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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나훔

나훔서 주석

성 경: [나1:1]

(주);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 '중한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는 '목소리를 높이다'(사 3:7;42:11)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언자의 신탁을 소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었다(합 1:1; 슥 9:1;12:1; 말 1:1). 여기서는 나훔의 글이 하나님의 의뢰를 받아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미한다(C.E.Armerding). 나훔 선지자는 본절에 나타난 대로 엘고스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같은 이름이 눅 3:25에 한 번 나올 뿐이다. 아랍 전승에 의하면, 엘고스는 오늘날 이라크의 모술(Mosul) 가까이에 있는 알 코스(Al Qosh)골짜기를 지칭한다. 그러나 제롬(Jerome)이나 유세비우스(Eusebius)와 같은 고대의 학자들은 나훔 선지자의 고향을 갈릴리의 어느 곳으로 추측했는데,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C.E.Armerding).

성 경: [나1:2]

(주);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 형용사 '투기하시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칸노'는 수 23:16과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일반적으로는 '칸나'가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이 처음으로 사용하셨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쓰인다(출 20:5;34:14). 이는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 관계를 전제하며, 이스라엘에게 불신앙이나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로 하나님의 질투의 속성이 나타난다(민 25:11; 히 10:27).

(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 '보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켐'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 단어는 법과 도덕을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시행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어느 개인을 대상으로 원수를 갚는다는 뉘앙스를 갖지 않고, 대개의 경우 어느 집단이나 백성을 향한 심판을 가리키며, 구약 성경의 용법은 언약을 배경으로 한다(Mendenhall).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니느웨를 멸망시킨다는 의미이다(13절;2:1).

성 경: [나1:3]

(주);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적 내용으로 시내 산 사건과 특별한 연관이 있다(출 34:6; 민 14:18; 느 9:17; 시 86:15; 103:8; 145:8; 147:5). 또한 여기에서는 본서 전체에 나오는 니느웨를 향한 선포예언의 기초가 된다(욜 2:13; 욘 4:2).

(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밭의 티끌이로다- 이 부분은 시의 형태상, 두번째 행으로 히브리어 알파벱 '베트'로 시작된다.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현현과 함께 대개 회리바람이나 광풍, 구름등이 동반되어(출 19:16; 욥 38:1; 시 18:10-15; 사 28:2; 29:6; 66:15; 렘 23:19; 슥 7:145; 9:14) 하나님의 엄위로우심과 영광을 나타낸다.

성 경: [나1:4,5,6]

본 단락에서는 여호와가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분이며,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위에 영원한 통치를 베푸시는 분임을 신앙고백적으로 노래한다. 이에 근거하여 주고자하는 메시지는 모든 거민들은 여호와께 복종하게 되고야 말리라는 사실이다. 즉, 이방 나라인 앗수르도 종국에는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심판이 시행될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이에 대한 정당성을 피력한다.

성 경: [나1:7]

앞 구절에서 진노의 하나님을 말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선하신 하나님을 묘사하여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는 심판으로 멸망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에게는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주); 여호와는 선하시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 아도나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1)부사로 해석되어 '야훼는...질...'(공동번역), '주는 확실한...'(NEB)등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2)'토브'가 '아도나이'와 함께 완전한 주술 구조를 갖고 있는 점에서 개역 성경의 번역을 지지하는 견해 이다. 이 가운데 후자의 견해가 바람직한데, 그 이유는 본절의 내용이 앞뒤 구절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속성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야훼는 선하시다'(Yahweh is good, JB), '주는 선하시다'(The Lord is good,RSV,NASB)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 경: [나1:8]

다시 한번 앞 구절과 상반되는 여호와의 속성을 제시하여 극명하게 대조적인 속성을 제시한다.

