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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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스바냐서 주석



성 경: [습1:1]

(주);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 - 선지자 스바냐가 사역을 하던 때는 요시아 왕시대였다. 당시 국제적으로는 강대국 앗수르가 본국 사정으로 인해서 서쪽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때였으며, 국내적으로는 요시아 왕이 철저한 개혁을 시행하고 국토를 넓혀가려던 때였다(왕하 22:1-23:20).

(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 다른 선지서와는 달리 본절에는 선지자의 조상이 사 대까지 언급되어 있다.다른 선지서와는 달리 이토록 스바냐의 조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한 것은 아마도 스바냐의 사 대째 조상인 '히스기야' 때문인 듯하다. 혹자는 '히스기야'라는 이름이 당시에 상당히 일반적인 이름이었다는 이유로 히스기야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Kapelrud). 그러나 그 근거가 빈약하다. 본절의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한 왕 중의 하나였던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왕하 18:3-8. L.L.Walker). 한편 스바냐의 아버지 '구시'는 그 이름 자체로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에디오피아 사람과 연관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바냐의 아버지가 에디오피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조부와 증조부, 그리고 현조부의 이름들이 모두 유대식 이름이기 때문이다(Smith).

성 경: [습1:2]

(주);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 '지면에서'(페네 하다마)는 노아의 홍수 때를 상기시키는 단어로(창 6:7; 7:4) 특별한 수식어가 붙지 않는 한 지역적인 땅의 한계를 넘어선 세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L.L.Walker).한편 '진멸하리라'(아소프 아세프)는 문자적으로 '완전히 쓸어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철저하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것임을 시사한다.

성 경: [습1:3]

(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심판의 대상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거치게 하는 것'은 우상을 가리킨다(Von Orelli).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그리고 우상을 악인들과 더불어 파멸시키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특별히 저자는 '진멸하고'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격하며 정도가 심한 것으로 철저한 파멸을 초래할 것임을 암시한다.

성 경: [습1:4,5,6]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다.

(주);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 '손을 펴서'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실 것을 시사한다(사 5:25;9:12,17,2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은 크게 다섯부류로 나뉘어진다.

(주);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 '바알'은 가나안 사람들의 신으로, '주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알은 농경신으로 다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주민들이 섬기던 바알을 섬겼다. 여기서 '바알의 남아있는 것'은 개혁을 추구했던 요시아가 많은 바알 숭배 사상이 남아 있었음을 암시한다(L.L.Walker). 하나님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바알 우상을 파괴하실 것이다.

(주);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 '그마림'은 히브리어 '케마림'을 음역한 것이다(왕하 23:5; 호 10:5). 이것은 바알을 숭배하는 가나안의 제사장들을 가리키던 명예로운 칭호였다. '그마림'에 이어 기술된 '그 제사장들을' 70인역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마림'을 보충 설명하고자 부연된 것 같다(Smith). 하나님은 바알의 남은 것들만 파괴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민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이방 제사장들조차 모조리 파멸시키실 것이다.

(주);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 성신에게 경배하는 자 - 이들은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별과 달을 숭배하는 의식은 가나안과 바벨론에서 흔히 행해졌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 왕정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별과 달을 숭배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신 4:19; 왕하 21:3,5; 렘 8:2; 19:13; 44:8-10). 하나님은 선지자 스바냐를 통해서 별과 달을 숭배하는 자들도 예외없이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주);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 - '말감'(말캄)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왕'을 의미한다. 그래서 혹자는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이며 왕으로 섬겼던 바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Sabottka). 그러나 70인역과 수리아 역본, 벌게이트 역본에서는 이것이 암몬 족속의 신이었던 밀곰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본문의 '말캄'은 바알을 지칭하기 보다는 암몬 족속의 신인 밀곰으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러한 '말감'은 솔로몬이 후궁들을 위해서 산당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어(왕상 11:5-8,33; 왕하 23:13)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악에 빠지게 했던 우상 중의 하나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맹세한 후에도 말감을 섬기는 종교적 혼합주의를 행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는 아하스 왕과 므낫세 왕 때에 예루살렘에서 흔히 자행되던 죄악이었다(왕하 16:3.Lange).

