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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

시편

시편2(76-150)

성 경: [시76:1]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승리의 하나님]

⭕ 유다에...이스라엘에 - 정치적으로는 솔로몬 사후(死後)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한 유다 왕국과 이를 제외한 10지파, 즉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계시하시고 관계를 맺으신 언약의 백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본절의 두 왕국은 종교적 일체감을 갖는 하나의 민족임을 암시한다.

성 경: [시76:2]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승리의 하나님]

⭕ 그 장막이 - '장막'은 텐트 형태의 이동할 수 있는 성소로서 종종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의 장소로 상징되었다(출 25:8). 그러나 원문상으로는 '장막'(*, 미쉬칸)이 아니라 '초막'(*, 수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초막'이란 나뭇가지나 풀로 엮어 만든 가옥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것을 '장막'이라 한 것은 이 단어가 간혹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곳을 일컬을 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27:5;31:20).

⭕ 살렘에...시온에 - '살렘'(*, 솰렘)은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으로서 멜기세덱이 다스리던 성읍이었다(창 14:18;히 7:1, 2). 그후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정착시키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도시로 상징되었다. 또한 시온도 처음에는 다윗이 정복했던 예루살렘의 남동부 언덕 혹은 요새를 가리켰지만 다윗이 법궤를 이곳으로 옮긴(삼하 6;12-19) 후부터는 거룩한 산(2:6), 주의 거하시는 곳(9:11) 혹은 하나님의 산성이라 불리웠다. 본절에서 두 장소가 함께 언급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한 것이다.

성 경: [시76:3]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승리의 하나님]

⭕ 거기서 - 이 말의 정확한 원문은 '솨마'(*, 황폐한)가 아니라 '헤'(*)가 없는 '솽'(*, 그곳으로부터)으로 해야 한다. 이 '솽'에 대해 혹자는 '거기'라는 말대신 '거기로 가는 도중에'(on their way there)로 해석하여(Alexander) 본절을 '저가 화살과...거기로 가는 도중에 꺾으셨다'로 설명한다. 여기서 '거기'의 정확한 장소는 예루살렘에 아주 근접한 장소로 보는 것이 좋다(왕하 19:32, 33).

⭕ 화살 - 여기에는 번역상 '불'(*, 레쉐프)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원문대로 표현하자면 '불화살'이 정확한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의 해석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1) '불을 붙인 화살'(Harmond, Parkhurst), (2) '맹렬한 화살'(Walford), (3) 가나안 신화로부터 유래된 은유 형태로서 '번쩍이는 활'(NIV, EBC) 등이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본문에서는 전쟁 무기를 암시하기 때문에 '적들의 신속하고도 맹렬한 공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 방패와...깨치시도다 - 본 구절은 이 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전쟁을 언급하는데 그 시기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다(본 시편 강해를 참조하라). 우리는,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의 산헤립 군대를 하나님의 사자가 전멸시켰던 때(왕하 19:35)로 보기로 한다(Hengstenberg, Alexander, Calvin). 이 견해를 따르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삽이 다윗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아삽의 후손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이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결정적 근거로는, 70인역(LXX)에 본시의 제목이 '앗수르에 관해 지은 노래'(*, 오데 프로스 톤 앗수리온)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본 구절은 전쟁 무기를 통해 전쟁을 묘사한 환유법을 사용함으로 시적 분위기를 강하게 해준다.

성 경: [시76:4]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악탈한 산 - 이 말에 대해서는 (1) 원문의 '타레프'(*, 약탈한)를 근거로 하여 압제하는 세력으로서의 '약탈을 일삼는 나라'로 보기도 하며(Calvin), (2) 70인역(LXX)의 '아이오니온'(*, 영원한)이란 말을 근거로 '영원한 산'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두번째 견해는 '타레프'가 '아드'(*, 영원한, 약탈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후자의 견해를 따르는 자들은 시편 기자가 주의 '전능하심'을 '영원한 산'에 비유했고(Kraus), 궁극적으로는 주의 거처가된 시온 산에 대해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Hitzig). 그러나 3절의 '전쟁'과 2절의 '시온'에 관한 언급을 비교해 볼 때 두 견해를 종합하는 것이 나으리라 본다. 즉, 여호와의 공의의 심판이 시행됨에 따라 결국 여호와께서 '약탈을 일삼는 나라에서' 혹은 '약탈한 시온 산에서' 존귀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성 경: [시76:5]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마음이 강한 자(*, 아비레이 레브) - '용감한 자', '마음이 완고한 자'란 뜻으로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적절하다. 좁은 의미로는 앗수르 왕의 완고한 마음(사 10:12-14)을 나타내나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던 앗수르 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 탈취를 당하여(*, 에쉬톨렐루) - '약탈하다'란 뜻인 '솰랄'(*)의 재귀형(Hithpael)으로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나타내는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해 학자들은 (1) '자신을 망하게 했다'로 해석하기도 하고(Harmond), (2) '강탈 당했다', '추방 당했다', '사라졌다'라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고려할 때, 본 절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징벌로 말미암아 약탈자들이 그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로 그 자신들도 약탈자들이 그들의 악행에 대한 대가로 그 자신들도 약탈 당했음을 뜻한다.

⭕ 잠을 자고 - 단순한 수면 상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강포한 자들의 죽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 말은 앗수르 군대가 천막에서 잠자고 있다가 185,000명이 죽임을 당해 패망했던 사실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사 37:36).

⭕ 자기 손을...못하도다 - 이 구절에 대해서 '그들의 손을 사용할 수 없었다'(Alexander)로 보기도 하고 '그들의 손을 찾지 못했다' 혹은 '손을 들 수 없었다'(Tyndale)라고 해석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대적들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패퇴 당해 공격이나 방어를 위해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된 상황을 나타낸다.

성 경: [시76:6]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병거와 말 - 문맥과 시의 배경을 고려할 때 '병거 탄 자와 말 탄 자'를 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혹자는 '탄 자와 말'이라고도 해석하는데 이것이 더 정확한 의미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산헤립 군대에 내려졌던 독종으로 사람뿐 아니라 말까지 다 죽었기 때문이다.

성 경: [시76:7]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주 곧 주 - 대명사 '주'를 반복한 것은 그 의미에 대한 강조와 부연 설명으로서 '존귀한 자', '절대자'를 나타내며 '오직 하나뿐인 자'를 말한다.

⭕ 경외할 - 원문은 '두려워하다'이지만 그 의미는 (1) '심리적 두려움(공포)에 대한 반응'(신 5:5), (2) '존경심을 갖춘 경의', (3) '예식이 동반되는 종교적 숭배'(왕하 17:32-34)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문맥상 (2)의 의미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 서리이까 -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을 의미하지만 또한 의문문의 형태로서 감히 하나님 앞에 거만하게 서 있는 자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한데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서려는 자들이다.

성 경: [시76:8]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성패(成敗)가 그분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이는 일방적인 종전(終戰) 선언이며 산헤립 군대를 전멸시킴으로 보여준 심판의 소식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산헤립 군대를 멸망시킬 때 우뢰를 동반했는데 이것이 판결의 선고로 비유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가 없다.

⭕ 땅(*, 에레츠) - 단순히 가나안에 한정된 영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earth, whole world)을 의미한다.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으로는 하나님이 산헤립 군대를 전멸시켰을 때 그 소식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쪽 아시아의 여러 민족에게까지 알려진 사실이 있다(대하 32:22, 23).

성 경: [시76:9]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공의의 하나님]

⭕ 땅의 모든 온유한 자 - '온유한 자'란 '아느웨'(*, 낮은, 겸손한)로서 하나님에 대한 도덕적,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겸손하게 인내함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행 20:19)를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앗수르의 압제로 인한 피해자들과, 넓게는 세상의 모든 압제받는 자들을 암시하기도 한다.

⭕ 구원하시려고 - 8절의 배경이 되는 말로서 적들을 심판하신 근본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원하시려는 대상은 문자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과 압박받는 민족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앞 구절인 '땅의 겸손한 자들', 즉 영적인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온유한 자들' 즉 진정으로 경건한 유대인이나 이방인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 경: [시76:10]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마땅히 경외할 자]

⭕ 사람의 노는...것이요 - 이 구절은 하나님의 적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의해 정복당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모든 행위, 심지어 하나님께 대항하는 적들의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 남은 노는...금하시리이다 - '남은 노'가 문자적으로는 '노한 사람의 나머지', '악인의 나머지'란 의미이지만 그 '노'를 (1) 사람의 노로 보았을 경우 '최고 극단의 노'(Luther), '최후의 노'(Flaminus), '남은 노력을 다 기울이는 노'로 해석되어, 본문은 '적들이 계속 노를 발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억제하신다'가 된다. 그러나 (2) 하나님의 노로 생각할 경우, 뒤에 나오는 '금하셨다'(*, 타흐고르)라는 말이 '허리에 두르는 것', '입는 것' 등의 의미를 갖고 대개 의복이나 무기를 휴대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45:3;사 59:17) 하나님이 허리를 동이시는, 즉 싸울 태세를 갖추시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남은 진노를 허리에 차실 것이다(혹은 예비하셨다)'로 해석된다. 특히 본문의 '주께서'라는 말을 연관시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하다.

성 경: [시76:11]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마땅히 경외할 자]

⭕ 서원하고(*, 니다루) - 일반적으로 '예물'을 의미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공적인 맹세'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원에는 맹세한 것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본시에서 기자가 '서원'을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받고 안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망각하여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어리석음 가운데 또다시 빠져들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 사방에 있는 모든 자 - 해석상 (1) 하나님을 섬기는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 (2) 이스라엘에 근접해 있는 주변 나라들(Kimchi)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런데 본 구절 뒤에 언급되는 '예물'(*, 솨)이란 말이 '피정복 나라들로부터 바쳐지는 공물(貢物)'을 의미하기 때문에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성 경: [시76:12]

주제1: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주제2: [마땅히 경외할 자]

⭕ 심령을 꺾으시리니 - '꺾으시리니'(*, 이브초르)는 '잘라내다', '축소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심령'(*, 루아흐)은 학자에 따라 (1) 용기, 담대함, 교만(De Wette, Hupfeld), (2) 진노의 연기(Delitzsch), 진노의 숨(Hitzig), (3) 생명(Tyndale)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브초르'와 연관시켜 볼 때 (1)의 견해가 적절하며 더 나아가서 (3)의 견해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성 경:[시77:1]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 내 음성으로...부르짖으리니 - 본절은 반복법을 사용함으로 현실의 문제 상황이 심각하고 절박함을 강조한다. 특별히 '내 음성'이 강조된 것은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갈망하는 가운데 '진실함'과 '간절함'을 호소하는 말이다. 여기서 혹자는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절망의 외침이나 기도를 못들은 체하신 것에 대한 슬픔의 하소연이라고 하지만 하반절의 '귀를 기울이시리로다'가 저자의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의 말이라고 볼 때 그것은 부적절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기도 응답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성 경: [시77:2]

주제1: [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 [환난 중의 기도]

⭕ 환난날에 - 본 시의 중심이 되는 단어로서 배경을 암시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즉, (1) 저자 자신이 개인적으로 겪었던 크나 큰 환난으로 보거나,(2) 국가적 차원의 환난으로 취급하는 견해이다. 그런데 국가적 환난에도 이견(異見)이 있다. 첫째는 바벨론 포로 시대 전후(前後)에 나타난 환난으로 보며(Ewald), 둘째로는 아직 성전 파괴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하박국 선지자가 이 시를 참조한 듯하기 때문에(합 3장) 요시야(B.C. 640-609년 재위) 이전 시대 곧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한 것에 대한 고통으로 본다(Delitzsch, Hengstenberg, Caspari). 본 시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저자가 국가적 환난에 직면하여 기도하면서 15절 이하의 구원에 대한 기사에 희망을 갖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배경을 밝히기란 어렵다. 물론 여기서 '환난'이란 저자의 개인적인 환난인 동시에 국가적 환난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 손을...아니하였으며 - 혹자는 '손'(*, 야드)을 '고통', '상처'로 보고 '들고'(*, 니그라)를 '흐르다'로 해석하여 이 구절을 '고통과 상처로 인하여 밤새 눈물을 흘렸다'로 본다. 그러나 본래 '야드'의 1차적인 의미는 본문대로 '손'이며 '니그라' 역시 '뻗다', '펼치다'는 뜻도 지니며 본절에서는 간청이나 애원을 할 때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몸짓으로서 손을 뻗치는 것을 묘사한 단어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1절의 내용과 본절 초두의 '주를 찾았으며' 그리고 '거두지 아니하였으며' 등과 같은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본구절은 계속적인 기도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내 영혼이...거절하였도다 - 진정한 위안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에, 다른 어떤 위로의 말도 시인을 평화롭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거부했다는 의미이다(창37:35;렘 31:15). 또한 본문에서 위로를 거절했다는 것은 현재 기도의 응답이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에 그 고통은 비록 괴롭지만 감수하겠다는 뜻을 암시한다. 궁극적으로본 구절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저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성 경: [시77:3]

주제1: [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 [환난 중의 기도]

⭕ 하나님을 생각하고...근심하니 - '생각하고'(*, 에즈케라)라는 말은 '기억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본 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저자가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환난날에 위로를 얻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그를 불안케 했다는 것은 전에도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께서 지금은 응답하시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 현재 자신의 환난과 국가의 환난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는 생각에 불안했던 것이다.

⭕ 심령이 상하도다 - 본문의 '심령'(*, 루히)은 '영혼'이라기보다는 '용기','마음', '기운' 등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하도다'(*, 티트아테프)는'쇠약해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외부적 환난으로 말미암아 쇠약해진 심적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성 경:[시77:4]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 주께서...없나이다 -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아하제타)는 문자적으로 '지키다', '제지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본절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저자가 잠들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며, 이것은 더 나아가 하반절에 언급된 기도의 말도 할 수조차 없는 비참한 상황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성 경:[시77:5]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 내가...생각하였사오며 - 3절이 현재의 환난에 대해서 불안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라면, 본절은 6절의 '묵상'이란 말을 고려해 볼 때 과거에 용기를 주셔서 위로해 주시고 큰 역경 중에서 구원해 주심으로 잠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회상한다고 볼 수 있다(14-19절;3:4, 5).

성 경:[시77:6]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 밤에 한 나의 노래 - 여기서 '나의 노래'(*, 네기나티)를 많은 사람들이 70인역(LXX)에 기초하여(EBC) '나는 묵상한다'(*, 웨하기티)로 수정한다(Tyndale).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문은 '나의 과거 일들을 밤에 묵상하고'로 해야 한다. 본 시의 전반부(1-10절) 내용과 시인의 심적 상태나 처한 상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음악적인 노래보다는 위에 언급된 해석이 타당성이 있다.

⭕ 심령이 궁구하기를 - '궁구하다'(*, 하페스)는 '찾다', '온갖 수단을 강구하다'라는 의미이다. 혹자는 '심령'(*, 루히)이 여성 명사이고 동사인 '궁구하기를'이 남성이라 하여 본문을 '그는 내 심령을 찾았다'로 해석하기도 하는데(Tyndale) 히브리어의 성(性) 구별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는 이것을 취하지 않는다. 한편, 본 구절은 환난이 왜 닥쳤는가 하는 시인의 회의(懷疑)에 가득 찬 의혹이 아니라 환난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찾는 몸부림인 것이다.

성 경:[시77:7,8]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이 두 절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면서 현재의 환난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자신과의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현 상황에 대해 부정적 질문을 제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듯하다. 그 예로 7절의 '은혜를 베풀지'(*, 라차)는 '기쁘게 여기다', '용서하다', '받아들이다' 등의 뜻을 지니는데 그 뒤에 언급되는 부정 의문문과 결합되어 문장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지만 저자의 의도 속에는 은혜를 바라는 면이 암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8절에서도 반복되는데, 즉 '자비', '사랑'이란 의미를 가진 '인자하심'(*, 헤세드)과 '약속하다'란 뜻으로 사용된 '허락'(*, 오메르)이란 두 단어가 모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견주어 내면으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희망을 가지며 또한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은 언약을 깨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으므로 절망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본문은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하면 낙망할 수만은 없는 시인의 갈등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성 경:[시77:9]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환난 중의 기도]

⭕ 하나님이 - 본 구절에서 하나님의 호칭으로 '엘'(*)이 사용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엘'이란 호칭은 초자연적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7:11;85:8). 특별히 본문에 이것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시인이 이제는 하나님의 위대성 혹은 권능에 의존하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 경:[시77:10]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본절은 본 시에서 상황의 전환점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와는 달리 본절을 9절의 연장으로 해석하는데 약간 무리인 듯하다. 왜냐하면 고대 전승에서나, NIV, RSV 등도 9절과 본절을 '셀라'(*)로 구분하고 있고 또한 시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 전개를 볼 때 마땅히 전환절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 나의 연약함이라 - '연약함이라'(*, 할로티)는 '쇠약하다', '병들다'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본 구절에서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어 난해 구절에 속한다. 그 가운데 세 견해를 들어보면 (1) 믿음과 연관시켜 7-9절의 고뇌가 저자의 연약한 믿음에서 나온 것임을 고백하는 말이라고 보는 견해, (2) 실제 육체적인 질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심령까지 쇠약하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Walford), (3) 현재의 환난이 하나님의 침묵 때문이고 이것이 저자의 '슬픔'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고통이나 슬픔'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1-9절까지의 시적 분위기나 시인의 심적 상태를 고려해 본다면 (2)와 (3)의 견해가 복합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고 11절 이하를 생각해 본다면 (1)의 견해가 적절하다.

⭕ 지존자 - 원어로는 '엘룐'(*, 가장 높은)이며 이 말이 사용된 것은 족장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 14:22). 원래 이 호칭은 '엘'(*)의 형용사형으로서 가나안인들의 신(神)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야웨'(*, 예화)라는 호칭과 거의 동일시하였다. 특별히 이 명칭은 주로 시에서 나타나는 용어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지칭한다(18:13).

⭕ 오른손의 해 -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나타낼 때(사 48:13), 혹은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89:13;신 33:2)으로 쓰였다. 그런데 학자들은 본문에서의 의미를 '기도 응답의 손' 혹은 '하나님의 개입을 나타내는 손'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Tyndale), 두 해석 모두 적절하다. 또한 '해'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해'(*, 쉬노트)라는 말이 '솨나'(*)에서 유래했고 그 어원적인 뜻 가운데는 '변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에 본절을 '오른 손이 나의 고통을 변화시켰다'로 해석한다(Maurer, Hupfeld, Hitzig).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해'(year)로 보는데 그 이유는 히브리인들이 '해'를 묘사할 때 쓰는 '쉬노트'라는 단어가 계절의 변화 등을 일컫는 순환적인 성격을 내포하며(Calvin) 또한 5절에서 같은 어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절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다면 문장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1) 본절에 '에즈코르'(*, 나는 기억할 것이다)가 생략되었다고 보는 견해(NIV, R.V., Cheyne), (2) 11절에 '에즈코르'와 동의어인 용어들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본절과 11절을 한 구절로 설명하는 견해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견해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번역본들이 '에즈코르'를 삽입했으며 특히 본 시의 5절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성 경:[시77:11,12]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본 시의 전반부(1-9절)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시인의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인은 4개의 동의어(옛적 기사, 행하신 일, 모든 일, 행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하시는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를 확고히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묵상하며 - '묵상'(*, 하가)이란 용어는 시편에서 주로 많이 언급되며 그 어원적 의미는 '중얼거림', '명상', '한숨', '속삭임', '신음' 등이다. 히브리인들은 묵상하는 것을 습관으로 여겼으며(19:14;창 24:63), 영적인 생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이 '묵상'은 단순한 침묵 훈련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으로 주 내용은 (1) 율법(119:15), (2) 주의 증거(119:99), (3) 약속의 말씀(119:148), (4) 하나님의 권능과 업적, 기사(143:5;145:5) 등이 있다.

성 경:[시77:13]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주의 도 - '도'(*, 다르케카)는 원래 '밟다', '나아가다'를 의미하는 '다라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행위 혹은 행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학자들에 따라 '하나님이 피조물을 다루시는 양식'으로 보기도 하고(Alexander),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셨던 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전자는 너무 광범위하고 후자가 적절하다.

⭕ 거룩하시오니 - 원문에는 '코데쉬'(*)로 나오는데 이 말은 '거룩'이라는 뜻과 '거룩한 곳'이란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혹자는 '코데쉬'를 '거룩한 곳'으로 해석하여 본절 전반절을 '주의 도는 성소에 있사오니'로 보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문장이 다소 어색하다. 오히려 성소의 특징 중의 하나인 '거룩'으로 보는 것이 좋다. 또한 '주의 도'와 연관시켜 볼 때 궁극적 의미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암시하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 경:[시77:14]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기사를 -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성을 전능한 기사를 통해 증명하려 한다. 문자적으로는 '한 가지 기사'를 뜻하는 단수 형태이지만 본절에서는 집합적인 성격을 띤 복수의 의미를 갖는다. 이 기사는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일을 통해, 특히 언약 백성을 구속사의 대장정(大長程) 가운데 이끄시는 과정을 통해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입증된 초자연적인 권능과 관련된다.

⭕ 민족들 중에...알리시고 - 하나님의 전능한 행위가 그의 선민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민족들에게까지 목적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민족들 중에'라는 말은 '민족들 가운데', '민족들이 보는 가운데서'(Alexander)라는 뜻이다.

성 경:[시77:15]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주의 백성 - 하나님이 언약을 통해 관계를 맺으신 백성을 말한다. 시인은 이 말에서 언약 관계를 암시함으로 선민과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것임을 나타내며 또한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도우실 것을 희망하며 찬양하고 있다.

⭕ 야곱과 요셉의 자손 - 야곱과 요셉이 특별하게 언급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구속받은 민족의 조상이고 또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야곱에서 나왔고 이들이 애굽에 있을 때 요셉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더 포괄적인 의미, 즉 택함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구속 - 어원은 '가알'(*, 배상하다, 무르다, 구해 내다)이며 본래 '대가를 지불하고 되찾는 것'을 말한다(룻 3:6-13 강해, '기업 무를 자의 구속사적 의미' 참조). 본절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을 다루면서 구속 사상의 형태와 예표를 제시해 준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속 받을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롬 3:23-25;고후 5:15).

성 경:[시77:16]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하나님이여 물들이...진동하였고 -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기술한다. 그 비유 중에서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라는 표현은 물들이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실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홍해 바다가 갈라진 모습을 의인화시킨 것이다(출 14:29). 또한 이것은 자연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에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 경:[시77:17]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구름이...발하며 - 폭우와 천둥을 비유하는 이러한 시적 표현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고(18:12-14), 또한 하나님이 분노를 내실 때 발생했던 상황이기도 하다(18:15). 그러나 본절에서는 애굽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주의 살도...나갔나이다 - 번개치는 현상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서 이방 대적들을 파하시는 하나님의 신속한 공격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합 3:11).

성 경:[시77:18]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회리바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갈'(*)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학자들마다 그 견해가 다른데, (1) 번개와 폭풍후에 수반되는 '회오리바람'으로 보는 견해(Tyndale, Hitzig), (2) 이 말이 '갈랄'(*, 구르다)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번개가 굴러감'(Maurer) 혹은 '번개가 급하게 번쩍이는 것'으로 보는 견해(Botoher, Hengstenberg), (3) '하늘'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고 또한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하늘의 상황으로 보아 본 구절을 '하늘에서'로 설명하는 견해(Alexander) 등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데, 그 이유는 회오리바람이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과 유사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세 번째 견해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성 경:[시77:19]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주의 길이...있었으나 -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한 언급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출애굽 사건에 대한 이해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행사를 고려할 때 동사를 모두 현재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KJV).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 그 당시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항상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다 건넌 후 물이 본래 상태로 되면서 뒤쫓던 애굽 사람들이 물에 덮여 길이 없어진 것을 말한다.

성 경:[시77:20]

주제1:[환난 중에 받는 위로]

주제2:[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의 발견]

⭕ 주의 백성을...인도하셨나이다 -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선민을 영광 중에 인도하신 일들을 회상하고 지금도 권능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끝을 맺는다. 즉, 그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홍해의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현재 시인이 겪고 있는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시인을 인도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 무리 양같이 - 전적으로 연약하고 무능하여 반드시 목자의 인도가 필요한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말이다. 만일 목자가 없다면 제각기 흩어져 큰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켜줄 목자가 있어야 한다. 시인은 이처럼 자신을 지켜주고 인도해 줄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성 경:[시78: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내 백성이여 - 시편 기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는 말이다. 기자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 부름은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위임 권위로 이스라엘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가진 교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자 하고 있다.

⭕ 내 교훈을 들으며 - 여기서 '교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어는 '토라'(*)로서 '야라'(*, 흐르다, 가리키다, 가르치다)에서 유래되었다. 흔히 구약 성경에서는 '율법'(19:7;레 26:46;신 1:5), '법'(105:45;민 5:29;6:21) 등의 의미를 지니며, 드물게 '교훈'(잠 13:14;사 42:21)으로도 번역되었다. 영역본 KJV에서는 '법'(law)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 문맥상 한글 개역 성경처럼 '교훈'이란 의미로 보는 게 더 타당한 듯하다(Anderson). 한편 '들으며'(*, 아잔)는 '귀를 펴다', '귀를 기울이다'(incline your ears, KJV, RSV)의 뜻이다. 본문에서는 교사로서의 기자의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들으라고 촉구하는 의미이다. 이는 고대의 다양한 시들의 서두를 장식하는 말(창 4:23;삿 5:3) 또는 지혜로운 교사의 교훈을 들으라는 시작의 말(49:1;잠 7:24;사 28:23)로 자주 사용되었다.

성 경:[시78: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비유를 베풀어서 - '비유'의 히브리어 '마솰'(*)은 '지배하다', '같게 하다', '닮다' 등의 기본 의미를 지니는 말로 '우월성'의 뜻도 있으나 '유사함', '같음', '비교', '비유', '잠언' 등의 다양한 뜻을 갖는다(잠 1:1). 본문에서는 '비유'(comparison)의 의미로 사용되었다(Dahood). 저자는 본시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고 있다.

⭕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 '비밀한 말'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히다'(*)이다. 이것은 '후드'(*, 매듭을 매다, 수수께끼를 풀다)에서 유래된 말로 '수수께끼'(삿 14:12, 13;겔 17:2)를 뜻한다. 그러나 히브리 사회에서 수수께끼란 단순히 말풀이나 어떤 놀이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위의 것들을 통하여 그 속에 내재된 진정한 지혜를 드러내는데 그 주목적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도 전도자가 말하는 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지혜의 교훈을 전하고자 함을 암시한다 하겠다. 한편 '발표하리니'의 히브리어 '나바'(*)는 '용솟음쳐 나오다', '발하다'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기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도록 청산 유수처럼 지혜의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성 경:[시78: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전한 바라 -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상들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서 전혀 사실성이 없거나 근거가 결여된 허황된 것이 아님을 제시해 주는 말이다. 신약에서는 사도 요한이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요일 1:1).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과거의 신앙적 교훈 또는 사건들을 그 후손에게 전함으로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여호와 신앙을 계속 유지하며 맥을 이었다(출 12:26, 27;수 4:6, 7).

성 경:[시78: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여호와의 영예와...기이한 사적 - '영예'의 히브리어 '테힐라'(*)는 '찬미', '찬양'을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복된 일들을 나타내신 결과 찬양받으실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영역본 NIV는 이를 '찬양받으실 만한 행동들'(the praiseworthy deeds)로 의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 단어가 '찬양'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행동'(the glorious deeds)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주장하여 후자와 같이 번역한 RSV를 선호하기도 한다(Anderson). 한편, '능력'(*, 에주주)이란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전쟁 중에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대적하시고 그들을 진멸하시는 힘,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VanGemeren). 또한 '기이한 사적'(*, 팔라)이란 '기적', '놀라운 일들'을 뜻한다(wonders, RSV, NIV). 이는 11절에서는 '기사'(wonders, KJV, NIV; miracles, RSV)로 번역되고 있다.

성 경:[시78: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증거를 야곱에게...법도를...정하시고 - '증거'(*, 에두트, 증언)나 '법도'(*, 토라, 율법, 법)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말이다. 전자는 율법이 공의와 사랑의 법칙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한다는 의미에서 쓰여진 말로 보인다(출 32:15;34:29;신 6:20). 그리고 후자는 율법이 사랑과 공의의 법칙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1절). 한편 본문에서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야곱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조상의 아버지로서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인데서 연유된 듯하며(창 29:31-30:24;32:28;35:10), 특히 이스라엘 족속이 열두 지파로 구성된 유기체적 존재 또는 야곱처럼 연약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 하나님께서는 모세 율법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후손들에게 계속 전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의 신앙을 존속케 하셨다(신 4:9;6:7; 11:19; 32:46).

성 경:[시78: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이는 저희로...그 자손에게 일러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대대 손손 하나님 말씀, 즉 율법을 전수하는 것은 그들 생애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였다. 이는 성막이나 성소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레 10:10, 11;신 31:9-13;말 2:7), 각 가정에서 부모들에 의해 자녀들에게 행해져야 할 일이었다(신 6:7;11:19).

성 경:[시78: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 '소망'의 히브리어 '케셀'(*)은 '허리'(레 3:4), '어리석음'(전 7:25), '확신', '신뢰', '소망'(욥 4:6;31:24) 등의 다양한 뜻으로 번역된다. 본문에서는 맨 마지막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증거'와 '법도'(5절)를 그 후손들에게 전하여 가르치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언약의 하나님께 신뢰와 소망을 두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언약 신앙을 계속 유지 보존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삶은 그들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71:5;딤전 4:10).

⭕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 여기에서 '잊지 아니하고'란 단순히 어떤 사실, 사건을 머리 속에 간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어떤 사실, 사건 등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다시 나타낸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본문에서 이 말을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행사, 즉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과 축복, 은총의 행위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출 12:26, 27;수 4:6, 7). 예수님은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내가..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고 하셨다.

⭕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 '계명'이란 히브리어로 '미츠와'(*)로서 '차와'(*, 지정하다, 명령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명령', '법령'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 이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로서의 율법을 지킨다는 이상의 의미, 즉 그분의 뜻을 순종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시78: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역사 전승의 목적]

⭕ 패역하여(*, 마라) - 문자적으로는 '쓰다', '반역하다' 등의 뜻이 있다(출 15:23).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려 아프게 하고 반역한 것을 의미한다.

⭕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 '정직하지'에 해당하는 '쿤'(*)은 '세워지다', '준비되다', '확실하게 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의 '정직하지 못하며'란 '(견고하게) 세워지지 않은', '자리잡고 준비되어지지 않은'의 뜻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열조들의 마음이 언약의 하나님께 확고하게 의탁하여 온전한 믿음 가운데 거하지 못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이 말은 37절에서는 '정함이 없으며'란 말로 번역되었다.

⭕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 '충성치'란 히브리어로 '아만'(*)으로서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충성치 아니한'이란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실함 가운데 거하지 아니했음을 암시한다(not faithful, NIV, RSV). 사실 이스라엘 족속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듭 거역하고 시험했었다(민 14:22).

성 경:[시78: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에브라임 자손 - 에브라임은 야곱(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창 49:1-4) 대신에 장자의 명분을 얻은 요셉(대상 5:1, 2)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째 아들 므낫세보다 더 우선적인 축복을 받았다(창 48:17-22). 이런 에브라임 자손은 이후 야곱과 모세의 엄청난 축복을 받고(창 49:22-26;신 33:13-17), 향후 여호수아 시대 때부터 사울 때까지 이스라엘의 대표적 족속으로 거하였다(Allen). 본문에서도 이들은 전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로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VanGemeren).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스르므로 이후 축복 면에서 유다 족속에게 밀리게 되었다(9-11, 67, 68절).

⭕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 본문이 이스라엘 역사의 어느 시점을 말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의 침공을 받고 싸웠을 때 법궤를 빼앗기고 패퇴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mphell, VanGemeren). (2)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되는 길보아 전투의 사건을(삼상 31:1-13) 가리킨다고 한다(Weiser). (3) 에브라임 족속으로 대표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멸망당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한다(Haglund). (4) 에브라임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거민들을 진멸시키는 일에 실패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Alexander). 이중 본문의 문맥과 그 내용으로 볼 때 (1)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성 경:[시78:1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이란 모세의 시내 산 언약을 가리킨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준수할 경우 '내(하나님의)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출 19:5, 6)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피로 제정한 것으로서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는다(출 24:1-11). 더욱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킬 경우에는 축복이요, 거역할 경우에는 저주라는 약속을 하셨었다(레 26:15-20;신 29:9). 또한 언약은 하나님과 피로 맺은 약속인 바 이의 거역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복을 뜻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약의 거역에 대한 심판은 당연하며 치명적인 것이라 하겠다.

⭕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지켜야 할 언약 규범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율법을 이행하는 것 또한 구속력을 갖는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약 내용으로서 이 율법을 준수할 경우에는 축복, 거역할 경우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언급하셨다(레 26:3-39;신 28:1-66).

성 경:[시78:1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여호와의 행하신 것...잊었도다 - '기사'의 히브리어는 '팔라'(*)로서 4절의 '기이한 사적'이란 말과 같다. 그리고 본문은 12-16절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애굽에서 기적을 행하시사 구원하시며 광야에서 갖가지 이적을 행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여호와 신앙에 착념(着念)하는 것을 잊음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쇠진(衰盡)되었음을 암시한다.

성 경:[시78:1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애굽 땅 소안 들에서...행하셨으되 -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신 사실에 관한 언급이다(출 7:1-13:22). '소안'은 '저지'(低地)라는 뜻으로서 애굽의 나일 강 삼각주 북동부, 나일 강 동쪽 제2지류 바하르 모에즈(Bahr Moez) 연변의 한 성읍이다. 이 성읍은 애굽의 힉소스 왕조(Hyksos Dynasty, B.C. 1674-1514)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도시로서 당시 애굽의 수도로 존속한 것으로 짐작된다(사 19:11, 13;30:4;겔 30:14). 그리고 이는 후에 라암셋 2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도 수도로서 존속되었다고 한다(Anderson). 이 도시는 후에는 타니스(Tanis, Thanis)로도 불리웠다 한다(Clark).

성 경:[시78:1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시, 홍해 물을 갈라서 멈추게 하시고 그 물을 통로의 벽처럼 길 양쪽으로 서게 하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출 15:8;수 3:13, VanGemeren).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상황하에서 홍해를 도하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그들이 하늘의 구름 아래와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침례를 받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고전 10:1, 2).

성 경:[시78:1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구름으로...화광(火光)으로 - 이는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05:39;출 13:21;민 9:16, 17). 여기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성 경:[시78:1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 '쪼개시고'에 해당하는 '바카'(*)는 13절의 '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같다. 본문의 사건은 출 17:6에서 모세에 의해 반석이 쪼개어지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물을 공급받은 사실을 가리킨다(Anderson). 그리고 이는 영적으로는 신약에서 신령한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사 백성들에게 영적인 음료, 생명수를 마시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고전 10:4).

성 경:[시78:1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망각의 죄]

⭕ 또 반석에서 시내를...흐르게 하셨으나 - 이는 15절의 사건과는 또 달리 민 20:10, 11에 나타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Anderson, Alexander). 당시 모세는 출애굽 제40년, 광야 방황의 38년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성화에 못 이겨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물을 솟아나게 하여, 백성들과 짐승들로 먹게 하였다. 한편 본문의 '반석'(*, 세라)은 15절의 '반석'(*, 추르)과는 히브리어 단어가 서로 다르나 상호 동의어인 것으로 본다(Anderson).

성 경:[시78:1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희는 계속하여...범죄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질 만한 하나님의 능력(12, 13절), 임재 및 인도하심(13절), 필요의 공급(14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범죄하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무지함과 완악함을 엿보게 한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그 안에서 정죄되고 완고하게 되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렘 7:1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 등의 성구에서 지적하는 존재, 즉 본성적으로 죄를 가진 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 '지존자'란 히브리어로 '옐룐'(*)으로서 직역하면 '가장 높은'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로서 그분이 모든 존재보다 뛰어나시고 탁월하게 거하심을 가리키며, 특히 대적에 대해서는 그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초월적 능력자로서, 당신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으로서 거하심을 나타낸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자'(9:2;21:7;46:4;73:11;민 24:16;신 32:8;사 14:14)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한편 본문의 '배반하였도다'의 '마라'(*, 쓰다, 반역하다)는 8절의 '패역하여'란 말과 같다. 결국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역하여 거스르었다는 뜻이다.

성 경:[시78:1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 '저희 탐욕대로'(*, 레나페솽)의 기본형 '네페쉬'(*)가 '영혼', '욕망(식욕)'등을 뜻하는 바,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혹은 '그들의 욕망(식욕)을 위하여'란 뜻으로 볼 수 있다(Anderson, Alexander). 특히 본문에서 '영혼'이란 지(知), 정(情), 의(意)를 포함한 인격 자체 또는 인간의 자아를 뜻하므로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의 자아를 위하여'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구하지 아니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자아 중심적인 인생을 간구하되, 하나님을 시험하는 형태로 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해서 간구한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자아 욕구를 위해 간구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 '시험하였으며'에 해당하는 '나사'(*)는 '시험하다'(test), '시도하다'(try)의 뜻이다. 이는 어떤 것을 하기를 시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시기 위해 시험하는 것(26:2;창 22:1) 또는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뜻(출 17:2, 7;민 14:22)으로 사용된다(Anderson).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한낱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시험하려 했는데, 이는 성경에서 엄하게 금하는 바이다(마 4:7).

성 경:[시78:1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하나님이...식탁을 준비하시랴 -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서 '능력자'란 뜻이며, 히브리인들이 전능하고 위엄 있으신 하나님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이름 중 하나이다(68:19, 20;80:10;창 14:18-22;35:3, 11;49:25). 그런데 본문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한 것은, 심히 모순된 것으로서 그들의 완악함과 불신의 정도, 시험의 양태를 가히 짐작케 한다. 이스라엘 족속의 이런 태도는 23:5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특히 이 두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회의와 신뢰의 대조적인 태도를 엿보게 해 준다.

성 경:[시78:2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가 반석을...떡을...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 여기에서 사용된 '반석'의 히브리어 '추르'(*)는 15절의 '반석'과 같은 말이다. '떡'과 '고기'란 '만나'(출 16:3, 31)와 '메추라기'(민 11:4, 31)를 뜻한다. '만나'는 하나님이 호렙 산 반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하시기 전에 베풀어 주셨다(출 16:1-31;17:1, 6). 그런데 본문에서는 반석에서 물을 공급해 주신 후에 '만나'를 주실 수 있느냐라고 묻는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호렙 산 물을 공급하신 이후에도 능히 계속적으로 만나를 베풀어 주실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의심한 것을 뜻할 수 있다. (2) 본문이 한편의 시인 바, 기자가 어떤 역사적인 연대 순서를 무시하고 시적인 형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혹과 불신을 언급하다 보니 본절처럼 되어진 것이다. 주석가 로린슨(Rawlinson)은 이중에서 (2)를 지지한다. 아무튼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전에 하나님의 초능력적인 이적을 몸소 체험했으면서도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의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전문(前文)의 12-16절에서 갖가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과 임재, 인도하심 등을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계속하여 17절에서 범죄한 유형과 유사하다.

성 경:[시78:2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불경건한 말을(20절) 들으셨다는 것은 당신의 초월성 및 편재성(偏在性)과 전능성을 엿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근본 영이시므로(요 4:24) 온 천지 어느 곳에나 계시며,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 우주의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아시며 모두 감찰하신다(출 16:7-9;민 11:1;12:2).

⭕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 본문에서 '야곱'이란 후문의 '이스라엘'과 동의어이며, 특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열두지파로 구성된 유기체적 공동체임을 잘 나타내준다(Anderson). '노가 맹렬하며'(*, 에쉬 니쉐카)는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불이 불붙다'(a fire was kindled, KJV, RSV)의 뜻이다. 여기에서 '불'이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파괴적이고 심판적인 진노를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진노를 나타나시되 크게 발하심을 암시한다.

⭕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 '노'란 히브리어로 '아프'(*)로서 '코', '콧김', '분노'란 뜻이며, 전문의 '노'와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전문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서 상호 병행 구절이라 할 수 있겠다.

성 경:[시78:2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 '믿지'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아만'(*)으로서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본문에 표현된 믿음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임을 뜻한다 하겠다. 테이트(Tate)는 이와 관련하여 믿는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사상이 '신뢰하는 것', '확신하는 것', '의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 안으로의 믿음을 갖는 것(to have faith in someone or something)을 뜻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앤더슨(Anderson)은 이에 대하여 '구약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사상 면에서 표하는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숙연하게 그분의 명령과 약속들을 간직하고 대하는 자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의 자세로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앤더슨은 구약의 믿음이 말씀과 언약에 기초하여 신뢰의 자세로써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임을 밝혀주는 구절로서 119:66;창 15:6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런 믿음을 갖지 아니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시험하는 불경을 범하였던 것이다.

⭕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 '의지하지'의 '바타흐'(*)는 '(피난키 위해) 서둘러 가다', '신뢰하다', '의뢰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이 말은 전문(前文)의 '믿지'(*, 아만)와는 약간 그 어감이 다르다. '아만'이 하나님께로 들어가 신뢰함으로 하나님과 두터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면, 본문의 '바타흐'는 하나님께 나아가 의뢰함으로 안전한 구원을 획득한다는 측면에서 언급되어진 것이다(Anderson).

성 경:[시78:2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궁창을 명하시며 - '궁창'의 히브리어 '솨하크'(*)는 동사 '솨하크'(*, 잘게 부수다, 가루로 만들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부숴진) 가루', '구름', '궁창'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이는 흔히 창세기에서 쓰여진 '궁창'(*, 라키아, 넓게 펴진 것, 창 1:6-8, 14, 15)과는 다른 말이다. 후자가 넓게 퍼져 덮고 있는 거대한 창공을 뜻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구름이 형성되어 있는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이 두 단어 모두 땅 위의 하늘을 지칭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우주가 하늘과 땅 및 바다(또는 지하)로 형성되었다고 믿었는데, 이 궁창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하늘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었다(욥기 서론,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참조).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궁창에 명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만물들을 직접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초자연적인 분이심을 잘 나타낸다. 더불어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일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하기도 한다(33:6;147:18).

⭕ 하늘 문을 여시고 - '하늘 문'(*, 달티 솨마임, 하늘의 문들, the doors of heaven, KJV, RSV)은 구약 성경에서 본문에 한번 언급되어진다(Anderson). 창 28:17에 '하늘의 문'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솨아라 하솨마임'(*, the gate of heaven, KJV, RSV)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말로 '하늘의 창들'(*, 아르비트 하솨마임, 창 7:11;8:2;왕하 7:2, 19)이라는 표현이 있기도 하다(욥기 서론, '히브리인의 우주관' 참조). 어쨌든 본문 역시 하나님이 이 하늘을 직접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잘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성 경:[시78:2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 '만나'(*, 만)는 '무엇이냐'란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출 16:15, 31을 참조하라. '비같이 내려'란 '마타르'(*)로서 '비가 내리다'란 뜻이며, 풍족히 흡족하게 내려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비는 이 땅의 모든 생물들이 자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며, 자연의 식물들은 이 비를 흡수함으로 생명의 물을 공급받는다. 고대 가나안의 이방인들은 이런 점에서 그들의 우상 바알을 풍요의 신, 비와 바람을 주관하여 곡식을 풍요롭게 하는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바알과 같은 거짓 우상 신이 아닌 참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만나를 풍요롭게 내리신 것이다.

⭕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 '양식'의 히브리어 '다간'(*)은 '곡물'(민 18:27;학 1:11), '곡식'(창 27:28;신 7:13;느 5:2) 등의 뜻이다(the grain, NIV, RSV;the corn, KJV). 이것은 만나가 곡식 낟알처럼 작고 둥글며 갓씨같이 생겼기 때문으로 짐작되어진다(출 16:14, 31). 이를 다른 곳에서는 '하늘 양식'(*, 레헴 솨밈, the bread of heaven, KJV, NIV)으로 표현하기도 했다(105:40;출 16:4). 아무튼 여기서 '하늘 양식'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곡식 낟알 같은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신약 성경에서 이는 하늘로부터 인간의 참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6:31-51).

성 경:[시78:2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 '권세 있는 자'의 히브리어 기본형 '아비르'(*)는 '힘 있는', '힘 있는 자'를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비림'(*) 곧 '힘 있는 자들'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를 '천사들'(angels, KJV, NIV, RSV)로 본다(Dahood, Alexander, VanGemeren). 그러나 성경에서 '아비르'(*)란 말은 '힘 있는 사람'(욥 24:22;34:20), '말과 같이 힘 있는 동물'(삿 5:22)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전능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한다(132:2, 5;사 1:24;49:26;60:16). 한편 본문에 대해 혹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유하고 높은 자들의 상에나 놓여질 수 있는 떡, 즉 가장 좋고 맛있는 떡을 먹은 것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Clark). 그러나 그보다는 천사들이 거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 곧 만나를 먹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시78:2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가 동풍으로...남풍을 인도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바람을 일으키사 메추라기를 바다 쪽에서 시내 반도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에게 불려오게 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에 대하여 민 11:31은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동풍'과 '남풍'을 '남동풍'으로 보고, 본문에서는 저자가 단지 시적인 이유로 따로 구분해서 기술했다고 하기도 한다(Anderson).

성 경:[시78:2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 '고기'란 시내 반도 광야 여행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신 메추라기를 가리킨다(민 11:4, 18, 31, 32). 이 메추라기는 꿩과에 속하는 새로서 다갈색에 흑백의 반점이 있는 철새(migratory birds)이다. 이는 주로 아라비아나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내는데 3-4월이면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지방에서 북쪽 유럽 쪽으로 이동해 날아가며, 9-10월경에는 다시 북쪽 유럽 쪽에서 남쪽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지방으로 날아간다 한다(Anderson). 그러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였던 시내 반도 광야는 이 메추라기들이 통행하는 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거주 지역으로 떨어지게 하신 것은 하나의 자연적 현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이다. 한편 본문의 '내리시니'의 히브리어 '마타르'(*)는 24절의 '비같이 내려'에서와 동일한 히브리어이다.

⭕ 바다 모래 같은 - 무수한 숫자 또는 많은 양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말이다(창 22:17;32:12).

성 경:[시78:2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그 진중에...거처에 둘리셨도다 - '진중'(*, 마하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데 모여 장막을 친 거대한 진영을 뜻하며(출 32:19;33:7;민 2:3, 9, 10), '거처'(*, 미쉬칸)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진영 가운데 천막을 쳐서 만든 거주지 또는 천막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바로 근처에 메추라기 떼를 떨어지게 하셨다는 뜻으로서 모세는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민 11:31)로 표현하였다.

성 경:[시78:2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 '소욕'의 히브리어 '타아와'(*)는 '아와'(*, 바라다, 사모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열망', '욕망'의 뜻을 갖는다. 이 말은 18절의 '탐욕'(*, 네페쉬)의 뜻과 유사하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의 자아 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음을 뜻한다. 더불어 이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주신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시험했던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당신의 권능을 명백히 보여 주사,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고자 하신 크신 사랑을 엿보게 한다.

성 경:[시78:3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희가 그 욕심에서...아니하고 - '욕심'의 히브리어 '아와'(*)는 29절의 '소욕'과 같은 말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자신들의 욕망 추구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한 결과에 따라(19, 20절) 하나님이 능력의 증표로서 이적적으로 메추라기를 주셨을 때 자신들의 잘못과 불경건을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와 완악함으로 인해 여전히 욕심 가운데 거하여 심판받았다(31절).

⭕ 저희 식물이...있을 때에 - 모세는 이에 대하여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민 11:33)라고 묘사하였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추라기의 주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는 커녕 더욱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시78:3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을 시험한 죄]

⭕ 저희 중 살진 자...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 '저희 중 살진 자'란 이스라엘 족속 중에 힘이 세고 건장한 자들을 가리킨다(Dahood). 그리고 '청년'에 해당하는 '바후르'(*)는 문자적으로 '택한 자'(the chosen men, KJV,민 11:28)를 뜻하며 여기서 '청년'(전 11:9)이란 말이 유추되었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이 용어가 흔히 힘이 세며 나아가 한창인 젊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진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진멸하심으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어떤 자라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목도케 해 주셨다.

성 경:[시78:3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그럴지라도(*, 베칼 조트) - 직역하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all this, NIV, RSV)의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들과 심판을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 '기사'에 대해서는 11절, '믿지 아니하였으므로'에 대해서는 22절을 각각 참조하라.

성 경:[시78:3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 '헛되이'란 히브리어로 '헤벧'(*)로서 '호흡', '수증기', '텅 빔' 등을 뜻하며, 이에서 '공허함', '덧없음', '허무함' 등의 의미가 유출된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을 증거하는 전도서에서는 '헛되다'(전 1:2)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본문의 '보내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칼라'(*)는 '끝나다', '소모하다', '마치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불신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허송 세월로 방황케 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것 같다(민 14:26-35, Anderson, Alexander). 이스라엘 족속은 출애굽 후 수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을 보았음에도 그분을 믿지 않고 시험함으로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심판을 받았다.

⭕ 저희 해를 두렵게...하셨도다 -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 40년 방황 세월 중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인해 온갖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낸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두렵게'의 히브리어 '베할라'(*)는 '전율', '떪', '공포' 등을 의미하나 레 26:16에서는 '재앙'으로, 사 65:23에서는 '재난' 등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성 경:[시78:3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이며 18절에 언급된 '하나님'과 같은 말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며 불신하였다가 무서운 징벌을 당하자, 다시금 그 능력의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은 목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함이었을 뿐이며 상황이 호전되자 다시금 예전의 죄악을 반복해 나갔다.

성 경:[시78:3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 '반석'(*, 추르)은 15절의 '반석'과 같은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 족속의 삶 또는 축복의 터전, 근원이 되심을 고백한 말이다.

⭕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 - '지존하신 하나님'(*, 엘 엘룐)이란 하나님의 복합 고유 이름이며, 같은 유형으로 '엘 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13). '엘 솨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등이 있다. 이는 창 14:18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한편 '구속자'의 히브리어 '가알'(*)은 '무르다', '무르는 자', '복수자' 등의 뜻이 있다. 이는 원래 히브리인 사회에서 어떤 가난한 사람이 종으로 팔리거나 그의 토지가 다른 사람에게 팔렸을 경우, 그를 대신해서 그 종된 자나 토지를 다시 되돌려 속해 주는 친척을 가리킨다(레 25:25, 48, 49). 이 말은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고의적으로 피살된 친척을 대신 복수해 주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민 35:19, 24, 25). 만약 이 말이 하나님에게 적용될 경우, 이는 당신의 백성들을 압박자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뜻한다(19:14;잠 23:11). 본문의 경우는 제일 후자에 해당한다.

성 경:[시78:3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저희가...그에게 아첨하며 - '아첨하며'의 히브리어 '파타'(*)는 '열다', '속이다', '유혹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의 시련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피상적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기만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영역본 KJV, NIV, RSV 등은 이를 '아첨하다'(flatter)로 번역하기도 했다.

성 경:[시78:3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 '정함'의 히브리어 '쿤'(*)은 '세워지다', '준비하다', '확실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8절에서는 '정직하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갔으나,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견고하게 서 있지 못하고 죄성으로 인해 들떠 있으며 육신적 소욕에 따라 행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 '성실치'에 해당하는 '아만'(*)은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신실하다'의 뜻으로서 8절에서는 '충성치'란 말로 쓰이기도 했다. 본문에서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신실치'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10절 참조).

성 경:[시78:3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 '자비하심'에 해당하는 '라훔'(*)은 '라함'(*, 귀여워하다, 사랑하다, 측은히 여기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인정 많은', '동정심 많은'의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서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다(103:8;116:5;145:8;출 34:6).

⭕ 죄악을 사하사 - '아온'(*, 죄악)이란 '아와'(*, 구부리다, 잘못을 저지르다)에서 유래된 말로 '악', '불의'(iniquity, KJV, RSV)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왜곡되이 행한, 사악한 불의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사하사'의 히브리어 '카파르'(*)는 원래 '덮다'를 뜻하며, 이에서 '속죄하다', '용서하다'라는 뜻이 유출되었다. 아마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죄의 근거 즉 희생 제물의 피나, 아니면 특히 본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모세 같은 중보자의 중보 속죄 기도등에 의해 죄악을 덮어 두고 용서하신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출 32:11-14;34:6-9).

성 경:[시78:3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거짓 회개의 죄]

⭕ 저희는 육체뿐이라 -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 나아가서 죄의 결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제한적 존재임을 나타낸다(창 2:7). 이에 대해 다윗은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4)라고 표현한 바 있다.

⭕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 전문(前文)과 유사한 말로서 인간이 이 세상에 잠시 존재하나 곧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임을 암시한다(사 40:6, 7).

성 경:[시78:4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가...그를 반항하며 - '반항하며'의 히브리어 '마라'(*)는 '쓰다', '반역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8절에서는 '패역하여'라는 말로 쓰였다. 본문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 마음을 쓰라리게 한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광야에서 열 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시험하였다(민 14:22).

⭕ 그를 슬프시게 함 - 히브리어는 '아차브'(*)로서 '괴롭히다', '비탄케 하다', '슬프게 하다'(grieve, KJV, NIV, RSV)의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性論的)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족속의 망령된 행동으로 인해 크게 배반감을 느끼신 것을 나타낸다.

성 경:[시78:4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가...재삼 시험하며 - 이는 가데스에서의 불신 사건으로 광야 40년 동안에 출애굽 제1세대들이 죽고 난 후, 그들을 이은 제2세대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한 것을 가리킨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에 대해 "저자는 지금 젊은 세대(즉, 출애굽 제2세대)가 여호수아의 죽음 후(수 24:31) '저희 열조같이'(57절) 행한 것을 보여 주고 있다"라고 주해한다. 그들은 선조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과 같이(18절) 하나님을 시험하는 역사의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주로 쓰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이다. 이사야는 이를 약 25회 가량 썼으며(사1:4;5:19, 24) 예레미야가 2회(렘 50:29;51:5), 기타 다른 제자가 여러 번 사용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을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시켜 주는 이름, 즉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달리 자존적(自存的)으로 모두 온전하신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계시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Alexander).

⭕ 격동하였도다 - 이에 해당하는 '타와'(*)는 '구획하다', '긋다', '긁다' 등의 뜻이 있다. 이는 드물게 사람의 이마에 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겔 9:4).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시리아어의 어원에 따라 '슬프게 하다', '비탄케 하다'(grieve)로 보아야 한다(vexed, NIV, Anderson;provoked, RSV). (2) 이 말의 어원을 모세가 가나안 땅의 경계를 그을 때 사용한 것에서(민 34:7, 8) 엿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제한하다'(limited, KJV, Alexander)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중 (1)을 따를 경우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을 뜻하며, (2)를 따를 경우에는 이스라엘 족속이 감히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 것을 뜻한다. 이중 어떤 견해를 취하더라도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성 경:[시78:4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가 그의 권능을...아니하며 - '권능'(*, 야드)은 직역하면 '손'(hand, KJV)을 뜻한다. 이는 성경에서 흔히 나타나는 신인 동형동성론적(神人同性論的) 용법으로서 개역 성경 그대로 '권능'이나 '능력'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모세와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능(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주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출 7:5;신 7:8;겔 1:3;3:14, 22;8:1;37:1). 본문은 이스라엘의 제2세대, 즉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선조들에 의해 경험되어진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지 않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선조들에 의해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들었을 터인 바, 그 권능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뢰했어야 했다.

⭕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 - 현재 출애굽 제2세대들의 선조, 즉 출애굽 제1세대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던 날을 가리킨다(VanGemeren, Tate).

성 경:[시78:4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소안 들 - 12절 참조.

⭕ 기사 - 이는 히브리어 '모페트'(*)로서 11, 32절의 '기사'(*, 팔라)와 다르나, 그 의미는 '이적'(출 4:21;대하 32:24), '기사'(출 11:9;렘 32:20), '표적'(신 28:46)으로 유사하다(12절 참조).

성 경:[시78:4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의 강(*, 예오레헴)은 직역하면 '저희의 강들'(their rivers, KJV, NIV, RSV)이다. 이는 혹자가 말한 대로 장엄 복수형으로 보아 '그들의 거대한 강'을 의미하는 말로서(Gunkel) 나일 강을 뜻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는 나일 강과 그 지류를 가리킬 수도 있다(Alexander, Anderson). 당시 나일 강에는 자연적으로 그 강에 물을 흘려 보내는 지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그 주위 여러 지역에 물을 대기 위해 판 지류도 있었다 한다. 시내(*, 노젤리헴) 역시 '저희의 시내들'(their streams, NIV, RSV)이란 뜻으로 나일 강 외 애굽 각 지역의 개천들을 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애굽 전역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를 피로 변하게 하셨다(출 7:17-25).

성 경:[시78:4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파리 떼를...물게 하시고 - '물게 하시고'의 히브리어 '아칼'(*)은 '먹다', '삼키다'(devoured, KJV, NIv, RSV) 등의 뜻이 있다. 이는 파리떼들이 애굽 사람들의 집과 땅에 가득해서 음식이나 기타 물질들을 먹어 치우고 삼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파리의 재앙은 출애굽 사건 당시 네 번째 재앙으로 애굽에 내려졌다(출 8:20-24).

⭕ 개구리를...해하게 하셨으며 - '해하게 하셨으며'에 해당하는 '솨하트'(*)는 '부패하다', '망하다', '파괴하다' 등의 뜻이다. 본문에서는 개구리가 애굽 사람들의 집과 침실, 음식 그릇 등에 올라와 그들을 해롭게 한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애굽에 내려진 두 번째 재앙이다(출 8:1-15).

성 경:[시78:4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의 토산물을...메뚜기에게 주셨으며 - '황충'의 히브리어 '하실'(*)은 '하살'(*, 먹어 치우다, 소모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흔히 '황충'으로 번역된다(왕상 8:37;대하 6:28;사 33:4;욜 1:4). 이는 메뚜기과의 곤충으로서 약 5cm 정도의 길이이며 풀무치와 비슷하고 떼를 지어 다니며 곡물들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메뚜기'(*, 아르베)는 '라바'(*, 많다, 증가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성경에서 흔히 '메뚜기'로 번역되며 일부에서는 '황충'(105:34;렘 46:23)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본문에서 '황충'이나 '메뚜기'는 같은 종(種)의 곤충으로 언급된 듯하다. 이 재앙은 여덟 번째로 임한 것이다(출 10:4-15).

성 경:[시78:4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우박으로...서리로 죽이셨으며 - 여기서 '뽕나무'(*, 솨캄)는 흔히 '무화과 뽕나무'로 지칭되는데 이 나무는 뽕나무와 비슷하나 그 열매는 무화과와 유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주로 애굽이나 팔레스틴의 저지 평원이나 요단 평지에서 자라며 그 열매는 무화과 보다 약간 못하나 일반 서민의 식품으로 사용되었고(암 7:14), 그 나무는 가구나 관 등의 재목으로 쓰였다 한다(왕상 10:27;대상 27:28;사 9:10;암 7:14). 한편 '서리'(*, 하나말)는 구약 성경에서 본문 한 군데에 나타나며(Anderson) 그 어원은 불확실하다. 본문의 우박 재앙은 일곱 번째로 내려졌다(출 9:18-26).

성 경:[시78:4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 가축을...번갯불에 붙이셨으며 - 이는 47절의 '우박'과 함께 하늘의 '뇌성'과 '불덩이'로 애굽 땅의 짐승들을 치사 죽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출 9:23, 24). 그러나 혹자는 본문의 '우박'(*, 바라드)을 '온역'(*, 데베르, pestilence, 출 9:3, 15)의 오기로 볼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Anderson). 이에 대한 근거로서 앤더슨(Anderson)은 일부 히브리어 사본과 심마쿠스(Symmachus) 역본을 예로 들며, 이와 함께 본문의 '번갯불'(*, 레쉐프)이 합 3:5에서는 '불덩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온역'과 병행 구절로 쓰여졌음을 증거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가 반게메랜(VanGemeren)도 본절의 사건을 출 9:1-7에서 가축들이 질병에 걸린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 경:[시78:4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벌하는 사람들(*, 미쉴라하트 말라키 라아임) - 직역하면 '해(害)하는 천사들의 무리'로서 이는 곧 '해를 가하는 천사들의 무리'(a company of destroying angels, RSV)라는 뜻이다. 이 천사들은 아마 하나님이 출애굽 전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에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도록 보내신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출 12:23;히 11:28). 이 천사들은 후에 범죄한 다윗(삼하 24:16)에게와 유다를 공격한 앗수르 군대를 진멸하기 위해 히스기야 시대 때(왕하 19:35) 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성 경:[시78:5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치도하사(*, 예팔레스 나티브) - 직역하면 '그가 길을 평평케 하셨다(또는 예비하셨다)'의 뜻이다(made a way, KJV).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본문에서는 당신의 분노를 어떠한 거침돌이나 방해물이 없이 주권적 의지대로 내리셨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에 관하여 알렉산더(Alexander)는 "하나님은 그들(애굽 사람들)의 재산이나 가족을 치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고 그들의 생명 자체에로 그의 치심을 확대해 가셨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성 경:[시78:5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함의 장막 - '함'(*, 함)은 '뜨겁다', '검은 피부'라는 뜻으로서 노아의 둘째 아들의 이름이다(창 6:10). 이는 이후 남아라비아, 에디오피아, 이집트, 붓(렘 46:9) 등의 종족들의 조상이 되었다.

⭕ 그 기력의 시작 - 이는 '장자'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Alexander). 여기서 '시작'(*, 레쉬트)은 다양하게 번역된다. 즉 '시작'(욥 8:7;잠 8:22;17:14;전 7:8)이란 말로 번역되기도 하나 또한 열매의 '첫 것'(출 23:19), '첫 열매'(겔 20:40), '첫 소산'(민 18:12) 등으로도 번역 된다. 따라서 본문은 '그 기력의 첫 소산'(the first issue of their strength, RSV) 혹은 '맏아들'(the firstfruits of manhood, NIV)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성 경:[시78:5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자기 백성을 양같이...내시고 - '자기 백성'이란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스라엘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언약 이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존속해 왔음을 암시해 준다(창 17:2-14). 그리고 '양같이'는 일종의 수사학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목자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사 인도하여 내심을 나타낸다(23:1;28:9;80:1). 특히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사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종종 목자와 양떼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다(사 40:11;53:6;슥 10:3;요 10:2, 5).

⭕ 광야에서...지도하셨도다 - '지도하셨도다'에 해당하는 '나하그'(*)는 '몰다', '이끌다', '인도하다'의 뜻이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도하(渡河) 전후에 광야에서 인도하셨음을 나타내는 말이다(Alexander).

성 경:[시78:5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감사치 않은 죄]

⭕ 저희를...두려움이 없었으나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건너가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앞에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인들이 쫓아오자 처음에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권고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안전히 홍해를 도하하였다(출 14:10-25).

성 경:[시78:5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그 성소의 지경(*, 게불 카데쇼) - 직역하면 '그의 거룩함(또는 거룩한 땅)의 경계'(the border of his holy land, NIV)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경'(*, 게불)이란 말은 '경계'(민 21:13, 15, 24;34:3, 6, 7, 9)란 뜻뿐만 아니라 '영토'(territory) 즉 경계에 의해 둘러싸인 땅을 뜻하기도 한다(삼하 21:5;왕상 1:3, Anderson). 따라서 본문의 말은 '그의 거룩함의 영역'(the territory of his holiness)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VenGemeren). 따라서 일반적으로 본문은 가나안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땅, 거룩히 구별하신 땅이다(창 15:7-21;출 3:8;6:8).

⭕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 - 여기에서 '오른손'이란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42절 참조).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는 오른쪽이 힘, 능력 등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바(89:13;118:16;출 15:6, 12), 이는 하나님의 강하신 권능을 뜻한다 하겠다. 그리고 본문의 '산'에 대해 혹자는 산악 지방으로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고 하나(McCullough), 그보다는 일반적으로 가나안 땅에서의 하나님 임재의 처소로 표현되어지는 시온 산을 뜻한다고 본다(2:6;48:2;65:1; 84:7;110:2;사 8:18, Anderson, Alexander, VanGemeren, Rawlinson).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당신의 거룩한 땅, 임재의 처소로 인도하시사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며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 경:[시78:5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줄로 너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 '기업'의 히브리어 '나할라'(*)는 '나할'(*, 물려받다, 상속받다)에서 유래된 말로 '상속된 것', '상속 재산', '소유물'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그리고 '분배하시고'의 히브리어 '나팔'(*)은 '떨어지다',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여기서 (주사위를 떨어뜨려 소유물 등을) '나누다', '분배하다'의 의미가 유출된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의 종족 수에 비례하게 나누어 주신 것을 암시한다(민 26:52-56; 33:53-55). 이것은 기업으로서의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인 바 각 사람에게 은혜가 고루 미치게 함을 뜻한다.

⭕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 '그 장막에'(*, 베아할리헴)는 직역하면 '그들의 장막들에'(in their tents, KJV, RSV)의 뜻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족속보다는 가나안 이방 족속들의 장막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Rawlinson, Alexander). 결국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힘, 능력,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몰아내고 거기서 터전을 잡고 거하게 하셨음을 암시한다.

성 경:[시78:5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반항하여 - '지존하신 하나님'이란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엘로힘 엘룐'(*)으로서 35절의 '지존하신 하나님'이란 말과 거의 유사하다. 여기서 '엘로힘'(*)이란 35절의 '엘'(*, 능력, 능력자)의 복수로서 흔히 히브리인 사이에서 전능하신 최고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하나님을 이스라엘 족속들이 시험하고 반항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Anderson). 그들은 온 우주에서 유일하시며 최고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였던 것이다. 본문의 '반항하여'(*, 마라)는 '쓰다', '거역하다'의 뜻이다(8, 40절).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쓰라리게 하며 거역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성 경:[시78:5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저희 열조같이...빗가서 - '배반하고'(*, 수그)는 '되돌아가다', '물러서다'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가지 않고 오히려 돌이켜 물러서는 것, 헛된 길로 가기 위해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궤사를 향하여'의 히브리어 '바가드'(*)는 '덮다', '남몰래 행동하다', '속이다'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은밀히 범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족속들의 죄악된 행위는 그들의 열조, 즉 출애굽 제1세대들의 완악한 행위를 그대로 본딴 것이었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언급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의 후손들은 여호수아시대 이후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패역된 길로 나아갔다고 적절히 주해하고있다(41절 참조).

성 경:[시78:5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자기 산당으로 - '산당'의 히브리어 '바마'(*)는 '높은 곳'을 뜻한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곳으로서(민 22:41;33:52) 산이나 높은 구릉 지대에 우상을 섬기기 위해 설치한 장소 또는 집 등을 가리킨다(겔 6:3).

