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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스가랴

스가랴서 주석

성 경: [슥1:1]

(주); 다리오 왕 이 년 팔 월에 - '다리오 왕 이 년 팔 월'은 B.C.520년 10-11월에 해당된다. 학 1:1에 따르면, 학개 역시 그의 예언 사역을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첫날, 곧 B.C.520년 8월 29일에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이 두 선지자들의 사역은 공통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독려하여 성전 재건을 돕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가랴는 영적 갱신에 보다 실질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2-6절). 한편 바벨론에 붙잡혀 갔던 포로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할 즈음에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학개의 경우와 같이 스가랴도 유다의 군주이며 페르샤 왕인 다리오 통치년도로써 연대를 기록하였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 '선지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비'는 '하나님에 의해 대변인으로 부르심을 받는 자'를 의미하는데, 스가랴가 자신을 특별히 선지자로서 묘사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받았음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스가랴는 또한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로 규정되어 있다. 스가랴 가문의 이 세 사람의 이름의 뜻은 '주께서 기억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며', '적절한 시기에' 등인데, 이를 다시 정리하면, '주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기억하사 적절한 시기에 축복하실 것이다'라는 말이 된다. 이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잇도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제사장 중 한 명이다(느 12:4,16). 스가랴는 포로 중에 태어났으며, 이스라엘로 귀환할 당시에는 상당히 어렸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는 제사장이었다(K.L.Baker).

성 경: [슥1:2]

(주);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 스가랴는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죄를 처벌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시작한다. 언약의 하나님은 포로이전의 조상들의 언약 파기에 대해 보응하셨다. 과거에 대한 이런 지적은 아마 청중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선지자는 여태까지 살았던 포로 생활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직접적인 결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함으로써 백성들의 경각심을 촉구하였다. 한편 '열조'란 말의 문자적 번역은 '아버지들'인데, 셈계 언어에서 아버지는 '할아버지'나 '선조'를 뜻하기도 한다(Baldwin).

성 경: [슥1:3]

(주); 그러므로...돌아오라...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여호와의 진노에 이어서 은혜가 언급된다. 선지자는 여기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을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조건들 중에 하나였다. 본절에는 경험할 수 있는 조건들 중에 하나였다. 본절에는 이런 회개의 촉구가 세 번의 만군의 여호와의 권위있는 선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스가랴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만군의 여호와'는 역사의 주권자로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주관하사 자신의 뜻을 성취시키신다. 자기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은 간략히 말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그러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것이었다(말 3:7). 당시 사람들이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면, 여호와께서는 저주 대신에 축복을 가져다주신다는 것이다(K.L.Baker).

성 경: [슥1:4]

(주);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아니하였느니라 - '열조'는 포로기이전 사람들을 말하고 있으며, '선지자들'은 이사야, 하박국, 예레미야 등과 같은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로서, 바벨론 침략의 위협을 경고했던 자들이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선지자의 말은 어느 특정 선지자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잘못을 경고하였던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의 일반적인 메시지의 내용이다(렘 35:15). '악한 길. 악한 행실'이란 말은 포로기 이전 열조들의 사악한 행위를 강조하기 위한 비슷한 단어의 중복 표기이다.

성 경: [슥1:5]

5,6절은 재앙의 성격에 의해 분명히 언급한다.

(주);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 이 수사적 의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재앙을 당했던 선조들과 그들에게 재앙을 경고했던 선지자들은 모두 이미 죽고 없다는 것이다. 이들 선지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K.L.Baker).

