려갔던 일단의 유대인들이 세웠을 가상의 '성소'(Michaeli, Williamson), (2) 다만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주거하던 곳(Pelaia) 등이라고 하는 두 견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첫째, 바벨론에서는 애굽의 엘레판틴과는 달리 유대인들이 별도의 성전을 지녔다는 하등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둘째, 에스라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 거기서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18-20절) 등으로 볼 때 두 견해 중 후자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은, 이 '마콤'이란 단어가 유대 문헌에서는 율법을 가르치는 곳으로서의 회당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가시뱌'에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도하며 간단한 예배 의식이 거행되던 기관이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본단락 주제 강해, '회당의 기원' 참조).

(주); 그곳 족장 잇도 - 여기의 '잇도'(*)는 학개의 조상 '잇도'와는 뜻이 전혀 다른 이름이다. 그 의미는 '고상한' 혹은 '강력한'이다. 이 사람은 '가시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주); 잇도와 그 형제...느디님 사람 - 여기에 대해서는 (1) '그 형제'(*,아히우)라는 단어의 후미에 있는 '와우'(*)가 원문상으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느디님 사람들'의 초두에 놓여져야 바른 것으로 보고 '나의 형제 잇도와 느디님 사람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Torrey), (2) '느디님 사람'(*)을 또다른 의미인 '임명된 자들'인 것으로 보고 '잇도와 그 형제, 즉 임명된 자들'이라고해석해야 된다는 견해(Williamson), (3) '잇도'는 레위인이었지만 동일하게 성전 봉사를 담당하는 직분자들이라는 점에서 '느디님 사람'들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적용했다는 견해(Keil), (4) '잇도'를 본문 그대로 '느디님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Rawlinson) 등으로 구분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첫째, '느디님 사람'은 원래 이방 출신의 성전 봉사자로서 레위인들에 대해서 별다른 영향력을 지닐 수 없었으며 둘째, 18절은 '잇도와 그 형제'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으며 셋째, 에스라가 '잇도'를 신분 및 혈통이 다른 '느디님 사람'들과 '형제'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적은 점 등에서 볼 때, 위의 네 견해 중 두 번째의 것이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주); 할 말을 일러주고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입에 할 말을 두었다'의 뜻이다.

(주); 수종들 자(*, 메솨르팀) - '섬기다', '봉사하다'의 뜻을 갖는 '솨라트'(*)의 분사로서, 성전 제사와 관련된 직무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이다(대상 16:4 ; 27:1).

성 경: [스8:18]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 - 여기서 에스라가 특별히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한 까닭은 (1) 본서와 함께 에스라가 기록한 역대상의 족보와 조화를 이루며(대상 2:1),(2) 그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창 32:24-29)를 상기케 함으로 본절에서의 성과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축복임을 강조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주); 말리의 자손 중 - '말리'는 레위의 아들 중 셋째(말째)였던 '므라리'의 장자로서 성전의 기구를 책임지던 가족의 조상이 되었다(민 4:31-33). 다른 곳에서는 '마흘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출 6:19 ; 대상 23:21 ; 24:26). 한편, 그 이름의 뜻은 '병든'이다. 아무튼 '말리의 자손 중'이라는 말은 잇도가 데려온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데 완전한 적격자임을 보여준다.

(주); 명철한 사람...세레뱌 '명철한 사람'(*, 세켈)은 종교적 의미의 '지혜'나 '분별력' 그리고 그것의 '적응 능력'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NIV는 '유능한 사람'(capable man)으로 번역했다. 한편, '세레뱌'는 분명치는 않지만 '여호와께서 열(熱)을 보내셨다'의 뜻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전의 용기 및 도구를 관리했으며(24절,에스드라상 8:47, 54), 에스라의 율법 교육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느 8:7 ; 9:4, 5; 10:12). 우리 말 번역은 분명히 밝혀주지 못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말리'의 자손임이 확실하다.

성 경: [스8:19]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므라리 자손 - '므라리'의 전체 후손 중 '므라리'의 장자인 '말리'의 후손을 뺀 나머지를 가리킨다. 즉, '말리'의 동생 '무시'의 후손들을 말한다(대상 6:19). 한편, '므라리'는 레위의 셋째 아들이었다(대상 6:16).

성 경: [스8:20]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레위인과 느디님인]

(주); 느디님 사람 - 2:43 주석을 참조하라(7:7).

(주); 다윗과 방백들이 주어...수종들게 한 - 이같은 사실은 성경의 직접적 기록에 의해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추측컨대 다윗은 레위인들의 반차를 정하면서(대상 23-26장), 그때 그 레위인들에게 느디님 사람들을 배정해줬던 것 같다(Fensham). 한편, '방백'(*, 사림)은 군사 혹은 정치 분야 등에 있어서의 책임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특별히 여기서는 '군사 지도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즉, 이들은 전쟁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로로 데려와서 그들을 '느디님 사람'들로 만들었던 것이다.

(주); 느디님 사람 중 이백 이십 명 - 이같이 많은 숫자는 바벨론 땅에 계속 잔류를 고집해왔던 레위인들을 팔레스틴으로 귀환토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Myers). 레위인들이 귀환을 거부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과중한 고역(苦役)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결과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주); 그 이름이 다 기록되었느니라 - 이것은 여기의 느디님 사람들이 성전 봉사에 참여할 수 있을만한 자격자들임을 시사해주는 말이다.

성 경: [스8:21]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금식 선포]

(주); 금식을 선포하고 - 구약 성경은 보통 '금식'을 '기도'와 함께 언급한다(삼상 7:5,6 ; 대하 20:3-13 ; 에 4:16). 이것은 말할나위도 없이 특별한 문제 혹은 위기의 극복을 위해 시행되곤 하였다.

(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 이것은 에스라 일행이 하나님께 기도 및 금식을 하면서 가졌던 영적 태도이다. 한편, '스스로 겸비하여'(*, 레히트아노트)는 '괴로움을 당하다' 혹은 '낮추다' 등의 의미가 있는 동사 '아나'(*)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신을 학대하듯이 적극적으로 낮추어서 어떤 인물 혹은 절대자에 대해서 지극히 순종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가리킨다(창16:9 ; 왕상 2:26 ; 시 107:17 ; 단 10:12).

(주); 어린 것(*, 타프) - 문자적으로 '조그만 어린이'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여 여자와 노인 그리고 어린이까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Myers).

(주); 평탄한 길(*, 데레크 예솨라) - 문자적으로 '곧은 길'의 의미이다(사 40:3, 4). 그러나 이것은 '안전한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NIV, Williamson). 고대에는 길을 지키고 있다가 약탈을 일삼는(31절) 무리들이 꽤많았다고 한다(Fensham).

성 경: [스8:22]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금식 선포]

(주); 찾는...자에게 선을...배반하는...자에게는...진노를 - 이것은 성경의 주된 사상 중의 하나이다(대하 15:2 ; 롬 2:6-10).

(주);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 많은 은금을 소유했고 또한 유약자들을 동반했던 에스라의 일행에게 있어 매복해 있을 도적 떼는 큰 위협일 수밖에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21절).

(주); 보병...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 에스라는 자신의 귀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였으므로, 위험한 귀환 여정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여 감행하고자 결단했다. 적어도 에스라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목적을 지니고 귀환하면서 이방의 왕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반면에 느헤미야의 경우는 바사 군대의 호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주하고 기꺼이 수락하였다(느 2:7-9). 우리는 이 사실만으로써 에스라의 믿음이 느헤미야의 믿음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페르시아 왕의 도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관점과 강조점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성 경: [스8:23]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금식 선포]

본절의 구체적 내용은 31절에 언급되고 있다.

성 경: [스8:24]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본절부터 30절까지는 '아하와 강가'를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주); 제사장...십 이 인 곧 세레뱌와 하사뱌 - 이것은 '제사장...십 이 인과 세레뱌 및 하사뱌'로 고쳐야 맞다. 만일 한글 개역을 그대로 따른다면, '세레뱌와 하사뱌'는 제사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세레뱌와 하사뱌'는 레위인임이 분명하다(18절).

(주); 따로 세우고(*, 아브딜라) - 이것은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달'(*)의 사역형으로서, 본질적 차이가 있으나 합해져있는 둘을 완전히 가르는 것을 가리킨다(창 1:14 ; 레 10:10 ; 신 10:8 ; 대상 25:1). 특히 이 단어는 제의적(祭儀的)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에스라가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함께 구별시킨 이유는 제사장들은 거룩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한편 레위인들은 그것들을 운반하는 등의 부수적 업무를 담당해야하는 책임자라는 점에서 함께 구별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Brockington, Myers). 적어도 에스라는 율법 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7:10).