성 경:[시78:5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 '미워하사'에 해당하는 '마엔'(*)은 원래 '거절하다'(창 39:8;출 7:14;9:2;사 1:20)의 뜻이다. 특히 이는 단순히 거절하는 내적인 의향뿐만 아니라 그것의 외적인 표현까지도 함축하는 말이다(Alexander).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크게 진노하사 이에 상응하는 징벌의 행동을 취하심을 뜻한다.

성 경:[시78:6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실로의 성막...떠나시고 - '실로'는 그 의미가 불분명한데 그 위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32km 지점, 즉 예루살렘에서 세겜으로 가는 길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의 한 성읍이다(수 18:1-10). 이 성읍은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초기에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여호수아 시대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이곳에 성막을 세웠으며(수 18:1),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곳에 모여 매년 절기를 지키기도 했었다(삿 18:31;삼상 1:9, 24;2:14;3:21;4:3, 4).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자 하나님이 이들을 떠나시고 이곳의 언약궤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했으며(삼상 4:5-11), 그 후로 언약궤는 다시 이곳에 안치되지 못했다(삼상 6:21;7:1, 2;삼하 6:2, 11, 17).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운 실로 성막을 떠나심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형식적 신앙보다는 내적인, 내실있는 신앙을 원하시고 계심을 암시한다.

성 경:[시78:6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그 능력...자기 영광 - 이는 모두 당시 실로에 있다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긴 언약궤를 가리킨다(Alexander, Anderson, Tate, VanGemeren). 여기에서 언약궤를 '그 능력'(*, 우조;his strength, KJV;his power, RSV)이라함은 이 언약궤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상징하는 것, 다시 말하면 연약궤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역사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그리고 언약궤를 '자기 영광'(*, 티페아르토;his glory, KJV, RSV)이라 함은 그 언약궤가 하나님의 높고 존귀하신 영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Alexander). 이 언약궤는 블레셋인과의 전투 와중에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다(삼상 4:1-11).

성 경:[시78:6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 '기업'(*, 나할라)은 55절의 '기업'이란 말과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는 하나님의 소유 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란 의미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28:9;33:12;106:5, 40, Rawlinson, Anderson).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진노하셨음을 뜻한다.

성 경:[시78:63]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 여기서 '불'이란 전쟁의 참화를 가리키거나 또는 파괴적인 전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 있다(민 21:28;암 1:4, 7, 10, 12, Alexander, Anderson).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블레셋인들과의) 전쟁에서 비참한 참상을 당한 것을 뜻한다.

⭕ 혼인 노래가 없으며(*, 훌랄루 라) - 여기서 '훌랄루'의 기본형인 '할랄'(*)은 '칭찬하다', '자랑하다' 외에 '며느리로 삼다'는 뜻도 지닌다. 본 문맥에서는 '혼인 때에 축가를 부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도 결혼 예식은 커다란 축제요, 음악과 노래가 곁들여진 잔치였는데, 이 혼인 노래가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결혼식과 같은 즐겁고 평화로운 날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본절 전반절과 연결시켜 보면,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전사(戰士)당함으로 인해 남은 처녀들이 배필을 맞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their maidens were not given to marriage, KJV).

성 경:[시78:64]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우상 숭배의 죄]

⭕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 이스라엘 족속과 블레셋인들과의 전쟁시, 당시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은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삼상 4:11, 17).

⭕ 저희 과부들은...못하였도다 -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제사장 비느하스의 아내가 그의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미처 애곡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죽은 사실을 가리킨다(삼상 4:19-22, Tate). (2)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후 남아 있는그 과부들에게도 심한 고통이 뒤따랐기 때문에 미처 남편들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가 없었음을 가리킨다(VanGemeren). (3) 죽은 자들의 시체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전쟁터에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애도할 수가 없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중에서는 (1)또는 (2)의 견해가 무난하리라 본다.

성 경:[시78:65]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 '주'에 해당하는 '아도나이'(*)는 '아돈'(*, 주권자, 통제자, 주인)의 강세형이며, 흔히 '주', '주인'의 뜻으로 번역된다. 이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온 우주의 유일하면서도 절대적인 주권자,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한 말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 대신 사용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여(출 20:7;신 5:11) 주로 이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물론 본문은 하나님이 실제로 주무셨다가 일어나신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121:4;사 40:28).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사 보호 또는 구원하시기 위해 의분히 일어나 새로운 역사를 행하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일 뿐이다(35:23;44:23;59:4, 5). 하나님은 이전에는 이스라엘 족속들의 죄로 인해 그들을 심판 가운데 방치하셨으나, 이제는 일어나사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이다.

성 경:[시78:66]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그 대적을...욕되게 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 블레셋인들을 진멸하사 욕되게 하심을 가리킨다. 블레셋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삼상 17:1-49).

성 경:[시78:67]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 요셉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장자의 지위를 박탈당하자 그를 대신해서 장자의 명분을 얻은 자였다(대상 5:1, 2). 따라서 그의 후손 특히 그중에서도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세력있는 지파로 활동해 왔으며(9절), 가나안 정복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도 에브라임 지파 내의 성읍인 실로에 안치해 두게 되었다(60절).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고 거절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싫어 버리시며'의 히브리어 '마엔'(*)은 '거절하다'의 뜻이며 59절의 '미워하사'와 같은 말이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요셉의 장막'이 요셉 지파를 뜻하지 않고 실로의 장막, 즉 에브라임 지파 내에 있는 실로의 장막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Anderson).

⭕ 에브라임 지파를...아니하시고 - 하나님이 실로를 떠나 버리신 것처럼 에브라임 지파를 거절하시사 더 이상 이스라엘 내에 지도권을 행사하시지 못하게 하셨음을 뜻한다(Anderson).

성 경:[시78:68]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유다 지파 -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나 열두 아들 중에서 영적으로 큰 축복을 받은 자이다(창 49:8-12).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후손 가운데서 나시리라는 예언을 받았다(창 49:9). 그의 후손은 출애굽 후 광야 야영 때에도 맨 처음 언급된 선두 지파였으며(민 2:3, 4), 광야 여행 때에는 선봉 지파로서 진행했고(민 10:14), 여호수아의 죽음 후 제1선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면하고 영토를 정복하였다(삿 1:1-21).

⭕ 시온 산 - '시온'(*, 치온)은 '요새', '성채'란 뜻이다. 이는 근본 예루살렘의 남동쪽의 조그마한 구릉, 즉 기드온 골짜기와 튀로페온(Tyropeoean) 골짜기 사이의 구릉 지대로서 여부스 족속이 거하였던 요해지(要害地)였다. 이곳을 다윗이 점령하여 다윗 성이라 부르게 되었다(삼하 5:6-9). 그 후 이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되고 이스라엘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삼하 6:12-19). 그리고 이 시온은 이후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어진 곳을 포함하여 불리워지게 되었고(48:2;50:2),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읍을 전체적으로 대표하여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아 3:11;사 10:32;렘 4:5, 6;애 4:2;슥 1:17). 이 시온은 영적 의미로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통치자로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의 의미를 담고 있다(2:6;9:11;50:2;99:2;사 8:18). 따라서 성경에서 거룩한 산으로 묘사되고 있다(2:6;욜 2:1).

성 경:[시78:69]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 '산의 높음'의 히브리어 '라밈'(*)은 '높음','높은 것들'의 뜻이며 이에 대한 의미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산들이나 언덕들과 같이 높은 곳을 뜻한다(Alexander). (2) 하늘과 같이 높은 곳을 가리킨다(VanGemeren, Anderson). 영역 본들의 경우를 보면, NIV는 the high mountains(높은 산들)라고 번역하여 (1)을, RSV는 the high heavens(높은 하늘들)로 번역하여 (2)를지지하고 있다. 특히 (2)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말이 본문의 성소가 높은 하늘과 같이 영구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튼 본문은 근본적으로 높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성소가 '실로'에서처럼 사라지는 일이 없이(60절) 견고하게영원히 존속하도록 한 것을 가리킴에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성소'란 가시적으로 지어진 솔로몬 성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은 이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성전, 즉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Alexander).

성 경:[시78:70]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그 종 다윗을...취하시며 - 이는 다윗이 양치는 목동으로 있었을 때 선택하신 것을 가리킨다(삼상 16:11-13).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시되 그의 외적인 능력과 신분의 존귀함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주권과 은혜에 따라 행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성 경:[시78:71]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그 백성인 야곱...기르게 하셨더니 - 이스라엘 백성을 야곱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5, 21절을 참조하라. '기르게 하셨더니'에 해당하는 '라아'(*)는 '(가축)을 돌보다', '방목하다'의 뜻이며 이에 '다스리다'의 상징적 의미가 유추되었다. 이는 다윗이 전에는 들의 양들을 돌보며 먹였으나, 이제는 목자되신 여호와를 대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며 먹여야 할 위치에 있게 되었음을 잘 나타낸다.

성 경:[시78:72]

주제1:[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주제2:[하나님의 회복의 은총]

⭕ 마음의 성실함으로 - '성실함'의 히브리어 '톰'(*)은 '탐맘'(*, 완성하다, 완전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완전함', '온전함', '흠 없음'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르되,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행하였음을 시사한다(왕상 9:4).

⭕ 그 손의 공교함으로 - '공교함'의 히브리어 '타분'(*)은 '빈'(*, 구별하다, 이해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분별', '이해', '통찰력'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그손으로 통치하되 특히 분별력 있게, 지혜롭게 치리하였음을 나타낸다.

성 경: [시79:1]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열방이 - '열방'의 히브리어 '고이'(*)는 의미가 다양하다. 이는 성경에서'나라'(83:4;창 10:5;민 14:12), '백성'(창 20:4;수 3:17;사 60:12), '이방' 또는 '이방인'(46:6;레 25:44;왕하 16:3;21:2;느 6:6;사 42:1;겔 38:16), '열방'(출 34:24;대하 32:13), '열국'(민 14:15;삼하 7:23;사 34:1)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그리고 이는 드물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33:12;창 35:11;사1:4;26:2).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대 랍비(선생)들에게는 '이방인'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었다(59:5, Anderson). 따라서 본문에서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고임'(*)으로서 복수인 바, '이방인들'(the heathen, KJV, RSV) 또는 (이방인들이 사는) '나라들'(the nations, NIV)로 볼 수 있다. 특히 본문에서는 6절에서와 같이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 '유다' 왕국을 침공한 바벨론을 중심한 이방 나라들을가리킨다.

⭕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라'(*)는 '나할'(*,물려받다, 상속받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상속된 것', '상속 재산', '소유물' 등의 뜻이다. 이런 이미에서 본문의 '주의 기업'이란 흔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74:2;출 34:9;신 4:20).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란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 보다 좁게는 예루살렘을 함축하고 있다(Tate). 따라서 본문은 전문(前文)과 연결해 볼 때 이방 나라들의 이스라엘 침공을 뜻한다 하겠다(왕하 25:1-7).

⭕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살륙을 행하며 성전의 기구들을 훼파한 것을 뜻하는 것 같다(74:6, 7;왕하 25:13-17;겔 9:7).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곳을 떠나신 결과 임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겔 5:11;8:6).

성 경: [시79:2]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주의 종들의 시체를...주며 - 이방 대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시체가 장사되지 못하고 길에 방치되어 새들과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만 상황을 가리킨다. 유다의 생존자들은 너무도 창졸간에 침입을 당하였기에 그리고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미처 그들을 온전히 매장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Anderson, Tate).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을 커다란 불행, 저주로 생각했었다(신 21:23;사 14:18, 19). 한편 본문의 '성도'에 해당하는 '하시드'(*)는 '인사하다', '친절하다'는 뜻인 '하사드'(*)에서 유래되었으며 '인자한', '경건한 (자)', '선한 (자)' 등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한다(30:4, Anderson).

성 경: [시79:3]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그들의 피를...흘렸으며 -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피'란 육체의 생명과 직결된 것으로 간주되어진다(레 17:11, 14). 따라서 본문은 대적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을 살륙하여 무참히 죽게 한 것을 나타낸다.

⭕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 2절 주석 참조.

성 경: [시79:4]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 여기서 '우리 이웃'이란 유다 또는 예루살렘 내의 이웃 거민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여러 민족들을 뜻한다. 그리고 '비방거리'에 해당하는 원어 '헤르파'(*)는 '벗다', '노출하다', '모욕하다'는 뜻인 '하라프'(*)에서 유래되었으며 '모욕', '치욕'등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그의 패망됨을 듣고 보고 그들을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한 것을 가리킨다 하겠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영광이 타민족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 처참하게 되어 오히려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애 2:15, 16). 이런 표현은 44:14에서도 나타난다.

성 경: [시79:5]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 '진노'란 히브리어로 '키나'(*)로서 '질투'(민 25:11;신 29:20;습 1:18)를 뜻한다. 그리고 '주의 진노'(*, 키나헤크) 역시 직역하면 '당신의 질투'(thy jealousy, KJV;your jealousy, NIV)란 뜻이다. 물론 여기서 '당신의'란 본절 서두의 '여호와'를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질투'란 하나님이 죄에 대해 공의의 분노를 나타내는 한 표현인 바 '진노'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시79:6]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 - 성경에서 흔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는 것을 뜻한다(4:1;17:6;20:9;31:17;50:15;사 26:13). 따라서 개역 성경은 본문과 같은 렘 10:25을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베쉬므크 라 카라우)이라고 번역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단순히 기도의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창 12:7, 8;13:4). 이런 점에서 주석가 알렉산더(Alexander)나 앤더슨(Anderson)은 본문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자들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열국'이란 원어상 1, 6절의 '열방'이란 말과 다른 '맘라카'(*)로서 '말라크'(*, 다스리다, 통치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왕국', '땅','통치'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복수로서 제일 첫 번째 의미로 사용되어졌다(thekingdoms, KJV, NIV, RSV).

성 경: [시79:8]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우리 열조의 죄악을...마옵소서 - '죄악'에 해당하는 '아온'(*)은 '아와'(*, 구부리다, 왜곡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왜곡됨', '사악함', '불의', '불법' 등을 뜻한다. 그리고 '기억하여'의 히브리어 '자카르'(*)는 '기억하다'란 의미뿐만 아니라 '...에 영향을 미치다'의 뜻도 함축하고 있다(Anderson).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열조의 죄악이 현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영향을 미쳐 불미스러운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저자의 깊은 탄식을 전달해 주고 있다. 아울러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임하도록 간구하는 말이기도 하다(VanGemeren).

⭕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사오니 - '천하게 되었사오니'에 해당하는 '달랄'(*)은 '연약하다', '낮게 되다'의 뜻인데, 이는 어떤 힘이나 지위의 측면 모두에 적용된다(Alexander). 원문에 의하면 본문은 '키 달로누 마드'(*, 왜냐하면 우리가 심히 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로서 본절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으며 후문(後文), 즉 '주의 긍휼하심으로...영접하소서'의 원인을 나타낸다.

성 경: [시79:9]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구원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언약적 차원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언약적 호칭이다(18:46;88:1;사 17:10).

⭕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 '이름'이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외적 호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또는 그분의 신격(神格)을 대변하는 것이다(창 25:19-26강해, '이름 짓기' 참조).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피조된 세상 만물의 존재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구속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문에는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앙심이 표출되어 있다. 아울러 이 간주는 자신들에게는 도움이나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사하소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파르'(*)는 '덮다'의 뜻이며, 여기서 '속죄하다'(레 9:7;신 21:8), '용서하다'(65:3;78:38)의 뜻이 유출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에 근거하여 죄를 덮으심으로 사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시79:10]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피 흘림 당한 - 3절 주석 참조.

성 경: [시79:11]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갇힌 자의 탄식으로...하시며 - '갇힌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시르'(*)는 '매인 자', '포로'라는 뜻의 단수이다. 그러나 이는 단체를 단수로 취급한 집합명사이다(Anderson). 이들은 아마 B.C.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들의 탄식, 즉 포로 생활의 고난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도록 간구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포로된 자들과 같은 이스라엘이라는 유기체적인 존재로서의 동질 의식을 갖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암시한다.

⭕ 죽이기로 정한 자를...보존하소서 - '죽이기로 정한 자'란 원문에 의하면 '베니 테무타'(*)로서 '죽은 자의 아들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말은 고대근동 지방에서 흔히 죽어가는 사람들 또는 죽이기로 정죄되거나 예정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관용어로 통용된다(Alexander). 여기서는 전문(前文)의 '갇힌 자'와 병행 구절로서 역시 포로되어 죽을 운명에 처해진 자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본문의'능력'의 히브리어 '제로아'(*)는 기본적으로 '팥'(10:15;98:1;창 49:24;신33:20, 27;대하 32:8)이란 뜻이며, 여기서 비유적으로 '힘'(71:18), '권세'(욥 22:8)란 말들이 파생되었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취해진 말이다. 특히 하나님의 '팔'을 '능력'으로 비유 표현한 것은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묘사법이다(겔 1:3).

성 경: [시79:12]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우리 이웃 - 4절 주석 참조.

⭕ 훼방한(*, 하라프) - '급히 벗다', '노출하다', '모욕하다' 등의 뜻이다. 이는 4절의 '비방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어원(語源)이다. 이로 볼 때 본문은 4절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 칠 배나 갚으소서 - 히브리 사상에서 7이라는 숫자가 완전을 뜻하는 수인 바(출 29:30, 37;레 12:2, 5;13:5;14:9) 철저한 보응을 암시한다. 그리고 '갚으소서'(*, 슈브)는 '되돌아가다', '되돌려 주다'란 뜻이다.

성 경: [시79:13]

주제1: [언약 백성의 탄식과 구원]

주제2: [갇힌 자의 탄식]

⭕ 주의 기르시는 양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양육을 받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 즉 의존받는 자와 의지하는 자와의 관계를 잘 표현해 주는 말로서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 즉 왕과 백성간의 관계를 암시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80:1, VanGemeren).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성도의 영적 관계를 잘 나타내 주는 말이기도 하다(요 10:1-18).

⭕ 주의 영예(*, 테힐라테카) - 직역하면 '당신의 영예'이다. 여기서 '영예'란 히브리어로 '테힐라'(*)로서 '할랄'(*, 빛나다, 빚을 밝히다, 칭찬하다, 찬송하다, 대상 23:5;대하 5:13;20:19)에서 유래되었으며, '찬송', '찬미' 등을 뜻한다(thy praise, NIV).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 특히 이스라엘 족속을 위해 행하신 사역을 칭송하는 것을 가리킨다(Anderson).

성 경: [시80: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요셉 -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나, 야곱의 장남 르우벤이 크게 범죄한 이후 장자의 자격이 박탈당하자 대신 장자의 명분을 얻은 자이다(창 35:22;49:3, 4;대상 5:1, 2). 따라서 그는 야곱으로부터 지극히 큰 축복을 받았고(창 49:22-28), 그의 두 아들이 모두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 한 지파씩 속하는 복을 누렸다(창 48:8-22). 이는 장자에게는 다른 아들들보다 두 몫의 축복을 하는 율법과 일맥 상통한다(신 21:15-17). 결과 요셉의 후손 특히 야곱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내에서 한동안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다(78:9). 이런 배경하에서 본문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대두된다. (1) 전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말이다(Anderson). (2) 요셉의 후손, 즉 에브라임이나 므낫세 등을 중심으로 남 왕국 유다와 구별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킨다(Ridderbos, Briggs, Cohen). 이중에서 어느 것이 더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많은 경우에 (2)를 더 지지한다. 알렉산더(Alexander)도 (1)을 가정하면서도 (2)에 더 많은 개연성(蓋然性)을 두고 있다. 만약 본문이 (2)를 가리킨다면, 본절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B.C. 722년)을 배경으로 하여 구원을 부르짖은 기도가 될 것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분으로서 그들을 통치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23:1-3;78:52, 53;79:13, Tate).

⭕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 '그룹'(*, 케루브)이란 그 어원(語源)이나 뜻이 불분명하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수종하는 영적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며 그분을 수종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곳에 나타나는 자들로 주로 묘사된다(출 25:19-22;겔 9:3).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성전 지성소내에 위치한 법궤 위 속죄소에 있는 그룹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그룹들 사이 속죄소의 윗부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다(출 25:19, 22;왕상 6:23-28).

⭕ 빛을 비취소서 -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크신 능력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는 간구이다(3절 주석 참조).

성 경: [시80: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 이 세 지파들은 라헬의 후손들로서 열두 지파 중에서도 상호 단결력이 있었던 바 광야에서 같은 구역에 장막을 쳤으며(민 2:18-24), 광야 행군시에도 같은 부류로 진행하였다(민 10:21-24), 여기서 이들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들로 여겨진다(Anderson, Dahood). 그러나 여기에 약간의 의문점이 있다. 위의 세 지파들 중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완전히 예속된 자들이었으나, 베냐민 지파는 많은 경우에 남 왕국 유다에 속하는 자들로 언급되기 때문이다(왕상 12:21, 23;대하 11:1, 3, 23). 그러나 이에 대해서 앤더슨(Anderson)은 베냐민 지파는 때로는 남 왕국 유다로 간주되었지만, 때로는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간주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헹스텐버그(Hengstenberg)나 쿡(Cooke), 케인(Cheyne)은 베냐민 지파가 남 왕국 유다에 예속된 것은 극히 적은 일부분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주석가 알렉산더(Alexander)도 베냐민 지파가 유다 왕국에 예속된다는 것은 단지 그들 중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만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헹스텐버그의 견해와 이 세 지파들이 한 라헬의 후손인 바 상호 가까운 인척 관계라는 점을 들어 위의 사실을 지지한다.

⭕ 주의 용력(勇力)을 내사 - 여기에서 '주의 용력'이란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게부라테카'(*)로서 직역하면 '당신의 힘'(thy strength, KJV;your might, NIV)이다. 그리고 '내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르'(*)는 '잠에서 깨다', '일어나다', '분별하다'(stir up, KJV, RSV) 등의 뜻을 지닌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일어나시사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기를 소원하는 말이다.

성 경: [시80: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우리를 돌이키시고 - 탈굼역(Targum)은 이를 '우리를 우리들의 포로됨에서 돌이키소서'라는 뜻으로 취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도록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돌이키시사 새롭게 해 달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Anderson, Delitzsch). 왜냐하면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고 그분의 뜻, 말씀을 저버림으로 심히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Turn us again to yourself, LB).

⭕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하에르 파네카) - 직역하면 '당신의 얼굴을 비취사'(make your face shine, NIV;let thy face shine, RSV)란 뜻이다. 성경에서 흔히 얼굴을 향하사 비췬다는 것은 두 가지 대조적인 뜻을 나타낸다. (1) 범죄한 죄인에 대해 공의의 진노를 나타내사 심판을 행하심을 뜻한다(34:16;51:9;벧전 3:12). (2)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와 호의, 도우심 등을 베푸시는 것을 암시한다(27:9;42:5;105:4;민 6:25, 26). 본문에서는 (2)에 해당된다.

성 경: [시80: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 '여호와'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하나님의 고유 이름으로서 '스스로 계시는 자'란 뜻이다(출 3:14, 15). 이는 창 4:26에서도 나타나나, 특히 모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이름으로 사용되어졌다. 그리고 '만군'이란 히브리어로 '차바'(*)로서 '집결하다', '소집하다'라는 뜻의 '차바'(*)에서 유래되었으며 '집단', '무리', '군대'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되었으나(44:9;출 7:4;12:41), 많은 경우에는 하늘의 우상 숭배 대상을 뜻하는 것으로(신 4:19;17:3;왕하 17:16;습 1:5), 또는 하늘의 천사들을 가리키는 말로(103:21;148:2;왕상 22:19;대하 18:18)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본문의 '하나님'(*, 엘로힘)이란 복수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능력과 권세면에서 비교할 대상이 없는 유일 무이(唯一無二)하신 하나님을 지칭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만군의 하나님'이란 하늘의 모든 천체와 영적 존재들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Alexander) 또는 하늘과 땅의 모든 능력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다 '여호와'라는 말씀을 덧붙여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짖음으로 특히 이스라엘과 언약하사 관계를 맺으신 능력의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 주의 백성의 기도에...노하시리이까 - '노하시리이까'에 해당하는 '아솬'(*)은 원래 '연기를 내다'의 뜻이며 상징적으로 '분노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노, 진노를 '불'로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78:21). 한편으로 '아솬'은 분향단에서 나는 연기 곧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뜻으로도 쓰인다(141:2;레 16:13;계 5:8). 그렇다면 기자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계속되는 진노 사이의 일종의 긴장 상황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려 한 것 같다(Alexander).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분노를 쏟으심을 암시한다. 이것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아직 만족되지 않으셨거나 또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가 안 되어서 인 것 같다.

성 경: [시80: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 '눈물 양식'(*, 레헴 디므아)이란 말은 구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42:3에도 나타난다. 본문은 눈물을 양식처럼 먹게 하신다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심한 고난을 당케 하신다는 뜻이다. 앤더슨(Anderson)은 이를 후문(後文)과 연관시켜 고난이 양식과 음료처럼 백성들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언급한다.

⭕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 '다량'(*, 솰리쉬)은 '세 번(째)', '삼중의', '삼분의 일'(민 15:6, 7;삼하 18:2) 등의 뜻을 지닌다.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많은 양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 듯하다(in great measure, KJV). 결국 본문은 전문(前文)과 병행 구절로서 하나님께서 심한 고생을 당케 하셨음을 나타낸다.

성 경: [시80: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우리로...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 여기서 '다툼거리'란 히브리어로 '마돈'(*)으로서 '경쟁', '싸움', '다툼'을 뜻한다. 아마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당하는 고난을 모독하고 더욱 악화시키기 위하여 그 이웃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다툰다는 것(Alexander) 또는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더 심한 고난, 패망을 당하도록 그 이웃 이방 민족들이 애쓰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영역본 LB, RSV는 여기서 '다툼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마노드'(*, 머리를 흔듦)로 보고 '경멸'(scorn)의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Anderson).

⭕ 우리 원수들이 서로 웃나이다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과 전문(前文)은 종속 관계가 아니라 '와우'(*)로 연결된 대등 관계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전문처럼 하신 결과 본문의 내용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웃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 기본어가 '라아그'(*)로서 '비웃다', '조소하다'의 뜻이며, 79:4의 '조소'의 어원(語源)이 된다(mock, NIV).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고난당하고 천하게 하신 결과 그 이웃 이방 족속들이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것을 가리킨다(79:4).

성 경: [시80: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만군의 하나님 - 4절 주석 참조.

⭕ 우리를 돌이키시고 - 3절 주석 참조.

⭕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 3절 주석 참조.

성 경: [시80:8]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가져다가 -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비유한 표현이다. 팔레스틴은 기후상으로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알맞은 곳이어서 이스라엘에서 재배되는 과실 중 주산물이기도 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듯이, 성경에서 포도나무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렘 2:21;겔 15:2-8;17:6-8;호 10:1),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살라는 의미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곧 극상품 포도 나무를 애굽으로부터 이끌어내신 후 축복 가운데 깊이 뿌리박고 번져 나갈 약속의 땅에 심으셨다. 그러나 그 포도나무는 쓸모없는 들포도가 되고 말았다(사 5:1-7;렘 2:21).

⭕ 열방을...심으셨나이다 - '열방'(79:1)이란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 등을 가리킨다(신 7:1).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은 물론이고 가나안에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인위적인 노력이나 물리적인 군사력 등 이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낸다.

성 경: [시80:9]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께서 그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비유된 포도나무를 옮겨 심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신 것을 가리킨다. 특히 '준비하셨으므로'의 히브리어 '파나'(*)는 원래 '향하다', '대면하다' 등의 뜻이나 '제거하다', '방해물을 없애다', '길을 예비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창 24:31;사 40:3;습 3:15). 본문에서는 어떤 방해물을 제거하고 깨끗이 하는 것을 암시한다(Alexander).

⭕ 땅에 편만하며 - '편만하며'의 히브리어 '마레'는 '채우다', '충만하다'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 땅에서 크게 번성한 것을 뜻한다.

성 경: [시80:10]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크게 번성하고 강하여져 가나안 땅을 장악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혹자는 후문(後文)이나 다음 절들이 북, 서, 동쪽 경계선을 암시한다고 보고 본문의 '산들'이 이스라엘 남부 지방의 산들을 가리킨다고 한다(Cheyne, Hengstenberg, Rawlinson).

⭕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 '백향목'은 소나무과의 상록수로서 높이 36m, 둘레 12m 정도까지 자랄 수 있는 곧고 웅장한 나무이다. 이는 건축 자재로 애용되었고 성경에서는 흔히 힘, 위엄, 번영 등을 상징하는 나무로 묘사된다(92:12;104:16;왕하 14:9). 이 나무는 보통 가나안 땅의 북쪽지역 레바논 땅에서 자라는데(왕상 4:33;5:6;사 2:13;호 14:5, 6), 아마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땅을 그 북쪽 경계선까지 점유하여 지배한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Rawlinson).

성 경: [시80:11]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그 가지가 바다까지...강까지 - 여기에서 '바다'란 가나안 땅 서쪽의 지중해를 가리키며, '강'이란 가나안 땅 동쪽의 유프라테스강을 뜻한다.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이 번성하여 가나안 땅의 동서쪽 지역에까지 영토를 확장, 지배한 것을 말한다. 신 11:24에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영토를 '광야에서부터...서해까지라'고 했는데, 아마 저자는 이스라엘 왕국 역사에서 이곳까지 이르는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삼하 8:3-8;왕상 4:24, 25;대상 18:3-8;대하 9:28, Anderson).

성 경: [시80:12]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께서...따게 하셨나이까 - 본문은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그 보호하시는 손길을 철회하시사 주위의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그들을 훼파하고 패망케 한 사실을 가리킨다. '담'(*, 가데르)은 '둘러쌈',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여기서는 포도원을 외부 들짐승이나 침입자들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담이나 울을 뜻한다. 그리고 이를 허셨다는 것은 그 포도원, 즉 이스라엘을 외부 침입자들에게 방치해 두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시80:13]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수풀의 돼지 - 멧돼지를 가리키는 듯하다(boar, KJV, RSV). '돼지'는 모세 율법에서 부정한 동물 중 하나로 여겨졌는데(레 11:7;신 14:8), 여기서는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방 민족들의 특성을 잘 예시해 준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침입한 앗수르 세력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왕하 15:29;17:19-33;18:9-12, Alexander, Rawlinson).

⭕ 들짐승들 - 이는 전반절에 언급된 이방 세력(수풀의 돼지)에 동조한 이방 동맹국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시80:14]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만군의 하나님 - 4절 주석 참조.

⭕ 구하옵나니(*, 나) - 직역하면 '제발', '부디'라는 뜻으로서 애원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불변사(不變詞)이다.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 하나님께서 당신의 처소인 하늘 높은 곳에서 땅의 낮은 곳을 내려다보신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암시한다(14:2).

⭕ 이 포도나무를 권고하소서 - '권고하소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 '보살피다'란 뜻이다(visit, KJV;Watch over, NIV).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로 오셔서 보살펴 달라는 구원의 간청이라 하겠다(3절).

성 경: [시80:15]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의 오른손으로...줄기요 - 히브리 사상에서 오른편(쪽)이 복, 힘, 권능 등을 뜻하는 바 '주의 오른손'이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암시한다(78:54;출 15:6, 12). 그러나 '줄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맛소라 사본(MT)상으로는 '카나'(*)로서 '줄기', '식물'(the stock, RSV)을 뜻한다. (2) 70인역(LXX)과 일부 주석가들은 이를 '견코케 하다'란 뜻의 동사로 취한다(Michaehs, Hupfeld, Cooke,Alexander). (1)을 취할 경우 본문은 하나님이 그 크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안식케 하신 것을 뜻한다. 반면, (2)를 택할 경우 본문은 하나님이 가나안땅에 거주케 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 속에 두지 마시고 보호하사 강건케 해 달라는 간구의 뜻을 나타낸다(Protect what you yourself have planted, LB).

⭕ 가지(*, 벤) - 직역하면 '아들'(the son, NIV)이다.

성 경: [시80:16]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그것이 소화(燒火)되고...망하오니 -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들에 의해 침략당하고 훼멸됨을 뜻한다. 특히 본문의 '주의 면책'(*, 가아라트 파네카, 당신의 얼굴의 책망)이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말로서 구원을 암시하는 '주의 얼굴 빛'이라는 표현과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3, 7절).

성 경: [시80:17]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의 우편에 있는 자(*, 이쉬 예미네카) - 직역하면 '당신의 오른 편에 있는 사람'(the man of thy right hand, KJV, RSV)이다. 여기에서 '오른편'이란 힘, 권능 등을 상징하는 바, 본문은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붙드신 자 또는 높이신 자를 뜻한다 하겠다. 그러나 이 자(者)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가리킨다(Clark). (2) 이스라엘을 뜻한다(Rawlinson). (3)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킨다(Anderson). 이중에서 문맥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을 뜻하는 (3)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110:1). 한편 겔스톤(Gelston)과 힐(Hill)은, 본문은 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뜻하지 않고 왕을 가리키며 아울러 메시야를 암시할 수는 있다고 본다.

⭕ 인자의 위에...얹으소서 - 여기서 '인자'란 탈굼역(Targum)에서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나, 그보다는 이스라엘의 왕이나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Anderson). 그리고 '손'이란 하나님의 권능, 능력을 상징하는 바(겔 1:3) 이를 얹는다는 것은 곧 능력으로 힘을 북돋우는 것, 공급해 보살펴 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붙드사 힘주시는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시80:18]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 하나님을 떠나 신앙적 후퇴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물러가지'(*, 수그)는 신앙적인 배교(背敎)를 암시하는 말로도 쓰인다(53:3, 4, Alexander).

⭕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과 간구의 뜻을 암시하나 또한 경배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79:6).

성 경: [시80:19]

주제1: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염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 4절 주석 참조.

⭕ 우리를 돌이키시고 - 3절 주석 참조.

⭕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 3절 주석 참조.

성 경: [시81:1]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 -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의 근원이 되실 뿐만 아니라 능력 그 자체이심을 고백하는 말이다. 또한 이는 우리의 보호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인데, 특히 본시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출애굽의 모티브가 주로 등장한다(5,10,12절). 한편 성경에서 이와 유사한 고백을 표한 자로는 모세(출15:2,3;신32:4), 다윗(16:5;18:1,2;23:1;27:1;삼하22:2,3,29,33), 요한(요1:1,14;14:6), 바울(고전1:30) 등을 들 수 있다.

⭕ 야곱의 하나님 -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말과 동의어이다. 야곱은 이삭의 둘째아들로서 후에 이스라엘로 개명(改名)되었으며(창32:28;35:10)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조상의 아버지가 되었다(창29:31-30:24;35:16-18). 이런 연유에서 그의 이름은 여러차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과 동의적 병행 구절로 사용되었으며(신33:10), 이 스라엘 백성(나라)을 직접 가리키는 의미로(78:5,21) 쓰이기도 했다. 본문에서도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로 구성된 유기체적 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 또는 이스라엘(야곱)과 언약하신 하나님이심을 암시한다.

성 경: [시81:2]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시를 읊으며 - 여기에서 '시'(*, 지므라)는 '찬양', '찬송', '시' 등을 뜻하며, '읊으며'(*, 나사)는 '높이 올리다', '들어 올리다' 등을 의미한다. 이런점에서 본문은 시(찬양)을 소리 높여 읊음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구약에서는 찬양이 주로 시를 음악 가락에 곁들여 읊는 형태로 나타나는 바, 이는 곧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Begin a music, NIV;Raisea song, RSV).

⭕ 소고를 치고 - '소고'(*, 토프)란 흔히 타악기의 일종인 작은 북으로 알려진 악기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중적이며 여성적인 악기로서 전승(戰勝) 축하나 축제시 춤추면서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출15:20;삿11:34),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로도 잘 쓰인다(149:3;150:4). 그리고 본문의 '치고'(*, 나탄)란 직역하면 '주다'의 뜻인데, 이는 소고의 소리를 발하라는 의미이다(Alexander). 한편, 혹자는 성전에서 소고를 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바 본시의 1-3절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는 시적인 표현이거나 성소 밖에서 행해지는 축제를 표현한 것일 것이라고 본다(Anderson). 68:25에는 성소로 향하는 과정에서 소고를 치는 여인들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 아름다운 수금에...아우를지어다(* - ,키노르 나임 암 나벧) - 직역하면 '비파와 함께 즐거운 수금을'(the sweet lyre with the harp, RSV)의 뜻이다. 아마 이 본문의 동사는 전문(前文)의 '치고'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수금'(*, 키노르)이란 현악기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이다(창4:21). 이는 구약 성경에서 약 35회 정도 언급되는데 음색이 곱고 맑아 슬플 때는 켜지 않고 기쁠 때 켰다 한다(137:2;창31:27;욥21:12;사24:8). 그리고 이는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한 도구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거의 비파와 함께 사용되었다(33:2;대상15:16;25:1;느12:27). 한편, '비파'(*, 네벧)는 일종의 현악기로서 흔히 하프(harp)로 알려졌다. 현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열두 현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일발적으로 거의 같이 연주되었던 수금(lyre)보다는 그 형체가 크며 그 음도 컸던 것으로 본다.

성 경: [시81:3]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월삭'(*, 호데쉬)은 히브리어 '하다쉬'(*, 새 것이 되다, 새롭게 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새 달', '달의 시작'의 뜻으로서 달의 첫날, 초하루를 암시한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이 날에는 제사를 드리며 제물 위에 나팔을 불어 기념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민28:11;29:6). 특히 본문에서는 문맥으로 볼 때 흔히 나팔절로 지켜졌던 7월 1일(종교력)을 뜻하는 것 같다(민29:1).

⭕ 월망(*, 케세) - 이는 직역하면 '충만', '만월'이란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달의 15일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문맥상 장막절이 시작되었던 7월 15일을 암시하는 것 같다(Rswlinson, Anderson).

⭕ 절일(*, 하그) - 이는 흔히 '절기'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출12:14), 본문에서는 7월 15일부터 지켜지는 장막절을 뜻하는 것 같다(Anderson, Rawlinson). 성경에서는 이 장막절을 보통 절기라고 부른 곳이 여러 곳있다(민29:12;왕상8:2,65). 참조로, 이를 유월절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Alexander).

⭕ 나팔을 불지어다 - 여기서 '나팔'(*, 쇼파르)은 은나팔(*, 하초체라, 민10:2)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 나팔을 뜻한다. 이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전쟁 신호(수6:4,8;삿3:27), 하나님께 대한 찬미(47:5;150:3) 등의 수단으로 불리워졌다. 본문에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기쁨의 날을 전하기 위해 불리워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대인들에게 있어 종교력 7월 1일은 민간력으로는 1월 1일이었다(레23:24;민29:1).

성 경: [시81:5]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 본문은 '치러'(*, 알)의 해석에 따라 크게 두가지 견해로 나뉜다. (1) 이를 '...위에', '...대하여'로 보아 하나님이 애굽 땅을 대항해 나아가신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Went out against Egypt, NIV;went outover the land of Egypt, RSV). (2) 이를 '...로부터'라는 뜻으로 보아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오신 것, 즉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출애굽하신 것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went out of Egypt, NEB). 이중에서 키드너(Kidner), 테이트(Tate) 등은 (1)을 지지하나 드라이버(Driver), 보에르(Boer), 알렉산더(Alexander), 로린슨(Rawlinson) 등은(2)를 지지하며(114:1), 70인역(LXX)과 시리아역도 (2)를 반영하고 있다. 어떤 견해를 취하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는 별차이가 없다.

⭕ 요셉 - 이는 이스라엘 전족속을 대표하는 또는 그와 동의어로 사용된 말로 볼 수있다(Anderson, Alexander, Hengstenberg).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요셉이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시 뛰어난 역할를 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창49:26;출1:8).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요셉이 르우벤 대신에 이스라엘(야곱)의 장자 명분을 얻어 후에 그 지파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위에 있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78:9,67;창49:3,4;대상5:1,2).

⭕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 '말씀'(*, 사파)을 직역하면 '입술'인데, 이는 일반적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방언 또는 언어를 가리키는 관용구적 표현으로 쓰였다 한다(Alexander). 따라서 본문은 이 후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가리키는 것이다(Alexander).

성 경: [시81:6]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내가 그 어깨에서...놓게 하였도다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와 고역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 있었을 때 각종 건축과 농사일 등을 했었다(출1:11;5:6-14). 본문의 '광주리'(*, 두드)는 애굽에서 흔히 진흙이나 기타 건축 재료들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다(Anderson).

성 경: [시81:7]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네가 고난 중에...건졌고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고역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그 고역속에서 구원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출2:23-25;3:7).

⭕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응답하며 - '뇌성의 은은한 곳'(*, 베세테르 라암)은 직역하면 '천둥의 은밀한(또는 덮는) 곳'의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가운데 시내 산에서 임재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출19:18,19;20:18, VanGermeren, Alexander).

⭕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 하나님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출17:1-7;민20:2-13).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시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패역을 드러내었다(출17:7).

성 경: [시81:8]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내 백성이여 들으라(*, 솨마 아미) - 원문 그대로는 '들으라 내 백성이여'(Hear, o my people, KJV, NIV, RSV)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을 부르시는 표현으로서 신명기에서 잘 나타난다(신4:1;5:1;6:4;9:1). 특히 이러한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 듣고 그대로 따르라는 뜻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암 티쉬마 리) - 이는 직역하면 '네가 내게 듣기를 원한다면'(if thou wilt hearken unto me, KJV, if you would but listen to me, RSV)이다(Alexander).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간청하시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히려 명령의 뜻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하겠다(Anderson).

성 경: [시81:9]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다른 신을 두지 말며 - 이는 십계명 중 첫계명과 관련된 말로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상기시킨다(출20:3;신5:7).

⭕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 십계명 중 제2계명과 관련된 것이다(출20:4,5;신5:8,9).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절대성을 암시하며, 우상 숭배의 배교(背敎)를 엄격히 금지하는 조항이다.

성 경: [시81:10]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나는...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 '여호와'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80:4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의 '여호와 네 하나님'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언급하실 때에도 표명하셨던 말씀인데(출20:2), 특히 율법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것이 언약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권능과 자비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묘사되어진다. 또한 본문은 한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십계명(율법)을 지켜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나타내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 여기서는 음식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요구 사항과 필요들을 대신하여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을 뿐만 아니라 광야 여정과 가나안 정복 및 정착 과정에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적시(適時)에 공급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오직 하나님만 의뢰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Alexander). 언약 백성을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순종에는 축복을 그리고 불순종에는 징벌이라고 하는 매우 선명하고도 알기쉬운 역사적 체험에 근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순종을 거듭하는 데로 나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성 경: [시81:11]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내 백성이 - 이 말 속에는 일종의 역설적 실망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역을 도모했던 것이다(사1:3). 한편,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대조를 나타내는 등 위 접속사 '와우'(*, 그러나, But, KJV, RSV)가 언급되어 있다.

성 경: [시81:12]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내가...버려 두어 - 마음을 완악한 대로 방치해 두사 범죄의 길로 가는 것을 허용하신 것을 암시한다(롬1:24,25,28-32).

⭕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 여기서 '임의'는 히브리어로 '모에차'(*)로서 이는 '야아츠'(*, 충고하다, 조언하다, 숙소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회의', '꾀'(5:10), '모략'(잠22:20), '계책'(호11:6) 등을 뜻한다. 즉, 본문은 하나님이 강퍅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헛되고 죄악된 뜻과 생각대로 행하게끔 방치하셨음을 나타낸다.

성 경: [시81:13]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내 백성이...원하노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루(*)라는 조건불변사가 있다. 백성들의 거듭되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는 영광스러운 미래에의 회복을 일깨우는데(14-16절),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본절에 언급된 바 회개와 순종이다(VanGemeren).

성 경: [시81:14]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제어하며(*, 카나) - 직역하면 '무릎을 굽히다', '늦추다', '복종케 하다'의 뜻이며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이스라엘 앞에 굴복케 하신다는 의미이다.

⭕ 내 손을 돌려...치리니 - '손'이란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표현으로서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한다(78:42;겔1:3).

성 경: [시81:15]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여호와를 한(恨)하는 자 - '한하는'에 해당하는 '사네'(*)는 '증오하다', '미워하다'의 뜻이다(hate, NIV, RSV).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결국에는 그분께 대한 반역적인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되는 자를 암시한다.

⭕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예카하슈로) - '복종하는 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형은 '카하쉬'(*)로서 '거짓되다', '거짓되이 가장하다', '굽실굽실하다' 등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 거짓되이 가장하며 순종하는 체하는 것을 가리킨다.

⭕ 저희 시대는...계속하리라 - '저희 시대'란 말이 누구를 지칭하며 어떤 상태를 가리키고 나아가 본문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이스라엘의 축복된 상태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Briggs). (2)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종속됨 혹은 파멸의 시대가 계속될 것임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Anderson, Van-Gemeren). (3)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존속 상태가 계속될 것임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Alexander)이다. 이중에서 (1)과 (3)은 거의 동일한 입장에 있으며, 본문이 본절 상반절과 직접 연결되는 내용임을 감안하여 (2)의 견해를 취함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their punishment would last forever, JIV).

성 경: [시81:16]

주제1: [축제의 선포]

주제2: [회개 촉구에 대한 절기 노래]

⭕ 밀의 아름다운 것(*, 메헬레브 히타) - 직역하면 '밀의 살진 것'이란 뜻으로서 최상품을 가리킨다(the finest of the wheat, KJV, RSV, 147:14;민18:12). 본문에서는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실 육적, 영적 은혜 모두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 반석에서 나오는 꿀 - 이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흔히 딸 수 있는 들꿀을 가리키는 듯하다(삼상14:25-29,43). 본문의 의미도 전문(前文)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성 경: [시82:1]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하나님(*, 엘로힘) - 80:4 주석 참조. 하나님의 회 - 본문의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은 바로 앞의 '하나님'(히, 엘로힘)과는 달리 단수형으로서 '강한 자', '능력자'의 뜻이며 절대적이고 초월절인 권능를 지니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다(창 35:11; 48:3; 출 6:3; 민 12; 13). 그리고 '회'(*, 에다)란 '회중'(출 16:9; 34:31; 35:1,4,20), '총회'(민 16:2) 등으로 번역되는 말로서 여러 사람들이 모인 군중, 회중, 무리를 뜻하는데, 구약에서는 흔히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서 유기체적 집단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란 말과 어울려져 '하나님의 회'란 말로 표현되었는데, 혹자는 이를 가나안 신화에서 빌려온 말이라 한다. 가나안 땅에서 '엘'(*, 하나님)이란 모든 신들 중의 우두머리로서 그 신성한 회의에 그곳 신들을 회집해 그들을 관장하였다 한다(Dahood, Vangemeren, Pope, Driver). 그러나 본 시편 기자가 가나안 신화를 모방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단지 본절의 상.하반절이 병행 대구를 이룬다고 이해하여 '하나님의 회'가 재판장들의 모임을 뜻한다고 봄이 무난할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신 집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표현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Alexander).

⭕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 '재판장들'(*, 엘로힘)이란 문자적으로는 '신들'(tne gods, JKJV, NIV, RSV)을 뜻한다. 혹자는 이를 천사들로 보기도 하나(Bleek, Hupfeld), 그보다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가지고 공의로운 심판을 수행하는 자들, 즉 재판관들을 지칭한다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이들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을 판단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신 1:17) 공정하게 사람들을 판단하며 재판해야 했다.

성 경: [시82:2]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 재판의 본질은 공정성에 있다. 그리고 재판의 공정성은 모든 권위와 공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서 기인된다(신 1:17; 롬 13:1-7). 그런데 이들 재판장들은 이 공정성을 왜곡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격이 되었다.

⭕ 악인의 낯 보기를 - '보기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사'(*)는 '높이 들다', '세워주다'의 뜻이다. 이는 히브리 사회에서 특별하게 통용되는 관용구적 표현 중의 하나로서 어떤 한 사람(즉, 재판장이 뇌물 등을 받고 불공정하게 보아주기로 정한 사람)의 편을 들어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Alexander). 이는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다(신 10:17; 16:19).

성 경: [시82:3]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가난한 자와 고아를...판단하며 - '가난한 자'(*, 달)란 육체적인 힘이나 재산, 물질 등의 면에서 결핍된 자, 부족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Alexander). 율법에서는 이런 가난한 자의 고아를 위하여 공정하게 편벽됨이 없이 재판할 것을 엄정히 명시하고 있다(출 23:3,6; 신 24:17; 27:19). 이것은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 곤란한 자와...공의를 베풀지며 - '곤란한 자'(*, 아니)란 '억압받는 자', '고통받는 자'(the afflicted, KJV, RSV)란 뜻이 있으나, 이를 '가난한 자'(출 22:25; 레 19:10; 23:22)로 변역하기도 했다. 본문도 전발절과 대구를 이루어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성 경: [시82:4]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가난한 자와...건질지니라 - '구원하여'의 히브리어 '팔라트'(*)는 '몰래 나오게 하다', '탈출하게 하다'의 뜻이다. 그리고 '악인들의 손'이란 '손'이 힘, 능력 등을 상징하는 바(겔 1:3), 연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악인들의 힘이나 권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건질지니라'(*, 나찰)는 '움켜 빼앗다', '(어려운 상황에서) 구출하다'의 뜻이 있다.

성 경: [시82:5]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저희는 무지무각(無知無覺)하여(*, 로 야데우 웰로야비누) - 직역하면 '그들은 알지 못했고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가 된다. 이는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뜻과 말씀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음을 암시한다.

⭕ 흑암 중에 왕래하니 - 여기서 '흑암'이란 무지(無知)나 불의(Alexander), 또는 도덕적인 어두움(VanGemeren, McCullough)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 '땅의 모든 터'란 하나님께서 세우신 땅의 기초를 뜻하는 말로서(잠 8:29; 사 40:21) 이는 곧 이 세상에서의 도덕적 질서를 암시하는 말인것 같다(Anderson). 그러나 혹자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말로 보기도 한다(VanGemeren). 아무튼 본문은 공으로워야 할 재판장들이 흑암의 불의 가운데서 행함으로 이 땅의 모든 도덕적 질서와 의가 왜곡되고 혼란스럽게 된 것을 뜻한다.

성 경: [시82:6]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너희는 신들이며 - '신들'(*, 엘로힘)은 1절의 '재판장들'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본문도 1절에서와 같이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받은 자들임을 암시한다고 봄이 무난하겠다.

⭕ 지존자의 아들들 - '지존자'(*, 엘룐)에 대해서는 78:17,35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 역시 전문(前文)의 의미와 유사한 것으로서 높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위임하시사 당신을 대변하고 대신 권위를 발하도록 하신 자들(재판장들)을 뜻한다.

성 경: [시82:7]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너희는 범인(凡人)같이...엎더지리로다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불변하사 '아켄'(*)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영역본들은 이를 역접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로(But, KJV, NIV; nevertheless, RSV)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Alexander)는 이를 강한 확언을 나타내는 불변화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certainly, assuredly). 어쨌든 본문은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받은 자들로서 아주 특출한 위치에 있으나 하나님 앞에 무지와 불의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총의 대상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불의의 참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엎더지리로다'는 갑작스런 파멸이나 비참한 죽음을 시사하는 말로 종종 쓰인다(20:8; 렘 8:12).

성 경: [시82:8]

주제1: [불의한 재판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공의의 실현 촉구]

⭕ 하나님이여...판단하소서 - 이는 저자가 선지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를 기원하는, 본시의 결론 부분이다. 기자는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부여받았으나 잘못 활용한 재판장들뿐만 아니라 나아가 온 땅까지 공의대로 심판 받기를 기원하고 있다.

⭕ 모든 열방이...되겠음이니이다(*, 키 아타 티느할 베탈 하고임) - 직역하면 '왜냐하면 당신이 모든 나라들을 상속할 것이기때문이다'(for thou shalt inherit all nations, KJV)이다. 이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나라이 임하옵시며...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0,13)라는 구절을 생각케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종국에 가서는 온 세상 나라들을 다 소유하시어 통치하실 것이라는 뜻으로서 전문(前文)의 '판단하소서'라는 기원의 근거를 제공한다.

성 경: [시83:1]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침묵치 마소서(*, 알다미 라크) - 직역하면 '당신(자신)에게 침묵치 마소서'라는 뜻으로서 강조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침묵치'의 히브리어 '데미'(*)는 '다마'(*, 조용하다, 침묵하다, 쉬다)에서 유래된 말로 '멈춤, 쉼, 조용히 함, 휴식'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무관심이나 행동의 중지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이 사62:7에서는 '쉬지'(rest, KJV, NIV, RSV)로 애3:49절에서는 '그치지'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 정적을 깨뜨리시고 말씀하시며 또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라는 간구로 볼 수 있다.

⭕ 잠잠치 말고 - '잠잠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쉬'(*)의 원래 뜻은 '새기다, 쟁기질하다'이며 이에서 '침묵하다, 벙어리가 되다'의 의미가 나왔다. 이는 전반절의 '침묵치 마소서'라는 말에 비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좀더 강조점을 둔 표현이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무반응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였다.(28:1; 39:12)

⭕ 고요치 마소서 - '고요치'의 히브리어 '솨카트'(*)는 '쉬게 하다, 진정하다, 조용히 하다'의 뜻으로서 앞의 '잠잠치'와 마찬가지로 행동의 측명에 주안점을 둔 말이다.(Alexander) 한편 본절에서는 '마소서' '말고' '마소서' 등 3회에 걸친 부정 불변사 '알'(*)이 사용됨으로써,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시83:1]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침묵치 마소서(*, 알다미 라크)- 직역하면 '당신(자신)에게 침묵치마소서'라는 뜻으로서 강조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침묵치'의 히브리어 '데미'(*)는 '다마'(*, 조용하다, 침묵하다, 쉬다)에서 유래된 말로 '멈춤', '쉼', '조용히 함', '휴식'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무관심이나 행동의 중지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말이 사 62:7에서는 '쉬지'(rest,KJV,NIV,RSV)로, 애 3:49 에서는 '그치지'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 정적을 깨뜨리시고 말씀하시며 또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주시라는 간구로 볼 수 있다.

⭕ 잠잠치 말고- '잠잠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라쉬'(*)의 원래 뜻은 '새기다', '쟁기질하다'이며, 이에서 '침묵하다','벙어리가 되다'의 의미가 나왔다. 이는 전반절의 '침묵치 마소서'라는 말에 비해 하나님의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좀더 강조점을 둔 표현이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무반응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28:1;39:12).

⭕ 고요치 마소서-'고요치'의 히브리어 '솨카트'(*)는 '쉬게하다','진정하다','조용히 하다'의 뜻으로서의 앞의 '잠잠치'와 마찬가지로 행동의 측면에 주안점을 둔 말이다 (Alexander). 한편 본절에서는 '마소서','말고','마소서' 등 3회에 걸친 부정 불변사 '알'(*)이 사용됨으로써,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시83:2]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주의 원수(*, 오예베카) - 직역하면 '당신의 원수들'(thy enemies,RSV)이란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이스엘 백성을 침략하고 괴롭힌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의 대적들올 '당신의 원수'로 표현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인 바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 훤화하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는 '시끄럽게 말하다', '소요(騷擾)하다'의 뜻이다. 43:3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기자에게는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모여든 이방인들의 모습이 바다의 파도가 흉용하는 모양으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사 17:12; 렘 6:23,Anderson).

⭕ 주를 한(恨)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 '한하는'(*,사네)이란 '미워하는'(hate,KJV,RSV) 의 뜻이다(81:15). '머리'가 권세 또는 권위의 뜻올 상징적으로 함축하는 바(고전 11:3, 10) 본문은 주틀 미워하는 자, 즉 '주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권세)를 내세우며 거만하게 행동함욜 암시한다. 한편 미디안 족속이 기드온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묘사된 바 있다(삿 8:28).

성 경: [시83:3]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호소]

⭕ 주의 숨긴 자 - 심마쿠스역(Symmachus)과 제름역(Jerome)은 이를 단수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보고(寶庫)로서의 성소(성전)를 암시할 수 있다는 여운을 준다. 그러나 맛소라 사본에 의하면 복수로서(*, 체푸네카) 하나님에 의해 감추어져 보호되어진 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27:5 ;31:20).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와 능력에 의해 보호받아 왔다(91편).

성 경: [시83:4]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이스라엘의 이름으로...못하게 하자 - '이스라엘'이란 원래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뜻이나, 후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다','하나님께서 이기신다' 등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또한 이는 원래 야곱의 개명(改名)된 이름이었으나(창 32:28;35:10), 나중에는 이스라엘 전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창 32:32; 출 32:4; 신 4:1;27:9).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이 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후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름'이란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존재의 외적인 호칭의 의미를 넘어 그 사람의 인격 또는 어떤 존재의 실체 자체를 대변했다(79:9).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이스라엘 자체를 존재치 못하게 하자는, 즉 멸망시키자는 뜻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된 백성 또는 국가이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서 당신의 섭리와 뜻을 이루시기로 작정된 자들인 바 물리적인 군사력만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는 한편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격이 되어 그분의 심판을 초래할 뿐이다.

성 경: [시83:5]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주를 대적하여(*, 알레크)- 직역하면 '당신을 대항하여'(against thee, KJV,RSV)란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다(2, 4절 주석 참조).

성 경: [시83:7]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호소]

⭕ 그발 - 혹자는 두로의 북쪽 약 65Km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고대 베니게의 항구 도시로 간주한다(수 13:5; 왕상 5:18; 겔 27:9, Dahood, Rawlinson). 이곳은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는데 그리스인들은 '뷔블로스'(*)로 불렀다 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주석가들은 그리스인들이 '게발레네'(*)로 부른 지역으로서 사해 남방의 에돔 북부 지역에 위치한 산악 지대로 보기도 한다(Anderson,Alexander,Kidner).

⭕ 암몬 -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둘쨋딸에 의해 부정으로 낳은 자의 후손들로서(창 19:38) 요단 강 동부 지역에 남으로 모압과 경게하여 거주하였다.

⭕ 아말렉 - 야곱(이스라엘)의 육신적 형 후예들 중 한조속으로서(창 36:12, 15, 16) 흔히 유다의 남부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지낸 자들로 알려진다.(삼상 30:1,2).

⭕ 블레셋 -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예들로서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였다.(창 10:13,14;출 13:17; 삼상 4:1).

⭕ 두로 거민 - 팔레스틴의 북부 지중해 연안 시돈의 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대 베니게의 항구 도시 거민들을 가르킨다. 시돈과 함께 해양을 발판으로 무역업(상업)이 크게 번성하였다.(겔 28:1-19).

성 경: [시83:8]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앗수르 - 이는 셈의 후예들로 구성된 거대한 민족적 집단으로서(창 10:22) 한때 고대 근동 지방을 다스리는 패권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B.C.722년경에는 북 왕극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였으나 B.C.612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하유 제로아 리브네 로트). - 이것은 '롯의 자손의 팔이 되었다'(are the strong arm of the children of Lot,RSV)란 뜻이다. 여기서 '롯 자손'이란 모압(6절)과 암몬(7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앗수르인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과 힘올 합쳐 이스라엘을 괴릅혔음을 뜻한다.

성 경: [시83:9]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 미디안인은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의 후예들로서 북서부 아라비아 지방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목 또는 무역업을 하며 장막 생활을 했던 족속들이다(창 25:1, 2 ; 출 2:15 ; 민 25:17;31:2). 본문은 하나님이 사사시대 때 기드온올통해 이스라엘을 압제한 그들을 격파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삿 6:1-24, 33-7:23).

⭕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 하나님이 사사 시대 때 드보라와 바락을 앞세워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진멸한 사실을 가리킨다(삿 4장).

성 경: [시83:10]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 '엔돌'이란 '주거(지)의 샘'이란 뜻으로서 수 17:11에서는 다아낙과 므깃도 등과 함께 언급되는데 이들과 가까운 인접 지역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아낙과 므깃도는 시스라와 야빈이 패한 곳인데(삿 5:19), 본문은 시스라와 야빈이 엔돌에서도 크게 패하였음을 암시한다.

성 경: [시83:11]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저희 귀인 - '귀인'의 히브리어 '나디브'(*)는 '자발적인', '관대한','아량 있는' 등의 뜻이며 명사로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며, 다른 사람을 통치하는 자로서 '귀인'(민 21:18), '귀족'(삼상 2:8), '방백'(107:40 ; 113:8), '존귀한 자'(잠 8: 16) 등으로 번역된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들의 지도급 인사들올 가리킨다.

⭕ 오렙과 스엡 - 기드온 사사에게 죽임을 당한 미디안 족속의 두 방백이다(삿7:25).

⭕ 방백(*, 네시크) - '나사크'(*, 붓다, 기름붓다)에서 유래된 말로 어휘 면에서는 87:7의 '방백'과 다르나 의미 면에서는 '(기름부음 받아 위임된) 방백','귀족'이란 뜻으로서 유사하다 하겠다.

⭕ 세바와 살문나 - 기드온 사사에게 죽임올 당한 미디안 족속의 왕들을 가리킨다(삿 8:5-21).

성 경: [시83:12]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하나님의 목장을...취하자 - 70 인역(LXX)은 '하나님의 목장'을 '하나님의 제단'으로, 탈굼역에(Targum)과 제롬역(Jerome)은 성전을 암시하는 듯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흔히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으로 묘사되어지는 바(74:1;79:13) 그들을 안주케 하여 먹이시고 양육하시는 터전, 즉 이스라엘의 영토 가나안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Anderson).

성 경: [시83:13]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굴러가는 검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갈'(*)은 '갈랄'(*,구르다)에서 유래된 말로 '수레바퀴'(사 5:28;렘 47:3)를 뜻하나 본문에서는 가볍게 날리듯이 굴러가는 어떤 것을 뜻한다. 혹자는 이를 엉겅퀴과의 아티초크(artichoke)의 수레바퀴처럼 생긴 꽃잎(Tate) 또는 아티초크와 유사한 식물(VanGemeren)이라고 보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는 초개 - '초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쉬'(*)는 '카라쉬'(*,시들다)에서 유래된 말로 '(마른)덤불', '그루터기' 등을 뜻한다 (1:4;사 17:13;29:5;40:24;41:2;렘 13:24).

성 경: [시83:14]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불과...화염같이 -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낸다. 특히 온 삼림을 살라버리는 거대한 산불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성 경: [시83:15]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주의 광풍으로 ...주의 폭풍으로 - '광풍'이나 '폭풍'은 13절의 '바람에 날리는 초개 같게'라는 말과 연관시켜 볼 때 역시 악인들, 즉 주의 대적들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를 상징한다 하겠다(욥 21:18;사 17:13; 29:6).

성 경: [시83:16]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 '이름'이란 단순히 외적인 칭호의 차원을 넘어서 그 이름으로 불리우는 대상의 실체 혹은 존재 자체를 표현하는 말인 바(4절 주석 참조), 본문은 곧 이방 대적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문이 이방인들의 참된 회개를 가리키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로 나뉜다. (1)이방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수치를 당하고 난뒤에 진실로 돌아와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2)이방인들이 마음 깊은 데서 변화되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지존자'(18절)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많은 주석가들은 (1)을 지지한다(VanGemren,Rawlinson,Anderson). 그러나 반즈(Barnes)는 본문의 이방 대적들이 헛되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여 (2)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맥적인 흐름으로 볼 때, 이방 대적들이 하나님에 의해 수치를 당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을 유일하고 참된 '지존자'(18절)로서 인정할 뿐 아니라 참된 회개를 통해 주 앞에 돌아오기를 바라는 일말의 동정심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성 경: [시83:17]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수치를 당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어는 '부쉬'(*)로서 16절의 '수치'(*,칼론, 모욕, 치욕)라는 말과는 달리 '창백하다','부끄러움을 당하다'.'당황케 되다' 등의 뜻을 갖는다.

⭕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 '낭패를 당케 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페르'(*)는 '얼굴을 붉히다', '수치를 당하다', '부끄러움을 당하다' 등의 뜻을 함축한다. 그리고 '멸망을 당케 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의 기본 의미는 '길을 잃다','헤매다'인데. 여기서 '멸망하다', '파멸하다'의 뜻이 유출되었다.

성 경: [시83:18]

주제1: [대적들의 심판에 대한 간구]

주제2: [위기 속에서의 전능자의 개입 호소]

⭕ 여호와라 이름하신...알게 하소서 - '여호와'와 '지존자'에 대해서는 각각 80:4;78:17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은 이방 대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세계의 지존자 ,즉 온 세계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절대자, 최고의 권위(권세)자이심을 알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주의 원수'(2절)로 하여금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부복(俯伏)하게 해 달라는 뜻까지 함축하고 있다.

성 경: [시84:1]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 - 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만군의 여호와 - 하늘과 땅의 모든 세력들을 다스리시는 무소 불위(무소불위)의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이다(3, 8, 12절;80:4).

⭕ 주의 장막이...사랑스러운지요 - '주의 장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쉬케노테카'(*)로서 '당신의 장막들'(thy tabernacles, KJV)이라는 복수이다.여기서 '장막'(*, 미쉬칸)이란 '주거', '막사'란 뜻을 가진 말로서 흔히 '성막'이란 말로 번역되기도 했다(78:60;출 40:2, 35, 36, 38;민 9:15, 17, 18). 본문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안치한 장막이나(삼하 6:17), 솔로몬이 지은 하나님의 성전(왕상 6:1-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가 본문에서 이를 복수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의 세분화된 건물이나 부속 건물들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이거나(Alexander), 혹은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에 대한 강조적 표현에서(Anderson)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저자가 하나님의 장막을 극히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그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여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전의 지성소 내에 안치된 법궤 위의 속죄소 위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통치하시고 그들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출 25:18-22; 왕상 8:13, 29).

성 경: [시84:2]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내 영혼 - '영혼'(*, 네페쉬)이란 영혼, 산 것, 생명, 자아, 인간, 욕구, 감정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서 이 단어 자체만으로 인간을 가리킬 수 있으나 본문에서는 하반절의 '내 마음과 육체'란 말과 함께 인간의 전존재를 암시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할 수 있다(VanGemeren, Anderson).

⭕ 여호와의 궁정(宮庭)을 사모하여 - '궁정'이란 히브리어로 '하초체르'(*)로서 '마당', '뜰'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는 많은 곳에서 '뜰'로 번역되었다(65:4;출27:9, 12, 13, 17;40:8, 33;대상 23:28;28:12).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성전(또는 성막)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대한 경외심이 가득한 나머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이르러 그분을 경배하고 경외코자 소원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성전을 방문할 때 성전 뜰에서 거하였다 한다(65:4, Anderson).

⭕ 내 마음 - '마음'(*,레브)이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약 850번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의 지적이며(83:5), 의지적인(141:4) 측면에 강조점이 두어진 인격의 좌소(seat) 또는 인간의 전인격을(27:3;77:6;102:4, Anderson)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전문(前文)의 '내 영혼'과 후문(後文)의 '육체'란 말과 함께 인간의 전존재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 육체(*, 바사르) - '바사르'(* 신선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살', '몸'등을 뜻한다. 이는 사람과 동물들이 만들어지게 된 육체적인 질료(물질)를 뜻하기도 하며(창 40:19) 인간의 몸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나(79:2;109:24), 인간 또는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136:25;145:21;창 6:12;사 40:5).