성 경: [슥1:6]

(주);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전례들이...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 본절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미 사라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사 40:6-8). '전례'라고 하는 것은 율법의 특별 규정 조항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율법을 어겼을 경우 그에 따르는 위협과 저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성령이 선지자들을 감동시킨 이상(벧후 1:21), 설사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한편 선지자들을 '종'으로 지칭한 것은 그들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영예로운 칭호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요, 전세계의 주권자이신 여호와를 섬기는 귀한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직무를 맡는다는 것은 높이 들림받은 것이지, 결코 천해지는 것이 아니다(K.L.Baker). 한편,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은 민족의 멸망을 뜻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민족 지도자들이 모두 제거되었고 또 국가 제도도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겔 37:11). 이것은 신 28:15,45에 언급되고 있는 저주의 경고가 직접적으로 성취된 사건으로 본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행하셨도다'란 말이 그곳에도 그대로 쓰였다(사 55:10,11; 렘 1:12). 이런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도 있었다. 즉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배척 등으로 인해서 그들은 파괴되고 흩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저주 조항뿐만 아니라 신 28:2에 언급되어 있는 축복 조항도 이루어질 것이다(Baldwin). 아무튼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말씀의 취지는 분명하다. 즉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미 죽고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이다(K.L.Baker).

성 경: [슥1:7]

(주); 다리오 왕 이 년 십일 월 곧 스밧월 이십사 일에...말씀이 임하여 - 여기서부터는 하나님께서 밤중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환상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모두 8개의 환상으로, 이곳에서 17절까지는 그 첫 번째 환상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계획을 보여주셨다. 한편, 이들 8개의 환상들의 주요 항목들을 짚어보면 다음과같다. 우선 서론적 말씀이 나오고, 그런 다음 스가랴가 본 환상이 묘사된다. 그리고 선지자가 이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장면이 등장하고 천사의 설명이 뒤따른다. 또한 이 환상들 중 네 가지에는 신탁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으며(1:14-17; 2:6-13; 4:6-10; 6:9-15). 보다 상세한 메시지가 소개된다(Baldwin). 한편, 본절에는 다시 다리오 왕 이 년 이라는 연대가 언급하고 있는데, 이 '다리오 왕이 년 십일 월'은 B.C.519년 2월 15일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앞서 언급된(1:1) 회개의 촉구가 있은 지 약 석 달이 지난 때였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스밧월 이십사 일에서부터 정확히 다섯 달 전 이십사 일에는 성전 재건이 재개되었다(학 1:14,15; 2:10). 아마 이날은 자기 백성이 순종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셨던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본절 하반절은 1b절과 동일하다(Lange).

성 경: [슥1:8]

(주);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백마가 있기로 - 본절에서 17절까지 시작되는 첫 번째 환상의 근본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비록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이 백성을 위해 '열심을'내고 계시다는 것이며, 곧 그들과 그들의 성읍들, 그리고 성전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이 환상은 11월24일 밤 동안에 주어진 것이다. '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NIV영역 성경에는 '환상을 가지다'(I had a vision)로 번역되었는데, 바른 번역이다. 이 동사는 민 12:6; 사 30:10; 합 1:3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 이 동사는 근거하여 선지자를 가리키는 또 다른 명사, 곧 '보는 자'(선견자, seer)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Baldwin). 한편 이 환상에는 한 사람이 홍마를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11절을 보면, 이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천사)인 것으로 확인되어진다. 계 6:4에도 붉은 말이 나타나고 있는데, 거기서 그 붉은 말은 전쟁과 죽음의 도구인 칼과 관련되어 있다. 아마 여기서는 색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사 63:1-6). 또한 '화석류나무'는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도금양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느 8:15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항상 푸른 잎을 가진 나무로서 수전절과 관련되며, 그 절기의 자은 오두막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메시야 왕국에서의 축복을 묘사하고 있는 사 41:19과 55:13에도 이것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이 나무는미래의 희망과 약속을 암시하는 듯하며, 바벨론 포로에서의 회복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말탄 사람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었는데, 아마 그 말들 위에도 기사가 타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거느린 천사들의 무리인 것 같다. 한편, 백마는 보복과 승리와 관련되어 있다(계 19:11,14, K.L.Baker).

성 경: [슥1:9]

(주);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내가 네게 보이리라 - 스가랴는 매우 공손하고 경외하는 말('내 주여')로 이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해석하는 천사가 자신이 그 뜻을 설명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내용은 13,14,19절; 4:1; 5:10; 6:4 등에도 나타난다.