성 경: [스8:25]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여기서 언급되는 은금에는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7:16).

(주); 저희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가리킨다.

(주); 왕과 모사들과 방백들 - 7:28 주석을 참조하라.

(주); 그곳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 -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때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바벨론 및 페르시아 땅에 남아 있었다(에9:30).

(주); 드린(*, 테루마트) - 이것은 '올리다' 혹은 '높이다'의 뜻이 있는 동사 '룸'(*)의 사역형 분사로서, 높은 곳에 물건을 올려놓는 것이나 높은 사람에게 예물을 바치는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이다(레 2:9 ; 민 18:30, 32 ; 대하35:8).

성 경: [스8:26]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주); 은이 육백 오십 달란트 - 마이어스(Myers)는 이것을 약 8.5톤으로 본다.

(주); 은 기명이 일백 달란트 - 이것은 3.75톤으로 본다. 환산의 비율이 확실하지 않아 오늘날의 추정 기준으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많은 양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성 경: [스8:27]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주); 금잔...이십 개...일천 다릭 - 여기의 '금잔'은 성전에서 사용되던 금기명이 아니다(7:20). 한편 '일천 다릭'은 영화(英貨) 약 11,000파운드 정도에 해당한다(2:69).

(주);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 놋그릇 -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을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으로 만들어진 그릇으로 생각한다(Driver).

성 경: [스8:28]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주); 여호와께 거룩한 자 - 이것은 제사장 및 레위인들이 특별히 일반 백성들과 구별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신분임을 가리키는 말이다(출 29:1 ; 39:30 ; 레21:6 ; 민 3:12, 13). 여기의 '거룩한'(*, 코데쉬)은 '봉헌하다' 혹은 '구별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카다쉬'(*)에서 온 형용사로서, 하나님께 특별히 바쳐짐으로써 인간들에 의해 함부로 다뤄질 수 없게끔 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McComiskey).

(주); 은과 금은...드린 예물이니 - 이것도 '은과 금'이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말해주는 한 표현이다. 이런 '거룩성'은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 및 레위인만이 그것들을 다뤄야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성 경: [스8:29]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주); 여호와의 전 골방 - 이것은 성전의 건물 양편에 위치한 방들로서 한 쪽에는 제사장들이 쓰는 방이, 그 반대 편에는 창고가 있었다(Williamson, Rawlinson, 왕상 6:15 ;느 13:5).

(주); 제사장의 두목 - 여기의 '두목'(*, 사르)은 '책임자'를 의미한다고 봐야한다(단 1:7). 그렇다면 '제사장의 두목'은 제사장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던 제사장을 가리킬 것이다(33절).

(주); 이스라엘 족장 - '우두머리'라는 뜻으로는 '로쉬'(*)가 더 정확하다. 여기서는 앞의 '두목'에 해당하는 원어의 영향으로 '사르'가 그대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된다(Williamson).

(주); 삼가 지키라 - 이것은 문자적으로 '깨어라 그리고 지키라'의 의미이다. 이같이 해야 할 이유는 행로 중에 도적을 맞거나 혹은 탐심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야심한 틈을 타 훔쳐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Fensham). 이 예물들은 귀환 여행의 마감 시점에 이르러 재차 점검되고 계수되었다(34절).

성 경: [스8:30]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헌물 관리자]

(주); 이에...가져 가려 하여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들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등 에스라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운반에 관한 총체적 책임은 제사장들에게 있지만, 이 일은 실제적으로 레위인들에 의해 담당되었다(24절).

성 경: [스8:31]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예루살렘 안착(安着)]

(주); 정월 십 이 일에...떠나 - 유대인들은 그때 '아하와 강가'를 집결지로 삼아 정월 초하루에 거기에 모였었다(7:9). 그들은 거기서 삼일간 인원을 파악하던 중 레위인들이 한 사람도 없음이 밝혀지자 그들을 불러오는 등의 일에 9일을 소비하고 12일에 그 강가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Keil, Fensham).

(주); 건지신지라(*, 야칠레누) - '구하다' 혹은 '찾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나찰'(*)의 사역형으로서, 악인들의 무리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구출하거나 위기일발의 위급한 재앙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적극적 행위를가리킨다(창 32:11 ; 삼상 12:10 ; 시 25:20 ; 렘 22:3).

성 경: [스8:32]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예루살렘 안착(安着)]

(주); 삼 일을 유하고 - '유하고'(*, 네쉐브)는 '좌정하다' 혹은 '안식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야솨브'(*)의 파생형이다. 따라서 이는 에스라 일행이 먼길의 여행 후 몸과 마음의 휴식 기간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Fensham).

성 경: [스8:33]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예루살렘 안착(安着)]

(주);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 - 느 3:4, 21에서는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으로 나온다. 그런데 2:61에 따르면 '학고스 자손'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치 못함으로 해서 제사장 직분의 수행이 유보(留保)되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여기서는 그 후손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이 자신들이 제사장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데에 마침내 성공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편, '우리아'는 '여호와는 빛이시다'의 뜻이고 '므레못'은 '거만'이란 뜻이다.

(주); 손에 붙이니 - 문자적으로는 다만 '손 안으로'의 의미로서 넘겨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 비느하스의 아들 엘르아살 - 이 문구 바로 앞에는 '그와 함께'의 의미인 '이모'(*)가 있는데, 이는 '엘르아살'도 므레못처럼 제사장이었음을 말해준다(10:18; 느 12:41, 42).

(주); 예수아의 아들 요사밧 - 이 사람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 (1) 율법책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는 역할의 담당자(느 8:7), (2) 이방 여인을 취하여 율법을 범한 자(10:23), (3)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받은 자(느 11:16) 등으로 묘사된다. '요사밧'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신다'이다.

(주); 빈누이의 아들 노아댜 - '빈누이'는 '헤나닷'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성벽 한 부분을 중수한 책임자였다(느 3:24). 그 이름의 뜻은 '세워진'이다. 한편, '노아댜'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라는 뜻이며 에스드라상 8:63에서 '모엣'으로 나온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 다른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다.

(주); 함께 있어 - 물품 인수의 실질 책임자는 '므레못'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만 입회인이었음을 암시해준다(Fensham).

성 경: [스8:34]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예루살렘 안착(安着)]

본절은 내부 및 외부의 도적을 만나지 않음으로써(29절), 일체의 물품 손실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손'이 에스라의 일행에게 함께했다는 사실(31절)에 대한 간접적인, 그러나 강력한 시사임이 분명하다(Kidner).

(주); 당장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 이 같은 행위는 성전 재산의 도난 및 횡령 방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Rawlinson). 에스라는 어쩌면 그 물품 목록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내서 모든 물품들이 제대로 인계되었음을 증명하였을 수도 있다.

성 경: [스8:35]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귀환자들의 번제]

(주); 사로잡혔던 자(*, 하골라) - '제거하다' 혹은 '이동하다'를 뜻하는 동사 '갈라'(*)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외로의 추방' 사실 자체 및 '그렇게 된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중 왕하 24:15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모두 약 41회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바벨론에 의해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건과 직접 관련되어 사용된다. 따라서 이것은 포로가 된 유대인 및 그 사건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이해된다.

(주); 이방에서 돌아온 자 - 문자적으로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자'이다. 이들은 곧 에스라의 일행들이다.

(주); 번제를 드렸는데 - 이같은 제사는 (1) 하나님께서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한 감사, (2) 여행 직전에 있었을 수도 있는 서원의 이행(Williamson),(3)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헌신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주);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 에스라와 함께 온 새로운 귀환자들이 금번 제사의 주관자들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최초의 귀환자들도 바벨론에서 귀환한 직후 이 같은 제사를 드렸었다(3:3 ; 6:17).

(주); 수송아지가 열 둘 - 여기의 '수송아지'(*, 파르)는 차라리 '황소'로 봄이더 타당하다(창 32:15 ; 렘 50-27). 한편 '열 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이다(6:17).

(주); 수양이 아흔 여섯 - '아흔 여섯'은 매 지파당 여섯 마리씩에 해당되는 수효이다.