(주);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 -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로 결정하신 대상은 배교자들과 불신앙자이다. '찾지도'(비케쉬)와 '구하지도'(다라쉬)는 흔히 제의를 드리는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하나 신명기서와 예언자들은 이것을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과 연관시켜서 사용하기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과 연관시킨다(신 4:29; 암 5:4-6, Smith). 여호와를 찾고 구하는 자는 내적으로, 도덕적으로 여호와만을 바라며 그 계명을 즐겨 행한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들 중에는 하나님을 바라기는 커녕 도리어 내면적, 도덕적으로 배교하거나 불신앙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였다.

성 경: [습1:7]

(주);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 스바냐는 심판의 날을 선언하기 전에 먼저 '침묵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복종을 요구하는 선언이다(Calvin). 예루살렘과 유다 거민들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은 거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분노와 파괴가 시행될 '여호와의 날'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침묵은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침묵을 의미한다(Von Orelli).

(주);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 '여호와의 날'에 치러질 제사의 '희생'은 '유다 백성'들이다. 반면에 '청할 자'는 제사에 초청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어 유다 거민들을 멸망시킬 이방 국가이다(사 13:1, Lange).

성 경: [습1:8,9]

본문에는 유다 거민들 중에서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대상이 묘사되어 있다.

(주); 여호와의 희생의 날 - 이것은 '여호와의 날'과 동의어로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셨으며 친히 심판을 시행하실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주);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 '방백들'은 유다 거민들 중의 지도자들로서 히스기야 왕이 개혁을 행할 때에 대적하였던 자들이다(미 3장). 이들은 아마도 요시아 왕이 개혁할 때도 자신들의 기득권과 평안을 잃지 않기 위해서 대적하였던 듯하다. 또한 '왕자들'은 유다 거민들의 지도자들이었음은 분명하나 문자적인 의미인 '요시아 왕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당시 요시아의 아들들은 매우 어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본문의 '왕자들'은 요시아의 친족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Lange, Hitzig, Von Orelli). 이들의 죄악은 '이방 의복'을 입는 것이다(Smith, Lange). 여호와께서는 의복에 대해서 규정을 지으셨다(민 15:38; 신 22;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백들과 왕자들이 이방인들이 입는 의복을 즐겨 입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이방 관습에 젖어 여호와를 배척하고 우상을 섬겼음을 암시한다.

(주); 그 날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 '문턱을 뛰어 넘어서'는 이교 신전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별히 삼상 5:5의 다곤 신전에서 제사장들이 문지방을 밟지 않은 것과 연결되는 듯하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해석과 더불어 '자기 주인'을 우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Hitzig). 그러나 이러한 이교 의식은 단지 다곤 신전에서만 행해졌을 뿐이다(Calvin, Lange, Ewald, Keil). 그러기에 '문턱을 뛰어 넘어서'는 앞서 언급된 왕자들과 방백들의 하수인들이 타인의 집을 마음대로 침입하여 주인인 왕자들과 방백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약탈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L.L.Walker, Von Orelli). 하수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왕자들과 방백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도둑질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다.

성 경: [습1:10]

(주); 어문 - 이것은 오늘날의 다메섹 문 가까이에 있는 성읍 북쪽 문을 의미하는 듯하다(대하 33:14; 느 3:3; 12:39). 이곳은 적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방향이었다(Smith, L.L.Walker).

(주); 이 구역 - 이는 어문 가까이에 있는 성읍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키는 듯하다(Von Orelli). 이곳은 여선지자 훌다가 살았던 곳으로(왕하 22:14) 다른 곳에서도 '제 이 구역'으로 지칭되고 있다(대하 34:22).