(주);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 '그곳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코마'를 70인역에서는 '베카마이브', 즉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로 번역하였고, 어떤 학자는 '반대자'의 의미로 본다(J.Barr.Driver). 이런 견해를 따른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진멸한다는 일반적인 해석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메코마'를 지시대명사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비록 '그곳'이 어디인지 문맥상으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마도 '앗수르의 신전'이라든가 5절에 나오는 '세계'를 가리킬 것으로 보인다. 혹은, 나훔 선지자가 선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니느웨나 그들이 섬기는 여신 이쉬타르(Ishtar)를 가리킬 수도 있다(J.D.W. Watts).

성 경: [나1:9]

(주);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 본절에 들어서면서, 나훔은 갑자기 주제를 바꾸어 니느웨에 닥칠 심판을 예언한다. 하지만, 앞에서(8절)사용했던 '진멸하시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라'를 본절에도 반복함으로써 앞 구절과 연계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또한 그 표현이 강조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재난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앗수르에게 임할 심판이 확실할 것임을 말한다.

성 경: [나1:10]

다가올 재앙 상태에 대해 세 가지 모습으로 비유한다.

(주); 가시덤불같이...마른 지푸라기같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구문론적으로 자음들을 반복하는 두운법(頭韻法)을 현저하게 사용한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키 아드시림 세부킴, 우케사브암 세부임'으로 많은 유사음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전 7:5,6). 이처럼 시적인 효과를 살려 앗수르인들은 무가치하고 종국에는 진멸되고야 말리라는 운명을 예고한다. 또한, 그들을 가시덤불, 마른 지푸라기로 비유하여(사 33:11,12) 여호와의 절대적인 주권성과 아울러 필연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즉 니느웨백성들의 죄악이 가시덤불처럼 깊숙히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얽혀져 있고 지푸라기처럼 쓸모없게 되어 임박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성 경: [나1:11]

(주);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 3:18에 의하면, '앗수르의 왕'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역사적으로 라기스(Lachish)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사 36,37장)으로 추정된다(D.Guthrie).

(주); 사특한 것을 권하노라 - '사특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벧리야알'은 '무가치한 존재'라는 의미로 도덕적인 기질과 원리를 완전히 상실한 것을 말한다(신 13:13;삿 19:22). 어떤 학자들은 이 용어가 '사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여진 것으로 여긴다(R.L.Smith,E.B.Pusey). 본절에서는 앗수르의 통치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현시된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성 경: [나1:12]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아도나이'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그가 없어지리라 - 이는 유다를 위해 베풀어진 포고령으로 앗수르에게는 심판의 선고이며, 14절의 심판과 연결된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 사라지고야 말 거라는 말이다.

(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따르는 징계가 있어왔다. 그렇지만, 유다에게 '다시는 괴롭게 하지 않겠다'는 소망적인 말씀이 주어진다. '다시는...하지 아니할 것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오드'는 사 51:22-52:1에서 특징적으로 묘사되는 상황의 반전과 압박으로부터 자유케 되리라는 약속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사야서의 앞부분에 여러 차례 나타나는(사 5:25; 9:12,17,21) '여전히'(오드)라는 위협조의 반복어를 통해 잘 나타난다.

성 경: [나1:13]

(주); 이제...결박을 끊으리라 - 유다는 많고도 강한 원수들로부터 억압을 받아왔지만, 여호와는 앗수르의 억압을 끝장내고 유다의 멍에를 풀어주리라고 확신시키신다. 앗수르의 억압을 받던 유다는 비록 자체적으로 왕과 성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 유다는 100년이 넘도록 앗수르의 정치적 간섭을 받으며, 그들의 신을 섬겨야 했다. 유다가 독립을 주장하긴 했지만, 그들의 침략을 받고 항복하고 말았다. 니느웨는 포로들을 마치 사자가 그 먹이를 다루듯 하였고, 피의 성읍으로 묘사될 정도로 참혹하게 대했다(2:12;3:8).