(주); 어린 양이 일흔 일곱 - 혹자는 여기의 '일흔 일곱'이 열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일흔 둘'의 사본상 오류라고 말한다(에스드라상 8:66 ; Josephus, Myers).그러나 여기 맛소라 사본의 '일흔 일곱'은 (1) 많은 구약 사본들의 지지를 받으며,(2) 고대 중근동의 우가릿 문서등에서는 '일흔 일곱'이라는 수가 수량의 많음을 강조하기 위한 숫자적 표현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이는 그대로 취해져도 무난하리라 본다(Fensham).

(주); 속죄제 - 포로지에서의 신실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하며, 또 그 죄악들을 사함받기 위해 드려졌을 것이다.

(주); 모두...번제물이라 - 이것은 실제적으로는 '속죄제'의 제물까지를 포함한다. 그런데도 '번제물'이라고 한 까닭은, 하나님께 바친 제물의 대부분이 번제의 제물이기 때문이었다(Fensham).

성 경: [스8:36]

주제1: [에스라의 귀환]

주제2: [귀환자들의 번제]

(주); 왕의 조서 - 에스라와 그 일행을 도우라는 명령(7:20-26)을 가리킨다.

(주); 왕의 관원 - '관원'(*, 아하쉬다르페네이)은 그야말로 '총독'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상당히 광활한 정복 지역을 왕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관리를 가리킨다(본 단락 주제 강해, '페르시아의 지방 조직' 참조). 물론 이 단어는 최고급의 관리를 뜻하는 것도 사실이다(Fensham).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말이 히브리 원문상 복수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는 단 한 명의 총독 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볼 때 문제시 된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여기의 '총독들'이 유프라테스 강 서편의 총독 한사람과 애굽을 다스리던 총독 등 두 명을 가리킨다고 보는 데서 해결 가능하다(Fensham). 실제적으로도 애굽은 팔레스틴과 지역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서 '관원'을 '왕의 관원'이라고 한 것은, 앞의 '왕의 조서'와 조화시키기 위해서, 즉 그 '관원'이 '왕의명령'을 그대로 이행해야 할 신분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다.

(주); 강 서편 - 이것은 본절의 '관원'과 '총독들'에 아울러 적용된다(NIV).

(주); 총독들(*, 파하우오트) - 이들은 적은 지역을 다스리던 지방 관리라고 할 수 있다(6:6).

(주); 저희가...도왔느니라 - 왕의 명령(7:20-26)이 그대로 이행되었음을 시사한다. '도왔느니라'(*, 니스우)는 '높이다' 혹온 '주다'의 뜻을 갖는 동사 '나사'(*)의 강조형으로서, 여기서는 어떤 물질 등을 제공함으로써 성전 예배가 권위를 회복하고 원활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Williamson).

성 경: [스9:1]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백성들의 범죄]

(주); 이 일 후에 - 문자적으로는 '이 일들이 마쳐진 후에'이다. 그런데 여기의 '이 일'은 (1)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예물들을 성전의 제사장에게 바친 일 및 제사를 드린 일(8:33-35), (2)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총독에게 보내어 큰 도움을 받은 일(8:36) 등 모두를 가리킬 것이다. 한편, 에스라를 위시한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가 5월이었고(7:9)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 해 9월 20일에 모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간적 공백이 에스라 도착 후 4개월을 넘지 못할것이다.

(주); 방백들(*, 하사림) - 이들이 어떤 신분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일반 백성 등 각 계층을 대표 주관하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Fensham). 이들은 에스라가 팔레스틴에 오기 전에 이미 이 같은 위치에 올라있었음이 분명하다(Rawlinson, 10:14, 16).

(주); 백성...제사장...레위 사람 -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성했던 세 계층이다.여기서 다만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아니하고 계층 모두를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각 계층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음을 암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 이 땅 백성 - 이는 가나안 원주민을 포함한 팔레스틴 및 인근 지역의 거주민들을 가리킨다. 즉,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여러 족속들이다.

(주); 떠나지 아니하고 - 여기서 '떠나지'(*, 니브델루)는 '나누다' 혹은'분리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달'(*)의 단순 재귀형으로서, 기존의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절교 및 단절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대상 23:13 ; 느10:28)이다.

(주); 가나안...헷...브리스...여부스...아모리 - 이들은 가나안 땅에서 원래부터 살고있던 원주민들 전체를 총칭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히위 족속', '기르가스 족속' 등도 당연히 포함된다(신 7:1).

(주); 암몬...모압...애굽 - 이들은 가나안 땅 이외의 인근 지역에서 살던 족속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에돔 족속'(창 36:9)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주); 가증한 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토아보테이헴'은 우상 숭배와 같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만한 범죄 행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신 7:26 ; 왕상 21:26 ;시 14:1 ; 53:1) 동사 '타아브'(*)의 파생형이다. 본문의 '가증한 일'은 구체적으로 이방인들과의 통혼(通婚)을 가리킨다(2절).

성 경: [스9:2]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백성들의 범죄]

(주); 그들의 딸을 취하여 - 이것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여자들만 데려온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창 6:2). 즉, 그들은 자신의 딸들을 이방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12절). 그러나 여자가 이방인에게 시집가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순수성을 깨뜨릴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크게 거론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이 같은 일은 율법에서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것들이다(출 34:16 ; 신7:3).

(주); 거룩한 자손으로...섞이게 하는데 - 여기의 '거룩한 자손'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씨'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의 '거룩한 씨'는 단순히 인종적 차별, 혹은 편견을 배경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으며(출19:6). (2)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바탕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빛의 사명을 부여받았다는(사 42:6) 점 때문에 '거룩한 씨'인 것이다(Fensham). 한편, '섞이게 하는데'(*, 히트아레부)는 '보증하다' 혹은 '혼합하다', '사귀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아라브'(*)의 재귀적 사역형으로서, 자신의 유익만을 좇아사귀지 말아야 될 사악한 대상과 깊은 교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시 106:35 ; 잠 24:21).

(주); 방백들과 두목들 - 여기의 '방백들'(*, 하사림)에는 앞에 '그'를 뜻하는 정관사(*, 하)가 있다. 바로 이것은 '방백' 모두가 이방인과 통혼하는죄 중에 있지 않았음을 시사해준다(Fensham). 그 '방백' 중 일부는 다른 방백들의 범죄 사실을 에스라에게 고소하러 올 정도였다(1절). 한편 '두목'(*,하스가님)은 '관리'를 뜻하는 아카디아어 '사크누'에서 온 말로서 꽤 넓은 의미로서의 '지도자'를 뜻한다(Williamson).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단어가 '방백' 다음에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방백'보다 한 단계 아래의 지도자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Williamson). 어떤 학자는 이 '두목'을, 백성들에 의해서 선출되어 어떤 공회와 같은 것을 구성했던 직분자들로 본다(Widengren). 아무튼 여기서 위의 두 단어가 나란히 언급된 것은 지도층 인사들을 포함하여 백성들의 타락이 보편적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Williamson).

(주);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 여기서 '죄'(*, 마알)는 '은밀하게 가리우다', '죄를 범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마알'(*)에서 온 명사이다.

성 경: [스9:3]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낙심하는 에스라]

(주); 이 일 - 문자적으로는 '이 말'을 뜻한다.

(주); 듣고(*, 케삼이) - 이것은 '듣고 있을 때에' 혹은 '듣고 있으면서'(NIV, williamson)로 번역되어도 무방하다. 이것은 에스라가 자신에게 고소하던 방백(1절)의 말을 듣고 있는 도중에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음을 가리킨다. 이 같은 사실은 지도자들의 타락이 에스라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들렸음을 의미한다.

(주); 속옷과 겉옷을 찢고 - 이것은 에스라가 극도의 슬픔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동이다(Schultz, Fensham, 창 37:29, 34 ; 삼하 13:19 ; 욥 1:20). 에스라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1) 지도자들을 필두로 해서 백성들이 중죄를 범했다는 사실 자체와, (2) 이방인과의 통혼에 따라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적인 순수성을 상실하게 될염려 때문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범죄가 에스라 도착 전에 이미 이뤄졌기 때문에 에스라와는 상관이 없음에도 그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철저한 연대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Fensham).

(주);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 이는 분노와 불쾌감을 표출하는 상징적 행동이다(Schultz, 느 13:25 ; 사 50:6). 이것은, 흔적이 남음으로 에스라가 공개석상에 나타날 경우 백성들에 의해서 목격될 것이라는 점에서, 에스라 자신의 의도적 행동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Fensham, Joseph Blenkinsopp).