성 경: [슥1:10]

(주); 이는 여호와께서...보내신 자들이니라 - 스가랴의 질문에 대해 천사가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그 대답은 다른 말탄 사람들이란 땅 곳곳을 살피라는 명령을 받고 여호와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페르시아 군주들은 날쌔로 용맹스러운 사자들을 제국 곳곳에 보내어 국사를 알리게 했는데, 아마 본절의 내용은 여호와께서도 그와 같이 이들 사자들을 땅 곳곳에 보내사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 같다(Baldwin).

성 경: [슥1:11]

(주); 그들이...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 본절에서는 8절의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기사가 '여호와의 사자'란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여기서 그는 여호와의 군대, 곧 다른 말탄 사람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종종 여호와 자신과 동일시되어 나타난다(3:1,2; 창 16:11,13; 18:1,2,13,17; 22:11,12; 출 3;2; 수 5:13; 삿 2:1-5; 6:11,12; 겔 43:6,7). 다른 말탄 사람들은 그에게 전세계가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이는 세상이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제국은 외적으로 평안하였고, 침략의 위협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은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고, 인근 민족의 모욕과 침략을 받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W.S.Lewis).

성 경: [슥1:12]

(주);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언제까지...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 여호와의 사자는 유다 백성을 위해 간청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앞서 보고했던 말탄 자들은 열방중에 평온과 정온이 있다고 보고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실망시켰을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시온에 대한 축복과 은혜가 임할 징조의 하나로서, '열방 중에 혼란'이 있다는 말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가 간구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우리의 중재자이시며 대제사장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연상시킨다(요 17장).

성 경: [슥1:13]

(주);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 12절에서 중재했던 자가 여호와의 사자였긴 하지만, 여호와의 대답은 해석하는 천사에게 곧바로 주어졌으며, 그를 통하여 스가랴에게 전달되었다(Hengstenberg). 여호와는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였다(사 40:1,2). 이러한 말씀은 이후 14-17절에서 계속된다.

성 경: [슥1:14]

(주);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크게 질투하며 - 본절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질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가지신 여호와의 언약 개념에 근거한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Baldwin).

성 경: [슥1:15]

(주);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고난을 더하였음이라 - 여기서 스가랴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해친 열국에 대한 진노를 선포함으로써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위로한다. 하나님께서 열국에 대해 진노하시는 까닭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임을 망각하고 자만하여 난폭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사 10:5-7,12).

성 경: [슥1:16]

(주); 그러므로...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 본절은 13절에서 언급된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을 보다 긍정적이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문두에 나오는 '그러므로'란 어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질투하기까지 분노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다음에 언급되는 약속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12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사자'의 중보에 대한 응답으로서, 예루살렘에 대한 자신의 자비를 다시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다(겔 43:1-5; 48:35). 한편 '내 집' 곧 성전이 재건되리라고 하는 것은 신적 자비가 주어질 것임을 뜻하는 표현이다. 구약의 몇몇 성구들을 비교해보면, 성전 건축이 완성되어 봉헌된 때는 B.C.516년(스 6:15,16)인 것으로 보이며, 이런 성전 건축의 완성은 본절과 다음절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는 초기 국면이었다(사 2:2,3; 렘 31:38-40; 겔 40-42장; 행 15:14-18, Helpran).

성 경: [슥1:17]

(주); 여호와의 말씀에...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 본절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번영을 예고함으로써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대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위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1)쇠퇴해 있고 짓밟혀져 있던 이스라엘 중에 여호와의 사자가 임재함. (2)이스라엘을 위한 진지하고도 애정이 깃든 중보, (3)미래의 축복에 대한 약속등이다. 한편 첫 번째 환상은 전체 환상들의 제목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나머지 환상들은 이 환상에 대한 세부적 사정을 제시한다(Feinberg).