성 경: [시84:3]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 이는 저자가 하나님을 절대적 권능자와 통치자로서 갈망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르짖는 말이다. 특히 '나의 왕'이란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지만 참된 왕,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말이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으로 본문은 본절 끝에 나온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후대의 첨가 구절로 보지만(Kraus, Wanke) 고대 역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24:10;68:24 참조).

⭕ 주의 제단에서(*, 에트 미즈베호테카) - 직역하면 '당신의 제단들에서'(at thy altars, RSV)로서 복수이다. 따라서 '주의 제단들'이란 성전(또는성막)의 번제단(출 27:1-8)과 분향단(출 30:1-6)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들은 각각 하나님의 성소의 앞뜰(출 40:6, 29)과 지성소의 맞은편 성소 안(출 30:6;40:5)에 놓여졌었다. 그런데 본절 내용에 대해 혹자는 '제단들 안에서'(in the alters) 혹은 '제단에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말로 이해하나(Kissane),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왜냐하면이 제단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거룩한 것들로 외부 존재들이 함부로 드나들거나 취급할수 없었기 때문이다(출 30:25-29;민 1:51;3:5-10). 오히려 이는 그 근접 구역, 즉 성전 건물들의 벽 주위(처마 같은 곳)에서 집과 보금자리를 얻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Anderson). 한편, 본문에서 주의 제단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는 희생 제물의 대속 및 기도라 하겠다(Alexander).

⭕ 참새...제비 - 참새는 구약 성경에서 본절에 언급된 횟수를 합쳐 3번 언급되는데(102:7;잠 26:2), 신약 성경에서 보면 싼값에 팔려지는 것으로서(마 10:29, 31;눅12:6, 7) 하찮은 존재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럴 경우 본문은 하찮은 참새도 주의 제단에서 제집을 얻는다는 비유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기자의 간절한 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제비 또한 참새와 유사한 의미를 나타내는 듯하다.

성 경: [시84:4]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주의 집에 거하는 자 - 하나님의 성전(성막)에 거하여 하나님께 봉사하는 제사장들이나 찬송하는 레위인들 또는 특히 고라 자손이 참여했던 문지기들을 뜻할 수 있다(대상 23:5;25, 26장, Rawlinson). 그러나 이외에도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특권을 지닌 모든 자들을 뜻할 수도 있다(Anderson).

⭕ 복이 있나이다(*, 아쉬레이) - 이는 복수의 표현으로서 행복의 충만함, 다양함 등의 뜻을 암시할 수도 있다(1:1, Alexander).

성 경: [시84:5]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시온의 대로'란 '메실라'(*)로서 '시온'이란 말이 없고 단지 '대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쌓아 올리다'란 뜻인 '살랄(*)에서 유래되었음을 볼 때, 자연적으로 다져진 길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길을 뜻한다 하겠다(Alexander). 문맥상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암시하는 것으로서(Mowinckel), 그 마음에 이런 길이 있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같다.

성 경: [시84:6]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 '눈물 골짜기'는 히브리어로 '베아메크 하바카'(*)로서 '바카의 골짜기'(the valley of Baca, KJV, NIV, RSV)란 뜻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영역본 LB, RV는'바카'(*)를 '베카'(*, 울음)로 보고 '울음의 골짜기'(the valley of Weeping)로 번역하고 있으며(Anderson), 70인역(LXX), 탈굼역(Targum), 시리아역, 벌게이트역(Vulgate) 등도 이와 유사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바카'를 '울다', '통곡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로 보는 데서 연유한다. (2) 혹자는 이를 삿 2:4, 5의 '보김'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여 '눈물의 골짜기'를 뜻하는 의미로 본다(Clarke). (3) 또 다른 이는 '바카'가 건조 지대에서 자라는 발삼나무(balsam tree)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Kidner). 이 나무는 건조 지대에서 자라나 나무 자체에서 눈물과 같은 물을 떨어뜨린다 한다. 이중에서 어느 한 견해롤 배타적으로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 모두 나름대로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봄이 나을 것이다. 즉, 본문은 이곳이 거칠고 물이 크게 부족한 곳임을 나타내줌과(the thirsty valley, NEB, Anderson, Calvin) 아울러 고통스러운 곳을 상징한다(Alexander, VanGemeren) 하겠다. 하나님의 전(殿)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런 곳도 은혜 가운데 무사히 통과하여 간다는 것이다.

⭕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 전문(前文)의 거칠고 황무한 곳(또는 고통스러운 곳)에 웅덩이를 파 빗물을 받는 곳을 만든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곳이 비로 인해물 웅덩이의 곳이 된다는 뜻인지, 또는 그곳에서 물 웅덩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뜻인지 정확한 의미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절의 '마음에 대로가 있는 자'는 어렵고 힘든(삭막한) 상황도 기쁨과 생기가 넘치는 상황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 '이른 비'(*, 모레)는 경우에 따라서 '교사'(잠 5 : 13 ; 사 30 : 20) 또는 '이른 비'(욜 2 : 23)를 뜻할 수 있으며, '은택' (*,베라카)이란 모음에 따라 '축복'과 '못'(저수지)을 의미할 수 있는 바, 본문은 대개 다음 세 가지로 해석되어 진다. (1) 비가 또한 못들을 덮는다. (2) 교사가 축복으로 옷입혀진다(Alexander, Clarke). (3) 비가 축복으로 그것(눈물 골짜기)을 덮는다. 이중에서 (3)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이른 비'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10-11월에 내리는 비로서 밭의 파종과 경작을 가능케 하며 흔히 하나님의 은택으로 상징된다(신 11:14;약 5:17). 본문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복된 삶을 살게 됨을 암시한다.

성 경: [시84:7]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힘을 얻고 더 얻어(*, 메하일 알 하일) - 직역하면 '힘으로부터 힘에로'(from strength to strength, KJV, RSV)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힘을 얻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 시온 - 78:68 주석 참조.

성 경: [시84:8]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곱의 하나님 - 본절에서부터는 기자의 간절한 간구가 시작 된다. 이 간구는 앞에서 언급한 복, 곧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누리는 축복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한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칭호들 또한 이러한 간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칭호들은 하나님의 영원성, 자존성(自存性), 절대 주권, 언약에의 신실성 등을 암시한다.

성 경: [시84:9]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 마기네누 레아 엘로힘) - 직역하면 '우리의 방패, 보소서, 하나님'의 뜻이다. 혹자는 '우리의 방패'를 '보소서'라는 동사의 목적어로, 후문(後文)의 병행 구절로 보기도 하지만(Behold our shield, God, RSV, VanGemeren, Tate, Anderson), 이는 하나님을 비유하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11절, Alexander, Rawlinson). AV, RV 등도 70인역(LXX)과 탈굼역(Targum) 등을 따라 이를 하나님과 동격인 호격으로 취하고 있으며, 11절에도 하나님을 방패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을 '우리 방패'로 묘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분이 되심을 나타낸다. 특히 이 말이 본절에서 맨 앞에 언급된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 주의 기름 부으신 자...살펴보옵소서 - '주의 기름 부으신 자'에 대해 혹자는 다윗왕을 지칭한다고 본다(Calvin, Alexander). 그러나 굳이 다윗 왕으로만 국한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며, 이스라엘 왕을 가리킨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Anderson, Rawlinson, Tate). 따라서 본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결국 이스라엘을 형통케 해주십사하는 간구이다.

성 경: [시84:10]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내 하나님 문지기 ( *, 히세토페프 베베트 알로히) - 직역하면 '내 하나님의 집의 입구에 서는 것'(the standing at the entrance of the house of my God)을 뜻한다(Anderson). 이는 레위인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 직무자를 뜻하기보다는(왕하 12:9;23:4;렘 35:4)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성전(또는 성막) 입구에 서서 들어가기를 간구하는 자를 뜻하는 것 같다(Anderson). 키드너(Kidner)도 본문과 관련하여 언급하기를 '문지기'란 대상 26:1, 12 등에 공식적으로 위임된 직임인 문지기와는 다르며, 이 말은 동사로서 '문지방에 서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성 경: [시84:11]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을 나타내는 불변사 '키'(*, 왜냐하면, For, KJV, RSV)가 언급되어 잇다. 따라서 본절은 저자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리기를 갈망하는(10절)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한편, 본문의 '해와 방패'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활력을 베푸시는 분이 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다(9절). 성경에서는 이외에도 그리스도를 해로 비유한 적이 있다(말 4:2).

⭕ 영화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보드'(*)로서 '무거움', '풍성함', '찬란함' 등을 뜻한다. 이말은 흔히 아름다우신 속성 중 하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여지는데(출 24:16, 17;33:18-23;겔 1:28),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결과들 또는 그 결과의 외적 표현들을 뜻하는 것 같다(Alexander).

성 경: [시84:12]

주제1: [하나님의 전(殿)에 대한 사모]

주제2: [최상의 복 받을 자-여호와의 집을 사모하는 자]

⭕ 만군의 여호와 - 80:4 주석 참조.

⭕ 의지하는 - 이는 히브리어로 '바타흐'(*)로서 근본 뜻은 '(피난하기 위해) 서둘러 가다'이며, 이에서 상징적으로 '신뢰하다', '의뢰하다'의 뜻이 유출된다. 이는 어려움과 환난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또는 곤핍한 상황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함축한다.

성 경: [시85:1]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주의 은총에 대한 감사]

⭕ 주의 땅(*, 아르체카) - 직역하면 '당신의 땅'(thy land, KJV, RSV)으로서 전문(前文)의 '여호와'(*, 예화)를 나타내는 2인칭 대명사가 딸린 표현이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거주하였던 가나안 땅을 가리키는데, 이를 본문처럼 표현한 것은 모든 만물 특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소유인데(24:1; 89:11; 레25:23), 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창12:7; 15:7-21; 민34:2-12)

⭕ 은혜를 베푸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차'(*)는 '...을 기쁘게 여기다, 받아 들이다, 호의를 가지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이는 단순히 친절한 말 이상의 의미로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존재를 받아 들인다는 뜻을 나타내며 특히 속죄의 문맥에서 종종 쓰인다.(렘14:10,12, Kidner) 이로 볼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푸시사 그들을 용서하시고 호의로 대하심을 뜻한다.

⭕ 야곱의 포로된 자 - '야곱'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인 바(81:1), 과거 바벨론에 포로되어 끌려갔다가 이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것 같다.(14:7, Anderson, Calvin, Clarke) 그러나 혹자는 본문의 '포로된 자'를 대적들에 의해 다른 나라 또는 열악한 상황에로 끌려간 자를 뜻하지 않고 단순히 고통과 고난 가운데 처한 자를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Alexan-der)

성 경: [시85:2]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주의 은총에 대한 감사]

⭕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 '죄악'의 히브리어 '아온'(*)은 '아와' (*, 구부리다, 왜곡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악', '사악함' 등을 뜻하는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릇되게 행동한 불의들을 가리킨다(the iniquity,KJV,RSV). 한편 '사하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사'(*)로서 '들어올리다', '받아들이다', '감당(담당)하다' (출 28:38;레 10:17;민 18:1,23;30:15) 등의 뜻을 갖는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죄 제물의 희생에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감당하신다는 뜻으로서 곧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의미이다.

⭕ 덮으셨나이다(*, 카사) - 이는 '(눈을 해치는 것을) 덮는다'는 뜻을 내포하는 말이다(Kissane). 이로 볼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외 희생 제물의 구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온전히 가리우시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편,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에 의해 죄 를 온전히 제거하시사 기억조차 아니하시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히 9:12 ;10 :11-18).

성 경: [시85:3]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주의 은총에 대한 감사]

⭕ 거두시며 (*, 아사프) - 기본 의미는 '모으다'이며 (삼상 14:19,Anderson) ,이에서 '가져오다', '취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헤쉬보트 메하론 아페카) - 직역하면 '당신이 당신의 진노의 열로부터 돌이키셨다'(thou didst turn from thy hot anger,RSV)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한 진노를 멈추시사 돌이키시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본문에서 '진노의 열(또는 뜨거움)'(*,에하론 아페카)이란 흔히 불이 하나님 의 심판의 진노를 상징하는 바(겔 10:1,7;15:7;히 12:29), 하나님의 진노의 매섭고 혹독함을 암시한다.

성 경: [시85:4]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우리 구원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약적 차원에서 구원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명칭이다(79:9).

⭕ 우리를 돌이키시고(*, 슈베누) - 이에 대해서 혹자는 '우리에게 돌이키소서"(Return back to us,NEB,RV)라는 뜻을 취하여(Kissane,Alexander), 그 크신 자비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찾아오시라는 뜻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를 '우리를 돌이키소서', 즉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우리를 돌이키소서', 즉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Restore us again, RSV)의 뜻으로 본다(Ander-son,Calvin,Clarke). 이중에서 본 시의 문맥 특히 5-7절의 내용의 흐름을 볼 때 후자가 더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 분노(*, 카아스) - 3절의 '분노'(*, 에브라, 감정의 분출, 격노)와는 원어상 다른 말로서 '괴롭힘', '슬픔' 등 다양한 뜻을 암시하는데, 혹자는 본문에서 비탄서 비탄(grief)과 의분(indignation)의 감정이 혼합된 것을 나타낸다 한다(Alexander).

성 경: [시85:5]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영원히(*, 할르올람)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 언급되어 있는어 있는 데, 이는 그 의미를 강조하는 측면에서인 듯하다. 이 말은 후문(後文)의 '대대에'(*, 레도르 와도르, 세대와 세대에, to generation and generation)와 병행을 이룬다.

성 경: [시85:6]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우리를 다시 살리사(*, 아타 타슈브 테하예누) - 직역하면 '당신이 돌이키시사'(you will turn), '당신이 우리를 소생시키사'(you will revive)의 뜻이다. 앤더슨(Anderson)은 언급하기를 원문상의 두 동사는 상호 동격적 표현인데 주된 사상은 두데 주된 사상은 두 번째 동사(소생시키시사)에 의해 표출된다고 한다. 따라서 본문은 기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각한 역경과 침체의 상황 가운데서 생명으로 소생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이다.

성 경: [시85:7]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주의 인자하심 - '인자하심'(*, 헤세드)은 '하사드'(*,인사하다. 친절하다.친절하다, 자비를 베풀다)에서 유래된 말로 '친절함, '자비', '인자함'등의 뜻을 갖는다. 특히 구약 성경에서 이는 자기 백성과의 언약에 신실하사 끝까지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크고 불변하는는 하나님의 크고 불변하는 사랑을 뜻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창 19:19;출 34:6;대하 7:3;렘 31:3 등).

⭕ 구원(*, 예솨) - 이는 '야솨'(*, 열려 있다,넓 다, 해방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구원', '해방' 등을 뜻한다. 이는 신학적 또는 비신학적인 용어로도 쓰이는데(창 47:25; 수 6:25; 삼상 23:5), 흔히 성경에서는 신학적 용어로 많이 쓰여지며,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대적 또는 역경으로부터 구출하신다는 뜻으로 쓰여진다.

성 경: [시85:8]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대저...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키 예다베르 솰롬) -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가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for he will speak peace,KJV, RSV)이다. 이것은 원인절로서 전문(前文)에서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한 데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화평을 말씀하신다는 것은 곧 현재의 모든 억압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신다는 말이다. 성경은 이런 점에서 구원의 복음을 '평화를 공포하는 것'(사 52:7), '화평의 복음'(행 10:36)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 망령된(*, 케실라). - 이는 '카살'(*, 살지다, 어리석다)에서 유래된 말로 '어리석음'(folly, KJV,NIV)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영적인 몽매함 가운데 하나님을 떠나 죄악된 길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시85:9]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그의 구원이...가까우니 - 하나님의 구원이 곧 임하여진다는 뜻을 암시하는 표현이다(사 46:13;51:5;56:1;마 3:2).

⭕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 혹자는 본문의 '영광'을 8절의 '화평'과 동등한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Kissane).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임재(Anderson), 또는 하나님의 신성한 은혜의 외적표현(또는 결과, Alexander)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 땅'이란 1절의 '주의 땅'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저자가 이를 '우리 땅'이라 한 것은 그곳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이다(출 6:8). 결국 본문은 하나님이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사 시시 때때로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롭게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나타낸다.

성 경: [시85:10]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 '긍휼'(*, 헤세드)이란 7절의 '인자하심'과 같은말이다. 그리고 '진리'(*,에메트)란 '아만'(*,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안정성', '확실함', '진실' 등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이는 언약이나 기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뜻하는 말로서 앞의 '긍휼'과 함께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Alexander, Anderson, Tate, VanGemeren). 그러나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함, 즉 하나님의 '긍휼'에 반응하는 것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진실함으로 보기도 한다(Kissane). 이중에서 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실된 반응을 보이는 것, 즉 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은 이들 두 하나님의 속성이 그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보내진 사자(종)들처럼 서로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하고 복되게 살도록 그 땅을 복스럽게 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테이트(Tate)는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긍휼, 진리, 의와 화평은 그 땅 가나안 땅)에 선함과 풍요로움올 공급해 주시는 여호와의 사역의 살아있는 대리인들로서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 일반적 으로 많은 사람들은 '의'와 '화평'을 전문(前文)의 '궁휼'과 '진리'처럼 하나님의 속성 또는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로 본다(Alexander,Anderson,VanGemeren,Tate). 그러나 혹자는 전문과 같은 경우로 '의'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적 삶)이며, '화평'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으로 보기도 한다(Kissane). 만약 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음으로써 화평하고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내리시고 이 땅에 의와 화평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축복을 조성하신다는 뜻을 함축한다 하겠다.

성 경: [시85:11]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진리는 땅에서... 하감하였도다 - 혹자는 이를 10절의 경우와 같이 이 땅의 인생들이 진리대로 살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공의의 뜻에 따라 구원하시는 은총을 내려주신다는 뜻으로 본다(Kissane,Davies,Cohen). 그러나 본문은 10절의 반복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도우심이 조화롭게 임하심을 암시한다는 뜻으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Alexander,Anderson,Tate).

성 경: [시85:12]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여호와께서...산물을 내리로다 - 이는 10,11절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긍휼, 진리, 의, 화평 등을 주심으로 그 결과 가나안 땅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된다는 뜻이다. 혹자는 '좋은 것'을 비(Dahood) 혹은 땅의 산물 등으로 보기도 하나, 그보다는 인생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일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긍휼, 진리, 의, 화평 등)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겠다.

성 경: [시85:13]

주제1: [이스라엘에 임한 온전한 구원]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간구와 소망]

⭕ 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삼으리로다 - '행하며'(*, 할라크)란 '걷다' ,'가다'의 뜻을 나타내는 강한 시적인 표현이라 한다(Alexander). 이로 볼 때 본문은 '의가 여호와 앞에 간다'는 극히 시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이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어 함께하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의 상태를 의롭게 변화시키신다는 의미인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바 불의 가운데는 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 - 혹자는 본문의 '삼으리로다'에 해당하는 '야셈'(*)이 '솰롬(*)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해석하여 '화평'(10절)이 여호와(의 행적)를 뒤따라갈 것이라는 의미로 본다(Anderson). 그런가 하면 의가 주께서 가야 할 길을 준비하리라는 뜻으로도 이해한다(Righteousness ...prepares the way for his steps,NIV). 우리는 전반절의 주해의 연장선상에서 본문을 '(의가) 우리로 하여금 주의 행적을 따르도록 해준다'(shall set us in the way of his steps,NIV)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고자 한다.

성 경: [시86:1]

주제1: [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 중의 부르짖음]

⭕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키 아니 웨에비온 아니)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은 본절 맨 후반부에 언급되는 말로서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곤고하고 궁핍하기 때문이다'(for I am poor and needy, KJV, RSV)이다. 본 시편 기자가 직면한 구체적인 위기 상황이 무엇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이 고백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낮추고 있다( VanGemeren ). 또한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고난 당하는 신실한 자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표현이기도하다(35:10; 37:14; 40:17; 70:5; 10 9:16, 22). 한편 '곤고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니'(*)는 '아나'(*, 억압하다, 낮추다)에서 유래된 말로 '억압받는', '고통받는'등의 뜻이며, 본문에서는 크게 침체되고 압박받는 상태를 암시한다. 또한 '궁핍하오니'(*, 에브온)는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된 것을 나타내는 말이나(112:9; 113:7; 132:15; 신 15:7; 삼상 2:8), 본문에서는 비천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 귀를 기울여 - 기도나 간구를 들어주십사 하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공식적(公式的) 표현이다(71:2; 88:2; 102:2; 왕하 19:16; 사 37:17; 단 9:18).

성 경: [시86:2]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나는 경건하오니(*, 키 하시드 아니) - 직역하면 '왜냐하면 나는 경건하기 때문이다'(for I am godly, RSV)의 뜻으로서 후문의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라는 말의 원인절 역할을 한다. 여기서 '경건하오니'(*, 하시드)는 85:7의 '인자하심'(*, 헤세드)의 어원과 같은 '하사드'(*, 인사하다, 친절하다, 자비를 베풀다)에서 유래된 말로 근본 의미는 '인자한'의 뜻이나 이에서 '경건한', '선한' 등의 의미가 유출되었다. 아마 이런 점에서 볼 때 경건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함으로 그 자비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경건함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쏨에 그만큼 순종하겠다는 뜻까지 함축하는 듯하다.

⭕ 의지하는 - 78:2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시86:3]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주(*, 아도나이) - '아돈'(*, 주인. 주권자, 소유자)의 강세형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노예의 주인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여지기도 하나(창 45:8; 룻 2: 13), 대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69:6; 73:28; 창 15:2; 신 3:24; 수 7:7; 사 7:7). 히브리인들은 '여호와'라는 칭호를 부르는 것을 두렵고 송구스럽게 여겨 이 말로 대신 불렀다 한다.

⭕ 긍휼히 여기소서(*, 하난) - 이는 원래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몸을 굽히다' 등의 뜻인데, 본문에서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땅의 낮은 인간에게 호의와 자비를 베푸신다는 뜻으로서 그분의 크신 사랑을 잘 나타내 준다.

성 경: [시86:4]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주여...우러러 보오니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은 본절 하반부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 서두에는 1, 2, 3절에서처럼 원인 블변사 '키'(*, 왜냐하면, KJV, RSV)가 언급되어 전문(前文)의 기도에 대한 원인절 역할을 한다. 이와같은 사실은 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되 그에 합당한 근거를 응답 요인으로 제시함으로써 응답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보다 효과적인 기도의 패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성 경: [시86:5]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주는 선하사...후하심이니이다 - 본문에서 '선하사'와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인자하심이 후하심'등은 모두 등위 접속사 '와우'(*)에 의해 연결되는 말로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자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속성을 고백함으로, 거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사유하기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살라흐'(*)는 성경에 여기 단 한 곳에만 나오는 형용사이다(hapax legomenon). 그러나 동사 형태로는 103:3 등에도 언급되며, 그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시다.

성 경: [시86:6]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귀를 기울이시고(*, 이잔) - 이는 1절의 '귀'(*, 오젠)와 같은 어원으로서 역시 하나님께서 기도나 간구를 들어주십사 하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17:1; 55:1; 80:1; 140:6; 141:1).

⭕ 간구(*, 타하눈). - 이는 3절의 '긍휼히 여기소서'(*, 하난)란 말에서 유래된 말로 '간청', '탄원'을 의미하는데, 특히 호의를 구하는 탄원(Anderson) 또는 기도(Alexander)를 암시한다. 본문에서 기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거하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응답을 받으려 하고 있다.

성 경: [시86:7]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고난중의 부르짖음]

⭕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에는 본 시의 다른 많은 구절에서처럼(1, 2, 3, 4절) 그 서두에 원인 불변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이 역시 본문이 전문(前文)의 기도의 원인 역할을 해주는 구절이 됨을 암시한다. 즉 저자는 다른 구절에서처럼 어떤 원인에 근거하여 기도함으로 확실한 응답올 얻으려 하고 있는데,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시리라고 하는 강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성 경: [시86:8]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신들 중에...없사오며 - 여기서 '신들'(*, 엘로힘)이란 80:4의 '하나님'이란 말과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섬기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지 않는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이방인들의 우상 신들(Davies) 또는 그보다는 여호와를 섬기는 하늘의 영적 존재들, 즉 천사들을 의미할 수 있다고 한다(Anderson).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자를 더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Calvin, Clarke, Rawlinson), 저자는 여기에서 다른 어떤 이방 우상 신과도 견줄 수조차 없이 뛰어나신 하나님의 탁월성, 전능성을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다.

성 경: [시86:9]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 - '열방'에 대해서는 79:1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은 한편로는 이 새상의 모든 이방 족속들이 하나님의 창조된 자들인 바 주께 돌아와 그분을 섬겨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칼빈(Calvin)이 암시한 것처럼 장차 이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을 경배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당시 저자의 시대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하나님께 돌아와 경배하는 어느 한 날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듯하다(Alexander). 실제로 다윗의 다른 시편들에서도 이방인들의 회개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모티브가 흔히 등장한다는 점에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22:27이하).

성 경: [시86:10]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대저 주는...행하시오니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의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가돌...웨아세 니플라오트)란 전문(前文)과 후문(後文)이 종속 관계가 아닌 동등 관계로서 등위 접속사 '그리고'(and, KJV, RSV)에 의해 연결되어진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광대하시고 기사를 행하시기 때문에'라는 말이 된다. 이는 본절 후문의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말이라 하고다. 한편, '기사'(*, 니플라오트)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지칭하는 용어로 종종 쓰인다(78:4, 11, 32, Kidner).

성 경: [시86:11]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나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 '경외하게'란 히브리어로 '야레'(*)로서 기본 의미는 '두려워하다'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단순히 공포를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 영화로우심, 거룩하심에 대해 공경(경배)의 마음과 함께 두려움을 갖는 것, 즉 경외심을 갖는 것을 나타낸다.

성 경: [시86:12]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전심으로(* 베칼 레바비) - '모든 마음으로'(with all my heart, KJV, NIV)으로서 곧 '온전히 신실함으로'(119:2; 신 6:5; 10:12, Anderson) 또는 '전인격을 다하여'라는 뜻을 함축한다.

성 경: [시86:13]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주의 권능 찬양]

⭕ 이는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가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12절에 대한 원인절 역할을 한다.

⭕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 - 혹자는 '향하신'(*, 알)을 '...위에'라는 뜻으로 보며, 위에서 내려온다는 뜻을 암시한다고 한다(Alexander). 이럴 때 본문은 하늘의 높으신 하나님께서 땅의 낮은 인생에게 크신 인자를 부여해 주셨다는 뜻을 나타낸다.

⭕ 내 영혼을...건지셨음이니이다 - '음부'(*, 쉐올)란 그 의미가 불분명하나,히브리인들은 이를 죽은 자들이 가는 사후(死後)세계로서 지하에 있다고 믿었다(31:17; 창37:35; 민 16:30 , 33; 사 38:10; 겔 31:17). 그들은 이 온 우주가 하늘과 땅, 땅 아래로 구성되었다고 믿었는데 그중 음부가 이 땅 아래 세계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음부는 지하 깊은 곳에 있으며(사 57:9; 암 9:2), 흑암한 곳이며(143:3; 애 3:6), 잊음(망각)의 땅(88:12)으로 알려졌다(삼상 2:1-10 강해, '히브리인들의 음부(陰府) 개념' 참조). 이런 점에서 이는 '땅 깊은 곳'(63:9)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했다. 본문의 '깊은 음부'(the lowest hell, KJV) 또는 '음부의 깊은 곳'(the depths of Sheol, RSV)이라는 말도 음부가 지하 세계, 땅속 깊은 곳에 있음을 암시하는 뜻으로 쓰여진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음부는 흔히 높은 하늘과 대조된 곳으로 표현된다(139:8; 욥 11:8; 사 7:11; 암 9:2).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음부'란 산자의 세계와 하나님으로부터의 온전한 분리를 암시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Barth).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본문은 영혼을 죽음의 음지에서 건지셨다는 상징적인 뜻으로서 곧 영혼을 마치 사망과도 같은 암울하고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 건지셨음을 나타낸 말이다.

성 경: [시86:14]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위협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 강포한 자(*, 아리침) - 이는 '아라츠'(*, 두려운 마음을 일게 하다, 괴롭히다)에서 유래된 말로 '두렵게 하는 자', '맹렬하고 사납게 달려드는 자'(Calvin)를 뜻한다.

성 경: [시86:15]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위협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 주는(*, 아타) - 직역하면 '당신은'(thou, KJV, RSV)인데 전문(前文)의 '주' (*, 아도나이)를 지칭하는 2인칭 대명사로서 강조적 용범으로 쓰인 듯하다.

⭕ 긍휼히 여기시며(*, 라훔) - 이는 원어상 3절의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말과 다르며. '라함'(*, 귀여워하다, 사랑하다, 측은히 여기다)에서 유래된 말로 '인정 많은', '자비로운' 등의 뜻을 갖는다. 이는 부모나 형이 자식이나 동생 등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나 연민과 같은 뜻을 함축한다. 이와 같은 것은 이어지는 내용과 함께 하나님의 속성들을 잘 나타낸다.

⭕ 은혜를 베푸시며(*, 하눈) - 이는 3절의 '긍휼히 여기소서'(*, 하난)에서 유래되었으며 '은혜로운', '자비로운', '친절한' 등의 다양한 뜻을 갖는다.

⭕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 인간의 죄나 불의에 대해(곧바로 진노하시지 않고) 진노를 오래 참으시는 속성을 가리킨다(롬 2:4). 인자 - 85:7 주석을 참조하라.

⭕ 진실 - 85:10의 '진리'와 같은 말이다(85:10 주석 참조).

성 경: [시86:16]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위협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 내게로 돌이키사 - '돌이키사'(*, 파나)란 '향하다', '대면하다" 등의 뜻으로서, 이는 단순히 방향 전환의 뜻만이 아니라 얼굴을 그 방향으로 돌이키는 뜻을 함축하는 말이다(Alexander). 따라서 본문은 80:3, 7, 19등에 암시된 바와 같이 '은혜, 호의, 도움 등을 베푸소서'라는 의미이다.

⭕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3절 주석 참조.

⭕ 주의 여종의 아들 - 이는 한편으로 다윗이 하나님께 헌신된 어머니에게서 난 자라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으나. 주된 뜻은 다윗이 상속적으로 하나님의 종된 자임읕 나타내는 표현이다. 고대 히브리인의 율법에서는 상전이 그의 종된 자에게 아내를 주어 자식이 태어날 경우, 그 아내와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하여 계속 종된 상태로 거하였다(출 21:4; 23:12). 따라서 여기서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86:17]

주제1: [고난중에 드리는 기도]

주제2: [위협으로부터의 구원 호소]

⭕ 은총의 표증을 내게 보이소서 - 여기서 '은총'이란 흔히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 헨, 창 47:25; 왕상 8:23), '자비'(*, 헤세드, 창 32:10; 삼하 9:1) 등을 뜻하지 않고, 히브리어로 '토브(*)로서 '좋은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등의 의미이다(창 1:31). 혹자는 이것이 물질적인 번영, 안녕, 행복 등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Alexander). 아무튼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저자에게 내리시는 그 원수들이 보고 놀랄 만큼 크고 좋은 그 어떤 호의로운 것을 암시한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은총의 표증'이란 실질적인 구출을 뜻한다고 하여 저자가 열악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Anderson).

성 경: [시87:1]

⭕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 기지란 히브리어로 예수다 (*)로서 기초( foundation. KJV. NIV)를 뜻한다. 혹자는 이를 하나님이 세우신 어떤 것 곧 그분의 성소와 신정(神政) 왕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Alexander). 그러나 이보다는 예루살렘을 암시하는 것 같으며, 저자가 그의 마음속에 예루살렘에 건설된 하나님의 성전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Anderson, Clarke). 나아가 본시의 전체적인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질 교회를 암시한다 하겠다. 그리고 성산 (*, 베하르레 코데쉬)이란 직역하면 거룩함의 산(또는 언덕)들 이라는 복수이다. 이로 볼 때 본문은 예루살렘의 여러 산들 위에 위치하였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에 대해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예루살렘이 시온과 모리아의 산들(또는 언덕들)위에 세워졌다고 언급한다.

성 경: [시87:2]

⭕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 야곱이란 유기체적 민족 집단, 즉 열두 지파로 구성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다(78:5,21). 이로 볼 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의 모든 거주지들보다 라는 뜻을 암시한다.

⭕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 성읍의 남동부 지역의 조그마한 구릉인데,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성읍을 대표하여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78:68). 따라서 시온의 문들 이란 곧 예루살렘 성읍의 문들을 대표적으로 나타내거나 또는 동일한 뜻의 표현이다. 그런데 (성읍의) 문이란 고대 히브리인들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법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재판하는 곳인 바(69:12;룻4:1-6). 당시 성읍의 사회,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곧 모든 성읍을 대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122:2,Anderson). 이런 점에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거주지들보다 예루살렘 성읍을 더욱 사랑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다른 곳보다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심은 이곳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최초로 안치된 곳이며(삼하 6:12-19), 이후 성읍에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어(왕상 6장)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시87:3]

⭕ 하나님의 성이여 - 예루살렘 성읍이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성이기 때문에 불리워진 이름이다. 하나님은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 위, 속죄소 위에 임재하시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통치하시고 그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셨다(출 25:18-22; 왕상 8:13, 29).

⭕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 영광스럽다 (*, 카바드)란 무겁다, 풍부하다, 찬란하다, 영화롭다 등의 다양한 뜻을 갖는다. 이는 성경에서 특히 하나님과 연관되어 언급될 때에는 하나님의 내적인 아름다움이 외적으로 표현된 현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출 33:17-23;겔 1:28). 이는 또한 하나님의 내적인 아름다움에 근거한 호의를 외적으로 베푸시는 현상 또는 그 결과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84:11). 이런 점에서 본문은 그 의미가 명백하다 하겠다. 즉,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에 임재 거주하시는 바 그 아름다우신 영광이 외적으로 표현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아름다우심을 호의로 나타내 부여하신 결과, 그 성읍 또한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는 현재의 상태뿐만 미래의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저자에 의해 선지자적인 약속 또는 예언으로 언급되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Alexander, Anderson).

성 경: [시87:4]

⭕ 라합 - 이는 오만 또는 맹렬함 (폭풍우)이란 뜻으로서 바다 속의 불분명한 괴물체를 가리키는 듯하며(욥 9:13;26:12; 사 51:9), 본문에서는 애굽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쓰인 것 같다(89:10; 사 30:7). 이들이 후문(後文)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하나을 아는 중에 있다는 것은 곧 구원받는다는 뜻으로서,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한 구원을 예언한 것인 듯하다.

⭕ 바벨론 - 니므롯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왕국으로서 한때 고대 근동 지방을 제패하였으며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자들이다(창 10:8-10; 왕하 25:1-7).

⭕ 나를 아는 자 - 단순히 일반적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영적 각성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섭리를 깨달아 구원받은 자를 암시한다(요 17:3).

⭕ 블레셋 - 함의 후손으로서 가나안 땅 남서부 지중해 연안에 살았다(87:3; 창 10:13, 14).

⭕ 두로 - 가나안 땅 북서부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던 자들이다(83:7).

⭕ 구스 - 함의 후예로서 애굽의 남방 땅에 거하는 에디오피아인들을 가리키는 듯하다(6 8:31; 창 10:6-9).

⭕ 이도 거기서 났다 - 이는 위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 예루살렘 성에서 났다는 뜻으로서 이들이 예루살렘 시민임을 암시하며(Anderson), 이는 곧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자녀들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구원에로 인도함받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천상의 예루살렘을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다(갈 4:26)

성 경: [시87:5]

⭕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 지존자에 대해서는 78:17,35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은 절대적인 권위와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시온을 세우리라는 뜻으로서 곧 하나님께서 그곳 시온 백성들을 돌보시며 나아가서 3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영광스럽게 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특히 본절에서 시인을 시온을 신실한 자들의 모성(母城)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 성은 지상의 시온을 넘어 성도들의 궁극적 처소가 되는 하나님의 도성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사 49:20,21;54:1,2;65:18-24; 슥 8:2-13; 갈 4:26 등 참조). 그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6절 ;69:28; 출 32:32; 단 12:1; 말 3:16,VanGemeren).

성 경: [시87:6]

⭕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 등록하실 (*, 카타브)이란 문자적으로는 새기다, 기록하다란 뜻으로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 즉 구원받은 이방 족속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계수, 기록하시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출 30:11-16)

성 경: [시87:7]

⭕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 - 혹자는 춤추는 자 (*,홀렐림)를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the players on instruments, KJV)로 보기도 한다(Calvin). 아무튼 여기서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들로 여겨진다(68:25;149 :3; 출 15:20; 삼하 6:16).

⭕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 근원 (*, 마얀)이란 문자적으로는 샘, 원천이란 뜻이다. 본문은 이방 족속들이 시온으로부터 비롯된 구원에 동참하게 된 것을 뜻함과 아울러 그에 따르는 기쁨과 행복 등의 의미도 함축하는 것 같다.

성 경: [시87:8]

⭕ 엄위하시오며...두려워할 자시니이다 - 엄위하시오며의 기본어는 아라츠 (*)로서 두렵게 하다, 떨게 하다 의 뜻이다. 이는 후문의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라는 말과 함께 거룩하고 높으신 하나님,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분이시며 나아가 경외를 받으실 분이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6절에서 언급한 전능하신 하나님에 이어 두렵과 경외받으실 하나님을 선포하는 말로서 그분이야말로 유일한 찬양의 대상이 되심을 암시한다.

성 경: [시88:1]

⭕ 내 구원의 하나님 -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사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언약적 호칭이다(85:4). 저자가 서두에서 하나님께 이와 같은 호칭으로 부르짖는 것은 그가 처한 깊은 어려움과 비통함을 엿보게 해주며, 아울러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잘 나타내 준다. 한편, 영역본 RSV는 본문을 후문과 연관시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 도움을 요청하나이다(my God, I call for help by day)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문을 내가 당신 앞에서 밤에도 부르짖나이다(I cry out in night before thee)라고 개역하여, 전문과 이 후문이 상호 병행 구절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NEB도 이와 유사하게 번역한다. 그러나 이는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아마 저자는 맛소라 사본 그대로 본문에서는 구원의 근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짖음으로 구원의 빛을 갈망하는 내용으로 본시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 내가 주야로...부르짖었사오니(*, 욤차크티 발릴라 네그데카). - 이를 맛소라 사본 그대로 직역하면 낮에 내가 부르짖고, 밤에 당신앞에(있나이다)이다. 일부 영역본(RSV, NEB)은 앞에서 본 것처럼 본문을 개역하여 전·후문이 상호 병행 구절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기도 한다. 어떻게 번역하든지 간에 본문은 저자가 그를 구원하실 하나님께 대하여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간절히 부르짖는 것을 나타낸다(느 1:6; 눅 18:7; 딤후 1:3). 그는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으로 인해 끊임없이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88:2]

⭕ 나의 기도로...달하게 하시며 - 달하게 (*, 보)란 오다(또는 가다)의 뜻이며, 본문은 저자의 간구가 하나님의 관심을 끌게 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반절은 마치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기 위해 몸을 굽히시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청취해 주십사 하는 소원을 피력한다(Alex- ander).

성 경: [시88:3]

⭕ 대저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 (*, 왜냐하면; For, KJV, RSV)가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기자는 본절(이하)의 원인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 영혼 (*, 네페쉬)이란 저자 자신의 자아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84:2). 또한 곤란 이란 히브리어로 라 (*)로서 악(한) (신 19:15, 19; 왕상 16:7,19,25), 해(로운) (23:4;35:26; 전 2:21)등의 뜻인데, 특히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악을 끼치는 것을 암시한다. 이로 볼 때 본문은 저자의 자아 곧 존재 자체가 큰 파멸에 처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졌음을 나타낸다.

⭕ 나의 생명은...가까왔사오니 - 음부란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한다(86:13). 이런 연유로 볼 때 기자는 자신에게 닥친 곤경으로 인해 거의 죽을 지경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시88:4]

⭕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 여기서 무덤 이란 히브리어로 보르 (*)로서 구덩이 (창 37:20,22,24; 출 21:33,34) 또는 웅덩이 (레 11:36)를 뜻하며 5절에서와 같이 흔히 말하는 무덤 (*, 케베르, 민 19:16; 겔 37:12)과는 어휘적으로 다르다. 이는 사 14:15에서는 음부와 같은 뜻으로 쓰였고, 30:3; 잠 1:12 등에서는 음부의 병행구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도 역시 지하 세계로서의 음부와 같은 의미로 묘사되었거나 아니면 음부로 내려가는 입구의 뜻으로 사용되어졌을 수도 있다(Anderson).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전문과 병행 구절로서 특히 생명력을 상실한 자 곧 죽은 자와 방불하다는 뜻이다.

성 경: [시88:5]

⭕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바메팀 하페쉬). - 직역하면 사망자들 가운데 자유로운 (Free among the dead, KJV)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 하페쉬)이란 흔히 구약 율법에서 종이 6년 동안 주인을 섬기다가 7년째에는 자유롭게 된다는 뜻의 말로 사용되었다(출 21:2,5). 그러나 이는 어떤 고통이나 근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귀하고 가치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뜻도 나타낸다고 한다(Anderson). 이런 점에서 볼 때 본문은 죽은 자들 가운데 방치되어 살아 있었을 때 누리던 어떤 축복, 은총등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성 경: [시88:6]

⭕ 깊은 웅덩이...두셨사오며 - 깊은 웅덩이나 어두운 곳, 음침한데란 3절의 음부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다. 음부를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은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곳이 땅 깊은 지하 세계에 있으며(86:13), 햇빛이 통하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88:12;143:3; 욥 10:21,22; 애 3:6). 한편 본문의 음침한데 (*, 비므촐로트)란 명사로서 깊은 데 (in the deeps, KJV)를 뜻하며, 바다의 깊은 데를 암시하는 것 같다(출 15:5, Anderson).

성 경: [시88:7]

⭕ 주의 모든 파도로...하셨나이다 - 여기서 파도란 하나님의 분노 또는 그 분노로 인한 시련을 상징하는 비유적인 말이며, 어원학적으로 산산이 부서지다, 파괴하다는 뜻과 관계 있다. 그리고 괴롭게 하셨나이다 (*, 아나)의 원래 뜻은 누르다(압박하다) , 또는 (압박함으로) 괴롭히다 (overwhelm, NIV, RSV)의 뜻이다. 이 동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은 억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 바 있다(창 15:13; 출 1:12).

성 경: [시88:8]

⭕ 나의 아는 자로...떠나게 하시고 - 나의 아는 자 란 그 기본어가 야다 (*)로서 알다 또는 아는 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피상적으로 아는 자를 말하지 않고 아주 가까운 친구를 뜻한다(Anderson). 성경에서는 친구들이 떠나는 이런 일은 어떤 자가 큰 비통함, 시련을 당한 결과 발생되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31:11;38:11;69:8). 이런 사실은 저자가 커다란 비통함, 어려움을 당한 사실을 엿보게 해준다.

⭕ 나로...하셨사오니 - 가증되게 란 히브리어로 토에바 (*)로서 혐오스러운 (것), 미워하는 (것) 등을 뜻한다(abomination, KJV). 따라서 본문은 시인이 가까운 친구들로부터조차 마치 혐오스러운 물건처럼 기피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음을 뜻한다(욥 4:1-11:8:1-6). 어쩌면 시인은 이스라엘이 애굽 체류시에 애굽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적 암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창 43:32;46:34, Alexander).

⭕ 나는 갇혀서...되었나이다 - 이는 저자가 어떤 환경에 격리된 것(레 13:4, 46) 또는 감옥에 감금된 것(렘 32:2)으로도 생각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여러 가지 환난과 시련 등으로 감싸여 헤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한 듯하다(Calvin).

성 경: [시88:9]

⭕ 곤란으로...쇠하였나이다 - 여기서 곤란(*, 오니)이 란 3절의 곤란과는 달리 아나(*, 누르다, 괴롭히다)에서 유래된 말로서 억압, 괴롭힘, 고통 등을 뜻한다. 그리고 눈 이란 흔히 사람의 마음 또는 몸의 상태의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서(마 6:22), 혹자는 행복과 불행을 나타내는 거울로서 이해하기도 한다(6:7;31:9; 욥17:7, Anderson).이로 볼 때 본문은 저자가 심각한 억압과 고통 등으로 인하여 그의 상태가 심히 피폐해져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3-8절의 상태와 일맥 상통한다.

⭕ 주를 향하여...들었나이다 - 들었나이다 란 기본어가 솨타흐 (*)로서 뻗다, 뻗치다 의 뜻이며, 히브리어 원문상 이 문구는 구약 성경에서 단지 이곳에만 나온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일반적으로 기도의 한 형태로서 손을 드는(*, 솰라흐, 내놓다, 뻗다)것과 같다(Anderson). 흔히 히브리인들은 간절한 기도의 유형으로서 하늘을 향해서(왕상 8:22; 애 2:19), 또는 하나님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향해서(5:7;134:2; 왕상 8:35,38,42) 그 손을 들고 기도했는데 본문도 같은 형태이다. 특히 여기서는 고통의 심저(深低)에서 높으신 하나님께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2절).

성 경: [시88:10]

⭕ 주께서...보이시겠나이까 - 본절로부터 12절까지의 내용은 질문 형식을 띠기는 하지만 차라리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간구로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이 곧 죽을 것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 기자를 구원하시지 않을 경우, 기자는 죽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 후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유혼이...찬송하리이까 - 유혼(*, 레파임)이란 그 어원이 불분명하다, 혹자는 가라앉다, 풀어지다 에서 유래된 말로 그 명사는 가라앉은 힘없는 존재를 뜻하는 것으로 보고(BOB), 또 다른 사람은 고치다, 연합되다에서 유래된 말로 지하 세계에 존재하는 거대한 집단으로서의 죽은 자들을 암시한다고 한다(R. C. Driver). 또 아무튼 그 어원이 어쨌든 본문에서는 문맥적으로 볼 때 음부에 사는 자들을 뜻한다. 한편, 이 말은 성경에서 가나안이 옛 종족 중 한 족속(르바 족속)을 가리키는 말과 같다(창 14:5;15:20; 신 3:11; 수 12:4).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유혼은 가나안의 한 거인 족속의 이름인데, 이는 시적으로 죽은 자들의 거대한 무덤 또는 영혼들을 암시한다고 보기도 한다.

성 경: [시88:11]

⭕ 주의 인자하심을...있으리이까 -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또는 그 속성들을 살아 생전에 증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로서 곧 저자로 하여금 소생, 회복할 수 있도록 구원해 달라는 간구의 뜻을 암시한다. 본문의 성실하심 이란 그 기본어가 에무나 (*)로서 아만 (*, 세우다, 신실하게 하다, 신뢰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확고함, 신실함, 진실함 등을 뜻한다. 한편 아만은 85:10,11의 진리의 어원이기도 하다.

성 경: [시88:12]

⭕ 흑암 중에서...알 수 있으리이까 - 사람이 죽어서 가는 음부에서는 하나님과 단절된 곳으로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위를 경험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사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여기에는 11절의 의미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할 때 하나님의 역사와 의로우신 행위를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한편, 흑암 중 이나 잊음의 땅 이란 음부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인데 이는 음부의 특성 즉 그곳이 어두운 곳이며(욥 10:21,22;29:3), 그곳에 사는 자들이 곧 잊어버림을 당하고 그들 자신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31:12; 전9:5) 히브리인들의 사상에 기인된 것이다.

성 경: [시88:13]

어휘 면에서는 다르다. 그러나 그 의미 면에서는 앞서다, 앞에 오다(가다)의 뜻으로서 어떤 사람 앞에 나아오게 하는 것을 암시하는 말로서(Alexander) 유사하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침 일찍부터 정성을 모아 드리는 기로를 더욱 귀하게 여기사 잘 응답하여 주신다는 생각에 기인한 고백으로 보인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내용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5:3;17:15;46:5;9: 14;143:8). 혹자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의 기도 습성처럼 아침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 즉 아침에 (1) 태양이 떠오름, (2) 어두움이 빛으로 변화됨, (3) 공의가 실행되어짐(삼하 15:2), (4) 새벽여명에 큰 구원을 경험함(출 14:30; 사 37:36)등에 의해 영향받은 것이라고 한다(J.Ziegler). 아침(또는 새벽)은 밤에 잠을 자고, 안식하고 난 후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처음 시간이라는 점에서 귀한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성 경: [시88:14]

⭕ 여호와여...버리시며 - 버리시며 (*, 자나흐)란 밀어 젖히다, 거절하다의 뜻을 함축하는 말로서 단순히 지나쳐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 즉 거절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더(Alexander)는 혐오감으로 거절하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여기서 그 원인릉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비탄과 고난, 슬픔 가운데 방치하사 보살피지 않으심을 탄원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저자가 자신의 구원을 강력히 청원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혼 (*, 네페쉬)이란 저자 자신의 전 인격과 존재를 대변하는 의미에서 언급되어진 말로 볼 수 있다(84:2).

⭕ 주의 얼굴을...숨기시나이까 - 흔히 성경에서 하나님이 얼굴을 향하신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그분의 은혜, 도우심, 호의, 구원, 능력 등을 부여해 주심을(27:9;31:16;42: 5;105:4; 대상 16:11; 대하 6:42), 부정적으로는 그 분의 공의, 분노 등을(34:16;51:9 ;90:8; 벧전 3:12) 암시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의미는 전자를 뜻한다. 기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사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심을 탄원하고 있다.

성 경: [시88:15]

⭕ 소시부터(*, 미노아르) - 이는 젊었을 때부터, 어렸을 때부터의 뜻이다. 아마 기자는 젊었을 때 이후부터 오랜 세월 동안 비탄과 고통 가운데 지내왔던 것 같다. 기자가 어렸을 때부터 압박으로 인한 고통을 당한 상황이라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도가 그만큼 더욱 간절하였음은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혹자는 본문이 저자 개인에게 적용되는 말일 수 있으며 또는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호 11:1)에게 적용되는 말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Alexander).

⭕ 곤란을 당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어는 아니 (*)로서 아나 (*, 누르다, 괴롭히다)에서 유래된 말로 억압받는, 고통받는의 뜻이다(9절).

⭕ 황망하였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 기본어가 푼 (*)으로서

성 경: [시88:16]

⭕ 주의 진노(*, 하로네카) - 이는 당신의 진노들 이라는 복수적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강조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VanGem- eren, Anderson). 특히 진노에 해당하는 하론 (*)의 근본 뜻은 열, 타오름 이며, 이에서 격렬함, 분노, 진노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이것은 78:21에서 하나님의 노를 불 (*, 에쉬)로서 표현한 것과 유사한 묘사이며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 12:29)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공의, 질투의 불을 발하시며 심판하시고 태우신다는 뜻을 나타낸다.

성 경: [시88:17]

⭕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 이는 16절과 연관시켜볼 때 7절과 유사한 표현이며, 거대한 양의 물이 넘쳐 흐를 때 모든 존재를 덮치며 휩쓸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의 막강한 파괴력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창 7:10-8:13). 그리고 성경에서는 종종 물의 이런 특성상 이 물이 사람(의 영혼)을 사망케 하는 존재 또는 곤란하게 하고 압박하는 존재로서 비유적으로 종종 묘사되고 있다(18:4;32:6;69:1,2,1 4,15;90:5).

성 경: [시88:18]

⭕ 주께서...떠나게 하시며 - 이는 8절 전반절을 반복하는 내용으로 보인다(Anderson,Al exander). 다시 말하면 현재 고난과 비통함을 당하는 저자에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마저 떠나 그를 위로하는 자가 없게 되었고 그 결과 그 자신이 더욱 처량하고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나의 아는 자를...두셨나이다(*, 메유디아 마호솨크) -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나의 아는 자를(는) 흑암(에) 라는 뜻이다. 이는 본시 중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를 나의 아는 자가 흑암 중에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은 나의 아는 자가 흑암, 즉 음부라는 뜻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주석가 알렌(Allen)은 어두움이 나의 남아있는 한 동료이다 (Darkness is my one companion left)라고 번역할 수 있다고 하며 후자를 지지한다. 영역본 중에서 KJV는 가능한 원문 그대로 번역하려 하여 나의 아는 자가 흑암 속으로 (mine acquaintance into darkness)로 했으나, NIV는 어두움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the darkness in my closest friend)로 옮겨 후자를, 그리고 RSV는 나의 동료들이 어두움 속에 있다 (my companions are in dark ness)로 번역하여 전자를 각각 지지하고 있다. 만약 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은 저자의 아는 자들이 흑암 중에 사라져가고 혈혈 단신으로 겪게 되는 가중된 고통과 외로움을 강조하는 의미가 되며, 후자를 취할 경우는 자신이 처한 암담한 좌절 상태 자체에 주안점을 둔 표현이 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을 취하든 간에, 저자는 그의 막중한 고난의 처지를 언급하면서 한편으로 그 이면에는 구원을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성 경: [시89:1]

⭕ 여호와의 인자하심을...노래하며 - 인자하심의 히브리어 헤세드 (*)는 하사드 (*, 인사하다, 친절하다, 자비를 보이다)에서 유래된 말로 특히 언약적 관계를 맺은 하나님의 사랑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언약적 관계 안에서 다윗에게 보이신 사랑과 자비를 나타낸다. 또한 영원히 (*, 올람)란 부사적 의미로 쓰인 명사이다(Alexander, Anderson).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 적용되어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한 시간을 암시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나(90:2;93:2). 때로는 본문에서처럼 문맥적인 제한을 받아 단순히 살아 있는 동안 또는 긴 인생 등의 의미처럼 긴 시간, 오랜 세월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신 15:17; 왕상 1:31, Anderson). 여기서 저자는 본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오래도록 노래하리라고 고백함으로써 다윗에게 주시리라 약속하셨던 도우심의 은혜를 공급해 주실 것을 은연중 간구하고 있다.

⭕ 주의 성실하심을...알게 하리이다 - 성실하심 (*, 에무나)이란 확고함, 신실함, 진실함 등의 뜻으로서 85:10,11의 진리와 어원을 같이한다. 본 문맥에서는 역시 전문의 인자하심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신 것을 뜻한다. 그리고 대대로는 전문의 영원히란 말고 병행 구절이다(85:5).

성 경: [시89:2]

⭕ 내가 말하기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 (*)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본절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1절) 대한 동기 또는 이유를 설명해 줌을 암시한다(Anderson).

⭕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올람 헤세드 이바네) - 직역하면 인자하심이 영원히 세워지리라 (merey shall be build up forever, Anderson)의 뜻이다.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쉬운 인간과는 달리, 정하신 뜻을 이루기까지 베풀기로 하신 인자(仁慈)를 결단코 망각하거나 거둬들이시지 않는다(Calvin).

⭕ 주의 성실하심을...하시리라 - 맛소라 사본에 의하면 본문의 견고히 하시리라는 타칸 (*)으로서 당신이 세우셨다 (you established)라는 뜻이나, 70인역(LXX)과 심마쿠스역(Symmachus), 벌게이트역(Vulagte)등에 의하면 티콘 (*)으로서 세워지다 (is established) 로 되어 있다. 전자를 취할 경우 본문의 주어는 1절의 여호와를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 당신이가 되나, 후자를 취할 경우에는 주의 성실하심 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하늘에서 견고하게 세워지니라 (또는 주께서 견고케 하시리라)는 뜻으로서 곧 주의 성실하심의 견고함, 확고 부동함을 나타내며 나아가서 이 성실하심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되리라는 저자의 믿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시89:3]

⭕ 나의 택한 자 - 문맥상 다윗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을 대행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Anderson). 이런 점에서 본문은 신정(神政) 왕국의 왕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선택받은 다윗의 특별한 관계, 즉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하겠다(VanGermeren). 실제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택함받은 자로 언급되어지고 있다(행 13:22).

⭕ 언약을 맺으며 - 언약 (*,베리트)이란 그 어원이 불확실하나 정하다, 매다, 자르다의 뜻을 갖는다(신 29:16-26 강해, 언약의 어원적(語源的) 고찰 참조). 이 언약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할 약속으로 체결되어지기도 했으나(창 31:43-55), 본문을 위시해 흔히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이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뜻한다. 본문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가계(家系)에 왕위가 끊이지 않고 후손에 의해 계속 이어지리라 언약하신 것을 가리키며(삼하 7:5-16), 후에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어졌다(눅 1:32,33).

⭕ 내 종 다윗 - 전문(前文)의 나의 택한 자 와 병행 구절이다. 특히 다윗을 종으로 호칭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대리자임을 암시한다. 반게메렌(VanGemeren)은 이와 관련하여 종이란 말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여호와의 대리자가 되는 (다윗의) 특별한 역할을 강조한 말이라 한다.

성 경: [시89:4]

⭕ 네 자손을...견고히 하며 -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하여금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궁극적으로는 후문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다윗의 왕위를 계승케 하시리라는 언약이다(삼하 7:8-16). 이는 영원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어졌다(마 1:1; 눅 1:32, 33).

⭕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 다윗의 왕통이 끊이지 않고 계속 지속될 것을 뜻하는 말로서 궁극적으로 전문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어졌다.

성 경: [시89:5]

⭕ 여호와여...찬양할 것이요 - 본문은 언약에 관련된 3,4절 내용과는 달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로운 전환 국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내용 면에서는 전문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전문의 언약의 하나님을, 그 하나님의 기사(奇事)를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본시의 전체적인 문맥에서 볼 때 이 찬양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적 인자하심을 기억하시기를 염원하는 바램 또는 그것에 대한 확신에 대한 표시이기도 하다. 한편 본문의 기사에 대해서는 (1) 다윗 언약을 맺으심(Ahistron), (2) 가나안에 정착케 하신 일(Kissane) 혹은 (3)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사들(Boy- lan) 등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으나, 우리는 (3)의 견해를 포함하여 창조와 구속 역사 전체에서 드러나 하나님의 권능을 포괄적으로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

⭕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 - 성실에 대해서는 1절 주석을 참조하라. 거룩한 자의 회중 (*, 비케할 케도쉼, the assembly of the holy ones, RSV)이란 전문의 하늘이란 말과 병행구로서(Alexander) 하늘의 영적 존재들(Anderson) 즉 일단의 천사들의 무리들(Rawilinson)을 가리킨다. 본문의 찬양도 다윗에게 베푸신 언약을 기억하시사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 또는 확신의 뜻으로 언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시89:6]

⭕ 궁창에서...비교할 자 누구며 - 궁창 (*, 솨하크)이란 가루로 만들다 의 뜻인 솨하크 (*)에서 유래된 말로 문자적으로는 (부숴진)가루, 티끌 (사 40:15)을 뜻하며, 복수로서 구름 (욥 38:37)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거대한 공간을 암시하는 의미인 궁창, 하늘 (68:34)등의 뜻이 유출되었다. 본문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의문문으로서 감히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한다. 특히 본문에서 궁창을 언급한 것은 하늘의 영적 존재들이 거하는 곳을 나타내는 뜻에서인 듯하다.

⭕ 권능 있는 자(*, 베네 엘림) - 직역하면 신들의 아들들이다. 여기서 신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림 (*)은 엘(*, 하나님, 42:8;52:5: 창 43:14; 삼상 2:3; 삼하 22:31,33)의 복수이다. 이 말은 숫자상의 복수로서 많은 신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의 표현 기법상 엘 (*, 전능자)에 대한 강조적 용법으로 쓰인 장엄 복수이거나 또는 엘 엘림 (*, 신들의 신)의 생략형으로서(단 11:36) 최고의 신, 즉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 따라서 권능 있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들을 가리킨다(욥 38:7).

성 경: [시89:7]

⭕ 엄위하시오며...두려워할 자시니이다 - 엄위하시오며의 기본어는 아라츠 (*)로서 두렵게 하다, 떨게 하다의 뜻이다. 이는 후문의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라는 말과 함께 거룩하고 높으신 하나님,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분이시며 나아가 경외를 받으실 분이심을 나타낸다. 이것은 6절에서 언급한 전능하신 하나님에 이어 두렵고 경외받으실 하나님을 선포하는 말로서 그분이야말로 유일한 찬양의 대상이 되심을 암시한다.

성 경: [시89:8]

⭕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 - 80:4 주석 참조.

⭕ 주와 같이...누구리이까 - 6절과 같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강한 역설적 질문이다.

⭕ 주의 성실하심이...둘렀나이다 -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1,2절).

성 경: [시89:9]

⭕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 6,8절에 암시된 하나님이 전능하심이 바다를 다스리신다는 표현으로서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고대 근동의 우가릿 신화에서 바다는 바알(Baal)의 대적자로서 이 둘은 왕권을 두고 싸웠다 한다. 그러나 바다는 바알에 예속되어 그의 통제하에 있게 되었다 한다(Anderson, VanGemeren, 46:2;74:13). 그런데 기자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신화를 언급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에서 흔히 바다는 거칠게 일어난 대적하는 악한 세력으로 비유되고, 하나님은 이들 세력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24:2;65:5-7 ;104:6-9). 본문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 주권적 통치를 나타내기 위해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칼빈(Calvin)은 본절을 다음의 10절과 연관시켜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로 보기도 한다.

성 경: [시89:10]

⭕ 주께서 라합을...흩으셨나이다 - 라합이란 바다 속에 사는 흉포(凶暴)한 신화적 동물로서 흔히 애굽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는데(87:4), 여기서도 같은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시 애굽 사람들을 홍해 바다에 매몰시키시고 그들의 파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출 14:15-31).

성 경: [시89:11]

⭕ 하늘이 주의 것이요...것이라 - 9,10절에서 적대 세력을 다스리시고 파하신 예를 들어 하나님의 능하심을 언급한 데 이어, 본절에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밝혀 그 분의 위대하심, 능하심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천지란 온 우주를 함축하는 말로 볼 수 있다.

⭕ 세계와...건설하셨나이다 - 세계 (*,테벨)는 땅 (*, 에레츠)이란 말과 시적인 동의어로 쓰이는데, 많은 경우에 전자는 후자보다 더 우주적인(즉 포괄적인) 뜻을 함축한다. 그리고 땅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이 사는 부분(9:8) 또는 경작된 땅(사 14:17)을 암시한다(24:1, Anderson). 알렉산더(Alexander)는 이를 황량하고 비생산적인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경작되도 생산적인 땅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건설하셨나이다 의 기본형은 야사드 (*)는 세우다, 기초를 두다 의 뜻이며, 87:1의 기지의 어원이기다 하다. 혹자는 이것이 창조와 지탱의 뜻을 암시한다고 한다(Alexander).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계와 그중에 충만한 것을 창조하시고 유지되어지도록 붙드신다는 것이다.

성 경: [시89:12]

⭕ 남북을...창조하셨으니 - 남북이란 이 세상의 지정학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서 후문의 요단 강 동서편에 있는 두 산 다볼과 헤르몬 이라는 말과 함께 세상의 동서남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Alexander). 이럴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뜻하는 구절로 이해된다. 그러나 앤더슨(Anderson)이 말한 바, 북은 헤르몬과 동의어이며 남은 지정학적으로 헤르몬의 남쪽에 있는 다볼을 말한다고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취하든 본문은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암시한다.

⭕ 다볼과 헤르몬 - 다볼 산은 갈릴리 호수의 남서쪽 약 20km, 나사렛 남동 약 10 km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약 555m에 이른다. 이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이스라엘 내에서는 갈멜 산(렘 46:18), 헤르몬 산(수 12:1)등과 함께 유명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헤르몬 산은 팔레스틴 북부, 고대 수리아의 안티 레바논(Anti-Lebanon)의 남쪽 산맥에 있는 거대한 산이다. 이는 높이가 약 2,800m인데, 그 정상에는 거의 1년 내내 흰눈이 덮여 있다 한다. 이 산을 아모리 사람들은 스닐, 시돈 사람들은 시룐(3:9)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바알 헤르몬(삿 3:3)이라고도 불리웠다.

성 경: [시89:13]

⭕ 주의 팔에...높으시니이다 -여기서는 팔과 손, 오른손 이라는 말을 빌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서로 다른 묘사로 표현한 구절이다(10절, Anderson).

성 경: [시89:14]

바름, 깨끗하고 의로움을 뜻한다. 그리고 공의란 히브리어로 미쉬파트 (*)로서 문자적으로는 (법적으로 선언된) 판결, 언도, 법 등을 뜻한다. 이런 본문의 보좌가 통치자로서의 위치, 권위 등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바, 의와 공의가 하나님의 통치의 기본 원칙이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는 어떤 불의나 죄악의 모습이 전혀 상상 되어질 수 없음을 암시해 준다(97:2; 잠 16:12).

⭕ 인자함과 진실함이...행하나이다 - 인자함에 대해서는 85:7 주석을 참조하라.

⭕ 진실함(*, 에메트)은 85:10의 진리와 같다(86:15). 이 두 말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같이 언급되어진다(25:10;40:10, 11;57:3;61:7;115:1;138:2). 그리고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 예카드무 파네카)란 직역하면 당신의 얼굴에 앞서다 또는 당신의 얼굴 앞에 가다 (go before thy face, KJV)의 뜻이다. 인자함과 진실함이 하나님을 수종하는 천사들처럼(Anderson) 또는 하나님께서 거느리시는 종과 같이(Calvin) 하나님이 가시고자 하는 방향 앞으로 먼저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곧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인자함과 진실함 가운데 행하신다는 뜻으로서 그분의 은혜로우신 속성을 암시한다.

성 경: [시89:15]

⭕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 - 즐거운 소리 (*, 테루아)란 떠들석함, 환호, 환성 등을 뜻하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음으로 기뻐 외치는 소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기쁨의 즐거운 소리를 외칠 줄 아는, 즉 은혜와 축복 등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포함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환성을 터뜨릴 줄 아는 백성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

⭕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하나님의) 얼굴 빛 이란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돌이키시사 호의로 베푸시는 은혜, 축복, 도우심 등을 암시하는 바(80:3), 본문은 곧 주님의 은혜, 도우심 가운데 범사를 행하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성 경: [시89:16]

⭕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 여기서 이름 이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칭호 이상의 의미로서 하나님 자신 또는 그분의 신격(神格) 자체를 함축하는 말인 바, 본문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암시한다. 혹자는 본문의 기뻐하며를 기뻐 외치는 것이나 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Anderson).

⭕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 하나님의 백성이 구분의 은혜로 복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근본 아담 안에서 죄인인 반면에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시며 그분의 판결은 공의로워 절대적인 바, 인간 자아의 노력이나 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이를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존귀한 자태를 회복할 수 있다(롬 3:23,24).

성 경: [시89:17]

⭕ 주는...영광이심이라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원인 불변사 키 (*, 왜냐하면;For, KJV, RSV)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본절이 16절의 원인절 역할을 해줌을 나타낸다. 즉, 백성들이 기뻐하고 높아지는 것은(16절) 근본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영광 (*,티프아라)이란 반짝이다, 아름답게 하다의 뜻인 파아르 (*)에서 유래된 말이며, 84:11의 영화나 85:9의 영광이란 말과 다른 말로서 장식(품), 아름다움 이란 뜻을 함축한다. 이로 볼 때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힘을 공급해 주시는 분, 또는 그 백성들의 힘의 본질 자체가 됨을 암시한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18:1)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 우리 뿔이...높아지오니니 - 뿔은 흔히 힘을 상징한다(75:10;112:9, Anderson, Tate). 따라서 본문은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은혜로 영육간에 강건해짐을 뜻한다.