성 경: [나1:14]

(주);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 본절은 니느웨와 유다에게 베풀어진 심판과 구원에 대한 여호와의 포고가 정식 선포령의 형태를 띠고 다시 소개된다. 9-11절에서는 2인칭 여성복수형을 사용하여 앗수르에게, 12,13절에서는 2인칭 여성 단수형을 사용하여 유다에게 전하였으나, 여기서 다시 남성형 어미 '카'를 사용하여 앗수르 왕에게 전하는 형태를 취한다. 또한,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언급하는 구절로(사 34:16;렘 47:7;겔37:10) 권위와 확신이 가득하다.

(주); 이름이 다시는...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 앗수르인들은 앗술, 나부, 말둑, 벧, 이쉬탈 등의 신을 잡다하게 섬겼으며 그 신전을 중심으로 모든 삶이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앗수르의 신들이 무능력하고 가치없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께서 니느웨 왕의 묘소를 선택하신다는 것은 니느웨 왕이 자신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는 달리, 실제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두각시킨다(R.L.Smith). '비루함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르타'는 '가볍다', '작다'라는 의미의 동사 '칼랄'의 단순완료 2인칭 남성 단수형으로 '타락한'(RSV), '변덕스러운'(NEB)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성 경: [나1:15]

히브리어 원문에는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2:1로 되어 있다. 본절은 메시지의 문학적 형태를 바꾸어(R.L.Smith) 원수가 멸망했다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는 사자(使者)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주); 볼지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네'는 구원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사 40:9).

(주);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바세르'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삼하 18:31;왕상 1:42;사 40:9), 간혹 나쁜 소식을 가지고 있는 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삼상 4:17) 여기서는 약탈자를 전멸시키겠다는 유다를 위한 좋은 소식의 사자를 가리킨다.

(주);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롬'은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을 담고 있는 말로, 이사야서와 맺고 있는 연관성(사 9:6,7; 32:17; 53:5; 54:10,13; 55:12; 57:19)을 가장 잘 나타내는 용어이다. 본절은 유다가 자유롭게 절기를 지킬 수 있고, 고난받을 동안에 서원한 것을 지킬 수 있게 되리라는 소망과 기쁨을 주는 내용이다.

성 경: [나2:1]

(주);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 '파괴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피츠'는 승리의 왕을 상징하는 것(시 68:1; 사 24:1; 렘 52:8)으로 문자적으로는 '흩는자'라는 의미이다. 이 예언은 바벧론의 나보폴리살(Nabopolasar, B.C.626-605)과 메대의 카카레스(Cyaxares, B.C.625-585)가 거느린 연합군이 니느웨를 침입함으로 성취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니느웨를 멸망시키기 위해 예비하신 심판의 도구들이었던 것이다(렘 51:20).

성 경: [나2:2]

본 구절은 1:15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R.L.Smith). 왜냐하면, 내용상 1절이 니느웨에 대한 전쟁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3절로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시되 이스라엘의 영광 같게 하시나니 - '회복하시되'의 히브리어 '솨브'는 '슈브'의 과거 단순 분사형이지만, 임박한 미래의 행동을 나타내는 예언적 과거형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지금 곧 야곱의 영광을 회복하려고 하신다'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R.L.Smith). 많은 번역본들이 이를 따라 미래형으로 번역하였다(KJV,NIV,RSV,JB). 또한,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의어로 전체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는 것이다(사 9:1-8, 10-16).

성 경: [나2:3,4]

(주);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빠르기 번개같도다 - 붉은색 군복을 입고, 번쩍이는 창을 들고, 병거를 타고 침입하는 바벧론과 메대 군사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나훔은 마치 그 군인들이 이미 유다의 성읍 거리와 광장에 와 있는 듯이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심판의 필연성을 나타내며(슥 6:2; 계 6:4), 병거의 달리는 모습이 매우 찬란하게 묘사되는 것은 그들의 무기와 전술이 뛰어난 사실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힘을 침입자들에게 주시리라는 암시이다. 게다가 적들의 공격은 광야의 전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병거로 이루어진다(수 17:16,18; 삿 1:19).

