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일기-2022년 1월, 진안

홈 > 기독정보 > 아카데미채널
아카데미채널

산촌일기-2022년 1월, 진안

대구성서아카데미

바쁠 것 하나 없는 겨울.

느즈막히 일어나보니 눈이 내렸다. 간간히 가녀린 눈발이 내린다.

부지런한 옆집 아저씨는 벌써 눈을 쓸어 길을 내 놓는다.

나도 앞마당을 쓸고 차 위의 눈을 털었다.

어떻게 쇠줄이 풀렸는지 보라가 내 주변을 겅중겅중 맴돌며 좋아한다.


20220113_111928.jpg

 

20220113_111922.jpg


20220113_121819.jpg


요즘 아침은 닭장의 닭들과 보라에게 사료와 따뜻한 물을 가져다 주는 일로 시작된다.

닭장에 간 남편이 달걀 두 개를 건네준다. 청계란도 있다. 고맙다... 이 추운 날에도 알을 낳아주다니.



어제 장작을 패놓길 잘했다.

장작 패는 일이 남편에게 좀 힘에 부쳐 보이길레  내가 도끼를 들었다,

 끄덕 없을 것 같은 견고한 나무토막들이 도끼질을 난타하면 어느 순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때 연타를 치면 드디어 빡! 하고 뽀개진다. 그 순간의 쾌감이란~!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열번 찍어 안뽀개지는 나무도 없다. ㅎㅎ 

반으로 쪼개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울라라다.

내리치기만 해도 쫙쫙 뽀개진다. 장작이 갈라지면서 내는 소리도 경쾌하다.

스트레스 확 날리고 싶다면 장작을 뽀개는 일을 해보시라.

내가 장작을 뽀개는 걸 내다 본 앞집 봉순언니가 기함을 한다.

"혜란씨, 강단있네....! "뜨거운 유자차를 날라오고 대추자를 가져오며

장작이 갈라질 때마다 환호한다. "와~~ 대단하다~~!!!"

그때마다 나도 한 폼을 잡는다. 

요령을 터득하면 별 게 아닌데 옆에서 보면 천하장사로 보이나 보다. ㅋㅋ


20220111_144631.jpg



이리저리 튀는 장작을 주어 가지런히 쌓아 놓는다. 

껍질과 부스러기는 따로 모아  불쏘시개로 쓴다.

20220113_111833.jpg


하루에 한 번씩 적당히 도끼를 휘두르면 이렇게 장작이 모아진다.

장작을 뽀개고 쌓고 하는 일이 겨울엔 유일한 노동이다.

이 마저도 몸 쓸 일이 없으면 나 같은 육체파(?)는 몸이 근질거린다.

운동 좀 해볼까? 하고 나가면 방콕만 하던 남편도 나온다.

찬 공기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장작을  패고 나르면 몸이 더워지고 나중엔 땀이 난다.

그러고 나야 식욕도 돋고 피돌기도 빨라지고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20220113_111941 - 복사본.jpg 

차곡히 쌓아 놓은 장작더미는 예술이다. 설치미술품 같지 않은가?

잘라진 나무의 단면도 그렇거니와 껍질과 속살의 색깔...

나무의 나이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의 숨결이 농축되 있다.


20220113_112140 - 복사본.jpg


이참에 벽난로 예찬을 해야겠다.

우리는 벽난로로 보일러를 가동해 온 집안을 난방한다. 

벽난로 열로 물을 데워서 바닥이 따뜻해 지는 식이다.

그래서 바닥도 벽난로 주변도 그리 뜨겁지 않고 전반적인 공기가 은근히 안온하다. 

장작을 패야 하고 날라야 하고 며칠에 한 번씩 재를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3년째 겨울을 벽난로만 애용했다.

가스로도 보일러를 연결했지만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깔끔하고 편리한 대신, 왠지 심심해서다.

장작을 패는 원시적인 노동의 맛, 그리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멍의 재미와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언제까지 이 벽난로를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찌됬든 지금 이 벽난로가 내게 주는 평화와 안식을 누릴 뿐이다.


20220113_112306 - 복사본.jpg


한 겨울, 일년 중 가장 늘어져도 되는 시기다.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풀어져 보자.

이제 장작도 많이 준비해놨겠다, 실내도 따뜻하겠다, 

오늘은 읽다 만 <윤이상 평전>을 마저 읽어야겠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