(주);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 '작은 산들'은 주변의 언덕들을 가리키기 보다는 예루살렘 성읍 내에 있던 언덕들을 가리키는 듯하다(L.L.Walker). 이것들은 '여호와의 날'에 이방 국가의 침략으로 파멸될 것이며 그곳에 거하던 거민들은 곡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습1:11]

(주); 막데스 거민들아 - '막데스'는 히브리어 '마크테쉬'의 음역이다. 이곳은 앞서 언급된 어문과 반대되는 지역인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저지대로서, 상업으로 이름이 난 지역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절 하반절에서 '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절은 침략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침략로인 북쪽과 침략로가 아닌 남쪽에서도 예외없이 이루어질 것을 시사한다.

(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수운하는 자가 끊어졌음이니라 - '가나안 백성'은 성경에서 흔히 상인들이나 무역을 하는 자들을 가리켰다(사 23:8; 겔 17:4; 호 12:7; 슥 14:21). 여호와의 날에는 상인들도 모두 멸망당하여 막데스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성 경: [습1:12,13]

(주);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 '등불'은 점토로 만든 기름 등잔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외없이 행해질 것이며 아주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주);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하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는 예레미야도 사용한 적이 있는 속담투의 표현이다(렘 48:11). 이것은 이어서 나오는 구절들과 연결되어 심판의 대상이 하나님께서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자들임을 가리킨다. 그들은 포도주에 가라앉은 찌끼와 같아서 그냥 내버려둘 경우 질 좋은 포도주를 나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방관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배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섭리 자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은 자신들의 생활과 전혀 무관한 존재라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주);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강퍅한 자들에 대한 심판 내용이다. 자신들이 받았던 축복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물과 집, 그리고 포도원까지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적인 심판을 통해서 그들이 부인했던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드러내실 것이다.

성 경: [습1:14]

(주);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 '여호와의 큰 날'이라는 표현은 요엘의 묘사와 비슷하다.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피 두렵도다'라고 묘사한다(욜 2:11). 그것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정도가 매우 강할 것을 뜻한다. 이렇듯 엄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된 심판의 대상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주);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 '여호와의 날'에는 용사의 애곡 소리가 들린다. 용사들이 애곡하게 됨은 자신들이 여호와의 날에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이방 국가에 의해서 패배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Keil).

성 경: [습1:15,16]

(주);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 본절은 '여호와의 날'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구름과 흑암의 날'은 하나님의 현현과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출 19:16;20:21;신 4:11, Smith). 여호와는 정하신 날에 나타나셔서 분노하시며 진노하실 것이다.

(주);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 본절은 전쟁터를 연상시킨다. 스바냐는 흔히 전쟁터를 상기시키는 경고용 나팔, 견고한 성읍, 높은 망대를 여호와의 날과 연관시켜서 하나님의 심판이 마치 전쟁과 같이 그 강도가 매우 심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습1:17]

(주);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 '여호와의 날'에 유다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은 바로 유다 거민들에게 있다. 그들의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부하고 우상 섬기기를 즐겨한 유다 거민에게 등을 돌리시며 반대편에 서셔서 심판하신다.

(주);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지라 - 본 구절은 '여호와의 날'에 유다 거민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의 정도를 나타낸다. 유다 거민들의 피는 티끌로, 살은 분토로 변할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은 엄할 것이다.

성 경: [습1:18]

(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 '은과 금'은 유다 거민들이 하나님을 버리게 된 동기이다. 그들은 은과 금을 하나님처럼 섬겼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그 하수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강포를 행하기를 서슴지 않았었다(8,9절). 그들이 그렇게 추구했던 은과 금도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주);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 스바냐는 유다 거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심판의 대상을 모든 세계의 백성들로 확대한다. 여기서 '이 온 땅'과 '이 땅 모든 거민'은 유다 거민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L.L.Walker, Smith). 선지자 스바냐는 본장 처음에서 심판 대상을 설명할 때 '지면에서'라고 말함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과 생물들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강조하였다(3절). 이제 본장을 마감하는 본문에서 스바냐는 다시금 심판의 대상을 온 세상으로 확대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여호와께 범죄한 모든 사람을 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습2:1]