성 경: [시89:18]

⭕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본절 서두에도 불변사 키 (*)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를 원인을 나타내는 말(For, KJV, RSV)로, 또는 강조를 표현하는 말(Indeed, NIV)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되어진다. (1)한글 개역 성경처럼 우리 방패 란 이스라엘의 왕, 즉 다윗 왕가의 왕을 뜻하며, 본문은 다윗 왕가의 왕이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힘, 축복, 은총을 받음을 암시한다(Briggs, Calvin). (2) 우리 방패는 여호와이다 또는 여호와는 우리 방패이다 (the Lord is our defencd, KJV)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럴 경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사 그들을 친히 다스리신다는 내용이 된다(Anderson). 이중 어느 것이 타당한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어느 것을 취해도 하나님께서 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점을 나타낸다.

⭕ 우리 왕은...속하였음이니이다 - 이에 대한 해석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our king to the Holy One of Isr- ael, RSV)로 보는 견해(Oesterley, Kissane, Cohen, Kraus), (2)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우리의 왕이다로 번역하는 견해(Anderson). 본문의 의미 역시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두 견해 중 어떤 것을 취하든 별다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성 경: [시89:19]

⭕ 주께서 이상(異像) 중에...말씀하시기를 - 이는 성전을 짓고자 했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뜻과 계획을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삼하 7:4-17). 여기서 이상 (*, 하존)의 본래 뜻은 보는 것을 의미하나, 여기에서 환상, 이상 등의 뜻이 유출된다. 그리고 주의 성도란 문자적으로는 라하시데카 (*)로서 당신의 인자한(또는 경건한) 자들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나단이나 다윗 중 어느 한 사람을 가리킬 수 있으나, 고대 번역본들과 유력한 주석가들이 이를 복수로 취하는데 이 경우 본문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한다(Alexander). (2)단수로서 다윗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Anderson, Dahood). (3)나단과 사무엘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Briggs, Kidner). (4)나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Rawlinson). 이중에서는 문맥상 (4)의 견해가 가장 무난할 것 같다.

⭕ 능력 있는 자...택한 자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사 강하게 하신 다윗을 가리킨다(3절).

성 경: [시89:20]

⭕ 내 종 다윗 -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였다(3절; 삼상 16:11-13;17:31-54).

⭕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부은 사실을 가리킨다(삼상 16:11-13). 한편 거룩한 기름 이란 구약 성경 가운데 본문에만 언급되는데, 같은 의미가 출 30:22-33절에 암시된다. 이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몰약 오백 세겔, 육계(育桂) 이백 오십 세겔, 창포 이백 오십 세겔, 계피 오백 세겔과 감람 기름한 힌을 섞어 만든 향유이다.

성 경: [시89:21]

⭕ 내 손...내 팔 - 이는 상호 병행구로서 하나님의 힘과 능력(might and power, And- erson)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표현이다.

성 경: [시89:22]

⭕ 원수가...강탈치 못하며 - 강탈치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나솨 (*)로서 그 본뜻은 (돈을) 빌려주다, (빚을) 독촉하다의 의미로서 특히 채권자가 빚진 자를 괴롭히거나 학대하는 의미를 함축한다(Alexander). 이런 점으로 볼 때 본문은 다윗 왕국이 어느 대적자에 의해 서든지 굴복당함이 없이 견고케 될 것임을 암시한다.

⭕ 악한 자가...못하리로다 - 곤고케 (*, 아나)란 문자적으로는 누르다, 괴롭히다의 뜻이다. 상반절과 대구를 이르는 본문은 악인이 다윗을 억압하며 괴롭히는 일이 없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로서 곧 그의 왕국의 견고함을 약속하신 내용이다(삼하 7:10).

성 경: [시89:23]

⭕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 여기서 한하는 자 (*, 메사네아유란 미워하는 자들 (those who hate, RSV)을 의미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대적들을 진멸하신다는 뜻으로서 22절과 유사하게 다윗의 대적들이 그의 왕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이다(삼하 7:9).

성 경: [시89:24]

⭕ 나의 성실함...함께 하리니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 자비로써 다윗을 보호하고 축복해 주실 것임을 암시한다(1절). 이는 저자가 1,2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고백하고 찬양한 이유를 생각케 한다.

⭕ 내 이름을 인하여...높아지리로다 - 내 이름 이란 곧 하나님 자신을 대변하며(16절), 뿔 이란 힘(능력) 을 상징하는 바(17절), 본문은 곧 하나님으로 인해 다윗의 왕권이 강해지고 그 위세가 높아짐을 뜻한다.

성 경: [시89:25]

⭕ 그 손을 바다 위에...세우리니 - 본문의 바다와 강들에 대해 혹자는 각각 지중해와 유프라테스 강 및 그 지류들을 의미한다고 하나(137:1; 왕상 4:21,24, Rawlinson), 총체적으로는 어떤 지역 전체를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또한 손 이 능력, 또는 통치권을 상징한다 할 수 있으므로(21절), 본문은 다윗의 힘, 통치권이 팔레스틴 온 지역을 통괄하여 지배하리라는 뜻으로 역사적 사실로 성취되어졌다(삼하 8:1-18; 대하 18:1-19:11).

성 경: [시89:26]

⭕ 주는...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 다윗이 언약적 관계에 있는 하나님께 대하여 신앙 고백적으로 선언한 내용이다. 또 이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다윗을 친밀한 관계로 대해 주심을 고백한 것으로서 같은 형식이 다윗의 시에 자주 나타난다(18:1,2;23:1;27:1). 특히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하시사 새롭게 하신 분, 그를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또 그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최고의 능력자 및 그를 구원하시는 견고한 터전이 되시는 분으로 고백한 것이다.

성 경: [시89:27]

⭕ 장자를 삼고 - 아들은 아버지를 표현하는 자로 여겨졌는데, 장자는 그 아버지의 기력의 시작으로서(창 49:3) 다른 아들들보다 배의 축복을 받았다(신 21:15-17). 이로 볼 때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당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하사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축복을 받게 하신 자로 삼으셨음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장자로 표현된 자들로는 이스라엘 백성(출 4:22), 에브라임(렘 31:9), 예수 그리스도(히 1:6)등이 있다.

⭕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 으뜸 (*, 엘른)이란 하나님께 대한 칭호로서 흔히 쓰이는데(18:13;46:4;47:2), 문자적으로는 더 높은 자 (higher, KJV) 또는 가장 높은 자 (the highest, RSV)의 뜻이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에 의해 다윗 왕이 세계 모든 왕보다 더 높아 세계 만방에 위엄을 떨치는 자로 존재케 됨을 암시한다.

성 경: [시89:28]

⭕ 저를 위하여...굳게 세우며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언약을 지키사 그의 왕국을 견고케 하시리라는 약속이다. 이는 24절과 유사한 말씀으로서 역시 저자가 1,2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선언하고 찬양한 원인을 생각케 한다.

성 경: [시89:29]

⭕ 그 후손을...하리로다 - 이는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말한 것과 유사한 내용으로서(삼하 7:12,13) 당대로 말하자면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또는 나아가서 그의 후예들)을 견고히 세워 다윗 왕위를 지속케 하리라는 뜻을 암시한다. 한편, 궁극적으로는 육신상으로 다윗의 왕위를 이어 그 왕권을 영원히 지속시키실 것임을 뜻한다(4절; 눅 1:32,33; 계 20:4,5). 본문은 하늘의 날 이란 자연의 지속성을 빗대어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Alexander). 이런 뜻의 후에 나오는 해 (36절), 달 (37절)이라는 말에서도 엿보여진다.

성 경: [시89:30]

⭕ 내 법을 버리며 - 법의 히브리어는 토라 (*)로서 흔히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을 가리킨다(출 24:12; 레 26:46; 신 1:5;4:8,44). 본절은 31,32절과 함께 다윗의 왕위를 이은 자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길 경우에는 분명히 징계하실 것임을 나타낸다.

⭕ 규례(*, 미쉬파트) - 문자적으로는 (법률적으로 선언된) 판결, 선고, 법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특히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율법의 또 다른 측면을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 [시89:31]

⭕ 율례(*, 후카) - 하카크 (*, 새기다, 규정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제정된) 관습, 규례 등을 뜻하며 본문에서는 이런 측면으로서의 율법을 말한다.

⭕ 계명(*, 미츠와) - 차와 (*, 명령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명령, 법령 등을 뜻하며, 율법을 가리킨다.

성 경: [시89:32]

⭕ 내가 지팡이로...다스리며 -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바 삼하 7: 14과 유사하다. 본문의 지팡이 (*, 쉬베트)는 삼하 7:14에서는 막대기로 번역되었는데(욥 9:34; 잠 26:3; 사 9:4), 흔히 권위의 상징으로서 왕들이 가지는 홀 (scepter)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창 49:10; 민 24:17). 그러나 본문에서는 후자보다는 전자로서 때리기 위한 막대기의 뜻을 가리키는 듯하다. 또한 다스리며 (*, 파카드)란 방문하다 (visit, KJV), 감독하다, 벌주다 (publish, RSV)등의 뜻이 있다.

⭕ 채찍으로...징책하리로다 - 채찍 (*, 네가)의 문자적인 뜻은 타격, 때림인데, 이에서 역병, 채찍 등이 유래되었다. 혹자는 이 말을 타격 (blows) 또는 습격 (ass- aults)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기도 한다(VanGemeren). 아무튼 본문은 전문(前文)처럼 다윗의 후손이 범죄할 경우 친히 징계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성 경: [시89:33]

⭕ 나의 인자함을...폐하지 아니하며 -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 그의 후손들에게 베푸시기로 하셨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지속적으로 나타내시겠다는 말씀이다(1, 28절). 이는 곧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끊기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씀으로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28절). 한편 거두지 (*, 푸르)란 문자적으로는 깨뜨리다, 부숴뜨리다의 뜻인데, 이는...로부터 (from)라는 전치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약정된 계약 등을 철회함으로써 파기한다는 뜻을 함축한다(Alexander).

성 경: [시89:34]

⭕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 이는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깨뜨리지 않고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이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실행은 33절에 암시된 바와 같이 당신의 성품 중 성실하심의 속성에 기인한다(1절)

⭕ 내 입술에서...아니하리로다 - 이는 전문과 병행 구절로 보인다. 내 입술에서 낸 것 이란 상황에 따라 구두(口頭)적인 맹세(민 30:12)나 서원(신 23:23) 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본문에서는 문맥상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 내용을 가리킨다.

성 경: [시89:35]

⭕ 나의 거룩함으로...맹세하였은즉 - 하나님의 거룩하심 (*, 코데쉬, 분리, 구별)이란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로서 하나님께서 죄나 불의, 부정 등으로부터 분리되신 분으로서 온전하시고 흠이 없으시며, 나아가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맹세의 확실성, 불변성을 암시한다.

⭕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것인데(히6:18), 이것 또한 그분의 거룩하신 속성에 기인한다.

성 경: [시89:36]

이는 29절과 유사한 반복적 표현이다.

⭕ 그 위는 해같이...있으며 - 이는 전문처럼 29절과 유사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해같이란 29절의 하늘의 날과 같게 란 말과 같이 오랜 세월을 상징하는 말이다.

성 경: [시89:37]

⭕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같이 - 궁창에 대해서는 6절을 참조하라. 본문에서 달을 증인 이라 한 것은 달이 땅에 활동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잠을 자며 안식하는 저녁에 떠 땅위에 빛을 환히 비춰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달같이란 역시 36절의 해같이 라는 말과 같이 끝없는, 오랜 세월을 상징한다(29절).

성 경: [시89:38]

⭕ 주께서...물리쳐 버리셨으며 - 주의 기름 부음받은 자 란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백성들을 먹이고 다스리는 자로서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세워졌다(왕상 1:39; 왕하 9:6).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을 버리셨다는 말은 마치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깨뜨리시는 것 같다고 느낀 저자의 하소연이다. 이는 곧 당시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이 그만큼 비참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성 경: [시89:39]

⭕ 주의 종의 언약 -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가리킨다(3절).

⭕ 그 관을...욕되게 하셨으며 - 관 (*, 네제르)이란 나실인 (*, 나자르, 민 6:2)의 어원이 되는 나자르 (*, 구별하다, 헌신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구별된 것, 왕관을 뜻한다. 이 관은 왕들이나 제사장이 쓰는 관으로 여겨지는데(132: 18; 삼하 1:10;12:30; 대하 23:11), 이는 쓴 자의 권위뿐만 아니라 그 직임의 신성함을 암시한 듯하다(Anderson).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결국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의 왕권을 피하시고 그 왕위를 손상케 하셨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시89:40]

⭕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 여기서 울타리 (*, 게데라)란 흔히 포도원을 둘러싼 울이나(민 22:24; 사 5:5) 집의 담(겔 42:12)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인데,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영토의 방어물을 비유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왕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자인바, 위의 해석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땅이 전복되는 것(Anderson), 또는 대적에 의해 침략 당한 것을 암시한다.

⭕ 그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 보장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미브차르 (*)로서 요새, 요새화된 성을 뜻하며 전문의 울타리와 병행을 이룬다.

성 경: [시89:41]

⭕ 길로 지나는 자들에게...당하며 -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약탈한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시89:42]

⭕ 저의 대적의...높이시고 - 오른손이란 흔히 성경에서 힘, 능력을 상징하는 바(13절; 겔 1:3),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능력있게 하셨음을 뜻한다.

성 경: [시89:43]

⭕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 칼날 (*, 추르 하르보)이란 직역하면 그의 칼의 바위란 뜻이다(Anderson, Alexander, Hengstenberg). 이에 대해 혹자는 당시 부싯돌 칼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된 것이라 하며(Eerdmans), 다른 사람은 바위 (*, 추르)란 불꽃을 내다 라는 아카드어와 연관되는 바, 그의 번쩍이는 칼 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말한다(G.R.Driver). 반면 알렉산더(Alexander)는 칼의 견고함, 즉 견고한 칼의 뜻을 암시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주석가들은 바위가 히브리인들의 용법상 강함을 상징하는 바, 칼의 강함 즉 강한 칼을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본문은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칼을 말하며, 문맥상 전쟁 수행능력 또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을 비유한다 하겠다. 그리고 둔하게 의 기본형은 슈브 (*)로서 돌이키다, 물려가다 (has turned back, RSV)의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문의 의미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의 칼을 쓸모없게 만들었다는 뜻보다는 이스라엘 왕의 전쟁 수행 능력, 즉 그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무기력하게 하셨음을 암시한다 하겠다(Anderson).

⭕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 싸울 능력이 없으므로 감히 전쟁터에 나아가지 못함을 뜻한다.

성 경: [시89:44]

⭕ 저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 영광에 해당하는 토하르 (*)는 17절의 영광이나 85:9의 영광과는 다르다. 이는 본래 밝음 이라는 뜻이나 이외에도 탁월함, 명성, 유명함, 영광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Alexander). 아마 본문에서는 왕으로서 지니는 존귀, 명성의 뜻을 나타내는 듯하다.

성 경: [시89:45]

⭕ 그 소년의 날을 단축케 하시고 - 이는 아마 이스라엘 왕의 젊은 힘과 정력을 고갈시키사 속히 늙게 하심을 뜻하거나 아니면 젊은 날에 그의 생명을 당실케 하심을 암시한다(Anderson). 유대 주석가들 중 일부는 본문의 주인공을 여호야긴 왕으로 본다. 여호야긴 왕은 18세에 왕위에 올랐다가 3개월 동안 통치한 다음 바벨론으로 잡혀갔다(왕하 24:8-17). 그러나 칼빈(Calvin)은 소년을 이스라엘 왕국에 비유하여 그 왕국이 온전히 성숙하여 번성하지 못하고 일찍 쇠퇴함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중에서 두 번째 견해가 더 무난할 것이다.

성 경: [시89:46]

⭕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 38-45절에서 이스라엘(왕)의 비참한 상태를 언급하며 탄식하던 저자가 본절에서부터는 하나님께 그 상황에 대해 간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저자가 다윗과 언약하신 하나님 및 그분의 언약 내용에 대해 불신하지 않고 굳센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 본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하나님의 속성 곧 그 인자하심과 성실(진실)하심을(1,2,8,14,24,33절) 감추신다는 뜻이다.

성 경: [시89:47]

⭕ 나의 때가...기억하소서 - 38-46절에서는 현재 비참하게 된 대상을 다윗 왕가의 이스라엘 왕으로 언급함으로 하나님이 다윗에게 맺으신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해 달라는 암시를 했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그 대상을 1인칭으로 언급하여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직접 호소한다. 이와 같은 전환은 그 간구의 긴박성과 절실함을 더욱 현실감있게 나타낸다 하겠다. 특히 본절은 저자 자신의 생명의 때가 그리 길지 아니한 바 지금 당장 구원해 주시지 아니하면 자신은 그냥 사라지고 만다는 말로서 그 간구와 절박성을 잘 드러낸다.

성 경: [시89:48]

⭕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 저자가 47절에서 인간의 허무성을 언급하게 된 이유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또 한편 이는 47절의 전반부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필연성을 은연중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그대로 두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바,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은혜를 베푸시어 구원해 달라는 간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그 영혼을...건지리이까 - 여기서 영혼 (*, 네페쉬)이란 생명을 뜻하는 말로 보인다(84:2). 그리고 음부 (*, 쉐올)란 구약에서 모든 죽은 사람들이 가는 지하 세계로 인식되어졌다(88:3). 또한 권세란 히브리어로 야드 (*)로서 손을 뜻하는데, 이는 힘, 권능 등을 상징하는 말이다(78:42 겔 1:3). 이런 점에서 볼 때 본문은 역시 전문과 병행 구절로서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사는 한 죽음의 권세에서 제외될 수 없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하겠다.

성 경: [시89:49]

⭕ 주여...어디 있나이까 - 저자는 다윗에게 향하신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다시금 언급함으로 다윗과 맺으신 언약, 즉 그의 후손을 영구케 하고 그의 왕위를 지속케 하신다는 약속을 언급하며 간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암울한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을 돌보아 달라는 뜻이다.

성 경: [시89:50]

⭕ 주의 종들의 받은 훼방을 기억하소서 - 여기서 주의 종들에 대해 일부 역본들과 시리아역(Syric)은 단수로서 취하는데, 이런 경우 이는 아마 이스라엘의 한 왕을 가리키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과 70인역(LXX), 제롬역(Jerome) 등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복수로 취한다. 이럴 경우 이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Cohen, Rawlinson), (2)한 사람 왕을 표시하되 그의 탁월함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장엄 복수로 언급되었다고 보는 견해(Dahood). 이중에서 어느 것이 타당한지 설정하기가 애매하다. 한편 본문의 훼방은 히브리어로 헤르파 (*)로서 하라프 (*, 벗다, 노출하다, 모욕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모욕, 치욕 등을 뜻한다.

성 경: [시89:51]

⭕ 주의 원수가...훼방한 것이로소이다 - 저자가 이스라엘(의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주의 원수라 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인 바 그들을 대적함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 (*, 아케보트)이란 문자적으로 발꿈치, 발자국 (the foosteps, KJV, RSV)을 뜻하는 바, 본문의 의미는 주의 이스라엘의 대적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이스라엘의 왕(38절)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방해하거나 경멸하는 것을 뜻한다(Alexander).

성 경: [시89:52]

⭕ 여호와를...아멘 아멘 - 일반적으로 이를 본시의 맨 후반절로 보지 않고 시편의 제 3권 전체를 결론짓는 송영가(doxology)로 본다(Anderson, Rawlinson, Alexander). 반면에 칼빈(Calvin)은 본문을 저자가 앞 부분에서 나타낸 슬픔의 비통함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찬양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성 경: [시90:1]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대대에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도르 와도르'(*)의 문자적인 뜻은 '세대와 세대에'이다. 신 32:7에서도 동일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구절은 계속되는 세대에 있어서 동일한 분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성을 암시한다(히 13:8).

거처(*, 마온) - 문자 그대로 처소, 거주지를 뜻하는데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26:8), 하늘(68:5) 혹은 들짐승이 거처하는 동굴(렘 9:11; 나 2; 12)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행자가 잠시 머무는 처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처소를 뜻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이 용어가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대목인 신 33:27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집이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리저리 행진하는 도중에 잠시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물 곁 혹은 사막의 종려 나무 아래 같은 곳이 머물 처소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그들은 그곳에서 집과 같은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안식처였던 것이다.

⭕ 되셨나이다 - 이 말은 문맥상 '스스로를 입증하셨다'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는 조상 때부터 구체적으로 입증된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현재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다는 진술일 뿐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기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확정된 거처가 없이 나그네처럼 지내던 시절에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동일한 처신을 기대하며 자신도 나그네와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다.

성 경: [시90:2]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산이 생기기 전...하나님이시니이다 - 시인은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관심과 배려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출생 메타포(metaphor)를 산들의 기원에 적용시키고 있다(욥 38:8; 잠 8:22 이하). 특히 '조성하시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흘렐'(*)은 흔히 아기의 출생을 가리킬 때 사용되고 하는데(51:5; 사 26:17; 45:10; 51:2) 본절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시사한다. 신 32:18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겨나게 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그 유사한 묘사를 세계 창조에 적용시키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분절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우주 창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피조세계보다 선재(先在)하시며 그 피조물들로서는 그 놀라운 위엄을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신 영원한 하나님께 맞춰져 있다.

성 경: [시90:3]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사람(*, 에노쉬) - 본 문액에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로서 한번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8:4; 103:15).

⭕ 티끌로(*, 아드다카) - '먼지로' 혹은 '멸망으로'로 번역이 가능하나, 전자가 문맥상 더 자연스럽다. 진흙으로 지은 집에 사는 사람(욥 4:19)은 흙으로 부터 왔으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창 3:19).

⭕ 돌아가라(*, 슈부)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티끌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고(Rashi), 또 하나는 새로운 세대의 발흥, 즉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Westermann). 전자로 볼 경우 본절은 동의적 평행법이 적용된 구절이 되고 후자로 볼 경우는 반의적 평행법이 적용된 구절이 되는데, 계속되는 내용이 인간의 유한성, 일시성, 덧없음을 다루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전자를 취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성 경: [시90:4]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천 년 - 창세기 5장에 나오는 구약의 조상들의 평균 수명인 천 년이 하나님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 인간 수명 70년(10절)은 얼마나 무상(無商)한 것이겠는가! 하나님에게 있어서 천년은 인간에게 있어서 밤의 한 경점(벧후 3:8)과 같다. 경점이란 밤을 네 등분한 것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시간으로는 네 시간인데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경점'이란 용어 때문에 굳이 파수꾼의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A.A.Anderson).

성 경: [시90:5]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 '제람탐'(*)을 직역하면 '당신이 그들을 쓸어버리십니다'이다. '쓸어버리다'로 번역되는 용어로서 문맥상 지위 고하(高下), 나이 등을 상관하지 않고 죽음이 인간의 생명을 쓸어가버리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구절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는 동의적 구절로 보아 '저의는 죽은 존재와 같으며'로 번역할 수 있다.

⭕ 아침에 - 어떤 랍비들의 설명처럼 이 구절을 '젊은 시절에'로 볼 수 없다. 문자적 의미 그대로 이 구절은 '인간은 아침에 신선하게 피어나는 풀과 같은 존재이다'라는 뜻으로서 단지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본절 상반절 뒤와 6절 앞부분에 놓인 것이다. 근동에서 한밤중의 폭우는 마술을 부린듯 일련의 큰 변화를 만든다고 한다. 저녁 무렵 마치 사막처럼 타버린 듯한 마른 들이 아침에는 초록 풀로 가득한 그린 필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태울듯 더운 바람이 불다가도 마치 저녁이 되기도 전에 들판은 추운 땅이 되고 만다고 한다. 결국 여기서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풀의 이미지를 빌어 표현하고 있다. 풀은 잠시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가도 곧 시들어 버리기 마련이다(사 40:6; 벧전 1:24).

성 경: [시90:6]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저녁에는 벤 바 되어 - '벤 바 되어'(*, 예몰렐)는 수동태로 쓰일 수도 있고 능동태로 쓰일 수도 있는데 각 경우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우선 전자로 쓰일 경우는 개역 셩경의 번역처럼 (제 삼자에 의하여) '베어짐을 당하다'를 의미하게 되고, 후자로 쓰일 경우에는 '말라버리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원문상의 구두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는 후자가 더 타당한 것 같다(Ewald, Hupfeld). 본 용어의 원형인 '물'(*)이 '말라버린'이란 뜻으로 사용된 또 다른 용례인 신 23:27은 이 같은 주장의 객관적 지지 구절이 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아침에는 아름답게 피었다가 저녁 무렵에 맹렬한 태양의 열기로 인하여 타버린 풀의 꽃을 묘사한다.

성 경: [시90:7]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키 칼리누 베아페카) -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분노에 의하여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이다. 서두의 '키'(*)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바로 앞 문맥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여 멸망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에 빠질 때 이스라엘은 참으로 허망하고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인간의 죄성과 연약성에 대한 포괄절인 진술이 아니다. 특히 1인칭과 과거 시제의 사용은 기자가 자기민족의 역사와 자기 자신의 실제적 체험을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 경: [시90:8]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우리의 은밀한 죄(*, 알루메누) - 직역하면 '우리의 비밀'이다. 이것은 인간의 속에 있는 재적 실태(요 2:25)로서 자기 동료들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숨겨져 있는 오염과 죄책을 가리키므로 '우리의 비밀스러운 죄'로 번역해도 무방하며 이 경우 분절은 동의적 평행구가 되겠다. 결국 본문은 인간 생명의 유한성 곧 죽음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았으며 하나님의 진노는 죄 때문임을 시사한다(창 2:17; 롬 5; 12).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죄의 본성은 타인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까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벌거벗은 것 같이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다(렘 16:17; 히 4; 14).

⭕ 빛(*, 마오르) - 시편에서는 이곳과 74:16에서만 나오는 히브리어이다. 대개 성경에서 '빛'이라는 뜻으로는 거의 '오르'(*)가 쓰인다(27:1; 창 1:3; 삼하 23:4; 욥 3; 16; 잠 6; 23; 전 11:7 등). 여기서는 어두운 수렁과 같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어서 그곳에 숨겨진 죄악을 끄집어내어 청산하기 위한 하나님 얼굴의 빛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유리한 평행구적 표현이 잠 15:30에 나타난다.

성 경: [시90:9]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 '지나가며'(*, 파누)는 '쇠퇴하다'를 뜻하므로(렘 6:4) 본 구절은 인생의 사는 날들이 스올의 암흑을 향하여 쇠퇴해 가는 것과 같음을 뜻한다. 신자를 포함한 모든 인생은 스올로 내려가 그 육신의 몸이 한번은 썩음을 당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인생이 에덴 동산에서 범했던, 우리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징벌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 일식간에(*, 케모헤게) - 직역하면 '일순간의 생각(혹은 한숨)이다. 이 문구에 대해 영역본들은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 예컨대, KJV는 '한마디 이야기처럼'(as a tale that is told), NIV는 '외마디 신음으로써'(with a moan), LB는 '한숨으로써'(whith sighing) 그리고 RSV는 '한숨과 같이'(like a sigh)등으로 번역한다. 욥 37:2; 겔 2:10 등을 참조할 때 '한숨(혹은 소리)과 같은'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튼 본 구절은 '짧막한 한마디 말', '금방 귀에서 사라져 버리는 한마디 소리', '한번 내쉬는 숨'처럼 빨리 지나가는 덧없는 인생을 묘사하는 구절임이 분명하다.

성 경: [시90:10]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 '년수의 자랑'이란 바로 앞 구절 '강건하면 팔십'이란 구절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천부적인 힘과 정력을 지녔거나 혹은 건강의 법칙을 이해하고 준수해왔기 때문에 평균 수명 칠십을 넘어 팔십을 살고 있는 노인들의 자부심을 가리킨다. 그리고 '수고'에 해당하는 '아말'(*)은 '지키게하는 노고'를 뜻한다. 문맥적으로 볼 때 이것은 평균 수명을 넘어 팔십 대를 넘었다고 할지라도 노인은 노인이기 때문에 그 힘이 점점 고잘되어 늘 지치고 피곤해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슬픔'에 해당하는 '아웬'(*)은 '슬픔', 이외에 '무익함', '헛됨'(사 41:29; 슥 10:2), '고통' 등의 뜻도 내포하는 단어이다. 이상의 주해를 종합해 볼 때 본 구절이 주는 의미는, 비록 남달리 오래 사는 자라고 할지라도 이를 자랑할 이유가 없는데 그것은 계속 몸이 쇠약해가는 관계로 살아 있으나 안락함을 느낄 수 없고 결국 무익한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는 내용이라 하겠다.

성 경: [시90:11]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 문맥상 본 구절은 인간이 천상적으로 하나님의 분노의 위력과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구절이라 하겠으며 강조하기 위하여 수사학적 질문을 사용하고 있다(전 2; 19; 3:21). 굳이 신학적인 논쟁을 거치지 않고 실제적인 인간의 생활사, 인간의 성품 등만을 보아도 인간의 존재가 불행으로 가득찬 이유는 죄성 때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요약해 주는 글귀가 있다. '인간은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과 궁극적으로 죄의 사슬에 묶여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멋대로 악을 행하고 있다'(Weiser).

성 경: [시90:12]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인간]

⭕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 문맥적으로 볼 때 이것은 우리 인생의 덧없음 그리고 짧음들을 깊이 숙고하고 인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가를 배우게 해달라는 요청으로 해석하면 되겠다(Delitzsch). 특히 하나님의 무한성과 영원성에 비교할 때, 이러한 자각은 더욱 심화되기 마련이다(VanGemeren).

⭕ 지혜의 마음을 얻게하소서 - 인생의 허망함과 짧음을 깨달은 자는 영원을 사모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품안에서 자족함을 누리고자 하는 바, 이것이 곧 지혜인 것이다. 여기서 '얻게 하소서'에 해당하는 '나비'(*)는 추수 때에 땅의 열매를 거두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삼하 9:10; 학 1:6). 결국 지혜의 마음, 곧 지혜로운 마음은 신령한 가르침을 통해 얻는 영적 열매와 같다. 이 지혜의 마음은 주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지혜롭기를 원하는 자는 매순간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잠 1:7).

성 경: [시90:13]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여호와여 돌아오소서...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 본절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선행된 묵상의 풍부한 근원으로부터 나오게 된 기도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인간은 일시적이며 죄악되다. 인간은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그 위에 있을 때에도 그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인생에게는 그의 죄성과 그 존재의 덧없음을 알게 할 신령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이렇게 묵상을 마친 모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인생의 실체(實體)가 그러함을 묵상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까이에 계속 계셔 왔을 뿐 아니라 그들의 안식처가 되심을 잊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는 분임과 동시에 긍휼히 여기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와 그의 백성이 신령한 지혜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요청할 뿐 아니라 그들을 징계하셨던 하나님이 그의 인애(仁愛)로 그들을 방문하심으로써 슬픔의 밤이 물러가고 기쁨의 새벽이 시작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약속된 땅에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임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 그의 인격적 현시, 그리고 축복을 모세는 기원하고 있다. 영적으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사함을 받고 땅 위에서의 순례자의 삶을 종결하고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겸손한 기도롤 볼 수도 있다. '돌아오소서'는 출 32:12과 유사한 의미로 보면 되겠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성 경: [시90:14]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아침에 - 아마도 시인은 고통, 슬픔을 '밤'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의 자비로 인한 기쁨을 '아침'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alexander, Barnes).

⭕ 주의 인자(*, 하스데카) - 이는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사랑을 뜻한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격은 불변적인 것이어서, 그 언약에 대한 인간편에서의 의무를 다하는 성도는 늘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된다. 기자는 그 기쁨이 평생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다.

성 경: [시90:15]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 문자 그대로 곤고와 화를 당한 일수만큼 기쁨의 날들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즉, 그 민족이 오랫동안 수고했고 고통을 당했으니 지속적인 축복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7-10절). 이것은 일종의 보상을 원하는 기도인 바 그들이 부당하게 이방 군대들에 의하여 억압을 당했던 사실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Kissane).

성 경: [시90:16]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주의 행사(*, 파알레카) - 이 용어는 하나님의 섭리와(사 5:12) 구원(77:12) 혹은 심판(64:9)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 혹자는 이 단어의 복합성을 고려하여 복수형으로 번역하지만(your deeds, NIV; your miracles, LB) 시편 기자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단수였던 사실을 감안할 때(77:12; 92:4; 95:9; 합 3:2), 여기서도 단수형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thy work, KJV, RSV). 본 문맥에서 이 말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진입, 곧 약속된 유업의 계승을 암시하는 것 같다. 한편 이 용어는 신 32:4을 제외하고는 모세오경에 나오지 않는다.

⭕ 주의 영광(*, 하다레카) - 이는 주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위엄을 암시하는 용어인데(96:6; 104:1; 111:3)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진입 및 정복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그의 능력 및 은혜를 가리킨다.

성 경: [시90:17]

주제1: [인생의 영원한 거처, 야웨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간구]

⭕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 여기서 '은총'(*, 노암)의 뜻은 '아름다움' 혹은 '즐겁게 하는 것'인데 70인역(LXX), 벌게이트역(Vulgate)등은 이것을'광채'로 번역하거 있다. '아름다움', '광채', 그리고 '즐겁게 하는 것' 등은 이스라엘을 향한 주의 은혜와 관심이 가시화 되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시화되기를 원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모세가 가나안 땅 입성을 앞에 두고 그들의 진입이 눈에 현저(顯著)한 하나님의 개입 가운데 무난히 진행되기를 원했던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현저한 그리고 가시적인 개입을 원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 민족과 동행하심을 분명히 알기 위한 마음 때문이었다.

⭕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 문자적인 뜻은 '우리 손의 일들을 이루소서'이다. 본 시편이 가나안 땅 입성을 목표로 하는 광야 여정 속에서 기록된 것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일들을 이루소서'란 이제 광야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일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소원이라 볼 수 있다. 그 소원의 정도가 강렬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저자는 동일한 내의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성 경: [시91:1]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지존자(*, 엘레온) - 직역하면 '가장 높은'이며,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지칭한다. 하나님은 그의 대적이 아무리 악한 음모를 실행에 옮기고 그 성취를 위해 날뛴다고 할지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다.

⭕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 '은밀한 곳'(*, 세테르)의 문자적인 뜻은 '비밀 장소'로서 누구에게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곳인 성전의 지성소를 암시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 '어떤 영향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문맥상 어울리는 것 같다.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통하는 자, 곧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자는 세상의 어떤 위협이나 난관에 비착해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거하는'에 해당하는 '야솨브'(*)를 '왕좌에 앉다'는 뜻으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Dahood) 문맥상 피난처 되시는(14:6; 46:1; 렘 17:17; 욜 3:16) 여호와의 품에 '거한다'는 의미가 더 낫다.

⭕ 전능하신 자 - '여호와'라는 호칭이 그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본 호칭은 그의 능력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는 권능의 하나님을 강조한다(출 3:7-15 강해, '하나님의 이름' 참조).

⭕ 그늘 -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날개로 덮는 어미 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말이다(4절; 17:8; 36:7; 57:1; 63:7). 어느 학자의 주장처럼 굳이 이곳이 사후(死後)의 영원한 안식처를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과 연결되어 있는 동사 '거하리로다'(*, 이틀로난)는 함축적으로 '영원히 머무르다'는 뜻도 지니지만 대체로 '밤을 새우다', '숙박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Perowne). 따라서 이 말은 낮의 무더위나 밤의 혹한은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해 쉼을 얻을 수 있는 현실적 피난처 혹은 안식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본절 상, 하반절에는 하나님께 대한 서로 다른 호칭, 그리고 그 의미가 동일하지 않은 처소의 개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본절을 서로 다른 신(神)의 존재 및 그에 따른 서로 다른 상황을 묘사하는 구절로 보는 것은 전혀 터무니 없는 일이다. 도리어 다양한 능력을 갖고 계신 유일한 참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함께 거하는 자에 대한 묘사를 보여주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특히 여기서 기자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자의 완전한 안전을 강조하기 위하여 히브리 문학, 특히 히브리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대구법을 사용하였다.

성 경: [시91:2]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 여기서 '나의'는 종속 개념을 담고 있는 말로서 하나님이 피예배자에게 복속되는 신들 중의 하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이방 종교의 피예배자들은 흔히 신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곧 자신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 거꾸로 피예배자가 그분께 전적으로 복속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은 성도들뿐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성 경: [시91:3]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이는 저가(*, 키 후) - 이것은 대명사 앞에 접속사가 놓인 형태인데 이와같이 접속사 뒤에 오는 대명사인 경우 강조사가 된다(148:5). 여기서는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Surely he..., KJV, NIV).

⭕ 사냥군의 올무 - 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이 계획한 음모, 위협 따위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124:7; 141:9; 잠 6:5; 호 9:8).

⭕ 극한 염병(*, 데베르 후오트) - 직역하면 '치명적인 염병'인데 70인역(LXX), 심마커스역(Symmachus Versions), 시리아역(Syriac Versions) 등은 본 용어를 '파괴적인 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은 '염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데베르'를 '말'을 뜻하는 '다바르'로 읽는 데서 비롯된다. 시편 기자가 주로 중상, 모략, 음모. 거짓 고소 등으로 곤욕을 치르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이같은 번역은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성 경: [시91:4]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 본 묘사는 분명한 비유인데 저자가 여호와를 날개가 달린 분으로 상상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무모한 해석이다(Oesterley). 성경이 하나님을 그 어린 새끼를 보호하는 독수리에 비유한 곳은 있다(신 32:11). 천사의 날개 역시 보호의 상징이었다(Kraus). 그러나 본절의 회화적 묘사는 익히 알려져 있는,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 새의 모습에 근거를 두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사 31:5; 마 23:34).

⭕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 '극의 진실함'(*, 아미토)은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에 대한 그분 자신의 신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손 방패' (*, 소헤라)는 구약 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용어이며 '담으로 둘러삼'을 뜻하는 시리아어 '사하르타'에서 유래한 말로서 탈굼역(Targum) 등에 의하여 '둥근 방패'로 번역되고 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인 우리 성도를 일생동안 방패로 지키듯이 보호하시는 것은 일차적으로 당신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에 연유한다.

성 경: [시91:5]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밤에 놀램(*, 파하드 라옐라) - '밤에 의한 폭력(공포)'이 그 문자적인 뜻이다. 기드온의 공격과 같은(삿 7장) 갑자기 이뤄지는 야간 기습 공격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어두운 밤길을 가며 흔히 갖게 되는 사단의 존재의 의식으로 인한 공포 따위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을 특정한 위험이나 재난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공포나 위협의 요인은 캄캄한 밤중에 닥칠수록 더 강화된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Alexander). 한편, 여호와의 주권과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121:6). 낮에 흐르는 살(*, 메헤츠 야우프 요맘) - 직역하면 '낮에 날으는 화살'인데 문자 그대로 대적들의 화살 공격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낮에 비치는 태양의 광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무난할 것 같다(Anderson). 이것은 한낮에 발생하는 일사병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사막 지대에서는 강한 햇빛 때문에 일사병 외에도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성 경: [시91:6]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 - 여기서 '흑암중에'는 '캄캄한 가운데'라는 뜻보다 '갑자기'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염병'은 문자 그대로 보면 고대 근동에서 흔히 발생하였던 온역이나 전염병 따위가 되겠다. 그러나 근접 문맥인 8절에서 악인이 보응을 받는다는 개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대적'혹은 그 대적의 '살의를 품은 독설'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백주(白晝)에 황폐케 하는 파멸 - 대낮에 초래되는 파멸, 곧 가시적이고 공개적으로 발생하는 파멸을 가리킨다. 또한 파멸(*, 케테브)은 '휩쓸어 버리는 것', '잘라 버리는 것'등을 뜻하며(사 28:2), 폭풍, 전쟁, 온역 혹은 기근 따위와 같이 일정한 대상을 완전히 휩쓸어버려 멸망시키는 세력을 가리킨다. 요컨대 본절은 언제 어떤 형태로 재앙 및 대적이 밀어닥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는 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으로 강변하고 있다.

성 경: [시91:7]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천인(千人)이 네 곁에서, 만인(萬人)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가까이 못하리로다 - 이 표현은 출애굽 기사의 몇몇 구절들의 반복으로 보이기도 하고(출 12:23; 14:30), 전쟁 용어들로부터 그 용어들을 빌려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삼상 18:7), 본 비유 배경이 전쟁터인 것 같지는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닥쳐오는 재앙이나 불행의 크기에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자가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잠 12:21).

성 경: [시91:8]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 말하자면 악인이 보응받는 것, 징벌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사악한 기쁨에 들떠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명백히 나타내실 것을 강조하듯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 악인의 보응에대한 언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말하자면 인생 역사 동안 모든 악인이 반드시 현실적 징벌을 받지는 않으나 징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악인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의 공의가 엄존(儼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방편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이 입증되는 것을 목격하면, 성도는 더 큰 믿음과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게 된다. 이제 모든 악인이 반드시 징벌을 받을 때가 오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이다(마 24:44).

성 경: [시91:9,10]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본 두 절에서도 시인은 여호와의 보호 아래 있는 자의 안전함에 대해 거듭 확언하고 있다. 물론 신실한 성도에게도 '화'(禍)나 '재앙'의 위협이(10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한 그 어떤 위협 요소들도 성도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롬 8 : 28, Kidner).

⭕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 마치 아버지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듯이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동행하기를 선택하였다는 뜻이다.

⭕ 장막 - 유목의 생활 환경을 묘사할 때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말 2 : 12). 이는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자들의 거처일 뿐 아니라 유목민의 제반가산(possessions)을 뜻하기도 하는 용어이다.

성 경: [시91:11]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사자들(*, 믈라킴). - '보내다'의 뜻을 가진 '라카흐'(*)에서 유래했으며 동사형은 구약 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나 히브리어 동족어인 아라비아어, 우가릿어 등의 문서에는 나온다(Eichrodt). 구약 성경에서 이 말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수 7:22) 혹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출 23:20)이나 대언자(학 1:13) 등을 뜻할 때 사용된다. 본 시편에서는 신실한 자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마 4:11; 눅 22:43).

성 경: [시91:12]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 각별한 돌보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며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독수리 날개로 너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출 19:4);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사 63:9).

⭕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 번영과 안전을 암시하는 표현이다(37:31; 잠 2:23, Alexander). 한편, 본절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에 의해 인용된 말이다(마 4:5, 6).

성 경: [시91:13]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는 자의 안전함]

⭕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 '사자'와 '독사'는 모든 실제적인 그리고 잠재적인 대적들 및 위험들의 상징이다. 따라서 '사자'와 '독사'를 밟는다는 것은 대적 및 위험들을 물리치고 제거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 표현을 마치 사자의 분노를 잠재우듯이 그래서 순한 양처럼 만들듯이 혹은 독사의 해독성 치아를 뽑아버리듯이 위험 가운데서도 안전함을 뜻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겠다(Barnes). 여기서 '사자'에 해당하는 '솨할'(*)은 성경상으로 산문에서는 볼 수 없고 운문에서만 나타나는 용어이다(욥 4:10; 10:16; 28:8; 잠 26:13; 호 5:14; 13:7).

⭕ 젊은 사자(*, 케피르) - 특히 용감하거나 사납고 폭력적인 존재를 언급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17:12; 삼하 17:10).

⭕ 뱀(*, 타닌) - 출 7:9, 10, 12에서는 '뱀'으로, 창 1:21에서는 '큰 물고기'로, 74:13; 148:7; 사 27:1; 51:9; 렘 51:34에서는 '용'으로, 애 4:3에서는 '들개'로 각각 번역되고 있는데 '뱀'으로 번역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본 구절과 상반절은 평행구를 이루고있다 하겠다.

성 경: [시91:14]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 저가 나를 사랑한즉 - '사랑한즉'에 해당하는 '하솨크'(*)는 신명기에 자주 나오는 용어로서 한 사람의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창 34:8; 신 21: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신 7:7; 10:15) 혹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헌신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헌신)'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진실하신 성품을 체험하고 깨닫는것 곧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하반절)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9:10) 이 두 표현은 공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순종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성 경: [시91:15]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결과의 하나로 하나님은 그의 성도가 올린 기도에 응답하사 그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환난 중에서도 그와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시키신다는 것, 곧 그를 자신의 친구처럼 대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높으신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영화로운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Barnes)?

성 경: [시91:16]

주제1: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주제2: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 장수(長壽)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이었던 장수는 일반적으로 신적(神的) 은총의 외형적 표시로 간주되었을뿐 아니라(21:4; 신 30:20; 잠 3:2)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의 결과로 간주되었다(출 20:12; 23:26).

⭕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 여기서 '구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가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는다고 말할 때의 그 '구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맥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 약속에 순종하여 땅위에서의 축복인 장수를 약속받은 자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구원'이란 현실을 살아가면서 당하게 될 무수한 곤경들로부터의 구원 혹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종국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까지 인도되는 영원한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그는 땅 위에서 하나님과 친구로서 영화롭게 살아갈 뿐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는 축복 상태로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 경: [시92:1-3]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 찬양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메르'(*)는 '악기(특히 현악기)를 '연주하다' 혹은 '(그러한 악기를 동반하여) 노래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원문상으로는 '십현금, 비파, 수금' 등이 1-3절의 끝에 위치해 있으나 개역 성경에서 여기에 삽입한 까닭은 바로 이 용어의 성격을 고려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 아침에...밤마다 - 이스라엘의 구전법(oral law)인 미쉬나(Mishna)에 의하면 본 시편은 안석일 아침에 부르도록 정해져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본 시는 안식일을 위한 시편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날 아침 이 시편을 부르면서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는 먼저 어린양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 드리는 존제(尊祭)로서 포도주를 부었다(민 28장). 반면, 저녁 제사 때에는 출 15:1-18과 민 21:17-20 중의 하나를 노래했다. 그리고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성전에서 불렀던 노래로서는 첫째날 24편, 둘째날 48편, 셋째날 82편, 넷째날 94편, 다섯째날 81편, 여섯째날 93편 등이었다고 한다.

⭕ 좋으니이다(*, 토브) - 본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문맥에 따라 그 의미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 때 피조 세계가 그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됨을 보고 이를 '좋게'(*, 토브) 여기셨다(창 1:4, 10, 12).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지존자이신 그분의 계획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이해된다( 33:1). 한편, 시편 기자의 정서적 측면으로 보면, 찬양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에 따른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진정한 기쁨의 표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Perowne). 본절에 나오는 악기들에 관해서는 서론 '시편과 음악'을 참조하라.

성 경: [시92:4]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 여호와여...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 원문에 보면 본 구절 서두에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다. 따라서 본절은 1-3절에 언급된 바, 여호와께 대한 찬양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분(14, 15절)의 서론격에 헤당하는 샘이다.

⭕ 주의 손의 행사 - 혹자는 본 시편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안식일을 위한 시편인 사실을 강조하여 이를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나 본 구절의 용례를 볼 때(28:5 ;사 5:12) 그리고 본절 하반절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볼 때, 기자는 본 구절을 통하여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의 구원 혹은 그 구원을 가져온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7-11절)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시92:5]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 및 우주 통치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성, 인간의 이해를 넘는 그 계획의 방대함, 그리고 지혜의 깊이 등을 인식함과 아울러, 그 사실에 대한 인간의 망각을 탄식하는 심정이 함께 곁들어져 있다. '인간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사역을 잊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깊이를 헤아려 보는 일을 중단하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위대성을 헤아려 보기를 포기하는가'(Barnes) ! 본 구절과 유사한 표현으로는 106:2; 112:2 등이 있다.

⭕ 주의 생각 -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획들 그리고 그 방법들을 뜻한다. 과거에 기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전적으로 의지할 만한 분이라는사실을 깨닫고 있다(Anderson). 한편 주의 행사의 위대하심과 그 생각의 깊고 오묘함에 대해서는 다윗(40:5), 이사야(사 55:9), 바울(롬 11:23)등도 찬탄한 바 있다.

성 경: [시92:6]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사에 대한 찬양]

⭕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 '우준한 자'의 히브리어는 '이쉬 바아르'(*)이며, '바아르' 그 자체만은 49:10; 73:22; 잠 12:1; 30:2 등에 나오지만 '이쉬 바아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온다. '바아르'가 집합적 개념으로 쓰이고 '잔인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바아르'에서 유래한다는 사실 때문에, 영역본 KJV는 '이쉬 바아르'를 맹수처럼 '사나운 사람들'(brutish man)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기질적으로 사나운 사람에 관해서 혹은 어느 학자의 주장처럼 단순히 아이큐가 낮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호와 경외에 뿌리를 두는 참다운 지혜를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잠 1:7). 여호와 경외가 없어 참다운 지혜가 없는 자란,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통치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자를 뜻한다.

⭕ 무지한 자(*, 케실) - 본 용어의 의미는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다른 시편의 문맥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1).

성 경: [시92:7]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악인의 궁극적인 멸망]

⭕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 '풀'(*,에세브)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풀'이지만 창조시의 푸른 식물 곧 모든 수목들 그리고 각종 꽃들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우기(雨期) 때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면 온 들이 푸른 나무들과 각종 꽃들로 아름다운 정원올 이루게 되는데, 본 기자는 바로 그 장면을 염두에 두고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악인도 일시적으로는 비내린 뒤의 들의 상황과 같이 번성하여 평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의인과의 차이점은 그 시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10:4)라고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나는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10:6)라고 교만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이미 기자가 상반절에서 악인의 땅위에서의 번영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악인이 땅위에서 다시 망하리라는 사실에 강조점이 숨어있는 표현으로 보면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여기에는 종말론적 성격이 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즉, 악인이 땅 위에서 번영하여 행복을 누리나 그 행복이 이생을 마친후에도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악인도 이 땅 위에서 번영할 수 있다. 그 번영의 정도는 의인이 시험에 빠질 정도로 대단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은 이 땅 위에서 뿐이요 결국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는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의인과 달리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73편).

성 경: [시92:8]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악인의 궁극적인 멸망]

⭕ 지존하시니이다 - 여기서의 '지존'(*, 마롬)을 직역하면 '높은 곳에'인데, 하나님에 관한 묘사를 함에 있어서 이처럼 부사를 사용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70인역(LXX)은 '마롬'의 일상적인 용례와 같이 '높은 곳에'가 아닌 '높은 분'으로 번역하여 '높은 곳에 계시나이다'가 아니라 '높은 분이십니다'로 번역하였다. 본절은 비록 짧지만 시편에 담긴 모든 교리가 의존하는 위대한 중심 진리를 말하고 있다. '영원히 계시는 초월자 하나님',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대들보가 된다(Calvin).

성 경: [시92:9]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악인의 궁극적인 멸망]

⭕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다 흩어지리이다 - 직역하면 '보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대적들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대적들이 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행자들이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다. 이 같은 표현은 우가릿 본문(Ugaritic texts)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오 바알신이여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당신이 쪼개버릴 것입니다. 보소서 당신은 당신의 대적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Dott). 시편 기자가 이 같은 가나안 예식서에 대해 익숙해 있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예식서의 내용을 빌어왔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기자의 관심은 이방 신 바알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 오로지 진정한 능력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악행자들이 멸망당하고 말 사실일 뿐이다.

성 경: [시92:10]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 성경에서 '들소의 뿔'이란 가공할 만한 힘을 상징한다(22:21; 욥 39:9). 따라서 하나님이 시인의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활력, 힘을 공급하셨음을 뜻한다. 대비가 되는 바로 앞절에 악인의 멸망 사실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은 시인의 번영, 명예 회복 등으로 보면 무난하겠다.

⭕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 여기서 '신선한 기름'(*, 쉐멘 라아난)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기름'인데 이것은 최고 품질의 기름을 뜻한다. 원래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대제사장이나 왕으로 선택한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의식 중의 중요한 순서이다(출 29:7; 삼상 10:1; Eaton). 그러나 문맥상 여기서는 시인이 기쁨으로 충만했던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방에서 축제일을 맞이하여 값비싼 양질의 기름을 서로 머리에 붓는 것은 잘 알려진 관습이다(23:5).

성 경: [시92:11]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 '원수'에 해당하는 '슈르'(*)는 구약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단어이다. 그 유사한 분사형으로 민 35:32; 렘 17:13; 미 2:8 등에 나타나는 '피한 자', '(여호와를) 떠나는 자',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 등의 의미를 고려할 때, 상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숨어서 기다리는 자'로 번역하면 되겠다. '눈으로 보며'는 대적의 멸망을 분명히 목격한다는 것인데 숨어있던 대적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멸망당한다는 사실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본절의 의미를 강조해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본절은 대적의 징벌당하는 장면을 득의 양양하게 비웃으며 감상한다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공의가 아주 명백하게 집행되는 것을 바라본다는 데에 그 초점이 있다.

성 경: [시92:12]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종려나무...백향목 - 저자는 악인의 멸망과 대비를 이루는 의인의 승리를 말하기 위하여 이 두 나무의 이름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두 나무의 특성과 같은 축복은 당시뿐 아니라 기자와 동일한 믿음에 참여하는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혜택이다. 이 두 나무는 푸르름, 무성한 생산력, 다함이 없는 왕성한 힘 및 영원성 등과 같은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어느 학자는 이 두 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뿐만 아니라 겨울의 냉기속에서도 종려나무는 연중 내내 그 푸르름을 유지한다. 그리고 백향목은 연수로 그 나이를 세지 않는다. 백향목은 세기(century)로 그 나이를 센다'(Tholuck). 기자는 늘 푸르고 늘 과실을 맺는 종려나무를 의인에 비유한 반면, 곧 시들고 말 풀을 악인에 비유한 바 있다(7절). 이외에 구약 성경에서 종려나무를 다른 무엇에 비유한 구절은 단 두 군데뿐인데 아 7:7은 '키가 훤칠한 신부에', 대조적으로 렘 10:5은 '꼿꼿하게 서 있는 우상'에 각각 비유하고 있다.

성 경: [시92:13]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 52:8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는 바, 의인이 여호와의 집에 심기운 그리고 궁전 경내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에 비유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집에서 받은 축복을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물질적인 축복과도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였었다(욥 42:12). 한편, 본절의 묘사가 실제로 성전 뜰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으로부터 따온 것인지를 규명하기란 어렵다. 어떤 학자는 본절의 묘사와 애굽 의식중 신상 앞에 나무가 심겨져 있었던 사실을 연관시키려 한다(Kraus).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묘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성 경: [시92:14]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늙어도 결실하며 - 이스라엘 백성 역시 장수하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소망하였는데, 그 최고의 모범은 죽을 때 그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모세였다(신 34:7). 그와 유사하게 여겨진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은 다윗이었다(대상 29:28). 저자는 여기서 경건한 자는 늙어서까지도 원기와 생산력이 있는 삶을 살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바,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는 모세와 다윗이라는 표본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 익으면 개당 평균 무게가 100kg, 최대로는 200kg까지 나가는 종려나무 열매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다(Perowne).

성 경: [시92:15]

주제1: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

주제2: [의인의 영원한 흥왕(興旺)]

⭕ 여호와의 정직하심 - '정직하심'에해당하는 '야솨르'(*)는 다른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기본적인 뜻은 '평평하다', '곧다'이며 기자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통치가 공평하고 의로울 것을 밝힘으로써 본 시편을 끝맺고 있다. 범죄하는 악인의 융성은 잠시뿐이나(7, 9, 11절) 의인의 기쁨과 번영은 영원할 것인데, 그 까닭은 바로 하나님이 공평하고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자가 하나님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존재로 삼고 그분을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진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인은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부정의 부정을 사용하여 본 시편을 맺는다. (119:3).

성 경: [시93:1]

주제1: [여호와의 견고한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

⭕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예화 말라크)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왕이 되신다'로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왕의 대관식 장면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삼하 15:10; 왕상 1:11; 왕하 9:13). 말하자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지만 이제 그의 왕국이 가시적으로 확립되고 그의 능력과 위엄이 충분히 현시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에 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계 11:15).

⭕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 고대 왕들은 흔히 그들의 찬란한 복장으로 때로는 고급 향수 냄새로(45:8) 범인(凡人)들과 구별됨을 나타내었는데 본구절은 하나님께서 그 탁월한 '권위'로 범인들과 구별되심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권위'는 문맥상 온 땅과 만유의 왕으로서 그 권좌에 오르시는 하나님의 권위로 보면 되겠다. 본절 중반절은 하나님이 권위를 입으셨다는 사실, 곧 그가 왕이시라는 사실을 반복하되 특히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왕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능력'이란 표현을 끌어오고 있다. '능력을 입으시며'라는 표현은 종종 전쟁과 관련된 개념을 암시한다(18:39; 삼하22:40).

⭕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 세계 창조와 그 섭리적 통치뿐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을 향한 공의의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96:10)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성 경: [시93:2]

주제1: [여호와의 견고한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

⭕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 '예로부터'에 해당하는 '메아즈'(*)의 문자적인 뜻은 '오래 전부터'이며 하반절의 '영원부터'(*, 마올람)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기자가 이말을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존재성과 대비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문맥상 이 말 역시 영원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본 구절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은 인간이 알수 없었던 곧 창조 사역이 시작되던 바로 그 옛날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성 경: [시93:3]

주제1: [여호와의 견고한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

⭕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 여기서 '큰 물', '물결' 등은 그 문자적인 뜻이 '물줄기', '강들'이나 시적인 평행법에서는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24:2; 렘 46:7, 8; 욘 2:3). 그리고 강이나 바다의 파도 혹은 그 소리는 적대 세력의 대항을 암시한다(Prowne). 그런데 기자는 그와 같은 세력의 행동을 묘사함에 있어서 계속해서 두 번은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마지막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개역 성경을 보아도 드러난다('높였고'...'높였고'...'높이나이다'). 문맥의 흐름은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악한 세력은 그 통치권에 대항하는 악한 세력을 암시한다. 바로 이 악한 세력이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항하되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계속 그 악한 도모를 일삼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기자는 이와 같은 시제변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93:4]

주제1: [여호와의 견고한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

⭕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 - 3절에서 주석했듯이 전자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항하는 대적의 세력을 암시하고, 후자는 '미쉬베레 얌 아디림'(*)으로 그 문자적인 뜻이 강력한 바다의 파괴자들이며 이스라엘의 행보를 가로막았던 홍해를 암시한다(합 3:10). 홍해와 같은 자연 세력을 포함한 모든 대적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들의 대적 행위를 물리치며 그들을 정복하실 수있다(65:7; 욥 38:11).

성 경: [시93:5]

주제1: [여호와의 견고한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영원하신 주권과 통치]

⭕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에도테카 네엠누 메오드 레베이트카 나아와 코데쉬 예화 르오레크 야밈) - 직역하면 '당신의 약속(증거)들은 매우 신실합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집도 마땅히 거룩합니다. 영원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문맥은 급박히 변하고 있다. 인간의 세력을 포함한 자연계의 통치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자애로운 은혜와 예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실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즉, 세계를 통치할 뿐 아니라 당신의 왕국을 설립하고 능력과 권세로 그 왕국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확실하고 신실한 말씀을 통하여 그 백성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다스리겠다고 약속하시고 또 직접 그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그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이처럼 약간은 장황한 내용을 간략한 두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본절의 내용 파악은 쉽지 않다.

성 경: [시94:1]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보수(報讐)하시는 하나님 - 여기서 '보수'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 '네카모트'(*)가 쓰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복수'를 의미하는 강조사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피억압 자를 구원하시고 억압자는 완전한 복수, 곧 철저한 형벌로 징벌하시는 분이시다.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는 그분의 복수하심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신 32:35, 이외에도 사 35:4;겔 25:15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시94:2]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일어나사(*, 힌나세) - 문자적인 뜻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이다. 마치 앉아계신 하나님에게 일어나기를 요청하는 듯한 이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은 악인에게 심판 내리기릍 소원하는 의인의 절박한 요청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76:9;사3:13). 그러한 요청을 하는 근거는 하나님이 '땅의 심판자'(창 18:25)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문맥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또 다른 표현으로는 '쿠마'(*), '우라'(*) 따위가 있다(7:6).

⭕ 교만한 자(*, 게임) - '일어 서다','쳐들다'는 의미의 가아'(*)와 연관을 맺고 있는 이 용어는 하나님에 대항하며 자신을 쳐드는 자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123:4;욥 40:11,12;사 2:12;렘 48:29). 이들의 죄의 내용은 헛된 교만뿐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완악한 태도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를 거절할 때 그들의 대인 관계는 왜곡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뜻이나 이웃의 사정과 관계없이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고 그것을 진헹시키려고 온갖 술수를 동원하기 마련이다.

성 경: [시95:3]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 여기서 '대저'는 '키'(*)로서 1,2절에 언급된 기쁜 마음과 큰소리로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접속사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크신'에 해당하는 '가돌'(*)은 일반적으로 '위대한'을 뜻하지만 이상 신들이 대비되고 천지 창조(4, 5절) 및 목자 개념(7절)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유일한 참신 및 창조주 그리고 그의 백성의 목자되시는 자애롭고 크신 권능의 하나님을 암시하는 형용사로 보면 되겠다.

⭕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 이방 민족이 섬기는 모든 헛된 우상들보다 크신 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출 15:11;18:11). 주의할 점은 본 구절을 표면적으로 이해하여 기자가 이방 신을 어떤 실제적인 힘을 지닌 실재(實在)적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일이다. 기자는 '이방신들도 어느 정도 힘이 있지만 하나님이 더 힘이 세다'라는 식의 상대적 비교 차원의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성 경: [시94:4]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야비우 예다베루 아타크) - 두 동사 '예다베루'(*), '야비우'(*)가 한 목적어 '아타크'(*)를 갖고 있는 형태이니, 정확히 직역하면 '그들은 교만한 것들을 내쏟고 말하였다'이다. '내쏟다'는 샘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인데, 여기서는 샘이 그 속에 가득한 물을 내쏟듯이 그 속에 가득한 교만을 독설로 내쏟는 악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 두 동사는 교만한 자가 거침없이 그 교만을 말로 토해내는 모습을 묘사할 때 흔히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삼상 2:3).

성 경: [시94:5]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 '파쇄 하며'에 해당하는 '다카'(*)는 흔히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욥이 그의 친구들의 말로 눌림을 당할 때 이 용어가 사용되었고(욥 19:2), 연약한 자가 왜곡된 판결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고통 당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잠 22:22). 본절에서는 그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자들, 곧 악인들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인해 억압 당함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143:3).

성 경: [시94:6]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 하며 - 법 집행 관리들의 대내적인 폭정의 한 예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약자 보호는 강한 자 그리고 법 집행 관리의 의무였다. 특히 과부, 나그네, 고아 등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82:3) 그들을 향한 학정이야말로 배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같은 학정은 특정한 한 시대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 전 역사 속에 일반화되어 있었다(사 1:15;렘 7:5;겔 22:7;미 3:1-4;말 3:5 등). 여기에서 '죽이며', '살해하며' 등의 서술적 표현들은 악한 관리들이 과부, 나그네, 고아로부터 생명과 같은 그들의 생필품을 늑탈하거나 문자 그대로 그들의 생명을 해하기까지 한 것을 뜻한다. 즉, 힘없는 계층인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소량의 소유마저 빼앗기 위하여 살상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악행자들의 비열하고 잔혹한 실상에 대한 암시로 보면 적절하겠다.

성 경: [시94:7]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

⭕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과 악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이다(10:11;73:11;욥 22:13). 이 같은 해석은 당시 이스라엘의 악한 관리 및 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있었던 것으로 간주케 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 믿음이 없었던 이유와 아울러 악행에 대한 보응을 즉각적으로 받지 않은 이유로 인하여 악행을 행하고 이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 고백은 무신론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선행을 하기보다는 가증한 소행을 일삼는 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성경 구절이 이것을 간접 지지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1).

성 경: [시94:8]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 '우준한 자들'(*, 보아림)은 '동물처럼 잔인하게 되다'는 뜻인 '바아르'(*)의 분사형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여 재번역하면 이렇다. '네 민족들 가운데서 마치 동물들처럼 잔인하게 행동하였던 자들이여'. 몇몇 영역본들은 '보아림'을 '(가장) 잔인한 자들'(ye brutish, KJV) 혹은 '가장 미련한 자들'(dullest, RSV)로 번역하고 있다. '백성'으로 번역된 '암'(*)을 항상 이스라엘로 국한할 필요는 없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있다.

⭕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 '모든 지혜의 근원인 바 여호와 경외하기를 언제나 배우겠느냐'는 뜻으로 이해된다(19:9;25:12). '언제나'로 번역된 '마타'(*)는 어떤 상태나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암시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악인이 여호와 경외하기를 잊고 악행한 기간이 몹시 길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야 한다.

성 경: [시94:9]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 하나님 자신이 그 같은 기능을 소유하지 않으신 채 듣는 기관을 창조하거나 보는 기관을 창조하실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본절은 하나님이 인간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인간과 유사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며, 따라서 그 어떤 악행도 하나님의 목전에서 속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에 그 의도가 있다. 하나님은 악인의 공개적인 악행뿐 아니라 숨겨진 악행 및 속삭이는 음모까지도 보고 들으신다.

성 경: [시94:10]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 열방을 징벌하는 자...징치(懲治)하지 아니하시랴 -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임의적으로 평행적 대구를 만들기 위하여 본절을 두개의 의문문으로 나누고 원문에 존재하지 않는 '그가 알지 못하시랴? '라는 구절을 후미에 삽입하고 있다(He that chastiseth the heathen, shall not he correct? he that teacheth man knowledge, shall not he know? , KJV;Does he who disciplines nations not punish? Does he who teaches man lack knowledge?, NIV). 그러나 굳이 이러한 변형을 시도하기보다는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원문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본 번역을 좀더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위대한 교육가, 곧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온갖 지식을 부여하신 자가 그들을 징책하고, 바로잡고 훈계할 권리가 없겠느냐? ' 이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도덕적 징치를 암시하는 말이다.

성 경: [시94:11]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 원문상 본절은 '왜냐하면'의 뜻을 지닌 접속사 '키'(*)를 첫 단어로 하는 하반절과 그 앞의 상반절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상반절을 번역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들을 아신다'이다. 그 뜻은 동물처럼 잔인한 악인들이 즐겨 상상하는 바처럼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모르시거나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며 잠시 동안 그 행위를 징벌하지 않고 두시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가장 은밀한 생각들까지 읽고 계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 구절을 고전3:20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하반절은 모호한 듯하지만 명사 및 대명사의 성(性)을 분명히 알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하반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헛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대명사 '그들'은 '생각들'이 아닌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명사 '그들'의 성(性)은 남성이어서 이 대명사가 가리키는 명사 역시 남성이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생각들'은 원문상 여성으로 되어 있고 '인간'은 남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복수이고 '인간'이 단수인 문제는 '인간'을 대표 단수로 보면 풀린다. 따라서 하반절의 적절한 번역은 '왜냐하면 인간들은 헛되기 때문이다'가 되겠다. 특히 여기서 '헛됨'으로 번역된 '하벧'(*)은 '호흡', '연약함' 따위를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재종합하여 본절 전체의 의미를 규정하면 이렇다. '인간은 호흡처럼 연약하고 그 능력이 제한된 존재이다. 심지어 그의 생각까지 제한되어 있고 빈약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유한한 생각들을 아시고 헤아리신다'. 결국 본절은 9,10절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Anderson).