(주); 기가 막혀 앉으니 - 여기서 '기가 막혀'(*, 메쇼멤)는 '놀라다'의 뜻을 갖는 동사 '솨맘'(*)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어떤 충격적 사실로 인하여 넋을 잃는 듯한 심리적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가리킨다(단 4:19 ; 8:27).

성 경: [스9:4]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낙심하는 에스라]

(주); 이스라엘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호칭이다.

(주);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 - 이런 표현은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했던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여러 차례 사용된 바 있다(10:3 ; 사 66:2, 5). 이는 구체적으로 백성들의 타락상을 에스라에게 보고하러 왔던 방백들을(1절) 가리킨다고 본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악에 빠져있는 사실(2절)로 인하여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까닭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등 멸망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징계의 결과였음(대하 36:12-16)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떠는'(*, 하레드)은 어떤 상서롭지 못한 돌발적 상황이 벌어진 즈음에, 그것으로 인한 좋지 못한 결과를 예상함으로써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 '하라드'(*)에서 파생된 단어(삿 7:3 ; 삼상 4:13)이다.

(주);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 이것은 에스라가 방백들(1절)의 보고를 접한 후 보인 부정적 반응(3절)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이다. 즉,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은 에스라의 심정적 반응에 동조하며,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같이 하였을 것이다.

(주); 저녁 제사 드릴 때 - 이것은 오후 3시의 기도하는 시간이다(행 3:1). 한편 본절의 '저녁 제사'는 여기의 '제사'(*, 민하)가 주로 '피없는 제물'을 가리킨다(Davidson)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저녁에 정례적으로 드려지던 소제였음이 분명하다(Kapelrud).

성 경: [스9:5]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 여기의 '근심'(*, 타아니트)은 '자기를 낮추다', '자책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아나'(*)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어떤 외적 사건에 대해 연대감을 느끼면서 깊이 고민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레16:29, 31 ; 시 119:107 ; 사 53:7).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 이 말은 금식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이 기간에도 에스라는 금식을 했을 것으로 보이나, 8:21이나 10:6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금식을 강조하지는 않은 듯하다. 한편, 여기서 '일어나서'(*, 쿰)는 문자적 의미의 '일어남'보다는 어떤 결정적 행동을 하기에 앞서 이뤄지는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는 단어이다(1:5).

(주); 무릎을 꿇고 - 보통 이스라엘 사람이 서서 기도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러한 자세의 기도는 자신의 겸손과 고통을 특별히 표시하는 것임이 분명하다(Williamson).

(주); 손을 들고 - 이것은 기도할 때 흔히 사용했던 상징적 자세이다(출 9:29 ; 왕상8:22 ; 사 1:15).

성 경: [스9:6]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 여기의 '부끄러워'(*, 보쉬터)는 (실패로 인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다', 혹은 (신뢰의 대상에)'실망하다', '당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보쉬'(*)의 파생형으로서(사 42:17 ; 렘 22:22 ; 호 10:6), (1)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졌으나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못했다는 자책감과 실망감, 그리고 (2)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에스라가 느끼는 신앙적 연대감 등을 아울러 보여주는 단어이다(Fensham). 한편 '뜨뜻하여'(*, 니크람티)는 '부끄럽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칼람'(*)의 수동형으로서, 앞의 '부끄러워'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니며 때로는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시 35:4 ; 사 45:16 ; 렘 31:19). 에스라는 이러한 동의어의 반복 사용을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주); 죄악이 많아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의 금번 범죄(1,2절)는 물론이고 포로로 끌려가기 전부터의 모든 범죄를 포함한다(7절).

(주); 정수리에 넘치고...하늘에 미침이니이다 -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두 가지 은유적 표현을 대구법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강화시킨다. 특히 우리는 본절 전반절에서 1인칭 단수로, 후반절에서는 1인칭 복수로 표현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3-5절에서도 드러나듯이 에스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더 나아가서는 조상들의 죄악에까지 깊은 공범 의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그럼으로써 타락한 무리들을 회개에로 인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성 경: [스9:7]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 아브라함 시대 혹은 출애굽 직후(행 7:39)에서 에스라 당시까지의 이스라엘의 전(全) 역사를 가리킨다(느 9:6-35).

(주); 우리 죄가 심하매 - 이것은 포로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포로 후의 백성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해 준다(Fensham). 그러나 겔 18장에 나오는 포로민들의 불평처럼 이 말이 숙명론이나 무책임주의를 조장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다만 출 20:5 등에 나오는 말씀처럼, 아비가 지은 죄를 똑같이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경고일 따름이다. 따라서 강조점은 오히려 회개하고 여호와의 율례를 좇은 일에 있다(겔 18:5-9 참조).

(주); 우리 왕들...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 남국 유다와 북국 이스라엘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변 강대국에 의하여 침범을 당하여 왕이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거나 치욕을 당한 것을 가리킨다. 즉, '왕'의 경우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에 의해서(왕하 15:19), '베가'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서(왕하 15:29), '호세아'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 의해서(왕하 17:3, 6), '므낫세'는 앗수르 왕 '앗술바니팔'에 의해서(대하 33:11), 요시야는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왕하 23:29), '여호아하스'도 '느고'에 의해서(왕하 23:33), 여호야김과 여호야긴 및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왕하 24:12 ; 25:6, 7) 치욕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었다. '제사장'의 경우도 이런 일들이 허다했었다(왕하 25:18 ; 렘 52:24).

(주); 노략을 당하며 - 이것도 왕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왕들에게 복속되었던 형태 중의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들을 가져간 일일 것이다(왕하 25:13-17).

(주); 오늘날 같으니이다 - 에스라가 귀환한 후에도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국 땅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사실을 배경으로 한 말이다(Williamson).

성 경: [스9:8]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잠간 은혜를 베푸사 -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 일을 가리킨다(1:1). 따라서 여기의 '잠간'은 B.C. 537년의 최초 귀환 시기부터 B.C. 458년의 제2차 귀환 시기까지의 약 80년을 가리킨다(Fensham). 이 기간은 패역함과 불순종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와 대조된다(Fensham, Rawlinson).

(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 이것은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또한 팔레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 다시말해서 에스라에게 있어서는 포로지로부터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자들만이 '남은 자'로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사 10장 주제 강해, '남은 자 사상' 참조).

(주); 거룩한 처소 - 이것은 (1) 성전(Schultz, Williamson), (2) 팔레스틴 땅(Fensham,Batten, 박윤선) 등 모두로 이해될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모두 가능한 까닭은 다음 문구의 주석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주);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 이것은 문자적으로 '우리들에게 천막의 말뚝을 주셨다'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천막의 말뚝'은 유목 생활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유목민들이 오랜 여행을 마치고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장소에 천막을 쳐야 한다. 그때 그들은 천막의 말뚝을 땅에 박아야 하지만, 아무 곳에나 그렇게 할 수없고 자신들이 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Musil). 그렇다면 '천막의 말뚝'은 일정한 장소를 차지할, 혹은 그곳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Fensham). 따라서 '천막 말뚝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땅 팔레스틴에 다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셨음을 가리키는 셈이다(Fensham). 물론 이것은 보다 영적으로 말할 경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가 새롭게 공고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Williamson). 바로이 같은 점에서, 앞의 문구 '거룩한 처소'는 팔레스틴 땅과 성전 모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주); 우리로...소성하게 하셨나이다 - 문자적으로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의 뜻이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라는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은 하나님에 의해서 죽은 상태로 간주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묘사한 에스겔의 사상과 서로 상통한다(겔 37:1-4).

(주); 종 노릇 하는 중에서 - 비록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에게 처음에는 상당한 자유의 제약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결코 문자적 의미에서의 '종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서 정치적 주권을 소유치 못했으며, (2)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만이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롬 6:18, 22) 그들은 그곳 나라의 왕을 섬기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Williamson, Fensham).

(주); 조금 - 이것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 후손 중, 아주 소수만 다시 본토로 돌아왔던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될 수 있다.

성 경: [스9:9]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노예가 되었사오나 - 이것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실을 가리킨다(8절). 원어상 여기의 '노예'는 앞 구절의 '종 노릇하는', 그리고 이어 나오는 '복역하는'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갖는다.