(주);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는 모욕적인 언사로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며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한편 '모일지어다'(히트코솨슈)의 어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쉬'는 학자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다. 혹자는 '찾아보아라'로 해석하며(Kimchi, Marckius), 혹자는 '굴복할지어다'로 해석하고(Lange), 혹자는 70인역의 해석처럼(쉬나크데케, '너희는 모이라') '모일지어다'로 해석한다(Calvin, McComiskey, Keil).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스바냐는 심판의 날, 진노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초청하고 있다.

성 경: [습2:2]

(주); 명령이 시행되기 전 - '명령'은 곧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므로 모든 것을 멸망시키려는 심판을 발하시는 것을 뜻한다.

(주);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지 전 - '겨'는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로 모든 것이 불살라져 사그라드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정도가 매우 강한 것임을 시사한다. 스바냐가 지속적으로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엄한 심판이 임하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을 설명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앞으로 돌아서도록 초청하기 위함이다.

성 경: [습2:3]

(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 본 구절에서 스바냐가 권면하는 대상은 오직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뿐이다. 왜냐하면 그 외의 사람들은 도저히 여호와의 날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Von Orelli). 모든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들을 지키는 자들이다. 스바냐는 여기서 '세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겸손한 자들이 단순히 유다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이나 유다 백성이나 그 혈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기대하며 겸손히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즐겨 찾는 이들이다.

(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 스바냐는 겸손한 자들조차도 심판이 행해지는 여호와의 날에 겨우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아모스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암 5:15) 모든 것이 여호와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Smith).

성 경: [습2:4]

(주);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 - '가사','아스글롯','아스돗','에그론',은 '가드'를 제외한 나머지 블레셋 성읍을 가리킨다. 다섯 개의 블레셋 성읍 중에서 '가드'를 제외시킨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미가뿐만 아니라 아모스와 스가랴도 스바냐와 동일하게 블레셋에 대한 신탁을 전하는 과정에서 '가드'를 제외시키고 있다(암 1:6-8; 슥 9:5-7). 본절에 언급된 네 개의 블레셋 성읍 중에서 '가사'와 '에그론'에 대한 심판 신탁,다시 말해서 '가사'(아자)가 '버리우며'(아주바) '에그론'(에크론)이 '뽑히우리라'(테아케르)는 동일한 자음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같이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적 표현은 파멸의 필연성과 심각성을 생생하게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백주에'는 당시 동방 사람들이 낮잠 시간으로 이용하던 낮시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을 암시한다(L.L.Walker).

성 경: [습2:5]

(주); 해변 거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 '그렛 거민'은 그레데 섬에서 이주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된 한 족속을 가리킨다(렘 47:4; 암 9:7, Von Orelli, Lange). 그들은 해변 지역에 거하는 자들이었다.

(주);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 본 구절에서 블레셋을 '가나안'으로 지칭한 것은 블레셋이 가나안의 끝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나안'이란 이름이 본래 평평한 해변지역에 속한 '낮은 땅'(lowland)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블레셋을 '가나안'이라 부른 것은 앞서 언급된 해변 지역에 거주하는 그렛 사람과 연관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Von Orelli).

성 경: [습2:6]

(주); 해변은 초장이 되어 목자의 움과 양떼의 우리가 거기 있을 것이며 - 본절은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무하게 되며 파괴된 상태를 나타낸다. 사람들이 모여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곳에서는 결코 양떼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문명을 이루어 살아가던 해변이 목자와 양떼들의 거주지로 변화되는 것은 그곳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해져서 더이상 사람이 거할 수 없게 되며 양떼들의 먹이가 되는 잡초만 가득하게 됨을 뜻한다(Calvin, L.L.Walker).블레셋 도시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더이상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며, 생존 근거지를 잃어버린 거민들은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질 것이다.

