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 월 3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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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 월 31일 목요일

대구성서아카데미

2022. 3.31.목 흐림


오전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진안 읍내를 나갔다.

장을 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도통 못 먹던 남편은 이제야 겨우 몸을 추스려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한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서도 속을 다스려야 했다.

남편의 병세는 점점 더 안좋게 발전(?)한다. 뇌 속의 암도 더 커졌고

대장에도 침투된 상태다. 치료도 세포독성 항암주사로 바뀌었다. 

1차 맞고 와서 죽었다 살아나는 중이다.


읍내 하나로 마트에 가서 수육 용 삼겹살 두 팩과 미나리 한 단 그리고 도토리 묵가루 참외 1봉지를 샀다,

남편은 따로 먹고 싶은 걸 골라왔는데 인스턴트 우동과 짬뽕이다.

그리고 치킨과 피자를 주문해서 포장해 왔다. 

나는 즐겨하지 않는 음식들인데 남편이 먹고 싶어해서다..

평소라면 잔소리를 하고 사주었을 텐데 환자라서 관대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쉼터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튀긴 닭을 먹었다.

짭조름하고 고소하다. 남편은 입맛을 조금 느끼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집에 와서는 피자를 한 조각 먹었다. 제발 소화를 잘 시키길!


오후

뒤꼍의 밭에 나가서 두어 시간 감자를 심었다.

퇴비를 뿌려 놓은 땅을 뒤집어 고랑을 두 줄 만들고 자른 씨감자를 묻었다.

옆집 순희언니가 뭔가를 들고 올라온다. 

엊그제 담아준 티라미슈 유리볼에 머위나물 무침이 얌전히 담겨있다.

"(남편이) 머위무침 해달라고 해서 이것만 가져갔어."

아저씨는 벌써 대전으로 가셨단다. 순희언니 남편은 개인택시를 한다.

대전을 오가며 운전을 했는데 근래 들어 퇴근길에 졸려서  대전에 아파트를 구해 

지내다가 주말과 쉬는 날에만 오신다.


감자심기를 놀이 삼아 했다.

앞마당에 무허가로 돋아난 양귀비도 캐서 화단 안으로 옮겨 심었다.

이렇게 흙이라도 만지며 노는 게 나에게는 큰 위로며 휴식이다.



저녁

물김치를 담갔다.

무우를 나박 나박 썰고 당근과 배 사과도 조금 썰어 넣었다. 

도마 위에서 무우랑 배 사과 써는 소리가  사각사각.... 수분도 충분하다.

미나리와 쪽파도 먹기 좋게 썰고 지난 가을 갈아둔 고추와 마늘을 보자기에 걸러 색을 낸다.

소금과 젓갈로 간을 한 후 생강즙도 조금 넣는다.  끓여서 식힌 물을 넣는다. 

물김치가 익으면 시원할 것 같다.

남편이 식탁에 앉아 잡지를 보면서 지금 담그면 언제 쯤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

낼모레쯤 먹을 수 있을거야.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리곤 이 지극히 평범한 풍경에 갑자기 감격스럽고 행복해진다.


벽난로 불이 은근하게 일렁이는  2022년  3월의 마지막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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