성 경: [슥1:18,19]

본절에서 21절까지는 두 번째 환상으로, 네 뿔과 네 명의 공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환상과 다음에 이어지는 세번째 환상은 13절과 17절에 약속된 안위를 근거로 제시된다. 특별히 두 번째 환상에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열방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심으로 이 약속이 실현될 것을 말하고 있고, 세 번째 환상(2:1-13)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던 번영을 보증함으로써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주); 내가...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 이곳의 네 뿔은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그 백성들을 다 흩어버렸던 열방들을 뜻한다. 탈굼역은 이 네 뿔을 '네 나라'로 번역하였고, 어떤 학자는 이를 다니엘 2장과 7장에 언급되고 있는 세계의 네 제국, 곧 바벨론, 메대바사, 그리스, 로마, 혹은 앗수르, 애굽, 바벨론, 메대-바사등으로 보기도 한다(K.L.Baker, Feinberg). 그러나 네 뿔을 특정한 나라와 연관시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슥1:20]

(주);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 이들 공장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네 뿔이 단 2장과 7장의 네 제국을 상징한다고 보는 자들의 견해로서, 이들 장인들 역시 이들 네 제국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2)이들 장인들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들을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백성들로서, 애굽,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등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2)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지만, 구체적인 나라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들이 궁극적으로는 패배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Charles Ryyie, K.L. Baker).

성 경: [슥1:21]

(주); 스가랴의 질문과 천사의 대답이 이루어진다. 유다를 헤쳐서 - 70인역은 '그리고 이스라엘을 산산조각 내버린'이라는 말을 첨가했다.

(주);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 -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열국들이 모두 하나님이 일으킨 세력에 의해 멸망당함을 의미한다. 이는 바사에 의해 열강이 정복당함으로써 성취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성 경: [슥2:1]

(주); 또...본즉 한 사람이 척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 본절에서 13절까지는 세 번째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 환상에 약속되고 있는 축복과 회복의 범위는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넘어서 메시야 시대에까지 확장된다. 두 번째 환상이 대적들의 파멸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 이 환상은 그로 인한 예루살렘의 번영과 성장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환상이 그 당대의 적들을 멸망시킴으로써 그 당시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말하고 있다면, 이 환상은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환상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가랴와 척량사, 그리고 해석하는 천사, 그리고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천사이다. 어떤 이들은 이 척량사를 '여호와의 사자'로 해석하기도 한다(Perowne). 그리고 '척량줄'은 예루살렘의 회복과 성전 재건,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시대를 준비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성 경: [슥2:2]

(주);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 여기서 스가랴는 그 척량사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고 있다. 이에 대해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을 척량하러 간다는 그의 대답은 그 경계를 재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분명히 이 도시를 회복시키고 또 약속된 축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취할 조치였을 것이다(겔 40:5; 계 11:1).

성 경: [슥2:3]

(주);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 스가랴에게 친절하게 답해주었던 그 천사가 떠나려고 했을 때, 다른 천사가 나타나 그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다른 천사는 스가랴에게 4-13절에 언급되고 있는 메시지의 뜻을 알려준다.

성 경: [슥2:4]

(주); 사람과 육축이...같으리라 -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질 정도로 도시가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은 성벽이 없는 주변 촌락에서 살게 될 것이다(겔 38:11). 그러나 역사상 아직 이런 축복이 실현된 바 없기 때문에(느 7:4; 11:1-2)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교회나 새 예루살렘, 곧 천국의 예루살렘으로 확대 적용시키기도 한다(K.L.Baker, Feinberg).

성 경: [슥2:5]

(주);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영광이 되리라 - 예루살렘의 번영으로 사람들이 성외곽 지대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임을 설명한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내가'가 강조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NIV 영역 성경은 이를 살려서 'I myself'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불성곽'이란 말은 출애굽 당시의 '불 기둥'을 연상시키는데(출 13:21). '불 성곽'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모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상징하고 있다. 출애굽기에도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불'과 '영광'이 자주 등장한다(출 13:22; 14:20; 40:34, K.L.Baker).