성 경: [습2:7]

(주);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권고하여 그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니라 -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양떼들과 목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던 해변은 유다 백성, 곧 남은 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유다 족속의 남은 자'는 '그들을 권고하여 그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이니라'와 연결된 표현이다.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니라'(웨솨브 쉐비탐)는 종말론적 어구로서 혹자는 이를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며(L.L.Walker, Von Orelli) 혹자는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A.R.Johnson). 전자나 후자 모두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전통적으로 전자의 견해를 취한다. 하나님은 파멸당한 블레셋이 이전에 차지했던 해변을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 주어질 것을 약속하신다. 유다 족속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회복될 것이며 다시 세움을 입게 될 것이다.

성 경: [습2:8]

(주); 내가 모압의 훼방과 암몬 자손의 후욕을 들었나니 - '훼방과 후욕'은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괴롭힌 특별한 사건을 가리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유다를 침략하여 괴롭힌 전역사를 의미한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모압(민 22-24장;삿 3:12-30;삼상 12:9; 왕하 3:5-27; 13:20)과 암몬(삿 10:6-11:33; 삼하 10:1-11:1; 느2:10,19;4:3,7)등과 계속적으로 전쟁을 치렀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약해질 때마다 어김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훼방하고 후욕하였다.

성 경: [습2:9]

(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 본 구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칭호인 '만군의 여호와'와 '맹세'는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에게 내리실 심판의 확실성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두고 맹세한 것은 자연스럽다. 여호와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계획은 감히 어느 누구도 수포로 만들 수 없다.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 계획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주);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 본 구절에서 모압과 암몬의 멸망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모압과 암몬 족속의 기원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성이 파괴될 때 롯과 그의 딸들의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창 19:30-38). 모압과 암몬족속의 기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모압과 암몬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고를 들었을 때 그 정도가 어떠한지를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얻을 것이라 - '찔레와 소금 구덩이'는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해진 상태를 나타낸다. 모압과 암몬은 더이상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없게 되며, 그들의 소유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살아남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소유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나의 끼친 백성'은 '나의 남은 국민'과 동일한 의미의 표현으로 여호와의 남은 자를 가리킨다(Calvin). 남은 자들은 온전히 회복되어 자신들을 괴롭힌 자들의 땅과 소유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습2:10]

(주); 교만하여 스스로 커서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함이니라 -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하게 되는 이유는 교만이다. 선지자 스바냐만이 모압과 암몬의 죄목을 교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모압과 암몬의 죄를 교만으로 규정하고 있다(사 16:6; 렘 48:26). 모압과 암몬은 유다를 침략하여 후욕했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자고(自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은 수치와 멸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성 경: [습2:11]

(주);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진케 하리니 - 유다를 대적하였던 주변 국가들, 곧 블레셋(4-7절), 모압과 암몬(8-11절), 구스(12절),그리고 앗수르(13-15절)의 파괴와 멸망은 모든 열국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을 파멸시키는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열국들은 자신들의 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다. 그러나 열국은 유다 주변 국가들과 그들의 신이 파멸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들이 섬기던 신이 결코 여호와의 심판에서 자신들을 구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열국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주);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열국의 모든 섬에 사는 거주민들'을 가리킨다(Von Orelli, Cavin). 한편 '각각 자기 처소'는 여호와에 대한 경배가 보편적인 것으로 변할 것임을 시사한다. 혹자는 여호와에 대한 경배가 보편적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사 2장과 미 4장에 언급된 내용과 모순되기 때문에 열국이 자기 처소에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Kleinert, Keil).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모순된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스바냐는 특별한 성소는 물론 모든 곳에서 보편적이면서 초월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말 1:11, Lange).