성 경: [나2:5]

(주); 그들이 엎드러질듯이 달려서...예비하도다 - 본절이 묘사하는 것이 누구인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혹자는 침략자를 묘사한다고 하고(NEB, Stonehouse, Wade, Taylor, Dalglish), 혹자는 그와 반대로 방어자를 묘사한다고 주장한다(S.R.Drive, A.B.Davidosn). 이처럼 모호하게 해석되는 이유는 '그들이 엎드러질듯이'의 히브리어 '이카쉘루'때문이다. 이 단어는 뭔가에 걸려서 넘어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급히 방어에 나선 앗수르 군대리 당황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일 수도 있고, 무거운 무기를 짊어지고 쳐들어오는 바벧론의 군대를 가리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막을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소케크'를 방어용 무기로 본다면 앗수르 군대가 방어 시설로 버티려고 애쓰는 동안 침입자는 이미 성벽 밖에 와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고, 공격용 무기로 본다면(Keil) 성벽을 점령하려고 달려드는 침략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반되는 두 견해 가운데 문맥에 비추어 본다면 후자의 것이 더욱 타당한 듯하다.

성 경: [나2:6]

(주);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 다섯 개의 히브리어 단어로 구성된 짤막한 본절은 주요 방어선이 붕괴되고 성의 중심부가 함락되는 모습을 묘사한다. 니느웨 성이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이었지만, 성벽은 홍수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그 사이에 바벧론의 공격군에게 함락될 것을 보여준다(D. Guthrie).

성 경: [나2:7]

(주); 정명대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후차브''에 대해, 혹자는 고유명사로 보고 당시의 왕후 아니면 여신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훗자브(Huzzab)로 번역하기도 하고(KJV,JB,Kimch, Rashi), 혹은 문법적인 의미를 따라 '확정되었다'(it is fixed, it is decreed)는 의미로 번역하기도 한다(개역 성경, NASB,NIV,BDB). 앞뒤 문맥에 비추어본다면, 이 가운데 후자의 해석이 더욱 바람직하다.

(주);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슬피 우는도다 - 개역 성경에서 번역된 '왕후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원문에 없고 의역이다. 다만, '벌거벗은 몸으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굴레타'가 여성 3인칭으로 '그녀가 벌거벗겨졌다'라는 의미이므로 이런 유추적인 해석이 나온 듯하다. 여기서 여성 3인칭 주어는 니느웨의 여왕이나 여신(사랑과 전쟁의 여신인 이쉬타르)을 가리킬 수 있다. 또는 니느웨의 성읍(the city) 자체를 가리킬 수도 있다(NIV). 어쨌든 이런 표현은 앗수르 백성이 처절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충분히 연상시켜 준다. 이런 표현은 앞에서(6절) 기록된 결정적인 타격으로 인해 발생된 앗수르의 상황을 약술하는 것으로 고대 근동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성 경: [나2:8]

저자는 물의 이미지를 살려서 생생하게 니느웨의 운명을 풍자한다.

(주);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 니느웨는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였을 것이고, 그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성 주위를 둘러싼 물로 인해 어떠한 외세의 침입에도 끄덕없이 유지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Calvin). 또한 '못에 모인 물'은 니느웨의 인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인구는 고대 사회에서 힘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본절은 앗수르의 상황이 어렵게 되자, 썰물 때 물이 재빨리 빠져 나가듯이 니느웨 군사들은 자신의 수비 지역을 사수하라는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나버릴 모습을 묘사한다(C.E.Armerding).