성 경: [시94:12]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의인에게 내리는 복]

⭕ 주의 징벌을 당하며(*, 테야스레누) - 원형인 '야사르'(*)는 '가르치다', '교훈하다' 혹은 '징책하다'의 두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전자의 의미로 볼 때 상반절은 하반절과 동의적 평행구를 이루게 된다. 후자의 의미로 볼 때도 무리는 없는데 이것은 단기간의 징책은 신적(神的) 교훈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8-11절에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인의 행위의 우매함올 비난한 저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징책을 받고 있든 받지 않고 있든 간에 하나님의 법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복된 자임을 강조하고 있다(신 8:5;욥 5:17).

성 경: [시94:13]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의인에게 내리는 복]

⭕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 나게 하사...평안을 주시리이다 - 원문을 따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악인을 위한 구덩이가 다 파질 때까지, 역경의 날들로부터 그에게 평안을 주신다'. 보통 '구덩이'(*, 사하트)는 짐승을 잡기 위한 구덩이 혹은 지하 세계(음부)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상징적 의미인 '완전한 보복' 혹은 '완전한 멸망'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49:9, Anderson). 또한 '역경의 날들 동안'이란 하나님이 악인의 행위를 아직 심판하지 않으셔서 악인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기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본절은 비록 악인이 완전한 심판을 받는, 완전한 멸망의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자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성 경: [시94:14]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의인에게 내리는 복]

⭕ 여호와께서는...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기에는 5절의 탄원에 대한 응답이 요약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일시적인 삶의 어려움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그 영원한 유산을 잃지 않게 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배신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택한 것을 기뻐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택한 하나님 자신의 명예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너회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 12:22).

성 경: [시94:15]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의인에게 내리는 복]

⭕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아드 체데크 야슈브 미쉬파트) - 직역하면 '판결이 의에게로 귀결될 것이다'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판결은 결국에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명백히 드러내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좀더 포괄적인 범주에서 이 의미를 풀면 인간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며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의 편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영향력 때문에 죄로 인해 오염되긴 했지만 세상 속에는 의의 형태들이 존속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생의 행위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내려지고 마는 것이다.

⭕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 '마음이 정직한 자'란 하나님께 정직하며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키나 문맥상으로는 '의로운 자'가 되겠다(7:10;119:7). 한편 '의로운 자'가 좇아야 할 대상은 생략되어 있으나 '의'인 것이 분명하다. '의로운 자'가 '의'틀 좇아야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은 의의 편에 계셔서 '의'의 손을 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성 경: [시94:16]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누가 나를 위하여...치며...칠꼬 - 기자는 본 시편 앞부분에서 악인이 그의 땅에 침입해와서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유산을 유린했던 사실을 상기한 바 있는데(3-6절) 바로 그 시점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을 위해 일어나서 그 대적을 물리쳐 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같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적시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강조적으로 밝히기 위해서이다.

성 경: [시94:17]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키므아트 솨크나 두마) - 직역하면 '곧 침묵 속에 거하였올 것이다'이다. 여기에서 '침묵'은 문맥을 고려하고 또 본 용어가 '스올' 혹은 '무덤' 따위로 번역된 115:17 등을 참조할 때 '무덤'으로 번역해도 무난하겠다. 벌게이트역(Vulgate)이나 70인역(LXX)도 '음부' 혹은 '지옥'으로 번역하고 있다. 흔히 성경은 무덤을 '조용한 곳', '침묵의 땅'으로 묘사한다(암 8:3 참조).

성 경: [시94:18]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 이것은 갑자기 당한 상황이 아닌 점진적으로 되어온 최악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어뗬 위험한 일을 갑자기 당하여 지르는 탄성이 아니라 인내로 견디어 오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태에 이르러서 내뱉은 절망적 탄성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진, 거의 무덤 앞에 이른 듯한 상황'이라고 해도 되겠다(Barnes).

⭕ 주의 인자하심(*, 하스데카) - '당신의 견고한 사랑'이라고 번역하면 그 의미가 더 확실히 와 닿는다. 원형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이다. 즉,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배려와 사랑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에 고통당하는 그의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까닭은 바로 이 언약 때문이다(20:3;41:3 ;119:117).

성 경: [시94:19]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베로브 사르아파 베키르베) - 직역하면 '나의 안에 나누인, 혹은 수많은 생각들이 있는 가운데'이다. 이것은 혼란스럽고 근심스럽고 짐이 되는 많은 일들 때문에 헛되고 무익할 뿐 아니라 목적이나 방향도 없는 무수히 많은 공상과 잡념이 오고 가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욥 4:13;20:2).

⭕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 여기서 '위안'으로 번역된 '탄후메이카'(*)의 원형 '탄후밈'(*)은 강조 복수 명사로서 하나님(욥 15:11)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급된 위안(욥 21:2;사 66:11;렘 16:7)을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가득 차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당신께서 직접 혹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그 혼란을 제거하시어 그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는 것이다.

성 경: [시94:20]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요체르 아말 알래호크) - 직역하면 '율법에 의하여 해악을 꾸미는'이다. 율법의 그늘 속에 그 불의를 숨긴 채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즉, 율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체하면서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고려할 때 본구절은 '율법을 대항하여 해악을 도모하는'으로 의역해 볼 수도 있겠다.

⭕ 악한 재판장(*, 키세 하우오트) - 여기서 '악한'으로 번역된 '하우오트'(*)는 '파멸', '멸망이란 뜻도 내포한다. '입을 쩍 벌리고 있다'(5:9)는 의미로도 번역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용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삼킬듯이 달려드는, 그래서 그 상대를 삼켜 멸망시키는 어떤 존재에 대한 묘사를할 때 사옹되는 용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재판장'으로 번역된 '키세'(*)는 원래 '심판의 좌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문맥상 이 용어는 거짓된 정의의 가면을 쓰고 그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예배 공동체를 압박하는 악한 지도자를 묘사하는 용어로 보면 되겠다. 그 가진 권력을 남용하며 예배 공동체를 억압 멸망시키려는 악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큰 진노률 유발시키기 마련이다(사 10:1-4).

성 경: [시94:21]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저희가 모여...치려 하며 - 이에 해당하는 '야고두'(*)는 전쟁 용어인 '공격하다', '치다' 등의 뜻인 '가다드'(*)에서 유래된 단어이다(렘 5:17; 미 4:13). 그러나 본 구절은 전쟁에 대한 암시를 준다기보다는 기자를 멸망시키기 위하여 그 대적들이 마치 전쟁을 일으키듯 소란을 피우며 덤벼드는 모습을 묘사하는 구절로 보면 되겠다(Barnes).

⭕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려야 하나(*, 담 나키 야르쉬우) - 문자적인 뜻은 '결백한 피를 정죄하다'이다. 이것은 악한 재판장이 이득을 얻기 위하여 무죄한 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가리킨다(왕상 21: 8-16;마 27:4).

성 경: [시94:22]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이시요 - '예히'(*)는 흔히 '...가 되시며'로 번역되며 완벽한 확실성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본절의 경우 그런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확실히...가 되시며'가 정확한 번역이다.

성 경: [시94:23]

주제1: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의 불의]

주제2: [공의롭고 인자하신 하나님]

⭕ 끊으시리니...끊으시리로다 - 70인역(LXX)에서는 동일한 이 두 동사 중 하나를 생략한다. 아마 70인역 역자는 맛소라 본문(MT)이 중복 오사(誤寫)된 것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본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철저한 보응이 기필코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복법을 통해 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하겠다(7:16 등).

성 경: [시95:1]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우리 구원의 반석 - '반석'(*, 추르)은 하나님의 별칭으로 잘 알려진 용어이다(18:2,31,46;19:14;28:1;78:35;89:26;사 2:8;합 1:3). 또한 이 용어는 하나님께 대한 의존성 및 안전성을 시사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본 구절은 '그 반석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즐거이 부르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인 '루아'(*)는 '즐거운 소리를 내다', '개가를 올리다'는 문자적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신복의 예틀 표하자'란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사울의 대관식 때에 그 백성의 층성의 외침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동사이기 때문이다(47:1;삼상 10:24;습 3:14;슥 9:9).

성 경: [시95:2]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그 앞에 나아가며 - '나아가며'에 해당하는 동사 '네카마드'(*)는 '앞을 향하여 재촉하며 민첩하게 나아가다' 혹은 '만나다'는 의미를 지니며, 본문에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곳은 미 6:6이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가 기꺼운 마음으로 민첩하게 나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세라 하겠다(Perowne)

⭕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 여기서 '즐거이 부르자'는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소리를 내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을 근거로 하여 '시'를 '나팔'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70인역). 그렇다면 나팔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뜻이 되겠는데 큰 무리는 없는 번역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시'에 해당하는 '지므라트'(*)는 '노래', '찬양' 외에도 '기악'이라는 뜻도 내포하지만, 대다수 영역본들은 개역 성경과 유사한 번역을 취한다(psalms, KJV; songs of praise, RSV).

성 경: [시95:4]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아쉐르 베야도 메흐케레 아레츠) - 직역하면 '그의 손들 안에 땅의 깊은 처소들이 있으며'이다. 여기서 '손들 안'이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를 뜻한다. 그리고 '찾다', '탐색하다'의 뜻을 지닌 '하카르'(*)에서 온 '메흐케레이'(*), 곧'깊은 처소'란 외관상으로는 알 수 없고 파보아야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땅 속 가장 깊은 곳 따위를 가리킨다. 결국 본 구절은 인간의 일상적인 관측 능력 밖에 있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다스리는 영역 안에 있다는 것, 곧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성 경: [시95:5]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 여호와의 자연에 대한 통치는 그가 그것을 만드셨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이 그것의 주인은 바로 그분이시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성 경: [시95:6]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오라(*, 보우) -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임을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기자는 가장 겸손한 부복(俯伏)과 예배에로의 초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를 주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던 사실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지으신(*, 오셰누). 직역하면 '우리의 조성자'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인격적 언약 관계롤 암시하는 표현이다. 모세의 다음과 같은 꾸지람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들 간의 언약 관계를 망각한 사실을 겨냥하고 있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롤 내신(조성하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신 32:18).

⭕ 무릎을 꿇자 - '굽혀', '경배하며'와 의미상의 동의어로서 여호와를 향한 존경과 복종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Anderson).

성 경: [시95:7]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예배와 찬양에로의 초청]

⭕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 문자적인 뜻은 '우리는 그의 목장의 백성이요 그의 손의 양이라'(we are the people of his pasture, and the sheep of his hand, KJV)이지만, 문자적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금 어색하므로 다음과 같이 고쳐 번역함이 좋겠다. '우리는 그의 손의 백성이요 그의 목장의 양이라.' 본 구절의 원문은 비유와 상징의 대상이 서로 혼합되어 있는 경우라 하겠다.

⭕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 외관상 본 구절은 다음 절과 연결시켜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전후 문맥과의 관계를 고려한 본 구절의 의미 규정에 관한 견해는 몇 가지로 나뇐다. (1) 문자 그대로 보아서 본 구절올 일종의 소원,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라는 소원을 뜻하는 구절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경우는 '그리하면 네가 잘되리라' 정도의 의미가 생략된 것을 가정한다. (2)본 구절을 '만일 네가 그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면'을 뜻하는 조건절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경우 8절의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는 귀결절이 되겠다(70인역, 제롬 등). 이 같은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신약 성경의 구절로는 히 3:7, 8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3)'대저...양이라'를 삽입구로 처리하고 본 구절을 6절과 연결시키는 견해이다. '....여호와 앞에 무릎올 꿇자. 만일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면.' 이러한 세 가지 견해 중 그 어느 견해를 취하더라도 느낄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은, 본 구절에는 성전 예배의 기쁨과 즐거움이 계속되던 분위기를 깨는 경고와 교훈조의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두 가지 목적 때문에 본 구절을 포함한 본 시편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예배 공동체가 마땅히 드려야 하는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다른하나는 가르치고 경고하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본 시편은 대부분의 시편처럼 일종의 예식서일 뿐 아니라 한 편의 설교인 것이다. 한편 예언서적인 특성도 두드러지고 있다. 모든 진실된 설교자들처럼 기자는 그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말하는, 하늘로부터 온 대사와 같은 모습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오늘날 - 이 표현에 관해 어떤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본 용어는 예를 들면 이어지는 절들에 암시된 바, 광야 시대 동안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고 거역하였었던 시대를 연상케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Bleek). 그러나 본 용어는 특정한 역사상의 위기뿐만 아니라 본 시편이 공예배에서 사용되는 모든 순간들에 적용될 수 있다(히 3:7,Alford). 한 마디로 본 용어는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진 시대와 같은 중요하고 결정적인 현재의 상황 혹은 본 시편이 작성되었던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아울러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이해된다(Perowne).

성 경: [시95:8]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역사적 교훈을 통한 경계]

⭕ 므리바 - 원어상의 뜻은 '다툼(혹은 겨룸)의 장소'틀 의미하며, 출 17:1 이하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혹함으로써 하나님을 격노케 한 후 모세가 그 장소에 붙였던 이름이다(106:32;출 17:7). 출 17:7을 근거로 하여 혹자는 '므리바'와 '맛사'는 한 지역에 대한 서로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학자는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이 두 곳은 서로 다론 곳이라고 주장하지만(North), 확실한 단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적어도 '므리바'는 시온 광야 안에 있던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민 27:14;신 32:51;겔 47:19;48:28).

⭕ 광야 - 물이 고갈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두 번째로 불평했던 가데스 인근 지역인 신 광야를 뜻한다(민20:1, Perowne).

⭕ 맛사(*, 마사) - '시험하다', '입증하다'를 뜻하는 '나사'(*)에서 유래된 용어로 '시험'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Johnson). 70인역(LXX)은 '유혹'으로 번역하고 있다(신 6:16).

성 경: [시95:9]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역사적 교훈을 통한 경계]

⭕ 나를 시험하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지 혹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는지를 의심하여 하나님을 시험의 대상으로 삼았던 광야 시대의 한 사건을 암시하는 표현이다(출 17:1;민 20:1). 그 후 세대들은 이 사건을 불신의 전형으로 보았다(78:18,41,56)

⭕ 나의 행사 - 기적 같은 구원, 심판 따위를 포함한 이스라엘 민족을 유지함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행동들로 보아야 한다(Perowne, Anderson). 광야에서 물을 선물로 준 한 사실로만 국한시키는 학자도 있으나(Boylan) 그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행사'에 해당하는 '파알리'(*)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78편).

성 경: [시95:10]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역사적 교훈을 통한 경계]

⭕ 내가 사십 년을 - 히 3:9에 본 구절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곳에서는 본 구절과 앞절을 연결시켜 놓고 있다:"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본 구절 앞에는 의미상 '그러므로'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 근심하여(*, 아쿠트) - 혐오, 구역질 따위의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강한 표현이다.

⭕ 마음이 미혹된(*, 토예 레바브) - 직역하면 '그 마음이 헤매이고 있는'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의 방황은 그들의 내적 방황에 따르는 필연적인 징벌 때문이었음을 반영한다. 동일한 표현을 107:4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내적 방황'이란 다름아닌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됨으로 인해 스스로 갈피를 못잡고 헤매는 상태를 가리킨다.

⭕ 내 도를 알지 못한다 -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의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따라서 본 구절 앞에는 '왜냐하면'이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도'(*,데레크)의 문자적 의미는 '길', '도로'이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쏨을 퉁해 계시된 지침 혹은 보다 포괄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곧고 평탄한 한 길 곧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한 것, 그것이 바로 구불구불한 길과 같은 광야에서 방황한 이유이다.

성 경: [시95:11]

주제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찬양과 불신에 대한 경고]

주제2: [역사적 교훈을 통한 경계]

⭕ 내 안식 들어오지 못하리라(*, 임 예보운 엘 메누하티) - 여기서 '임'(*)은 부정사(not...) 역할도 지니는 말이나 조건문을 이끄는 접속사(if...)로도 사용된다. 여기서 본문을 조건문으로 번역해 보면, '만일 그들이 나의 안식으로 들어간다면'이 된다. 히브리 어법에서 그 맹세의 일부 내용이 생략된 이 같은 조건문은 강한 부정과 맞먹는 의미를 지닌다(Alexander). 그렇다면 이렇게 번역될 수 있겠다.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으로 들어올 수 없으리라.' 또한 '메누하티킥'(*). 곧 '나의 안식'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처소를 뜻하지만(132:8,14) 문맥상으로는 광야에서 방황 이후 있을 안식의 터전으로서 약속된 땅, 가나안이 적절한 의미이다(신 12:9). 약속된 가나안 땅은, 영적 안목에서 보면, 하나님의 언약을 준수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결코 그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본절의 경고는 주님 재림 때까지 오고 가는 모든 세대 중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모든 인류를 겨냥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처럼 본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말씀은 심판의 경고임에 분명하지만, 이와 아울러 여호와의 메시지를 경청하여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도록 이스라엘 회중에서 권면하는 적극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M. A. Tate).

성 경: [시96:1]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새 노래 - '새로 지은 노래' 라는 뜻보다는 '날로 새롭게 북받쳐 오르는 노래','다함 없이 늘 새로운 노래'를 뜻한다 하겠다(33:3;98:1;144:9;사 42:10 참조).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끊임없고 아침마다 새롭듯이(애 3:22,23), 하나님께 대한 찬양도 늘 새로워야 한다는 의미이다(Anderson). 한편, 온 땅(*, 칼 하아레츠)은 그 위에 거주하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나 여기서는 시인이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3, 10절 참조).

성 경: [시96:2]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그 이름을 송축하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이름이란 그 존재의 속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 참조). 따라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라는 깃은 그분의 속성을 알고 그분께 찬양을 돌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밝혀주는 대표적 이름으로는 '엘로힘'(*)이 있는데 이것은 만물의 창조주와 보존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고, 또 다른 이름 '엘 솨다이'(*) 는 자연을 은혜로 복속시키는 능하신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며, '예화'(*)는 언약에 신실하신 은혜로운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그리고 '체바오트 예화' (*)는 조직화된 천군 천사들에게 옹위되시어 전 우주를 통치하는 전능하신 이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지칭한다. 이외에도 하나님의 이름들 및 그에 따르는 의미들은 풍성한데 이러한 것들을 더 풍성히 알고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그 내용이 더 풍성하고 깊고 올바른 찬양이 될 것이다(출 3:7-15강해, '하나님의 이롬' 참조). 특히 본 문맥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다.

⭕ 구원(*, 예슈아토) - 문자적인 뜻은 '그의 구원'이다. 본 용어는 원래 위험 가운데 있는 그의 백성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할 때 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좀더 근본적 의미의 구원, 곧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까지 암시한다. 따라서 본절이 하나님 찬양을 위해 초청하는 대상은 그 구원의 혜택을 받게 되는 모든 성도가 되겠다(Barnes).

성 경: [시96:3]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영광(*, 카보드) - 본 용어는 뒤에 나오는 '기이한 행적'과 평행을 이루는 용어로 사용되었다(9:1). 이 두 용어는 여호와의 창조사역(136:4 이하)과 그의 구원 사역(2절)을 찬양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66:2). 본절에서 저자는 여호와의 구원 사역 및 창조 사역의 경험을 세상 온 백성과 함께 나누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청하고 있다(사:66:18).

성 경: [시96:4]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 '광대하시니'에 해당하는 '가돌'(*)은 주로 '크다'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묘사하는 말로도 많이 사용되었다(창 45:7;출 14:31;32:11;신 9:29;삿 2:7 등). 문맥상 하나님의 창조 사역 및 구원 사역, 바로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 이 같은 표현은 본 시편 기자가 다른 이방 신들의 존재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헛것이었음이 분명하다(5절). 이방 신들의 허탄함과 무용성에 관해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 절대적 무용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사41, 44장이다. 한편, 다신교적 배경을 안고 있는 이방 문서들 속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우월함을 인정하는 글귀가 발견된다(Kraus).그러나 본 시편 기자가 그 문서들을 참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비교가 아닌, 절대 참신이신 하나님을 강조적로 증거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굳이 다른 문서를 참조했다면 대상 16:25이 그 출처일 것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성 경: [시96:5]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 열방의 신들은 인간이 만든 것임에 비해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의 능력과 위엄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다. 따라서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하고 있는데, 그 비교는 절대적이요 극한적 차이를 부각시킨다(Alexander).

성 경: [시96:6]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위대성에 대한 찬양]

⭕ 존귀와 위엄(*, 호드 웨하다르) - 이 한 쌍의 용어들은 왕적 권위를 묘사할 때 사용되곤 한다(21:5;45:3104:1;111:3).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세상의 왕을 수종드는 신하들처럼 왕 되신 하나님을 수종드는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보다 더 분명한 것은 존귀와 위엄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이다(Anderson). 다시 말해서 존귀와 영광의 진정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들을 하나님의 현현(顯現)에 관한 묘사로 보기도 한다(Weiser).

⭕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가 드디어 다윗 성에 안착한 직후의 다윗의 찬양을 기록하고 있는 대목인 대상 16:27과 유사한 구절이다. 여기서 '능력'으로 번역된 '오즈'(*)는 역대 상의 기록과 동일하며, '아름다움'으로 번역된 '티프에레트'(*)는 그곳에서 '헤드와'(*), 곧 '즐거움'으로, 그리고 여기서 '성소'로 번역된 '미크다쉬'(*)는 그곳에서 '마콤'(*), 곧 '처소'로 각각 되어 있다. 이러한 약간의 변형은 본 시편 기자가 자신이 현재의 시편을 쓰는 시점의 상황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역대상의 내용을 바꾸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며, 그가 본 시편을 쓴 시점의 상황은 역대상의 기록 시점과 유사한 포로 귀환 이후의 성전의 재봉헌 무렵이라는 것 역시 추론케 한다. 여기에서 '능력'은 하나님의 처소가 능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아름다움'은 성전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곳임을 각각 암시한다(Barnes).

성 경: [시96:7]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찬양]

⭕ 만방의 족속들 - '족속들'에 해당하는 '미쉬페호트'(*)는 원래 혈연적 유대로 하나가 된 친족을 가리킨다. 이 사실을 고려해 보면,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예배가 서로 관계없이 이곳 저곳에서 모인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와 애정을 나눈 가족처럼 강한 일치감을 갖는 자들에 의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호칭은 천상적 존재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29:1).

성 경: [시96:8]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찬양]

⭕ 예물을 가지고 - 성전 예배 장면으로부터 취한 표현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자는 그분의 위엄과 영광에 걸맞는 예우(禮遇)와 자세로써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예물을 동반하는 것은 동방의 풍속을 반영해 준다. 동방에서는 왕에게 나아갈 자격을 얻었을 때 반드시 예물(선물)을 지참하도록 되어 있었다(45:12;68:29;72:10).

⭕ 그 궁정에(*, 레하츠로타이우) - 직역하면 '그의 궁정들에'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러 개의 뜰이 있었으며 특히 헤릇 성전의 경우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 그리고 제사장들의 뜰 등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이제 기자는 이 모든 뜰을 개방하듯이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의 뜰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이 함께 뜰에 있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Davies). 아마도 이러한 복수형 사용을 통하여 저자는 미래에 있을 이방인의 복음 참여를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성 경: [시96:10]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

⭕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 새 시대가 열려서 참통치자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시작할 때 초래될 현상 중의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 즉, 본절의 상,하반절을 통해 짐작하건대 본문은 다분히 종말론적 성격까지 내포하는 바, 의와 공평으로 특징지워질(9:8;17:2;58:1;75:2;98:9;99:4 참조) 여호와의 완전한 통치를 암시한다(Kidner). 아울러 본문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 우주 만물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굳게 서 있게 된 사실을 찬양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성 경: [시96:11]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

⭕ 하늘...땅...바다 - 태고 이래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실체들, 곧 이 무생물까지도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 시대를 위한 찬양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있는 본문은 히브리 시 특유의 웅장함을 더해 주는 의인법적 표현이다(12절;사35:1;42:10;44:23;45:8;49:13). 여호와 시대의 도래 및 그의 왕국의 확립은 손상된 모든 피조 세계의 조화까지도 회복시킬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그 위대한 완성을 고대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피조물의 고대(苦待)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맡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룻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19-21).

성 경: [시96:12]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

⭕ 밭과...즐거워할지로다 - 지구 위의 많은 땅 가운데 특히 인간에 의하여 경작되고 있는 부분이 찬양대의 일원으로 초대되고 있다. 밭이 찬양할 내응은 그 소출의 풍성함, 아름다음 등이 될 것이다.

⭕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즐거이 노래하리니 - 밭이 즐거이 노래할 때 나무들이 노래한다는 것은, 밭과 나무가 마치 성가대가 서로 화답하는 찬양을 드리듯이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그 가지, 열매, 줄기, 잎사귀 등은 아름다움, 풍성함, 웅장함, 섬세함 등을 인하여 노래할 것이다.

성 경: [시96:13]

주제1: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찬양]

주제2: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

⭕ 임하시되(*, 바) - 직역하면 '임하고 계시다'이다. 이와같이 현재 진행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한 까닭은 마치 현재 그 눈앞에 나타나시듯 여호와의 도래를 좀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래는 심판을 위한 도래이나 동시에 구원을 주기 위한 도래이기도 하다. 의와 신실의 심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평화는 사 11:1-9에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성 경: [시97:1]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 본 시편의 주제인 여호와의 도래 및 그의 온 세상을 향한 통치를 한마디로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바로 앞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통치의 날이 가까왔음을 말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통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었는데 이제 본 시편에서는 바로 그 통치의 날이 시작된 듯이 묘사하고 있다.

⭕ 허다한 섬 - 여기서 '섬들'이란 일차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섬들 및 그 해안가를 뜻하지만(72:10의 경우처럼), 문맥을 고려할 때 이사야서 후반부의 경우들처럼(사41:1,5;4:4;49:1;59:18 등) 좀더 포괄적인 의미인 '이방 나라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Perowne).

성 경: [시97:2]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구름과 흑암 - 하나님의 현현(顯現)이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에게 나타난 최초의 경우는 구름이 빽빽했던 시내 산에서였다(신 4:11). 이후에 후기 선지자들과 시편 기자들은 여호와의 도래를 묘사할 때 바로 시내 산 현현으로부터 그 이미지를 빌어오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현현과 관련한 이러한 은유적 표현은 두렵고 떨리는 '여호와의 날'에 관한 후대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욜 2:2;습 1:15;계 11:5). 또 시편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구름과 흑암으로부터 우박과 숯불 혹은 화살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3절 ;18:12,13;50:3;77:17;106:18 등). 여기서는 불의의 세력에 대해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또한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초월성에 대한 경외와 신비를 암시하기 위해서 이러한 묘사가 나오고 있다(왕상 8:12;대하 6:1; 욥 22:13,Kidner).

⭕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 '기초'(*,메콘)는 어떤 물체를 떠받들고 있는 버팀목, 기둥 따위를 가리킨다. 고대 므깃도에서는 왕이 앉는 보좌가 스핑크스들에 의하여 떠받들어지고 있었다고 한다(ANEP). 아무튼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공평이 그 특징임을 암시해 준다(89:14).

성 경: [시97:3]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불 - 하나님의 현현 묘사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50:3;출 19:18; 24:17;신 5:4;9:10,15;18:16). 본 비유의 이미지는 화산의 활동보다는 천둥, 번개의 모습으로부터 따온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단순한 '불'(출 19:18)뿐 아니라 '삼키는 불'(신 4:24) 가운데 나타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본절에서는 그 불 이 사면의 대적을 사른다고 했으니 이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합 3:5).

성 경: [시97:4]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떨었도다 -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뇌우(雷雨)는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현상이었는데, 특히 성경에서 천둥은 여호와의 음성에(29:3;104:7), 번개는 그의 화살과 창에(144:6;합 3:11) 비유되곤 했다. 여호와의 번개는 그 현현의 급작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밝혀(77:18) 모든 은밀한 악행들까지도 낱낱이 밝혀 내심을 암시하기도 한다.

성 경: [시97:5]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산들이...녹았도다 - 안정의 상징인 산들이(30:7) 여호와의 임재 앞에 녹았다는 것은 여호와의 위용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즉, 악인들이 가장 안전하고 튼튼한 의지처라고 믿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Kidner)

⭕ 온 땅의 주(*, 아돈 콜 하아레츠). - 본 호칭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하였을 때 단지 한 지역 혹은 한 나라의 이방 신들로부터 자신들의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강조적으로 법궤를 '온 땅의 구주 여호와의 법궤'로 불렀던 수 3:11,13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후 본 호칭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여호와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는데(미 4:13;슥 4:14;6:5), 본 문맥에서도 바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시97:6]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하나님의 임재]

⭕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 이것이 하나님의 오심의 종국이자 목표이다(50:6).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는 날, 그 철저한 심판 행위는 온 세상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77:14;79:10;98:3). 본 구절과 동일한 용어가 바벨론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을 설명할 때도 사용되었는데(사 35:2;40:5; 52:10 ;66:18), 이것을 보면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 곧 귀환 사건은 하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은 종국적 심판의 모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성 경: [시97:7]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악인의 수치]

본절에서 시인은 유일하고 참된 신이 신 여호와께만 예배드릴 것을 만백성에게 권고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우상 숭배를 계속 고집한다면 수치와 파멸을 당하게 될 뿐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에는 우상들의 허구성과 무익성이 밝혀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들은 그 숭배자들을 전혀 구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25:3;37:20; 사 1:29;미 3:7).

⭕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히쉬타하우 로 칼 엘로힘) - 문자적인 뜻은 '모든 신들아 그에게 경배하라'이다.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나오는 본 구절, 특히 여호와를 경배할 대상이 이방 신들이라는 문자적 의미는 해석자들을 당황케 만든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신들'이 우상 혹은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고 어떻게 보든 본문 해석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Anderson, VanGemeren 등). 그런가 하면 시리아역(SyriacVersions). 70인역(LXX) 등은 여호와께 경배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여 '신들 '을 '앙겔로이'(*, 천사들)로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의 경우 본 구절이 신약의 한 부분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고 '신들'이 '천사들'로 번역된 사실을 더 발전시킨다(Delitzsch). 히 1:6에는 본 구절과 동일한 구절이 있는데 그곳의 문맥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있을 천사들의 찬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독생자 예수께서 심판자로 재림하실 때 모든 천사들이 그에게 찬양하고 경배하여야 할 것을 말하는 대목에서 본문과 동일한 구절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본문의 '신들'은 '천사들'이며 '그에게'의 '그'란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본 구절의 자체 해석이라는 면으로만 볼 때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이나, 문맥을 고려할 때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없어진다. 본 구절을 제대로 해석하는 출발점은 문멕에 대한 고려이다. 우선 본 시편 전체의 믄맥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이며, 본절 상반절은 참 예배 대상에 대한 예배자의 혼란을 다루고, 다음절은 참 예배 대상을 바로 택한 백성의 기쁨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배 대상에 대한 혼란을 멈추고 참 예배 대상을 찾아 권고적 명령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하자면 모든 이방 예배자들이 혼돈에 빠져 있으므로 이제 그들의 모든 예배 대상을 엎어버리고(마치 여호와의 법궤 앞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버렸듯이) 온 우주의 주이신 그분 앞에 부복해야만 한다는 의미를 다소 역설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라 하겠다.

성 경: [시97:8]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의인의 자세]

⭕ 듣고 기뻐하며 - 4절의 '땅이 보고 떨었도다'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여호와의 도래는 경외와 두려움이 가득한 이미지들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여기서처럼 뛸듯이 기쁜 즐거움으로 기꺼이 환영하는 광경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믿지 않던 자들은 주의 재림의 때를 두려움과 고통으로 맞게 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그때가 바로 구원의 때임을 예수님도 말씀하신 바 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올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눅 21:27,28).

성 경: [시97:9]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의인의 자세]

⭕ 주는 지존하시고(*, 아타...엘레온) - 여기서 '엘레온'(*)은 형용사로 '높은', '가장 높은'을 뜻하거나 하나님의 호칭으로서 '지존자'를 뜻한다. 이런 양자 택일의 가능성 때문에 본문은 '당신은 지존자이십니다' 혹은 '당신은 높으시고(지존하시고)'로 번역되고 있는데, 하반절 '당신은 매우 뛰어납니다'와의 평행을 고려할 때 후자의 번역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성 경: [시97:10]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의인의 자세]

⭕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 왕이자 심판자이신 여호와의 도래가 가까왔음을 골자로 하는 선포를 해오던 기자는 이제 그 도래의 긴장 속에서 본 시편의 독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을 미워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악을 미워함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사랑을 입증해 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악은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해야 하며 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참 하나님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본 구절만큼 명확이 밝히고 있는 곳도 드물다(사 1:16-20;요일 1:6, 7과 비교하라).

⭕ 성도의 영혼을...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 성경 여러 곳에서 이같이 말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이 말씀이 항상 진리인 것 같지는 않을 때가 많다. 말하자면 성도는 악인으로 인하여 자주 핍박을 당하고 손해를 입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종말론적 의미에서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즉, 이제 하나님은 심판자로 이 세상에 임하실 터인데 그 심판 뒤에 성도는 영원히 악인의 손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구원 이후 악인은 성도를 다시 핍박하거나 손해를 주지 못한다.

성 경: [시97:11]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의인의 자세]

⭕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기쁨을 뿌렸도다 - 여기에서 '뿌리고'(*,자레아)는 문자 그대로 '흩다', '분산시키다'를 뜻하며,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을 연상시키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흔히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을 암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의를 뿌린다거나(잠 11:18), 죄를 뿌린다거나(잠 22:8), 해악을 뿌리고(욥 4:8),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거둔다는 식의 언급 속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본절은 빛과 기쁨을 뿌리고 그 적절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심판주로 임하시기 전까지는 의인의 삶의 환경이 암흑과 같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뿌린 씨앗이 당장은 눈에 안 보여도 열매를 맺기 위해 자라가듯이, 이미 빛과 기쁨의 씨앗이 뿌리워졌으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열매도 자라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암흑은 기쁨을 맞기 전에 잠시 맛보는 암흑일 뿐이다. 현재 의인에게 혹 재앙과 환난이 따른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평화와 숭리가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 '빛'은 종종 구원(27:1;사 9:2) 혹은 일반적 의미에서의 축복(118:27;사 58:8,10;60:1 참조)을 상징한다(Anderson).

성 경: [시97:12]

주제1: [의인을 위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

주제2: [의인의 자세]

⭕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 본 시편은 서두와 같이 기쁨에로의 초청으로 끝맺고 있다.

⭕ 그 거룩한 기념(*, 레제케르코데쇼) - 본 문맥에서 이 용어는 분명히 그 거룩한 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을 가리킨다(135:13;출 3:15). 그분의 모든 것, 그분의 인간을 향한 계획 등을 상기케 하는 이름, 그 이름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본절 상반절은 32:11 상반절과 거의 유사하며, 하반절은 30:4과 동일하다.

성 경: [시98:1]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새 노래 - 96: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 시편의 저작 시기에 관한 견해로는 바벨론 포로 이후와 출애굽 이후가 있다. 후자의 경우 70인역(LXX)이 본 시편의 표제어를 '다윗의 시편'으로 붙이고 있는 사실과 시리아역(Syriac Versions)이 역시 그 표제어를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으로부터의 구원 사실에 관하여'로 붙이고 있는 사실에 그 주장의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전자의 경우는 후자에 비해 그 근거가 더 불확실하다(Kissane). 그렇다면 '새 노래'란 출애굽의 구원 사실, 곧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숭리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물론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승리를 회상하는 시점은 츨애굽 직후이거나 그보다는 멀리 떨어진 다윗 시대일 수 있겠다.

⭕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키 니플라오트 아사) -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가 기적 같은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찬양을 받으셔야만 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말하고 있다. '기적 같은 일'이란 언약 백성을 구원하신 과정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 여호와의 승리로 2,3절에 묘사되어 있다(9:1; 78:11).

성 경: [시98:2]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구원을 알게 하시며 - 실제적으로 구원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확실히 알게 하셨다는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알았다는 표현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어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실제로 구원을 체험한 것에 근거한 앎을 말한다.

⭕ 그 의를...명백히 나타내셨도다 - 본문은 본절 전반절과 평행을 이룬다. 따라서 본문의 '의'는 '구원'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면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것이다. 특히 사 40-55장은 본 시편과 유사한 구절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 두부분(사 46:13;51:5,6,8)은 그 내용이 유사할 뿐 아니라 '의'와 '구원'을 서로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다. 바로 이 여호와의 구원 사실을 단순한 소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의 현장에 있음으로 해서 열방이 명백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 본구절의 강조하는 바이다(사40:5;52:10).

성 경: [시98:3]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인자와 성실 - '인자'(*, 하스도), '성실'(*, 에무나토)이라고 하는 이 두 단어는 언약 용어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후 그들의 반응과 성실성의 여부에 관계없이 그 약속을 철저하게 수행해 나가시는 사실을 암시하는 용어인 것이다(26:3;36:5; 51:1;89:1).그렇다면 본절의 '이스라엘 집'도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호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15:12;135:19). 한편,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70인역(LXX)은 '인자와' 뒤에 '야곱을 향하신'을 삽입하여 본절 상반절을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언약적 성실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구절로 만들고 있는데 그 내용은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야곱을 향하신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이다.

⭕ 땅의 모든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 이스라엘의 구속이 열방, 곧 온세계로 하여금 여호와께로 돌아올 기회를 갖게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사45:22).

성 경: [시98:4]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온 땅이여 -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세계 만방에 알려진 사실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2,3절). 따라서 이제 만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찬양을 돌릴 것을 촉구한다(VanGemeren).

⭕ 소리를 발하여(*, 파차흐) - 이는 '큰소리를 내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다'등을 뜻하는데 문맥상 어떤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 둘 수 없을 만큼의 큰 나팔 소리, 기쁨의 소리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면 되겠다. 이곳 외에 사 14:7;44:23;49: 13;52:9;54:1;55:12 등에도 이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공히 억누를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의 소리를 뜻한다.

성 경: [시98:5]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수금 - 그 모양이 오늘날의 하아프와 같은 것으로서 대개 열 개의 줄이 달린 현악기라고 한다(Josephus). 이 악기는 세속적인, 그리고 종료적인 용도에 모두 쓰였다(43:4;사 23:16).

⭕ 음성(*, 콜 지메라) - 문자적인 뜻은 '시편(악보)의 소리'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악기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의 가사를 동반한 음성도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내용의 가사가 읊어질 때에는 반드시 그 마음의 진심이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성 경: [시98:6]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나팔(*, 하초체로트) - 그 모양은 직선형으로서 은이나 기타 금속으로 만들어졌다(민 10:2). 주로 예배를 위한 대중 집회 소집이나 전쟁을 위한 군대 모집을 위하여 사용되었는데 축제 행렬의 흥을 돕기 위해서도 사용되곤 하였다(왕하 11:14). 그 소리는 마치 가죽 부대가 터질 때 나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 호각(*, 쇼파르) - 구약 성경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악기 중의 하나로서 약 70회 가량 언급되고 있다. 대체로 양의 뿔로 만들었으나 후대에는 야생 염소 따위의 뿔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 악기는 '클라리언'(clarion)과 같은 악기의 소리, 즉 맑으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Barnes).

성 경: [시98:7]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바다...외칠지어다(*, 이르암 하얌) - 직역하면 '바다여 천둥치는 소리를 내어라'이다. 한편, 천둥치는 소리를 내는 바다를 고분고분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피조물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Anderson). 또한 짐승이 포효(咆哮)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묘사되는 파도가 하나님의 대적처럼 여겨지는 시편도 있기는 하다(93:3). 그러나 여기서 시인이 바다까지도 찬양의 대열에 초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세계(*, 테벧). - 일반적으로는 문자 그대로 '세계', '세상'을 뜻하나, 바로 앞에 바다가 언급되고 있으니 그와 대비를 이루는 세계인 인간이 거주할 만한 온 땅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본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바다 및 온 땅까지도 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열에 참예하게 될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성 경: [시98:8]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큰 물이 박수하며 - '큰 물'에 해당하는 '네하로트'(*)는 일반적으로 땅 위에 흐르는 '강들'을 가리키는데 어떤 역본들은 '홍수'로 번역하기도 한다 '네하로트'를 '홍수'로 번역하는 역본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경우, 이 말이 창세 전 혼돈 상태에 있었던 물들을 상기시킨다고 주장한다. 어쨌거나 본절은 무생물인 그것이 손뼉을 친다고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 손뼉치는 행위는 왕에 대한 환호의 한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는데(왕하 11:12), 결국 이 행위는 왕을 향한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47:1;사 55:12). 물론 이 동작이 악의적인 기쁨을 암시하고 있는 구절도 있다(겔 25:6;나 3:19).

⭕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 바다와 육지(땅)가 그랬듯이(7절) 강들과 산악도 전체 피조 세계에 대한 일종의 시적인 묘사라 할 수 있다.

성 경: [시98:9]

주제1: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

주제2: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권고]

⭕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키 바 리쉬포트 하아레츠) - 직역하면 '그가 땅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이다. 본문은 지금까지 본 시편 전체를 통하여 표현된 사실, 곧 하나님께서 이방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 그리고 땅 위에 호흡하고 사는 모든 인생들 및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다.그 이유는 하나님이 땅을 심판하기 위하여 강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 강림은 최종적 대구원, 최종적 승리를 거두기 위한 종말론적 주님의 재림을 다분히 암시한다. 애굽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을 통하여 그 실체가 이미 조금은 소개되었다. 즉, 주님의 재림의 때에 주의 백성들은 영원한 구원을 받을 것이요 주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터인데, 특히 본절은 주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날 하나님의 심판은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기쁨을 기대케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심판은 의와 공평으로 특징지어지는 심판으로서 모든 그릇뒨 우려를 추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67:4). 본절은 96:13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성 경: [시99:1]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 93:1 주석을 참조하라. 본 시편은 왕이신 여호와의 도래를 축하하는 일련의 시편들(93-99편) 중의 마지막 시편이다. 이 시편들은 '여호와는 왕이시다'로 시작되었는데(93:1) 이제 그 종결 시편도 '여호와는 왕이시다'로 시작되고 있다.

⭕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 이 이미지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였던 언약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VanGemeren). 언약궤의 뚜껑은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그룹 둘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서있었다(출 25:10-22). 특히 언약궤 위에 연결된 그룹들의 날개와 궤 뚜껑이 만드는 속죄소는 종종 하나님의 강림의 장소로 언급되었다(레 16:2; 민 7:89). 한편, '좌정하시니'(*, 요쉐브)는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대한 좀더 자세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조용히 예배자들의 경배를 받고 계신 분일 뿐 아니라, 그위 성전에 임재하셔서 직접 그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99:2]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 -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통치에 있어서 땅 위의 중심지는 시온이라는 것이다(48:2; 65:1). 시온을 천상적(天上的) 시온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본 시편 전체 내용의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성전과 법궤가 있었던 예루살렘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Rad).

성 경: [시99:3]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 히브리어 원문상 본문의 주어는 2절의 '모든 민족'이다(Alexander). 따라서 이스라엘 중에 알려진 하나님의 위대하고 경외로운 이름(신 10:17)이, 온 세상 중에서도 역시 영화로워지기를 소원하는 저자의 마음을 잘 읽게 해주는 표현이라 하겠다(Perowne).

성 경: [시99:4]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 여기서 '왕'은 1절에 언급된 왕, 즉 여호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능력'이란 세상 독재자들의 그것과 같은 전횡적(專橫的)인 폭력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그의 이 능력은 의로움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부의 위대하고 영원한 법, 그의 통치의 내적 원리인 공평을 세우셨고, 그의 모든 사역들을 통하여 그 공평을 명백히 드러내셨다.

성 경: [시99:5]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우리 하나님을 높여 -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분이시므로(사 57:15) 그를 높이고 그를 모든 것보다 월등한 분으로 인식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편,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언약 관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113:5; 출20:2; 수 24:17,18,24; 느 9:32).

⭕ 발등상(*, 하돔 라글라) - 왕의 보좌 그 자체를 받치고 있는 '보좌의 아랫 부분' 혹은 '보좌 아래의 발판'이 적절한 의미이겠으나 경우에 따라 다른 의미로도 이해되고 있다. 예를 들어 132:7에서는 '지성소'의 의미로 언급되고 있으며, 대상 28:2에서는 언약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애 2:1에서는 '거룩한 도성'(혹은 성전)을, 사 66:1에서는(마 5:35과 비교하라) 온 땅을 각각 가리키고 있다. 이상의 용례들을 종합 비교 검토한 학자들은 대체로 '지성소'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용례들을 굳이 배제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Anderson).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자는 그분이 살아 역사하시는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믿고 온 정성을 다해 경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성 경: [시99:6]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본절은 주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흘러오던 어떤 사상의 흐름이 갑자기 변화를 일으키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본절에 대한 대표적인 주해는 본절 말미에 나오는 '간구'의 개념을 중시하여 구약에 나오는 영웅적 중보 기도자들인 모세, 아론, 사무엘을 소개하는 구절로 보는 견해라 할 수 있다(Rosenmuller).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대표적 중보 기도자들이(출 14:15; 17:11 이하; 32:11 이하; 민 12:13; 14:13 이하; 16:44-48; 삼상 7:8 이하 등을 참조하라)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 시편 전체의 문맥, 특히 1-5절의 내용에 주안점을 두는 견해도 있다. 즉, 본절 이후는 제외하고라도 1-4절을 살펴보면 찬양의 주제, 곧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주제가 본 시편 내용의 주된 흐름이며, 따라서 본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가 예배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그분은 바로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지성소에서든 아니면 법궤에서든지 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곳에 머리를 숙여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 특히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은 거룩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런데 그 거룩한 예배를 드렸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본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 사람이며, 자신을 거룩한 존재로 알고 거룩한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용서하심'과 '응답하심'으로(8절) 그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셨다는 것이 본절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 후자의 견해가 문맥상 보다 자연스럽지만 전자의 견해도 배타적으로 제외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그 제사장 주에는 모세와 아론...사무엘 - 언약의 피를 뿌리는 것(출 24:6-8)과 성결 예식을 거행하기 전에 행했던 지성소 봉사(출 40:22-27) 이외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성결케 하기 위한 모든 예식 등 제사장적 직무(레 8장)는 모세가 담당하였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백성을 위한 중재 사역을 감당하는 '제사장'으로 불리움을 받았다(출 17:11, 12; 32:30-32 ; 민 12:13). 사무엘 역시 여기서는 제사장 계급으로 분류되지는 않고 있지만 모세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적 기능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모세처럼 백성을 위해 중재한 자로서 위대한 기도자의 표본으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가 라마 고지(高地)에서 희생 제사를 드린 사실을 알고 있으며, 백성들로부터 그의 독보적 제사장적 위치를 인정받아 백성 중 그 누구도 그가 축복하기 전까지는 희생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실 역시 알고 있다(삼상 9:12,13). 또한 우리는 그가 전쟁시에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며(삼상 7:9), 동시에 그의 제사장적 사역을 대신하려 했던 사울을 그가 엄히 꾸짖었던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삼상 13:11-13). 모세와 아론 및 사무엘의 제사장적 사역에 따라 드려진 이 같은 예배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졌다.

성 경: [시99:7]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구름 기둥에서 -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모세와(출 33:9) 아론에게만(민 12:5) 적용되며,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구름 기둥에서 말씀하셨다는 직접적 언급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한편, 본문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직인 표현이라 하겠다(출13:21 이하; 14:19 이하; 민 14:14; 신 31:15 등).

⭕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모세와 아론, 사무엘 등의 신실성을 증명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는 증거는 그분에게 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성 경: [시99:8]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 -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 것,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것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그들'이란 직접적으로는 모세, 아론, 사무엘을 가리키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그들 외에 그들의 기도의 혜택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부수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엘 노세 하이타 라헴 웨노켐 알 알릴로탐) - 본 원문의 어순을 고려하여 직역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용서를 주셨다. 물론 그들의 행위들에 대해 복수하시지만'이다. 갑자기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복수하신다는 표현이 나온 것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그들'이란 앞에 언급된 모세, 아론, 사무엘, 이 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패역한 이스라엘 공동체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하겠다(물론 출 32:1 이하; 민 20:12; 삼상 8:1 이하에 이들 세 사람의 불신앙 혹은 과오에 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한다). 그리고 개역 성경과는 달리 원문에 그들을 용서하셨다는 사실이 앞에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복수하심보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강조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무시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징벌하신바 있다(출 32:3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셔서 결국엔 가나안 땅에 입성케 하셨다.

성 경: [시99:9]

주제1: [거룩하신 주의 왕권에 대한 찬양]

주제2: [거룩하신 주의 통치]

5절에 이어 본절에서는 '거룩'에 대한 주제가 재차 강조되고 있다. 5절과의 차이점은 '발등상'이 '성산'으로 바뀐 점이며 이 두 구절에서는 공히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부각시킨다(Alexander).

⭕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히쉬타하우 레하르 코데쇼) - 직역하면 '그의 거룩한 산 앞에서 무릎을 꿇라'이다. 여기에서 '산'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시온 산'을 뜻하는 것 같은데(2:6; 3:4; 15:1; 43:3; 48:2; 단 9:16). 그 산을 거룩하다고 묘사한 까닭은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였기 때문이다.

성 경: [시100:1]

주제1: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

주제2: [영원한 찬양에의 초청]

⭕ 온 땅이여 - 93-99편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소망은 자기 민족, 자기 백성이라는 제한을 훨씬 넘어선 영역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는 성령의 깊은 감동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방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고서 온 이방, 온 세계도 구습을 타파하고 회개함으로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 앞에 나와 기뻐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즐거이 부를지어다(*,하리우) - '크게 외치다' 혹은 '개가를 올리다'는 뜻인 본 용어는 수도성에 입성하는 왕을 환영할 때 혹은 왕의 행렬을 맞이할 때 만백성과 신하들이 그에 대한 복종과 경의를 표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66:1;98:4, 6). 비록 '여호와는 왕이시다'로 시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 시편은 그 내용상 여호와의 왕권과 통치를 노래하는 일련의 이전 시편들, 곧 93-99편을 끝맺는 송영 구실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성 경: [시100:2]

주제1: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

주제2: [영원한 찬양에의 초청]

⭕ 기쁨으로 -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는 일은 종교적 의무감에서 형식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되며 받은 바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여 벅찬 감격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나타낸다(95 : 1 ; 사 51 : 11).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예배를 '거룩한 산 제 사'라고 표현했다(름 12 : 1).

⭕ 여호와를 섬기며 - 이것은 언약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광범위한 관계성(수 24:14 )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본절 하반절에 비추어 보건대 보다 구체적으로는 예배를 암시하는 것 같다(출 3 : 12 ; 사 19 : 21).

⭕ 노래하면서 - 이 노래의 주제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계속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주권과 은총이 될것이다(107 : 22).

성 경: [시100:3]

주제1: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

주제2: [영원한 찬양에의 초청]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 예화 후 엘로힘) - 직역하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이다. 이 표현은 모든 다른 신들을 부인하고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 한 분에게만 충성을 다짐할 때 사용되는 잘 알려진 예식 용어이다(신 4 :35 ; 수 24 : 18; 왕상 18 :39).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일신론(唯一神論)에 대한 확신을 엿보게 하는 용어이기도 하다(Barr).

⭕ 알지어다(*, 데우) - 원형인 '야다'(*)는 단순한 지적인 경험 그이상을 의미한다. 특히 본 문맥에서는 오직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인정 그리고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고백에 따르는 모든 요구들 및 의무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키라는 의미이다(신 4 : 39 ; 사 43 : 10 ;렘 3 : 13 ; 14 : 20).

⭕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 이것은 인간 창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들게 된것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사 43 : 1,21 ; 44 : 2 ; 60 : 21).

⭕ 우리는 그의 것이니 - 원문상으로 본문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로 읽히기도 한다. 영역 성경 KJV는 70인역(LXX)이나 벌게이트역(Vulgste)을 따라 '우리 자신이 아니라'(not we ourselves)로 옮겼고, NIV, RSV, 탈굼역(Targum)등은 개역 성경과 같이 옮겼다(we are his). KJV를 따를 경우 본문은 '우리를 만드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요 결코 우리 스스로 된 것이 아니다'는 의미가 된다.

⭕ 그의 기르시는 양(*, 촌 마리이토) - 직역하면 '그의 목장의 양'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표현과 동의어로 사용된다(롑 23:2). 목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비유는 신약 성경뿐만 아니라(눅 15 : 3-6 ;요 10 : 1-18) 구약 성경에도 자주 나온다(23 : 1 ; 74 : 1 ; 79 : 13 ; 95 : 7 ; 사 40 : 11 ; 겔 34 : 31).

성 경: [시100:4]

주제1: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

주제2: [영원한 찬양에의 초청]

⭕ 그 문에 들어가며...들어가서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상속자로 그리고 그의 목장의 양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다른 민족은 그 동일한 특권의 혜택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모든 나라 백성은 언약 백성의 본을 좇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그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드리도록 초청되고있다. 예언적 기대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 2:2,3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 같은 사실, 곧 이방인의 초대를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종말론적 실제에 대한 묘사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여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 의전에 이르자...." 하나님의 전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으므로 합당한 요건만 구비하면 누구나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기대했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자비가 무한하시고 그의 인애와 진실은 다함이 없고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Delitzsch).

성 경: [시100:5]

주제1: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노래]

주제2: [영원한 찬양에의 초청]

본 시편의 서두는 광대한 비전으로 시작되었거니와(1절) 이제 장구한 기대와 소망으로 끝을 맺는다(Kidner).

⭕ 대저(*, 키) - '왜냐하면'을 뜻하는 본 접속사는 기자가 말하는 바 만백성이 여호와의 궁정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를 설명해 준다. 먼저 '선하시니'는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는 크신 능력과 대비를 이루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를 암시한다. 또한 '인자'는 인간의 죄를 징벌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대비를 이루는 하나님의 '긍휼', '연민'을 암시하는데 이럴 경우 앞의 '선하심'과 본 '인자'는 그 의미가 유사한듯 보이나 그 대비를 이루는 내용들(각각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공의')이 다르다는 면에서 좀더 뚜렷이 구별된다. 또한 '성실하심'은 오고가는 모든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의 선하심과 인자를 베푸신다는 점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이미 이 '성실하심'이 언약적 용어임을 주목한 바 있다.

성 경: [시101:1]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인자와 공의 - 물론 이 둘은 다윗의 찬양의 주제가 되는 하나님의 고귀하신 속성들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본따서 그 자신의 통치와 그의 왕국의 틀을 형성하려는 왕으로서 그와 같은 속성들을 노래의 주제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의를 묵상하여 그 하나님의 자비와 의가 자신의 통치 가운데서도 드러나게끔 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탁월하신 통치 원리가 자신의 삶과 통치 속으로 이전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찰 때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의를 묵상할 것이다. 이런 의미를 중시할 때 여기서의 '찬송하겠나이다'는 '기도하겠나이다' 혹은 '묵상하겠나이다'로 바꾸어 보아도 무난하리라 여겨진다.

성 경: [시101:2]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아스킬라 베데레크 타밈) - 여기서 동사 '아스킬라'(*)는 '헤아리다'(사 41:20), '가르치다'(32:7), '지혜롭게 행하다'(2:10), '형통하다'(사 52:13), '깨닫다'(106:7) 등을 뜻하는데 뒤에 나오는 '타밈'(*)이 어떤 '고결한(흠없는)행동'을 뜻하는 명사임을 고려할 때 '지혜롭게 행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재번역하면 '나는 온전한 행동 방식의 표본을 따라 지혜롭게 행하겠습니다'가 되겠다(I will myself wisely in a perfect way, KJV). 결국 본 구절은 도덕적으로 고결하며 흠이 없는 통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다윗의 각오를 포괄적으로 밝히는 내용인 것이다. 절대 권력을 소유한 자는 너무도 흔히 자기 기만과 부패에 빠져 버릴 수 있다. 절대 권력을 쥐어서 모든 속박 내지는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독재자들은 흔히 자기 감정 혹은 어리석음을 따라 불의하고 불공평한 통치를 일삼기 마련이다(Perowne). 그러나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나라로 이끌어가고자 했던 경건한 지도자 다윗은 남다른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 바로 앞 구절을 연결시켜 본문을 번역하면 이렇다 : '당신이 내게 임하실 때 나는 온전한 행동 방식의 표본을 따라 지혜롭게 행하겠나이다.' 이것은 고결한 정치의 길 걷기를 각오하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되고 자극되어 표출된 강한 신앙심의 표현이다. 부패하고 연약한 인생이 자력으로 어찌 주의 법도를 따라 고결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기자는 그 일을 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서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은 법궤가 시온으로 옮겨진 이후 다윗의 통치 조직이 공고해 지던 때에 되어진 언급으로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약속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성 경: [시101:3]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비루(卑陋)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 '비루한 것' (*, 데바르 벧리야알)의 문자적인 뜻은 '벧리야알의 말(혹은 행동)'이다. '벧리야알'(*)은 '...이 없이'를 뜻하는 부정사 '벧리' (*)와 '유익한 것' 혹은 '가치있는 것'을 뜻하는 '야알'(*)이 합쳐진 합성 대명사이다. 따라서 '벧리야알'은 '무익한(무가치한)것'이 되며 '데바르 벧리야알'은 '무익하거나 무가치한 말, 행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그 눈앞에 두지 않겠다는 것은 무익하거나 무가치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무익하거나 무가치한 말이나 행동은 고결한 통치를 해나가는데 저해가 되는 언행을 뜻한다. 바로 앞절 말미에 '제 집안'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자기 집안에서부터 그 같은 결심을 실천에 옮기고자 한 것 같다.

⭕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 '배도자들의 행위'(*, 아소 세팀)를 직역하면 '벗어난 행위'인데 결국 이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그릇된 행위를 뜻한다. 저자는 그와 같은 행위를 미워한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그는 진리와 고결(순결)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의 유혹이 자신을 붙잡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물론 일탈을 꾀하게끔 하는 온갖 유혹이 그를 에워쌀 수 있다. 예컨대 '정치를 하다보면 다 그럴 수 있다. 기묘한 술책을 계속해서 짜내야 한다. 권력은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왕은 율법을 초월해 있다'등등과 같은 유혹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사단의 속삭임에 귀기울이기를 거절한다.

성 경: [시101:4]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 레바브 이케쉬 야수르 밈멘니 라 로 에다) - 직역하면 '구부러진 마음을 가진 자는 나로부터 멀어질 것이며 악한 자를 나는 알지 않을 것이다'이다. 먼저 다윗은 자신이 따르게 될 규칙을 강조한 후 그가 일국(一國)의 왕으로서 행할 때 구체적으로 만나게 될 인사 경영에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는 그의 왕국과 가정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는 자의 성격을 개괄적으로 '그 마음이 구부러진 자', '악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후속절에서 그 성격을 좀더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 경: [시101:5]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 멜라오쉬니 바세테르 레에후) - 직역하면 '몰래 그의 이웃을 중상하는 자'이다. 왕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아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같은 사람은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간신배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 - '눈이 높고'에 해당하는 '게바 예나임' (*)은 구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나오는 용어이나 18:27의 '교만한 눈'을 가진 자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Anderson). 또 '마음이 교만한 자'에 해당하는 '레하브 레바브'(*)는 그 문자적인 뜻이 '마음이 넓은 자'이지만 문맥상 '탐욕, 욕심이 그 마음에 가득한 자'가 맞겠다. 어떤 학자는 본 용어를 '욕심으로 그 마음이 부푼 자'로 번역하고 있다(Perowne).

성 경: [시101:6]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 왕 다윗이 선택한 신하의 자격은 고상한 가문 출신이나 재력, 재능, 업적, 아첨하는 입술, 비굴할 정도의 고분고분함 등이 아니라 변함 없는 충성심이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여기 '충성'이란 말에는 그 왕에 대한 충성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께 대한 신실성이 함축되어 있다.

성 경: [시101:7]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본절은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써 기자의 굳은 각오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다윗은 여기서 거짓을 도모하는 자는 결코 중용(重用)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실수로 기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내 쫓겨나게 되고 말 것을 피력하는 것이다. 한편 본절의 '내 집안에'라는 표현은 2절과 그리고 '내 목전에'는 3절과 각각 대응을 이루어 시적 기교를 더해 준다(Alexander).

성 경: [시101:8]

주제1: [통치자의 결의]

주제2: [공의로운 통치자의 자세]

⭕ 아침마다...멸하리니 - 악이 암흑의 그늘에서 그 싹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빛과 같은 공의의 광성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침에 재판건을 처리하던 고대의 풍속을 연상시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렘 21:12);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습 3:5).

성 경: [시102: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 여기서 '부르짖음'은 일반적인 의미의 '기도'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특별히 소리를 내어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즉 외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것이 그 특징인, 간절한 기도라 할 수 있다(5:2; 18:6, 41; 30:2; 72:12; 욥 35:9; 36:19). 그리고 '상달케 하소서'란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평소 하나님께서 시인의 기도에 무관심하셨다는 뜻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를,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고통으로 시달린 기도자가 그 고통의 기간의 종결을 호소하는 것에 그 강조점을 둔 표현으로 보고 있다(Anderson).

성 경: [시102: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본절에 나타난 표현들은 다른 시편들에서도 볼 수 있는 관용구와 같은 것들이다.예를 들어 '나의 괴로운 날에'는 59:16에서,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는27:9에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는 18:6; 31:2에서, '내가 부르짖는 날에'는 61:2에서,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는 69:17에서 각각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용례들을 문맥 속에서 연구 종합해 보면 이 표현들 저변에는, 과거의 경험에 입각하여 그 어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하시리라는 기자의 확신이 깔려 있다. 결국 본절은 기자의 부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소망의 자세, 곧 하나님은 그어떤 고통으로부터도 자신을 구하실 분이라는 확신의 자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102: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 여기서 '연기같이'는 갑작스럽게 소멸되고 마는 인생의 연약함과 무상함을 뚜렷이 보여주는 비유이다(37:20). 말하자면 저자가 당했던 고통의 기간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지극히 부질없고 낭비적인 무익한 기간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는 시련 중에 있는 자가 흔히 느끼는 감정이다(Barnes).

⭕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 '냉과리'라고 번역된 본 구절의 난제는 '모케드'(*)인데 사 33:14및 레 6:9등에서 '타는 것', '석쇠'등의 의미로 사용되고있는 사실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Snaith). 여기서는 문맥을 고려하고 앞서 언급된 용례를 참조할 때 '맹렬히 타는 열기', '불'등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영역 성경 KJV는 '난로'(hearth)로, RSV는 '용광로'(furnace)로 각각 번역했다. 어쨌든 기자는 회화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처한 고통의 크기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내 뼈'는 신체의 뼈대(6:2) 혹은 전인(全人, 35:10)을 가리킨다. 기자가 상투적인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혹은 하나님의 무응답으로 인한고통스러운 내면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회화적 표현인지는 가려내기 쉽지 않다(Anderson). 하지만 극심한 염려와 근심은 실제로 뼈를 쇠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잠 17:22).

성 경: [시102: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원문상 본절에는 접속사 '키'(*)가 나오는데 이 접속사는 대체로 원인절 앞에 붙어 이유를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나 본절에서는 결과절 앞에 붙어 결과를 설명하는 접속사로 보는 것이 좋겠다(Anderson, Barnes). 이 사실을 토대로 본절을 재번역하면 이렇다 : '나의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나의 빵을 먹는 일도 잊었읍니다.' 시련으로 인한 시달림이 너무커서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조건인 식사에 주의를 기울일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슬픔으로 인한 고통은 식욕을 빼앗아 가버린다. 모든 것을 잊게 할 정도였다는 사실에서 시인이 당한 고통의 정도가 어떠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겠다.

성 경: [시102: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도브카 아츠미 리브사리) - 직역하면 '나의 뼈가 나의 살에 붙었나이다'이다. 여기서 '나의 뼈'(*, 아츠미)는 단수로 되어 있으나 집합적 의미의 단수로 보아 몸의 뼈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문은 극단적인 쇠약함으로 인해 피골이 상접한 상태를 시사하는데, 좀더 자연스러운 표현은 애 4:8에 있는 것처럼 '그 가죽이 뼈에 붙어'가 될 것이다. 욥 19:20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몸의 각 뼈들이 완전히 힘을 잃어 극한의 연약성과 이완을 보이는 상태를 좀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

성 경: [시102: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당아새(*, 카아트) - 본 용어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70인역(LXX)이 '펠리컨'으로 번역한 후 대부분의 역본들이 그것을 따르고 있다(pelican,KJV). '펠리컨'은 게걸스럽게 먹고(펠리컨은 주로 조개류를 잡아먹고 산다) 그것을 입으로 토해내기도 하는데 바로 그 모습에 그 이름의 기원이 두어져 있다. 부정한 새로도 알려져 있는 이 새는(레 11:13-18) 물가에 군거(群居)하고 있는데 바로 이 이유때문에 '카아트'를 '펠리컨'으로 번역하는 것은 적합하지 못하다고 반박하는 학자도 있다(Anderson). 그 우는 소리에서 그 이름의 기원을 찾아 '사막 올빼미'(desertowl, NIV)로 보는 학자도 있다(Driver). 분명한 것은 '광야'가 이 새를 꾸미고 있음을 볼 때 기자는 자신의 외로움, 비애를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사 34:11; 습 2:14).

⭕ 부엉이(*, 코스) - 부정한 새로 분류되고 있는(레 11:17; 신 14:16) 올빼미류를 총칭하는 용어이다. 본절의 묘사는 고통자가 자신을 부정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과 그이 상황이 외로움과 고독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이 같은 묘사는 죽음에 거의 다다른 존재에 관한 묘사이기도 하다(88:5). 한편 올빼미는 아라비아어로 '폐허의 어머니'란 뜻을 갖고 있다.

성 경: [시102:7]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깨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붕 위에 외로운 한 마리 참새와 같다'이다. 참새는 그 짝을 잃었을 때 여러 날 동안 외롭게 지붕 위에 앉아서 짝을 잃은 슬픔을 달랜다고 한다. 기자는 그 누구도 위로하는 사람 없는 가운데 철저하게 원수로부터 핍박을 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짝을 잃고 외로워하는 참새에 비유하고 있다.

성 경: [시102: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종일 나를 훼방하며(*, 칼 하욤 헤레푸니) - 문자적인 뜻은 '하루 내내 나를 조롱하며'이다. 이것은 기자의 대적들이 본 기자의 고통이당연한 것이며 또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놀려댔던 것을가리킨다. 이는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등등의 표현을 연상시킨다(22:7; 42:10; 44:13등).