(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 '버리지'(*, 아자브)는 '용서하다', '돕다' 등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끊다' 혹은 '떠나다'의 의미로서, 깊은 관계 중에 있던 어떤 상대를 배신하여 기존의 관계를 청산하는 행동을 가리킨다(8:22 ; 신 28:20 ; 왕하 2:2; 대하 13:10).

(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울을 주셨나이다 - 여기의 '울'(*, 가다르)은 '담벽'을 의미한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울'이 예루살렘 성벽을 가리킨다고 보고,이 사실에 근거하여 에스라의 귀환이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된 성벽완공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1) 에스라가 팔레스틴에 왔을 때는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된 상태에 있었으며(느 1:3), (2) 이 말이 만일 예루살렘 성벽을 가리킨다면 수식구인 '유다와 예루살렘에서'라는 표현이 매우 어색하며 또한 (3) '울'이라는 단어는 포도원의 담장과 같은 것을 가리키며(시 80:12 ; 사 5:1-7) 대개 '성벽'은 '호마'(*)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점 등에서 볼 때, 문자적 의미의 예루살렘 성벽을 뜻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여기의 '울'은 영적 의미의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성 경: [스9:10]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이렇게 하신 후에도 - '이렇게 하신'은 하나님께서, 범죄하여 회복되기 곤란한 상태에 빠졌던(7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다시 허락하사 팔레스틴으로 귀환하게 하신 사실(8, 9절)을 가리킨다.

(주); 우리가...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 이것에 대해서는 1, 2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우리'는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인칭 대명사이다(3, 6절).

성 경: [스9:11]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본절의 초두에 관계대명사 역할을 하는 '아쉐르'(*)가 있음을 볼 때, 본절은 10절의 '주의 계명'을 수식하는 구절로 봐야 한다(NIV, Williamson).

(주); 주께서...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 '선지자들'은 모세 오경을 기록한 모세를 포함하여(신 18:15 ; 34:10 ; 호 12:10) 이스라엘 전 역사 기간 동안에 활동했던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 같은 견해는, 이어지는 내용이 여러 선지자들에 대해 예언되었던 것들을 혼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입증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주께서'는 문자적으로 '당신께서'이다.

(주);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 이것은 레 18:25 ; 20:22 ; 신 4:5 ; 애1:17에 있는 말씀의 종합이다. 그런데 여기서 '얻으려'(*, 레리쉐타)는 '소유하다' 혹은 '빼앗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야라쉬'의 부정사로서, 본 단어 앞의 '가서'의 목적을 보여준다. 한편 '더러운'(*, 니다)은 구약성경에서 월경을 하는 여인과의 접촉(레 12:2) 혹은 성적 타락(레 20:21) 등으로 인한 의식적(儀式的) 부정(不淨)의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로서 여기서는 우상 숭배 및 그것과 관련된 부도덕한 행위들을 뜻한다(대하 29:5 ; 애 1:17 ; 겔 7:20 ; 36:17). 결국 이것은그 땅의 백성과 접촉하는 일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그들과의 접촉은 금해야 함을 암시하는 말이다.

(주);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 이것은 신 18:9 ; 왕하 16:3 ;21:2 ; 대하 28:3 ; 33:2 등의 말씀이 종합된 것으로서 그 '땅'이 왜 '더러운 땅'인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한편, 본절에서 원용된 사항들이 대체로 신명기서의 내용이라는 점은, 에스라가 신명기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시사한다(Fensham). 그리고 여기서 '이방 백성들'은 가나안 원주민을 가리키며(1절), '가증한 일을 행하여'(*, 베토아보테이헴)는 '혐오하다' 혹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타아브'에서 파생된 명사와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 베)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단어이다. 따라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매우 적절하다고 하겠다.

성 경: [스9:12]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본절 또한 11절과 같이 10절의 '주의 계명'을 수식한다.

(주); 여자들을...주지 말고 저희 딸을...데려오지 말며 - 본절은 신 7:3에서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서만 대부분 말하는데(2절 ; 창6:2 ; 26:34 ; 출 34:16 ; 삿 3:6) 반하여, 여기서는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음이 독특하다. 그러나 이는 오직 에스라 시대에만 딸들을 이방인들에게 시집보냈다는 뜻이 아니다. 이방인의 딸들을 데려온 시대에는 반드시 이스라엘백성의 딸을 이방인들에게 시집보내는 일도 수반되었을 것이다.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했던 일차적 목적이 우상 숭배는 물론 그것과 관련된 타락한 이방 악습의 유입을 막기위함이었다. 신약에서도 불신자와의 결혼은 배격되고 있다(고전 7:39 ; 고후 6:14).

(주); 그들을 위하여 평강과 형통을...구하지 말라 - 이것은 신 23:6에서 모세가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해서 언급했던 명령이다. 이처럼 '모압과 암몬'에 해당되는 특별한 명령인데도 여기서 이방인 전체 민족에 대해서 적용되고 있는 까닭은 (1) '모압과 암몬'이외의 다른 민족들도 또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를 가질 만큼의 윤리적 수준을 전혀갖고있지 못했으며(사 19:1-20:6 ; 23:1-18 ; 렘 46:1-28 ; 47:1-7 ; 48:1-47 ;49:1-22), (2)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및 모압 족속과도 통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평강'의 문자적 의미는 '그들의 평화'로서 개인적 '건강','마음의 평화' 및 정치적 '안정'을 주로 가리킨다(왕상 4:25). 그리고 '형통'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선'을 뜻하며, 보다 내적인 의미에서의 '행복'(Fensham, Williamson)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문구는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바라지 말라'라고 번역될 수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평화와 행복을 공유하지 말아야 할 것, 즉 그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할 것을 뜻한다(Ridderbos, 출23:32 ; 34:12).

성 경: [스9:13]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주);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 하나님께서 엄격히 공의대로 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멸망될 수밖에 없었으며 바벨론 포로 사건을 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막을 내려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벌이 가벼웠음을 뜻한다.

성 경: [스9:14,15]

주제1: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

주제2: [에스라의 기도]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망케 하지 않으시고 일부를 남겨주셨음에도(13절) 불구하고 또다시 범죄한 이상 이스라엘은 멸망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에스라의 언급은 그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에스라는 백성의 대표 자격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철저히 자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간절한 심정으로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주);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 '거역하고'(*, 파라르)는 원래 '파괴하다' 혹은'깨뜨리다'의 뜻을 갖는다. 이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53회 사용되는 중 23회는 직접 목적어로 '언약'이라는 단어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단어의 성격을 보다 극명하게 드러내준다(Hamilton). 즉,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는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임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레 26:15 ; 겔 17:18 ; 슥11:10).

(주); 진노하사(아나프, * ) - 이것은 언약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범죄에 빠진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가리킬 때만 사용되는 단어이다(신 1:37 ; 왕상8:46 ; 대하 6:36). 이 히브리어는 '진노'와 '코'라는 두 의미를 모두 지니는데 이 두말의 긴밀한 연관성에 관해서는 시 18:7, 8을 참조하라.

(주); 주는 의롭도소이다 - '의롭도소이다'(*, 차디크)는 (1) '은혜로우시다'라는 의미로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용서하실 것임을 암시한다고 하는 견해(Rawlinson, Fensham), (2) 여기 번역 그대로 '공의로우시다'의 의미로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켜도 당연함을 암시한다고 하는 견해(Williamson, Keil) 등으로 그 해석이 갈라진다. 그러나 (1) 여기의 '차디크'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측면을 나타낼 때는 사용된 일이 없으며,(2) '차디크'가 포로 후 시대에는 '은혜로움'의 의미를 내포하였다는 혹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거의 동시대, 아니 오히려 후대의 기록인 느헤미야에서도(느 9:33) 그런 의미의 내포 흔적은 발견되지 않으며, (3) 에스라의 기도 내용 전체의 문맥적 의미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보다 타당성이있다.

성 경: [스10:1]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스가냐의 개혁 제의]

(주); 하나님의 전 앞 - 이것은 '성전 마당'을 가리킴이 분명하다(Schultz). 만일 에스라가 '성소' 안에서 기도를 했다면 백성들이 에스라의 기도 모습을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 엎드려 울며 - '엎드려'(*, 미트나펠)는 '쓰러지다' 혹은 '넘어지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나팔'(*)의 재귀형으로서 극도의 슬픔 때문에(Davidson)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지듯 납작하게 엎드리는 행동을 가리킨다(NIV). 또한 '울며'(*, 바카)는 어떤 비극적 사실로 인하여 '통곡' 혹은 '애곡'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23:2 ; 삼상 1:10 ; 삼하 1:24 ; 렘 22:10). 따라서 '엎드려 울며'는 극도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행동임이 분명하다. 에스라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인 양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한 바 있거니와(9:6-15) 여기서도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것인 양 괴로워하며 통회 자복하고 있다.