성 경: [나2:9]

(주); 은을 노략하라 금을 늑탈하라 - 앗수르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많은 재물을 빼앗기는 모습이다. 사실 앗수르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은 물질로 적지 않은 풍요를 누렸다. 앗수르는 초대 왕 디글랏 빌레셀의 치세때(B.C.1115-1076)부터 전쟁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자랑했고, 앗수르에 복속되었던 나라들은 조공 제도로 그들의 자원을 상당히 수탈당했다. 그러나 본절은 그러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앗수르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모든 재물을 노략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같은 예언은 바벧론 연대기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이 성취되었다. "그들은 성과 신전 지역에서 많은 물건들을 가져갔다"(Gailey).

성 경: [나2:10]

(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부카 우메부타 우메불라카'는 히브리적인 리듬과 두운(頭韻)을 잘 활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받게 한다. 이것을 직역하면 '텅비고, 또 공허하고 황폐하였다'고 할 수 있고, 세 히브리어 모두 비슷한 말로 앗수르의 황량한 상태를 매우 강조한다.

(주); 거민이 낙담하여...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 '거민이 낙담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브 나메스'는 직역하면 '마음이 녹아내린다'(hearts are melting)는 의미로 개역 성경에서 번역된 '거민'은 의역이다. 이와같이 육체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히브리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이고도 두드러진 특징이다(C.E.Armerding).

성 경: [나2:11]

(주);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 조롱하는 듯한 수사 의문문은 앞에서 전개된 니느웨의 멸망모습을 보다 풍성한 은유적 표현으로 소개된다. 니느웨의 위용을 비유하는 '사자'는 멸망을 가져다 주는 세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표현으로 앗수르가 유다를 향해 여호와의 심판을 실행하는 중개자로 언급될 때 사용되기고 하였다(사 5:29,30; 렘 50:17). 그렇지만, 본절에서는 앗수르가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 예언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사자와 같은 잔혹성 때문이었다(사 10:5-19). 이런 의도는 다음 절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C.E.Armerding).

성 경: [나2:12]

(주);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찢은 것으로 그 구멍에 채웠었도다 - 앗수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잔인성을 사자의 생태에 빗대어 묘사한다. '찢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레프'는 분사형으로, 이런 표현은 악한 짐승의 속성을 나타내거나(창 37:33;44:28), 분노가운데 찢는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욥 18:4) 사용되었다. 본절은 앗수르가 자기들의 잔인함을 따라 심각한 보응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성 경: [나2:13]

히브리어 원문에는 '나를 보라'로 변역할 수 있는 '히네니'가 있어서, 본절이 주위를 환기시키는 표현으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반복하여 정리해주는 형태를 취하면서, 본절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선포라고 소개한다.

(주); 내가 네 대적이 되어...연기가 되게 하고 - 이런 표현은 니느웨의 멸망이 단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어서 그들의 죄악을 증거로 삼아 심판을 시행하신다는 의미를 잘 나타낸다.

(주); 너의 젊은 사자들을...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 '젊은 사자들'은 11절에서 표현된 것을 함축적으로 반복하고, '노략한 것'의 히브리어 '타레페크'는 이와 동일한 어근을 가진 12절의 '취한 것'의 히브리어 '테레프'를 반복한다. 이것은 앞서 니느웽의 최후에 대해 비유한 내용을 최종적으로 정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본절의 표현들은 여호와를 대항하여 음모를 꾸몄던 앗수르의 산헤립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것으로(1:11; 사 37:9,24), 나훔서의 주요 작의(作意)와 용어들이다.

성 경: [나3:1]

(주); 화 있을진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이'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단락의 시작을 알려주지만, 여기서는 구문상 뒷 구절(4절)보다는 앞 구절(2:11-13)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다. 즉, 본절에서는 앞에서 사용된 용어들, '강포'의 히브리어 '페레크', '피'의 히브리어 '다밈', '늑탈'의 히브리어 '타레프'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게다가 '호이'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서론적인 기능이 본절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이 용어가 평범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면, 다음(2절)에 나오는 구절과 내용상 연관이 있어야 하겠지만, 어떠한 연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본절이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일단락 내리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좋다(사 1:4;5:8-23;렘 30:7;47:6). 이렇게 본다면, 2:3-3:1과 3:2-7이 보여주는 특이한 평행 구조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C.E.Armerding). 그 구조는 다음 도표와 같다. 즉, 둘 다 갑작스런 전투장면으로 시작되고, 죽음과 정죄받은 범죄 사실에 대한 '애곡'으로 마친다.