성 경: [습2:12]

(주); 구스 사람아 너희도 내 칼에 살륙을 당하리라 - 본절은 유다의 남쪽에 있는 구스에 대한 심판 예고이다(사 18:1; 겔 38:5). '너희도'는 구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 내린 것과 동일한 것으로 완전한 멸망일 것임을 시사한다. 구스도 예외없이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성 경: [습2:13]

(주); 여호와가...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 '니느웨'는 당시 역사적으로 최강의 국가인 앗수르의 수도였다. 니느웨의 관개 시설은 절대로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손을 펴서 앗수르를, 수도 니느웨를 마치 사막처럼 황량하게 만드실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자랑하던 관개 시설은 오간 데 없고 물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사막처럼 황량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성 경: [습2:14]

(주); 각양 짐승이 그 가운데 떼로 누울 것이며 당아와 고슴도치가...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벗겨졌음이라 - 무적의 나라답게 앗수르와 니느웨는 최상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는 백향목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진 후의 모습은 황량함과 적막함 그 자체였다. 니느웨는 수도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것과는 달리 각종 야생 짐승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렸다. 올빼미를 가리키는 '당아'는 성경에서 황량함의 일면을 보여주는 표상으로 사용되었다(시 102:6; 사 34:11). 결국 니느웨 성은 도저히 사람이 거할 수 없는, 야생 짐승들만이 가득 찰 정도로 완전히 파멸당할 것이다.

성 경: [습2:15]

(주);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외에는 다른이가 없다 하더니...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여 손을 흔들리로다 -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교만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하고 통치하에 되자 심각한 교만에 빠졌다. 앗수르는 만군의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당하여 짐승의 거처가 되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성 경: [습3:1]

(주);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본절 이후에 '선지자','제사장','성소'등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Smith, Von Orelli). 선지자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해 세 가지 수식어를 붙여 고발하고 있다. 첫째로, '패역하고'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여 순종하기를 거부한 것을 의미한다(2절). 둘째로, '더러운'이다. 이것은 이교도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의식적인 불결을 나타낸다(4절). 예루살렘은 외부적으로 깨끗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적으로 매우 부패하였으며 부정하였다(Calvin). 셋째로, '포학한'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간의 관계를 나타낸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와 위치를 무시하고 광포하게 대하는 것을 뜻한다(3절). 예루살렘 거민들은 가나안 자들이나 과부들 혹은 고아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다.

성 경: [습3:2]

(주);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죄악은 패역이다. 그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듣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의지하였다(1:11). 또한 그들은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거절하였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대로 삶을 살아갔다.

성 경: [습3:3]

(주); 그 가운데 백방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 '방백들'은 모든 일을 정의와 공평으로 행해야 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 귀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하기보다는 먹이를 찾아 부르짖는 사자처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주);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이라는 표현은 재판장들이 갖고 있던 탐욕과 약탈성을 의미한다. 그들은 배를 곯은 짐승이 먹이를 남겨두지 않고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성 경: [습3:4]

(주);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 '경솔하고'는 악하고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삿 9:4). 또한 '간사한'은 신실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Calvin).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며 오직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스바냐 당시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간사하여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지 않고 오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거짓 예언을 일삼았다.

(주);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 '성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성소를 의미하기보다는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바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Hitzig, Von Orelli). 또한 그들은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행동, 곧 생활전반을 통해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였다.

성 경: [습3:5]

(주);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아침마다 간단(間斷)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예외없이 불의를 행한 반면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신다. '아침마다 공의를 나타내시거늘'은 예루살렘의 재판장들이 먹이를 이튿날 아침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3절). 더욱이 '아침마다'는 아침이 되면 해가 어김없이 돋아 빛을 비추는 것처럼(호 6:3) 하나님께서는 변개함 없이 지속적으로 공의를 행하심을 시사한다(Smith, L.L.Walker).

(주);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 '불의한 자'는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3,4절).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계속적으로 공의를 드러내시나 예루살렘거민들은 완고하여서 자신들의 죄악과 수치를 깨닫지 못하였다(Lange).

성 경: [습3:6]

(주);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 본절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열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힘과 경제력을 믿고 교만해진 모든 열국들은(L.L.Walker)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음이 드러날 뿐이다.