⭕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비 니쉬바우) - 문자적인 뜻은'나를 통하여 저주하나이다'이다. 분문에 대해 70인역(LXX)은 '(예전에는) 나를 칭송했다'는 뜻으로 번역한다. 그런가 하면 영역본 KJV는 '나를 향해(저주의) 맹세를 하다'(are sworn against me)의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본문의 히브리어 전치사 '베드'(*) '...로 말미암아' 혹은 '...에 의해'로 옮기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이경우 본문은, 시편 기자의 대적들이 어떤 사람을 저주할 때 시편 기자를 하나의 표본으로 삼았던 것을 가리킨다(use my name for a curse, RSV). 족장 시대 때 야곱은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다음과 같이 각별히 축복했었다 :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창 48:20). 이 축복이있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떤 사람을 축복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축복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너도 에브라임과 므낫세처럼 축복받으라'는 식으로 그 사람을 축복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의 정반대 상황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Anderson). 기자의 대적들은 누구를 향해 저주할 때 불행의 표본인 본 기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저주했다는 말이다.

성 경: [시102: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 여기서 '재'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페르'(*)는 애도 및 슬픔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된다(에 4:1; 욥 2:8; 애 3:16).그리고 가끔 수치와 회개의 상징으로도 나타난다(욥 42:6; 단 9:3). 실제적으로 시편기자가 재를 먹었을 가능성은 적다. 고통과 비애가 그의 음식과 음료가 되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 큰 고통과 슬픔이 있는 자는 흔히 욥처럼재 위에 앉아 울거나(욥 2:8; 렘 6:26; 욘 3:6). 다말처럼 그 머리를 재에 박았다(삼하 13:19). 특히 본 문맥에서는 마치 재를 먹는 듯한 인상을 주는 후자의 자세가 어울릴 것 같다.

성 경: [시102:1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 기자는 그의 불행이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리하여 징벌을 초래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세도 그의 시편에서 이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90:7-9). 어떤 극심한 병고나 대적들의 핍박에 직면하여 현상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은밀한 죄악까지도 먼저 돌아보고자 하는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시인의 예민한 영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 마치 강한 태풍이 휩쓸어가듯이 하나님의 분과 노가 그를 낚아 채어 잡아 올려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지경에 던져 놓았다는 뜻이다(렘 23:19). 이는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사 22:18). 혹은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욥 27:21)등의 표현을 연상시킨다.

성 경: [시102:1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망국민(亡國民)의 비애]

⭕ 기울어지는(*, 나투이) - 본 용어는 한 날이 다 저물어가는 것(삿 19:9) 혹은 지는 태양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데 여기서는 잠시 후에 완전한 흑암에 의해 삼키움을 당할, 길게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109:23; 144:4; 욥 8:9; 14:2; 렘 6:4). 물론 기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죽음이 임박한 것 같은 절박감을 나타내고 있다(Perowne).

성 경: [시102:1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여호와여(*, 웨아타 예화) - 직역하면 '그리고 당신은 여호와이십니다'이지만 '웨아타'(*)를 중심으로 앞부분에 서술된 내용과 그 뒷 부분에 서술된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에 '그러나 당신은 여호와이십니다'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같이 '웨아타'는 강조사로서 선행구와 두드러진 대비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 주는 영원히 계시고(*, 레올람 테쉐브) -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시는'이 문자적인 뜻이다. 이 사실은 슬픔을 초월케 하고 큰 위로와 소망을 준다. 연약한 한 인생인 시편 기자는 소멸하여도 시온의 소망은 그의 영원한 왕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너무 자주 혹은 급하게 변하여서 잠시 동안도 안정을 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영원한 왕으로서 변치 않는 분이라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한편, 영원 불변하시는 하니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욱 웃음거리가 되어가는 듯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주신 약속들, 특히 그 위대한 언약적 약속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리라'(출 25:8). 이 약속에 의존하여 그는 비록 현재의 상황이 불행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궁극적으로 천상적(天上的)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그의 약속과 언약 역시 변치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뻗치고 계신 하늘 보좌를 눈을 들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 경: [시102:1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 이는,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7:6) 시온 성을 재건케 하신다는 뜻이다(1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시온 성벽 재건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내신 언약에 신실하기 위하여 범죄한 그의 백성을 회복시켜 다시 평강과 안녕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 여기서 '정한 기한'은 1차적으로 사 40:2이하; 렘25:11, 12; 29:10; 30:18; 슥 1:12-17 등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 같은 특정한 때로 이해할 수 있다 :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렘 25:11, 12). 정한 기한이 지나 새로 도래할 시대의 특징은 죄사함과 회개, 언약 갱신 및 시온 재건 등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VanGemeren). 아울러 궁극적으로 보면 이는 영적 이스라엘의 안녕이 성취되는 때로도 볼 수 있다(Perowne).

성 경: [시102:1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憐恤)히 여기나이다 - 과거 그 찬란한 자태를 뽐내던 멸망 전 시대뿐만 아니라 멸망을 받아 폐허가 되어 버린 지금도 시온은남은 자들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멸망 후 경건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티끌들을 자신의 몸에 뿌림으로써 그 성(城)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고 한다(Perowne). 결국 본문은 시온 성 재건을 열망하는 남은 자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이것은 오늘날의 영적 시온인 교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아 할 것을 교훈한다. 즉, 거룩한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서 더욱 그 교회를 사랑해야 하며 좀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 돌들...티끌 - 어떤 학자는 이 둘을 새로운 도성 건축을 위한 재료들로 이해하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Luther). 그보다는 멸망당한 시온 tjd의 황폐한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봄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느 4:2; Alexander).

성 경: [시102:1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 개역 성경에는 동사가 둘로 되어 있으나('경외하다'), 원문에는 하나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야라'(*)로서 '두려워하다'를 뜻할 뿐 아니라 '존경, 경외하다'를 뜻하기도 하며, 그 대상은 부모(레 19:3), 백성의 지도자들(수 4:14) 그리고 종종 하나님(15:4;22:25; 31:19)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의 성취일 뿐 아니라 기도의 응답이기도 한 그 백성의 구속 및 회복을 통하여 드러날 하나님 영광의 현시(顯示)로 인하여 이제 이방 세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세계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되어가는 분기점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Delitzsch, Kirkpatrick).

성 경: [시102:1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건설하시고...나타나셨음이라 - 이 두 동사는 각가 '바나'(*)와 '니르아'(*)로서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17절에서도 계속되는 이러한 표현은 미래에 있을 일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표현법을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s)이라고 한다.

성 경: [시102:17]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빈궁한 자(*, 아르아르) - 이곳과 렘 17:6에만 나오는 본 용어는 '히드'(개역 성경의 렘 17:6은 '떨기나무'로 번역하고 있음)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히드'란 황야에 무성하는 관목이다(Barnes). 어원적으로 볼 때 '발가벗음'을 뜻하는 본 용어는 매우 결핍된 상태에 있는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본 문맥에서 그 존재란 계속해서 고통을 토로해 왔던 기자 자신(1-11절)으로 볼 수 있으나,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하반절과의 평행을 고려할 경우 일련의 고통받는 무리, 곧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볼 수도 있겠다. 물론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고통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다(13절 참조).

성 경: [시102:1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기록되리니 - 시편 중에서 위대한 구원 사건의 기억을 기록체로 보존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구원 사건의 전승을 언급하고 있는 유사 구절로 22:30;44:1; 78:2 등이 있으나 이곳들에서는 구두(口頭)전달만을 말할 뿐이다.

⭕ 창조함을 받을 백성 - '장차 날 백성'(22:31)이라는 표현을 연상시키는 구절로 백성의 새 피조 사실과 이스라엘의 현재의 멸망상태 사이의 대조적 상태를 암시하기 위해 동원된 구절인 것 같다(Calvin). 사실 포로로부터의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제 2의 탄생과도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탄생을 새로운 피조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견해를 근거로 한 학자는 본문이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주는 교훈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 '본 구절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그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교회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이제 우리는 결단코 자포 자기하지 말고 도리어 무(無)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 그분께서 역시 그의 교회를 죽음의 흑암으로부터 이끌어 내실 수 있다는 진리에 확실히 안주할 수 있어야 하겠다'(Cicero).

성 경: [시102:19]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그 높은 성소에서(*, 밈므롬 코드쇼) - 직역하면 '그의 거룩한 높은 곳으로부터'이다. 어떤 영역본들은 '그의 성소의 높은 곳으로부터'로 번역하고 있으나(from the height of his sanctuary, KJV), 평범하게 '하늘로부터'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14:2; 33:13; 사 63:15). 그것은 '높은 곳'으로 번역된 '마롬'(*)이 하반절의 '하늘'과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유사 구절로는 신26:15이 있다 :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성 경: [시102:20]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갇힌 자(*, 아시르) - 집합적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며 포로 시대를암시하는 말이지만 넓게는 압박받는 자들을 총체적으로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 죽이기로 정한 자(*, 베네 테무타) - 문자적인 의미는 '죽음의아들들'이다. 본 구절은 이곳과 79:11에만 나오는데 '죽을 운명에 처한 자(those whowere doomed to die, RSV)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표현 역시 포로민의 비참상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특정한 시대가 아닌 오고 가는 모든 시대에 사는, 영적 사망의 굴레를 쓴 모든 자들을 포함시켜 이해할 수 있겠다.

성 경: [시102:21]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본절은 19, 20절에서처럼 하나님의 행사(行事) 자체를 묘사한다기보다는 본절의 내용처럼 되어지기를 바라는 일종의 기원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Alexander).한편, 여호와의 이름과 영예를 선포한다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기린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성 경: [시102:22]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굳은 신념]

⭕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 시온이 회복될 때 모든 나라의 백성들은 그곳에 모여 여호와께 존경을 표하며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소망의 성취가 될 것이다(47:9; 사 2:2; 60:3-7; 미 7:12; 슥14:16). 한편, 예언적 비전을 담고 있는 본문은 포로 귀환의 지평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회복에로까지 그 시야를 확장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대개 그러하듯이, 바벨론 포로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노래하면서 영감을 받은 시인은 그보다 더 먼장래의 일 곧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말미암을 완성의 단계로까지 비전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Calvin, VanGemeren).

성 경: [시102:23]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저가 내 힘을...쇠약케 하시며 - 이어지는 내용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이 표현의 핵심은 하나님이 기자의 힘을 빼앗았다는 데 있다기보다는 기자 자신의 죄성과 연약성을 고백하는 데 있다. 기자는 본절에서 지금까지의 논조를 갑자기 바꾸고 인간수명의 짧음 및 그의 연약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암시적으로 하나님의 영원성, 무변성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24절 이하).

⭕ 중도에(*, 베데레크) - 주로 일련의 무리의 여정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출 18:8; 민 20:14), 여기서는 기자 개인의 인생 여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면 무난하겠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본 시편에서 기자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무리, 곧 민족에게 주는 교훈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28절).

⭕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 수명을 줄였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느낄 정도로 고통의 강도가 세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성 경: [시102:24]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 시편은 일정한 정형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개역 성경상으로 봐도 그 정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자가 정형을 무너뜨려가면서 토로하고 있는 이 내용은 정해진 수명에도 이르기 전에 갑자기 죽음을 당케 하지 말아 달라는 간구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같은 간구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사38:10, 11의 히스기야의 경우와 같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강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편으로 그의 연약성을 절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영원한 팔되신 그분께 대한 의존감을 피력한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은 소멸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후손들은 결코 좌절될 수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기를 소원하고 있었을런지 모른다(28절).

성 경: [시102:25]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 이 구절은 천지 창조 사실 자체에 핵심이 있지 않고 그 피조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유한한 것이라는 사실에 핵심이 있다. 시작이 있는 피조 세계는 그 종말이 있으니 유한하다는 것이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사 51:6). 물론 이는 역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영존(永存)하심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 경: [시102:26]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 하늘과 땅은 영원하고 지속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흔히 간주되고 있지만(78:69; 104:5; 119:90; 148:6), 하나님과 비교될 때에는 곧 낡아 없어져 버릴 의복과 같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사 34:4;51:6).

성 경: [시102:27]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주는 여상하시고(*, 아타 후)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은 그이시다'. 이는 24절 하반절로부터 26절 상반절까지에 묘사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뜻이다. '...내가 곧 그니라'의 사 41:4 외에 신 32:39 등이 그 유사 구절이다. 아무튼 히브리어 '후'(*)는 여호와의 유일성을 강조하려 할 때 사용된다.

성 경: [시102:28]

주제1: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갈망]

주제2: [이스라엘의 영원한 존속 기원]

⭕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종들의 자녀들이 계속 거할 것이다'이다. 이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백성들이 약속받은 땅에서 계속 거하며 살 것에 대한 저자의 소망을 반영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37:29;69:36). 물론 기자의 이 같은 소망은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한 확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 경: [시103:1]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 이것은 여호와 찬양을 위한 자기 권고적 표현일 뿐 아니라(104:1) 기자에게 기꺼이 하나님 찬양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하다(Anderson).

⭕ 내 속에 있는 것들 - 모든 사상, 온갖 감정이 작동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의지, 양심, 이성, 정서 따위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전인적 실체들을 가리킨다. 기자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를 거론하는 대목에서 이 같은 전인적 실체들을 강조하는 이유는 외형적인,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를 배격하기 위함이다. 물론 천상에서나 그 완전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겠으나, 이 같은 전인적 실체를 동원한 예배를 드리겠다는 결심이 있다면 어느 정도 훌륭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겠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성 경: [시103:2]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 여기서 '은택'이란 3절 이하에 열거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역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잊지'에 해당하는 '솨카흐'(*)는 단순히 기억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 곧 하나님의 선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119:16). 이렇게 볼때 본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를 경고하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유사한 경고를 담고 있는 구절로는 신 4:9; 8:11-14 등이 있다. 또 실제적으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를 무시함에 따라 그 교만과 배은 망덕(背恩忘德)에 대한 대가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저와 유다에 임했던 역사적 전철(前轍)이 있다(대하 32:25).

성 경: [시103:3]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 기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독백하듯 선포한 후 과거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총을 하나하나 열거하기시작하는데(3-5절), 열거 내용 중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유(赦宥)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 중 가장 큰 것은 죄 용서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땅 위에 사는 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둘러싸여 사는데 그중에서도 죄 용서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관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되고 만다. 이사실은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명한 교부(敎父)인 어거스틴(Augustine; A.D. 354-430년)이 명확히 갈파한 바이다 : '우리 앞에 있는 우리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하나님의 은총이란 없을 것이다'.

⭕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 여기서 '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타할루아임'(*)인데 동일 용어가 사용된 신 29:22; 대하 21:19; 렘 14:18; 16:4등의 문맥을 고려할 때 육체적 질병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모두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것을 중시할때 '모든 육체적 질병'으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다. 저자는 자신이 육체적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과거를 기억하며 이 같은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다(Barnes).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의 위대한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어거스틴(Augustine)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 '죄 용서함 받은 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신체를 이끌고 다녀야 한다...죽음(사망)이 완전히 삼키움을 당하지 않은 까닭에 육체는 아직도 불완전에서 해방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 육체에 거하는 영혼은 유혹과 시험으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은 완전히 치유될수 있다. 우리는 질병들을 너무 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되신 하나님은 그 질병보다 더 중한 (큰) 분이시다. 전능하신 그 의사에게 못고칠 질병이란 없다. 그의 손을 뿌리치지 말라. 인간의사는 때때로 실수를 범한다. 왜? 그것은 인간 의사는 자신이 치료를 수행하고 있는 그 환자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환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만드셨다. 그는 그가 창조하였던 자를 재창조하는 법을 아신다. 그는 자신이 형성하였던 자를 재형성하실 수 있다. 그 의사의 손 아래 너 자신을 맡기라...그의 손을 의지하라. 모든 그의 은택들을 잊지 않음으로 그분을 송축하라. 그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 경: [시103:5]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하마스비아 바토브 에드예크) - 직역하면 '좋은 것들로 너의 입을 만족케 하시는'이다.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따르면 본 구절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하신 배려를 나타내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본문 해석의 초점은 '너의 입'이 아니라 '좋은 것들'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기서 '네 소원'으로 번역된 '에드예크'(*)는 '너의 노년'(갈대아역), '너의 소원'(아라비아역, 70인역,벌게이트역), '너의 몸'(시리아역)등의 유력한 다른 번역들이 있어서 원문의 핵심적 의미를 규정하기 힘든 반면, '좋은 것들'로 번역된 '토브'(*)는 그 근원인 하나님의 은택을 강조하는 용어로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Perowne). '우리의 영혼은 좋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좋은 것이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가장 좋은 것, 그것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한 분만을 추구해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기자는 본 구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좋은 것'이란 기자가 과거의 역사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한 무엇이며, 그 경험은 하나님으로 인해 되어졌다.

⭕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 이 비유는 사 40:31의 표현을 연상시키며 그 소재는 독수리의 신속한 날개짓에서 취하여진 바 힘과 활력을 나타낸다(신 28:49; 삼하1:23; 렘 4:13). 모든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만을 추구하는 자는 날마다 독수리의 날개침 같은 힘과 활력을 부여 받게 될 것이다.

성 경: [시103:6]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의로운 일...판단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체다코트'(*),'미쉬파팀'(*)인데 어미의 형태를 보아 알 수 있듯이(히브리어에서 복수형은 어미가 (*) 혹은 (*)으로 되어 있음) 두 단어 모두 복수형이다. 이 복수형은 (1) 그 단수형의 의미를 강화하기 위하여, 혹은 (2) 그것을 통하여 여호와하나님이 그의 의로움을 나타내 보이셨던 '수많은 행사들'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된것이 분명한데, 문맥상으로는 후자가 좀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 압박당하는 모든 자 - 일차적으로는 고통당했던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가리키지만, 좀더 넓게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환난과 핍박을 받았던 교회를 암시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였던 기자는 (1-5절) 본절에서부터 언약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6-18절). 즉,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해서 언약 공동체에게도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해 진술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온 이스라엘에 미치는 거대한 은총의 범주의 일부에 불과하다.

성 경: [시103:7]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크신 축복]

⭕ 행위(*, 데라키) - 본 용어 자체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나 의도'(18:21; 25:4, 9; 37:34), '도덕적 성향, 성품'(39:1; 50:23) 등을 뜻하지만, 본 문맥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가 그 후에 땅 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규례들, 개인을 포함한 민족, 교회 공동체를 향한 전 포괄적인 하나님의 경륜등을 뜻한다. 우리는 모세의 기도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3).

성 경: [시103:8]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본절 전체는 출 34:6에서 따온 것같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특히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은 신 4-10장; 27-31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시103:9]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 '경책지'에 해당하는 '라야브'(*)는 '다투다','겨루다', '법정으로 가다'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정한 율법에 따라 행위를 계속해서 추궁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하나님은 율법에 의하여 그 백성을 판단하신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죄사함의 과정을 통해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를 드러내시는데 그 까닭은 죄악된 그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율법의 규례에 따라 철저히 그 행위를 따진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사 57:16).

⭕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 '품지'로 번역된 '이토르'(*)는 절대적 의미를 지닌 동사로서(Alexander) '기필코 ...을 계속해서 유지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 대해서는 그 노를 결코 계속해서 갖고 계시지 않으신다. 레 19:18에 동일한 동사가 사용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말며...."

성 경: [시103:10]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죄...죄악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각각 '헤트'(*)와 '아온'(*)이다. 우선 '헤트'는 어원적인 의미에 있어서 '표적을 벗어남', '실수'등을 뜻하며 (욥 5:24; 잠 8:36; 19:2). 함축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한 사람이 그의자의적인 선택을 따라 표적을 벗어나 길을 잃는 것까지도 포함한다(Smith). 또한 '아온'은 '구부러지다', '비틀리다' 혹은 '실수하다', '방황하다' 등을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는데 따라서 이 명사는 '구부러짐', '왜곡됨' 혹은 '실수', '바른 길에서의 이탈'등이 되겠다. 많은 학자들이 후자의 의미를 더 선호한다(Anderson). 그러나 전자로 보든지 후자로 보든지 강조점은 그 같은 행위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행위라는 사실에 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볼 때 '헤트'와 '아온'은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는 있지만 주체의 의도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동일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의도성을 띤 죄악을 용납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징벌의 동기는 그 범법자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범법으로부터 돌이키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조차도 그의 자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성 경: [시103:11]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36:5)와 유사한 표현이다. 하늘과 땅의 거리는 인간의 측량기로 잴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끝이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그분 자신만큼이나 무한하고 끝이 없다. 물론 여기의 자비와 사랑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를 둔 것이다(26:3).

성 경: [시103:12]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죄과를...멀리 옮기셨으며 - 여기서 '죄과'란 '폐솨'(*)로서 어원적으로는 신적(神的) 권위에 대항하는 행위로 말미암은 결과를 강조하는 용어이다. 본문은 그 같은 심각한 죄악을 저지른 자라도 진정 회개하면 하나님이 크신 자비를 베푸사 완전히 용서하신다는 점을 묘사하고 있는데, 유사 사상을 지닌 표현이 미 7:19에 나타나고 있다 :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성 경: [시103:13]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불쌍히 여기시나니 - 자신이 숭배하는 신(神)을 아버지로 보는 개념은 고대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근동 민족들 가운데서도 발견된다. 일례로 우가릿(Ugarit)에서는 '엘'(El)이 신들의 아비였을 뿐 아니라 인류의 시조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단순한 혈통적 관계보다는 순종하는 자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Gray). 시편에 있어서도 부자(父子)관계는 혈통상, 민족상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순종의 문제에 역점이 두어져 있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을 경외하여그 뜻대로 살아가는 자인 것이다(11절).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성을 언급하고 있는 곳으로는 출 4:22; 신 14:1; 32:6; 사 1:2; 45:11; 63:16; 64:8; 렘 3:4, 19;31:9; 호 11:1; 말 1:6; 2:10; 3:17 등이 있다(Eichrodt, Ringgren).

성 경: [시103:14]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체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이츠레누'(*)로서 '구조', '형태'등을 뜻하는데 특히 이는 인간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창 2:7에서 사용된 동사 '야차르'(*)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부서지기 쉬움, 연약성 등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욥 7:5). 이를 달리 말하자면, 티끌과 진흙으로써 지음받은 연약한 인생은(욥 4:19; 34:15; 전 3:20;12:7)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써만 진정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78:38).

성 경: [시103:15]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인생(*, 에노쉬) - 히브리어 성경은 인간을 가리킬 때 '에노쉬'와 '벤아담'(*)을 사용하는데(68:18; 신 32:26; 잠 23:28; 욜 1:12), 특히 태어나지만 반드시 한번은 죽는 존재로서의 유한한 인간을 뜻할 때 주로 '에노쉬'을 사용한다. 한편, '에노쉬'를 '최선의 상태인 인간'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 별로 설득력이 없다(Davies).

⭕ 그 날이 풀과 같으며 - 본 회화적 묘사는 인간 존재 본질의 일시성을 강조한다. 유사 표현으로는 90:5; 욥 14:2; 사 40:6, 7; 51:12등이 있다.

⭕ 꽃과 같도다 - 곧 시들어버리는 것이 특징인 꽃이 인생의 영화(榮華)와 같다는 말이다. 여기서 '꽃'은 '치이츠'(*)로서 그 문자적인 뜻은 '빛나는 것' 혹은 '반짝이는 무엇'이며 봄철에 침울한 광경을 밝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바꾸어버리는 들에 핀 꽃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

성 경: [시103:16]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은 들판의 화초들을 순식간에 말려버린다고 한다. 기자는 인생의 덧없음과 유한성을 이러한 열풍에 사그러지고 마는 화초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Anderson).

성 경: [시103:17]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 하나님의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을 몰라 그분을 경외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도 베푸는 일반적 차원의 사랑이다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각별한 사랑인데 본 구절의 '인자'가 바로 그 사랑을 가리킨다. 그 사랑의 내용은 자자 손손(子子孫孫)에 미치는 사랑이요, 영생을 베푸시는 사랑이다. '인자'에 해당하는 '헤세드'(*)는 언약적 용어이다. 하나님께서 한번 택한 백성과 맺은 언약에 의거해서 당신의 주도적이고도 신실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 백성을 신실하게 사랑하심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이다(26:3 등).

⭕ 의(*, 체데크) - 이것은 어떤 행위를 하기로 결심한 두 상대의 관계성을암시하는 용어로 일반적으로 쓰인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 용어는 '건져냄(구원)'(22:31; 40:9; 51:14; 65:5; 69:27). '승리'(사 41:2), '변호'(103:6), '의로운 도움'(71:24) 그리고 '상급'(106:31) 등과 관련한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부정적인 관점에서는 악인에게 내리는 징벌과 관련하여 사용되기도 한다(119:75). 그리고 본절의 문맥에서는 언약에 명기된 율법을 준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성을 의미한다.

성 경: [시103:18]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 - 본절에서 기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특성을 좀더 자세히 정의하고 있는데 그는 곧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이다(55:20). 단순히 말씀을 아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라고 기자는 분명히 그 한계를 긋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후손이 그 조상과 마찬가지로 의의 축복을 받는 유일한 비결 또한 오로지 하나,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는 일이다.

성 경: [시103:19]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께 대한 찬양 촉구]

⭕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 '보좌'의 히브리어 '케세'(*)는문자적으로 왕이 앉는 자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현왕(賢王) 솔로몬의 왕좌는 잘 장식되어지고 키가 높은 등받이가 달려 있었다(왕상 10:18). 그러나 여기서는 세상 만물과 인생을 통치하시는 여호와의 처소를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라고 하는 가시적(可視的) 처소를 통해 표출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법궤는 비가시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보좌였던 것이다(Davies). 한편, 본문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암시하는 보좌가 하늘에 세워졌다는 것은 결코 요동함이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보좌의 속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상 왕의 보좌는 사망에 의하여 그리고 반란과 혁명에 의하여 그주인이 바뀐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결코 그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굳게 고정된 보좌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자자손손 영원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여된다는 확신의 토대는 바로 영원히 굳게 고정된 하나님의 보좌에 근거하고 있다(11:4).

성 경: [시103:20]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께 대한 찬양 촉구]

⭕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 말라카 깁보레 코아흐 오세 데바로 리쉬모아 베콜 데바로) - 이것을 직역하면 '그의 말씀의 소리에 순종하여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힘의 용사들'이다. 이것은 하늘 보좌를 둘러싸고 서서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그 명령을 수행하는 다양한 계급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힘의 용사들'로 번역이 된 '말라카 깁보레'(*)는 구약 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그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나, 사해 사본 등에 나오는 유사 용어 연구를 통해 볼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강력히 수행하는 '천사들'로 봄이 합당하다. 기자는 모든 축복과 영예와 능력이 하늘 보좌에 앉은 그분에게서 나왔음을 찬양하는 대열에 먼저 그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을 부르고 있다.

성 경: [시103:21]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께 대한 찬양 촉구]

⭕ 천군(*, 체바아) - 원래 이 말은 천상적(天上的) 존재인 천사들의 군사적 성격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데 본 문맥에서의 의미에 대한 해석으로는 '별들'(148:3).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천상적 존재'등이 있다. 그러나 본절이 서술하고 있는 '체바아이우'의 성격을 볼 때 그것은 앞절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러하다면 '체바아'는 앞절에서 그 의미가 명확히 규정된 대로 '천사들'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기자는 찬양 대열에로의 천사들의 초청을 반복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시103:22]

주제1: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주제2: [하나님께 대한 찬양 촉구]

⭕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 여기서 '너희'는 천사들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함축하는 말이다. 기자는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 찬양에로 초대한 후 서두처럼 자신의 하나님 찬양으로 돌아와 본 시편을 끝맺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점에서 출발한 선이 커다란 원을 그리고 다시 그 점으로 돌아오는 그림을 연상하면서 어떤 문학적 정형성을 염두에 둔 본 시편 기자의 의중을 읽게 된다.

성 경: [시104:1]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창조주의 엄위(嚴威)하신 모습]

⭕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 존귀와 위엄의 상징인 어복(御服)을 입은 왕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 왕되신 하나님을 암시한다(93:1).

성 경: [시104:2]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창조주의 엄위(嚴威)하신 모습]

⭕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 본 시편은 온 우주에 생명력과 기쁨을 쏟아붓고 계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찬양하는 시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찬양케 하기 위하여 먼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의 내용을 자기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빛을 입으시며'에 해당하는 '오테 오르'(*)의 문자적인 뜻은 '빛으로 두르고 있는'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 사역의 첫쨋날에 빛을 있게 하신 사실을 연상 시킨다. 일단 빛이 있은 후에 하나님은 그의 창조 사역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셨는데 이 사실을 기자는 '하나님이 빛으로 두르시고 계시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의해 생겨난 그 빛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속 유지, 보존시키심을 반영한다. 이 사실에 대한 근거는 '입으시며'의 히브리어 '오테'(*)가 분사형으로서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낸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빛되신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서도 변함없이 빛이시다(요 1:4-9; 요일 1:5). 한편 '옷을 입음같이'는 '카살마'(*)로서 문자적인 뜻은 '옷처럼'인데 빛을 옷에 비유한 본 대목에 대해 칼빈(Calvin)은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기자는 빛과 옷의 비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비가시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광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 본질적 속성에 있어서 하나님은 접근이 불가한 빛 가운데 계시는 분임이 사실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마치 의복을 입고 그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 영광을 온 세계에 비추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하나님의 위엄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시는 아름다운 우주 만물에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하며 위험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그분의 본성의 신비를 파고 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의 휘장같이 하늘을 펼치십니다'이다. 사 40:22에도 동일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창 1:6-8에 나오는 창조 사역 둘째날 행사의 약술(略述)이다. 하늘이란 아래, 위의 물을 구분하며 널리 퍼져 있는 공간인 궁창을 뜻한다(욥기 서론,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참조). 여기서의 '휘장같이'를 해석하는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처소로서의 하늘을 강조하는 견해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쉽게 하늘을 만드신 것을 강조하는 견해이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어거스틴(Augustine)과 같은 초대 교회 교부들을 비롯한 보수주의 학자들은 대체로 후자를 따르고 있다.

성 경: [시104:3]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창조주의 엄위(嚴威)하신 모습]

⭕ 물에 - 창 1:7에 따르자면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리킨다.

⭕ 누각(*, 알리오타이우) - 문자적인 뜻은 '그 위층의 방들'이다.몇 개의 층들로 되어 있는 건물을 연상시키는 이 표현은 커다란 집의 위층에 있는 방,혹은 지붕이 평평한 집의 지붕 위에 있는 방을 암시할 때 자주 사용된다(왕상 17:19;왕하 1:2; 4:10). 본절에서는 마치 여호와의 궁전이 궁창 위에 있는 물들 위에 기초를 두고 세워진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 들보를 얹으시며 - 이 같은 비유적 표현을 감상하며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을 비롯한 그의 피조 세계는 그의 솜씨를 나타내며 그 영광을 간접적으로 계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찾아낼 수 없다.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가장 확실한 일은 오직 오랜 역사를 통해 계시된 그의 말씀을 묵상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본 시편을 감상하며 지속적으로 염두에 둘 것이 바로 이 점이다(Calvin). 천지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이 당신 자신에게 뭔가를 첨가하셨다는 식으로 상상해서는 안된다. 치장하듯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셨을 뿐이다.

⭕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 하나님은 마치 구름을 타고 다니시는 분으로 묘사되기도 하며(사 19;1; 단 7:13; 마 24:30) '날개 달린 말'과 같이 바람을 타고 다니는 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Gunkel).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모든 자연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이다(148:7-14).

성 경: [시104:4]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창조주의 엄위(嚴威)하신 모습]

⭕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 본절에 대한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들을 바람이나 불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만드셨다는 것, 곧 하나님께서 바람이나 불과 같은 강함, 민첩함, 오묘함 등으로 그의 사자들을 옷입히듯 하셨음을 밝히는 구절이라는 견해이다(LXX,Briggs). (2) 하나님의 사자들(천사들)은 온갖 형태의 바람과 천둥, 불 따위의 조정을 떠맡은 비밀스러운 중재자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구절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따를 경우 우리 주위에서 느끼고 볼 수 있는 온갖 형태의 자연력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천사들의 사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람과 물,티끌과 불 등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본절은 이 모든 경이로운 조화가 천사들의 활약 때문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흔히 우연이라고 말하는 기후, 계절 따위를, 바람을 움직이고 불을 일으키는 사역을 그의 사역자들(천사들)에게 맡기신 하나님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삼라 만상(森羅萬象)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결과들을 볼 때마다 그 사역자들을 통해 그 같은 현상과 결과들을 낳게 하신 자비롭고 거룩하신 분 하나님을 상기 해야만 할 것이다'(Newman). (3) 하나님이 바람, 구름, 천둥, 번개 등과 같은 자연 현상들을 마치 천사들을 부리시듯이 마음대로 통제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이다(VanGemeren). 이 같은 세 견해 중에서 본 문맥이 피조 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 지혜와 영광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3)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것 같다.

성 경: [시104:5]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 여기서 '땅의 기초를 두사'(*, 야사드 에레츠 알 메코네하)의 문자적인 뜻은 '그가 그 기초들 위에 땅을 세우셨다'이다. 마치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존재함을 연상시키는 본 표현 때문에 어떤 학자는 아예 '그가 지구 그 자체를 세우셨다'로 번역하기도 한다(Mendelssohn).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본 구절의 원문적 의미와 유사한 뜻을 암시하고 있는데(욥 38:4-6; 잠 8:29) 본문의 핵심은 지구를 떠받치는 기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온 땅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한편, '영원히 요동치 않게'라는 표현은 지동설을 반대하던 학자 산체스(Sanchez)가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와 논쟁을 벌일때 강력하게 의존하였던 표현이라고 한다(Perowne). 성경은 오히려 지동설을 지지하는 듯한 구절을 갖고 있는데 그 구절은 욥 26:7이다 :'땅을 공간에 다시며'. 이것은 땅이 공중에서 내려온 어떤 줄에 매달려 있다는 뜻이 아니라 땅이 공중에 떠 있다는 의미이다.

성 경: [시104:6]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 여기서 기자는 빛이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듯한데 그 대상은 원시적 혼돈이다(창 1:2). 이방적 개념의 혼돈이란 땅과 물이 서로 뒤섞인 혼잡의 덩어리이다. 그러나 기자는 땅은 이미 형성되었고 그 형성된 모양을 물이 완전히 덮고 있는 상태를 혼돈으로 보고 있다.

성 경: [시104:7]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 외관상 본절의 문장 구조는 불완전한데 그것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이 원문상 바로 앞절 후반절과 연결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앞절의 주어를 본절의 주어로 삼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서 본문의 주어는 물이다(70인역, 제롬역). 물이 하나님의 견책을 받고 우뢰 소리 같은 그분의 명령을 듣는다는 식의 표현은 무생물의 반(半)의인화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기자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물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한 위치로 내려가고 그에 따라 수면 아래 있던 땅이 그 자태를 드러낸 창조 기사의 일부를 생생하고 박진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시104:8]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야알루 하림 예르두 베카오트) - 6절 하반절, 7절에서 계속적으로 주어로 인정되고 있는 '물'을 넣어 번역하면 '물들은 산들 위로 올라가며 골짜기들 속으로 가라앉기도 했다'이다. 이 번역은 대부분의 영역본들이 취하고 있는 것으로(they flowed over themountains, they went down into the valleys, NIV) 문법적으로 수용할 만하며 땅을 덮고 있어서 혼돈 상태를 지속시켰던 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 위치로 향하고 있음을 묘사하던 선행절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 번역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 번역은 6-9절의 주제와 연결성을 띠고 있다. 더욱이 이 번역은 107:26의 유사 문장 구조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다.

성 경: [시104:9]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물의 경계를 정하여 - 태고적 혼돈 상태의 물이 '정해진 지역에 함께 모아져서'(창1:9) 땅과 바다가 분명하게 분리되었다는 말이다(욥 26:10; 38:10, 11; 잠 8:29; 렘5:22). 따라서 이것은 절대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홍수 발생 중지에 대한 포고령이 아니다. 즉,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 홍수가 전혀 발생하지 않게끔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본 구절은 창조 때 처음으로 설정되었고 그후 노아 언약(창9:9-16)을 통하여 확증된 일반적인 의미의 땅과 바다 사이의 경계를 암시할 뿐이다.

성 경: [시104:10]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함솰레하 마아야님 바네할림) - 문자적인 뜻은 '샘물을 격류가 흐르는 수로를 따라 보내시는 분'이다. '골짜기'에 해당하는 '나할림'(*)은 격류가 흐르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흔히 알고 있는 사막의 와디(wadi)를 연상하면 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통념에 있어서 샘물의 근원은 천지 창조 전의 혼돈과 같은 심연(深淵)이었다고 한다(Anderson). 마치 이러한 통념을 바꾸어 놓기라도 하는 듯이 기자는 그 샘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시104:11]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타나는 구절인데 '들나귀들'로 번역된 '페라임'(*)은 '야생 나귀'(the asses, KJV; the wilddonkeys, NIV)를 뜻하나 동의적 평행을 고려할 때 상반절의 주어에 해당하는 모든 들짐승을 대표하는 말로 보면 되겠다. 사람의 접근을 피하는 것이 그 특징인 들짐승에게도 그 필요를 공급하는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은 끊이지 않는다.

성 경: [시104:12]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 '공중의 새들'은 창 1:30; 2:19에서 자주 언급된 '공중의 모든 새', '공중의 각종 새'를 연상케 한다. 한편, '그 가'란 10절에서'골짜기'로 번역된 '나할림'(*), 곧 잎사귀들이 풍성한 나무들로 가득찬 물이 흐르는 냇가 및 골짜기 양 옆의 '둑 위'를 가리킨다. 지켜주는 파수꾼도 없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도 없는 날짐승까지도 하나님은 먹이시고 입히셔서 그것들로 하여금 기쁜 노래까지 부르게 하신다.

성 경: [시104:13]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 3절에서 '누각'(*, 알리오타)은 궁창 위의 물 위에 세워진 것처럼 묘사된 하나님의 처소를 가리키나, 여기서는차라리 '구름들'로 봄이 더 무난하겠다. 시인은 마치 하나님이 구름으로부터 혹은 구름 위로부터 물을 내리시고 계시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산'이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그곳 위에 구름이 있고 산들에서부터 강줄기가 발전되기 때문이다."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신 11:11, 애굽은 이와는 달리 나일강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말하자면 팔레스틴은 주로 하늘로부터 그리고 땅 속에서 먹을 물을 공급받았다(창자 49:25).

⭕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미프리 마아세카 티스바 하아레츠) - 문자적인 뜻은 '땅이 당신의 일의 열매로 만족해하다'(the earth is satisfied with the fruit of the works, KJF)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여기서 '당신의 일의 열매'란 땅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그럴 경우 본문은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 결과 온 땅에 풍성한 결실이 거두어짐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이해된다(Kirkpatrick). 또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동의적 평행구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의 일의 열매'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된다. 이렇게 해석해도 본절 이후 후속절에서 비로 인한 땅의 소산에 관한 묘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Briggs, Davies).

성 경: [시104:14]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레호치 레헴민 하아레츠) - 문자적인 뜻은 '그가 땅으로부터 떡을 가져오시고'이다. 여기서 '떡'이란 후속절에 나오는 토지의 주요 3대 산물을 총칭하는 바 사람들의 양식을 뜻한다. 이같이 인간의 수고로 얻어지는것 같은 양식은 사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물인 것이다.

성 경: [시104:15]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 - '기름'(*, 솨멘)은 식용(민 11:8), 약(막 6:13), 향료(전 10:1), 등유(출 25:6), 화장품(룻 3:3)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특히 얼굴을 윤택케 한다고 표현한 것은 기름을 사용한 후의 그 기쁨의 광휘(光輝)가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절에서 기자의 시각은 귀한 비로 인한 땅의 만족으로부터 땅의 소산으로 인한 인간의 만족으로 바뀌고 있다.

성 경: [시104:16]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여호와의 나무 - 이것을 '강한 나무' 혹은 '태고 원시림의 나무'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Kissane) 인간의 보살핌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야생 수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즉, 인간의 경작 및 관리하에 있는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 따위와는 대비를 이루는 산야(山野)에서 자생하는 나무들로 본다는 말이다. 이것이 적절한 견해인 근거는 하반절이 그 나무를 산야에서 자생하는 백향목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70인역(LXX)은 '평지의 나무'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시104:17]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 여기서 '학'(*, 하시다)은 '경건한(애정있는) 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문맥상 보통 새보다 몸통이 큰 새라는 면에 그 강조점이 있다. 반면 12절과 본문의 '새들'이란 나뭇가지 위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몸집이 작은 새이다(Alexander, Perowne). 그리고 '잣나무'로 번역된 '로쉼'(*)은 레바논에서 서식하는 노간주나무의 일종이거나 가나안이 원산지인 전나무일 것이다(IDB). 요컨대 본 구절은 하나님이 주신 비를 받아 잘 자란 수목 속에서 그 보금자리를 두고 사는 크고 작은 새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 경: [시104:18]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바위(*, 셀라임 마하세) - 여기서 '슬라임'은 '울퉁불퉁한 바위' 혹은 상징적으로 '요새'를 뜻하며, '마하세'는 '피난처'를 뜻한다. 따라서 본문의 '바위'는 험한 바위산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나무들이 새들이 깃드는 안식처이듯이 험준한 바위산은 야생 들짐승들이 안전히 쉴 수 있는 안식처라 할 수 있겠다(the crags are a refuge for the coneys, NIV).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을 위해 양식을 공급하실 뿐 아니라 처소도 마련하신다.

⭕ 너구리(*, 솨파님) - 바위 너구리(coneys, NIV), 오소리(badgers,RSV)등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히 어떤 짐승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되새김질하는 네발 달린 짐승인 것은 분명하다.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레 11:5; 신 14:7 등이 그 증거이다.

성 경: [시104:19]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 기자는 제 4일째의 창조 사역을 언급함에 있어서 밤을 주관하는 달을 먼저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히브리인들의 사고에 있어서 밤은 낮에 선행(先行)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기자의 저녁과 아침의 서술 배열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러한 암시를 엿볼 수 있다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창 1:5, 8, 13, 19등). 뿐만 아니라 본 시편 후반부에서도 먼저 밤의 광경이 서술되고(20, 21절), 후에 낮의 광경이 이어지고 있다(22, 23절). 한편 여기서의 '절기'를 문자 그대로 거룩한 절기, 혹은 대축제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인데 그 근거는 외경인 시락서 (the wisdom of Jesus the Son of Sirach) 43:7에 두고 있다 : '달로부터 절기들의 신호를 찾노라.' 그러나 이곳 외에 동일한 암시를 주는 곳은 없다. 따라서 '절기'란 표현을 문자 그대로의 절기 대축제일로 못박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75:2에서는 동일 용어가 '정한 기약'(특정한 때) 정도로만 번역되어 있다.

⭕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 석양에 대한 본 언급은 후속절에서 이어질 밤의 광경에 대한 묘사의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고 있다(욥 38:12; 렘 8:7).

성 경: [시104:20]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기어 나오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라마스'(*)는 파충류나 어류의 움직임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창 1:21과 69:34의 동사형 그리고 25절의 명사형 '움직이는 것'(개역 성경에는 '생물'로 번역됨) 등도 바다 속의 피조물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창 1:24, 25의 명사형은 땅위의 '기는 것'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숲속의 짐승들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먹이를 찾거나 쫓기 위하여 짐승들이 살금살금 움직이는 모습이나 창 7:21의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에서와 같이 기타 여러 종류의 동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성 경: [시104:21]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젊은 사자 - 이를 모든 들짐승의 대표로 해석하는 견해(Anderson)와 독자의 시선을 끌 만치 잘 알려진 짐승으로 해석하는 견해(Barnes)가 있는데 그 어떤 견해를 취해도 큰 무리는 없다. 다만 핵심은 숲속의 들짐승들도 그 생명 보존을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린다는 데에 있다 하겠다.

성 경: [시104:22]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물러가서 그 굴혈(窟穴)에 눕고 - 여기서 '물러가서'는 '예아세푼'(*)으로서 직역하면 '그들 스스로 함께 모여'이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단순히 본능으로만 돌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읽게 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즉, 밤새 먹이를 찾아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헤매던 짐승들이 인솔자를 앞세우기나 한 듯 한 무리를 지어 안식처인 동굴 따위로 가서 가지런히 눕는 모습에서 우리는 저급한 동물의 본능이 아니라 자상한 하나님의 섭리, 간섭을 진하게 느끼게 되는것이다.

성 경: [시104:23]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 도다 -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기 위하여 밤새 먹이를 찾아 헤매는 들짐승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제 빛이 있는 하루 온종일 짐승들과는 대조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장면이 연결되고 있다. 땅 위의 피조물들은 밤과 낮 할 것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섭리하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단순히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지만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의 전존재를 의탁할 뿐 아니라 노동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

성 경: [시104:24]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여호와의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 모든 피조물의 왕관 격인 인간에 대한 언급을 하고 나서 창조 사역 제 6일째 후의 안식을 염두에 둔 듯하다. 기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다양성과 오묘함의 놀라운 경지를 토로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온 천지 창조에 대한 묘사를 잠시 쉬고 있다. 즉, 기자는 본절을 기점으로 하여 지금까지 계속해온 하나님의 섭리 사역에 대한 기술로부터 그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신 그분에 대한 찬양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다.

⭕ 부요(*, 킨야네카)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의 소유물'이다. 이것은'피조물'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된다(your creatures, NIV).

성 경: [시104:25]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대소 생물이 무수(無數)하니이다 - 여기서 '무수하다'는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innumerable, KJV; beyond number, NIV). 기자는 하나님의 피조세계 중에는 그가 감히 말할 수 없는, 곧 알 수 없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바다는 땅에 비해 매우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었다(Anderson). 깊고 낮은 해연(海淵)들, 고래뿐 아니라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산호들이 이곳 저곳에 숨어있는 바닷속, 인간은 그 깊은 심연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성 경: [시104:26]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악어(*, 리웨야탄) - 우가릿 문학에서는 바알의 원수로 알려진 동물이며, 70인역(LXX) 및 벌게이트역(Vulgate)등은 '용'으로 번역하고 있고, 몇몇 영역본들은 리워야단(the leviathan, KJV, NIV, RSV) 또는 고래(the whale)로 번역하였다. 그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몸집이 거대한 '미지의 괴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동물도 분명히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74:14).

성 경: [시104:27]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이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바라나이다(*, 사바르) - 아랍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 본 용어는 일용할 양식을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145:15의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와 그 의미가 동일하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양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성 경: [시104:28]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취하며(*, 일르코툰) - 직역하면 '모으며'이다. 이 용어는 원래 돌멩이, 꽃, 이삭, 포도, 나무 따위를 '땅바닥으로부터 집어든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짐승이 먹을 양식을 얻게 됨을 가리킨다. 만나의 수확에 대한 암시로 보는 학자도 있는데(Hengstenberg) 그 근거가 전혀 없다.

성 경: [시104:29]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 문자적으로는 주시하던 방향으로부터 시선을 전환시킨다는 뜻이나, 문맥상의 의미는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적 돌봄이 중단됨을 가리킨다. 본 구절은 성경 이곳 저곳에서 하나님의 분노 혹은 불쾌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다(22:24; 102:2; 신 31:17, 18; 사 64:7 등).

⭕ 저희가 떨고 - 원문상 동일한 표현을 30:7에서 볼 수 있다 :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이외에 욥 23:15을 참조하라).

⭕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 '호흡'의 그 문자적인 뜻은 '영' 혹은 '생명의 호흡'(창 2:7)이다. '영'은 하나님께로 왔으니 결국 그분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전12:7). 육체 또한 생명의 호흡으로 말미암는 생기가 없을때 맨 처음 왔던 곳인 티끌로 돌아가기 마련이다(146:4; 창 3:19). 한편, '호흡을 취하신즉'은 '토세프 루함'(*)인데 이와 유사한 구절이 노아 홍수 기사에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창 6:17; 7:22) 본절과 노아 홍수 사건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나 문맥상 타당성이 없다.

성 경: [시104:30]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통치 사역]

⭕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 본 구절은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기사를 적고있는 창 2:7에만 국한된 지엽적인 언급이 아니라 전체 창조에 있어서 위대한 생기 부여자로서의 성령을 묘사하고 있는 창 1:2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것이 좋다. 즉, 오고 가는 모든 세대의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생명 주입의 보편적 사역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야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앞의 문맥은 생명체의 소멸을, 그리고 후 문맥은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생명체를 땅 위에 두시어 정한 기한까지 기식하며 살게 하시고 그 생명을 거두시고 또 다른 생명을 땅 위에 두시고 다시 거두시는 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들로 지면에 존속케 하신다. 세대에서 세대에로의 새로운 전환을 거듭함으로 땅은 새로움과 신선함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성 경: [시104:31]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찬양에의 서원과 확산]

⭕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 '영광'은 여호와의 현현(顯現)의 묘사로 흔히 사용된다(출 16:7, 10; 24:16, 17; 40:34, 35). 말하자면 그의 임재의 현시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본 문맥에서 저자는 창조사역 때 드러났던 하나님 임재의 영광이 영원할 것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 임재의 영광의 영원성을 바라보는 피조물에게 요구되는 바는 순종이다. 결국 기자는 피조물의 복종, 순종을 끌어내기 위하여 임재 영광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 자기 생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 이것은 창조 사역을 마친 후 그 피조된 세계를 보고 선포하신 말씀인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1)를 연상시킨다.

성 경: [시104:32]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찬양에의 서원과 확신]

계속해서 기자는 그의 영광 중의 엄위로우신 하나님께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가 한번 쳐다보면 땅은 떨 것이며 그가 한번 손을 대면 산들은 타버릴 것이며 그가 원하시면 이 순간에 그가 만든 피조 세계는(無)로 돌아가버릴 것이다. 이 같은 묘사는 여호와의 능력, 그의 피조 세계에 대한 절대적 우월성을 암시한다.

성 경: [시104:33]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찬양에의 서원과 확신]

⭕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 '나의 평생'이란 육(肉)을 입고 있는 동안, 곧 땅 속에 묻히기 전까지를 뜻한다. 본문과 같은 표현은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115:17, 이외에 6:5을 참조하라)라고 하는 당시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한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주어진 시한 동안만이라도 내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기자는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 속에서 그의 기쁨을 발견하시고 역으로 사유가 가능한 피조물, 곧 인간은 그분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에 가깝고 고상한 창조의 조화이다.

성 경: [시104:34]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찬양에의 서원과 확신]

⭕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예에라브 알라이우시히) - 문자적인 뜻은 '나의 묵상이 그에게 달기를(즐겁기를)', 혹은 '그에 관한나의 묵상이 달기를'로 볼 수 있는데, '여호와 앞에서 내가 즐거워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하반절과의 동의적 평행을 중시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그에 관한 나의 묵상이 달기를'이란 하나님의 품성과 사역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기쁨을 발견하기 원한다는 말이다. 참 경건한 자의 성품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묵상할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단 규칙적인 시간을 정했으면 결코 돌이키지 않는다. 아무리 바쁜 일과 속에서도 그 시간을 생각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기쁨,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죄인은 그렇지 않다. 묵상의 시간도 없고 그분을 기뻐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그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사 30;11).

성 경: [시104:35]

주제1: [창조와 보존의 하나님]

주제2: [찬양에의 서원과 확신]

⭕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 진정한 의미의 가장 고상한 창조의 조화는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시고 사유 가능한 그의 피조물, 인간은 하나님을 통해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조화는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마치 전파 방해로 인하여 채널의 주파수를 맞출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죄가 세계에 무질서 불협화음을 가져온 것이다. 죄는 질서(cosmos)를 무질서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있던 기자는 이제 선지적 소망을 가지고 죄인은 소멸되고 말 것이며 그리고 죄인이 없으므로 이 땅은 정결하게 되고 그 조화가 다시 회복될 것을,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께서 한번 더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선포하실 때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 이러한 종말론적 소망 속에서 기자는 자신의 영혼이 그리고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이 여호와를 기리며 찬양할 것을 권하면서 본 시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성 경: [시105:1]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여호와께 감사하며 - 78편, 106편과 함께 본 시편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 있어서 그 민족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경이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세 편의 시편들은 동일 주제를 지향하지만 그 주제를 지향하는 의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78편은 교훈적이다. 즉, 그 의도는 한 가지 교훈을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쳐 현재를 위한 경고를 삼기 위하여 과거를 회상한다. 106편은 참회적 고백을 의도하고 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 과거 역사를 주로 죄악의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 본 시편은 감사를 끌어내기 위한 적절한 주제인 바 미래의 순종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토대로서의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여명기에 그 민족을 위해 행하신 여호와의 능력의 역사를 진술하고 있다. 본 구절에서는 특히 감사를 끌어내기 위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 본 표현은 그 다양한 문맥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애가(哀歌)의 문맥의 경우는 고통자가 구원을 바라며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 되겠고(116:4), 찬양시의 경우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와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외치며 즐거워하는 것이 되겠다(104:35, Anderson). 아무튼 본절 전체는 사 12:4과 유사하다.

성 경: [시105:2]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그를 찬양하며(*, 잠루로) - '자마르'(*)의 본래 의미는 악기의 현 따위를 '만지다', '연주하다'이며 여기서는 '어떤 일정한 리듬을 동반해서 노래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핵심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그저 노래할것이 아니라 일정한 음악적 정형을 갖추고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노래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엄위로운, 인간과는 구별된 신(神)이시기 때문에 찬양에도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침이 마땅하다.

성 경: [시105:3]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그 성호를 자랑하라(*, 히트할루 베쉠 코드쇼) -문자적인 뜻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이다. 요점은 우리의 찬양에 있어서 주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점을 좀더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 찬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그분이 택하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이름이란 곧 여호와 자신이요(Anderson).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에 다름아니다(Davies). (2) 찬양과 기뻐함의 주제는 그의 마음이 거룩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다는 것이다. 빛이 빛을 좋아하듯이 거룩함을 지향하는 자만이 그 사실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땅 위에 하나님만큼 완전히 거룩한 자는 없다. 그러므로 날마다 거룩해지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기뻐해야 한다.

성 경: [시105:4]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디르슈 예화 웨우조)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와 그의 힘을 구하라'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구한다는것은 그의 전능한 힘을 구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새로운 힘을 얻게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때 70인역(LXX) 및 벌게이트역(Vulgate)의 의역,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하면 강해지리라'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본 시편 전체 줄거리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 속에 나타났던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문맥은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초점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중시할 때 본구절은 '강하신 여호와...'로 의역함이 더 타당하겠다.

성 경: [시105:5,6]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아브라함의 후손 - 대상 16:12, 13에는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본문은 언약의 시조라는 면에 강조점이 있고, 역대상의 경우는 언약의 후손들이라는 면이 강조되어 있다. 시편에서는 47:9외에 본 시편 9, 42절에서만 '아브라함'이란 호칭을 볼수 있다.

⭕ 택하신 야곱의 자손(*, 베네 야아코브 베히라) -정확하게 직역을 하면 '택하신 야곱의 자손들(아들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씨들로서 하나님의 택자(擇者)들이며, 언약과 약속들의 상속자들인 야곱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 역사를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 조부(祖父)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듯이 말이다(8절).

⭕ 그 입의 판단 -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이 아니라 바로와 그 백성 위에 내린 징벌을 암시하는 것 같다(14절; 출 6:6; 7:4; 12:12).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들을 치신 사건을 비롯한 열 가지 재앙과 홍해까지 이스라엘을 추격했던 바로의 군병들을 물 속에 수장시키심으로써, 모세를 통해 실행된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해방을 무시한 애굽을 징벌하셨다. 본문 앞에 언급된 '기사'와 '이적'은 이와 동일한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동일한 의미가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애굽 징벌 종류의 다양성 및 강조를 나타내기 위함인 것 같다.

성 경: [시105:7]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권면]

⭕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 여기서 '우리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헤누(*)로서 하나님의 언약적 품성을 암시하는 말이다. 본절로부터 본 시편의 끝절까지 계속되는 찬양의 핵심은,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언약의 수여자로 언급하신 사실은 출20:2에도 나타난다.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 '판다'의 히브리어 '쉐페트'(*)는 일반적으로 '재판', '판결'등을 뜻하지만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영향력'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심에 따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 나라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 경: [시105:8]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천 대에 명하신 말씀 -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신 7:9)라는 말씀을 연상시키는 본 구절의 '천 대'는 한계가 없는 기한 곧 '영원'을 뜻한다. '명하신'은 '치와'(*)로서 동일한 단어가 민 27:19에도 나오는데 그곳에는 '세우다'로 되어있다. 이러한 용례는 10절의 '세우신'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결국 이 용어는 이스라엘이 받아 지켜서 그것을 든든히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하겠다.

⭕ 기억하셨으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카르'(*)로서 본 문맥에서는 그 세우신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에게 적용되고 있다. 즉, '자카르'는 한번 맺은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을 묘사하는 용어이다(74:2; 79:8). 한편, 본 용어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처럼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도 언약에 대하여 신실할 것을 명령하는 대목에서도 사용된다.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대상 16:15)

성 경: [시105:9]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아쉐르 카라트 에트아브라함) - 직역하면 '그가 아브라함을 향하여 잘랐던 그것'이다. 문자적으로 '언약'이라는 말이 원문에 없으나 본 구절 자체에 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카라트'(*)는 고대에 언약 체결 당시 언약 쌍방이 그 사이로 지나갔던 두 부분으로 '자른' 짐승을 연상시키는 표현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국가에서는 일정의 계약을 체결할 때 짐승을 잡아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쌍방이 그 자른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 그 행위 속에는 만일 체결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잘라진 양편의 고깃덩이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결심이 담겨져 있었다(렘 34:18-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실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짐승을 잡게 하셨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은 암소, 암염소, 수양,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놓았는데 새는 쪼개지 않았다(창 15:9,10). 그러나 일반의 경우와 달리 아브라함은 그 쪼갠 고기 사이를 통과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그 사이를 통과하신 것이다. 성경은 타는 횃불이 그사이를 지나갔다고 하였는데 이 횃불은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시다(창 15:17).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그리고 택한 후손에게 계속 전승될 약속은 자신의 생명을 바꾸어서라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그 의식을 통하여 보여 주셨던 것이다. 물론 본 의식(儀式)을 통하여 우리는 먼 훗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그리스도, 곧 하나님 그분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생명을 걸어가면서까지 하신 약속, 그 약속을 본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이삭에게 하신 맹세 -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카라트'(*)로 표현 했던 반면, 이삭에게 주신 약속은 '쉐부아트'(*)로 표기하고 있는데 후자는 전자에 주었던 약속에 대한 확증이라는 측면에 그 강조점이 두어져 있다(창 22:16;26:3). 대(代)를 이어 전해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은 약속한 땅, 가나안의 수여가 그 핵심이다.

성 경: [시105:10]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 여기서 '율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호크'(*)인데 주로 복수형인 '후킴'(*)이 자주 쓰인다(119:5등). 율법의 외형적 성격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본 용어는 주로 한번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문자화된 형태를 가리킬 때 사용되고 있다(18:22; 147:19). 여기서는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등에게 이미 주었었기 때문에 이제는 글로 써서 종이에 간직한 바 된 듯한 분명하고도 명확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 이스라엘에게 하신 - 얍복 강 씨름 사건 이후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게 되는데(창 32:24-32)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단순한 개명(改名)을 뜻하지 않고 한 국가의 탄생을 암시한다. 말하자면 야곱이 한 국가의 시조가 된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그 국가의 구성원은 야곱의 아들들을 근간으로 형성되어간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개인 야곱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따라서 야곱에게 준 약속은 곧 이스라엘에 주신 약속이기도 하다.

성 경: [시105:11]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너희 기업의 지경 - 여기서 '지경'은 '헤벧'(*)로서 그 문자적인 뜻이 '줄', '로우프', '길이를 측정하는 자'등이다. 본절에서는 어떤 대상, 곧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주기 위한 그 크기가 분명히 정해진 일정의 토지를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시105:12]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매우 영성(零星)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 '매우 영성하며'는 '키므아트'(*)인데 '한 웅큼밖에 되지 않는 숫자'로 풀어 번역하는 학자도 있다. 아무튼 숫자가 매우 적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관계로 당시 이스라엘은 이곳 저곳으로 쫓겨다니는 나그네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성 경: [시105:13]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족속...민족 - 전자는 '고이'(*), 후자는 '암'(*)인데 전자는 주로 동일한 기원을 갖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일련의 공동체를 뜻하고 후자는 한 정부 아래 있는 공동체를 뜻한다.

성 경: [시105:14]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 여기서 '열왕'이란 애굽의 바로(창 12:17), 그랄의 왕 아비멜렉(창 20:2) 등을 가리킨다.

성 경: [시105:15]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나의 기름 부은 자(*, 마쉬아흐) - 문자적인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 혹은 '특별히 구별하여 거룩케 한 자'이다. 기자는 특정인에게 기름을 실제적으로 부은 적이 없었던 족장 시대가 아닌 자신의 시대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다윗시대와 같은 왕국 시대에서나 왕, 제사장 혹은 선지자들에게 기름을 부었었다(왕상19:16). 그러나 기자는 하나님께서 족장,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같은 이를 선지자로 부르셨던 사실을 기억하고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참선지자, 특별히 구별한 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창 20:7). 나의 선지자(*, 네비아) - '나의 선지자들'이란 뜻이다. 족장들 중에 실제로 '선지자'로 칭함 받은 자는 아브라함뿐이다(창 20:7). 그러나 여기서는 이삭과 야곱 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은 자들이요 하나님과 긴밀하게 교제했던 자들이라른 점에서 선지자로 지칭되고 있는 듯하다(Alexander). 한편, '선지자'에 해당하는 '나비'(*)는 아카드어 '나부'('부르다', '지명하다'란 뜻) 혹은 아랍어 '나바아'('선포하다', '언급하다'는 뜻)와도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Anderson).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대변자'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자'라는 의미도 내포하게 된다. 한편, 늦은 시기에 있어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령하는 자일 뿐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전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른 시기에 있어서,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 그같은 공적(公的) 기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론 노아 같은 사람은 '의의 선생'으로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그의 가족(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을)을 가르쳤던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창 18:19에 의하면 선지자란 하나님께서 말, 환상, 꿈 혹은 내적 음성을 수단으로 대화하였던 상대였다(민 12:6-8).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때 족장들을 선지자들로 묘사한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에 근접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냐"(창 18:17). 뿐만 아니라 소돔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준 맹세에서도 동일한 근접을 찾아볼 수 있다(창18:22-33). 이 두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아브라함에게 붙여진 '선지자'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뜻의) 중개자'라는 의미이다. 한편 '하나님의 친구'란 호칭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대하 20:7; 사 41:8; 약 2:23).

성 경: [시105:16]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그가 또 기근을 불러 - 여기서의 '불러'의 원형은 '카라'(*)인데 문자적인 뜻은 '소환하다', '청하다'이며 그 화자(話者)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본절로부터 38절까지에는 그 약속의 성취 한 단계 한 단계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암시하는,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서술되고 있다.

성 경: [시105:17]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팔렸도다 - 요셉이 종으로 팔린 기사를 아비의 편애에 의한 형제간의 갈등의 결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단서가되는 구절이다. 그 기사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출발이라는 점에 해석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 경: [시105:18]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그 발이 착고(着錮)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 본 기사를 싣고 있는 창 39:20-23보다 더 혹독하게 요셉의 투옥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요셉이 전옥(典獄)에게 신임을 얻기 전 투옥 초기 때의 모습이거나 전체 투옥 시절에 대한 강한 시적인 묘사로 추측되어진다.

성 경: [시105:19]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여호와의 말씀(*, 데바로) - '그의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의 말'이란 (1) 요셉으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던 꿈의 해석, 곧 투옥 중이던 바로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한 것(창 40:5-15 : 41:12)을 뜻하거나, (2) 요셉의 꿈을 통해 예언되었고 훗날 요셉의 영화(榮華)를 통하여 성취되었던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창 37:5-11)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문맥을 중시할때 전자가 옳다 하겠다. 그 자신이 꿈들을 해석하기 전까지 요셉은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본 구절의 강조점이다.

⭕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임라트 예화체라파트후) - 70인역(LXX)이 '주의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는 '임라트 예화'(*)는 상반절의 '그의 말'과는 다른 의미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꿈 해석이 아니라 요셉의 꿈들을 통하여 그에게 전달되었던 그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창 37:5-11)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약속'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하나님의 말씀 '임라트'(*)는 살아있는 실제적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119:50). 이 사실은 약속과 그 성취 사이 기간인 요셉의 고통과 투옥의 날들 동안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시험하심을 통하여 진리임이 입증되었다.

성 경: [시105:20]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열방의 통치자(*, 모쉘 얌밈) - 직역하면 '민족들의 통치자'이다. 이것은 요셉을 옥에서 자유케 하였던 애굽 왕 바로는 애굽의 왕(창 41:14, 39,40, 44)이었을 뿐 아니라 타민족까지 지배하였음을 암시한다. 당시 바로는 조공을 바치는 많은 나라들의 왕이었다.

성 경: [시105:21]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그 집의 주관자 - 요셉은 애굽의 국가 제반 사무를 책임진 국무총리가 되었다(창41:41). 이 같은 관직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존재했었다(왕상 16:9; 18:3; 왕하18:18, 37). 이 신분에 있던 자를 흔히 '집의 주관자' 혹은 '궁전의 주인'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성 경: [시105:22]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임의(*, 나프쇼오) - 문자적인 뜻은 '그의 영혼'으로 여기서는 요셉의 정신 작용에 의하여 외부로 표출되는 그의 말, 명령등을 가리킨다(창 41:40).

⭕ 제어하며(*, 레소르) - 문자적인 뜻은 '묶으며'이다. 영역본들은 '묶다'(bind, KJV), '훈육(징계)하다'(discipline, NIV), '투옥하다'(imprison, LB), '교훈(지시)하다'(instruct, RSV)등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런 번역들을 종합해 볼 때 여기서는 '통제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무난하겠다. 이 통제 능력은 권위의 증거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순종을 강요하고 상과 벌을 결정하는 권위가 본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다(Phillips). 요셉의 통제력은 창 41:40, 44에 잘 드러나 있다.

⭕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 요셉이 바로의 신하들에게 정치론 따위를 강의하였다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바로가 요셉의 7년 흉년 대책을 듣고 감동하였던 기사에 대한 시적인 묘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창 41:38, 39).