(주);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 이것은 일차적으로 (1) 에스라의 죄에 대한 외적 태도(9:3). (2) 에스라의 백성들에 대한 연대 의식 및 그의 간절한 기도 내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효과를 극대화시킨 요소 중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왕의 정치적 사법권을 소유한(7:25) 신분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Fensham). 한편, '통곡하매'는 본절의 '울며'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같이 에스라에게 적용된 단어가 백성들에게도 적용됐다는 사실은, 여기의 백성들의 통곡이 에스라의 신앙적 태도에 대한 적극적 반응임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스10:2]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스가냐의 개혁 제의]

에스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기에 앞서, 백성들로부터의 자발적 결단이 나타나도록 기다리는 지혜를 보여 준다.

(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 - '스가냐'라는 이름은 본절을 포함해서 본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틀어 6회 나오지만(8:3, 5 ; 느 3:29 ; 6:18 ; 12:3), 그중 어느 하나도 본절의 '스가냐'와 동일시될 만한 증거는 없다. 한편 '엘람 자손'은 26절 ;2:7 ; 8:7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여히엘'을 이방 여인과 결혼한 스가냐의 아버지라고 보는데(26절), 비록 스가냐가 이방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지만 이방의 악습을 버리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6:21) 무리를 대표하여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한다(Williamson). 그러나 본문의 여히엘이 26절의 여히엘과 동일인이라는 증거는 없다(Fensham).

(주);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 '스가냐'가 이 같은 긍정적 언급을 한 까닭은 (1) 에스라의 간절한 자복의 기도와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로 인하여 백성들이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리라는 기대(Fensham)와, (2) 이 같은 범죄 사건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 종교 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Schultz)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소망'(*, 미크웨)은 '기다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카와'(*)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1) 극한의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끈기있게 고대하는 것(창 49:18 ; 사40:31), (2) 그 같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 등을 가리킨다.

성 경: [스10:3]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스가냐의 개혁 제의]

(주);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 여기의 '내 주'(*, 아도나이)는 '에스라'를 가리킨다. '스가냐'는, 영적.도덕적인 권세와 정치적 권세를 아울러 지녔던(7:25) '에스라'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훈을 좇으며'는 에스라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주요 목적 중의 하나가 백성들에 대한 율법 교육이었음(7:10)을 명심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교훈'(*, 아차트)은 '조언하다' 및 '훈계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야아츠'(*)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은 문제에 대해 에스라가 제시하는 방침 혹은 해결책을 가리킨다.

(주); 아내와 그 소생을...보내기로 - '아내를 보내는 것'은, 그 결혼이 하나님의 율법과 상치(相馳)되는 원인 무효의 법적 상태였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한 행동이었다. 한편 '소생', 즉 그 아내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보내는 행동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꽤 잔인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1) 자녀들은 어머니의 종교적 영향을 크게 받는 관계로 틀림없이 이방의 풍습이나 종교에 젖어 있었을 것이며, (2) 이스라엘은 주변의 허다한 다신 종교로부터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 명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다(Fensham, Grosheide). 그리고 여기서 '보내기로'(*, 호치)는 '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차'(*)의 사역형으로서 '강제로 나가게 하는 것' 혹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Gilchrist, 레 25:28, 30, 31, 33) 등을 가리킨다.

(주);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파기되었던 언약을(렘 31:32)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사람들이 다시 갱신했듯이(6:16, 17). 최근의 범죄(9:1, 2)로 인하여 또 파기된 언약(9:10, 15)을 다시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상황에서 백성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제거하는 일이었다(Fensham).

(주);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 이것은, 백성들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이 율법의 기준에 따른다면 원인 무효임을 인식하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그 결혼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일을 가리킨다. 한편 여기의 '율법'(*, 토라)은 넓게는 '모세 오경', 좁게는 그중에서도 이방인들과의 통혼 금지 규정을 말한다(신 7:3, 4). 그리고 신24:1-4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이혼을 허용하는 규례가 나온다. 따라서 에스라의 교훈의 영향에 따라 스가냐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 사실을 '수치되는 일'(신 24:1), 곧 이혼사유에 해당된다고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스10:4]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스가냐의 개혁 제의]

(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 이는 문자적으로 '그 문제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과 헤어지도록 만드는 일이 에스라의 소관이라는 뜻으로서 에스라가 율법 교육을 위해 팔레스틴에 귀환했다는 사실과 잘 부합된다(7:10).

(주); 일어나소서 - 특별한 일의 실행을 위한 의지적 결단을 가리키는 단어이다(1:5).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할 때도 '일어나...'라고 한 바 있다(대상 22:16).

(주); 우리가 도우리니 - 이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의 뜻이다.

성 경: [스10:5]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에스라가...맹세하게 하매 - 맹세의 내용은, 율법에 따라 '이방 여인들을 내어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30:1-8 강해, '서원(誓願)과 맹세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주); 제사장들...레위 사람들...온 이스라엘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던 세 계층이었다. 이처럼 세 계층이 모두 나열된 것은 에스라가 각계 각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은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까지 통혼(通婚)의 악습에 빠져있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느헤미야 당시에 대제사장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경우가 그러하다(느 13:28).

성 경: [스10:6]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 - 여기의 '여호하난'은 분명히 '엘리아십'의 손자로서(느 12:22)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것 같다(Rawlinson, 느 3:1 ; 12:10).

(주); 방 - 이것은 성전의 양쪽에 있던 '방들' 중의 하나이다. 이 '방'은 제사장 혹은 레위인들이 봉사를 준비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8:29).

(주); 들어가니라...들어가서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동일한 두 동사 중 나중 것을 사본상의 오류로 본다. 즉, 나중 것(*, 와옐레크)을 칠십인역(LXX)이나 에스드라상 9장 2절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라는 뜻을 지닌 '와옐렌'(*)으로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Brockington, Myers, Grosheide, Williamson, Fensham, RSV).

(주); 떡도...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 이 같은 모양의 금식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중보를 위하여 모세에 의해서도 행해졌다(출 34:28 ; 신 9:18). 이런 금식은 먹는 것만을 금하는 금식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의미를 나타낸다(삼상 1:7 ; 20:34 ; 삼하3:35).

성 경: [스10:7]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공포하기를 - 이것은 '건너다' 혹은 '지나다'라는 뜻을 지닌 '야아비루'와 '음성', '풍문'을 뜻하는 '콜'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음성을 지나가게 하다'라는 뜻으로서, 사자(使者)를 통해서 에스라의 전언(傳言)을 전국에 전달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전언은 필경 거리에서 큰소리로 외쳐져서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하다(Fensham).

(주);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언약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1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에 모이는 일이 중요했듯이(출 23:17), 하나님의 징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언약을 갱신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은 명령은 결코 무리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14절).

성 경: [스10:8]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訓示) - 여기의 '방백들과 장로들'이 에스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던 것 같다(Fensham). 그리고 이들은 에스라에게 도움을 다짐했던 사람들(4절)과 거의 같은 인물들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표면상으로 이들의 훈시 형태로 시달된 것은, 외면상으로 나서서 권위를 행사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에스라의 의도를 엿보게 해준다(Williamson).

(주); 삼 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이스라엘의 영토는 남쪽의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의 벧엘까지여서, 멀다고 해도 예루살렘에서는 불과 약 60km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심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던 백성들이(7절) 그 거리를 '삼 일이내'에 가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Rawlinson, Williamson).

(주); 재산을 적몰(籍沒)하고 - 이것은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의 하나였다(7:26).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의 '적몰하고'가 형벌의 외형상으로는 7:26의 것과 유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여기의 '적몰하고'(*, 하람)는 7:26의 '적몰하다'(*, 아나쉬)와는 원어상으로 전혀 다르다. '아나쉬'는 일반적 의미의 재산 압수를 가리키지만, '하람'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여기의 '하람'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죄를 범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불태워 없애버리며, 동물은 죽이고 심지어는 범행한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까지 그렇게하는 것을 가리킨다(수6:21). 결국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의미의 사법권을 이처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활용했다고 볼 수있다.