성 경: [습3:7]

(주);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 본절은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예시하신(6절) 목적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설명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죄로 인해 심판을 당한 열국을 보고 반성하여 돌아오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당한 열국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아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Smith, Von Orelli). 그래서 만약 예루살렘이 돌아선다면 이미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자체가 목적을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다.

(주);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심판을 작정하신 것조차 변경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완고하여서 그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더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였다.

성 경: [습3:8]

(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 본절은 예루살렘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을 즐겨 행하는 예루살렘의 부패와 죄악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 언급한다. 한편 '나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 '너희는'은 열국을 가리키는 듯 보이나 그럴 경우 앞절과의 문맥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너희는'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날은 자들이나(Lange, Taylor, Driver) 예루살렘 자신(Calvin)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고를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예루살렘에게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주); 내가 뜻을 정하고...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 '내가 뜻을 정하고'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 그 심판은 열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편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을 뜻한다(1:1-3).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며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가를 온 땅이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Von Orelli).

성 경: [습3:9]

개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키'가 번역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키'를 원인으로 해석하여 '왜냐하면'으로 이해하나(Henderson), 본절의 '키'는 반의 접속사로 보아 '그러나'로 해석하여야 한다(Calvin). 왜냐하면 앞절에서는 심판을 예고하는 반면 본절은 회복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 '그 때에'는 앞절에서 언급된 심판 이후의 때를 가리킨다(L.L.Walker). 심판 이후에 벌어진 결과는 열방의 회개이다. '열방의 입술'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찾으며 찬양하던 부정한 입술이다(시 16:4).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그들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하셨다. 이런 입술의 정화는 마음의 정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Keil). 그 결과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우상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게 된다. 둘째는 하나님을 일심으로 섬기는 것이다. '일심으로'(쉐켐 에하드)는 문자적으로 '한 어깨'를 가리킨다(Von Orelli). 이는 어깨를 맞대고 짐을 나르는 짐꾼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L.L.Walker), 합심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한다(Calvin).

성 경: [습3:10]

(주);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라 -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으로, 돌아오는 이방열국을 가리키기보다는 유대인 중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내가 흩은 자의 딸'은 이방열국을 지칭할 수 없으며 오직 유다를 지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Calvin).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이다(Von Orelli).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이다(Von Orelli). 여기서 본절을 이해하는 데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있다. (1)유다를 가리키는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을 목적격으로 이해하여 이방 열국들이 유다를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으로 해석한다(Keil). (2)'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을 주격으로 해석하여 이방 열국에 흩어진 유다가 여호와께 돌아와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한다(L.L.Walker, Von Orelli, Smith).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더 자연스럽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구스', 곧 2:12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언급된 열국에서 돌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것이다.

성 경: [습3:11]

(주);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포로 생활을 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수치와 멸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하시는 날에는 결코 죄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교만한 자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는 자신들을 높이며 즐거워하는 자들을 가리킨다(Henderson). 유다의 남은 자들 중에는 결코 교만한 자들이 없을 것이며 오직 겸손한 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성 경: [습3:12]

(주);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중에 남겨두리니 - 본 구절은 앞절과 대조를 이룬다. 돌아온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Smith),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누려야 할 팔 복중에서 첫 번째와 동일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다(마 5:3).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구원 사상은 비단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나타난다(시 22:26; 25:9; 69:33; 147:6; 사 11:4; 32:7; 암 2:7).

(주);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 본 구절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유다의 남은 자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는 자들이었다(사 14:30).

성 경: [습3:13]

(주); 이스라엘은 남은 자는...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 본절은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행이나 죄를 범하는 말이나 궤휼한 혀가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평안과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여기서 '먹으며 누우나'(이레우 웨라베추)는 목축용어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하시며 공급하실 것이다.

성 경: [습3:14]

(주); 시온의 딸아...이스라엘아...예루살렘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L.L.Walker). 한편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는 승리의 확신에서 비롯된 찬양이며, 기쁨에서 비롯된 외침이다(Calvin).

