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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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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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8일 금요일  아주 맑음


며칠 전 창고 정리를 했다. 

원래는 토굴인데 창고가 따로 없어서 이 토굴이 창고 역할을 한다.

집 뒤에 경사진 터를 이용해 땅을 파고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공간에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산다. 

남편과 나는 물건에 대한 생각이 아주 다르다.

나는 될수록 덜 가지고 가볍게 살자 주의인데

남편은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면서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끼고 산다.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 지을 때  일부러 창고를 만들지 않았다. 

땅도 협소하거니와  창고를 만들면 남편은 틀림없이 그 공간을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히  채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냉장고도 꽉 차면 답답하다. 빈 공간이 있어야 홀가분하다.

그래서 우리집엔 먹을 것을 쟁여 두고 살지 않는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좀 불편한 것이 답답한 것보다 낫다.


올해 90세인 시어머님은 홀로 사시는데

내 보기엔 미니멀리스트 원조시다.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그릇도 몇 개, 접시도 몇 개, 살림도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신다.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없다.

남편 치료차 서울을 올라갈 때마다 시어머님 댁에 머무는데

이상하게 편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물건이 없는데다가 

단정히 정돈이 되어 있어 들어가면 오롯히 쉴 수 있어서 그런가 보다.

물건이 단촐할 때 삶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그걸 나는 시어머님댁을 보면서 알았다.

나도 앞으로 계속 비우면서 살 생각이다. 

짐을 가지고 살면서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싶어서도 그렇고

내가 죽었을 때

아이들이 내 짐을 치우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아들답지 않게

남편은 아직도 많은 걸 끌어안고 산다. 

창고를 정리하다가 집 지을 때 쓰고 남은 못이랑 자재들을 이젠 필요한 사람 주자고 하니

언젠가 필요할 거라고 또 못 버린다.

으이그...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

어찌 되었든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많이 버리고  이웃 할머니에게 드렸다.

창고가 훨씬 단촐해졌다.


그런데 도구들을 정리하다가 손잡이가 부러진 작은 망치머리를 찾아냈다.

아주 오래된 것인데 아마도 시아버님이 쓰시던 유품일 것 같다.

무주로 내려올 때  이사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집으로 시어머니께서 들어오시고 

시어머님 짐이 무주로 왔는데 그 때 묻어 온 것 아닌가 싶다.

 망치는 작으마해서 손잡이만 새로 만들면 쓰기에 편할 것 같았다. 

망치 속에 옛 손잡이 나무가 박혀있었다. 그 걸 빼내기 위해 벽난로 불 속에 집어 넣었더니

속에 박힌 나무가 타버리고 네모난 구멍이 생겼다.

tv에서 어떤 농부가 이렇게 하는 걸 보고 따라했는데 정말 속이 비워졌다.

오늘 남편에게 일거리를 주문했다. 망치 자루를 만드는 일이다.

윗집에서 잘라버린 매실 나무가지가 단단해 보인다.

남편이 그걸 깍아서 망치 자루를 만들었다.

매실나무 자루가 끼워지니 망치가 되살아났다.

 새것 보다 맘에 든다.

하마터면 고물로 버려질 망치가 살아났으니 부활인 셈일까.

4월 8일 새로 태어난 우리집 낡은 망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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