(주); 사로잡혔던 자의 회(會)에서 쫓아내리라 - 이것도 외형적으로는 7:26의 '정배(定配)하거나'와 동일하지만 원어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된다. 즉 여기의 '쫓아내리라'(*, 이바델)는 '나누다' 혹은 '구별하다'란 의미를 지닌 동사 '바달'(*)의 수동형으로서, 본질상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철저히 분리되어진다는 종교적 의미가 담긴 단어인 것이다(9:1 ; 민 16:21 ; 대상 23:13 ; 느 9:2). 따라서 이것도 앞의 '재산 적몰'처럼,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속적 사법권을 종교적으로 적용시켰음을 나타낸다. 한편 여기의 '회'(*, 카할)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의 무리, 곧 구약 성도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단어이다(출 12:6 ; 16:3 ; 민 16:3 ; 신 23:1 ; 삿 20:2 ; 대상 28:8 ; 느 5:13). 그렇다면 본절은 곧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볼때 이는 성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시민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 그리고 종교적, 사회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함으로써 어려움과 위기의 때에 전혀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성 경: [스10:9]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 -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했던 중요한 두지파이다. 이스라엘 백성에는 물론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지파와 기타의 다른 지파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특별히 구별된 부류라는 점에서 또한 다른 지파들은 극소수였다는 점에서 언급되지 아니했다. 따라서 여기의 '유다와 베냐민'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 에스라의 명령에 대해(7, 8절) 백성들이 그대로 순응했음을 시사해 준다.

(주); 때는 구월 이십일 - 여기의 '구월'은 '기슬르 월'(느 1:1)이라고도 불리우며, 양력으로는 12월로서 한 겨울이자 또한 우기(雨期)에 해당된다. 에스라가 바로 이 같은 날짜를 여기서 언급한 까닭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는 데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을 것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주); 무리가...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 백성들이 내적인 원인과 외적인 원인 두 가지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꼈음을 말해 준다. 즉, 백성들은 추운 겨울에 억수같이 퍼붓는 비로 인해 흠뻑 젖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비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으로 여겨졌던 까닭에(삼상 12:17, 18 ; 겔 13:11, 13) 떨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일'은 (1) 백성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한 것과, (2) 그에 따라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성 경: [스10:10]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 여기서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덧붙여진 까닭은, 에스라가 어떤 자격을 갖고 백성들을 소집하였고 신앙적 명령을 하는지를 밝히려는 저자의 의도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본서 저자인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Rawlinson). 그러나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백성들이 기후상의 악조건 아래서도 그같이 모이게 된 동기(動機) 중의 하나는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적 권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 경: [스10:11]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죄를 자복하고(*, 타누 토다) - 이것은 문자적으로 '감사하다' 혹은 '찬양하다'란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 자체와, 자신들의 죄로 인한 그러한 공의로운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가리킨다(Williamson). 바로 이런 점에서, 여기의 '죄를 자복하고'에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죄에 대한 회개의 개념도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주); 그 뜻대로 행하여 - 원어상으로 이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라'의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Fensham).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항상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이방 백성, 즉 이방 여인들과의 완전한 분리를 뜻한다.

(주); 끊어버리라 - 이는 원어상 8절의 '쫓아내리라'와 동일한 동사(8절 주석 참조)이다.

성 경: [스10:12]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큰 소리로 대답하여 - 주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에스라의 해결안에 적극 동조하도록 역사하셨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대하 15:14 ; 느 9:4 참조).

성 경: [스10:13]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본절에서 회중들은, (1) 많은 사람들을 어떤 조직 체계없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2) 백성들로 하여금 기후적 악조건을 무릅쓰고 계속 노천(露天)에 있게 할 수는 없으며, (3) 범죄자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릴것이라는 등의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성전 광장에서의 모임을 일단 해산시켜야 할 것을 주장한다.

성 경: [스10:14]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 에스라를 도와서 최종적 판단을 할 지도자를 임명하여 예루살렘에 남도록 하는 일을 가리킨다. '세우고'는 '임명하다'란 의미.

(주);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오게 하여 - 이렇게 한 까닭은, 그들이 에스라와 방백 앞에서 이방 여자를 내보내기로 서약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 '본성'은 범죄한 자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각 마을마다 나이 많고 인품과 덕망이 높은 이들, 곧 '장로들'로서 구성된 자치 단체가 있어 치리적 역할을 수행했다(레 19:32 ; 삼상 30:26-31). 숙곳 같은 곳에는 무려 77인의 장로들이 있었다(삿 8:14). 또 '재판장'은 7:25의 '유사'와 동일하다. 본절의 '장로'와 '재판장'은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 범법자들이 에스라 혹은 방백 앞에서 진술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와, 그들의 서약 내용의 이행 여부를 감시해야 할 책임을 갖는 자들이었다. 이 같은 역할 수행은,이들이 범법자들과 같은 고장에 살던 사람들이어서 범법자들의 차후 동향을 잘 파악할수 있었던 관계로 충분히 가능했다.

(주); 하나님의...진노가...떠나게 하소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범죄와 관계하여 두려워한 것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보다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때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성 경: [스10:15]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스라엘 총회 소집]

(주); 오직...그 일을 반대하고 - 여기의 '반대'가 무엇에 대한 '반대'인지는 (1) 회중들이 제시한 방법(13, 14절)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Fensham, Williamson, Myers), (2)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을 조사하고 그녀들을 축출하라는 에스라의 의견 자체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Schultz, Rawlinson) 등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1) 에스라 및 방백들이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 없이 범법 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2) 여기의 '반대'하는 자들도 에스라의 명령에 순복하여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모인 자들이었으며, (3) 이 '반대자'들이 이방 여인들을 취한 범죄와 무관하며(18-44절), (4) 에스라는 계명을 어기거나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에게는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더 타당한 듯하다.

(주); 므술람과...삽브대가...돕더라 - 이에 대해서는 (1) 두 사람이 회중들의 제안을 '도왔다고' 보는 견해(Williamson, Fensham, Myers), (2) 두 사람이 '요나단'과 '야스야'의 의견을 '도왔다고' 보는 견해(Keil, Rawlinson)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첫째, 두 사람 모두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않았던 인물이며 29절의 '므술람'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본다. 둘째, '므술람'이 8:16의 족장과 동일인이라고 하면 그는 에스라의 뜻을 좇았을 가능성이 많으며(8:16) '삽브대'는 레위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의 소유자였다. 셋째,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므술람' 앞의 접속사 '우'(*)는 역접(逆接)의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Fensham)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전자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성 경: [스10:16]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개혁을 위한 예비 조처]

(주);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 본 문맥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적극 돌아서려는 등 대단한 영적 각성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호칭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범죄로 인한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 제사장 에스라가...위임하고 - 에스라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과정에서 줄곧 배후에 있다가, 이제 구체적인 결단이 내려지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적 결정이 자발적 절차에 의해 내려지기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에스라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제사장 에스라'는 에스라 자신의 조처가 세속적 권한을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신앙적.영적 권위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주); 종족...지명된 족장 - '종족'(*, 바이트)은 '가문' 혹은 '가족'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 여러 '종족'의 명단은 2:3-59에 나와 있다. 한편 '지명된'은 문자적으로 '그들 모두는 이름에 따라 등록되었다'라는 의미(Fensham)이다.

(주); 시월 초하루에...조사하여 - '시월 초하루'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모였던 날로부터 열흘 후이다(9절). 이 열흘동안 심사 조직이 만들어지는 등 조사를 위한 제반 사항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한편 '조사하여'는, 한 마을의 '장로' 및 '재판장'(14절)이 검사처럼 피의자(被疑者)를 데려오면 피의자와 '장로' 및 '재판장' 양측의 말을 듣고 그 피의자의 범법 여부를 판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 앉아(야쉬브) -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의 자리에 전 위치하는 것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삼상 1:9 ; 왕상 1:35, 46).