성 경: [습3:15]

본절은 14절에 언급된 찬양의 이유이다. 그것은 모두 세 가지이다.

(주);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거두셨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의 죄악이 모두 사하여졌음을 시사한다.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남은 자들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게 될 것이다.

(주);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 '너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신 도구들이다. 이미 남은 자들은 범죄함과 형벌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의 도구인 원수들, 곧 교만한 이방 열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주);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 이스라엘은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시온에 있는 그 보좌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다. 여호와는 남은 자들의 왕으로서 보호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한 일이나 화나 재앙이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성 경: [습3:16]

(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네손을 늘어뜨린다'라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삼하 4:1; 사 13:7; 렘 6:24; 히 12:12, Calvin, L.L.Walker). 남은 자들은 이제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미 지나갔으며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셔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성 경: [습3:17]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 본 구절은 남은 자들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구원자되신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며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너를 보호하시는 전사와 같은'(like warrior, to keep you safe, NEB), 혹은 '승리하시는 전사'(a warrior who givesn victory, RSV)이며 (2) '승리한 전사'(victorious warrior, JB). 혹은 '전능한 구원자'(mighty savior, NAB)이다. 결국 남은 자들과 함께 거하시는 여호와는 승리하신 구원자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할 수 있다.

(주);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 본 구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KJ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안에서 안식하실 것이다'(he will rest in his love)라고 번역하였으며, RS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he will renew you in his love)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본에 따라 '잠잠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하리쉬'가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맛소라 본문에서는 '야하리쉬'를 그대로 사용하여 KJV처럼 '안식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보나, 다른 사본에서는 RSV가 따르는 것처럼 '하다쉬'(새롭게 하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굳이 RSV처럼 해석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맛소라 본문의 '야하리쉬'로 보아도 본 구절의 의미가 이어지기 때문이다(L.L.Walker). 하나님은 남은 자들로 인해서 즐거워 하시며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안식하실 것이다.

성 경: [습3:18]

(주);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 '대회'(모에드)는 '초막절'만을 가리키기보다는(Lange) 예루살렘에 모여서 참예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가리킨다(J.Lewis, L.L.Walker). 그러나 이방 열국에 흩어졌던 남은 자들은 절기가 되어도 사실상 그 축제에 참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근심하며 안타까워하였다(Von Orelli).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 도구인 이방 열국의 침략을 당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수치와 경멸을 당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당하게 된 그 경멸과 수치는 남은 자들에게 무거운 짐과 애통거리가 되었다.

성 경: [습3:19]

(주); 그 때에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 곧 남은 자들을 구원하는 때이다.

(주);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 '너를 괴롭게 하는 자'는 15절의 '원수'와 동일한 표현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든 이방 열국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사 60:14).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 본 구절은 구원을 얻은 남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저는자', '쫓겨난 자', 그리고 '수욕받는 자'이다. 이것은 12절의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원받아 남은 자들은 철저한 고난을 통해서 겸손하여진 자들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들, 다시 말해서 '저는 것', '쫓겨나는 것', 그리고 '수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처참한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칭찬과 명예, 그리고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성 경: [습3:20]

본절은 앞서 18,19절에 언급된 약속들의 반복이다.

(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 '이끌고'와 '모을지라'는 이방 열국에서 조국 이스라엘이 당한 치욕을 애통해 하며 절기 축제에 참예하지 못함으로 안타까워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이끄심과 모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돌아오게 됨을 시사한다.

(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 '너희 자로잡힘을 돌이킬 때에'는 2:7의 반복이다. 이것은 남은 자들이 이방 열국의 포로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됨을 뜻한다. 그 역사는 '너희 목전에서', 곧 머지않은 미래에 유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취될 것이다(Smith). 또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는 포로 생활 동안에 당한 수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칭찬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은 이제까지 언급된 남은 자들에 대한 회복의 약속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남은 자들의 회복과 구원, 그리고 영광된 모습으로의 변화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Keil, L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