성 경: [슥2:6,7]

(주); 도망할지니라...피할지니라 - 아직 바벨론에 많은 유다인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사가 그들의 귀환을 촉구한다. 그 이유는 (1)바벨론에 임할 심판과 (2)예루살렘에 임할 축복때문이다(T.V.Moore).

성 경: [슥2:8]

(주);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 본절은 해석하기 난해한 구절 중에 하나로서 여러 가지 번역과 사본들이 존재하고 있다.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란 어구는 '강권적으로 나를 보내셨다'로도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가 나를 보내셨다'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의 '나'를 스가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 곧 메시야 시대의 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Baldwin, Feinberg). 그렇다면, 본절의 화자는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여호와의 사자이며, 메시야 자신과 동일시된다. 아무튼 이 사람의 임무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한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상하게 한 것과 같기 때문에 유다인들을 학대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반역인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눈동자는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소중히 여기며(신 32:10) 질투하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수 24:19; 시 17:8; 마 25:34-45; 행 9:1,4,5).

성 경: [슥2:9]

(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대적들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그의 손을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움직이다'란 말은 '손을 들어올리다' 또는 '흔들다'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앞절과 본절의 화자가 신성을 가진 인물, 곧 메시야나 여호와의 사자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내 손'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 곧 신적 전능을 나타낸다. 그 능력의 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해서 대적을 파멸시킬 것이다.

성 경: [슥2:10]

(주);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 위대한 구약의 언약, 특히 세계 만방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리라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될 날이 이르게 될 것임을 말한다. 이 예언은 성육신으로 이루어졌고, 재림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T.V.Moore).

성 경: [슥2:11]

(주); 그 날에 많은 나라가...내 백성이 될 것이요 - 위대한 메시야 시대에는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이 내용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8:20-23; 창 12:3; 18:18; 22:18; 사 2:2-4; 60:3)는 아브라함과의 언약과 관계가 있다. 그들이 복을 얻은 결과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 날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날'이란 말은 '여호와의 날'을 축약시킨 표현으로서, 역사적 또는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Baldwin).

성 경: [슥2:12]

(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상속물로 취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왕인 여호와는 그의 거룩한 영광을 나타내고 선포하는 거룩한 백성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출 19:6; 레 11:44,45; 19:2; 시 24:3-10; 29:1,2; 96:9; 벧전 1:15,16; 계 14:8, K.L.Barker).

(주); 거룩한 땅 -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이다(K.L.Barker). 문자적으로 가나안 땅을 의미하지만, 상징적으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여호와의 주권이 마치는 땅 전체를 의미한다(출 3:5; 호 9:3).

성 경: [슥2:13]

(주);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 수많은 성도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행위를 하심을 보여준다(시 44:23; 사 51:9). 한편 여기서 '성소'가 스룹바벨 성전과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거처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슥3:1]

본장에서는 사탄이 여호수아를 고소하고 이에 대해 여호와의 사자가 변호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메시야 사건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주어진 복을 언급한다.

(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 '여호수아'는 당시에 대제사장직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보이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앞에 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메드'는 분사형으로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1)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신 10:8; 대하 29:11; 겔 44:15). (2) 재판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민 35:12; 신 19:17; 수 20:6; 왕상 3:16).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호와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여호수아가 사탄의 참소로 하나님 앞에서 그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제사장직이 공적이듯이, 그는 개인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공적인 위치로 여호와 앞에 섰다(1,2,5,8,9절). 한편, '사단'은 욥 1,2장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 욥의 신앙은 참신앙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바뀌는 일시적인 신앙이라고 참소하였다. 사탄은 모든 성도들을 대적하고(벧전 5:8) 참소하는 일(계 12:10)을 계속한다.

성 경: [슥3:2]

(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 사탄의 최후는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며(마 25:41), 마지막 때에 하늘에서 떨어져(눅 10:18) 무저갱에 들어가고야 마는 것이다(계 12:9; 20:3).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표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암 4:11). 이는 여호와의 구원이 가진 성격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다. '불'은 바벨론 포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이스라엘은 그 불로부터 불타는 막대기로 취급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애굽에서의 구원을 아울러 회고하게 하며(신 4:20; 7:7,8; 렘 11:4). 장차 올 환난의 때에 있을 구속을 예상하게 하기도 한다(13:8,9; 렘 30:7; 계 12:13-17).