성 경: [스10:17]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개혁을 위한 예비 조처]

(주); 정월 초하루에...마치니라 - '정월 초하루'는 태양력으로 3월 중순에 해당되므로, 조사를 시작한 '시월 초하루'(16절), 즉 12월 초하루로부터는 약 석달 후이다. 그렇다면 에스라 등이 조사 활동을 위해 소요한 시간은 안식일을 제외하고도 약 75일 정도가된다. 그러나 18-44절의 범법자의 수효는 불과 110명밖에 안 된다. 물론 장로 및 재판장들에 의해 고소되었지만, 심사 결과 무죄인 경우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려 75일 동안에 불과 110건을 처리했다는 것은, 결국 조사위원회의 심사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하여 날짜가 공연히 순연(順延)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스10:18]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 형제 - 3:2 ; 5:2 ; 학 1:1 등에 의하면 예수아는 요사닥의 아들로서 언급된다. 따라서 본문은 '요사닥의 아들인 예수아의 자손들과 그 형제'로 번역됨이 옳다(RSV ; NIV). 이들은 대제사장 가문의 후예라는 점에서 특별히 영적 모범이 되어야 할 자들이었다. 에스라는 이처럼 대제사장 가문의 범법 사실을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의 명단 초두에 올려 놓음으로써,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패상이 보편적이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Fensham).

성 경: [스10:19]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 문자적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손을 내뻗었다'의 의미로 이는 맹세할 때 흔히 취해지는 자세이다(왕하 10:15 ; 겔 17:18).

(주);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속건제로 드렸으며 - '속건제'는 보통 비고의적인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졌다(레 5:14-16).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면서, 그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Edwin Yamauchi).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혈통상의 순수성에 대한 의식이 다소 둔화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이러한 설명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엄연히 통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환경에 순응하느라고 그 죄악을 스스로 묵인해 버렸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견해를 취할 경우 제사장들이 '속건제'를 드린 것은 '속죄제'와의 분명한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될 수 있다. 이는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한 율법 교육을 다짐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7: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했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Fensham). 이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만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성 경: [스10:20]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임멜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37 주석을 참조하라.

(주); 하나니 - '은혜로움'이란 뜻임.

(주); 스바댜 -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란 뜻이다. 한편, 임멜 자손, 하림 자손(21절), 그리고 바스훌 자손(22절)은 모두 귀환한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다.

성 경: [스10:21]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하림 자손 - 2:39 주석 참조.

(주); 마아세야...엘리야...스마야...여히엘...웃시야 - '마아세야'는 '여호와의 일'이란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런 이름의 소유자가 본서와 느헤미야서에서만 모두 13명씩이나 나온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이 이름은 그 당시에 매우 흔했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엘리야'는 '여호와이신 하나님',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웃시야'는 '여호와의 능력'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성 경: [스10:22]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바스훌 자손 - 2:38 주석 참조.

(주); 엘료에네...마아세야...이스마엘...느다넬...요사밧...엘라사 - '엘료에네'는 '여호와를 향하여 나의 눈을 드나이다'라는 뜻이고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다', '느다넬'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요사밧'은 '여호와께서 판결하심', '엘라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성 경: [스10:23]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레위 사람 - 이들에 대해서는 2:40 주석을 참조하라.

(주); 시므이...글리다...브다히야...유다...엘리에셀 - '시므이'는 '유명한', '글리다'는 '불구가 됨'(느 8:7), '브다히야'는 '여호와께서 여셨다', '유다'는 '찬양'이란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성 경: [스10:24]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노래하는 자 - 이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엘리아십 - '하나님이 돌이키실 것이다'란 뜻.

(주); 문지기 - 2:42 주석 참조.

(주); 살룸...델렘...우리 - '살룸'은 '보상', '델렘'은 '압박', '우리'는 '불같은'이란 뜻의 이름이다.

성 경: [스10:25]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이스라엘 - 이 말이 제사장들까지 포함한 전 백성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으나(6:17) 여기서는 성직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 대한 총칭이다(25절).

(주); 바로스 자손 - 2:3 주석 참조.

(주); 라먀...잇시야...말기야...미야민...브나야 - '라먀'는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신다', '잇시야'는 '여호와께서 빌려 주실 것이다', '말기야'는 '왕은 여호와이시다'의 뜻이고, '미야민'은 '운이 좋은', '브나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셨다'의 뜻이다.

성 경: [스10:26]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엘람 자손 - 2:7 주석 참조.

(주); 맛다냐...스가랴...여히엘...압디...여레못 - '맛다냐'는 '여호와의 선물',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여히엘'은 '하나님은 살아계심', '압디'는 '여호와의 종', 그리고 '여레못'은 '높은 곳'이란 뜻을 지닌다.

성 경: [스10:27]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삿두 자손 - 2:8 주석 참조.

(주); 사밧...아시사 - '사밧'은 '주는 자', '아시사'는 '강력함'이란 뜻이다.

성 경: [스10:28]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베배 자손 - 2:11 ; 8:11 주석 참조.

(주); 여호하난...하나냐...삽배...아들래 - '여호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셨다'의 뜻이 있다. '삽배'는 '순결한', '아들래'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한다.

성 경: [스10:29]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바니 자손 - 2:10 주석 참조.

(주); 므술람...스알 - 여기의 '므술람'은 15절의 '므술람'과 동명 이인이다(15절). '말룩'은 '통치하는', '아다야'는 '여호와께서 꾸미셨다', '야숩'은 '그가 돌아올 것이다', '스알'은 '간구'라는 뜻을 지닌다.

성 경: [스10:30]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바핫모압 자손 - 2:6 주석 참조.

(주); 앗나...므낫세 - '앗나'는 '즐거움', '글랄'은 '완전한'이란 뜻이다. 그리고 '브사렐'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서', '빈누이'는 '세워진', '므낫세'는 '잊게 하는'이란 뜻을 가진다.

성 경: [스10:31]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하림 자손 - 이것은 제사장 계열이었던 21절의 '하림 자손'과는 다르다(2:32).

(주); 시므온 - '들음'의 뜻이 있다.

성 경: [스10:32]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베냐민...스마랴 - 이들도 역시 하림 자손들이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그리고 '스마랴'는 '여호와께서 지키셨다'를 의미한다.

성 경: [스10:33]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하숨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29 주석을 참조하라.

(주); 맛드내...여레매 - 여기서 '맛드내'는 '자유로운', '맛닷다'는 '여호와의 선물', '엘리벨렛'은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 '여레매'는 '높아진'의 뜻이 있다.

성 경: [스10:34]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바니 자손 - 2:10 주석 참조.

(주); 마아대...우엘 - 여기서 '마아대'는 '장식품', '아므람'은 '고귀한'을 의미하며, '우엘'은 '하나님의 소원'을 의미한다.

성 경: [스10:35]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베드야...글루히 - '베드야'는 '여호와의 종'을, '글루히'는 '완성된'을 뜻한다. 이들도 모두 '바니 자손'이다.

성 경: [스10:36]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와냐...므레못...에랴십 - '와냐'는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므레못'은 '높은 곳들'의 뜻이며, '에랴십'은 '하나님께서 돌이키실 것이다'란 뜻이다.

성 경: [스10:37]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야아수 - '그들이 할 것이다'란 뜻이다.

성 경: [스10:38]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바니 - '세워진'의 의미가 있다.

성 경: [스10:39]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셀레먀...나단 - '셀레먀'는 '여호와의 감사 제물'을 의미하며 '나단'은 '주어진'이란 뜻을 지닌다.

성 경: [스10:40]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막나드배...사새...사래 - 여기서 '막나드배'는 '무엇이 관대한 사람과 같은가?'의 뜻이고 '사새'는 '흰 듯한', '사래'는 '지배하는'이란 뜻이다.

성 경: [스10:41]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아사렐 - '하나님의 공의'란 뜻이다.

성 경: [스10:42]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요셉 - '그가 말할 것이다'를 의미한다.

성 경: [스10:43]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주); 느보 자손 - 이에 대해서는 2:29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여이엘...요엘 - '여이엘'은 '하나님께서 이끄신다'의 뜻이 있고, '맛디디야'는 '여호와의 선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비내'는 '수지가 맞아떨어짐', '잇도'는 '하나님께서 아셨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란 의미를 지닌다.

성 경: [스10:44]

주제1: [에스라의 종교 개혁]

주제2: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

본절은 에스라의 개혁 조처가 완전히 매듭지어졌다는 분명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로 인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이것과 병행 구절인 에스드라상 9장 36절을 좇아서 본절의 후반부를 '그래서 그들이 그녀들을 그 자녀와 함께 보내었다'로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 부분을 '난하주'로 처리하였다(NIV, RSV). 그러나 칠십인역(LXX)의 내용은 여기의 맛소라 본문과 일치하므로 굳이 그같은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 이것은 에스라의 개혁 조치에 따른 범법자들의 이혼이 엄청나게 큰 인간적 고통을 수반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사실 자녀까지 낳았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에스라의 지도를 따라서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종교적 개혁 운동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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