성 경: [시105:23]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전 상황]

⭕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 성경은 애굽 땅을 흔히 함 땅으로 부르고 있는데(78:51;106:22등) 그 이유는 애굽의 시조가 함이기 때문이다(창 10:6). 영원한 거처가 아닌 임시적으로 살 거처로 가기 위하여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 땅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성 경: [시105:24]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본절부터 38절까지는 출애굽기 처음 열두 장들에 나타난 역사, 특히 재앙들이 내려진 역사의 요약이다(출 1:7; 신 26:5과 비교하라). 여기서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 재앙은 함께 생략되어 있고 흑암의 재앙이 처음에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기자는 엄밀한 순서에 따라서 기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만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시적인 자유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105:25]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 원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미워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바꾸셨다'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을 미워하도록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애굽인들의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애굽인의 증오 문제에 있어서 그 원인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이 사실을 놓고 학자들은 고민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그 증오의 원인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저희들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로 번역하고 '하나님'이라는 주어는 생략해 버리기도 한다(갈대아역, 아랍역).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구절을 단지 이스라엘 백성의 수의 증가로 야기된 그 대적들의 증오심의 발동을 하나님이 괴로워하셨다는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Grotius). 그러나 출애굽 기사 중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는 식의 본 구절과 동일한 의미의 구절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사실이 난제로 대두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곳곳에서 하나님은 증오나 죄의 원인자인듯이 묘사되고 있다(사 6:9, 10; 막 4:12; 요 12:39, 40; 롬 11:8).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다. 그리고 죄를 미워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그분이 죄의 원인자이신 듯 묘사하는 곳이 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조직 신학적 용어가 바로 '허용적 간과'이다.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그의 구원 역사 속에서 죄의 작동을 허용하시는 분이시라는 것, 이것이 본 난제의 해결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본 구절의 강조점은 출애굽 기사 속에 나타나는 크고 작은 모든 요소들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생겨난 애굽인의 증오를 간과하심으로써 그분 중심적인 출애굽 사건의 기초를 마련하셨다.

⭕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레히트나켈) - 문자적인 뜻은 '세밀하게 의논하였다'이다. 문맥적으로 이스라엘의 증가를 보고 염려한 애굽인의 의논임을 생각할 때 '세밀하게 음모를 꾸몄다'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것은 출 1:10에 기록된 애굽인의 음모를 연상케 한다. "오라 우리가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자"(원문 직역). 애굽인이 꾸민 이스라엘의 증가에 대한 대처 방안은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를 죽이는 것이었다(출 1:15, 16).

성 경: [시105:26]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모세...아론 - 시편에서 이 '모세'라는 호칭이 나오는 곳은 77:20; 103:7; 106:16,23, 32 그리고 90편 표제 등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이라 불리웠고(출 14:31) 아론은 '택하신 자'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종'과 '택하신 자'는 5, 6절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구원을 위한 도구 역활을 담당했다(VanGemeren).

성 경: [시105:27]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저희가 그 백성 중에 여호와의 표징을 보이고(*, 사무 밤 디브레 오토타) - 이의 문자적인 뜻은 '그들이 그들 중에 그의 표적의 말들을 놓았다'이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대언자, 곧 선지자임을 엿보게 하는 표현이다. 사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말을 전하고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을 전하고 그분의 이적을 대행했을 뿐이다. 한편, 여기서 두 번째로 나오는 '그들'이란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 및 그 신하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대언자인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뿐아니라 바로의 궁(宮)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행하였다(출 4:28, 30;7:9, 10).

성 경: [시105:28]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흑암을 보내사 어둡게 하시니 - 아홉번째 재앙(출 10:21-29)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기 어렵다. 어떤 학자는 흑암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인데 그런 의미에서 처음 재앙부터 마지막 재앙 때까지 애굽은 흑암에 뒤덮여 있었다는 것을 본구절이 암시한다고 해석한다(Hengstenberg). 한편, 출애굽 재앙 기사와 본 시편 재앙기사의 배열 순서의 차이는 십계명 기사와 주님이 인용한 십계명 기사의 배열 순서의 차이를 연상케 한다(마 19:18, 19; 막 10:19; 눅 18:20).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본시편 기자는 기사 내용의 순서보다는 그 전체 내용의 전달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그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 - 개역 성경이 생략한 주어 부분 '마루'(*)를 넣어 재번역하면 이렇다. '그들은 그의 말씀들을 대항하여 반역하지않았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가리킨다(Theyfollowed his instruction and..., LB). 70인역(LXX), 시리아역, 아랍역, 에디오피아역 등은 '않았다'로 번역된 부정사를 생략하여 '그들은 그의 말씀들을 대항하여 반역하였다'로 번역하고 있는데(they rebelled against his words, RSV). 이 경우라면 '그들'은 애굽인들이 되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맛소라 원본(M.T.)과 배치되는 견해이다. 따라서 취할 수 없다. 본절이 모세와 아론의 순종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세의 사역 초기 곧 하나님이 그를 처음 부르셨을 때 그리고 그의 사역 후기 바위에서 물을 내었을 때 각각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사실과 대비를 시키기 위함인것 같다.(출 4:10,11; 민 20:24; 27:14 등).

성 경: [시105:29]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 첫번째 재앙을 말한다(출 7:14-25).

성 경: [시105:30]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개구리가 번성하여 - 두 번째 재앙을 가리킨다(출 8:1-15).

⭕ 왕의 궁실(*, 베하드레 말케이헴) - 직역하면 '그들 통치자들의 방들에'이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이 표현은 애굽 바로 왕의 신하들, 고관들의 처소를 가리킨다. 왕의 처소뿐 아니라 그 신하들의 처소에도 개구리가 들끓었다.

성 경: [시105:31]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파리 떼가 오며 - 출 8:20-24에 나오는 네 번째 재앙을 가리킨다.

⭕ 이가 생겼도다 - 출 8:16-19에 나오는 세 번째 재앙을 가리키는데 '이'란 '키님'(*)으로 오늘날의 '모기'를 가리킨다(Keil & Delitzsch). 본절에서도 출애굽기에서와 달리 셋째 재앙과 넷째 재앙이 그 순서가 바뀐 채 언급되고 있다.

성 경: [시105:32]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우박...화염(火焰) - 이는 일곱 번째 재앙을 가리킨다(출 9:22-26). 여기서 '화염'은 원어로 '에쉬 레하보트'(*)로서 '불타는 불'인데 이것은 천둥이 칠 때 동반되는 뇌성을 가리킨다(출 9:23).

성 경: [시105:33]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포도나무...무화과나무 - 하늘에서 우박과 벼락이 내릴 때 애굽의 대표적 나무였던 이 두 나무를 비롯한 모든 수목은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성 경: [시105:34]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황충...메뚜기 - 히브리어로 각각 '아르베'(*), '옐레크'(*)이다. 여덟번째 재앙을 언급하고 있는 출 10:1-20에는 전자인 '아르베'만 나오지만여기서는 '옐레크'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메뚜기의 일종인데 날개가 달렸다는특징이 있다(나 3:16). 뿐만 아니라 여덟 번째 재앙을 언급하고 있는 또 다른 평행구인 78:46에서는 또 다른 용어 '하실'(*)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다른 용어로 메뚜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 여덟 번째 재앙 때 나타났던 메뚜기는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 최소한 세 종류는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시105:35]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 밭의 열매를 먹었도다 - 여러 종류의 메뚜기들은 우박으로 망가져 버리지 않은 채 남아있던 식물들을 갉아먹어 버림으로 황폐화의 정도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성 경: [시105:36]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은 생략되고 재앙 기사는 마지막 재앙으로 끝나고 있다. 본절에 사용된 용어들은 78:51과 거의 유사하다.

성 경: [시105:37]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 이것은 출 12:35과 관계 있는 표현이다. 출 12:35 번역에 있어서 주요 영역본인 KJV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은금을 비롯하여 의복까지를 애굽으로부터 '빌린'(borrowed)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번역은 옳은 번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개념에 있어서 빌린다는 것은 다시 갚는 것을 전제로하는 것인데 애굽에서 나온 이후 이스라엘은 그 가지고 나온 것을 다시 갚은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애굽에게 사기를 친것이 되기 때문이다. KJV가 '빌린'으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솨알'(*)인데 사실 본 용어가 '빌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성경에 있기는 하다(출 22:14; 왕하 4:3 등). 그러나 여기서는 '구하다', '요구하다'등의 의미로 번역됨이 더 무난하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구하다'로 번역하고 있는 NIV, RSV 혹은 개역 성경 등은 바람직하다. 이스라엘은 빌리지 않고 당당히 달라고 요구하여 당시에 귀히 쓰는 은, 금 등을 받아 애굽을 나왔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이것이 본 구절의 핵심이다. 은금은 고대에도 주요 귀중 금속이었다. 이 둘은 장식용으로, 보물로 그리고 상거래의 저당물로 사용되곤 하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은은 금보다 귀하였다. 그래서 여기서도 은이 금보다 앞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 원기, 활력을 묘사하는 사 5:27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여기서 '약한 자'란 '코쉘'(*)로서, 그 문자적인 뜻은 '다리를 저는 자'이지만 '보행에 불편을 심하게 느끼는 자'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결국 본문은 여호와의 완벽하신 인도하에 출애굽이 성공리에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라 하겠다(신 8:4).

성 경: [시105:38]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 애굽은 많은 재앙들로 큰 고통을 받았으며 그 땅도 거의 황폐화되었다. 따라서 이제 더 심한 재앙이 내린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이 떠난다고 하자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요구한 귀중한 물건 은, 금까지도 기꺼이 주어가며 이스라엘이 떠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아니라 그들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성 경: [시105:39]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 여기서 '구름'은 출 14:19의 경우와 같은 대적들로부터의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태양 광선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머리를 보호함이 그목적이다(Barnes). 물론 78:14; 출 13:21의 경우, 구름은 이스라엘의 안내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 불로 밝히셨으며 - 밤에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기 위함이다(출 13:21).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메타포(metaphor)는 활화산의 관측으로부터 따온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으나 인정할 수 없다. 구름 기둥, 불 기둥은 실제적이지 않은 현상 묘사의 소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가운데 실제적으로 존재했던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성 경: [시105:40]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개역 성경에는 분명히 나오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메추라기로' 앞에 하나님을 지칭하는 '그가'가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기자는 선행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하는 소리를 생략한 채 여호와께서 주도적으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리셨던 사실을 강조적으로 적고 있다. 하늘 양식은 만나를 가리키는데 78:25의 경우는 이것을 '권세 있는 자(천사)의 떡'으로 부르고 있다.

성 경: [시105:41]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생존케 하시기 위하여 베푼 이적은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이적이 있다면 그것은 가데스(민 20:2-13)와 르비딤(출 17:1-7)에서 행하신,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신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은 단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의 의미를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 속에서 이 주제가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소고(小考)해 볼 필요가 있다. 반석-물이라는 주제는 특히 시편과 이사야서에서 발전되어 나타난다. 78:15, 16, 20과 본절 및 42절에 근거해 보면 이 두 시편 기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어 오신 구원 역사를 서술하여 그분의 은혜로우심과 신실하심과 광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두 기자는 공통적으로 민 20:2-13과 출 17:1-7의 주제를 발전시켜서 '하나님께서 반석을 통해 강같이 흘러 넘치는 풍부한 물을 내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살리시며 그들을 만족케 하셨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본 시편 기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은 아브라함에게 이르신 언약에 근거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있다(42절). 한편, 사 43:14-21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루실 크신 구원의 일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일을 가리켜 '새 일'(사 43:19)이라고 말씀하시며 이 일에 비교가 되는 '옛적 일'(이전 일)로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신다. 이 같은 '새 일', 즉 새로운 구원 사역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은 바로 본절에 나타난 '반석과 물' 주제를 크게 확대시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할 것임이라"(사 43:19, 20). 이 말씀 안에 '반석'이란 단어는 그대로 나타나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루신 구원 사역인 출애굽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가운데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물들을 내시겠다'는 표현은 본절의 주제와 격리 시킬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살펴볼 문맥은 사 48:17-22이다. 이 문맥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평강'과 '바위에서 나온 물'을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면서 야곱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이사야서의 두 문맥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바는 둘 다 과거의 출애굽 사건보다 월등히 탁월한 구원 사역, 즉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하나님께서는 내다보시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가져올 무한한 축복을 '반석과 물'이라는 주제를 발전시켜 나타내고 계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고전 10:4의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요컨대 본절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물을 먹은 사건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으나 더 멀리는 진정한 음료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내다보는 구절이다.

성 경: [시105:42]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따라 행하셨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약속이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말한다. 출애굽 사건 역시 그 약속 성취의 일부이다(출 2:24; 신 7:8). 39절에서부터 본절까지에서는 애굽으로부터의 출발과 약속된 땅으로의 입성(入城) 사이의 기간을 요약하는 광야에서의 주요한 세 가지 기적들을 다룬 후, 그 기적들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첨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성경의 시인들과 선지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주제인 홍해 도하(渡河) 기적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 경: [시105:43]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그 백성으로 즐거이...노래하며 - 42절 주석에서 39-42절에서는 광야 시대의 가장 유명한 기적 중의 하나인 홍해 기적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바로와 그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된 후에 부른 승리의 노래(출 14:26-15:21)를 암시하는 구절이 바로 본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니면 본 구절은 주의 재림 후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한 장면을 예언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사 35:10). 후자를 취할 경우 본 시편이 저변에 깔고 있는 시대와 본절이 암시하는 시대는 큰 간격이 있게 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후자보다는 전자가 적절한 해석으로 보여진다.

성 경: [시105:44]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열방의 땅 - 본 시편 전체의 문맥을 중시할 때 이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78:55; 신 6:10).

⭕ 민족들의 수고한 것 - 이것은 가나안 민족이 수고하여 일구어 놓은 경작지뿐 아니라 그들이 세운 도시들, 그들이 소유하였던 귀중품까지도 말한다.

성 경: [시105:45]

주제1: [신실한 역사의 주관자]

주제2: [출애굽 이후 상황]

⭕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 42-45절의 결론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따라 광야에서 보호, 인도하신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허락하셨던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이유 속에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로 만들어 세상을 대표하는 제사장 국가가 되게 하여 결국은 온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삼으려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의중이 담겨 있다.

성 경: [시106:1]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권고]

⭕ 할렐루야 - 본 시편은 그 시작과 끝이 '할렐루야'로 되어 있으므로 소위 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리고 있는 일련의 시편들, 곧 111-113편, 117편, 135편, 146-150편들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하겠다.

⭕ 여호와께 감사하라 - 이것은 예레미야서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렘 33:10, 11), 그외의 여러 곳에서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 예배 의식적 문구이다(107:1; 118:1; 136:1;수 3:11 등). 한편, 대상 16:34이 본 구절을 인용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타당성은 희박하다.

⭕ 그는 선하시며 - '선하시며'의 원어는 '토브'(*)인데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하나님이 정하신 실제적, 도덕적 혹은 신앙적 기준에 일치하는 대상에게 적용된다(Hempel). 뿐만 아니라 총체적 의미의 하나님의 품성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인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관심과 관여를 암시한다.

성 경: [시106:2]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권고]

⭕ 뉘 능히...전파하며(*, 미예말렐) - 직역하며 '누가...을 말하겠는가?'이다. 이 수사학적 의문은 아무도 여호와를 적절히 찬양할 수 없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동일한 의문법이 창 21:7; 욥 8:2; 33:3 등에도 나타난다. 물론 이것을 여호와께 대한 찬양을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 역으로 그만큼 하나님은 큰 찬양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사실의 암시로 해석해야 한다.

⭕ 능하신 사적(*, 게부로트) - 단수형은 '게부라'(*)로서 여호와의 능력(21:13; 54:1; 65:6) 혹은 인간이나(잠 8:14) 짐승들(147:10; 욥39:19)의 힘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처럼 복수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의 강한 역사, 특히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강한 역사를 의미한다(20:6; 71:16; 145:4, 12; 150:2).

⭕ 영예 - 하나님이 가시화하신 그래서 인간들의 찬양이 요구되는 그의 모든 영광을 가리킨다.

성 경: [시106:3]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권고]

⭕ 공의를 지키는 자들(*, 쉬므레이 미쉬파트) - 문자적인 의미는 '정의(공정)를 수호하는 자'이다. 말하자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본받아 범사에 공의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자들을 가리킨다(15:2). 여호와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공의를 지키도록 기대하고 요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존재 원리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15:1-5; 99:4; 사 11:3-5; 33:15-17, VanGemeren).

⭕ 복이 있도다(*, 아쉬레) - 이것은 주로 한 인간이나 단체의 바른 행실을 치하할 때, 혹은 그것을 장려할 목적으로 권고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그 사용 목적이 다르다. 기자는 의로움의 치하나 단순한 권고를 위하여 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기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선하심이 구체적으로 현시(顯示)되었음을 먼저 인정한 후(1, 2절), 그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백성들이 누릴 특권을 구하기에(4절 이하) 앞서 그 같은 특권을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것은 선민(選民)으로서 올바른 행위를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역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본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106:4]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권고]

⭕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 이것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공동체를 위하여 행하셨던 역사를 목도한 경험을 묵상하고 참행복과 평안은 참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기자가 외치는 일종의 경건한 절규이다. '권고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는 '방문하다'라는 기본 의미를 지닌다(visit, KJV). 이는 곧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임재를 바라는 말인 것이다. 한편, 본절과 5절은 아주 독특하게 '테카'(*)라는 동일 접미사로 끝나고 있다.

성 경: [시106:5]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권고]

⭕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면 자신도 택하신 자가 누리는 동일한 은총과 행복을 소유하고 기뻐하겠다는 뜻이다. 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행복과 형통을 사모하는 마음은 참경건한 자만이 갖는 특성이다.

⭕ 주의 나라(*, 고예카) - 원형은 '고이'(*)이다. 복수형인'고임'(*)으로 쓰이면 대체로 '이방 나라들'을 뜻하는 본 용어는, 단수형으로 사용되면 때때로 이스라엘을 뜻하는데 본문에서는 바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있다. '고이'가 이스라엘 혹은 유다에 적용되면 그 경우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죄성을 강조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으나(Oesterley),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단적인 예로서, 출 19:6 그리고 본절 같은 경우, '고이'는 이스라엘의 죄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 레히트할렐임 나할라테카) - 이는 '당신의 기업으로 자랑하게 하소서'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님이 기억하고 구원 하시면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영광에 자신도 참예할 수 있다는것이다. 여기서 '기업'으로 번역된 '나할라테카'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말하자면 기자는 다른 영예, 영광, 구별됨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영예, 영광, 구별됨을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부귀, 영화 따위의 세상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함으로써 얻게 되는 '영광'을 기자는 갈망하고 있다.

성 경: [시106:6]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열조와 함께 범죄하여 - 여기서 '열조'란 '애굽에서 살던 조상들'(7절)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 살던 조상들'까지도 의미한다(34-36절). 그러나 넓게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가리킨다. 기자는 자기와 동(同)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과거 조상들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처럼 범죄하여'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본절에 나타나는 세 동사를 비롯한 본절에 사용된 용어들은 왕상 8:47의 솔로몬의 기도의 일부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여기서 '지었나이다'로 번역된 '히르솨누'(*)가 대체로 후대 문서, 즉 포로 후 시대 문서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학자들은 본 시편의 저작 시기를 포로 후 시대로 본다.

성 경: [시106:7]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아보테누 베미츠라임) -어떤 학자들은 이 두 단어를 뒤에 나오는 문장과 별도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원문상 '베미츠라임' 뒤에 아래 위로 내려쳐진 선이 있는데 이 선 앞에 있는 단어는 뒤에 이어지는 문장 전체에 영향력을 미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미츠라임'(*)은 본절 문장 전체와 연관이 있다. 말하자면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한 것뿐 아니라 많은 인자를 그 조상들이 기억 못한 것은 '베미츠라임'(*) 곧 애굽에서의 일이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기사'는 애굽에서 일어났었던 하나님의 기사를 말하는데 그 기사의 발생으로 인한 충격 및 감격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 감격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마음에서 곧 사라져버렸다. 그 감격은 그들이 홍해 바닷가에 섰을 때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불평과 원망을 터뜨렸다(출 14:10-13). 이것은 기자가 고백하는 첫번째 죄악의 내용이다.

성 경: [시106:8]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자기 이름을 위하여 - 이는 '자기 품성에 걸맞게' 혹은 '그의 명성(평판)을 위하여'(for his name's sake, KJV, RSV, 25:11; 31:3; 사 48:9; 렘 14:7)로 번역할 수도 있다. 출 14:18은 하나님이 쫓아오는 바로 군병들로 부터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은 애굽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함이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방 세계에 자신의 엄위로우심을 밝히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다.

성 경: [시106:9]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홍해를 꾸짖으시니 - 여기 '꾸짖으시니'(*, 이그아르)는 잘못된 짓을한 사람에게 화내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가로막았던 홍해를 하나님이 가르신 사실을 마치 말귀를 알아듣는 대상에게 호통치시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 광야를 지남 같게 - 여기서 '광야'(*, 미드바르)는 모래로 된 황무지라는 뜻도 내포하지만 여기서는 풀이 가득한 초지를 암시한다. 이 이미지가 의미하는바는 목자가 길이 잘 나있는 목초지로 그의 양을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으로 홍해를 통과하게 하셨다는 것이다(나 1:4).

성 경: [시106:10]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구속하셨고(*, 가알) - 상반절에서는 동일한 의미의 동사로 '야솨'(*)가 쓰였지만, 하반절에서는 이처럼 '가알'이 쓰이고 있다. '야솨'는 일반적인 의미의 구원 사역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반면 '가알'은 일반적으로 피의 복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에 사용된다. 즉, 어떤 대가가 지불되는 구원 사역을 뜻할때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애굽 군사들의 피값(수장된 것을 가리킴)으로 이스라엘을 샀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구원했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본 용어가 사용되었다.

성 경: [시106:11]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저희 대적은 물이 덮으매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도다 - 기자는 여기서 바로의 군대가 철저히 잔멸당한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주도적이고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부가시킴과 아울러 본절의 전후에서 언급되는 바 이스라엘의 완악성과 불순종을 강조하기 위함이다(Alexander).

성 경: [시106:12]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거역한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건지신 하나님]

⭕ 저희가...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 분명히 출 14:31; 15:1에 대한 언급이다."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여기서 이스라엘이 드러낸 신앙과 그들이 부른 노래는 뿌리깊은 신앙과 그 신앙에서 우러나온 찬양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구원의 섭리에 따라 어떤 이적적 현상이 초래되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현상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이슬과 같아서 곧 사라져버릴 정도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어떤 설교가는 적절하게 풍자하고 있다 : '이스라엘의 찬양과 이스라엘의 범죄 사이는 오십 보 백 보이다'(Spurgeon). 이스라엘의 신앙과 찬양에 대한 이러한 판단의 진실성은 문맥이 증명한다.

성 경: [시106:13]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미하루 솨크후마아사) - 문자적인 의미는 '그들은 서둘렀다. 그들은 그의 행사들을 잊었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과 홍해에서 경험하였던 여호와의 기적적 구원 사역을 너무 빨리 망각하였던 것을 고발하는 말이다. 이와같이 패역된 망각은 음식에 대한 욕심 때문에 터져 나왔던 그들의 불평 기사를 통해 처음 나타난다(출 15:22-24; 17:2,3). 본절로부터 33절까지에는 광야에서 저질렀던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고백이 실려있다.

⭕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인내의 연습을 도모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반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목겨하고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식대로 그의 목적을 성취해 가시는 것을 기다리고 신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망각의 병폐, 인내하지 못함에 대해 신명기 기자도 이미 암시한 바 있다(신 4:9, 23; 6:12; 9:7).

성 경: [시106:14]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욕심을 크게 발하며(*, 이트아우 타아와) - 직역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욕망을 품었고'이다. 이는 만나를 먹은 후에 이스라엘이 다른 종류의 음식을 갈망했던 것을 가리킨다 : "이스라엘 중에 섞여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민11:4). 이 대목 중에 이스라엘이 고기를 먹고 싶어했던 욕망 자체를 죄악으로 단정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한 광야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문제는 섞여 사는 이방인들에 의해 야기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이스라엘 내에 급속히 확산되어갔다는 점이다. 그 불신은 의혹을 가져왔고 결국에는 배반을 낳았다.

성 경: [시106:15]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 요구한 것을 주셨다는 것은 상당한 양의 메추라기를 공급하셨던 것을 가리킨다(민 11:31, 32). 한편'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의 해석 관건은 '파리'인데 이것은 히브리어로 '라존'(*)으로 '야위게 하다', '황폐해지다' 등을 뜻하는 '라자'(*)에서 온 명사이다. 본문의 핵심은, 그들의 영혼이 황폐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때문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메추라기를 원했던 그 욕망이 그들의 영혼을 황폐케 하고 야위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욕망과 식욕의 만족만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고 골몰할 때 인간의 영혼은 항상 공허해지고 말라버리기 마련이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일시적인 성공과 번영 따위에만 몰두할 때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잊기 쉽다. 즉, 영적 축복과 특권의 가치를 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땅 위에 사는 동안 육체를 입고 살기 때문에 육체가 필요로 하는 필수품을 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도외시한 채 육적 필요만 구한다면 그는 결국 영적 패망을 보고 말 것이다.

성 경: [시106:16]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여호와의 성도 아론(*, 아하론 케도쉬 예화) - 직역하면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이다. 아론이 이렇게 불리웠던 것은 그의 제사장직때문이었다. 레위 족속들이 이렇게 불리웠고(대하 35:3), 엘리사가 이렇게 불리웠고(왕하 4:9), 나실인 역시 이렇게 불리웠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여호와께 헌신하도록 드려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론은 제사장이라고 하는 직분적 특권 때문에 그렇게 불리웠는데 이 배타적인 특권이 고라와 그의 무리들의 공격을 낳았다. 그들은 온 회중이 '거룩하다'는 기치를 들고 아론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은 만인제사장직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질투 때문이었다(민 16:3, 5, 7).

성 경: [시106:17]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으며 - 거룩하다는 기치를 들고 아론의 독보적 대제사장직에 항거했던 자들은 고라와 다른 레위인들 그리고 르우벤 족속이었던 다단과 아비람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시편 기자는 다단과 아비람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고라 족속은 성전 성가대를 이루는 족속으로 유명하였는데 성가대에 관심이 많았던 본 시편 기자가 그 족속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생략했다고 주장한다(Rowley, Anderson).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한 항거로 죽은 자들의 명단에 고라 자손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 "땅이 그 입을 열어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 오십 명을 삼켜 징계가 되게 하였으나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민 26:10, 11). 그리고 고라를 제외한 채 다단과 아비람만이 항거의 주역인양 묘사하고 있다 :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단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민 16:27).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비록 그 이름이 항거자의 명단에 들어가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고라는 항거의 실세(實勢)가 아니였으며 따라서 본 시편 기자도 그를 제외한 다단과 아비람만을 적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고라는 그 반역 음모에 가담한 대가로 죽었다. 성경은 그것을 밝히 말한다.

성 경: [시106:18]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불이 그 당 중에 붙음이여 - 바로 앞절의 징벌과는 또 다른 징벌을 가리킨다. 이 징벌은 회중 총회의 뽑힘을 받은 250인이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다가 위에서 떨어진 불로 몰살했던 것을 말한다(민 16:2, 35).

⭕ 악인 - 민 16:26의 표현을 그대로 따왔다 :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성 경: [시106:19]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범죄를 말한다. '호렙'이란 호칭이 나왔는데 그것을 보아 본 기자는 이스라엘의 송아지 숭배 사건을 그리고 있는 출 32장을 인용 묘사하고 있다기보다는 모세가 특히 '호렙'이란 지명을 들먹이며 이스라엘에게 연설하였던 신 9:8-12을 인용 묘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호렙'이란 지명은 신명기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름이다(신 1:2, 6, 19; 4:10, 15; 5:2;9:8; 18:16 등).

성 경: [시106:20]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자기 영광 -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영광'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신 여호와(3:3) 곧 그들 가운데 명백히 제시했었던 하나님 자신의 현시를 가리킨다. 본절의 가장 근접한 평행구로서 렘 2:11이 있다 :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 여기서 기자가 '풀 먹는'이란 구절을 첨가한 것은 이스라엘의 소 형상 숭배의 우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도움을 필요치 않으시고 도리어 모든 필요 공급의 근원이 되시는 자족적(自足的) 존재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타인으로부터 필요를 공급받되 공급이 끊어지면 곧 죽고 말 생물을 숭배하고 의존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비난을 받았던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만들기는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분명히 그들은 '출애굽을 이룬 하나님은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송아지를 만들었다(출 32:4). 즉, 생각 속의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형상화한 까닭에 그들의 죄는 더욱 심각한 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예배할 목적으로 우상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하셨다(출 20:4, 5).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을 크게 초월하는 분이시다. 인간은 그분을 그려낼 수 없다. 만일 땅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동물, 무생물 따위의 모습을 그리면서(혹은 빚으면서) '이것은 하나님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인간 세계를 넘어계시는 분을 인간 세계의 그 무엇으로 축소, 전락시킨 것이 된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존적 실체인 송아지로 전락시킨 죄를 범한 것이다.

성 경: [시106:21]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 모세를 통하여 주셨던 경고를 이스라엘이 어겼던 것을 가리킨다 :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신 6:12). 여기서 '구원자'(*, 모쉬아)는 신명기 저자와 이사야서 저자가 여호와를 지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이다(사 43:3, 11; 45:15,21; 49:26).

성 경: [시106:22]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기사...놀랄 일 - 각각의 원어는 '니플라오트'(*), '노라오트'(*)이다. 이 둘은 동의어이며 함 땅에서 있었던 재앙들과 홍해에서의 구원 역사를 각각 가리킨다. '함 땅'을 '함의 장막'으로 지칭한 경우도 있다(78:51).

성 경: [시106:23]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하셨으나(*, 요메르) - 일반적으로 '말하였다'로 번역되나 본 용어가 나오는 배경 기사가 실린 신 9:13, 14을 고려하면 '결심하였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은 반역의 이유로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려고 하셨다(신 9:25). 그러나 모세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노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의 변경이라는 각도에서 조명하면 안되고, 단지 이스라엘 반역의 극심함을 지적하는 부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결렬된 중에서(*, 바페레츠) - 문자적인 뜻은 '벌어진 틈 사이에서'이다. 모세의 중보 기도는 요새 성벽의 갈라진 틈을 그 몸으로 막고 있는 용감한 지도자의 행위에 비유되고 있다. 유사 비유가 겔 22:30에 나온다 :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성 경: [시106:24]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낙토 -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유사 구절로는 렘 3:19; 슥 7:14등이 있는데 개역 성경 슥 7:14의 경우 '아름다운 땅'으로 번역하고 있다. 정탐꾼들의 과장된 보고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인간의 의견을 더 신뢰한 백성들의 마음을 낙담시켰다.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들은 애굽으로의 귀환을 계획하기까지 하였다(민 14:4).

성 경: [시106:25]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원망하며 - 신 1:27에 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이는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는 일종의 원망이 아니라 출애굽에 관한 하나님의 의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불신앙적 시각의 표출이다.

⭕ 여호와의 말씀 - 그 내용은 신 1:21에 요약되어 있다 :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성 경: [시106:26]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저가 맹세하기를(*, 이사 야도 라헴) - 직역하면 '그가 그들에게 그의 손을 쳐들었다'이다. 이는 언약 맹세의 일반적인 제스처이다(창 14:22;민 14:30; 겔 20:23). 단 12:7의 경우 양손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다는 식으로, 계10:5, 6의 경우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고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시106:27]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열방 중에 엎드러뜨리며 - 이것은 열방에게로 이스라엘을 흩으실 것을 암시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불신앙의 사건을 직접 기록하고 있는 민 14장엔 나오지 않는다. 이말씀은 레 26장, 신 28장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포로 운명은 이스라엘 자체가 국가의 체제를 갖추기 훨씬 전인 광야 시대 때 이미 예언되었다. 포로 시대이후 선지자인 에스겔은 그의 선지서 20:23에서 본절의 예언을 회상하고 있다. "또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치리라 하였었나니."

성 경: [시106:28]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이차메두 레바알 페오르)- 직역하면 '그들이 바알브올의 멍에를 메었다'이다. 이것은 민 25장에 기록된 범죄를 가리킨다. 바알브올 숭배 예식에 동반되었던 음란 행위를 언급하는 대목인 민25:3, 5에서 본문에 사용된 동일한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멍에를 메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음란 행위에 가담하였던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겠다. 한편 70인역(LXX)은 본 구절을 '그들이 바알브올의 회에 가입하였다'로 번역하고 있다.

⭕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 이것은 일차적으로 '산 하나님'에 대비되는 죽은 우상에 바친 음식을 먹는 제사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본 행위는 신과 예배자의 상호 유대 관계 지속을 위해 행해졌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말하자면 죽은 실체인 우상의 재물을 먹음에 있어서 그 예배자들도 그 행위를 통하여 그 죽은 신(神)과의 교제를 원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 구절에서, 죽은 영과의 교제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강신술적(降神術的) 예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신 18:11; 사 8:19). 이스라엘의 죄는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데에 있지 않고 생명이 없는 물체인 우상을 살아있는, 그래서 뭔가 교훈을 전해주는 실체로 의식했다는 데에 있다. 바울도 문제가 되는 것은 희생 제사에 드린 예물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자의 양심이라고 밝히고 있다(고전 10:28, 29).

성 경: [시106:29]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재앙 - 본 용어는 대체로 신적(神的)징벌, 좀더 자세하게는 질병을 뜻할 때 사용되지만 해당 사건의 본문인 민 25:8, 9, 18을 고려할 때 비느하스 등에 의해 수행되었던 '살륙'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 유행하였도다(*, 티프라츠) - 직역하면 '깨뜨렸도다', 혹은 '갈라진 틈을 만들었도다'이다. 이것은 살륙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죽게 됨으로써 전체 공동체 구성원에 큰 공백이 생겼던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성 경: [시106:31]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정하였으니 - 비느하스의 행위를 의로운 행위로 간주하고 그에 따른 상급을 내렸음을 말한다. 의에 대한 상급이란 그의 가계를 통한 영원한 제사장직의 계승이었다(민 25:12, 13).

성 경: [시106:32]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 이는 광야 여정 사십 년째 되던 때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했던 사건의 핵심을 짚어주는 구절이다. 말하자면 본문은 모세가 약속의 땅 입성(入城)을 거절당하였던 이유를 해당 사건의 기사 대목에서보다 더 분명히 지적해 주고 있다. 사건 당시 모세는 바위를 두 번 침으로써 그의 인내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이같이 모세로 하여금 약속의 땅 입성을 막았던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된 궁극적 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분노케 한 것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모세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이었다. 요컨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민 20:2-13).

성 경: [시106:33]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1) '그 심령'을 모세의 심령으로 이해한다. 이 경우 본문은 '이스라엘은 모세의 영(마음)을 자극하였다'로 번역된다. 이 해석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거역하다'로 번역된 '힘루'(*)를 '자극하다'로 번역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2) 본문을 하나님(그의 영)께 대한 반역으로 이해한다. 유사 구절로는 사 63:10이 있다.(3) (2)의 해석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동사의 주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고 본다. 물론 주어, 곧 주의 영을 근심케 한 주인공을 모세와 아론으로 볼 수 있다(민 20:24; 27:14). 그러나 본 문맥에서는 백성들을 주어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성 경: [시106:34]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실행하도록 명령받은 사실을 이행치 않은 죄를 지적하고 있다. 곧 가나안 민족들을 뿌리 채 뽑지 않은 죄(삿 1:21, 27-35),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인한 죄(살 3:7) 등이 그것이다.

성 경: [시106:35]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열방과 섞여서 - 가나안의 이방 족속과 결혼하고 그들의 타락한 악습을 좇아 행한 것을 말한다.

⭕ 그 행위를 배우며 - 가나안의 생활방식 및 종교 양식을 수용한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시106:36]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올무가 되었도다 - 이것은 출 23:33; 34:12; 신 7:16 등에서 계속되었던 경고를 무시함으로 이방의 혐오스러운 것, 곧 몰렉 숭배때에 행해졌던 인신(人身)제사 따위가 이스라엘 가운데 행해졌던 것을 특별히 암시한다.

성 경: [시106:37]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사신(*, 쉐딤) -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이 '마귀'(demons)로 번역한이후 대체로 '마귀'(혹은 악마)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는 본 용어는 복수형으로만 나오며, 이곳과 신 32:17에서 '우상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타락한 천사인 사단의 세력, 곧 귀신들로 본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고전 10:20).

성 경: [시106:38]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 범죄하지 않은 자, 피를 흘릴 만한 일을 행하지 않은 자의 피를 흘린 것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 숭배의 악습을 좇아 결백한 자들을 인신 제사로 바쳤던 것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그 같은 제사를 바쳤던 것은 결백한 자의 피가 자신들의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상 숭배자들은 심지어 자기 자녀들까지 우상에게 바칠 정도로 열광적이었다(레 18:21;신 12:31; 왕하 16:3; 21:6; 23:10; 렘 7:31; 겔 16:20, 21). 정해진 율례를 범한자를 위하여서는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원칙은 희생 제물로 양을 바치던 제사의 원칙과 흡사하다. 이 원칙을 따라 죄 없으신 예수께서 양처럼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러나 가나안에 두루 퍼져 있었던 인신 제사는 모세 율법에 제시된 희생 제사와근본적으로 다르다. 인신 제사는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 제사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 또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여 희생 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존재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 가나안에서 비롯된 인신 제사는 왕국 시대 이후에 살인을 합법화하는 제사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왕하 21:16; 사 1:15; 렘 22:3).

⭕ 그 땅이 피에 더러웠도다 - '더러웠도다'의 '테헤나프'(*)는 어떤 원인으로 되어진 결과가 극악의 상태임을 암시하는 강동사로 '크게 오염되었도다'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동사는 민 35:33에서 따온 것이며, 사 24:5에서도 볼 수 있다. 인신제사로 말미암아 그 땅에 거주하는 거민들뿐 아니라 토양 자체도 심히 오염되고 저주를 받았다.

성 경: [시106:39]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그 행동이 음탕하도다(*, 이즈누 베마알레헴) -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행위로 그들은 매춘부가 되었다'이다. 여기서 '이즈누'의 원형 '자나'(*)는 일반적인 혹은 예식적인 매춘 행위에 가담하는 여인에게만 사용되는 용어이다. 매춘 음란 행위는 고대 근동의 셈족들에게 잘 알려진 생활이자 종교의식의 일부였다(Anderson). '매춘'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 왜곡을 의미하는 비유의 소재로 구약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음녀와 같은 생활하기를 택하였지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결혼 관계로 종종 묘사된다(사1:21; 50:1; 57:7-13; 호 2, 3장). 한편 하나님이 음란 행위를 엄하게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매춘이 이스라엘 중에 묵시적으로 허용된 듯하지만(창 38:15,16; 레 19:29; 수 2:1; 왕상 3:16; 암 7:17), 일단 결혼한 여자가 혼외 정사를 갖는 일은 분명히 죄로 간주되었다.

성 경: [시106:40]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이하르 아프 예화 베아모) - 직역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그의 백성을 향하여 불탔으며'이다. 어떤 사람이 정열로 타올랐다고 묘사하듯이 기자는 하나님께서 불과 같은 진노를 품으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같은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자주 나타난다(79:5; 89:46; 에 1:12; 렘 4:4; 애 2:3). 불타는 듯한 진노로 범죄한 그의 백성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읽을 수있다.

⭕ 자기 기업을 미워하사 - '미워하사'로 번역된 '예타에브'(*)의 정확한 뜻은 '싫어하다'이다. 본 구절의 의미는 범죄한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마치 싫어하는 물건을 대하듯 하셨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물건을 멀리 내던지듯이 팽개침으로써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응을 받게 하셨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이 같은 묘사가 너무 인간적이고 유치하다는 견해에 대하여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맞서고 있다. '본 기자 보다 더 솔직하고 정직한 작가가 있겠는가? 그의 표현속에는 그 민족을 옹호하려는 노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범죄를 숨기려는 기색도 없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감정 묘사에 있어서 부드럽게 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위는 혐오스러웠다. 그들은 하나님의 싫어함을 받아 마땅하였다. 그들은 감사하지도 않았고 악하고 반역적이었다. 경건한 주석가들이라면 기자가 기술한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Barnes).

성 경: [시106:41]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열방의 손에 - 하나님께 대해 무지하고 우상을 섬겼던 이방 압제자들, 예를 들면 가나안, 모압, 미디안, 블레셋과 같은 나라들의 통제 속에 이스라엘을 두셨던 것을 가리킨다. 기자는 지금 가깝게는 사사 시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국을 형성한 후 포로로 잡혀가기까지의 역사에 관한 회상도 겸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성 경: [시106:42]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복종케 되었도다 - 사실 이 같은 사항은 한때 이방 대적들이 이스라엘에게 취한 행위였었다 :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삿 3:30),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삿 4:23).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살 8:28),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삿 11:33).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와 인신 제사로 그 땅을 더럽힌 후 그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복종케 되었다는 말은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머리를 숙여 절하였다'이다. 이스라엘은 비참하게도 하나님께만 숙여 절하여야 할 머리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을 향하여 절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성 경: [시106:43]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끝없는 반역, 징벌, 회개 그리고 구원의 연속이었다. 반역-징벌-회개-구원의 사이클은 옷니엘-에훗-삼갈-드보라 등으로 이어지는 사사 시대 초기 역사 속에서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삿 1-5장).

⭕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이 만든 계획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목적대로 따를 것을 계속 권유하다가 듣지 아니하면 그대로 내버려두신다(81:11, 12).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는 큰 고통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당한 자이다(롬 1:24, 26, 28).

⭕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암쿠) - 이는 '가난해지다', '약해지다', '낮아지다' 등을 뜻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본문 외에 두 군데밖에 나오지 않는데 각각 '낮아져서'(욥 24:24). '퇴락하고'(전 10:18)로 번역되었다. 본 문맥에서는 범죄로 인한 징벌로 이스라엘의 국력(國力)이 고갈되고 쇠약해졌던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시106:44]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하시며 - '권고하시며'(*, 야레)의 문자적인 뜻은 '머리를 돌려 주시하다', '보다'등이다. 여기서 기자는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백성에게 관심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에게 불 같은 분노만 나타내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그들을 주시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면밀히 살피신다. '부르짖음'(*, 리나탐)은 주로 '기쁨의 노래'를 뜻할 때 사용되나 여기서와 같이 고통의 울부짖음을 뜻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왕상 8:28).

성 경: [시106:45]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돌아보시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단순한 인간적인 감상, 연민 때문이 아니라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비록 그 백성은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신다. 여기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 뜻을 돌이키사 - 마치 그의 마음이 바뀌기나 한 듯이, 그가 하려고 했던 일을 후회하기라도 한 듯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 위에 내리려던 징벌을 중단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이 표현에서 하나님의 가변성(可變性)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민 23:19). 기자가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 하나님의 인애가 큰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며 그 계획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분의 속성, 계획이 변경된 듯 보일 정도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향한 인애(仁愛)를 나타내신다. 많은 역본들이 이 같은 이유때문에 '뜻을 돌이키사' 대신 '자비를 베푸사'로 번역하고 있다(repented, KJV; relented, NIV, RSV, LB; 출 32:14; 렘 18:8; 욘 3:10 등을 참조하라).

성 경: [시106:46]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긍휼]

⭕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은 이방 지도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편케 하고 결국은 놓임을 얻게 하셨다는 뜻이다. 왕상 8:50; 단 1:9 등을 보면 이방 나라가 포로된 이스라엘을 관대하게 대하는 표현을 읽을 수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대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같은 마음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었다.

성 경: [시106:47]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구원에 대한 간구와 찬양]

⭕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 중에서 모으시고 -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 진술하여 왔던, 이미 그의 백성을 향하여 보이신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하여 열방 중에 흩어져 있는 자기 백성을 모아 다시 한 국가를 이루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본절에 사용된 언어들, 특히 본 구절의 용어들은 본 시편이 포로 시대 중에 기록되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있다. 기자는 아직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올리고 있다. 한편, 본절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 대상 16:35에도 언급되어 있다.그런데 대상 16:35은 언약궤를 다윗 성에 안치하고 난 후에 지은 다윗의 찬양시의 일부에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는, 본 시편 구절에 익숙했던 역대기 기자의 문체가 대상16:35에 반영되었을 것이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 여기서는 동사 '히쉬타베아흐'(*)는, 본 시편에서는 유일하게 상호 재귀형(힛파엘)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본문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우리가 주의 영광을 서로서로 찬양하게 하소서'가 되겠다. 기자는 흩어졌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있다.

성 경: [시106:48]

주제1: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자비]

주제2: [구원에 대한 간구와 찬양]

이 마지막 절은 본 시편이 작성된후 시편 제 4권의 종결을 표시하기 위하여 첨가한 송영과 같은 것이다. 본절 첫행은 약간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제 2권을 마감하는 구절72:19의 첫행과 거의 유사하다. 본절을 인용하고 있는 역대기 기자는 미래형의 소원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를 역사적 완료형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로 바꾸고 있다(대상 16:36). 역대기 기자는 자신의 시적인 글에 본 구절을 포함시켜 놓고 있는데 이 사실은 이미 그 시대에도 시편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여러 권의 책들로 구분되었고 송영은 본 시편의 전체를 구성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부분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성 경: [시107:1]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촉구]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예식 때 낭송하던 송영구이다. 렘 33:11에 근거하면 본 송영구는 포로로부터 귀환한 자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문에 나오는 접속사이자 강조사인 '그는' 앞의 '키'(*)를 살려서 실감나게 본절을 재번역하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분은 참으로 선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참으로 영원히 인자하시기 때문이다'이다. 송영 시(時) 사회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를 읽으면 회중은 '왜냐하면' 이하를 읽었다고 한다. 본 시편과 106편은 동일하게 본 송영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이 두 시편의 연관성을 연구한다.

성 경: [시107:2]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촉구]

⭕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 - 동일한 표현이 사 62:12에 나타나는데 그곳의 역사적 배경이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이기 때문에 본 구절을 근거로 하여 본시의 작시 연대를 포로 귀환 이후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전반적으로 본시가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벅찬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것 같다.

⭕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 여기서 '대적'이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이 되겠으나 추상적 영향력인 '근성'따위도 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르'(*) 자체가 '대적'이란 뜻 외에 '슬픔', '곤경'등의 뜻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6, 13, 19, 28절 등에서 계속 '근심'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본문의 '차르'는 '근심'을 의인화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Alexander).

성 경: [시107:3]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촉구]

⭕ 남(*, 미얌) - 문자적인 뜻은 '바다로부터'이다. 구약에서 이 용어는 서쪽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팔레스틴 땅의 서쪽 경계선은 바다인 지중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에 '서'라고 하는 명사가 있기 때문에 '남쪽'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남쪽'과 '바다'의 개념을 연결시킨다면 남쪽 지방에 있는 '아라비아 해' 정도가 연상된다.

성 경: [시107:4]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 본문은 사막에서 그 갈 길을 잃은 대상(隊商)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 구절의 주어 '저희'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쉽지 않은데 '저희'를 해석하는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1) '저희'를 2절의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와 연결시키는 해석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학자들은 또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한 부류는 본 시편을 특정 역사와 연관시키는 견해로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를 예루살렘 함락 후 갈대아인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친 유대인으로 보고 있다(렘 43장). 뿐만 아니라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던 중 사막에서 어려움을 겪은 유대인으로 보기도 하고 포로지 자체에서 어려움을 겪은 유대인으로 보기도 한다. 또 다른 부류는 특정 역사와 연관짓지 않고 '저희'를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는데, 곧 바벨론 포로가 아니라 이방 여행의 위험과 역경에 노출되어 있는 모든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이다. (2) '저희'와 2절의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와의 무관성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이 견해를 따라 혹자는 이스라엘을 그 선조들의 땅으로 귀환시킨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함으로 본 시편을 시작하였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명백히 드러났던 또 다른 예들에 관하여 계속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해석자들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에 관한 언급을 위해 첨가된 서두의 세 구절은 그 뒤에 나오는 좀더 넓은 범위의 주제와 연결시키기 위한 서론적 구실을 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상의 견해들이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한 견해를 절대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시편이 다양한 인생사를 묘사하고 있으며 포로 귀환 후의 감격적 상황을 노래한 것으로 추측하기는 하지만,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에게 닥치는 위험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인간을 구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를 경험한 모든 자들이 그것을 감사함으로 인정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저희'를 역사 속의 특정한 무리에 굳이 고정시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 거할 성(*, 이르 모솨브) - 문자적인 뜻은 '거주의 성'이다.이는 다소 예루살렘이 의도되기는 했으나, 특정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거주할 곳이 못 되는 광야와 대비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그 어떤 도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7, 36절).

성 경: [시107:5]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피곤하였도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티트아타프'(*)로서 원형인 '아타프'(*)는 의복 따위로 '덮다'(65:13; 73:6), '자신을 숨기다', '어둠이 덮다' 등을 뜻한다. 여기서는 재앙, 고통, 슬픔 따위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드리워진 상태를 가리킨다. 음식과 음료의 고갈로 인해서도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겠다.

성 경: [시107:6]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부르짖으매 - 궁핍 상태를 절실하게 느낄 때일수록 인간은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기도는 의인의 자원일 뿐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자의 자원이다. 그리고 건지시고에 해당하는 '이칠렘'(*)은 '나찰'(*)의 사역형(히필형)으로서 하나님이 당면한 모든 종류의 환난들로부터 구원하셨음을 뜻한다.

성 경: [시107:7]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바른 길로 인도하사(*, 야드리켐 베데레크 예솨라) - 문자적인 뜻은 '그는 그들에게 곧바로 길을 만들어 주셨다'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을 찾고 의뢰하는 백성에게 그들이 거하게 될 땅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지름길로 인도하셨다는 뜻이다.

성 경: [시107:8]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본절에서 찬송하도록 권고받고 있는 대상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거할 성에 이르게 된 자들(7절), 혹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 그리고 나아가 양자(兩者) 모두를 가리킬수 있다. 일부 사람들에 의해 체험된 개별적 구원의 경험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 체험을 대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Anderson).

성 경: [시107:9]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본절은 렘 31:25을 상기케 한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의 모든 필요를 완벽하게 공급할 수 있는 분이시다. 여기서 '사모하는'은 5절의 '목마름'에 상응하는 용어이다.(사 29:8).

성 경: [시107:10]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흑암 - 이것은 일차적으로 감옥에 갇힌 자의 침울하고 암담한 상태를 가리키나(사42:7; 49:9) 절망, 비참, 혹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사 5:30; 8:22; 9:2 등).

⭕ 곤고와 쇠사슬 - 본 구절에 함축된 내용을 좀더 충분히 공개하는 구절로는 욥 36:8이 있다 :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한편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의 내용에 대해 탈굼역(Talgum)은 시드기야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지에서 당한 일로 번역하며, 반즈(Barnes)같은 주석가는 바벨론 포로민들의 불행과 구원에 관련짓는다. 이 구절들의 정확한 역사적 배경을 확정짓기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가 있기까지 흑암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레 24:12; 민 15:34 참조).

성 경: [시107:11]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말씀...뜻 - 후자는 '아차트'(*)로서 '권고'가 적절한 의미이다. 이 두 용어는 율법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들과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그의 권고를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본절 전체가 풍기는 뉘앙스가 이스라엘의 신정 국가적 성격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이 염두에 두는 대상은 좀더 넓게 확장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양심에 기록된 법, 내적 계시를 통해 준 교훈(16:7)을 무작정 배제해 버릴 이유는 굳이 없겠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을 돕는 단서로는 '멸시 함이라'가 신정적(神政的) 차원 내에서의 신성 모독을 가리킬 때 (민14:11, 23; 16:30; 신 31:20) 뿐만 아니라 좀더 일반적인 의미로 곧 지혜로운 권고의 거절을 가리킬 때(잠 1:30; 5:12; 15:5)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성 경: [시107:12]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수고로(*, 베아말) - '아말'(*)은 수고뿐 아니라 골칫거리, 고통, 실망, 패배, 슬픔 따위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다(창 41:51; 신 26:7; 욥 3:10;16:2).

⭕ 저희 마음 - 그들의 자만심, 자기 만족성 등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모든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적인 경험이나 자원들을 의존하며 스스로 만족해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헛됨을 보이시기 위해 그들을 비참케 만드셨다.

성 경: [시107:13]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부르짖으매...구원하시되 - 본 시편은 크게 네 부분(1-9절; 10-22절; 23-32절;33-43절)으로 구분되는데 본절과 같은 내용이 10-22절에 또 한 차례 반복되는 것(19절)을 비롯하여 두 부분에 한 차례씩 반복되고 있다(6, 28절). 이러한 유사 구절의 적지 않은 반복을 통해 우리는 본 시편이 인간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뿐 아니라 인간들의 탄원 및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강조하는 시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시107:14]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 이것은 감옥수의 해방을 그리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0절의 주해를 근거로 할 때 이 표현은 영적인 의미 혹은 실제적인 의미, 둘 모두로 해석될 수 있다.

성 경: [시107:15]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문장 구조를 살필 때 10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커다란 하나의 절(節)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본절에 와서야 전체 구분을 대표하는 동사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10절의 '사람이...앉으며' (개역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를 분사적 주어로 볼 때 그 동사는 본절의 '찬송할지로다'가 되겠다. 이렇게 보면 11-14절은 하나의 삽입구가 되겠는데 이 삽입구를 좀더 분해해보면 11, 12절은 주어의 이유를, 13, 14절은 분사적 주어에게 당면되어진 징벌 상태 이후의 일들을 각각 담고 있다. 이상의 주해를 놓고 볼 때 10절에서부터 본절까지에서 강조하는 바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았던 자가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그처럼 부정적인 상황에 있었다가 그 상황으로부터 회복된 사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문장 구조를 살필 때(10-15절) 보다 중요한 것, 보다 강조되고 있는 바는 그가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본 시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환난과 곤고로부터 새로이 구출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일은 너무도 마땅하고 중요한 일임을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

성 경: [시107:16]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 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 성경에서 '놋'은 강함과 견고함(렘1:18; 15:20), 목이 곧고 패역함(사 48:4), 로마 제국(단 2:32, 39), 바벨론 제국(렘15:12) 등을 상징한다. 여기서 '놋문'이 깨뜨려졌다는 말은 바벨론이 멸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벨론이 멸망했으므로 그 나라에 포로되었던 민족이 해방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에게 본문과 유사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바벨론 멸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 바 있다 :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사 45:2). 이는 고레스를 사용하여 바벨론의 세력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아마 본 시편 기자는 그 냉용에 익숙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바벨론 성벽에는 실제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문이 무려 100개 가량이나 있었다고 한다.

성 경: [시107:17]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미련한 자(*, 에월림) - 육신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자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그는 경고에 귀가 멀고 훈계를 멸시하는 세상적이고, 육욕적이며, 이기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이다(잠 1:7; 12:15).

⭕ 범과(*, 데레크 피쉬암) - 직역하면 '범죄의 길'이다. 이 표현은 어떤 악한 행실의 과정, 어그러진 생활 습관 등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 곤난을 당하매(*, 이트아누) -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들에게 고난을 가져오고 있다'이다. 이는 미련한 자가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표현법이다. 그 의미사의 차이는 약간 있지만 동일한 동사형을 사용하고 있는 구절로는 왕상 2:26을 들 수 있다. 한편, 원문에는 현재를 나타내는 미완료형의 시제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미련한 자의 고통당하는 모습을 좀더 강력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이다.

성 경: [시107:19]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구원하시되 - 이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시107:20]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고치사 - 마치 병중에 있던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기쁨의 소식, 즉 '완쾌된다'는 말씀을 들려주신 것처럼(왕하 20:4;사 38:4) 간접적으로 말씀을 전하여 낫게 하시거나, 직접 말씀하사 낫게도 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될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적 치유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한편,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오는 곳으로는 105:19; 147:15, 18 그리고사 9:8; 55:11 등이 있는데 이 구절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말씀을 그리스도 곧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교리(요 1:1)의 구약적 암시를 읽을 수 있다. 참조로, 어떤 학자는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를 '데베르'(*, 역병)로 읽어, 본절을 '그가 역병을 보내셨으나, 그들을 고치시고 악성 종기들로부터 구해내셨다'라고 해석하기도 하나(Dahood) 무리한 해석이라 하겠다.

⭕ 위경에서(*, 미쉬히토탐) - 영역본 NIV는 '무덤으로부터'(fromthe grave)로 번역하고 있는데 문맥이 죽음에 가까이 있는 상태를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같다(18절). 그리고 KJV나 RSV 등은 '파멸로부터'(fromdestruction)라 번역한다. 어떤 구약 학자는 고통받고 있는 자가 빠져 있는 고통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인 '구덩이들'로 이해하고 있다(Delitzsch). 그리고 또 다른 학자는 그들이 고통받는 까닭은 결국 범죄 때문이므로 '죄악들'로 번역하기도 한다(Hitzing).

성 경: [시107:21]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그를 찬송할지로다 (*, 요두) - 거의 죽음의 경계에까지 갔던 자가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목의 글이므로 감정을 넣어 '오! 그분을 찬송하라'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다(Barnes). 이 같은 번역은 생명을 위협하던 질병으로부터 회복된 뒤 부른 히스기야의 찬양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사 38:20).

성 경: [시107:22]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감사제(*, 제바흐) - 교제 혹은 나눔의 제사를 뜻한다. 본 제사의 특징은 제물의 일부분, 예를 들면 기름 덩어리만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린 몫을 제외 하고는 예배에 참석한 대중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데에 있다. 희생 제물은 암수 관계없이 소, 양 혹은 염소 등에서 취했다. 문맥상 본 제사가 기록된 핵심은 '나눔'에 있다. 죽음의 지경에까지 갔었으나 회복된 자는 개인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와 함께 고기를 나누며 자신이 경험한 바 하나님의 구원을 전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경: [시107:23]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 - 본 시편이 그리고 있는 장면은, 사막에서 방황하는 자의 모습에서 감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본절로부터는 깊고큰 바다를 오가며 장사하는 해상 무역인의 모습으로 바뀐다. 저자는 본절에서부터 32절까지에서 해상 무역상들의 경험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약 당시에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서 바닷가와 접하고 있었던 땅은 서쪽이었는데, 이 해안 지대의 상당 부분은 블레셋 및 가나안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정착했던 곳은 산간 지대나 트랜스 요르단 지역이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 중에 해상 무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해상 무역에 종사했던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방인인 페니키아인, 블레셋인 등이었다. 그러므로 23-32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문자 그대로의 해상 무역인들로 볼 경우 이들은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볼 경우 그 해석은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그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28절).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본 구절들이 특정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자가 아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23-32절은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의 위험 및 구원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 경: [시107:24]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 - 파도로 하여금 하늘에 닿을 듯 뛰어오르게 하는 강풍과 그 파도를 봄날의 부드러운 공기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미풍을 주관하시는, 자연계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성 경: [시107:25]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묘사하고 있는 창 1장에서 흔히 볼수 있는 표현이다. 105:31, 34에서도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 바다 물결을(*, 갈라) - 문자적인 의미는 '그곳으로부터 온 파도들을'이다. '그곳으로부터 온'의 히브리어 대명사적 접미사는 좀 떨어진 23절에 있는 명사 '바다'를 가리키는데 히브리어에서 이 같은 예는 보기 드문 경우가 아니다. 주목할만한 또 다른 예로 111:10을 들 수 있는데 그곳에서 '그 계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복수 대명사는 111:7에 있는 '법도'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본절의 대명사적 접미사는 24절에 있는 명사 '깊음'(개역 성경에는 '바다'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깊음'으로 되어 있다)을 동시에 가리킬 수 있다.

성 경: [시107:26]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저희가 - 이것은 휘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리는 배에 탄 선원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데, 왜냐하면 본절 말미의 주어가 '그 영혼'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깊은 곳에 내리니 - 원어상으로 24절의 '바다'(*, 메촐라)와는 다른 '깊은 곳'(*, 테호모트)이란 용어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 의미하는바는 동일하다. 바다 혹은 대양은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본문은, 인간이 마치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닷 속으로 가라앉듯 그 끝을 알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의 무저갱 속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 '녹는도다'에 해당하는 '무그'(*)는 '녹아 내리다', '부드러워지다'등을 뜻하며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에 그 용기와 활력을 잃은 마음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바로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15:15; 수 2:9, 24; 나 1:5).

성 경: [시107:27]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이리저리 구르며(*, 야호구) - 문자적인 뜻은 '빙빙 돌며'로서 하나의 원 주위를 계혹 맴돌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 지각이 혼돈하도다.(*, 칼 하크마탐 티트발라) - 문자적인 뜻은 '모든 그들의 지혜는 바닥이 났다'이다. 말하자면 항해사들의 배를 조종하는 모든 기술이 무익한 상태에 처했다는 것이다. 항해사들은 지식적으로 배운 항해술과 바다를 항해해 본 경험을 가지고 능숙하게 배를 조종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 능력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파도 앞에 항새사들의 보잘것없는 지식 및 경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파도를 명령하는 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뿐이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스스로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위경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성 경: [시107:28]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근심 중에서...부르짖으매 -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할때 인간은 믿는 자건, 믿지 않는 자건 초월적 존재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의존 대상은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나 본절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만 하나님을 의존하라고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여기서 위경으로부터의 탈출에서 분명히 목격한 하나님을 순탄할 때에도 의존하라고 하는 가르침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겠다. 하나님이 위경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좀더 하나님을 의존하게 만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 그와의 동행에서 오는 기쁨과 평안을 주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73편 등).

성 경: [시107:29]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광풍을 평정히 하사 -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도 이 일을 행하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다(마 8:26). 말씀 한마디로 거칠게 뛰놀던 폭풍을 잠잠케 하는 능력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가시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드물다 하겠다.

⭕ 물결(*, 갈레헴) - 문자적인 의미는 '그들의 파도들'이다. '그들'을 '바다'로 본다면 그 '바다'란 23절의 '큰 물'을 말하며, '선원들'로 본다면 '파도들'이란 선원들을 그 위에 올려 놓고 이리저리 내던지며 위협하던 그 파도들을 말한다.

성 경: [시107:30]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평온함(*, 솨타크) - 폭풍 후의 바다의 고요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지만(욘 1:11, 12) 다툼의 종식을 뜻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잠 26:20).

⭕ 소원의 항구 - '항구'로 번역된 '메호즈'(*)가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에 본문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원'으로 번역된 '헤프참'(*)이 '소망하는 대상'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본 구절 전체는 '바라던 그 목적지'등으로 보면 되겠다. 바라던 목적지로는 기업, 태어난 고향, 선조의 무덤이 있는 곳, 처자가 있는 곳 등을 들 수 있겠다. 본문의 항해를 일종이 인생 여정으로 보는 어떤 학자는 이것을 '죽음'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다소 어색하다. 아무튼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배운 인생들을 그들의 바라던 곳,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이 있는 목적지로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성 경: [시107:31]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기이한 일 - 이것은 바다의 위험 가운데서 인도하신 일을 말한다(8, 15, 21절과 비교).

성 경: [시107:32]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구체적 이유]

⭕ 백성의 회에서 -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개인적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공개하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공개자가 경험한 일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모든 자들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 여기서 '장로들'(*, 제케님)은 수염이 난 모든 성인(成人)들, 좀더 명확하게는 가정의 가장들을 의미하기도 하며(삿 20:2; 렘 26:17) 한 종족이나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Kraus). 본절에서는 전반절에 '백성의 회'가 나오므로, 일반 백성들과 구분하여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성 경: [시107:33]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 '강'(*, 네하로트)은 일반적으로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긴 하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수를 물 한방울 없는 바짝 마른 광야로 바꾸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본문은 자연계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시107:34]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거민의 악을 인하여 - 뒤에 이어질 불행한 결과의 원인이 제시되고 있는데, 불행한 결과를 묘사하는 대목에 '염밭'이란 용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도성을 녹여버렸던 징벌 사건을 회상할 수 있다(창 19장; 신 29:23; 사 1:9).

⭕ 옥토(*, 에레츠 페리) - 문자적인 뜻은 '열매의 땅'이다. 말하자면 수확거리를 풍성히 내는 땅을 가리킨다. '수확거리'란 특정 품종을 말하는 것이아니라 땅이 낼 수 있는 모든 품종을 말한다. '염밭'(*, 멜레하)은 '소금기가 많은 습지'를 뜻한다. 아마도 '열매의 땅'과 대비를 이루는, 산성이 많아 쓸모가 없는 땅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것이다. 사해 부근에는 이런 종류의 땅이 많다고 한다. 본절은 그 땅 거민의 악행을 두고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시107:35]

주제1: [하나님이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본절을 형성하고 있는 용어들은 사 41:18, 19 내용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어떤 학자들은 본절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33, 34절은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로 황량해진 본토를 묘사하는 것이며 본절은 그들의 귀환으로 변경된 본토의 상황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이들은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대들 같이 돌리소서" 라고 읊고 있는 126:4을 들고 있다. 이러한 견해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절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고만 볼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크신은총을 나타낸다고 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도 이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눈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케 하실 수 있다.

성 경: [시107:36]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 굶주린 자들이 비옥한 땅에 정착하여 번영을 누리며 도시를 건설케 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특히 팔레스틴과 같은 곳에서는 식수나 용수(用水)가 잘 조달되고 토지가 비옥한 지역에 인구가 번성하기 마련이며 도시가 번창하기 마련이었다(VanGemeren).

성 경: [시107:37]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소산을 취케 하시며 - 정직하게 땀흘려 열심히 일하는 자는 과거의 굶주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인 땅의 산물을 얻게 될 것이다(사 49:19; 54:1; 겔 36:30,33-36).

성 경: [시107:38]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 당시 자식의 수가 느는 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총의 증거로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자주 족장들에게 하셨다(창 13:16;22:17; 26:4; 32:12).

성 경: [시107:39]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다시...저희로 감소하여(*, 얌아투) - 문자적인 뜻은 '저희들은 그 수가 줄어짐을 당하여'이다. 수동적 의미가 강한 용어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지시하신다. 번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온것이요, 그 상황이 역전되었다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손아래서 되어진 일이다. 인간은 항상 번영할 수 없다. 그의 인생 여정에는 변화와 불행과 실망과 슬픔이 있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계의 목적으로, 때로는 연단의 목적으로 환난을 허용하시는 분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류에게 항상 번영만을 주실 경우, 인간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을 잊고 결국엔 하나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험에까지 이르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의 간섭과 통치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인생들로 하나님만 전적 의지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번영을 주기도 하시고 역경을 허락하기도하신다. 본절을 40절의 조건절로 보는 학자도 있는데 그럴 경우 원문상 서로 다른 주어를 취하고 있는 이 두 절의 호응 관계는 어색해진다. 따라서 본절을 조건절로 보는 견해는 바람직하지 않다. 도리어 본 시편 기자가 자주 취하고 있는 대조법의 구도 속에서 본절을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저자는 33, 34절을 그리고 38절과 본절을 그리고 40절과 41절을 대조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성 경: [시107:40]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 본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묘사하고 있는 일련의 분사적 문장들의 일부인 욥 12:21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후속절에 대한 직접적 대조를 형성하기 위함뿐 아니라 36절에 대한 대조를 암시하기 위하여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방백'(*, 네디빔)은 귀인(貴人) 곧 지도층 인사로 보면 무난하겠으나, 본 문맥상으로는 특히 유다의 마지막 두왕 곧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를 연상하게 만든다(왕하 24:8-20). 하나님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방백들에게도 차별없이 동일한 대우를 하시며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를 동시에 그의 통치권 아래 두시고 있다.