평행 구절 본문의 내용 2:3-3:1 3:2-7 2:3-5 3:2,3

파괴하는 자의 맹공격 2:6-10 3:3

헛된 방어 2:11,12 3:4

해석 2:13 3:5,6

여호와의 심판 3:1 3:7

선포되는 평결

이와같은 구성에서 본절의 역할은 형벌을 받게 된 '원인'(2:11-13)과 그에 대한 형벌(3-10절)을 연결시키면서 앞 구절(2:3-13) 전체를 요약하는 데에 있다.

성 경: [나3:2,3]

본 단락은 군사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돌격하면서도 내는 굉음,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모습을 연상시키고, 곧바로 그로 인한 참혹한 광경을 숨가쁘게 연결시킨다. 이로써 2:3-5의 전쟁 장면을 되풀이한다. 더욱이 '달리는 병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레카바 메라케다'는 '멤'과 '레쉬'로 시작되는 두운법을 사용하여 본문이 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한다.

성 경: [나3:4]

니느웨의 멸망 원인에 대해 언급한다.

(주); 이는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 '기생이 음행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제누네이 조나'와 '그 음행으로'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제누네이하'는 모두 같은 어근을 갖는 단어들로 본절의 중심적인 개념을 제공한다. '음행'에 대한 성격적인 개념은 다양하다. 즉, (1)행음(겔 23:5-21)은 물론이고, (2)반역과 불성실(삿 2:17;8:33,34). (3)더러움(레 20:3-5;렘 13:27)등을 뜻한다. 이상의 세 가지 의미는 개인의 유익을 위해 일말의 도덕성마저도 버렸던 니느웨 도성에 걸맞는 표현이다(C.E.Armerding). 또한, '미혹하느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모케레트'는 문자적으로 '팔았느니라'(sell,NASB)는 의미로 마치 아하스가 앗수르와 부정한 관계에 유혹되었듯이(왕하 16:7-18) 니느웨는 부정한 방법으로 모았던 국력을 낭비하고야 말았음을 시사한다(사 36:16,17), 즉, 니느웨가 망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거짓되고 부정한 방법으로 악한 힘을 발휘했다는 데 있다.

성 경: [나3:5,6]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 앞에서는 매춘부의 모습에 빗대어 앗수르의 멸망이 불가피했던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수치를 언급한다. 특히 2:13과 마찬가지로 '만국의 여호와의 말씀에'라는 말로 시작하여 예언의 성취가 앞의 예언들과 연계성을 가진다는 점과, 결정적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의 대적이 되시므로 그들이 자행했던 더럽고 추한 행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응분의 결과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성 경: [나3:7]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1절), 본절에서도 여호와의 판결에 대한 애곡으로 일단락을 마친다. 여기서 언급된 애곡은 비통함이 아닌, 멸절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타내는 놀라움이다. 1절에서는 니느웨 성이 멸망하게 될 가능성(2:13)때문에 애곡하였으나, 여기서는 멸망의 모습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주);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야누드 라'는 단수형으로 애곡할 사람이 단 한 사람조차 없다는 의미로 남은 자가 하나도 없이 완전히 진멸되리라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 니느웨는 완전히 사라졌고, 결코 재건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 고대사'에서 언급된 대로, '역사상 앗수르만큼 완벽하게 약탈과 노략을 당했던 나라는 없을 것이다'.