성 경: [슥3:3]

(주);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 '더러운 옷'은 수치와 비난거리가 되는 것으로 심각한 죄의 상태를 나타내며(사 64:6). 이런 옷을 걸친 여호수아의모습은 당시에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더러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초임'은 가장 간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의 더러움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Feinberg). 사탄은 바로 정결하지 못한 성도의 상태를 문제삼는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바로 은혜로 말미암은 메사야적 사역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 경: [슥3:4]

(주); 여호와께서...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 '더러운 옷을 벗긴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죄악으로 인해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K.L.Baker). 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죄로 인해 직분이 박탈되고, 죄책에 시달린다고 해도 여호와의 선언은 죄과를 제하여 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수아의 죄를 깨끗이 하겠다는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며(계 7:14), 우리의 옛 사람을 벗기고 새 사람을 입히시는 것과 같다(롬 6:6; 엡 4:2; 골 3:9).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고(사 6:7) 구원과 의로 옷입히실 것이다(사 61:10; 눅 15:22; 계 19:8). 이런 일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성 경: [슥3:5]

본절은 죄과가 없어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운 성도들이 그에 합당한 지위를 제공받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로 성도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의로운 모습이 나타나 성결되고 구별된 삶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성 경: [슥3:6,7]

(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 여기서는 속죄로 인한 결과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것이다. 속죄로 인해 새로운 자격을 얻게 된 여호수아는 그 자격과 지위에 걸맞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하나님은 은혜로 성도들을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결륜을 알리시고 율법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 법도와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삶의 최고 가치이다. 그 조건은 두 가지인데, (1) '내 도를 준행하며'라는 것으로 여호와께 대한 개인 생활 및 자세를 가리킨다. 즉, 개인으로 실제적인 의가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살전 4:1; 딤전 4:16). (2) '내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것은 신적 수임인 제사장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기 때문에(호 14:9) 선한 생활과 거룩한 삶을 요구하며(신 8:6; 10:12; 시 128:1). '율례'는 모세의 법을 따라 맡은 직무에 충실히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한다(레 8:35; 대하 6:16; 겔 44:15,16). 이러한 조건을 지키면 얻게 될 상급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성 경: [슥3:8]

(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순을 나게 하리라 - '예표의 사람'은 바로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 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의 직분이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결국 구약의 제사장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메시야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가리키는 '종'(사 42:1; 49:3; 50:10; 겔 34:23)과 '순'(荀)(렘 23:5)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종'이라는 표현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행하여 완전한 속량을 이루실 것을 잘 나타내며, '순'은 다윗의 계보에서 나올 새로운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적 특성을 시사한다(6:12; 사 11:1; 42:1).

성 경: [슥3:9]

(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 이 돌은 일차적으로 성전 건축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으로 필요한 기초석이나 모퉁잇돌을 의미한다(스 3:9-11; 시 118:22,23; 마 21:42; 행 4:11). 이는 문맥상 메시야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Bullinger). 이와 함께 일곱 눈의 모습은 보다 완전한 메시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수로 여호와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모습이며(4:10; 계 5:6), 하나님의 무한한 지성과 전지성을 상징한다(사 11;2; 골 2:3,9; 계 5:6). 이는 성전 재건 사업이라는 역사적인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죄악의 요구를 단번에 만족시키시는 사역을 가리킨다(히 7:27; 10:10).

성 경: [슥3:10]

8,9절에 열거된 메시야적 행동에 대한 결과로 주어지는 소망스러운 약속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공되는 평강과 안정이다.

(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큰 은혜를 받은 상태를 말한다(K.L.Baker).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백성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성도들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롬 5:1; 고후 5:18).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 평강을 얻게 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며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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