⭕ 길 없는 황야(*, 토후 로 다레크) - 여기서 '토후'(*)는 창조 전 '혼돈'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던 용어이다(창 1:2; 렘 4:23). 그렇다면 본 구절은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비유할 수 있는 인생 여정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하겠다.

성 경: [시107:41]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궁핍한 자는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 '높이 드시고'는 '예사게브'(*)로'높게 되다'(20:1; 69:29)를 뜻하나 본절에서처럼 강의형(피엘) 동사가 쓰이면 흔히 '보호하다', '지키다' 등을 뜻하게 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들을 계속되는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방백으로 멸시를 당케 하고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난관에 넣으셨던 하나님은 대조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계속되는 빈곤으로부터 보호하신다.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적 섭리가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성 경: [시107:42]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 정직한 자는...기뻐하며 모든 악인은...입을 봉하리로다 - 하나님의 역사 개입은 항상 이렇듯 두 부류의 대조적인 반응을 낳기 마련이다.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 역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에 두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성 경: [시107:43]

주제1: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에 대한 찬양]

주제2: [찬양의 필연성]

개역 성경에는 생략된 원문 초두에 있는 의문사 '미'(*)를 넣어 본절을 제대로 직역하면 이렇다 :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 여호와의 인애를 이해할 지혜자가 누구이겠는가?' 이 같은 결구적 의문문은 호세아 선지가 그의 선지서를 마감하면서 던진 말을 상기케 한다 :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 14:9). 저자는 자신이 본 시편에서 밝힌 바, 온 인류의 삶을 통치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자가 많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듯한 의문형의 결구(結句)를 사용함으로써 역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일에 전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성 경: [시108:1]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의 확신에 대한 찬양]

⭕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 57:7에는 이 구절이 두 번 반복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한번만 언급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심령으로 감사 찬양을 드리겠노라고 하는 시인의 신념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 맛소라 본문(MT)을 보면 본절의 '내 심령'이나 57:8의 '내 영광'이 동일한 히브리어 '케보디'(*)로 되어 있으나 서로 다른 문맥에서 나타나 있다. 여기 '카보드'(*)는 '영광' 또는 '심령'의 뜻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는 한 사람의 인격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절에서는 찬양으로 감사제를 드릴 것에 대한 시인의 확신에 찬 신념을 나타낸다고 볼수 있고 57:8에서는 찬양에 대한 계속적인 촉구의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성 경: [시108:2]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의 확신에 대한 찬양]

⭕ 새벽을 깨우리로다 - 새벽은 하루를 새롭게 여는 가장 신선한 시간이다. 이런 새벽 시간에는 심령이 더욱 정결하고 경건해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이같이 고귀한 마음 상태로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신앙 자세가 어떠함을 짐작케 된다. 즉, 그는 여호와가 인간의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전인격의 중심(카보드)으로 찬양을 드려 마땅한 분임을 신앙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시108:3]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의 확신에 대한 찬양]

⭕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 57:9에서는 '여호와여'(*, 예화)가 아니라 '주여'(*, 아도나이)를 쓰고 있다. 여기서 시인이 '만민중에서' 찬양할 것을 다짐하는 말은 9, 10절에 비추어 해석해 볼 때 종말론적으로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성 경: [시108:4]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의 확신에 대한 찬양]

⭕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 '주의 인자'(헤세드)는 6, 12절에 언급되는 바 구원의 근거가 된다. 57:10에는 '...에 마치고'라는 뜻의 '아드'(*)가 쓰였으나 여기에는 후기 히브리어에서 주로 사용되는 '...위에' 라는 뜻의 '메알'(*)이 쓰였다.

성 경: [시108:5]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의 확신에 대한 찬양]

⭕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여기에 다시 '영광'(*, 케보드)이 언급되고 있는데 1절의 케보드('심령'으로 번역됨)와는 달리 하나님의 위엄과 고귀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온 세계 위에'는 만방 위에 뛰어날 이스라엘의 영광을 암시한다고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성 경: [시108:6]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 이는 60:5과 동일하다. 그러나 본시에서는 '주의 사랑하는 자'가 1절의 '심령으로 찬양하는 자'와 연관이 있으나 60편에서는 다른 문맥에서 연결되고 있다. 한편, 이 구절은 '주의 인자하심'(4절)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그의 영원한 인자와 언약에 대한 성실하심 때문인 것이다.

성 경: [시108:7]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 여기서 '거룩하심'이란 만유 위에 뛰어나신 주의 초월성과 온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주의 거룩하심은 또한 하나님의 주권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구원의 보증이 되는 것이다. 한편 NIV에서는 이 구절을 '그의 성소로부터 말씀하시되'(has spoken from hissanctuary)로 번역하고 있는데 성소가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비롯되는 곳을 상징하는 초소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번역도 의미가 깊다.

⭕ 내가 뛰놀리라 - 대부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I will rejoice, KJV; with exultation. RSV). 그리고 혹자는 특별히 이 단어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얻은 기쁨을 나타낸다고 한다(Dahood). 9절의 '내가 외치리라'도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단어를 '내가 그곳으로(성소로) 올라갈 것이다'로 해석하기도 하는데(C.R. North), NEB 성경도 같은 견해이다.

성 경: [시108:8]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길르앗...므낫세...에브라임...유다 - 이 네 도시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인데 본절은 다윗에 의해 통일된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에서 번영되기를 원하는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음과 아울러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원형으로서 이스라엘이 소개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 나의 홀이며 - '홀'(笏)은 왕의 권위(에 4:11), 지도자(창 49:10), 약속된 메시야(민 24:17), 그리스도의 통치(히 1:8) 등을 상징한다. 이로 볼 때 본문은 유다 지파가 하나님의 권한을 대리하여 이스라엘을 주도해 나갈 것을 뜻하며, 아울러 예표적인 측면에서는 유다 가문을 통해 오실 메시야(마 1:1)의 구원 사역을 암시한다.

성 경: [시108:9]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 60:8에는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본 시의 수집자가 블레셋에 대한 승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수정하였을 것으로 본다(Rawlinson). 한편, 본래 60:8은 약간의 풍자를 띤 구절로서 블레셋이 여호와로 인하여 두려워 외치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도 이해 가능하다(Delitzsch).

성 경: [시108:10]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 맛소라 본문(MT)을 보면 60:9의 '견고한'이란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마초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바위로 된'이란 뜻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미브차르'(*)가 쓰였고 이는'요새화된'이란 뜻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브차르'가 더 자주 쓰이며, 창 36:42에 언급된 에돔 족장 가운데 한 사람이 '밉살'(*)이다. 따라서 여기서 '견고한 성'은 곧 '에돔의 성'을 가리킨다.

성 경: [시108:11]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 이는 60:10과 완전히 일치한다. 7-10절에서 보여 주었던 승리의 확신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접전(接戰)중에서 느끼는 시인의 당혹감과 여호와의 도우심에 대한 절실한 요청이 잘 나타나 있다.

성 경: [시108:12]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 11절에서 보여 주었던 당혹감은 본절에서 간절한 기도로 승화되었다.

⭕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 이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요청으로서 궁극적인 구원은 인간의 손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함을 시사한다.

성 경: [시108:13]

주제1: [승리에 대한 확신]

주제2: [승리에의 담대한 간구]

⭕ 저는...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 시인의 이러한 확신은 '주의 인자하심'(4절)에 기초한 것으로서 60편과 약간 다른 각도에서 해석된다.

성 경: [시109:1]

주제1: [비탄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

⭕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 본시의 주제가 환난에 대한 탄원이기 때문에 '찬양의 노래'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다소 우울하고 슬픈 음조를 띠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이러한 불평과 탄원이 하나님께 상달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히 찬송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이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의 지조를 버리지 않는 성도의 바른 자세를 더욱 고무시키며 성도의 눈물마저도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구절이라 하겠다.

⭕ 잠잠하지 마옵소서 - 자신을 해하려고 덤비는 대적들을 그냥 두고 보시지 말고 막아 달라는, 즉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호소하는 탄원이다. 이는 자신이 당하는 환난과 핍박에 대해 하나님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실제로 하나님은 눈을 떼지 않고 계시리라는 믿음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대적들로부터 이유없이 비방을 받고 악한 자로 여김을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만이 자신의 무죄를 아시고 판단해 주신다면 주를 찬송할 수 있다는 굳건한 신앙의 면모를 엿보게한다.

성 경: [시109:2]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

⭕ 대저 - 히브리어 '키'(*)에 해당되는 말로서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 악한 입과 궤사(詭詐)한 입 - 30절에는 시인이 입으로 여호와께 감사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어 본절과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악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솨'(*)는 구체적인 악행을 나타내며 허망한 풍설(風說)을 전하거나 무함(誣陷)하는 증인인 악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출 23:1). 그리고 '궤사한'의 히브리어 '미르마'(*)는 다분히 추상적인 행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말은 '속삭이다', '기만하다'(beguile, deal treacherously with)는 뜻의 '라마'(*)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는 중에 거짓 제물로 무게를 속이는 내용을 언급하는데, 저울의 눈금을 속인다는 것을 표현할 때 이 단어가 쓰였다(암 8:5). 구상 명사와 추상 명사가 이렇게 균형있게 쓰인 것은 다윗 시에 흔히 등장하는 시적 기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악인들이 의인을 괴롭힐 때 우선 무고한 말이나 속이는 말로 중상 모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사울과 시므이 등으로부터이러한 비방과 저주를 받았던 바 있다. 우리 주님께서도 지상에 있을 때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저주를 받은 바 있으며, 심지어는 귀신의 힘을 빌어 능력을 행한다는 말까지 들은적이 있다(마 9:34).

⭕ 입을 열어(*, 파타흐) - 이 말은 야수(野獸)가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애 3:46).

⭕ 거짓된 혀 - 혀의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 중에 야고보의 지적이 아마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한편 본절에서 시인은 악인들의 비방과 중상을 세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표현으로써 강조하고 있는 바, 대적들의 독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VanGemeren).

성 경: [시109:3]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

⭕ 미워하는 말로(*, 다바르 시네아) - 앞 구절의 '거짓된 혀로'와 대구를 이룬다. 시편은 특히 대구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이러한 대구에 주의를두고 읽을 때 한층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워하다'란 뜻의 '사네'(*)에서 파생된 '시네아'는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살인을 부를 정도의 심각한 증오심을 가리키며 관념이나 생각으로서의 증오심을 넘어 실체적이고 행동적인 미움을 뜻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하는 모습을 이 단어로 묘사한 바 있다(신 1:27). 그리고 민 35:20에서는 살인의 원인을 미움으로 언급하고 있다.

⭕ 나를 두르고(*, 세바부니) - 22:16에서 이 말은 개들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상황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성 경: [시109:4]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

⭕ 나는 사랑하나 - 이는 다윗이 핍박자에게 어떠한 해(害)도 끼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정당한 이유없이 다윗의 원수로 자처하며 다윗을 공격하고 미워하였다. 다윗은 그들의 친구로 지내왔으며 단순히 그들에게 악을 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비를 행하였던 것이다.

⭕ 나를 대적하니 - 이 말 속에는 '나를, 도리어 나를 비방하니'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사랑을 베푼 결과, 주어진 것이 너무나도 뜻밖에 적대감이라는 데 대한 당혹감이 곁들여져 있다 하겠다.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하지 않고 도리어 악으로 갚은 것은 분명 사단의 장난이다. 즉, 사단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도리어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이다.

⭕ 나는 기도할 뿐이라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인 '와아니 테필라'는 '그러나 나로 말하면 기도뿐이라'는 뜻이다. 영역 성경 중 KJV나 NIV는 원문상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but I give myself unto prayer, KJV). 반면, 어떤 학자들은 '나는 사랑하나'를 '나를 대적하니'란 말에 연결시켜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본문은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함에도 불구하고'(even as I make prayer for them, RSV)가 된다. 다윗은 온갖 거짓과 교활한 말로 공격당할 때 악을 악으로 갚는 합당치 못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께 호소함으로써 오히려 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같다. 우리가 때로는 이유없이 손해를 보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 이를 보복하려고 하기 쉬우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것이 성도들의 바른 자세임을 깨닫게 해준다(롬 12:21).

성 경: [시109:5]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

⭕ 저희는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 악인들의 배은 망덕(背恩忘德)하는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이다(35:12; 38:20; 렘 18:20; 요 10:32; 15:25). 여기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야시무'(*)는 '야시무'(*)에 대한 '와우'(*) 강조 요법으로 되어 있다. 본문에 언급되고 있는 시인의 원수들은 마귀의 상용 수단인 선을 악으로 갚는 방법으로 시인을 저주하였다. 이런 자들에게는 기도가 오히려 저주로 여겨진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7절 참조).

성 경: [시109:6]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악인 - '라솨'(*)는 하나님이나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를 가리킨다(145:20; 잠 24:20; 합 1:4). 이사야는 이러한 악인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사 26:10).

⭕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 본문은 다소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다. 게데스(Geddes)의 경우에는 이를 '저가 악한 심판으로 고난을 당하게 하시며'로 번역하여, 법정에서 재판받는 광경을 염두에 두었다. 하반절과의 대구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해석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어떤 주석가는 악한 심판관이 과연 악인들의 악행에 합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절 전반절의 히브리어 일부를 수정하려고 히도한다. 예컨대 '라솨'를 '레솨'(*)로 바꾸어 전반절을 '죄악이그에게로 돌아가게 하시며'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게데스의 입장을 따르더라도 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본문의 강조점은, 악인들이 무고하게 의인들을핍박한 것처럼 그들 또한 무지막지한 심판 가운데 처하게 된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실은 다윗의 저주를 보고 무작정 이를 모방하며 분별없이 남을 저주하거나 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악인으로부터 받은 고난에 집착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망각하고 보복심에 불타올라 악인과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것이다.

⭕ 대적으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탄'(*)인데 영역본 KJV는 이를 초자연적인 영적 존재, 마귀 곧 사단(Satan)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1)이 말이 4,20, 29절 등에서도 동사형이나 명사형으로 나오되 신의 적대자들로 언급되고 있고, (2) 본절에서는 시인이 자신의 대적들이 도리어 그 악한 꾀에 버금가는 곤경에 빠질 것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 또한 (3) 본절의 상.하반절이 대구를 이룬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이 히브리어는 시인의 대적들을 도리어 대항하는 악한 세력(an accuser, NIV)혹은 불의한 재판관(an unfair judge, LB)을 뜻한다고 봄이 더 무난하겠다.

⭕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 - 재판정에서 오른편에 선다는 것은 고소자의 입장에 선다는 말과 같다(Anderson, Kidner). 한편, 스가랴는 사단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슥 3:1). 스가랴서에도 분명히 나타나있는 바와 같이 대적이 오른편에 서는 것은 고소하고 대적하기 위함인 것이다. 반면에 시인은 31절에서 대적의 위치인 오른편에 대신 여호와께서 서서 심판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것을 간구한다.

성 경: [시109:7]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 이에 대해서는 (1) 사후(死後)의 심판이라는 견해와, (2)지상에서의 심판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현실상의 모든 법적 판결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판단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믿었고(출 18:13-27; 신1:17), 또한 실제로 하나님의 판단을 묻는 방식이 시행되기도 했다는 점에서(출28:15), (2)의 견해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문과도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 이것은 어떠한 자비도 없는 가혹한 형벌을 요구하는 기도이다. 즉, 악인들의 죄는 너무나 분명해서 정의의 집행을 모면할 방도가 없으며 용서를 구해도 허락하지 말아 달라는 무서운 저주의 기도인 것이다. 악인은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타인들을 괴롭혔으며 무고한 자를 정죄하며 달아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이들이 그토록 심한 죄를 범했고 또 유죄로 판정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면하게 된다면 이것은 공의의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 위배된다고 시인은 판단한 것 같다. 네로나 갈리굴라 같은 대박해자들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용서받게 된다는 것은 정말온당치 못한 처사일 것이다.

⭕ 그 기도가 죄로 변케하시며 - 악한 마음을 품고 악행을 저질러온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있다면 얼마나 가증스럽게 보이겠는가? 따라서 이들의 기도가 상달되지 말고 오히려 그의 호소가 죄를 덧붙이는 결과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당연한 것이다. 그는 과부의 집을 삼키고도 오히려 기도하는 것이다.

성 경: [시109:8]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그 연수를 단축케 하시며 - 세상을 괴롭히며 혼란스럽게 하는 악인보다는 미친개가 오래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의 생명이 단축되는 것은 곧 세상의 평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본문에서 '연수'(*, 야마)는 부사로 쓰이고 있지만 명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 부분을 배반자나 사악한 자들에게 적용시키곤 하였으며 베드로는 유다의 급속한 죽음을 보고 이 말씀의 성취로 보았다. 즉, 갑작스러운 죽음은 구약에서 현저한 죄를 범한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여겨졌던 것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55:23; 잠10:27; 전 7:17). 반면에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는 자비가 주어진다.

⭕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 베드로는 유다의 죽음 이후 그의 자리에 맛디아가 임명된 사건을 두고 바로 이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보고 이를 인용하였다(행 1:20,26). 악한 인간은 좋은 직분조차도 나쁘게 만들기 마련이다. 이 말씀은 더욱 확장되어 유대 민족에게 맡겨졌던 계시의 보고(寶庫)가 기독교 교회로 이전된 것으로 확대적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직분'에 해당하는 '페쿠다'(*)는 '직원(職員)'(대하 23:18) 혹은 '쌓은 재물'(사 15:7) 등 두가지 뜻을 모두 지니지만, 대다수 최근의 주석가들은 '직분'(office)으로 이해한다(Deissler, Eaton, Kraus). 왜냐하면 재물에 관한 이야기는 11절에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성 경: [시109:9]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고아가 되고...과부가 되며 - 한 남자가 죽으면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그 자녀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강조적인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즉, 사악한 자의 최후는 자신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보호아래 호의 호식하던 처자식에게까지 심한 타격을 끼치고 말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과부나 고아는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들로 거론되고있는데, 이들에게 아무런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서도 큰 불행이 닥치게 될 것이다. 모든 고아와 과부에게는 동정과 연민을 베풀어야 마땅하지만그 아비의 행위가 악독했을 때는 그들에 대한 동정의 근원이 말라버리는 것이다. 헤롯은 베들레헴의 무죄한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아내가 과부가 되었다한들, 그의 자녀가 고아가 되었다한들 슬퍼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와 같은 무서운 저주의 말씀은 우리가 임의대로 해석하여 사용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판사가 어떤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 사심(私心)을 두지 않고 정의를 선언해야 하듯이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께 공의를 요청하고 있다.

성 경: [시109:10]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본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다.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빌어먹게 하시고, 그들로 저희가 거하는 그 황폐한 곳에서 쫓겨나게 하소서'(Horsley). 이것은 썩고 무너진 건물의 폐허 가운데서 한 가닥의 피난처를 이리저리 찾아다녔으나 그런 곳에서조차도 거할 곳이 없는 가련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렘 18:21참조).

⭕ 유리 구걸 - 조상의 죄가 자손들에게 전해짐으로써 자손이 당하는 경제적 빈곤을 가리킨다.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다레슈 메하르보테헴) - '떠나'에 해당하는 '다라쉬'(*)는 '밟다', '쫓아내다'는 뜻 외에도 '찾다', '구하다', '조사하다' 등의 의미도 지닌다. 혹자는 본문에서 이 단어를 '조사하다'는 뜻의 수동형으로 해석하고 이 어구를 '그들의 집들이 평가인에 의해 조사되게 하시며'라고 옮겼다. 그러나 이 번역은 문맥의 흐름에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따라서 그보다는 '그들의 폐허가 된 집에서 양식을 찾게 하소서'(let them seek their bread alsoout of heir desolate places, KJV), 혹은 '그들의 황폐한 집에서 쫓겨나게 하소서'(may they he driven from their ruined homes, NIV)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성 경: [시109:11]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고리대금하는 자 - 원문인 '노쉐'(*)를 번역한 말로서 채권자를 가리킨다. 히브리어 '나솨'(*)는 동사로 쓰이면 '빌려주다', '강요하다'는 뜻이 되고, 명사로 쓰일 경우는 '채권자', '강탈자' 등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빚을 미끼로 가난한 채무자의 남은 소유마저 철저히 빼앗아 가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느 5:1-5). 어느 선지자의 생도가 죽자 그 아내가 채주에게 두 아이를 종으로 빼앗기게 되었다고 엘리사에게 호소한 사실도 이것을 잘 입증해 준다(왕하 4:1).

⭕ 취하게 하시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쉬'(*)는 원래 '덫을 놓아붙잡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고리대금업자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그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 가게 해달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 저의 수고한 것을 - 이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하게 착취하였다가 그 자녀들에게 남겨준 재산을 가리킨다.

성 경: [시109:12]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은혜를 계속할 자 - '은혜'에 해당하는 '헤세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변함없는 사랑과 인자(仁慈)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인다(창 19:19; 출 34:6; 대하7:3; 렘 31:3 등).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친족이나 이웃의 친절과 자비를 뜻한다.

⭕ 연휼(憐恤)할 자 - 히브리어 '호넨'(*)은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 '은혜를 베풀다'는 뜻의 히브리어 '하난'(*)에서 파생된 말로서 동정심을 갖는 사람을 뜻한다. 비록 과거에 큰 해악을 끼친 원수라 할지라도 그가 오랫동안 불행한 나날을 보내게 되면 그의 과거의 악행을 잊어버리고 불쌍하게 생각하게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정(常情)이다. 그러나 다윗은 원수의 악행을 결코 잊지 말기를 촉구한다. 이것이 다윗의 잔인성을 나타낸다고 오해할지 모르나 악인들의 범과가 너무도 엄청났다는 사실과 악인들이 긍휼을 얻지 못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신 2:30; 수 11:20) 상기한다면 오해가 없을 것이다.

성 경: [시109:13]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자손은 하나님의 귀한 축복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자손이 끊긴다는 것은 엄청난 불행이요 저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또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에 대한 축복(창 12:2;22:17)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한편, '후사'에 해당하는 '아하리토'(*)는 '후손'이라는 뜻 외에도 '끝' 혹은 '미래'라는 개념도 내포하는 말이다. 일례로 민 23:10에는 이것이 한 개인의 종말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중세의 유대인 주석가인 나마니데스(Nahmanides)는 '아하리토'란 개념속에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본문은 악인의 영원한 파멸이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 후대에 - '베드로 아헤르'(*)를 번역한 말로서 앞 어구의 '아하리토'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본절은 69:28의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란 어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M. Dahood).

성 경: [시109:14]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그 열조의 죄악을 - 여기 '열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아보타'(*)는복수로서 원수의 지위가 상당하였음을 암시한다. 즉,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의 부친을 가리킬 때는 이와 같은 장엄 복수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8절 참조). 장엄 복수에 대해서는 사 14:21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 "너희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여...."

⭕ 기억하시며 - 히브리어 '자카르'(*)는 원래 '표시하다', '(대출 장부에)기록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 문구에는 죄악을 행한바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 그 어미의 죄를 - '어미'는 히브리어로 '임모'(*)인데 단수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복수로 표현된 앞 어구의 '아보타이우'도 그 의미상 단수임을 충분히 알수 있다.

⭕ 도말하지 마시고 - 하나님은 언약에 근거해서 천 대까지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반면 악인에게는 삼사대까지 저주하신다고 말씀하셨다(출 34:7). 따라서 시인의 저주는 가혹한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상벌 원리에 일치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부모의 죄가 그 자손에게 직접적으로 전가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죄악된 길로 행하는 자는 그 후손에게도 심각한 죄의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며, 특히 언약 공동체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부모의 패역한 행위의 악영향은 그 후손은 물론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환난을 초래케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왕하 24:3; 렘 15:4). 그렇지만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겔 18:20)라는 말씀처럼 궁극적으로 죄의 형벌이란 본인에게 달린 것이다.

성 경: [시109:15]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 양피지나 토판(土版) 등에 기록하여 항상 기억되도록 해달라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구절인 90:8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죄악이란 하나도 없고 또 지은 죄로 말미암은 심각한 악영향이 후대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성 경: [시109:16]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이라는 말씀속에 요약되어 있는 바, 이는 언약 백성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뜻이다(Anderson). 무죄하고 가련한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정상적인 사람이면 이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것이다. 또한 시기와 질투는 대부분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있을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본문의 악인은 전혀 대항할 수 없는 비참한 자를 핍박하고 마음이 상한자를 도리어 멸시하였다.

성 경: [시109:17]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 본절에서 18절까지 동사 앞에 접속사 '와우'(*)가 다섯개나 쓰이고 있다. 이를 단순히 순접 관계의 접속사로 보면 이 두 절은 시인의 현재적 바램을 나열한 것이 된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이 동사들이 19절의'...하소서'(*, 테히)에 연결된다고 보는 데서 찾아진다(Dahood). 반면에 다섯 개의 '와우'(*)중 일부를 결과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보면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달아날 때 다윗을 저주한 바 있다(삼하 16:5-13).

⭕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 욥 22:21의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는 어구와 표현 형태가 유사하다. 시므이는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했으나 솔로몬 왕 때 왕명을 어기고 참수형을 받고 죽은 바 있다(왕상 2:36-46).

성 경: [시109:18]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 값진 옷 입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주하기를 즐겨했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저주가 고질적인 질병처럼 몸에 배여 저주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 같은 형국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에스겔은 심판날에 이스라엘이 당할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겔 7:27).

⭕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 이는 민수기에 언급된 '증거의 쓴 물'을 연상시킨다(Anderson). 민 5:16-31에 보면 부정한 여인을 판단하기 위해 쓴 물을 마시게 하는 기록이 있다. 깨끗한 여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해(害)가 되지 않으나 부정한 여인에게는 독이 되어 넓적다리가 떨어져 나가게끔 작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저주로 말미암아 오히려 원수 자신이 그 저주에 버금가는 큰 해를 당했음을 시사한다.

성 경: [시109:19]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저주가...띠와 같게 하소서 - 본절은 18절 상반절의 단순한 동의어 반복적 표현이 아니라 악인에게 임할 저주의 계속성과 영속성을 한층 강화한 표현이다. 특히 '항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미드'(*)가 '계속적인', '영존하는'등의 뜻을 지닌 말임을 고려하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Alexander). 한편, 본문의 명사 '띠'(*, 메자흐)와 동사인 '띠는'(*, 하가르)은 히브리어 원어상 그 어근이 서로 다른 말이다.

성 경: [시109:20]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대적에 대한 저주 및 멸망의 간구]

⭕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 -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즉각적인 보응을 지적함으로써 어떠한 고난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극심한 고통 중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사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해 심판을 경고하면서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1)고 하였다.

성 경: [시109:21]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여기서부터는 저주를 그치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시작된다.

⭕ 주의 이름을 인하여 - 하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인격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출 3:7-15 강해, '하나님의 이름' 참조),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이름이란 곧 하나님 자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VanGemeren). 본 문맥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호소한다는 것은 특히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에 근거하여 간구드린다는 뜻이다.

⭕ 주의 인자하심이 -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구약의 사상을 잘나타내주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이 말의 원어는 '헤세드'(*)인데 자비나 사랑, 인애, 인자하심 등으로 번역된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신 까닭에 하나님의 사랑에도 변함이 없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채찍을 맞는다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그들과 함께계신다. 이것이 바로 '헤세드'의 개념인 것이다(44:23-26 강해, '하나님의 인자하심' 참조).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헤세드에 호소하고 있다.

성 경: [시109:22]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 외적인 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 신실한 성도는 더욱 겸손해지기 바련이다. 그러나 이런 환난을 받고도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그는 환난에서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한다. 한편 '상함이니이다'의 히브리어 '할랄'(*)은 16절의 '상한'에 해당하는 '나케'(*)보다 훨씬 강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관통당한' 혹은 '찔려 죽은'등의 뜻을 내포하는 말이다(Alexander). 시인은 원수의 참혹한 적대 행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하나님을 향해서는 더욱더 겸손해졌음을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 이러한 자세로 자신의 겸손하고 가난한 상태를 고백하는 자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인 것이다.

성 경: [시109:23]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나의 가는 것은 석양 그림자 같고...불려 가오며 -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석양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다. 어스름 황혼의 희미한 그림자는 일몰과 동시에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이는 바로 앞일도 예측할 수 없는 시인의 불안한 심정이 잘 드러난 비유이다. 또한 본문은 사람의 생명이 극히 짧으며 풀과 같이 쇠잔한다는 표현과 일맥 상통한다(102:11). 그리고 시인은 자신을 메뚜기로 비유한다. 메뚜기가 거센 바람을 만나 휩쓸려 가버리듯이(출 10:19; 나 3:17) 시인도 끊임없는 핍박으로 도망다녀야 했으며 평안히 쉬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성 경: [시109:24]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 혹자는 다윗이 극도의 상심과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식욕을 잃고 만 것이라고 본다(Barnes).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환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간구하며 또 위대한 신앙적 결단을 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음식을 멀리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69:10).

성 경: [시109:25]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저희의 훼방거리라 - 대적들은 다윗의 곤고한 처지를 보고서 쾌재를 부르며 비웃었다. 아울러 본문은 대적들이 하나님 앞에서 취한 다윗의 겸손한 태도마저 위선으로 단정하고 조롱하였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Alexander). 한편 22:6, 7에서 다윗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멸시받고 있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 사람들이 시인을 보고 조소하는 광경을 표현한 말이다(22:7; 44:14).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다가 그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하나님께 호소한 바 있다(렘 20:7).

성 경: [시109:26]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 사람들로부터 비록 비방을 받고 있으나(22-25절) 하나님은 당신을 의뢰하는 자를 기필코 구원하시며 또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은 21절에 이어 다시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을 호소한다.

⭕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 - '구원하다'의 히브리어 '야솨'(*)의 본래 의미는 '열려 있다', '넓다' 혹은 '의롭다'로서 그 명사형인 '예솨'(*)와 마찬가지로 택한 백성을 위경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묘사하는 문맥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삼하 22:3; 사 17:10; 슥 9:9 등).

성 경: [시109:27]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이것이 주의 손인 줄을 저희로 알게 하소서 - 원수의 핍박에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그들에게 밝히 보여주시라는 뜻이다. 이를 좀더 확대해서 이해하면 시인을 핍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행 9:4).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구원받기를 소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를 또한 바라야 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성 경: [시109:28]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본절에는 대적들의 어떠한 비방이나 핍박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고자 하는 시인의 담대한 믿음이 연속되는 두개의 대조 구문을 통해 뚜럿이 부각되어있다.

⭕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 이 말씀은 원수들의 저주를 극복하겠다는 시인의 신앙적 투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보다는 원수의 비난과 핍박을 이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시인의 담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라 - '복을 주소서'란 앞의 어구가 단순한 간구가 아니라 선취적 신앙에 근거한 일종의 찬양이란 사실이 여기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시는 한 원수의 공격이 아무리 잔인하고 집요하다 할지라도 구원의 소망을 굳게 붙들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성 경: [시109:29]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연약 토로와 하나님의 도우심 간구]

⭕ 욕을 옷 입듯하게 하시며 - 18, 19절과 유사한 직유 형태이며 본문에서 '욕'은 히브리어 '켈림마'(*)를 번역한 것인데,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 당하게 될 수치와 부끄러움을 이 말로 지적하였다(사 45:16). 그리고 잠언 기자는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고 말한다. 여기서 시인은 원수의 박해가 참으로 어리석어서 자승자박(自繩自縛) 꼴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있다.

성 경: [시109:30]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응답의 확신과 감사 찬송]

⭕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 입으로 감사한다는 말은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다윗은 저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난 다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그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 경: [시109:31]

주제1: [비탄 속에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주제2: [응답의 확신과 감사 찬송]

⭕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 히브리어 본문에는 앞 구절의 원인을 설명하는 접속사 '키'(*)가 문두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궁핍한 자'의 히브리어는 '에비욘'(*)이란 형용사인데 영어에서와 같이 히브리어에서도 형용사가 명사로 흔히 쓰인다. 이말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주로 가리킨다(출 23:6; 신15:4). 그리고 '우편'의 원어는 '야민'(*)으로서 원래적 의미는 (좀더 강하거나 재주있는 것으로서의) '오른손'(혹은 '오른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그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드시사 그를 도울 것이라고 하였다(사 41:10). 또 에스겔은 그룹들이 성전 우편에 선 것을 보았다(겔 10:3). 이 경우에 있어 '우편'은 보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6절 주석과 비교하라).

성 경: [시110:1]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여호와께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 '다윗의 시'란 제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내 주'는 히브리어 '아도니'(*)를 번역한 것으로서 앞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비록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긴 하지만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분으로서 천사들을 부리시는 하나님이시다(히1:13, 14).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무지를 지적하기 위해 본 시 서두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왜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칭하였는지 질문하셨다(마 22:44). 그리고 베드로는 삼천 명을 회심시키는 설교에서 본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곧 이 말씀의 성취임을 지적한다(행 2:34, 35).

⭕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왕국과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원수가 결국 패배할 것이며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려도 왕국은 결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모든 대적들이 멸망할 것임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발등상'의 히브리어 '하돔'(*)은 '짓밟다'는 뜻의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호수아는 태양이 멈추기를 기도한후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을 붙잡아 군장들에게 그들의 목을 발로 밟도록 한 바 있다(수 10:22-24). 한편, 다윗은 성전이 하나님의 발등상인 언약궤를 봉안(奉安)하는 곳이라고 말하였으며(대상 28:2). 이사야는 땅이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하였다(사66:1).

⭕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임금의 우편은 그 당시 임금 다음으로 높은 자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비유는 바로 그 당시의 이전 관습을 연상시킨다. 하나님은 천사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편은 모든 천사들보다 훨씬 높은 자만이 앉을 수 있고 이 자리에 앉는 자는 모든 피조물들 위에 높임을 받는 자인 것이다. 나아가 이는 메시야가 여호와의 보좌에 같이 앉아 세상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표현이다(Anderson).

성 경: [시110:2]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 혹자는 여기서의 '홀'(*, 마테)을 단순히 징계하기 위한 '막대기'라는 정도의 뜻으로 해석한다(Alexander). 왜냐하면 왕의 홀을 가리키는 말로는 주로 '쉐베트'(*)가 사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5:6; 민 24:17; 사 14:5; 겔 19:11; 21:10; 암 1:5; 슥 10:11 등). 그러나 문맥상 본문의 '마테'를 '홀'로 번역해도 무방하겠다(scepter, NIV, RSV). 이 '홀'은 여기서 메시야의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결국 본문은 메시야의 권세와 권능은 여호아께로부터 직접 수여된 것임을 나타낸다(45:6; 히 1:8).

⭕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 본문을 하나님이 메시야께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견해와 다윗이 메시야에 대해 한 말이란 견해가 있으나, 개역 성경은 일반적 견해에 따라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는 메시야의 통치가 대적들을 쳐서 굴복시키는 측면에서 언급되는 반면, 3절에서는 주의 백성의 자발적인 헌신을 유발시키는 측면에서 언급된다(계 17:14 참조).

성 경: [시110:3]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주의 권능의 날에 - (*, 베욤 헬레카) - 본문의 해석에 대하여서는 학자들간에 견해가 분분하다. 먼저 영역본을 살펴보면 KJV는 '당신의 권능의 날에'(in thy day of the power)로, RSV는 '당신의 군대를 인도하여 낼 때'(on theday you lead your host)로, 그리고 NIV는 '당신의 전투의 날에'(on your day ofbatttle) 등으로 번역했다. 그런가 하면 이를 '당신의 대관식 날에'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Anderson). 그러나 '권능'의 히브리어 '하일'(*)이 '힘', '권력'또는 '군대'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본절이 문맥상 5절과 연관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NIV, RSV의 번역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된다(Kidner, VanGemeren).

⭕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 (*, 베하드레이 코데쉬) 이 구절 역시 상당히 난해하다. (1) 몇몇 고대 사본들과 심마쿠스역(Symmachus)에서는 '거룩한 산들 위에'(upon the holy mountains, RSV)로 옮겼다. (2) 맛소라 본문은 '거룩한 영예(위엄)중에'(in the beauties of holiness, KJV; Arrayed in holymajesty, NIV)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의 경우에는레 16:4에서 처럼 제사장의 복장을 입은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ressed in holyaltar robes, LB). 우리는 문맥을 고려하여 대적들과의 전투시에 주의 백성들이 성전(聖戰)에 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춘 거룩하고 위엄있는 모습에 대한 설명으로 보고자 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주를 섬기는 모든 성도들이 의와 옳은 행실로 단장하는 광경을 암시하고 있다고도 하겠다. 한편, '거룩한'에 해당하는 '코데쉬'(*)는 원래 분리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떨기나무 불꽃을 보고 가까이 가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곳이 거룩한 땅이니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다(출 3:1-5). 또 하나님이 거하시는 초소인 하늘은 땅과 분리되어 있어 거룩한 곳으로 언급된다(신 26:15).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받고 구별된 교회는 그들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거룩해져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 히브리어 원문대로 직역하면 '새벽의 자궁으로부터 이슬 같은 당신의 청년들이 당신께로 (나옵니다)'가 된다. 본 구절의 해석에 열쇠가 되는 단어는 '이슬'로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견해로 나뉜다. (1) 헌신적으로 메시야를 따르는 젊은 전사(戰士)들의 수효가 많음을 비유하는 표현이라고 본다(삼하 17:12 참조, Van Gemeren). (2) 이를 수효의 많음을 강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여기며, 오히려 거룩하게 장식한 청년들의 아름다움이나 광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본다. (3) 아무도 모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역사(役事) 혹은 메시야의 역동적 특성을 나타낸다고 본다(Anderson). (4) 이슬이 매일 새벽마다 새롭게 맺히듯이 메시야 왕국의 백성들이 나날이 새로워지며 번영과 행복을 누림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으로 본다. 이중에서 우리는 문맥을 고려하여 (1)의 견해를 취하되, 보다 영적, 궁극적 의미에서 본문이 주께 헌신하는 성도들의 신선하고도 생기있는 모습을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2), (4)의 견해 또한 수용하기로 한다.

성 경: [시110:4]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 '맹세하다'에 해당하는 '니쉐바'(*)는 '만족시키다'의 뜻인 '쇼브아'(*)의 니팔형 완료 시제이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내 장막 사람의 말이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었는가"(욥 3:3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배부르다'는 말이 본문의 '맹세하다'는 말과 같은 히브리어이다. 그리고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호4:10).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은 일단 만족하신 사안(私案)에 대해서는 이를 결코 변경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 14:18).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彷佛)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었다(히 7:3). 따라서 그의 인물됨에 대해서 추측 이상의 결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이었다고 주장하며 초대 교회의 교부인 오리겐(Origen)은 그가 천사였다고 말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더중요한 사항은 그리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제사장 임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 영원한 제사장이라 - 이 세상의 제사장은 몇년 동안이나 또는 일생 동안만 그 역할을 감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은 영원하므로 현재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우리 구원의 성취 여부의 관건이 되는 지극히 중요한 사안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중보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영원한'의 히브리어 '레올람'(*)은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곧 영원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창 21:33의 기록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영존(永存)하시는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성 경: [시110:5]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 앞의 '주'는 메시야를, 뒤의 '주'(*, 아도나이)는 성부(聖父) 하나님을 각기 지칭한다. 그리고 '우편'은 16:8; 109:31; 121:5등에서 알 수 있듯이 보호와 조력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여호와께서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싸우시는 메시야를 혼연 일체(渾然一體)가 되어 도우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메시야 혹은 하나님 중 누가 우편에 계시느냐 하는 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1절 주석 참조). 이 두 분은 그본적으로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 그 노하시는 날에(* - , 베욤 아포) - 문자적 의미는 '그의 분노의 날에'이다. 이는 현실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극적이고도 결정적인 개입을 암시하는 날을 의미한다(2:5; 21:9; 사 13:9; 습 2:3). 이 날에는 주께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다(2:9; 7:8; 9:8; 76:9; 계 19:11-21). 현실에 관영하는 죄악과 모순을 제거하고 남은 자들의 구원을 확정할 이 날은 다분히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날은 무조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구원을, 이방에게는 심판을 행하시는 날이 아니다. 오직 참다운 영적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이 선포되고 다른 자들에게는 심판이 선언될 것이다.

성 경: [시110:6]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말레 게이오트) - 문자적으로는 '시체를 채우다(쌓다)'이다(heaping up the dead, NIV). 영역본 KJV는 여기에 '그곳'(the places)이라는 말을 첨가했으며, 어떤 학자들은 '게이오트'위에 '골짜기'를 뜻하는 '가이'(*)가 중음(重音) 탈락(haplography)된 것으로 본다. 그런가하면제롬(Jerome)은 '시체'대신 '골짜기'를 넣어 읽었다. 어쨌든 본문은 메시야의 심판의 철저성과 엄정성을 엿보게 한다.

⭕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 '머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쉬'(*)는 집합 명사이다. 혹자는 이 단어를 단수로 보고 여러 민족을 통괄하는제국의 왕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러 민족의 열왕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야의 심판이 우주적이어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에게까지 임한다는 사실이다(Alexander).

성 경: [시110:7]

주제1: [왕과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주제2: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

⭕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 어떤 주석가는 살륙으로 인한 피가 시내를 이루자 정복자 되신 그리스도가 이를 만족하게 마신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이 비유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피를 먹지 말라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적절한 것이 못 된다. 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당할 것임을 가리킨 것으로 본다. 문맥상 이것 역시 적절치 않다. 이 말씀은 원수들을 추적하되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철저히 파하기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도 않고 흐르는시냇물에 잠깐 목을 축이고는 곧장 적(敵)을 쳐부수는 내용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성 경: [시111:1]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할렐루야 - 주지하다시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히브리어이다. 이것은 이 시의 한 구성 부분이 아니라 표제어로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본 시편은 각 행의 머리 글자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는 답관체(踏冠體) 형식의 시인데 '할렐루야'의 서두 문자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상 다섯 번째이기 때문이다.

⭕ 내가...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 이 부분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자인 '알렙'(*)으로 시작되고 있다. '감사하리로다'로 번역된 '오데'(*)는 '찬송하라'로도 번역할 수 있다(Calvin). 다윗은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감사, 찬송할 뿐만 아니라 회중에서 공적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해야할 것을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서 가르치고 있다.

⭕ 정직한 자의 회와 공회 중에서 - 이 부분은 히브리어 문자 '베트'(*)로 시작된다. 여기서 '회'에 해당하는 '소드'(*)는 다소 규모가 작은 사적인 회중을 가리키며, 공회에 해당하는 '에다'(*)는 보다 규모가 큰 공적인 모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동일한 개념이 두 번 반복된 것이며 의미상 '소드'가 이방 족속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거룩한 회중이 소집된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다(Calvin).

⭕ 전심으로 - 히브리어로 '베칼 레바브'(*)인데 '온 마음으로'란 뜻이다(with my whole heart, KJV, RSV). '마음'에 해당하는 '레브'(*)는 인간의 지(知), 정(情), 의(意)를 포함하는 전 인격을 지칭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홍수후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후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여럿부터 악함이라"(창 8:21)고 하셨다.

성 경: [시111:2]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 여기서 '여호와의 행사'란 세상 만물의 창조와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아울러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히브리어 원문상으로는 '크시니'에 해당하는 '게돌림'(*)으로 시작되어 히브리어 세번째 알파벳 '깃멜'(*)이 문두에 놓였다. '게돌림'의 원형 '가달'(*)은 '강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잠언에는 사자가 가장 강하다고 말한다(잠 30:30). 이것은 또한 '용사'란 말로도 쓰인다(습 1:14).

⭕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 - 이 구절은 네 번째 문자인 '달렛'(*)으로 시작된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여호와의 행사를 갈망하는(즐거워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추구된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이는 여호와의 행사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기쁨을 지닌 자들은 향후로도 동일한 은혜 받기를 갈망하여 그것을 탐구하며 묵상한다는 것이다. '즐거워하는'에 해당하는 '하페츠'(*)가 '(쾌락을)즐기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의 쾌락을 구하는'으로 번역하나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그리고 '연구하는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쉬'(*)는 '추구하다', '연구하다', '조사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행사를 체험하기를 소원하며 지나간 행사들을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한편 후기 히브리어에서는 '다라쉬'가 성경을 해석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미드라쉬'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하였다(Anderson).

성 경: [시111:3]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 이 구절은 다섯 번째 히브리어 문자인 '헤'(*)로 시작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행사에는 영광스러운 위엄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존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드'(*)는 '찬란함', '장중함', '활력'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하면서 모세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존귀'를 여호수아에게 줄 것을 명령하였다(민 27:20). 그리고 엄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르'(*)는 '명예로운 것', '찬란한 것', '영예'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하달', 즉 호화로운 생활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14).

⭕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 이 어구는 여섯 번째 문자인 '와우'(*)로 시작되며 하나님의 존귀와 엄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공의를 통해서 그 찬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에 대해 영원토록 신실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신실하심은 부당하게 압제받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풀며 반대로 불의한 압제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편, '의'에 해당하는 '체데크'(*)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이고 바른 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에는 저울 추를 속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공정함'으로 번역되었다(신 25:15). 한편,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을 취하는 아람어 '치드카'(*)는 '긍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는 바 하나님의 공의의 이면에 있는 자비를 엿보게 한다.

성 경: [시111:4]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 이 말씀은 일곱 번째 문자인 '자인'(*)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직역하면 '그가 만들어 주신 기억은 기이한 일들을 위함이다'로서 하나님께서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즉 영원토록 명성을 떨칠 만한 일을 행하사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도 동일한 구언에 참여하게끔 하신다는 뜻이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의 '기이한 일'을 유월절(Passover)과만 연결시키나(Luther, Hupfeld,Notscher), 구속사를 통해 드러난 여호와의 모든 행사들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한편 '기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케르'(*)는 출17:14에도 등장하는데 70인역(LXX)은 출애굽기의 이 부분을 '오노마'(*), 즉'이름'으로 번역하였다.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 이는 여덟 번째 문자인 '헤드'(*)로 시작되며 '기이한 일을...기억케'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근거한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서 '은혜로우시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눈'(*)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인다. 일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판 둘을 다시 만들게 하신 후 그에게 나타나사 율법을 반포하시면서 자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계시하셨다(출 34:6).

성 경: [시111:5]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 이 구절은 아홉 번째 문자인 '테드'(*)로 시작한다. 여기서 '양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레프'(*)는 흔히'먹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아마 답관체 형식상 '테드'에 맞추기 위해 굳이 이 단어를 택한 듯하다. 물론 이 단어가 '양식'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잠 31:15;말3:10). 아마도 시인은 여기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출 16장;민 11장). 그런데 광야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은 대체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거역하였다고 봄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한 하나님은 진심으로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돌보신다는 진리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22:25;25:14; 33:18;34:9; 85:9; 103:11 ;145:19) 본문을 노래한 것이라고 본다.

⭕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 열 번째 문자인 '요드'(*)로 시작되는 구절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앞 구절에 대한 이유를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양식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를 얻고 있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언약에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성 경: [시111:6]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저가...그 행사의 능(能)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 - 이 구절은 열한 번째 문자인 '카프'(*)로 시작된다. 한글 개역 성경은 본절 전체를 뒤에서 해석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원문상으로는 '저가...기업으로 주사'를 결과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즉, '저가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사 그들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셨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He hath shown his people the power of his works, that he maygive them the heritage of the heathen, KJV).

⭕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 이 구절은 '라메드'(*)로 시작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하는 내용을 암시한다. 그들이 거룩한 땅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인간적인 힘에 의해서 얻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적인 개입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성 경: [시111:7]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 이 어구는 13번째 문자인 '멤'(*)으로 시작되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나 다 의롭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는 '확실함', '신실함'등의 뜻도 가지고 있는 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확실하고 바른 길이어서 신뢰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명령으로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가서 리브가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창 24:48).

⭕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 14번째 문자인 '눈'(*)으로 시작된다. '확실하다'는 말과 '진실하다'는 말은 원어상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법도는 진실하고 바르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마땅하며 그 법도를 따를 때 축복이, 따르지 않을 때는 징벌이 임함을 암시한다. '법도'의 히브리어 '피쿠드'(*)는 '지정되어진'이라는 본래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의) 명령', '계명', 특히 집합적으로는 '율법'을 뜻한다.

성 경: [시111:8]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 15번째 문자인 '싸멕'(*)으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영원히 영원히 확실하게 서 있고'란 뜻이다.

⭕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 16번째 문자인 '아인'(*)으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진리와 공평함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성 경: [시111:9]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 본절과 10절은 각각 세 개의 어구로 이루어져 있다. 본 구절은 17번째 문자인 '페'(*)로 시작되며, 이 어구의 문두에 놓여 '구속'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페두트'(*)는 '몸값을 받고 석방하다'의 뜻인 '파다'(*)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구별', '구속', '구원' 등의 의미를 지닌다. 바로의 술객은 하나님의 재앙에 대해 바로에게 설명하면서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사람 간에 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이므로 굴복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한글 개역 성경은이를 '권능'이란 말로 번역하고 있다.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출 8:19). 또 이사야는 이 말을 본절에서처럼 '구속'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사 50:2)

⭕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 이 문구는 18번째 문자인 '차데'(*)로 시작된다. 언약은 '맺다'는 표현으로는 주로 '자르다'는 뜻인 '카라트'(*)가 쓰인다(89:3). 그런데 여기서는 '명령하다'는 의미인 '차와'(*)가 사용되었다. 이는 본시의 특징인 답관체 형식에 맞추기 위한 시인의 의도를 읽게 함과 아울러,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언약이 주종 관계의 측면을 내포한다는 암시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언약을 세우사 호의를 나타내시지만 그것을 어기는자에게는 징벌을 가하신다는 의미이다(anderson).

⭕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 이것은 19번째 문자인 '코프'(*)로 시작된다. 원문대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고 두려우시도다'는 뜻이다.

성 경: [시111:10]

주제1: [위대한 하나님의 행사]

주제2: [찬양받으실 지존자]

⭕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 20번째 문자인 '레쉬'(*)로 시작되며 동일한 표현이 잠 1:7;9:10에도 나온다. '경외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레'(*)는 '두려워하다'는 뜻을 내포하나(창 19:30;렘 26:21) 여기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며 오직 그분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Anderson). 시인은 하나님의 구속 행위와 그 계명들을 통해 드러난 당신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언급한 후, 이제 이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즉, 하나님을 진실되이 섬기고자 하는 자는 그분께 경외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며 또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VanGemeren).

⭕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 이 문구는 21번째 문자인 '신'(*)으로 시작된다. '지각'이란 뜻의 히브리어 '세켈'(*)은 '신중함', '통찰력'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잠언 기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곧 '슬기'라고 말하고 있으며(잠 19:11). '지혜'있는 자의 교훈을 생명의 샘에 비유한(잠 13:14).

⭕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 이 문구는 히브리어 마지막 문자인 '타우'(*)로 시작된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송받을 것이며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것보다 더 유익된 것은 없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

성 경: [시112:1]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본 시는 111편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있으며 히브리어 문자 '알렙'(*)에서 '타우'(*)까지 22문자가 문두에 놓여 한 행씩 배열되는 답관체 형식의 시인 것이다. 111편이 하나님의 영광과 행사를 찬양하라는 내용인 반면 본 시는 인생이 필히 추구해야 할 영적 지혜를 교훈하고 있는 지혜시의 성격을 띠고 있다.

⭕ 여호와를 경외하며...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이 구절은 '알렙'(*)과 '베트'(*)로 시작되는 두 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선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악을 행하고 불의한 방법으로나마 어떤 이익을 얻게 된다면 대단히 기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의를 통해서는 결코 복을 얻지 못할 것임을 시인은 여기서 분명히 지적한다. 설사 불의한 방법으로 어떤 유익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휠씬 차원 높고 풍성한 유익을 주실 것이다. 한편 이구절을 원인-결과절로 보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그 계명을 크게 기뻐할 것이라'(Calvin)고 번역해 볼 수 있다. 한편 본절은 111편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상의 진전을 보여준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111:10) 더 나아가 참된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Alexander).

성 경: [시112:2]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 이 문구는 세 번째 문자인 '깃멜'(*)로 시작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당대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미침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고 말씀하셨다. 한편 창 6:4에는 네 피림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가리켜 용사라고 하였던 바, 본문의 '강성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깁보르'(*)가 거기서는 '용사'란 의미로 쓰였다(수 1:14;삿 5:13;삼상 2:4;잠 16:32;렘 5:16;20:11;슥 9:13 등 참조).

⭕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 네 번째 문자인 '달렛'(*)으로 시작되는 이 구절 역시 자손에게 임할 축복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는 설령 당대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무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에 따라 그들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으로 복을 주시게 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악한 자들은 세상에서 헛된 권세를 누리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비록 빈궁하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훗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만한 놀라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성 경: [시112:3]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 알파벳 다섯 번째 문자인 '헤'(*)로 시작되고 있으며, 의인이 받게 될 현실상의 축복을 나타낸다. 물질적인 부요함은 하나님의 귀한 축복 중 하나로 여겨졌음에 분명하다(왕상 3:13;잠 3:9, 10, 16;13:18;22:4 등).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의인도 때로는 배고픔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의 영광보다는 영적 영광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부요'(*, 혼)와 '제물'(*, 오쉐르)은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다만 전자는 '만족함'에 그리고 후자는 '풍부함'에 보다 강조점을 두는 말이다.

⭕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 여섯 번째 무자인 '와우'(*)로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의'에 해당하는 '체데크'(*)는 '공정함', '의로움', '바르게 함'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 말이 111:3에서는 여호와의 성품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재판의 공정성을 명령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 19:15).

성 경: [시112:4]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 이 문구는 일곱 번째 문자인 '자인'(*)으로 시작되고 있다. 앞에서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을 현실상의 축복을 언급하였거니와 이제 여기서는 죄악이 창궐하는 현실에 대해 눈을 돌리고 있다. 설령 흑암, 곧 온갖 역경이 가로막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항상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다는이 확신이야말로 높은 신앙의 경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빛'의 주체가 여호와이신지, 정직한 자 자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축복과 기쁨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점이다(VanGemeren, 27:1;36:9;56:13;tk 9:2;10:17). 혹자는 본문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의 재앙으로 애굽 전역이 흑암으로 뒤덮였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빛이 비추었던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Horsley).

⭕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 여덟 번째 문자인 '헤드'(*)로 시작되는 문구로서 정직한 자의 성질을 묘사한다. '어질고 자비하고 의롭다'란 말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수식할 때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111:4 주석 참조). 아마도 시인은 여기서 의인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임을 지적하고자 한 것 같다.

성 경: [시112:5]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 아홉 번째 문자인 '테드'(*)로 시작되는 문구이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좇아 행하는 자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들고자 한다. 본절과 9절에서는 한마디로 '관용'의 성품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 수있다. 이러한 주제는 이미 4절 하반절에서도 암시된 바이다. 특히 본문은 부요한 자에게서 흔히 드러나는 병폐를 역으로 경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재물이 갖는 힘은 흔히그것을 남용하도록 유혹하는 법이다(Kidner). 여기서 '잘 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좋다', '보기에 좋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좋게' 보셨다(창 1:4, 10). 그리고 렘 33:11;애 3:25 등에서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 이 문구는 열번째 문자인 '요드'(*)로 시작되는데 직역하면 '그의 공의로 그의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이다. 이것은 의인이 공정한 분별력을 가지고 자기의 일들을 처리해가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억압하거나 속이지 않고 스스로도 낭비하거나 사치하는 일 없이 매사에 검소하게 살아나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드바리'(*)는 그 의미가 다소 불명확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를 '말'에 해당하는 '다바르'(*)의 복수로 해석하여서 이 어구를 '심판대에서 그의 말들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고대의 몇몇 역본에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해석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의인이 자기의 일을 형통하게 처리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앞의 어구와 문맥상 잘 어울린다.

성 경: [시112:6]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 11번째 문자인 '카프'(*)로 시작된다. 문두의'키'(*)에 대해서는 (1) 원인을 설명하는 접속사로 보고 본문을 5절의 원인으로 보는 견해(For the righteous..., RSV) (2) '분명히', '확실히'라는 뜻의 강조사로 보는 견해(Surely..., KJV, NIV) 등이 있으나 문맥상 굳이 원인과 결과의 구문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와 겸손한 자를 지켜주시며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혼란이 와도 이들은 요동치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요동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모트'(*)는 '모트'(*)의 미완료형인데 66:9에서 '모트'는 '실족하다'란 뜻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민 4:10에는 명사로 쓰여 '틀'이란 뜻으로 번역되었다.

⭕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 12번째 문자인 '라메드'(*)로 시작되며, 직역하면 '기념을 위하여 의인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가 된다. 의인은 사후(死後)에도 그의 가족이나 그에게 도움을 입은 자들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호와의 기이한 일을 기억케 하셨다는 111:4 내용과 적절한 평형을 보여준다(Anderson).

성 경: [시112:7]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 이것은 13번째 문자인 '멤'(*)으로 시작된다. 의인이라고 해서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무제나 시련들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 대한 반응은 판이하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소한 비난에도 두려워 떨지만(잠 10:24) 의인은 어떠한 중상 모략으로 자신을 모함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의 헛된 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인 것이다.

⭕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 14번째 문자인 '눈'(*)으로 시작되는 구절로서 앞 문구에 대한 원인을 설명한다. 하나님만을 의뢰할 때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직역하면 '그의 마음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가 되며 '의뢰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타흐'(*)에서 파생된 '바투호트'(*)가 '담대함', '안전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면 이 동사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즉 담대하고 안전한 상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면서 그들이 '평안히'(*,바타흐) 거할 것이라고 하였다(겔 28:26). 여기서도 '평안히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시112:8]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 15번째 문자인 '싸멕'(*)으로 시작되며 마음이 정하여져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견고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무크'(*)는 '단단히 세우다', '버티다', '기대다' 등의 뜻을 가진 '사마트'(*)의 칼 분사형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는 구절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마음이 견고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을 뜻하며 마음이 견고한 자는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 이것은 16번째 문자인 '아인'(*)으로 시작되며 문자적으로는 '그 대적을 마침내 보리로다'가 된다. 여기서 '라아 베'(*, ...을 본다)라는 관용구는 흔히 대적들에 대한 승리를 뜻한다(54:7;59:10;91:8;118:7). 따라서 영역본 NIV처럼 'in triumph'(승리 가운데)를 첨가해도 무방하다(Vangemeren).

성 경: [시112:9]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 9절과 10절은 각각 세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구는 17번째 문자인 '페'(*)로 시작되는데 의인의 선한 행위와 너그러운 마음을 노래한다. 의인은 재물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궁핍한 자의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나누어 주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재하여서는 허영으로 탕진하고 만다. 한편 가난한 자에 대한자선과 구제의 의무는 성경의 중요한 명령으로서 신.구약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레25:35;신 15:7, 8;눅 11:41).

⭕ 그 의가 영원히 있고 - 이 문구는 18번째 문자인 '차데'(*)로 시작되는데 의인의 선한 행위에 대한 열매와 보상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 19번째 문자인 '코프'(*)로 시작되고 있다. '뿔'(*, 케렌)은 '힘', '능력' 또는 '자존심'을 상징한다. 자신의 뿔을 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만심과 교만에 사로잡힌 상태를 가리킨다(75:4).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의인의 자비로운 행위를 기쁘게 보시고 그들의 위치를 더욱 높여서 권세와 영광으로 보상하신다는 뜻이다.

성 경: [시112:10]

주제1: [의인의 복]

주제2: [의인이 누릴 지복한 삶]

⭕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 이 시편의 서두를 의인에게 임할 축복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한 시인은 이제 악인의 비참한 최후에 관한 묘사로써 마감하고 있다. 역경에 처한 의인에 대해 이를 갈며 덤벼드는 것은 악인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다(35:16;37:12).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의인에게 닥친 역경이 축복과 번영으로 바뀌게 되면, 악인들은 증오와 시기에 사로잡혀 이를 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끝내는 소멸되고 만다는 것이다(VanGameren). 한편 본문은 20번째 문자인 '레쉬'(*)로 시작한다.

⭕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 21번째 문자인 '신'(*)으로 시작되는데 '소멸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마스'(*)는 '녹아 없어지다'는 뜻으로서 악인이 쇠가 녹듯 녹아져서 완전하게 파멸되는 것을 가리킨다.

⭕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 히브리어 알파벳의 마지막 문자인 '타우'(*)로 시작된다. 악인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찾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악인의 소욕은 의로운 자의 멸망을 바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성 경: [시113:1]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 '여호와의 종들'(*, 아브데 예화)이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을 뜻할 수도 있으나(134:1), 보다 넓게는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34:22;69:36). 본문에서 '여호와의 종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 앞에 선 그들의 의무와 책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의 놀라운 특권 또한 강조하는 것이다(Anderson).

⭕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 이간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나타내도록 지음 받았으나 인간은 그 목적을 망각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그 영광을 경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찬양하라는 권고가 반복되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라는 의도에서 다시한번 찬송을 촉구하였다.

성 경: [시113:2]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 이는 어떠한 상황에 봉착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의 생애가 비록 긴 것 같으나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이 사실이므로 전생애에 걸쳐 하나님만을 찬송한다고 하더라도 극히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이곳 장막 집을 떠나 새로운 집에 거하여 영원히 살게될 때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의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욥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하루 아침에 다 잃어버리고도 이렇게 찬양하였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고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성 경: [시113:3]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걸쳐 찬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66:1, 4). 율법 아래 있을 때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이라는 특정 집단에게만 찬양받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행사가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고 또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충한 제사장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 의해서만 분향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성 경: [시113:4]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 하나님의 영광의 높으심에 대한 노래이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찬란한 영광을 찬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불경건한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는 왜 그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는가하는 책망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에 등한히 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성 경: [시113:5]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 이 수사 의문문은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35:10;출 15:11;신 3:24;사 40:18, 25;46:5). 천상 천하(天上天下)에 하나님과 비교할 만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만유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서부터 9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가 무한히 크심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 인자하심 또한 무한함을 노래한다.

성 경: [시113:6]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 하늘 위에 초월해 계신 영광의 하나님이 연약하고 미천한 인간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아버지 같은 관심으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심을 뜻한다. 하나님이 한 순간이라도 돌보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즉시로 혼란과 무질서, 범죄와 악으로 파멸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성 경: [시113:7]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 여기서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은 '허약한', '파리한', '가난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부당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다(출 23:3). 그리고 '진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파르'(*)는 흙이나 먼지를 가리키는 말이며 비천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기도 한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을 땅과 티끌에 비유한 바 있다.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사 47:1)

⭕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그러했으며,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또한 그러하였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기이한 사건들을 접했을 때 우리는 이를 단순히 우연으로 돌려버려서는 안 된다. 자기 백성을 위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마땅한 것이다. 여기서 궁핍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비욘'(*)은 '부족한', '가난한' 등의 뜻으로서 앞어구의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과 비슷한 말이다. 그리고 '거름 무더기'에 해당하는 '아쉐포트'(*)는 '싹쓸어내다'란 뜻의 히브리어 '솨파'(*)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잿더미', '쓰레기 더미'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레미야는 시온의 멸망을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애 4:5).

성 경: [시113:8]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 미천한 처지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최고의 권세의 자리에 앉게 됨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놀라운 변화에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할 뿐인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비천한 자의 호소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언젠가는 지배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방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느디빔'(*)은 '관대한', '귀족'이란 뜻을 가진 '나디브'(*)의 복수 형태이다. 한나의 기도에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시키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앉게 하시며"(삼상 2:8)란 내용이 있다.

성 경: [시113:9]

주제1: [영광의 찬송]

주제2: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 아마도 시인은 한나의 기도를 염두에 둔 것 같다(삼상 2:5).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무자(無子)함을 흔히 수치 혹은 심지어는 하나님의 저주로까지 여겨졌다(창 16:2;20:18;삼상 1:5;눅 1:24, 25).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바이트'(*)는 '가정'이나 '가족'을 뜻할 수도 있다(home, NIV, RSV).

⭕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 부귀 영화나 쾌락보다 자손을 갖는 것이 더 귀한 일이다.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것과 같이 잉태치 못한 여자를 어미가 되게도 하신다. 여기서 '즐거운'에 해당하는 '세메하'(*)는 '기쁨', 특히(종교적인) '환희'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사야는 전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빛을 받고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였다(사 9:3).

성 경: [시114:1]

주제1: [이스라엘 역사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

주제2: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 70인역(LXX)은 이 부분을 '엔 엑소도 이스라엘'(*)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 뜻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시에'가 된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출애굽과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쌍벽을 이루는 주요한 사건으로서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전인류의 구속을 예표한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구약 신학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시편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학자는 출애굽을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탄생이라고까지 한다(Kirkpatrick).

⭕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 전반절과 대구를 이루는 이 어구(語句) 역시 출애굽을 가리킨다. 여기서 '야곱의 집'이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법적 표현으로서 흔히 '이스라엘 집'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방언 다른 민족'으로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 '암 로에즈'(*)는 번역된 우리말 대로라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백성'을 뜻하지만, 칼빈(Calvin)은 이를 '야만적인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칠십인역(LXX)은 이를 '바르바루'(*)로 번역하여 칼빈의 번역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애굽은 당시 최고로 번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야만적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애굽인들의 가혹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 같다(Parkhurst).그러나 어원적으로 따져볼 때 '로에즈'란 말이 후기 히브리어로 '외국어를 말하다'란뜻의 '라아즈'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이 더 정당한 것 같다. 타방언을 말하는 민족이란 성경에서 가끔 적대적인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사 28:11;렘 5:15). 참고로 '아즈'(*)란 형용사는 '강한', '잔인한', '야만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사야 25:3에는 이것이 '강한'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대구를 이루는 말이 '포학한'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말에는 '야만적'이란 개념도 포함되어있는 것 같다.

성 경: [시114:2]

주제1: [이스라엘 역사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

주제2: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 어떤이는 이곳의 유다가 솔로몬 사후(死後) 분열된 남쪽 유다 왕국을 가리키고, 다음 어구의 이스라엘의 북쪽 이스라엘 왕궁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출애굽 사건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약 300년후에 일어날 사건과 이것을 결부시킨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부적절한 해석이다. 또한 어떤 이는 그 당시 유다 지파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위임받았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어구가 다음 어구인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란 말씀과 대구를 이루며 같은 개념을 반복 표현한 내용이란 점에서 이곳의 유다를 유다 지파 하나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해석이다. 이는 솔로몬 이후의 북쪽 이스라엘을 가리켜 '에브라임'이라고 지칭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 당시 유다는 모든 지파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고 또 가장 강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유다 지파의 지역에 보존되어 있었다는 점과 신약적 관점에서 메시야가유다 지파에서 나온다는 점도 이런 관점을 뒷받침한다(Phillips). 한편 '성소'를 뜻하는 '카데쉬'(*)는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사물을 가리킬 때 흔히 쓰인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