성 경: [나3:8]

(주);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 '노아몬'은 문자적으로 '아몬의 노', 즉, '아몬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 도시는 원래 '아몬의 신전이 있는 곳'을 가리켰고, '더베'(혹은, 테베)라고 불리기도 했다(렘 46:25;겔 30:14-16). 그 위치는 오늘날의 카이로에서 서쪽으로 650Km가량 떨어진 나일 강 상류 쪽에 있었고 애굽 문명의 중심지였다. 신전, 오벧리스크, 스핑크스, 궁전 등이 모여 있는 이 도시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위대한 기념비적 도시'로 묘사되기도 한다(IDB).

(주);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성벽이 되었으며 - '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얌'은 바다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나일 강의 웅장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고, 히브리어로는 비교적 물이 많은 곳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노아몬은 이런 지리적인 호조건으로 외적의 침입을 결코 받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성 경: [나3:9]

(주); 구스와 애굽이 그 힘이 되어 한이 없었고 - 노아몬은 애굽의 중왕국시대(B.C.2160-1580) 이후로 애굽의 수도로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신왕국 때의 18-21대 왕조에 전성기였지만, 그후 한동안 평이한 시기를 보내다가 에디오피아 왕조를 가리키는 '구스'(쿠쉬)와 애굽이 동맹을 모색하여 과거에 누렸던 명망을 회복하게 되었다.

(주); 붓과 루빔이 그의 돕는 자가 되었으니 - '붓'(푸트)은 루빔과 애굽과 에디오피아와 연관되는 것으로 봐서(창 10:6;대상 1:8; 렘 46:9)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며, 고대 페르시아의 기록에 의하면 '푸타야'(Putaya)라고 되어 있어서 리비아와 동일한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IDB). '루빔'은 리비아라고도 하며(NIV), 시삭 1세를 통해 입증된 대로(왕상 14:25,26), 애굽의 22대 왕조를 시작하게 할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노아몬이 누리던 영광을 잘 드러낸다.

성 경: [나3:10]

계속해서 앗수르의 공격으로 인해 노아몬 백성들이 당할 수모를 열거한다.

(주); 그가 포로가 되어...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숴졌으며 그 존귀한 자들은...나뉘었고 - '포로'나 '길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는 모습은 앞에서 했던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반복하는 것이고(2:4,7), 앗수르가 피정복 민족들의 '존귀한 자들'을 취급한 역사적인 사실은 니느웨의 부요했던 자들이 처하게 될 운명(3절;2:9)과 비교된다. 이러한 사실이 다른 역사적인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앗수르와 애굽의 전쟁을 다룬 구약 성경 기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왕하 17:4).

성 경: [나3:11]

(주); 너도 취한 바 되어...피난처를 찾아보리라 - 앞에서 언급한 노아몬의 경우처럼 앗수르가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을 받아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를 강도하기 위해 각 문장앞에는 '너도 역시'(you also)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접두사 '감-아테'가 있다. 니느웨는 그 방어 태세(8절)에 있어서나 몰락에 있어서 노아몬과 비슷하다. 이는 1:2-15에서 언급된 사실과 일치한다. 니느웨는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대로 '술취한 자'처럼 될 것이며(1:10), 그들이 우상을 의뢰했기 때문에(1:7) '피난처'를 찾으려는 노력도 헛될 것이다(C.E.Armerding).

성 경: [나3:12]

(주); 너의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떨어짐과 같으리라 - 니느웨의 견고한 산성이 하나님의 위임을 받고 쳐들어오는 바벧론과 메대의 군대에게는 결코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브차르'는 도시를 두르고있는 성벽을 가리키는 것으로(민 32:17;왕하 3:19) 외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산성은 마치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가 힘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무너질 것임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에 인간들이 힘써어 만들어 놓고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드신다(수 6:20; 시 9:6).

성 경: [나3:13]

(주); 너의 중 장정들은 여인 같고...성문들은 너의 대적 앞에 넓게 열리고 - 본절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앗수르가 나약한 국력을 갖게 될 것을 보여준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사들은 여인처럼 연약하여 외적을 막아내는 데에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니느웨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적의 침입 앞에 힘없이 열려질 것이다(2:6). 이와 같은 붕괴는 그 나라의 군대가 무력해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15-18절;사 19:16; 렘 50:37). 이렇게 된 중요한 원인은 이기주의로 인한 관리들의 부패였다. 그들의 아무리 인구가 많고, 견고한 성문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 앞에서는 그것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성 경: [나3:14]

본절은 바벧론과 메대의 군대에 의해 니느웨 성이 완전히 포위되고 산성들이 훼손되리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표현한다.

(주);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예비하며 - 전법(戰法)가운데 포위해서 식량선을 차단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투항을 유도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나훔 선지자가 물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단지 전쟁을 준비하라는 충고라기보다는 니느웨 성이 적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고야 말리라는 사실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주); 너의 산성들을 견고케...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석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진흙이 주요한 건축 자재였다(창 11:3). 이처럼 진흙을 이겨 만든 벽돌로 쌓았던 니느웨의 성벽은 각 성문 사이의 길이가 30m, 폭이 15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권고를 하는 것은 니느웨가 임박한 전쟁에 대비하여 성을 아무리 견고하게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2:1).

성 경: [나3:15]

(주); 칼이 너를 베기를 늣의 먹는 것같이...네가 늣 같이...네가 메뚜기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 본절은 앞 절(14절)과 마찬가지로 외적의 침입과 앗수르의 멸망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늣과 메뚜기'를 소재로 사용한다.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습성에 근거해서 곧 닥치게 될 외적의 침입을 언급하고, 한편으로는 그것들의 강한 변신력에 근거해서 많은 인구로 세력을 확장하라고 권면한다. 이런 표현은 앞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니느웨 사람들이 아무리 늣과 메뚜기같이 많아져도 멸망당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풍자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나3:16,17]

(주); 황충이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너의 방백은...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 계속해서 니느웨를 메뚜기에 비유하여 그들이 아무리 번창하더라도 마치 메뚜기가 허물을 벗고 날아가버리듯이 그들의 번성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말한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메뚜기와 관계되는 표현을 교차적으로 사용하였다. 그 용어들은 '먹는', '날개를 펴서', '먹는...많게 할지어다','많게 하였으나...날개를 펴서'등이다. 아무리 많은 지도자가 세워져 있어도 그들은 기껏해야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막상 어려움에 봉착하자 모두 사라져버릴 것을 예고한다. 이처럼 훌륭한 문학적인 기교와 용어 연상법을 사용하여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파멸에 이어 내적인 멸망 요인을 간파한다. 또한 이런 예언을 통해 당시의 앗수르가 기껏해야 편의주의와 권력과 재물의 증강으로 인해 이기주의에 근거해서 존속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C.E.Armerding).

성 경: [나3:18]

결론적으로 니느웨 백성에게 일어날 일을 왕에게 하소연하듯이 언급한다.

(주); 앗수르 왕이며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 '네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에이카'의 '레에'는 '친구'를 가리키는 용어로 왕의 참모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삼하 16:17;왕상 4:5; 대상 27:33). 여기서는 왕의 임명으로 세움 받은 정치 관리를 가리킨다. 또한, '네 귀족'의 히브리어 '아디레이카'는 귀족이나 용사, 군대장관, 통치자 등을 가리킨다(삿 5:13; 렘 14:3; 30:21). 이런 사람들이 '자고...누워 쉬었다'는 것은 모두 전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시 76:6;94:17). 게다가 백성이 흩어지고, 더욱 처절하게도 그들을 규합할 만한 지도자가 없을 것임을 예고한다.

성 경: [나3:19]

(주); 너의 다친 것은...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손뼉을 치나니 - 결국, 니느웨의 멸망 상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자에 비유된다. 더욱이 니느웨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동정을 받거나 협조를 받기는 커녕, 도리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주변 국가들이 모두 니느웨의 침략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R.L.Smith). 니느웨의 멸망은 이웃 나라 백성들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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